1. 상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의도라면 상에 고유하게 귀속될 만한 문제를 짚어줘야 한다. 지금의 접근방식으로는 모든 관계적인 속성 일반으로 문제가 확장되어 버린다. 예를 들어 상과 원본의 관계가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문제를 야기하는 것처럼 이야기된다면, 과연 이러한 문제를 『소피스트』가 상에 관련하여 지적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by S. H., Kang. 개별 상들이 고유한 개별 원본을 가져야 한다고 해서 상 일반 혹은 상 자체가 반드시 개별 상들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그 자신만의 원본을 가져야만 한다고 말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또한 그러한 원본 없이 지시되는 상 자체에 대해서도 그것을 아무것도 아니라고만 말해야 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고, "상은 있는 것과 있지 않은 것의 특수한 결합이다"라는 서술은 상 자체에 대해 유의미한 서술로 보인다. by H. S., Lee. 

  여전히 상은 원본에 의존적이라는 점에서 그것을 이해하는 데에 곤란한 문제를 야기한다는 관점은 유지되어야 할 것 같은데, 위의 지적들을 고려하면 접근이나 서술을 고쳐야 하는 것 맞는 것 같고. 좀 더 입장을 고수해 보자면,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의 상은 소크라테스 자신과 마찬가지로 '소크라테스'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다. 가짜 사과(그것이 회화작품이든 조형물이든 거울이나 수면에 비친 상이든 그림자든)는 여전히 그것의 원본이 되는 '사과'에서 이름을 빌려와 가짜 '사과'라고 불린다. 아마도 이 지점이 관계적인 것 일반에 대한 상의 고유한 특징, 차이점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 싶다. 아버지는 자식의 아버지로, 자식은 아버지의 자식으로 이야기되지만 그렇다고 한쪽이 다른 쪽의 성격 하나만으로 일방향적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크다는 것의 경우에도 x보다 크고 y보다 작다는 식의 서술이 큰 것에 대해 서술되고 그런 관계에 의해 큰 것이 어떻게 큰 것인지 설명되긴 하지만, 그것이 '크다'라는 그 측면이 x나 y의 고유한 성질에 의존하여 설명되지는 않는다. 

  문제의 초점을 상 자체와 개별 상들 사이의 구분에서 찾지 않고 상과 그 외의 의존적인 것들 사이의 구분에서 찾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렇게 접근할 경우 부정, 차이, 지시(생각, 말, 믿음, 지각)의 경우 전자로 분류할지 후자로 분류할지 아직 불분명하다. 상처럼 말이나 생각도 그것이 가리키는 원본을 '내용'으로 가지며, 이 내용 없이는 무의미해진다. 혹은 이 내용으로서의 원본을 논하지 않더라도 모방한다거나 지시한다거나 등등의 성격은 여전히 유의미하게 상이나 말 따위에 대해 서술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크다는 것 자체나 아버지 그 자체 같은 것도 마찬가지로 이야기될 수 있는가? a<b<c의 경우 b는 큼 자체에 참여하여 a와의 관계에서 큰 것이지만 동시에 작음 자체에 참여하여 c와의 관계에서 작은 것이기도 하다. 조금 더 고민해 볼 문제.

+ '아버지'의 정의에는 '남성'이, '어머니'의 정의에는 '여성'이 포함될 것이다. '크다' 그 자체는 크기, 양이라는 것이 본질로서 그 정의에 마치 아버지가 남성임이 필연적인 것처럼 그런 식으로 포함될 것이고,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아리스토텔레스식으로 실체 범주 규정 이후에 그러한 실체에 귀속될 것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남성 그리고 여성에 귀속될 것이며 '~보다 크다' 또는 '~보다 작다'라는 규정 역시 마찬가지로 양 자체에 후속하여 귀속될 것이다. 반면 상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상은 그림이거나 조각이거나 수면이거나 할 텐데, 이러한 것들 각각은 상의 정의에 포함되지 않고, 그 외의 성질들은 상의 고유한 원본으로부터만 유래할 것이다.

 

2. 참된 모순은 관점과 조건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양립불가능한 것들의 상충을 이야기하는 것일 수 있다. 반면 거짓 모순은 추가조건들을 규명함으로써 모종의 방식으로 양립 가능한 것임이 드러나게 되는 것일 수 있다. By Kang. 그런데 논박대상은 모순되는 것들을 동시에 믿을 때 그 믿음이 지적당함으로써 논박된다. 그렇다면 저러한 참된 모순을 믿을 때에만 그러한 무지를 가진 자가 논박당할 것이며, 이는 지나치게 논박대상이 되는 조건이 엄격해지는 것일 수 있다. By Lee. 여기에 더해, 이런 방식으로 참모순과 거짓모순을 구분할 때 소크라테스가 일반적으로 수행하는 작업은 거짓모순에 빠진 상대에게 관점과 조건의 차이를 밝혀 상대의 거짓모순을 해소하는 것일 수 있다. By Kang. 그러나 논박대상은 모순되는 믿음을 가질 때 바로 그 모순이 드러남으로써 무지를 자각하게 된다. 예를 들어 "좋은 것을 얻는 능력은 덕이다"라는 믿음은 "좋은 것을 정의롭게 얻는 능력이 덕이다"와 "좋은 것을 부정의하게 얻는 능력이 덕이다"라는 서로 모순되는 두 믿음을 동시에 포함하며 이 점에서 모순된다. 또한 "덕이 아닌 것은 좋은 것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라는 믿음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을 것인데, 좋은 것을 부정의하게 얻을 수 있는 상황에서 이를 얻지 않는 능력은 정의로울 것이고 덕일 것이다. 즉 다시, 정의로운 방식에서 좋은 것을 못 얻는 능력과 부정의한 방식으로 좋은 것을 못 얻는 능력이 모두 덕이 아니라는 두 믿음도 모순되고 있다. 이 모순은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조건이 불분명할 때 충분히 드러나지 않고 함의된 모순적인 믿음들이 모순되는 바로 그 조건과 관점이 드러남으로써 밝혀지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논박을 통해 무지를 자각하고 나면, 기존에 논박대상이 모순으로 간주하여 받아들이지 않았을 두 가지 믿음, "좋은 것을 얻는 능력이 덕이다"와 "좋은 것을 얻지 못하는(않는) 능력이 덕이다"가 추가된 조건들을 통해 양립 가능한 것으로 수용될 수 있게 된다. 이는 논의의 진행과정에서 논박상대가 받아들이게 되는 결과이고, 논박의 대상이 된 바로 그 모순은 아니다. 그리고 있는 것과 있지 않은 것 관련한 모순의 경우에도 같은 구도를 생각할 수 있다. 논박대상은 있는 것은 있고 있지 않은 것은 있지 않다고 믿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은, 『소피스트』의 후반 논의를 고려하면, "있는 것은 있는 것에 참여해서 있다"는 믿음과 "있는 것은 있는 것 자체에 대해서 다른 것에 참여해서 있다"라는 두 믿음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며 또한 "있지 않은 것은 있는 것에 대해서 다른 것에 참여해서 있지 않다"는 믿음과 "있지 않은 것은 있는 것에 완전히 반대되는 방식으로 모든 있는 것들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믿음을 구분하지 않고 모순적으로 함께 가지고 있다. 이 모순들은 지적되어 논박대상의 무지를 드러낼 것이고, 이러한 무지를 자각하고 나서야 "있는 것은 있는 것에 대해서 다른 것에 참여해 있지 않다"라거나 "있지 않은 것은 있는 어떤 것에 대해서 마주 놓인 있는 것에 참여하여 있다"라는 모순되지 않는 믿음들을 새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여기에서 운동과 정지를 참된 모순의 사례로 드는 입장에 반대하고자 한다면 이 둘 또한 양립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by Kang. 그런데 이 문제를 논하려는 의도는 없었고, 역으로 그 사례가 무엇이든 결코 양립 불가능한 것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믿는 그러한 경우에만 참된 논박이 가능하다는 조건이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다. 그런데 위의 방식으로 서술하다 보니 모순은 그대로 모순이고, 특수한 조건이나 관점이 규명되지 않은 차원에서 반성없이 지니는 믿음은 더 구체적이고 정확한 조건이 해명된 차원에서는 양립할 수 없는 모순되는 믿음들을 포함하는 경우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소피스트들의 말장난으로 보이기도 하는 논박도 이러한 조건을 만족시키는지 여부가 문제일 것이다. 예를 들어 (a) 나의 개가 나의 것이고 (b) 나의 아버지 또한 나의 것이라면 (c) 나는 나의 것의 자식이기에 (d) 나는 내 개의 자식이라는 말장난의 경우는 어떠한가? (a)와 (b)에서 나의 소유물로서 나와 관계맺는 것과 나의 기원으로서 나와 관계맺는 것이 모두 나에게 속한 것으로 말해진다는 점에 주의한다면, (a)와 (b)를 부주의하게 긍정하는 자가 암묵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모순을 추론할 수 있다. (a)에서의 '나의 것'과 (b)에서의 '나의 것'은 그 둘이 서로 같은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다른 것을 같은 것이라고 암묵적으로 동의하게 되면 이는 모순을 믿는 것이 되고, 그 모순은 (c)에서 그 암묵적 동의 자체에 대한 재차 동의가 이루어짐에 따라 (d)에서 지적받게 된다. 즉 말장난은 소피스트가 하고 있지만, 그가 논의를 전개하는 과정을 중단하지 않고 수용할 경우, 대화상대방도 바로 그 말장난에 포함된 모순에 동의하게 되는 것이며, 소피스트는 바로 이 동의된 모순을 지적하여 상대방의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a)에서 '나의 것'과 (b)에서 '나의 것' 둘 사이의 차이를 분명하게 밝혀주는 조건을 알고 주의하고 있는 사람, 즉 아는 자라면 이 논박에 의해 모순에 빠지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결국 소피스트에게 당한 상대방이 아무리 억울해 한다 하더라도, 그 상대는 자신이 무지했기 때문에 논박을 당해 무지를 자각하게 된 것이다. 가짜 모순, 겉보기 모순이 (d)라면, 갑자기 아무 과정이나 단계도 없이 (d) 같은 것을 받아들이거나 애초에 믿고 있거나 한 사람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반면 (a)와 (b)를 순차적으로 긍정하는 방식에서 그 안에 함의된 모순까지 수용하는 경우, 이는 겉보기 모순을 누군가 가짜로 만들어내 상대에게 강제한 것이 아니라, 상대가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고 스스로 그 모순을 받아들여 버린 것이 된다. 

 

-蟲-

Μετὰ δὴ ταῦτα δεῖ νοεῖν ὅτι πυρός τε γένη πολλὰ γέγονεν,                 5

οἷον φλὸξ τό τε ἀπὸ τῆς φλογὸς ἀπιόν, ὃ κάει μὲν οὔ, φῶς

δὲ τοῖς ὄμμασιν παρέχει, τό τε φλογὸς ἀποσβεσθείσης ἐν

τοῖς διαπύροις καταλειπόμενον αὐτοῦ· κατὰ ταὐτὰ δὲ ἀέρος,            d

τὸ μὲν εὐαγέστατον ἐπίκλην αἰθὴρ καλούμενος, ὁ δὲ θολερώ-

τατος ὁμίχλη τε καὶ σκότος, ἕτερά τε ἀνώνυμα εἴδη, γεγονότα

διὰ τὴν τῶν τριγώνων ἀνισότητα. 

그럼 이러한 것들 다음으로는 불의 유들도 여럿으로 생성된다는 점,

예를 들어 불꽃과 불꽃으로부터 나온, 태우지는 않지만 눈에 빛은

제공하는 것, 또한 불꽃이 사그라들면 등걸불 속에서 거기에 남겨지는

것도 생성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데 같은 것들에 따라

(같은 식으로) 공기도, 가장 투명한 유는 아이테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공기이고, 가장 탁한 유는 안개라고도 땅거미(어둠, 그림자?)

라고도 불리는 공기이며, 다른 무명인 형상들도, 삼각형들의 부등함으로

인하여 생성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τὰ δὲ ὕδατος διχῇ μὲν

πρῶτον, τὸ μὲν ὑγρόν, τὸ δὲ χυτὸν γένος αὐτοῦ. τὸ μὲν οὖν               5

ὑγρὸν διὰ τὸ μετέχον εἶναι τῶν γενῶν τῶν ὕδατος ὅσα σμικρά,

ἀνίσων ὄντων, κινητικὸν αὐτὸ τε καθ᾿ αὑτὸ καὶ ὑπ᾿ ἄλλου διὰ

τὴν ἀνωμαλότητα καὶ τὴν τοῦ σχήματος ἰδέαν γέγονεν· 

             물의 유들은 우선 두 가지로 있는데, 한편으로는 습한

유, 다른 한편으로는 가융적인 것이 그 물의 유로 있습니다. 그래서

습한 유는 물의 작고 불균등한 채로 있는 유들에 참여하는 것으로

있다는 점으로 인해, 그 자체 스스로도 여타의 것에 의해서도 그

불균형과 그 형태의 형상으로 인해 운동성이 있는 것으로

생성되었습니다.

> 서로 다른 크기의 요소삼각형들이 서로 다른 종류의 물들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다양한 크기의 요소삼각형들로 된 다양한 

종류의 물들이 다 함께 뒤섞여 그 전체가 습한 물로 이야기된다.

by Kang 한 가지 가능한 제안? 

                                                                        τὸ

δὲ ἐκ μεγάλων καὶ ὁμαλῶν στασιμώτερον μὲν ἐκείνου καὶ                 e

βαρὺ πεπηγὸς ὑπὸ ὁμαλότητός ἐστιν, ὑπὸ δὲ πυρὸς εἰσιόντος

καὶ διαλύοντος αὐτὸ τὴν ὁμαλότητα ἀποβάλλει, ταύτην δὲ

ἀπολέσαν μετίσχει μᾶλλον κινήσεως, γενόμενον δὲ εὐκίνητον,

ὑπὸ τοῦ πλησίον ἀέρος ὠθούμενον καὶ κατατεινόμενον ἐπὶ                5

γῆν, τήκεσθαι μὲν τὴν τῶν ὄγκων καθαίρεσιν, ῥοὴν δὲ τὴν

κατάτασιν ἐπὶ γῆν ἐπωνυμίαν ἑκατέρου τοῦ πάθους ἔλαβεν.

                     그런데 크고 균등한 유들로 이루어진 쪽은

저것에 비해서는 더 정적이고 균등성에 의해 고착화하여 무거운

것으로 있으며, 그런데 그것을 관통하고 해체시켜 버리는 불에

의해서는 그 균등성을 상실하고, 이 균등성을 상실하여서 더

많이 운동에 참여하고, 잘 운동하는 것이 되어서, 인접한 공기에

의해 압착되고 대지에 전개되며, 덩어리들의 감소는 '녹는다'라고,

다른 한편 대지 위에의 그 전개는 '흐름'이라고 그 양편의 상태

각각에 대한 별명을 얻었습니다.

πάλιν δ᾿ ἐκπίπτοντος αὐτόθεν τοῦ πυρός, ἅτε οὐκ εἰς κενὸν         59a

ἐξιόντος, ὠθούμενος ὁ πλησίον ἀὴρ εὐκίνητον ὄντα ἔτι τὸν

ὑγρὸν ὄγκον εἰς τὰς τοῦ πυρὸς ἕδρας συνωθῶν αὐτὸν αὑτῷ

συμμείγνυσιν· ὁ δὲ συνωθούμενος ἀπολαμβάνων τε τὴν

ὁμαλότητα πάλιν, ἅτε τοῦ τῆς ἀνωμαλότητος δημιουργοῦ                  5

πυρὸς ἀπιόντος, εἰς ταὐτὸν αὑτῷ καθίσταται. 

그런데 다시 그 자리에서 불이 쫓겨날 경우에는, 빈 곳으로

빠져나가지 않기에, 인접한 공기가 떠밀려 여전히 잘 운동하는

것으로 있는 습한 덩어리를 불의 자리들로 함께 몰아 넣어

그것을 자신과(주어 자신? 습한 덩어리 자신?) 함께 섞습니다.

그런데 그 함께 압착된 것은 균등성을 다시금 되찾아, 불균등성의

제작자인 불이 빠져나가기에, 자신과 같은 것쪽에 놓입니다.

                                                          καὶ τὴν μὲν

τοῦ πυρὸς ἀπαλλαγὴν ψῦξιν, τὴν δὲ σύνοδον ἀπελθόντος

ἐκείνου πεπηγὸς εἶναι γένος προσερρήθη. τούτων δὴ πάν-

των ὅσα χυτὰ προσείπομεν ὕδατα, τὸ μὲν ἐκ λεπτοτάτων                b

καὶ ὁμαλωτάτων πυκνότατον γιγνόμενον, μονοειδὲς γένος,

στίλβοντι καὶ ξανθῷ χρώματι κοινωθέν, τιμαλφέστατον

κτῆμα χρυσὸς ἠθημένος διὰ πέτρας ἐπάγη· χρυσοῦ δὲ ὄζος,

διὰ πυκνότητα σκληρότατον ὂν καὶ μελανθέν, ἀδάμας ἐκλήθη.           5

                      그래서 불의 탈락이 냉각, 저 불이 빠져나갔을

경우의 수축은 응고라는 유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용해되는 물이라 부르는 그 모든 것들 중, 가장 미세하고 가장 균형적인

것들로부터 가장 치밀한 것으로 생성되어 나오는, 고유한 유로서,

반짝이는 황금 빛깔이 감도는 것, 가장 값비싼 소유물인 금은

바위들을 통과해 걸러져 나와 응고됩니다. 그런데 금의 일종으로서,

치밀함으로 인해 가장 견고한 것이자 검은 것은, 아다마스라고

불립니다.

τὸ δ᾿ ἐγγὺς μὲν χρυσοῦ τῶν μερῶν, εἴδη δὲ πλείονα ἑνὸς ἔχον,

πυκνότητι δέ, τῇ μὲν χρυσοῦ πυκνότερον ὄν, καὶ γῆς μόριον

ὀλίγον καὶ λεπτὸν μετασχόν, ὥστε σκληρότερον εἶναι, τῷ

δὲ μεγάλα ἐντὸς αὑτοῦ διαλείμματα ἔχειν κουφότερον, τῶν             c

λαμπρῶν πηκτῶν τε ἓν γένος ὑδάτων χαλκὸς συσταθεὶς

γέγονεν· τὸ δ᾿ ἐκ γῆς αὐτῷ μειχθέν, ὅταν παλαιουμένω

διαχωρίζησθον πάλιν ἀπ᾿ ἀλλήλων, ἐκφανὲς καθ᾿ αὑτὸ γιγνό-

μενον ἰὸς λέγεται.                                                                  5  //210623

              그런데 부분들에서는 황금에 가까운 것이나, 하나를

넘는 종류들을 지니는 것, 조밀함으로는, 그 점에서 황금보다는

더 조밀한 것으로 있고, 소수의 미세한 흙의 부분이 참여하여서,

더 견고한 것이게 되지만, 자신의 내부에 큰 간격들을 지닌다는

점에서는 더 가벼운 것으로서, 빛을 내는 응고된 액체들 중 한 유인

청동이 구성되어 생성됩니다. 그런데 흙으로부터 그것에 혼합된

것은, 그 둘이 오래 되어 다시금 서로로부터 분리된 때에는, 스스로

드러나게 되어 녹이라고 말해집니다.

                       τἆλλα δὲ τῶν τοιούτων οὐδὲν ποικίλον                5

ἔτι διαλογίσασθαι τὴν τῶν εἰκότων μύθων μεταδιώκοντα

ἰδέαν· ἣν ὅταν τις ἀναπαύσεως ἕνεκα τοὺς περὶ τῶν ὄντων

ἀεὶ καταθέμενος λόγους, τοὺς γενέσεως πέρι διαθεώμενος

εἰκότας ἀμεταμέλητον ἡδονὴν κτᾶται, μέτριον ἂν ἐν τῷ βίῳ            d

παιδιὰν καὶ φρόνιμον ποιοῖτο. ταύτῃ δὴ καὶ τὰ νῦν ἐφέντες

τὸ μετὰ τοῦτο τῶν αὐτῶν πέρι τὰ ἑξῆς εἰκότα δίιμεν τῇδε.

                                             헌데 이러한 것들 중

여타의 것들을 모상적인 이야기들의 형상을 좇으면서 이 이상으로

논의하는 것은 전혀 복잡한 일이 아닙니다. 그 형상을 놓고서

누군가가 한숨 돌리기 위해서 언제나 있는 것들에 관한 말들을

내려 놓은 채로, 생성에 관한 모상적인 말들을 관조하며 후회없는

쾌락을 얻을 때, 그는 삶 속에서 적도를 갖춘 슬기로운 놀이를

할 것입니다. 그럼 이러한 놀이에 지금의 논의들을 넘겨주고

이 다음으로 같은 것들에 관련하여 이어지는 모상적인 것들을

이하의 방식으로 살펴 나아가 보도록 합시다. 

τὸ πυρὶ μεμειγμένον ὕδωρ, ὅσον λεπτὸν ὑγρόν τε διὰ τὴν

κίνησιν καὶ τὴν ὁδὸν ἣν κυλινδούμενον ἐπὶ γῆς ὑγρὸν λέγεται,           5

μαλακόν τε αὖ τῷ τὰς βάσεις ἧττον ἑδραίους οὔσας ἢ τὰς γῆς

ὑπείκειν, τοῦτο ὅταν πυρὸς ἀποχωρισθὲν ἀέρος τε μονωθῇ,

γέγονεν μὲν ὁμαλώτερον, συνέωσται δὲ ὑπὸ τῶν ἐξιόντων              e

εἰς αὑτό, παγέν τε οὕτως τὸ μὲν ὑπὲρ γῆς μάλιστα παθὸν

ταῦτα χάλαζα, τὸ δ᾿ ἐπὶ γῆς κρύσταλλος, τὸ δὲ ἧττον, ἡμιπαγές

τε ὂν ἔτι, τὸ μὲν ὑπὲρ γῆς αὖ χιών, τὸ δ᾿ ἐπὶ γῆς συμπαγὲν

ἐκ δρόσου γενόμενον πάχνη λέγεται.                                          5

                                                       불과 섞인 물은, 

섬세하고 습한 것으로서 흙 위에서 구르는 그 운동과 경로로

인해 습한 것이라 말해지고, 또 이번엔 그 면들이 흙의 면들에

비하여 덜 안정적인 것들로 있기에 유연하다는 점에서 부드러운

것이라 말해지며, 이러한 것이 불 그리고 공기로부터 분리되어

홀로될 때, 더욱 균형잡힌 것이 되었는가 하면, 이탈하는 것들에

의해 자신에게로 함께 압착되어, 그런 식으로 대지의 상공에서

그런 일들을 최대로 겪은 것은 우박으로 응고되었고, 대지의

표면 위에서 그런 것은 얼음으로 되었으며, 그런데 덜 겪고,

아직 반절 정도만 응고된 채로 있는 것은, 또 이번엔 대지의

상공에서는 눈으로, 대지의 표면 위에서 이슬로부터 응결된

것은 서리라고 말해지지요.

                                                τὰ δὲ δὴ πλεῖστα                    5

ὑδάτων εἴδη μεμειγμένα ἀλλήλοις―σύμπαν μὲν τὸ γένος,

διὰ τῶν ἐκ γῆς φυτῶν ἠθημένα, χυμοὶ λεγόμενοι―διὰ δὲ τὰς        60a

μείξεις ἀνομοιότητα ἕκαστοι σχόντες τὰ μὲν ἄλλα πολλὰ

ἀνώνυμα γένη παρέσχοντο, τέτταρα δὲ ὅσα ἔμπυρα εἴδη,

διαφανῆ μάλιστα γενόμενα, εἴληφεν ὀνόματα αὐτῶν, τὸ μὲν

τῆς ψυχῆς μετὰ τοῦ σώματος θερμαντικὸν οἶνος, τὸ δὲ λεῖον            5

καὶ διακριτικὸν ὄψεως διὰ ταῦτά τε ἰδεῖν λαμπρὸν καὶ στίλβον

λιπαρόν τε φανταζόμενον ἐλαιηρὸν εἶδος, πίττα καὶ κίκι καὶ

ἔλαιον αὐτὸ ὅσα τ᾿ ἄλλα τῆς αὐτῆς δυνάμεως· 

                                                             그런데 물들의

대다수 형상들은 서로 섞인 채로―그 유를 통틀어서는, 대지로부터

나오는 식물들을 통해 걸러져서, 과즙이라 말해지는 것들로서―

그 섞임들로 인해 각각의 것들이 비유사성을 지님으로써 여타의

많은 유들은 이름 없이 제시되지만, 불이 내재하는 형상들 네

가지는, 가장 명백한 것들로 생성되면서, 그것들의 이름들을

지녔으니, 신체와 함께 영혼에 열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은 포도주, 

매끄럽고 시선에 대해 분산시키는 것으로서 이러한 점들로 인해

보기에 밝고 빛나며 윤기가 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은 오일이라는

형상이니, 역청과 피마자유와 올리브유 그리고 또한 같은 능력을

지니는 여타의 것들도 그것입니다.

                                                           ὅσον δὲ δια-

χυτικὸν μέχρι φύσεως τῶν περὶ τὸ στόμα συνόδων, ταύτῃ            b

τῇ δυνάμει γλυκύτητα παρεχόμενον, μέλι τὸ κατὰ πάντων

μάλιστα πρόσρημα ἔσχεν, τὸ δὲ τῆς σαρκὸς διαλυτικὸν τῷ

κάειν, ἀφρῶδες γένος, ἐκ πάντων ἀφορισθὲν τῶν χυμῶν,

ὀπὸς ἐπωνομάσθη.                                                                 5

입 전반에 응축된 것들에 대해 본성에 이르기까지 이완시키는

것, 그 능력으로써 달콤함을 제공하는 것은, 특히나 대체로

꿀이라는 호칭을 지니는 한편, 태움으로써 살을 해체시키는

것은, 포말을 일으키는 유로서, 온갖 과즙들로부터 구분되어,

산성액이란 별칭이 붙었습니다.

 

Γῆς δὲ εἴδη, τὸ μὲν ἠθημένον διὰ ὕδατος τοιῷδε τρόπῳ

γίγνεται σῶμα λίθινον. τὸ συμμιγὲς ὕδωρ ὅταν ἐν τῇ

συμμείξει κοπῇ, μετέβαλεν εἰς ἀέρος ἰδέαν· γενόμενος δὲ

ἀὴρ εἰς τὸν ἑαυτοῦ τόπον ἀναθεῖ. κενὸν δ᾿ ὑπερεῖχεν                   c

αὐτῶν οὐδέν· τὸν οὖν πλησίον ἔωσεν ἀέρα. 

그런데 흙의 형상들의 경우, 물을 통해 걸러진 것은 이하와

같은 방식으로 석질의 물체가 됩니다. 그 섞인 물이 그 섞인

와중에 깨지면, 공기의 형상으로 변합니다. 그런데 생성된

공기가 자신의 장소를 향해 상승하지요. 반면 그것들 중

어느 것도 허공은 지니지 않지요. 그리하여 인접한 공기를

밀어냅니다.

                                                        ὁ δὲ ἅτε ὢν

βαρύς, ὠσθεὶς καὶ περιχυθεὶς τῷ τῆς γῆς ὄγκῳ, σφόδρα

ἔθλιψεν συνέωσέν τε αὐτὸν εἰς τὰς ἕδρας ὅθεν ἀνῄει ὁ νέος

ἀήρ· συνωσθεῖσα δὲ ὑπὸ ἀέρος ἀλύτως ὕδατι γῆ συνίσταται             5

πέτρα, καλλίων μὲν ἡ τῶν ἴσων καὶ ὁμαλῶν διαφανὴς μερῶν,

αἰσχίων δὲ ἡ ἐναντία.                                                        //210707

                 그런데 [밀려난] 이 공기는 무거운 것으로 있기에,

밀려나 흙의 덩어리에 쏟아져서, 거기에서 새로운 공기가 상승한

그 자리들로 그 덩어리를 압착하여 몰아부칩니다. 헌데 공기에

의해 몰아부쳐져서 물에 의해서는 해체되지 않는 식으로 흙이

암석으로 구성되고, 동등하고 균형적인 부분들로 된 선명한 암석은

더 아름다운 한편, 이와 반대되는 암석은 더 추합니다.

                             τὸ δὲ ὑπὸ πυρὸς τάχους τὸ νοτερὸν

πᾶν ἐξαρπασθὲν καὶ κραυρότερον ἐκείνου συστάν, ᾧ γένει           d

κέραμον ἐπωνομάκαμεν, τοῦτο γέγονεν· ἔστιν δὲ ὅτε νοτίδος

ὑπολειφθείσης χυτὴ γῆ γενομένη διὰ πυρὸς ὅταν ψυχθῇ,

γίγνεται τὸ μέλαν χρῶμα ἔχον λίθος. 

                                                                    그런데

빠른 불에 의해 수분을 모두 빼앗긴 것은 저것보다 깨지기도 더

쉬운 것으로 구성되어, 도토 류라는 별칭으로 우리가 부르는, 그런

것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습기가 남아서 불을 통해 녹은 흙이 생겨

식을 때, 검은 색을 띤 돌이 생성됩니다.

                                                τὼ δ᾿ αὖ κατὰ ταὐτὰ

μὲν ταῦτα ἐκ συμμείξεως ὕδατος ἀπομονουμένω πολλοῦ,               5

λεπτοτέρων δὲ ἐκ γῆς μερῶν ἁλμυρώ τε ὄντε, ἡμιπαγῆ γενο-

μένω καὶ λυτὼ πάλιν ὑφ᾿ ὕδατος, τὸ μὲν ἐλαίου καὶ γῆς

καθαρτικὸν γένος λίτρον, τὸ δ᾿ εὐάρμοστον ἐν ταῖς κοινωνίαις

ταῖς περὶ τὴν τοῦ στόματος αἴσθησιν ἁλῶν κατὰ λόγον                e

[νόμου] θεοφιλὲς σῶμα ἐγένετο. τὰ δὲ κοινὰ ἐξ ἀμφοῖν

ὕδατι μὲν οὐ λυτά, πυρὶ δέ, διὰ τὸ τοιόνδε οὕτω συμπήγνυται.

                                                   그런데 이번엔 같은 방식에

따라 많은 물과의 혼합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것들이

남겨지는데, 흙의 더 섬세한 부분들로 이루어진 짠맛인 것들로 있으며,

반 정도 응고되고 물에 의해 다시 분해되는 두 가지 것들로서, 한편은

올리브유와 흙을 씻어내는 소다 류이고, 다른 한편은 입의 지각에

관련된 결합들에서 잘 조화될 수 있는 것으로 [관습적인] 말에 따르면

신의 사랑을 받는 물체인 소금이 되었지요. 그런데 양자(흙과 물)로부터

나온 결합들은 물에 의해서는 해체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지만, 불에

의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으로 인해 그런 것으로 구축되어 있습니다.

γῆς ὄγκους πῦρ μὲν ἀήρ τε οὐ τήκει· τῆς γὰρ συστάσεως

τῶν διακένων αὐτῆς σμικρομερέστερα πεφυκότα, διὰ πολλῆς          5

εὐρυχωρίας ἰόντα, οὐ βιαζόμενα, ἄλυτον αὐτὴν ἐάσαντα

ἄτηκτον παρέσχεν· τὰ δὲ ὕδατος ἐπειδὴ μείζω πέφυκεν μέρη,

βίαιον ποιούμενα τὴν διέξοδον, λύοντα αὐτὴν τήκει. 

흙의 덩어리들을 불과 공기는 녹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흙의] 구조 자체의 틈들보다 그것들[불과 공기]이 본디 더 작은

부분들로 되어있어서, 많은 열린 자리를 통과해 진행하면서,

강제를 행사하지 않음으로써, 그 [흙의] 구조를 해체되지 않은

것으로 내버려 두어서 녹지 않을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물의 부분들은 본디 더 크게 타고났는지라, 강제로

통로를 만듦으로써, 그 [흙의] 구조를 해체시켜 융해시킵니다.

                                                                    γῆν

μὲν γὰρ ἀσύστατον ὑπὸ βίας οὕτως ὕδωρ μόνον λύει,              61a

συνεστηκυῖαν δὲ πλὴν πυρὸς οὐδέν· εἴσοδος γὰρ οὐδενὶ πλὴν

πυρὶ λέλειπται. τὴν δὲ ὕδατος αὖ σύνοδον τὴν μὲν βιαιο-

τάτην πῦρ μόνον, τὴν δὲ ἀσθενεστέραν ἀμφότερα, πῦρ τε

καὶ ἀήρ, διαχεῖτον, ὁ μὲν κατὰ τὰ διάκενα, τὸ δὲ καὶ κατὰ              5

τὰ τρίγωνα· βίᾳ δὲ ἀέρα συστάντα οὐδὲν λύει πλὴν κατὰ

τὸ στοιχεῖον, ἀβίαστον δὲ κατατήκει μόνον πῦρ. 

                                                              왜냐하면

강제에 의해 구조화되지 않은 흙은 그런 식으로 오직 물만이

해체시키는 반면, 구조화되어 있는 것은 불 외에는 아무것도

해체시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불 외에는 그 무엇에게도

유입로가 남지 않았으니 말이지요. 헌데 이번엔 물의 가장

강제적[으로 이루어진] 수축은 오직 불만이, 그보다 더 약한

수축은 불과 공기 양자 모두가, 해산시키니, 한편[공기]은

빈곳들을 따라, 다른 한편[불]은 삼각형들로 그리 합니다.

그런데 강제로 구조화된 공기는 요소로 해체시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해체시키지 못하고, 강제되지 않은 공기는 오직

불만이 해체시킵니다.

                                                              τὰ δὴ τῶν

συμμείκτων ἐκ γῆς τε καὶ ὕδατος σωμάτων, μέχριπερ ἂν

ὕδωρ αὐτοῦ τὰ τῆς γῆς διάκενα καὶ βίᾳ συμπεπιλημένα κατ-         b

έχῃ, τὰ μὲν ὕδατος ἐπιόντα ἔξωθεν εἴσοδον οὐκ ἔχοντα μέρη

περιρρέοντα τὸν ὅλον ὄγκον ἄτηκτον εἴασεν, τὰ δὲ πυρὸς

εἰς τὰ τῶν ὑδάτων διάκενα εἰσιόντα, ὅπερ ὕδωρ γῆν, τοῦτο

πῦρ [ἀέρα] ἀπεργαζόμενα, τηχθέντι τῷ κοινῷ σώματι ῥεῖν              5

μόνα αἴτια συμβέβηκεν· 

                           그래서 흙과 물로부터 혼합된 물체들의

경우들에서, 그 [혼합된] 물체의 물이 흙의 빈곳들을 설령 강제로

압착된 것들이라 할지라도 점유하는 한, 외부로부터 향해 오는

유입로를 지니지 못하는 물의 부분들은 그 덩어리 전체를 둘러

흐르면서 [그 물체를] 해체되지 않은 것으로 내버려 두는 한편,

불의 부분들은 물의 빈자리들로 들어감으로써, 물이 흙에 실현하는

바로 그 일을, 불로서 [공기에게] (Cornford, 물에게) 실현함으로써,

해체된 결합-물체로 하여금 흐르도록 하는 유일한 원인으로

귀결되었습니다.

                               τυγχάνει δὲ ταῦτα ὄντα, τὰ μὲν

ἔλαττον ἔχοντα ὕδατος ἢ γῆς, τό τε περὶ τὴν ὕαλον γένος

ἅπαν ὅσα τε λίθων χυτὰ εἴδη καλεῖται, τὰ δὲ πλέον ὕδατος          c

αὖ, πάντα ὅσα κηροειδῆ καὶ θυμιατικὰ σώματα συμπήγνυται.

그런데 마침 이러한[흙-물 혼합] 것들이 있으니, 그 한편으로

흙의 일부보다 더 적은 물의 일부를 지니는 것들은, 유리를

포함하는 부류 전부와 돌들 중 녹을 수 있는 형상들로 불리는

것들이고, 다른 한편으로 이번엔 물의 일부를 더 많이 가지는

것들은, 밀납류와 향으로 피울 만한 물체들로서 응고된 것들

모두입니다.

 

-蟲-

 

같은 크기의 a, b, c가 있다. a는 정지해 있고, b와 a는 등속운동을 하면서 서로 같은 속력으로 반대방향에서 동시에 c를 지나가면서 서로를 지나치고 있다. 이 경우 c는 b 전체를 통과하는 시간 동안 a의 절반을 지난다. c의 속도를 1m/s라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a, b, c의 크기는 4m라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c는 1m/s의 속력으로 4초 동안 4m의 거리를 이동한다. 그리고 바로 이 동일한 운동을 통해 2초 동안 a의 절반인 2m를 이동하는 동시에, b의 전체 크기인 4m를 통과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 제논은 두 배의 시간이 절반의 시간과 같은 시간이 된다고 지적하며 이를 역설로 제시한다. 여기에서 운동하는 물체 c는 단일한 물체이며 그것의 운동 또한 단일하다. 그래서 c는 1m/s의 속력으로 2초 동안 2m를 통과한 동시에 4m를 통과하게 되고, 같은 속력의 단일한 운동이 두 가지 서로 다른 거리를 통과하게 된다. 이제 c가 a를 통과한 측면에서 c는 1m/s의 속력으로 2초 동안 2m를 지나갔고, (a) 이 속력으로 4m를 지나가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4초가 될 것이다. 다른 한편 c가 b를 통과한 측면에서 (b) c가 크기 4m인 b 전체를 지나가는 데에 걸린 시간은 2초이다. (a)와 (b) 각각에 소요되는 시간은 서로 절반과 두 배라는 비례를 가진다. 그러나 (a)에서의 속력과 (b)에서의 속력은 모두 단일한 운동체 c의 단일한 운동에서 측정된 속력일 것이다. 따라서 바로 이 단일한 속력으로 4m를 지나가는 데에 걸리는 두 가지 시간, 절반의 시간과 두 배의 시간은 한 운동체의 한 운동에 속한 동일한 시간이다. 같은 속도로 반대방향에서 이동하는 b에 대해서도 c의 경우와 마찬가지의 상황이 발생하며, 정지해 있는 a에 대해서는 두 물체가 a의 절반을 지나는 데에 걸린 바로 그 똑같은 시간 동안에 a 자신과 똑같은 만큼의 크기(연장, 거리)를 지나는 일이 발생한다. 여기에서 역설이 발생하는 지점은 고려되고 있는 물체 각각의 자기동일성과 그 단일한 각 물체에 고유한 운동의 또 역시 개개의 자기동일성이 논리적으로 엄격하게 보존되는 한에서, 자기동일적인 단일한 물체에게 그 자신에 고유한 절대적 운동과 상대적 운동이 동시에 귀속될 수 없다는 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정지해 있는 물체를 통과하는 일과 마주 오는 운동을 하고 있는 물체를 통과하는 일이 한 물체에게 동시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이 역설 발생의 전제조건일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이 모든 물체에 일반적으로 적용되기 위해서는, 무한하게 펼쳐진 것으로서 소위 절대공간과 절대시간이 한편으로 가정되고, 다른 한편으로 그 안의 모든 물체들의 운동이 상대적으로 규정될 수 있다는 점이 또한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각기 독립적으로 고정된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이 전제되어 있을 경우, 이 안에서 모든 물체 각각은 자신의 고유한 운동을 이러한 시공간을 척도로 하여 측정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구분되는 방식으로 임의의 운동하는 물체를 기준으로 하여 각각의 물체의 고유한 운동이 상대적으로 측정될 수도 있다. 이 상대적인 측정의 경우에도, (아마도) 제논 당대의 통념에 따르자면 각 물체의 크기(연장)는 절대적인 것으로서 주어져 있을 것이므로, 절대속도에 대한 상대속도의 차이는 거리로서의 크기나 연장을 통해서가 아니라 절대시간과 상대시간의 차이에서 비롯될 것이다. 단적으로 무한하게 전개되어 있을 뿐인 유클리드식의 절대공간 개념이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었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우나, 그러한 무한한 연장을 지성적으로 파악되는 잠재적인 양(量)으로 간주하는 발상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어떤 대상을 그 자체로 고려할 때와 다른 어떤 것과의 관계 속에서 고려할 때 같은 대상이 서로 (심지어는) 양립불가능한 방식으로 상충되는 것처럼 생각되거나 서술되기도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적어도 플라톤부터 (대표적인 예로는 『소피스트』에서라든지) 명시적으로 의식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파르메니데스의 관점에서 보자면 자체적이고 독립적이며 자기동일적인 것만이 논리적으로 필연적으로 '있는 것'일 수 있고, 이러한 점에서 있는 것은 하나이고 이것과 구분되는 제2, 제3의 것은 상정될 수 없으며 이에 따라 상대항이 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 상대적 관점도 자연스럽게 부정될 것이다. 만일 운동이라는 현상과 개념이 성립하는 데에 상대적인 관점(또 이것의 성립근거로서 상대항)이 불가피하다면, 이 상대적인 관점이 유발하는 문제를 지적함으로써 운동을 부정하는 논변을 제시하는 것으로 제논의 역설을 이해해볼 여지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좀 더 나아가 보자면, 운동체의 운동이 측정되기 위해서는 결국 최소한 그 운동체와 구분되는 것으로서 이 운동체의 운동을 측정할 기준이 별도로 전제되어야만 하며, 그것이 앞서 언급한 절대공간이나 절대시간 같은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직 일자만을 유일한 존재자로 인정할 경우 이와는 구분되는 것으로서 공간이나 시간을 따로 상정하는 일은 이러한 일원론과 양립하기 어렵다는 점을 이미 파르메니데스가 보여주었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다. 또한 그렇게 전제된 절대공간이나 절대시간이 지금 고려되는 유일한 운동체의 그 고유하고 단일한 운동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게끔 그렇게 무한한 것으로서 정지해 있다고 단언할 논리적 근거를 마련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이를 고려하면 c의 진정하고 본질적이며 고유한 단 하나의 운동을 a를 통과하는 운동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b를 통과하는 운동으로 볼 것인지 결정할 수 없게 되고, 이 역시 운동 개념에 내재하는 역설로 생각해볼 여지가 있을 것이다. 기준이 되는 운동이 (a)인지 (b)인지는 어떤 추가적인 형이상학적 전제를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는 한 결정될 수 없을 것이다. 

 

-蟲-

"[자신과] 같은 만큼의 양인 것을 두고 그것에 걸쳐 있을 때 [그러한] 모든 것은 항상 멈추어 있다면, 그리고 이동되고 있는 것은 항상 지금 안에 있다면, 이동되고 있는 화살은 운동하지 않은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자연학』 6권 9장 239b5-7.

 

일정한 크기(연장)를 점유하고 있으면서 그 점유하는 크기에 변화가 없는 것은 멈추어 있다.

그렇다면 멈추어 있지 않은 것, 즉 움직이는 것은 그 점유하는 크기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점유하는 크기가 그 크기 자신과 같은 경우에는 운동하지 못하고 멈추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어떤 것이 '지금' 안에 있을 때 그것은 지금 그것이 점유하고 있는 바로 그 만큼의 연장을 점유하고 있다.

또한 지금 그것이 점유하고 있지 않은 어떤 연장도 점유하고 있지 않다.

그것은 지금 그것이 있는 그 자리에 있고 다른 어디에도 있지 않다.

그래서 '지금' 안에 있는 것은, 지금 같은 만큼의 양인 것을 두고 그것에 걸쳐 있으며, 그러한 한에서 멈추어 있다.

 

그러나 이동되고 있는 것은 항상(매번) '지금' 안에 있다.

이동되고 있는 것이 '지금' 안에서 이동되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이미 이동된 것으로서 '지금'은 멈추어 있을 것이거나,

장차 이동될 것으로서 '지금'은 아직 멈추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동되고 있는 화살은 '지금' 이동되고 있으면서도, 또한 같은 만큼의 양인 것을 두고 그것에 걸쳐 있으며 따라서 멈추어 있기도 하다.

 

주어진 문장만을 놓고 보자면 "같은 만큼의 것에 걸쳐 있을 때 모든 것은 항상 멈추어 있다"와 "이동되고 있는 것은 항상 지금 안에 있다" 두 조건이 충족될 경우, 이동되고 있는 것이 운동불가능하다는 역설이 발생한다. "지금 안에 있다"는 것을 "같은 만큼의 것에 걸쳐 있다"를 함의하는 표현으로 읽기 위해서는 지금 있는 것이 지금 차지하고 있는 연장 만큼의 것 이외에 다른 어떤 연장도 점유하지 않는다는 점을 추가하면 된다. "지금 있는 것"은 그것이 지금 있는 바로 그 자리에 있을 것이며, 그 외의 다른 어디에도 있지 않을 것이다. 지금 있는 그 자리에 있으면서 그와 동시에 다른 어떤 자리에도 또한 있기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자연스럽게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지금 안에 있다"라는 것이 어떻게 "같은 만큼의 크기를 점유하고 있다"라는 것을 함의할 수 있는지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 안에 있다"라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멈추어 있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진행형으로 운동 중에 있는 것, 단적으로 말해 '움직이는 것'은 다른 어느 때가 아니라 지금 움직이고 있어야 "움직이고 있다"라고 이야기될 수 있다. 문제는 다시, 그러한 움직이고 있는 것이 '지금' 움직이고 있기 위해서는 지금 점유하고 있는 연장에서는 벗어나고 있어야 하고 또한 동시에 앞으로 점유하게 될 연장에 대해서는 아직 점유하지 않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자신이 지금 있는 곳에는 있지 않고 그러면서도 자신이 지금 있지 않은 곳에는 있어야 하는 상황이 되며, 이 역시 날아가고 있는 화살이 멈추어 있다는 역설에 관련된다.

 

지금 있는 것이 지금 차지하고 있는 바로 그 만큼의 연장만을 차지한다는 숨은 전제를 추가하는 것은 크게 작위적이거나 과격한 논증재구성으로 보이지 않는다. 지금 있는 것은 지금 그것이 있는 바로 그 자리에 있다는 생각이 자연스럽다면 이것을 제논의 역설에 일상적인 경험적 믿음으로 포함시키는 데에 엄청난 해석적 부담이 뒤따른다고 볼 이유가 없다. 

 

반면, "같은 만큼의 것에 따라 있을 때(ὅταν ᾖ κατὰ τὸ ἴσον)"가 "지금 안에 있다(ἔστιν ... ἐν τῷ νῦν)"와 같은 것이라고 보자는 제안은 이해하기 어렵다. "같은 만큼의 것에 따라 있을 때"를 "같은 만큼의 연장을 점유하고 있을 때"라고 이해하는 일에 동의한다면, 그리고 이것이 어떤 것이 정지해 있기 위한 조건임을 받아들인다면, 해당 표현을 특정한 장소 혹은 거리 등의 공간적 연장을 점유하고 있다는 의미 외에 다른 식으로 해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같은 만큼의 연장을 점유한다는 것은 한 순간에 대해서도 일정 기간 동안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멈추어 있는 것은 어떤 한 순간 멈추어 있을 수도 있고 일정 기간 동안 멈추어 있을 수도 있다. 따라서 같은 만큼의 연장을 점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지금 안에 있는 것"이 되는 것이라 말할 수는 없다. 고대 그리스의 시간관이 운동을 존재론적으로 더 앞서는 것으로 놓고 시간이나 거리 따위를 이러한 운동을 측정할 때에 비로소 뒤따라 나오는 것으로 간주하였을 수도 있으나, 이러한 이해를 해당 역설에 끌어들여 적용시킬 이유와 근거는 해당 해석을 주장하는 측에서 제시해야 한다. 또한, 파르메니데스의 단편을 고려하면, 시간은 있었던 것과 있는 것 그리고 장차 있을 것 사이의 구분이 있을 때 성립하는 것으로, 여기에서 공간적 운동을 떠올릴 아무런 이유도 없다. 있었던 것이 지금 있지 않거나, 지금 있는 것이 앞으로 있지 않을 것이라거나 하는 것, 즉 생성이나 소멸은 시간의 선후를 구분할 수 있다면, 그러한 선후를 구분할 수 있도록 한편에서는 있는 것이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있지 않은 것이 상이하게 상정될 수 있다면, 이러한 조건에서 충분히 이야기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운동하지 않고(점유하고 있는 연장과는 다른 연장을 점유하게 되지 않고) 멈추어 있는 것에 대해 시간 상의 구분(순간과 기간)을 적용시킬 수 없다거나 시간 개념 자체가 그것에 대해 이야기될 수 없는 주장은 억지스럽다. 그리고 다시금, 상식적인 경험에 따라 가만히 멈추어 있는 것에 대해 움직이다가 멈추어 서게 된 것, 그리고 멈추어 있다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 모두 상호 구분될 수 있으며, 이것들 각각에 대해 멈추어 있다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멈추어 있는지, 언제까지 멈추어 있다 움직이기 시작하는지, 언제까지 움직이다가 언제 멈추었는지를 모두 유의미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동일한 양의 연장을 점유하고 있을 때"는 "지금" 혹은 "지금 안에 있다"와 동일시될 수 없다. 역으로, "지금 안에 있다"는 것은 "동일한 양의 연장을 점유하고 있을 때"의 한 사례일 수 있다. 지금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지금 점유하고 있는 바로 그 만큼의 동일한 연장을 점유하고 있고, 그 점에서 지금 바로 그 순간에는 자신의 자리에 머물러 있고 그래서 멈추어 있다. 지금 있는 것이 지금 차지하고 있는 연장을 점유하는 동시에 그 연장 외의 (자신이 점유하고 있지 않은) 연장까지도 함께 점유하고 있을 수는 없으므로, 그것은 멈추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에 속해 있는 것이 이런 식으로 '지금 점유하고 있는 바로 그 만큼의 연장을 가지고' 지금에 속해 있다는 내용을 추가하지 않고서는, 왜 지금 움직이고 있는 것이 또한 멈추어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지를 유의미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또한 움직이고 있는 것(τὸ φερόμενον)은 멈추어 있지(ἠρεμεῖ) 않은 것이고, 모든 것은 같은 양을 점유하고 있을 때(ὅταν ᾖ κατὰ τὸ ἴσον) 언제나 멈추어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이유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 '언제나(αἰεί)' 지금 안에(지금 내가 반대하는 해석에 따르자면, '같은 양을 점유하고 있는 때' 안에) 있다는 조건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지금"이 "같은 양을 점유할 때"와 의미 차이가 없다면 두 번째 조건을 독자가 수용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오히려 움직이는 것은 언제나 "지금" 안에 있다는 것은 일상적인 의미에서 발화되었을 때, 즉 이전이나 이후가 아니라 지금 현재 진행형으로 움직이고 있을 때 그것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는 단순히 그 의미에서 이해되었을 때 비로소 수용할 만한 조건이 된다. 그래서 더욱이 "지금"이라는 것이 아무런 보충이나 해석 없이 "같은 연장을 점유할 때"와 동일시될 수는 없으며, "지금"이라는 시간과 그 시간에 점유할 수 있는 연장 사이의 관계가 모종의 방식으로 이해될 때, 이를 매개로 하여 화살 역설이 역설로 성립할 수 있게 된다.

 

어찌 되었든지간에, 도대체 뭘 어떻게 읽어야 "같은 연장을 점유할 때"가 곧장 "지금"이 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고, 설령 그것이 가능하더라도 그런 식의 "지금" 안에 움직이는 모든 것이 속한다는 조건을 받아들일 이유를 전혀 알 수 없으며, 이 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주어진 문장만으로 가능하다는 의견에 동의할 수도 없다. 따라서 이러한 부담들을 짊어지느니 "지금"을 기간을 설정할 수 없는 순간(moment)으로 이해하여 바로 그 순간에는 그 당시에 점유한 연장 이외의 다른 연장을 점유할 수 없단 점을 연결시키고, 또한 동시에 이 불가분하고 양을 가지지 않는 '순간'과 현재 진행형의 운동하는 물체에게 지속적으로 적용되는 '지금', 운동의 경과와 함께 계속 진행하는 그러한 '지금'을 일상인들이 혼동하는 데에서 오는 문제를 제논이 역설로 구성하여 제기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훨씬 설득력 있는 해석이라 생각된다.

 

-추가하자면, 제논의 첫 번째 조건은 "같은 연장을 점유한다"를 "장소 변화가 없다"라는 의미로 이해하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만한 전제가 된다. 반면 두 번째 조건은 "지금 안에 있다"라는 것을 두고, 움직이고 있는 것은 언제 움직이고 있는지를 물을 때 우리가 답할 만한 것, "그건 '지금' 움직이고 있다"라고 말할 때의 그러한 '지금'이라 이해할 때에 수용할 만한 전제가 될 것이다. 움직이는 것은 언제나 '지금' 움직이고 있다. 왜냐하면 '지금'이 아닌 다른 때에 움직이고 있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현재진행형으로)"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소 변화가 없는 것은 멈추어 있다는 전제와, 움직이고 있는 것은 '지금' 움직이고 있다는 전제, 두 가지 자연스럽게 수용할 만한 전제를 동시에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수용 이후, 그러나 '지금'이라는 표현이 바로 그 '지금' 이전도 그 이후도 아닌 바로 그 한 순간의 '지금'을 특정하는 의미로도 이해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역설이 성립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규정을 가져와 보자면 과거의 끝이자 미래의 시작이 되는 그 둘 사이에 있는 단일한 경계가 '지금'이다. 그런데 '지금'을 이러한 식으로 이해하는 일 역시 쉽사리 부정할 수는 없다. 있는 것은 지금 있는 중이며, 있었던(지금은 이미 있지 않은) 것과도 다르고 있을(지금은 아직 있지 않은) 것과도 다르다. 그리고 그렇게 지금 있는 것은 지금 있는 바로 거기에 있으며, 그렇게 차지하고 있는 바로 그 만큼의 같은 양의 연장만을 점유하고 있다. 그래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 지금 움직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 바로 거기에 있기도 하다면, 그것은 아직 차지하지 않은 연장을 차지하고 있는 중도 아니고 이미 점유하고 있던 연장에서 벗어나고 있는 중도 아니며, 같은 양의 연장을 그대로 점유하고 있기 때문에 멈추어 있는 것이 되어 버린다. 아리스토텔레스라면 여기에서 운동과정을 거치는 운동체와 함께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지금'을 특정 시점으로서 그 이전의 끝이자 그 이후의 시작이기도 한 일종의 '경계로서의 지금'과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제논의 경우에는, 그가 파르메니데스의 철학적 입장을 공유한다면, 지금 있는 곳에는 있지 않으면서 또한 지금 있지 않은 곳에는 있기도 해야 비로소 가능한 운동(장소이동) 자체를 부정할 것이다. 또한 과거의 끝이면서 미래의 시작이기도 한 그러한 모순적인 무언가로서 시간을 분할하도록 만드는 시점이나 순간, 지금 따위 역시 부정할 것이다. 장소 이동을 부정하는 논지도 시간의 선후 구분을 부정하는 논지도 파르메니데스의 소위 「진리」편에서 찾아볼 수 있으므로, 이러한 논변의 연장선상에서 제논의 역설을 이해해 보는 것은 그 둘을 '엘레아 학파'로 묶어 취급하는 당대의 보고와 정합적인 접근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 '같은 연장을 점유할 때'와 '지금'을 같은 것으로 간주하자는 제안이 무슨 이야기인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지극히 호의적으로 이해를 시도해 보자면, 시간 또한 공간처럼 일종의 연장으로 간주해서 같은 연장을 공유한다는 것이 같은 공간에 머무른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같은 시간을 점유하고 있다는 의미 또한 된다고 보고, 같은 시간을 점유하는 것을 지금 안에 혹은 현재에 있다는 것으로 이해하여 이를 앞서 '같은 연장을 점유할 때'와 마찬가지로 정지해 있을 조건을 충족시킨 상황으로 보자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이 경우 "시간이 연장의 일종이다"라는 것은 주어진 문장에서 표현된 것도 아니고 '지금'을 '같은 시간 연장을 점유하는 것'이라 표현한다는 것도 전혀 자연스럽지 않다. 더구나 움직이고 있는 것이 '같은 시간 연장을 점유하는 것'을 '언제나(αἰεί)' 그러하다고 말한다는 것은 훨씬 더 받아들이기 어렵다. 예를 들어 이 '같은 시간 연장'이 오후 10시부터 11시까지의 시간량 같은 것이라 쳐보자. 이 시간양을 변화시키지 않고 딱 그 만큼을 그대로 점유하고 있는 것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 이야기될 수 있는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 '항상 지금 안에 있다'고 말할 때 '지금'이란 바로 그 운동이 수행되고 있는 그 동시적인 시간, 시점이다. 이런 해석 제안이 이상하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이런 해석은 내가 제안하는 해석과 마찬가지로 없는 얘기를 끌어다 붙이지 않고는 성립하지 않는다. 지금이라는 바로 그 순간에는 어떤 것이 점유하고 있는 바로 그 연장 외에 다른 연장은 점유할 수 없다는 전제를 개입시키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보고 이외의 추가적인 외삽을 시도하는 일이라면, 시간이 연장의 일종이고 그래서 지금 안에 있는 것은 곧 같은 연장을 점유하는 것이라는 식의 해석도 결국은 외삽에 불과하다. 후자는 외삽이 아니고 주어진 문장만으로 가능한 논증재구성이라는 주장이 도대체 어떻게 성립하는지 알 수 없다. 

 

-蟲-

2014.4.16.

0. 소피스트는 모든 것에 관련하여 논박을 해내는 자로 여겨진다. 설령 상대가 해당 주제의 전문가라 할지라도 소피스트는 여전히 논박에 성공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무언가에 대해 그것을 모르는 자가 그것을 아는 자를 논박한다는 것은 건전한(정상적인) 일이 아니다. 그러나 다시, 소피스트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완전히 안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왜냐하면 한 개인이 모든 것을 알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여기에서 불가능한 앎이란, A의 전문가가 바로 이러한 정의에 입각하여 ~A인 B를 아는 일의 양립 불가능성일 것으로 보인다. 소피스트는 소피스트술이라는 단일한 기술의 담지자로서 바로 이 기술 이외의 어떤 기술에 대해 소피스트라는 해당 기술로써 알거나 저 기술을 사용할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예를 빌리자면, 누군가가 의사이자 동시에 건축가라 하더라도 그가 건축을 하는 동안에 그는 부수적으로만 의사일 뿐이다.) 따라서 그는 모든 것 각각을 그 자체로 아는 것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여겨지는' 자이다. 이는 마치 화가가 그림으로 무엇이든 모방할 수 있고 또 누군가가 거울을 들고 다니며 무엇이든 거기에 반영시킬 수 있으며 또한 어린아이들이 아무것이나 가지고서 그것을 집으로도 신으로도 이름붙여 소꿉놀이를 할 수 있는 것과 같은 경우일 수 있다. 그는 모든 것 각각을 그 자체로서 실제로 아는 것이 아니라, 원본이 아닌 일종의 상을 취급하는 자일 수 있다. 그가 상에 대해서는 아는 것인지, 아니면 아는 자를 원본으로 하는 상을 취급하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어쨌든 원본이 아닌 상을 고려할 때, 비로소 소피스트가 그 자신의 소피스트술이라는 단일한 기술만으로 일체의 모든 것을 전부 다 아는 것처럼 드러나고 여겨지는 사태를 설명할 여지가 생긴다. 그러나 상이라는 것 그 자체가 다시금 문제를 발생시키는데, 이것은 원본이 아니면서도 또한 원본 이외의 다른 무언가를 닮은 것도 아니고 바로 그 원본을 닮은 무언가이다. 일견 상은 원본과 별도로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지며, 그럼에도 상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원본과 닮은 그러저러한 무언가이기는 하다. 그것은 원본을 모방하는 것인데, 이러한 모방은 그 모방의 대상인 원본 없이 설명되기 어려워 보인다. 각각의 상은 저마다 그것이 모방하는 자신의 고유한 원본과 관계를 가질 것이나, 그렇다면 상 그 자체는 무엇을 모방하는지 특정할 수 없다. 상 자체는 모든 상들의 총체가 아니며, 그럼에도 이 상의 규정에 참여하지 않고서는 개별적인 상 각각이 상으로서 성립할 수도 없다. 그런데 이러한 상은 원본, 진정으로 있는 그대로 어떤 무언가인 바의 것, 이러한 참된 것에 대해 그것이 아닌 것, 그러한 원본으로 있지 않은 것, 그렇다고 해당 원본 이외의 것이지도 않은 것,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런데 이 '아무것도 아닌 것,' '참이 아닌 것,' '있지 않은 것'도 상의 경우와 유사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일상적으로 부정은 그 부정의 대상에 의존적으로 성립하고 서술된다. A가 아니거나 B가 아닌 것은 말할 수 있고 설명할 수 있지만, '아닌 것'을 그 자체로 놓고 가리키거나 생각할 수는 없다. 그것은 지시, 언표, 사유를 허용하지 않으며 이러한 불가능성들이 서술되는 주어로서 성립할 수도 없다. 아무것도 아닌 것, 있지 않은 것, 이러한 것을 그 자체로 고찰할 수 없기에, 있는 것들 사이의 관계에서 이것에 해당하는 다른 무언가를 찾는 시도가 이루어진다. 그 결과 어떤 것과 그 외의 것이 다르다는 관계에서, 이 '다른 것'을 통해 무엇 아닌 것을 설명할 가능성이 확보된다. 그런데 여기서 다르다는 것은 모든 것 각각에 무차별적으로 서술된다. 각각은 어떤 무언가로 있는 한에서 그 자신 이외의 모든 것들과 다르다. 그리고 이러한 나머지 모든 것들이 다시금 각각의 자신 이외의 것인 저것과 다르며, 모든 것들이 모든 것들과 이러한 관계에 놓인다. 이 모든 것들, 무엇인 바의 것이며 그러한 것으로 있는 모든 것들조차, 있는 것 그 자체와 이것에 참여함으로써 있는 것이라 불리는 것들로 구분될 것이고, 있는 것 자체가 여타의 있는 것들이 있는 그러한 식으로 있지 않고 이런 것들과 다른 것이 되어 결국 그 자체가 있지 않은 것이 되어 버리거나, 아니면 있는 것 자체 외에는 다른 어떤 것이든 모두 있지 않은 것이 되어 버릴 것이다. 이 경우, 큰 것 자체와 여기에 참여해 큰 것들 사이에서 성립하는 다르다는 것과, 큰 것들(큰 것 자체와 참여자들 모두를 아우르는) 전부에 대비되어 크지 않은 것들(같은 크기이거나 더 작은 것들) 사이에 적용되는 다르다는 것의 구분이 필요하다. 이 구분은 자체적으로 어떤 무엇으로 있다는 것과 상대적으로 참여를 통해 어떤 무엇으로 있다는 것의 구분을 통해 우회적으로 마련될 수 있다. 이러한 이중의 용법을 지닌 '있는 것'에 대해 바로 이것과 다른 것, 즉 다른 것 자체에서 있는 것을 상대로 하는 특정 부분을 '있는 것에 대해 다른 것'으로 재규정함으로써 논의에 필요한 구분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여전히, 다른 것은 '언제나 다른 것에 대해 말해진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다른 것은 어떤 무엇과 다른 것일 뿐, 그 자체로 아무런 대상도 없이 절대적, 독립적으로 다른 것일 수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저러한 여러 '다른 것들'은 앞서 상의 경우에도 그러했듯 저마다의 비교대상을 지니고 그것에 의존적으로 규정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다른 것들이 그것에 참여함으로써 비로소 다른 것이라고 불리게 되는 바, 다른 것 그 자체의 경우에는, 이 역시 앞서와 마찬가지로, 어떤 특정한 무엇과 다른 것일 수도 없고 자신 이외의 모든 것들에 상대적으로 다른 것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이 문제는 움직이는 것의 경우에도 유사한 방식으로 발생한다. 움직이는 것(질적 변화와 공간 이동, 그 외 생성과 소멸까지 일체의 운동을 모두 포함하는 의미에서)은 규정상 그 자체로 움직이지 않는 것일 수 없고 그래서 고정되지 않을 것이며, 이러한 연속적인 변화로 인해 자기 자신과의 동일성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고정될 수조차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렇다면, 이것은 고정적으로 명명될 수도 없고 지시되거나 사유될 수조차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움직이는 것이 있으며 우리는 움직이는 것들을 말하거나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이것들은 움직이지 않는 것들과도 구분되고 움직이는 것과 다른 것들과도 구분된다. 또한 정지한 것 그 자체를 놓고 말하자면 이와 가장 반대되는 것으로서 매우 분명한 관계를 통해 대극점으로서 지시되고, 그래야만 한다. 정지한 것에 대해, 움직이는 것은 그 정지한 것에 고정적으로 반대된다. 운동하는 것 그 자체만을 놓고 보자면 이러한 고정성은 운동하는 것에 적용되거나 그에 대해 서술되지 않아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어떤 무엇인 바의 것으로 있으면서 다른 무언가의 대극점으로, 또한 자신 이외의 것에 안정적으로 참여하는 참여자로도 사유되고 서술될 수 있는지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이는 말(onoma와 rhēma의 결합물인 logos)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이를 구성하는 이름(onoma)과 표현(rhēma)도 같은 문제를 겪게 된다. 말은 무언가에 관한 것이며 아무것에 관해서도 전혀 말하지 않는 것은 말로 성립조차 할 수 없다. 따라서 아무것도 아닌 것에 관한 말은 불가능하다. 이름도 무언가의 이름이며, 표현도 무언가에 대한 표현이라는 점에서 이와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이 그 자체로 생각되거나 이야기될 때, 바로 이 경우 이것들이 지시하거나 표현하는 바의 것은 특정될 수 없다. 이 문제의 성격은 앞서 상에 대해 논했던 문제와 같다. 그리고 거짓 역시도 같은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참인 말은 그 말의 이름, 주어가 대상을 가리키고 나면, 바로 그 대상에 관련하여 그것에 관련한 있는 것들을 이어서 서술한다. 반면 거짓말은 자신의 대상에 관련하여 그것에 관련한 있는 것들과 다른 것들을, 주어가 지시하는 것에 관련한 있지 않은 것들을 바로 그 주어에 관련하여 이어서 서술한다. 그런데 주어에 관련한 있는 것들과는 다른 것, 그 주어에 관련한 있지 않은 것들은 결국 그 주어에 관련한 것들이 아닐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거짓말은 더 이상 해당 주어 대상에 관련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도 볼 여지가 있을 듯하다. 특히, 이름과 표현이 결합하여 하나의 말을 이루듯 특정 대상과 특정 상태가 결합하여 특정 사건을 성립시킨다면, 그리고 결합물로서 하나의 전체인 말이 그것의 지시 대상으로서 단일한 어떤 사건에 대응한다면, 거짓말의 경우 지시대상이 없게 되어 버린다. 물론 앞서 상(그리고 그 하위종들인 모상과 가상), 있지 않은 것, 다른 것, 운동과 달리 말과 그 진리치에 관련하여서는 말의 구조가 가지는 특징과 결부되어 이전과는 다른 접근이 이루어진다. 특히 말이 무언인가를 가리키고, 바로 그것에 관련하여 이어서 말한다는 점이 강조되고, 여기에서 대상은 여전히 이름에 의해 지시되는 것이지 이름과 표현의 결합물 전체를 통해 지시되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 편이 자연스러워 보인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러나 여전히, 그렇다면 단지 이름을 통해서만 대상에 연결될 뿐 표현과 이를 포함하는 말 전체로서는 그 대상에 더 이상 연결되기 어려워 보이는 거짓말이란 것이 어떻게 참말과 마찬가지로 무언가에 대한 '말'로서 여전히 유지될 수 있는지는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대상과의 연결이 약화될 경우, 거짓말이 의존적이고 상대적인 방식으로도 규정되기 곤란한 상황에서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간주될 방식은 더욱 이해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상에서 원본과 닮아 있는 모상과 대비되어 그 원본을 닮아 있지 않은(그러나 닮아 보이기는 하는?) 가상이 겪는 문제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것이다. 말도 상도 각기 그것의 원본 대상과 별도로 그 자체로 설명되기 어려운데, 거기에서 더 나아가 상 중에서는 가상이 그리고 말 중에서는 거짓말이 재차 원본과 이격되어 그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것이다. 

 

0. 원래 J. Beere, N. Notomi 등이 주창하는 '겉보기 모순'이나 '거짓 모순'이라는 개념을 반박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그게 학위 논문 주제나 지원 받고 있는 연구 계획하고는 거리가 좀 멀다고 느껴져서 이건 그냥 이전 발표문이나 소논문의 논지를 다듬는 정도만 생각하려고 한다. 그들의 주장은 결국 참된 모순, 진정한 모순은 운동과 정지 정도로 극단적으로 반대되고 결코 양립될 수 없는 것들의 결합에 한정되는데, 일단 개인의 믿음 차원에서 무지에 의해 발생하는 모순은 훨씬 더 소박하고 상식적인 것들임을 과연 포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적어도 Beere의 경우 '있는 것과 있지 않은 것의 결합'조차 겉보기 모순으로 취급하는데, 이게 초중기 대화편들에서 대화 상대자들이 소크라테스에 의해 논박 당할 때 지적받는 모순들에 비해 어떻게 보일지 궁금하다. 나로서는 전자가 겉보기라면 후자는 훨씬 더 분명하게 겉보기일 것 같은데, 왜냐하면 후자의 모순들은 적절한 조건과 관점의 구분을 통해 해소될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결이 조금 유난하게 어려웠던 것이 있는 것-있지 않은 것 사이의 결합과 분리 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운동과 정지가 절대 양립불가능하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리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긴 어려워 보인다. 설령 둘 사이의 결합이 반사실적 조건문으로 표현될 뿐이고, 그 둘이 가장 반대된다는 언급이 여러 차례 등장하지만, 논의의 맥락상 그 둘 사이의 결합을 완전히 배제할 경우 뒤따라 나오는 귀결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도 사실 아닌가 싶다. 특히 운동이 그 자체로 자신과 같다거나 그것이 있는 것에 참여하는 것으로서 있는 것이라거나 하는 점들을, 그것이 정지와 결코 결합할 수 없다는 전제와 조화시킬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인식이 성립하려면 인식되기 이전 상태의 것이 인식된 이후의 것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문제도 물론 남을 것이다. 그가 논박을 통해 겉보기 '현자'로 드러나는 것은 그가 겉보기 논박을 해서가 아니라, 논박을 가하기만 할 뿐 논박을 받는 일은 의도적으로 극단적으로 피하기 때문이다. 논박 상황에서 한쪽이 고정적으로 논박을 가하기만 하고 다른 한쪽은 논박을 받기만 할 경우, 논박을 가하는 측의 지적 상태는 확정될 수 없다. 다만 당하는 쪽이 모순을 드러내게 되면 그가 무지하다는 것은 확정되고, 논박당한 당사자는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는 동시에 자신을 논박하는 상대의 지적 상태에 대해서도 무지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물론 아는 자가 모르는 자를 상대로 논박하는 것이 정상적이고 건전한 상태이며, 이 '피해자'도 이러한 통념을 가지고는 있을 것이나, 아무튼 엄밀하게 상대방이 아는 자로 확정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논박자를 '아는 자'라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와의 차이는 소피스트와 달리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무지를 선언하고 있으며, 논박 당하는 일을 피하지도 않는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이 둘 모두는 현자와는 다르다. 이러한 구분 과정에서 참된 모순과 거짓 모순의 구분은 전혀 요청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대체 왜 겉보기 모순, 거짓 모순 같은 개념을 도입시키려 하는지 아직도 납득이 안 되지만, 그래도 이해를 해 보자면 소피스트가 말을 지어내 사기를 친다는 측면을 강조하고 싶은 것 아니겠나 싶긴 하다. 그런데,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소피스트가 상대에게 하는 말은 그 상대가 수용하고 긍정할 때에만 그 상대 자신의 다른 믿음과 모순관계에 놓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수용은 이 상대방이 해당 주제나 사안을 알지 못하는 자일 때에만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여전히 모순이 작위적인 것인지 여부가 아니라 논박 상대가 무지한지 아니면 아는지만이 문제가 된다. 

 

-蟲-

ΑΝ. Καὶ τούτους ἔγωγε ἀξιῶ παρὰ τῶν προτέρων μαθεῖν,
ὄντων καλῶν κἀγαθῶν· ἢ οὐ δοκοῦσί σοι πολλοὶ καὶ ἀγαθοὶ
γεγονέναι ἐν τῇδε τῇ πόλει ἄνδρες;
그들도 저로서는 더 이전의 사람들 곁에서 배울 만하다고 봅니다,
아름답고도 좋은 자들 곁에서 말입니다. 아니면 당신께는 많고도
좋은 사내들이 여기 이 나라에 태어났다고 여겨지지 않나요?

ΣΩ. Ἔμοιγε, ὦ Ἄνυτε, καὶ εἶναι δοκοῦσιν ἐνθάδε ἀγαθοὶ                          5
τὰ πολιτικά, καὶ γεγονέναι ἔτι οὐχ ἧττον ἢ εἶναι· ἀλλὰ
μῶν καὶ διδάσκαλοι ἀγαθοὶ γεγόνασιν τῆς αὑτῶν ἀρετῆς;
τοῦτο γάρ ἐστιν περὶ οὗ ὁ λόγος ἡμῖν τυγχάνει ὤν· οὐκ εἰ
εἰσὶν ἀγαθοὶ ἢ μὴ ἄνδρες ἐνθάδε, οὐδ᾿ εἰ γεγόνασιν ἐν τῷ
πρόσθεν, ἀλλ᾿ εἰ διδακτόν ἐστιν ἀρετὴ πάλαι σκοποῦμεν.                      b
τοῦτο δὲ σκοποῦντες τόδε σκοποῦμεν, ἆρα οἱ ἀγαθοὶ ἄνδρες
καὶ τῶν νῦν καὶ τῶν προτέρων ταύτην τὴν ἀρετὴν ἣν αὐτοὶ
ἀγαθοὶ ἦσαν ἠπίσταντο καὶ ἄλλῳ παραδοῦναι, ἢ οὐ παρα-
δοτὸν τοῦτο ἀνθρώπῳ οὐδὲ παραληπτὸν ἄλλῳ παρ᾿ ἄλλου·                     5
τοῦτ᾿ ἔστιν ὃ πάλαι ζητοῦμεν ἐγώ τε καὶ Μένων. ὧδε οὖν
σκόπει ἐκ τοῦ σαυτοῦ λόγου· Θεμιστοκλέα οὐκ ἀγαθὸν ἂν
φαίης ἄνδρα γεγονέναι;                                                                 c
내게는, 아뉘토스, 여기에서 정치적인 일들을 두고 그들이 좋은
자들이라고도 여겨지고, 그들이 그러한 만큼에 전혀 못지 않게
[앞선 자들이 그렇게] 태어나기도 했다고 여겨진다네. 허나 물론

그들이 자신들의 덕에 대해 좋은 교사들까지 되었던 건 아니지? 

마침 우리 논의의 주제가 그것이니 말일세. 이곳 사내들이 좋은 

자들인지 그렇지 않은지도 아니고, 더 앞서 그런 자들이 

태어났는지 여부도 아니라, 덕이 가르쳐지는 것인지를 아까부터 

우리가 검토하던 중이지. 그런데 이를 검토하면서 다음과 같은 

것도 검토하던 참이라네, 좋은 사내들이 요즘 사람들 중에서든 

이전 사람들 중에서든 자신들이 그 덕에서 좋은 자들인 바로 그 

덕을 여타의 사람에게까지 건네줄 줄도 알았었는지, 아니면 

이것이 인간에 의해 건네지는 것도 아니고 어떤 자에게서 또 

다른 자에게로 넘겨받아지는 것도 아닌지 말일세. 나나 

메논이나 우리가 아까부터 탐구하던 것이 그것이지. 그러니 

자네의 말로부터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검토해 주게. 

테미스토클레스는 좋은 사내가 되었다고 자네가 주장하지 

않겠나?
>93b1 πάλαι σκοποῦμεν

Smyth. 1885. Present of Past and Present Combined. ― 

The present, when accompanied by a definite or indefinite 

expression of past time, is used to express an action begun 

in the past and continued in the present. The 'progressive perfect' 

is often used in translation. Thus, πάλαι θαυμίζω I have been long 

(and am still) wondering P. Cr. 43b. Cp. iamdudum loquor. 

So with πάρος, ποτέ. This use appears also in the other moods.
a. So with of hearing, saying, learning, whose action commenced 

in the past, but whose effect continues into the present; 

ἐξ ὧν ἀκούω from what I hear (have heard) X. A. 1. 9. 28, 

ὅπερ λέγω as I said P. A. 21a. 

So with αἰσθάνομαι, γιγνώσκω, μανθάνω, πυνθάνομαι. 

ἄρτι just is often found with these verbs.
b. The perfect is used instead of the present when the action 

is completed in the present.

C.G. 33.14. The present indicative refers to actions that occur 

at the moment of speaking. By virtue of its imperfective aspect 

(incomplete), it is used by default to refer to actions which 

are ongoing at the moment of speaking.
Note 1: The ongoingaction referred to by the present indicative 

may have begunlong before the momentof speaking, and 

an expression of duration is sometimes added.
(12) εἰ διδακτόν ἐστιν ἀρετὴ πάλαι σκοποῦμεν. (Pl. Men. 93b)
We have long been investigating whether virtue is something that 

can be taught.
Observe that Engl. here prefers a present perfect ('have been investigating').

 

ΑΝ. Ἔγωγε πάντων γε μάλιστα.
저야 그가 모든 이들 중에서 가장 그러하다 주장할 겁니다.

ΣΩ. Οὐκοῦν καὶ διδάσκαλον ἀγαθόν, εἴπερ τις ἄλλος τῆς
αὑτοῦ ἀρετῆς διδάσκαλος ἦν, κἀκεῖνον εἶναι;
그렇다면, 만일 다른 누구든 자신의 덕에 대해 교사였다면,

저 분 또한 좋은 교사이시기도 하다고 하지 않겠나?

ΑΝ. Οἶμαι ἔγωγε, εἴπερ ἐβούλετό γε.                                                   5
저로서는 그리 생각합니다, 정말이지 만일 그분께서

바라셨더라면 말입니다.

ΣΩ. Ἀλλ᾿, οἴει, οὐκ ἂν ἐβουλήθη ἄλλους τέ τινας
καλοὺς κἀγαθοὺς γενέσθαι, μάλιστα δέ που τὸν ὑὸν τὸν
αὑτοῦ; ἢ οἴει αὐτὸν φθονεῖν αὐτῷ καὶ ἐξεπίτηδες οὐ παρα-                    //220104
διδόναι τὴν ἀρετὴν ἣν αὐτὸς ἀγαθὸς ἦν; ἢ οὐκ ἀκήκοας ὅτι                  d
Θεμιστοκλῆς Κλεόφαντον τὸν ὑὸν ἱππέα μὲν ἐδιδάξατο
ἀγαθόν; ἐπέμενεν γοῦν ἐπὶ τῶν ἵππων ὀρθὸς ἑστηκώς, καὶ
ἠκόντιζεν ἀπὸ τῶν ἵππων ὀρθός, καὶ ἄλλα πολλὰ καὶ θαυ-
μαστὰ ἠργάζετο ἃ ἐκεῖνος αὐτὸν ἐπαιδεύσατο καὶ ἐποίησε                     5
σοφόν, ὅσα διδασκάλων ἀγαθῶν εἴχετο· ἢ ταῦτα οὐκ ἀκήκοας
τῶν πρεσβυτέρων;
허나, 자네 생각에는, 그가 여타의 누군가들까지도 아름답고도 

좋은 자가 되기를 바라셨지 않겠나? 그런데 아마도 자신의 자식이

그리 되기를 특히나 바라셨지 않겠나? 아니면 자네는 그가 그

자식에게 인색하게 구셨으며 그 덕에서 자신이 좋은 자였던 바로 

그 덕을 일부러 건네주지 않았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자네는

테미스토클레스께서 그 분의 자제 클레오판토스를 기병으로서는 

훌륭한 자로 가르치셨다는 것을 듣지 못했나? 어쨌든 그는 말들 

위에 똑바로 선 채로 머무르곤 하였고, 그 말들에서 똑바로 창을 

던졌으며, 저 분께서 그에게 교육하셨고 또한 그것들에 있어서 

지혜로운 자로 만드신 일들에서 그 밖의 여러 놀라운 일들을

해냈고, 그 일들은 좋은 교사들에 달려있던 일들이지. 아니면

자네는 연로하신 분들께 이런 일들을 듣지 못하였는가?

>93c6 

Smyth. Indicative with ἄν 1784. Past Potential. ―
The past tenses (usually the aorist, less commonly the imperfect) of 

the indicative with ἄν (κέν) denote past potentiality, probability 

(cautious statement), or necessity: ὃ οὐκ ἂν ᾤοντο which they could not 

have expected T. 7. 55, τίς γὰρ ἂν ᾠήθη ταῦτα γενέσθαι; for who 

would have expected these things to happen? D. 9. 68 

(note that ἄν does not go with γενέσθαι by 1764), ἔγνω ἄν τις 

one might (could, would) have known X. C. 7. 1. 38, ὑπό κεν ταλασίφρονά 

περ δέος εἷλεν fear might have seized even a man of stout heart Δ 421.
1785. A protasis may often be extracted from a participle, or is intimated in 

some other word; but there is no reference to any definite condition, 

hence a definite ellipsis is not to be supplied.
C.G. 34.15. The secondary indicative - i.e. the indicative of past tenses 

(with an augment):
imperfect, aorist or pluperfect - is used in various constructions, 

some with ἄν and some without, to express counterfactual actions 

(or 'contrary-to-fact', 'unreal').
The indicative in these uses is called modal.
34.16. The secondary indicative with ἄν is used in statements or questions 

to indicate that an action would occur or would have occurred under 

certain conditions which are/were not met. The conditions may be 

expressed by a conditional εἰ-clause (49.10), a participle (52.40), an adverb, 

or left unexpressed:
(32) σίγησε δ᾿ αἰθήρ ... θηρῶν δ᾿ οὐκ ἂν ἤκουσας βοήν. (Eur. Bacch. 1084-5)
Theair fell silent, and you would not have heard the shout of wild animals 

(if you had been there, but you weren't).
Note 2: Examples such as (32) are often considered a distinct type

(the so-called 'past potential') in grammars - a translation with 'could/might (not)' 

is possible. This occurs most often in cases with a generic or second-person subject,

and in questions(e.g. τί ἂν ἐποίησεν; what could he have done?). 

There is no real difference between such cases and other counterfactual statements: 

the conditions under which a certain action would or could occurare not realized.


ΑΝ. Ἀκήκοα.
들었습니다.

ΣΩ. Οὐκ ἂν ἄρα τήν γε φύσιν τοῦ ὑέος αὐτοῦ ᾐτιάσατ᾿
ἄν τις εἶναι κακήν.                                                                         10
그럼 적어도 그 분의 자제분의 자질을 나쁘다고 누가 탓할
수는 없었을 걸세.

ΑΝ. Ἴσως οὐκ ἄν.                                                                         e
그랬을 것 같습니다.

ΣΩ. Τί δὲ τόδε; ὡς Κλεόφαντος ὁ Θεμιστοκλέους ἀνὴρ
ἀγαθὸς καὶ σοφὸς ἐγένετο ἅπερ ὁ πατὴρ αὐτοῦ, ἤδη του
ἀκήκοας ἢ νεωτέρου ἢ πρεσβυτέρου;
그런데 이건 어떤가? 테미스토클레스의 아들 클레오판토스가
그의 아버지가 그러했던 바로 그 일들에서 좋고도 지혜로운
사내가 되었다고, 더 어린 사람에게서든 더 나이 든 사람에게서든
누구에게서라도 자네가 이미 들은 적이 있는가?

ΑΝ. Οὐ δῆτα.                                                                                5
정말로 들은 적 없습니다.

ΣΩ. Ἆρ᾿ οὖν ταῦτα μὲν οἰόμεθα βούλεσθαι αὐτὸν τὸν
αὑτοῦ ὑὸν παιδεῦσαι, ἣν δὲ αὐτὸς σοφίαν ἦν σοφός, οὐδὲν
τῶν γειτόνων βελτίω ποιῆσαι, εἴπερ ἦν γε διδακτὸν ἡ ἀρετή;
그렇다면 혹시 우리가 그런 것들은 그 분께서 그의 아들에게
교육하시길 바라신다고, 그런데 자신이 그 점에서 지혜로운
자이셨던 그 지혜에서, 이웃들보다 전혀 더 낫게 만들기는 전혀
바라지 않으신다고, 만일 덕이란 것이 적어도 가르쳐지는 것이긴
했더라도 그렇다고 우리가 생각하는가?

ΑΝ. Ἴσως μὰ Δί᾿ οὔ.
제우스께 맹세코 아닐 것 같습니다.

ΣΩ. Οὗτος μὲν δή σοι τοιοῦτος διδάσκαλος ἀρετῆς, ὃν                        10
καὶ σὺ ὁμολογεῖς ἐν τοῖς ἄριστον τῶν προτέρων εἶναι· ἄλλον
δὲ δὴ σκεψώμεθα, Ἀριστείδην τὸν Λυσιμάχου· ἢ τοῦτον                   94a
οὐχ ὁμολογεῖς ἀγαθὸν γεγονέναι;
그럼 이 분께서는 자네 입장에서는 덕의 이러한 교사이시지,

자네 또한 그 분께서 이전 사람들 중 가장 훌륭한 자들 사이에서

가장 훌륭하신 분이라는 데에 동의하는 그런 교사 말일세. 헌데

그럼 그 외의 분, 뤼시마코스의 아들 아리스테이데스를 검토해

보세. 아니면 이 분께서 좋은 자가 되셨다는 데에 자네는

동의하지 않는가?


ΑΝ. Ἔγωγε, πάντως δήπου.

저로서는 동의합니다, 전적으로 분명하다고 말이죠.


ΣΩ. Οὐκοῦν καὶ οὗτος τὸν ὑὸν τὸν αὑτοῦ Λυσίμαχον,
ὅσα μὲν διδασκάλων εἴχετο, κάλλιστα Ἀθηναίων ἐπαίδευσε,                 5
ἄνδρα δὲ βελτίω δοκεῖ σοι ὁτουοῦν πεποιηκέναι; τούτῳ γάρ                   //220111
που καὶ συγγέγονας καὶ ὁρᾷς οἷός ἐστιν. εἰ δὲ βούλει,
Περικλέα, οὕτως μεγαλοπρεπῶς σοφὸν ἄνδρα, οἶσθ᾿ ὅτι δύο               b
ὑεῖς ἔθρεψε, Πάραλον καὶ Ξάνθιππον;

그렇다면 이 분도 자신의 아들 뤼시마코스를, 교사들에 달려있던

일들에서는, 아테네인들 중에서 가장 훌륭하게 교육하셨는가

하면, 그 누구에 비해서든 더 나은 사내로 만드셨다고 자네에게

여겨지지 않는가? 아마 자네가 이 사람과 어울리게 된 적도 있고

어떤 사람인지 보기도 했을 테니 하는 말일세. 그런데, 만일

자네가 바란다면, 페리클레스께서는 그리 여겨지지 않나?

그렇게나 위대하게 지혜로운 사내 말일세. 자네는 그 분께서 두

아들들, 파랄로스와 크산티포스를 키우셨다는 걸 알고 있지?


ΑΝ. Ἔγωγε.

저야 알지요.


ΣΩ. Τούτους μέντοι, ὡς οἶσθα καὶ σύ, ἱππέας μὲν ἐδί-
δαξεν οὐδενὸς χείρους Ἀθηναίων, καὶ μουσικὴν καὶ ἀγωνίαν               5
καὶ τἆλλα ἐπαίδευσεν ὅσα τέχνης ἔχεται οὐδενὸς χείρους·
ἀγαθοὺς δὲ ἄρα ἄνδρας οὐκ ἐβούλετο ποιῆσαι; δοκῶ μέν,
ἐβούλετο, ἀλλὰ μὴ οὐκ ᾖ διδακτόν. ἵνα δὲ μὴ ὀλίγους οἴῃ
καὶ τοὺς φαυλοτάτους Ἀθηναίων ἀδυνάτους γεγονέναι τοῦτο
τὸ πρᾶγμα, ἐνθυμήθητι ὅτι Θουκυδίδης αὖ δύο ὑεῖς ἔθρεψεν,              c
Μελησίαν καὶ Στέφανον, καὶ τούτους ἐπαίδευσεν τά τε ἄλλα
εὖ καὶ ἐπάλαισαν κάλλιστα Ἀθηναίων―τὸν μὲν γὰρ Ξανθίᾳ
ἔδωκε, τὸν δὲ Εὐδώρῳ· οὗτοι δέ που ἐδόκουν τῶν τότε
κάλλιστα παλαίειν―ἢ οὐ μέμνησαι;                                                  5

그렇지만 이들에게, 자네도 알다시피, 그 분께서 말타기는

아테네인들 중 그 누구에 비해서도 부족하지 않은 자들로

가르치셨고, 음악도 운동경기도 그리고 해당하는 기술을 지닌

여타의 일들도 그 누구에 비해서도 부족하지 않은 자들로

교육하셨지. 그런데 혹시 그 분께서 그들을 좋은 사내들로

만들기는 바라지 않으셨을까? 내 생각엔, 그리 바라셨을 걸세,

가르쳐질 수 없는 것이었지만 말이지. 그런데 이 일에 무능하게

되었던 게 아테네인들 중 극소수의 가장 저급한 자들이었다고

자네가 생각하진 않게끔, 투퀴디데스께서도 또한 두 자제분들,

즉 멜레시아스와 스테파노스를 양육하셨고, 이들을 여타의

일들에서도 잘 교육시키셨거니와 그들이 아테네인들 중에서

가장 훌륭하게 씨름을 하였다는 것을 명심하게나. 그야 한 친구는

크산티아스에게, 다른 친구는 에우도로스에게 맡기셨으니까. 

그런데 이 분들은 아마도 당대인들 중 가장 훌륭하게 씨름을 

하셨다는 평판을 받고 계셨으니 말일세. 아니면 자네는 기억하지

못하는가?


ΑΝ. Ἔγωγε, ἀκοῇ.

저로서는 기억합니다, 들은 바 있습니다.


ΣΩ. Οὐκοῦν δῆλον ὅτι οὗτος οὐκ ἄν ποτε, οὗ μὲν ἔδει
δαπανώμενον διδάσκειν, ταῦτα μὲν ἐδίδαξε τοὺς παῖδας τοὺς            d
αὑτοῦ, οὗ δὲ οὐδὲν ἔδει ἀναλώσαντα ἀγαθοὺς ἄνδρας ποιῆσαι,
ταῦτα δὲ οὐκ ἐδίδαξενεἰ διδακτὸν ἦνἀλλὰ γὰρ ἴσως ὁ
Θουκυδίδης φαῦλος ἦν, καὶ οὐκ ἦσαν αὐτῷ πλεῖστοι φίλοι
Ἀθηναίων καὶ τῶν συμμάχων; καὶ οἰκίας μεγάλης ἦν καὶ                    5
ἐδύνατο μέγα ἐν τῇ πόλει καὶ ἐν τοῖς ἄλλοις Ἕλλησιν, ὥστε
εἴπερ ἦν τοῦτο διδακτόν, ἐξευρεῖν ἂν ὅστις ἔμελλεν αὐτοῦ
τοὺς ὑεῖς ἀγαθοὺς ποιήσειν, ἢ τῶν ἐπιχωρίων τις ἢ τῶν
ξένων, εἰ αὐτὸς μὴ ἐσχόλαζεν διὰ τὴν τῆς πόλεως ἐπιμέλειαν.            e
ἀλλὰ γάρ, ὦ ἑταῖρε Ἄνυτε, μὴ οὐκ ᾖ διδακτὸν ἀρετή.

그렇다면 분명하지 않은가? 이 분께서 돈을 써가며 가르쳐야

했던 그런 일들은 자신의 자제분들께 가르치셨으나, 그 일에 대해

훌륭한 사내들로 만드는 데에 돈을 들여가며 그럴 필요가 없던

그런 일들은, 만일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이었더라면, 가르치지

않으셨을 리가 없다는 게 말일세. 그럼 투퀴디데스께서 저급한

분이셨기 때문에 그러셨겠나? 그리고 그분께 아테네인들과 그

동맹인 대다수가 친구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셨을까? 대단한

가문에 속하셨고 이 도시(아테네)와 여타 헬레네의 도시들에서

대단한 영향력을 가지셨기에, 그래서 만일 이런 것이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이었다면, 그 분의 자제분들을 장차 훌륭한 자들로

만들어주었을 그 누구라도 찾아내셨을 정도셨지. 동료시민들

중에서 누군가이든 외지손님들 중에서든 간에, 만일 그분께서

도시를 보살피시느라 여유가 없으셨다면 말일네. 허나, 나의

동료 아뉘토스, 덕은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았나 하네.

> 94c7-d3: mixed counter-factual conditon

> 94d3 ἀλλὰ γάρ: Denniston. p104-105. γάρ III. (7) 

Introducing an imaginary objection (Hypophora). 

(It is sometimes said, incorrectly, that ἀλλὰ γάρ is here equivalent to 

ἀλλὰ νὴ Δία. Actually the two idioms differ in so far that νὴ Δία marks 

the objection as imaginary, while γάρ marks it as fundamental or important. 

'But (it may be urged) the essential point is that ...' Where ἰσως follows 

ἀλλὰ γάρ, it to some extent replaces νὴ Δία.)

> 94d5-7: Counter-factual + ὥστε w/ inf.

> 94e1 εἰ: Smyth. 2246. 

εἰ or εἴπερ, when it expresses the real opinion of the writer or speaker, 

may have a causal force, as ἐγω ... ἥδομαι μὲν ὑφ᾿ ὑμῶν τῑμώμενος, 

εἴπερ ἄνθρωπός εἰμι I am pleased at being honoured by you, since 

(lit. if indeed) I am a man X. A. 6. 1. 26.
2247. Many verbs of emotion state the cause more delicately with εἰ (ἐάν) 

if as a mere supposition than by ὅτι. The negative is μή or οὐ.

> 94e2 ἀλλὰ γάρ: Denniston. p104. γάρ III. (5) 

Marking the non-fulfilment of a condition (while ἀλλὰ μήν marks its fulfilment).


ΑΝ. Ὦ Σώκρατες, ῥᾳδίως μοι δοκεῖς κακῶς λέγειν ἀν-
θρώπους. ἐγὼ μὲν οὖν ἄν σοι συμβουλεύσαιμι, εἰ ἐθέλεις
ἐμοὶ πείθεσθαι, εὐλαβεῖσθαι· ὡς ἴσως μὲν καὶ ἐν ἄλλῃ πόλει                 5
ῥᾷόν ἐστιν κακῶς ποιεῖν ἀνθρώπους ἢ εὖ, ἐν τῇδε δὲ καὶ
πάνυ· οἶμαι δὲ σὲ καὶ αὐτὸν εἰδέναι.                                           95a

소크라테스, 제게는 당신께서 사람들을 함부로 나쁘게

말씀하신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니 제가 당신께 충고드릴게요,

당신께서 제게 설득되실 요량이시라면, 조심하시라고 말이죠.

여타의 도시에서도 사람들을 좋게 만들어주기 보단 나쁘게

만드는 편이 더 쉬울 것 같습니다만, 여기에서는 특히 더 쉬운

듯하여 드리는 말씀입니다. 헌데 저는 당신 스스로도 알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ΣΩ. Ὦ Μένων, Ἄνυτος μέν μοι δοκεῖ χαλεπαίνειν, καὶ
οὐδὲν θαυμάζω· οἴεται γάρ με πρῶτον μὲν κακηγορεῖν τούτους
τοὺς ἄνδρας, ἔπειτα ἡγεῖται καὶ αὐτὸς εἶναι εἷς τούτων. ἀλλ᾿ 
οὗτος μὲν ἐάν ποτε γνῷ οἷόν ἐστιν τὸ κακῶς λέγειν, παύσεται             5
χαλεπαίνων, νῦν δὲ ἀγνοεῖ· σὺ δέ μοι εἰπέ, οὐ καὶ παρ᾿ ὑμῖν
εἰσιν καλοὶ κἀγαθοὶ ἄνδρες;

메논, 아뉘토스는 내 보기에 화가 난 것이라 여겨지고, 조금도

놀랍지는 않군. 그야 그는 우선 내가 이 사내들을 비난한다고

생각하고, 다음으로는 자기 자신 또한 이들 중 한 사람으로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허나 이 친구가 도대체 나쁘게 말한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 줄 알게 된다면야, 화내기를 멈출 것이네만, 지금은

알지 못하고 있군. 헌데 자네가 내게 말해주게, 자네들 쪽에도

아름답고도 훌륭한 사내들이 있지 않나?

> 95a5 γνῷ : Smyth. 1924. 

Ingressive Aorist ― The aorist of verbs whose present denotes 

a state or a continued action, expresses the entrance into that state or 

the beginning of that action. 

C.G. 33.29. 

With atelic verbs (→ 33.8) such as γελάω laugh, βλέπω gaze,

and particularly with stative verbs, such as πλουτέω be rich, βασιλεύω rule,

ἐράω love, νοσέω be sick, ἔχω have, the aorist stem often leads to

an ingressive interpretation (referring to the beginning of a state;

observe that perfective aspect is concerned with the 'boundaries' of an action, → 33.4-6).

 

ΜΕΝ. Πάνυ γε.

물론이죠.


ΣΩ. Τί οὖν; ἐθέλουσιν οὗτοι παρέχειν αὑτοὺς διδασκά-                     b
λους τοῖς νέοις, καὶ ὁμολογεῖν διδάσκαλοί τε εἶναι καὶ
διδακτὸν ἀρετήν;

그렇다면 어떤가? 이 사람들이 자신들을 젊은이들에게

교사로서 제공하려 하고, 또한 덕을 두고 교사들이 있다는

것도 그것이 가르쳐질 수 있다는 것도 동의하는가?


ΜΕΝ. Οὐ μὰ τὸν Δία, ὦ Σώκρατες, ἀλλὰ τοτὲ μὲν ἂν
αὐτῶν ἀκούσαις ὡς διδακτόν, τοτὲ δὲ ὡς οὔ.                                    5

제우스께 걸고 동의하지들 못합니다, 소크라테스, 오히려

어느 때엔 같은 사람들에게서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을 듣게 되실 테고, 또 다른 때엔 그렇지 않다는 말을

듣게 되실 겁니다.


ΣΩ. Φῶμεν οὖν τούτους διδασκάλους εἶναι τούτου τοῦ
πράγματος, οἷς μηδὲ αὐτὸ τοῦτο ὁμολογεῖται;

그럼 우리가 바로 이 문제조차 합의하지 못한 그들을 바로

그 사안의 교사들이라고 주장하겠나?


ΜΕΝ. Οὔ μοι δοκεῖ, ὦ Σώκρατες.

그렇지 않다고 제게는 여겨지네요, 소크라테스.


ΣΩ. Τί δὲ δή; οἱ σοφισταί σοι οὗτοι, οἴπερ μόνοι
ἐπαγγέλλονται, δοκοῦσι διδάσκαλοι εἶναι ἀρετῆς;                              10

헌데 그럼 어떤가? 자네에게는 이런 자들, 유일하게

덕의 교사임을 공언하는 자들인, 소피스트들이 덕의

교사라고 여겨지는가?


ΜΕΝ. Καὶ Γοργίου μάλιστα, ὦ Σώκρατες, ταῦτα ἄγαμαι,                     c
ὅτι οὐκ ἄν ποτε αὐτοῦ τοῦτο ἀκούσαις ὑπισχνουμένου, ἀλλὰ
καὶ τῶν ἄλλων καταγελᾷ, ὅταν ἀκούσῃ ὑπισχνουμένων· ἀλλὰ
λέγειν οἴεται δεῖν ποιεῖν δεινούς.

특히나 고르기아스께, 소크라테스, 그런 점들에서 제가 감탄하는

것입니다, 당신께서는 결코 그분께서 자임하시는 걸 듣지 못하실

테고, 오히려 여타의 사람들이 자임하는 걸 들으실 때면, 그 자들을

비웃으시리란 사실 때문에 말이지요. 오히려 그분께서는 말하는

데에 능란한 자들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다. 


ΣΩ. Οὐδ᾿ ἄρα σοὶ δοκοῦσιν οἱ σοφισταὶ διδάσκαλοι                           5 //220125
εἶναι;

그럼 자네에게도 소피스트들은 교사들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것인가?


ΜΕΝ. Οὐκ ἔχω λέγειν, ὦ Σώκρατες. καὶ γὰρ αὐτὸς
ὅπερ οἱ πολλοὶ πέπονθα· τοτὲ μέν μοι δοκοῦσιν, τοτὲ δὲ οὔ.

말씀드릴 수가 없네요, 소크라테스. 그야 저 자신 역시도

대다수가 겪은 바로 그 일을 겪고 있으니 말입니다. 어떤 때에는

제게 그리 여겨지고, 또 어떤 때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ΣΩ. Οἶσθα δὲ ὅτι οὐ μόνον σοί τε καὶ τοῖς ἄλλοις τοῖς
πολιτικοῖς τοῦτο δοκεῖ τοτὲ μὲν εἶναι διδακτόν, τοτὲ δ᾿ οὔ,                10
ἀλλὰ καὶ Θέογνιν τὸν ποιητὴν οἶσθ᾿ ὅτι ταὐτὰ ταῦτα λέγει;               d

헌데 아는가, 비단 자네와 여타 정치가들에게 이러한 것이

어느 때엔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이라고 여겨지고, 또 어느 때엔

그리 여겨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시인 테오그니스께서도 

바로 이러한 것들을 말씀하신다는 점을 아는가 말이지?


ΜΕΝ. Ἐν ποίοις ἔπεσιν;

어떤 구절들에서요?


ΣΩ. Ἐν τοῖς ἐλεγείοις, οὗ λέγει―

비가들에서 말일세, 거기에서 그분께서 말씀하시길―


καὶ παρὰ τοῖσιν πῖνε καὶ ἔσθιε, καὶ μετὰ τοῖσιν
 ἵζε, καὶ ἅνδανε τοῖς, ὧν μεγάλη δύναμις.                                        5
ἐσθλῶν μὲν γὰρ ἄπ᾿ ἐσθλὰ διδάξεαι· ἢν δὲ κακοῖσιν
 συμμίσγῃς, ἀπολεῖς καὶ τὸν ἐόντα νόον.                                       e
이들 곁에서 마시고 먹으며, 이들과 더불어 

 앉아, 이들을 기쁘게 하노라, 위대한 능력을 갖춘 자들을.

고귀한 자들로부터 고귀한 일들을 그대는 배울지니. 허나

 만일 그대가 나쁜 자들과 뒤섞인다면, 그대에게 깃든 지성마저

 상실하리라.


οἶσθ᾿ ὅτι ἐν τούτοις μὲν ὡς διδακτοῦ οὔσης τῆς ἀρετῆς λέγει;

이 글에서 덕이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이라고 이분께서 말씀하신다는

것을 알겠는가?


ΜΕΝ. Φαίνεταί γε.

그렇게 보이긴 합니다.


ΣΩ. Ἐν ἄλλοις δέ γε ὀλίγον μεταβάς,―

그런가 하면 또 다른 구절에서는 조금 바꾸셔서는,―
 εἰ δ᾿ ἦν ποιητόν, φησί, καὶ ἔνθετον ἀνδρὶ νόημα,                            5

 만일 사유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고, 그분께서 말씀하시길,

또한 사내에게 심겨질 수 있는 것이었더라면, 

λέγει πως ὅτι―

그분께서는 대강 이렇게 말씀하시지―

 πολλοὺς ἂν μισθοὺς καὶ μεγάλους ἔφερον
οἱ δυνάμενοι τοῦτο ποιεῖν, καὶ―
 많고도 대단한 보수를 받았으리라,

이러한 사유를 만들 능력이 있는 자들은, 그리고―
  οὔ ποτ᾿ ἂν ἐξ ἀγαθοῦ πατρὸς ἔγεντο κακός,
 πειθόμενος μύθοισι σαόφροσιν. ἀλλὰ διδάσκων                        96a
  οὔ ποτε ποιήσεις τὸν κακὸν ἄνδρ᾿ ἀγαθόν.
  결코 좋은 아비로부터 나쁜 자가 태어난 적 없으니,

슬기로운 이야기들에 설득되기 때문이니라. 허나 가르침으로써

결코 그대는 못난 사내를 훌륭한 자로 만들지 못하리라.

ἐννοεῖς ὅτι αὐτὸς αὑτῷ πάλιν περὶ τῶν αὐτῶν τἀναντία
λέγει;

자네는 이분께서 자신에게 다시 같은 일들에 관련하여 반대로

말씀하신다는 것을 알겠는가?


ΜΕΝ. Φαίνεται.                                                                        5

그래 보입니다.


ΣΩ. Ἔχεις οὖν εἰπεῖν ἄλλου ὁτουοῦν πράγματος, οὗ οἱ
μὲν φάσκοντες διδάσκαλοι εἶναι οὐχ ὅπως ἄλλων διδάσκαλοι
ὁμολογοῦνται, ἀλλ᾿ οὐδὲ αὐτοὶ ἐπίστασθαι, ἀλλὰ πονηροὶ
εἶναι περὶ αὐτὸ τοῦτο τὸ πρᾶγμα οὗ φασι διδάσκαλοι εἶναι,            b
οἱ δὲ ὁμολογούμενοι αὐτοὶ καλοὶ κἀγαθοὶ τοτὲ μέν φασιν
αὐτὸ διδακτὸν εἶναι, τοτὲ δὲ οὔ; τοὺς οὖν οὕτω τεταραγμένους
περὶ ὁτουοῦν φαίης ἂν σὺ κυρίως διδασκάλους εἶναι;

그렇다면 자네 여타 어떤 사안에 대해서든 이야기할 수 있겠지?

[자신들이] 그 일의 교사들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다른 자들의 

교사들이라고는 어떻게도 동의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이

안다고도 동의받지 못하되, 오히려 그들이 [스스로] 교사들이라

주장하는 바로 그 사안에 관련하여 저열한 자들이라고 합의되고,

그런데 자신들이 아름답고도 훌륭한 자들이라는 데에 동의받는

자들은 어느 때엔 그 일이 가르쳐질 수 없는 것이라고, 또 다른 때엔

그런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그런 일에 대해 말일세. 그렇다면

어떤 문제에 관련해서든 그렇게 혼란에 빠진 자들을 진지하게

교사들이라고 자네라면 주장할 수 있겠나?

> 96a7-8 οὐχ ὅπως ..., ἀλλ᾿ οὐδὲ: Cf. Smyth. 2763. LSJ. ὅπως A. II. 2.

 
ΜΕΝ. Μὰ Δί᾿ οὐκ ἔγωγε.                                                            5

제우스께 걸고 저는 못합니다.


ΣΩ. Οὐκοῦν εἰ μήτε οἱ σοφισταὶ μήτε οἱ αὐτοὶ καλοὶ
κἀγαθοὶ ὄντες διδάσκαλοί εἰσι τοῦ πράγματος, δῆλον ὅτι οὐκ
ἂν ἄλλοι γε;

그럼 소피스트들도 또 스스로 아름답고도 훌륭한 자들인

그런 자들도 그 사안의 교사들이 아니라면, 적어도 그 밖의 사람들은

[교사들이] 아니라는 게 분명하지 않나?


ΜΕΝ. Οὔ μοι δοκεῖ.

여타의 사람들은 아니라고 여겨지네요.


ΣΩ. Εἰ δέ γε μὴ διδάσκαλοι, οὐδὲ μαθηταί;                                   c

그런가 하면 [아무도] 교사들이 아니라면, [아무도] 제자들 또한

아니겠지?


ΜΕΝ. Δοκεῖ μοι ἔχειν ὡς λέγεις.

제겐 말씀하신 대로의 상황이라고 여겨지네요.


ΣΩ. Ὡμολογήκαμεν δέ γε, πράγματος οὗ μήτε διδάσκαλοι
μήτε μαθηταὶ εἶεν, τοῦτο μηδὲ διδακτὸν εἶναι;

그런가 하면 우리는 동의했지? [아무도] 그 일의 교사도 제자도

아닌, 그런 일은 가르쳐질 수 있는 것 역시 아니라는 걸 말이네.


ΜΕΝ. Ὡμολογήκαμεν.                                                               5

동의했지요.


ΣΩ. Οὐκοῦν ἀρετῆς οὐδαμοῦ φαίνονται διδάσκαλοι;

그렇다면 그 어디에서도 덕의 교사들은 나타나지 않는게로군?


ΜΕΝ. Ἔστι ταῦτα.

사실이 그렇지요.


ΣΩ. Εἰ δέ γε μὴ διδάσκαλοι, οὐδὲ μαθηταί;

그런가 하면 [아무도] 교사들이 아니라면, [아무도] 제자들 또한

아니겠지?


ΜΕΝ. Φαίνεται οὕτως.

그리 보입니다.


ΣΩ. Ἀρετὴ ἄρα οὐκ ἂν εἴη διδακτόν;                                            10

그럼 덕은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인가?


ΜΕΝ. Οὐκ ἔοικεν, εἴπερ ὀρθῶς ἡμεῖς ἐσκέμμεθα. ὥστε                   d
καὶ θαυμάζω δή, ὦ Σώκρατες, πότερόν ποτε οὐδ᾿ εἰσὶν ἀγαθοὶ
ἄνδρες, ἢ τίς ἂν εἴη τρόπος τῆς γενέσεως τῶν ἀγαθῶν 
γιγνομένων.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이 아닌 듯합니다, 만일 정말로 우리가

제대로 우리 자신을 검토했던 것이라면 말입니다. 그래서 더욱이

경악스럽기도 합니다, 소크라테스, 도대체 [아무도] 훌륭한 

사내들이지도 않은 것인지, 아니면 훌륭한 자들이 되는 이들의

그 생성의 방법이 무엇일는지 하고 말이죠.


-蟲-

 

심사자는 익명인지라 그저 비판과 조언에 막연한 감사를 드릴 뿐. 지적사항별로 이번 학기 또는 이번 해 안에 준비하거나 발전시킬 것들을 좀 정리해 보자.

 

"[평가자1 의견] - 서양고대철학 연구는 그 연구의 깊이와 양이 많이 축적되지 않아 연구 자체가 필요한 분야이며, 특히 플라톤의 파르메니데스에 대한 연구는 어렵고도 중요한 연구이다.
- 전반적인 연구수행 속도가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것보다는 빠르지 않아 보인다. 또한 지난 3년간 발표한 2편의 발표문은 연구자가 노력해왔음을 보여주긴 하지만 만족스러운 정도는 아니며, 그보다 더 많은 연구물을 산출하려는 노력을 하는 과정에서 연구능력이 더욱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 참고문헌이 소략하며, 더 구체적이고 포괄적인 자료 확보에 힘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나만 예를 들자면, (Apolloni, D. The Self-Predication Assumption in Plato. Lanham, MD: Lexington Books, 2011)과 같은 자료도 연구와 밀접하게 연결된 자료임에도 생략되어 있다. 그밖에도 많은 중요한 자료들을 더 찾아 포함시켜야 하며, 또한 참고문헌 작성법에 대해서도 먼저 자신에게 편리한 방법을 찾아야 하고, 특히 표기 방식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티마이오스??와 ??자연학??의 공간-시간 개념의 연계성이 명확하지 않으며, 그것이 어떤 점에서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아리스토텔레스와 관련된 언급은 상당히 막연하고 추상적이고 또한 지나치게 간략히 언급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구체적이고 명확한 내용의 언급이 필요하다.
- 연구자는 연구주제를 잘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며, 영어 설명은 대체로 명료하다. 그러나 국문 요약문에 나타난 내용으로 판단하자면, 그것이 ‘요약문’임을 고려하더라도 연구주제와 내용에 대한 설명이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만큼 명료하게 제시되지 않고 있다. 글로벌 역량이 내가 가진 것을 도외시하고 남의 것만을 강화하거나 발전시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최소한 요약문의 내용이라도 대학 저학년생 수준에서 이해할만한 글로 재구성해보면, 연구자 자신이 목표하는 바를 재정리하는 연습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외국인으로서 영어 발음과 작문이 완벽해질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교정과 보완이 될 수 있음에도 제대로 되지 않은 부분들이 눈에 띄는 것은 다소 아쉽다. 특히, 영어 발음은 많은 보완이 필요하다.
- 학과목 학점은 A-의 성적 4과목과 B+의 성적 2과목은 연구자의 노력과 관리가 좀 더 필요했던 부분이자 실망스러운 부분이다.
- 리더십이나 국가관 및 책임감 등에 대한 연계성은 판단하기 어렵다. (미래 성장 가능성 ( 배점 : 20 ))의 항목들을 자세히 살펴보고, 이 연구가 그러한 항목들과 어떻게 연결되어 설명될 수 있는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이 연구의 결과물이 국내 연구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글로벌 수준의 연구자로 성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속한 국가가 없이는 세계인으로서의 나도 존속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나의 배경을 먼저 튼튼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 일단 내가 연구자로서 생산성이 많이 낮다는 지적이 뼈아프다. 이전까지야 '내 주제에 무슨' 같은 심정으로 학술지에 투고하거나 학술발표에 지원하는 일을 의식적으로 멀리 했다지만, 언제까지 어리다느니 미숙하다느니 하는 핑계로 미룰 수도 없는 일이다. 그리고 이렇든 저렇든 처음 계획했던 『파르메니데스』 관련 소논문과 『테아이테토스』 관련 소논문 작성도 해내지 못하였다. 지도교수님 조언도 있고, 되든 안 되든 이제 뭘 써 버릇해야 한다.
> 참고문헌의 경우, 계획이나 보고에 직접 활용되지 않은 자료들은 최대한 배제하는 것을 개인적으로 원칙으로 삼았다. 평가자께서 소개해주신 아폴로니의 책은, 면밀하게 살펴보진 않았지만 형상의 자기술어화를 기본적으로 동일성 서술, "is equal"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Lloyd Gerson의 2012년도 서평에서는 이를 R. E. Allen의 입장과 연결시킨다. 그런데 애초에 『소피스트』에서 εἶναι에 대한 해석 문제와 관련하여 이 동사에서 동일성 서술의 역할을 배제시키는 것이 내가 Michael Frede의 입장에 근거하여 제안하는 노선인지라, 본격적으로 참고한 자료로 아폴로니의 저술을 언급하긴 좀 그렇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렇지만 내가 연구범위를 지나치게 넓게 설정해둔 탓에 『파르메니데스』로부터 초중기 플라톤 형이상학까지의 맥락을 논하는 사람들이랑 소위 후기 플라톤 철학을 따로 다루는 사람들을 다 살펴봐야 하게 되었다는 문제는 남는 듯하다. 참고문헌 작성 방식의 경우 급하게 작성하느라 국내, 국외, 1차, 2차, 번역, 기타 등등으로 분류도 못했고 여러모로 문제가 많았을 것이긴 하다. 이것도 역시나 논문 투고나 발표 지원 경험 자체가 적은 게 문제이기도 하겠고, 그렇더라도 애초에 좀 신경썼으면 될 일을 게으르게 놓친 내 탓이 크다.
    관련하여, 연구 방식의 문제일 수도 있겠는데, 나는 통상 원문 번역, 내용 정리, 주제 설정, 그리고 예비적인 논증 구성을 해 보고 이 다음에 자료 조사에 나선다. 이러다 보니 독해 과정이 미진하다고 느껴지거나 어쨌든 뭐라도 내 글이 하나 나오지 않으면 자료조사가 잘 진척되질 않는다. 병행을 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속도를 올려야 하는 것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뭐 쓰다보니 변명만 늘어놓게 되는 것도 같지만 어쨌든 고민이 생기는 부분이긴 하다.
> 플라톤 『티마이오스』와 아리스토텔레스 『자연학』을 통해 양편의 시-공간 개념을 연결시켜 해석해 보자는 제안은 구체적으로 말해 보자면 전자에서 시간이 운동 측정 단위처럼 묘사되고 있는 부분이 그 외에 더 구체적인 논의가 문헌 상에서 진행되지 않는데, 같은 관점에서 더 구체적으로 측정량(단위)과 피측정량(크기), 달리 말하면 재는 수와 재어지는 수라든지 단일 운동 단일 시간이라든지 시간 개념의 여러 다양한 측면들이 좀 더 자세하게 『자연학』에서 다루어지니, '운동량을 측정함으로써 발생되는 시간'이라는 것을 공통점으로 놓고 이 개념을 더 구체적으로 해석할 길이 열릴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정도의 생각이었다. 공간의 경우에는 『티마이오스』에서는 수용자를 일종의 잠재적 방향성 정도로 보고 이것이 형상의 고유한 성질과 결합하여 물리적 특질들을 발현시킬 때 비로소 장소라는 것이 이 과정과 함께 발생하는 것이라 해석할 생각이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의 결과로서 양이나 크기로 측정되는 그러한 공간이 앞서 이야기한 측정단위이자 측정대상이기도 한 시간과 함께 일종의 양으로 처리되는 『자연학』에서의 공간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논의를 포함시키는 것이 형상의 자기술어화와 필연적 본질 서술, 필연적 비-본질 서술, 우연적 비-본질 서술의 구분이라든지 자기참여 문제 등을 주제로 삼는 연구계획 안에서 본격적으로 제시되는 건 부적절하다는 생각에서, 그리고 다른 연구 계획에 비해 시-공간개념 관련해서는 조사나 준비가 진행되었다기 보다는 그저 해당 부분의 추가 연구가 필요할 수 있다는 정도의 언급만 할 생각이었어서, 결국 겉핥기식의 이야기밖에 적지 못하였다. 
> 국문요약 관련하여서는 그야말로 평가자 말씀대로 명료하고 이해될 만한 방식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이고, 본래 명료한 글쓰기가 부족하다는 고질적인 약점도 걸려 있는 문제이다. 아마도 이번 국문요약보다는 차라리 1차 때 요약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는데, 그 경우에도 내 것보다 남의 것 쪽에 강조가 한참이나 더 많이 들어가 있는 건 마찬가지이긴 하다. 
> 영어 발음과 학점 쪽은 할 말이 없다. 미래성장 항목은 잘 모르겠지만, 플라톤 철학에 대한 우리사회의 접근 용이성을 높여 놓으면 누가 뭐라도 잘 활용을 하든 말든 하지 않을까? 그리고 여기에 내가 기여를 티끌만치라도 한다면, 아주 많이 쳐도 그게 내 연구관련 성장가능성의 한계이지 않을까?

 

>> 내 계획에서는 어찌 됐든 『소피스트』가 중심축인데 평가자께서는 『파르메니데스』에 주목하신 듯하여 흥미로웠다. 혹시 고대철학 전공 연구자이신 걸지.

 

 

"[평가자2 의견] 플라톤의 3 대화편인 (파르메니데스)와 (테아이테토스) 그리고 (소피스트)를 그리스어 동사 에이나이에 대한 대안적 해석에 근거하여 형상의 자기술어화 개념을 중심으로 일관성있게 재해석하는 연구자의 연구는 계획한 목표에 부응하여 성실하게 진행되어 왔다고 보인다. 아울러,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을 연구하고자 하는 연구자의 차기계획도 우수하다고 판단된다. 그런데 플라톤의 후기존재론을 언어와의 연관성 속에서 다루는 연구자의 연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의 도움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플라톤 대화편 전체에 대한 그림과 전기 대화편에 나타난 존재론뿐만 아니라, 플라톤의 철학의 전략 및 플라톤 철학의 정신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 나아가 왜 지금 이 시기에 플라톤의 철학을 연구하고 공부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더자고 연구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꾸준한 연구를 기대한다."

> 아아, 달콤한 칭찬... 정작 이 주제로 연구를 계속 진행하게 된다면, 그리고 박사논문까지 이걸로 가게 된다면 마지막에 평가자께서 요구하신 사항이 결국은 도입부 같은 것이 될 것이다. 석사 쓸 때도 개고생했던 문제인데, 내가 다루고 있는 문제에 남들까지 관심을 가질 이유를 설명해내지 못하면, 학술연구가 아닌 취미생활이 되어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설득력을, 타당성을 보여줘야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정확한 지형도가 필요하며 자신이 어디 있는지 또한 구체적으로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어렵지만 가능한 일이라고 보고, 뭐 한 번 하고서 끝날 문제도 아니긴 하다. 

 

 

"[평가자3 의견] - 연구자는 플라톤의 (파르메니데스), (테아이테토스), (소피스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형상들 사이의 결합과 분리라는 일종의 변증법적 구조를 간취해내려 한다. 형상의 자기술어화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존재와 언어의 구조를 해명하고, 형상과 참여자 사이의 단절을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는 서구 현재 철학에서도 여전히문제가 되고 있는 매우 중요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형상의 자체적이고 절대적인 측면과, 참여자의 관계적이고 우연적인 측면의 단절과 구분이 어떻게 체계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가는 아주 고전적인 철학적 문제였고, 지금도 그렇다. 연구자의 주제가 학문적으록 가치가 있다는 것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는 듯하다.
- 연구자가 제출한 단계평가서로 판단할 때, (파르메니데스), (테아이테토스), (소피스트) 등의 원전을 성실하게 강독하고 있고, 국내외 심포지움에서 발표한 내용들은 그의 주제가 생산적으로 구현될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그의 연구가 계획대로 추진되어 성공적인 결말에 이른다면 플라톤 철학의 난해한 대화편을 정합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플라톤 전체 철학 체계를 비교적 수미일관하게 정립할 수 있고, 나아가 현재 진행형인 이 주제의 연구와 관련해서도 의미 있는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티마이오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에 대한 연구 기획도 해당 주제와 관련해서 제 갈 길을 가는 것처럼 보인다.
- 성적 증명서와 지도교수 의견서는 연구자가 연구수행에 필요한 지식을 착실히 습득해 나가고 있으며, 연구 수행의 성실성과 글로벌 수준의 연구자로서의 성장가능성을 상당 부분 증명하고 있다.
- 다만 학문적 의욕으로 인해 너무나 많은 내용들을 다루고자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도교수와 협력하여 준비가 되는 대로 짧은 글이나마 전문 철학지에 발표했으면 한다."

> 앞서 다른 평가자께서 지적하신 문제에 대해 이 평가자분의 말씀이 한 가지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형상과 참여자라는 문제가 속성과 개체 혹은 술어와 주어 뭐 기타 여러가지 아직까지 다양한 접근이나 해석이 시도되고 있는 형이상학, 인식론, 언어철학에 얽혀있는 문제이긴 하고, 내가 플라톤 연구 및 해석에서 충분히 보편성을 확보해낸다면 이 흐름 안에서 내 연구의 위치나 기대되는 역할 등을 좀 더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쨌든 지금 단계에서는 내가 그걸 제대로 못 했다는 것이 문제겠다.
> 아아, 달콤한 칭찬...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하고 있다고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지도교수님 언젠가 하셨던 말씀대로, 열심히 한다고 다 잘 되진 않지요. 허허. 속으로 몇 번씩 다짐한다. 열심히는 하되, 그건 어쨌든 아무리 잘 해 봐야 자기만족이고, 문제는 잘 해내는 것이다. 위에 생산성 문제랑 직결되는 것 아닐까 싶다. 여러모로 많이 쓰면, 뭔가 더 키워볼 만한 것도 그 중에 남기도 하고 그러지 않겠나.
> 같은 성적표에 상반된 평가... 한국에서 대학원의 성적이란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돌아가는지야 우리끼리는 모르는 사람이 없긴 하고, 말이 좋아 A-, B+이지 사실상 C, D 때려 맞은 게 몇 과목씩 있단 얘긴데, 이 평가자께서는 사람 하나 살리는 셈 치고 좋게 넘어가 주신 듯. 뭐 그렇다고 저 앞쪽 평가자분의 내 성적에 대한 지적이 날 죽이자는 의도였다는 얘긴 아니다. '열심히 잘 했다'나 '좀 잘하지 그랬냐'나 결국 방향은 대강 같을 것. 
> 생산성 지적 다시 한 번. 그리고 연구 범위를 지나치게 넓게 잡은 것 같다는 문제는 고민을 하긴 해야 할 듯. 대화편 단위로 말해서 일이 커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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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또 한 고비 넘겼다. 한숨 고르고 가자.



-蟲-

ΣΩ. Οὐκοῦν τοὐναντίον αὖ, οὗ μήτε διδάσκαλοι μήτε                              e
μαθηταὶ εἶεν, καλῶς ἂν αὐτὸ εἰκάζοντες εἰκάζοιμεν μὴ
διδακτὸν εἶναι;
그렇다면 이번엔 그 반대로, 교사들도 제자들도 그것에
대한 것이지 않는 바, 우리가 바로 그것을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짐작하면 우리가 훌륭하게 짐작하는 것

아니겠나?

ΜΕΝ. Ἔστι ταῦτα· ἀλλ᾿ ἀρετῆς διδάσκαλοι οὐ δοκοῦσί
σοι εἶναι;                                                                                          5
사실이 그렇습니다. 허나 덕에 대해 교사들이 속한다고
당신께 그리 여겨지지 않는지요?

ΣΩ. Πολλάκις γοῦν ζητῶν εἴ τινες εἶεν αὐτῆς διδά-
σκαλοι, πάντα ποιῶν οὐ δύναμαι εὑρεῖν. καίτοι μετὰ πολλῶν
γε ζητῶ, καὶ τούτων μάλιστα οὓς ἂν οἴωμαι ἐμπειροτάτους
εἶναι τοῦ πράγματος. καὶ δὴ καὶ νῦν, ὦ Μένων, εἰς καλὸν
ἡμῖν Ἄνυτος ὅδε παρεκαθέζετο, ᾧ μεταδῶμεν τῆς ζητήσεως.                    10
어쨌든 그 덕의 교사들이 누구일지 여러 차례 탐구하면서, 온갖
일들을 하면서도 나로서는 찾아내는 일이 가능하지 않았다네.
그렇지만 적어도 여러 사람들과 함께 나는 탐구하고 있고, 특히

그 문제에 경험이 많은 자들이라고 내가 생각하는 자들과도 함께

그리하고 있지. 더욱이 지금, 메논, 마침 좋은 때에 우리에겐 여기

이 사람 아뉘토스도 곁에 앉아있다네. 우리 그를 탐구에 동참시키세. 

εἰκότως δ᾿ ἂν μεταδοῖμεν· Ἄνυτος γὰρ ὅδε πρῶτον μέν ἐστι                90a
πατρὸς πλουσίου τε καὶ σοφοῦ Ἀνθεμίωνος, ὃς ἐγένετο
πλούσιος οὐκ ἀπὸ τοῦ αὐτομάτου οὐδὲ δόντος τινός, ὥσπερ
ὁ νῦν νεωστὶ εἰληφὼς τὰ Πολυκράτους χρήματα Ἰσμηνίας
ὁ Θηβαῖος, ἀλλὰ τῇ αὑτοῦ σοφίᾳ κτησάμενος καὶ ἐπιμελείᾳ,                      5
ἔπειτα καὶ τὰ ἄλλα οὐχ ὑπερήφανος δοκῶν εἶναι πολίτης
οὐδὲ ὀγκώδης τε καὶ ἐπαχθής, ἀλλὰ κόσμιος καὶ εὐσταλὴς
ἀνήρ· ἔπειτα τοῦτον εὖ ἔθρεψεν καὶ ἐπαίδευσεν, ὡς δοκεῖ                      b
Ἀθηναίων τῷ πλήθει· αἱροῦνται γοῦν αὐτὸν ἐπὶ τὰς μεγί-
στας ἀρχάς. δίκαιον δὴ μετὰ τοιούτων ζητεῖν ἀρετῆς πέρι
διδασκάλους, εἴτ᾿ εἰσὶν εἴτε μή, καὶ οἵτινες. σὺ οὖν ἡμῖν,
ὦ Ἄνυτε, συζήτησον, ἐμοί τε καὶ τῷ σαυτοῦ ξένῳ Μένωνι                       5
τῷδε, περὶ τούτου τοῦ πράγματος τίνες ἂν εἶεν διδάσκαλοι.
그런데 우리가 그를 참여시키는 일은 그럴 듯한 일일 테지. 

왜냐하면 여기 이 사람 아뉘토스는 우선 부유하고도 지혜로운 

아버지 안테미온의 자식으로, 그분께서는 저절로 부자가 된

것도 아니고 누가 주어서, 마치 작금에 폴뤼크라테스의

재물들을 취한 테베인 이사메니아스처럼, 그리 된 것도 아니라,

자신의 지혜와 주의로 획득하신 분이며, 다음으로 여타의

것들을 두고서도 거만한 시민이라고도 또 허영스럽고도

적대적인 시민이라고도 여겨지지 않으시며, 오히려 조화롭고도

예의바른 사내라고 여겨지시면서 그리 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라네. 다음으로 그 분께서 이 친구를 잘 양육하셨고 또한

교육하셨으니, 대다수의 아테네인들에게 여겨지는 바와 같지.

어쨌든 사람들은 그 친구를 가장 중요한 관직들에 선출했다네.

그래서 이와 같은 사람들을 동반하여 덕에 관련하여 교사들을,

그들이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또 도대체 누구인지 탐구함이

정당하다네. 그러니 자네는, 아뉘토스, 우리와 공동탐구를 해

주게나, 나와도 그리고 또 자네의 손님인 여기 이 사람 

메논과도, 바로 이 문제에 관련하여 교사들은 누구일는지를 

말일세.
ὧδε δὲ σκέψαι· εἰ βουλοίμεθα Μένωνα τόνδε ἀγαθὸν ἰατρὸν
γενέσθαι, παρὰ τίνας ἂν αὐτὸν πέμποιμεν διδασκάλους; ἆρ᾿                  c
οὐ παρὰ τοὺς ἰατρούς;
         헌데 이런 식으로 검토해 주게. 만일 우리가 여기 이 친구

메논이 좋은 의사가 되기를 바란다면, 교사로서 어떤 자들 곁에

이 친구를 보내겠는가? 의사들 곁이 아니겠나?


ΑΝ. Πάνυ γε.
물론입니다.

ΣΩ. Τί δ᾿ εἰ σκυτοτόμον ἀγαθὸν βουλοίμεθα γενέσθαι, // 211130
ἆρ᾿ οὐ παρὰ τοὺς σκυτοτόμους;                                                         5
그런데 어떤가, 만일 우리가 그가 훌륭한 제화공이 되기를

바란다면, 제화공들 곁으로 보내지 않겠나?


ΑΝ. Ναί.
네.

ΣΩ. Καὶ τἆλλα οὕτως;
여타의 일들도 그런 식이고?

ΑΝ. Πάνυ γε.
물론입니다.

ΣΩ. Ὧδε δή μοι πάλιν περὶ τῶν αὐτῶν εἰπέ. παρὰ τοὺς
ἰατρόυς, φαμέν, πέμποντες τόνδε καλῶς ἂν ἐπέμπομεν, βου-                 10
λόμενοι ἰατρὸν γενέσθαι· ἆρ᾿ ὅταν τοῦτο λέγωμεν, τόδε
λέγομεν, ὅτι παρὰ τούτους πέμποντες αὐτὸν σωφρονοῖμεν                  d
ἂν, τοὺς ἀντιποιουμένους τε τῆς τέχνης μᾶλλον ἢ τοὺς μή,
καὶ τοὺς μισθὸν πραττομένους ἐπ᾿ αὐτῷ τούτῳ, ἀποφήναντας
αὑτοὺς διδασκάλους τοῦ βουλομένου ἰέναι τε καὶ μανθάνειν;
ἆρ᾿ οὐ πρὸς ταῦτα βλέψαντες καλῶς ἂν πέμποιμεν;                              5
그럼 내게 다시 같은 일들에 관련하여 이런 식으로 이야기해주게.
우리가 주장하기로, 이 친구가 의사가 되기를 바라면서, 그를
의사들 곁으로 보내는 건 훌륭하게 보낸 것이었을 테지. 우리가
이런 것을 말할 때면, 다음과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인가? 그를

이런 자들 곁으로 보내는 게 현명한 처신이리라고, 기술에 대해 

자임하지 않는 자들이 아니라 훨씬 더 기술에 대해 자임하는 

자들에게, 또한 바로 그 점에서 보수를 받는 자들에게, 가서 

배우기를 바라는 자의 스승들로 자신들을 드러내 보이는 

자들에게 그리하는 것이라고 말일세. 혹시 이런 것들에 

주목하여서 우리가 훌륭하게 보낼 수 있는 것 아니겠나?
90c10 ἂν ἐπεμπομεν: 

Smyth. 1784. Past Potential. ― The past tenses (usually the aorist, less

commonly the imperfect) of the indicative with ἄν (κέν) denote past

potentiality, probability (cautious statement), or necessity.

1785. A protasis may often be extracted from a participle, or is intimated

in some other word; but there is no reference to any definite condition, hence

a definite ellipsis is not to be supplied.

C.G. 'Modal' (Secondary) Indicative in Main Clauses. 34.16. 

34.16 The secondary indicative with ἄν is used in statements or questions to indicate
that an action would occur or would have occurred under certain conditions
which are/were not met. The conditions may be expressed by a conditional εἰ-

clause (49.10), a participle (52.40), an adverb, or left unexpressed.


ΑΝ. Ναί.
네.

ΣΩ. Οὐκοῦν καὶ περὶ αὐλήσεως καὶ τῶν ἄλλων τὰ αὐτὰ
ταῦτα; πολλὴ ἄνοιά ἐστι βουλομένους αὐλητήν τινα ποιῆσαι                e
παρὰ μὲν τοὺς ὑπισχνουμένους διδάξειν τὴν τέχνην καὶ
μισθὸν πραττομένους μὴ ἐθέλειν πέμπειν, ἄλλοις δὲ τισιν
πράγματα παρέχειν, [ζητοῦντα μανθάνειν παρὰ τούτων,] οἳ
μήτε προσποιοῦνται διδάσκαλοι εἶναι μήτ᾿ ἔστιν αὐτῶν μαθη-               5
τὴς μηδεὶς τούτου τοῦ μαθήματος ὃ ἡμεῖς ἀξιοῦμεν μανθά-
νειν παρ᾿ αὐτῶν ὃν ἂν πέμπωμεν. οὐ πολλή σοι δοκεῖ
ἀλογία εἶναι;
그렇다면 아울로스 연주에 관련하여서나 여타의 것들에 관해서도

바로 이런 점들이 성립하지 않나? 누군가를 아울로스 연주자로

만들기를 바라는 자들이 그 기술을 가르쳐주리라 공언하며 보수를

받는 자들에게는 보내려 하지 않고, 그 밖의 어떤 이들을 곤란하게

만들기를, [배움을 추구하는 그 누군가가 그들에게서 배우도록,]

교사들로 가장하지도 않고 또한 우리가 그를 그들에게 보낸다면 

그가 그들에게서 배울 만하다고 평가하는 바로 그 배움에 대해 

아무도 그들의 제자이지도 않은 그런 자들에게 그리 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생각없는 짓이라네. 자네에게는 그게 무척이나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여겨지지 않는가?

> 90e1 ποιῆσαι: > Cf. 71c4 ἐνέτυχον, 72c9 δηλῶσαι, 74a10 ἀνευρεῖν,

80d4 σκέψασθαι ... συζητῆσαι etc..
Complexive Aorist.
Smyth. 1927. The complexive aorist is used to survey
at a glance the course of a past action from beginning to end.
It may sum up the result of a preceding narrative (often containing
imperfects.) The complexive aorist appears also in other moods than
the indicative.
a. This is often called the 'concentrative' aorist, because it concentrates
the entire course of an action to a single point. When used of rapid or
instantaneous action this aorist is often called 'momentary.'
b. The complexive aorist is used either of a long or of a short period of
time.
CG. 33.30. The aorist of such verbs can, however, also be used as an
expression of an entire period (viewed as a complete whole from 
beginning to end, without any interest in its component parts). 
This is the so-called complexive (or 'concentrating') use of the aorist. 
Typically, an expression of the duration of the action is included.


ΑΝ. Ναὶ μὰ Δία ἔμοιγε, καὶ ἀμαθία γε πρός.
제우스께 맹세코 제게는 그리 여겨집니다. 게다가 무식하다고까지

여겨지고요.


ΣΩ. Καλῶς λέγεις. νῦν τοίνυν ἔξεστί σε μετ᾿ ἐμοῦ                                10
κοινῇ βουλεύεσθαι περὶ τοῦ ξένου τουτουῒ Μένωνος. οὗτος            91a
γάρ, ὦ Ἄνυτε, πάλαι λέγει πρός με ὅτι ἐπιθυμεῖ ταύτης
τῆς σοφίας καὶ ἀρετῆς ᾗ οἱ ἄνθρωποι τάς τε οἰκίας καὶ τὰς
πόλεις καλῶς διοικοῦσι, καὶ τοὺς γονέας τοὺς αὑτῶν θερα-
πεύουσι, καὶ πολίτας καὶ ξένους ὑποδέξασθαί τε καὶ ἀπο-                    5
πέμψαι ἐπίστανται ἀξίως ἀνδρὸς ἀγαθοῦ. ταύτην οὖν τὴν
ἀρετὴν σκόπει παρὰ τίνας ἂν πέμποντες αὐτὸν ὀρθῶς πέμ-                b
ποιμεν. ἢ δῆλον δὴ κατὰ τὸν ἄρτι λόγον ὅτι παρὰ τούτους
τοὺς ὑπισχνουμένους ἀρετῆς διδασκάλους εἶναι καὶ ἀποφή-
ναντας αὑτοὺς κοινοὺς τῶν Ἑλλήνων τῷ βουλομένῳ μανθάνειν,
μισθὸν τούτου ταξαμένους τε καὶ πραττομένους;                                5
훌륭한 말일세. 그러면 이제 자네가 나와 동반하여 공동으로
이 외지손님인 메논에 관하여 숙고해볼 수 있다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아뉘토스, 오래 전부터 나를 상대로 바로 이 지혜와
덕에 열의를 보인다고, 사람들이 그로써 가정과 나라를 훌륭하게
관리하고, 그들의 가솔들을 보살피며, 시민들도 외지인들도
환영하고 또 환송하는 일을 좋은 사내가 할 만한 방식으로 할 줄
아는 그런 것에 그러하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라네. 그러므로
바로 이 덕을 두고 우리가 그를 누구 곁으로 보내야 제대로 보내는
것이 될는지 검토해 주게. 아니면 방금 전의 논의에 따라 덕의
교사들임을 공언하고 자신들을 헬라스인들 중 배우기를 바라는
자에게 공공재인 자들로[or 동반자들로] 드러내 보이는 자들,

이 일의 보수를 책정하고 받아내는 바로 그들 곁으로[ 보내면

제대로 보내는 거]라는 게 실로 분명한가?

ΑΝ. Καὶ τίνας λέγεις τούτους, ὦ Σώκρατες;
그 자들을 누구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소크라테스?
> 91b6 Καὶ: Denniston. p311. Καὶ (10) (i)

καί preceding an interrogative, usually at the opening of a

speech in dialogue. The particle may either (a) simply denote

that the speaker requires further information; or (b), more commonly,

convey an emotional effect of surprise, contempt, and so forth.


ΣΩ. Οἶσθα δήπου καὶ σὺ ὅτι οὗτοί εἰσιν οὓς οἱ ἄνθρωποι
καλοῦσι σοφιστάς.
아마 자네도 이런 자들이 사람들이 소피스트들이라 부르는
자들이라는 걸 알고 있겠지.

ΑΝ. Ἡράκλεις, εὐφήμει, ὦ Σώκρατες. μηδένα τῶν γ᾿                           c
ἐμῶν μήτε οἰκείων μήτε φίλων, μήτε ἀστὸν μήτε ξένον,
τοιαύτη μανία λάβοι, ὥστε παρὰ τούτους ἐλθόντα λωβηθῆναι,
ἐπεὶ οὗτοί γε φανερά ἐστι λώβη τε καὶ διαφθορὰ τῶν
συγγιγνομένων.                                                                            5
맙소사, 말씀 잘 하십쇼, 소크라테스. 적어도 제 가솔들이나
친우들 중에서는 단 한 사람도, 도시인이든 촌부든 간에, 그와 같은
광기에 사로잡혀서 그들 곁으로 가 타락하지는 않을 것이니, 적어도 

이 자들은 그들과 교제하게 되는 자들에게 타락이자 파멸이라는 게 

뻔하기에 그렇습니다.

ΣΩ. Πῶς λέγεις, ὦ Ἄνυτε; οὗτοι ἄρα μόνοι τῶν ἀντι- //211207
ποιουμένων τι ἐπίστασθαι εὐεργετεῖν τοσοῦτον τῶν ἄλλων
διαφέρουσιν, ὅσον οὐ μόνον οὐκ ὠφελοῦσιν, ὥσπερ οἱ ἄλλοι,
ὅτι ἄν τις αὐτοῖς παραδῷ, ἀλλὰ καὶ τὸ ἐναντίον διαφθεί-
ρουσιν; καὶ τούτων φανερῶς χρήματα ἀξιοῦσι πράττεσθαι;                 d
어찌 하는 말인가, 아뉘토스? 뭐라도 잘 할줄 안다고 자임하는

자들 중 오직 이들만이 그 외의 사람들과 이 만큼 차이가

나는가? 여타의 사람들처럼, 그들에게 누가 무엇을 맡기든,

그들이 이익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 반대로 

파멸시키기까지 할 만큼 말일세. 또한 그들이 그런 일들에

재물을 받기를 대놓고 요구하는가?
ἐγὼ μὲν οὖν οὐκ ἔχω ὅπως σοι πιστεύσω· οἶδα γὰρ ἄνδρα
ἕνα Πρωταγόραν πλείω χρήματα κτησάμενον ἀπὸ ταύτης
τῆς σοφίας ἢ Φειδίαν τε, ὃς οὕτω περιφανῶς καλὰ ἔργα
ἠργάζετο, καὶ ἄλλους δέκα τῶν ἀνδριαντοποιῶν. καίτοι                       5
τέρας λέγεις εἰ οἱ μὲν τὰ ὑποδήματα ἐργαζόμενοι τὰ παλαιὰ
καὶ τὰ ἱμάτια ἐξακούμενοι οὐκ ἂν δύναιντο λαθεῖν τριάκονθ᾿
ἡμέρας μοχθηρότερα ἀποδιδόντες ἢ παρέλαβον τὰ ἱμάτιά τε             e
καὶ ὑποδήματα, ἀλλ᾿ εἰ τοιαῦτα ποιοῖεν, ταχὺ ἂν τῷ λιμῷ
ἀποθάνοιεν, Πρωταγόρας δὲ ἄρα ὅλην τὴν Ἑλλάδα ἐλάν-
θανεν διαφθείρων τοὺς συγγιγνομένους καὶ μοχθηροτέρους
ἀποπέμπων ἢ παρελάμβανεν πλέον ἢ τετταράκοντα ἔτη―                  5
                                             그리하여 나로서는 자네를

어떻게 신뢰할지 알 수가 없군. 왜냐하면 그다지도 특출나게 

아름다운 작품들을 만들었던 페이디아스와 저 조각가들 중에서 

그 외의 열 사람이 번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재물을 바로 

그 지혜로부터 얻은 한 사람의 사내 프로타고라스를 내가 알고 

있기 때문이라네. 게다가 자네는 만일 오래된 신발과 옷가지로 

일을 하고 수선하는 자들은 건네받았던 옷가지와 신발보다 더욱 

남루한 것들을 돌려주면서 30일 동안 들키지 않을 능력은 없을 

것이고, 오히려 이런 짓들을 한다면, 이내 굶주림 속에 죽을 

것이나, 프로타고라스께서는 그럼 헬라스 전체를 두고 그가 

교제하는 자들을 넘겨받았을 때보다 더 남루한 자들로 돌려보내 

파멸시키면서 40년보다도 더 오랫동안 들키지 않았다는 괴상한 

말을 하고 있지.

> 91d2 ὅπως σοι πιστεύσω: Cf. Smyth. 2929. ὅπως, originally 

a relative adverb meaning how, is derived from the relative particle σϝοδ 

(with which Eng. so is connected), to which the indefinite πώς has been added. 

Hom. ὅππως from σϝοδ-πως, as ὅττι from σϝοδ-τι (81 D 2).
a. The adverbial meaning of ὅπως is still in its use as an indefinite relative and 

as an indirect interrogative; and by the fact that in its place ὅπῃ, ὅτῳ τρόπῳ, 

ἐξ ὅτου τρόπου are sometimes used. by association with the subjunctive ὅπως 

became a conjunction (cp. μή πως) used with or without ἄν in final clauses 

(see 2196, 2201). On the use as a conjunction in object clauses after verbs of effort 

and of fear, see 2211, 2228. So in dependent statements ὅπως passed from how 

into that (2578 d).
C.G. 42.5. Indirect specifying questions can be introduced either by 

the regular interrogative pronouns/adjectives/adverbs(τίς, πόσος, ποῦ, etc.; 

8.1-2, 38.11), or by the corresponding indefinite relative pronouns/adjectives/adverbs 

(beginning with ὁ-: ὅστις, ὁπόσος, ὅπου, etc.; 8.1-2). ὅπως e.g. Pl. Tht. 198e.

+ LSJ ὅπως A. III. 2. with deliberative subj. after Verbs of deliberation, 

taking care, and the like, λεύσσει ὅπως ὄχʼ ἄριστα . . γένηται Il. 3.110; 

ἐνόησεν (gnomic aor.) ὅππως κέρδος ἔῃ 10.225; 

ἀλλʼ ἄγεθʼ ἡμεῖς οἵδε περιφραζώμεθα πάντες νόστον ὅπως ἔλθῃσι Od. 1.77, cf. 13.365; 

οὐκ οἶδʼ ὅπως . . φῶ S. OT 1367, cf. Aj. 428, Lys. 8.5, Pl. Men. 91d; 

ἐπιμελητέον ὅπως τρέφωνται οἱ ἵπποι X. Eq.Mag. 1.3, cf. Oec. 7.36, 37, 9.14, 15.1, 

Pl. Grg. 515c.—Sts. the fut. and subj. are conjoined without difference of meaning, 

ἐπράττετο γὰρ . ., πρῶτον μὲν ὅπως μὴ περιμείνητε . ., 

δεύτερον δὲ ὅπως ψηφιεῖσθε . ., τρίτον δὲ ὅπως μὴ ἔσται Aeschin. 3.65, 

cf. X. Ages. 7.7, Mem. 2.2.10.—On ὅπως ἄν (κεν), v. infr. 5.

 

οἶμαι γὰρ αὐτὸν ἀποθανεῖν ἐγγὺς καὶ ἑβδομήκοντα ἔτη γεγο-
νότα, τετταράκοντα δὲ ἐν τῇ τέχνῃ ὄντα―καὶ ἐν ἅπαντι
τῷ χρόνῳ τούτῳ ἔτι εἰς τὴν ἡμέραν ταυτηνὶ εὐδοκιμῶν
οὐδὲν πέπαυται, καὶ οὐ μόνον Πρωταγόρας, ἀλλὰ καὶ
ἄλλοι πάμπολλοι, οἱ μὲν πρότερον γεγονότες ἐκείνου, οἱ                92a
δὲ καὶ νῦν ἔτι ὄντες. πότερον δὴ οὖν φῶμεν κατὰ τὸν
σὸν λόγον εἰδότας αὐτοὺς ἐξαπατᾶν καὶ λωβᾶσθαι τοὺς
νέους, ἢ λεληθέναι καὶ ἑαυτούς; καὶ οὕτω μαίνεσθαι
ἀξιώσομεν τούτους, οὓς ἔνιοί φασι σοφωτάτους ἀνθρώπων                5
εἶναι;
                    내 생각에 그 분께서 일흔 가까이까지 되셔서 

돌아가셨는데, 40년 동안은 그 기술에 몸을 담고 계셨으니 하는 

말일세. 그리고 그 모든 시간 동안에 바로 오늘 날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명성을 드높이기를 전혀 그친 적이 없으시며, 비단 

프로타고라스뿐만 아니라, 숱하게 많은, 어떤 이들은 저 분보다 

먼저 태어나고, 또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살아있는, 

여타의 사람들도 그러하지. 그러니 정말로 우리가 자네 말대로 

그들이 알고서 젊은이들에게 사기를 치고 그들을 망친다고 

주장할까, 아니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그리 했다고 할까? 

우리는, 몇몇은 그들이 인간들 중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들이라고

말하는, 그런 자들이 그렇게까지 미쳤다고 평하게 되겠는가?

ΑΝ. Πολλοῦ γε δέουσι μαίνεσθαι, ὦ Σώκρατες, ἀλλὰ //221221
πολὺ μᾶλλον οἱ τούτοις διδόντες ἀργύριον τῶν νέων, τούτων
δ᾿ ἔτι μᾶλλον οἱ τούτοις ἐπιτρέποντες, οἱ προσήκοντες, πολὺ            b
δὲ μάλιστα πάντων αἱ πόλεις, ἐῶσαι αὐτοὺς εἰσαφικνεῖσθαι
καὶ οὐκ ἐξελαύνουσαι, εἴτε τις ξένος ἐπιχειρεῖ τοιοῦτόν τι
ποιεῖν εἴτε ἀστός.
그들은 미친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만, 소크라테스, 젊은이들 중
돈을 가져가 그 작자들에게 바치는 자들이 오히려 훨씬 더 많이

미쳤고, 그 작자들에게 의지하는 자들, 즉 친인척인 자들이 

도리어 훨씬 더 그러하며, 무엇보다도 특히 대단히, 그들이,

누군가 외지인이 그런 짓을 하려 시도하든 도시사람이 그러든지 

간에, 들어오도록 내버려두고 또한 추방하지 않은 도시들이

미쳤다고 평할 겁니다.

ΣΩ. Πότερον δέ, ὦ Ἄνυτε, ἠδίκηκέ τίς σε τῶν σοφιστῶν,                    5
ἢ τί οὕτως αὐτοῖς χαλεπὸς εἶ;
그런데, 아뉘토스, 소피스트들 중 누군가가 자네에게 불의한
짓이라도 저질렀는가, 아니면 왜 그렇게 그들에게 험악하게
구는가?

ΑΝ. Οὐδὲ μὰ Δία ἔγωγε συγγέγονα πώποτε αὐτῶν οὐδενί,
οὐδ᾿ ἂν ἄλλον ἐάσαιμι τῶν ἐμῶν οὐδένα.
제우스께 맹세코 저는 그들 중 단 한 사람과도 결코 교제한
적도 없고 제 사람들 중 다른 아무에게도 그리 하도록
허락할 일도 없습니다.

ΣΩ. Ἄπειρος ἄρ᾿ εἶ παντάπασι τῶν ἀνδρῶν;
그럼 자네 그 사내들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미경험자인가?

ΑΝ. Καὶ εἴην γε.                                                                          10
게다가 부디 그랬으면 하네요.

ΣΩ. Πῶς οὖν ἄν, ὦ δαιμόνιε, εἰδείης περὶ τούτου τοῦ                       c
πράγματος, εἴτε τι ἀγαθὸν ἔχει ἐν αὑτῷ εἴτε φλαῦρον, οὗ
παντάπασιν ἄπειρος εἴης;
그렇다면 어찌, 신통한 친구, 자네가 바로 그 일에 관련하여

알겠나? 자네가 그에 대해 전적으로 미경험자인 바로 그 일

자체 안에 뭐라도 좋은 게 있는지 아님 저급한 게 있는지를 

말일세.

> 92c2-3: Smyth. 2560. Conditional Relative Clauses may be resolved into 

if clauses, ὅς (ὅστις) corresponding to εἴ τις and ὅς (ὅστις) to ἄν ἐάν τις. 

The negative is μή.
C.G. In Restrictive Clauses. 50.22. The following (less frequent) types normally

have a strong conditional nuance (for the use of moods, →49.8-11):
- Potential: in restrictive relative clauses referring to a (remotely) possible action, 

an optative without ἄν is used in the relative clause (negative un). 

The matrix clause has a potential optative with ἄν:


ΑΝ. Ῥᾳδίως· τούτους γοῦν οἶδα οἵ εἰσιν, εἴτ᾿ οὖν
ἄπειρος αὐτῶν εἰμι εἴτε μή.                                                          5
쉽사리 알겁니다. 어쨌든 그들이 누구인지, 제가 그들에 대해 

경험이 있든 그렇지 않든, 알고 있습니다. 
> 92c4 τοὺτους:  Cf. 71a4 ἀρετήν; 80e2 τοῦτον; 89d5 ὅτι.
Smyth. 2182. Anticipation (or Prolepsis)
The subject of the dependent clause is often anticipated and made 

the object of the verb of the principal clause. This transference, which 

gives a more prominent place to the subject of the subordinate clause, 

is called anticipation or prolepsis (πρόληψις taking before).
d. The object of the subordinate clause may be anticipated and 

made the object of the principal clause.

C.G. Prolepsis 60.37. Topics of subordinate clauses which follow 

the matrix clause are sometimes syntactically integrated into that 

matrix clause. This is called prolepsis. The construction allows 

the speaker to treat the 'dislocated' constituent as the (given) topic 

of the subordinate clause, which otherwise contains strongly focal material.

 

ΣΩ. Μάντις εἶ ἴσως, ὦ Ἄνυτε· ἐπεὶ ὅπως γε ἄλλως
οἶσθα τούτων πέρι, ἐξ ὧν αὐτὸς λέγεις θαυμάζοιμ᾿ ἄν.
ἀλλὰ γὰρ οὐ τούτους ἐπιζητοῦμεν τίνες εἰσίν, παρ᾿ οὓς ἂν
Μένων ἀφικόμενος μοχθηρὸς γένοιτο―οὗτοι μὲν γάρ, εἰ σὺ            d
βούλει, ἔστων οἱ σοφισταί―ἀλλὰ δὴ ἐκείνους εἰπὲ ἡμῖν,
καὶ τὸν πατρικὸν τόνδε ἑταῖρον εὐεργέτησον φράσας αὐτῷ
παρὰ τίνας ἀφικόμενος ἐν τοσαύτῃ πόλει τὴν ἀρετὴν ἣν
νυνδὴ ἐγὼ διῆλθον γένοιτ᾿ ἂν ἄξιος λόγου.                                     5
자네는 예언가 같군, 아뉘토스. 자네가 그 밖에 어떤 식으로
그들에 관련하여 알았는지, 자네 자신이 하는 말들로부터 내가
놀랄 테니 말일세. 허나 우리는, 메논이 그들 곁으로 가서 

남루한 자가 될 그 자들이 누구인지 탐구하던 게 아니라―이런 

자들은, 자네가 바란다면, 소피스트들이라 치기로 하고 말일세―

오히려 자네는 우리에게 실로 저 자들을 이야기해 주게나, 

그리고 자네 부계의 동료인 여기 이 친구를 도와 주게, 그에게 

누구 곁으로 감으로써 이 만큼 큰 도시에서 내가 방금 상술하던 

그 덕을 두고 회자될 만한 자가 될 것인지 알려주어서 말일세.

ΑΝ. Τί δὲ αὐτῷ οὐ σὺ ἔφρασας;
그런데 무슨 그에게 당신께서 알려주시진 않으셨나요?

ΣΩ. Ἀλλ᾿ οὓς μὲν ἐγὼ ᾤμην διδασκάλους τούτων εἶναι,
εἶπον, ἀλλὰ τυγχάνω οὐδὲν λέγων, ὡς σὺ φῄς· καὶ ἴσως τὶ
λέγεις. ἀλλὰ σὺ δὴ ἐν τῷ μέρει αὐτῷ εἰπὲ παρὰ τίνας                      e
ἔλθῃ Ἀθηναίων· εἰπὲ ὄνομα ὅτου βούλει.
내가 그런 일들의 교사들이라고 생각하던 자들은, 내가 

이야기를 했네만, 자네가 주장하는 대로는, 나는 실은 말도

안되는 소릴 했군. 그리고 자네가 뭔가 말이 되는 소리를

한 것 같네. 허나 그럼 다음으로는 자네가 그에게 아테네인들 

중 누구 곁으로 가야할지를 이야기해 주게. 자네가 바라는

누구든 그의 이름을 이야기해 주게나.

ΑΝ. Τί δὲ ἑνὸς ἀνθρώπου ὄνομα δεῖ ἀκοῦσαι; ὅτῳ γὰρ
ἂν ἐντύχῃ Ἀθηναίων τῶν καλῶν κἀγαθῶν, οὐδεὶς ἔστιν ὃς
οὐ βελτίω αὐτὸν ποιήσει ἢ οἱ σοφισταί, ἐάνπερ ἐθέλῃ                      5
πείθεσθαι.
그런데 무슨 이유로 한 사람의 이름을 들어야 합니까? 

훌륭하고도 좋은 아테네인들 중 마주치는 누구에게든, 그 

친구가 납득하여 따르려 한다면, 그 아무도 소피스트들이 

그리 할 것에 비해 그 친구를 더 낫게 만들지 못할 자는 

아니니 하는 말입니다.

ΣΩ. Πότερον δὲ οὗτοι οἱ καλοὶ κἀγαθοὶ ἀπὸ τοῦ                  //211228
αὐτομάτου ἐγένοντο τοιοῦτοι, παρ᾿ οὐδενὸς μαθόντες ὅμως
μέντοι ἄλλους διδάσκειν οἷοί τε ὄντες ταῦτα ἃ αὐτοὶ οὐκ
ἔμαθον;                                                                              93a
그런데 이 아름답고도 좋은 자들은 저절로 이런 자들이
되었고, 아무에게서도 배우지 않고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자신이 배운 적이 없는 바로 그것들을 그 외의 사람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자들로서 그리 되었는가? 

-蟲-

ΣΩ. Ἀλλ᾿ εἰ μὲν ἐγὼ ἦρχον, ὦ Μένων, μὴ μόνον ἐμαυ-
τοῦ ἀλλὰ καὶ σοῦ, οὐκ ἂν ἐσκεψάμεθα πρότερον εἴτε διδακτὸν
εἴτε οὐ διδακτὸν ἡ ἀρετή, πρὶν ὅτι ἐστὶν πρῶτον ἐζητήσαμεν               5
αὐτό· ἐπειδὴ δὲ σὺ σαυτοῦ μὲν οὐδ᾿ ἐπιχειρεῖς ἄρχειν, ἵνα
δὴ ἐλεύθερος ᾖς, ἐμοῦ δὲ ἐπιχειρεῖς τε ἄρχειν καὶ ἄρχεις,
συγχωρήσομαί σοι―τί γὰρ χρὴ ποιεῖν;―ἔοικεν οὖν σκεπτέον
εἶναι ποῖόν τί ἐστιν ὃ μήπω ἴσμεν ὅτι ἐστίν.                                   e
그럼 만일 내가, 메논, 나 자신뿐만 아니라 자네 또한 지배하고
있었더라면, 우리는 덕이 가르쳐지는 것인지 가르쳐지지 않는

것인지를 더 먼저 검토하지는 않았을 걸세, 그것이 무엇인지 

바로 그 점을 우선 탐구하기 이전에는 말일세. 그런데 자네가 

자네 자신에 대해서는 자유로운 자이고자 하여 지배하기를 

시도조차 하지 않지만, 나에 대해서는 지배하려 들고 또 

지배하고 있으니, 내 그대에게 동의하도록 함세. 그야 내가 

어찌 해야만 하겠는가? 그러면 우리가 아직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검토해야만 하는 듯하군.

86d3-4 εἰ ... ἦρχον, ἂν ἐσκεψάμεθα: 

Smyth. Second Form of Conditions. Present and Past Unreal Conditions.

2304. The Imperfect refers to present time or (sometimes) to a continued

or habitual past act or state. The imperfect may be conative.

2310. Different Tenses in Protasis and Apodosis - a. Imperfect and Aorist:

N. - With an imperfect of present time in the protasis, εἶπον ἄν, ἀπεκρῑνάμην

ἄν εἰ μὴ πατὴρ ἦσθ᾿, εἶπον ἄν σ᾿ οὐκ εὖ φρονεῖν if thou wert not my father,

I would say (would have said) thou wast unwise S. Ant. 755. Often in Plato,

as εἰ μὲν οὖ σύ με ἠρώτᾱς τι τῶν νῦν δή, εἶπον ἄν κτλ. if now you were asking

me any one of the questions with which we are now dealing, I should say etc.,

P. Euth. 12d, ep. P. G. 514 d, X. A. 7. 6. 23.

 

                                                            εἰ μή τι οὖν                  e
ἀλλὰ σμικρόν γέ μοι τῆς ἀρχῆς χάλασον, καὶ συγχώρησον
ἐξ ὑποθέσεως αὐτὸ σκοπεῖσθαι, εἴτε διδακτόν ἐστιν εἴτε
ὁπωσοῦν. λέγω δὲ τὸ ἐξ ὑποθέσεως ὧδε, ὥσπερ οἱ γεωμέ-
τραι πολλάκις σκοποῦνται, ἐπειδάν τις ἔρηται αὐτούς, οἷον                5
περὶ χωρίου, εἰ οἷόν τε ἐς τόνδε τὸν κύκλον τόδε τὸ χωρίον
τρίγωνον ἐνταθῆναι, εἴποι ἄν τις ὅτι "Οὔπω οἶδα εἰ ἔστιν             87a
τοῦτο τοιοῦτον, ἀλλ᾿ ὥσπερ μέν τινα ὑπόθεσιν προὔργου
οἶμαι ἔχειν πρὸς τὸ πρᾶγμα τοιάνδε· εἰ μέν ἐστιν τοῦτο τὸ
χωρίον τοιοῦτον οἷον παρὰ τὴν δοθεῖσαν αὐτοῦ γραμμὴν
παρατείναντα ἐλλείπειν τοιούτῳ χωρίῳ οἷον ἂν αὐτὸ τὸ                    5
παρατεταμένον ᾖ, ἄλλο τι συμβαίνειν μοι δοκεῖ, καὶ ἄλλο
αὖ, εἰ ἀδύνατόν ἐστιν ταῦτα παθεῖν. 
                                            그러니 그럴 게 아니라면
적어도 조금이나마 나를 그 지배로부터 놓아주었으면 하네.
또한 그 문제를 가정으로부터 검토하는 데에 동의해 주면 좋겠군,
그것이 가르쳐지는 것인지 혹은 어떤 무엇이 되었든 그런 것인지를
말이지. 그런데 "가정으로부터"라는 건 이런 말일세. 기하학자들이
자주 그리 검토하는 것처럼, 누군가가 그들에게, 예를 들어 면에
관련하여, 여기 이 원에 여기 이 삼각인 면이 내접될 수 있는지,
묻는 언제든, 누군가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할 수 있을 걸세. "나는
아직 그 면이 이러한 것인지 알지 못하지만, 이러한 문제에 도움이
되는 어떤 가정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만일 이 면이 그 원의 주어진 선에 따라 놓임으로써 바로 그
놓여진 같은 면일 그러한 면에 부족할 경우라면, 내게는 뭐라도
귀결되는 것으로 여겨지고, 만일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일이
불가능하다면, 또 다른 일이 귀결된다고 여겨집니다.
                                                 ὑποθέμενος οὖν ἐθέλω
εἰπεῖν σοι τὸ συμβαῖνον περὶ τῆς ἐντάσεως αὐτοῦ εἰς τὸν                b
κύκλον, εἴτε ἀδύνατον εἴτε μή." οὕτω δὴ καὶ περὶ ἀρετῆς
ἡμεῖς, ἐπειδὴ οὐκ ἴσμεν οὔθ᾿ ὅτι ἐστὶν οὔθ᾿ ὁποῖόν τι, ὑπο-
θέμενοι αὐτὸ σκοπῶμεν εἴτε διδακτὸν εἴτε οὐ διδακτόν ἐστιν,
ὧδε λέγοντες· Εἰ ποῖόν τί ἐστιν τῶν περὶ τὴν ψυχὴν ὄντων                 5
ἀρετή, διδακτὸν ἂν εἴη ἢ οὐ διδακτόν; πρῶτον μὲν δὴ εἰ
ἔστιν ἀλλοῖον ἢ οἷον ἐπιστήμη, ἆρα διδακτὸν ἢ οὔ, ἢ ὃ
νυνδὴ ἐλέγομεν, ἀναμνηστόν―διαφερέτω δὲ μηδὲν ἡμῖν
ὁποτέρῳ ἂν τῷ ὀνόματι χρώμεθα―ἀλλ᾿ ἆρα διδακτόν; ἢ                  c
τοῦτό γε παντὶ δῆλον, ὅτι οὐδὲν ἄλλο διδάσκεται ἄνθρωπος
ἢ ἐπιστήμην;
                                                                   그리하여
나는 가정함으로써 당신에게 그 원에 대한 그 면의 내접에 관한
귀결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불가능한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
여부를 말입니다." 더 나아가 덕에 관련하여서도 그런 식으로
우리가, 그게 무엇인지도 어떠한 특정한 것인지도 알지 못하기에,
그것을 가정하면서 그것이 가르쳐지는 것인지 가르쳐지지 않는

것인지 검토하도록 하세,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말일세. 만일 덕이 

영혼에 관련되어 있는 것들 중 어떠한 특정한 것이라면, 그것은 

가르쳐지는 것이겠나 아니면 가르쳐지지 않는 것이겠나? 그래서 

우선 이를 테면 앎 말고 그 외의 것이라면, 그럼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인가 혹은 그렇지 않은가, 또는 방금 우리가 말하던 바, 상기될

수 있는 것으로서―우리가 어느 쪽 이름을 사용하든 아무런 차이도

없다고 치세나―그럼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적어도

이 점은 모두에게 분명한가? 인간은 앎 말고는 그 외의 아무것도

가르침받지 않는다는 점 말일세.

>87b3-4 ὑποθέμενοι: Cf. 86a7 ἐπεγερθεῖσαι; 70b3 ἀφικόμενος; 76b1 ἀναμνησθείς.

Smyth. 1926. Resultative Aorist.― In contrast to the imperfect (and present) 

the aorist denotes the result, end, or effect of an action.
Aorist 관련. Cf., CG. 33.31-33.33. Non-Past Uses of the Aorist.

>87c1 ὁποτέρῳ ... χρώμεθα: Cf. 78e8 ὃ ... ἂν ... γίγνηται Smyth. 2508. When the antecedent is definite, the simple relatives (ὅς, οἷος, ὅσος, etc.)
are used; when indefinite, the compound relatives (ὅστις, ὁποῖος, ὁπόσος, etc.)
are used, but the simple relatives are often employed instead. When the antecedent
is indefinite, ὅς usually has the subjunctive with ἄν or optative; while ὅστις is
preferred to ὅς if the verb is indicative (2569).
CG. 40.9. 'Indefinite' subjunctive + ἄν:
to refer to actions which occur habitually (repeatedly, typically, generically)
in or up to the present; the main clause normally has a present indicative referring 
to an habitual action (33.15):
In historic sequence, the indefinite construction (referring to actions which
took place repeatedly in the past) is expressed by 'iterative' optative without ἄν
(40.13); the main clause usually has an imperfect referring to a habitual action
in the past (33.24):

>87c2 διδάσκεται : Rijksbaron. 42. M-P forms with passive meaning

42.2. (iv) Three-place active verbs meaning 'ask', 'demand', 'teach', 'deprive,

rob', 'conceal', 'put on/off' have - besides an Agent - a Patient and a 

Complement that are both characterized by the accusative (the 'verbs with 

double object' of traditional grammar). When these verbs are passivized, 

the Patient-constituent appears as the subject (: nominative), while the 

Complement is, again, characterized by the accusative (cp. English: 'I am 

taught a lesson'), e.g.: ἐρωτῶμαι τὴν γνώμην (lit. 'I am asked my 

opinion') 'my opinion is asked', διδάσκομαι μουσικήν 'I am taught 

music', ἀποστεροῦμαι τὴν ἀρχήν 'I am robbed of my power', κρύπτομαι 

τὴν ἀλήθειαν 'the truth is concealed from me', etc.

 
ΜΕΝ. Ἔμοιγε δοκεῖ.
제겐 그리 여겨집니다.

ΣΩ. Εἰ δέ γ᾿ ἐστὶν ἐπιστήμη τις ἡ ἀρετή, δῆλον ὅτι                            5
διδακτὸν ἂν εἴη.
그런가 하면 만일 덕이 모종의 앎이라면, 그것이 가르쳐지는 것이리란
점은 분명하지.

ΜΕΝ. Πῶς γὰρ οὔ;
그야 어찌 아니겠습니까?

ΣΩ. Τούτου μὲν ἄρα ταχὺ ἀπηλλάγμεθα, ὅτι τοιοῦδε
μὲν ὄντος διδακτόν, τοιοῦδε δ᾿ οὔ.
그럼 이 문제로부터는 우리가 금새 벗어났군, [덕이]

이러저러한 것이면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이고, 또 

이러저러한 것이면 그렇지 않다는 문제 말이지.
> τοιοῦδε μὲν ὄντος ..., τοιοῦδε δ᾿ οὔ. : Smyth. 2073.

Exceptionally, the subject of the genitive absolute is the same as 

that of the main clause. The effect of this irregular construction is to emphasize 

the idea contained in the genitive absolute. Thus, βοηθησάντων ὑμῶν προθύμως 

πόλιν προσλήψεσθε ναυτικὸν ἔχουσαν μέγα if you assist us heartily, you will gain 

to your cause a State having a large navy T. 3. 13. The genitive absolute usually 

precedes the main verb.

 a. The genitive absolute may be used where the grammatical construction

demands the dative. Thus, διαβεβηκότος Περικλέους . . . ἠγγέλθη αὐτῷ ὅτι Μέγαρα

ἀφέστηκε when Pericles had already crossed over, news was brought to him that 

Megara had revolted T. 1. 114 (in Latin: Pericli iam transgresso nuntiatum est).

 b. The subject of the genitive absolute may be identical with the object of 

the leading verb: ἦλθον ἐπὶ τὴν Ἐπίδαυρον ὡς ἐρήμου οὔσης . . . αἱρήσοντες they 

came against Epidaurus expecting to capture it undefended T. 5. 56.


ΜΕΝ. Πάνυ γε.                                                                           10
물론입니다.

ΣΩ. Τὸ δὴ μετὰ τοῦτο, ὡς ἔοικε, δεῖ σκέψασθαι πότερόν
ἐστιν ἐπιστήμη ἡ ἀρετὴ ἢ ἀλλοῖον ἐπιστήμης.
그럼 그 다음으로는, 그럴 듯해 보이기로는, 덕이 앎인지
아니면 앎 이외의 것인지 검토해야 하네.

ΜΕΝ. Ἔμοιγε δοκεῖ τοῦτο μετὰ τοῦτο σκεπτέον εἶναι.                      d
적어도 제게는 이게 그 다음으로 검토해야만 하는 일이라
여겨집니다.

ΣΩ. Τί δὲ δή; ἄλλο τι ἢ ἀγαθὸν αὐτό φαμεν εἶναι τὴν
ἀρετήν, καὶ αὕτη ἡ ὑπόθεσις μένει ἡμῖν, ἀγαθὸν αὐτὸ εἶναι;
―ΜΕΝ. Πάνυ μὲν οὖν.―ΣΩ. Οὐκοῦν εἰ μέν τί ἐστιν
ἀγαθὸν καὶ ἄλλο χωριζόμενον ἐπιστήμης, τάχ᾿ ἂν εἴη ἡ                     5
ἀρετὴ οὐκ ἐπιστήμη τις· εἰ δὲ μηδέν ἐστιν ἀγαθὸν ὃ οὐκ
ἐπιστήμη περιέχει, ἐπιστήμην ἄν τιν᾿ αὐτὸ ὑποπτεύοντες εἶναι
ὀρθῶς ὑποπτεύοιμεν.―ΜΕΝ. Ἔστι ταῦτα.―ΣΩ. Καὶ μὴν
ἀρετῇ γ᾿ ἐσμὲν ἀγαθοί;―ΜΕΝ. Ναί.―ΣΩ. Εἰ δὲ ἀγαθοί,                    e
ὠφέλιμοι· πάντα γὰρ τἀγαθὰ ὠφέλιμα. οὐχί;―ΜΕΝ. Ναί.
―ΣΩ. Καὶ ἡ ἀρετὴ δὴ ὠφέλιμόν ἐστιν;―ΜΕΝ. Ἀνάγκη
ἐκ τῶν ὡμολογημένων.
헌데 그럼 어떤가? 덕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라고 우리가
주장하고, 그것이 좋은 것이라는 이러한 가정은 우리에게
견지되고 있지?―물론입니다.―그렇다면 만일 어떤 것이 

좋은 것이면서 앎과 독립적으로 그 외의 것으로 있다면,

어쩌면 덕은 특정한 앎이 아닐 수도 있겠지. 그런데 만일

앎을 포함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좋은 것이지 않다면, 

그것이 특정한 앎이리라 추정하며 우리는 제대로 추정하는

것일 테지.―사실이 그렇습니다.―그런가 하면 우리는 

덕으로 좋은 자들이지?―네.―그런데 만일 우리가 좋은 

자들이라면, 유익한 자들일걸세. 왜냐하면 모든 좋은 것들은 

유익한 것들이니 말이지. 그렇지 않나?―네.―그럼 덕 또한 

유익한 것이지?―동의된 바들로부터 필연적으로 그렇습니다.
> 87d3 αὕτη ἡ ὑπόθεσις ..., ... εἶναι;: 

Smyth. 1987. As an Appositive. ― The infinitive may stand

in apposition to a preceding substantive, pronoun, or adverb.

C.G. 51.9. The dynamic infinitive is also used to complement 

certain adjectives and nouns with meanings similar to those 

listed above, i.e. expressing ability, possibility, need, desire, etc.


ΣΩ. Σκεψώμεθα δὴ καθ᾿ ἕκαστον ἀναλαμβάνοντες ποῖά                    5
ἐστιν ἃ ἡμᾶς ὠφελεῖ. ὑγίεια, φαμέν, καὶ ἰσχὺς καὶ κάλλος
καὶ πλοῦτος δή· ταῦτα λέγομεν καὶ τὰ τοιαῦτα ὠφέλιμα.
οὐχί;―ΜΕΝ. Ναί.―ΣΩ. Ταὐτὰ δὲ ταῦτά φαμεν ἐνίοτε                   88a
καὶ βλάπτειν· ἢ σὺ ἄλλως φῂς ἢ οὕτως;―ΜΕΝ. Οὐκ, ἀλλ᾿
οὕτως.―ΣΩ. Σκόπει δή, ὅταν τί ἑκάστου τούτων ἡγῆται,
ὠφελεῖ ἡμᾶς, καὶ ὅταν τί, βλάπτει; ἆρ᾿ οὐχ ὅταν μὲν ὀρθὴ
χρῆσις, ὠφελεῖ, ὅταν δὲ μή, βλάπτει;―ΜΕΝ. Πάνυ γε.                       5
그럼 우리에게 이익을 주는 것들이 어떠한 것들인지 각각에
따라 꼽아 가며 검토해 보도록 하세. 우리는 강한 것도 아름다운
것도 부유한 것 또한 실로 그런 것들이라 주장하지. 이것들과
또한 이와 같은 것들을 우리는 유익한 것들이라 말한다네.
그렇지 않나?―네.―그런데 바로 이것들이 때로는 해를
입힌다고도 우리가 주장한다네. 아니면 자네는 그런 방식 이외의
방식으로 주장하는가?―아니요, 그렇게 주장합니다.―그럼
검토해 주게. 그것들 각각에 대해 무엇이 주도할 때, 그것들이
우리에게 이익을 주고, 또 무엇이 그리할 때, 해를 입히는가?
혹시 옳은 사용이 그리할 땐, 이익을 주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해를 입히지 않나?―물론입니다.

ΣΩ. Ἔτι τοίνυν καὶ τὰ κατὰ τὴν ψυχὴν σκεψώμεθα.
σωφροσύνην τι καλεῖς καὶ δικαιοσύνην καὶ ἀνδρείαν καὶ
εὐμαθίαν καὶ μνήμην καὶ μεγαλοπρέπειαν καὶ πάντα τὰ
τοιαῦτα;―ΜΕΝ. Ἔγωγε.―ΣΩ. Σκόπει δή, τούτων ἅττα                   b
σοι δοκεῖ μὴ ἐπιστήμη εἶναι ἀλλ᾿ ἄλλο ἐπιστήμης, εἰ οὐχὶ
τοτὲ μὲν βλάπτει, τοτὲ δὲ ὠφελεῖ; οἷον ἀνδρεία, εἰ μὴ ἔστι                 //211026
φρόνησις ἡ ἀνδρεία ἀλλ᾿ οἷον θάρρος τι· οὐχ ὅταν μὲν
ἄνευ νοῦ θαρρῇ ἄνθρωπος, βλάπτεται, ὅταν δὲ σὺν νῷ,                   5
ὠφελεῖται;―ΜΕΝ. Ναί.―
그러면 더 나아가 영혼에 따른 것들도 우리가 검토해 보세.
자네는 뭔가 지혜라거나 정의라고 용기라든지 학습력이나
기억력 그리고 대범함 혹은 이와 같은 온갖 것들을 이르지?

―저로서는요.―그럼 검토해 주게, 그것들 중 어떤 것들은 

자네에게 앎이 아니라 앎 이외의 것이라고 여겨지는가? 만일 

그것들이 때로는 해를 입히고, 또 때로는 이익을 준다면 말일세. 

<or "~여겨지는 어떤 것들은, 때로는 해를 입히고, 또 때로는

이익을 주는지를 말일세.">

예를 들어 용기는, 만일 용기가 현명함이 아니라 이를 테면 

모종의 대담함 같은 것이라면 말일세. 때로는 인간이 지성 없이 

대범하게 굴어, 해를 입히고, 때로는 지성을 동반하여, 이익을 

주지 않나?―네.―
                                 ΣΩ. Οὐκοῦν καὶ σωφροσύνη
ὡσαύτως καὶ εὐμαθία· μετὰ μὲν νοῦ καὶ μανθανόμενα καὶ
καταρτυόμενα ὠφέλιμα, ἄνευ δὲ νοῦ βλαβερά;―ΜΕΝ. Πάνυ
σφόδρα.―ΣΩ. Οὐκοῦν συλλήβδην πάντα τὰ τῆς ψυχῆς                 c
ἐπιχειρήματα καὶ καρτερήματα ἡγουμένης μὲν φρονήσεως εἰς
εὐδαιμονίαν τελευτᾷ, ἀφροσύνης δ᾿ εἰς τοὐναντίον;―ΜΕΝ.
Ἔοικεν.―ΣΩ. Εἰ ἄρα ἀρετὴ τῶν ἐν τῇ ψυχῇ τί ἐστιν καὶ
ἀναγκαῖον αὐτῷ ὠφελίμῳ εἶναι, φρόνησιν αὐτὸ δεῖ εἶναι,                 5
ἐπειδήπερ πάντα τὰ κατὰ τὴν ψυχὴν αὐτὰ μὲν καθ᾿ αὑτὰ
οὔτε ὠφέλιμα οὔτε βλαβερά ἐστιν, προσγενομένης δὲ φρο-
νήσεως ἢ ἀφροσύνης βλαβερά τε καὶ ὠφέλιμα γίγνεται.               d
κατὰ δὴ τοῦτον τὸν λόγον ὠφέλιμόν γε οὖσαν τὴν ἀρετὴν
φρόνησιν δεῖ τιν᾿ εἶναι.―ΜΕΝ. Ἔμοιγε δοκεῖ.
                                                          그렇다면 지혜도
학습력도 같은 식이지 않나 하네. 지성을 동반하여 배운 것들과
익힌 것들은 유익한 것들이나, 지성 없이 그리 된 것들은 해로운
것들이지?―물론 지극히 그렇습니다.―그러므로 요컨데 영혼이
시도하는 일들과 견딜 것들 모두는 지혜가 주도할 때에는 행복으로
마무리되고, 무분별함이 주도할 때에는 정반대로 끝나지 않나?
―그럴 듯합니다.―그럼 만일 덕이 영혼 안의 것들 중 무엇이고
그것으로서는 유익한 것임이 필연적이라면, 그것은 분별이어야
하니, 영혼에 따른 모든 것들이 정말 그 자체로는 유익한 것들도
아니고 해로운 것들도 아니기에 그러하며, 지혜나 무분별함이
추가되어서 해로운 것들로도 유익한 것들로도 된다네. 그래서
이러한 논리에 따라 덕은 유익한 것인 한에서는 모종의 분별이어야
한다네.―적어도 제겐 그리 여겨집니다.

ΣΩ. Καὶ μὲν δὴ καὶ τἆλλα ἃ νυνδὴ ἐλέγομεν, πλοῦτόν
τε καὶ τὰ τοιαῦτα, τοτὲ μὲν ἀγαθὰ τοτὲ δὲ βλαβερὰ εἶναι,                5
ἆρα οὐχ ὥσπερ τῇ ἄλλῃ ψυχῇ ἡ φρόνησις ἡγουμένη ὠφέλιμα
τὰ τῆς ψυχῆς ἐποίει, ἡ δὲ ἀφροσύνη βλαβερά, οὕτως αὖ
καὶ τούτοις ἡ ψυχὴ ὀρθῶς μὲν χρωμένη καὶ ἡγουμένη ὠφέ-         e
λιμα αὐτὰ ποιεῖ, μὴ ὀρθῶς δὲ βλαβερά;―ΜΕΝ. Πάνυ γε.
―ΣΩ. Ὀρθῶς δέ γε ἡ ἔμφρων ἡγεῖται, ἡμαρτημένως δ᾿ ἡ
ἄφρων;―ΜΕΝ. Ἔστι ταῦτα.―ΣΩ. Οὐκοῦν οὕτω δὴ κατὰ
πάντων εἰπεῖν ἔστιν, τῷ ἀνθρώπῳ τὰ μὲν ἄλλα πάντα εἰς τὴν          5
ψυχὴν ἀνηρτῆσθαι, τὰ δὲ τῆς ψυχῆς εἰς φρόνησιν, εἰ
μέλλει ἀγαθὰ εἶναι· καὶ τούτῳ τῷ λόγῳ φρόνησις ἂν εἴη            89a
τὸ ὠφέλιμον· φαμὲν δὲ τὴν ἀρετὴν ὠφέλιμον εἶναι;―
ΜΕΝ. Πάνυ γε.―ΣΩ. Φρόνησιν ἄρα φαμὲν ἀρετὴν εἶναι,
ἤτοι σύμπασαν ἢ μέρος τι;―ΜΕΝ. Δοκεῖ μοι καλῶς λέγε-
σθαι, ὦ Σώκρατες, τὰ λεγόμενα.―ΣΩ. Οὐκοῦν εἰ ταῦτα                  5
οὕτως ἔχει, οὐκ ἂν εἶεν φύσει οἱ ἀγαθοί.―ΜΕΝ. Οὔ μοι
δοκεῖ.
더욱이 방금 우리가 논하던 여타의 것들도, 부도 또 그와 같은
것들도, 때로는 좋은 것들이고 때로는 해로운 것들이어야 하니,
혹시 지혜가 그 외의 영혼에게 주도자가 될 경우 영혼에 속한
것들을 유익한 것들로 만들었지만, 무분별함이 그리 할 때에는
해로운 것들로 만들었던 것처럼, 그런 식으로 이번엔 저것들도
영혼이 옳게 사용하고 주도자가 되면 그것들을 유익한 것들로
만들지만, 옳지 못하게 하면 해로운 것들로 만들지 않나?―
물론입니다.―그런가 하면 분별을 갖춘 영혼이 옳게 주도하나,
무분별한 영혼은 잘못 주도하지?―사실이 그러합니다.―그러니
모든 것들에 대해 그런 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지 않나? 인간에게
여타의 모든 일들은 영혼에 의존하지만, 영혼에 속한 것들은
분별에 의존한다고, 만일 그것들이 장차 좋은 것들이려면
그러하다고 말일세. 그리고 이러한 논리에서 유익한 것은
분별일 테지. 그런데 우리는 덕이 유익한 것이라고 주장하지?―
물론입니다.―그럼 우리가 덕을 분별이라고 주장하는가?
총체적으로든 모종의 부분으로든 말일세.―제게는 그 말해진
것들이 아름답게 말해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소크라테스.―
그러니 만일 이것들이 그런 처지라면, 좋은 자들이 본성에 의해
그런 자들이지는 않을 것이지 않나 싶군.―아닌 것으로 제게
여겨집니다.

ΣΩ. Καὶ γὰρ ἄν που καὶ τόδ᾿ ἦν· εἰ φύσει οἱ ἀγαθοὶ                     b
ἐγίγνοντο, ἦσάν που ἂν ἡμῖν οἳ ἐγίγνωσκον τῶν νέων τοὺς
ἀγαθοὺς τὰς φύσεις, οὓς ἡμεῖς ἂν παραλαβόντες ἐκείνων
ἀποφηνάντων ἐφυλάττομεν ἂν ἐν ἀκροπόλει, κατασημηνά-
μενοι πολὺ μᾶλλον ἢ τὸ χρυσίον, ἵνα μηδεὶς αὐτοὺς διέ-               5
φθειρεν, ἀλλ᾿ ἐπειδὴ ἀφίκοιντο εἰς τὴν ἡλικίαν, χρήσιμοι
γίγνοιντο ταῖς πόλεσι.
또한 아마 이런 일이기까지 하였을 테니 말일세. 만일 좋은
자들이 본성으로 그리 되었더라면, 아마 우리에게 젊은이들
중 그들의 본성에 있어서 좋은 자들을 알아본 자들이 있었겠고,
그들은 우리가 그렇게 드러내 보여주는 저들로부터 넘겨받아
도시의 정점에 두고 수호했을 자들이니, 아무도 그들을
파멸시키지 못하도록, 그들이 전성기에 이를 때, 나라들을
위해 쓸모있는 자들이 되도록 그리 했을 자들이지.

ΜΕΝ. Εἰκός γέ τοι, ὦ Σώκρατες.
어쨌든 그럴 것 같긴 합니다, 소크라테스.

ΣΩ. Ἆρ᾿ οὖν ἐπειδὴ οὐ φύσει οἱ ἀγαθοὶ ἀγαθοὶ γίγνον-
ται, ἆρα μαθήσει;                                                                 c
그러면 혹시 그 좋은 자들이 본성에 의해 좋은 자들로 되지
않기에, 그럼 배움으로 그리 될까?

ΜΕΝ. Δοκεῖ μοι ἤδη ἀναγκαῖον εἶναι· καὶ δῆλον, ὦ
Σώκρατες, κατὰ τὴν ὑπόθεσιν, εἴπερ ἐπιστήμη ἐστὶν ἀρετή,
ὅτι διδακτόν ἐστιν.
이제 제게는 필연적인 것이라 여겨집니다. 가정에 따라,
소크라테스, 만일 덕이 정말로 앎이라면, 가르쳐지는 바의
것이라는 게 분명하기도 하고 말입니다.

ΣΩ. Ἴσως νὴ Δία· ἀλλὰ μὴ τοῦτο οὐ καλῶς ὡμολογή-                    5
σαμεν;
아마도 제우스께 맹세코 그럴 걸세. 허나 그걸 우리가
훌륭하지 못하게 동의한 건 아닐까?

ΜΕΝ. Καὶ μὴν ἐδόκει γε ἄρτι καλῶς λέγεσθαι.
그렇지만 적어도 방금은 훌륭하게 말해진 것으로 여겨지긴
했습니다.

ΣΩ. Ἀλλὰ μὴ οὐκ ἐν τῷ ἄρτι μόνον δέῃ αὐτὸ δοκεῖν
καλῶς λέγεσθαι, ἀλλὰ καὶ ἐν τῷ νῦν καὶ ἐν τῷ ἔπειτα, εἰ
μέλλει τι αὐτοῦ ὑγιὲς εἶναι.                                                      10
허나 그것이 단지 방금 전에만 훌륭하게 말해진 것으로
여겨지면 되는 게 아니라, 지금도 이후에도 그래야 하지 않나
싶네, 만일 그것에 장차 어떤 건전한 것이 속하려면 말일세.

ΜΕΝ. Τί οὖν δή; πρὸς τί βλέπων δυσχεραίνεις αὐτὸ                  d
καὶ ἀπιστεῖς μὴ οὐκ ἐπιστήμη ᾖ ἡ ἀρετή;
그러면 정말로 무엇이 문제입니까? 어떤 점에 주목하시며
그것에 곤란해 하시고 덕이 앎이 아니지는 않을까 확신을
갖지 못하시는 겁니까? 

ΣΩ. Ἐγώ σοι ἐρῶ, ὦ Μένων. τὸ μὲν γὰρ διδακτὸν
αὐτὸ εἶναι, εἴπερ ἐπιστήμη ἐστίν, οὐκ ἀνατίθεμαι μὴ οὐ
καλῶς λέγεσθαι· ὅτι δὲ οὐκ ἔστιν ἐπιστήμη, σκέψαι ἐάν σοι           5
δοκῶ εἰκότως ἀπιστεῖν. τόδε γάρ μοι εἰπέ· εἰ ἔστιν διδα-
κτὸν ὁτιοῦν πρᾶγμα, μὴ μόνον ἀρετή, οὐκ ἀναγκαῖον αὐτοῦ
καὶ διδασκάλους καὶ μαθητὰς εἶναι;
내 자네에게 이야기함세, 메논. 그러니까, 만일 그것이 정말로 

앎이라면, 그것이 가르쳐지는 것이라는 점은, 훌륭하게 말해지지
못한 것이라며 무르지는 않을 걸세. 그런데 앎이 아니라는
점은, 내가 그럴 듯하게 불신하는 것이라고 자네에게 여겨질지 

검토해 주게. 즉 내게 이걸 이야기해주게나. 만일, 비단 덕만이 

아니라, 어떤 사안이든지 그것이 가르쳐지는 것이라면, 그 일의 

교사들도 제자들도 있음이 필연적이지 않나?
> 89d4 ἀνατίθεμαι μὴ οὐ καλῶς λέγεσθαι:

Smyth. 2739. Verbs and expressions of negative meaning, such as deny,

refuse, hinder, forbid, avoid, often take the infinitive with a redundant

μή to confirm the negative idea of the leading verb.

2740. The redundeant μή is used after ... ἀνατίθεμαι...

> 89d5. 1) 덕이 앎이라는 주장은 철회하지 않지만,

그러나 덕이 앎이 아니라고 의심을 할 만한 이유도 있다.

2) 덕이 앎이라는 주장을 철회하지 않으며,

그리고 덕이 앎이 아니라는 것을 의심할 만하다.

ὅτι 절 내의 οὐκ를 삭제할 경우?

Smyth. 2743. After deny, speak against, doubt, etc., followed by ὡς or ὅτι,

a redundant οὐ is often inserted.

이를 고려하면 oὐκ를 번역에서 살리지 않은 것이고, 삭제했다고 할 필요는 없음.

ὅτι 절을 prolepsis로 보아 주제를 강조하는 것으로 보고,

덕이 앎이 아니라고, 그렇게 의심하는 것, 하는 식으로 번역하는 것도 가능.

이 역시 앞서의 경우와 번역의 의미 차이가 있다고 하긴 어렵다.

Smyth. 2182. Anticipation (or Prolepsis)
The subject of the dependent clause is often anticipated and made 

the object of the verb of the principal clause. This transference, which 

gives a more prominent place to the subject of the subordinate clause, 

is called anticipation or prolepsis (πρόληψις taking before).
d. The object of the subordinate clause may be anticipated and made 

the object of the principal clause.

C.G. Prolepsis 60.37. Topics of subordinate clauses which follow 

the matrix clause are sometimes syntactically integrated 

into that matrix clause. This is called prolepsis. 

The construction allows the speaker to treat the 'dislocated' 

constituent as the (given) topic of the subordinate clause, which 

otherwise contains strongly focal material.


ΜΕΝ. Ἔμοιγε δοκεῖ.
제겐 그리 여겨집니다.

-蟲-

0. 플라톤 『티마이오스』에서 모상 제작의 계기.

   우주제작자(데미우르고스)는 완전하고 영원한 살아있는 것(형상)을 본으로 삼아 이것의 모상으로서 만물(우주)을 제작한다. (제작자의 세계 창조의 동기라는 것이 애초에 신화적 추정의 대상에 불과할 것이라는 논점은 잠시 차치하고) 이 제작자는 가장 훌륭하고 아름다운 자로서 인색하지 않다는 성격적 특징을 갖는다. 이런 성격에 따라 시혜적 활동의 일환으로서 세계를 창조하였다는 해석도 가능할 수 있겠으나, 바로 이 성격은 모상의 제작 그 자체의 동기라기 보다는 이 모상을 원본에 (그리고 제작자 자신에) 가능한 한 최대한 유사하게 만드는 그 지향점을 추구하게 되는 계기라고 보는 편이 더욱 적절해 보인다. 그래서 이것만으로는 제작자가 우주를 제작하게 된 이유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마련할 수 없을 듯하다. 그런데 『티마이오스』 서두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묘사한 이상적인 국가/정체, 그리고 대화 과정에서 이에 대한 역사적 사례로 언급되는 태고의 아테네를 두고, 이러한 아름답고 훌륭한 정체가 실제로 현실에서 기능하고 작동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아름다운 동물의 그림을 보거나 혹은 그러한 동물이 가만히 잠들어 있는 것을 보면서 그것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고 싶어하게 되는 마음에 비유한다. 우주제작자는 형상을 본으로 삼아 바라보며, 형상은 작중에서 시공간을 초월해 있는 것, 같은 상태에 머물러 있으며 변화생멸을 겪지 않는 영역의 것으로 묘사되는 듯하다. 다른 한편 작품의 중반 이후에서는 형상과 달리 이 형상을 원본으로 삼는 모상의 경우 그것이 무엇이든지 다른 어떤 것 '안에' 들어가 있어야지만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이 고려되고, 이와 관련하여 모상이 시공간적 속성을 지니고 활동하도록 해주는 조건과 같은 것으로서 수용자라는 가상의 요소를 상정하게 된다. 원본으로서의 완전한 생명은 정의상 살아있는 것이며 이에 따라 영혼을 지니는 것이기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형상인 한에서 시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으며 운동하지도 않는 것이다. 이러한 형상의 활동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운동의 가능조건으로서 시공간적 제약을 가해야만 한다. 무시간적 영원성은 이 과정에서 통시간적 영원성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모든 시간 전체에 대해 우주가 완전히 대응하여 그 시간을 빠짐없이 점유할 경우, 시간 자체가 유한하든 무한하든 상관없이 우주는 시간적으로 영원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시간은 우주와 함께 발생하는 것으로서 시작을 가지므로 양방향으로 무한하게 전개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우주와 그 우주의 운동이 소멸(정지 말고)할 경우 시간 그 자체도 함께 소멸할 것이므로, 우주는 시간적으로는 어떻게든 영속하지만 무시간적으로 영원하지는 않다. 이러한 모상으로서의 우주는 시간에 종속된다는 제한 내에서 어쨌든 가능한 한 최대한으로 영원과 유사한 것으로서 비로소 운동하는 일이 가능해지고, 이 운동에 질서와 영속성을 최대로 완성시키는 이유와 이러한 운동 자체를 성립시키는 이유는 구분될 수 있다. 

 

0. 플라톤 『소피스트』에서 분할과 우연적(일시적?) 술어.

   우선 분할과 관련하여, 『소피스트』 초반부의 분할들 각각 그 자체는 『파이드로스』에서 언급되는 자연적인 마디들에 따른 분할, 본질이나 자연적 질서 등의 객관적 구조가 허용하고 또 이를 따르는 그러한 분할이다. 다만 분할의 결과로 나온 각 기술(청년사냥, 지식매매, 쟁론경연, 논박이나 시험을 통한 영혼 정화로서의 교육 등 아직 합의된 명칭이 부여되지 않은, 그러나 기술이라는 유의 부분으로서 객관적으로 성립하는)에 대해, 소피스트의 본성(자연적 마디)이 아닌 그의 행태나 겉보기 모습을 대응시켜 그 각 기술을 소피스트 기술로 간주하는 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소피스트 그 자신의 고유한 정의에 따른 본질적 활동이 있을 것이고, 그가 단지 가능한 한에서 임의로 수행하는 활동들은 저것과 구분될 것이다. 후자는 소피스트가 실제로 수행하는 행위이긴 하겠으나, 그가 그 자신의 고유한 기술을 발휘하여 'de dicto' 소피스트로서 하는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후반부에서 테아이테토스에 관한 두 명제, "테아이테토스는 앉아 있다"와 "테아이테토스, 지금 내가 대화하고 있는 그는, 날고 있다"가 가리키는 사태들은 어떠한가? 테아이테토스는 그의 본성에 따라 인간이며, 인간은 육상동물에 속하고 유영하는(물 속을 헤엄치거나 공기 중을 날거나) 동물과는 구분된다. 이런 구도에서 보자면 테아이테토스는 본성상 그리고 필연적으로 날 수 없으며, 따라서 그가 날고 있다는 진술은 필연적인 거짓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거짓의 범위를 지나치게 축소시킨다. 또한 '지금 내가 대화하고 있는 자'라는 첨언이, 설령 이를 통해 '테아이테토스'라는 이름을 가진 새나 이 이름이 붙은 신 또는 신령과 구분해주는 역할을 한다 하더라도, 딱히 유의미한 삽입구라고는 보이지 않게 되는 듯하다. 반면, 이 첨언을 통해 해당 진술과 이 진술이 지시하는 사태에 구체적인 시공간적 제약을 가하고 있다고 생각해 본다면, "소피스트는 청년사냥꾼이다."라는 참말과 "테아이테토스는 날고 있다"라는 거짓말을 본질서술이나 정의와는 구분되는 우연적이거나 일시적인 차원의 서술로 묶어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테아이테토스는 앉아 있다"와 "소피스트는 청년사냥꾼이다" 둘 모두 같은 차원에서, 즉 우연적으로 참인 명제들로 연결시킬 수 있다. 다시, 이 두 명제는 자체적인 방식으로 또는 정의나 본질을 서술하는 방식으로 제시될 경우에는 여전히 거짓이다. "앉아 있다"라는 것이 테아이테토스의 본질이나 정체성에 대해 필수적인 내용을 설명해주는 바가 없듯, "청년사냥꾼" 또한 소피스트가 소피스트이기 위한 고유한 본성에 대해서는 이야기해주는 바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대화편 안에서 명제의 참은 그 명제가 모사하는 사태에 의존하며, 모든 명제는 주어로써 대상을 그리고 술어로써 바로 그 한정된 대상의 행위나 상태나 성질 따위를 서술하며, 사태 자체를 단위대상으로 상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는 명제는 없으며, 시공간적으로든 지성적으로만 파악되는 영역에서든 어쨌든 어떤 무엇으로 존재하는 것만이 명제의 대상이 된다. 그리하여 참인 명제는 일종의 모상으로서 그것이 원본으로 삼는 대상을 가지며, 그 대상은 부분들을 구조적으로 통합하는 한 단위의 결합체로서 객관적으로 주어져 있다. 그런데 이 주어져 있는 것은 앞서 보았듯 본성적인 방식으로 대상에 결합되어 있는 것도 있고, 본성과 무관하게 결합되어 있는 것도 있으며, 후자의 경우에 다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연적인 것이 있는가 하면 본성적이지 않으면서 또한 필연적이지도 않은 것 또한 있다. 예를 들어 테아이테토스가 인간이라는 것은 본질적이고 필연적인데, 테아이테토스가 자기 자신과 같고 자신 이외의 것들과는 다르다는 것은 필연적이지만 본질은 아니며, 테아이테토스가 앉아 있다는 것은 본질도 아니고 필연적이지도 않다. 

   『소피스트』 중반부에서 유들의 결합과 분리를 논하는 과정에서, 각 유는 자기 자신과 같고 자신 이외의 것과 다른데, 이는 본질적이지는 않지만 필연적이다. 따라서 본질적인 차원에서 특정 유가 자기 자신과 같다고 말할 경우, 이는 그 논의 수준으로 인해 거짓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거짓은 "테아이테토스가 날고 있다"라는 명제의 거짓과 그 논의의 차원이 다른 것으로 보이며, 거짓이 되는 이유 역시 어느 정도는 다를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리키는 대상에 관련하여 그 대상에 결부되는 술어들 이외의 술어들이라는 점에서는 두 거짓 사이에 차이가 없다. 이 두 거짓 사이의 구분을 위해서는 주술관계에서 그리고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과 성질 사이에서 우연적, 일시적 결합과 분리가 따로 설명되어야 한다. 이는 『소피스트』에서 서술되는 참여관계를 통한 설명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으며, 변화생멸의 시공간적 계기가 도입되어야지만 비로소 그러한 구분이 가능해질 것이다. 『소피스트』에서는 지성적 차원에서 혹은 논리적 차원에서의 거짓과 경험적 수준에서의 거짓 모두를 포괄하여 거짓 일반에 대한 정의를 시도하고 있으며, 그 와중에 둘 사이의 차이를 암시함으로써 추가적으로 해결해야 될 과제를 제시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제는 『티마이오스』에서 그 해결이 시도되는 것으로 보인다. 『파르메니데스』는 대상, 객관, 존재 차원에서 결합과 분리의 문제를 여러 역설들을 통해 제시하고, 『테아이테토스』는 주관적 인식, 지각, 경험 차원에서 같은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드러내며, 『소피스트』는 객관적 구조에 대한 주관적(언어와 사유) 구조의 모방관계를 통해 해당 문제에 대한 이론적 차원에서의 설명을 제공하고, 『티마이오스』는 다시 경험적 차원에서 같은 문제의 더욱 구체적인 해결을 도모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명제의 진리치는 사태에 의존적이라는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명제론』 19a24-34에서 말하는 바가 참고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은, 그것이 있을 때, 그리고 있지 않은 것이 있지 않다는 것은, 그것이 있지 않을 때, 필연적이다. 그렇지만 있는 것 전부가 필연적으로 있지도 않고 있지 않은 것이 필연적으로 있지 않지도 않다. 왜냐하면 '있는 경우에, 있는 것 전부가 필연적으로 있다는 것'과 '필연적으로 단적으로(무조건적으로) 있다는 것'은 같지 않기 때문이다. 있지 않은 것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모순의 경우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그래서 모든 것이 전부 필연적으로 있거나 있지 않고 게다가 있을 것이거나 있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들을 분할하며 둘 중 한쪽을 필연적인 것으로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는 바는, 이를 테면 내일 해전이 있을 것이거나 있지 않을 것임이 필연적이지만, 내일 해전이 필연적으로 생성되는 것도 아니고 생성되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생성되거나 아니면 생성되지 않는다는 것은 필연적이다." 시간상의 우연적인 서술들의 경우 이미 벌어졌거나 현재 진행 중인 사실이 진리치의 기준이 되고, 각 사건에 부합하는 명제를 기준으로 다른 명제들은 거짓이 된다. 여기에서 특정 시점 특정 위치 여타 특정 조건들을 공유하는 사건-참인 명제가 고정되고, 이 조건들은 공유하면서 실제 대상-속성 결합과 다른 결합을 지시하는 주-술 결합은 전부 거짓이 되지만, 이 조건과 무관하고 해당 대상을 공유하지 않는 명제들은 지금 이 참-거짓 영역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다.

 

  -蟲-

0. Aaron Hillel Swartz (November 8, 1986 – January 11, 2013). 

 

0. 나는 앎과 관련하여 플라톤이 『국가』 1권에서 주장하는 바가 앎의 사적이고 배타적인 독점에 대한 비판에 활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여타의 관습적 가치들과 달리 경쟁의 대상이 아니다. 그리고 아마도 바로 이 점에서, 앎은 서로 다른 기능과 역할 그리고 능력을 가진 상이한 개인들이 한 마음 한 뜻 한 몸과 같은 사회를 이루는 데에 기여할 여지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앎을 상품으로 전락시키는 당대 소피스트들의 행태는 플라톤이 보기에 심각하게 반사회적인 것이며 부정의한 짓이었을지도 모른다.

 

0. 학술적 지식은 시장경제의 수요와 공급 논리에 맡겨 놓을 경우 아마 자생적으로 보전될 수는 없을 것이다. 소위 상품가치라는 것은 앎 그 자체에서 나오지를 않고 무언가에 적용하고 활용한 다음에야 비로소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식의 공적 성격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기초하여 맹목적 지원을 통해 학술활동을 보호하든지, 아니면 거짓 실용성이나 거짓 상품성을 가공해내 지식 그 자체를 판매하는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후자의 경우 다시, 그것에 권위를 부여하고 진입장벽은 높이되 접근성은 낮추면서 팔아먹는 방식이 가능할 것이다. 대중과 사회에 특정 분야의 지극히 전문적인 지식을 그 정당성이나 타당성 자체만을 놓고 평가할 시간적 여유는 없다고 봐도 좋을 것이고, 그 평가절차를 간소화하는 수단 중에 하나가 저 권위라는 것일 텐데, 이를 획득 가능한 재화처럼 취급하고 또 독점하면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20대 청년이 반대하다 좌절하고 스러져버린 허구적인 구조, 2500년 전부터 비판받아온 기이하고 허무맹랑한 가짜 상품이 앞으로 언제까지 사기행각을 지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0. 도서관의 입장을 지지한다. 그런데 도서관의 저 거대 출판사들을 향한 비판 논리는 다시 사회가 대학에 대해 던질 수 있는 질문이기도 하지 않을까. 저술과 강의를 '팔아야' 먹고 사는 처지인 오늘날의 거의 모두라고 해도 좋을 학자들 역시 같은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지 않을까. 그러나 사회는 학문의 '무임승차'를 허용하지 않을 듯하고, 국공립연구소와 기업 산하 연구소가 구분되지 않을 것이고, 극소수의 대중적 명성을 획득한 광대들과 또 다른 한편에서 저 권위의 철옹성 가장 높은 곳의 권좌를 차지한 자들, 그리고 이 모든 광대극의 기획자들 말고는 학계에서 살아남을 연구자가 없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닌가? 아직도 설득의 여지는 남아 있나?

 

0. 아마도 상당수의 학술자료는 불법적인 경로로 유출되고 있을 것이고, 이것이 그러한 자료를 취급 관리하는 단체나 기관에 경제적 손실을 끼칠 것이고, 그 손실을 극복하고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저쪽에서는 자료의 가격을 높일 것이고 유출을 차단하기 위해 갈수록 접근을 어렵게 만들 것이며 열심히 고소고발에 매진할 것인데, 그러면 다시 학술자료가 본래의 목적을 상실하고 사람들은 다시 그 자료를 훔치려 들 것이고, 어쨌든 이 균형이 어디에선가는 끊어질 거라 본다. 공공교육의 양적 확대가 어느모로보나 세계 전체에 유익하다는 걸 지금에 와서 다시 떠들어야 한다면 그것도 참 지칠 일이고, 무슨 고대 비교의 신관도 아니고 중세 사제도 아니고 조선 양반도 아니고, 인터넷 시대에 저 치들이 지식을 냅다 흩뿌리지 않고 두 손에 아등바등 움켜쥐고서 대체 뭘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고, 아무튼 나는 애런 슈워츠 편이다. 아마 소크라테스가 이 친구를 만났다면 사자 앞의 사슴처럼 콩닥대는 가슴으로 사랑을 고백하지 않았으려나.

 

-蟲-

ΣΩ. Οὐκοῦν νῦν βέλτιον ἔχει περὶ τὸ πρᾶγμα ὃ οὐκ
ᾔδει;
그렇다면 그가 알지 못하던 문제에 관련하여 이제 더
나아진 것이지 않나?

ΜΕΝ. Καὶ τοῦτό μοι δοκεῖ.                                                             5
그렇게도 제게 여겨집니다.

ΣΩ. Ἀπορεῖν οὖν αὐτὸν ποιήσαντες καὶ ναρκᾶν ὥσπερ ἡ
νάρκη, μῶν τι ἐβλάψαμεν;
그러니 우리가 그로 하여금 길을 잃도록 그리고 마치 전기가오리가
하듯 그가 마비되도록 만들면서, 물론 뭐라도 해를 입힌 것은
아니지?

ΜΕΝ. Οὐκ ἔμοιγε δοκεῖ.
적어도 제겐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ΣΩ. Προὔργου γοῦν τι πεποιήκαμεν, ὡς ἔοικε, πρὸς τὸ
ἐξευρεῖν ὅπῃ ἔχει· νῦν μὲν γὰρ καὶ ζητήσειεν ἂν ἡδέως οὐκ                  10
εἰδώς, τότε δὲ ῥᾳδίως ἂν καὶ πρὸς πολλοὺς καὶ πολλάκις
ᾤετ᾿ ἂν εὖ λέγειν περὶ τοῦ διπλασίου χωρίου, ὡς δεῖ διπλασίαν          c
τὴν γραμμὴν ἔχειν μήκει.
어쨌든 우리가 뭐라도 쓸모있는 일을 해준 것이군, 그럴 듯해
보이기로는 말이네만, 사정이 어떠한지 알아내는 일에 대해
말일세. 왜냐하면 지금은 그가 알지 못하면서도 기쁘게 탐구하기까지
할 것이네만, 그 때는 쉽사리 여러 사람들을 상대로도 여러 차례라도
두 배짜리 면에 관련하여, 길이로 두 배짜리 선을 지녀야 한다고 하며,
잘 말한다고 생각했었을 터이기 때문이지.

ΜΕΝ. Ἔοικεν.
그런 듯합니다.

ΣΩ. Οἴει οὖν ἂν αὐτὸν πρότερον ἐπιχειρῆσαι ζητεῖν ἢ
μανθάνειν τοῦτο ὃ ᾤετο εἰδέναι οὐκ εἰδώς, πρὶν εἰς ἀπορίαν               5
κατέπεσεν ἡγησάμενος μὴ εἰδέναι, καὶ ἐπόθησεν τὸ εἰδέναι;
그러므로 자네는 그가 알지 못하면서도 안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것을 탐구하거나 혹은 배우려고 시도했을 거라 생각하나? 
그가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여 길을 잃은 처지에 빠지고, 알기를
갈망하기 전에 그보다 더 먼저 말이네.

ΜΕΝ. Οὔ μοι δοκεῖ, ὦ Σώκρατες.
제게는 그렇지 않았으리라 여겨집니다, 소크라테스.

ΣΩ. Ὤνητο ἄρα ναρκήσας;
혹시 그가 마비를 시켜서 도움을 받았나?
> Ὤνητο는 aor. mid. ind., ναρκήσας는 aor. act. part..  
ὀνίνημι mid.은 도움을 받다, 득을 보다, 그런 쪽이므로
전자의 주어는 시종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후자도 주격 분사로 주어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 경우 내용상으로는 시종이 '자신을' 마비시켜서
득을 보았다고 가거나, 아니면 후자를 수동으로
고쳐 읽어야 할 것이다.  

ΜΕΝ. Δοκεῖ μοι.
제겐 그리 여겨집니다.

ΣΩ. Σκέψαι δὴ ἐκ ταύτης τῆς ἀπορίας ὅτι καὶ ἀνευρήσει                    10
ζητῶν μετ᾿ ἐμοῦ, οὐδὲν ἀλλ᾿ ἢ ἐρωτῶντος ἐμοῦ καὶ οὐ διδά-
σκοντος· φύλαττε δὲ ἄν που εὕρῃς με διδάσκοντα καὶ                     d
διεξιόντα αὐτῷ, ἀλλὰ μὴ τὰς τούτου δόξας ἀνερωτῶντα.
그럼 이러한 길 잃음으로부터 그가 나와 동반하여 탐구하며
찾아내기까지 하였다는 점을 검토해 주게나. 나는 가르치지 않고
물을 뿐 달리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말일세. 그런데 자네가
어디서든 내가 그에게 가르치고 상술하는 걸, 그러나 그의 믿음들을
묻지 않는 걸 발견할는지 감시해 주게.

Λέγε γάρ μοι σύ· οὐ τὸ μὲν τετράπουν τοῦτο ἡμῖν ἐστι
χωρίον; μανθάνεις;―ΠΑΙ. Ἔγωγε.―ΣΩ. Ἕτερον δὲ αὐτῷ
προσθεῖμεν ἂν τουτὶ ἴσον;―ΠΑΙ. Ναί.―ΣΩ. Καὶ τρίτον                       5
τόδε ἴσον ἑκατέρῳ τούτων;―ΠΑΙ. Ναι.―ΣΩ. Οὐκοῦν
προσαναπληρωσαίμεθ᾿ ἂν τὸ ἐν τῇ γωνίᾳ τόδε;―ΠΑΙ.
Πάνυ γε.―ΣΩ. Ἄλλο τι οὖν γένοιτ᾿ ἂν τέτταρα ἴσα χωρία
τάδε;―ΠΑΙ. Ναί.―ΣΩ. Τί οὖν; τὸ ὅλον τόδε ποσαπλάσιον                  e
τοῦδε γίγνεται;―ΠΑΙ. Τετραπλάσιον.―ΣΩ. Ἔδει δέ γε
διπλάσιον ἡμῖν γενέσθαι· ἢ οὐ μέμνησαι;―ΠΑΙ. Πάνυ γε.
―ΣΩ. Οὐκοῦν ἐστιν αὕτη γραμμὴ ἐκ γωνίας εἰς γωνίαν
[τινὰ] τέμνουσα δίχα ἕκαστον τούτων τῶν χωρίων;―ΠΑΙ.             85a
 Ναί.―ΣΩ. Οὐκοῦν τέτταρες αὗται γίγνονται γραμμαὶ ἴσαι,
περιέχουσαι τουτὶ τὸ χωρίον;―ΠΑΙ. Γίγνονται γάρ.―ΣΩ.
Σκόπει δή· πηλίκον τί ἐστιν τοῦτο τὸ χωρίον;―ΠΑΙ. Οὐ
μανθάνω.―ΣΩ. Οὐχὶ τεττάρων ὄντων τούτων ἥμισυ ἑκάστου             5
ἑκάστη ἡ γραμμὴ ἀποτέτμηκεν ἐντός; ἢ οὔ;―ΠΑΙ. Ναί.―
그럼 자네는 내게 말해주게. 4피트인 건 우리에게 있는 이런
면이지? 이해하는가?―저로서는요.―그런데 그것에 그것과
같은 크기인 또 다른 것을 덧붙여 놓아 보도록 하겠나?―네.
―그리고 그것들 둘 각각과 같은 크기인 세 번째 여기 이것도
놓아 보겠나?―네.―그 각 안의 여기 이것을 우리가 다시 추가로
채워넣을 수 있지 않겠나?―물론입니다.―그러면 여기 이 같은
크기의 면들 네 개가 되는 것 외에 무엇이겠나?―네.―그럼
어떤가? 여기 이 전체는 여기 이것의 몇 배짜리인 것이 되는가?
―네 배짜리입니다.―그런가 하면 우리한테는 두 배 짜리가 되는
것이 필요했지. 혹시 기억하지 못하는가?―물론 기억합니다.
―그럼 이것이 이 면들 각각을 각에서 각으로 둘로 자르는 선이지
않나?―네.―이러한 같은 크기인 선들이 이런 면을 감싸서 네 개가
되지 않나?―그리 됩니다.―그럼 검토해 주게. 이런 면은 얼마만한
것인가?―알지 못하겠습니다.―그 면들이 네 개인데 각 선분이
저 각각의 절반을 내부에서 잘라냈지 않나? 혹은 그렇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ΣΩ. Πόσα οὖν τηλικαῦτα ἐν τούτῳ ἔνεστιν;―ΠΑΙ. Τέτταρα.
―ΣΩ. Πόσα δὲ ἐν τῷδε;―ΠΑΙ. Δύο.―ΣΩ. Τὰ δὲ τέτταρα
τοῖν δυοῖν τί ἐστιν;―ΠΑΙ. Διπλάσια.―ΣΩ. Τόδε οὖν
ποσάπουν γίγνεται;―ΠΑΙ. Ὀκτώπουν.―ΣΩ. Ἀπὸ ποίας                    b
γραμμῆς;―ΠΑΙ. Ἀπὸ ταύτης.―ΣΩ. Ἀπὸ τῆς ἐκ γωνίας
εἰς γωνίαν τεινούσης τοῦ τετράποδος;―ΠΑΙ. Ναί.―ΣΩ.
Καλοῦσιν δέ γε ταύτην διάμετρον οἱ σοφισταί· ὥστ᾿ εἰ ταύτῃ
διάμετρος ὄνομα, ἀπὸ τῆς διαμέτρου ἄν, ὡς σὺ φῄς, ὦ παῖ                5
Μένωνος, γίγνοιτ᾿ ἂν τὸ διπλάσιον χωρίον.―ΠΑΙ. Πάνυ
μὲν οὖν, ὦ Σώκρατες.
그러므로 그만한 것들이 그 안에 얼만큼 들었는가?―넷입니다.
―반면에 여기 이것 안에는 얼만큼인가?―둘입니다.―4는
2의 무엇인가?―두 배입니다.―그러니 여기 이것이 몇 피트가
되는가?―8입니다.―어떤 선분으로부터 그리 되는가?―이런
선분으로부터입니다.―4피트 짜리의 각에서 각으로 뻗는
선으로부터인가?―네.―그런가 하면 소피스트들은 이 선을
직경이라 부른다네. 그래서 만일 이 선에 직경이란 이름을
붙인다면, 이 직경으로부터, 자네 주장대로, 메논의 시종친구,
두 배짜리 면이 될 걸세.―물론입니다, 소크라테스.

ΣΩ. Τί σοι δοκεῖ, ὦ Μένων; ἔστιν ἥντινα δόξαν οὐχ
αὑτοῦ οὗτος ἀπεκρίνατο;
자네에게는 어찌 여겨지는가, 메논? 이 친구가 답한
자신의 것이 아닌 그 어떤 믿음이라도 있는가?

ΜΕΝ. Οὔκ, ἀλλ᾿ ἑαυτοῦ.                                                              c
아닙니다, 그 자신의 믿음을 답하였습니다.

ΣΩ. Καὶ μὴν οὐκ ᾔδει γε, ὡς ἔφαμεν ὀλίγον πρότερον.
또한 그가 몰랐던 것이기는 하고 말이지, 우리가 조금 전에
주장하던 것처럼 말일세.

ΜΕΝ. Ἀληθῆ λέγεις.
맞는 말씀이십니다.

ΣΩ. Ἐνῆσαν δέ γε αὐτῷ αὗται αἱ δόξαι· ἢ οὔ;
그런데 이러한 믿음들이 그 친구 안에 있던 것이긴 하지.
그렇지 않나?

ΜΕΝ. Ναί.                                                                                5
네.

ΣΩ. Τῷ οὐκ εἰδότι ἄρα περὶ ὧν ἂν μὴ εἰδῇ ἔνεισιν
ἀληθεῖς δόξαι περὶ τούτων ὧν οὐκ οἶδε;
그럼 알지 못하는 일들에 관하여 알지 못하는 자에게
그가 알지 못하는 바로 그 일들에 관련하여 참된 믿음들이
들어 있지?

> 85b6 ἂν ... εἴδῇ(subjunctive): Cf. > 78e8 ὃ ... ἂν ... γίγνηται.

Smyth. 2508. When the antecedent is definite, the simple relatives 

(ὅς, οἷος, ὅσος, etc.) are used; when indefinite, the compound relatives 

(ὅστις, ὁποῖος, ὁπόσος, etc.) are used, but the simple relatives are often 

employed instead. When the antecedent is indefinite, ὅς usually has 

the subjunctive with ἄν or optative; while ὅστις is preferred to ὅς if 

the verb is indicative (2569).
CG. 40.9. 'Indefinite' subjunctive + ἄν: to refer to actions which occur 

habitually (repeatedly, typically, generically) in or up to the present; 

the main clause normally has a present indicative referring 
to an habitual action (33.15):
In historic sequence, the indefinite construction (referring to actions 

which took place repeatedly in the past) is expressed by 'iterative' optative 

without ἄν (40.13); the main clause usually has an imperfect referring to 

a habitual action in the past (33.24):
Note 1: The prospective construction (sometimes called 'anticipatory') is 

the default construction for temporal/conditional/relative clauses referring 

to the future; in temporal clauses it is the only possible construction (47.8). 

Note that English in such cases uses present-tense forms (the so-called 

'concealed' future.).
Note 2: Different labels such as 'prospective' and 'indefinite' for 

subjunctive + ἄν are traditional, but the distinction between the two types 

should not be pressed too hard: both constructions refer to an unspecified time. 

Whether ἄν + subjunctive is to be called prospective or indefinite depends on 

the verb used in the matrix clause: if the matrix clause has a verb with 

future reference (fut. ind., imp., etc.), a subordinate clause with ἄν + subj. is 

'prospective'; if the matrix clause has a pres. ind. expressing a repeated action 

or general truth, ἄν + subj. in the subordinate clauseis 'indefinite'. 

Even so, the distinction is sometimes irrelevant.
> 85b7 ὧν: Smyth. 2522. Attraction. ― A relative pronoun is often attracted from

its proper case into the case of its antecedent, especially from the accusative into

the genitive or dative. A demonstrative pronoun to whose case the relative

is attracted is usually omitted if unemphatic.

C.G. 50.13. An exception to the rules of agreement is the so-called attraction of

the relative. The relative nearly always takes on the same case as its antecedent

if (and only if):
- the relative clause is restrictive;
- a form of ὅς, οἷος or ὅσος (but not their indefinite forms) is object in 

its relative clause, internal object, or subject of an infinitive, i.e. when 

an accusative is expected;
- the antecedent is in the genitive or dative:


ΜΕΝ. Φαίνεται.
그리 드러나 보입니다.

ΣΩ. Καὶ νῦν μέν γε αὐτῷ ὥσπερ ὄναρ ἄρτι ἀνακεκίνηνται
αἱ δόξαι αὗται· εἰ δὲ αὐτόν τις ἀνερήσεται πολλάκις τὰ αὐτὰ             10
ταῦτα καὶ πολλαχῇ, οἶσθ᾿ ὅτι τελευτῶν οὐδενὸς ἧττον ἀκριβῶς
ἐπιστήσεται περὶ τούτων.                                                          d
그런가 하면 지금은 그 친구에게 그 믿음들이 마치 방금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그러한 것들로 있다네. 그런데 만일 누군가 그에게
바로 그것들을 여러 차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묻는다면, 그것들에
관련하여 결국에는 그가 그 누구에게도 못지 않게 알게 되리라는
점을 자네는 알지.

>85c9 ὄναρ:  Smyth. 1606. Many accusatives marking limitations of the verbal action 

serve the same function as adverbs.
1607. Most of these adverbial accusatives are accusatives of the internal object: 

thus, in τέλος δὲ εἶπε but at last he said, τέλος is to be regarded as standing 

in apposition to an unexpressed object of the verb―words, which were the end. 

Many adverbial accusatives are thus accusatives in apposition (991) and some 

are accusatives of respect (1600). It is impossilbe to apportion all cases among 

the varieties of the accusaitves; many may be placed under different heads. 

The use of adjectives as adverbs (μέγα πλούσιος very rich) is often derived 

from the cognate accusative with verbs (μέγα πλουτεῖν).
C.G. 30.18 Many adverbs derive their form from the neuter accusative of 

corresponding adjectives: this is often called the adverbial accusative:
Note 1: These forms are usually best seen as actual adverbsin their ownright, 

notas(e.g.) modifiers in a noun phrase with the headleft implicit. Alongside 

adverbial accusatives, some such adjectives (but not e.g. πολύ) also have 

adverbs formed regularly with the suffix -ως (6.3-4), e.g. μεγάλως.
Note 2: This is the regular process by which adverbs of comparatives and 

superlatives are formed: 6.13-14.
> 85c10 εἰ ... ἀνερήσεται: C.G. Neutral Conditions with a Future Indicative 

in the Protasis.
49.5. In the case of a neutral condition with a future indicative, the apodosis 

often carries a connotation of unpleasantness, undesirability, etc. Conditionals 

with the future indicative are therefore often found in threats, appeals, warnings, etc.:

Note 1: In many grammars, conditions with εἰ + future indicative in the protasis

are called 'future most vivid' conditions or 'emotional future' conditions, because

they are often found in threats, etc. Such terms are not always applicable, however:
the value of the indicative is really no different than in other neutral conditions,

although this value lends itself well for contexts of scepticism, threat, etc.

(the speaker indicates simply that the action in the apodosis (e.g. punishment,

destruction) will follow if the condition in the protasis is fulfilled, leaving it to

the addressee to assess the likelihood of that fulfilment). For other 'loaded' uses

of the future indicative, 33.43.

Cf. Smyth. 2328. Emotional Future Conditions.―When the protasis expresses 

strong feeling, the future indicative with εἰ is commonly used instead of ἐάν 

with subjunctive, and may often be rendered by hall. The protasis commonly 

suggests something undesired, or feared, or intended independently of 

the speaker's will; the apodosis commonly conveys a threat, a warning, 

or an earnest appeal to the feelings. The apodosis is generally expressed 

by the future indicative, but other forms of 2326 are possible.

a. When εἰ with the future indicative is directly contrasted with ἐάν with

the subjunctive, the former usually presents the unfavourable, the latter

the favourable, alternative. ἢν μὲν γὰρ ἐθέλωμεν ἀποθνῄσκειν ὑπὲρ τῶν δικαίων,

εὐδοκιμήσομεν . . . , εἰ δὲ φοβησόμεθα τοὺς κινδύνους, εἰς τραχὰς καταστήσομεν

ἡεμᾶς αὐτούς if we are (shall be) willing to die for the sake of justice,

we shall gain renown; but if we are going to fear dangers, we shall bring

ourselves into great confusion I. 6. 107. Cp. X.C.4.1.15, Ar. Nub. 586-591,

L.27.7, I. 12.237, 15.130, 17.9, D. 8.17, 18.176, 27.20-22. Both constructions are

rarely used in successive clauses without any essential difference (X.Ap.6).

ἐάν with the subjunctive, when used in threats or warnings, is a milder form of

statement than εἰ with the future (Hdt. 1.71). An unfavouralbe alternative

may thus be expressed by ἐάν with the subjuctive (A 135-137, Hdt. 3.36, Aes. 3.254).

b. εἰ with the future indicative may have a modal force like that of δεῖ or μέλλω(am to, must)

with the infinitive: βαρεῖα (κήρ), εἰ τέκνον δαίξω hard is fate, if I must slay my child

A. Ag.208. The future of present intention (2301) is different.

A. Rijksbaron, Syntax and Semantics. 24.2. εἰ+indicative. 
Note 2. The use of the indicative often suggests a certain scepticism on the part of 

the speaker concerning the fulfilment of the condition. This nuance may be explicitly 

expressed by means of so-called attitudinal modifiers (i.e. modifiers indicating

a speaker's attitude concerning the content of his words.) such as ἀληθέως in

'if ... in truth ...', 'if ... really ...'.
Note 3. In the case of εἰ + future indicative the speaker's scepticism (cp. Note 2 above) 

may imply that he considers fulfilment of the condition undesirable, particularly 

in cases where the apodosis refers to something undesirable or unpleasant. 

It is clear from the unpleasant consequences that the addressee had better 

take care lest the condition be fulfilled.

By Jung.: Smyth. 2328. b.에서 불충분하게 언급된 'modal force'를 고려하여 본 항목에서

조건절의 future indicative는 일종의 사고실험으로서의 양상의미를 전달하는 것이고,

불안이나 의심, 위협 등의 감정적 호소로서 emotional 용법과는 구분되어야 할 것.

> 85c11 τελευτῶν: Goodwin. Syntax. 834. Certain temporal participles, agreeing with 

the subject of a sentence, have almost the force of adverbs. Such are ἀρχόμενος, at first; 

τελευτῶν, at last, finally; διαλιπὼν (or ἐπισχὼν) χρόνον, after a while, or διαλείπων χρόνον, 

at intervals; χρονίζων, for a long time. E.g.
 Ἅπερ καὶ ἀρχόμενος εἶπον, as I said also at first. THUC. iv. 64. 

Τελευτῶν οὖν ἐπὶ τοὺς χειροτέχνας ᾖα, finally then I went to the artisans. PLAT. AP. 22C. 

Ὀλίγον χρόνον διαλιπὼν ἐκινήθη, after a little while he moved. Id. Phaed. 118. 

Οὐ πολὺν χρόνον ἐπισχὼν ἦκε, after (waiting) no long time he came. Ib. 59 E. 

Διαλείπουσαν χρόνον, at intervals (of Clotho's regular movements). Id. Rep. 617 C. 

Ὅπως χρονίζον εὖ μενεῖ βουλευτέον. AESCH. Ag. 847: cf. χρονισθείς, Ib. 727.


ΜΕΝ. Ἔοικεν.
그럴 듯합니다.

ΣΩ. Οὐκοῦν οὐδενὸς διδάξαντος ἀλλ᾿ ἐρωτήσαντος ἐπι-
στήσεται, ἀναλαβὼν αὐτὸς ἐξ αὑτοῦ τὴν ἐπιστήμην;
그렇다면 아무도 가르치지는 않고 묻었는데도 그가 알게 될 테고,
스스로 자기 자신으로부터 그 앎을 다시 떠올려 잡음으로써

그리 할 게 아닌가?

ΜΕΝ. Ναί.                                                                                5
네.

ΣΩ. Τὸ δὲ ἀναλαμβάνειν αὐτὸν ἐν αὑτῷ ἐπιστήμην οὐκ
ἀναμιμνῄσκεσθαί ἐστιν;
그런데 스스로 자신 안에서 앎을 다시 떠올려 잡는다는 것은
상기한다는 것이지?
> '다시 떠올려 잡는다는 것(ἀναλαμβάνω),' 즉 반복적으로 재현될 수 없는 것,

다시 말해 상기되지 않는 것은 플라톤에게 있어서 앎(ἐπιστήμη)이 아니다.

 

ΜΕΝ. Πάνυ γε.
물론입니다.

ΣΩ. Ἆρ᾿ οὖν οὐ τὴν ἐπιστήμην, ἣν νῦν οὗτος ἔχει, ἤτοι
ἔλαβέν ποτε ἢ ἀεὶ εἶχεν;                                                              10
그렇다면 혹시 지금 이 친구가 지니고 있는 것, 그 앎이란
언젠가 그가 취했던 것이거나 언제나 지니고 있던 것 아닌가?

ΜΕΝ. Ναί.
네.

ΣΩ. Οὐκοῦν εἰ μὲν ἀεὶ εἶχεν, ἀεὶ καὶ ἦν ἐπιστήμων· εἰ
δὲ ἔλαβέν ποτε, οὐκ ἂν ἔν γε τῷ νῦν βίῳ εἰληφὼς εἴη. ἢ
δεδίδαχέν τις τοῦτον γεωμετρεῖν; οὗτος γὰρ ποιήσει περὶ              e
πάσης γεωμετρίας ταὐτὰ ταῦτα, καὶ τῶν ἄλλων μαθημάτων
ἁπάντων. ἔστιν οὖν ὅστις τοῦτον πάντα δεδίδαχεν; δίκαιος
γάρ που εἶ εἰδέναι, ἄλλως τε ἐπειδὴ ἐν τῇ σῇ οἰκίᾳ γέγονεν
καὶ τέθραπται.                                                                         5
그렇다면 한편으로 만일 언제나 지니고 있었다면, 언제나 그가
아는 채이기도 했었지 않나 싶네. 그런데 만일 언젠가 취했던
것이라면, 적어도 지금의 삶에서는 취한 자이지 않았겠지.
아니면 누군가 이 친구에게 기하를 다루는 일을 가르쳤는가?
왜냐하면 이 사람이 기하학 전반에 관련하여 바로 이러한
일들을 할 것이고, 그 밖의 배움들 전반에 관련하여서도 그럴
것이니 하는 말일세. 그러므로 누가 되었든 이 자에게 모든 것을

가르친 자로서 있는가? 자네는 아마 마땅히 알 만한 자이니 하는 

말일세, 특히나 자네 집안에서 그가 태어나 양육받았기에 그러하지.

> 85e3 δίκαιος + inf. Cf. 81d7 ἡδύς ἀκοῦσαι: Cf. 71e3, 76a10. CG 51.9.

The dynamic infinitive is also used to complement certain adjectives and

nouns with meanings similar to those listed above, i.e. expressing ability,

possibility, need, desire, etc. Cf. Dynamic Infinitives Specifying Adjectives and Nouns.
C.G. 51.18. Especially in poetry, the dynamic infinitive is sometimes used to

limit or specify the meaning of an adjective or noun (other than those with

the types of meaning listed in 51.9); the infinitive in this use is often called

 epexegetic(al):
(45) λευκόπωλος ἡμέρα | πᾶσαν κατέσχε εὐφεγγὴς ἰδεῖν. (Aesch. Pers. 386-7)
White-horsed day, bright to see, covered the entire earth.
(46) ΚΛ. ἐν Αἰγύπτῳ δὲ δὴ πῶς τὸ τοιοῦτον φῂς νενομοθετῆσθαι; :: 

ΑΘ. θαῦμα καὶ ἀκοῦσαι. 

(Clinias:) How then do you say that this matter is legislated in Egypt? :: 

(Athenian:) It is a wonder even to hear it.
In such cases the infinitive does not express purpose or result; in sense this use

is similar to the accusative of respect, for which → 30.14.
Note 1: Such infinitives tend to be active in form, even though they typically 

depend on a nounor adjective referring to the 'object' of the infinitive 

(note the translation 'hear it' in (46)); also →51.9 n.1 above. 

Cf. 76a10 ἀποκρίνεσθαι: 
Smyth. 1969., 2001-4.. C. Infinitive after Adjectives, Adverbs, and Substantives. 
The infinitive serves to define the meaning ability, fitness, capacity, etc. 

(and their opposites), and generally those analogous in meaning to verbs 

which take the infinitive (2000). Here the datival meaning (purpose, destination) 

is often apparent. Cp. 1969. The infinitive was originally a verbal noun in the dative 

(in part possibly also in the locative) case. The use to express purpose (2008) is 

a survival of the primitive meaning, from which all the other widely diverging uses 

were developed in a manner no longer always clear to us. But the to or for meaning 

seen in μανθάνειν ἤκομεν we have come to learn (for learning) can also be discerned 

in δύναμαι ἰδεῖν I have power for seeing. then I can see. Cp. 2000, 2006 a. 
As early as Homer, when the datival meaning had been in part obscured, the infinitive 

was employed as nominative (as subject) and accusative (as object). After Homer, 

the infinitive came to be used with the neuter article, the subtantive idea thus gaining 

in definiteness. The article must be used when the infinitive stands as an object 

in the genitive or dative, and when it depends on prepositions.


ΜΕΝ. Ἀλλ᾿ οἶδα ἔγωγε ὅτι οὐδεὶς πώποτε ἐδίδαξεν.
그럼 저로서는 누구도 결코 가르치지 않았다고 압니다.
> 85e6 Ἀλλά:  Denniston. p16-17. ἀλλά (6) Assentient. This use is at first sight

diametrically opposed to the adversative. But in fact assent may include the idea

of opposition in two contrary ways. (a) Agreement is presented as self-evident and

inevitable. The speaker not only agrees, but repudiates the very idea that dissent is

possible. in modern languages 'mais oui', 'aber ja', 'but of course', are similarly used.

This force of ἀλλά is most clearly present where a question precedes: the particle

protests, in effect, against the asking of a superfluous question. (b) Agreement is

presented, not as self-evident, but as wrung from the speaker malgre lui. ἀλλά then

points the contrast between the assent given and the considerations which have

militated against the giving of it. In (a) 'Why', in (b) 'Well' is usually the best translation.

The assentient force of ἀλλά thus appears to be derived from two contrary elements.

While in certain passages (e.g. S.Tr.490, 600: Pl.Grg.481B) the first of these, in others

(e.g. S.Ant.98: Tr.472: El.1055: Ph.645, 1278) the second is clearly in evidence, and

the note of eagerness or of reluctance is unmistakable, other passages remain

in which decision is difficult or impossible. This is no mere matter of theory,

it concerns the manner in which certain lines are to be read, or spoken on the stage.

E.g. in S.El.944, 1472 does ἀλλά convey a ready or a reluctant acquiescence?

Perhaps to the Greeks there was never any ambiguity, and never any temptation to

confuse (a) and (b): though it is also possible that (a) and (b) merge in a specifically

assentient force, in which all that is present to the mind is the removal of an obstacle,

whether an actual or a supposed obstacle.


ΣΩ. Ἔχει δὲ ταύτας τὰς δόξας, ἢ οὐχί;
그런데 바로 그 믿음들을 그가 지니고 있지. 그렇지 않나?

ΜΕΝ. Ἀνάγκη, ὦ Σώκρατες, φαίνεται.
지니고 있음이 필연적이라고 드러나 보입니다, 소크라테스.

ΣΩ. Εἰ δὲ μὴ ἐν τῷ νῦν βίῳ λαβών, οὐκ ἤδη τοῦτο
δῆλον, ὅτι ἐν ἄλλῳ τινὶ χρόνῳ εἶχε καὶ ἐμεμαθήκει;                     86a
그런데 만일 지금의 삶 속에서 그가 취한 것이 아니라면,
이제 이 점이 분명하지 않은가? 그 외의 어떤 시간에서
그가 지니고 있었고 또한 배웠다는 것이 말일세.

ΜΕΝ. Φαίνεται.
그래 보입니다.

ΣΩ. Οὐκοῦν οὗτός γέ ἐστιν ὁ χρόνος ὅτ᾿ οὐκ ἦν ἄν-
θρωπος;
그렇다면 적어도 이 시간은 그가 인간이지 않던 그런
때이지 않나?
> 86a3 ὅτε: Cf. Smyth. 72. Elision does not occur in the conjunction ὅτι that

(ὅτ᾿ is ὅτε when.)

C.G. 1.36. In monosyllabic words,the final vowel can onlybeelidedifit is ε:

e.g. γ᾿ (γε), δ᾿ (δέ), μ᾿ (με), but not, for instance, the vowel of τό, τά, τί, πρό, etc. 
The -ῐ of περί and ὅτι is never elided; the final ι of third-declension dative singular

forms ending in ι (e.g. φύλακι) is elided only very rarely. Final -ῠ is never elided.


ΜΕΝ. Ναί.                                                                              5
네.

ΣΩ. Εἰ οὖν ὅν τ᾿ ἂν ᾖ χρόνον καὶ ὃν ἂν μὴ ᾖ ἄνθρωπος,
ἐνέσονται αὐτῷ ἀληθεῖς δόξαι, αἳ ἐρωτήσει ἐπεγερθεῖσαι
ἐπιστῆμαι γίγνονται, ἆρ᾿ οὖν τὸν ἀεὶ χρόνον μεμαθηκυῖα
ἔσται ἡ ψυχὴ αὐτοῦ; δῆλον γὰρ ὅτι τὸν πάντα χρόνον ἔστιν
ἢ οὐκ ἔστιν ἄνθρωπος.                                                             10
그렇다면 만일 그가 그 동안에 인간이던 그런 시간 동안에도
또한 그가 인간이지 않던 그런 시간 동안에도, 참인 믿음들이
그 사람 안에 있을 것이라면, 그 믿음들이 질문에 의해 깨어나
앎들로 되는 바, 그리하여 그 시간 동안 언제나 그의 영혼은
혹시 배운 채로이겠지? 그 모든 시간 동안 그는 인간이거나
인간이지 않다는 게 분명하니 말일세.

> 86a6 ὅν τ᾿ ἂν ᾖ ... ὃν ἂν μὴ ᾖ ...,: 

Cf. > 85b6 ἂν ... εἴδῇ(subjunctive); 78e8 ὃ ... ἂν ... γίγνηται.

Smyth. 2508. When the antecedent is definite, the simple relatives 

(ὅς, οἷος, ὅσος, etc.) are used; when indefinite, the compound relatives 

(ὅστις, ὁποῖος, ὁπόσος, etc.) are used, but the simple relatives are often 

employed instead. When the antecedent is indefinite, ὅς usually has 

the subjunctive with ἄν or optative; while ὅστις is preferred to ὅς 

if the verb is indicative (2569).
CG. 40.9. 'Indefinite' subjunctive + ἄν: to refer to actions which 

occur habitually (repeatedly, typically, generically) in or up to 

the present; the main clause normally has a present indicative 

referring to an habitual action (33.15):
In historic sequence, the indefinite construction (referring to 

actions which took place repeatedly in the past) is expressed 

by 'iterative' optative without ἄν (40.13); the main clause usually 

has an imperfect referring to a habitual action in the past (33.24):
Note 1: The prospective construction (sometimes called 'anticipatory') is 

the default construction for temporal/conditional/relative clauses 

referring to the future; in temporal clauses it is the only possible 

construction (47.8). 

Note that English in such cases uses present-tense forms 

(the so-called 'concealed' future.).
Note 2: Different labels such as 'prospective' and 'indefinite' 

for subjunctive + ἄν are traditional, but the distinction between 

the two types should not be pressed too hard: both constructions 

refer to an unspecified time. Whether ἄν + subjunctive is to be called 

prospective or indefinite depends on the verb used in the matrix clause: 

if the matrix clause has a verb with future reference (fut. ind., imp., etc.), 

a subordinate clause with ἄν + subj. is 'prospective'; if the matrix clause 

has a pres. ind. expressing a repeated action or general truth, 

ἄν + subj. in the subordinate clauseis 'indefinite'. 

Even so, the distinction is sometimes irrelevant.

> 86a7 ἐπεγερθεῖσαι: > Cf. 70b3 ἀφικόμενος, 76b1 ἀναμνησθείς:

Smyth. 1926. Resultative Aorist.―

In contrast to the imperfect (and present) the aorist denotes the result, end, 

or effect of an action.
Aorist 관련. Cf., CG. 33.31-33.33. Non-Past Uses of the Aorist. 
Rijksbaron. 8.3.2. The aorist indicative of performative verbs
Passive 관련. Cf. CG. Verbs with Only One Voice. Middle-Passive Meanings. 

35.19. (Change of) Mental State.
> 86a6-10 Εἰ ... ἐνέσονται ..., ἆρ᾿ οὖν ... ἔσται ...;:

Cf. 85c10 εἰ ... ἀνερήσεται. 조건과 귀결 미래 직설법의 용법을

modal로 언급하는 문법가들을 참고하여 Jung의 경우 이를

철학적 맥락에서 질문 형태로 사고실험을 유도하는 용법으로 보고자 한다.

그 경우 ἆρ᾿ οὖν이 추론의 귀결로 자연스럽게 이해될 수 있고,

οὖν에 대한 편집자들의 수정제안에 반대할 근거가 된다.


ΜΕΝ. Φαίνεται.
그리 보입니다.

ΣΩ. Οὐκοῦν εἰ ἀεὶ ἡ ἀλήθεια ἡμῖν τῶν ὄντων ἐστὶν ἐν                    b
τῇ ψυχῇ, ἀθάνατος ἂν ἡ ψυχὴ εἴη, ὥστε θαρροῦντα χρὴ ὃ
μὴ τυγχάνεις ἐπιστάμενος νῦν―τοῦτο δ᾿ ἐστὶν ὃ μὴ μεμνη-
μένος―ἐπιχειρεῖν ζητεῖν καὶ ἀναμιμνῄσκεσθαι;
그렇다면 만일 있는 것들의 진리가 우리에게 언제나 그 

영혼 안에 있는 것이라면, 영혼은 불멸하는 것일 터이며, 

그래서 비록 지금은 마침 알지 못하는 것이라도―그런데 이건 

마침 기억하지 못하는 바의 그것이네만―용기를 내어 탐구하려

그리고 상기하려 시도해야만 하는 게 아닌가?
> 진리가 영혼 안에 있다면, 영혼은 불멸일 것이다.

실질적으로는 영혼이 불멸이어야 그 경우에 비로소 진리가 영혼

안에 있다는 것이 가능하다. 여기에서 사고실험의 맥락이 들어와서,

이 실질적 귀결이 만일 성립된 것으로 '가정'된다면, 이 경우 실질적

조건 또한 성립되어 있는 것으로 추론될 것이다. 이것이 소위

'가설(가정)의 방법'의 한 사례일 수 있다. by Jung.


ΜΕΝ. Εὖ μοι δοκεῖς λέγειν, ὦ Σώκρατες, οὐκ οἶδ᾿ ὅπως.                  5
제겐 당신께서 잘 말씀하시는 걸로 여겨집니다, 소크라테스.
대체 어떻게 그리 하셨는지는 알지 못하고요.

ΣΩ. Καὶ γὰρ ἐγὼ ἐμοί, ὦ Μένων. καὶ τὰ μέν γε ἄλλα
οὐκ ἂν πάνυ ὑπὲρ τοῦ λόγου διισχυρισαίμην· ὅτι δ᾿ οἰόμενοι
δεῖν ζητεῖν ἃ μή τις οἶδεν βελτίους ἂν εἶμεν καὶ ἀνδρικώ-
τεροι καὶ ἧττον ἀργοὶ ἢ εἰ οἰοίμεθα ἃ μὴ ἐπιστάμεθα μηδὲ
δυνατὸν εἶναι εὑρεῖν μηδὲ δεῖν ζητεῖν, περὶ τούτου πάνυ ἂν          c
διαμαχοίμην, εἰ οἶός τε εἴην, καὶ λόγῳ καὶ ἔργῳ.                           //210928
그야 나 자신도 내게 그리 여겨지니 말일세, 메논. 적어도 여타의 
것들까지 그 논변을 위해 대단히 호언장담하진 않을 거라네. 그런데
누군가 알지 못하는 것들을 탐구해야 한다고 생각함으로써 우리는
만일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을 찾아내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으며

탐구하는 일이 필요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러할 것보다는

더 나은 자들일 테고 더욱 용감한 자들일 것이며 덜 게으른

자들이리라는 점, 이 점을 위하여서는 꽤나 애써 싸울 걸세, 내가

그리 할 수 있다면, 말로도 행동으로도 말이지.

>86d7 διισχυρισαίμην: C.G. 34.13. Optative in Main Clauses.
Potential Optative with ἄν (in Statements/Questions).
The optative with ἄν is used to indicate that the realization of an action is possible:
the potential construction. This construction is used to express a range of nuances:
- to describe actions that might hypothetically occur, or to make a weak assertion
(i.e. to state something more cautiously than with the indicative).
- the negative potential optative (with οὐ) expresses an emphatic negation: it is
not even possible that the action could occur:
- the second-person potential optative can express a cautious command or
request; the first-person potential optative can indicate that someone cautiously
takes permission to do something, or complies with an order or request:

Cf. Smyth. 1824-1834.

 

ΜΕΝ. Καὶ τοῦτο μέν γε δοκεῖς μοι εὖ λέγειν, ὦ Σώκρατες.
어쨌든 그 점도 당신께서 잘 말씀하시는 걸로 제게 여겨집니다,
소크라테스.

ΣΩ. Βούλει οὖν, ἐπειδὴ ὁμονοοῦμεν ὅτι ζητητέον περὶ
οὗ μή τις οἶδεν, ἐπιχειρήσωμεν κοινῇ ζητεῖν τί ποτ᾿ ἐστὶν              5
ἀρετή;
그리하여 괜찮다면, 누군가가 알지 못하는 것에 관련하여
탐구해야만 한다는 점을 우리가 마찬가지로 생각(합의)하고 있으니,
덕이 도대체 무엇인지 공동으로 탐구하는 일을 시도해 보도록
할까?
> 86c4-5 Βούλει ... ἐπιχειρήσωμεν...: 

Smyth. 1805. Deliberative Subjunctive. - The deliberative subjunctive 

(present or aorist) is used in questions when the speaker asks what 

he is to do or say (negative μή.)
a. Usually in the first person: εἴπωμεν ἢ σῑγῶμεν; shall we speak or 

keep silence? E. Ion 758, τί δράσω; ποῖ φύγω; what am I to do? 

whither shall I fly? E. Med. 1271, μὴ φῶμεν; shall we not say? P. R. 554 b.
b. The (rare) second person is used in repeating a question: A. τί σοι 

πιθώμεθα; B. ὅ τι πίθησθε;  A. In what shall we take your advice? 

B. In what shall you take my advice? Ar. Av. 164.
c. The third person is generally used to represent the first person; 

commonly with τὶς, as τί τις εἶναι τοῦτο φῇ; how shall anyone say 

this is so? (= τί φῶμεν;) D. 19. 88.
N. - The subjunctive question does not refer to a future fact, but 

to what is, under the present circumstances, advantageous or proper 

to do or say.

1806. βούλει, βούλεσθε (poet. θέλεις, θέλετε) do you wish often

precede the subjunctive: βούλει σοι εἴπω; do you wish me to say

to you? P. G. 521 d.

This is a fusion of two distinct questions: βούλει do you wish?

and εἴπω shall I say?

1807. The deliberative subjunctive may be replaced by a periphrasis 

with δεῖ or χρή and the infinitive, or by the verbal adjective 

in -τέον ἐστί. Thus, ἡμεῖς δὲ προσμένωμεν; ἢ τί χρὴ ποιεῖν; and shall we 

wait? or what must we do? S. Tr. 390, τί ποιητέον; (= τί ποιῶμεν;) 

what are we to do? Ar. P. 922.
a. For the deliberative future see 1916.

1808. Deliberation in the past may be expressed by ἔδει, χρῆν (ἐχρῆν), 

ἔμελλον with the infinitive, and by -τέον (verbal adj.) ἦν.

Deliberative Subjunctive (in Questions)
34.8 The deliberative (or 'dubitative') subjunctive: first-person subjunctives 

are used in questions, to express doubt about what action to take 

(in specifying questions, → 38.4), or whether or not to proceed with 

a certain action (in yes/no-questions and alternative questions, 38.4). 

The negative is μή:
(11) οἴμοι, τί δράσω; ποῖ φύγω μητρὸς χέρας; (Eur. Med. 1271) 

Woe, what should I do? Whereshould I flee from my mother's hands?
(12) πότερον βίαν φῶμεν ἢ μὴ φῶμεν εἶναι; (Xen. Mem. 1.2.45) 

Are we to call this violence, or aren't we?
Note 1: The deliberative subjunctive is also used in indirect questions, 42.8.
Note 2: In dialogue, deliberative subjunctives are sometimes introduced by 

βούλει/βούλεσθε or θέλεις do you want ...; in such cases the speaker asks 

the addressee whether he/she should do something:
(13) βούλεσθε δῆτα κοινῇ | σκώψωμεν Ἀρχέδημον; (Ar. Ran. 416-17) 

If you want, shall we make fun of Archedemus together?


ΜΕΝ. Πάνυ μὲν οὖν. οὐ μέντοι, ὦ Σώκρατες, ἀλλ᾿ 
ἔγωγε ἐκεῖνο ἂν ἥδιστα, ὅπερ ἠρόμην τὸ πρῶτον, καὶ σκεψαί-
μην καὶ ἀκούσαιμι, πότερον ὡς διδακτῷ ὄντι αὐτῷ δεῖ ἐπι-
χειρεῖν, ἢ ὡς φύσει ἢ ὡς τίνι ποτὲ τρόπῳ παραγιγνομένης           d
τοῖς ἀνθρώποις τῆς ἀρετῆς.
그야 물론입니다. 그렇지만 그 질문이 아니라, 소크라테스, 

저로서는 제가 처음에 여쭤보던 바로 저것을 검토하고 

들어 배우는 게 가장 즐거울 것입니다. 가르쳐지는 것인 것이라

보고 그 일을 시도해야 할지, 아니면 본성에 의해서[ 생겨난다]라고

보고 그래야 할지 아니면 어쨌든 무슨 방법에 의해[ 생겨난다]라고

보고 그래야 할지를 말이죠, 덕이 인간들에게 곁하여 생겨난다면

말입니다.

> 86c9 ὡς ... ὄντι : Smyth. 2086. 

With participles of cause or purpose, etc. (2064, 2065): ὡς. 

This particle sets forth the ground of belief on which the agent acts, 

and denotes the thought, assertion, real or presumed intention, 

in the mind of the subject of the principal verb or of some other person 

mentioned prominently in the sentence, whithout implicating the speaker or writer.


-蟲-

0. 高銀 白基琓 先生 別世.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0. 재작년에 Myles Fredric Burnyeat이 9월에 세상을 뜨고 David Bostock이 다음 달에 또 떠났다.

 

0. 무엇을 바꾸었고 무엇을 남겼느냐고 따져 물을 사람들이 사라지고 그럴 나이도 지나가 버리는 중이고. 앞을 봐도 뒤를 봐도 부끄럽기만 하고.

 

-蟲-

ΜΕΝ. Ὦ Σώκρατες, ἤκουον μὲν ἔγωγε πρὶν καὶ συγγε-
νέσθαι σοι ὅτι σὺ οὐδὲν ἄλλο ἢ αὐτός τε ἀπορεῖς καὶ τοὺς          80a
ἄλλους ποιεῖς ἀπορεῖν· καὶ νῦν, ὥς γέ μοι δοκεῖς, γοητεύεις
με καὶ φαρμάττεις καὶ ἀτεχνῶς κατεπᾴδεις, ὥστε μεστὸν
ἀπορίας γεγονέναι. καὶ δοεκῖς μοι παντελῶς, εἰ δεῖ τι καὶ
σκῶψαι, ὁμοιότατος εἶναι τό τε εἶδος καὶ τἆλλα ταύτῃ τῇ                5
πλατείᾳ νάρκῃ τῇ θαλαττίᾳ· 
소크라테스, 저로서는 당신과 어울리게 되기도 전에 당신께서
다름 아니라 당신 자신도 길을 잃은 채로 여타의 사람들까지도
길을 잃게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금도, 제게 여겨지는
대로는, 당신이 저를 현혹시키시고 약에 취하게 하시고 원칙도
없이 주문을 외워 사로잡으시니, 그래서 제가 길 없는 한복판에
놓였을 지경입니다.  그래서 만일 제가 뭐라고 조롱이라도 해도
된다면, 제게 당신은 형상으로나 그 밖의 것들로나 바닷속의 저
넓적한 전기가오리와 아주 닮아 있다고 정말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 79e7 μέν: Denniston, <The Greek Particles> p. 380.
μέν (5) Contrasted idea not expressed (the so-called μέν
solitarium). We may exclude (a) passage in dialogue where
a second person intervenes before μέν has been answered:
(b) passages in continuous where the speaker interrupts 
himself by a definite anacoluthon. ...
The explanation of μέν solitatirum, in general, is either that
the subsequently forgets his intention (e.g. Pl. R.466E, where
Περὶ μὲν γὰρ τῶν ἐν πολέμῳ is never answered at all), or,
far more frequently, that he uses μέν, like γε, in contrast
with something which he does not intend to express in words,
or even (sometimes) define precisely in thought. Obviously
there is no sharp line of demarcation, and many passage may
be explained in either way. Apart from certain stereotyped 
idioms μέν solitarium is considerably commoner in verse than
in prose.
 Smyth. 2895. : μέν was originally an asseverative, emphatic particle
(surely, certainly, indeed) and a weaker form of μήν. Cp. ἦ μέν, καὶ
μέν, οὐ μέν in asseverations and protestations. Asseverative μέν
survived as μέν solitarium and in combination with other particles.
Antithetical (concessive) μέν owes its origin to the fact that, as emphasis
may indicate a contrast, the clause in which μέν stood was felt as
preliminary to an adversative member of the sentence. Through
association with this adversative member μέν gradually lost its
primitive asseverative force.
  2896. μέν solitarium occurs when a clause with μέν is not followed by a
clause with δέ. This is especially common when the antithetical clause is
to be supplied in thought as when μέν emphasizes a statement made by
a person with reference to himself as opposed to others (often with
a tone of arrogance or of credulity). Here any possible opposition or
difference of opinion, however justifiable, is left unexpressed. 
> 80a1 σύ: CG. 60.18. In the examples given so far, the noun 
phrases are continuous, in that no words other than postpositives 
intervene between the modifier and the head. However,
many noun phrasesare discontinuous, in that mobile words 
intervene between the modifier and the head. This phenomenonis 
called hyperbaton. Two types can be distinguished:
 - Hyperbaton with the modifier preceding the head; this type
involves strong emphasis on the modifier:
 - Hyperbaton with the head preceding the modifier; this type
does not involve emphasis: some additional information about 
the headis given, whichis either predictable or not particularly relevant:
 Alternatively, the head may be topical (60.22), while the modifier adds 
new information.
CG. 60.19. The most important syntactic restriction on hyperbaton is that
at least one of the constituents interrupting a discontinuous noun phrase 
must be the constituent on which that noun phrase depends.
Smyth. 3028. Hyperbaton (ὑπέρβατον transposition) is the separation of
words naturally belonging together. Such displacement usually gives
prominence to the first of two words thus separated, but sometimes
to the second also. In prose hyperbaton is less common than emphasis
on an important idea by placing it at the beginning or end of a sentence.
                                      καὶ γὰρ αὕτη τὸν ἀεὶ πλησιά-
ζοντα καὶ ἁπτόμενον ναρκᾶν ποιεῖ, καὶ σὺ δοκεῖς μοι νῦν ἐμὲ
τοιοῦτόν τι πεποιηκέναι, [ναρκᾶν]· ἀληθῶς γὰρ ἔγωγε καὶ
τὴν ψυχὴν καὶ τὸ στόμα ναρκῶ, καὶ οὐκ ἔχω ὅτι ἀποκρίνωμαί        b
σοι. καίτοι μυριάκις γε περὶ ἀρετῆς παμπόλλους λόγους
εἴρηκα καὶ πρὸς πολλούς, καὶ πάνυ εὖ, ὥς γε ἐμαυτῷ ἐδόκουν·
νῦν δὲ οὐδ᾿ ὅτι ἐστὶν τὸ παράπαν ἔχω εἰπεῖν.
          그야 이 전기가오리도 매번 가까이 있고 또 닿는 자를
마비되도록 만들고, 당신도 제게는 지금 제게 이런 어떤 일을
만드신 것으로 여겨지니까요, 마비되는 일을 말입니다. 그야
참으로 저로서는 영혼도 입도 마비된 채이고, 당신에게 제가 무어라
답할지를 붙들고 있지도 못하니 드리는 말씀입니다. 비록 제가
덕에 관련하여 숱하게 많은 말들을 수 많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수 만 번은 이야기했고, 또 꽤나 잘 이야기했다고, 적어도 제
자신에게 여겨졌기로는 그렇긴 했습니다만. 그런데 이제는 그게
무엇인지도 도무지 이야기할 수가 없습니다.
> 80b1 ναρκῶ: 사전에서는 ναρκάω를 자동사로, ναρκόω는 타동사로 구분.
Cf. LSJ, Brill 해당 항목. Cambridge Lexicon은 ναρκάω 자동사만 등재.
> 80b1 ἔχω: 소유 혹은 획득과 소지의 차이. Cf. <Theaetetus> 198d1-8,
κτάομαι와 ἔχω의 구분.
> 80b2 καίτοι ... γε: Denniston. p.588. καίτοι (1) Adversative 
(iii) Not infrequently (particularly in Plato, whose characteristic 
fullness of style this idiom suits) the objection introduced 
by καίτοι is countered, palliated, or modified by a following 
adversative clause.
                                                        καί μοι δοκεῖς
εὖ βουλεύεσθαι οὐκ ἐκπλέων ἐνθένδε οὐδ᾿ ἀποδημῶν· εἰ                 5
γὰρ ξένος ἐν ἄλλῃ πόλει τοιαῦτα ποιοῖς, τάχ᾿ ἂν ὡς γόης
ἀπαχθείης.
                                                 또한 제게는 당신께서 
이곳으로부터 이것을 떠나서 외유하지도 않으시니 잘 생각하신
것이라 여겨집니다. 당신께서 외지손님으로서 이 외의 도시에서
이런 짓들을 하신다면, 어쩌면 사기꾼이라며 붙잡히셨을지도 
모르겠으니까요.
> 80b5-7 εἰ ... ποιοῖς, ... ἂν ... ἀπαχθείης: less vivid.

ΣΩ. Πανοῦργος εἶ, ὦ Μένων, καὶ ὀλίγου ἐξηπάτησάς με.
자넨 못할 짓이 없는 자로구만, 메논, 게다가 나를 거의 
속여넘기다시피 하였고 말일세.
> 80b8 ὀλίγου: LSJ. ὀλίγος IV special phrases: 1. ὀλίγου δεῖν almost (v. δεῖ II); 
ὀλίγου ἐδέησε καταλαβεῖν wanted but little of overtaking, Hdt. 7.10.γʹ: 
hence ὀλίγου alone, within a little, all but, almost, ὀλίγου σε κύνες διεδηλήσαντο 
Od. 14.37, cf. Ar. Ach. 348, 381, Nu. 722, Lys. 14.17, Pl. Prt. 361b, D. 19.334, etc.; 
ὀ. ἅπαντες Pl. Ap. 22b; ὀ. ἐς χιλίους close upon 1000, Th. 4.124; 
ὀ. ἦλθεν ἑλεῖν (v. infr. 9) Paus. 1.13.6.

ΜΕΝ. Τί μάλιστα, ὦ Σώκρατες;
특히 무엇 때문에 그렇습니까, 소크라테스?

ΣΩ. Γιγνώσκω οὗ ἕνεκά με ᾔκασας.                                           c
나는 자네가 무엇을 위해 나를 [그런 모상에] 비유했는지 안다네.

ΜΕΝ. Τίνος δὴ οἴει;
무엇을 위해서라고 생각하시는데요?

ΣΩ. Ἵνα σε ἀντεικάσω. ἐγὼ δὲ τοῦτο οἶδα περὶ πάντων
τῶν καλῶν, ὅτι χαίρουσιν εἰκαζόμενοι―λυσιτελεῖ γὰρ αὐτοῖς·
καλαὶ γὰρ οἶμαι τῶν καλῶν καὶ αἱ εἰκόνες―ἀλλ᾿ οὐκ                      5 //210615
ἀντεικάσομαί σε. ἐγὼ δέ, εἰ μὲν ἡ νάρκη αὐτὴ ναρκῶσα
οὕτω καὶ τοὺς ἄλλους ποιεῖ ναρκᾶν, ἔοικα αὐτῇ· εἰ δὲ μή,
οὔ. οὐ γὰρ εὐπορῶν αὐτὸς τοὺς ἄλλους ποιῶ ἀπορεῖν, ἀλλὰ
παντὸς μᾶλλον αὐτὸς ἀπορῶν οὕτως καὶ τοὺς ἄλλους ποιῶ
ἀπορεῖν. καὶ νῦν περὶ ἀρετῆς ὃ ἔστιν ἐγὼ μὲν οὐκ οἶδα, σὺ             d
μέντοι ἴσως πρότερον μὲν ᾔδησθα πρὶν ἐμοῦ ἅψασθαι, νῦν
μέντοι ὅμοιος εἶ οὐκ εἰδότι. ὅμως δὲ ἐθέλω μετὰ σοῦ
σκέψασθαι καὶ συζητῆσαι ὅτι ποτέ ἐστιν.
내가 자네를 [또 다른 모상에] 맞비교하도록 하기 위함인 게지.
그런데 나는 모든 아름다운 자들에 관련하여 이 점을 안다네,
그들이 비유되며 기뻐한다는 것을 말일세.―그게 그들에게
득이 되니까. 내 생각에 그건 아름다운 자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모상들 역시 아름다운 것들이기 때문이라네.―그러나 나는
자네에게 맞장구를 쳐 비교해주지는 않을 걸세. 나는, 만일 그
전기가오리가 스스로 마비된 채 그 밖의 사람들까지 그렇게
마비되도록 만든다면, 그 녀석과 닮았을 걸세. 헌데 그렇지 
않다면, 닮지 않았지. 왜냐하면 나 자신이 길을 잘 찾아 나아가면서
그 외의 사람들이 길을 잃도록 만드는 게 아니라,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특히나 길을 헤매면서 그런 식으로 나 외의 사람들까지
길을 잃게 만들기 때문이라네. 지금도 덕에 관련하여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자네는 내게 닿기에 앞서 그 
이전에는 아마도 알고 있던 것 같으나, 지금은 알지 못하는 이와
비슷한 자로군. 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네와 더불어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검토하고 또한 함께 탐구하고자 하고 있지.
> 80c4 χαίρουσιν εἰκαζόμενοι: χαίρω w/noun. dat. Cf. 77b3.
Supplementary Participle. Cf. 77a7; Smyth. 2046-2048, 2088-2145;
CG. 52.8-52.28. Supplementary: the participle is used 
as an obligatory constituent with verbs.
> 80d4 σκέψασθαι ... συζητῆσαι:
Cf. 71c4 ἐνέτυχον + 72c9 δηλῶσαι + 74a10 ἀνευρεῖν.
Complexive Aorist.
Smyth. 1927. The complexive aorist is used to survey
at a glance the course of a past action from beginning to end.
It may sum up the result of a preceding narrative (often containing
imperfects.) The complexive aorist appears also in other moods than
the indicative.
a. This is often called the 'concentrative' aorist, because it concentrates
the entire course of an action to a single point. When used of rapid or
instantaneous action this aorist is often called 'momentary.'
b. The complexive aorist is used either of a long or of a short period of
time.
CG. 33.30. The aorist of such verbs can, however, also be used as an
expression of an entire period (viewed as a complete whole from 
beginning to end, without any interest in its component parts). 
This is the so-called complexive (or 'concentrating') use of the aorist. 
Typically, an expression of the duration of the action is included:

ΜΕΝ. Καὶ τίνα τρόπον ζητήσεις, ὦ Σώκρατες, τοῦτο ὃ                    5
μὴ οἶσθα τὸ παράπαν ὅτι ἐστίν; ποῖον γὰρ ὧν οὐκ οἶσθα
προθέμενος ζητήσεις; ἢ εἰ καὶ ὅτι μάλιστα ἐντύχοις αὐτῷ,
πῶς εἴσῃ ὅτι τοῦτό ἐστιν ὃ σὺ οὐκ ᾔδησθα;
또 무슨 방법으로 탐구하시겠습니까, 소크라테스? 당신께서
그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지 못하시는 그런 것을 말입니다.
당신께서 알지 못하시는 것들 중에 어떤 것을 상정하시고서
탐구하실 겁니까? 혹은 최대한 봐줘서 당신께서 그것과
맞딱들이신다 하더라도, 당신이 알지 못하시는 것이 이것이란
점을 어떻게 아시겠습니까?
> 80d5 Καὶ: Denniston. p309-310. Καί II. Responsive.
B. Structural uses. (10) In questions. (i) καί preceding interrogative,
usually at the opening of a speech in dialogue. The particle may
either (a) simply denote that the speaker requires further information;
or (b), more commonly, convey an emotinoal effect of suprise,
contempt, and so forth. Both senses (to which the use of δέ
and, more rarely, τε after interrogatives is closely parallel) are
natural enough.
The elliptical form Καὶ πῶς; is common in Plato.

ΣΩ. Μανθάνω οἷον βούλει λέγειν, ὦ Μένων. ὁρᾷς                       e
τοῦτον ὡς ἐριστικὸν λόγον κατάγεις, ὡς οὐκ ἄρα ἔστιν
ζητεῖν ἀνθρώπῳ οὔτε ὃ οἶδε οὔτε ὃ μὴ οἶδε; οὔτε γὰρ ἂν
ὃ γε οἶδεν ζητοῖ―οἶδεν γάρ, καὶ οὐδὲν δεῖ τῷ γε τοιούτῳ
ζητήσεως―οὔτε ὃ μὴ οἶδεν―οὐδὲ γὰρ οἶδεν ὅτι ζητήσει.                5 //210622
자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겠군, 메논. 자네는 자네가
끌어들이고 있는 이 논의가 얼마나 쟁론적인지 아는가?
인간으로서는 그가 아는 것이든 그가 알지 못하는 것이든
탐구할 수 없다면서 말일세. 왜냐하면 알고 있던 것은 탐구하지
못할 테고―왜냐하면 그가 알고, 그래서 이런 사람에게는
탐구가 전혀 필요하지 않으니까―알지 못하는 것도 그리 
못할 테니―그야 무엇을 탐구할 것인지 알지도 못했을 테니 
말일세.
> τοῦτον: Cf. 70a4 "ἀρετὴν"의 형태가 acc.인 이유. prolepsis.
본래 εἴτε 안에서 nom.이어야 하나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εἰδέναι의
목적어로 취급되었다. 

ΜΕΝ. Οὐκοῦν καλῶς σοι δοκεῖ λέγεσθαι ὁ λόγος οὗτος,            81a
ὦ Σώκρατες;
그럼 당신께는 이런 논변이 아름답게 말해진 것이라 여겨지지
않는군요, 소크라테스?
> 81a Οὐκοῦν: Cf. Denniston. p430-433. 
"... If we trust our manuscripts, we must believe that interrogative
οὔκουν is practically unknown to prose. But in many passages,
where a surprised or indignant question is clearly required, there
are strong grounds for restoring οὔκουν...; for affirmative or
interrogative οὐκοῦν." p432.

ΣΩ. Οὐκ ἔμοιγε.
적어도 내겐 그리 여겨지지 않는군.

ΜΕΝ. Ἔχεις λέγειν ὅπῃ;
당신은 어떤 식으로 말씀하실 수 있나요?

ΣΩ. Ἔγωγε· ἀκήκοα γὰρ ἀνδρῶν τε καὶ γυναικῶν σοφῶν                 5
περὶ τὰ θεῖα πράγματα―
나로서는 그렇다네. 지혜로운 사내들과 여인들에게서 신적인
일들에 관련하여 들었기 때문이지―
> 81a5 ἀκήκοα:
C.G. 30.20. The main function of the genitive is at the level of the noun phrase, to mark
attributive modifiers (i.e. expressing various relations between (pro)nouns/noun
phrases). It is also used to mark somerequired constituents (complements) with
verbs/adjectives, and functions in a few adverbial expressions.
As Obligatory Constituent (to Complement Verbs/Adjectives)
Verbs Taking the Genitive.
30.21. Thegenitive is used to complement, amongothers, the following verbs:
- many verbs expressing sensorial or mental processes:
ἀκούω hear (the gen. marks the source of sound; ἀκούω +
acc. = 'be told', 'hear', e.g. ἀκούω λόγον 'hear
a story'; combinations of gen./acc. occur)
ἀκροάομαι listen to, hear (in combinations gen./acc., the gen.
marks the speaking person (i.e. the source of sound), the acc. the thing said)
52.14. But when verbs of hearing (ἀκούω, αἰσθάνομαι) are used to express direct
auditory perception, a supplementary participle and its subject are expressed in
the genitive (genitive-and-participle construction):
52.19. Similarly, verbs of auditory perception, such as ἀκούω hear, can be used not only
to refer to the actual auditory perception of an action, but also to refer to the
transmission of factual information, and then means 'learn', 'be told (a fact)' (cf.
Engl. I hear that Julia has performed well in her job, in which no auditory
perception of Julia working is involved):
- when used as verbs of auditory perception, such verbs are complemented by
a genitive-and-participle construction (>52.14); the participle occurs nearly
exclusively in the present (because the perceived action is necessarily ongoing
when it is perceived);
- when used as verbs of (acquiring) knowledge, they are complemented by an
accusative-and-participle construction expressing the propositional content of
the information; all tenses of the participle are used, with the usual relative-tense
implication (>52.4):

ΜΕΝ. Τίνα λόγον λεγόντων;
무슨 말을 하는 자들에게서 말씀이십니까?

ΣΩ. Ἀληθῆ, ἔμοιγε δοκεῖν, καὶ καλόν.
참된 것들을, 적어도 내게 여겨지기로는, 또한 아름다운 말을
해주었다네.
> 81a8 ἔμοιγε δοκεῖν: 
C.G. 51.49. The infinitive is used in some idiomatic expressions, for instance
ὡς (ἔπος) εἰπεῖν so to say, if I may use this expression, as it were,
                         practically (often with forms of πᾶς, 'practically
                         everyone', οὐδείς, 'practically no one')
(ὡς) συνελόντι εἰπεῖν in short, to be brief, to cut to the chase, if I may be brief
τὸ σύμπαν εἰπεῖν      in short, in any case
ὀλίγου δεῖν             almost, practically
ἐμοὶ δοκεῖν             it seems to me
ὡς εἰκάσαι             it seems/appears, so far as one might guess
ἑκὼν εἶναι              voluntarily, willingly, intentionally
τὸ νῦν εἶναι            for the time being
In each of these expressions, the infinitive is used absolutely, i.e. not dependent on
a verb, adjective, etc.
Smyth. 2012. Certain idiomatic infinitives are used absolutely in parenthetical
phrases to limit the application of a single expression or of the entire sentence.

ΜΕΝ. Τίνα τοῦτον, καὶ τίνες οἱ λέγοντες;
그게 무엇이고, 말한 자들은 누굽니까?

ΣΩ. Οἱ μὲν λέγοντές εἰσι τῶν ἱερέων τε καὶ τῶν ἱερειῶν                  10
ὅσοις μεμέληκε περὶ ὧν μεταχειρίζονται λόγον οἵοις τ᾿ εἶναι
διδόναι· λέγει δὲ καὶ Πίνδαρος καὶ ἄλλοι πολλοὶ τῶν ποιητῶν       b
ὅσοι θεῖοί εἰσιν. ἃ δὲ λέγουσιν, ταυτί ἐστιν· ἀλλὰ σκόπει
εἴ σοι δοκοῦσιν ἀληθῆ λέγειν. φασὶ γὰρ τὴν ψυχὴν τοῦ
ἀνθρώπου εἶναι ἀθάνατον, καὶ τοτὲ μὲν τελευτᾶν―ὃ δὴ
ἀποθνῄσκειν καλοῦσι―τοτὲ δὲ πάλιν γίγνεσθαι, ἀπόλλυσθαι            5
δ᾿ οὐδέποτε· δεῖν δὴ διὰ ταῦτα ὡς ὁσιώτατα διαβιῶναι τὸν
βίον· οἷσιν γὰρ ἂν―
그 말을 해준 사람들은 그들이 주관하는 일들에 관련하여 설명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 관심사였던 신관들과 여신관들에 속한
자들이라네. 그런가 하면 핀다로스께서도 그리고 신적인 자들인
시인들 중에서 그 밖의 많은 이들도 그리 말하지. 그들이 말하는
것들이란, 이런 것들일세. 그럼 자네에게 그들이 참된 것들을 말하는
것으로 여겨지는지 검토해 보게나. 그야 그들은 인간의 영혼이
불멸이라고, 때로는 끝맺고―실은 그들이 죽는다는 것을 그리
부르지―때로는 다시 생겨나지만, 결코 단 한 번도 파괴되어 버리지는
않는다고 주장하니 말일세. 그래서 이런 점들로 인해 최대한 경건하게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들 하지. 왜냐하면 

  Φερσεφόνα ποινὰν παλαιοῦ πένθεος
  δέξεται, εἰς τὸν ὕπερθεν ἅλιον κείνων ἐνάτῳ ἔτεϊ
  ἀνδιδοῖ ψυχὰς πάλιν,                                                             10
  ἐκ τᾶν βασιλῆες ἀγαυοὶ                                                        c
  καὶ σθένει κραιπνοὶ σοφίᾳ τε μέγιστοι
  ἄνδρες αὔξοντ᾿· ἐς δὲ τὸν λοιπὸν χρόνον ἥρωες ἁγνοὶ
                         πρὸς ἀνθρώπων καλεῦνται.

  페르세포네가 오랜 비탄의 대가를 받아줄 자들에게,
  그녀는 지상의 태양을 향해 아홉 번째 해에 저들의
영혼들을 다시 돌려줄지니,
  그 영혼들로부터 고귀한 왕들과 강건함으로 맹진하는 자들과
지혜로 가장 위대한 사내들이 자라노라. 그들은 남은 시간이
다하도록 고귀한 영웅들이라 인구에 회자되노라.

Ἅτε οὖν ἡ ψυχὴ ἀθάνατός τε οὖσα καὶ πολλάκις γεγονυῖα,              5
καὶ ἑωρακυῖα καὶ τὰ ἐνθάδε καὶ τὰ ἐν Ἅιδου καὶ πάντα
χρήματα, οὐκ ἔστιν ὅτι οὐ μεμάθηκεν· ὥστε οὐδὲν θαυμαστὸν
καὶ περὶ ἀρετῆς καὶ περὶ ἄλλων οἷόν τ᾿ εἶναι αὐτὴν ἀναμνη-
σθῆναι, ἅ γε καὶ πρότερον ἠπίστατο. ἅτε γὰρ τῆς φύσεως
ἁπάσης συγγενοῦς οὔσης, καὶ μεμαθηκυίας τῆς ψυχῆς ἅπαντα,    d
οὐδὲν κωλύει ἓν μόνον ἀναμνησθέντα―ὃ δὴ μάθησιν καλοῦσιν
ἄνθρωποι―τἆλλα πάντα αὐτὸν ἀνευρεῖν, ἐάν τις ἀνδρεῖος ᾖ
καὶ μὴ ἀποκάμνῃ ζητῶν· τὸ γὰρ ζητεῖν ἄρα καὶ τὸ μανθάνειν
ἀνάμνησις ὅλον ἐστίν. οὔκουν δεῖ πείθεσθαι τούτῳ τῷ                    5
ἐριστικῷ λόγῳ· οὗτος μὲν γὰρ ἂν ἡμᾶς ἀργοὺς ποιήσειεν
καὶ ἔστιν τοῖς μαλακοῖς τῶν ἀνθρώπων ἡδὺς ἀκοῦσαι, ὅδε
δὲ ἐργατικούς τε καὶ ζητητικοὺς ποιεῖ· ᾧ ἐγὼ πιστεύων                e
ἀληθεῖ εἶναι ἐθέλω μετὰ σοῦ ζητεῖν ἀρετὴ ὅτι ἐστίν.
그러니 영혼이 불멸하는 것이며 또한 여러 차례 거듭되었기에,
또한 이곳의 일들도 그리고 하데스에서의 일들도 그 모든 일들을
보았기 때문에, 배우지 않았다는 건 사실이 아니지. 그래서 덕에
관련하여서도 그 밖의 일들에 관련하여서도 그 영혼이란 것이
상기해낼 수 있다는 건 전혀 놀랄 게 없으니, 어쨌든 이전에도
알았던 것들을 그리한다는 걸세. 왜냐하면 그 본성이 모두 다
동종적이기에, 그리고 영혼이 통틀어 모든 것들을 배웠기에,
단 하나만을 상기해낸 자가―실로 그것을 인간들이 배움이라
부르는 게지―그 외의 모든 것들을 알아내는 일을 아무것도
가로막지 않기 때문이지, 누군가 사내다운 자이자 탐구하기를
싫증내지 않을 자라면 말일세. 그야 그래서 탐구한다는 것과
배운다는 것이 전체로 놓고서는 상기이기 때문이지. 그러니 저
쟁론적인 언설에 설복되지는 않아야 한다네. 왜냐하면 이런 논변은
우리를 게으른 자들로 만들 것이고 인간들 중에서 유약한 자들이
듣기에 즐거운 것이나, 지금 이 논변은 일하는 자들로 그리고 또한
탐구하는 자들로 만들어주기 때문이지. 나는 내가 참이라고 신뢰하는
이 논변으로 자네와 함께 덕이 무엇인지를 탐구하고자 한다네.
> 81d7 ἡδύς ἀκοῦσαι: Cf. 71e3, 76a10. CG 51.9. The dynamic infinitive is also used
to complement certain adjectives and nouns with meanings similar
to those listed above, i.e. expressing ability, possibility, need, desire, etc.
Cf. 51.8-51.18. Dynamic Infinitives. CG. 51.16. Dynamic Infinitives Expressing 
Purpose or Result: A dynamic infinitive is added regularly to verbs meaning 
'give', 'entrust', 'take', 'receive', etc., or verbs meaning 'have(at one's disposal)', 
to express purposeorresult (without ὥστε or ὡς). This use of the infinitive is usually 
called final-consecutive.

> 81e1 ἐργατικούς τε καὶ ζητητικοὺς

C.G. 23.17 -ικός, -ή, -όν: productive suffix used to form adjectives from nouns, 

with the general meaning 'pertaining to ...', often 'skilled in ...', 'occupying oneself with ...':
γραμματικός expert in letters: grammarian (γράμμα letter)
ἱππικός of a horse; skilled in riding (ἵππος horse)
ποιητικός capable of making, creative (ποιητής maker, poet)
φυσικός natural, concerning nature, physical (φύσις nature)
Feminine forms (in -ική) often have the meaning 'the art of ...',
with or wihtout τέχνη added: ἡ γραμματική (τέχνη) grammar, ἡ ἱππική (τέχνη) the art of horse riding, ἡ ποιητική (τέχνη) the art of poetry, etc.

Cf. Smyth. 858. 6. κο, ακο. ικο (nom. -κος, very common, cp 864.1):

many denominatives formed by these suffixes denote relation, many others

fitness or ability.

ΜΕΝ. Ναί, ὦ Σώκρατες· ἀλλὰ πῶς λέγεις τοῦτο, ὅτι οὐ
μανθάνομεν, ἀλλὰ ἣν καλοῦμεν μάθησιν ἀνάμνησίς ἐστιν;
ἔχεις με τοῦτο διδάξαι ὡς οὕτως ἔχει;                                          5
네, 소크라테스. 허나 그건 어찌 하시는 말씀이십니까? 우리는
배우는 게 아니라, 우리가 배움이라 부르는 것은 상기라는 점
말입니다. 그게 어떻게 그러한지 제게 가르쳐주실 수 있나요?
>  81e5 διδάξαι:

Cf. 80d4 σκέψασθαι ... συζητῆσαι, 71c4 ἐνέτυχον, 72c9 δηλῶσαι,

74a10 ἀνευρεῖν.
Complexive Aorist.
Smyth. 1927. The complexive aorist is used to survey
at a glance the course of a past action from beginning to end.
It may sum up the result of a preceding narrative (often containing
imperfects.) The complexive aorist appears also in other moods than
the indicative.
a. This is often called the 'concentrative' aorist, because it concentrates
the entire course of an action to a single point. When used of rapid or
instantaneous action this aorist is often called 'momentary.'
b. The complexive aorist is used either of a long or of a short period of
time.
CG. 33.30. The aorist of such verbs can, however, also be used as an
expression of an entire period (viewed as a complete whole from 
beginning to end, without any interest in its component parts). 
This is the so-called complexive (or 'concentrating') use of the aorist. 
Typically, an expression of the duration of the action is included:


-蟲-


Third Argument, Called That of the Arrow (D16-D17)

D16

a (< A27) Arist. Phys. 6.9 239b5-7

εἰ γὰρ αἰεί, φησίν, ἠρεμεῖ πᾶν¹ ὅταν ᾖ κατὰ τὸ ἴσον,

ἔστιν δ᾿ αἰεὶ τὸ φερόμενον ἐν τῷ νῦν,² ἀκίνητον τὴν

φερομένην εἶναι ὀϊστόν.
¹ ἢ κινεῖται post πᾶν hab. mss.: secl. Zeller: coni. οὐ κινεῖται Ross, alii aliter
² ἐν τῷ νῦν EHIJK: ἐν τῷ νῦν τῷ κατὰ τὸ ἴσον fecit F, Zeller (τῷ omisso):
  ἐν τῷ νῦν, πᾶν δὲ κατὰ τὸ ἴσον ἐν τῷ νῦν Diels 

b (< A27) Arist. Phys. 6.9 239b30

τρίτος δ᾿ ὁ νῦν ῥηθείς, ὅτι ἡ ὀϊστὸς φερομένη ἕστηκεν

[. . .=R20]

 

D17 (B4) Diog. Laert. 9.72

Ζήνων δὲ τὴν κίνησιν ἀναιρεῖ λέγων "τὸ κινούμενον

οὔτε ἐν ᾧ ἔστι τόπῳ κινεῖται οὔτε ἐν ᾧ μὴ ἔστι."

 

Fourth Argument, Called that of the Stadium (D18-D19)

D18 (< A28) Arist. Phys. 6.9 239b33-240a1

τέταρτος δ᾿ ὁ περὶ τῶν ἐν τῷ¹ σταδίῳ κινουμένων ἐξ

ἐναντίας ἴσων ὄγκων παρ᾿ ἴσους, τῶν μὲν ἀπὸ² τέλους

τοῦ σταδίου τῶν δ᾿ ἀπὸ μέσου, ἴσῳ τάχει, ἐν ᾧ συμ-

βαίνειν οἴεται ἴσον εἶναι χρόνον τῷ διπλασίῳ τὸν

ἥμισυν [. . .=R21].

¹ τῷ E: om. KΛ ² ἀπὸ] ἀπὸ τοῦ FHIJ²K

 

D19 (A25) Arist. Top. 8.8 160b7-9

πολλοὺς γὰρ λόγους ἔχομεν ἐναντίους ταῖς δόξαις,

οὓς χαλεπὸν λύειν, καθάπερ τὸν Ζήνωνος ὅτι οὐκ ἐν-

δέχεται κινεῖσθαι οὐδὲ τὸ στάδιον διελθεῖν [. . .].

 

 

-작성중-

ΣΩ. Οὐκοῦν νυνδὴ ἔλεγες ὅτι ἔστιν ἡ ἀρετὴ βούλεσθαί                   b3
τε τἀγαθὰ καὶ δύνασθαι;―ΜΕΝ. Εἶπον γάρ.―ΣΩ. Οὐκοῦν
τοῦ λεχθέντος τὸ μὲν βούλεσθαι πᾶσιν ὑπάρχει, καὶ ταύτῃ               5
γε οὐδὲν ὁ ἕτερον τοῦ ἑτέρου βελτίων;―ΜΕΝ. Φαίνεται.
그럼 방금 자네가 덕은 좋은 것들을 바라는 것이자 또한 그러한
것들을 해낼 능력이 있는 것이라고 말하던 게 아닌가?―그야
제가 그리 이야기하고 있었지요.―그렇다면 그렇게 말해졌으니
바란다는 것은 모두에게 성립하는 것이고, 그래서 적어도 이러한
측면에서는 한 쪽이 다른 쪽보다 전혀 더 나을 게 없지 않나?
―그렇게 보입니다.
> 78b5 ταὐτῃ: κατὰ τὸ βούλεσθαι. 78b8 κατὰ τὸ δύνασθαι에 대비.
―ΣΩ. Ἀλλὰ δῆλον ὅτι εἴπερ ἐστὶ βελτίων ἄλλος ἄλλου,
κατὰ τὸ δύνασθαι ἂν εἴη ἀμείνων.―ΜΕΝ. Πάνυ γε.―
ΣΩ. Τοῦτ᾿ ἔστιν ἄρα, ὡς ἔοικε, κατὰ τὸν σὸν λόγον ἀρετή,
δύναμις τοῦ πορίζεσθαι τἀγαθά.―ΜΕΝ. Παντάπασί μοι                c
δοκεῖ, ὦ Σώκρατες, οὕτως ἔχειν ὡς σὺ νῦν ὑπολαμβάνεις.
                         ―그러나 만일 정말로 한쪽이 다른 쪽보다
더 나은 자라면, 능력이 있다는 점에 따라 더 나은 자일 것임이
분명하지.―물론 그렇긴 합니다.―그럼, 그럴 듯하기로는, 이런
것이 자네 말에 따르면 덕이로군, 좋은 것들을 마련하는 능력
말일세.―제게는 전적으로 그리 여겨집니다, 소크라테스,
당신께서 지금 상정하시는대로 그런 상태라고 말입니다.
> 78c1 τοῦ πορίζεσθαι: Smyth. 1322. Genitive of Explanation (Appositive Genitive).
The genitive of an explicit word may explain the meaning of a more general word.
An articular infinitive in the genitive often defines the application of a substantive:
ἀμαθίᾱ ἡ τοῦ οἴεσθαι εἰδέναι ἃ οὐκ οἶδεν.
(The ignorance of thinking one knows what one does not know.)
C.G. 27.14. Apposition. Note a few special cases with respect to agreement:
An appositive to a possessive pronoun (or an adjective equivalent to a possessive)
may stand in the genitive.

ΣΩ. Ἴδωμεν δὴ καὶ τοῦτο εἰ ἀληθὲς λέγεις· ἴσως γὰρ
ἂν εὖ λέγοις. τἀγαθὰ φῂς οἷόν τ᾿ εἶναι πορίζεσθαι ἀρετὴν
εἶναι;―ΜΕΝ. Ἔγωγε.―ΣΩ. Ἀγαθὰ δὲ καλεῖς οὐχὶ οἷον                     5
ὑγίειάν τε καὶ πλοῦτον;―ΜΕΝ. Καὶ χρυσίον λέγω καὶ
ἀργύριον κτᾶσθαι καὶ τιμὰς ἐν πόλει καὶ ἀρχάς;
더 나아가 자네가 참을 말하고 있는지 이 점도 알아보도록 하세.
왜냐하면 자네가 아마도 잘 말하고 있는 것일 테니까. 자네는
좋은 것들을 획득할 수가 있다는 것이 덕이라고 주장하는가?―
저로서는요.―그런데 자네는 이를 테면 건강도 부도 좋은 것들이라
부르는가?―저는 금을 획득하는 것도 은을 획득하는 것도 나라에서의
명예나 관직을 획득하는 것도 말하고 있죠?
> 78c3 Ἴδωμεν: Smyth. 1797. Hortatory Subjunctive.― 
The hortatory subjunctive (present or aorist) is used to express
a request or a proposal (negative μή). 
a. Usually in the first person plural. b. Less frequently in the
first person singular, which is usually preceded (in affirmative
sentences) by φέρε (δή), in Hom. by ἄγε (δή).
CG. 34.6. Hortatory subjunctive: in the first person (usually plural),
the subjunctive is used both in positive commands and negative
commands (with μή).
> 78c4 ἂν ... λέγοις: Smyth. 1828. The present and aorist are used
of what will be, or what will prove to be, true (future realization of
a present fact).
Goodwin. 1331. The potential optative may express what may hereafter
prove to be true or to have been true.
CG. 34.13. The optative with ἄν is used to indicate that the realization of
an action is possible: the potential construction. This construction is used to
express a range of nuances: - to describe actions that might hypothetically occur,
or to make a weak Assertion (i.e. to state something more cautiously than
with the indicative).
                                                               ―ΣΩ. Μὴ
ἄλλ᾿ ἄττα λέγεις τἀγαθὰ ἢ τὰ τοιαῦτα;―ΜΕΝ. Οὔκ, ἀλλὰ
πάντα λέγω τὰ τοιαῦτα.―ΣΩ. Εἶεν· χρυσίον δὲ δὴ καὶ                   d
ἀργύριον πορίζεσθαι ἀρετή ἐστιν, ὥς φησι Μένων ὁ τοῦ
μεγάλου βασιλέως πατρικὸς ξένος. πότερον προστιθεῖς
τούτῳ τῷ πόρῳ, ὦ Μένων, τὸ δικαίως καὶ ὁσίως, ἢ οὐδέν
σοι διαφέρει, ἀλλὰ κἂν ἀδίκως τις αὐτὰ πορίζηται, ὁμοίως             5
σὺ αὐτὰ ἀρετὴν καλεῖς;
                                                 ―좋은 것들이 이런 것들
말고 그 밖의 어떤 것들이라고 말하지는 않는가?―그렇지 않고, 
오히려 그런 것들이 전부라고 말합니다.―좋네. 그럼 금과 은을
획득하는 것이 덕이군, 조상 대대로 저 대왕의 손님인 메논이
주장하는 대로 말일세. 자네는 이런 획득 방법에, 메논, "정의롭고 
경건하게" 라는 것을 추가하는가? 아니면 그게 자네에게 아무런
차이가 없고, 설령 누군가가 그것들을 불의하게 획득한다 하더라도,
자네는 그것들을 마찬가지로 덕으로 부르는가?
> 78d3 μεγάλου βασιλέως: 고대 그리스에는 제국의 대왕이 없으므로,
이 표현이 일종의 고유명사로서 페르시아 제국의 왕을 가리킨다.
> 78d3 ξένος: ξενία. 타문화와의 교류가 활발한 문화권에서 상호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 외지인에 대한 호의. 제우스의 권위를
빌어 이를 지키지 않는 경우에 도덕적 책임이 부과된다.
> 78d6 ἀρετήν: 인도유럽어족 ἀρ- 어원. 1) best or 2) fitting.
이러한 맥락에서 'ἀγαθά'에 결부된다. 또한 이것이 δύναμις와 연결된다.
따라서 당대에 ἀρετή가 좋은 것들을 얻어낼 수 있는 능력으로 간주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플라톤에 의해 이러한 획득의 과정, 방식, 수단에
추가적인 조건이 부과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지고 있다.
플라톤 『小 히피아스』, ὠφέλιμος 결과와 수단 모두 좋은 것/χρήσιμος 결과가 좋은 것
사이의 구분. 전자의 경우 수단이나 방식의 좋음을 고려할 필요가 발생한다.
어쨌든 둘 모두, 이롭게 해주든 쓸모가 있든 둘 다 좋은 결과를 제공한다는 점을
고려해야만 한다.
                              ―ΜΕΝ. Οὐ δήπου, ὦ Σώκρατες.―
ΣΩ. Ἀλλὰ κακίαν.―ΜΕΝ. Πάντως δήπου.―ΣΩ. Δεῖ ἄρα,
ὡς ἔοικε, τούτῳ τῷ πόρῳ δικαιοσύνην ἢ σωφροσύνην ἢ
ὁσιότητα προσεῖναι, ἢ ἄλλο τι μόριον ἀρετῆς· εἰ δὲ μή,                 e
οὐκ ἔσται ἀρετή, καίπερ ἐκπορίζουσα τἀγαθά.―ΜΕΝ. Πῶς
γὰρ ἄνευ τούτων ἀρετὴ γένοιτ᾿ ἄν;―ΣΩ. Τὸ δὲ μὴ ἐκ-
πορίζειν χρυσίον καὶ ἀργύριον, ὅταν μὴ δίκαιον ᾖ, μήτε
αὑτῷ μήτε ἄλλῳ, οὐκ ἀρετὴ καὶ αὕτη ἐστὶν ἡ ἀπορία;―                   5
아마도 그리 부르지 않을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오히려 
악덕이라 부르는군.―아마도 전적으로 그럴 겁니다.―그럼, 
그럴 듯하기로는, 이런 획득 방도에 정의나 현명함 혹은 경건이 
추가되어야 하거나, 또는 덕의 그 밖의 어떤 부분이 추가되어야 
하네. 그런데 만일 그렇지 않다면, 덕이 아닐 걸세, 설령 좋은 
것들을 획득한다 하더라도 말이지.―그야 어찌 그것들 없이 
덕이 될 수 있겠습니까?―그런데 금과 은을 획득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것이 정의로운 것이 아닐 때, 자신에게든 그 외의 
사람에게든 그렇지 않을 때, 이러한 어찌할 획득할 길 없다는 것
(도리나 방도가 없음, aporia)도 덕이지 않나?
> 78e4-5 μήτε αὑτῷ μήτε ἄλλῳ: 고려 대상이 자신만이 아니라
자신 이외의 사람에게까지 확장되어 있다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ΜΕΝ. Φαίνεται.―ΣΩ. Οὐδὲν ἄρα μᾶλλον ὁ πόρος τῶν
τοιούτων ἀγαθῶν ἢ ἡ ἀπορία ἀρετὴ ἂν εἴη, ἀλλά, ὡς ἔοικεν,
ὃ μὲν ἂν μετὰ δικαιοσύνης γίγνηται, ἀρετὴ ἔσται, ὃ δ᾿
ἂν ἄνευ πάντων τῶν τοιούτων, κακία.―ΜΕΝ. Δοκεῖ μοι             79a
ἀναγκαῖον εἶναι ὡς λέγεις.
―그리 보입니다.―그럼 이러한 좋은 것들을 위한 획득 방도가
방도 없다는 것에 비해 조금도 더 덕인 것은 아닐 테고, 오히려,
그럴 듯해 보이기로는, 한편으로 정의를 동반하여 이루어지는 쪽은,
덕일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이런 모든 것들 없이 이루어지는 쪽은,
악덕일 걸세.―당신 말씀대로 사실이 그렇다는 게 필연적이라고
제게 여겨집니다.
> 78e8 ὃ ... ἂν ... γίγνηται:
Smyth. 2508. When the antecedent is definite, the simple relatives (ὅς, οἷος, ὅσος, etc.)
are used; when indefinite, the compound relatives (ὅστις, ὁποῖος, ὁπόσος, etc.)
are used, but the simple relatives are often employed instead. When the antecedent
is indefinite, ὅς usually has the subjunctive with ἄν or optative; while ὅστις is
preferred to ὅς if the verb is indicative (2569).
CG. 40.9. 'Indefinite' subjunctive + ἄν:
to refer to actions which occur habitually (repeatedly, typically, generically)
in or up to the present; the main clause normally has a present indicative referring 
to an habitual action (33.15):
In historic sequence, the indefinite construction (referring to actions which
took place repeatedly in the past) is expressed by 'iterative' optative without ἄν
(40.13); the main clause usually has an imperfect referring to a habitual action
in the past (33.24):
Note 1: The prospective construction (sometimes called 'anticipatory') is the default
construction for temporal/conditional/relative clauses referring to the future; in temporal
clauses it is the only possible construction (47.8). Note that English in such cases uses
present-tense forms (the so-called 'concealed' future.).
Note 2: Different labels such as 'prospective' and 'indefinite' for subjunctive + ἄν are
traditional, but the distinction between the two types should not be pressed too hard: both
constructions refer to an unspecified time. Whether ἄν + subjunctive is to be called
prospective or indefinite depends on the verb used in the matrix clause: if the matrix
clause has a verb with future reference (fut. ind., imp., etc.), a subordinate clause with ἄν +
subj. is 'prospective'; if the matrix clause has a pres. ind. expressing a repeated action or
general truth, ἄν + subj. in the subordinate clauseis 'indefinite'.
Evenso, the distinction is sometimes irrelevant.

ΣΩ. Οὐκοῦν τούτων ἕκαστον ὀλίγον πρότερον μόριον
ἀρετῆς ἔφαμεν εἶναι, τὴν δικαιοσύνην καὶ σωφροσύνην καὶ
πάντα τὰ τοιαῦτα;                                                                   5
그럼 이것들 각각을 우리는 조금 전에 덕의 일부이라고, 정의와
현명함과 이런 모든 것들을 그리 주장하지 않았나?

ΜΕΝ. Ναί.
네.

ΣΩ. Εἶτα, ὦ Μένων, παίζεις πρός με;
그러고 나면, 메논, 자네는 내게 농을 치고 있나?

ΜΕΝ. Τί δή, ὦ Σώκρατες;
무엇 때문에 그러시죠, 소크라테스?

ΣΩ. Ὅτι ἄρτι ἐμοῦ δεηθέντος σου μὴ καταγνύναι μηδὲ
κερματίζειν τὴν ἀρετήν, καὶ δόντος παραδείγματα καθ᾿ ἃ δέοι       10
ἀποκρίνεσθαι, τούτου μὲν ἠμέλησας, λέγεις δέ μοι ὅτι ἀρετή
ἐστιν οἷόν τ᾿ εἶναι τἀγαθὰ πορίζεσθαι μετὰ διακιοσύνης·              b
τοῦτο δὲ φῂς μόριον ἀρετῆς εἶναι;
방금 내가 자네에게 덕을 깨뜨리지도 말고 조각내지도 말라고
요구했는데도, 또 그에 따라 대답되어야 할 그 본들을 제시하기까지
했음에도, 이것에는 개의치 않고, 자네는 내게 좋은 것들을 정의를
동반하여 획득하는 자일 수 있다는 것이 덕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 때문이라네. 그런데 이걸 자네는 덕의 일부라고 주장하지?

ΜΕΝ. Ἔγωγε.
저로서는요.

ΣΩ. Οὐκοῦν συμβαῖνει ἐξ ὧν σὺ ὁμολογεῖς, τὸ μετὰ
μορίου ἀρετῆς πράττειν ὅτι ἂν πράττῃ, τοῦτο ἀρετὴν εἶναι·            5
τὴν γὰρ δικαιοσύνην μόριον φῂς ἀρετῆς εἶναι, καὶ ἕκαστα
τούτων. τί οὖν δὴ τοῦτο λέγω; ὅτι ἐμοῦ δεηθέντος ὅλον
εἰπεῖν τὴν ἀρετήν, αὐτὴν μὲν πολλοῦ δεῖς εἰπεῖν ὅτι ἐστίν,
πᾶσαν δὲ φῂς πρᾶξιν ἀρετὴν εἶναι, ἐάνπερ μετὰ μορίου
ἀρετῆς πράττηται, ὥσπερ εἰρηκὼς ὅτι ἀρετή ἐστιν τὸ ὅλον            c
καὶ ἤδη γνωσομένου ἐμοῦ, καὶ ἐὰν σὺ κατακερματίζῃς αὐτὴν
κατὰ μόρια. 
그렇다면 자네가 동의하는 것들로부터, 어떤 일을 수행하든 덕의
일부를 동반하여 수행한다는 것, 이것이 덕이라고 귀결되지 않나?
정의가 덕의 일부라고 자네가 주장하고, 저것들 각각도 그리
주장하니까 말일세. 그러니 정말이지 내가 무슨 이유로 이런
말을 하고 있겠나? 내가 덕 전체를 이야기해달라 요청했음에도,
자네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것에서는 한참이나 멀리 떨어져,
반면에 모든 행위를, 만일 덕의 부분을 동반하여 수행된다면 
그 어떤 경우든 덕이라고 주장하니, 마치 자네는 전체로서의
덕이 무엇인지 이야기했고 나는 이제 알게 되리라는 듯이, 또
설령 자네가 덕을 부분들로 조각내 버린다 하더라도 그렇다는 듯이
주장하기 때문이라네.
>79b7 τί .... ὅτι: ti 이유에 상응되는 이유절 hoti. 79a8-9에서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등장하고 있다. '무엇 때문인가?' '~라는 것
때문이다.'
>79b7-8 ὅλον ... τὴν ἀρετήν: Predicative Accusative.
Smyth. 1613. Verbs meaning to appoint, call, choose, consider, make,
name, show, and the like, may take a second accusative as a predicate
to the direct object. Cf. 1614-1618.
CG. 30.10. The following verbs (→26.12) take a direct object (X) and
a predicative complement (Y) that agrees with that object (and thus
also stands in the accusative; this, too, is often called a 'double accusative'):
αἱρέομαι, ἡγέομαι, τίθημι, καθίστημι, καλέω, λέγω, νομίζω, ποιέω.
>79b8 πολλοῦ δεῖς: LSJ δέω(B) A 2.
Smyth. 1392. With verbs to cease, release, remove, restrain, give up,
fail, be distant from, etc., the genitive denotes separatino.
CG. 30.34. The genitive of separation is used with verbs of motion
to express the place or entity from which the motion takes place.
This use is rare in prose.
>79b9-c1: 플라톤 이전 전통에 따라 행위를 덕으로 간주하는 단계에서
플라톤에 의해 행위가 아닌 행위자 중심으로 덕을 규정하는 단계로
넘어가는 장면으로 볼 수 있다. Cf. Julia Annas의 『국가』 행위윤리에서
덕윤리로의 이행에 관한 언급. 
                 δεῖται οὖν σοι πάλιν ἐξ ἀρχῆς, ὡς ἐμοὶ δοκεῖ,
τῆς αὐτῆς ἐρωτήσεως, ὦ φίλε Μένων, τί ἐστιν ἀρετή, εἰ
μετὰ μορίου ἀρετῆς πᾶσα πρᾶξις ἀρετὴ ἂν εἴη; τοῦτο γάρ              5
ἐστιν λέγειν, ὅταν λέγῃ τις, ὅτι πᾶσα ἡ μετὰ δικαιοσύνης
πρᾶξις ἀρετή ἐστιν. ἢ οὐ δοκεῖ σοι πάλιν δεῖσθαι τῆς
αὐτῆς ἐρωτήσεως, ἀλλ᾿ οἴει τινὰ εἰδέναι μόριον ἀρετῆς ὅτι
ἐστίν, αὐτὴν μὴ εἰδότα;
                     그러니 자네로서는, 내게 여겨지기로는, 덕에
대한 똑같은 질문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겠네, 친애하는 메논.
덕이란 무엇인가? 만일 덕의 부분을 동반하는 모든 행위가
덕이라면 말일세. 왜냐하면, 누군가가, 정의를 동반하는 모든
행위가 덕이라고, 말할 경우에는, 그걸 말하는 것이니까. 아니면
자네에게는 같은 질문을 다시 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지지 않고, 
오히려 누군가가 덕의 부분이 무엇인지를, 그 덕을 알지 못하는데도, 
안다고 생각하는 겐가?

ΜΕΝ. Οὐκ ἔμοιγε δοκεῖ.                                                           10
적어도 제게는 그리 여겨지지 않습니다.

ΣΩ. Εἰ γὰρ καὶ μέμνησαι, ὅτ᾿ ἐγὼ σοι ἄρτι ἀπεκρινάμην                d
περὶ τοῦ σχήματος, ἀπεβάλλομέν που τὴν τοιαύτην ἀπό-
κρισιν τὴν διὰ τῶν ἔτι ζητουμένων καὶ μήπω ὡμολογημένων
ἐπιχειροῦσαν ἀποκρίνεσθαι.
그야 자네가 기억하기도 한다면 말이네만, 내가 자네에게 방금
형태에 관련하여 답하던 때, 여전히 추구되고 있으며 아직 동의되지
않은 그런 것들을 통해 답하고자 시도하는 이러한 답변을 우리가
아마도 거부하던 참이었으니 말일세.

ΜΕΝ. Καὶ ὀρθῶς γε ἀπεβάλλομεν, ὦ Σώκρατες.                            5
그럼요, 우리가 옳게 거부했던 것이죠, 소크라테스.

ΣΩ. Μὴ τοίνυν, ὦ ἄριστε, μηδὲ σὺ ἔτι ζητουμένης ἀρετῆς
ὅλης ὅτι ἐστὶν οἴου διὰ τῶν ταύτης μορίων ἀποκρινόμενος
δηλώσειν αὐτὴν ὁτῳοῦν, ἢ ἄλλο ὁτιοῦν τούτῳ τῷ αὐτῷ
τρόπῳ λέγων, ἀλλὰ πάλιν τῆς αὐτῆς δεήσεσθαι ἐρωτήσεως,        e
τίνος ὄντος ἀρετῆς λέγεις ἃ λέγεις· ἢ οὐδέν σοι δοκῶ
λέγειν;
그러니, 훌륭한 친구, 자네도 더 이상 덕 전체가 그것이 무엇인지
탐구되고 있음에도 이러한 덕의 부분들을 통해 답을 함으로써 

누구에겐들 그 덕을 밝혀주리라 생각하거나, 혹은 그 밖의 무엇이든

바로 이와 같은 방식으로 말함으로써 그리하려 생각하지 말고,

같은 질문이 다시 필요하리라 생각해 주게, 덕이 무엇이길래 자네가

말하는 것들이 그 덕에 대한(속한) 것들이라 말하는지 말일세. 아니면 

자네에게는 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고 여겨지는가?
> 79e2 τίνος ὄντος ἀρετῆς: 아마도 e1 ἐρωτήσεως의 gen.에

attraction된 것으로 추정. 
ΜΕΝ. Ἔμοιγε δοκεῖς ὀρθῶς λέγειν.
적어도 제겐 당신께서 옳게 말씀하고 계신 것으로 여겨집니다.

ΣΩ. Ἀπόκριναι τοίνυν πάλιν ἐξ ἀρχῆς· τί φῂς ἀρετὴν                   5
εἶναι καὶ σὺ καὶ ὁ ἑταῖρός σου;
그럼 처음부터 다시 답해 주게나. 자네 자신도 그리고 자네의
동료도 덕을 무엇이라고 주장하는가?

> 79e5 Ἀπόκριναι: ἀποκρῖναι가 aor. act. inf., 여기에서는 강세를 볼 때

2nd. sg. aor. mid. imper.. 또한 act.가 아닌 mid.일 때 '대답하다'의 뜻이라는

점도 고려. 

+ Cf. 75c. Smyth. 813. Deponents with Passive Meaning - Some deponent verbs have

a passive meaning. This is avoided by good writers in the present

and imperfect or future passive, is not frequent in the aorist, but is

common in the perfect and pluperfect passive. Thus ἀπεκρίνεται (ἀπεκρίθη)

ταῦτα 'this answer is (was) made' is not good Greek. Few verbs

show the passive meaning in most of these tenses...
-蟲-

미카엘 프레데의 해석 제안에 따르자면 『소피스트』에서 einai는 자체적 용법과 관계적 용법의 두 가지 사용 방식을 지닌다. 전자는 본질이나 정의의 차원에서 형상에 대해 서술하는 반면, 후자는 서술 대상이 참여를 통해 지니는 내용들을 서술한다. 이로부터 형상은 자기술어화를 통한 자체적 자기서술과 자기참여를 통해 관계적 자기서술이라는 두 가지 방식으로 서술될 수 있으며, 이 두 경우 모두는 다시 동일성 서술과 구분된다. A가 A와 동일하다는 것은 A가 A 이외의 B 또는 C와 동일하다고 서술될 때와 마찬가지로, A가 지니는 어떤 무엇과의 '동일성'에 초점이 맞추어 서술되는 것이다. 반면 자기술어화 서술이든 자기참여 서술이든 이는 서술 대상이 무엇인지, 무엇으로 있는지, 어떻게 존재하는지 등으로 표현될 수 있는 to on, being의 측면을 서술하는 것이다. A가 A이거나 A하다는 것은 A가 A와 같다는 것과는 다른 측면에 초점을 맞춘 서술이다. 따라서 이 세 경우 각각의 부정 역시 비본질적이라는 것, 참여를 통한 속성 획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비동일성(다름)을 속성으로 지닌다는 것으로 그 의미가 구분된다. 일상적인 단순부정서술은 두 번째 부정서술에 해당하며, 다른 한편 비동일성을 속성으로 지니는 경우도 다시금 그러한 것으로서 자체적으로 있는지 아니면 관계적으로 있는지에 따라 두 차원에서 서술이 구분될 수 있다. 동일성부정(비동일성) 서술과 단순부정 서술의 구분이 필요하며, 이를 주장하는 미카엘 프레데의 해석이 프레게-러셀 이후 영미 전통에 따른 be 동사 의미구분에 근거한 전통적인 『소피스트』 해석과 이러한 의미구분을 극복해내지만 미카엘 프레데가 요청하고 제안하는 두 가지 부정 사이의 구분에는 이르지 못하는 레슬리 브라운의 해석 둘 모두에 비해 『소피스트』에 대한 더욱 정당하고 일관된 해석이라 본다. 

 

다른 한편 『티마이오스』에서는 영혼의 제작 과정을 묘사하면서 우주 제작자가 있는 것, 같은 것, 다른 것이라는 세 가지 것들을 자체적으로 같은 상태를 유지하는 영역과 변화생멸하는 영역의 양편에서 그 중간의 것으로서 취해 영혼의 재료로 삼는 듯한 묘사를 한다. 그러나 이 양쪽 영역 각각이 도대체 무엇이고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리 많은 설명이 주어지지 않는다. 또한 저 세 가지 것들 각각이 어떻게 위의 상이한 두 영역 각각에서 성립하는지, 그리고 그 중간적인 제 3의 것이 어떻게 성립되고 또 그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등도 충분한 설명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앞서 소개한 einai(to be)의 두 용법을 고려하고, 또한 모든 각각의 것은 예외없이 전부 to on(the being)에 참여해야만 한다는 『소피스트』의 입장을 전제할 경우, 『티마이오스』에서 축약적으로 소개된 영혼 제작의 과정에서 제기되는 의문들에 답할 하나의 가능한 방법이 마련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같은 것 그리고 다른 것 각각의 그 자체가 아닌 그것들의 있음(ousia)을 양편에서 취한다는 『티마이오스』에서의 언급은, 있는 것과 달리 다른 것은 언제나 다른 것에 대해서(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서) 진술된다는 언급과 그러한 것들이 to on에 대한 참여를 통해 to on 자체와 마찬가지로 두 가지 용법으로 서술되기 시작한다는 미카엘 프레데의 해석을 적용할 경우 그 서술 방식의 불가피함을 설명할 길이 열리는 듯도 하다.

 

좀 더 세부사항을 따져볼 게 많지만, 일단 이런 식으로 접근해 들어갈 수 있지는 않을까 정도의 생각.

 

-蟲-

ΣΩ. Τί δ᾿; ἐπίπεδον καλεῖς τι, καὶ ἕτερον αὖ στερεόν,                     76a
οἷον ταῦτα τὰ ἐν ταῖς γεωμετρίαις;
그런데 어떤가? 자네는 면이라고 어떤 것을 부르고, 이번엔
또 다른 것을 입체라고, 이를 테면 기하학에 속하는 그런
것들로 부르지?

ΜΕΝ. Ἔγωγε καλῶ.
저로서는 그리 부르지요.

ΣΩ. Ἤδη τοίνυν ἂν μάθοις μου ἐκ τούτων σχῆμα ὃ
λέγω. κατὰ γὰρ παντὸς σχήματος τοῦτο λέγω, εἰς ὃ τὸ                      5
στερεὸν περαίνει, τοῦτ᾿ εἶναι σχῆμα· ὅπερ ἂν συλλαβὼν
εἴποιμι στερεοῦ πέρας σχῆμα εἶναι.
그러니 이제 자네는 그런 것들로부터 내가 말하는 형태를
이해했을 걸세. 내가 모든 형태에 대해서 이걸, 입체가
그것에 이르러 한정되는 바의 것을, 그것이 형태인 것이라
말하고 있으니까. 포괄적으로는 입체의 한계가 형태인 것이라
내가 이야기할 수 있을 테지.

ΜΕΝ. Τὸ δὲ χρῶμα τί λέγεις, ὦ Σώκρατες;
그런데 당신께서는 색채를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소크라테스?

ΣΩ. Ὑβριστής γ᾿ εἶ, ὦ Μένων· ἀνδρὶ πρεσβύτῃ πρά-
γματα προστάττεις ἀποκρίνεσθαι, αὐτὸς δὲ οὐκ ἐθέλεις                     10
ἀναμνησθεὶς εἰπεῖν ὅτι ποτε λέγει Γοργίας ἀρετὴν εἶναι.                    b
자네는 지나친 자라네, 메논. 나이 든 자에게 문제에 답하라고
명하면서, 스스로는 고르기아스께서 덕을 도대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기억해내 이야기해주려고는 하지 않는군.
> 76a9 ὑβριστής: Cf. 75b1 μή ff. 형태를 색이 따르는 것으로. 그러자
색을 묻고, 무한퇴행의 위험이 발생. 따라서 형태를 한계를 통해 설명.
그런데 메논은 다시 색에 대해 묻고 있다. 이는 대화의 진행을 무위로
돌리는 발언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강한 비판이 표현될 법하다.
소크라테스가 말해주면 메논도 말해줄 의사가 있다고 했음에도 이
약속을 어기는 것이 되기도 한다.
> 76a10 ἀποκρίνεσθαι: Smyth. 1969., 2001-4.. C. Infinitive after Adjectives, Adverbs,
and Substantives. The infinitive serves to define the meaning ability, fitness, capacity,
etc. (and their opposites), and generally those analogous in meaning to verbs which
take the infinitive (2000). Here the datival meaning (purpose, destination) is often apparent.
Cp. 1969. The infinitive was originally a verbal noun in the dative (in part possibly
also in the locative) case. The use to express purpose (2008) is a survival of the
primitive meaning, from which all the other widely diverging uses were developed
in a manner no longer always clear to us. But the to or for meaning seen in
μανθάνειν ἤκομεν we have come to learn (for learning) can also be discerned
in δύναμαι ἰδεῖν I have power for seeing. then I can see. Cp. 2000, 2006 a.
As early as Homer, when the datival meaning had been in part obscured, the
infinitive was employed as nominative (as subject) and accusative (as object).
After Homer, the infinitive came to be used with the neuter article, the subtantive
idea thus gaining in definiteness. The article must be used when the infinitive
stands as an object in the genitive or dative, and when it depends on prepositions.
Cf. 71e3 ἱκανὸν εἶναι: CG 51.9. The dynamic infinitive is also used
to complement certain adjectives and nouns with meanings similar
to those listed above, i.e. expressing ability, possibility, need, desire, etc.
Cf. 51.8-51.18. Dynamic Infinitives. CG. 51.16. Dynamic Infinitives Expressing 
Purpose or Result: A dynamic infinitive is added regularly to verbs meaning 
'give', 'entrust', 'take', 'receive', etc., or verbs meaning 'have(at one's disposal)', 
to express purposeorresult (without ὥστε or ὡς). This use of the infinitive is usually 
called final-consecutive.
Cf. CG. 51.18. Especially in poetry, the dynamic infinitive is sometimesused to 
limit or specify the meaning of an adjective or noun (other than those with 
the types of meaning listed in 51.9); the infinitive in this use is often called 
epexegetic(al). In such cases the infinitive does not express purposeorresult; 
in sense this use is similar to the accusative of respect, for which → 30.14.
Cf. 75c7 ἀποκεκρίσθαι: LSJ ἀποκρίνω A IV. Med., ἀποκρίνομαι, fut. -ῐνοῦμαι, etc.:
Pl. uses pf. and plpf. Pass. in med. sense, Prt. 358a, Grg. 463c, etc., but also in pass.
sense (v. infr.): Smyth. 813. Deponents with Passive Meaning. Some Deponent verbs
have a passive meaning. This is avoided by good writers in the present and imperfect
or future passive, is not frequent in the aorist, but is common in the perfect and
pluperfect passive. Thus ἀπεκρίνεται (ἀπεκρίθη) ταῦτα this answer is (was) made
is not good Greek. Few verbs show the passive meaning in most of these tenses;
...d. Perfect and Pluperfect: e.g. ἀποκρίνομαι.
> 76b1 ἀναμνησθείς: Resultative Aorist. Cf. 70b3 ἀφικόμενος: Smyth. 1926. Resultative Aorist.―
In contrast to the imperfect (and present) the aorist denotes
the result, end, or effect of an action.
Aorist 관련. Cf., CG. 33.31-33.33. Non-Past Uses of the Aorist. 
Rijksbaron. 8.3.2. The aorist indicative of performative verbs
Passive 관련. Cf. CG. Verbs with Only One Voice. Middle-Passive Meanings. 35.19. (Change of) Mental State.

ΜΕΝ. Ἀλλ᾿ ἐπειδάν μοι σὺ τοῦτ᾿ εἴπῃς, ὦ Σώκρατες,
ἐρῶ σοι.
허나 당신께서 제게 저걸 이야기해주시고 나면, 소크라테스,
제가 당신께 말씀드리지요.

ΣΩ. Κἂν κατακεκαλυμμένος τις γνοίη, ὦ Μένων, διαλε-
γομένου σου, ὅτι καλὸς εἶ καὶ ἐρασταί σοι ἔτι εἰσίν.                           5
가림막에 덮인 누군가라도, 메논, 자네와 대화하면 알게
될 걸세, 자네가 아름다운 자이며 자네에게 여전히 연인들이
있다는 걸 말일세.
> 76b4-5 διαλεγομένου σου: Participles. Smyth. 2060-2069: Circumstantial in general.
Time, Manner, Means, Cause, Purpose or Object, Opposition or Concession,
Condition, and Any Attendant Circumstance. The force of these circumstantial
participles does not lie in the participle itself, but is derived from the context.
Unless attended by some modifying adverb the context often does not decide
whether the participle has a temporal, a causal, a conditional, a concessive force,
etc.; and some participles may be referred to more than one of the above classes.
Cf. CG. 52.29-52.45. The Circumstantial Participle.

ΜΕΝ. Τί δή;
왜 그렇지요?

ΣΩ. Ὅτι οὐδὲν ἀλλ᾿ ἢ ἐπιτάττεις ἐν τοῖς λόγοις, ὅπερ
ποιοῦσιν οἱ τρυφῶντες, ἅτε τυραννεύοντες ἕως ἂν ἐν ὥρᾳ
ὦσιν, καὶ ἅμα ἐμοῦ ἴσως κατέγνωκας ὅτι εἰμὶ ἥττων τῶν                   c
καλῶν· χαριοῦμαι οὖν σοι καὶ ἀποκρινοῦμαι.
자네가 논의들 속에서 요구하는 것이, 까탈스런 자들이 하는
일에 다름 아니라는 점에서 말일세. 한창 때에 있는 동안에
그들은 참주 노릇을 하니. 그와 동시에 자네는 나를 두고서
내가 아름다운 자들에게 약하다는 걸 알아차렸을 것 같네.  
그러니 내가 자네에게 호의를 보이며 대답하겠지.

ΜΕΝ. Πάνυ μὲν οὖν χάρισαι.
그렇다면 마땅히 제게 호의를 보여 주십시오.

ΣΩ. Βούλει οὖν σοι κατὰ Γοργίαν ἀποκρίνωμαι, ᾗ ἂν
σὺ μάλιστα ἀκολουθήσαις;                                                           5
그럼 자네가 괜찮다면 내 자네에게 고르기아스를 따라
답을 해줄까? 자네가 가장 잘 따라갈 만한 방식으로
말이지.
> 76c4 βούλει: Cf. 75b2 βούλει ... subjunctive: 
Smyth. 1806. Deliverative Subjunctive.
   CG. 34.8. n.2 In dialogue, deliberative subjunctives are 
sometimes introduced by βούλει/ουλέσθε or θέλεις do you want ...;
in such cases the speaker asks the addressee whether
he/she should do something.
> 76c4-5 ἄν ... ἀκολουθήσαις: ἄν + opt. aor.

ΜΕΝ. Βούλομαι· πῶς γὰρ οὔ;
그리 해주시길 바랍니다. 그야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ΣΩ. Οὐκοῦν λέγετε ἀπορροάς τινας τῶν ὄντων κατὰ
Ἐμπεδοκλέα;―ΜΕΝ. Σφόδρα γε.―ΣΩ. Καὶ πόρους εἰς
οὓς καὶ δι᾿ ὧν αἱ ἀπορροαὶ πορεύονται;―ΜΕΝ. Πάνυ γε.
―ΣΩ. Καὶ τῶν ἀπορροῶν τὰς μὲν ἁρμόττειν ἐνίοις τῶν                     10
πόρων, τὰς δὲ ἐλάττους ἢ μείζους εἶναι;―ΜΕΝ. Ἔστι                     d
ταῦτα.―ΣΩ. Οὐκοῦν καὶ ὄψιν καλεῖς τι;―ΜΕΝ. Ἔγωγε.
―ΣΩ. Ἐκ τούτων δὴ "σύνες ὅ τοι λέγω," ἔφη Πίνδαρος.
ἔστιν γὰρ χρόα ἀπορροὴ σχημάτων ὄψει σύμμετρος καὶ
αἰσθητός.                                                                                5
그럼 당신들은 있는 것들의 어떤 흐름들을 엠페도클레스에
따라 말하지 않는가?―더할 나위 없이요.―그러한 흐름들이
그쪽으로 그리고 그를 통해 진행하는 경로들도 말하지 않나?
―물론입니다.―그 흐름들 중 어떤 것들은 그 경로들 중 일부의
것들과 조화를 이루는데, 어떤 것들은 더 적거나 더 큰 것들이라
말하기도 하지 않나?―그런 것들이라고 말합니다.―그럼 자네는
어떤 것을 시각이라고도 부르지 않나?―저로서는요.―그래서
이러한 일들로부터, 핀다로스가 말씀하셨듯, "내가 말하니 들으시오." 
즉 형태들의 경로로서 시각과 척도를 공유하고(시각으로 측정되고)
지각된 바의 것이 색이란 말일세.
> 76d5 αἰσθητός: Cf. Plato. Phaedo 83b "εἶναι δὲ τὸ μὲν τοιοῦτον 
αἰσθητόν τε καὶ ὁρατόν, ὃ δὲ αὐτὴ ὁρᾷ νοητόν τε καὶ ἀιδές."
Cf. Plato. Timaeus 67c "...ὄψει σύμμετρα μόρια ἔχουσαν πρὸς αἴσθησιν· 
ὄψεως δʼ ἐν τοῖς πρόσθεν αὐτὸ περὶ τῶν αἰτίων τῆς γενέσεως ἐρρήθη."

ΜΕΝ. Ἄριστά μοι δοκεῖς, ὦ Σώκρατες, ταύτην τὴν
ἀπόκρισιν εἰρηκέναι.
제게는, 소크라테스, 당신께서 이 대답을 아주 훌륭하게
이야기하신 것으로 여겨집니다.
> 76d6 δοκεῖς: Smyth. 1998. The present and aorist infinitive (both timeless) are
the usual tenses of the infinitive after verbs of will or desire (see 1869). The perfect
is rare; as εἶπον τὴν θύρᾱν κεκλεῖσθαι (1997). δοκῶ and δοκῶ μοι signifying 'I have
a mind to' or 'I am determined to' take the present or aorist like δοκεῖ; τὸν ὄνον
ἐξάγειν δοκῶ 'I have a mind to bring out the ass AR. Vesp. 177, ἐγὼ οὖν μοι δοκῶ
. . . ὑφηγήσασθαι κτλ. 'now I have a mind to show, etc. P. Eu. 288c. Cp. 1983 a.
When it is clearly denoted that the action resolved on is to follow without delay
the future is used; as in ἀλλά μοι δοκῶ . . . οὐ πείσεσθαι αὐτῷ 'but I am determined
that I will not accept his opinion' P. Th. 183 d.
 a. Some verbs, as κελεύω, which might be held to introduce indirect discourse,
are classed under verbs of 'will' or 'desire', because, like these verbs, they do not
regularly take the future infinitive; and because, ulike verbs of 'saying' and 'thinking'
(which admit all the tenses of the infinitive) they introduce infinitives
which do not show differences of time. The future infinitive does nor express a
command. For a few cases of the future after verbs of 'will' or 'desire', see 1869.
CG. 51.15. Tense and Aspect of Dynamic Infinitives.
The dynamic infinitive is limited almost exclusively to the present and aorist
stems (the perfect is rare; the future infinitive is never dynamic). Both refer to
actions which may or may not occur, normally posterior to the matrix verb; the
difference between the stemsis purely aspectual (→ 33.63-5):
- the present infinitive refers to actions as a process (ongoing or repeated;
imperfective aspect);
- the aorist infinitive refers to actions presented as complete and therefore in
their entirety (perfective aspect).

ΣΩ. Ἴσως γάρ σοι κατὰ συνήθειαν εἴρηται· καὶ ἅμα
οἶμαι ἐννοεῖς ὅτι ἔχοις ἂν ἐξ αὐτῆς εἰπεῖν καὶ φωνὴν ὃ ἔστι,
καὶ ὀσμὴν καὶ ἄλλα πολλὰ τῶν τοιούτων.                                     e
아마도 자네에게 익숙한 방식에 따라 이야기되었기 때문인
것 같군. 또한 동시에 내 생각에는 자네가 그 방식으로부터
소리 또한 무엇인지를, 그리고 냄새도 그렇고 이런 것들 중
여타의 여러 가지 것들 또한 무엇인지를 이야기할 수 있으리란
점을 이해할 걸세.
>76d9 ἔχοις ἄν: Cf. Smyth. 1824-34. Optative with ἄν. Potential Optative.
Cf. CG. 34.13. The optative with ἄν is used to indicate that the realization 
of an action is possible: the potential construction. This construction 
is used to express a range of nuances:
- to describe actions that might hypothetically occur, or to make a weak assertion
(i.e. to state something more cautiously than with the indicative).
- the second-person potential optative can express a cautious command or
request; the first-person potential optative can indicate that someone cautiously
takes permission to do something, or complies with an order or request.

ΜΕΝ. Πάνυ μὲν οὖν.
그야 물론입니다.

ΣΩ. Τραγικὴ γάρ ἐστιν, ὦ Μένων, ἡ ἀπόκρισις, ὥστε
ἀρέσκει σοι μᾶλλον ἢ ἡ περὶ τοῦ σχήματος.
왜냐하면 그 대답이 비극조라서, 메논, 형태에 관한
답보다 훨씬 더 자네를 만족시켜 주기 때문이지.
>76e3 ὥστε ἀρέσκει: Cf. CG. 46. Result Clauses. 
46.4. When ote is used with an indicative, the result 
is presented as fact, i.e. actually taking place at a particular point 
in time. The negativeis οὐ.
46.5. Other moods of independent sentences may also be used:
- ὥστε + ἄν + optative (potential, 34.13) indicates that a possibility 
(actually) results from an action;
- ὥστε + ἄν + modal indicative (counterfactual, 34.16) indicates that 
as the result of an action, another action would (have) come about if
certain conditions had been met (but they are/were actually not met).
46.7. With the Infinitive.
When ὥστε/ὡς is used with the (accusative and) infinitive, the speaker 
presents the result as one which naturally or inevitably results from 
the action in the matrix clause. It is not specified whether or not 
the result actually occurs or has occurred, merely that the action 
in the matrix clauseis of a kind which enables or favours the bringing 
about of the result. The negativeis μή.
Cf. Smyth. 2250-2256. Result(Consecutive) Clauses.
2257-2259. Difference between ὥστε with the Indicative and ὥστε
with the Infinitive.
2260-2272. ὥστε (rarely ὡς) with the Infinitive.
2273-2278. ὥστε (ὡς) with a Finite Verb.

ΜΕΝ. Ἔμοιγε.                                                                          5
저야 그렇습니다.

ΣΩ. Ἀλλ᾿ οὐκ ἔστιν, ὦ παῖ Ἀλεξιδήμου, ὡς ἐγὼ ἐμαυτὸν
πείθω, ἀλλ᾿ ἐκείνη βελτίων· οἶμαι δὲ οὐδ᾿ ἂν σοὶ δόξαι,
εἰ μή, ὥσπερ χθὲς ἔλεγες, ἀναγκαῖόν σοι ἀπιέναι πρὸ τῶν
μυστηρίων, ἀλλ᾿ εἰ περιμείναις τε καὶ μυηθείης.
하지만, 알렉시데모스의 자제분, 내가 스스로 납득하기로는,
이게 아니라 저 방식이 더욱 낫다네. 그런데 나는 자네 또한
그리 여기지 않으리라 생각한다네, 만일, 어제 자네가 말하던
그대로, 자네가 비의들에 앞서 필연적으로 떠날 수밖에 없는
게 아니라, 머무르며 입교한다면 말이지.
> 76e7 οὐδ᾿: 74e5 οὐδὲ. Smyth. 2930, 2932. οὐδέ (μηδέ)
as a conjunction (and not, nor) connects two or more 
whole clauses. 
Cp. 2931. Advervial οὐδέ (μηδέ) not even, not . . . either, 
also ... not, nor yet (ne ... quidem). 
Cp. the use of καί even, also in affirmative sentences; 
as οὐδ᾿ ὥς not even in that case (καὶ ὥς even in that case).
Cf., CG. 56.1. 59.31. οὐδέ/μηδέ is the negative of καί (59.20);
it is used only after a preceding negative:
οὐ X οὐδέ Y = "not X; and not Y" (and not, but not, nor)
Cp., 59.56. For οὐδέ/μηδέ not even (as the negative of adverbial καί).
>76e9 μυηθείης: Plato's uses of μθηθείης(μυέω). Plato. Epinomis 986d /
Plato. Gorgias 497c / Plato. Letters 333e / Plato. Phaedo 81a /
Plato. Phaedrus 250c / Plato. Symposium 210a

ΜΕΝ. Ἀλλὰ περιμένοιμ᾿ ἄν, ὦ Σώκρατες, εἴ μοι πολλὰ                 77a
τοιαῦτα λέγοις.
그럼 머무르도록 하겠습니다, 소크라테스, 만일 제게 당신께서
이런 여러 가지 것들을 말씀해 주실 것이라면 말이죠.

ΣΩ. Ἀλλὰ μὴν προθυμίας γε οὐδὲν ἀπολείψω, καὶ σοῦ
ἕνεκα καὶ ἐμαυτοῦ, λέγων τοιαῦτα· ἀλλ᾿ ὅπως μὴ οὐχ οἷός
τ᾿ ἔσομαι πολλὰ τοιαῦτα λέγειν. ἀλλ᾿ ἴθι δὴ πειρῶ καὶ                      5    //210504
σὺ ἐμοὶ τὴν ὑπόσχεσιν ἀποδοῦναι, κατὰ ὅλου εἰπὼν ἀρετῆς
πέρι ὅτι ἐστιν, καὶ παῦσαι πολλὰ ποιῶν ἐκ τοῦ ἑνός, ὅπερ
φασὶ τοὺς συντρίβοντάς τι ἑκάστοτε οἱ σκώπτοντες, ἀλλὰ
ἐάσας ὅλην καὶ ὑγιῆ εἰπὲ τί ἐστιν ἀρετή. τὰ δέ γε παρα-
δείγματα παρ᾿ ἐμοῦ εἴληφας.                                                    b
그럼 물론 나는 의욕을 전혀 남김 없도록 하겠네, 자네를 위해서도
나 자신을 위해서도, 이런 것들을 말하면서 말일세. 허나 이런
여러 가지 것들을 내가 말하지 못하지는 않을까 싶군. 그럼, 자,
자네도 내게 약속을 지켜주는 일을 시도해 주게나. 덕에 관련하여
그것이 무엇인지를 그 전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하나로부터
여러 가지 것들을 만드는 일, 어떤 것을 산산조각내는 자들을
두고 그 때마다 조롱하는 자들이 말하는 바로 그 일을 그만두고,
덕 전체를 놓아두고서 덕이 무엇인지를 온전하게 이야기해 주게.
그런데 그 본들은 자네가 내게서 파악했지.
> 77a4 ὅπως μή: 1) ~않길 바라다. Cf., Smyth. 1921; CG. 45.2. Construction 
of Purpose Clauses. Greek purpose clauses are introduced by ἵνα, ὅπως
and sometimes ὡς in order that, in order to, so that, (so as) to.
Negative purpose clauses are introduced by ἵνα μή, ὅπως μή, ὡς μή and
occasionally by μή alone: in order that not, etc., to prevent/avoid that.
Note 1: In poetry, the conjunction ὄφρα is occasionally used in purposeclauses.
2) 'μή'에 주목할 경우, ~하지 않을까 (염려) 한다. Cf., Smyth. 1801-1803;
CG. 43.1-6. <하지만 이 경우 subjunctive가 요청된다.>
> 77a5-6 πειρῶ ... ἀποδοῦναι: Object Infinitive after Verbs of Will or Desire.
Cf., Smyth. 1991.-1999.; Infinitive after Other Verbs. Smyth. 2000.
CG. 51.2. The dynamic infinitive: to complement verbs meaning
'must', 'can', 'be able', etc. (modal verbs);
'want', 'desire', 'dare', 'try', etc. (desiderative/volitional verbs);
'be good at', 'teach how to', 'learn how to', etc. (practical Knowledge verbs);
'command', 'suggest', 'compel', etc. (manipulative verbs);
'begin', 'stop', etc. (phase verbs);
and certain adjectives and nounswith similar meanings;
for details, CG. 51.8-18;
> 77a7 παῦσαι ... ποιῶν: Supplementary Participle. Cf. Smyth. 2046-2048, 2088-2145;
CG. 52.8-52.28. Supplementary: the participle is used as an obligatory constituent with verbs.
+ 52.22-52.27. Verbs Taking a Participle or an Infinitive: Verbs of Knowledge.
52.22 The main characteristic of the participial complementis that it refers to Actions
which actually occur, or expresses propositional content which is actually true (→ 52.8).
These values becomeparticularly clear in the case of verbs which may be construed with
either a participle or an infinitive: infinitives with such verbs express actions which may or
may not occur or propositional content which may or may not be true (→ 51.3).
52.23 Many verbs of knowledge take either a participle to express intellectual Knowledge
('know that something is the case'), or a dynamic infinitive to express practical Knowledge
('know how to do something', → 51.8): examples are
οἶδα know that (+ ppl.)/know how to (+ inf.),
ἐπίσταμαι understand that(+ ppl.)/know howto(+ inf.),
μανθάνω learn that (+ ppl.)/learn how to (+ inf.):
52.24 Some verbs are used either as a verb of intellectual knowledge (with a participle) or
as a verb of opinion (with a declarative infinitive): the difference is one of degree in certainty.
Examples are ὑπολαμβάνω assume that (+ inf.) / grasp that (+ppl.);
εὑρίσκω think (upon reflection) that (+ inf.) / find that (+ ppl.),
αἰσθάνομαι believe that (+ inf.) / perceive that (+ ppl.).
To this group also belongs φαίνομαι seem (+ inf.) / appear, prove to (+ ppl.):
52.25 Similarly, a few verbs are used either as a verb of (conveying) intellectual knowledge (with a participle)
or as a declarative utterance verb (with a declarative infinitive).
Again, the difference resides in the degree of certainty.
The most important of these are
ἀγγέλλω relay (the fact) that (+ ppl.)/report (the rumour) that (+ inf.),
ἀκούω be informed (of the fact) that (+ ppl.)/be told (the rumour) that (+ inf.),
and πυνθάνομαι (same senses as ἀκούω):

ΜΕΝ. Δοκεῖ τοίνυν μοι, ὦ Σώκρατες, ἀρετὴ εἶναι, καθά-
περ ὁ ποιητὴς λέγει, "χαίρειν τε καλοῖσι καὶ δύνασθαι."
καὶ ἐγὼ τοῦτο λέγω ἀρετήν, ἐπιθυμοῦντα τῶν καλῶν δυνατὸν
εἶναι πορίζεσθαι.                                                                      5
그러니까 제게는, 소크라테스, 덕이란, 마치 그 시인께서
말씀하시듯, "아름다운 일들로 기뻐하며 또한 [그것들로 기뻐할]
능력이 있다는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저 역시도 이것을 덕으로
말하고 있으니, 아름다운 일들에 욕구하며 [그것들을] 가져올 능력이
있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 77b3 καλοῖσι: ionic. dat. pl. χαίρειν의 지배를 받는다.
Causal dat.의 의미가 함의되었을 수 있다.
> 77b3 δύνασθαι: 자체로 의미가 불완전해 보인다.
77b4-5에서 "δυνατὸν ... πορίζεσθαι"를 통해
의미를 보완할 수도 있을 것이다. by McKirahan...
> 77b4 ἐπιθυμοῦντα ... δυνατὸν ....: 전자는 행위 동기 이론과 관련,
후자는 결과의 획득 능력과 관련. 모든 인간이 아름답고 좋은 것을
바라고 즐거워하며, 또한 이를 얻어내는 능력이 곧 덕이다. 따라서
덕은 즐거운 상태이면서 즐거운 결과를 산출해낼 수 있는 능력이기도
하다. 동기와 결과를 결합시키는 것이 플라톤의 덕 정의 전략.
후자의 결과 중심에서 κάλον과 ἀγαθόν의 분리될 경우, ἀγαθόν만을
추구하는 결과주의적 입장은 칼리클레스의 입장 또는 참주적 삶을
묘사하게 된다.

ΣΩ. Ἆρα λέγεις τὸν τῶν καλῶν ἐπιθυμοῦντα ἀγαθῶν
ἐπιθυμητὴν εἶναι;―ΜΕΝ. Μάλιστά γε.―ΣΩ. Ἆρα ὡς
ὄντων τινῶν οἳ τῶν κακῶν ἐπιθυμοῦσιν, ἑτέρων δὲ οἳ τῶν
ἀγαθῶν; οὐ πάντες, ὤριστε, δοκοῦσί σοι τῶν ἀγαθῶν ἐπι-               c
θυμεῖν;―ΜΕΝ. Οὐκ ἔμοιγε.
혹시 자네는 아름다운 것들에 욕구하는 자가 훌륭한 일들에도 
열성적인 자인 것이라 말하는가?―특히나 그렇지요.―혹시 
어떤 이들은 나쁜 것들에 욕구하는 자들인 반면, 또 다른 자들은
좋은 것들에 욕구하는 자들이라 보면서 그리 말하나? 대단하기도
한 친구, 자네에게는 모든 이들이 좋은 것들에 욕구한다고 여겨지지
않는 것인가?―제게는 아니라고 여겨지네요.
> 77b6 τῶν καλῶν ... ἀγαθῶν: 전자가 후자로 대체되는 과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전자는 결과와 무관하게도 이해 가능. 반면
후자는 주로 결과적으로 이해된다. 아름답지 않게 좋은 결과를 얻는 일이
가능하다. 그러나 플라톤은 전자를 동반하지 않을 경우 진정한 좋은 것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는 것일 수 있다. 
> 77b8 ὡς: Cf., CG. 52.39. The relationship between participle and matrix verb 
may be made explicit by: ὡς to give a 'subjective' reason or motivation,
for which responsibility lies with the subject of the matrix verb
(because, thinking that, in the conviction that, as);
Smyth. 2086. With Participle of cause or purpose, etc. (2064, 2065): ὡς.
This particle sets forth the ground of belief on which the agent acts, and denotes
the thought, assertion, real or presumed intention, in the mind of the subject
of the principal verb or of some other person mentioned prominently in the
sentence, without implieating the speaker or writer.
d. ὡς with the absolute participle: "on the ground that ..." Cp. also 2078, 2122.
> 77c1-2: 행위의 동기 관련. Cf., <Gorgias> 468b "ἕνεκʼ ἄρα τοῦ 
ἀγαθοῦ ἅπαντα ταῦτα ποιοῦσιν οἱ ποιοῦντες."
이러한 동기 이론과 관련하여 소크라테스를 이기주의자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그러나 이는 이기주의와 행위자 관련성을 혼동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소크라테스를 의무론자로 해석하는 경우는
반대로 이러한 행위자 관련성을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

                                   ―ΣΩ. Ἀλλά τινες τῶν κακῶν;
―ΜΕΝ. Ναί.―ΣΩ. Οἰόμενοι τὰ κακὰ ἀγαθὰ εἶναι, λέγεις,
ἢ καὶ γιγνώσκοντες ὅτι κακά ἐστιν ὅμως ἐπιθυμοῦσιν αὐ-
τῶν;―ΜΕΝ. Ἀμφότερα ἔμοιγε δοκοῦσιν.―ΣΩ. Ἦ γὰρ                       5
δοκεῖ τίς σοι, ὦ Μένων, γιγνώσκων τὰ κακὰ ὅτι κακά ἐστιν
ὅμως ἐπιθυμεῖν αὐτῶν;―ΜΕΝ. Μάλιστα.―ΣΩ. Τί ἐπιθυ-
μεῖν λέγεις; ἦ γενέσθαι αὐτῷ;
―그럼 어떤 자들은 나쁜 것들에 욕구하는가?―네.―자네는 
그들이 나쁜 것들을 좋은 것들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리한다고 
말하는가, 아니면 그것들이 나쁜 것들이란 점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에 욕구한다고 말하는가?―제게는 
양쪽 방식으로 그들이 그러하다고 여겨집니다.―무슨 말인가, 
누군가가 자네에게는, 메논, 나쁜 것들이 나쁜 것들이란
점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에 욕구한다고
여겨진다는 건가?―무척이나 말이죠.―자네는 무슨 뜻으로
"욕구한다" 라고 말하는가? 정말로 그에게 그런 일이
이루어지기를 욕구한다고 말하는가?
> 77c5 ἦ γάρ: Smyth. 2865. 

                                       ―ΜΕΝ. Γενέσθαι· τί γὰρ
ἄλλο;―ΣΩ. Πότερον ἡγούμενος τὰ κακὰ ὠφελεῖν ἐκεῖνον                d
ᾧ ἂν γένηται, ἢ γιγνώσκων τὰ κακὰ ὅτι βλάπτει ᾧ ἂν
παρῇ;―ΜΕΝ. Εἰσὶ μὲν οἳ ἡγούμενοι τὰ κακὰ ὠφελεῖν,
εἰσὶν δὲ καὶ οἳ γιγνώσκοντες ὅτι βλάπτει.―ΣΩ. Ἦ καὶ
δοκοῦσί σοι γιγνώσκειν τὰ κακά ὅτι κακά ἐστιν οἱ ἡγού-                  5
μενοι τὰ κακὰ ὠφελεῖν;―ΜΕΝ. Οὐ πάνυ μοι δοκεῖ τοῦτό
γε.
                                      ―이루어지도록 그리 한다고
말합니다. 그야 제가 달리 무어라 말하겠습니까?―나쁜 
것들이 그에게 이루어질 저 사람이 그것들을 이롭다고 생각하며
그리 하나, 아니면 나쁜 것들이 그의 곁에 있을 그 사람이
그것들은 해롭다는 점을 알면서 그러는가?―어떤 이들은 나쁜
것들이 이롭다고 생각하는 자들이고, 또 다른 이들은 해롭다는
점을 아는 자들이기도 하지요.―정말로 자네에게는 나쁜 것들이
이롭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나쁜 것들은 나쁜 것들이라는 점을
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는 건가?―제게 딱히 그렇게는 여겨지지 
않습니다.
   ―ΣΩ. Οὐκοῦν δῆλον ὅτι οὗτοι μὲν οὐ τῶν κακῶν ἐπι-
θυμοῦσιν, οἱ ἀγνοοῦντες αὐτά, ἀλλὰ ἐκείνων (a)ἃ ᾤοντο ἀγαθὰ           e
εἶναι, ἔστιν δὲ ταῦτά γε κακά· ὥστε οἱ ἀγνοοῦντες αὐτὰ                      //210511
καὶ (b)οἰόμενοι ἀγαθὰ εἶναι δῆλον ὅτι (c)τῶν ἀγαθῶν ἐπιθυμοῦσιν.
ἢ οὔ;―ΜΕΝ. Κινδυνεύουσιν οὗτοί γε.
    ―그렇다면 이 자들, 나쁜 것들을 모르는 자들은 나쁜 것들에 
욕구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좋은 것들이라고 생각하는 저것들에
욕구한다는 게, 그러나 이것들은 적어도 나쁜 것들이라는 게
분명하군. 그래서 그 나쁜 것들을 모르면서 좋은 것들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은 좋은 것들에 욕구한다는 게 분명하지. 그렇지 
않나?―그런 자들은 그럴지도 모르겠긴 합니다.
> (a)와 (b)는 주관적 차원의 좋은 것. 그러나 (c)는 객관적 차원의 좋은 것.
   『고르기아스』에서는 객관적 좋음을 논하는 반면, 『메논』은 주관적 좋음을
논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이 두 대화편에서 제시되는 두 입장이 일관될 수 있는지
논쟁. 
  그러나 좋음의 범주 자체에 대한 정확한 앎이 없더라도 어떤 대상들을
좋음의 범주에 분류해 넣을 때 고려되는 좋음이란 객관적 기준이어야 할 것.
x를 좋다고 생각하며 욕구하는 자들은 좋은 것으로 분류될 것들이라면
실제로는 나쁜 것들만이 아니라 실제로 좋은 것들까지도, 고려 대상이
아직 아닌 것들까지도 욕구할 것이다. 달리 말하면 x 자체를 욕구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으로 분류될 임의의 것들을 욕구하며, 이 욕구의 이유는 분류되어 들어갈
그 상위류로서의 '좋은 것'에 있다.
 만일 좋은 것을 안다면, 즉 x가 좋은 것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러한 자는
x 자체를 직접적으로 바랄 것이고, 이를 알면서도 바라지 않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크라시아. 그러나 좋은 것을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의 욕구는 피분류항에서
개별적인 나쁜 것을 향하게 될지라도, 여전히 분류기준이 되는 본으로서의 좋은 것을
향한다. 좋은 것 그 자체를 지향하는 것은 개별적인 좋은 것을 추구하는 것과는 구분되는
상황일 것이다.
 이 경우 알지 못하는 것을 탐구할 수 있는지의 문제와 결부될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좋음 그 자체를 모르더라도 좋은 것들과 좋지 못한 것들을 모두 좋은
것들로 간주하면서 참이기도 하고 거짓이기도 한 믿음의 차원에 속할 수 있다.
 아마도 이러한 맥락에서 『파이돈』에서 '같은 것,' '큰 것,' '작은 것'에 대한 본이나 기준이

요청되는 과정이 관련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이것이 다시 상기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어떤 F 그 자체 없이는 F's에 대한 믿음이나 판단이 애초에 불가능하다.

> 『소크라테스의 변론』에서 소크라테스는 고대 그리스 영웅주의를 비판적으로 계승한다.
영웅주의 맥락에서 위험을 감수하는 태도는 소크라테스가 수용하는 측면으로 볼 수 있다.

ΣΩ. Τί δέ; οἱ τῶν κακῶν μὲν ἐπιθυμοῦντες, ὡς φῂς σύ,                    5
ἡγούμενοι δὲ τὰ κακὰ βλάπτειν ἐκεῖνον ᾧ ἂν γίγνηται,
γιγνώσκουσιν δήπου ὅτι βλαβήσονται ὑπ᾿ αὐτῶν;―ΜΕΝ.
Ἀνάγκη.―ΣΩ. Ἀλλὰ τοὺς βλαπτομένους οὗτοι οὐκ οἴονται          78a
ἀθλίους εἶναι καθ᾿ ὅσον βλάπτονται;―ΜΕΝ. Καὶ τοῦτο
ἀνάγκη.
그런데 어떤가? 나쁜 것들에 욕구하면서, 자네 말대로, 나쁜 
것들이 누군가에게 생겨나면 그에게 해롭다고는 생각하는
자들은, 그들이 그것들에 의해 해를 입으리란 것을 분명 알고
있는가?―필연적으로 알 수밖에 없지요.―그럼 이 자들은 해를
입은 자들이 해를 입은 그 만큼 가련한 자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그 역시 필연적입니다.
           ―ΣΩ. Τοὺς δὲ ἀθλίους οὐ κακοδαίμονας;―ΜΕΝ.
Οἶμαι ἔγωγε.―ΣΩ. Ἔστιν οὖν ὅστις βούλεται ἄθλιος καὶ
κακοδαίμων εἶναι;―ΜΕΝ. Οὔ μοι δοκεῖ, ὦ Σώκρατες.                   5
           ―그런데 그들은 가련한 자들이란 불행한 자들이라
생각하지 않나?―저로서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그러니 
가련한 자이기를 바라는 누구든 불행한 자이기를 또한 바라는 
자이지?―제게는 그렇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소크라테스.
> 78a4 βούλεται: 이전까지 메논의 "ἐπιθυμέω"를 이어 받다가
여기에 와서 소크라테스가 용어를 전환시키고 있다. 
B는 자체 내에 부정적 결과를 배제하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을 수도 있다.
즉 가치지향이 함의되어 있다. 반면 E는 대상에서 부정적 결과를 배제시키는
함의가 없을 수 있다.

―ΣΩ. Οὐκ ἄρα βούλεται, ὦ Μένων, τὰ κακὰ οὐδείς, εἴπερ μὴ
βούλεται τοιοῦτος εἶναι. τί γὰρ ἄλλο ἐστὶν ἄθλιον εἶναι
ἢ ἐπιθυμεῖν τε τῶν κακῶν καὶ κτᾶσθαι;―ΜΕΝ. Κινδυνεύεις
ἀληθῆ λέγειν, ὦ Σώκρατες· καὶ οὐδεὶς βούλεσθαι τὰ                      b
κακά.
                                                  ―허나 그럼, 메논, 나쁜 
것들을 아무도 바라지 않는다네, 정말로 이런 자이기를 바라지 
않겠기에 말일세. 그야 가련한 자라는 것이 나쁜 것들에 욕구하고
그것들을 획득한다는 것이 아니면 그 외에 무엇이겠는가?―어쩌면
당신께서 맞는 말씀을 하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도 나쁜 것들을 
바라지 않을지도 모르겠고요.

-蟲-

Limited and Unlimited (D11)

D11 (B3) Simpl. In Phys., p. 140.28-33
πάλιν γὰρ δεικνύς ὅτι εἰ πολλά ἐστι, τὰ αὐτὰ πεπε-
ρασμένα ἐστὶ καὶ ἄπειρα, γράφει ταῦτα κατὰ λέξιν ὁ
Ζήνων· "εἰ πολλά ἐστιν, ἀνάγκη τοσαῦτα εἶναι ὅσα
ἐστὶ καὶ οὔτε πλείονα αὐτῶν οὔτε ἐλάττονα. εἰ δὲ
τοσαῦτά ἐστιν ὅσα ἐστί, πεπερασμένα ἂν εἴη.¹ εἰ
πολλά ἐστιν, ἄπειρα τὰ ὄντα ἐστίν. ἀεὶ γὰρ ἕτερα
μεταξὺ τῶν ὄντων ἐστί, καὶ πάλιν ἐκείνων ἕτερα
μεταξύ. καὶ οὕτως ἄπειρα τὰ ὄντα ἐστί."
¹ post ἄν εἴη add. καὶ πάλιν ed. Ald.
왜냐하면 다시금 만일 여럿이라면 그것들은 한정된
것들이면서 또한 무한한 것들이라는 점을 보이면서,
제논은 격언조로(or 문장으로?) 이하의 것들을 기록한다.
"만일 여럿이라면, 그것들인 만큼의 것들이되 그것들보다
많은 것들이지도 적은 것들이지도 않다는 것이 필연적이다.
그런데 만일 그것들인 그 만큼의 것들이라면, 한정된 것들일
것이다. 여럿이라면, 있는 것들은 무한한 것들이다.
왜냐하면 있는 것들 사이에 항상 다른 것들이 있고, 다시
저것들과 다른 것들이 그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렇게 있는 것들은 무한한 것들이다."


A Corollary? The Grain of Millet (D12)
D12
a (< A29) Arist. Phys. 8.5 250a19-22
ὁ Ζήνωνος λόγος [. . .] ὡς ψοφεῖ τῆς κέγχρου ὁτιοῦν
μέρος [. . . =R 16].
곡물의 그 어떤 낱알 부분이든 소리를 낸다는 제논의 논변.

b (< A29) Simpl. In Phys., p. 1108.14-29
[. . .] λύει καὶ τὸν Ζήνωνος τοῦ Ἐλεάτου λόγον, ὃν
ἤρετο Πρωταγόραν τὸν σοφιστήν. "εἰπὲ γάρ μοι,"
ἔφη, "ὦ Πρωταγόρα, ἆρα ὁ εἷς κέγχρος καταπεσὼν
ψόφον ποιεῖ ἢ τὸ μυριοστὸν τοῦ κέγχρου"; τοῦ δὲ εἰ-
πόντος μὴ ποιεῖν "ὁ δὲ μέδιμνος," ἔφη, "τῶν κέγχρων
καταπεσῶν ποιεῖ ψόφον ἢ οὔ"; τοῦ δὲ ψοφεῖν εἰπόντος
τὸν μέδιμνον "τί οὖν," ἔφη ὁ Ζήνων, "οὐκ ἔστι λόγος
τοῦ μεδίμνου τῶν κέγχρων πρὸς τὸν ἕνα καὶ τὸ μυ-
ριοστὸν τὸ τοῦ ἑνός"; τοῦ δὲ φήσαντος εἶναι "τί οὖν,"
ἔφη ὁ Ζήνων, "οὐ καὶ τῶν ψόφων ἔσονται λόγοι πρὸς
ἀλλήλους οἱ αὐτοί; ὡς γὰρ τὰ ψοφοῦντα, καὶ οἱ ψό-
φοι· τούτου δὲ οὕτως ἔχοντος, εἰ ὁ μέδιμνος τοῦ κέγ-
χρου ψοφεῖ, ψοφήσει καὶ ὁ εἷς κέγχρος καὶ τὸ μυριο-
στὸν τοῦ κέγχρου."
엘레아의 제논의 논변, 소피스트인 프로타고라스에게
질문으로 제시되었던 논변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해결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게 말해 주시오,
프로타고라스, 수만의 씨알이 소리를 내기 보다는 낱알
하나가 떨어지며 소리를 냅니까?" 프로타고라스가

낱알 하나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니

그가 말했다. "그런데 씨알들 한 되는 떨어지며 소리를

냅니까 내지 않습니까?" 한 되는 소리를 낸다고 그가

말하자 제논이 말했다. "그렇다면 어떻습니까? 씨알들

한 되의 씨알 하나에 대한 그리고 그 한 씨알의 수만

가지 부분에 대한 비율이 있지 않습니까?" 있다고

그가 말하기에 제논은 말했다. "그렇다면 어떻습니까?

그 소리들의 서로에 대한 비율들도 같은 비율들이지

않겠습니까? 왜냐하면 소리를 내는 것들처럼, 그 소리들도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정이 이러하기에, 만일

씨알 한 되가 소리를 낸다면, 낱알 하나도 그 낱알의

수만 가지 부분도 소리를 낼 것입니다."

 

Argument Against the Existence of Place (D13)
D13
a (> A24) Arist. Phys. 4.1 209a23-26
ἔτι δὲ καὶ αὐτὸς εἰ ἔστι τι τῶν ὄντων, ποῦ¹ ἔσται; ἡ
γὰρ Ζήνωνος ἀπορία ζητεῖ τινὰ λόγον· εἰ γὰρ πᾶν τὸ
ὂν ἐν τόπῳ, δῆλον ὅτι καὶ τοῦ τόπου τόπος ἔσται, καὶ
τοῦτο εἰς ἄπειρον.²
¹ ποῦ] ποὺ Ross  ² ἄπειρον ΕV: ἄπειρον πρόεισιν Λ

그런데 더 나아가 그것[장소] 또한 있는 것들 중 어떤

것이라면, 어디에 있겠는가? 제논의 역설도 모종의 설명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만일 있는 것이 모두 장소 안에 있다면,

그 장소에 대해서도 장소가 있을 것임이 분명하고, 이 또한

무한을 향하기 때문이다.


b. (Nachtrag I, p. 498) Simpl. In Phys., p. 562.3-6
ὁ Ζήνωνος λόγος ἀναιρεῖν ἐδόκει τὸ εἶναι¹ τὸν τόπον
ἐρωτῶν οὕτως· "εἰ ἔστιν ὁ τόπος, ἔν τινι ἔσται· πᾶν
γὰρ ὂν ἔν τινι· τὸ δὲ ἔν τινι καὶ ἐν τόπῳ. ἔσται ἄρα
καὶ² ὁ τόπος ἐν τόπῳ καὶ τοῦτο ἐπ᾿ ἄπειρον· οὐκ ἄρα
ἔστιν ὁ τόπος."
¹ τὸ εἶναι Ε: om. F  ² καὶ om. Ε
제논의 논변은 장소를 그런 식으로 물으면서 있다는 것을

제거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만일 장소가 있다면, 어떤 것

안에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있는 것은 모두 어떤 것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것 안에"라는 것은 "장소

안에"이기도 하다. 그래서 장소 또한 장소 안에 있을 것이고

이 또한 무한을 향한다. 그래서 장소는 있지 않다."

Arguments Against Motion (D14-19)
First Argument, Called That of Dichotomy (D14)
D14 (< A25) Arist. Phys. 6.9 239b11-14
[. . . = D1] πρῶτος μὲν ὁ περὶ τοῦ μὴ κινεῖσθαι διὰ τὸ
πρότερον εἰς τὸ ἥμισυ δεῖν ἀφικέσθαι τὸ φερόμενον
ἢ πρὸς τὸ τέλος [. . .].

첫 번째 논변은 운동하지 않는다는 것에 관련하여 움직이는

것이 완결점을 향하기에 앞서 중간에 당도해야 한다는

논변이다.


Second Argument, Called Achilles (D15)
D15
a (A26) Arist. Phys. 6.9 239b14-20
δεύτερος δ᾿ ὁ καλούεμνος Ἀχιλλεύς· ἔστι δ᾿ οὗτος, ὅτι
τὸ βραδύτατον¹ οὐδέποτε καταληφθήσεται θέον ὑπὸ
τοῦ ταχίστου· ἔμπροσθεν γὰρ ἀναγκαῖον ἐλθεῖν τὸ
διῶκον ὅθεν ὥρμησεν τὸ φεῦγον, ὥστε ἀεί τι προέχειν
ἀναγκαῖον τὸ βραδύτερον. ἔστιν δὲ καὶ οὗτος ὁ αὐτὸς
λόγος τῷ διχοτομεῖν, διαφέρει δ᾿ ἐν τῷ διαιρεῖν μὴ
δίχα τὸ προσλαμβανόμενον μέγεθος [. . . = R19]
¹ βραδύτατον Ε: βραδύτερον ΚΛ

두 번째 논변은 아킬레우스 논변이라 불리는 것이다. 이는

이러한 것인데, 가장 느리게 달리는 것이 가장 빠른 것에

의해 절대로 따라잡히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쫓는 것은 먼저 달아나는 것이 그로부터 나아가는 곳에

도달하는 일이 필연적이고, 그래서 언제나 더 느린 것이

언제나 조금이라도 앞서는 일이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논리도 이분 논변과 같은 논리이며, 그런데

추가로 상정되는 크기를 이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난다. 


b (≠ DK) Them. In Phys., p. 199.23-29
δεύτερος δέ ἐστιν ὁ λόγος ὁ καλούμενος Ἀχιλλεὺς
τετραγῳδημένος καὶ τῷ ὀνόματι· οὐ γάρ, ὅπως φησίν,
τὸν Ἕκτορα καταλήψεται ὁ ποδωκέστατος Ἀχιλλεύς,
ἀλλ᾿ οὐδὲ τὴν βραδυτάτην χελώνην. εἰ γὰρ τὸν δι-
ώκοντα ἀνάγκη¹ πρότερον ἐλθεῖν ἐπὶ τὸ πέρας τοῦ
διαστήματος, οὗ τὸ φεῦγον προελήλυθεν, ἀδύνατον
ἄλλο ὑπ᾿ ἄλλου καταληφθῆναι. ἐν ᾧ γὰρ ὁ διώκων
τοῦτο δίεισι τὸ διάστημα, δῆλον ὡς ὁ φεύγων ἕτερόν
τι προστίθησιν· εἰ γὰρ καὶ ἔλαττον ἀεὶ τῷ βραδύτε-
ρος ὑποκεῖσθαι, ἀλλ᾿ οὖν προστίθησί γέ τι.

두 번째 논변은 그 이름에서도 비극조로 취급되어

아킬레우스 논변이라 불리는 것이다. 즉, 그 논변이

주장하듯, 헥토르를 가장 발이 빠른 아킬레우스가 따라잡지

못할 것이며, 오히려 가장 느린 거북이조차 따라잡지

못하리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뒤쫓는 자는 먼저, 달아나는

쪽이 앞서 나간 그 간격의 경계에 도착하는 일이 필연적이며,

한 쪽이 남은 쪽에 의해 따라잡히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쫓는 자가 이 간격을 통과하는 그 [시간] 안에,

달아나는 자가 또 다른 어떤 간격을 추가한다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더 느린 쪽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매번

[간격이] 더 작다고 하더라도, 그리하여 적어도 뭐라도

추가하기 때문이다.

¹ τὸν διώκοντα ἀνάγκη L:
τὸν διώκοντα MCS:
δεῖ τὸν διώκοντα Laur. 85, 14:
τὸ διῶκον ἀνάγκη Schenkl (cf. Simpl. In Phys. 1014.14-15)


-蟲-

ΣΩ. Τίνας ταύτας; εἰπέ. οἷον καὶ ἐγώ σοι εἴποιμι ἂν                                 74a
καὶ ἄλλα σχήματα, εἴ με κελεύοις· καὶ σὺ οὖν ἐμοὶ εἰπὲ
ἄλλας ἀρετάς.
그 덕들은 무엇인가? 말해주게. 이를 테면 나 또한 자네에게
그 밖의 형태들을 이야기해줄 수 있겠지, 만일 자네가 청한다면
말일세. 그러니 자네도 내게 그 밖의 덕들을 말해주게나.

ΜΕΝ. Ἡ ἀνδρεία τοίνυν ἔμοιγε δοκεῖ ἀρετὴ εἶναι καὶ
σωφροσύνη καὶ σοφία καὶ μεγαλοπρέπεια καὶ ἄλλαι πάμ-                            5
πολλαι.
그러니까 제게는 용기가 덕이라고 그리고 현명함도 지혜도
대범함도 그 외의 온갖 것들도 덕이라고 여겨집니다.
> 74a5 μεγαλοπρέπεια: Plato. Letters [ Pl. Ep. section 320b ]
Plato. Meno [ Pl. Men. section 88a ]
Plato. Republic [ Pl. Resp. book 3 section 402c
book 6 section 486a, section 490c, section 494b, 
book 7 section 536a, book 8 section 561a. ]

ΣΩ. Πάλιν, ὦ Μένων, ταὐτὸν πεπόνθαμεν· πολλὰς αὖ
ηὑρήκαμεν ἀρετὰς μίαν ζητοῦντες, ἄλλον τρόπον ἢ νυνδή·
τὴν δὲ μίαν, ἣ διὰ πάντων τούτων ἐστίν, οὐ δυνάμεθα
ἀνευρεῖν.                                                                                            10
다시금, 메논, 우리는 같은 일을 겪었군. 이번엔 우리가
단일한 덕을 추적하다가 여러 덕들을 발견하였으니, 방금의
방식 외의 방식으로 그리 하였지. 그런데 단일한 덕, 이 모든
덕들을 관통하는 것인 덕은, 우리가 발견할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군.
> 74a10 ἀνευρεῖν: Complexive Aorist. Smyth 1927. 
"The Complexive aorist is used to survey at a glance
the course of a past action from beginning to end."
C.G. 33.30. "The aorist of such verbs can, however,
also be used as an expression of an entire period 
(viewed as a complete whole from beginning to end, 
without anyinterest in its componentparts). This is the 
so-called complexive (or "concentrating") use of the aorist. 
Typically, an expression of the duration of the action is
included."

ΜΕΝ. Οὐ γὰρ δύναμαί πω, ὦ Σώκρατες, ὡς σὺ ζητεῖς,
μίαν ἀρετὴν λαβεῖν κατὰ πάντων, ὥσπερ ἐν τοῖς ἄλλοις.                            b
그야 저는 아직, 소크라테스, 당신께서 추적하시듯, 모든
덕들에 대해 단일한 덕을, 그 외의 것들에서 그런 것처럼
그렇게 파악하질 못하겠으니 말입니다.

ΣΩ. Εἰκότως γε· ἀλλ᾿ ἐγὼ προθυμήσομαι, ἐὰν οἷός τ᾿
ὦ, ἡμᾶς προβιβάσαι. μανθάνεις γάρ που ὅτι οὑτωσὶ ἔχει
περὶ παντός· εἴ τίς σε ἀνέροιτο τοῦτο ὃ νυνδὴ ἐγὼ ἔλεγον,
"Τί ἐστιν σχῆμα, ὦ Μένων;" εἰ αὐτῷ εἶπες ὅτι στρογ-                                   5
γυλότης, εἴ σοι εἶπεν ἅπερ ἐγώ, "Πότερον σχῆμα ἡ στρογ-
γυλότης ἐστὶν ἢ σχῆμά τι;" εἶπες δήπου ἂν ὅτι σχῆμά τι.
그럴 듯하게는 말일세. 허나 내가 열의를 보여 보겠네, 만일
내가 그럴 수 있다면, 우리를 진전시키는 데에 말이지. 그야
모든 것에 관련하여 그러하다는 것을 아마 자네가 알고 있는
듯하니까. 만일 누군가 자네에게 방금 내가 말하던 바를 놓고,
"메논, 무엇이 형태입니까?" 하고 묻는다면, 그리고 자네가
그 사람에게 원형이라고 이야기한다면, 그리고 내가 한 그대로
그가 자네에게, "원형은 형태입니까 아니면 특정 형태입니까?"
라고 이야기한다면, 그럼 분명 자네는 특정 형태라고 이야기할 
걸세.
> 74b4-5: 73e3-6. 
> 74b7 εἶπες ... ἄν: indicative with ἄν. Past Potential.
Smyth. 1784; 'Modal' (Secondary) Indicative in Main Clauses. C.G. 34.16.

ΜΕΝ. Πάνυ γε.
물론 그렇긴 합니다.

ΣΩ. Οὐκοῦν διὰ ταῦτα, ὅτι καὶ ἄλλα ἔστιν σχήματα;                                   c
그렇다면 이런 일들로 인해, 그 외의 것들 또한 형태들이라고
이야기하지 않겠나?

ΜΕΝ. Ναί.
네.

ΣΩ. Καὶ εἴ γε προσανηρώτα σε ὁποῖα, ἔλεγες ἄν;
그리고 그가 자네에게 어떠한 것들인지를 추가로 물었던 거라면,
자네는 말했겠지?

ΜΕΝ. Ἔγωγε.
저야 그렇죠.

ΣΩ. Καὶ αὖ εἰ περὶ χρώματος ὡσαύτως ἀνήρετο ὅτι                                    5
ἐστίν, καὶ εἰπόντος σου ὅτι τὸ λευκόν, μετὰ ταῦτα ὑπέλαβεν
ὁ ἐρωτῶν· "Πότερον τὸ λευκὸν χρῶμά ἐστιν ἢ χρῶμά τι;"
εἶπες ἂν ὅτι χρῶμά τι, διότι καὶ ἄλλα τυγχάνει ὄντα;
또 이번엔 만일 색에 관련하여 마찬가지로 그것이 무엇인지
그가 물었다면, 그리고 자네가 흰 것이라고 이야기할 때,
이런 이야기들 다음으로 그 질문하는 자가 이렇게 받는다면
말일세. "흰 것은 색입니까 아니면 특정한 색입니까?"
그럼 자네는 특정한 색이라고 이야기했을 테고, 여타의 것들도
마침 그것들이라는 점으로 인해 그리 했을 테지?
> 74c6 ὑπολαμβάνω: Brill 2224p. 1. act. D. to interrupt. hacne,
to take the floor, respond, reply, answer back.
> 74c7 ὁ ἐρωτῶν: Smyth.1153. b.  'Substantive-Making Power of The Article.'
Participle (with indefinite force).
CG. 28.25. 'The Article as Substantivizer. (35), (36). Participle.

ΜΕΝ. Ἔγωγε.
저로서는요.

ΣΩ. Καὶ εἴ γέ σε ἐκέλευε λέγειν ἄλλα χρώματα, ἔλεγες                                 10
ἂν ἄλλα, ἃ οὐδὲν ἧττον τυγχάνει ὄντα χρώματα τοῦ λευκοῦ;                       d
또한 적어도 그가 자네에게 여타의 색들을 말하도록 요구했던
것이라면야, 자네는 여타의 것들을 말했겠지? 흰 것에 비해 
마침 전혀 못지 않게 색들이기도 한 것들을 말일세.
> 74d1 τοῦ λευκοῦ: Smyth. 1401-1404. Genitive of Distinction and
of Comparison. CG. 30.24. The genitive of comparison
is used to complement comparatives.

ΜΕΝ. Ναί.
네.

ΣΩ. Εἰ οὖν ὥσπερ ἐγὼ μετῄει τὸν λόγον, καὶ ἔλεγεν
ὅτι "Ἀεὶ εἰς πολλὰ ἀφικνούμεθα, ἀλλὰ μή μοι οὕτως,
ἀλλ᾿ ἐπειδὴ τὰ πολλὰ ταῦτα ἑνί τινι προσαγορεύεις ὀνό-                              5
ματι, καὶ φῂς οὐδὲν αὐτῶν ὅτι οὐ σχῆμα εἶναι, καὶ ταῦτα
καὶ ἐναντία ὄντα ἀλλήλοις, ὅτι ἐστὶν τοῦτο ὃ οὐδὲν ἧττον
κατέχει τὸ στρογγύλον ἢ τὸ εὐθύ, ὃ δὴ ὀνομάζεις σχῆμα
καὶ οὐδὲν μᾶλλον φῂς τὸ στρογγύλον σχῆμα εἶναι ἢ τὸ                              e
εὐθύ;" ἢ οὐχ οὕτω λέγεις;
그러니 만일 내가 그러하듯 그가 그 논변을 따라갔다면,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면, "우리가 언제나 여러 가지 것들에 당도하지만,
제게는 그런 식으로 하지 마시고, 당신이 이러한 여러 가지 것들을
특정한 한 이름으로 부르기에, 또한 당신이 그것들 중 어떤 것도
형태이지 않다고는 전혀 주장하지 않기에, 이것들이 서로 반대되는
것들이기까지 하더라도 그러하니, 원형인 것이 곧은 것에 비해
전혀 못지 않게 견지하는 바 이것은 무엇입니까? 그래서 당신이
형태라고 명명하면서 원형인 것이 곧은 것에 비해 조금이라도
더 형태인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 바의 것 말입니다." 아니면
자네는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 건가?
> 74d5 τὰ πολλά: Cf., 72c7 ἕν γέ τι εἶδος.
> 74d6 καὶ ταῦτα: Smyth. 947. 'The Predicate, Omission of the Verb;
2083. 'Adverbial Adjuncts of The Principal Verb. with participles of opposition
or connection.' CG. 52.44. 'The Participle, Concession. To express concession,
a participle is usually combined wiht καίπερ, καί (even though, although,
even if) or καὶ ταῦτα (and that even though, regardless of the fact that)
preceding the participle.
> 74d8-e2 ὅ: CG. 30.14. 'Case, Accusative, As an Optional Constituent (Adverbial Modifier).'
With active and middle verbs which do nottake an object, with passive verbs, 
and with adjectives, an accusative of respect or limitation may be added to 
specify to which particular element the action or adjective applies ('as concerns ...,'
'with respect to'):
Smyth. 1600-1605. 'Free Uses of The Accusative, Accusative of Respect.'
To verbs denoting a state, and to adjectives, an accusative may be added to
denote a thing in respect to which the verb or adjective is limited.
 
ΜΕΝ. Ἔγωγε.
저로서는 그렇게 말하죠.

ΣΩ. Ἆρ᾿ οὖν, ὅταν οὕτω λέγῃς, τότε οὐδὲν μᾶλλον φῂς
τὸ στρογγύλον εἶναι στρογγύλον ἢ εὐθύ, οὐδὲ τὸ εὐθὺ εὐθὺ                          5
ἢ στρογγύλον;
그렇다면 혹시, 자네가 그렇게 말할 적에, 바로 그 때 자네는
원형인 것이 곧기 보다 전혀 더 원형이지 않다고 주장하고,
곧은 것도 원형이기 보다 전혀 더 곧은 것이지 않다고 주장하는가?
> 74e5 οὐδὲ: Smyth. 2930, 2932. οὐδέ (μηδέ) as a conjunction (and not, nor) connects two or
more whole clauses. Cp. 2931. Advervial οὐδέ (μηδέ) not even, not . . . either, also ... not, nor yet (ne ... quidem). Cp. the use of καί even, also in affirmative sentences; as οὐδ᾿ ὥς not even in that case (καὶ ὥς even in that case).
Cf., CG. 56.1. 59.31. οὐδέ/μηδέ is the negative of καί (59.20); it is used only after a preceding negative:

οὐ X οὐδέ Y = "not X; and not Y" (and not, but not, nor)

Cp., 59.56. For οὐδέ/μηδέ not even (as the negative of adverbial καί).

ΜΕΝ. Οὐ δήπου, ὦ Σώκρατες.
분명 그리 주장하지 않습니다, 소크라테스.

ΣΩ. Ἀλλὰ μὴν σχῆμά γε οὐδὲν μᾶλλον φῂς εἶναι τὸ
στρογγύλον τοῦ εὐθέος, οὐδὲ τὸ ἕτερον τοῦ ἑτέρου.
그렇긴 하네만 자네 원형인 것이 곧은 것에 비해 전혀
더 형태이지는 않다고, 다른 것이 또 다른 것에 비해서도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지.

ΜΕΝ. Ἀληθῆ λέγεις.                                                                             10
당신 말씀이 맞습니다.
> 74e10 ἀληθῆ: neu. acc. pl. adverbial.

ΣΩ. Τί ποτε οὖν τοῦτο οὗ τοῦτο ὄνομά ἐστιν, τὸ σχῆμα;
πειρῶ λέγειν. εἰ οὖν τῷ ἐρωτῶντι οὕτως ἢ περὶ σχήματος                      75a
ἢ χρώματος εἶπες ὅτι "Ἀλλ᾿ οὐδὲ μανθάνω ἔγωγε ὅτι
βούλει, ὦ ἄνθρωπε, οὐδὲ οἶδα ὅτι λέγεις," ἰσως ἂν ἐθαύ-
μασε καὶ εἶπεν· "Οὐ μανθάνεις ὅτι ζητῶ τὸ ἐπὶ πᾶσιν
τούτοις ταὐτόν;" ἢ οὐδὲ ἐπὶ τούτοις, ὦ Μένων, ἔχοις ἂν                              5
εἰπεῖν, εἴ τίς σε ἐρωτῴη· "Τί ἐστιν ἐπὶ τῷ στρογγύλῳ
καὶ εὐθεῖ καὶ ἐπὶ τοῖς ἄλλοις, ἃ δὴ σχήματα καλεῖς, ταὐτὸν
ἐπὶ πᾶσιν;" πειρῶ εἰπεῖν, ἵνα καὶ γένηταί σοι μελέτη πρὸς
τὴν περὶ τῆς ἀρετῆς ἀπόκρισιν.
그렇다면 이 이름이 그것의 것인 바, 형태라는 이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말해보도록 시도해 주게. 그러니까 만일 형태에
관련하여서든 색채에 관련하여서든 그렇게 묻는 자에게
자네가 "허나 저로서는, 이보시오, 당신이 바라는 게 무엇인지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당신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합니다" 라고 이야기한다면, 그는 아마도 놀라면서 이야기했을
걸세. "제가 이 모든 것들을 놓고서 같은 것을 추구하고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나요?" 하고 말이지. 아니면 이하의 것들을
놓고서도, 메논, 자네는 이야기하지 못하겠나? 만일 누군가
자네에게 이리 묻는다면 말일세. "원형인 것과 곧은 것을 놓고 
그리고 그 밖의 것들, 당신이 형태들이라 부르는 것들이 바로
그것들을 놓고서도, 그 모든 것들을 놓고서 같은 것은 무엇입니까?"
라고 말이지. 이야기하기를 시도해 주게나, 자네에게 덕에 관한 
답을 위한 연습이 되기도 하도록 말이야.
> 75a2-3 οῦδέ … οὐδέ: Smyth. 2937. commonly means not even ... nor yet (or no, nor),
the first οὐδέ being adverbial, the second conjunctive. οὐδὲ ... οὐδέ is not correlative,
like οὔτε ... οὔτε, and hence never means neither ... nor. Cf. CG. 59.31, 59.32.
> 75a8 σοί: Dative of the Possessor or the Dative of Advantage. 
> 75a8 μελέτη: 72a2 ἀσκητόν과 관련될 수 있을까?

ΜΕΝ. Μή, ἀλλὰ σύ, ὦ Σώκρατες, εἰπέ.                                                     b
그리 하지 마시고, 당신께서, 소크라테스, 이야기해주시죠.

ΣΩ. Βούλει σοι χαρίσωμαι;
자네가 괜찮다면 자네에게 내가 호의를 보이도록 할까?
> 75b2 βούλει ... subjunctive: Smyth. 1806. Deliverative Subjunctive.
   CG. 34.8. n.2 In dialogue, deliberative subjunctives are sometimes introduced 
by βούλει/βουλέσθε or θέλεις do you want ...; in such cases the speaker asks the addressee whether he/she should do something:

ΜΕΝ. Πάνυ γε.
물론입니다.

ΣΩ. Ἐθελήσεις οὖν καὶ σὺ ἐμοὶ ἐιπεῖν περὶ τῆς ἀρετῆς;
그럼 자네도 내게 덕에 관련하여 이야기해 주려 하게 되겠나?

ΜΕΝ. Ἔγωγε.                                                                                      5
저야 그렇습니다.

ΣΩ. Προθυμητέον τοίνυν· ἄξιον γάρ.
그러면 열의를 내야만 할 일이군. 그럴 가치가 있는 일이니까.

ΜΕΝ. Πάνυ μὲν οὖν.
그야 무척이나 그렇긴 하지요.

ΣΩ. Φέρε δή, πειρώμεθά σοι εἰπεῖν τί ἐστιν σχῆμα.
σκόπει οὖν εἰ τόδε ἀποδέχῃ αὐτὸ εἶναι· ἔστω γὰρ δὴ ἡμῖν
τοῦτο σχῆμα, ὃ μόνον τῶν ὄντων τυγχάνει χρώματι ἀεὶ                             10
ἑπόμενον. ἱκανῶς σοι, ἢ ἄλλως πως ζητεῖς; ἐγὼ γὰρ κἂν
οὕτως ἀγαπῴην εἴ μοι ἀρετὴν εἴποις.                                                   c
자, 그럼, 우리 자네를 위해 무엇이 형태인지 이야기하기를
시도해 보도록 하세나. 그러면 자네가 그것이 이런 것이라는
걸 받아들일지 살펴봐 주게. 그러니까 우리에겐 형태가 이런
것이도록 해 보세, 있는 것들 중에서 유일하게 언제나 색채를
따르는 바의 것이라고 말이지. 이걸로 자네에게 충분한가,
아니면 자네는 어떻든 그 외의 방식으로 그걸 찾고 있는가?
나로서는 만일 자네가 내게 그렇게나마 이야기해준다면 기쁠
것이기에 하는 말일세.
> 75b8 πειρώμεθα: Hortatory Subjuntive. Smyth. 1797. The hortatory subjunctive
(present or aorist) is used to express a request or a proposal (negative μή).
a. Usually in the first person plural. CG. 34.6. Hortatory subjunctive: 
in the first person (usually plural), the subjunctive is used both
in positive commands and negative commands(with μή):
> 75b9 εἰ ... ἀποδέχῃ: Smyth. 2671. Simple indirect questions are introduced by
εἰ whether, less often by ἆρα. // CG. 42.7. The Use of Moods In Indirect Questions.
In used as in ὅτι/ὡς-clause of indirect statement: tense and mood are unchanged
(relative to the corresponding direct question) with a matrix clause which has a non-past
tense (primary sequence). The oblique optative of the same tense stem may (but does not have to)
be used in a past-tense enviroment (historic sequence). 
> 75b11 κἂν: καί의 양보적 의미를 살려서 읽는다면, 위에서 색을 통해 형태를 정의하는
방식이 부적절하다는 주석가들 및 해석가들의 지적을 수용하면서도 소크라테스의 발화
맥락을 설명해줄 수 있다. 그렇게라도, 그렇게나마 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그 이상의 만족스러운
설명이 있음을 시사하기도 할 수 있으므로.

ΜΕΝ. Ἀλλὰ τοῦτό γε εὔηθες, ὦ Σώκρατες.
허나 그건 단순한 것이네요, 소크라테스.
ΣΩ. Πῶς λέγεις;
어찌 하는 말인가?

ΜΕΝ. Ὅτι σχῆμά πού ἐστιν κατὰ τὸν σὸν λόγον ὅ ἀεὶ
χρόᾳ ἕπεται. εἶεν· εἰ δὲ δὴ τὴν χρόαν τις μὴ φαίη εἰδέναι,                          5
ἀλλὰ ὡσαύτως ἀποροῖ ὥσπερ περὶ τοῦ σχήματος, τί ἂν οἴει
σοι ἀποκεκρίσθαι;
형태가 무엇인고 하니 당신 말씀에 따르면 아마 언제나
색에 따르는 것이라는 점에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만일 누군가 색을 안다고 말하지를 못하고, 형태에 관련해서
그렇듯 그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난관에 빠져 있다면, 당신에 의해 
무어라 답해졌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 75c6 ἀποροῖ: 피아제의 인식 심리학에서 정당화의 맥락이 아닌
발생학적 맥락이 고려되고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다시 이후
소위 '배움의 역설'이라 (잘못) 번역되고는 하는 그 역설과 관련된다.
> 75c7 ἀποκεκρίσθαι: CG. 33.34. Perfect Indicative. Basic Uses; Active versus Passive. 
The perfect indicative signifies that an action has been completed in the past 
and that the effects of that action are in some way relevantin the present; 
frequently it expresses a moreor less permanent state in the present which exists
as the result of a completed action in the past. // CG. 33.35. Especially with telic verbs,
active forms of the perfect are often used to emphasize the responsibility of the subject
for the state that has resulted from a past Action (they are particularly frequentin oratory);
Passive forms of the perfect stem, on the other hand, usually indicate that the subject is
in the state resulting from the action completed upon it. The emphasis in such cases is not
so much onthe responsibility of the agent of the action, but on the current state of the subject.
> 75c7 ἀποκεκρίσθαι: LSJ ἀποκρίνω A IV. Med., ἀποκρίνομαι, fut. -ρῐνοῦμαι, etc.: Pl. uses pf. and plpf. Pass. in med. sense, Prt. 358a, Grg. 463c, etc., but also in pass. sense (v. infr.):
Smyth. 813. Deponents with Passive Meaning. Some Deponent verbs have a passive meaning.
This is avoided by good writers in the present and imperfect or future passive, is not frequent
in the aorist, but is common in the perfect and pluperfect passive. Thus ἀπεκρίνεται
(ἀπεκρίθη) ταῦτα this answer is (was) made is not good Greek. Few verbs show
the passive meaning in most of these tenses; ...d. Perfect and Pluperfect: e.g. ἀποκρίνομαι.

ΣΩ. Τἀληθῆ ἔγωγε· καὶ εἰ μέν γε τῶν σοφῶν τις εἴη
καὶ ἐριστικῶν τε καὶ ἀγωνιστικῶν ὁ ἐρόμενος, εἴποιμ᾿ ἂν
αὐτῷ ὅτι "Ἐμοὶ μὲν εἴρηται· εἰ δὲ μὴ ὀρθῶς λέγω, σὸν                             d
ἔργον λαμβάνειν λόγον καὶ ἐλέγχειν." εἰ δὲ ὥσπερ ἐγώ 
τε καὶ σὺ νυνὶ φίλοι ὄντες βούλοιντο ἀλλήλοις διαλέγεσθαι,
δεῖ δὴ πρᾳότερόν πως καὶ διαλεκτικώτερον ἀποκρίνεσθαι.
ἔστι δὲ ἴσως τὸ διαλεκτικώτερον μὴ μόνον τἀληθῆ ἀποκρί-                        5
νεσθαι, ἀλλὰ καὶ δι᾿ ἐκείνων ὧν ἂν προσομολογῇ εἰδέναι
ὁ ἐρωτώμενος. πειράσομαι δὴ καὶ ἐγώ σοι οὕτως εἰπεῖν.
λέγε γάρ μοι· τελευτὴν καλεῖς τι; τοιόνδε λέγω οἷον πέρας                     e
καὶ ἔσχατον―πάντα ταῦτα ταὐτόν τι λέγω· ἴσως δ᾿ ἂν
ἡμῖν Πρόδικος διαφέροιτο, ἀλλὰ σύ γέ που καλεῖς πεπεράνθαι
τι καὶ τετελευτηκέναι―τὸ τοιοῦτον βούλομαι λέγειν, οὐδὲν
ποικίλον.                                                                                         5
나로서는 참인 것들을 답했겠지. 그런가 하면 만일 질문하는 그
자가 지혜로운 자들, 쟁론가들이자 경연가들이기도 한 그들 중 
누군가였더라면, 그에게 나는 이리 이야기했을 걸세. "저로서는
이야기해드린 것입니다만, 만일 제가 옳지 못하게 말하고 있다면,
설명을 요구하고 시험하는 것은 당신의 일이랍니다." 다른 한편
만일 나도 자네도 지금 친우인 자들로서 그런 것처럼 그들이 서로
대화하기를 바랄 것이라면, 정말이지 어떻게든 더 온화하고 더욱
변증가답게 대답해야 한다네. 그런데 아마도 그저 참인 것들로
답해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는 자가 안다고 추가로 동의할
저러한 것들을 통해서도 답해지는 편이 더욱 변증가다운 일이기도
하겠지. 그래서 나 또한 자네에게 그렇게 이야기하기를 시도해 보도록 
하겠네. 자네가 내게 말하라고 하는 이야기일세. 자네는 뭔가를 끝이라고
부르는가? 나는 이를 테면 한계와 극단 같은 그런 것을 뜻한다네.
이것들 모두를 어떤 같은 것이라고 나는 말하지. 그런데 프로디코스께서는
우리와 차이를 보이실 것 같지만, 적어도 자네는 아마 뭔가가 한정되었다고
그리고 끝마쳤다고 말할 걸세. 이런 것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이고, 전혀 다채로운 것이 아닐세.
> 75d2 λαμβάνειν λόγον: LSJ. λαμβάνω, A. II. 1. f. λ. λόγον demand an account.
> 75d4 διαλεκτικώτερον: Cf. Plato. Philebus 17a. 
> 75d5-6 μὴ μόνον..., ἀλλὰ καὶ: Cf. Plato. Apology 38a.
> 75d6 ὧν: Smyth. 2532. When the omitted antecedent is genitive or dative, the relative (if standing in a different case) is usually attracted into the genitive or dative. But a relative in the nominative or feminine (sometimes in the neuter), or a relative depending on a preposition, retains its own ease.

ΜΕΝ. Ἀλλὰ καλῶ, καὶ οἶμαι μανθάνειν ὃ λέγεις.
그럼 저는 그리 부르고 있고, 당신 말씀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75e6 ἀλλά: Cf. 71e1 ἀλλά Denniston 10쪽 (6) Assentient. This use is first sight
diamentrically opposed to the adversative. 


-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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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서양고전학회에서는 춘계 고전어교실도 마련하였습니다.

동계 고전어교실에 이어지는 과정으로 우선 초급 산문 강독 2개반을 아래와 같이 개설하기로 하였습니다.

 

서양고전학회 춘계 고전어 교실

 

기간 : 2021년 3월 첫 주부터 15주(매주 1회 3시간)

수업 : 희랍어 : 크세노폰 <향연>

          라틴어 : 카이사르 <갈리아 전기> 1권

강사 : 희랍어 : 이호섭(서울대 철학과 박사과정)

           라틴어 : 오수환(서울대 불어불문학과 박사과정)

진행 : 수강신청서에 기재된 강사 연락처를 통해 수강 신청 후 Zoom으로 수업함.

 

강의 계획서를 첨부하오니, 주변의 학생들에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총무이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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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양고전학회

The Korean Society of Greco-Roman Studies

 (06561) 서울 서초구 동광로 65 방배빌딩 401호 (정암학당 서울 연구실)

(06561) Bangbae building 401, Dongkwang-ro 65, Seocho-gu, Seoul (Jungam Academy for Greco-Roman Studies)

email: grecoroman.studies@gmail.com

homepage: www.greco-roman.or.kr

초급그리스어산문강독_강의계획서.pdf
0.22MB
초급라틴어산문강독_강의계획서.pdf
0.13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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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감각이 뛰어나신 동학께서 희랍어 쪽 강사를 맡으셨는지라 요쪽도 광고를.

정암 플라톤 『메논』과 비교하자면 문헌 난이도는 크세노폰 『향연』 쪽이 좀 더 평이.

'쪼'도 플라톤 쪽이 좀 더 쎈 면이 없지 않고=_=

근 5~6년 가까이, 고전어 초중급 문법 강좌를 수강한 학생들이 접근 가능한 적절한 수준의 초급 강독 강좌가 부족하다고 이곳저곳에서 선생님들 뵐 때마다 한탄을 하기도 했고, 다른 분들 생각도 같았으나 막상 강좌 개설이 이런저런 일들로 좌절되곤 했는데 이렇게 한 번에 여러 강좌가 마련되다니 기쁜 일이다.

이제 이런 강좌들이 정착만 되면 겨울에는 서울대 집중강좌(문법, 강독), 상반기에는 정암과 고전학회에서 강독 강좌,

다시 여름에는 정암 초중급 문법 강좌, 또 하반기에는 다른 강독 강좌, 뭐 이런 식으로 1년 과정이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나저나 라틴어 쪽은 고전학과에 박사과정생이 수가 적은 건지, 어쩌다 보니 불문과쪽 분께서 강사를 하시게 되었나 보다. 그리스어 쪽도 내 기억이 맞으면 호섭씨 이후로 석사과정 수료 전인 분은 안 계시고 새로 들어오신 분도 아직 없는 듯한데, 나중에 사람 없으면 강좌 진행 연속성은 어떻게 되려나 싶기도 하고.

아무튼 우리 존재 파이팅...

 

-蟲-

D6 (< B1) Simpl. In Phys., p. 141.2-8

εἰ δὲ ἔστιν, ἀνάγκη ἕκαστον¹ μέγεθός τι ἔχειν καὶ

πάχος καὶ ἀπέχειν αὐτοῦ τὸ ἕτερον ἀπὸ τοῦ ἑτέρου.

καὶ περὶ τοῦ προύχοντος ὁ αὐτὸς λόγος. καὶ γὰρ 

ἐκεῖνο ἕξει μέγεθος καὶ προέξει αὐτοῦ τι. ὅμοιον δὴ 

τοῦτο ἅπαξ τε εἰπεῖν καὶ ἀεὶ λέγειν· οὐδὲν γὰρ 

αὐτοῦ τοιοῦτον ἔσχατον ἔσται οὔτε ἕτερον πρὸς ἕτε-

ρον οὐκ ἔσται. οὕτως εἰ πολλά ἐστιν, ἀνάγκη αὐτὰ

μικρά τε εἶναι καὶ μεγάλα, μικρὰ μὲν ὥστε μὴ ἔχειν

μέγεθος, μεγάλα δὲ ὥστε ἄπειρα εἶναι.

¹ τὸ ὄν post ἕκαστον hab. F

그런데 만일 있다면, 각각(의 존재는) 어떤 크기와 두께를

지니는 것과 그것의 한 부분이 다른 부분으로부터 떨어져

나오는 것이 필연적이다. 초과하는 것에 관련하여서도

같은 논리가 성립한다. 왜냐하면 저것 또한 크기를 가질

것이고 그것보다 얼마라도 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점을 한 번 이야기하는 것도 언제나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그것의 이러한 어떤 일부가

끝이지도 않을 것이고 다른 것이 또 다른 것에 대해 그러한

것이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일 여럿이라면,

그것들은 작은 것들이자 또한 큰 것들이기도 하다는 것이

필연적이고, 크기를 가지지 않을 정도로 작은 것들인 한편,

무한한 것들일 만큼 큰 것들임이 필연적이다.


D7 (B2) Simpl. In Phys., p. 139.9-15
ἐν δὴ τούτῳ δείκνυσιν ὅτι οὗ μήτε μέγεθος μήτε πά-
χος μήτε ὄγκος μηθείς ἐστιν, οὐδ᾿ ἂν εἴη τοῦτο. "εἰ
γὰρ¹ ἄλλῳ ὄντι, φησί, προσγένοιτο, οὐδὲν ἂν μεῖζον
ποιήσειεν· μεγέθους γὰρ μηδενὸς ὄντος, προσγενο-
μένου δὲ² οὐδὲν οἷόν τε εἰς μέγεθος ἐπιδοῦναι. καὶ
οὕτως ἂν ἤδη τὸ προσγινόμενον οὐδὲν εἴη. εἰ δὲ
ἀπογινομένου τὸ ἕτερον μηδὲν ἔλαττόν ἐστι, μηδὲ
αὖ προσγινομένου αὐξήσεται, δῆλον ὅτι τὸ προσ-
γενόμενον οὐδὲν ἦν οὐδὲ τὸ ἀπογενόμενον."³

¹ εἰ γὰρ D: οὐ γὰρ EF: οὐ γὰρ εἰ ed. Ald.
² προσγενομένου δὲ obl. D, δὲ del. Zeller.
³ ἀπογενόμενον ed. Ald.: ἀπογινόμενον DEF

그래서 이 점에서 그들은 크기도 두께도 입체도 어느

하나도 전혀 그것의 것이지 않은 바의 것, 이런 것은

아무것이지도 않으리란 점을 증명한다. "왜냐하면 만일

그 외의 것인 바의 것에, 그들이 주장하기로, 그것이

추가된다면, 전혀 더 크게 만들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전혀 어떠한 크기이지도 않기에, 추가됨으로써

크기 쪽에 아무런 것도 부여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식으로 이제 추가되는 것은 아무 것이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만일 그것이 제거되는데도 다른 것이

전혀 더 작은 것이지 않고, 이번엔 [그것이] 추가되더라도

[다른 것이] 증가하지도 않을 것이라면, 추가된 것은

아무런 것이지도 않을 것이고 제거된 것도 아무것이지

않으리라는 점이 분명하다."


D8 (A21) Arist. Metaph. B4 1001b7-13
ἔτι εἰ ἀδιαίρετον αὐτὸ τὸ ἕν, κατὰ μὲν τὸ Ζήνωνος
ἀξίωμα οὐθὲν ἂν εἴη (ὃ γὰρ μήτε προστιθέμενον μήτε
ἀφαιρούμενον ποιεῖ μεῖζον μηδὲ ἔλαττον,¹ οὔ φησιν
εἶναι τοῦτο τῶν ὄντων, ὡς δηλονότι ὄντος μεγέθους
τοῦ ὄντος· καὶ εἰ μέγεθος, σωματικόν· τοῦτο γὰρ
πάντῃ ὄν· τὰ δὲ ἄλλα πὼς μὲν προστιθέμενα ποιήσει
μεῖζον, πὼς δ᾿ οὐθέν, οἷον ἐπίπεδον καὶ γραμμή,
στιγμὴ δὲ καὶ μονὰς οὐδαμῶς) [. . . = R24].

¹ μηδὲ ἔλαττον Aᵇ: om. EJ

더욱이 만일 하나 자체가 불가분한 것이라면, 제논의 공리에

따라 아무런 것이지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추가됨으로써도

제거됨으로써도 더 크게도 작게도 만들지 못하는 것, 이것은

있는 것들 중의 어떤 것이 아니라고 그가 주장하는 바, 있는

것은 크기인 것이라는 점이 분명하기에 그렇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크기인 것이라면, 물체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모든 방면으로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외의

것들은 어떤 식으로는 추가됨으로써 더 크게 만들 것이나,

또 어떤 식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니, 이를 테면 면과 선이

그러하며, 점과 단위는 어떤 식으로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D9 (< A22) Simpl. In Phys., p. 138.3-6
τὸν δὲ [. . .] λόγον τὸν ἐκ τῆς διχοτομίας τοῦ Ζήνωνος
εἶναί φησιν ὁ Ἀλέξανδρος λέγοντος ὡς εἰ μέγεθος
ἔχοι τὸ ὂν καὶ διαιροῖτο, πολλὰ τὸ ὂν καὶ οὐχ ἓν ἔτι
ἔσεσθαι, καὶ διὰ τοῦτο¹ δεικνύντος ὅτι μηδὲν τῶν
ὄντων ἔστι τὸ ἕν.

¹ τοῦτο E: τούτου cett.
그런데 만일 있는 것이 크기를 가지고 분할될 것이라면,

있는 것은 여러가지 것들이고 더 이상 하나이지 않을

것이라고 논하고, 이로 인해 하나는 있는 것들 중 아무런

것이지도 않다는 점을 증명하는 제논의 이분을 통한 논변이

있다고 알렉산드로스는 주장한다.

 

D10 (A16) Simpl. In Phys., p. 97.12-13 (= Eudem. Frag. 37a Wehrli)
καὶ Ζήνωνά φασι λέγειν, εἴ τις αὐτῷ τὸ ἓν ἀποδοίη τί
ποτέ ἐστιν, ἕξειν τὰ ὄντα λέγειν.

그들은 제논 또한, 만일 누군가 그에게 하나가 도대체 무엇인지를

제시할 수 있다면, 있는 것들을 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논한다고

주장한다.


-蟲-

ΣΩ. Πολλῇ γέ τινι εὐτυχίᾳ ἔοικα κεχρῆσθαι, ὦ Μένων,             72a6
εἰ μίαν ζητῶν ἀρετὴν σμῆνός τι ἀνηύρηκα ἀρετῶν παρὰ σοὶ
κείμενον. ἀτάρ, ὦ Μένων, κατὰ ταύτην τὴν εἰκόνα τὴν
περὶ τὰ σμήνη, εἴ μου ἐρομένου μελίττης περὶ οὐσίας ὅτι           b
ποτ᾿ ἐστίν, πολλὰς καὶ παντοδαπὰς ἔλεγες αὐτὰς εἶναι, τί
ἂν ἀπεκρίνω μοι, εἴ σε ἠρόμην· "Ἆρα τούτῳ φῂς πολλὰς
καὶ παντοδαπὰς εἶναι καὶ διαφερούσας ἀλλήλων, τῷ μελίττας
εἶναι; ἢ τούτῳ μὲν οὐδὲν διαφέρουσιν, ἄλλῳ δέ τῳ, οἷον               5
ἢ κάλλει ἢ μεγέθει ἢ ἄλλῳ τῳ τῶν τοιούτων;" εἰπέ, τί ἂν
ἀπεκρίνω οὕτως ἐρωτηθείς;
내가 무슨 큰 행운이라도 누린 것 같군, 메논, 한 가지 덕을
찾다가 자네 곁에 놓인 덕들의 무슨 벌집이라도 발견해낸
것이라면 말일세.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논, 벌집들에 관련된
이러한 모상에 따라, 만일 벌의 그 본질에 관련하여 도대체
무엇인지 내가 질문을 하는데도, 그 벌들이 여러 온갖
것들이라고 자네가 말했던 것이라면, 내가 자네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었더라면, 자네는 내게 무어라 답을 했겠는가? "혹시 자네
이러한 점에서 그 벌들이 여러 온갖 것들이자 서로 차이가
나기까지 하는 것이라고, 벌들이라는 그 점에서 그러하다고
주장하나? 아니면 이 점에서는 아무런 차이도 나지 않지만,
그 외의 어떤 점에서는, 이를 테면 아름다움에서나 크기에서
또는 이러한 것들 중 어떤 점에서는 차이가 난다고 주장하나?"
이야기해 주게, 자네가 그렇게 질문받을 때 무어라 답을 하겠나?

ΜΕΝ. Τοῦτ᾿ ἔγωγε, ὅτι οὐδὲν διαφέρουσιν, ᾗ μέλιτται
εἰσίν, ἡ ἑτέρα τῆς ἑτέρας.
저로서는 이렇게 답을 드립니다, 그것들은 아무런 차이도
나지 않는다고, 벌들인 한에서는, 한 벌이 다른 벌과 차이가
없다고 말입니다.

ΣΩ. Εἰ οὖν εἶπον μετὰ ταῦτα· "Τοῦτο τοίνυν μοι                        c
αὐτὸ εἰπέ, ὦ Μένων· ᾧ οὐδὲν διαφέρουσιν ἀλλὰ ταὐτόν
εἰσιν ἅπασαι, τί τοῦτο φῂς εἶναι;" εἶχες δήπου ἄν τί μοι
εἰπεῖν;
그렇다면 이런 것들 다음으로 내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면
어떤가? "그럼 내게 바로 이걸 이야기해 주게. 그로써
통틀어 그 모든 벌들이 아무런 차이도 나지 않고 오히려 
그 모든 것들이 같은 바, 이것을 자네는 무엇이라고
주장하는가?" 분명 자네는 내게 뭐라도 이야기해줄 수 있지?             //210323

ΜΕΝ. Ἔγωγε.                                                                       5
저야 그렇죠.

ΣΩ. Οὕτω δὴ καὶ περὶ τῶν ἀρετῶν· κἂν εἰ πολλαὶ καὶ
παντοδαπαί εἰσιν, ἕν γέ τι εἶδος ταὐτὸν ἅπασαι ἔχουσιν
δι᾿ ὃ εἰσὶν ἀρεταί, εἰς ὃ καλῶς που ἔχει ἀποβλέψαντα τὸν
ἀποκρινόμενον τῷ ἐρωτήσαντι ἐκεῖνο δηλῶσαι, ὃ τυγχάνει
οὖσα ἀρετή· ἢ οὐ μανθάνεις ὅτι λέγω;                                    d
그럼 그렇게 덕들에 관련하여서도 이야기해 주게. 설령
덕들이 여러 옷갖 것들이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어떤 한 형상은
그것들 전부가 지니니, 그 덕들은 바로 그 형상으로 인해
덕들인 것이고, 아마도 그것에 주목하고서 답하는 자가
묻는 자에게 저것을 알려주는 일이 훌륭한 것일 그런 것이며,
마침 그것이 덕인 바의 것이지. 아니면 자네는 내가 말하는
바를 알아듣지 못하는가?

> 72c9 δηλῶσαι: Gnomic Aorist CG. 33.31. Smyth. 1931.

   해당 행위를 완결된 한 단위의 것으로 간주하는 complexive로

볼 수도 있다.

> echei의 주어가 ton apokrinomenon이기는 어렵기 때문에

'훌륭하게 알려줄 수 있다' 보다는 '알려주는 것이 훌륭한 것이다'로

번역되는 편이 맞을 것. Cf. Sedley, Long.
> 72c9 Cf. τυγχάνω LSJ A II.

ΜΕΝ. Δοκῶ γέ μοι μανθάνειν· οὐ μέντοι ὡς βούλομαί
γέ πω κατέχω τὸ ἐρωτώμενον.
제게는 제가 알아듣고 있다고 여겨지긴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제가 바라는 대로는 아직 그 질문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고요.

> γε: Denniston 140-141pp. Limitative. This is the predominating use
of γέ, in prose at any rate, except in certain well-marked idioms.
(1) in general. We must distinguish between (i) cases where an extension
of application is not excluded (here γε means 'at least'); (ii) cases
where it is, at any rate for the purpose in hand, excluded
(here γε often approximates to μέν).

ΣΩ. Πότερον δὲ περὶ ἀρετῆς μόνον σοι οὕτω δοκεῖ, ὦ
Μένων, ἄλλη μὲν ἀνδρὸς εἶναι, ἄλλη δὲ γυναικὸς καὶ τῶν             5
ἄλλων, ἢ καὶ περὶ ὑγιείας καὶ περὶ μεγέθους καὶ περὶ ἰσχύος
ὡσαύτως; ἄλλη μὲν ἀνδρὸς δοκεῖ σοι εἶναι ὑγίεια, ἄλλη
δὲ γυναικός; ἢ ταὐτὸν πανταχοῦ εἶδός ἐστιν, ἐάνπερ ὑγίεια
ᾖ, ἐάντε ἐν ἀνδρὶ ἐάντε ἐν ἄλλῳ ὁτῳοῦν ᾖ;                               e
그런데 자네에게는 단지 덕에 관련하여서만 그렇게 여겨지는가,
메논, 사내의 덕이 별개의 것이고, 여인의 덕이 그 외의 것이며
그 밖의 것들의 덕들도 그렇다고? 아니면 건강에 관련하여서도
크기에 관련하여서도 힘에 관련하여서도 마찬가지로 그렇다고
여겨지는가? 혹은 모든 경우에 형상은 같은 것인가? 만일 건강한
것이라면, 사내 안에서든 그 외의 무엇이든 그 안에서든 그러한가?

ΜΕΝ. Ἡ αὐτή μοι δοκεῖ ὑγίειά γε εἶναι καὶ ἀνδρὸς καὶ
γυναικός.
적어도 같은 건강은 사내의 것이기도 하고 여인의 것이기도
하다고 제게는 여겨집니다.

ΣΩ. Οὐκοῦν καὶ μέγεθος καὶ ἰσχύς; ἐάνπερ ἰσχυρὰ
γυνὴ ᾖ, τῷ αὐτῷ εἴδει καὶ τῇ αὐτῇ ἰσχύϊ ἰσχυρὰ ἔσται; τὸ              5
γὰρ τῇ αὐτῇ τοῦτο λέγω· οὐδὲν διαφέρει πρὸς τὸ ἰσχὺς εἶναι
ἡ ἰσχύς, ἐάντε ἐν ἀνδρὶ ᾖ ἐάντε ἐν γυναικί. ἢ δοκεῖ τί
σοι διαφέρειν;
그렇다면 크기도 힘도 그렇지 않나? 만일 여인이 힘 있는
자라면, 같은 형상 그러니까 같은 힘에서 힘 있는 자이지
않겠나? 내가 "같은 힘에 의해"를 이하의 것으로 말하고
있으니 말이지. 힘 있는 것이 힘 있다는 데에 대해서는 아무런
차이도 나지 않으니, 사내 안에서 힘 있는 것일 것이든
여인 안에서 힘 있는 것일 것이든 그렇지. 아니면 자네에겐
뭐라도 차이가 난다고 여겨지는가?

ΜΕΝ. Οὐκ ἔμοιγε.
제겐 그리 여겨지지 않습니다.

ΣΩ. Ἡ δὲ ἀρετὴ πρὸς τὸ ἀρετὴ εἶναι διοίσει τι, ἐάντε              73a
ἐν παιδὶ ᾖ ἐάντε ἐν πρεσβύτῃ, ἐάντε ἐν γυναικὶ ἐάντε ἐν
ἀνδρί;
그런데 덕은 덕이라는 데에 대해서 무슨 차이라도 나겠나?
아이 안에서 덕일 것이든 나이 든 자 안에서 덕일 것이든,
여인 안에서 덕일 것이든 사내 안에서 덕일 것이든?

ΜΕΝ. Ἔμοιγέ πως δοκεῖ, ὦ Σώκρατες, τοῦτο οὐκέτι
ὅμοιον εἶναι τοῖς ἄλλοις τούτοις.                                            5
제게는, 소크라테스, 어떤 식으론가 이게 그 밖의 이러한
일들과 더 이상 마찬가지인 것이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ΣΩ. Τί δέ; οὐκ ἀνδρὸς μὲν ἀρετὴν ἔλεγες πόλιν εὖ
διοικεῖν, γυναικὸς δὲ οἰκίαν;―ΜΕΝ. Ἔγωγε.―ΣΩ. Ἆρ᾿
οὖν οἷόν τε εὖ διοικεῖν ἢ πόλιν ἢ οἰκίαν ἢ ἄλλο ὁτιοῦν,
μὴ σωφρόνως καὶ δικαίως διοικοῦντα;―ΜΕΝ. Οὐ δῆτα.―
ΣΩ. Οὐκοῦν ἄνπερ δικαίως καὶ σωφρόνως διοικῶσιν, δι-           b
καιοσύνῃ καὶ σωφροσύνῃ διοικήσουσιν;―ΜΕΝ. Ἀνάγκη.
―ΣΩ. Τῶν αὐτῶν ἄρα ἀμφότεροι δέονται, εἴπερ μέλλουσιν
ἀγαθοὶ εἶναι, καὶ ἡ γυνὴ καὶ ὁ ἀνήρ, δικαιοσύνης καὶ σω-
φροσύνης.―ΜΕΝ. Φαίνονται.―ΣΩ. Τί δὲ παῖς καὶ πρε-               5
σβύτης; μῶν ἀκόλαστοι ὄντες καὶ ἄδικοι ἀγαθοὶ ἄν ποτε
γένοιντο;―ΜΕΝ. Οὐ δῆτα.―ΣΩ. Ἀλλὰ σώφρονες καὶ
δίκαιοι;―ΜΕΝ. Ναί.―ΣΩ. Πάντες ἄρ᾿ ἄνθρωποι τῷ αὐτῷ           c
τρόπῳ ἀγαθοί εἰσιν· τῶν αὐτῶν γὰρ τυχόντες ἀγαθοὶ γί-
γνονται.―ΜΕΝ. Ἔοικε.―ΣΩ. Οὐκ ἂν δήπου, εἴ γε μὴ ἡ
αὐτὴ ἀρετὴ ἦν αὐτῶν, τῷ αὐτῷ ἂν τρόπῳ ἀγαθοὶ ἦσαν.―
ΜΕΝ. Οὐ δῆτα.                                                                    5
그건 왜 그런가? 자네는 사내의 덕은 나라를 잘 간수하는
것이라고, 반면 여인의 덕은 집안을 그리 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나?―저로서는요.―그렇다면 나라든 집안이든 그 외의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잘 간수한다는 게, 현명하게 간수하지도 정의롭게
간수하지도 못하면서, 그럴 수가 있을까?―분명 그럴 수 없지요.―
그러면 만일 정말로 정의롭고 현명하게 간수한다면, 그들은
정의와 현명함으로 간수하지 않겠나?―필연적으로요.
―그래서 양편의 사람들 모두 같은 것들을 필요로 하니, 만일
정말로 장차 훌륭한 자들이려면, 여인도 사내도, 정의와 현명함을
필요로 한다네.―그리 보입니다.―그런데 아이와 나이 든 자는
어떤가? 물론 못 배우고 부정의한 자들인 채로는 결코 훌륭한
자들이 되지 못하겠지?―분명 되지 못할 것입니다.―그러나
현명한 자들이자 정의로운 자들인 채로는?―네[, 될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들은 같은 방식으로 훌륭한 자들이라네.
왜냐하면 같은 것들을 충족시켜 훌륭한 자들이 되기 때문이지.
―그런 듯합니다.―아마 그렇지 않을 터인 즉, 만약에라도 같은
덕이 그들의 덕이 아니라면, 같은 방식으로 훌륭한 자들이지
않았을 테지.―그야 그렇지 않았겠죠.                                 //210330

> 73b1 δικαίως, σωφρόνως/δικαιοσύνῃ, σωφροσύνῃ. 
부사에서 dat. 명사로 전환된 것에 주목해 보자. 여기에서
dat.를 관리 방식에 한정을 가하는 causal한 의미로 번역할 것을
제안. by Jung.(210330)
그런데 메논이 이미 εὖ를 사용하고 있었음에도 이를 곧장 사용해
자가당착을 일으키지 않고 이를 정의와 슬기로 전환시킨 이유가 있을까?
아마도 εὖ만으로는 구체적인 덕이 지시되기 어려웠기 때문일 듯.
만일 εὖ에서 직접 넘어가려 했다면 agathon을 사용했을지도.

> 73b1 οὐκοῦν: Smyth 2951~2953; CG. 38.7, 59.33.


ΣΩ. Ἐπειδὴ τοίνυν ἡ αὐτὴ ἀρετὴ πάντων ἐστίν, πειρῶ
εἰπεῖν καὶ ἀναμνησθῆναι τί αὐτό φησι Γοργίας εἶναι καὶ
σὺ μετ᾿ ἐκείνου.
그러면 같은 덕이 모든 이들의 덕이니, 고르기아스께서 그리고
저 분과 함께 자네도 그것을 무엇이라고 주장하는지 상기해내
이야기해주는 일을 시도해 주게나.

ΜΕΝ. Τί ἄλλο γ᾿ ἢ ἄρχειν οἷόν τ᾿ εἶναι τῶν ἀνθρώπων;
εἴπερ ἕν γέ τι ζητεῖς κατὰ πάντων.                                       d
인간들을 다스릴 수 있다는 것 외에는 달리 무엇이겠습니까?
정말로 당신께서 모든 일들에 대해 어떤 하나를 찾고 계시다면요.

ΣΩ. Ἀλλὰ μὴν ζητῶ γε. ἀλλ᾿ ἆρα καὶ παιδὸς ἡ αὐτὴ
ἀρετή, ὦ Μένων, καὶ δούλου, ἄρχειν οἵω τε εἶναι τοῦ δε-
σπότου, καὶ δοκεῖ σοι ἔτι ἂν δοῦλος εἶναι ὁ ἄρχων;
그야 찾고 있기는 하네만 말일세. 허나 혹시 같은 덕이
아이의 덕이기도 하고, 메논, 노예의 덕이기도 하며, 그 두 

덕이 그들의 주인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기도 하며, 그래서

자네에게는 그 다스리는 자가 여전히 노예일 것이라 여겨지는가?

ΜΕΝ. Οὐ πάνυ μοι δοκεῖ, ὦ Σώκρατες.                                    5
딱히 제게 그리 여겨지지는 않습니다, 소크라테스.

ΣΩ. Οὐ γὰρ εἰκός, ὦ ἄριστε· ἔτι γὰρ καὶ τόδε σκόπει.
ἄρχειν φῂς οἷόν τ᾿ εἶναι. οὐ προσθήσομεν αὐτόσε τὸ
δικαίως, ἀδίκως δὲ μή;
그건 실은 그럴 듯하지 않군, 가장 훌륭한 친구. 여기 이런

것도 좀 더 살펴봐 달라는 말일세. 자네는 지배한다는 것이
그런 것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군. 우리는 바로 그 자리에
"정의롭게, 부정의하지는 않게" 라는 말을 덧붙여 세우지
않겠는가?

> Cf. 73a9. 부사를 추가.

> 73d7 τό: Smyth.1153. g. 'Substantive-Making Power of The Article,'

any single word or clause; CG. 28.25(39) 'The Article as Substantivizer,'

Whole word groups, clauses or sentences, with the neuter article.
ΜΕΝ. Οἶμαι ἔγωγε· ἡ γὰρ δικαιοσύνη, ὦ Σώκρατες,
ἀρετή ἐστιν.                                                                       10
저로서는 덧붙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야 정의는, 소크라테스,
덕이니 말이지요.

ΣΩ. Πότερον ἀρετή, ὦ Μένων, ἢ ἀρετή τις;                             e
덕인가, 메논, 아니면 무슨(특정한) 덕인가?

ΜΕΝ. Πῶς τοῦτο λέγεις;
그건 어찌 하시는 말씀이십니까?

ΣΩ. Ὡς περὶ ἄλλου ὁτουοῦν. οἷον, εἰ βούλει, στρογ-
γυλότητος πέρι εἴποιμ᾿ ἂν ἔγωγε ὅτι σχῆμά τί ἐστιν, οὐχ
οὕτως ἁπλῶς ὅτι σχῆμα. διὰ ταῦτα δὲ οὕτως ἂν εἴποιμι,              5
ὅτι καὶ ἄλλα ἔστι σχήματα.
그 밖의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그에 관련해서 하듯이
하는 말일세. 예를 들어, 만일 자네가 괜찮다면, 원형에
관련하여 나로서는 특정한 형태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고,
형태인 것이라고는 그렇게 단적으로는 말하지 못할 걸세.
그런데 이런 것들로 인해 그렇게 말할 테지, 그 외의 것들도
형태들이라는 점에서 말일세.

ΜΕΝ. Ὀρθῶς γε λέγων σύ, ἐπεὶ καὶ ἐγὼ λέγω οὐ μόνον
δικαιοσύνην ἀλλὰ καὶ ἄλλας εἶναι ἀρετάς.
당신께서 제대로 말씀하시는 것이기는 하지요, 저 역시도 비단
정의만이 아니라 그 외의 것들도 덕들이라고 말하니 말입니다.

> 73e7 λέγων: The Circumstantial Participle - Conditional Use. 

Cf. Smyth. 2067; C.G. 52.40.

 

-蟲-

Early Greek Philosophy, Volume V: Western Greek Thinkers, Part 2. Edited and translated by André Laks, Glenn W. Most. Loeb Classical Library 528.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016.

 

D1 (< A25) Arist. Phys. 6.9 239b9-11
τέτταρες δ᾿ εἰσὶν οἱ λόγοι περὶ κινήσεως Ζήνωνος οἱ
παρέχοντες τὰς δυσκολίας τοῖς λύουσιν.
운동에 관련하여 해결하려는 이들에게 난점들을 제기하는

제논의 논변들은 네 가지이다.
D2 (< A15) Procl. In Parm., p. 694.17-19
πολλῶν δὲ εἰρημένων ὑπὸ τοῦ Ζήνωνος λόγων καὶ
τετταράκοντα ὄντων¹ πάντων, ἕνα τῶν πρώτων ὁ Σω-
κράτης ἀπολαβὼν ἀπορεῖ πρὸς αὐτόν [. . .].
¹ ὄντων Steel ex Moerbeke (entibus): τῶν ΑΣ
제논에 의해 여러 논변들이 언급되었고 그 모든 논변들은

사십 가지이며, 첫 번째 논변들 중 하나를 소크라테스가 취해

이를 상대로 곤란을 겪는다 [. . .].
D3 (< A15) Elias in Cat., p. 109.15-20
καὶ τῷ οἰκείῳ διδασκάλῳ ποτὲ Παρμενίδῃ ἓν λέγοντι
τὸ ὂν κατὰ¹ τὸ εἶδος, ἐκ τῆς ἐναργείας² πολλὰ τὰ ὄντα,
συντίθησιν ἐκ τεσσαράκοντα ἐπιχειρημάτων ὅτι ἓν τὸ
ὄν, ἀγαθὸν νομίσας τῷ οἰκείῳ συμμαχεῖν διδασκάλῳ.
καί ποτε πάλιν τῷ αὐτῷ συνηγορῶν διδασκάλῳ
ἀκίνητον λέγοντι τὸ ὄν, διὰ πέντε ἐπιχειρημάτων κα-
τασκευάζει ὅτι ἀκίνητον τὸ ὄν.
¹καὶ mss., corr. Kranz  ²ἐναργείας Diels: ἐνεργείας mss.
형상에 따라(or 형상과) 있는 것은 하나이고

명백하게(or 현실태로) 있는 것들은 여럿이라고 언젠가 논한

자신의 스승 파르메니데스를 위해, 있는 것이 하나라는 점을

증명하려는 시도들로부터 사십 가지를 구성하는데, 자신의

스승과 함께 싸우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있는 것이 부동인 것이라 언젠가 말한 바로 그 스승을

변호하면서, 있는 것이 부동인 것이라는 점을 다섯 가지

시도를 통해 논증하였다.
The Contents of the Arguments Preserved (D4-D19)
Arguments Against Plurality (D4-D12)
The First Argument: Similar and Dissimilar (D4)

D4 (A12 Untersteiner) Plat. Parm. 127d-128a
τὸν οὖν Σωκράτη ἀκούσαντα πάλιν τε κελεῦσαι τὴν
πρώτην ὑπόθεσιν τοῦ πρώτου λόγου ἀναγνῶναι, καὶ
ἀναγνωσθείσης, πῶς, φάναι, ὦ Ζήνων, τοῦτο λέγεις;
εἰ πολλά ἐστι τὰ ὄντα, ὡς ἄρα δεῖ αὐτὰ ὅμοιά τε εἶναι
καὶ ἀνόμοια, τοῦτο δὲ δὴ ἀδύνατον· οὔτε γὰρ τὰ
ἀνόμοια ὅμοια οὔτε τὰ ὅμοια ἀνόμοια οἷόν τε εἶναι.
οὐχ οὕτω λέγεις; οὕτω, φάναι τὸν Ζήνωνα. οὐκοῦν εἰ
ἀδύνατον τά τε ἀνόμοια ὅμοια εἶναι καὶ τὰ ὅμοια
ἀνόμοια, ἀδύνατον δὴ καὶ πολλὰ εἶναι· εἰ γὰρ πολλὰ
εἴη, πάσχοι ἂν τὰ ἀδύνατα.
그리하여 소크라테스께서 들으시고는 첫 번째 논변의

첫 번째 가정을 읽어 주십사 재차 청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그 가정이 다시 읽히자, 그 분께서는 말씀하셨답니다.

"제논, 이는 어찌 하시는 말씀이십니까? 만일 있는 것들이

여럿이라면, 그래서 그것들이 마찬가지인 것들이자 또한

마찬가지이지 않은 것들이어야 한다고, 그럼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마찬가지이지 않은

것들이 마찬가지인 것들일 수도 없고 마찬가지인 것들이

마찬가지이지 않은 것들일 수도 없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요?" 제논께서는 "그렇게

말하는 걸세,"라고 하셨답니다. "그러니 만일 마찬가지이지

않은 것들이 마찬가지인 것들이기도 마찬가지인 것들이

마찬가지이지 않은 것들이기도 불가능한 것이라면, 더 나아가

여러가지 것들이기도 불가능하다고 말이지. 왜냐하면 만일

여러가지 것들이라면, 그 불가능한 일들을 겪을 테니 말이지."

Argument by Magnitude: Small and Large (D5-D10)

D5 (< B1) Simpl. In Phys., p. 141.1-2
εἰ μὴ ἔχοι¹ μέγεθος τὸ ὂν οὐδ᾿ ἂν εἴη.
¹ ἔχοι DF: ἔχει E ed. Ald.
만일 있는 것이 크기를 지니지 못한다면 (않는다면) 있지도 못할 것이다.

-蟲-

 

ΜΕΝ. Ἔχεις μοι εἰπεῖν, ὦ Σώκρατες, ἆρα διδακτὸν ἡ                   70a
ἀρετή; ἢ οὐ διδακτὸν ἀλλ᾿ ἀσκητόν; ἢ οὔτε ἀσκητὸν οὔτε
μαθητόν, ἀλλὰ φύσει παραγίγνεται τοῖς ἀνθρώποις ἢ ἄλλῳ
τινὶ τρόπῳ;
제게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소크라테스, 덕은 가르쳐진
것인지요? 아니면 가르쳐진 것이 아니라 실천된 것인가요?
아니면 실천된 것도 아니고 배운 것도 아니라, 본성으로 또는
그 밖의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 곁에 생기나요?

> ἆρα ... ἢ: 간접 선언 의문문.
> διδακτός: 수동 양상/완료 두 해석 가능. 이후 교사의 유무로부터
추론하는 과정에서는 완료로 볼 때 역설이 발생. 다른 한편 교사가
미래에 발생할 경우를 고려하면 가르쳐'진' 것이 아니더라도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이긴 할 여지가 남는다. Cf. Smyth. 472, Goodwin. 776, Cambridge. 37.4. by Jung.

ΣΩ. Ὦ Μένων, πρὸ τοῦ μὲν Θετταλοὶ εὐδόκιμοι ἦσαν                      5
ἐν τοῖς Ἕλλησιν καὶ ἐθαυμάζοντο ἐφ᾿ ἱππικῇ τε καὶ πλούτῳ,
νῦν δέ, ὡς ἐμοὶ δοκεῖ, καὶ ἐπὶ σοφίᾳ, καὶ οὐχ ἥκιστα οἱ τοῦ             b
σοῦ ἑταίρου Ἀριστίππου [πολῖται] Λαρισαῖοι. τούτου δὲ ὑμῖν
αἴτιός ἐστι Γοργίας· ἀφικόμενος γὰρ εἰς τὴν πόλιν ἐραστὰς
ἐπὶ σοφίᾳ εἴληφεν Ἀλευαδῶν τε τοὺς πρώτους, ὧν ὁ σὸς
ἐραστής ἐστιν Ἀρίστιππος, καὶ τῶν ἄλλων Θετταλῶν. καὶ                5
δὴ καὶ τοῦτο τὸ ἔθος ὑμᾶς ἔιθικεν, ἀφόβως τε καὶ μεγαλο-
πρεπῶς ἀποκρίνεσθαι ἐάν τίς τι ἔρηται, ὥσπερ εἰκὸς τοὺς
εἰδότας, ἅτε καὶ αὐτὸς παρέχων αὑτὸν ἐρωτᾶν τῶν Ἑλλήνων         c
τῷ βουλομένῳ ὅτι ἄν τις βούληται, καὶ οὐδενὶ ὅτῳ οὐκ
ἀποκρινόμενος.
메논, 이전에는 테살리아인들이 헬라스인들 사이에서 명성이
높았고 승마술에서도 부에서도 경탄을 받았으나, 오늘날에는,
내게 여겨지기로는, 지혜에서도 또한 그러하며, 자네의 동료
아리스팁포스의 [시민들인] 라리사인들이 특히 더할 나위 없다네.
그대들에게 이런 일의 장본인은 고르기아스이시지. 왜냐하면
그 분께서 그 나라에 당도하시어 지혜를 향한 구애자들로서
알레우아스 가문의 첫째 가는 사람들을, 자네의 연인인
아리스팁포스가 그 중 하나인 이들을, 그리고 그 밖의 테살리아인들
일부도 사로잡으셨기 때문이라네. 더욱이 그 분께서 이러한 관습을
그대들에게 정착시키신 바, 누가 무엇을 묻든 두려움 없이 대범하게
답하기를, 마치 아는 자들이 대답할 법한 그런 식으로 답하는 것이고,
이는 그 분께서 헬라스인들 무엇이든 묻기를 바라는 자라면 그것을
묻도록 그 바라는 자에게 제 자신을 내놓으시며, 어느 누구에게도
답을 하지 않는 일이 없으셨기에 그리 되었지.

> ὑμῖν: Cambridge. 30.49, 30.53.
> [πολῖται] 버넷이 배제. 이에 따라 F 사본 Λαρισαῖοι 선택.
B T W 판본 Λαρισαίου의 경우 수식 관계가 약간 어색해진다.
("라릿사인인 아리스팁포스의 시민들" 보다는 "아리스팁포스의
라릿사 시민들"로.)
> ἀφικόμενος: Smyth. 1926. Resultative Aorist.―
In contrast to the imperfect (and present) the aorist denotes
the result, end, or effect of an action.
Aorist 관련. Cf., The Cambridge Grammar 419쪽 
Non-Past Uses of the Aorist. 33.31-33.33.
Rijksbaron 28쪽 8.3.2. The aorist indicative of performative verbs.
> Καὶ δὴ καί: Denniston 255쪽. after heavy stops.
> ὥσπερ εἰκός (ἐστιν ἀποκρίνεσθαι) τοὺς εἰδότας.
> ἐρωτᾶν : Cambridge Grammar. 51.16. Purpose or Result. Final-consecutive.
               Smyth. 2008-2011. Infinitive of Purpose and Result.

                      ἐνθάδε δέ, ὦ φίλε Μένων, τὸ ἐναντίον
περιέστηκεν· ὥσπερ αὐχμός τις τῆς σοφίας γέγονεν, καὶ κιν-
δυνεύει ἐκ τῶνδε τῶν τόπων παρ᾿ ὑμᾶς οἴχεσθαι ἡ σοφία. εἰ        71a
γοῦν τινα ἐθέλεις οὕτως ἐρέσθαι τῶν ἐνθάδε, οὐδεὶς ὅστις οὐ
γελάσεται καὶ ἐρεῖ· "Ὦ ξένε, κινδυνεύω σοι δοκεῖν μακάριός
τις εἶναι―ἀρετὴν γοῦν εἴτε διδακτὸν εἴθ᾿ ὅτῳ τρόπῳ παρα-
γίγνεται εἰδέναι―ἐγὼ δὲ τοσοῦτον δέω εἴτε διδακτὸν εἴτε                5
μὴ διδακτὸν εἰδέναι, ὠς<ὥστ᾿> οὐδὲ αὐτὸ ὅτι ποτ᾿ ἐστὶ τὸ παράπαν
ἀρετὴ τυγχάνω εἰδώς."
그런데 이곳에서는, 친애하는 메논, 그와 반대되는 관습이
자리잡았다네. 지혜의 어떤 가뭄과 같은 것이 생겼던지라, 그래서
여기 이 자리들로부터 그대들 곁으로 지혜가 이주한 것일지도
모르겠군. 어쨌든 만일 이곳 사람들 중 누군가에게 자네가
그런 식으로 묻기를 바란다면, 웃음을 터뜨리며 이리 말하지 않는
자는 그 누구도 없을 걸세. "외지 손님이여, 당신께는 제가 무슨
복 받은 사람이라고 여겨지는지도 모르겠소. 어쨌든 덕을, 그게
가르쳐지는 것인지든 무슨 방식으로든 곁하여 생겨나는지든
안다고 말이오. 그런데 저는 다른 건 다 제쳐두고 도대체 덕이 
무엇인지 바로 그것조차 실은 알지를 못하는 한에서, 그 만큼
그것이 가르쳐지는 것인지도 가르쳐지지 않는 것인지도 아는
일에서 멀리 있습니다(부족합니다)."
> "ἀρετὴν"의 형태가 acc.인 이유: 본래 εἴτε 안에서 nom.이어야 하나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εἰδέναι의 목적어로 취급되었다. prolepsis.
> "ὥστ᾿": B T W 는 ὡς. 후자의 경우 τοσοῦτον에 연결될 수 있을 듯.
"그런데 저는 그것이 가르쳐지는 것인지도 가르쳐지지 
않는 것인지도 아는 일에서는 그 만큼이나 멀리 있어서, 다른 건 
다 제쳐두고 도대체 덕이 무엇인지 바로 그것조차 실은 알지를 못합니다."
"ὥστ᾿"로 읽을 경우 속성을 모르고 그 결과 본질을 모르게 된다는 뜻.
"ὡς(in the sense as much as or according as.)"로 읽을 경우 본질을
모르는 한에서 그 만큼 속성을 모른다는 뜻. 

Ἐγὼ οὖν καὶ αὐτός, ὦ Μένων, οὕτως ἔχω· συμπένομαι                  b
τοῖς πολίταις τούτου τοῦ πράγματος, καὶ ἐμαυτὸν κατα-
μέμφομαι ὡς οὐκ εἰδὼς περὶ ἀρετῆς τὸ παράπαν· ὃ δὲ μὴ
οἶδα τί ἐστιν, πῶς ἂν ὁποῖόν γέ τι εἰδείην; ἢ δοκεῖ σοι
οἷόν τε εἶναι, ὅστις Μένωνα μὴ γιγνώσκει τὸ παράπαν ὅστις             5
ἐστίν, τοῦτον εἰδέναι εἴτε καλὸς εἴτε πλούσιος εἴτε καὶ
γενναῖός ἐστιν, εἴτε καὶ τἀναντία τούτων; δοκεῖ σοι οἷόν τ᾿
εἶναι;
그러니 나 자신으로서도, 메논, 그렇다네. 이러한 사안(문제)에 
대해서는 이 시민들과 함께 빈곤한 와중이고, 무엇보다도 
덕에 관련해서 알지 못하기에 내 자신을 책잡고 있지. 그런데 
무엇인지를 내가 알지 못하는 바의 것을, 그게 어떠한 것일지는 
어떻게 조금이라도 내가 알 수 있겠는가? 아니면 자네에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 여겨지는가? 누구든 메논이 좌우간 
누군지를 알지 못하는 자, 이런 자가 메논이 아름다운 자인지
부유한 자인지 또한 고귀한 자인지도 안다는 것이, 이런 것들과
반대되는지까지도 안다는 게 말일세. 자네에겐 있을 수 있다
여겨지는가?
> Smyth. 2494. CG. 50.
ΜΕΝ. Οὐκ ἔμοιγε. ἀλλὰ σύ, ὦ Σώκρατες, ἀληθῶς
οὐδ᾿ ὅτι ἀρετή ἐστιν οἶσθα, ἀλλὰ ταῦτα περὶ σοῦ καὶ οἴκαδε             c
ἀπαγγέλλωμεν;
적어도 제겐 그리 여겨지지 않습니다. 허나, 소크라테스,
당신께서 덕이 무엇인지도 참으로 알지 못하시며, 당신과 관련하여
이런 일들을 저희 고향에도 우리가 전하도록 할까요?                           //210309
> 71c2 ἀπαγγέλλωμεν Cf. CG 34.8 항목 Deliberative 
Subjunctive (in Questions); Smyth 1805 항목.//

ΣΩ. Μὴ μόνον γε, ὦ ἑταῖρε, ἀλλὰ καὶ ὅτι οὐδ᾿ ἄλλῳ πω
ἐνέτυχον εἰδότι, ὡς ἐμοὶ δοκῶ.
그것만 전하지 말 뿐만 아니라, 이보게, 내게 여겨지기로는, 여지껏
그 밖에 아는 이를 만난 적도 없다고도 전해주게나.
> 71c3 μή: prohibitive subjunctive 중복 생략의 영향.
> 71c4 ὡς ἐμοὶ δοκῶ: Smyth 2992. Relative ὡς as an Adverb, parenthetical.
   CG. 57.1; cf. 50.37
> 71c4 ἐνέτυχον: Smyth 1927. Complexive Aorist. ―
   The complexive aorist is used to survey at a glance
   the course of a past action from beginning to end.
   It may sum up the result of a preceding narrative.
   The complexive aorist appears also in other moods than the indicative.

ΜΕΝ. Τί δέ; Γοργίᾳ οὐκ ἐνέτυχες ὅτε ἐνθάδε ἦν;                             5
헌데 어떻습니까? 당신께서는 고르기아스께서 이곳에
계실 적에 만나지 않으셨습니까?

ΣΩ. Ἔγωγε.
나야 만나 뵈었지.

ΜΕΝ. Εἶτα οὐκ ἐδόκει σοι ἐιδέναι;
그리고 나서도 당신께는 그 분께서 아신다고 여겨지질
않았나요?

ΣΩ. Οὐ πάνυ εἰμὶ μνήμων, ὦ Μένων, ὥστε οὐκ ἔχω
εἰπεῖν ἐν τῷ παρόντι πῶς μοι τότε ἔδοξεν. ἀλλ᾿ ἴσως
ἐκεῖνός τε οἶδε, καὶ σὺ ἃ ἐκεῖνος ἔλεγε· ἀνάμνησον οὖν                    10
με πῶς ἔλεγεν. εἰ δὲ βούλει, αὐτὸς εἰπέ· δοκεῖ γὰρ δήπου                d
σοὶ ἅπερ ἐκείνῳ.
내가 썩 기억력이 좋지는 못한지라, 메논, 그래서 그 때
내게 어찌 여겨졌는지 당장에 이야기해주지는 못하겠네.
허나 저 분께서도 아마 아셨던 듯하고, 자네도 저 분께서
말씀하셨던 것들을 아는 듯하군. 그러니 그 분께서 어찌
말씀하셨었는지 내게 상기시켜주게나. 만일 그래도 좋다면,
자네 자신이 이야기해주게. 왜냐하면 저 분께 여겨지는 바로
그대로 분명 자네에게 그리 여겨지니 말이지.
> 71c8 ὥστε: Smyth 2249-2278. CG 46.1-46.11. Result Clauses.
> 71c10 ἀνάμνησον: Smyth. 1864. The Tenses Outside of the Indicative,
Imperative. The imperative always implies future time. The tenses
do not refer to differences of time, and denote only the stage of the action.
b. Aorist (simple occurrence).

ΜΕΝ. Ἔμοιγε.
적어도 제겐 그리 여겨지지요.

ΣΩ. Ἐκεῖνον μὲν τοίνυν ἐῶμεν, ἐπειδὴ καὶ ἄπεστιν· σὺ
δὲ αὐτός, ὦ πρὸς θεῶν, Μένων, τί φῂς ἀρετὴν εἶναι; εἶπον               5
καὶ μὴ φθονήσῃς, ἵνα εὐτυχέστατον ψεῦσμα ἐψευσμένος ὦ,
ἂν φανῇς σὺ μὲν εἰδὼς καὶ Γοργίας, ἐγὼ δὲ εἰρηκὼς μηδενὶ
πώποτε εἰδότι ἐντετυχηκέναι.
그러니 저 분은 우리가 놓아 드리도록 하세, 부재중이기도
하시니. 허나 자네 자신은, 신들께 대고, 메논, 무엇을 덕이라고
주장하는가? 야박하게 굴지 말고 이야기해 주게나, 내가 가장
다행스러운 거짓을 범한 사람이도록, 자네는 자네와
고르기아스께서는 아는 것으로 드러나 보인 반면에, 나는 아직껏
단 한 번도 아는 사람이라고는 단 한 사람도 만난 적이 없다고
이야기했던 것으로 드러날 경우에 말일세. 
> 71d4 ἐῶμεν: CG 34.6; Smyth 1797-1799. Hortatory Subjunctive.
> 71d5 μὴ φθονήσῃς: CG 34.7; Smyth 1800. Prohibit Subjunctive. 
   The subjunctive (in the second and third persons of the aorist)
   is often used to express prohibitions (negative μή)

> 71d6 ἵνα: 71d6 ἵνα: LSJ ἵνα B Final Conj. I 1 b after historical tenses of ind. //

                Goodwin <Greek Grammar> 1369, 1370; Smyth 2197-2199; CG 45.3 note 1.

> 71d7 ἄν: ἐάν (so early Attic Inscrr., as IG 12.3.20, εἰάν sts. after B.C. 400,
ib.22.28.17, cf. PEleph. 1.8,10 (iv B.C.)), also contr. ἤν and ἄν, v. ἤν, ἄν
(B) [ᾱ], which by crasis with καί become κἄν:—
1. A if haply, if, regularly folld. by subj.: for its use and for examples,
v. εἰ B. ΙΙ, and ἄν (A) B.Ι.1in Hellenistic and l II late Greek,
= ἄν after relative Pronouns and Conjunctions.
> 71d7 μηδενί: ἄν 조건절 가정적 상황에서의 부정.

ΜΕΝ. Ἀλλ᾿ οὐ χαλεπόν, ὦ Σώκρατες, εἰπεῖν. πρῶτον                       e
μέν, εἰ βούλει ἀνδρὸς ἀρετήν, ῥᾴδιον, ὅτι αὕτη ἐστὶν ἀνδρὸς
ἀρετή, ἱκανὸν εἶναι τὰ τῆς πόλεως πράττειν, καὶ πράττοντα
τοὺς μὲν φίλους εὖ ποιεῖν, τοὺς δ᾿ ἐχθροὺς κακῶς, καὶ αὐτὸν
εὐλαβεῖσθαι μηδὲν τοιοῦτον παθεῖν. εἰ δὲ βούλει γυναικὸς                5
ἀρετήν, οὐ χαλεπὸν διελθεῖν, ὅτι δεῖ αὐτὴν τὴν οἰκίαν εὖ
οἰκεῖν, σώζουσάν τε τὰ ἔνδον καὶ κατήκοον οὖσαν τοῦ ἀνδρός.            //210316
καὶ ἄλλη ἐστὶν παιδὸς ἀρετή, καὶ θηλείας καὶ ἄρρενος, καὶ
πρεσβυτέρου ἀνδρός, εἰ μὲν βούλει, ἐλευθέρου, εἰ δὲ βούλει,
δούλου. καὶ ἄλλαι πάμπολλαι ἀρεταί εἰσιν, ὥστε οὐκ                   72a
ἀπορία εἰπεῖν ἀρετῆς πέρι ὅτι ἐστίν· καθ᾿ ἑκάστην γὰρ
τῶν πράξεων καὶ τῶν ἡλικιῶν πρὸς ἕκαστον ἔργον ἑκάστῳ
ἡμῶν ἡ ἀρετή ἐστιν, ὡσαύτως δὲ οἶμαι, ὦ Σώκρατες, καὶ ἡ
κακία.                                                                                    5
그러시다면 말씀드리기 어렵지 않습니다, 소크라테스. 첫째로는,
만일 사내의 덕을 말하기를 바라신다면, 이런 것이 사내의 덕이라고
말하기는 쉬운 일이지요, 나랏일을 수행하기에 충분한 자인 것,
또한 그런 일들을 수행하며 친구들에게는 잘 대해주고, 적들에게는
나쁘게 대하기에도, 그리고 이런 종류의 일을 결코 겪지 않게끔
스스로 신중하게 굴기에도 충분한 자인 것이라고 말입니다. 반면에
만일 여인의 덕을 말하기를 바라신다면, 상술하기에 어렵지 않으니, 
그녀가 가정을 잘 관리해야 하며, 집안일들을 건사하면서도 지아비에게
귀기울임으로써 그리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의 덕은 또
그 외의 것이니, 여자아이의 덕이나 남자아이의 덕이나 그러하며,
나이 든 사내의 덕도, 또 바라신다면 자유인의 덕도, 달리 바라신다면
노예의 덕도 그렇습니다. 그 밖에도 덕들이란 무수히 여럿이고,
그래서 덕에 관하여 그것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기에 곤란한
점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덕은 각각의 행위와 연령에 따라
각각의 기능에 관련해 우리 각자를 위한 것이고, 제 생각에는,
소크라테스, 악덕 또한 그 만큼 여러가지입니다.
> 71e1 ἀλλά: Denniston 10쪽 (6) Assentient. This use is first sight
diamentrically opposed to the adversative. But in fact assent may
include the idea of opposition in two contrary ways.
(a) Agreemnet is presented as self-evident and inevitable.
The speaker not only agrees, but repudiates the very idea that
dissent is possible. [...] This force of ἀλλά is most clearly present
where a question precedes: the particle protests, in effect, against
the asking of a superfluous question. (b) Agreement is presented,
not as self-evident, but as wrung from the speaker malgre lui.
ἀλλά then points the contrast between the assent given of it.
In (a) 'Why', in (b) 'Well' is usually the best translation. ...
> 71e2 ἀνδρὸς ἀρετήν: 형용사의 서술적 용법으로 위치를 설정함으로써
정관사 "ἡ"의 사용을 의도적으로 피한 것일 수 있다. by Jung.
> 71e3 ἱκανὸν εἶναι: CG 51.9. The dynamic infinitive is also used
to complement certain adjectives and nouns with meanings similar
to those listed above, i.e. expressing ability, possibility, need, desire, etc.
Cf., 51.8-51.18. Dynamic Infinitives.

> ἔργον 관련. 메논의 경우 '기능'은 신분제와 가부장제의 분류를 따라 배치된다.

반면 플라톤은 인간 자체의 기능이 문제시된다. by Jung.
-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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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상반기 ‘교육강좌’를 안내합니다.

학당에서는 지난 해 고전 그리스어 초급이나 중급 과정을 마친 분들을 위한 ‘교육강좌’를 신설하였습니다. 본 강좌는 그리스어 원전 강독 훈련을 통해 원전 독해 능력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습니다. 장차 고전을 전공하고자 하는 학생이나 고전을 깊이 있게 탐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자 하는 분들에게 수강을 권합니다. 기본적인 어형론과 더불어 구문론 등 고전 그리스어 문법을 체계적으로 학습하시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2021년 상반기 교육강좌는 정준영 선생님의   ‘플라톤의  『메논』 강독’으로 진행됩니다.

강의는 매주 플라톤의 『메논』 원전을 문법적으로, 내용적으로 분석하며 읽어 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탁월함(덕)의 교육 가능성을 탐색하는 『메논』은 플라톤의 대화편들 가운데서도 논증적이고 비판적인 탐구로서의 철학의 전형을 간결하고도 압축적인 언어로 보여주고 있는 매우 중요한 대화편입니다.  『메논』 원전 강독에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강좌에 대한 상세 안내는 첨부된 ‘수업계획서’를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강좌는 ZOOM을 활용한 비대면 실시간 온라인 강의로 진행됩니다.

강좌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정준영 선생님께 이메일로 신청하시거나 댓글에 신청 의사를 남기시면 정준영 선생님께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강좌를 신청하실 때 1) 고전 그리스어 학습 이력과 2) 관심사를 함께 기재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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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회! 추천!

 

-蟲-

1. 진행 중: 플라톤 『티마이오스』 강독.

              아리스토텔레스 『자연학』 윤독.

              안티폰 연설 윤독

              플라톤 『파르메니데스』 강독.

 

   예정: 엘레아의 제논 단편 세미나 준비(초벌 번역). 

           플라톤 『메논』 강독.

 

2. 미수료 3학점 수강: II부분 이론1 현대 프랑스철학 or 니체.

   학점교류 수강: 엘레아의 제논 단편 세미나.

   청강: 프레게 참/거짓 세미나 or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자기애 개념 세미나

 

3. 논자시 제2외국어 독일어, 자체논자시(어느 분야?), 논문 투고.

 

구조를 갖지 않는 단순하고 직접적인 인식대상과 인식능력이 『테아이테토스』의 문제이고

구조를 갖지 않는 단순하고 직접적인 형상이 복잡하고 간접적인 존재와 인식에 매개될 수 없다는 게 『파르메니데스』의 문제이며

대상과 인식 그리고 이 둘을 매개하는 언어 모두에 중심과 끝들 그리고 부분과 전체라는 구조를 부여하고 간접적인 중간 단계를 제공하는 것이 『소피스트』가 위 두 문제를 진단하여 제안하는 해결책이고

단순하고 직접적인 형상이 변화생멸하는 시공간적 영역에서 여전히 질서와 체계를 갖춘 채 인식의 가능성을 보장해주는 원리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이 『티마이오스』에서 제시되며

"있는 것은 있지 않다"와 "테아이테토스는 날고 있다"가 구조를 공유하되 양상에서 구분되는 일이 이상의 과정을 통해 비로소 설명된다는 것을,

 

박사논문 주제로 삼아서 쓰겠다고 하면 나는 또 얼마나 욕을 바가지로 먹을까? 심지어 저 '구조'를 형상의 자기술어화와 본질과 정의라는 어마무시한 개념들을 통해서 설명해야 한다고 고집을 피운다면, 내가 졸업을 할 수나 있을까? 뭐 일단 그냥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고, 꼭 이게 아니래도 결국 저 넷, 적어도 앞의 세 대화편 안에서 싸우게 될 거고 그보다 좁힐 수 있다면 뭐 좁힐 수도 있겠고, 그야말로 두려움도 희망도 없이 가는 데까지 가 볼 수밖에.

 

-蟲-

Πρῶτον μὲν δὴ πῦρ καὶ γῆ καὶ ὕδωρ καὶ ἀὴρ ὅτι σώματά

ἐστι, δῆλόν που καὶ παντί· τὸ δὲ τοῦ σώματος εἶδος πᾶν                              5

καὶ βάθος ἔχει. τὸ δὲ βάθος αὖ πᾶσα ἀνάγκη τὴν ἐπίπεδον

περιειληφέναι φύσιν· ἡ δὲ ὀρθὴ τῆς ἐπιπέδου βάσεως ἐκ

τριγώνων συνέστηκεν. 

그래서 우선은 불과 흙과 물과 공기가 물체들로 있다는 점은,

어쨌든 모든 이들에게 분명합니다. 그런데 물체의 형상은

모두 깊이 또한 지니지요. 그런데 이번엔 깊이는 면으로 된

본성이 감싼다는 것이 전적으로 필연적입니다. 그런데 면으로

된 [입체의] 밑면의 직선적인 본성은 삼각형들로부터 구성되죠.

                              τὰ δὲ τρίγωνα πάντα ἐκ δυοῖν ἄρ-

χεται τριγώνοιν, μίαν μὲν ὀρθὴν ἔχοντος ἑκατέρου γωνίαν,                       d

τὰς δὲ ὀξείας· ὧν τὸ μὲν ἕτερον ἑκατέρωθεν ἔχει μέρος

γωνίας ὀρθῆς πλευραῖς ἴσαις διῃρημένης, τὸ δ᾿ ἕτερον ἀνίσοις

ἄνισα μέρη νενεμημένης. 

그런데 모든 삼각형들은 두 가지의 삼각형들로부터 시작하니,

그 둘 각각이 한편으로는 하나의 직-각을, 다른 한편으로는 

예각들을 지닙니다. 그 둘 중 한편은 같은 길이의 빗변들에 의해

분할된 직각의 부분을 양편 각각에 지니는 것이고, 다른 한편은

불균등한 [빗변인] 것들에 의해 배분된 [직각인] 것의 불균등한

부분들을 지니지요.

                                 ταύτην δὴ πυρὸς ἀρχὴν καὶ τῶν

ἄλλων σωμάτων ὑποτιθέμεθα κατὰ τὸν μετ᾿ ἀνάγκης εἰκότα                         5

λόγον πορευόμενοι· τὰς δ᾿ ἔτι τούτων ἀρχὰς ἄνωθεν θεὸς

οἶδεν καὶ ἀνδρῶν ὃς ἂν ἐκείνῳ φίλος ᾖ. 

                         불과 그 외의 물체들의 이러한 시초를 우리는

필연을 동반하는 모상적인 말에 따라 진행하며 가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들의 더 위로부터의 시초들은 신께서 그리고 인간들

중 저 분께 친애로울 이가 일찍이 알고 있습니다.

> 가정하는 전제보다 더 상위의 차원에서의 시초들은...

   『국가』에서 선분 비유와 관련성이 엿보인다. 가정이라든지

그 위라든지...

                                                    δεῖ δὴ λέγειν ποῖα

κάλλιστα σώματα γένοιτ᾿ ἂν τέτταρα, ἀνόμοια μὲν ἑαυτοῖς,                        e

δυνατὰ δὲ ἐξ ἀλλήλων αὐτῶν ἄττα διαλυόμενα γίγνεσθαι·

τούτου γὰρ τυχόντες ἔχομεν τὴν ἀλήθειαν γενέσεως πέρι

γῆς τε καὶ πυρὸς τῶν τε ἀνὰ λόγον ἐν μέσῳ. 

                                                             그래서 어떤

것들이 가장 아름다운 네 가지 물체들이 될 수 있을지 말해야

합니다. 자신들끼리는 안-마찬가지인 것들이지만, 서로로부터

그들 중 일부로 해체되어 생겨날 수 있는 것들을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일에 성공할 때 흙의 생성이든 불의 생성이든

비율에 따라 중간에 속하는 것들의 생성이든 그에 관련한 진리를

가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여기에 앞서서는 필연에 따른 설명들이 제시되었고, 여기에서부터

'가장 아름다운 것들'의 논의가 시작된다. 이것이 앞서는 필연, 이후는

아름다움-지성이라는 논의의 두 측면으로 이해할 여지가 생긴다. by Kang.

                                                          τόδε γὰρ

οὐδενὶ συγχωρησόμεθα, καλλίω τούτων ὁρώμενα σώματα                           5

εἶναί που καθ᾿ ἓν γένος ἕκαστον ὄν. τοῦτ᾿ οὖν προθυμητέον,

τὰ διαφέροντα κάλλει σωμάτων τέτταρα γένη συναρμό-

σασθαι καὶ φάναι τὴν τούτων ἡμᾶς φύσιν ἱκανῶς εἰληφέναι.

                                               왜냐하면 다음의 점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우리가 허용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것들보다 더 아름다운 가시적인 물체들이 어딘가에 하나씩

각각의 유인 채로 있다는 점에 대해 말입니다. 그러니 이 일에

열의를 보여야만 합니다, 아름다움으로 두드러지는 네 부류의

물체들을 함께 조화시키고 또한 이것들의 본성을 우리가 충분히

파악하였다고 주장하도록 하는 일에 말입니다.

τοῖν δὴ δυοῖν τριγώνοιν τὸ μὲν ἰσοσκελὲς μίαν εἴληχεν                          54a1

φύσιν, τὸ δὲ πρόμηκες ἀπεράντους· προαιρετέον οὖν αὖ τῶν

ἀπείρων τὸ κάλλιστον, εἰ μέλλομεν ἄρξεσθαι κατὰ τρόπον.

                                                            그럼 두 삼각형

중 이등변인 쪽은 단일한 본성을 품부받았고, 부등변인 쪽은

무한한 본성들을 품부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그 무한한 것들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을 선택해야만 하지요, 제대로 된 방식으로

우리가 장차 일을 시작하려면 말입니다.

ἂν οὖν τις ἔχῃ κάλλιον ἐκλεξάμενος εἰπεῖν εἰς τὴν τούτων

σύστασιν, ἐκεῖνος οὐκ ἐχθρὸς ὢν ἀλλὰ φίλος κρατεῖ· τιθέ-                            5

μεθα δ᾿ οὖν τῶν πολλῶν τριγώνων κάλλιστον ἕν, ὑπερβάντες

τἆλλα, ἐξ οὗ τὸ ἰσόπλευρον τρίγωνον ἐκ τρίτου συνέστηκεν.

                                                   그리하여 누군가가

그것들의 구성 쪽으로 더 아름다운 것을 선정하여 말할 수 있을

것이라면, 저 자는 적으로서가 아니라 친구로서 우리를 제압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여러 삼각형들 중 가장 아름다운 하나를

가정하니, 그 밖의 것들은 넘어가면서 그리하며, 등변 삼각형이

그 삼각형들로부터 세 번째 것으로부터 구성된 바의 것을 상정합니다.

διότι δέ, λόγος πλείων· ἀλλὰ τῷ τοῦτο ἐλέγξαντι καὶ ἀνευ-                        b

ρόντι δὴ οὕτως ἔχον κεῖται φίλια τὰ ἆθλα. προῃρήσθω

δὴ δύο τρίγωνα ἐξ ὧν τό τε τοῦ πυρὸς καὶ τὰ τῶν ἄλλων

σώματα μεμηχάνηται, τὸ μὲν ἰσοσκελές, τὸ δὲ τριπλῆν κατὰ

δύναμιν ἔχον τῆς ἐλάττονος τὴν μείζω πλευρὰν ἀεί. τὸ                                5

δὴ πρόσθεν ἀσαφῶς ῥηθὲν νῦν μᾶλλον διοριστέον. 

그런데 그 이유는, 설명이 더 많지요. 허나 그 점을 논박하거나

사정이 그러하다고 지적하는 자에게는 친애로운 경쟁이

자리합니다. 그럼 불의 물체도 그 밖의 것들의 물체들도 그로부터

고안되어 나온 그러한 두 가지 삼각형으로, 한편에서는 등변인

것이, 다른 편에서는 제곱에 따라 더 작은 변에 대해 세 배가

되는 더 큰 변을 언제나 지니는 것이 선택된 것으로 합시다.

그럼 앞서 불확실하게 언급된 것이 이제 훨씬 더 확실하게

규정되어야만 합니다.

                                                                   τὰ γὰρ

τέτταρα γένη δι᾿ ἀλλήλων εἰς ἄλληλα ἐφαίνετο πάντα γέ-

νεσιν ἔχειν, οὐκ ὀρθῶς φανταζόμενα· γίγνεται μὲν γὰρ ἐκ

τῶν τριγώνων ὧν προῃρήμεθα γένη τέτταρα, τρία μὲν ἐξ                         c

ἑνὸς τοῦ τὰς πλευρὰς ἀνίσους ἔχοντος, τὸ δὲ τέταρτον ἓν

μόνον ἐκ τοῦ ἰσοσκελοῦς τριγώνου συναρμοσθέν. 

                             왜냐하면 그 네 유들이 서로를 통해

그리고 서로를 향해 모두 다 생성을 지니는 것처럼 나타났는데,

옳지 않게 나타났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겨나기로는 우리가

앞서 선정한 그 삼각형들로부터 네 가지 유들이 생기지만, 셋은

부등변들을 지니는 한 가지 것으로부터 생겨나고, 네 번째 것

오직 그 하나만 등변 삼각형을 통해 구성되니 말입니다.

                                                                  οὔκουν

δυνατὰ πάντα εἰς ἄλληλα διαλυόμενα ἐκ πολλῶν σμικρῶν

ὀλίγα μεγάλα καὶ τοὐναντίον γίγνεσθαι, τὰ δὲ τρία οἷόν τε·                         5

ἐκ γὰρ ἑνὸς ἅπαντα πεφυκότα λυθέντων τε τῶν μειζόνων

πολλὰ σμικρὰ ἐκ τῶν αὐτῶν συστήσεται, δεχόμενα τὰ προσ-

ἠκοντα ἑαυτοῖς σχήματα, καὶ σμικρὰ ὅταν αὖ πολλὰ κατὰ

τὰ τρίγωνα διασπαρῇ, γενόμενος εἷς ἀριθμὸς ἑνὸς ὄγκου                           d

μέγα ἀποτελέσειεν ἂν ἄλλο εἶδος ἕν.                                       //210519

그러므로 모든 것들이 서로들에게로 해체되어서 여러 작은

것들로부터 소수의 거대한 것들 또 그 반대로도 생성될 수

있는 게 아니라, 세 가지 것들이 그럴 수 있는 것들입니다.

왜냐하면 그 [세 가지 것들] 모두는 본성상 하나(한 종류인

부등변 삼각형)로부터 유래하였기에 더 큰 것들이 해체될

때에도 여러 작은 것들은 같은 것들로 구성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에게 적합한 형태들을 수용함으로써 말입니다. 그리고

여러 작은 것들이 다시 삼각형들을 따라 흩어질 때에도, 하나의

입체에 대한 하나의 수가 됨으로써 또 다른 거대한 하나의 형상을

완성시켜낼 수 있을 테니까요.

                                                ταῦτα μὲν οὖν λελέχθω

περὶ τῆς εἰς ἄλληλα γενέσεως· οἷον δὲ ἕκαστον αὐτῶν

γέγονεν εἶδος καὶ ἐξ ὅσων συμπεσόντων ἀριθμῶν, λέγειν

ἂν ἑπόμενον εἴη. ἄρξει δὴ τό τε πρῶτον εἶδος καὶ σμικρό-                           5

τατον συνιστάμενον, στοιχεῖον δ᾿ αὐτοῦ τὸ τὴν ὑποτείνουσαν

τῆς ἐλάττονος πλευρᾶς διπλασίαν ἔχον μήκει· 

                                    그러므로 상호적인 생성에 관련하여

이런 점들이 논해졌다 칩시다. 그런데 그것들의 각각이 어떤 형상으로

생성되었고 또 얼만큼 결합된 수들을 통해 생성되었는지, 논하는

일이 이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최초의 형상이자 최소인 것이 구성되기

시작할 것이고, 그런데 더 짧은 변에 대해 길이가 두 배인 빗변을

가지는 것[삼각형]이 그 형상의 요소일 것입니다.

                                                            σύνδυο δὲ

τοιούτων κατὰ διάμετρον συντιθεμένων καὶ τρὶς τούτου

γενομένου, τὰς διαμέτρους καὶ τὰς βραχείας πλευρὰς εἰς                           e

ταὐτὸν ὡς κέντρον ἐρεισάντων, ἓν ἰσόπλευρον τρίγωνον ἐξ ἓξ

τὸν ἀριθμὸν ὄντων γέγονεν. 

그런데 이러한 것들 한 짝이 대각선을 따라 결합되고 이것이

세 차례 이루어지면, 그 대각선들과 짧은 변들이 중점으로서의

같은 점으로 기울여서, 여섯 개로 있는 삼각형들로 이루어진

수적으로 하나의 등변 삼각형이 생성됩니다.

                                      τρίγωνα δὲ ἰσόπλευρα συνιστά-

μενα τέτταρα κατὰ σύντρεις ἐπιπέδους γωνίας μίαν στερεὰν

γωνίαν ποιεῖ, τῆς ἀμβλυτάτης τῶν ἐπιπέδων γωνιῶν ἐφεξῆς                    55a1

γεγονυῖαν· τοιούτων δὲ ἀποτελεσθεισῶν τεττάρων πρῶτον

εἶδος στερεόν, ὅλου περιφεροῦς διανεμητικὸν εἰς ἴσα μέρη

καὶ ὅμοια, συνίσταται. 

                                                      그런데 등변 삼각형들

네 개가 세 면이 합쳐지는 모서리들을 따라 함께 구성되면 단일한 

입체각을 만듭니다. 면각들 중 최대 둔각 다음에 오는 각으로서

생성된 그러한 각을 말이지요. 그런데 이런 입체각들이 네 개

완성되어 나올 때 처음으로 입체 형상이, 외접구 전체를 같은

크기의 유사한(같은) 부분들로 분할가능한 것으로서, 구성됩니다.

> 55a1 τῆς ἀμβλυτάτης ... ἐφεξῆς: 무한히 수평에 가까운 그러나 수평은

아니고 여전히 각인 것(τῆς ἀμβλυτάτης)의 바로 다음 것(수평, 180º).

무한과 극한값, 경계 등에 대한 생각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표현이다.

                              δεύτερον δὲ ἐκ μὲν τῶν αὐτῶν

τριγώνων, κατὰ δὲ ἰσόπλευρα τρίγωνα ὀκτὼ συστάντων,                             5

μίαν ἀπεργασαμένων στερεὰν γωνίαν ἐκ τεττάρων ἐπιπέδων·

καὶ γενομένων ἓξ τοιούτων τὸ δεύτερον αὖ σῶμα οὕτως ἔσχεν

τέλος. 

두 번째 형상은 똑같은 삼각형들로부터, 그런데 여덟 개의

등변 삼각형들을 따라 구성된 그런 삼각형들로부터, 네 개의

면들로부터 단일한 입체각을 완성해내는 삼각형들로부터

나옵니다. 이러한 입체각들이 여섯 개 생성되면 이번엔 두 번째

물체가 그런 식으로 완성을 봅니다.

        τὸ δὲ τρίτον ἐκ δὶς ἑξήκοντα τῶν στοιχείων συμ-

παγέντων, στερεῶν δὲ γωνιῶν δώδεκα, ὑπὸ πέντε ἐπιπέδων                      b

τριγώνων ἰσοπλεύρων περιεχομένης ἑκάστης, εἴκοσι βάσεις

ἔχον ἰσοπλεύρους τριγώνους γέγονεν. 

                                           그런데 세 번째 형상은

60 개씩 두 번 결합된 요소 삼각형들로부터, 12 개의

입체각들, 그 각각이 등변 삼각형들의 다섯 개 면들에 의해 

둘러싸인 그러한 입체각들로부터, 20 개의 밑면인 등변삼각형들을

지니는 것으로 생성됩니다.

                                                  καὶ τὸ μὲν ἕτερον

ἀπήλλακτο τῶν στοιχείων ταῦτα γεννῆσαν, τὸ δὲ ἰσοσκελὲς

τρίγωνον ἐγέννα τὴν τοῦ τετάρτου φύσιν, κατὰ τέτταρα                              5

συνιστάμενον, εἰς τὸ κέντρον τὰς ὀρθὰς γωνίας συνάγον,

ἓν ἰσόπλευρον τετράγωνον ἀπεργασάμενον· 

                                 그래서 요소 삼각형들 중 다른 한쪽은

이러한 것들을 산출하고서 빠져 나오고, 직각이등변삼각형은

네 번째 형상의 본성을 산출하니, 네 개씩 결합됨으로써, 중점을

향해 직각들을 모아서, 단일한 등변사각형을 완성해냄으로써

그리합니다.

                                                           ἓξ δὲ τοιαῦτα

συμπαγέντα γωνίας ὀκτὼ στερεὰς ἀπετέλεσεν, κατὰ τρεῖς                          c

ἐπιπέδους ὀρθὰς συναρμοσθείσης ἑκάστης· τὸ δὲ σχῆμα τοῦ

συστάντος σώματος γέγονεν κυβικόν, ἓξ ἐπιπέδους τετρα-

γώνους ἰσοπλεύρους βάσεις ἔχον. 

                그런데 이러한 사각형들 여섯 개가 결합하여

여덟 개의 입체각을 완성해내니, 그 각각의 입체각이 세 개 씩의

수직 면각들을 따라 조합됨으로써 그리 합니다. 그런데 그 구성된

물체의 형태는 입방체, 여섯 개의 면들로서 등변사각형들을

밑면으로 지니는 것이 됩니다.

                                            ἔτι δὲ οὔσης συστάσεως

μιᾶς πέμπτης, ἐπὶ τὸ πᾶν ὁ θεὸς αὐτῇ κατεχρήσατο ἐκεῖνο                             5

διαζωγραφῶν.

                                    그런데 여전히 다섯 번째가 되는

구조가 하나 있으니, 우주를 두고 그 신께서 이 구조를 사용하시어

저것을 생동감 있게 그려내셨습니다.

 

Ἃ δή τις εἰ πάντα λογιζόμενος ἐμμελῶς ἀποροῖ πότερον

ἀπείρους χρὴ κόσμους εἶναι λέγειν ἢ πέρας ἔχοντας, τὸ μὲν

ἀπείρους ἡγήσαιτ᾿ ἂν ὄντως ἀπείρου τινὸς εἶναι δόγμα ὧν                         d

ἔμπειρον χρεὼν εἶναι, πότερον δὲ ἕνα ἢ πέντε αὐτοὺς ἀληθείᾳ

πεφυκότας λέγειν ποτὲ προσήκει, μᾶλλον ἂν ταύτῃ στὰς

εἰκότως διαπορήσαι. 

그래서 누군가가 만일 이 모든 것들을 조율된 방식으로 헤아리며 

모든 우주들이 무한하다고 말해야 하는지 아니면 한계들을 지니는

것들이라 말해야 하는지 난관에 빠진다면, 무한하다는 쪽은 경험이

있어야 하는 일들에 대해 진정으로 경험이 없는 어떤 이의 의견이라

생각할 테고, 그 우주들이 진리에서 본래적으로 하나라고 논하는

편이 어울릴지 아니면 다섯이라고 논하는 편이 도대체 어울릴지, 

차라리 이 지점에 멈추어 서서 난관에 빠지는 편이 그럴 듯합니다.

                            τὸ μὲν οὖν δὴ παρ᾿ ἡμῶν ἕνα αὐτὸν

κατὰ τὸν εἰκότα λόγον πεφυκότα μηνύει θεόν, ἄλλος δὲ εἰς                           5

ἄλλα πῃ βλέψας ἕτερα δοξάσει. καὶ τοῦτον μὲν μεθετέον,

τὰ δὲ γεγονότα νῦν τῷ λόγῳ γένη διανείμωμεν εἰς πῦρ καὶ

γὴν καὶ ὕδωρ καὶ ἀέρα. 

그러므로 우리쪽의 모상적인 논변에 따른 경우는 그것이 본성적으로

단일한 신이라 언명하고, 그 외의 사람은 여타의 것들을 어떤

식으론가 주목하여 다른 것들을 믿을 것입니다. 그럼 이런 자는

넘어가야 하고, 지금 논의에 따라 생성된 유들은 불과 흙과 물과

바람에 할당해 보도록 합시다.

                                γῇ μὲν δὴ τὸ κυβικὸν εἶδος δῶμεν·

ἀκινητοτάτη γὰρ τῶν τεττάρων γενῶν γῆ καὶ τῶν σωμάτων                      e

πλαστικωτάτη, μάλιστα δὲ ἀνάγκη γεγονέναι τοιοῦτον τὸ τὰς

βάσεις ἀσφαλεστάτας ἔχον· βάσις δὲ ἥ τε τῶν κατ᾿ ἀρχὰς

τριγώνων ὑποτεθέντων ἀσφαλεστέρα κατὰ φύσιν ἡ τῶν ἴσων

πλευρῶν τῆς τῶν ἀνίσων, τό τε ἐξ ἑκατέρου συντεθὲν ἐπί-                           5

πεδον ἰσόπλευρον ἰσοπλεύρου τετράγωνον τριγώνου κατά τε

μέρη καὶ καθ᾿ ὅλον στασιμωτέρως ἐξ ἀνάγκης βέβηκεν. 

                                      그럼 흙에는 입방체 형상을

부여하도록 하죠. 왜냐하면 네 유들 중 흙이 가장 안 움직이는

것이고 물체들 중에서 조형하기 좋은 것이며, 특히 가장 안정적인

밑면들을 지니는 것이 이런 것으로 생성된다는 것이 필연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초에 전제된 삼각형들인 밑면도 부등변

삼각형들의 밑면보다 등변삼각형들의 밑면이 본성에 따라 더욱

안정적이고, 양자로부터 조합된 평면의 경우에도 등변삼각형보다

등변사각형이 부분에 따라서도 전체에 따라서도 더욱 확정적인

방식으로 필연을 통해 귀결되었습니다.

                                                                         διὸ

γῇ μὲν τοῦτο ἀπονέμοντες τὸν εἰκότα λόγον διασῴζομεν,                       56a1

ὕδατι δ᾿ αὖ τῶν λοιπῶν τὸ δυσκινητότατον εἶδος, τὸ δ᾿

εὐκινητότατον πυρί, τὸ δὲ μέσον ἀέρι· καὶ τὸ μὲν σμικρό-

τατον σῶμα πυρί, τὸ δ᾿ αὖ μέγιστον ὕδατι, τὸ δὲ μέσον

ἀέρι· καὶ τὸ μὲν ὀξύτατον αὖ πυρί, τὸ δὲ δεύτερον ἀέρι, τὸ                          5

δὲ τρίτον ὕδατι. 

                                               이런 이유로 우리가

흙에는 이러한 형상을 할당함으로써 우리의 모상적인 논변을

보존합니다만, 이번엔 물에는 남은 것들 중에서 제일 어렵사리

운동하는 형상을 할당하고, 가장 동적인 형상은 불에, 그 중간

형상은 바람에 할당함으로써 그리 합니다. 또한 가장 작은

물체는 불에, 또 이번엔 가장 큰 물체는 물에, 그 중간 물체는

바람에 할당하지요. 그리고 가장 날카로운 물체는 이번엔

불에, 두 번째로 날카로운 것은 바람에, 세 번째는 물에

할당합니다.

                      ταῦτ᾿ οὖν δὴ πάντα, τὸ μὲν ἔχον ὀλιγίστας

βάσεις εὐκινητότατον ἀνάγκη πεφυκέναι, τμητικώτατόν τε

καὶ ὀξύτατον ὂν πάντῃ πάντων, ἔτι τε ἐλαφρότατον, ἐξ                            b

ὀλιγίστων συνεστὸς τῶν αὐτῶν μερῶν· τὸ δὲ δεύτερον

δευτέρως τὰ αὐτὰ ταῦτ᾿ ἔχειν, τρίτως δὲ τὸ τρίτον.                   //210529

               그리하여 실로 이러한 모든 것들을 두고, 가장 적은

면을 지니는 것은 본래적으로 가장 동적인 것임이 필연적이고,

모든 물체들 중에서 모든 면에서 가장 절삭력이 있으며 가장

날카로운 것이기에, 더욱이 가장 가벼운 것이기도 하니, 가장

적은 수의 똑같은 부분들로 구성되었기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것은 바로 그와 같은 상태를 두 번째가 되는 방식으로

지니며, 세 번째가 되는 방식으로는 세 번째 것이 그러함이 

필연적입니다.

                                                                    ἔστω δὴ

κατὰ τὸν ὀρθὸν λόγον καὶ κατὰ τὸν ἐικότα τὸ μὲν τῆς πυρα-

μίδος στερεὸν γεγονὸς εἶδος πυρὸς στοιχεῖον καὶ σπέρμα· τὸ                       5

δὲ δεύτερον κατὰ γένεσιν εἴπωμεν ἀέρος, τὸ δὲ τρίτον ὕδατος.

                  그래서 옳고도 모상적인 논변에 따라서 각뿔형의

입방체 형상이 불의 요소이자 종자로서 생성된 것으로 있다고 합시다.

생성에 따라 두 번째 것은 바람에 대해, 세 번째 것은 물에 대해

그렇다고 합시다.

πάντα οὖν δὴ ταῦτα δεῖ διανοεῖσθαι σμικρὰ οὕτως, ὡς καθ᾿

ἓν ἕκαστον μὲν τοῦ γένους ἑκάστου διὰ σμικρότητα οὐδὲν                        c

ὁρώμενον ὑφ᾿ ἡμῶν, συναθροισθέντων δὲ πολλῶν τοὺς ὄγκους

αὐτῶν ὁρᾶσθαι· καὶ δὴ καὶ τὸ τῶν ἀναλογιῶν περί τε τὰ

πλήθη καὶ τὰς κινήσεις καὶ τὰς ἄλλας δυνάμεις πανταχῇ

τὸν θεόν, ὅπῃπερ ἡ τῆς ἀνάγκης ἑκοῦσα πεισθεῖσά τε φύσις                          5

ὑπεῖκεν, ταύτῃ πάντῃ δι᾿ ἀκριβείας ἀποτελεσθεισῶν ὑπ᾿ αὐτοῦ

συνηρμόσθαι ταῦτα ἀνὰ λόγον.

                      그리하여 실로 이러한 모든 것들이 각 유의 각기

하나씩으로는 미세함으로 인하여 우리에 의해서는 아무것도 보이질

않을 만큼, 그렇게 작은 것들이라 생각되어야 하고, 그런데 여럿이

함께 모인다면 그것들의 덩어리들이 보인다고 생각되어야 합니다.

더욱이 그 복수와 운동들 그리고 여타 능력들에 관련한 비율들의

경우 그 신께서 모든 곳에서, 필연의 본성 역시 자발적으로 설득되어

승복한, 바로 그 방식으로 모든 면에서 엄밀성을 통하여 그 분에

의해 완성되었기에 이것들을 비례에 따라 조화시키셨다고 생각되어야

합니다.

 

Ἐκ δὴ πάντων ὧνπερ τὰ γένη προειρήκαμεν ὧδ᾿ ἂν κατὰ

τὸ εἰκὸς μάλιστ᾿ ἂν ἔχοι. γῆ μὲν συντυγχάνουσα πυρὶ                               d

διαλυθεῖσά τε ὑπὸ τῆς ὀξύτητος αὐτοῦ φέροιτ᾿ ἂν, εἴτ᾿ ἐν

αὐτῷ πυρὶ λυθεῖσα εἴτ᾿ ἐν ἀέρος εἴτ᾿ ἐν ὕδατος ὄγκῳ τύχοι,

μέχριπερ ἂν αὐτῆς πῃ συντυχόντα τὰ μέρη, πάλιν συναρμο-

σθέντα αὐτὰ αὑτοῖς, γῆ γένοιτο―οὐ γὰρ εἰς ἄλλο γε εἶδος                           5

ἔλθοι ποτ᾿ ἂν―ὕδωρ δὲ ὑπὸ πυρὸς μερισθέν, εἴτε καὶ ὑπ᾿

ἀέρος, ἐγχωρεῖ γίγνεσθαι συστάντα ἓν μὲν πυρὸς σῶμα, δύο

δὲ ἀέρος· τὰ δὲ ἀέρος τμήματα ἐξ ἑνὸς μέρους διαλυθέντος                       e

δύ᾿ ἂν γενοίσθην σώματα πυρός. 

그래서 우리가 그것들에 관련하여 그 유들을 이야기한 모든

것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식으로 최대한 모상적인 상태가 될

것입니다. 흙은 불과 마주쳐서 그 불의 날카로움에 의해 해체되어

움직여질 것이고, 불 자체 속에서든 바람의 덩어리 속에서든

물의 덩어리 속에서든 해체되어 버릴 것이며, 그 흙의 부분들이

어디에선가 함께 마주치고, 다시 그것들이 자신들끼리 조화되어서,

흙이 될 때까지 그리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도무지 다른 형상으로는

도달하지 못할 테니 말이지요. 그런데 물은 불에 의해 분절되면,

또는 바람에 의해서라도 그리 되면, 구성되었던 것들이 하나는

불의 물체로, 둘은 물의 물체로 생성되는 것을 허용해줍니다.

해체된 한 부분으로부터 분절되어 나온 바람의 부분들은 불의

물체들 둘로 생성될 것입니다.

                                            καὶ πάλιν, ὅταν ἀέρι πῦρ

ὕδασίν τε ἢ τινι γῇ περιλαμβανόμενον ἐν πολλοῖς ὀλίγον,

κινούμενον ἐν φερομένοις, μαχόμενον καὶ νικηθὲν κατα-

θραυσθῇ, δύο πυρὸς σώματα εἰς ἓν συνίστασθον εἶδος ἀέρος·                      5

καὶ κρατηθέντος ἀέρος κερματισθέντος τε ἐκ δυοῖν ὅλοιν καὶ

ἡμίσεος ὕδατος εἶδος ἓν ὅλον ἔσται συμπαγές. 

                             그리고 다시, 바람이나 물 또는 어떤

흙 같은 것이 많은 와중에 그 안에 소수의 불이 포괄될 때,

움직여지는 그 많은 것들 안에서 그 소수의 것이 운동할 때,

싸우다가 굴복당해 파편화될 때, 불에 해당하는 물체 둘이

단일한 바람의 형상으로 결합될 것입니다. 그리고 공기가

제압되고 깨져서 온전한 [공기의] 물체 둘과 절반으로부터

물의 형상 하나가 온전하게 결합된 것으로 있을 것입니다.

                                                             ὧδε γὰρ δὴ

λογισώμεθα αὐτὰ πάλιν, ὡς ὅταν ἐν πυρὶ λαμβανόμενον τῶν

ἄλλων ὑπ᾿ αὐτοῦ τι γένος τῇ τῶν γωνιῶν καὶ κατὰ τὰς πλευρὰς              57a1

ὀξύτητι τέμνηται, συστὰν μὲν εἰς τὴν ἐκείνου φύσιν πέπαυται

τεμνόμενον―τὸ γὰρ ὅμοιον καὶ ταὐτὸν αὑτῷ γένος ἕκαστον

οὔτε τινὰ μεταβολὴν ἐμποιῆσαι δυνατὸν οὔτε τι παθεῖν ὑπὸ

τοῦ κατὰ ταὐτὰ ὁμοίως τε ἔχοντος―ἕως δ᾿ ἂν εἰς ἄλλο τι                           5

γιγνόμενον ἧττον ὂν κρείττονι μάχηται, λυόμενον οὐ παύεται.

                                                              그럼 우리

그것들을 다음과 같이 다시금 헤아려 보도록 하죠. 불 속에서 그

외의 것들 중 그 불에 의해 붙잡히는 어떤 유가 각들의 그 변들에

따른 예리한 것에 의해 분절될 때, 한편으로는 저 불의 본성에

이르러 분절되기를 멈추고 구성된다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자신과

유사하며 같은 유는 각각이 변화를 만들어 넣을 수도 없고 같은

것들에 따라 마찬가지 상태에 있는 것에 의해 무언가를 겪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 그 이외의 무언가에 이르게 되어 더 약한

것으로서 더 강한 것과 싸우는 동안에는, 해체되기를 그치지 않습니다.

τά τε αὖ σμικρότερα ὅταν ἐν τοῖς μείζοσιν πολλοῖς περι-

λαμβανόμενα ὀλίγα διαθραυόμενα κατασβεννύηται, συνί-                        b

στασθαι μὲν ἐθέλοντα εἰς τὴν τοῦ κρατοῦντος ἰδέαν πέπαυται

κατασβεννύμενα γίγνεταί τε ἐκ πυρὸς ἀήρ, ἐξ ἀέρος ὕδωρ·

또 이번엔 더 작은 소수의 것들이 더 큰 다수의 것들 안에 감싸인

채로 잘게 부서져 사그라들 때에도, 한편으로는 지배하는 쪽의

형상 쪽으로 구성되려 하며 사그라들기를 그치고 불에서 바람으로,

바람에서 물로 생성됩니다.

ἐὰν δ᾿ εἰς ταὐτὰ ἴῃ καὶ τῶν ἄλλων τι συνιὸν γενῶν μάχηται,

λυόμενα οὐ παύεται, πρὶν ἢ παντάπασιν ὠθούμενα καὶ διαλυ-                     5

θέντα ἐκφύγῃ πρὸς τὸ συγγενές, ἢ νικηθέντα, ἓν ἐκ πολλῶν

ὅμοιον τῷ κρατήσαντι γενόμενον, αὐτοῦ σύνοικον μείνῃ. 

다른 한편 같은 것들을 향해 나아가고 여타의 유들 중에서도

무언가가 함께 나아가 싸운다면, 해체되기를 중단하지 않습니다,

전부 다 밀려나거나 완전히 해체되어 동류 쪽으로 빠져나가거나,

아니면 굴복당해, 여럿으로부터 제압한 것과 유사한 하나가 되어,

그것의 동거자로 머물거나 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καὶ

δὴ καὶ κατὰ ταῦτα τὰ παθήματα διαμείβεται τὰς χώρας                           c

ἅπαντα· διέστηκεν μὲν γὰρ τοῦ γένους ἑκάστου τὰ πλήθη

κατὰ τόπον ἴδιον διὰ τὴν τῆς δεχομένης κίνησιν, τὰ δὲ

ἀνομοιούμενα ἑκάστοτε ἑαυτοῖς, ἄλλοις δὲ ὁμοιούμενα, φέ-

ρεται διὰ τὸν σεισμὸν πρὸς τὸν ἐκείνων οἷς ἂν ὁμοιωθῇ                             5

τόπον.                                                                                    //210602

                                                               더 나아가

이러한 겪음들에 따라 통틀어 모든 것들이 그 장소들을 교체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각 유의 대부분은 고유한 장소에 따라 그 수용하는

장소의 운동으로 인해 따로 놓였지만, 자신들과는 유사하지 않게

되는 한편, 여타의 것들과는 유사하게 되는 것들은, 그 요동으로

인해 그것들이 유사하게 되는 저 대상들의 장소를 향해 이동되기

때문입니다.

 

Ὅσα μὲν οὖν ἄκρατα καὶ πρῶτα σώματα διὰ τοιούτων

αἰτιῶν γέγονεν· τὸ δ᾿ ἐν τοῖς εἴδεσιν αὐτῶν ἕτερα ἐμπεφυ-

κέναι γένη τὴν ἑκατέρου τῶν στοιχείων αἰτιατέον σύστασιν,

μὴ μόνον ἓν ἑκατέραν μέγεθος ἔχον τὸ τρίγωνον φυτεῦσαι                      d

κατ᾿ ἀρχάς, ἀλλ᾿ ἐλάττω τε καὶ μείζω, τὸν ἀριθμὸν δὲ

ἔχοντα τοσοῦτον ὅσαπερ ἂν ᾖ τἀν τοῖς εἴδεσι γένη. 

그리하여 혼합되지 않은 최초의 물체들인 바의 것들은 이러한

원인들을 통해 생성되었습니다. 반면 형상들 중에 그것들과 다른

유들이 뿌리내렸다는 것은 양편의 요소삼각형들의 구조를

그 원인이라 해야만 하니, 양편의 구조가 처음부터 단일한 크기만을

지닌 삼각형을 산출한 것이 아니라, 더 작은 크기도 더 큰 크기도

지닌 것을 산출한 것이며, 형상들 안에 유들이 있을 바로 그 만큼의

수를 가진 것을 산출한 것이 원인이라 해야만 합니다.

                                                                    διὸ

δὴ συμμειγνύμενα αὐτά τε πρὸς αὑτὰ καὶ πρὸς ἄλληλα τὴν

ποικιλίαν ἐστὶν ἄπειρα· ἧς δὴ δεῖ θεωροὺς γίγνεσθαι τοὺς                          5

μέλλοντας περὶ φύσεως εἰκότι λόγῳ χρήσεσθαι.

                                                                 그래서

이로 인해 그것들이 자기들끼리도 뒤섞이고 서로간에도

뒤섞이며 다채로움에 있어서 무한한 것들로 있습니다. 그래서

장차 자연 본성에 관하여 모상적인 논변을 사용할 자들이 이에

대한 관찰자들이 되어야 하는 바의 것이 그 다채로움입니다.

 

Κινήσεως οὖν στάσεώς τε πέρι, τίνα τρόπον καὶ μεθ᾿

ὧντινων γίγνεσθον, εἰ μή τις διομολογήσεται, πόλλ᾿ ἂν εἴη

ἐμποδὼν τῷ κατόπισθεν λογισμῷ. τὰ μὲν οὖν ἤδη περὶ                            e

αὐτῶν εἴρηται, πρὸς δ᾿ ἐκείνοις ἔτι τάδε, ἐν μὲν ὁμαλότητι

μηδέποτε ἐθέλειν κίνησιν ἐνεῖναι. 

그리하여 운동과 정지에 관련하여, 어떤 방식에서 도대체 어떤

것들을 가지고 생성되었는지, 만일 누군가 합의하지 못한다면,

이후의 추론에 여러 장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한편으로

그것들에 관하여서는 이야기가 되었으나, 저 이야기된 것들에

더하여 이하의 것들은 아직 이야기되지 않았습니다. 균등성

안에서는 결코 운동이 내재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 말이지요.

                                            τὸ γὰρ κινησόμενον ἄνευ

τοῦ κινήσοντος ἢ τὸ κινῆσον ἄνευ τοῦ κινησομένου χαλεπόν,

μᾶλλον δὲ ἀδύνατον, εἶναι· κίνησις δὲ οὐκ ἔστιν τούτων                            5

ἀπόντων, ταῦτα δὲ ὁμαλὰ εἶναί ποτε ἀδύνατον. οὕτω δὴ

στάσιν μὲν ἐν ὁμαλότητι, κίνησιν δὲ εἰς ἀνωμαλότητα ἀεὶ

τιθῶμεν· αἰτία δὲ ἀνισότης αὖ τῆς ἀνωμάλου φύσεως.                           58a1

왜냐하면 운동하게 될 것이 운동시킬 것 없이 혹은 운동시킬

것이 운동하게 될 것 없이 있기란 어렵기에, 아니,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부재할 때 운동이 있지 않고,

이런 것들은 도대체 균형 잡힌 것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식으로 우리는 정지는 균형 안에, 반면 운동은 불균형 쪽에

언제나 놓도록 합시다. 그런데 이번엔 불균형한 본성의 원인은

부등함입니다.

ἀνισότητος δὲ γένεσιν μὲν διεληλύθαμεν· πῶς δέ ποτε οὐ

κατὰ γένη διαχωρισθέντα ἕκαστα πέπαυται τῆς δι᾿ ἀλλήλων

κινήσεως καὶ φορᾶς, οὐκ εἴπομεν. ὧδε οὖν πάλιν ἐροῦμεν. ἡ

τοῦ παντὸς περίοδος, ἐπειδὴ συμπεριέλαβεν τὰ γένη, κυκλο-                      5

τερὴς οὖσα καὶ πρὸς αὑτὴν πεφυκυῖα βούλεσθαι συνιέναι,

σφίγγει πάντα καὶ κενὴν χώραν οὐδεμίαν ἐᾷ λείπεσθαι. 

                    그런데 부등함의 생성은 우리가 상술하였지요.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유들에 따라 분리된 각각의 것들이 서로를

통한 운동과 이동을 그치지 않는지는, 우리가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하의 방식으로 다시 이야기하도록 합시다. 우주의 궤도는, 

유들을 아울러 포괄하기에, 구형이고 자기 자신에게로 모이기를

본성적으로 바라는 것이어서, 모든 것들을 결속시키고 빈 장소는

어느 하나 남아 있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 수용자의 요동과 이에 의한 흐름에 비교해서 지금 우주의 궤도와

이에 의한 운동과 이동의 지속이 서로 어떻게 다르고 또 어떤 점에서

관련될까? 전자는 운동의 '영원성'을 보장할 수 없는 운동원인이지

않을까? by Kang. 

                                                                         διὸ

δὴ πῦρ μὲν εἰς ἅπαντα διελήλυθε μάλιστα, ἀὴρ δὲ δεύτερον,                    b

ὡς λεπτότητι δεύτερον ἔφυ, καὶ τἆλλα ταύτῃ· τὰ γὰρ ἐκ

μεγίστων μερῶν γεγονότα μεγίστην κενότητα ἐν τῇ συστάσει

παραλέλοιπεν, τὰ δὲ σμικρότατα ἐλαχίστην. ἡ δὴ τῆς πιλή-

σεως σύνοδος τὰ σμικρὰ εἰς τὰ τῶν μεγάλων διάκενα συνωθεῖ.                   5

                                                         그래서 이로 인해

불은 특히나 통틀어 모든 것들로 가장 잘 관통해 들어가고, 공기가

두 번째로 그러하니, 섬세함에서 두 번째 것으로 타고났기에 그렇고,

여타의 것들도 이런 식으로 됩니다. 가장 큰 부분들로부터 생성된

것들이 가장 큰 빈 곳을 그 구조 안에 남겨놓는데, 가장 작은 것들은

가장 작은 빈 곳을 그리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 응축이라는

수렴이 작은 것들을 큰 것들의 빈 곳들로 함께 밀어넣습니다.

σμικρῶν οὖν παρὰ μεγάλα τιθεμένων καὶ τῶν ἐλαττόνων τὰ

μείζονα διακρινόντων, τῶν δὲ μειζόνων ἐκεῖνα συγκρινόντων,

πάντ᾿ ἄνω κάτω μεταφέρεται πρὸς τοὺς ἑαυτῶν τόπους·

μεταβάλλον γὰρ τὸ μέγεθος ἕκαστον καὶ τὴν τόπων μετα-                      c

βάλλει στάσιν. 

그리하여 작은 것들이 큰 것들 곁에 놓이며 더 작은 것들이

더 큰 것들을 분절하고, 더 큰 것들은 저것들을 결합시킬 때,

모든 것들은 자신들의 장소를 향해 위로 아래로 자리를 바꿉니다.

왜냐하면 각각의 크기가 변화하면서 장소들의 위치까지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οὕτω δὴ διὰ ταῦτά τε ἡ τῆς ἀνωμαλότητος

διασῳζομένη γένεσις ἀεὶ τὴν ἀεὶ κίνησιν τούτων οὖσαν

ἐσομένην τε ἐνδελεχῶς παρέχεται.                                  //210609

                             그래서 그런 식으로 이러한 것들로

인해 불균형의 생성이 항상 보존되어서 그것들의 항구적

운동을 지속적으로 있었게끔 그리고 있을 것이게끔

만들어줍니다.

 

-蟲-

殺し屋1(イチ) by 山本英夫. 


사람이든 글이든 생각이든, 다시 그런 순간을 만날 때까지 존버.


-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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