ἀπορήσειε δ' ἄν τις πῶς ποτε τοῦ μὲν πάθους παρόντος τοῦ δὲ πράγματος ἀπόντος μνημονεύεται τὸ μὴ παρόν. δῆλον γὰρ ὅτι δεῖ νοῆσαι τοιοῦτον τὸ γιγνόμενον διὰ τῆς αἰσθήσεως ἐν τῇ ψυχῇ καὶ τῷ μορίῳ τοῦ σώματος τῷ ἔχοντι αὐτήν - οἷον ζωγράφημά [Bekker page 450a, line 30] τι [τὸ πάθος] οὗ φαμεν τὴν ἕξιν μνήμην εἶναι· ἡ γὰρ γιγνομένη κίνησις ἐνσημαίνεται οἷον τύπον τινὰ τοῦ αἰσθήματος, καθάπερ οἱ σφραγιζόμενοι τοῖς δακτυλίοις. διὸ καὶ τοῖς μὲν ἐν κινήσει πολλῇ διὰ πάθος ἢ δι' ἡλικίαν οὖσιν οὐ γίγνεται μνήμη, καθάπερ ἂν εἰς ὕδωρ ῥέον ἐμπιπτούσης τῆς κινήσεως καὶ τῆς σφραγῖδος· τοῖς δὲ διὰ τὸ ψήχεσθαι, καθάπερ τὰ παλαιὰ τῶν οἰκοδομημάτων, καὶ διὰ σκληρότητα τοῦ δεχομένου τὸ πάθος οὐκ ἐγγίγνεται ὁ τύπος. διόπερ οἵ τε σφόδρα νέοι καὶ οἱ γέροντες ἀμνήμονές εἰσιν· ῥέουσι γὰρ οἱ μὲν διὰ τὴν αὔξησιν, οἱ δὲ διὰ τὴν φθίσιν. ὁμοίως δὲ καὶ οἱ λίαν ταχεῖς καὶ οἱ λίαν βραδεῖς οὐδέτεροι φαίνονται μνήμονες· οἱ μὲν γάρ εἰσιν ὑγρότεροι τοῦ δέοντος, οἱ δὲ σκληρότεροι· τοῖς μὲν οὖν οὐ μένει τὸ φάντασμα ἐν τῇ ψυχῇ, τῶν δ' οὐχ ἅπτεται.
당신은 당황할 것이다 누군가 도대체 어떻게 경험은 현전하지만 사태는 현전하지 않을 때 그 현전하지 않는 것을 기억하는지. 왜냐하면 이와 같은 것은 감각을 통하여 영혼 속에서 또 그 영혼을 지닌 신체의 일부분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사유해야 한다는 사실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 예를 들어 일종의 동물그림으로 사유해야 한다. [그 겪이를] 우리가 그에 대해 그 상태를 기억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그 발생되는 움직임이 말하자면 일종의 감각에 대한 인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반지들로 봉인하는 사람들처럼. 이 때문에 많은 움직임 속에 있는 자들에게는 겪이 때문이든 나이 때문이든 기억이 이루어지지 않는데, 마치 흐르는 물 속으로 움직임이나 인장이 빠질 때와 마찬가지이다: 다른 자들에게는 마모됨 때문에 그러한데, 마치 건물들이 노후들처럼, 감각을 수용하는 것의 단단함 때문에 인장이 그 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지나치게 어린 자들이나 나이든 자들은 기억을 잘 못하는 자들이다: 왜냐하면 어린 자들은 성장으로 인하여, 나이든 자들은 노쇠로 인하여 흐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재빠르거나 지나치게 느린 자들은 어느 쪽 사람들이든 기억력이 좋은 자들로 드러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재빠른 자들은 필요 이상으로 습하고, 느린 자들은 필요 이상으로 견고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빠른 자들에게는 영혼 안에서 영상이 머무르지 못하고, 느린 자들에게는 달라붙지 못한다.
ἀλλ' εἰ δὴ τοιοῦτόν ἐστι τὸ συμβαῖνον περὶ τὴν μνήμην, πότερον τοῦτο μνημονεύει τὸ πάθος, ἢ ἐκεῖνο ἀφ' οὗ ἐγένετο; εἰ μὲν γὰρ τοῦτο, τῶν ἀπόντων οὐδὲν ἂν μνημονεύοιμεν· εἰ δ' ἐκεῖνο, πῶς αἰσθανόμενοι τοῦτο μνημονεύομεν οὗ μὴ αἰσθανόμεθα, τὸ ἀπόν;
하지만 만일 정말로 기억과 관련하여 귀결되는 일이 이러하다면, 그런 겪이를 기억하는가, 아니면 겪이가 그로부터 생겨났던 저것을 기억하는가? 만일 겪이를 기억한다면, 부재하는 것들 중 아무것도 우리는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저것을 기억한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것을 감각하면서 우리가 감각하지 않는 것을 기억하는가, 부재하는 것을?
εἴ τ' ἐστὶν ὅμοιον ὥσπερ τύπος ἢ γραφὴ ἐν ἡμῖν, ἡ τούτου αἴσθησις διὰ τί ἂν εἴη μνήμη ἑτέρου, ἀλλ' οὐκ αὐτοῦ τούτου; ὁ γὰρ ἐνεργῶν τῇ [Bekker page 450b, line 18] μνήμῃ θεωρεῖ τὸ πάθος τοῦτο καὶ αἰσθάνεται τούτου. πῶς οὖν τὸ μὴ παρὸν μνημονεύσει; εἴη γὰρ ἂν καὶ ὁρᾶν τὸ μὴ παρὸν καὶ ἀκούειν.
만일 그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인장이나 그림과 같은 유사한 것이라면, 그것에 대한 감각이 무엇 때문에 다른 것에 대한 기억인가, 그것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기억을 실현하는 자는 그 겪이를 관조하고 이에 대해 감각하니 말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현존하지 않는 것을 기억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현존하지 않는 것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ἢ ἔστιν ὡς ἐνδέχεται καὶ συμβαίνειν τοῦτο; οἷον γὰρ τὸ ἐν πίνακι γεγραμμένον ζῷον καὶ ζῷόν ἐστι καὶ εἰκών, καὶ τὸ αὐτὸ καὶ ἓν τοῦτ' ἐστὶν ἄμφω, τὸ μέντοι εἶναι οὐ ταὐτὸν ἀμφοῖν, καὶ ἔστι θεωρεῖν καὶ ὡς ζῷον καὶ ὡς εἰκόνα, οὕτω καὶ τὸ ἐν ἡμῖν φάντασμα δεῖ ὑπολαβεῖν καὶ αὐτό τι καθ' αὑτὸ εἶναι καὶ ἄλλου [φάντασμα].
혹은 그것이 허용될 수 있고 또 귀결될 수 있는 것인가? 예를 들어 화판에 그려진 동물은 동물이면서 모상이고, 동일한 하나이면서 양자이기는 하나, 그렇지만 양자에게 동일하게 있지는 않고, 동물로도 모상으로도 볼 수 있으며, 그런 식으로 그 자체에 따라서는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의 상이자 동일한 것으로 취해야 하고 다른 어떤 것에 대해서는 상이라고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ᾗ μὲν οὖν καθ' αὑτό, θεώρημα ἢ φάντασμά ἐστιν, ᾗ δ' ἄλλου, οἷον εἰκὼν καὶ μνημόνευμα. ὥστε καὶ ὅταν ἐνεργῇ ἡ κίνησις αὐτοῦ, ἂν μὲν ᾗ καθ' αὑτό ἐστι, ταύτῃ αἰσθάνηται ἡ ψυχὴ αὐτοῦ, οἷον νόημά τι ἢ φάντασμα φαίνεται ἐπελθεῖν· ἂν δ' ᾗ ἄλλου καὶ ὥσπερ ἐν τῇ γραφῇ ὡς εἰκόνα θεωρεῖ καί, μὴ ἑωρακὼς τὸν Κορίσκον, ὡς Κορίσκου, ἐνταῦθά τε ἄλλο τὸ πάθος τῆς θεωρίας ταύτης καὶ ὅταν ὡς ζῷον γεγραμμένον θεωρῇ, ἔν τε τῇ ψυχῇ τὸ μὲν γίγνεται ὥσπερ νόημα μόνον, τὸ δ' ὡς ἐκεῖ ὅτι εἰκών, μνημόνευμα.
그러므로 그 자체에 따라서라면, 관조물이나 영상이고, 다른 것에 속한다면, 예를 들어 모상이나 기억거리이다. 그래서 그것의 움직임이 작용할 때에도, 그 자체에 따라 있다면, 영혼이 그에 대해 그런 식으로 감각하는데, 예를 들어 어떤 사유나 영상이 들어서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만일 다른 것에 속하는 것으로서 마치 그림 속에서 처럼 모상으로서 본다면, 코리스코스를 보지 않으면서, 코리스코스의 모상을 보는 것처럼, 여기서 이런 관조의 겪이는 그려진 동물로서 볼 때와 다르다, 영혼 안에서는 오직 바로 사유물로서만 생겨나고, 저 경우에는 모상이기 때문에, 기억물이 된다.
καὶ διὰ τοῦτο ἐνίοτ' οὐκ ἴσμεν, ἐγγινομένων ἡμῖν ἐν τῇ ψυχῇ τοιούτων κινήσεων ἀπὸ τοῦ αἰσθέσθαι πρότερον, εἰ κατὰ τὸ ᾐσθῆσθαι συμβαίνει, καὶ εἰ ἔστι μνήμη ἢ οὔ, διστάζομεν· ὁτὲ δὲ συμβαίνει ἐννοῆσαι καὶ ἀναμνησθῆναι ὅτι ἠκούσαμέν τι πρότερον ἢ [Bekker page 451a, line 7] εἴδομεν. τοῦτο δὲ συμβαίνει, ὅταν θεωρῶν ὡς αὐτὸ μεταβάλλῃ καὶ θεωρῇ ὡς ἄλλου.
또한 이런 이유로 종종 우리는 알지 못한다, 우리에게 영혼 안에서 이러한 움직임들이 이전의 감각으로부터 생겨날 때, 감각에 따라 귀결하는지 아닌지, 기억인지 아닌지, 우리는 의심한다: 그런데 어떤 때에는 우리가 앞서 들었던 무엇이나 보았던 무엇을 생각하거나 기억해내는 일이 귀결한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 귀결한다, 우리가 그 자체로서 보고 바뀌어 다른 것에 속하는 것으로 볼 때.
γίγνεται δὲ καὶ τοὐναντίον, οἷον συνέβη Ἀντιφέροντι τῷ Ὠρείτῃ καὶ ἄλλοις ἐξισταμένοις· τὰ γὰρ φαντάσματα ἔλεγον ὡς γενόμενα καὶ ὡς μνημονεύοντες. τοῦτο δὲ γίγνεται ὅταν τις τὴν μὴ εἰκόνα ὡς εἰκόνα θεωρῇ. αἱ δὲ μελέται τὴν μνήμην σῴζουσι τῷ ἐπαναμιμνήσκειν· τοῦτο δ' ἐστὶν οὐδὲν ἕτερον ἢ τὸ θεωρεῖν πολλάκις ὡς εἰκόνα καὶ μὴ ὡς καθ' αὑτό. τί μὲν οὖν ἐστι μνήμη καὶ τὸ μνημονεύειν, εἴρηται, ὅτι φαντάσματος, ὡς εἰκόνος οὗ φάντασμα, ἕξις, καὶ τίνος μορίου τῶν ἐν ἡμῖν, ὅτι τοῦ πρώτου αἰσθητικοῦ καὶ ᾧ χρόνου αἰσθανόμεθα.
그런데 반대의 일도 생긴다, 예를 들어 오레오스 사람 안티페론이나 기력이 다한 다른 이들에게: 왜냐하면 그들은 영상들을 일어난 일들로서 그리고 그들이 기억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일어난다 누군가 모상 아닌 것을 모상으로 볼 때, 그런데 주의들이 기억을 보존한다 기억을 더 떠올려 내는 일로써: 그런데 이것은 다름 아니라 영상으로서 자주 보고 그 자체인 것으로는 보지 않는 일이다. 그러므로 기억과 기억함이 무엇인지, 이야기되었다, 모상에 대한 것으로서의 영상을 가진 상태, 그리고 우리 안에서 부분들 중 어떤 부분들인지, 첫 번째 감각기관에 속하고 그로써 우리가 시간을 감각한다고.

-蟲-
ΠΕΡΙ ΜΝΗΜΗΣ ΚΑΙ ΑΝΑΜΝΗΣΕΩΣ
기억과 기억해냄에 관하여
Περὶ μνήμης καὶ τοῦ μνημονεύειν λεκτέον τί ἐστι καὶ διὰ τίν' αἰτίαν γίγνεται καὶ τίνι τῶν τῆς ψυχῆς μορίων συμβαίνει τοῦτο τὸ πάθος καὶ τὸ ἀναμιμνήσκεσθαι· οὐ γὰρ οἱ αὐτοί εἰσι μνημονικοὶ καὶ ἀναμνηστικοί, ἀλλ' ὡς ἐπὶ τὸ πολὺ μνημονικώτεροι μὲν οἱ βραδεῖς, ἀναμνηστικώτεροι δὲ οἱ ταχεῖς καὶ εὐμαθεῖς.
기억과 기억한다는 일에 관련하여 바로 이 경험과 기억해낸다는 것이 무엇이며 어떤 원인을 통하여 생겨나고 또 영혼의 부분들 중 무엇에 따르는지 말해야 한다: 왜냐하면 기억하는 자들과 기억을 떠올리는 자들은 같은 자들이 아니고, 오히려 대부분의 경우 그러하듯 느린 자들이 더욱 잘 기억하는 반면, 재빠르고 영민한 자들은 기억을 더욱 잘 떠올리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πρῶτον μὲν οὖν σκεπτέον ποῖά ἐστι τὰ μνημονευτά· πολλάκις γὰρ ἐξαπατᾷ τοῦτο.
그러므로 우선 기억의 대상들이 어떠한 것들인지 살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자주 속이기 때문이다.
ἐξαπατᾷ : ἐξαπατάω subj. 3sg.
οὔτε γὰρ τὸ μέλλον ἐνδέχεται μνημονεύειν, ἀλλ' ἔστι δοξαστὸν καὶ ἐλπιστόν (εἴη δ' ἂν καὶ ἐπιστήμη τις ἐλπιστική, καθάπερ τινές φασι τὴν μαντικήν), οὔτε τοῦ παρόντος, ἀλλ' αἴσθησις· ταύτῃ γὰρ οὔτε τὸ μέλλον οὔτε τὸ γενόμενον γνωρίζομεν, ἀλλὰ τὸ παρὸν μόνον.
왜냐하면 미래는 기억할 수 없고, 추측이나 예측이 가능하며 (그런데 앎도 어떤 예측일 것이다, 바로 어떤 자들이 예언술을 말하는 것과 같이), 현재에 대해서도 기억할 수 없으며, 감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감각으로 우리가 미래도 생겨난 것도 알 수 없지만, 오직 현재만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ἡ δὲ μνήμη τοῦ γενομένου· τὸ δὲ παρὸν ὅτε πάρεστιν, οἷον τοδὶ τὸ λευκὸν ὅτε ὁρᾷ, οὐδεὶς ἂν φαίη μνημονεύειν, οὐδὲ τὸ θεωρούμενον, ὅτε θεωρῶν τυγχάνει καὶ νοῶν, ἀλλὰ τὸ μὲν αἰσθάνεσθαί φησι, τὸ δ' ἐπίστασθαι μόνον· ὅταν δ' ἄνευ τῶν ἔργων σχῇ τὴν ἐπιστήμην καὶ τὴν αἴσθησιν, οὕτω μέμνηται [τὰς τοῦ τριγώνου ὅτι δύο ὀρθαῖς ἴσαι], τὸ μὲν ὅτι ἔμαθεν ἢ ἐθεώρησεν, τὸ δὲ ὅτι ἤκουσεν ἢ εἶδεν ἤ τι τοιοῦτον· ἀεὶ γὰρ ὅταν ἐνεργῇ κατὰ τὸ μνημονεύειν, οὕτως ἐν τῇ [Bekker page 449b, line 23] ψυχῇ λέγει, ὅτι πρότερον τοῦτο ἤκουσεν ἢ ᾔσθετο ἢ ἐνόησεν.
그러나 생겨난 것에 대해서는 기억이 있다: 현재의 것이 현전할 때, 예를 들어 바로 이 흰 것을 당신이 볼 때, 그 누구도 기억한다고 말하지 않을 테고, 고찰하며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 그 고찰되는 것이라고도 말하지 않고, 전자는 감각되는 것이라 말하고, 후자는 알려지는 것이라고만 말한다: 그런데 그런 작용들 없이 앎과 감각을 가질 때에는, 그런 식으로 기억한다 [삼각형의 각들에 있어서 두 직각들과 같은 크기들이라는 사실을], 전자에 대해서는 그가 배웠다거나 고찰했기 때문에, 후자에 대해서는 들었다거나 봤다거나 이런 어떤 것을 했기 때문에: 왜냐하면 항상 기억함과 관련하여 작용할 때에는, 그런 식으로 영혼 안에 있어서 그가 말하기 때문이다, 더 앞서 그것을 들었거나 감각했거나 생각했다고.
ἔστι μὲν οὖν ἡ μνήμη οὔτε αἴσθησις οὔτε ὑπόληψις, ἀλλὰ τούτων τινὸς ἕξις ἢ πάθος, ὅταν γένηται χρόνος.
그러므로 기억은 감각도 관념도 아니고, 이런 것들 중 어떤 것의 상태 또는 겪음이다, 시간이 생겨날 때.
τοῦ δὲ νῦν ἐν τῷ νῦν οὐκ ἔστι μνήμη, καθάπερ εἴρηται [καὶ πρότερον], ἀλλὰ τοῦ μὲν παρόντος αἴσθησις, τοῦ δὲ μέλλοντος ἐλπίς, τοῦ δὲ γενομένου μνήμη· διὸ μετὰ χρόνου πᾶσα μνήμη.
그런데 현재에서 현재의 것에 기억은 속하지 않고, 말했던 바로 그와 같이 [앞서서도], 오히려 현재의 것에는 감각이, 미래의 것에는 예측이, 그리고 생겨난 것에는 기억이 속한다: 이러한 이유로 모든 기억은 시간과 함께이다.
ὥσθ' ὅσα χρόνου αἰσθάνεται, ταῦτα μόνα τῶν ζῴων μνημονεύει, καὶ τούτῳ ᾧ αἰσθάνεται.
그래서 시간에 대해 감각하는 것들, 오직 이러한 것들만이 동물들 중에서 기억하고, 그들이 그로써 감각하는 그것으로써 기억한다.
ἐπεὶ δὲ περὶ φαντασίας εἴρηται πρότερον ἐν τοῖς περὶ ψυχῆς, καὶ νοεῖν οὐκ ἔστιν ἄνευ φαντάσματος - συμβαίνει γὰρ τὸ αὐτὸ πάθος ἐν τῷ νοεῖν ὅπερ καὶ ἐν τῷ διαγράφειν· ἐκεῖ τε γὰρ οὐθὲν προσχρώμενοι τῷ τὸ ποσὸν ὡρισμένον εἶναι τοῦ τριγώνου, ὅμως γράφομεν ὡρισμένον κατὰ τὸ ποσόν, καὶ ὁ νοῶν ὡσαύτως, κἂν μὴ ποσὸν νοῇ, τίθεται πρὸ ὀμμάτων ποσόν, νοεῖ δ' οὐχ ᾗ ποσόν· ἂν δ' ἡ φύσις ᾖ τῶν ποσῶν, ἀορίστων δέ, τίθεται μὲν ποσὸν ὡρισμένον, νοεῖ δ' ᾗ ποσὸν μόνον - διὰ τίνα μὲν οὖν αἰτίαν οὐκ ἐνδέχεται νοεῖν οὐδὲν ἄνευ συνεχοῦς, οὐδ' ἄνευ χρόνου τὰ μὴ ἐν χρόνῳ ὄντα, ἄλλος λόγος· μέγεθος δ' ἀναγκαῖον γνωρίζειν καὶ κίνησιν ᾧ καὶ χρόνον· [καὶ τὸ φάντασμα τῆς κοινῆς αἰσθήσεως πάθος ἐστίν] ὥστε φανερὸν ὅτι τῷ πρώτῳ [Bekker page 450a, line 12] αἰσθητικῷ τούτων ἡ γνῶσίς ἐστιν· ἡ δὲ μνήμη, καὶ ἡ τῶν νοητῶν, οὐκ ἄνευ φαντάσματός ἐστιν, <καὶ τὸ φάντασμα τῆς κοινῆς αἰσθήσεως πάθος ἐστίν>· ὥστε τοῦ νοῦ μὲν κατὰ συμβεβηκὸς ἂν εἴη, καθ' αὑτὸ δὲ τοῦ πρώτου αἰσθητικοῦ.
그런데 표상과 관련하여 영혼에 관한 말들 안에서 앞서 이야기되었기에, 그리고 표상 없이 사유는 불가능하기에 - 왜냐하면 사유하는 일 중에도 선을 긋는 일 속에서와 동일한 바로 그 경험이 귀결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저 경우 삼각형의 정의된 양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양에 따라 정의된 것을 그리며, 사유하는 자도 같은 방식으로, 양을 사유하지 않을지라도, 눈앞에 양을 세우고, 그러나 양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그 본성이 양들에, 그런데 정의되지 않은 양들에 속한다면, 양을 정의된 것으로 세우고, 그러나 이런 식으로 오직 양만을 생각한다. - 그러므로 어떤 원인을 통하여 연속 없이 아무것도 사유할 수 없는지, 시간 없이 시간 속에 있지 않은 것들도 사유할 수 없는지, 그것은 다른 논의이다: 그런데 크기도 운동도 시간을 아는 그 방식으로 알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공통 감각의 표상은 경험이다] 그래서 이러한 것들에 대한 제일감각으로 앎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기억은, 또 기억대상들에 대한 것도, 표상 없이 있을 수 없고, <공통감각의 표상은 경험이다>: 그래서 기억은 사유에 부수적으로 속할 것이고, 그 자체로는(본질적으로는) 제일감각에 속할 것이다.
προσχρώμενοι : προσχράομαι part. use or avail oneself of a thing besides.
διὸ καὶ ἑτέροις τισὶν ὑπάρχει τῶν ζῴων, καὶ οὐ μόνον ἀνθρώποις καὶ τοῖς ἔχουσι δόξαν ἢ φρόνησιν.
이러한 이유로 동물들 중 어떤 다른 것들에게도 (기억이) 있고, 오직 인간들과 믿음이나 판단을 가진 것들에게만 있는 것도 아니다.
εἰ δὲ τῶν νοητικῶν τι μορίων ἦν, οὐκ ἂν ὑπῆρχε πολλοῖς τῶν ἄλλων ζῴων, ἴσως δ' οὐδενὶ τῶν ἀνοήτων, ἐπεὶ οὐδὲ νῦν πᾶσι διὰ τὸ μὴ πάντα χρόνου αἴσθησιν ἔχειν· ἀεὶ γὰρ ὅταν ἐνεργῇ τῇ μνήμῃ, καθάπερ καὶ πρότερον εἴπομεν, ὅτι εἶδε τοῦτο ἢ ἤκουσεν ἢ ἔμαθε, προσαισθάνεται ὅτι πρότερον· τὸ δὲ πρότερον καὶ ὕστερον ἐν χρόνῳ ἐστίν.
그런데 만일 무언가 사유할 수 있는 부분들에 (기억이) 속한다면, 다른 동물들 대다수에게는 없을 것이고, 사유하지 않는 것들 중 어떤 것에게도 마찬가지로 없을 것인데, 실은 모든 것들이 시간에 대한 감각을 지니지는 않는다는 점 때문에 모든 것에 속하지 않기에 그런 것이다: 왜냐하면 기억을 가지고 작용할 때에는 항상, 앞서 우리가 말했던 것과도 마찬가지로, 이걸 들었거나 배웠기 때문에, 앞서의 것을 추가감각하고: 그런데 앞서의 것과 나중의 것은 시간 속에 있기 때문이다.
τίνος μὲν οὖν τῶν τῆς ψυχῆς ἐστι μνήμη, φανερόν, ὅτι οὗπερ καὶ ἡ φαντασία· καί ἐστι μνημονευτὰ καθ' αὑτὰ μὲν ὧν ἐστι φαντασία, κατὰ συμβεβηκὸς δὲ ὅσα μὴ ἄνευ φαντασίας.
그러므로 영혼에 속하는 것들 중 무엇에 기억이 속하는지는, 분명하다, 표상도 속하는 바로 그것에 속한다는 사실이: 그리고 기억대상들은 그것들 자체로는 표상이 속하는 것들에 속하지만, 부수적으로는 표상이 없을 수 없는 것들이다.

-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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