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aus erhellet, daß diese logische Kriterien der Möglichkeit der Erkenntnis überhaupt die drei Kategorien der Größe, in denen die Einheit in der Erzeugung des Quantum durchgängig gleichartig angenommen werden muß, hier nur in Absicht auf die Verknüpfung auch ungleichartiger Erkenntnisstücke in einem Bewußtsein durch die Qualität eines Erkenntnisses als Prinzips verwandeln. So ist das Kriterium der Möglichkeit eines Begriffs (nicht des Objekts derselben) die Definition, in der die Einheit des Begriffs, die Wahrheit alles dessen, was zunächst aus ihm abgeleitet werden mag, endlich die Vollständigkeit dessen, was aus ihm gezogen worden, zur Herstellung des ganzen Begriffs das Erforderliche desselben ausmacht; oder so ist auch das Kriterium einer Hypothese die Verständlichkeit des angenommenen Erklärungsgrundes oder dessen Einheit (ohne Hülfshypothese) die Wahrheit (Übereinstimmung unter sich selbst und mit der Erfahrung) der daraus abzuleitenden Folgen, und endlich die Vollständigkeit des Erklärungsgrundes zu ihnen, die auf nichts mehr noch weniger zurückweisen, als in der Hypothese angenommen worden, und das, was a priori synthetisch gesammenstimmen. - Also wird durch die Begriffe von Einheit, Wahrheit und Vollkommenheit die transzendentale Tafel der Kategorien gar nicht, indem das Verhältnis dieser Begriffe auf Objekte gänzlich bei Seite gesetzt wird, das Verfahren mit ihnen unter allgemeine logische Regeln der Übereinstimmung der Erkenntnis mit sich selbst gebracht.
→ 그로부터 인식 일반의 가능성에 대한 이러한 논리적 표지들이 그 안에서 양의 산출에 있어서 통일성이 일반적으로 동종으로 받아들여져야만 하는 크기의 세 가지 범주들을, 여기에서 단지 또한 이종적인 인식의 부분들의 결합에의 의도로서만 의식 안에서 원칙으로서 인식의 질을 통해 전환시킨다는 것이 밝혀진다.→ 그래서 개념의 (대상 자체가 아니라) 가능성의 표지는 정의이다. 그 정의 안에서 개념의 통일이, 맨 먼저 그 개념으로부터 이끌려 나올지도 모르는 그 모든 것의 진리를, 궁극적으로 그 개념으로부터 증명된 것의 완전성을, 전체 개념의 재건을 위해 그 개념의 필수적인 것을 형성한다; 혹은 그래서 또한 가설의 표지는 수용된 설명근거의 이해가능성이거나 그 근거의 통일성 (보조가설 없이) 그로부터 도출한 결론들의 진리 (그 자체 아래에서의 일치와 경험과의 일치),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 결론들에 대한 설명근거의 완전성이다, 가설 안에서 수용될 때 그 귀결들은 많든 적든 그 어떤 것도 인용하지 않고, 선험적 종합적으로 생각되었던 그것을, 후험적 분석적으로 다시금 산출하고 거기에 일치시킨다.→ - 그러므로 통일성, 진리 그리고 완전성에 대한 개념들을 통하여 범주들의 초월론적 도표는 전혀, 마치 그 도표가 약간 불충분하기라도 한 듯, 보완되지는 않고, 오히려 단지, 이러한 개념들의 객체와의 관계가 전적으로 제쳐 놓여짐으로써, 그 개념들을 가지고 하는 작업이 인식 그 자체의 일치에 대한 일반 논리학적 규칙 아래에서 사용될 뿐이다.


Woraus erhellet, daß diese logische Kriterien der Möglichkeit der Erkenntnis überhaupt die drei Kategorien der Größe, in denen die Einheit in der Erzeugung des Quantum durchgängig gleichartig angenommen werden muß, hier nur in Absicht auf die Verknüpfung auch ungleichartiger Erkenntnisstücke in einem Bewußtsein durch die Qualität eines Erkenntnisses als Prinzips verwandeln.
그로부터 밝혀진다, 인식 일반의 가능성에 대한 이러한 논리적 표지들이 크기의 세 가지 범주들을, 그 범주들 안에서 양의 산출에 있어서 통일성이 일반적으로 동종으로 받아들여져야만 하는, 여기에서 단지 또한 이종적인 인식의 부분들의 결합에의 의도로서만 의식 안에서 인식의 질을 통해 원칙으로서 전환시킨다는 것이.
→ 그로부터 인식 일반의 가능성에 대한 이러한 논리적 표지들이 그 안에서 양의 산출에 있어서 통일성이 일반적으로 동종으로 받아들여져야만 하는 크기의 세 가지 범주들을, 여기에서 단지 또한 이종적인 인식의 부분들의 결합에의 의도로서만 의식 안에서 원칙으로서 인식의 질을 통해 전환시킨다는 것이 밝혀진다.
So ist das Kriterium der Möglichkeit eines Begriffs (nicht des Objekts derselben) die Definition, in der die Einheit des Begriffs, die Wahrheit alles dessen, was zunächst aus ihm abgeleitet werden mag, endlich die Vollständigkeit dessen, was aus ihm gezogen worden, zur Herstellung des ganzen Begriffs das Erforderliche desselben ausmacht; oder so ist auch das Kriterium einer Hypothese die Verständlichkeit des angenommenen Erklärungsgrundes oder dessen Einheit (ohne Hülfshypothese) die Wahrheit (Übereinstimmung unter sich selbst und mit der Erfahrung) der daraus abzuleiten den Folgen, und endlich die Vollständigkeit des Erklärungsgrundes zu ihnen, die auf nichts mehr noch weniger zurückweisen, als in der Hypothese angenommen worden, und das, was a priori synthetisch gedacht war, a posteriori analytisch wieder liefern und dazu zusammenstimmen.
그래서 개념의 (대상 자체가 아니라) 가능성의 표지는 정의이다, 그 정의 안에서 개념의 통일이, 그 모든 것의 진리를, 맨 먼저 그 개념으로부터 이끌려 나올지도 모르는, 궁극적으로 그것의 완전성을, 그 개념으로부터 증명된, 전체 개념의 재건을 위해 그 개념의 필수적인 것을 형성하는; 혹은 그래서 또한 가설의 표지는 수용된 해명의 전제의 이해가능성이거나 그 전제의 통일성이 (보조가설 없이) 그로부터 도출한 결론들의 진리를 (그 자체 아래에서의 일치와 경험과의 일치), 그리고 궁극적으로 해명의 전제의 완전성을 그것들에, 그것들이 많든 적든 그 어떤 것도 인용하지 않는, 가설 안에서 수용될 때, 그리고 그것이, 선험적 종합적으로 생각되었던, 후험적 분석적으로 다시금 산출하고 거기에 일치시킨다.
→ 그래서 개념의 (대상 자체가 아니라) 가능성의 표지는 정의이다. 그 정의 안에서 개념의 통일이, 맨 먼저 그 개념으로부터 이끌려 나올지도 모르는 그 모든 것의 진리를, 궁극적으로 그 개념으로부터 증명된 것의 완전성을, 전체 개념의 재건을 위해 그 개념의 필수적인 것을 형성한다; 혹은 그래서 또한 가설의 표지는 수용된 설명근거의 이해가능성이거나 그 근거의 통일성 (보조가설 없이) 그로부터 도출한 결론들의 진리 (그 자체 아래에서의 일치와 경험과의 일치),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 결론들에 대한 설명근거의 완전성이다, 가설 안에서 수용될 때 그 귀결들은 많든 적든 그 어떤 것도 인용하지 않고, 선험적 종합적으로 생각되었던 그것을, 후험적 분석적으로 다시금 산출하고 거기에 일치시킨다.
- Also wird durch die Begriffe von Einheit, Wahrheit und Vollkommenheit die transzendentale Tafel der Kategorien gar nicht, als wäre sie etwa mangelhaft, ergänzt, sondern nur, indem das Verhältnis dieser Begriffe auf Objekte gänzlich bei Seite gesetzt wird, das Verfahren mit ihnen unter allgemeine logische Regeln der Übereinstimmung der Erkenntnis mit sich selbst gebracht.
- 그러므로 통일성, 진리 그리고 완전성에 대한 개념들을 통하여 범주들의 초월론적 도표는 전혀, 마치 그 도표가 약간 불충분하기라도 한 듯, 보완되지는 않고, 오히려 단지, 이러한 개념들의 객체와의 관계가 전적으로 제쳐 놓여짐으로써, 그 개념들을 가지고 하는 작업이 인식 그 자체의 일치에 대한 일반 논리학적 규칙 아래에서 사용될 뿐이다.
→ - 그러므로 통일성, 진리 그리고 완전성에 대한 개념들을 통하여 범주들의 초월론적 도표는 전혀, 마치 그 도표가 약간 불충분하기라도 한 듯, 보완되지는 않고, 오히려 단지, 이러한 개념들의 객체와의 관계가 전적으로 제쳐 놓여짐으로써, 그 개념들을 가지고 하는 작업이 인식 그 자체의 일치에 대한 일반 논리학적 규칙 아래에서 사용될 뿐이다.

-蟲-
Diese vermeintlich transzendentale Prädikate der Dinge sind nichts anders als logische Erfordernisse und Kriterien aller Erkenntnis der Dinge überhaupt, und legen ihr die Kategorien der Quantität, nämlich der Einheit, Vielheit und Allheit, zum Grunde, nur daß sie diese, welche eigentlich material, als zur Möglichkeit der Dinge selbst gehörig, genommen werden müßten, in der Tat nur in formaler Bedeutung als zur logischen Forderung in Ansehung jeder Erkenntnis gehörig brauchten, und doch diese Kriterien des Denkens unbehutsamer Weise zu Eigenschaften der Dinge an sich selbst machten. In jedem Erkenntnisse eines Objektes ist nämlich Einheit des Begriffes, welche man qualitative Einheit nennen kann, so fern darunter nur die Einheit der Zusammenfassung des Mannigfaltigen der Erkenntnisse gedacht wird, wie etwa die Einheit des Thema in einem Schauspiel, einer Rede, einer Fabel. Zweitens Wahrheit in Ansehung der Folgen. Je mehr wahre Folgen aus einem gegebenen Begriffe, desto mehr Kennzeichen seiner objektiven Realität. Dieses könnte man die qualitative Vielheit der Merkmale, die zu einem Begriffe als einem gemeinschaftlichen Grunde gehören, (nicht in ihm als Größe gedacht werden,) nennen. Endlich drittens Vollkommenheit, die darin besteht, daß umgekehrt diese Vielheit zusammen auf die Einheit des Begriffes zurückführt, und zu diesem und keinem anderen völlig zusammenstimmt, welches man die qualitative Vollständigkeit (Totalität) nennen kann.
→ 이러한 사물의 소위 초월론적 술어들은 사물 일반의 모든 인식의 논리적 조건들과 표지들 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그 술어들은 그 조건들에 양의 범주들을, 즉 하나, 다수와 모두를 기초에 둔다. 오로지 본래 질료적인 사물 자체의 가능성에 속하는 것으로서 취해져야만 하는 이러한 범주들을, 실제로 형식적 조건에 있어서 각 인식의 고려 속에서 논리적 요구에 속하는 것으로 사용하였고, 또한 이러한 사유의 표지들을 경솔한 방식으로 물자체의 성질들로 만들었다.→ 각각의 인식에 있어서 객체는, 연극에 있어서 주제, 대사, 줄거리의 어떤 통일과 같이 오로지 그 아래에서만 인식의 잡다들의 총괄의 통일이 생각되는 한에서, 사람들이 질적인 통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즉 개념들의 통일이다.→ 두번째 것은 결론들과의 관련 속에서 참이다.→ 주어진 개념으로부터 참인 결론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개념의 객관적 실재성의 표지들도 더욱 더 많다.→ 이러한 것을 사람들은 (그 개념에서 크기로서 생각되지 않고) 공통된 토대로서 개념에 속하는 표지들의 질적 다수성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세번째 것은 반대되는 이러한 다수성이 동시에 개념의 통일성으로 환원하는, 그리고 다른 무엇도 아닌 이러한 것에 완전히 일치하는, 사람들이 질적 완전성(총체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 안에 존립하는 완전함이다.


Diese vermeintlich transzendentale Prädikate der Dinge sind nichts anders als logische Erfordernisse und Kriterien aller Erkenntnis der Dinge überhaupt, und legen ihr die Kategorien der Quantität, nämlich der Einheit, Vielheit und Allheit, zum Grunde, nur daß sie diese, welche eigentlich material, als zur Möglichkeit der Dinge selbst gehörig, genommen werden müßten, in der Tat nur in formaler Bedeutung als zur logischen Forderung in Ansehung jeder Erkenntnis gehörig brauchten, und doch diese Kriterien des Denkens unbehutsamer Weise zu Eigenschaften der Dinge an sich selbst machten.
이러한 사물의 소위 초월론적 술어들은 사물 일반의 모든 인식의 논리적 조건들과 표지들 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며, 그 조건들에 양의 범주들을, 즉 하나, 다수와 모두를, 기초에 둔다. 오로지 그 범주들이 이러한 것들인, 본래 질료적인, 사물 자체의 가능성에 속하는 것으로서, 취해져야만 하는, 실제로 형식적 조건에 있어서 각 인식의 고려 속에서 논리적 요구에 속하는 것으로 사용하며, 또한 이러한 사유의 표지들이 경솔한 방식으로 물자체의 성질들로 형성하는.
→ 이러한 사물의 소위 초월론적 술어들은 사물 일반의 모든 인식의 논리적 조건들과 표지들 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그 술어들은 그 조건들에 양의 범주들을, 즉 하나, 다수와 모두를 기초에 둔다. 오로지 본래 질료적인 사물 자체의 가능성에 속하는 것으로서 취해져야만 하는 이러한 범주들을, 실제로 형식적 조건에 있어서 각 인식의 고려 속에서 논리적 요구에 속하는 것으로 사용하였고, 또한 이러한 사유의 표지들을 경솔한 방식으로 물자체의 성질들로 만들었다.
In jedem Erkenntnisse eines Objektes ist nämlich Einheit des Begriffes, welche man qualitative Einheit nennen kann, so fern darunter nur die Einheit der Zusammenfassung des Mannigfaltigen der Erkenntnisse gedacht wird, wie etwa die Einheit des Thema in einem Schauspiel, einer Rede, einer Fabel.
각각의 인식에 있어서 객체는 다시 말해 개념들의 통일이다, 사람들이 질적인 통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오로지 그 아래에서만 인식의 잡다들의 총괄의 통일이 생각되는 한에서, 연극에 있어서 주제, 대사, 줄거리의 어떤 통일과 같이.
→ 각각의 인식에 있어서 객체는, 연극에 있어서 주제, 대사, 줄거리의 어떤 통일과 같이 오로지 그 아래에서만 인식의 잡다들의 총괄의 통일이 생각되는 한에서, 사람들이 질적인 통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즉 개념들의 통일이다.
Zweitens Wahrheit in Ansehung der Folgen.
두번째 것은 결론들과의 관련 속에서 참이다.
→ 두번째 것은 결론들과의 관련 속에서 참이다.
Je mehr wahre Folgen aus einem gegebenen Begriffe, desto mehr Kennzeichen seiner objektiven Realität.
주어진 개념으로부터 참인 결론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개념의 객관적 실재성의 표지들도 더욱 더 많다.
→ 주어진 개념으로부터 참인 결론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개념의 객관적 실재성의 표지들도 더욱 더 많다.
Dieses könnte man die qualitative Vielheit der Merkmale, die zu einem Begriffe als einem gemeinschaftlichen Grunde gehören, (nicht in ihm als Größe gedacht werden,) nennen.
이러한 것을 사람들은 표지들의 질적 다수성이라고, 그 다수성이 공통된 토대로서 개념에 속하는, (그 개념에서 크기로서 생각되지 않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 이러한 것을 사람들은 (그 개념에서 크기로서 생각되지 않고) 공통된 토대로서 개념에 속하는 표지들의 질적 다수성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Endlich drittens Vollkommenheit, die darin besteht, daß umgekehrt diese Vielheit zusammen auf die Einheit des Begriffes zurückführt, und zu diesem und keinem anderen völlig zusammenstimmt, welches man die qualitative Vollständigkeit (Totalität) nennen kann.
끝으로 세번째 것은 완전함이다, 그 안에 존립하는, 반대되는 이러한 다수성이 동시에 개념의 통일성으로 환원하는, 그리고 다른 무엇도 아닌 이러한 것에 완전히 일치하는, 사람들이 질적 완전성(총체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 끝으로 세번째 것은 반대되는 이러한 다수성이 동시에 개념의 통일성으로 환원하는, 그리고 다른 무엇도 아닌 이러한 것에 완전히 일치하는, 사람들이 질적 완전성(총체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 안에 존립하는 완전함이다.

-蟲-
§ 12.

Es findet sich aber in der Transzendentalphilosophie der Alten noch ein Haupstück vor, welches reine Verstandesbegriffe enthält, die, ob sie gleich nicht unter die Kategorien gezählt werden, dennoch, nach ihnen, als Begriffe a priori von Gegenständen gelten sollten, in welchem Falle sie aber die Zahl der Kategorien vermehren würden, welches nicht sein kann. Diese trägt der unter den Scholastikern so berufene Satz vor: quodlibet ens est unum, verum, bonum. Ob nun zwar der Gebrauch dieses Prinzips in Absicht auf die Folgerungen (die lauter tautologische Sätze gaben) sehr kümmerlich ausfiel, so, daß man es auch in neueren Zeiten beinahe nur ehrenhalber in der Metaphysik aufzustellen pflegt, so verdient doch ein Gedanke, der sich so lange Zeit erhalten hat, so leer er auch zu sein scheint, immer eine Untersuchung seines Ursprungs, und berechtigt zur Vermutung, daß er in irgend einer Verstandesregel seinen Grund habe, der nur, wie es oft geschieht, falsch gedolmetscht worden.
→ 그러나 고대인들의 초월철학 내에서도 순수 지성개념들을 포함하는 그 한 장이 발견된다. 그 개념들이, 비록 그것들이 범주들로 간주되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따르면, 대상들에 선험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개념들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경우 그 개념들은 범주들의 수를 늘릴 것이지만, 그러한 범주일 수 없다.→ 이러한 개념들은 스콜라 철학자들 사이에서 그렇게나 유명한 명제를 내놓는다: 있는 것은 어디서든 일이요, 진이요, 선이니라.(ens: sum present participle sons. modified form ab-sens, prae-sens, The simple form ens.)→ 이제 비록 그 결과들에 대한 의도 속에서 이러한 원칙들의 사용이 (순수한 동의이어적 명제를 주는) 매우 옹색한 결과가 되었고, 그래서, 사람들이 그것을 또한 새로운 시대에 형이상학 안에서 거의 체면치레만을 위해 제시하곤 한다고는 할지라도, 그래서 또한 그렇게나 공허하게 보이는 것이 그렇게 오랜 시간 유지해 온 것은 언제나 그것의 기원에 대한 연구를 생각할 가치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은 그것이 좌우간 지성규칙 안에 자주 그러하듯이 단지 그릇되게 납득되었던 근거를 가진다고 추측하게끔 한다.

Es findet sich aber in der Transzendentalphilosophie der Alten noch ein Haupstück vor, welches reine Verstandesbegriffe enthält, die, ob sie gleich nicht unter die Kategorien gezählt werden, dennoch, nach ihnen, als Begriffe a priori von Gegenständen gelten sollten, in welchem Falle sie aber die Zahl der Kategorien vermehren würden, welches nicht sein kann.
그러나 발견된다 고대인들의 초월철학 내에서도 그 한 장이, 순수 지성개념들을 포함하는, 그 개념들이, 비록 그것들이 범주들로 간주되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따르면, 대상들에 선험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개념들로서, 그 개념들이 그러나 범주들의 수를 넘어서게 될 경우, 그러한 것일 수 없는.
→ 그러나 고대인들의 초월철학 내에서도 순수 지성개념들을 포함하는 그 한 장이 발견된다. 그 개념들이, 비록 그것들이 범주들로 간주되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따르면, 대상들에 선험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개념들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경우 그 개념들은 범주들의 수를 늘릴 것이지만, 그러한 범주일 수 없다.
Diese trägt der unter den Scholastikern so berufene Satz vor: quodlibet ens est unum, verum, bonum.
이러한 개념들은 내놓는다 스콜라 철학자들 사이에서 그렇게나 유명한 명제를: 있는 것은 어디서든 일이요, 진이요, 선이니라.(ens: sum present participle sons. modified form ab-sens, prae-sens, The simple form ens.)
→ 이러한 개념들은 스콜라 철학자들 사이에서 그렇게나 유명한 명제를 내놓는다: 있는 것은 어디서든 일이요, 진이요, 선이니라.(ens: sum present participle sons. modified form ab-sens, prae-sens, The simple form ens.)
Ob nun zwar der Gebrauch dieses Prinzips in Absicht auf die Folgerungen (die lauter tautologische Sätze gaben) sehr kümmerlich ausfiel, so, daß man es auch in neueren Zeiten beinahe nur ehrenhalber in der Metaphysik aufzustellen pflegt, so verdient doch ein Gedanke, der sich so lange Zeit erhalten hat, so leer er auch zu sein scheint, immer eine Untersuchung seines Ursprungs, und berechtigt zur Vermutung, daß er in irgend einer Verstandesregel seinen Grund habe, der nur, wie es oft geschieht, falsch gedolmetscht worden.
이제 비록 그 결과들에 대한 의도 속에서 이러한 원칙들의 사용이 (순수한 동의이어적 명제를 주는) 매우 옹색한 결과가 되었고, 그래서, 사람들이 그것을 또한 새로운 시대에 형이상학 안에서 거의 체면치레만을 위해 제시하곤 한다고는 할지라도, 그래서 또한 생각할 가치가 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유지해 온 것은, 그것이 그렇게나 공허하게 보이는, 언제나 그것의 기원에 대한 연구를, 그리고 추측하게끔 한다, 그것이 좌우간 지성규칙 안에 그것의 근거를 가진다고, 그것이 단지, 그것이 자주 일어나는 것처럼, 그릇되게 납득되었던.
→ 이제 비록 그 결과들에 대한 의도 속에서 이러한 원칙들의 사용이 (순수한 동의이어적 명제를 주는) 매우 옹색한 결과가 되었고, 그래서, 사람들이 그것을 또한 새로운 시대에 형이상학 안에서 거의 체면치레만을 위해 제시하곤 한다고는 할지라도, 그래서 또한 그렇게나 공허하게 보이는 것이 그렇게 오랜 시간 유지해 온 것은 언제나 그것의 기원에 대한 연구를 생각할 가치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은 그것이 좌우간 지성규칙 안에 자주 그러하듯이 단지 그릇되게 납득되었던 근거를 가진다고 추측하게끔 한다.

-蟲-
Um sich dieser Übereinstimmung zu versichern, muß man bemerken: daß in allen disjunktiven Urteilen die Sphäre (die Menge alles dessen, was unter ihm enthalten ist) als ein Ganzes in Teile (die untergeordneten Begriffe) geteilt vorgestellt wird, und, weil einer nicht unter dem andern enthalten sein kann, sie als einander koordiniert, nicht subordiniert, so daß sie einander nicht einseitig, wie in einer Reihe, sondern wechselseitig, als in einem Aggregat, bestimmen (wenn ein Glied der Einteilung gesetzt wird, alle übrige ausgeschlossen werden, und so umgekehrt), gedacht werden.
→ 이러한 일치를 확신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알아야만 한다: 모든 선언적 판단들에 있어서 그 범위는 (그 판단 아래에 속해지는 모든 것의 집합) 전체로서 부분(종속된 개념)으로 표상되고, 하나가 다른 것 아래에 포함될 수 없기 때문에, 그것들이 상호 병렬하고, 종속시키지 않으며, 그래서 줄에 있어서 처럼 그것들 상호에 일방적으로가 아니라, 오히려 집합체 안에 있는 것으로서 상호적으로 규정 (구분의 마디가 놓일 때, 모든 남은 것들은 제외되고, 정반대된다) 되고, 사유된다.

Nun wird eine ähnliche Verknüpfung in einem Ganzen der Dinge gedacht, da nicht eines, als Wirkung, dem andern, als Ursache seines Daseins, untergeordnet, sondern zugleich und wechselseitig als Ursache in Ansehung der Bestimmung der andern beigeordnet wird, (z.B in einem Körper, dessen Teile einander wechselseitig ziehen, und auch widerstehen,) welches eine ganz andere Art der Verknüpfung ist, als die, so im bloßen Verhältnis der Ursache zur Wirkung (des Grundes zur Folge) angetroffen wird, in welchem die Folge nicht wechselseitig wiederum den Grund bestimmt, und darum mit diesem (wie der Weltschöpfer mit der Welt) nicht ein Ganzes ausmacht. Dasselbe Verfahren des Verstandes, wenn er sich die Sphäre eines eingeteilten Begriffs vorstellt, beobachtet er auch, wenn er ein Ding als teilbar denkt, und, wie die Glieder der Einteilung im ersteren einander ausschließen und doch in einer Sphäre verbunden sind, so stellt er sich die Teile des letzteren als solche, deren Existenz (als Substanzen) jedem auch ausschließlich von den übrigen zukommt, doch als in einem Ganzen verbunden vor.
→ 이제 유사한 결합이 사물의 전체 안에서 사유된다. 왜냐하면 작용으로서 어떤 것이 그 사물의 현존의 원인으로서의 다른 것에 종속되지 않고, 동시에 상호적으로 원인으로서 다른 것의 규정에의 고려 속에서 병렬되며, (예를 들어 육체에 있어서, 육체의 부분들이 상호적으로 끌어 당기고, 또한 맞선다,) 그 안에서 결과가 상호적으로 다시금 근거를 규정하지 않고 그 근거에 대해 이 결과를 가지고 (조물주가 세계를 가지고) 전체를 형성하지 않는 그러한 작용에 대한 원인의(결과에 대한 근거의) 순전한 관계 내에서 발견되는 그것과는 전적으로 다른, 그러한 결합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지성은 지성이 분할된 개념의 범위를 표상할 때의 동일한 방식들을 지성이 사물을 가분적으로 생각할 때 또한 주시하고, 그리고, 분할의 마디가 전자에 있어서 상호 제외하고 또한 한 범위 내에서 결합되는 것처럼, 그렇게 지성은 자신에게 후자의 부분을 그러한 것으로서, 그 부분의 현존(실체들로서)이 각각에 또한 남은 부분들에서 배타적으로 속하고, 더욱이 전체 내에서 결합된 것으로서 표상한다.



Um sich dieser Übereinstimmung zu versichern, muß man bemerken: daß in allen disjunktiven Urteilen die Sphäre (die Menge alles dessen, was unter ihm enthalten ist) als ein Ganzes in Teile (die untergeordneten Begriffe) geteilt vorgestellt wird, und, weil einer nicht unter dem andern enthalten sein kann, sie als einander koordiniert, nicht subordiniert, so daß sie einander nicht einseitig, wie in einer Reihe, sondern wechselseitig, als in einem Aggregat, bestimmen (wenn ein Glied der Einteilung gesetzt wird, alle übrige ausgeschlossen werden, und so umgekehrt), gedacht werden.
이러한 일치를 확신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알아야만 한다: 모든 선언적 판단들에 있어서 그 범위는 (그 판단 아래에 속해지는 모든 것의 집합) 전체로서 부분(종속된 개념)으로 표상되고, 하나가 다른 것 아래에 포함될 수 없기 때문에, 그것들이 상호 병렬하고, 종속시키지 않으며, 그래서 그것들 상호에 일방적으로가 아니라, 줄에 있어서 처럼, 오히려 상호적으로, 집합체 안에 있는 것으로서, 규정 (구분의 마디가 놓일 때, 모든 남은 것들은 제외되고, 정반대된다) 되고, 사유된다.
→ 이러한 일치를 확신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알아야만 한다: 모든 선언적 판단들에 있어서 그 범위는 (그 판단 아래에 속해지는 모든 것의 집합) 전체로서 부분(종속된 개념)으로 표상되고, 하나가 다른 것 아래에 포함될 수 없기 때문에, 그것들이 상호 병렬하고, 종속시키지 않으며, 그래서 줄에 있어서 처럼 그것들 상호에 일방적으로가 아니라, 오히려 집합체 안에 있는 것으로서 상호적으로 규정 (구분의 마디가 놓일 때, 모든 남은 것들은 제외되고, 정반대된다) 되고, 사유된다.

Nun wird eine ähnliche Verknüpfung in einem Ganzen der Dinge gedacht, da nicht eines, als Wirkung, dem andern, als Ursache seines Daseins, untergeordnet, sondern zugleich und wechselseitig als Ursache in Ansehung der Bestimmung der andern beigeordnet wird, (z.B in einem Körper, dessen Teile einander wechselseitig ziehen, und auch widerstehen,) welches eine ganz andere Art der Verknüpfung ist, als die, so im bloßen Verhältnis der Ursache zur Wirkung (des Grundes zur Folge) angetroffen wird, in welchem die Folge nicht wechselseitig wiederum den Grund bestimmt, und darum mit diesem (wie der Weltschöpfer mit der Welt) nicht ein Ganzes ausmacht.
이제 유사한 결합이 사물의 전체 안에서 사유된다, 왜냐하면 작용으로서 어떤 것이, 다른 것에, 그 사물의 현존의 원인으로서, 종속되지 않고, 동시에 상호적으로 원인으로서 다른 것의 규정에의 고려 속에서 병렬되며, (예를 들어 육체에 있어서, 육체의 부분들이 상호적으로 끌어 당기고, 또한 맟선다,) 전적으로 다른 결합의 방식이다, 그것으로서, 작용에 대한 원인의(결과에 대한 근거의) 순전한 관계 내에서 발견되는, 그 안에서 결과가 반면에 상호적으로 근거를 규정하지 않고, 그것에 대해 이것을 가지고 (조물주가 세계를 가지고) 전체를 형성하지 않는.
→ 이제 유사한 결합이 사물의 전체 안에서 사유된다. 왜냐하면 작용으로서 어떤 것이 그 사물의 현존의 원인으로서의 다른 것에 종속되지 않고, 동시에 상호적으로 원인으로서 다른 것의 규정에의 고려 속에서 병렬되며, (예를 들어 육체에 있어서, 육체의 부분들이 상호적으로 끌어 당기고, 또한 맞선다,) 그 안에서 결과가 상호적으로 다시금 근거를 규정하지 않고 그 근거에 대해 이 결과를 가지고 (조물주가 세계를 가지고) 전체를 형성하지 않는 그러한 작용에 대한 원인의(결과에 대한 근거의) 순전한 관계 내에서 발견되는 그것과는 전적으로 다른, 그러한 결합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Dasselbe Verfahren des Verstandes, wenn er sich die Sphäre eines eingeteilten Begriffs vorstellt, beobachtet er auch, wenn er ein Ding als teilbar denkt, und, wie die Glieder der Einteilung im ersteren einander ausschließen und doch in einer Sphäre verbunden sind, so stellt er sich die Teile des letzteren als solche, deren Existenz (als Substanzen) jedem auch ausschließlich von den übrigen zukommt, doch als in einem Ganzen verbunden vor.
지성의 동일한 방식들을, 지성이 분할된 개념의 범위를 표상할 때, 지성이 또한 주시하고, 지성이 사물을 가분적으로 생각할 때, 그리고, 분할의 마디가 전자에 있어서 상호 제외하고 또한 한 범위 내에서 결합되는 것처럼, 그렇게 지성은 자신에게 후자의 부분을 그러한 것으로서, 그 부분의 현존(실체들로서)이 각각을 또한 남은 부분들에서 배타적으로 나타나고, 더욱이 전체 내에서 결합된 것으로서 표상한다.
→ 지성은 지성이 분할된 개념의 범위를 표상할 때의 동일한 방식들을 지성이 사물을 가분적으로 생각할 때 또한 주시하고, 그리고, 분할의 마디가 전자에 있어서 상호 제외하고 또한 한 범위 내에서 결합되는 것처럼, 그렇게 지성은 자신에게 후자의 부분을 그러한 것으로서, 그 부분의 현존(실체들로서)이 각각에 또한 남은 부분들에서 배타적으로 속하고, 더욱이 전체 내에서 결합된 것으로서 표상한다.

-蟲-
So ist die Allheit (Totalitat) nichts anders als die Vielheit als Einheit betrachtet, die Einschrankung nichts anders als Realitat mit Negation verbunden, die Gemeinschaft ist die Kausalitat einer Substanz in Bestimmung der andern wechselseitig, endlich die Notwendigkeit nichts anders als die Existenz, die durch die Moglichkeit selbst gegeben ist. Man denke aber ja nicht, daß darum die dritte Kategorie ein bloß abgeleiteter und kein Stammbegriff des reinen Verstandes sei. Denn die Verbindung der ersten und zweiten, um den dritten Begriff hervorzubringen, erfodert einen besonderen Actus des Verstandes, der nicht mit dem einerlei ist, der beim ersten und zweiten ausgeubt wird. So ist der Begriff einer Zahl (die zur Kategorie der Allheit gehort) nicht immer moglich, wo die Begriffe der Menge und der Einheit sind (z.B. in der Vorstellung des Unendlichen), oder daraus, daß ich den Begriff einer Ursache und den einer Substanz beide verbinde, noch nicht so fort der Einfluß, d.i. wie eine Substanz Ursache von etwas in einer anderen Substanz werden konne, zu verstehen. Daraus erhellet, daß dazu ein besonderer Actus des Verstandes erfoderlich sei; und so bei den ubrigen.
→ 그래서 '모두(총체성)'는 '하나'로 간주된 '여럿' 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고, '제한'은 사실의 부정과의 결합 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며, 결합은 상호간에 다른 실체의 규정 속에서 한 실체의 인과성이고, 끝으로 필연성은 가능성 자체를 통하여 주어지는 현존 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에 관해 세번째 범주는 순전히 파생된 것이고 전혀 순수지선의 기초개념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첫번째 것과 두번째 것의 결합은, 세번째 개념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지성의 특수한 활동을 요구하기 때문인데, 그 활동이 첫번째 것과 두번째 것에 있어서 수행되는 활동과 동종이 아니다.→ 그래서 수의 개념은 ('모두'의 범주에 속하는) 언제나 가능하지는 않은데, 양의 개념과 '하나'의 개념이 있는 곳(예를 들어 무한의 표상 안에서)에서 그렇고, 혹은 내가 원인의 개념을 실체의 개념과 함께 결합하는 것으로부터, 즉각 유입이, 즉 어떻게 실체가 다른 하나의 실체에 있어서 어떤 것의 원인이 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다.→ 그로부터, 그에 대해 지성의 특수한 활동이 필수적이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리고 그 밖에 다른 것들에 있어서도 그렇다.

3te Anmerk. Von einer einzigen Kategorie, namlich der der Gemeinschaft, die unter dem dritten Titel befindlich ist, ist die Ubereinstimmung mit der in der Tafel der logischen Funktionen ihr korrespondierenden Form eines disjunktiven Urteils nicht so in die Augen fallend, als bei den ubrigen.
→ 세번째 주해. 유일한 범주, 즉 세번째 제목 아래에 있는 결합의 범주에 대해서, 논리적 기능들의 도표에서의 그 제목과 선언판단의 그 제목의 상응하는 형식의 일치는, 그 밖에 다른 것들에 있어서 만큼 그렇게 눈에 띄이지는 않는다.


So ist die Allheit (Totalitat) nichts anders als die Vielheit als Einheit betrachtet, die Einschrankung nichts anders als Realitat mit Negation verbunden, die Gemeinschaft ist die Kausalitat einer Substanz in Bestimmung der andern wechselseitig, endlich die Notwendigkeit nichts anders als die Existenz, die durch die Moglichkeit selbst gegeben ist.
그래서 '모두(총체성)'는 '하나'로 간주된 '여럿' 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고, '제한'은 사실의 부정과의 결합 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며, 결합은 상호간에 다른 실체의 규정 속에서 한 실체의 인과성이고, 끝으로 필연성은 가능성 자체를 통하여 주어지는 현존 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 그래서 '모두(총체성)'는 '하나'로 간주된 '여럿' 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고, '제한'은 사실의 부정과의 결합 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며, 결합은 상호간에 다른 실체의 규정 속에서 한 실체의 인과성이고, 끝으로 필연성은 가능성 자체를 통하여 주어지는 현존 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Man denke aber ja nicht, daß darum die dritte Kategorie ein bloß abgeleiteter und kein Stammbegriff des reinen Verstandes sei.
그러나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에 관해 세번째 범주는 순전히 파생된 것이고 전혀 순수지선의 기초개념은 아닐 것이라고.
→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것에 관해 세번째 범주는 순전히 파생된 것이고 전혀 순수지선의 기초개념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Denn die Verbindung der ersten und zweiten, um den dritten Begriff hervorzubringen, erfodert einen besonderen Actus des Verstandes, der nicht mit dem einerlei ist, der beim ersten und zweiten ausgeubt wird.
왜냐하면 첫번째 것과 두번째 것의 결합은, 세번째 개념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지성의 특수한 활동을 요구하기 때문인데, 그 활동이 활동과 동종이 아니다, 첫번째 것과 두번째 것에 있어서 수행되는.
→ 왜냐하면 첫번째 것과 두번째 것의 결합은, 세번째 개념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지성의 특수한 활동을 요구하기 때문인데, 그 활동이 첫번째 것과 두번째 것에 있어서 수행되는 활동과 동종이 아니다.
So ist der Begriff einer Zahl (die zur Kategorie der Allheit gehort) nicht immer moglich, wo die Begriffe der Menge und der Einheit sind (z.B. in der Vorstellung des Unendlichen), oder daraus, daß ich den Begriff einer Ursache und den einer Substanz beide verbinde, noch nicht so fort der Einfluß, d.i. wie eine Substanz Ursache von etwas in einer anderen Substanz werden konne, zu verstehen.
그래서 수의 개념은 ('모두'의 범주에 속하는) 언제나 가능하지는 않은데, 양의 개념과 '하나'의 개념이 있는 곳(예를 들어 무한의 표상 안에서)에서, 혹은 그로부터, 내가 원인의 개념을 실체의 개념과 함께 결합하는 것, 즉각 유입이, 즉 어떻게 실체가 다른 하나의 실체에 있어서 어떤 것의 원인이 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
→ 그래서 수의 개념은 ('모두'의 범주에 속하는) 언제나 가능하지는 않은데, 양의 개념과 '하나'의 개념이 있는 곳(예를 들어 무한의 표상 안에서)에서 그렇고, 혹은 내가 원인의 개념을 실체의 개념과 함께 결합하는 것으로부터, 즉각 영향이, 즉 어떻게 실체가 다른 하나의 실체에 있어서 어떤 것의 원인이 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다.
Daraus erhellet, daß dazu ein besonderer Actus des Verstandes erfoderlich sei; und so bei den ubrigen.
그로부터 자명하다, 그에 대해 지성의 특수한 활동이 필수적이리라는 것은; 그리고 그 밖에 다른 것들에 있어서도 그렇다.
→ 그로부터, 그에 대해 지성의 특수한 활동이 필수적이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리고 그 밖에 다른 것들에 있어서도 그렇다.

3te Anmerk. Von einer einzigen Kategorie, namlich der der Gemeinschaft, die unter dem dritten Titel befindlich ist, ist die Ubereinstimmung mit der in der Tafel der logischen Funktionen ihr korrespondierenden Form eines disjunktiven Urteils nicht so in die Augen fallend, als bei den ubrigen.
세번째 주해. 유일한 범주, 즉 결합의 범주에 대해서, 세번째 제목 아래에 있는, 논리적 기능들의 도표에서의 그 범주와 선언파단의 그 범주의 상응하는 형식의 일치는 그렇게 눈에 띄지는 않는다, 그 밖에 다른 것들에 있어서 만큼.
→ 세번째 주해. 유일한 범주, 즉 세번째 제목 아래에 있는 결합의 범주에 대해서, 논리적 기능들의 도표에서의 그 제목과 선언판단의 그 제목의 상응하는 형식의 일치는, 그 밖에 다른 것들에 있어서 만큼 그렇게 눈에 띄이지는 않는다.
Die erste ist: daß sich diese Tafel, welche vier Klassen von Verstandesbegriffen enthält, zuerst in zwei Abteilungen zerfällen lasse, deren erstere auf Gegenstände der Anschauung (der reinen sowohl als empirischen), die zweite aber auf die Existenz dieser Gegenstände (entweder in Beziehung auf einander oder auf den Verstand) gerichtet sind.
→ 첫번째 주해는: 지성개념들에 대한 네 가지 부문들을 포함하는 이러한 도표가 먼저 두 구분으로 나뉘어 있고, 그 중의 첫번째 것은 직관의 대상들에 대해 (순수한 직관뿐만 아니라 경험적 직관까지도), 그러나 두번째 것은 이러한 대상들의 현존에 대해 (상호에 관해서든지성에 관해서든) 향해진다는 것이다.

Die erste Klasse würde ich die der mathematischen, die zweite der dynamischen Kategorien nennen. Die erste Klasse hat, wie man sieht, keine Korrelate, die allein in der zweiten Klasse angetroffen werden. Dieser Unterschied muß doch einen Grund in der Natur des Verstandes haben.
→ 그 첫번째 부문을 나는 수학적 범주들의 부문, 두번째 부문을 역학적 범주들의 부문이라 명명할 것이다.→ 첫번째 부문은, 사람들이 보았듯이, 오로지 두번째 부문에서만 발견되는 어떠한 상관개념들도 가지지 않는다.→ 이러한 구분은 지성의 본성에 이유를 가짐에 틀림없다.

2te Anmerk. Daß allerwärts eine gleiche Zahl der Kategorien jeder Klasse, nämlich drei sind, welches eben sowohl zum Nachdenken auffodert, da sonst alle Einteilung a priori durch Begriffe dichotomie sein muß. Dazu kommt aber noch, daß die dritte Kategorie allenthalben aus der Verbindung der zweiten mit der ersten ihrer Klasse entspringt.
→ 두번째 주해. 어느 곳에서나 각 부문의 범주들의 수는 똑같이 셋이다. 더욱이 모든 구분들은 선험적으로 개념들을 통해 양분되어야만 하기 때문에 똑같이 숙고를 요구한다.→ 그러나 게다가 세번째 범주들이 어디에서나 그 범주들의 부문의 두번째 것과 세번째 것의 결합으로부터 발생한다는 것이 있다.


Die erste ist: daß sich diese Tafel, welche vier Klassen von Verstandesbegriffen enthält, zuerst in zwei Abteilungen zerfällen lasse, deren erstere auf Gegenstände der Anschauung (der reinen sowohl als empirischen), die zweite aber auf die Existenz dieser Gegenstände (entweder in Beziehung auf einander oder auf den Verstand) gerichtet sind.
첫번째 주해는: 이러한 도표가, 지성개념들에 대한 네 가지 부문들을 포함하는, 먼저 두 구분으로 나뉘어 있고, 그 중의 첫번째 것이 직관의 대상들에 대해 (순수한 직관뿐만 아니라 경험적 직관까지도), 그러나 두번째 것은 이러한 대상들의 현존에 대해 (상호에 관해서든지성에 관해서든) 향해진다는 것이다.
→ 첫번째 주해는: 지성개념들에 대한 네 가지 부문들을 포함하는 이러한 도표가 먼저 두 구분으로 나뉘어 있고, 그 중의 첫번째 것은 직관의 대상들에 대해 (순수한 직관뿐만 아니라 경험적 직관까지도), 그러나 두번째 것은 이러한 대상들의 현존에 대해 (상호에 관해서든지성에 관해서든) 향해진다는 것이다.

Die erste Klasse würde ich die der mathematischen, die zweite der dynamischen Kategorien nennen.
그 첫번째 부문을 나는 수학적 범주들의 부문, 두번째 부문을 역학적 범주들의 부문이라 명명할 것이다.
→ 그 첫번째 부문을 나는 수학적 범주들의 부문, 두번째 부문을 역학적 범주들의 부문이라 명명할 것이다.
Die erste Klasse hat, wie man sieht, keine Korrelate, die allein in der zweiten Klasse angetroffen werden.
첫번째 부문은, 사람들이 보았듯이, 어떠한 상관개념들도 가지지 않는다, 그 상관개념들이 오로지 두번째 부문에서만 발견되는.
→ 첫번째 부문은, 사람들이 보았듯이, 오로지 두번째 부문에서만 발견되는 어떠한 상관개념들도 가지지 않는다.
Dieser Unterschied muß doch einen Grund in der Natur des Verstandes haben.
이러한 구분은 지성의 본성에 이유를 가짐에 틀림없다.
→ 이러한 구분은 지성의 본성에 이유를 가짐에 틀림없다.

2te Anmerk. Daß allerwärts eine gleiche Zahl der Kategorien jeder Klasse, nämlich drei sind, welches eben sowohl zum Nachdenken auffodert, da sonst alle Einteilung a priori durch Begriffe dichotomie sein muß.
두번째 주해. 어느 곳에서나 각 부문의 범주들의 동일한 수가, 즉 셋이, 똑같이 숙고를 요구하는, 더욱이 모든 구분들은 선험적으로 개념들을 통해 양분되어야만 하기 때문에.
→ 두번째 주해. 어느 곳에서나 각 부문의 범주들의 수는 똑같이 셋이다. 더욱이 모든 구분들은 선험적으로 개념들을 통해 양분되어야만 하기 때문에 똑같이 숙고를 요구한다.
Dazu kommt aber noch, daß die dritte Kategorie allenthalben aus der Verbindung der zweiten mit der ersten ihrer Klasse entspringt.
그러나 게다가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세번째 범주들이 어디에서나 그 범주들의 부문의 두번째 것과 세번째 것의 결합으로부터 발생한다는 것.
→ 그러나 게다가 세번째 범주들이 어디에서나 그 범주들의 부문의 두번째 것과 세번째 것의 결합으로부터 발생한다는 것이 있다.

-蟲-
In einem System der reinen Vernunft würde man sie mit Recht von mir fordern können: aber hier würden sie nur den Hauptpunkt der Untersuchung aus den Augen bringen, indem sie Zweifel und Angriffe erregten, die man, ohne der wesentlichen Absicht etwas zu entziehen, gar wohl auf eine andre Beschäftigung verweisen kann. Indessen leuchtet doch aus dem wenigen, was ich hievon angeführt habe, deutlich hervor, daß ein vollständiges Wörterbuch mit allen dazu erforderlichen Erklärungen nicht allein möglich, sondern auch leicht sei zu Stande zu bringen. Die Fächer sind einmal da; es ist nur nötig, sie auszufüllen, und eine systematische Topik, wie die gegenwärtige, läßt nicht leicht die Stelle verfehlen, dahin ein jeder Begriff eigentümlich gehört, und zugleich diejenige leicht bemerken, die noch leer ist.
→ 순수 이성의 체계 내에서 사람들은 그 파생개념들을 정당하게 나에 대해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 파생개념들은 사람들이, 본질적인 목적에서 어떤 것을 박탈하지 않고, 다른 연구에 대해 더욱이 잘 비난할 수 있는 의심들과 공격들을 불러 일으킴으로써 단지 연구의 주안점을 눈 밖에 놓을 뿐이다.→ 그에 반해 또한 내가 이것에 관해 제시한 그 작은 것으로부터, 완벽한 사전이 그에 대해 꼭 필요한 모든 해명들과 함께 그저 가능할 뿐만 아니라, 또한 쉽사리 확립시킬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그 분야들은 실로 여기 있다; 그것들을 가득 채우는 것만이 필요하다. 그리고 체계적인 총체론이, 현재의 그것과 같이, 쉽사리 거기에 각각의 개념이 속하는 그러한 자리를 놓치지 않도록 하고, 동시에 여전히 비어있는 자리를 쉽게 알아차리도록 한다.

§ 11.

Über diese Tafel der Kategorien lassen sich artige Betrachtungen anstellen, die vielleicht erhebliche Folgen in Ansehung der wissenschaftlichen Form aller Vernunfterkenntnisse haben könnten. Denn daß diese Tafel im theoretischen Teile der Philosophie ungemein dienlich, ja unentbehrlich sei, den Plan zum Ganzen einer Wissenschaft, so fern sie auf Begriffen a priori beruht, vollständig zu entwerfen, und sie mathematisch nach bestimmten Prinzipien abzuteilen; erhellet schon von selbst daraus, daß gedachte Tafel alle Elementarbegriffe des Verstandes vollständig, ja selbst die Form eines Systems derselben im menschlichen Verstande enthält, folglich auf alle Momente einer vorhabenden spekulativen Wissenschaft, ja sogar ihre Ordnung, Anweisung gibt, wie ich denn auch davon anderwärts¹ eine Probe gegeben habe. Hier sind nun einige dieser Anmerkungen.
→ 범주들의 이러한 도표에 대해 아마도 중요한 결과들을 모든 이성인식들의 학문적 형식에 대한 고려 속에서 가질 수 있을 정중한 고찰들이 시도되도록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도표는 학문이 개념들에 선험적으로 근거하는 한 학문 전체에 대해 설계를 완전히 구상하기 위해, 그리고 그 개념들을 수학적으로 규정된 원칙들에 따라 구분하기 위해 철학의 이론적 부분들 안에서 대단히 유용하고,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또한 그에 대해 다른 곳에¹ 표본을 제시했던 것처럼, 이미 생각된 학문이 지성의 모든 기초개념들을 완전히, 더욱이 인간 지성 안에서 그 기초개념들의 체계의 형식을 포함하고, 그 결과 현존하는 사변적 학문의 모든 동인들에 대해, 더욱이 그것의 질서를, 명령을 부여한다는 그 결과 자체로 밝혀진 것이다.→ 여기에는 이러한 주해들의 몇몇만이 있다.

¹Metaphys. Anfangsgr. der Naturwissensch.
¹자연과학의 형이상학적 기초.



In einem System der reinen Vernunft würde man sie mit Recht von mir fordern können: aber hier würden sie nur den Hauptpunkt der Untersuchung aus den Augen bringen, indem sie Zweifel und Angriffe erregten, die man, ohne der wesentlichen Absicht etwas zu entziehen, gar wohl auf eine andre Beschäftigung verweisen kann.
순수 이성의 체계 내에서 사람들은 그 파생개념들을 정당하게 나에 대해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 파생개념들은 단지 연구의 주안점을 눈 밖에 놓는다, 그 개념들이 의심들과 공격들을 불러 일으킴으로써, 그것들을 사람들이, 본질적인 목적에서 어떤 것을 박탈하지 않고, 다른 연구에 대해 더욱이 잘 비난할 수 있는.
→ 순수 이성의 체계 내에서 사람들은 그 파생개념들을 정당하게 나에 대해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 파생개념들은 사람들이, 본질적인 목적에서 어떤 것을 박탈하지 않고, 다른 연구에 대해 더욱이 잘 비난할 수 있는 의심들과 공격들을 불러 일으킴으로써 단지 연구의 주안점을 눈 밖에 놓을 뿐이다.
Indessen leuchtet doch aus dem wenigen, was ich hievon angeführt habe, deutlich hervor, daß ein vollständiges Wörterbuch mit allen dazu erforderlichen Erklärungen nicht allein möglich, sondern auch leicht sei zu Stande zu bringen.
그에 반해 또한 그 작은 것으로부터 명백하다, 내가 이것에 관해 제시한 것, 확실하게 밖으로, 완벽한 사전이 그에 대해 꼭 필요한 모든 해명들과 함께 그저 가능할 뿐만 아니라, 또한 쉽사리 확립시킬 수 있는 것이라는 것.
→ 그에 반해 또한 내가 이것에 관해 제시한 그 작은 것으로부터, 완벽한 사전이 그에 대해 꼭 필요한 모든 해명들과 함께 그저 가능할 뿐만 아니라, 또한 쉽사리 확립시킬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Die Fächer sind einmal da; es ist nur nötig, sie auszufüllen, und eine systematische Topik, wie die gegenwärtige, läßt nicht leicht die Stelle verfehlen, dahin ein jeder Begriff eigentümlich gehört, und zugleich diejenige leicht bemerken, die noch leer ist.
그 분야들은 실로 여기 있다; 그것은 단지 필요하다, 그것들을 가득 채우는 것, 그리고 체계적인 총체론이, 현재의 그것과 같이, 쉽사리 자리를 놓치지 않도록 하고, 거기에 각각의 개념이 속하는, 동시에 그것을 쉽게 알아차리도록, 그것이 여전히 비어있는.
→ 그 분야들은 실로 여기 있다; 그것들을 가득 채우는 것만이 필요하다. 그리고 체계적인 총체론이, 현재의 그것과 같이, 쉽사리 거기에 각각의 개념이 속하는 그러한 자리를 놓치지 않도록 하고, 동시에 여전히 비어있는 자리를 쉽게 알아차리도록 한다.

§ 11.

Über diese Tafel der Kategorien lassen sich artige Betrachtungen anstellen, die vielleicht erhebliche Folgen in Ansehung der wissenschaftlichen Form aller Vernunfterkenntnisse haben könnten.
범주들의 이러한 도표에 대해 정중한 고찰들이 시도되도록 한다, 그 고찰들이 아마도 중요한 결과들을 모든 이성인식들의 학문적 형식에 대한 고려 속에서 가질 수 있을.
→ 범주들의 이러한 도표에 대해 아마도 중요한 결과들을 모든 이성인식들의 학문적 형식에 대한 고려 속에서 가질 수 있을 정중한 고찰들이 시도되도록 한다.
Denn daß diese Tafel im theoretischen Teile der Philosophie ungemein dienlich, ja unentbehrlich sei, den Plan zum Ganzen einer Wissenschaft, so fern sie auf Begriffen a priori beruht, vollständig zu entwerfen, und sie mathematisch nach bestimmten Prinzipien abzuteilen; erhellet schon von selbst daraus, daß gedachte Tafel alle Elementarbegriffe des Verstandes vollständig, ja selbst die Form eines Systems derselben im menschlichen Verstande enthält, folglich auf alle Momente einer vorhabenden spekulativen Wissenschaft, ja sogar ihre Ordnung, Anweisung gibt, wie ich denn auch davon anderwärts¹ eine Probe gegeben habe.
왜냐하면 이러한 도표는 철학의 이론적 부분들 안에서 대단히 유용하고, 빼놓을 수 없을, 학문 전체에 대해 설계를, 그 학문이 개념들에 선험적으로 근거하는 한, 완전히 구상하기 위해, 그리고 그 개념들을 수학적으로 규정된 원칙들에 따라 구분하기 위해; 이미 그 결과 스스로에 대해 밝혀졌다, 생각된 도표가 지성의 모든 기초개념들을 완전히, 인간 지성에 그 기초개념들의 체계의 형식을 포함하고, 그 결과 현존하는 사변적 학문의 모든 동인들에 대해, 더욱이 그것의 질서, 명령을 부여한다, 내가 또한 그에 대해 다른 곳에¹ 표본을 제시했던 것처럼.
→ 왜냐하면 이러한 도표는 학문이 개념들에 선험적으로 근거하는 한 학문 전체에 대해 설계를 완전히 구상하기 위해, 그리고 그 개념들을 수학적으로 규정된 원칙들에 따라 구분하기 위해 철학의 이론적 부분들 안에서 대단히 유용하고,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또한 그에 대해 다른 곳에¹ 표본을 제시했던 것처럼, 이미 생각된 학문이 지성의 모든 기초개념들을 완전히, 더욱이 인간 지성 안에서 그 기초개념들의 체계의 형식을 포함하고, 그 결과 현존하는 사변적 학문의 모든 동인들에 대해, 더욱이 그것의 질서를, 명령을 부여한다는 그 결과 자체로 밝혀진 것이다.
Hier sind nun einige dieser Anmerkungen.
여기에는 이러한 주해들의 몇몇만이 있다.
→ 여기에는 이러한 주해들의 몇몇만이 있다.

¹Metaphys. Anfangsgr. der Naturwissensch.
¹자연과학의 형이상학적 기초.


-蟲-
Es sei mir erlaubt, diese reine, aber abgeleitete Verstandesbegriffe die Prädikabilien des reinen Verstandes (im Gegensatz der Prädikamente) zu nennen. Wenn man die ursprüngliche und primitive Begriffe hat, so lassen sich die abgeleiteten und subalternen leicht hinzufügen, und der Stammbaum des reinen Verstandes völlig ausmalen. Da es mir hier nicht um die Vollständigkeit des Systems, sondern nur der Prinzipien zu einem System zu tun ist, so verspare ich diese Ergänzung auf eine andere Beschäftigung. Man kann aber diese Absicht ziemlich erreichen, wenn man die Ontologischen Lehrbücher zur Hand nimmt, und z.B. der Kategorie der Kausalität die Prädikabilien der Kraft, der Handlung, des Leidens; der der Gemeinschaft die der Gegenwart, des Widerstandes; den Prädikamenten der Modalität die des Entstehens, Vergehens, der Veränderung usw. unterordnet. Die Kategorien mit den modis der reinen Sinnlichkeit oder auch unter einander verbunden, geben eine große Menge abgeleiteter Begriffe a priori, die zu bemerken, und wo möglich, bis zur Vollständigkeit zu verzeichnen, eine nützliche und nicht unangenehme, hier aber entbehrliche Bemühung sein würde.
→ 이러한 순수한, 그러나 파생된 지성개념들을 순수 지성의 준술어들(술어들과 달리)이라 부르는 것이 나에게 허락될 것이다.→ 만일 사람들이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개념들을 가진다면, 그래서 그 개념들에 파생된 하위의 개념들을 쉽게 덧붙이도록 할 것이고, 순수 지성의 계보를 완전히 그려 넣도록 할 것이다.→ 그것은 나에게 여기에서 체계의 완전성에 대해서라기 보다는, 오히려 단지 체계에 대한 원칙들에 대해 관련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이러한 보완을 다른 연구로 미룬다.→ 그러나 사람들이 만일 사람들이 존재론적인 교과서들을 손에 넣는다면, 그리고 예를 들어 인과의 범주에 힘, 능동, 수동의 준술어들을, 상호성의 범주에 현존, 저항의 준술어들을; 양태의 술어들에 생성, 소멸, 변화 등의 준술어들을 종속시킨다면 이러한 목적을 상당부분 달성할 수 있다.→ 그 범주들은 순수 감성의 양식들과 결합하거나 또한 상호간에 결합하고, 선험적으로 엄청난 수의 파생된 개념들을 주며, 그것들을 인지하는 것, 그리고 가능하다면, 완전성에까지 기입하는 것은, 유용하고 곤혹스럽지 않은, 그러나 여기에서는 불필요한 수고일 것이다.

Der Definitionen dieser Kategorien überhebe ich mich in dieser Abhandlung geflissentlich, ob ich gleich im Besitz derselben sein möchte. Ich werde diese Begriffe in der Folge bis auf den Grad zergliedern, welcher in Beziehung auf die Methodenlehre, die ich bearbeite, hinreichend ist.
→ 나는 이러한 논의에서 이러한 범주들의 정의들로부터 고의적으로 벗어난다. 비록 내가 그 정의들을 갖고자 하더라도 말이다.→ 나는 이러한 개념들을 다음 장에서 내가 다루는 방법론과 관련이 있는 충분한 정도까지 분해할 것이다.


Es sei mir erlaubt, diese reine, aber abgeleitete Verstandesbegriffe die Prädikabilien des reinen Verstandes (im Gegensatz der Prädikamente) zu nennen.
그것이 나에게 허락될 것이다, 이러한 순수한, 그러나 파생된 지성개념들을 순수 지성의 준술어들(술어들과 달리)이라 부르는 것.
→ 이러한 순수한, 그러나 파생된 지성개념들을 순수 지성의 준술어들(술어들과 달리)이라 부르는 것이 나에게 허락될 것이다.
Wenn man die ursprüngliche und primitive Begriffe hat, so lassen sich die abgeleiteten und subalternen leicht hinzufügen, und der Stammbaum des reinen Verstandes völlig ausmalen.
만일 사람들이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개념들을 가진다면, 그래서 그 개념들에 파생된 하위의 개념들을 쉽게 덧붙이도록 할 것이고, 순수 지성의 계보를 완전히 그려 넣도록 할 것이다.
→ 만일 사람들이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개념들을 가진다면, 그래서 그 개념들에 파생된 하위의 개념들을 쉽게 덧붙이도록 할 것이고, 순수 지성의 계보를 완전히 그려 넣도록 할 것이다.
Da es mir hier nicht um die Vollständigkeit des Systems, sondern nur der Prinzipien zu einem System zu tun ist, so verspare ich diese Ergänzung auf eine andere Beschäftigung.
그것은 나에게 여기에서 체계의 완전성에 대해서라기 보다는, 오히려 단지 체계에 대한 원칙들에 대해 관련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이러한 보완을 다른 연구로 미룬다.
→ 그것은 나에게 여기에서 체계의 완전성에 대해서라기 보다는, 오히려 단지 체계에 대한 원칙들에 대해 관련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이러한 보완을 다른 연구로 미룬다.
Man kann aber diese Absicht ziemlich erreichen, wenn man die Ontologischen Lehrbücher zur Hand nimmt, und z.B. der Kategorie der Kausalität die Prädikabilien der Kraft, der Handlung, des Leidens; der der Gemeinschaft die der Gegenwart, des Widerstandes; den Prädikamenten der Modalität die des Entstehens, Vergehens, der Veränderung usw. unterordnet.
그러나 사람들은 이러한 목적을 상당부분 달성할 수 있다, 만일 사람들이 존재론적인 교과서들을 손에 넣는다면, 그리고 예를 들어 인과의 범주에 힘, 능동, 수동의 준술어들을, 상호성의 범주에 현존, 저항의 준술어들을; 양태의 술어들에 생성, 소멸, 변화 등의 준술어들을 종속시킨다면.
→ 그러나 사람들이 만일 사람들이 존재론적인 교과서들을 손에 넣는다면, 그리고 예를 들어 인과의 범주에 힘, 능동, 수동의 준술어들을, 상호성의 범주에 현존, 저항의 준술어들을; 양태의 술어들에 생성, 소멸, 변화 등의 준술어들을 종속시킨다면 이러한 목적을 상당부분 달성할 수 있다.
Die Kategorien mit den modis der reinen Sinnlichkeit oder auch unter einander verbunden, geben eine große Menge abgeleiteter Begriffe a priori, die zu bemerken, und wo möglich, bis zur Vollständigkeit zu verzeichnen, eine nützliche und nicht unangenehme, hier aber entbehrliche Bemühung sein würde.
그 범주들은 순수 감성의 양식들과 혹은 또한 상호간에 결합하고, 선험적으로 파생된 개념들의 엄청난 수를 주며, 그것들을 인지하는 것, 그리고 가능하다면, 완전성에까지 기입하는 것은, 유용하고 곤혹스럽지 않은, 그러나 여기에서는 불필요한 수고일 것이다.
→ 그 범주들은 순수 감성의 양식들과 결합하거나 또한 상호간에 결합하고, 선험적으로 엄청난 수의 파생된 개념들을 주며, 그것들을 인지하는 것, 그리고 가능하다면, 완전성에까지 기입하는 것은, 유용하고 곤혹스럽지 않은, 그러나 여기에서는 불필요한 수고일 것이다.

Der Definitionen dieser Kategorien überhebe ich mich in dieser Abhandlung geflissentlich, ob ich gleich im Besitz derselben sein möchte.
이러한 범주들의 정의들로부터 나는 자유롭다 이러한 논의에서 고의적으로, 비록 내가 그 정의들의 점유를 원한다 할지라도.
→ 나는 이러한 논의에서 이러한 범주들의 정의들로부터 고의적으로 벗어난다. 비록 내가 그 정의들을 갖고자 하더라도 말이다.
Ich werde diese Begriffe in der Folge bis auf den Grad zergliedern, welcher in Beziehung auf die Methodenlehre, die ich bearbeite, hinreichend ist.
나는 이러한 개념들을 다음 장에서 어느 정도까지 분해할 것이다, 그 정도가 방법론과 관련이 있는, 내가 다루는, 충분한.
→ 나는 이러한 개념들을 다음 장에서 내가 다루는 방법론과 관련이 있는 충분한 정도까지 분해할 것이다.

-蟲-
Es war ein eines scharfsinigen Mannes würdiger Anschlag des Aristoteles, diese Grundbegriffe aufzusuchen. Da er aber kein Principium hatte, so raffte er sie auf, wie sie ihm aufstießen, und trieb deren zuerst zehn auf, die er Kategorien (Prädikamente) nannte. In der Folge glaubte er noch ihrer fünfe aufgefunden zu haben, die er unter dem Namen der Postprädikamente hinzufügte. Allein seine Tafel blieb noch immer mangelhaft. Außerdem finden sich auch einige modi der reinen Sinnlichkeit darunter, (quando, ubi, situs, imgleichen prius, simul,) auch ein empirischer, (motus,) die in dieses Stammregister des Verstandes gar nicht gehören, oder es sind auch die abgeleiteten Begriffe mit unter die Urbegriffe gezählt, (actio, passio,) und an einigen der letztern fehlt es gänzlich.
→ 이러한 근본개념들을 찾아내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기도에 걸맞는 통찰력 있는 방법의 하나이다.→ 그러나 그는 어떠한 원리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그는 그 개념들이 그에게 떠오르는 대로 긁어 모았고 그가 범주들(빈사)이라 명명했던 것들의 10개를 우선 부풀렸다.→ 그 결과 그는 또 그가 후빈사라는 이름으로 첨언하였던 그 범주들 다섯개를 발견해 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의 도표만은 여전히 언제나 불완전한 것으로 남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순수한 감성의 몇몇 양식들(시간, 장소, 위치, 마찬가지로 선행, 동시)이 또한 그 아래에서 나타난다. 또한 감각적이며 지성의 이러한 명단에 결코 속하지 않는 것(운동), 혹은 또한 유도된 개념들이 때때로 근본개념들로 헤아려진 것(능동, 수동)도 나타나고 후자의 고유한 것에 있어서는 전적으로 부족하다.

Um der letztern willen ist also noch zu bemerken: daß die Kategorien, als die wahren Stammbegriffe des reinen Verstandes, auch ihre eben so reine abgeleitete Begriffe haben, die in einem vollständigen System der Transzendental-Philosophie keinesweges übergangen werden können, mit deren bloßer Erwähnung aber ich in einem bloß kritischen Versuch zufrieden sein kann.
→ 그러므로 후자를 위하여: 순수 지성의 참된 근본개념들로서, 또한 그것들이 마찬가지로 초월론적-철학의 완전한 체계에서 어떤 식으로도 넘어서게 될 수 없는 순수 파생개념들을 가지는 범주들을 언급한다. 그러나 나는 순전히 비판적 연구에 있어서 그 파생개념들의 순전한 언급을 가지고 만족할 수 있다.


Es war ein eines scharfsinigen Mannes würdiger Anschlag des Aristoteles, diese Grundbegriffe aufzusuchen.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기도에 걸맞는 통찰력 있는 방법의 하나이다, 이러한 근본개념들을 찾아내는 것은.
→ 이러한 근본개념들을 찾아내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기도에 걸맞는 통찰력 있는 방법의 하나이다.
Da er aber kein Principium hatte, so raffte er sie auf, wie sie ihm aufstießen, und trieb deren zuerst zehn auf, die er Kategorien (Prädikamente) nannte.
그러나 그는 어떠한 원리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그는 그 개념들을 긁어 모았다, 그 개념들이 그에게 떠오르는 대로, 그리고 먼저 그것들의 10개를 부풀렸다, 그것들을 그가 범주들(빈사)이라 명명했던.
→ 그러나 그는 어떠한 원리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그는 그 개념들이 그에게 떠오르는 대로 긁어 모았고 그가 범주들(빈사)이라 명명했던 것들의 10개를 우선 부풀렸다.
In der Folge glaubte er noch ihrer fünfe aufgefunden zu haben, die er unter dem Namen der Postprädikamente hinzufügte.
그 결과 그는 또 그 범주들 다섯개를 발견해 냈다고 믿었다, 그 범주들을 그가 후빈사라는 이름으로 첨언하였던.
→ 그 결과 그는 또 그가 후빈사라는 이름으로 첨언하였던 그 범주들 다섯개를 발견해 냈다고 믿었다.
Allein seine Tafel blieb noch immer mangelhaft.
그의 도표만은 여전히 언제나 불완전한 것으로 남아 있었다.
→ 그러나 그의 도표만은 여전히 언제나 불완전한 것으로 남아 있었다.
Außerdem finden sich auch einige modi der reinen Sinnlichkeit darunter, (quando, ubi, situs, imgleichen prius, simul,) auch ein empirischer, (motus,) die in dieses Stammregister des Verstandes gar nicht gehören, oder es sind auch die abgeleiteten Begriffe mit unter die Urbegriffe gezählt, (actio, passio,) und an einigen der letztern fehlt es gänzlich.
뿐만 아니라 순수한 감성의 몇몇 방식들이 또한 나타난다 그 아래에서, (시간, 장소, 위치, 마찬가지로 선행, 동시,) 또한 감각적인 것, (운동) 그것들이 지성의 이러한 명단에 결코 속하지 않는, 혹은 또한 유도된 개념들이 때때로 근본개념들로 헤아려진, (능동, 수동) 그리고 후자의 고유한 것에 있어서 전적으로 부족하다.
→ 뿐만 아니라 순수한 감성의 몇몇 양식들(시간, 장소, 위치, 마찬가지로 선행, 동시)이 또한 그 아래에서 나타난다. 또한 감각적이며 지성의 이러한 명단에 결코 속하지 않는 것(운동), 혹은 또한 유도된 개념들이 때때로 근본개념들로 헤아려진 것(능동, 수동)도 나타나고 후자의 고유한 것에 있어서는 전적으로 부족하다.

Um der letztern willen ist also noch zu bemerken: daß die Kategorien, als die wahren Stammbegriffe des reinen Verstandes, auch ihre eben so reine abgeleitete Begriffe haben, die in einem vollständigen System der Transzendental-Philosophie keinesweges übergangen werden können, mit deren bloßer Erwähnung aber ich in einem bloß kritischen Versuch zufrieden sein kann.
후자를 위한 것에 대해서는 그러므로 또한 언급하는 것이다: 범주들은, 순수 지성의 참된 근본개념들로서, 또한 그것들이 마찬가지로 순수 파생개념들을 가지는, 그 파생개념들이 초월론적-철학의 완전한 체계에서 어떤 식으로도 넘어서게 될 수 없는, 그러나 나는 그 파생개념들의 순전한 언급을 가지고 순전히 비판적 연구에 있어서 만족할 수 있다.
→ 그러므로 후자를 위하여: 순수 지성의 참된 근본개념들로서, 또한 그것들이 마찬가지로 초월론적-철학의 완전한 체계에서 어떤 식으로도 넘어서게 될 수 없는 순수 파생개념들을 가지는 범주들을 언급한다. 그러나 나는 순전히 비판적 연구에 있어서 그 파생개념들의 순전한 언급을 가지고 만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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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fel der Kategorien 범주들의 도표

 

 1. Der Quantität

1. 양의 범주

 

 

 Einheit 하나

Vielheit 여럿

Allheit. 모두.

 

 2. Der Qualität

2. 질의 범주

 

 3. Der Relation

3. 관계의 범주

 Realität 사실



Negation 부정



Limitation.제한.



 

der Inhärenz und Subsistenz

(substantia et accidens)

 내재와 지속(실체와 우연)의

der Kausalität und Dependenz

(Ursache und Wirkung)

인과와 종속(원인과 작용)의

der Gemeinschaft

(Wechselwirkung zwischen dem Handelnden und Leidenden).

결합(행하는 것과 겪는 것 사이의 상호작용).

 

 4. Der Modalität

4. 양태의 범주

 

 

Möglichkeit-Unmöglichkeit

가능-불가능

Dasein-Nichtsein

현존-무

Notwendigkeit-Zufälligkeit.

불가피성-우연성

 



Dieses ist nun die Verzeichnung aller ursprünglich reinen Begriffe der Synthesis, die der Verstand a priori in sich enthält, und um deren willen er auch nur ein reiner Verstand ist; indem er durch sie allein etwas bei dem Mannigfaltigen der Anschauung verstehen, d.i. ein Objekt derselben denken kann. Diese Einteilung ist systematisch aus einem gemeinschaftlichen Prinzip, nämlich dem Vermögen zu urteilen, (welches eben so viel ist, als das Vermögen zu denekn,) erzeugt, und nicht rhapsodistisch, aus einer auf gut Glück unternommenen Aufsuchung reiner Begriffe entstanden, von deren Vollzähligkeit man niemals gewiß sein kann, da sie nur durch Induktion geschlossen wird, ohne zu gedenken, daß man doch auf die letztere Art niemals einsieht, warum denn gerade diese und nicht andre Begriffe dem reinen Verstande beiwohnen.
→ 이러한 것은 이제 지성이 선험적으로 내포하는 종합의 모든 본래의 순수 개념들에 대한 기입이다. 그리고 그 개념들을 위해 지성은 또한 단지 순수한 지성일 따름이다; 지성은 개념들을 통하여서만 직관의 잡다에 있어서의 어떤 것을 이해하기 때문에, 즉 그 지성의 대상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분은 체계적으로 내재적 원칙으로부터, 즉 판단하는 능력으로부터, (그 능력이 생각하는 능력과 같은,) 산출되고, 시적으로, 요행으로 수행된 순수한 개념들의 발견으로부터 발생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사람들이 또한 후자의 방법으로는 도대체 왜 다른 개념들이 아닌 바로 이 개념들이 순수 지성에 내재하는지 결코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을 사유함이 없이는, 그 개념들이 단지 귀납을 통해서만 완결되기 때문에, 그 개념들의 완비를 결코 확신할 수 없다.


Dieses ist nun die Verzeichnung aller ursprünglich reinen Begriffe der Synthesis, die der Verstand a priori in sich enthält, und um deren willen er auch nur ein reiner Verstand ist; indem er durch sie allein etwas bei dem Mannigfaltigen der Anschauung verstehen, d.i. ein Objekt derselben denken kann.
이러한 것은 이제 기입이다 종합의 모든 본래의 순수 개념들에 대한, 그 개념들을 지성이 선험적으로 내포하는, 그리고 그 개념들을 위해 지성은 또한 단지 순수한 지성일 따름이다; 지성은 개념들을 통하여서만 직관의 잡다에 있어서의 어떤 것을 이해하기 때문에, 즉 그 지성의 대상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 이러한 것은 이제 지성이 선험적으로 내포하는 종합의 모든 본래의 순수 개념들에 대한 기입이다. 그리고 그 개념들을 위해 지성은 또한 단지 순수한 지성일 따름이다; 지성은 개념들을 통하여서만 직관의 잡다에 있어서의 어떤 것을 이해하기 때문에, 즉 그 지성의 대상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Diese Einteilung ist systematisch aus einem gemeinschaftlichen Prinzip, nämlich dem Vermögen zu urteilen, (welches eben so viel ist, als das Vermögen zu denekn,) erzeugt, und nicht rhapsodistisch, aus einer auf gut Glück unternommenen Aufsuchung reiner Begriffe entstanden, von deren Vollzähligkeit man niemals gewiß sein kann, da sie nur durch Induktion geschlossen wird, ohne zu gedenken, daß man doch auf die letztere Art niemals einsieht, warum denn gerade diese und nicht andre Begriffe dem reinen Verstande beiwohnen.
이러한 구분은 체계적으로 내재적 원칙으로부터, 즉 판단하는 능력으로부터, (그 능력이 같은, 생각하는 능력과,) 산출되고, 시적으로, 요행으로 수행된 순수한 개념들의 발견으로부터 발생되지 않았다, 그 개념들에 대해 완비를 사람들은 결코 확실할 수 없다, 그 개념들이 단지 귀납을 통해서만 완결되기 때문에, 사유됨이 없이, 사람들이 또한 후자의 방법으로 결코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 도대체 왜 다른 개념들이 아닌 바로 이 개념들이 순수 지성에 내재하는지.
→ 이러한 구분은 체계적으로 내재적 원칙으로부터, 즉 판단하는 능력으로부터, (그 능력이 생각하는 능력과 같은,) 산출되고, 시적으로, 요행으로 수행된 순수한 개념들의 발견으로부터 발생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사람들이 또한 후자의 방법으로는 도대체 왜 다른 개념들이 아닌 바로 이 개념들이 순수 지성에 내재하는지 결코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을 사유함이 없이는, 그 개념들이 단지 귀납을 통해서만 완결되기 때문에, 그 개념들의 완비를 결코 확신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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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rselbe Verstand also, und zwar durch eben dieselben Handlungen, wodurch er in Begriffen, vermittelst der analytischen Einheit, die logische Form eines Urteils zu Stande brachte, bringt auch, vermittelst der synthetischen Einheit des Mannigfaltigen in der Anschauung überhaupt, in seine Vorstellungen einen transzendentalen Inhalt, weswegen sie reine Verstandesbegriffe heißen, die a priori auf Objekte gehen, welches die allgemeine Logik nicht leisten kann.
→ 그러므로 동일한 지성이, 그리고 더욱이 마찬가지로 그를 통하여 지성이 개념들 안에, 분석적 통일에 따라서, 그 통일이 판단의 논리적 형식을 성립시켰던 동일한 활동들을 통하여, 직관 일반에서 잡다의 종합적 통일에 따라서, 그 잡다의 표상들 안으로 초월론적 내용을 또한 가져오고, 그 때문에 그 표상들을 선험적으로 대상에 속하는 순수지성개념들이라 부르는데, 그러한 것을 일반 논리학은 수행할 수 없다.
Auf solche Weise entspringen gerade so viel reine Verstandesbegriffe, welche a priori auf Gegenstände der Anschauung überhaupt gehen, als es in der vorigen Tafel Tafel logische Funktionen in allen möglichen Urteilen gab: denn der Verstand ist durch gedachte Funktionen völlig erschöpft, und sein Vermögen dadurch gänzlich ausgemessen. Wir wollen diese Begriffe, nach dem Aristoteles, Kategorien nennen, indem unsre Absicht uranfänglich mit der seinigen zwar einerlei ist, ob sie sich gleich davon in der Ausführung gar sehr entfernet.
→ 그러한 방식으로부터 직접, 앞선 도표에 모든 가능한 판단들에 있어서 논리적 기능들이 있던 그 만큼의, 선험적으로 직관 일반의 대상들에 속하는 순수 지성개념들이 발생한다: 왜냐하면 지성은 논의된 기능들을 통하여 완전히 다 길어내어지고, 그 지성의 능력들이 그를 통해 완전하게 측정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개념들을 아리스토테레스에 따라서 범주들이라 명명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그 범주들 자체가 비록 그로부터 수행 중에 꽤나 많이 멀리 떨어진다 하더라도 우리의 의도가 애초부터 그의 의도와 더욱이 동일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Derselbe Verstand also, und zwar durch eben dieselben Handlungen, wodurch er in Begriffen, vermittelst der analytischen Einheit, die logische Form eines Urteils zu Stande brachte, bringt auch, vermittelst der synthetischen Einheit des Mannigfaltigen in der Anschauung überhaupt, in seine Vorstellungen einen transzendentalen Inhalt, weswegen sie reine Verstandesbegriffe heißen, die a priori auf Objekte gehen, welches die allgemeine Logik nicht leisten kann.
그러므로 동일한 지성이, 그리고 더욱이 마찬가지로 동일한 활동들을 통하여, 그를 통하여 지성이 개념들 안에, 분석적 통일에 따라서, 그 통일이 판단의 논리적 형식을 성립시켰던, 또한 가져오는, 직관 일반에서 잡다의 종합적 통일에 따라서, 그 잡다의 표상들 안으로 초월론적 내용을, 그 때문에 그 표상들을 순수지성개념들이라 부르는, 그 개념들이 선험적으로 대상에 속하는, 그러한 것을 일반 논리학은 수행할 수 없다.
→ 그러므로 동일한 지성이, 그리고 더욱이 마찬가지로 그를 통하여 지성이 개념들 안에, 분석적 통일에 따라서, 그 통일이 판단의 논리적 형식을 성립시켰던 동일한 활동들을 통하여, 직관 일반에서 잡다의 종합적 통일에 따라서, 그 잡다의 표상들 안으로 초월론적 내용을 또한 가져오고, 그 때문에 그 표상들을 선험적으로 대상에 속하는 순수지성개념들이라 부르는데, 그러한 것을 일반 논리학은 수행할 수 없다.

Auf solche Weise entspringen gerade so viel reine Verstandesbegriffe, welche a priori auf Gegenstände der Anschauung überhaupt gehen, als es in der vorigen Tafel logische Funktionen in allen möglichen Urteilen gab: denn der Verstand ist durch gedachte Funktionen völlig erschöpft, und sein Vermögen dadurch gänzlich ausgemessen.
그러한 방식으로부터 직접 그 만큼의 순수 지성개념들이 발생한다, 선험적으로 직관 일반의 대상들에 속하는, 앞선 도표에 모든 가능한 판단들에 있어서 논리적 기능들이 있던 만큼: 왜냐하면 지성은 가정한 기능들을 통하여 완전히 다 길어내어지고, 그 지성의 능력들이 그를 통해 전체적으로 측정되기 때문이다.
→ 그러한 방식으로부터 직접, 앞선 도표에 모든 가능한 판단들에 있어서 논리적 기능들이 있던 그 만큼의, 선험적으로 직관 일반의 대상들에 속하는 순수 지성개념들이 발생한다: 왜냐하면 지성은 논의된 기능들을 통하여 완전히 다 길어내어지고, 그 지성의 능력들이 그를 통해 완전하게 측정되기 때문이다.
Wir wollen diese Begriffe, nach dem Aristoteles, Kategorien nennen, indem unsre Absicht uranfänglich mit der seinigen zwar einerlei ist, ob sie sich gleich davon in der Ausführung gar sehr entfernet.
우리는 이러한 개념들을, 아리스토테레스에 따라서, 범주들이라 명명하고자 한다, 우리의 의도가 애초부터 그의 의도와 더욱이 동일한 것들이기 때문에, 그 범주들 자체가 비록 그로부터 수행에 있어서 꽤나 많이 멀리 떨어졌다 하더라도.
→ 우리는 이러한 개념들을 아리스토테레스에 따라서 범주들이라 명명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그 범주들 자체가 비록 그로부터 수행 중에 꽤나 많이 멀리 떨어진다 하더라도 우리의 의도가 애초부터 그의 의도와 더욱이 동일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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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 reine Synthesis, allgemein vorgestellt, gibt nun den reinen Verstandesbegriff. Ich verstehe aber unter dieser Synthesis diejenige, welche auf einem Grunde der synthetischen Einheit a priori beruht: so ist unser Zählen (vornehmlich ist es in größeren Zahlen merklicher) eine Synthesis nach Begriffen, weil sie nach einem gemeinschaftlichen Grunde der Einheit geschieht (z.E. der Dekadik). Unter diesem Begriffe wird also die Einheit in der Synthesis des Mannigfaltigen notwendig.
→ 순수 종합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순수 지성개념을 제시한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종합을 종합적 통일의 토대에 선험적으로 근거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우리의 계산은 (특히 큰 수들에서 명백한데) 개념들에 따른 종합이다. 왜냐하면 그 개념들이 통일의 공통된 근거에 따라 일어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0진법).→  그러므로 이러한 개념들 아래에서 잡다의 종합에 있어서 통일은 불가피하다.
Analytisch werden verschiedene Vorstellungen unter einen Begriff gebracht, (ein Geschäfte, wovon die allgemeine Logik handelt). Aber nicht die Vorstellungen, sondern die reine Synthesis der Vorstellungen auf Begriffe zu bringen, lehrt die transz. Logik. Das erste, was uns zum Behuf der Erkenntnis aller Gegenstände a priori gegeben sein muß, ist das Mannigfaltige der reinen Anschauung; die Synthesis dieses Mannigfaltigen durch die Einbildungskraft ist das zweite, gibt aber noch keine Erkenntnis. Die Begriffe, welche dieser reinen Synthesis Einheit geben, und lediglich in der Vorstellung dieser notwendigen synthetischen Einheit bestehen, tun das dritte zum Erkenntnisse eines vorkommenden Gegenstandes, und beruhen auf dem Verstande.
→ 상이한 표상들은 분석적으로 개념 아래로 옮겨진다. (일반 논리학이 하는 작업)→ 그러나 표상들이 아니라 오히려 표상들의 순수한 종합을 개념들로부터 가져오는 것을, 초월론적 논리학이 가르친다.→ 우리에게 모든 대상들의 인식의 목적으로 주어져야만 하는 최초의 것은 순수 직관의 잡다이다; 구상력을 통한 이러한 잡다의 종합은 두번째 것이나 어떠한 인식도 주지는 않는다.→ 이러한 순수한 종합에 통일을 주는, 그리고 다만 이러한 불가피한 종합적 통일의 표상 안에서만 존립하는 개념들은 현존하는 대상의 인식들에 대한 세번째 것을 행하며, 지성에 근거한다.
Dieselbe Funktion, welche den verschiedenen Vorstellungen in einem Urteile Einheit gibt, die gibt auch der bloßen Synthesis verschiedener Vorstellungen in einer Anschauung Einheit, welche, allgemein ausgedruckt, der reine Verstandesbegriff heißt.
→ 상이한 표상들에게 판단 안에서 통일을 주는, 또한 직관 안에서 상이한 표상들의 순전한 종합에 통일을 주는 그러한 동일한 기능이, 일반적으로 표현되면, 순수 지성개념이라 부른다.


Die reine Synthesis, allgemein vorgestellt, gibt nun den reinen Verstandesbegriff.
순수 종합은, 일반적으로 의미될 때, 순수 지성개념을 제시한다.
→ 순수 종합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순수 지성개념을 제시한다.
Ich verstehe aber unter dieser Synthesis diejenige, welche auf einem Grunde der synthetischen Einheit a priori beruht: so ist unser Zählen (vornehmlich ist es in größeren Zahlen merklicher) eine Synthesis nach Begriffen, weil sie nach einem gemeinschaftlichen Grunde der Einheit geschieht (z.E. der Dekadik).
그러나 나는 이러한 종합을 이것으로 이해한다, 종합적 통일의 토대에 선험적으로 근거하는: 그래서 우리의 계산은 (특히 큰 수들에서 명백하다) 개념들에 따른 종합이다, 왜냐하면 그 개념들이 통일의 공통된 근거에 따라 일어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0진법).
→ 그러나 나는 이러한 종합을 종합적 통일의 토대에 선험적으로 근거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우리의 계산은 (특히 큰 수들에서 명백한데) 개념들에 따른 종합이다. 왜냐하면 그 개념들이 통일의 공통된 근거에 따라 일어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0진법).
Unter diesem Begriffe wird also die Einheit in der Synthesis des Mannigfaltigen notwendig.
그러므로 이러한 개념들 아래에서 잡다의 종합에 있어서 통일은 불가피하다.
→  그러므로 이러한 개념들 아래에서 잡다의 종합에 있어서 통일은 불가피하다.

Analytisch werden verschiedene Vorstellungen unter einen Begriff gebracht, (ein Geschäfte, wovon die allgemeine Logik handelt).
분석적으로 상이한 표상들은 개념 아래로 옮겨진다. (일, 일반 논리학이 그에 대해 하는)
→ 상이한 표상들은 분석적으로 개념 아래로 옮겨진다. (일반 논리학이 하는 작업)
Aber nicht die Vorstellungen, sondern die reine Synthesis der Vorstellungen auf Begriffe zu bringen, lehrt die transz. Logik.
그러나 표상들이 아니라 오히려 표상들의 순수한 종합을 개념들로부터 가져오는 것을, 초월론적 논리학이 가르친다.
→ 그러나 표상들이 아니라 오히려 표상들의 순수한 종합을 개념들로부터 가져오는 것을, 초월론적 논리학이 가르친다.
Das erste, was uns zum Behuf der Erkenntnis aller Gegenstände a priori gegeben sein muß, ist das Mannigfaltige der reinen Anschauung; die Synthesis dieses Mannigfaltigen durch die Einbildungskraft ist das zweite, gibt aber noch keine Erkenntnis.
첫번째 것은, 우리에게 모든 대상들의 인식의 목적으로 주어져야만 하는, 순수 직관의 잡다이다; 구상력을 통한 이러한 잡다의 종합은 두번째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인식도 주지 않는다.
→ 우리에게 모든 대상들의 인식의 목적으로 주어져야만 하는 최초의 것은 순수 직관의 잡다이다; 구상력을 통한 이러한 잡다의 종합은 두번째 것이나 어떠한 인식도 주지는 않는다.
Die Begriffe, welche dieser reinen Synthesis Einheit geben, und lediglich in der Vorstellung dieser notwendigen synthetischen Einheit bestehen, tun das dritte zum Erkenntnisse eines vorkommenden Gegenstandes, und beruhen auf dem Verstande.
개념들, 이러한 순수한 종합에 통일을 주는, 그리고 다만 이러한 불가피한 종합적 통일의 표상 안에서만 존립하는, 현존하는 대상의 인식들에 대한 세번째 것을 하고, 지성에 근거한다.
→ 이러한 순수한 종합에 통일을 주는, 그리고 다만 이러한 불가피한 종합적 통일의 표상 안에서만 존립하는 개념들은 현존하는 대상의 인식들에 대한 세번째 것을 행하며, 지성에 근거한다.

Dieselbe Funktion, welche den verschiedenen Vorstellungen in einem Urteile Einheit gibt, die gibt auch der bloßen Synthesis verschiedener Vorstellungen in einer Anschauung Einheit, welche, allgemein ausgedruckt, der reine Verstandesbegriff heißt.
동일한 기능, 상이한 표상들에게 판단 안에서 통일을 주는, 또한 직관 안에서 상이한 표상들의 순전한 종합에 통일을 주는, 그러한 기능이, 일반적으로 표현되면, 순수 지성개념이라 부른다.
→ 상이한 표상들에게 판단 안에서 통일을 주는, 또한 직관 안에서 상이한 표상들의 순전한 종합에 통일을 주는 그러한 동일한 기능이, 일반적으로 표현되면, 순수 지성개념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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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h verstehe aber unter Synthesis in der allgemeinsten Bedeutung die Handlung, verschiedene Vorstellungen zu einander hinzuzutun, und ihre Mannigfaltigkeit in einer Erkenntnis zu begreifen. Eine solche Synthesis ist rein, wenn das Mannigfaltige nicht empirisch, sondern a priori gegeben ist (wie das im Raum und der Zeit). Vor aller Analysis unserer Vorstellungen müssen diese zuvor gegeben sein, und es können keine Begriffe dem Inhalte nach analytisch entspringen. Die Synthesis eines Mannigfaltigen aber (es sei empirisch oder a priori gegeben), bringt zuerst eine Erkenntnis hervor, die zwar anfänglich noch roh und verworren sein kann, und also der Analysis bedarf; allein die Synthesis ist doch dasjenige, was eigentlich die Elemente zu Erkenntnissen sammlet, und zu einem gewissen Inhalte vereinigt; sie ist also das erste, worauf wir Acht zu geben haben, wenn wir über den ersten Ursprung unserer Erkenntnis urteilen wollen.
→ 그러나 나는 가장 일반적인 의미에서 종합이란 말을, 상이한 표상들을 상호간에 더하는, 그리고 그 표상들의 잡다성을 인식 안에서 파악하는 활동으로 이해한다.→ 그 잡다가 경험적이지 않고, 오히려 선험적으로 주어질 때 (공간과 시간 안에서 그 잡다와 같이) 그러한 종합은 순수하다.→ 우리들의 표상들에 대한 모든 분석에 앞서 이러한 표상들이 먼저 제시되어야만 하고, 어떠한 개념들도 내용에서 분석에 따라 생겨날 수는 없다.→ 그러나 잡다의 종합은 (그 잡다가 경험적으로나 선험적으로 주어질), 최초로 인식을 산출하고, 그 인식은 더욱이 원래부터 여전히 조야하고 혼란스러울 수 있는데, 그러므로 분석이 필요하다; 오로지 종합만이 참으로 인식들에 대한 요소들을 모으는 것이고, 확실한 내용으로 하나로 모으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합은 우리가 우리의 인식의 최초 기원에 대해 판단하고자 할 때 그에 대해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는 첫번째 것이다.
Die Synthesis überhaupt ist, wie wir künftig sehen werden, die bloße Wirkung der Einbildungskraft, einer blinden, obgleich unentbehrlichen Funktion der Seele, ohne die wir überall keine Erkenntnis haben würden, der wir uns aber selten nur einmal bewußt sind. Allein, diese Synthesis auf Begriffe zu bringen, das ist eine Funktion, die dem Verstande zukommt, und wodurch er uns allererst die Erkenntnis in eigentlicher Bedeutung verschaffet.
→ 종합일반은 다음에 이야기될 것처럼 구상력의 순수한 작용이고, 맹목적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수불가결한, 그 기능 없이는 우리가 결코 어떠한 인식도 가지지 못할, 그러나 우리가 드물게 단지 한 번 의식할 뿐인 영혼의 기능이다.→ 오로지, 개념들에 대한 이러한 종합을 가져오는 것, 그것만이 지성에 걸맞는 기능이다. 그리고 그를 통하여 지성은 우리에게 최초로 본래적인 의미에서의 인식을 마련해 준다.


Ich verstehe aber unter Synthesis in der allgemeinsten Bedeutung die Handlung, verschiedene Vorstellungen zu einander hinzuzutun, und ihre Mannigfaltigkeit in einer Erkenntnis zu begreifen.
그러나 나는 종합이란 말로 가장 일반적인 의미에서 활동을 이해한다, 상이한 표상들을 상호간에 더하는, 그리고 그 표상들의 잡다성을 인식 안에서 파악하는.
→ 그러나 나는 가장 일반적인 의미에서 종합이란 말을, 상이한 표상들을 상호간에 더하는, 그리고 그 표상들의 잡다성을 인식 안에서 파악하는 활동으로 이해한다.
Eine solche Synthesis ist rein, wenn das Mannigfaltige nicht empirisch, sondern a priori gegeben ist (wie das im Raum und der Zeit).
그러한 종합은 순수하다, 그 잡다가 경험적이지 않고, 오히려 선험적으로 주어질 때 (공간과 시간 안에서 그 잡다와 같이).
→ 그 잡다가 경험적이지 않고, 오히려 선험적으로 주어질 때 (공간과 시간 안에서 그 잡다와 같이) 그러한 종합은 순수하다.
Vor aller Analysis unserer Vorstellungen müssen diese zuvor gegeben sein, und es können keine Begriffe dem Inhalte nach analytisch entspringen.
우리들의 표상들에 대한 모든 분석에 앞서 이러한 표상들이 먼저 제시되어야만 하고, 어떠한 개념들도 내용에서 분석에 따라 생겨날 수는 없다.
→ 우리들의 표상들에 대한 모든 분석에 앞서 이러한 표상들이 먼저 제시되어야만 하고, 어떠한 개념들도 내용에서 분석에 따라 생겨날 수는 없다.
Die Synthesis eines Mannigfaltigen aber (es sei empirisch oder a priori gegeben), bringt zuerst eine Erkenntnis hervor, die zwar anfänglich noch roh und verworren sein kann, und also der Analysis bedarf; allein die Synthesis ist doch dasjenige, was eigentlich die Elemente zu Erkenntnissen sammlet, und zu einem gewissen Inhalte vereinigt; sie ist also das erste, worauf wir Acht zu geben haben, wenn wir über den ersten Ursprung unserer Erkenntnis urteilen wollen.
그러나 잡다의 종합은 (그 잡다가 경험적으로나 선험적으로 주어질), 최초로 인식을 산출하고, 그 인식은 더욱이 원래부터 여전히 조야하고 혼란스러울 수 있는데, 그러므로 분석이 필요하다; 오로지 종합만이 그것, 참으로 인식들에 대한 요소들을 모으는 것이고, 확실한 내용으로 하나로 모으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합은 첫번째 것이다,그에 대해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는, 우리가 우리의 인식의 최초 기원에 대해 판단하고자 할 때.
→ 그러나 잡다의 종합은 (그 잡다가 경험적으로나 선험적으로 주어질), 최초로 인식을 산출하고, 그 인식은 더욱이 원래부터 여전히 조야하고 혼란스러울 수 있는데, 그러므로 분석이 필요하다; 오로지 종합만이 참으로 인식들에 대한 요소들을 모으는 것이고, 확실한 내용으로 하나로 모으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합은 우리가 우리의 인식의 최초 기원에 대해 판단하고자 할 때 그에 대해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는 첫번째 것이다.

Die Synthesis überhaupt ist, wie wir künftig sehen werden, die bloße Wirkung der Einbildungskraft, einer blinden, obgleich unentbehrlichen Funktion der Seele, ohne die wir überall keine Erkenntnis haben würden, der wir uns aber selten nur einmal bewußt sind.
종합일반은, 우리가 다음에 볼 것처럼, 구상력의 순수한 작용이고, 맹목적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수불가결한 영혼의 기능이다,  기능 없이는 우리가 결코 어떠한 인식도 가지지 못할, 그러나 우리가 드물게 단지 한 번 의식할 뿐인.
→ 종합일반은 다음에 이야기될 것처럼 구상력의 순수한 작용이고, 맹목적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수불가결한, 그 기능 없이는 우리가 결코 어떠한 인식도 가지지 못할, 그러나 우리가 드물게 단지 한 번 의식할 뿐인 영혼의 기능이다.
Allein, diese Synthesis auf Begriffe zu bringen, das ist eine Funktion, die dem Verstande zukommt, und wodurch er uns allererst die Erkenntnis in eigentlicher Bedeutung verschaffet.
오로지, 개념들에 대한 이러한 종합을 가져오는 것, 그것만이 기능이다, 지성에 걸맞는, 그리고 그를 통하여 지성은 우리에게 최초로 본래적인 의미에서의 인식을 마련해 준다.
→ 오로지, 개념들에 대한 이러한 종합을 가져오는 것, 그것만이 지성에 걸맞는 기능이다. 그리고 그를 통하여 지성은 우리에게 최초로 본래적인 의미에서의 인식을 마련해 준다.

-蟲-
Des Leitfadens der Entdeckung aller reinen Verstandesbegriffe
Dritter Abschnitt
모든 순수 지성개념들의 발견의 실마리
제 3 장

§ 10. Von den reinen Verstandesbegriffen oder Kategorien
§ 10. 순수 지성개념들 혹은 범주들에 대하여

Die allgemeine Logik abstrahiert, wie mehrmalen schon gesagt worden, von allem Inhalt der Erkenntnis, und erwartet, daß ihr anderwärts, woher es auch sei, Vorstellungen gegeben werden, um diese zuerst in Begriffe zu verwandeln, welches analytisch zugehet. Dagegen hat die transzendentale Logik ein Mannigfaltiges der Sinnlichkeit a priori vor sich liegen, welches die transzendentale Ästhetik ihr darbietet, um zu den reinen Verstandesbegriffen einen Stoff zu geben, ohne den sie ohne allen Inhalt, mithin völlig leer sein würde. Raum und Zeit enthalten nun ein Mannigfaltiges der reinen Anschauung a priori, gehören aber gleichwohl zu den Bedingungen der Rezeptivität unseres Gemüts, unter denen es allein Vorstellungen von Gegenständen empfangen kann, die mithin auch den Begriff derselben jederzeit affizieren müssen. Allein die Spontaneität unseres Denkens erfordert es, daß dieses Mannigfaltige zuerst auf gewisse Weise durch gegangen, aufgenommen, und verbunden werde, um daraus eine Erkenntnis zu machen. Diese Handlung nenne ich Synthesis.
→ 이미 여러 번 이야기되었듯 일반 논리학은 인식의 모든 내용을 추상하고, 그리고 대상들이 최초로 분석적으로 이루어지는 개념화(化)를 하기 위하여 어딘가 있을 다른 곳에서 그 논리학에게 대상들이 주어지기를 기대한다.→ 반면에 초월론적 논리학은 순수 지성개념들에 그것 없이는 그 초월론적 논리학이 아무런 내용 없이, 따라서 완전히 공허하게 될 그러한 재료를 주기 위해서 초월론적 감성학 초월론적 논리학에 제시하는 감성의 잡다를 선험적으로 그 자신 앞에 놓았다.→ 공간과 시간은 이제 순수 직관의 잡다를 선험적으로 포함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조건들 아래에서 그 심정이 대상들에 대한 모든 표상들을 수용할 수 있는, 따라서 또한 그 표상들은 그 표상들의 개념을 매번 촉발해야만 하는, 그러한 우리의 심정의 수용성의 조건들에 속한다.→ 오로지 우리 사유의 자발성만이 이러한 잡다를 최초로 확실한 방법으로 점검되고, 수용되고, 관련되는 것을, 그를 통해 인식을 형성하기 위하여 요구한다.→ 이러한 행위를 나는 종합이라 명명한다.


Die allgemeine Logik abstrahiert, wie mehrmalen schon gesagt worden, von allem Inhalt der Erkenntnis, und erwartet, daß ihr anderwärts, woher es auch sei, Vorstellungen gegeben werden, um diese zuerst in Begriffe zu verwandeln, welches analytisch zugehet.
일반 논리학은 추상한다, 이미 여러 번 이야기되었듯, 인식의 모든 내용을, 그리고 기대한다, 그 논리학에게 다른 곳에서, 어디엔가 있을, 대상들이 주어지기를, 이 대상들이 최초로 개념화(化)하기 위하여, 그것이분석적으로 이루어지는.
→ 이미 여러 번 이야기되었듯 일반 논리학은 인식의 모든 내용을 추상하고, 그리고 대상들이 최초로 분석적으로 이루어지는 개념화(化)를 하기 위하여 어딘가 있을 다른 곳에서 그 논리학에게 대상들이 주어지기를 기대한다.
Dagegen hat die transzendentale Logik ein Mannigfaltiges der Sinnlichkeit a priori vor sich liegen, welches die transzendentale Ästhetik ihr darbietet, um zu den reinen Verstandesbegriffen einen Stoff zu geben, ohne den sie ohne allen Inhalt, mithin völlig leer sein würde.
반면에 초월론적 논리학은 감성의 잡다를 선험적으로 그 자신 앞에 놓았다, 그 잡다를 초월론적 감성학 초월론적 논리학에 제시하는, 순수 지성개념들에 재료를 주기 위해서, 그 재료 없이는 그 초월론적 논리학이 아무런 내용 없이, 따라서 완전히 공허하게 될.
→ 반면에 초월론적 논리학은 순수 지성개념들에 그것 없이는 그 초월론적 논리학이 아무런 내용 없이, 따라서 완전히 공허하게 될 그러한 재료를 주기 위해서 초월론적 감성학 초월론적 논리학에 제시하는 감성의 잡다를 선험적으로 그 자신 앞에 놓았다.
Raum und Zeit enthalten nun ein Mannigfaltiges der reinen Anschauung a priori, gehören aber gleichwohl zu den Bedingungen der Rezeptivität unseres Gemüts, unter denen es allein Vorstellungen von Gegenständen empfangen kann, die mithin auch den Begriff derselben jederzeit affizieren müssen.
공간과 시간은 이제 순수 직관의 잡다를 선험적으로 포함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심정의 수용성의 조건들에 속한다, 그 조건들 아래에서 잡다가(?) 대상들에 대한 모든 표상들을 수용할 수 있는, 그 표상들이 따라서 또한 그 표상들의 개념을 매번 촉발해야만 하는.
→ 공간과 시간은 이제 순수 직관의 잡다를 선험적으로 포함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조건들 아래에서 그 심정이 대상들에 대한 모든 표상들을 수용할 수 있는, 따라서 또한 그 표상들은 그 표상들의 개념을 매번 촉발해야만 하는, 그러한 우리의 심정의 수용성의 조건들에 속한다.
Allein die Spontaneität unseres Denkens erfordert es, daß dieses Mannigfaltige zuerst auf gewisse Weise durchgegangen, aufgenommen, und verbunden werde, um daraus eine Erkenntnis zu machen.
오로지 우리 사유의 자발성만이 요구한다, 이러한 잡다를 최초로 확실한 방법으로 점검되고, 수용되고, 관련되는 것을, 그를 통해 인식을 형성하기 위하여.
→ 오로지 우리 사유의 자발성만이 이러한 잡다를 최초로 확실한 방법으로 점검되고, 수용되고, 관련되는 것을, 그를 통해 인식을 형성하기 위하여 요구한다.
Diese Handlung nenne ich Synthesis.
이러한 행위를 나는 종합이라 명명한다.
→ 이러한 행위를 나는 종합이라 명명한다.

-蟲-
Der problematische Satz ist also derjenige, der nur logische Möglichkeit (die nicht objektiv ist) ausdruckt, d.i. eine freie Wahl einen solchen Satz gelten zu lassen, eine bloß willkürliche Aufnehmung desselben in den Verstand. Der assertorische sagt von logischer Wirklichkeit oder Wahrheit, wie etwa in einem hypothetischen Vernunftschluß das Antecedens im Obersatze problematisch, im Untersatze assertorisch vorkommt, und zeigt an, daß der Satz mit dem Verstande nach dessen Gesetzen schon verbunden sei; der apodiktische Satz denkt sich den assertorischen durch diese Gesetze des Verstandes selbst bestimmt, und daher a priori behauptend, und drückt auf solche Weise logische Notwendigkeit aus. Weil nun hier alles sich gradweise dem Verstande einverleibt, so daß man zuvor etwas problematisch urteilt, darauf auch wohl es assertorisch als wahr annimmt, endlich als unzertrennlich mit dem Verstande verbunden, d.i. als notwendig und apodiktisch behauptet, so kann man diese drei Funktionen der Modalität auch so viel Momente des Denkens überhaupt nennen.
→ 개연 명제는 그러므로 그것, 단지 논리적 가능성 (대상적-객관적? 가능성이 아니라) 을 나타내는, 즉 자의적 선택이 그러한 명제를 유효하도록 하는, 지성 내로의 그 명제의 순전히 임의적인 수용이다.→ 단언 명제는 아마도 가언적인 이성추론에서 전항(前項)이 대전제 안에서는 개연적으로 소전제 안에서는 단언적으로 있듯이, 그렇게 논리적 실재성 혹은 참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리고 단언 명제는 그 명제가 지성과 그 지성의 법칙들에 따라 이미 결합하리란 것을 가리킨다; 필연 명제는 스스로 단언 명제를 이러한 지성 자체의 법칙들을 통해 규정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필연 명제는 선험적으로 주장하면서, 그리고 그러한 방식에 대해 논리적 필연성을 나타낸다.→ 왜냐하면 이제 여기에서 모든 것은 스스로 점차 지성에 통합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우선 어떤 것을 개연적으로 판단하고, 그로부터 또한 그것을 충분히 단언적으로 참으로서 받아들이고, 끝으로 내재적인 것으로서 지성과 결합시킨다는 것, 즉 불가결하고 필연적인 것으로서 주장한다는 것 때문에, 그래서 사람들은 이러한 양상의 세 가지 기능을 또한 그렇게 많은 사유 일반의 계기들(상황들)로 명명할 수 있다.


Der problematische Satz ist also derjenige, der nur logische Möglichkeit (die nicht objektiv ist) ausdruckt, d.i. eine freie Wahl einen solchen Satz gelten zu lassen, eine bloß willkürliche Aufnehmung desselben in den Verstand.
개연 명제는 그러므로 그것, 단지 논리적 가능성 (대상적-객관적? 가능성이 아니라) 을 나타내는, 즉 자의적 선택이 그러한 명제를 유효하도록 하는, 지성 내로의 그 명제의 순전히 임의적인 수용이다.
→ 개연 명제는 그러므로 그것, 단지 논리적 가능성 (대상적-객관적? 가능성이 아니라) 을 나타내는, 즉 자의적 선택이 그러한 명제를 유효하도록 하는, 지성 내로의 그 명제의 순전히 임의적인 수용이다.
Der assertorische sagt von logischer Wirklichkeit oder Wahrheit, wie etwa in einem hypothetischen Vernunftschluß das Antecedens im Obersatze problematisch, im Untersatze assertorisch vorkommt, und zeigt an, daß der Satz mit dem Verstande nach dessen Gesetzen schon verbunden sei; der apodiktische Satz denkt sich den assertorischen durch diese Gesetze des Verstandes selbst bestimmt, und daher a priori behauptend, und drückt auf solche Weise logische Notwendigkeit aus.
단언 명제는 논리적 실재성 혹은 참에 대해 이야기 한다, 아마도 가언적인 이성추론에서 전항(前項)이 대전제 안에서 개연적으로, 소전제 안에서 단언적으로 있듯이, 그리고 가리킨다, 그 명제가 지성과 그 지성의 법칙들에 따라 이미 결합하리란 것을; 필연 명제는 스스로 단언 명제를 이러한 지성 자체의 법칙들을 통해 규정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선험적으로 주장하면서, 그리고 그러한 방식에 대해 논리적 필연성을 나타낸다.
→ 단언 명제는 아마도 가언적인 이성추론에서 전항(前項)이 대전제 안에서는 개연적으로 소전제 안에서는 단언적으로 있듯이, 그렇게 논리적 실재성 혹은 참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리고 단언 명제는 그 명제가 지성과 그 지성의 법칙들에 따라 이미 결합하리란 것을 가리킨다; 필연 명제는 스스로 단언 명제를 이러한 지성 자체의 법칙들을 통해 규정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필연 명제는 선험적으로 주장하면서, 그리고 그러한 방식에 대해 논리적 필연성을 나타낸다.
Weil nun hier alles sich gradweise dem Verstande einverleibt, so daß man zuvor etwas problematisch urteilt, darauf auch wohl es assertorisch als wahr annimmt, endlich als unzertrennlich mit dem Verstande verbunden, d.i. als notwendig und apodiktisch behauptet, so kann man diese drei Funktionen der Modalität auch so viel Momente des Denkens überhaupt nennen.
왜냐하면 이제 여기에서 모든 것은 스스로 점차 지성에 통합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우선 어떤 것을 개연적으로 판단한다는 것, 그로부터 또한 그것을 충분히 단언적으로 참으로서 받아들이고, 끝으로 내재적인 것으로서 지성과 결합시킨다는 것, 즉 불가결하고 필연적인 것으로서 주장한다는 것 때문에, 그래서 사람들은 이러한 양상의 세 가지 기능을 또한 그렇게 많은 사유 일반의 계기들(상황들)로 명명할 수 있다.
→ 왜냐하면 이제 여기에서 모든 것은 스스로 점차 지성에 통합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우선 어떤 것을 개연적으로 판단하고, 그로부터 또한 그것을 충분히 단언적으로 참으로서 받아들이고, 끝으로 내재적인 것으로서 지성과 결합시킨다는 것, 즉 불가결하고 필연적인 것으로서 주장한다는 것 때문에, 그래서 사람들은 이러한 양상의 세 가지 기능을 또한 그렇게 많은 사유 일반의 계기들(상황들)로 명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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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blematische Urteile sind solche, wo man das Bejahen oder Verneinen als bloß moglich (beliebig) annimmt. Assertorische, da es als wirklich (wahr) betrachtet wird. Apodiktische, in denen man es als notwendig ansieht¹. So sind die beiden Urteile, deren Verhaltnis das hypothetische Urteil ausmacht, (antec. und consequ.), imgleichen in deren Wechselwirkung das Disjunktive besteht, (Glieder der Einteilung) insgesamt nur problematisch. In dem obigen Beispiel wird der Satz: es ist eine vollkommene Gerechtigkeit da, nicht assertorisch gesagt, sondern nur als ein beliebiges Urteil, wovon es moglich ist, daß jemand es annehme, gedacht, und nur die Konsequenz ist assertorisch. Daher konnen solche Urteile auch offenbar falsch sein, und doch, problematisch genommen, Bedingungen der Erkenntnis der Wahrheit sein. So ist das Urteil: die Welt ist durch blinden Zufall da, in dem disjunktiven Urteil nur von problematischer Bedeutung, namlich, daß jemand diesen Satz etwa auf einen Augenblick annehmen moge, und dient doch, (wie die Verzeichnung des falschen Weges, unter der Zahl aller derer, die man nehmen kann,) den wahren zu finden.
→ 개연 판단들은 사람들이 긍정이나 부정을 순전히 가능적인 것으로서 (임의적인 것으로서) 받아들이는 경우 그러한 개연 판단들이다.→ 단정 판단들은 그것이 현실적인 것으로 (참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그러한 판단들이다.→ 필연 판단들은 그 판단들 안에서 사람들이 그것을 필연적인 것으로 간주하는¹ 그러한 판단들이다.→ 그래서 그것들의 관계가 가언 판단을 형성하는 양자의 판단들(전제와 결론)은 그 판단들의 상호작용 안에 선언 판단이 존립하는 판단들(분할의 마디들)과 마찬가지로 모두 다 단지 개연적이다.→ 상술한 예시에서 :여기에 완전한 정의가 있다 라는 명제는 단정적으로 이야기되지 않고, 오히려 단지 그와 관련하여 누군가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한, 임의적 판단으로서만 생각된다. 그리고 오로지 결론만이 단정적이다.→ 그런 이유로 그러한 판단은 또한 명백한 오류일 수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연적으로 취해질 때 진리에 대한 인식의 조건들일 수 있다.→ 그래서 :세계는 맹목적 우연에 의해 여기 있다 라는 판단은 선언 판단 안에서 오로지 개연적 의미에 대한 것일 뿐이다. 즉 누군가 이 명제를 어느 정도 현재에 대해 취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그 모든 길들의 수 아래에서 잘못된 길의 기록과 같이) 진리를 발견하는 데에 쓸모가 있다.

¹ Gleich, als wenn das Denken im ersten Fall eine Funktion des Verstandes, im zweiten der Urteilskraft, im dritten der Vernunft ware. Eine Bemerkung, die erst in der Folge ihre Aufklarung erwartet.
→ ¹ 마찬가지로, 사유는 첫째로 지성의 기능이고, 다음으로 판단력의, 세 번째로 이성의 기능일 것이다.→ 이 소견은 이어지는 장들에서 처음으로 그 해명이 기대된다.


Problematische Urteile sind solche, wo man das Bejahen oder Verneinen als bloß moglich (beliebig) annimmt.
개연 판단들은 그러한 것들이다, 사람들이 긍정이나 부정을 순전히 가능적인 것으로서 (임의적인 것으로서) 받아들이는 경우.
→ 개연 판단들은 사람들이 긍정이나 부정을 순전히 가능적인 것으로서 (임의적인 것으로서) 받아들이는 경우 그러한 개연 판단들이다.
Assertorische, da es als wirklich (wahr) betrachtet wird.
단정 판단들은, 그것이 현실적인 것으로 (참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 단정 판단들은 그것이 현실적인 것으로 (참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그러한 판단들이다.
Apodiktische, in denen man es als notwendig ansieht¹.
필연 판단들은, 그 판단들 안에서 사람들이 그것을 필연적인 것으로 간주하는¹.
→ 필연 판단들은 그 판단들 안에서 사람들이 그것을 필연적인 것으로 간주하는¹ 그러한 판단들이다.
So sind die beiden Urteile, deren Verhaltnis das hypothetische Urteil ausmacht, (antec. und consequ.), imgleichen in deren Wechselwirkung das Disjunktive besteht, (Glieder der Einteilung) insgesamt nur problematisch.
그래서 양자의 판단들은, 그것들의 관계가 가언 판단을 형성하는, (전제와 결론), 그 판단들의 상호작용 안에 선언 판단이 존립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분할의 마디들) 모두 다 단지 개연적이다.
→ 그래서 그것들의 관계가 가언 판단을 형성하는 양자의 판단들(전제와 결론)은 그 판단들의 상호작용 안에 선언 판단이 존립하는 판단들(분할의 마디들)과 마찬가지로 모두 다 단지 개연적이다.
In dem obigen Beispiel wird der Satz: es ist eine vollkommene Gerechtigkeit da, nicht assertorisch gesagt, sondern nur als ein beliebiges Urteil, wovon es moglich ist, daß jemand es annehme, gedacht, und nur die Konsequenz ist assertorisch.
상술한 예시에서 :여기에 완전한 정의가 있다 라는 명제는, 단정적으로 이야기되지 않고, 오히려 단지 임의적 판단으로서만, 그로부터 그것이 가능한, 누군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생각된다, 그리고 오로지 결론만이 단정적이다.
→ 상술한 예시에서 :여기에 완전한 정의가 있다 라는 명제는 단정적으로 이야기되지 않고, 오히려 단지 그와 관련하여 누군가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한, 임의적 판단으로서만 생각된다. 그리고 오로지 결론만이 단정적이다.
Daher konnen solche Urteile auch offenbar falsch sein, und doch, problematisch genommen, Bedingungen der Erkenntnis der Wahrheit sein.
그런 이유로 그러한 판단은 또한 명백한 오류일 수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연적으로 취해질 때, 진리에 대한 인식의 조건들일 수 있다.
→ 그런 이유로 그러한 판단은 또한 명백한 오류일 수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연적으로 취해질 때 진리에 대한 인식의 조건들일 수 있다.
So ist das Urteil: die Welt ist durch blinden Zufall da, in dem disjunktiven Urteil nur von problematischer Bedeutung, namlich, daß jemand diesen Satz etwa auf einen Augenblick annehmen moge, und dient doch, (wie die Verzeichnung des falschen Weges, unter der Zahl aller derer, die man nehmen kann,) den wahren zu finden.
그래서 :세계는 맹목적 우연에 의해 여기 있다 라는 판단은, 선언 판단 안에서 오로지 개연적 의미에 대한 것일 뿐이다. 즉, 누군가 이 명제를 어느 정도 현재에 대해 취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쓸모가 있다, (잘못된 길의 기록이, 그 모든 잘못된 길들의 수 아래에서, 그 수를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진리를 발견하는.
→ 그래서 :세계는 맹목적 우연에 의해 여기 있다 라는 판단은 선언 판단 안에서 오로지 개연적 의미에 대한 것일 뿐이다. 즉 누군가 이 명제를 어느 정도 현재에 대해 취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그 모든 길들의 수 아래에서 잘못된 길의 기록과 같이) 진리를 발견하는 데에 쓸모가 있다.

¹ Gleich, als wenn das Denken im ersten Fall eine Funktion des Verstandes, im zweiten der Urteilskraft, im dritten der Vernunft ware.
¹ 마찬가지로, 사유가 첫째로 지성의 기능이고, 다음으로 판단력의, 세 번째로 이성의 기능일 것이다.
→ ¹ 마찬가지로, 사유는 첫째로 지성의 기능이고, 다음으로 판단력의, 세 번째로 이성의 기능일 것이다.
Eine Bemerkung, die erst in der Folge ihre Aufklarung erwartet.
소견, 처음으로 이어지는 장들에서 그 소견의 해명을 기대하는.
→ 이 소견은 이어지는 장들에서 처음으로 그 해명이 기대된다.

-蟲-
Endlich enthält das disjunktive Urteil ein Verhältnis zweener, oder mehrerer Sätze gegen einander, aber nicht der Abfolge, sondern der logischen Entgegensetzung, so fern die Sphäre des einen die des andern ausschließt, aber doch zugleich der Gemeinschaft, in so fern sie zusammen die Sphäre der eigentlichen Erkenntnis ausfüllen, also ein Verhältnis der Teile der Sphäre eines Erkenntnisses, da die Sphäre eines jeden Teils ein Ergänzungsstück der Sphäre des andern zu dem ganzen Inbegriff der eingeteilten Erkenntnis ist, z.E. die Welt ist entweder durch einen blinden Zufall da, oder durch innre Notwendigkeit, oder durch eine äußere Ursache. Jeder dieser Sätze nimmt einen Teil der Sphäre des möglichen Erkenntnisses über das Dasein einer Welt überhaupt ein, alle zusammen die ganze Sphäre. Das Erkenntnis aus einer dieser Sphären wegnehmen, heißt, sie in eine der übrigen setzen, und dagegen sie in eine Sphäre setzen, heißt, sie aus den übrigen wegnehmen. Es ist also in einem disjunktiven Urteile eine gewisse Gemeinschaft der Erkenntnisse, die darin besteht, daß sie sich wechselseitig einander ausschließen, aber dadurch doch im Ganzen die wahre Erkenntnis bestimmen, indem sie zusammengenommen den ganzen Inhalt einer einzigen gegebenen Erkenntnis ausmachen. Und dieses ist es auch nur, was ich des Folgenden wegen hiebei anzumerken nötig finde.
→ 끝으로 선언판단은 둘 혹은 그 이상의 명제들 상호간의 관계를 포함하지만, 연속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한 명제의 범위가 나머지 명제의 범위를 배제하는 한에서 논리적 반대 관계를 포함한다. 그러나 선언판단은 그럼에도시에 그 명제들이 함께 고유한 인식의 범위를 만족시키는 한에서 결합의 관계를 포함하는데, 그러므로 선언판단은 분활된 인식의 전반적 총괄에 대해 각 부분의 범위가 다른 부분의 범위의 보충이므로 인식의 범위의 부분들의 관계를 포함한다. 예를 들어 세계는 맹목적 우연을 통해 현존하거나, 또는 내적 필연성을 통해 현존하거나, 아니면 외적 원인을 통해 현존한다.→ 이러한 범위들 중에 하나로부터 인식을 배제한다는 것은 그 인식을 남은 범위들 중 하나에 놓는다는 것을 일컫는 것이고, 반대로 그 인식을 한 범위에 놓는다는 것은 그 인식을 남은 범위들로부터 배제한다는 것을 일컫는다.→ 그러므로 그것은 선언 판단에 있어서, 그 인식들 자체가 상호간에 서로를 배제한다는, 그러나 그럼에도 그를 통하여 전체적으로 그 인식들이 단일하게 주어진 인식의 전체 내용을 형성함으로써 전체에 있어서 참된 인식을 규정한다는 점에 존립하는, 인식들의 확실한 결합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은 또한 단지, 내가 뒤따르는 것을 위해 이와 관련하여 첨언할 필요가 있다고 여기는 것일 뿐이다.
4. Die Modalität der Urteile ist eine ganz besondere Funktion derselben, die das Unterscheidende an sich hat, daß sie nichts zum Inhalte des Urteils beiträgt, (denn außer Größe, Qualität und Verhältnis ist nichts mehr, was den Inhalt eines Urteils ausmachte,) sondern nur den Wert der Copula in Beziehung auf das Denken überhaupt angeht.
→ 4. 판단의 양상은, 그 기능은 판단의 내용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고, (왜냐하면 외적 양, 질 그리고 관계 외에는 그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판단의 내용을 형성하는 것은,) 오히려 단지 사유 일반과 관련 속에서 결속의 값(가치)에만 관계한다는 특징을 그 자체로 지니는, 판단의 전적으로 특수한 기능이다.


Endlich enthält das disjunktive Urteil ein Verhältnis zweener, oder mehrerer Sätze gegen einander, aber nicht der Abfolge, sondern der logischen Entgegensetzung, so fern die Sphäre des einen die des andern ausschließt, aber doch zugleich der Gemeinschaft, in so fern sie zusammen die Sphäre der eigentlichen Erkenntnis ausfüllen, also ein Verhältnis der Teile der Sphäre eines Erkenntnisses, da die Sphäre eines jeden Teils ein Ergänzungsstück der Sphäre des andern zu dem ganzen Inbegriff der eingeteilten Erkenntnis ist, z.E. die Welt ist entweder durch einen blinden Zufall da, oder durch innre Notwendigkeit, oder durch eine äußere Ursache.
끝으로 선언판단은 둘 혹은 그 이상의 명제들 상호간의 관계를 포함하지만, 연속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논리적 반대 관계를 포함한다, 한 명제의 범위가 나머지 명제의 범위를 배제하는 한에서, 그러나 그럼에도 동시에 결합의 관계를 포함하는데, 그 명제들이 함께 고유한 인식의 범위를 만족시키는 한에서, 그러므로 인식의 범위의 부분들의 관계를 포함한다, 분활된 인식의 전반적 총괄에 대해 각 부분의 범위가 다른 부분의 범위의 보충이므로, 예를 들어 세계는 맹목적 우연을 통해 현존하거나, 또는 내적 필연성을 통해 현존하거나, 아니면 외적 원인을 통해 현존한다.
→ 끝으로 선언판단은 둘 혹은 그 이상의 명제들 상호간의 관계를 포함하지만, 연속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한 명제의 범위가 나머지 명제의 범위를 배제하는 한에서 논리적 반대 관계를 포함한다. 그러나 선언판단은 그럼에도시에 그 명제들이 함께 고유한 인식의 범위를 만족시키는 한에서 결합의 관계를 포함하는데, 그러므로 선언판단은 분활된 인식의 전반적 총괄에 대해 각 부분의 범위가 다른 부분의 범위의 보충이므로 인식의 범위의 부분들의 관계를 포함한다. 예를 들어 세계는 맹목적 우연을 통해 현존하거나, 또는 내적 필연성을 통해 현존하거나, 아니면 외적 원인을 통해 현존한다.
Jeder dieser Sätze nimmt einen Teil der Sphäre des möglichen Erkenntnisses über das Dasein einer Welt überhaupt ein, alle zusammen die ganze Sphäre.
이러한 각각의 명제는 세계 일반의 현존에 대하여 가능한 인식의 범위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모두 합쳐서 전체 범위를 차지한다.
→ 이러한 각각의 명제는 세계 일반의 현존에 대하여 가능한 인식의 범위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모두 합쳐서 전체 범위를 차지한다.
Das Erkenntnis aus einer dieser Sphären wegnehmen, heißt, sie in eine der übrigen setzen, und dagegen sie in eine Sphäre setzen, heißt, sie aus den übrigen wegnehmen.
이러한 범위들 중에 하나로부터 인식을 배제한다는 것은, 말한다, 그 인식을 남은 범위들 중 하나에 놓는다는 것을, 그리고 반대로 그 인식을 한 범위에 놓는다는 것은, 말한다, 그 인식을 남은 범위들로부터 배제한다는 것을.
→ 이러한 범위들 중에 하나로부터 인식을 배제한다는 것은 그 인식을 남은 범위들 중 하나에 놓는다는 것을 일컫는 것이고, 반대로 그 인식을 한 범위에 놓는다는 것은 그 인식을 남은 범위들로부터 배제한다는 것을 일컫는다.
Es ist also in einem disjunktiven Urteile eine gewisse Gemeinschaft der Erkenntnisse, die darin besteht, daß sie sich wechselseitig einander ausschließen, aber dadurch doch im Ganzen die wahre Erkenntnis bestimmen, indem sie zusammengenommen den ganzen Inhalt einer einzigen gegebenen Erkenntnis ausmachen.
그러므로 그것은 선언 판단에 있어서 인식들의 확실한 결합이다, 그 결합이 다음과 같은 점에 존립하는, 그 인식들 자체가 상호간에 서로를 배제한다는 것, 그러나 그를 통하여 그럼에도 전체에 있어서 참된 인식을 규정한다는 것, 전체적으로 그 인식들이 단일하게 주어진 인식의 전체 내용을 형성함으로써.
→ 그러므로 그것은 선언 판단에 있어서, 그 인식들 자체가 상호간에 서로를 배제한다는, 그러나 그럼에도 그를 통하여 전체적으로 그 인식들이 단일하게 주어진 인식의 전체 내용을 형성함으로써 전체에 있어서 참된 인식을 규정한다는 점에 존립하는, 인식들의 확실한 결합이다.
Und dieses ist es auch nur, was ich des Folgenden wegen hiebei anzumerken nötig finde.
그리고 이러한 것은 또한 단지, 내가 뒤따르는 것을 위해 이와 관련하여 첨언할 필요가 있다고 여기는 것일 뿐이다.
→ 그리고 이러한 것은 또한 단지, 내가 뒤따르는 것을 위해 이와 관련하여 첨언할 필요가 있다고 여기는 것일 뿐이다.

4. Die Modalität der Urteile ist eine ganz besondere Funktion derselben, die das Unterscheidende an sich hat, daß sie nichts zum Inhalte des Urteils beiträgt, (denn außer Größe, Qualität und Verhältnis ist nichts mehr, was den Inhalt eines Urteils ausmachte,) sondern nur den Wert der Copula in Beziehung auf das Denken überhaupt angeht.
4. 판단의 양상은 판단의 전적으로 특수한 기능이다, 그 기능이 특징을 그 자체로 지니는, 그 기능은 판단의 내용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고, (왜냐하면 외적 양, 질 그리고 관계 외에는 그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판단의 내용을 형성하는 것은,) 오히려 단지 사유 일반과 관련 속에서 결속의 값(가치)에만 관계한다는.
→ 4. 판단의 양상은, 그 기능은 판단의 내용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고, (왜냐하면 외적 양, 질 그리고 관계 외에는 그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판단의 내용을 형성하는 것은,) 오히려 단지 사유 일반과 관련 속에서 결속의 값(가치)에만 관계한다는 특징을 그 자체로 지니는, 판단의 전적으로 특수한 기능이다.

-蟲-


Des Leitfadens der Entdeckung aller reinen Verstandesbegriffe

모든 순수 지성개념들의 발견의 실마리

Zweiter Abschnitt

제 2 장

§ 9. Von der logischen Funktion des Verstandes in Urteilen

§ 9. 판단들에 있어서 지성의 논리적 기능에 대하여

Wenn wir von allem Inhalte eines Urteils überhaupt abstrahieren, und nur auf die bloße Verstandesform darin Acht geben, so finden wir, daß die Funktion des Denkens in demselben unter vier Titel gebracht werden könne, deren jeder drei Momente unter sich enthält. Sie können füglich in folgender Tafel vorgestellt werden.

→ 만일 우리가 판단 전반의 모든 내용들을 추상하고 그 점에 있어서 단지 순전한 지성형식에만 주목한다면 우리는 지성의 기능이 그 판단 자체에서 그 각각이 세 계기들을 포섭하는 네 항목들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 항목들은 적절하게 다음 표에서 제시될 수 있다.

 

 1. Quantität der Urteile.

판단의 양

 

 

 Allgemeine 전칭

 Besondere 특칭

 Einzelne 단칭

 

 2. Qualität.

 

 3. Relation. 관계

 Bejahende 긍정

 Verneinende 부정

 Unendliche 무한

 

 Kategorische 정언

 Hypothetische 가언

 Disjunktive 선언

 

 4. Modalität. 양상

 

 

 Problematische 개연

 Assertorische 단정

 Apodiktische 필연

 


Da diese Einteliung in einigen, obgleich nicht wesentlichen Stücken, von der gewohnten Technik der Logiker abzuweichen scheint, so werden folgende Verwahrungen wider den besorglichen Mißverstand nicht unnötig sein.

→ 이러한 구분은 비록 본질적인 부분들에서는 아니더라도 몇몇 부분들에서 논리학자들의 통상적인 기술과 구분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염려되는 오해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이의들이 불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1. Die Logiker sagen mit Recht, daß man beim Gebrauch der Urteile in Vernunftschlüssen die einzelnen Urteile gleich den allgemeinen behandeln könne. Denn eben darum, weil sie gar keinen Umfang haben, kann das Prädikat derselben nicht bloß auf einiges dessen, was unter dem Begriff des Subjekts enthalten ist, gezogen, von einigem aber ausgenommen werden. Es gilt also von jenem Begriffe ohne Ausnahme, gleich als wenn derselbe ein gemeingültiger Begriff wäre, der einen Umfang hätte, von dessen ganzer Bedeutung das Prädikat gelte. Vergleichen wir dagegen ein einzelnes Urteil mit einem gemeingültigen, bloß als Erkenntnis, der Größe nach, so verhält sie sich zu diesem wie Einheit zur Unendlichkeit, und ist also sich selbst davon wesentlich unterschieden. Also, wenn ich ein einzelnes Urteil (judicium singulare) nicht bloß nach seiner innern Gültigkeit, sondern auch, als Erkenntnis überhaupt, nach der Größe, die es in Vergleichung mit andern Erkenntnissen hat, schätze, so ist es allerdings von gemeingültigen Urteilen (judicia communia) unterschieden, und verdient in einer vollständigen Tafel der Momente des Denkens überhaupt (obzwar freilich nicht in der bloß auf den Gebrauch der Urteile untereinander eingeschränkten Logik) eine besondere Stelle.

→1. 논리학자들이 사람들은 이성 추론들에서 판단들의 사용에 있어서 단칭 판단들을 전칭 판단들과 마찬가지로 취급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정당하다.→ 왜냐하면 단칭 판단들이 전혀 아무런 외연도 가지지 않으므로 정확히 그 점에서 그 판단들의 술어가 주어의 개념 아래에 포함되는 몇몇에만 관련되고 몇몇에는 제외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단칭 판단은 모든 개념들에 대해서 예외 없이 유효한데, 동일한 판단이 외연을 가지는 보편타당한 개념일 경우 전체 의미의 개념에 대해 술어가 타당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 우리는 그에 반해 단칭 판단을 크기에 따르는 순전한 인식으로서 보편타당한 판단에 비유한다. 그래서 이러한 판단에 그 인식이 무한성에 대한 통일성과 같이 관계하고, 그러므로 그 인식 자체는 그로부터 본질적으로 구분된다.→ 그러므로 만일 내가 단칭 판단을 단지 그 내적 정당성이 아니라 오히려 인식 전반으로서 다른 인식들과의 비교 속에서 가지는 크기에 따라 평가한다면, 그 판단은 당연히 보편타당한 판단들과 구분되고, 사유 전반의 계기들의 완전한 도표 안에서 (비록 확실히 판단들 상호의 사용에 대한 제한된 논리학에서는 아니라 하더라도) 특수한 위치를 차지할 만하다.

2. Eben so müssen in einer transzendentalen Logik unendliche Urteile von bejahenden noch unterschieden werden, wenn sie gleich in der allgemeinen Logik jeden mit Recht beigezählt sind und kein besonderes Glied der Einteilung ausmachen. Diese nämlich abstrahieret von allem Inhalt des Prädikats (ob es gleich verneinend ist) und sieht nur darauf, ob dasselbe dem Subjekt beigelegt, oder ihm entgegengesetzt werde. Jene aber betrachtet das Urteil auch nach dem Werte oder Inhalt dieser logischen Bejahung vermittelst eines bloß verneinenden Prädikats, und was diese in Ansehung des gesamten Erkenntnisses für einen Gewinn verschafft. Hätte ich von der Seele gesagt, sie ist nicht sterblich, so hätte ich durch ein verneinendes Urteil wenigstens einen Irrtum abgehalten. Nun habe ich durch den Satz: die Seele ist nichtsterblich, zwar der logischen Form nach wirklich bejahet, indem ich die Seele in den unbeschränkten Umfang der nichtsterbenden Wesen setze. Weil nun von dem ganzen Umfang möglicher Wesen das Sterbliche einen Teil enthält, das Nichtsterbende aber den andern, so ist durch meinen Satz nichts anders gesagt, als daß die Seele eines von der unendlichen Mange Dinge sei, die übrig bleiben, wenn ich das Sterbliche insgesamt wegnehme. Dadurch aber wird nur die unendliche Sphäre alles Möglichen in so weit beschränkt, daß das Sterbliche davon abgetrennt, und in dem übrigen Raum ihres Umfangs die Seele gesetzt wird. Dieser Raum bleibt aber bei dieser Ausnahme noch immer unendlich, und können noch mehrere Teile desselben weggenommen werden, ohne daß darum der Begriff von der Seele im mindesten wächst, und bejahend bestimmt wird. Diese unendliche Urteile also in Ansehung des logischen Umfanges sind wirklich bloß beschränkend in Ansehung des Inhalts der Erkenntnis überhaupt, und in so fern müssen sie in der transtzendentalen Tafel aller Momente des Denkens in den Urteilen nicht übergangen werden, weil die hierbei ausgeübte Funktion des Verstandes vielleicht in dem Felde seiner reinen Erkenntnis a priori wichtig sein kann.

 → 2. 마찬가지로, 비록 그 무한판단들이 일반 논리학에서 정당하게 저 긍정판단들로 셈해지고 구분의 어떠한 특수한 절도 형성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초월론적 논리학에서 무한판단들은 긍정판단과 구분되어야만 한다. → 다시 말해 이러한 무한판단은 술어의 모든 내용을 도외시하고 (비록 그 내용이 부정이라 할지라도) 단지, 그 술어 자체가 주어에 덧붙여지는지, 또는 그 주어에 반대되는지 그에 대해서만 본다.→ 그러나 저 긍정판단은 판단을 또한 순전한 부정 술어에 따라서 이러한 논리적 긍정의 값이나 내용에 따라 평가하고, 이러한 것을 이익에 대한 전체 인식의 고려 속에서 이러한 것을 마련하는 것을 평가한다. → 내가 영혼에 대해 영혼이 필멸이 아니라고 이야기 한다면 나는 부정판단을 통하여 최소한 오류를 막을 것이다. → 이제 나는, 내가 영혼을 불멸하는 실체들의 무한정한 범위 안으로 놓음으로써, 영혼은 불사적이다라는 명제를 통하여, 더욱이 그 논리적 형식을 통하여 실질적으로 긍정한다. → 이제 가능한 실체들의 전범위로부터 필멸하는 것이 일부분을 포함하고, 그러나 불멸하는 것은 다른 부분을 (포함하므로), 그래서 나의 명제를 통해서, 영혼은 내가 필멸하는 것 모두를 제거할 때 남아 있는 무한히 많은 것들 중에 하나일 것이라는 것 외에 다른 아무것도 이야기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를 통하여 다만 모든 가능한 것의 무한한 범위가, 필멸하는 것을 그로부터 분리시키고, 그 범위의 남은 공간에 영혼이 놓인다는 것, 그 만큼에서 한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공간은 이러한 예외에 있어서 여전히 무한하고, 그 공간의 더 많은 부분들이, 영혼에 대한 개념이 최소한으로 확장되거나, 또 긍정적으로 규정되는 것 없이 제거될 수 있다. → 이러한 무한한 판단들은 그러므로 논리적 범위의 고려 속에서 실제로 순전히 인식 전반의 내용에 대한 고려에서 제한되고, 그러한 한에서 무한한 판단들이 판단들 속에서 사유의 모든 계기들의 초월론적 목록표 안에서 넘어서게 되지 않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이와 관련하여 수행된 지성의 활동은 아마도 그 지성의 순수한 선험적 인식의 범위 안에서 주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Alle Verhältnisse des Denkens in Urteilen sind die a) des Prädikats zum Subjekt, b) des Grundes zur Folge, c) der eingeteilten Erkenntnis und der gesammleten Glieder der Einteilung unter einander. In der ersteren Art der Urteile sind nur zwei Begriffe, in der zweiten zweene Urteile, in der dritten mehrere Urteile im Verhältnis gegen einander betrachtet. Der hypothetische Satz: wenn eine vollkommene Gerechtigkeit da ist, so wird der beharrlich Böse bestraft, enthält eigentlich das Verhältnis zweier Stätze: Es ist eine vollkommene Gerechtigkeit da, und der beharllich Böse wird bestraft. Ob beide dieser Sätze an sich wahr sein, bleibt hier unausgemacht. Es ist nur die Konsequenz, die durch dieses Urteil gedacht wird.

 → 3. 판단들 속에서 사유의 모든 관계들은 a) 주어에 대한 술어의 관계, b) 결과에 대한 원인의 관계, c) 분할된 인식의 관계와 상호간의 구분의 취합된 마디들의 관계이다.→ 첫번째 관계에서 판단의 기능은 단지 두 가지 개념들을, 두번째 관계에서는 두 가지 판단들을, 세번째 관계에서는 더 많은 판단들을 상호 관계에 있어서 관찰된다.→ 완전한 정의가 여기에 있을 때에는, 그래서 완강한 죄인들은 처벌받는다는 가설적 명제는 본래, 하나의 완전한 정의가 여기에 있다는, 그리고 완강한 죄인들이 처벌받는다는 두 명제들의 관계를 포함한다.→ 이러한 명제들 둘 모두가 그 자체로 참인지 아닌지는, 여기에서 결정되지 않고 남는다.→ 그것은 단지 이러한 판단을 통해 생각되는 결론일 뿐이다.

 

 

 

 

Des Leitfadens der Entdeckung aller reinen Verstandesbegriffe

모든 순수 지성개념들의 발견의 실마리

Zweiter Abschnitt

제 2장

§ 9. Von der logischen Funktion des Verstandes in Urteilen

§ 9. 판단에서 지성의 논리적 기능에 대해서

Wenn wir von allem Inhalte eines Urteils überhaupt abstrahieren, und nur auf die bloße Verstandesform darin Acht geben, so finden wir, daß die Funktion des Denkens in demselben unter vier Titel gebracht werden könne, deren jeder drei Momente unter sich enthält.

만일 우리가 판단 전반의 모든 내용들을 추상한다면, 그리고 그 점에 있어서 단지 순전한 지성형식에만 주목한다면, 우리는 발견한다, 지성의 기능이 그 판단 자체에서 네 항목들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그 항목들의 각각이 세 계기들을 포섭하는.

→ 만일 우리가 판단 전반의 모든 내용들을 추상하고 그 점에 있어서 단지 순전한 지성형식에만 주목한다면 우리는 지성의 기능이 그 판단 자체에서 그 각각이 세 계기들을 포섭하는 네 항목들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Sie können füglich in folgender Tafel vorgestellt werden.

그 항목들은 적합하게 다음 표에서 제시될 수 있다.

→ 그 항목들은 적절하게 다음 표에서 제시될 수 있다.


 

 1. Quantität der Urteile.

판단의 양

 

 

 Allgemeine 전칭

 Besondere 특칭

 Einzelne 단칭

 

 2. Qualität.

 

 3. Relation. 관계

 Bejahende 긍정

 Verneinende 부정

 Unendliche 무한

 

 Kategorische 정언

 Hypothetische 가언

 Disjunktive 선언

 

 4. Modalität. 양상

 

 

 Problematische 개연

 Assertorische 단정

 Apodiktische 필연

 


Da diese Einteliung in einigen, obgleich nicht wesentlichen Stücken, von der gewohnten Technik der Logiker abzuweichen scheint, so werden folgende Verwahrungen wider den besorglichen Mißverstand nicht unnötig sein.

이러한 구분은 몇몇 부분들에서, 비록 본질적인 부분들에서는 아니더라도, 논리학자들의 통례의 기술과 구분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염려되는 오해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이의들이 불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 이러한 구분은 비록 본질적인 부분들에서는 아니더라도 몇몇 부분들에서 논리학자들의 통상적인 기술과 구분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염려되는 오해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이의들이 불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1. Die Logiker sagen mit Recht, daß man beim Gebrauch der Urteile in Vernunftschlüssen die einzelnen Urteile gleich den allgemeinen behandeln könne.

1. 논리학자들은 정당하게 말한다, 사람들은 이성 추론들에서 판단들의 사용에 있어서 단칭 판단들을 전칭 판단들과 마찬가지로 취급할 수 있다고.

→1. 논리학자들이 사람들은 이성 추론들에서 판단들의 사용에 있어서 단칭 판단들을 전칭 판단들과 마찬가지로 취급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정당하다.

Denn eben darum, weil sie gar keinen Umfang haben, kann das Prädikat derselben nicht bloß auf einiges dessen, was unter dem Begriff des Subjekts enthalten ist, gezogen, von einigem aber ausgenommen werden.

왜냐하면 정확히 그 점에서, 단칭 판단들이 전혀 아무런 외연도 가지지 않으므로, 그 단칭 판단들의 술어가 순전히 몇몇에만, 주어의 개념 아래에 포함되는, 관련되고, 몇몇에는 제외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 왜냐하면 단칭 판단들이 전혀 아무런 외연도 가지지 않으므로 정확히 그 점에서 그 판단들의 술어가 주어의 개념 아래에 포함되는 몇몇에만 관련되고 몇몇에는 제외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Es gilt also von jenem Begriffe ohne Ausnahme, gleich als wenn derselbe ein gemeingültiger Begriff wäre, der einen Umfang hätte, von dessen ganzer Bedeutung das Prädikat gelte.

그러므로 그 단칭 판단은 모든 개념들에 대해 예외 없이 유효하다, 동일한 판단이 보편타당한 개념이라면, 그 개념이 외연을 가질, 전체 의미의 개념에 대해 술어가 타당한 것과 마찬가지로.

→ 그러므로 그 단칭 판단은 모든 개념들에 대해서 예외 없이 유효한데, 동일한 판단이 외연을 가지는 보편타당한 개념일 경우 전체 의미의 개념에 대해 술어가 타당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Vergleichen wir dagegen ein einzelnes Urteil mit einem gemeingültigen, bloß als Erkenntnis, der Größe nach, so verhält sie sich zu diesem wie Einheit zur Unendlichkeit, und ist also sich selbst davon wesentlich unterschieden.

우리는 그에 대해 단칭 판단을 보편타당한 판단에 비유한다, 순전히 인식으로서, 그 인식이 크기에 따르는, 그래서 이러한 판단에 그 인식이 무한성에 대한 통일성과 같이 관계하고, 그러므로 그 인식 자체는 그로부터 본질적으로 구분된다.

→ 우리는 그에 반해 단칭 판단을 크기에 따르는 순전한 인식으로서 보편타당한 판단에 비유한다. 그래서 이러한 판단에 그 인식이 무한성에 대한 통일성과 같이 관계하고, 그러므로 그 인식 자체는 그로부터 본질적으로 구분된다.

Also, wenn ich ein einzelnes Urteil (judicium singulare) nicht bloß nach seiner innern Gültigkeit, sondern auch, als Erkenntnis überhaupt, nach der Größe, die es in Vergleichung mit andern Erkenntnissen hat, schätze, so ist es allerdings von gemeingültigen Urteilen (judicia communia) unterschieden, und verdient in einer vollständigen Tafel der Momente des Denkens überhaupt (obzwar freilich nicht in der bloß auf den Gebrauch der Urteile untereinander eingeschränkten Logik) eine besondere Stelle.

그러므로, 만일 내가 단칭 판단(iudicium, 판단 + singularis gen.)을 단지 그 판단의 내적 정당성에 따라서가 아니라, 오히려, 인식 전반으로, 크기에 따라서, 그 크기를 그 판단이 다른 인식들과의 비교 속에서 가지는, 평가한다면, 그래서 그 판단은 당연히 보편타당한 판단들(iudicium + communis a.)과 구분되고, 사유 전반의 계기들의 완전한 도표 안에서 (비록 확실히 판단들 상호의 사용에 대한 제한된 논리학에서는 아니라 하더라도) 특수한 위치를 차지할 만하다.

→ 그러므로 만일 내가 단칭 판단을 단지 그 내적 정당성이 아니라 오히려 인식 전반으로서 다른 인식들과의 비교 속에서 가지는 크기에 따라 평가한다면, 그 판단은 당연히 보편타당한 판단들과 구분되고, 사유 전반의 계기들의 완전한 도표 안에서 (비록 확실히 판단들 상호의 사용에 대한 제한된 논리학에서는 아니라 하더라도) 특수한 위치를 차지할 만하다.

 

2. Eben so müssen in einer transzendentalen Logik unendliche Urteile von bejahenden noch unterschieden werden, wenn sie gleich in der allgemeinen Logik jenen mit Recht beigezählt sind und kein besonderes Glied der Einteilung ausmachen.

2. 마찬가지로 초월론적 논리학에서 무한판단들은 긍정판단과 구분되어야만 한다, 비록 그 무한판단들이 일반 논리학에서 정당하게 저 긍정판단들로 셈해지고 구분의 어떠한 특수한 절도 형성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 2. 마찬가지로, 비록 그 무한판단들이 일반 논리학에서 정당하게 저 긍정판단들로 셈해지고 구분의 어떠한 특수한 절도 형성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초월론적 논리학에서 무한판단들은 긍정판단과 구분되어야만 한다.

Diese nämlich abstrahieret von allem Inhalt des Prädikats (ob es gleich verneinend ist) und sieht nur darauf, ob dasselbe dem Subjekt beigelegt, oder ihm entgegengesetzt werde.

다시 말해 이러한 무한판단은 술어의 모든 내용을 도외시하고 (비록 그 내용이 부정이라 할지라도) 단지 그에 대해서 본다, 그 술어 자체가 주어에 덧붙여지는지, 또는 그 주어에 반대되는지.

→ 다시 말해 이러한 무한판단은 술어의 모든 내용을 도외시하고 (비록 그 내용이 부정이라 할지라도) 단지, 그 술어 자체가 주어에 덧붙여지는지, 또는 그 주어에 반대되는지 그에 대해서만 본다.

Jene aber betrachtet das Urteil auch nach dem Werte oder Inhalt dieser logischen Bejahung vermittelst eines bloß verneinenden Prädikats, und was diese in Ansehung des gesamten Erkenntnisses für einen Gewinn verschafft.

그러나 저 긍정판단은 판단을 또한 순전한 부정 술어에 따라서 이러한 논리적 긍정의 값이나 내용에 따라 평가하고, 이러한 것을 이익에 대한 전체 인식의 고려 속에서 이러한 것을 마련하는 것을 평가한다.

→ 그러나 저 긍정판단은 판단을 또한 순전한 부정 술어에 따라서 이러한 논리적 긍정의 값이나 내용에 따라 평가하고, 이러한 것을 이익에 대한 전체 인식의 고려 속에서 이러한 것을 마련하는 것을 평가한다.

Hätte ich von der Seele gesagt, sie ist nicht sterblich, so hätte ich durch ein verneinendes Urteil wenigstens einen Irrtum abgehalten.

내가 영혼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영혼이 필멸이 아니라고, 그래서 나는 부정판단을 통하여 최소한 오류를 막을 것이다.

→ 내가 영혼에 대해 영혼이 필멸이 아니라고 이야기 한다면 나는 부정판단을 통하여 최소한 오류를 막을 것이다.

Nun habe ich durch den Satz: die Seele ist nichtsterblich, zwar der logischen Form nach wirklich bejahet, indem ich die Seele in den unbeschränkten Umfang der nichtsterbenden Wesen setze.

이제 나는 영혼은 불사적이다라는 명제를 통하여, 더욱이 그 논리적 형식을 통하여 실질적으로 긍정한다, 내가 영혼을 불멸하는 실체들의 무한정한 범위 안으로 놓음으로써.

→ 이제 나는, 내가 영혼을 불멸하는 실체들의 무한정한 범위 안으로 놓음으로써, 영혼은 불사적이다라는 명제를 통하여, 더욱이 그 논리적 형식을 통하여 실질적으로 긍정한다.

Weil nun von dem ganzen Umfang möglicher Wesen das Sterbliche einen Teil enthält, das Nichtsterbende aber den andern, so ist durch meinen Satz nichts anders gesagt, als daß die Seele eines von der unendlichen Menge Dinge sei, die übrig bleiben, wenn ich das Sterbliche insgesamt wegnehme.

이제 가능한 실체들의 전범위로부터 필멸하는 것이 일부분을 포함하고, 그러나 불멸하는 것은 다른 부분을 (포함하므로), 그래서 나의 명제를 통해서 다른 아무것도 이야기되지 않는다, 영혼은 무한히 많은 것들에 대한 하나일 것이다, 그 많은 것들이 남아 있는, 내가 필멸하는 것 모두를 제거할 때.

→ 이제 가능한 실체들의 전범위로부터 필멸하는 것이 일부분을 포함하고, 그러나 불멸하는 것은 다른 부분을 (포함하므로), 그래서 나의 명제를 통해서, 영혼은 내가 필멸하는 것 모두를 제거할 때 남아 있는 무한히 많은 것들 중에 하나일 것이라는 것 외에 다른 아무것도 이야기되지 않는다.

Dadurch aber wird nur die unendliche Sphäre alles Möglichen in so weit beschränkt, daß das Sterbliche davon abgetrennt, und in dem übrigen Raum ihres Umfangs die Seele gesetzt wird.

그러나 그를 통하여 다만 모든 가능한 것의 무한한 범위가 그 만큼에서 한정된다, 필멸하는 것을 그로부터 분리시키고, 그 범위의 남은 공간에 영혼이 놓인다는 것.

→ 그러나 그를 통하여 다만 모든 가능한 것의 무한한 범위가, 필멸하는 것을 그로부터 분리시키고, 그 범위의 남은 공간에 영혼이 놓인다는 것, 그 만큼에서 한정된다.

Dieser Raum bleibt aber bei dieser Ausnahme noch immer unendlich, und können noch mehrere Teile desselben weggenommen werden, ohne daß darum der Begriff von der Seele im mindesten wächst, und bejahend bestimmt wird.

그러나 이러한 공간은 이러한 예외에 있어서 여전히 무한하고, 그 공간의 더 많은 부분들이 제거될 수 있다, 영혼에 대한 개념이 최소한으로 확장되거나, 또 긍정적으로 규정되는 것 없이.

→ 그러나 이러한 공간은 이러한 예외에 있어서 여전히 무한하고, 그 공간의 더 많은 부분들이, 영혼에 대한 개념이 최소한으로 확장되거나, 또 긍정적으로 규정되는 것 없이 제거될 수 있다.

Diese unendliche Urteile also in Ansehung des logischen Umfanges sind wirklich bloß beschränkend in Ansehung des Inhalts der Erkenntnis überhaupt, und in so fern müssen sie in der transtzendentalen Tafel aller Momente des Denkens in den Urteilen nicht übergangen werden, weil die hierbei ausgeübte Funktion des Verstandes vielleicht in dem Felde seiner reinen Erkenntnis a priori wichtig sein kann.

이러한 무한한 판단들은 그러므로 논리적 범위의 고려 속에서 실제로 순전히 인식 전반의 내용에 대한 고려에서 제한되고, 그러한 한에서 무한한 판단들이 판단들 속에서 사유의 모든 계기들의 초월론적 목록표 안에서 넘어서게 되지 않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이와 관련하여 수행된 지성의 활동은 아마도 그 지성의 순수한 선험적 인식의 범위 안에서 주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이러한 무한한 판단들은 그러므로 논리적 범위의 고려 속에서 실제로 순전히 인식 전반의 내용에 대한 고려에서 제한되고, 그러한 한에서 무한한 판단들이 판단들 속에서 사유의 모든 계기들의 초월론적 목록표 안에서 넘어서게 되지 않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이와 관련하여 수행된 지성의 활동은 아마도 그 지성의 순수한 선험적 인식의 범위 안에서 주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Alle Verhältnisse des Denkens in Urteilen sind die a) des Prädikats zum Subjekt, b) des Grundes zur Folge, c) der eingeteilten Erkenntnis und der gesammleten Glieder der Einteilung unter einander.

3. 판단들 속에서 사유의 모든 관계들은 a) 주어에 대한 술어의 관계, b) 결과에 대한 원인의 관계, c) 분할된 인식의 관계와 상호간의 구분의 취합된 마디들의 관계이다.

→ 3. 판단들 속에서 사유의 모든 관계들은 a) 주어에 대한 술어의 관계, b) 결과에 대한 원인의 관계, c) 분할된 인식의 관계와 상호간의 구분의 취합된 마디들의 관계이다.

In der ersteren Art der Urteile sind nur zwei Begriffe, in der zweiten zweene Urteile, in der dritten mehrere Urteile im Verhältnis gegen einander betrachtet.

첫번째 관계에서 판단의 기능은 단지 두 가지 개념들을, 두번째 관계에서는 두 가지 판단들을, 세번째 관계에서는 더 많은 판단들을 상호 관계에 있어서 관찰된다.

→ 첫번째 관계에서 판단의 기능은 단지 두 가지 개념들을, 두번째 관계에서는 두 가지 판단들을, 세번째 관계에서는 더 많은 판단들을 상호 관계에 있어서 관찰된다.

Der hypothetische Satz: wenn eine vollkommene Gerechtigkeit da ist, so wird der beharrlich Böse bestraft, enthält eigentlich das Verhältnis zweier Stätze: Es ist eine vollkommene Gerechtigkeit da, und der beharllich Böse wird bestraft.

가설적 명제: 완전한 정의가 여기에 있을 때에는, 그래서 완강한 죄인들은 처벌받는다, 는 본래 두 명제들의 관계를 포함한다: 하나의 완전한 정의가 여기에 있다는 것, 그리고 완강한 죄인들이 처벌받는다는 것이다.

→ 완전한 정의가 여기에 있을 때에는, 그래서 완강한 죄인들은 처벌받는다는 가설적 명제는 본래, 하나의 완전한 정의가 여기에 있다는, 그리고 완강한 죄인들이 처벌받는다는 두 명제들의 관계를 포함한다.

Ob beide dieser Sätze an sich wahr sein, bleibt hier unausgemacht.

이러한 명제들 둘 모두가 그 자체로 참인지 아닌지는, 여기에서 결정되지 않고 남는다.

→ 이러한 명제들 둘 모두가 그 자체로 참인지 아닌지는, 여기에서 결정되지 않고 남는다.

Es ist nur die Konsequenz, die durch dieses Urteil gedacht wird.

그것은 단지 결론일 뿐이다, 그 결론이 이러한 판단을 통해 생각되는.

→ 그것은 단지 이러한 판단을 통해 생각되는 결론일 뿐이다.

 

-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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