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소피스트』에서 소피스트의 기술이 결론적으로 정의된 것이라 보는 해석 중 다수는 그 기술이 철학자 혹은 현자의 정상적인 엘렝코스를 거짓 모방하는 기술이라 간주한다. 그러나 소피스트의 기술 정의가 성공했다는 근거가 되는 결론부에서 소피스트는 개별적인 모순이나 특정 판단의 내용을 모방하는 것으로 묘사되지 않고, 오히려 일종의 성대모사처럼 어떤 사람을 모방하는 자로 묘사된다. 그 예로 테아이테토스를 따라하는 자가 언급되고, 여기에서 테아이테토스를 알고 모사하는 자와 알지 못하면서 모사하는 자가 구분된다. 이 대목에 주목할 경우 소피스트를 거짓 논박이나 거짓 모순을 제작하는 자로 간주하는 것은 문헌의 내용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 엘렝코스를 묘사하는 여섯 번째 정의 시도에서 엘렝코스를 당하는 자는 자신이 가진 특정한 모순된 믿음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 모순을 거쳐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고 간주하는, 이를 테면 메타적인 거짓된 믿음을 자각하게 되고 이를 폐기하게 된다. 앞서 언급한 일군의 해석자들의 주장대로 소피스트가 거짓 모순을 통해 상대를 논박한다는 점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그 결과로 엘렝코스의 상대가 자신의 무지에 대한 앎을 얻게 된다는 데에서 차이가 없다면, 논박이 거짓 모순을 통한 것이든 참된 모순을 통한 것이든 결정적인 차이는 없게 될 것이다. 소피스트가 작위적으로 제공하는 거짓 모순이 거짓된 것임을 알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과 관점에서 어떤 방식으로 어떤 것들은 결합하고 또 어떤 것들은 결합하지 않는지를 알아야 하고, 이를 아는 자는 무지에 대한 앎이 아니라 그냥 단적인 변증술적 앎을 가진 자이며 이러한 앎을 지니지 못한 자는 참된 모순을 지적 받아서든 거짓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여서든 결국 자신의 변증술적 앎의 부재를 자각한다는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소피스트가 모방하는 대상은 구체적인 명제, 문장, 생각이나 판단 따위가 아니어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 소피스트가 그리하여 어떤 기술자를 모방하는 자일 경우, 그 기술자 자신과 이 기술자를 알면서 모방하는 자, 그리고 이 기술자를 알지 못한 채로 모방하는 자라는 세 부류가 서로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원본과 이를 모방한 것 사이에는 참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엄격한 구분이 성립하고, 다시 모방한 것 사이에서는 그 비율과 척도를 잘 따른 모상과 이를 왜곡시켰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원본과 닮은 것으로 여기도록 만드는 가상이 다시금 구분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도 다시 한 번, 소피스트의 모방이 논박이나 모순을 대상으로 할 수 없다는 점이 확인된다. 왜냐하면 이렇게 생각할 경우 소피스트가 아닌 모방자는 그 대상이 되는 원본 기술자와 구분되는 점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참된 모순을 참되게 지적하는 철학자나 현자를 그대로 모방하는 모방자는 그 역시 참된 모순을 참되게 지적한다는 점에서 아무런 차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만일 이런 일이 허용된다면, 예를 들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나 혹은 오늘날의 양자역학의 내용을 담은 책을, 이에 대한 이해는 전혀 없이 그저 문자 그대로 암기한 사람이 아인슈타인이나 닐스 보어, 슈뢰딩거 등과 똑같은 사람이 되어 버리는 일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이는 『파이드로스』나 『제7 서한』 등에서 문자 기록을 통한 인식의 한계를 지적하는 플라톤 자신의 입장과도 배치된다. 단순히 있는 그대로 모방하여 옮기는 것은 원본을 제대로 재현하는 일일 수 없다. 진정으로 참된 현자, 지자가 있고 이와 구분되는 모상적인 현자가 있으며, 이 둘 모두와 구분되지만 이 둘과 혼동될 여지가 있는 자로서 소피스트가 있다는 것이 『소피스트』의 전체 맥락에 부합하는 이해일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렇게 생각할 때 마지막 소피스트 정의 이전까지의 여섯 가지 정의 시도들은 소피스트가 철학자를 (모상으로써든 가상으로써든) 모방한 결과들이라기 보다는 소피스트를 추적하는 손님과 테아이테토스가 참된 소피스트를 놓고 산출해낸 상들로 보는 편이 적절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이러한 상들은 소피스트가 현실에서 경험적으로 실제로 수행하는 일들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소피스트에 대한 가상이라기 보다는 모상이라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아마도 소피스트에 대한 가상은 소피스트를 주어로 한 술어 철학자 혹은 술어 정치가라고 볼 수 있을 듯하다. 고민 중.

 

-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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