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r problematische Satz ist also derjenige, der nur logische Möglichkeit (die nicht objektiv ist) ausdruckt, d.i. eine freie Wahl einen solchen Satz gelten zu lassen, eine bloß willkürliche Aufnehmung desselben in den Verstand. Der assertorische sagt von logischer Wirklichkeit oder Wahrheit, wie etwa in einem hypothetischen Vernunftschluß das Antecedens im Obersatze problematisch, im Untersatze assertorisch vorkommt, und zeigt an, daß der Satz mit dem Verstande nach dessen Gesetzen schon verbunden sei; der apodiktische Satz denkt sich den assertorischen durch diese Gesetze des Verstandes selbst bestimmt, und daher a priori behauptend, und drückt auf solche Weise logische Notwendigkeit aus. Weil nun hier alles sich gradweise dem Verstande einverleibt, so daß man zuvor etwas problematisch urteilt, darauf auch wohl es assertorisch als wahr annimmt, endlich als unzertrennlich mit dem Verstande verbunden, d.i. als notwendig und apodiktisch behauptet, so kann man diese drei Funktionen der Modalität auch so viel Momente des Denkens überhaupt nennen.
→ 개연 명제는 그러므로 그것, 단지 논리적 가능성 (대상적-객관적? 가능성이 아니라) 을 나타내는, 즉 자의적 선택이 그러한 명제를 유효하도록 하는, 지성 내로의 그 명제의 순전히 임의적인 수용이다.→ 단언 명제는 아마도 가언적인 이성추론에서 전항(前項)이 대전제 안에서는 개연적으로 소전제 안에서는 단언적으로 있듯이, 그렇게 논리적 실재성 혹은 참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리고 단언 명제는 그 명제가 지성과 그 지성의 법칙들에 따라 이미 결합하리란 것을 가리킨다; 필연 명제는 스스로 단언 명제를 이러한 지성 자체의 법칙들을 통해 규정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필연 명제는 선험적으로 주장하면서, 그리고 그러한 방식에 대해 논리적 필연성을 나타낸다.→ 왜냐하면 이제 여기에서 모든 것은 스스로 점차 지성에 통합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우선 어떤 것을 개연적으로 판단하고, 그로부터 또한 그것을 충분히 단언적으로 참으로서 받아들이고, 끝으로 내재적인 것으로서 지성과 결합시킨다는 것, 즉 불가결하고 필연적인 것으로서 주장한다는 것 때문에, 그래서 사람들은 이러한 양상의 세 가지 기능을 또한 그렇게 많은 사유 일반의 계기들(상황들)로 명명할 수 있다.


Der problematische Satz ist also derjenige, der nur logische Möglichkeit (die nicht objektiv ist) ausdruckt, d.i. eine freie Wahl einen solchen Satz gelten zu lassen, eine bloß willkürliche Aufnehmung desselben in den Verstand.
개연 명제는 그러므로 그것, 단지 논리적 가능성 (대상적-객관적? 가능성이 아니라) 을 나타내는, 즉 자의적 선택이 그러한 명제를 유효하도록 하는, 지성 내로의 그 명제의 순전히 임의적인 수용이다.
→ 개연 명제는 그러므로 그것, 단지 논리적 가능성 (대상적-객관적? 가능성이 아니라) 을 나타내는, 즉 자의적 선택이 그러한 명제를 유효하도록 하는, 지성 내로의 그 명제의 순전히 임의적인 수용이다.
Der assertorische sagt von logischer Wirklichkeit oder Wahrheit, wie etwa in einem hypothetischen Vernunftschluß das Antecedens im Obersatze problematisch, im Untersatze assertorisch vorkommt, und zeigt an, daß der Satz mit dem Verstande nach dessen Gesetzen schon verbunden sei; der apodiktische Satz denkt sich den assertorischen durch diese Gesetze des Verstandes selbst bestimmt, und daher a priori behauptend, und drückt auf solche Weise logische Notwendigkeit aus.
단언 명제는 논리적 실재성 혹은 참에 대해 이야기 한다, 아마도 가언적인 이성추론에서 전항(前項)이 대전제 안에서 개연적으로, 소전제 안에서 단언적으로 있듯이, 그리고 가리킨다, 그 명제가 지성과 그 지성의 법칙들에 따라 이미 결합하리란 것을; 필연 명제는 스스로 단언 명제를 이러한 지성 자체의 법칙들을 통해 규정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선험적으로 주장하면서, 그리고 그러한 방식에 대해 논리적 필연성을 나타낸다.
→ 단언 명제는 아마도 가언적인 이성추론에서 전항(前項)이 대전제 안에서는 개연적으로 소전제 안에서는 단언적으로 있듯이, 그렇게 논리적 실재성 혹은 참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리고 단언 명제는 그 명제가 지성과 그 지성의 법칙들에 따라 이미 결합하리란 것을 가리킨다; 필연 명제는 스스로 단언 명제를 이러한 지성 자체의 법칙들을 통해 규정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필연 명제는 선험적으로 주장하면서, 그리고 그러한 방식에 대해 논리적 필연성을 나타낸다.
Weil nun hier alles sich gradweise dem Verstande einverleibt, so daß man zuvor etwas problematisch urteilt, darauf auch wohl es assertorisch als wahr annimmt, endlich als unzertrennlich mit dem Verstande verbunden, d.i. als notwendig und apodiktisch behauptet, so kann man diese drei Funktionen der Modalität auch so viel Momente des Denkens überhaupt nennen.
왜냐하면 이제 여기에서 모든 것은 스스로 점차 지성에 통합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우선 어떤 것을 개연적으로 판단한다는 것, 그로부터 또한 그것을 충분히 단언적으로 참으로서 받아들이고, 끝으로 내재적인 것으로서 지성과 결합시킨다는 것, 즉 불가결하고 필연적인 것으로서 주장한다는 것 때문에, 그래서 사람들은 이러한 양상의 세 가지 기능을 또한 그렇게 많은 사유 일반의 계기들(상황들)로 명명할 수 있다.
→ 왜냐하면 이제 여기에서 모든 것은 스스로 점차 지성에 통합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우선 어떤 것을 개연적으로 판단하고, 그로부터 또한 그것을 충분히 단언적으로 참으로서 받아들이고, 끝으로 내재적인 것으로서 지성과 결합시킨다는 것, 즉 불가결하고 필연적인 것으로서 주장한다는 것 때문에, 그래서 사람들은 이러한 양상의 세 가지 기능을 또한 그렇게 많은 사유 일반의 계기들(상황들)로 명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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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blematische Urteile sind solche, wo man das Bejahen oder Verneinen als bloß moglich (beliebig) annimmt. Assertorische, da es als wirklich (wahr) betrachtet wird. Apodiktische, in denen man es als notwendig ansieht¹. So sind die beiden Urteile, deren Verhaltnis das hypothetische Urteil ausmacht, (antec. und consequ.), imgleichen in deren Wechselwirkung das Disjunktive besteht, (Glieder der Einteilung) insgesamt nur problematisch. In dem obigen Beispiel wird der Satz: es ist eine vollkommene Gerechtigkeit da, nicht assertorisch gesagt, sondern nur als ein beliebiges Urteil, wovon es moglich ist, daß jemand es annehme, gedacht, und nur die Konsequenz ist assertorisch. Daher konnen solche Urteile auch offenbar falsch sein, und doch, problematisch genommen, Bedingungen der Erkenntnis der Wahrheit sein. So ist das Urteil: die Welt ist durch blinden Zufall da, in dem disjunktiven Urteil nur von problematischer Bedeutung, namlich, daß jemand diesen Satz etwa auf einen Augenblick annehmen moge, und dient doch, (wie die Verzeichnung des falschen Weges, unter der Zahl aller derer, die man nehmen kann,) den wahren zu finden.
→ 개연 판단들은 사람들이 긍정이나 부정을 순전히 가능적인 것으로서 (임의적인 것으로서) 받아들이는 경우 그러한 개연 판단들이다.→ 단정 판단들은 그것이 현실적인 것으로 (참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그러한 판단들이다.→ 필연 판단들은 그 판단들 안에서 사람들이 그것을 필연적인 것으로 간주하는¹ 그러한 판단들이다.→ 그래서 그것들의 관계가 가언 판단을 형성하는 양자의 판단들(전제와 결론)은 그 판단들의 상호작용 안에 선언 판단이 존립하는 판단들(분할의 마디들)과 마찬가지로 모두 다 단지 개연적이다.→ 상술한 예시에서 :여기에 완전한 정의가 있다 라는 명제는 단정적으로 이야기되지 않고, 오히려 단지 그와 관련하여 누군가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한, 임의적 판단으로서만 생각된다. 그리고 오로지 결론만이 단정적이다.→ 그런 이유로 그러한 판단은 또한 명백한 오류일 수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연적으로 취해질 때 진리에 대한 인식의 조건들일 수 있다.→ 그래서 :세계는 맹목적 우연에 의해 여기 있다 라는 판단은 선언 판단 안에서 오로지 개연적 의미에 대한 것일 뿐이다. 즉 누군가 이 명제를 어느 정도 현재에 대해 취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그 모든 길들의 수 아래에서 잘못된 길의 기록과 같이) 진리를 발견하는 데에 쓸모가 있다.

¹ Gleich, als wenn das Denken im ersten Fall eine Funktion des Verstandes, im zweiten der Urteilskraft, im dritten der Vernunft ware. Eine Bemerkung, die erst in der Folge ihre Aufklarung erwartet.
→ ¹ 마찬가지로, 사유는 첫째로 지성의 기능이고, 다음으로 판단력의, 세 번째로 이성의 기능일 것이다.→ 이 소견은 이어지는 장들에서 처음으로 그 해명이 기대된다.


Problematische Urteile sind solche, wo man das Bejahen oder Verneinen als bloß moglich (beliebig) annimmt.
개연 판단들은 그러한 것들이다, 사람들이 긍정이나 부정을 순전히 가능적인 것으로서 (임의적인 것으로서) 받아들이는 경우.
→ 개연 판단들은 사람들이 긍정이나 부정을 순전히 가능적인 것으로서 (임의적인 것으로서) 받아들이는 경우 그러한 개연 판단들이다.
Assertorische, da es als wirklich (wahr) betrachtet wird.
단정 판단들은, 그것이 현실적인 것으로 (참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 단정 판단들은 그것이 현실적인 것으로 (참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그러한 판단들이다.
Apodiktische, in denen man es als notwendig ansieht¹.
필연 판단들은, 그 판단들 안에서 사람들이 그것을 필연적인 것으로 간주하는¹.
→ 필연 판단들은 그 판단들 안에서 사람들이 그것을 필연적인 것으로 간주하는¹ 그러한 판단들이다.
So sind die beiden Urteile, deren Verhaltnis das hypothetische Urteil ausmacht, (antec. und consequ.), imgleichen in deren Wechselwirkung das Disjunktive besteht, (Glieder der Einteilung) insgesamt nur problematisch.
그래서 양자의 판단들은, 그것들의 관계가 가언 판단을 형성하는, (전제와 결론), 그 판단들의 상호작용 안에 선언 판단이 존립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분할의 마디들) 모두 다 단지 개연적이다.
→ 그래서 그것들의 관계가 가언 판단을 형성하는 양자의 판단들(전제와 결론)은 그 판단들의 상호작용 안에 선언 판단이 존립하는 판단들(분할의 마디들)과 마찬가지로 모두 다 단지 개연적이다.
In dem obigen Beispiel wird der Satz: es ist eine vollkommene Gerechtigkeit da, nicht assertorisch gesagt, sondern nur als ein beliebiges Urteil, wovon es moglich ist, daß jemand es annehme, gedacht, und nur die Konsequenz ist assertorisch.
상술한 예시에서 :여기에 완전한 정의가 있다 라는 명제는, 단정적으로 이야기되지 않고, 오히려 단지 임의적 판단으로서만, 그로부터 그것이 가능한, 누군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생각된다, 그리고 오로지 결론만이 단정적이다.
→ 상술한 예시에서 :여기에 완전한 정의가 있다 라는 명제는 단정적으로 이야기되지 않고, 오히려 단지 그와 관련하여 누군가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한, 임의적 판단으로서만 생각된다. 그리고 오로지 결론만이 단정적이다.
Daher konnen solche Urteile auch offenbar falsch sein, und doch, problematisch genommen, Bedingungen der Erkenntnis der Wahrheit sein.
그런 이유로 그러한 판단은 또한 명백한 오류일 수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연적으로 취해질 때, 진리에 대한 인식의 조건들일 수 있다.
→ 그런 이유로 그러한 판단은 또한 명백한 오류일 수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연적으로 취해질 때 진리에 대한 인식의 조건들일 수 있다.
So ist das Urteil: die Welt ist durch blinden Zufall da, in dem disjunktiven Urteil nur von problematischer Bedeutung, namlich, daß jemand diesen Satz etwa auf einen Augenblick annehmen moge, und dient doch, (wie die Verzeichnung des falschen Weges, unter der Zahl aller derer, die man nehmen kann,) den wahren zu finden.
그래서 :세계는 맹목적 우연에 의해 여기 있다 라는 판단은, 선언 판단 안에서 오로지 개연적 의미에 대한 것일 뿐이다. 즉, 누군가 이 명제를 어느 정도 현재에 대해 취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쓸모가 있다, (잘못된 길의 기록이, 그 모든 잘못된 길들의 수 아래에서, 그 수를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진리를 발견하는.
→ 그래서 :세계는 맹목적 우연에 의해 여기 있다 라는 판단은 선언 판단 안에서 오로지 개연적 의미에 대한 것일 뿐이다. 즉 누군가 이 명제를 어느 정도 현재에 대해 취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그 모든 길들의 수 아래에서 잘못된 길의 기록과 같이) 진리를 발견하는 데에 쓸모가 있다.

¹ Gleich, als wenn das Denken im ersten Fall eine Funktion des Verstandes, im zweiten der Urteilskraft, im dritten der Vernunft ware.
¹ 마찬가지로, 사유가 첫째로 지성의 기능이고, 다음으로 판단력의, 세 번째로 이성의 기능일 것이다.
→ ¹ 마찬가지로, 사유는 첫째로 지성의 기능이고, 다음으로 판단력의, 세 번째로 이성의 기능일 것이다.
Eine Bemerkung, die erst in der Folge ihre Aufklarung erwartet.
소견, 처음으로 이어지는 장들에서 그 소견의 해명을 기대하는.
→ 이 소견은 이어지는 장들에서 처음으로 그 해명이 기대된다.

-蟲-
Endlich enthält das disjunktive Urteil ein Verhältnis zweener, oder mehrerer Sätze gegen einander, aber nicht der Abfolge, sondern der logischen Entgegensetzung, so fern die Sphäre des einen die des andern ausschließt, aber doch zugleich der Gemeinschaft, in so fern sie zusammen die Sphäre der eigentlichen Erkenntnis ausfüllen, also ein Verhältnis der Teile der Sphäre eines Erkenntnisses, da die Sphäre eines jeden Teils ein Ergänzungsstück der Sphäre des andern zu dem ganzen Inbegriff der eingeteilten Erkenntnis ist, z.E. die Welt ist entweder durch einen blinden Zufall da, oder durch innre Notwendigkeit, oder durch eine äußere Ursache. Jeder dieser Sätze nimmt einen Teil der Sphäre des möglichen Erkenntnisses über das Dasein einer Welt überhaupt ein, alle zusammen die ganze Sphäre. Das Erkenntnis aus einer dieser Sphären wegnehmen, heißt, sie in eine der übrigen setzen, und dagegen sie in eine Sphäre setzen, heißt, sie aus den übrigen wegnehmen. Es ist also in einem disjunktiven Urteile eine gewisse Gemeinschaft der Erkenntnisse, die darin besteht, daß sie sich wechselseitig einander ausschließen, aber dadurch doch im Ganzen die wahre Erkenntnis bestimmen, indem sie zusammengenommen den ganzen Inhalt einer einzigen gegebenen Erkenntnis ausmachen. Und dieses ist es auch nur, was ich des Folgenden wegen hiebei anzumerken nötig finde.
→ 끝으로 선언판단은 둘 혹은 그 이상의 명제들 상호간의 관계를 포함하지만, 연속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한 명제의 범위가 나머지 명제의 범위를 배제하는 한에서 논리적 반대 관계를 포함한다. 그러나 선언판단은 그럼에도시에 그 명제들이 함께 고유한 인식의 범위를 만족시키는 한에서 결합의 관계를 포함하는데, 그러므로 선언판단은 분활된 인식의 전반적 총괄에 대해 각 부분의 범위가 다른 부분의 범위의 보충이므로 인식의 범위의 부분들의 관계를 포함한다. 예를 들어 세계는 맹목적 우연을 통해 현존하거나, 또는 내적 필연성을 통해 현존하거나, 아니면 외적 원인을 통해 현존한다.→ 이러한 범위들 중에 하나로부터 인식을 배제한다는 것은 그 인식을 남은 범위들 중 하나에 놓는다는 것을 일컫는 것이고, 반대로 그 인식을 한 범위에 놓는다는 것은 그 인식을 남은 범위들로부터 배제한다는 것을 일컫는다.→ 그러므로 그것은 선언 판단에 있어서, 그 인식들 자체가 상호간에 서로를 배제한다는, 그러나 그럼에도 그를 통하여 전체적으로 그 인식들이 단일하게 주어진 인식의 전체 내용을 형성함으로써 전체에 있어서 참된 인식을 규정한다는 점에 존립하는, 인식들의 확실한 결합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은 또한 단지, 내가 뒤따르는 것을 위해 이와 관련하여 첨언할 필요가 있다고 여기는 것일 뿐이다.
4. Die Modalität der Urteile ist eine ganz besondere Funktion derselben, die das Unterscheidende an sich hat, daß sie nichts zum Inhalte des Urteils beiträgt, (denn außer Größe, Qualität und Verhältnis ist nichts mehr, was den Inhalt eines Urteils ausmachte,) sondern nur den Wert der Copula in Beziehung auf das Denken überhaupt angeht.
→ 4. 판단의 양상은, 그 기능은 판단의 내용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고, (왜냐하면 외적 양, 질 그리고 관계 외에는 그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판단의 내용을 형성하는 것은,) 오히려 단지 사유 일반과 관련 속에서 결속의 값(가치)에만 관계한다는 특징을 그 자체로 지니는, 판단의 전적으로 특수한 기능이다.


Endlich enthält das disjunktive Urteil ein Verhältnis zweener, oder mehrerer Sätze gegen einander, aber nicht der Abfolge, sondern der logischen Entgegensetzung, so fern die Sphäre des einen die des andern ausschließt, aber doch zugleich der Gemeinschaft, in so fern sie zusammen die Sphäre der eigentlichen Erkenntnis ausfüllen, also ein Verhältnis der Teile der Sphäre eines Erkenntnisses, da die Sphäre eines jeden Teils ein Ergänzungsstück der Sphäre des andern zu dem ganzen Inbegriff der eingeteilten Erkenntnis ist, z.E. die Welt ist entweder durch einen blinden Zufall da, oder durch innre Notwendigkeit, oder durch eine äußere Ursache.
끝으로 선언판단은 둘 혹은 그 이상의 명제들 상호간의 관계를 포함하지만, 연속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논리적 반대 관계를 포함한다, 한 명제의 범위가 나머지 명제의 범위를 배제하는 한에서, 그러나 그럼에도 동시에 결합의 관계를 포함하는데, 그 명제들이 함께 고유한 인식의 범위를 만족시키는 한에서, 그러므로 인식의 범위의 부분들의 관계를 포함한다, 분활된 인식의 전반적 총괄에 대해 각 부분의 범위가 다른 부분의 범위의 보충이므로, 예를 들어 세계는 맹목적 우연을 통해 현존하거나, 또는 내적 필연성을 통해 현존하거나, 아니면 외적 원인을 통해 현존한다.
→ 끝으로 선언판단은 둘 혹은 그 이상의 명제들 상호간의 관계를 포함하지만, 연속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한 명제의 범위가 나머지 명제의 범위를 배제하는 한에서 논리적 반대 관계를 포함한다. 그러나 선언판단은 그럼에도시에 그 명제들이 함께 고유한 인식의 범위를 만족시키는 한에서 결합의 관계를 포함하는데, 그러므로 선언판단은 분활된 인식의 전반적 총괄에 대해 각 부분의 범위가 다른 부분의 범위의 보충이므로 인식의 범위의 부분들의 관계를 포함한다. 예를 들어 세계는 맹목적 우연을 통해 현존하거나, 또는 내적 필연성을 통해 현존하거나, 아니면 외적 원인을 통해 현존한다.
Jeder dieser Sätze nimmt einen Teil der Sphäre des möglichen Erkenntnisses über das Dasein einer Welt überhaupt ein, alle zusammen die ganze Sphäre.
이러한 각각의 명제는 세계 일반의 현존에 대하여 가능한 인식의 범위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모두 합쳐서 전체 범위를 차지한다.
→ 이러한 각각의 명제는 세계 일반의 현존에 대하여 가능한 인식의 범위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모두 합쳐서 전체 범위를 차지한다.
Das Erkenntnis aus einer dieser Sphären wegnehmen, heißt, sie in eine der übrigen setzen, und dagegen sie in eine Sphäre setzen, heißt, sie aus den übrigen wegnehmen.
이러한 범위들 중에 하나로부터 인식을 배제한다는 것은, 말한다, 그 인식을 남은 범위들 중 하나에 놓는다는 것을, 그리고 반대로 그 인식을 한 범위에 놓는다는 것은, 말한다, 그 인식을 남은 범위들로부터 배제한다는 것을.
→ 이러한 범위들 중에 하나로부터 인식을 배제한다는 것은 그 인식을 남은 범위들 중 하나에 놓는다는 것을 일컫는 것이고, 반대로 그 인식을 한 범위에 놓는다는 것은 그 인식을 남은 범위들로부터 배제한다는 것을 일컫는다.
Es ist also in einem disjunktiven Urteile eine gewisse Gemeinschaft der Erkenntnisse, die darin besteht, daß sie sich wechselseitig einander ausschließen, aber dadurch doch im Ganzen die wahre Erkenntnis bestimmen, indem sie zusammengenommen den ganzen Inhalt einer einzigen gegebenen Erkenntnis ausmachen.
그러므로 그것은 선언 판단에 있어서 인식들의 확실한 결합이다, 그 결합이 다음과 같은 점에 존립하는, 그 인식들 자체가 상호간에 서로를 배제한다는 것, 그러나 그를 통하여 그럼에도 전체에 있어서 참된 인식을 규정한다는 것, 전체적으로 그 인식들이 단일하게 주어진 인식의 전체 내용을 형성함으로써.
→ 그러므로 그것은 선언 판단에 있어서, 그 인식들 자체가 상호간에 서로를 배제한다는, 그러나 그럼에도 그를 통하여 전체적으로 그 인식들이 단일하게 주어진 인식의 전체 내용을 형성함으로써 전체에 있어서 참된 인식을 규정한다는 점에 존립하는, 인식들의 확실한 결합이다.
Und dieses ist es auch nur, was ich des Folgenden wegen hiebei anzumerken nötig finde.
그리고 이러한 것은 또한 단지, 내가 뒤따르는 것을 위해 이와 관련하여 첨언할 필요가 있다고 여기는 것일 뿐이다.
→ 그리고 이러한 것은 또한 단지, 내가 뒤따르는 것을 위해 이와 관련하여 첨언할 필요가 있다고 여기는 것일 뿐이다.

4. Die Modalität der Urteile ist eine ganz besondere Funktion derselben, die das Unterscheidende an sich hat, daß sie nichts zum Inhalte des Urteils beiträgt, (denn außer Größe, Qualität und Verhältnis ist nichts mehr, was den Inhalt eines Urteils ausmachte,) sondern nur den Wert der Copula in Beziehung auf das Denken überhaupt angeht.
4. 판단의 양상은 판단의 전적으로 특수한 기능이다, 그 기능이 특징을 그 자체로 지니는, 그 기능은 판단의 내용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고, (왜냐하면 외적 양, 질 그리고 관계 외에는 그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판단의 내용을 형성하는 것은,) 오히려 단지 사유 일반과 관련 속에서 결속의 값(가치)에만 관계한다는.
→ 4. 판단의 양상은, 그 기능은 판단의 내용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고, (왜냐하면 외적 양, 질 그리고 관계 외에는 그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판단의 내용을 형성하는 것은,) 오히려 단지 사유 일반과 관련 속에서 결속의 값(가치)에만 관계한다는 특징을 그 자체로 지니는, 판단의 전적으로 특수한 기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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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 Leitfadens der Entdeckung aller reinen Verstandesbegriffe

모든 순수 지성개념들의 발견의 실마리

Zweiter Abschnitt

제 2 장

§ 9. Von der logischen Funktion des Verstandes in Urteilen

§ 9. 판단들에 있어서 지성의 논리적 기능에 대하여

Wenn wir von allem Inhalte eines Urteils überhaupt abstrahieren, und nur auf die bloße Verstandesform darin Acht geben, so finden wir, daß die Funktion des Denkens in demselben unter vier Titel gebracht werden könne, deren jeder drei Momente unter sich enthält. Sie können füglich in folgender Tafel vorgestellt werden.

→ 만일 우리가 판단 전반의 모든 내용들을 추상하고 그 점에 있어서 단지 순전한 지성형식에만 주목한다면 우리는 지성의 기능이 그 판단 자체에서 그 각각이 세 계기들을 포섭하는 네 항목들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 항목들은 적절하게 다음 표에서 제시될 수 있다.

 

 1. Quantität der Urteile.

판단의 양

 

 

 Allgemeine 전칭

 Besondere 특칭

 Einzelne 단칭

 

 2. Qualität.

 

 3. Relation. 관계

 Bejahende 긍정

 Verneinende 부정

 Unendliche 무한

 

 Kategorische 정언

 Hypothetische 가언

 Disjunktive 선언

 

 4. Modalität. 양상

 

 

 Problematische 개연

 Assertorische 단정

 Apodiktische 필연

 


Da diese Einteliung in einigen, obgleich nicht wesentlichen Stücken, von der gewohnten Technik der Logiker abzuweichen scheint, so werden folgende Verwahrungen wider den besorglichen Mißverstand nicht unnötig sein.

→ 이러한 구분은 비록 본질적인 부분들에서는 아니더라도 몇몇 부분들에서 논리학자들의 통상적인 기술과 구분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염려되는 오해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이의들이 불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1. Die Logiker sagen mit Recht, daß man beim Gebrauch der Urteile in Vernunftschlüssen die einzelnen Urteile gleich den allgemeinen behandeln könne. Denn eben darum, weil sie gar keinen Umfang haben, kann das Prädikat derselben nicht bloß auf einiges dessen, was unter dem Begriff des Subjekts enthalten ist, gezogen, von einigem aber ausgenommen werden. Es gilt also von jenem Begriffe ohne Ausnahme, gleich als wenn derselbe ein gemeingültiger Begriff wäre, der einen Umfang hätte, von dessen ganzer Bedeutung das Prädikat gelte. Vergleichen wir dagegen ein einzelnes Urteil mit einem gemeingültigen, bloß als Erkenntnis, der Größe nach, so verhält sie sich zu diesem wie Einheit zur Unendlichkeit, und ist also sich selbst davon wesentlich unterschieden. Also, wenn ich ein einzelnes Urteil (judicium singulare) nicht bloß nach seiner innern Gültigkeit, sondern auch, als Erkenntnis überhaupt, nach der Größe, die es in Vergleichung mit andern Erkenntnissen hat, schätze, so ist es allerdings von gemeingültigen Urteilen (judicia communia) unterschieden, und verdient in einer vollständigen Tafel der Momente des Denkens überhaupt (obzwar freilich nicht in der bloß auf den Gebrauch der Urteile untereinander eingeschränkten Logik) eine besondere Stelle.

→1. 논리학자들이 사람들은 이성 추론들에서 판단들의 사용에 있어서 단칭 판단들을 전칭 판단들과 마찬가지로 취급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정당하다.→ 왜냐하면 단칭 판단들이 전혀 아무런 외연도 가지지 않으므로 정확히 그 점에서 그 판단들의 술어가 주어의 개념 아래에 포함되는 몇몇에만 관련되고 몇몇에는 제외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단칭 판단은 모든 개념들에 대해서 예외 없이 유효한데, 동일한 판단이 외연을 가지는 보편타당한 개념일 경우 전체 의미의 개념에 대해 술어가 타당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 우리는 그에 반해 단칭 판단을 크기에 따르는 순전한 인식으로서 보편타당한 판단에 비유한다. 그래서 이러한 판단에 그 인식이 무한성에 대한 통일성과 같이 관계하고, 그러므로 그 인식 자체는 그로부터 본질적으로 구분된다.→ 그러므로 만일 내가 단칭 판단을 단지 그 내적 정당성이 아니라 오히려 인식 전반으로서 다른 인식들과의 비교 속에서 가지는 크기에 따라 평가한다면, 그 판단은 당연히 보편타당한 판단들과 구분되고, 사유 전반의 계기들의 완전한 도표 안에서 (비록 확실히 판단들 상호의 사용에 대한 제한된 논리학에서는 아니라 하더라도) 특수한 위치를 차지할 만하다.

2. Eben so müssen in einer transzendentalen Logik unendliche Urteile von bejahenden noch unterschieden werden, wenn sie gleich in der allgemeinen Logik jeden mit Recht beigezählt sind und kein besonderes Glied der Einteilung ausmachen. Diese nämlich abstrahieret von allem Inhalt des Prädikats (ob es gleich verneinend ist) und sieht nur darauf, ob dasselbe dem Subjekt beigelegt, oder ihm entgegengesetzt werde. Jene aber betrachtet das Urteil auch nach dem Werte oder Inhalt dieser logischen Bejahung vermittelst eines bloß verneinenden Prädikats, und was diese in Ansehung des gesamten Erkenntnisses für einen Gewinn verschafft. Hätte ich von der Seele gesagt, sie ist nicht sterblich, so hätte ich durch ein verneinendes Urteil wenigstens einen Irrtum abgehalten. Nun habe ich durch den Satz: die Seele ist nichtsterblich, zwar der logischen Form nach wirklich bejahet, indem ich die Seele in den unbeschränkten Umfang der nichtsterbenden Wesen setze. Weil nun von dem ganzen Umfang möglicher Wesen das Sterbliche einen Teil enthält, das Nichtsterbende aber den andern, so ist durch meinen Satz nichts anders gesagt, als daß die Seele eines von der unendlichen Mange Dinge sei, die übrig bleiben, wenn ich das Sterbliche insgesamt wegnehme. Dadurch aber wird nur die unendliche Sphäre alles Möglichen in so weit beschränkt, daß das Sterbliche davon abgetrennt, und in dem übrigen Raum ihres Umfangs die Seele gesetzt wird. Dieser Raum bleibt aber bei dieser Ausnahme noch immer unendlich, und können noch mehrere Teile desselben weggenommen werden, ohne daß darum der Begriff von der Seele im mindesten wächst, und bejahend bestimmt wird. Diese unendliche Urteile also in Ansehung des logischen Umfanges sind wirklich bloß beschränkend in Ansehung des Inhalts der Erkenntnis überhaupt, und in so fern müssen sie in der transtzendentalen Tafel aller Momente des Denkens in den Urteilen nicht übergangen werden, weil die hierbei ausgeübte Funktion des Verstandes vielleicht in dem Felde seiner reinen Erkenntnis a priori wichtig sein kann.

 → 2. 마찬가지로, 비록 그 무한판단들이 일반 논리학에서 정당하게 저 긍정판단들로 셈해지고 구분의 어떠한 특수한 절도 형성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초월론적 논리학에서 무한판단들은 긍정판단과 구분되어야만 한다. → 다시 말해 이러한 무한판단은 술어의 모든 내용을 도외시하고 (비록 그 내용이 부정이라 할지라도) 단지, 그 술어 자체가 주어에 덧붙여지는지, 또는 그 주어에 반대되는지 그에 대해서만 본다.→ 그러나 저 긍정판단은 판단을 또한 순전한 부정 술어에 따라서 이러한 논리적 긍정의 값이나 내용에 따라 평가하고, 이러한 것을 이익에 대한 전체 인식의 고려 속에서 이러한 것을 마련하는 것을 평가한다. → 내가 영혼에 대해 영혼이 필멸이 아니라고 이야기 한다면 나는 부정판단을 통하여 최소한 오류를 막을 것이다. → 이제 나는, 내가 영혼을 불멸하는 실체들의 무한정한 범위 안으로 놓음으로써, 영혼은 불사적이다라는 명제를 통하여, 더욱이 그 논리적 형식을 통하여 실질적으로 긍정한다. → 이제 가능한 실체들의 전범위로부터 필멸하는 것이 일부분을 포함하고, 그러나 불멸하는 것은 다른 부분을 (포함하므로), 그래서 나의 명제를 통해서, 영혼은 내가 필멸하는 것 모두를 제거할 때 남아 있는 무한히 많은 것들 중에 하나일 것이라는 것 외에 다른 아무것도 이야기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를 통하여 다만 모든 가능한 것의 무한한 범위가, 필멸하는 것을 그로부터 분리시키고, 그 범위의 남은 공간에 영혼이 놓인다는 것, 그 만큼에서 한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공간은 이러한 예외에 있어서 여전히 무한하고, 그 공간의 더 많은 부분들이, 영혼에 대한 개념이 최소한으로 확장되거나, 또 긍정적으로 규정되는 것 없이 제거될 수 있다. → 이러한 무한한 판단들은 그러므로 논리적 범위의 고려 속에서 실제로 순전히 인식 전반의 내용에 대한 고려에서 제한되고, 그러한 한에서 무한한 판단들이 판단들 속에서 사유의 모든 계기들의 초월론적 목록표 안에서 넘어서게 되지 않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이와 관련하여 수행된 지성의 활동은 아마도 그 지성의 순수한 선험적 인식의 범위 안에서 주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Alle Verhältnisse des Denkens in Urteilen sind die a) des Prädikats zum Subjekt, b) des Grundes zur Folge, c) der eingeteilten Erkenntnis und der gesammleten Glieder der Einteilung unter einander. In der ersteren Art der Urteile sind nur zwei Begriffe, in der zweiten zweene Urteile, in der dritten mehrere Urteile im Verhältnis gegen einander betrachtet. Der hypothetische Satz: wenn eine vollkommene Gerechtigkeit da ist, so wird der beharrlich Böse bestraft, enthält eigentlich das Verhältnis zweier Stätze: Es ist eine vollkommene Gerechtigkeit da, und der beharllich Böse wird bestraft. Ob beide dieser Sätze an sich wahr sein, bleibt hier unausgemacht. Es ist nur die Konsequenz, die durch dieses Urteil gedacht wird.

 → 3. 판단들 속에서 사유의 모든 관계들은 a) 주어에 대한 술어의 관계, b) 결과에 대한 원인의 관계, c) 분할된 인식의 관계와 상호간의 구분의 취합된 마디들의 관계이다.→ 첫번째 관계에서 판단의 기능은 단지 두 가지 개념들을, 두번째 관계에서는 두 가지 판단들을, 세번째 관계에서는 더 많은 판단들을 상호 관계에 있어서 관찰된다.→ 완전한 정의가 여기에 있을 때에는, 그래서 완강한 죄인들은 처벌받는다는 가설적 명제는 본래, 하나의 완전한 정의가 여기에 있다는, 그리고 완강한 죄인들이 처벌받는다는 두 명제들의 관계를 포함한다.→ 이러한 명제들 둘 모두가 그 자체로 참인지 아닌지는, 여기에서 결정되지 않고 남는다.→ 그것은 단지 이러한 판단을 통해 생각되는 결론일 뿐이다.

 

 

 

 

Des Leitfadens der Entdeckung aller reinen Verstandesbegriffe

모든 순수 지성개념들의 발견의 실마리

Zweiter Abschnitt

제 2장

§ 9. Von der logischen Funktion des Verstandes in Urteilen

§ 9. 판단에서 지성의 논리적 기능에 대해서

Wenn wir von allem Inhalte eines Urteils überhaupt abstrahieren, und nur auf die bloße Verstandesform darin Acht geben, so finden wir, daß die Funktion des Denkens in demselben unter vier Titel gebracht werden könne, deren jeder drei Momente unter sich enthält.

만일 우리가 판단 전반의 모든 내용들을 추상한다면, 그리고 그 점에 있어서 단지 순전한 지성형식에만 주목한다면, 우리는 발견한다, 지성의 기능이 그 판단 자체에서 네 항목들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그 항목들의 각각이 세 계기들을 포섭하는.

→ 만일 우리가 판단 전반의 모든 내용들을 추상하고 그 점에 있어서 단지 순전한 지성형식에만 주목한다면 우리는 지성의 기능이 그 판단 자체에서 그 각각이 세 계기들을 포섭하는 네 항목들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Sie können füglich in folgender Tafel vorgestellt werden.

그 항목들은 적합하게 다음 표에서 제시될 수 있다.

→ 그 항목들은 적절하게 다음 표에서 제시될 수 있다.


 

 1. Quantität der Urteile.

판단의 양

 

 

 Allgemeine 전칭

 Besondere 특칭

 Einzelne 단칭

 

 2. Qualität.

 

 3. Relation. 관계

 Bejahende 긍정

 Verneinende 부정

 Unendliche 무한

 

 Kategorische 정언

 Hypothetische 가언

 Disjunktive 선언

 

 4. Modalität. 양상

 

 

 Problematische 개연

 Assertorische 단정

 Apodiktische 필연

 


Da diese Einteliung in einigen, obgleich nicht wesentlichen Stücken, von der gewohnten Technik der Logiker abzuweichen scheint, so werden folgende Verwahrungen wider den besorglichen Mißverstand nicht unnötig sein.

이러한 구분은 몇몇 부분들에서, 비록 본질적인 부분들에서는 아니더라도, 논리학자들의 통례의 기술과 구분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염려되는 오해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이의들이 불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 이러한 구분은 비록 본질적인 부분들에서는 아니더라도 몇몇 부분들에서 논리학자들의 통상적인 기술과 구분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염려되는 오해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이의들이 불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1. Die Logiker sagen mit Recht, daß man beim Gebrauch der Urteile in Vernunftschlüssen die einzelnen Urteile gleich den allgemeinen behandeln könne.

1. 논리학자들은 정당하게 말한다, 사람들은 이성 추론들에서 판단들의 사용에 있어서 단칭 판단들을 전칭 판단들과 마찬가지로 취급할 수 있다고.

→1. 논리학자들이 사람들은 이성 추론들에서 판단들의 사용에 있어서 단칭 판단들을 전칭 판단들과 마찬가지로 취급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정당하다.

Denn eben darum, weil sie gar keinen Umfang haben, kann das Prädikat derselben nicht bloß auf einiges dessen, was unter dem Begriff des Subjekts enthalten ist, gezogen, von einigem aber ausgenommen werden.

왜냐하면 정확히 그 점에서, 단칭 판단들이 전혀 아무런 외연도 가지지 않으므로, 그 단칭 판단들의 술어가 순전히 몇몇에만, 주어의 개념 아래에 포함되는, 관련되고, 몇몇에는 제외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 왜냐하면 단칭 판단들이 전혀 아무런 외연도 가지지 않으므로 정확히 그 점에서 그 판단들의 술어가 주어의 개념 아래에 포함되는 몇몇에만 관련되고 몇몇에는 제외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Es gilt also von jenem Begriffe ohne Ausnahme, gleich als wenn derselbe ein gemeingültiger Begriff wäre, der einen Umfang hätte, von dessen ganzer Bedeutung das Prädikat gelte.

그러므로 그 단칭 판단은 모든 개념들에 대해 예외 없이 유효하다, 동일한 판단이 보편타당한 개념이라면, 그 개념이 외연을 가질, 전체 의미의 개념에 대해 술어가 타당한 것과 마찬가지로.

→ 그러므로 그 단칭 판단은 모든 개념들에 대해서 예외 없이 유효한데, 동일한 판단이 외연을 가지는 보편타당한 개념일 경우 전체 의미의 개념에 대해 술어가 타당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Vergleichen wir dagegen ein einzelnes Urteil mit einem gemeingültigen, bloß als Erkenntnis, der Größe nach, so verhält sie sich zu diesem wie Einheit zur Unendlichkeit, und ist also sich selbst davon wesentlich unterschieden.

우리는 그에 대해 단칭 판단을 보편타당한 판단에 비유한다, 순전히 인식으로서, 그 인식이 크기에 따르는, 그래서 이러한 판단에 그 인식이 무한성에 대한 통일성과 같이 관계하고, 그러므로 그 인식 자체는 그로부터 본질적으로 구분된다.

→ 우리는 그에 반해 단칭 판단을 크기에 따르는 순전한 인식으로서 보편타당한 판단에 비유한다. 그래서 이러한 판단에 그 인식이 무한성에 대한 통일성과 같이 관계하고, 그러므로 그 인식 자체는 그로부터 본질적으로 구분된다.

Also, wenn ich ein einzelnes Urteil (judicium singulare) nicht bloß nach seiner innern Gültigkeit, sondern auch, als Erkenntnis überhaupt, nach der Größe, die es in Vergleichung mit andern Erkenntnissen hat, schätze, so ist es allerdings von gemeingültigen Urteilen (judicia communia) unterschieden, und verdient in einer vollständigen Tafel der Momente des Denkens überhaupt (obzwar freilich nicht in der bloß auf den Gebrauch der Urteile untereinander eingeschränkten Logik) eine besondere Stelle.

그러므로, 만일 내가 단칭 판단(iudicium, 판단 + singularis gen.)을 단지 그 판단의 내적 정당성에 따라서가 아니라, 오히려, 인식 전반으로, 크기에 따라서, 그 크기를 그 판단이 다른 인식들과의 비교 속에서 가지는, 평가한다면, 그래서 그 판단은 당연히 보편타당한 판단들(iudicium + communis a.)과 구분되고, 사유 전반의 계기들의 완전한 도표 안에서 (비록 확실히 판단들 상호의 사용에 대한 제한된 논리학에서는 아니라 하더라도) 특수한 위치를 차지할 만하다.

→ 그러므로 만일 내가 단칭 판단을 단지 그 내적 정당성이 아니라 오히려 인식 전반으로서 다른 인식들과의 비교 속에서 가지는 크기에 따라 평가한다면, 그 판단은 당연히 보편타당한 판단들과 구분되고, 사유 전반의 계기들의 완전한 도표 안에서 (비록 확실히 판단들 상호의 사용에 대한 제한된 논리학에서는 아니라 하더라도) 특수한 위치를 차지할 만하다.

 

2. Eben so müssen in einer transzendentalen Logik unendliche Urteile von bejahenden noch unterschieden werden, wenn sie gleich in der allgemeinen Logik jenen mit Recht beigezählt sind und kein besonderes Glied der Einteilung ausmachen.

2. 마찬가지로 초월론적 논리학에서 무한판단들은 긍정판단과 구분되어야만 한다, 비록 그 무한판단들이 일반 논리학에서 정당하게 저 긍정판단들로 셈해지고 구분의 어떠한 특수한 절도 형성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 2. 마찬가지로, 비록 그 무한판단들이 일반 논리학에서 정당하게 저 긍정판단들로 셈해지고 구분의 어떠한 특수한 절도 형성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초월론적 논리학에서 무한판단들은 긍정판단과 구분되어야만 한다.

Diese nämlich abstrahieret von allem Inhalt des Prädikats (ob es gleich verneinend ist) und sieht nur darauf, ob dasselbe dem Subjekt beigelegt, oder ihm entgegengesetzt werde.

다시 말해 이러한 무한판단은 술어의 모든 내용을 도외시하고 (비록 그 내용이 부정이라 할지라도) 단지 그에 대해서 본다, 그 술어 자체가 주어에 덧붙여지는지, 또는 그 주어에 반대되는지.

→ 다시 말해 이러한 무한판단은 술어의 모든 내용을 도외시하고 (비록 그 내용이 부정이라 할지라도) 단지, 그 술어 자체가 주어에 덧붙여지는지, 또는 그 주어에 반대되는지 그에 대해서만 본다.

Jene aber betrachtet das Urteil auch nach dem Werte oder Inhalt dieser logischen Bejahung vermittelst eines bloß verneinenden Prädikats, und was diese in Ansehung des gesamten Erkenntnisses für einen Gewinn verschafft.

그러나 저 긍정판단은 판단을 또한 순전한 부정 술어에 따라서 이러한 논리적 긍정의 값이나 내용에 따라 평가하고, 이러한 것을 이익에 대한 전체 인식의 고려 속에서 이러한 것을 마련하는 것을 평가한다.

→ 그러나 저 긍정판단은 판단을 또한 순전한 부정 술어에 따라서 이러한 논리적 긍정의 값이나 내용에 따라 평가하고, 이러한 것을 이익에 대한 전체 인식의 고려 속에서 이러한 것을 마련하는 것을 평가한다.

Hätte ich von der Seele gesagt, sie ist nicht sterblich, so hätte ich durch ein verneinendes Urteil wenigstens einen Irrtum abgehalten.

내가 영혼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영혼이 필멸이 아니라고, 그래서 나는 부정판단을 통하여 최소한 오류를 막을 것이다.

→ 내가 영혼에 대해 영혼이 필멸이 아니라고 이야기 한다면 나는 부정판단을 통하여 최소한 오류를 막을 것이다.

Nun habe ich durch den Satz: die Seele ist nichtsterblich, zwar der logischen Form nach wirklich bejahet, indem ich die Seele in den unbeschränkten Umfang der nichtsterbenden Wesen setze.

이제 나는 영혼은 불사적이다라는 명제를 통하여, 더욱이 그 논리적 형식을 통하여 실질적으로 긍정한다, 내가 영혼을 불멸하는 실체들의 무한정한 범위 안으로 놓음으로써.

→ 이제 나는, 내가 영혼을 불멸하는 실체들의 무한정한 범위 안으로 놓음으로써, 영혼은 불사적이다라는 명제를 통하여, 더욱이 그 논리적 형식을 통하여 실질적으로 긍정한다.

Weil nun von dem ganzen Umfang möglicher Wesen das Sterbliche einen Teil enthält, das Nichtsterbende aber den andern, so ist durch meinen Satz nichts anders gesagt, als daß die Seele eines von der unendlichen Menge Dinge sei, die übrig bleiben, wenn ich das Sterbliche insgesamt wegnehme.

이제 가능한 실체들의 전범위로부터 필멸하는 것이 일부분을 포함하고, 그러나 불멸하는 것은 다른 부분을 (포함하므로), 그래서 나의 명제를 통해서 다른 아무것도 이야기되지 않는다, 영혼은 무한히 많은 것들에 대한 하나일 것이다, 그 많은 것들이 남아 있는, 내가 필멸하는 것 모두를 제거할 때.

→ 이제 가능한 실체들의 전범위로부터 필멸하는 것이 일부분을 포함하고, 그러나 불멸하는 것은 다른 부분을 (포함하므로), 그래서 나의 명제를 통해서, 영혼은 내가 필멸하는 것 모두를 제거할 때 남아 있는 무한히 많은 것들 중에 하나일 것이라는 것 외에 다른 아무것도 이야기되지 않는다.

Dadurch aber wird nur die unendliche Sphäre alles Möglichen in so weit beschränkt, daß das Sterbliche davon abgetrennt, und in dem übrigen Raum ihres Umfangs die Seele gesetzt wird.

그러나 그를 통하여 다만 모든 가능한 것의 무한한 범위가 그 만큼에서 한정된다, 필멸하는 것을 그로부터 분리시키고, 그 범위의 남은 공간에 영혼이 놓인다는 것.

→ 그러나 그를 통하여 다만 모든 가능한 것의 무한한 범위가, 필멸하는 것을 그로부터 분리시키고, 그 범위의 남은 공간에 영혼이 놓인다는 것, 그 만큼에서 한정된다.

Dieser Raum bleibt aber bei dieser Ausnahme noch immer unendlich, und können noch mehrere Teile desselben weggenommen werden, ohne daß darum der Begriff von der Seele im mindesten wächst, und bejahend bestimmt wird.

그러나 이러한 공간은 이러한 예외에 있어서 여전히 무한하고, 그 공간의 더 많은 부분들이 제거될 수 있다, 영혼에 대한 개념이 최소한으로 확장되거나, 또 긍정적으로 규정되는 것 없이.

→ 그러나 이러한 공간은 이러한 예외에 있어서 여전히 무한하고, 그 공간의 더 많은 부분들이, 영혼에 대한 개념이 최소한으로 확장되거나, 또 긍정적으로 규정되는 것 없이 제거될 수 있다.

Diese unendliche Urteile also in Ansehung des logischen Umfanges sind wirklich bloß beschränkend in Ansehung des Inhalts der Erkenntnis überhaupt, und in so fern müssen sie in der transtzendentalen Tafel aller Momente des Denkens in den Urteilen nicht übergangen werden, weil die hierbei ausgeübte Funktion des Verstandes vielleicht in dem Felde seiner reinen Erkenntnis a priori wichtig sein kann.

이러한 무한한 판단들은 그러므로 논리적 범위의 고려 속에서 실제로 순전히 인식 전반의 내용에 대한 고려에서 제한되고, 그러한 한에서 무한한 판단들이 판단들 속에서 사유의 모든 계기들의 초월론적 목록표 안에서 넘어서게 되지 않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이와 관련하여 수행된 지성의 활동은 아마도 그 지성의 순수한 선험적 인식의 범위 안에서 주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이러한 무한한 판단들은 그러므로 논리적 범위의 고려 속에서 실제로 순전히 인식 전반의 내용에 대한 고려에서 제한되고, 그러한 한에서 무한한 판단들이 판단들 속에서 사유의 모든 계기들의 초월론적 목록표 안에서 넘어서게 되지 않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이와 관련하여 수행된 지성의 활동은 아마도 그 지성의 순수한 선험적 인식의 범위 안에서 주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Alle Verhältnisse des Denkens in Urteilen sind die a) des Prädikats zum Subjekt, b) des Grundes zur Folge, c) der eingeteilten Erkenntnis und der gesammleten Glieder der Einteilung unter einander.

3. 판단들 속에서 사유의 모든 관계들은 a) 주어에 대한 술어의 관계, b) 결과에 대한 원인의 관계, c) 분할된 인식의 관계와 상호간의 구분의 취합된 마디들의 관계이다.

→ 3. 판단들 속에서 사유의 모든 관계들은 a) 주어에 대한 술어의 관계, b) 결과에 대한 원인의 관계, c) 분할된 인식의 관계와 상호간의 구분의 취합된 마디들의 관계이다.

In der ersteren Art der Urteile sind nur zwei Begriffe, in der zweiten zweene Urteile, in der dritten mehrere Urteile im Verhältnis gegen einander betrachtet.

첫번째 관계에서 판단의 기능은 단지 두 가지 개념들을, 두번째 관계에서는 두 가지 판단들을, 세번째 관계에서는 더 많은 판단들을 상호 관계에 있어서 관찰된다.

→ 첫번째 관계에서 판단의 기능은 단지 두 가지 개념들을, 두번째 관계에서는 두 가지 판단들을, 세번째 관계에서는 더 많은 판단들을 상호 관계에 있어서 관찰된다.

Der hypothetische Satz: wenn eine vollkommene Gerechtigkeit da ist, so wird der beharrlich Böse bestraft, enthält eigentlich das Verhältnis zweier Stätze: Es ist eine vollkommene Gerechtigkeit da, und der beharllich Böse wird bestraft.

가설적 명제: 완전한 정의가 여기에 있을 때에는, 그래서 완강한 죄인들은 처벌받는다, 는 본래 두 명제들의 관계를 포함한다: 하나의 완전한 정의가 여기에 있다는 것, 그리고 완강한 죄인들이 처벌받는다는 것이다.

→ 완전한 정의가 여기에 있을 때에는, 그래서 완강한 죄인들은 처벌받는다는 가설적 명제는 본래, 하나의 완전한 정의가 여기에 있다는, 그리고 완강한 죄인들이 처벌받는다는 두 명제들의 관계를 포함한다.

Ob beide dieser Sätze an sich wahr sein, bleibt hier unausgemacht.

이러한 명제들 둘 모두가 그 자체로 참인지 아닌지는, 여기에서 결정되지 않고 남는다.

→ 이러한 명제들 둘 모두가 그 자체로 참인지 아닌지는, 여기에서 결정되지 않고 남는다.

Es ist nur die Konsequenz, die durch dieses Urteil gedacht wird.

그것은 단지 결론일 뿐이다, 그 결론이 이러한 판단을 통해 생각되는.

→ 그것은 단지 이러한 판단을 통해 생각되는 결론일 뿐이다.

 

-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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