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크기의 a, b, c가 있다. a는 정지해 있고, b와 a는 등속운동을 하면서 서로 같은 속력으로 반대방향에서 동시에 c를 지나가면서 서로를 지나치고 있다. 이 경우 c는 b 전체를 통과하는 시간 동안 a의 절반을 지난다. c의 속도를 1m/s라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a, b, c의 크기는 4m라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c는 1m/s의 속력으로 4초 동안 4m의 거리를 이동한다. 그리고 바로 이 동일한 운동을 통해 2초 동안 a의 절반인 2m를 이동하는 동시에, b의 전체 크기인 4m를 통과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 제논은 두 배의 시간이 절반의 시간과 같은 시간이 된다고 지적하며 이를 역설로 제시한다. 여기에서 운동하는 물체 c는 단일한 물체이며 그것의 운동 또한 단일하다. 그래서 c는 1m/s의 속력으로 2초 동안 2m를 통과한 동시에 4m를 통과하게 되고, 같은 속력의 단일한 운동이 두 가지 서로 다른 거리를 통과하게 된다. 이제 c가 a를 통과한 측면에서 c는 1m/s의 속력으로 2초 동안 2m를 지나갔고, (a) 이 속력으로 4m를 지나가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4초가 될 것이다. 다른 한편 c가 b를 통과한 측면에서 (b) c가 크기 4m인 b 전체를 지나가는 데에 걸린 시간은 2초이다. (a)와 (b) 각각에 소요되는 시간은 서로 절반과 두 배라는 비례를 가진다. 그러나 (a)에서의 속력과 (b)에서의 속력은 모두 단일한 운동체 c의 단일한 운동에서 측정된 속력일 것이다. 따라서 바로 이 단일한 속력으로 4m를 지나가는 데에 걸리는 두 가지 시간, 절반의 시간과 두 배의 시간은 한 운동체의 한 운동에 속한 동일한 시간이다. 같은 속도로 반대방향에서 이동하는 b에 대해서도 c의 경우와 마찬가지의 상황이 발생하며, 정지해 있는 a에 대해서는 두 물체가 a의 절반을 지나는 데에 걸린 바로 그 똑같은 시간 동안에 a 자신과 똑같은 만큼의 크기(연장, 거리)를 지나는 일이 발생한다. 여기에서 역설이 발생하는 지점은 고려되고 있는 물체 각각의 자기동일성과 그 단일한 각 물체에 고유한 운동의 또 역시 개개의 자기동일성이 논리적으로 엄격하게 보존되는 한에서, 자기동일적인 단일한 물체에게 그 자신에 고유한 절대적 운동과 상대적 운동이 동시에 귀속될 수 없다는 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정지해 있는 물체를 통과하는 일과 마주 오는 운동을 하고 있는 물체를 통과하는 일이 한 물체에게 동시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이 역설 발생의 전제조건일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이 모든 물체에 일반적으로 적용되기 위해서는, 무한하게 펼쳐진 것으로서 소위 절대공간과 절대시간이 한편으로 가정되고, 다른 한편으로 그 안의 모든 물체들의 운동이 상대적으로 규정될 수 있다는 점이 또한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각기 독립적으로 고정된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이 전제되어 있을 경우, 이 안에서 모든 물체 각각은 자신의 고유한 운동을 이러한 시공간을 척도로 하여 측정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구분되는 방식으로 임의의 운동하는 물체를 기준으로 하여 각각의 물체의 고유한 운동이 상대적으로 측정될 수도 있다. 이 상대적인 측정의 경우에도, (아마도) 제논 당대의 통념에 따르자면 각 물체의 크기(연장)는 절대적인 것으로서 주어져 있을 것이므로, 절대속도에 대한 상대속도의 차이는 거리로서의 크기나 연장을 통해서가 아니라 절대시간과 상대시간의 차이에서 비롯될 것이다. 단적으로 무한하게 전개되어 있을 뿐인 유클리드식의 절대공간 개념이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었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우나, 그러한 무한한 연장을 지성적으로 파악되는 잠재적인 양(量)으로 간주하는 발상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어떤 대상을 그 자체로 고려할 때와 다른 어떤 것과의 관계 속에서 고려할 때 같은 대상이 서로 (심지어는) 양립불가능한 방식으로 상충되는 것처럼 생각되거나 서술되기도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적어도 플라톤부터 (대표적인 예로는 『소피스트』에서라든지) 명시적으로 의식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파르메니데스의 관점에서 보자면 자체적이고 독립적이며 자기동일적인 것만이 논리적으로 필연적으로 '있는 것'일 수 있고, 이러한 점에서 있는 것은 하나이고 이것과 구분되는 제2, 제3의 것은 상정될 수 없으며 이에 따라 상대항이 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 상대적 관점도 자연스럽게 부정될 것이다. 만일 운동이라는 현상과 개념이 성립하는 데에 상대적인 관점(또 이것의 성립근거로서 상대항)이 불가피하다면, 이 상대적인 관점이 유발하는 문제를 지적함으로써 운동을 부정하는 논변을 제시하는 것으로 제논의 역설을 이해해볼 여지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좀 더 나아가 보자면, 운동체의 운동이 측정되기 위해서는 결국 최소한 그 운동체와 구분되는 것으로서 이 운동체의 운동을 측정할 기준이 별도로 전제되어야만 하며, 그것이 앞서 언급한 절대공간이나 절대시간 같은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직 일자만을 유일한 존재자로 인정할 경우 이와는 구분되는 것으로서 공간이나 시간을 따로 상정하는 일은 이러한 일원론과 양립하기 어렵다는 점을 이미 파르메니데스가 보여주었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다. 또한 그렇게 전제된 절대공간이나 절대시간이 지금 고려되는 유일한 운동체의 그 고유하고 단일한 운동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게끔 그렇게 무한한 것으로서 정지해 있다고 단언할 논리적 근거를 마련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이를 고려하면 c의 진정하고 본질적이며 고유한 단 하나의 운동을 a를 통과하는 운동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b를 통과하는 운동으로 볼 것인지 결정할 수 없게 되고, 이 역시 운동 개념에 내재하는 역설로 생각해볼 여지가 있을 것이다. 기준이 되는 운동이 (a)인지 (b)인지는 어떤 추가적인 형이상학적 전제를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는 한 결정될 수 없을 것이다. 

 

-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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