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eser Grundsatz, der notwendigen Einheit der Apperzeption, ist nun zwar selbst identisch, mithin ein analytischer Satz, erklärt aber doch eine Synthesis des in einer Anschauung gegebene Mannigfaltigen als notwendig, ohne welche jene durchgängige Identität des Selbstbewußtseins nicht gedacht werden kann. Denn durch das Ich, als einfache Vorstellung, ist nichts Mannigfaltiges gegeben; in der Anschauung, die davon unterschieden ist, kann es nur gegeben und durch Verbindung in einem Bewußtsein gedacht werden. Ein Verstand, in welchem durch das Selbstbewußtsein zugleich alles Mannigfaltige gegeben würde, würde anschauen; der unsere kann nur denken und muß in den Sinnen die Anschauung gegebenen Vorstellungen, weil ich sie insgesamt meine Vorstellungen nenne, die eine ausmachen. Das ist aber so viel, als, daß ich mir einer notwendigen Synthesis derselben a priori bewußt bin, welche die ursprüngliche synthetische Einheit der Apperzeption heißt, unter der alle mir gegebene Vorstellungen stehen, aber unter die sie auch durch eine Synthesis gebracht werden müssen.
→ 통각의 필연적 통일이라는 이러한 원칙은 이제 더욱이 자기동일적이고, 따라서 분석적 명제이지만 직관 안에 주어진 잡다들의 종합을, 그것 없이는 자기의식의 저 보편적 동일성이 생각될 수 없는 필연적인 것으로 해명한다.→ 왜냐하면 단일한 표상으로서 나라는 것을 통하여 아무런 잡다도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와는 상이한 직관 안에서 하나의 자기의식 안에 오로지 결합을 통해서만 잡다는 주어지고 생각될 수 있다.→ 그 안에서 자기의식을 통하여 동시에 모든 잡다들이 주어질 어떤 지성은 직관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지성은 단지 감각 안에 직관으로 주어진 표상들을 사유할 수 있을 뿐이며 감각 안에서 그 직관을 찾아야만 한다. → 그러므로 나는 나에게 동일한 나로 의식된다, 직관 안에서 나에게 주어진 표상들의 잡다와 관련해서, 왜냐하면 나는 그 표상들을 모두 하나의 표상을 형성하는 나의 표상들이라고 명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통각의 근원적인 종합적 통일이라 불리우는 그러한 하나의 필연적인 종합을 선험적으로 의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모든 표상들이 그 종합 아래에 존립하지만, 그 표상들은 또한 하나의 종합을 통해 그 아래에 놓여야만 한다.


Dieser Grundsatz, der notwendigen Einheit der Apperzeption, ist nun zwar selbst identisch, mithin ein analytischer Satz, erklärt aber doch eine Synthesis des in einer Anschauung gegebene Mannigfaltigen als notwendig, ohne welche jene durchgängige Identität des Selbstbewußtseins nicht gedacht werden kann.
통각의 필연적 통일이라는 이러한 원칙은 이제 더욱이 자기동일적이고, 그러므로 분석적 명제이다, 그러나 직관 안에 주어진 잡다들의 종합을 필연적인 것으로 해명한다, 그것 없이는 자기의식의 저 보편적 동일성이 생각될 수 없는.
→ 통각의 필연적 통일이라는 이러한 원칙은 이제 더욱이 자기동일적이고, 따라서 분석적 명제이지만 직관 안에 주어진 잡다들의 종합을, 그것 없이는 자기의식의 저 보편적 동일성이 생각될 수 없는 필연적인 것으로 해명한다.
Denn durch das Ich, als einfache Vorstellung, ist nichts Mannigfaltiges gegeben; in der Anschauung, die davon unterschieden ist, kann es nur gegeben und durch Verbindung in einem Bewußtsein gedacht werden.
왜냐하면 단일한 표상으로서 나라는 것을 통하여 아무런 잡다도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상이한 직관 안에서 하나의 자기의식 안에서 결합을 통해서만 오로지 주어지고 생각될 수 있다.
→ 왜냐하면 단일한 표상으로서 나라는 것을 통하여 아무런 잡다도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와는 상이한 직관 안에서 하나의 자기의식 안에 오로지 결합을 통해서만 잡다는 주어지고 생각될 수 있다.
Ein Verstand, in welchem durch das Selbstbewußtsein zugleich alles Mannigfaltige gegeben würde, würde anschauen; der unsere kann nur denken und muß in den Sinnen die Anschauung suchen. 
한 지성은, 그 안에서 자기의식을 통하여 동시에 모든 잡다들이 주어질, 직관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지성은 단지 감각 안에 직관으로 주어진 표상들을 사유할 수 있을 뿐이며 감각 안에서 그 직관을 찾아야만 한다.
→ 그 안에서 자기의식을 통하여 동시에 모든 잡다들이 주어질 어떤 지성은 직관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지성은 단지 감각 안에 직관으로 주어진 표상들을 사유할 수 있을 뿐이며 감각 안에서 그 직관을 찾아야만 한다.
Ich bin mir also des identischen Selbst bewußt, in Ansehung des Mannigfaltigen der mir in einer Anschauung gegebenen Vorstellungen, weil ich sie insgesamt meine Vorstellungen nenne, die eine ausmachen.
그러므로 나는 나에게 동일한 나로 의식된다, 직관 안에서 나에게 주어진 표상들의 잡다와 관련해서, 왜냐하면 나는 그 표상들을 모두 하나의 표상을 형성하는 나의 표상들이라고 명명하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나는 나에게 동일한 나로 의식된다, 직관 안에서 나에게 주어진 표상들의 잡다와 관련해서, 왜냐하면 나는 그 표상들을 모두 하나의 표상을 형성하는 나의 표상들이라고 명명하기 때문이다.
Das ist aber so viel, als, daß ich mir einer notwendigen Synthesis derselben a priori bewußt bin, welche die ursprüngliche synthetische Einheit der Apperzeption heißt, unter der alle mir gegebene Vorstellungen stehen, aber unter die sie auch durch eine Synthesis gebracht werden müssen.
그러나 그것은 그만큼이다, 내가 나에게 하나의 필연적인 종합으로 선험적으로 의식된다는 것, 통각의 근원적인 종합적 통일이라 불리우는, 그 아래에서 나에게 주어진 모든 표상들이 존립하는, 그러나 그 아래로 그 표상들이 또한 하나의 종합을 통해 놓여야만 하는.
→ 그러나 그것은 내가 통각의 근원적인 종합적 통일이라 불리우는 그러한 하나의 필연적인 종합을 선험적으로 의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모든 표상들이 그 종합 아래에 존립하지만, 그 표상들은 또한 하나의 종합을 통해 그 아래에 놓여야만 한다.

-蟲-
Der Gedanke: diese in der Anschauung gegebene Vorstellungen gehören mir insgesamt zu, heißt demnach so viel, als ich vereinige sie in einem Selbstbewußtsein, oder kann sie wenigstens darin vereinigen, und ob er gleich selbst noch nicht das Bewußtsein der Synthesis der Vorstellungen ist, so setzt er doch die Möglichkeit der letzteren voraus, d.i. nur dadurch, daß ich das Mannigfaltige derselben in einem Bewußtsein begreifen kann, nenne ich dieselbe insgesamt meine Vorstellungen; denn sonst würde ich ein so vielfärbiges verschiedenes Slebst haben, als ich Vorstellungen habe, deren ich mir bewußt bin. Synthetische Einheit des Mannigfaltigen der Anschauungen, als a priori gegeben, ist also der Grund der Identität der Apperzeption selbst, die a priori allem meinem bestimmten Denken vorhergeht. Verbindung liegt aber nicht in den Gegenständen, und kann von ihnen nicht etwa durch Wahrnehmung entlehnt und in den Verstand dadurch allererst aufgenommen werden, sondern ist allein eine Verrichtung des Verstandes, der selbst nichts weiter ist, als das Vermögen, a priori zu verbinden, und das Mannifgaltige gegebener Vorstellungen unter Einheit der Apperzeption zu bringen, welcher Grundsatz der oberste im ganzen menschlichen Erkenntnis ist.
→ 사유 : 직관 안에 주어진 표상들은 내가 그것들을 하나의 자기의식 안에 통일한다고 이야기되는 한에서, 혹은 적어도 그것들을 그 안에 통일시킬 수 있다는 의미에서, 전부 나에게 속한다. 그리고 그 사유 자체가 비록 표상들의 종합에 대한 의식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이제 그 사유는 후자(종합에 대한 의식)의 가능성을 요청한다, 즉, 오로지 그를 통해서만, 내가 잡다 자체를 하나의 의식 안에서 파악할 수 있음을 통해서만, 나는 바로 이러한 것들을 모두 나의 표상들이라 이름한다; 왜냐하면, 내가 그것들로 내가 나에게 의식되는 그러한 표상들을 가지는 만큼 그렇게 다양하고 상이한 자기를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직관의 잡다의 종합적 통일은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것으로서, 따라서 선험적으로 규정되는 나의 모든 사유들에 선행하는 통각 그 자체의 동일성의 토대이다.→ 그러나 결합은 대상들 안에 놓이지 않고, 그 대상들로부터 지각을 통해서는 결코 빌려올 수 없고 지성 안에서 그를 통해 최초로 산출될 수 없으며, 오히려 오로지, 그 자체가 선험적으로 결합시키는, 그리고 주어진 표상들의 잡다들을 인간 인식 전반에 있어서 최상의 원칙인 통각의 통일 아래로 가져오는 능력들 이외에 다른 무엇도 아닌 지성의 기능만이 결합을 산출할 수 있다.


Der Gedanke: diese in der Anschauung gegebene Vorstellungen gehören mir insgesamt zu, heißt demnach so viel, als ich vereinige sie in einem Selbstbewußtsein, oder kann sie wenigstens darin vereinigen, und ob er gleich selbst noch nicht das Bewußtsein der Synthesis der Vorstellungen ist, so setzt er doch die Möglichkeit der letzteren voraus, d.i. nur dadurch, daß ich das Mannigfaltige derselben in einem Bewußtsein begreifen kann, nenne ich dieselbe insgesamt meine Vorstellungen; denn sonst würde ich ein so vielfärbiges verschiedenes Slebst haben, als ich Vorstellungen habe, deren ich mir bewußt bin.
사유 : 직관 안에 주어진 표상들은 전부 나에게 속한다, 그러니까 다음과 같이 이야기되는 한, 내가 그것들을 하나의 자기의식 안에 통일한다고, 혹은 적어도 그것들을 그 안에 통일시킬 수 있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그 사유 자체가 비록 표상들의 종합에 대한 의식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이제 그 사유는 후자의 가능성을 요청한다, 즉, 오로지 그를 통해서만, 내가 잡다 자체를 하나의 의식 안에서 파악할 수 있음을 통해서만, 나는 바로 이러한 것들을 모두 나의 표상들이라 이름한다; 왜냐하면 그렇게나 다양하고 상이한 자기를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표상들을 가지는 만큼, 그것들로 내가 나에게 의식되는.
→ 사유 : 직관 안에 주어진 표상들은 내가 그것들을 하나의 자기의식 안에 통일한다고 이야기되는 한에서, 혹은 적어도 그것들을 그 안에 통일시킬 수 있다는 의미에서, 전부 나에게 속한다. 그리고 그 사유 자체가 비록 표상들의 종합에 대한 의식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이제 그 사유는 후자(종합에 대한 의식)의 가능성을 요청한다, 즉, 오로지 그를 통해서만, 내가 잡다 자체를 하나의 의식 안에서 파악할 수 있음을 통해서만, 나는 바로 이러한 것들을 모두 나의 표상들이라 이름한다; 왜냐하면, 내가 그것들로 내가 나에게 의식되는 그러한 표상들을 가지는 만큼 그렇게 다양하고 상이한 자기를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Synthetische Einheit des Mannigfaltigen der Anschauungen, als a priori gegeben, ist also der Grund der Identität der Apperzeption selbst, die a priori allem meinem bestimmten Denken vorhergeht.
직관의 잡다의 종합적 통일은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것으로서 따라서 통각 그 자체의 동일성의 토대이다, 선험적으로 규정되는 나의 모든 사유들에 선행하는.
→ 직관의 잡다의 종합적 통일은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것으로서, 따라서 선험적으로 규정되는 나의 모든 사유들에 선행하는 통각 그 자체의 동일성의 토대이다.
Verbindung liegt aber nicht in den Gegenständen, und kann von ihnen nicht etwa durch Wahrnehmung entlehnt und in den Verstand dadurch allererst aufgenommen werden, sondern ist allein eine Verrichtung des Verstandes, der selbst nichts weiter ist, als das Vermögen, a priori zu verbinden, und das Mannifgaltige gegebener Vorstellungen unter Einheit der Apperzeption zu bringen, welcher Grundsatz der oberste im ganzen menschlichen Erkenntnis ist.
그러나 결합은 대상들 안에 놓이지 않고, 그 대상들로부터 지각을 통해서는 결코 빌려올 수 없고 지성 안에서 그를 통해 최초로 산출될 수 없으며, 오히려 오로지 지성의 기능만이, 그 자체가 능력들 이외에 다른 무엇도 아닌, 선험적으로 결합시키는, 그리고 주어진 표상들의 잡다들을 통각의 통일 아래로 가져오는, 그것이 인간 인식 전반에 있어서 최상의 근본명제인.
→ 그러나 결합은 대상들 안에 놓이지 않고, 그 대상들로부터 지각을 통해서는 결코 빌려올 수 없고 지성 안에서 그를 통해 최초로 산출될 수 없으며, 오히려 오로지, 그 자체가 선험적으로 결합시키는, 그리고 주어진 표상들의 잡다들을 인간 인식 전반에 있어서 최상의 원칙인 통각의 통일 아래로 가져오는 능력들 이외에 다른 무엇도 아닌 지성의 기능만이 결합을 산출할 수 있다.

-蟲-
Nämlich diese durchgängige Identität der Apperzeption eines in der Anschauung gegebenen Mannigfaltigen, enthält eine Synthesis der Vorstellungen, und ist nur durch das Bewußtsein dieser Synthesis möglich. Denn das empirisch Bewußtsein, welches verschiedene Vorstellungen begleitet, ist an sich zerstreut und ohne Beziehung auf die Identität des Subjekts. Diese Beziehung geschieht also dadurch noch nicht, daß ich jede Vorstellung mit Bewußtsein begleite, sondern daß ich eine zu der andern hinzusetze und mir der Synthesis derselben bewußt bin. Also nur dadurch, daß ich ein Mannigfaltiges gegebener Vorstellungen in einem Bewußtsein verbinden kann, ist es möglich, daß ich mir die Identität des Bewußtseins in diesen Vorstellungen selbst vorstelle, d.i. die analytische Einheit der Apperzeption ist nur unter der Voraussetzung irgend einer synthetischen möglich.¹
→ 말하자면 직관 안에 주어진 잡다에 대한 통각의 이러한 일반적 동일성은, 표상들의 종합을 포함할 것이고, 오직 이러한 종합의 의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상이한 표상들을 수반하는 경험적 의식은 그 자체로는 흩어지고 주체의 동일성과 관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련은 그러므로, 내가 각각의 표상을 의식과 동반하는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내가 하나를 다른 하나에 덧붙이고 나에게 그것들의 종합이 의식되는 것을 통해서 발생한다.→ 그러므로 오로지 내가 잡다를 하나의 의식 안에서 주어진 표상들에 결합할 수 있음을 통해서만, 내가 나에게 의식의 동일성을 이러한 표상들 자체 안에 표상하는 것이, 즉 통각의 분석적 통일성은 단지 어떻든 종합적 통일성의 전제 하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가능하다.¹

¹Die analytische Einheit des Bewußtseins hängt allen gemeinsamen Begriffen, als solchen, an, z.B. wenn ich mir rot überhaupt denke, so stelle ich mir dadurch eine Beschaffenheit vor, die (als Merkmal) irgend woran angetroffen, oder mit anderen Vorstellungen verbunden sein kann; also nur vermöge einer vorausgedachten möglichen synthetischen Einheit kann ich mir die analytische vorstellen. Eine Vorstellung, die als verschiedenen gemein gedacht werden soll, wird als zu solchen gehörig angesehen, die außer ihr noch etwas Verschiedenes an sich haben, folglich muß sie in synthetischer Einheit mit anderen (wenn gleich nur möglichen Vorstellungen) vorher gedacht werden, ehe ich die analytische Einheit des Bewußtseins, welche sie zum conceptus communis macht, an ihr denken kann. Und so ist die synthetische Einheit der Apperzeption der höchste Punkt, an dem man allen Verstandesgebrauch, selbst die ganze Logik, und, nach ihr, die Transzendental-Philosophie heften muß, ja dieses Vermögen ist der Verstand selbst.
→ ¹의식의 분석적 통일성은 모든 공통분모적 개념들에 매달려 있다. 즉, 예를 들어 내가 나에게 있어서 '붉음' 일반을 생각할 때, 그래서 내가 나에게 그것을 통하여 (특성으로서) 좌우간 거기에서 발견된, 혹은 다른 표상들과 결합될 수 있는 하나의 성질을 표상하는 그러한 것으로서의 통일성이 말이다; 그러므로 고려된 가능한 종합적 통일의 힘으로만 나는 나에게 분석적 통일성을 표상할 수 있다.→ 상이한 공통 표상으로 생각되어야 하는 하나의 표상은, 그 외부에서 여전히 어떤 상이한 것을 가지는 그러한 표상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내가 공통 개념을 형성하는 의식의 분석적 통일성을 그 표상에 있어서 생각할 수 있기 이전에, 그 표상은 다른 표상과 (비록 단지 가능한 표상들이라 할지라도) 종합적 통일성 안에서앞서 생각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래서 통각의 종합적 통일성은 거기에 사람들이 모든 지성사용을, 논리학 그 전체를, 그리고, 그에 따라서, 초월론적 철학을 붙여야만 하는 더 높은 지점이다. 이러한 능력이 지성 그 자체이다.


Nämlich diese durchgängige Identität der Apperzeption eines in der Anschauung gegebenen Mannigfaltigen, enthält eine Synthesis der Vorstellungen, und ist nur durch das Bewußtsein dieser Synthesis möglich.
말하자면 직관 안에 주어진 잡다에 대한 통각의 이러한 일반적 동일성은, 표상들의 종합을 포함할 것이고, 오직 이러한 종합의 의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 말하자면 직관 안에 주어진 잡다에 대한 통각의 이러한 일반적 동일성은, 표상들의 종합을 포함할 것이고, 오직 이러한 종합의 의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Denn das empirisch Bewußtsein, welches verschiedene Vorstellungen begleitet, ist an sich zerstreut und ohne Beziehung auf die Identität des Subjekts.
왜냐하면 경험적 의식은, 그것이 상이한 표상들을 수반하는, 그 자체로는 흩어지고 주체의 동일성과 관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 왜냐하면 상이한 표상들을 수반하는 경험적 의식은 그 자체로는 흩어지고 주체의 동일성과 관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Diese Beziehung geschieht also dadurch noch nicht, daß ich jede Vorstellung mit Bewußtsein begleite, sondern daß ich eine zu der andern hinzusetze und mir der Synthesis derselben bewußt bin.
이러한 관련은 그러므로, 내가 각각의 표상을 의식과 동반하는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내가 하나를 다른 하나에 덧붙이고 나에게 그것들의 종합이 의식되는 것을 통해서 발생한다.
→ 이러한 관련은 그러므로, 내가 각각의 표상을 의식과 동반하는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내가 하나를 다른 하나에 덧붙이고 나에게 그것들의 종합이 의식되는 것을 통해서 발생한다.
Also nur dadurch, daß ich ein Mannigfaltiges gegebener Vorstellungen in einem Bewußtsein verbinden kann, ist es möglich, daß ich mir die Identität des Bewußtseins in diesen Vorstellungen selbst vorstelle, d.i. die analytische Einheit der Apperzeption ist nur unter der Voraussetzung irgend einer synthetischen möglich.¹
그러므로 오로지, 내가 잡다를 하나의 의식 안에서 주어진 표상들에 결합할 수 있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내가 나에게 의식의 동일성을 이러한 표상들 자체 안에 표상하는 것이, 즉 통각의 분석적 통일성은 단지 어떻든 종합적 통일성의 전제 하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 그러므로 오로지 내가 잡다를 하나의 의식 안에서 주어진 표상들에 결합할 수 있음을 통해서만, 내가 나에게 의식의 동일성을 이러한 표상들 자체 안에 표상하는 것이, 즉 통각의 분석적 통일성은 단지 어떻든 종합적 통일성의 전제 하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가능하다.

¹Die analytische Einheit des Bewußtseins hängt allen gemeinsamen Begriffen, als solchen, an, z.B. wenn ich mir rot überhaupt denke, so stelle ich mir dadurch eine Beschaffenheit vor, die (als Merkmal) irgend woran angetroffen, oder mit anderen Vorstellungen verbunden sein kann; also nur vermöge einer vorausgedachten möglichen synthetischen Einheit kann ich mir die analytische vorstellen.
의식의 분석적 통일성은 모든 공통분모적 개념들에 매달려 있다, 그러한 것으로서, 즉, 예를 들어 내가 나에게 있어서 '붉음' 일반을 생각할 때, 그래서 나는 나에게 그것을 통하여 하나의 성질을 표상한다, (특성으로서) 좌우간 거기에서 발견된, 혹은 다른 표상들과 결합될 수 있는; 그러므로 고려된 가능한 종합적 통일의 힘으로만 나는 나에게 분석적 통일성을 표상할 수 있다.
→ 의식의 분석적 통일성은 모든 공통분모적 개념들에 매달려 있다. 즉, 예를 들어 내가 나에게 있어서 '붉음' 일반을 생각할 때, 그래서 내가 나에게 그것을 통하여 (특성으로서) 좌우간 거기에서 발견된, 혹은 다른 표상들과 결합될 수 있는 하나의 성질을 표상하는 그러한 것으로서의 통일성이 말이다; 그러므로 고려된 가능한 종합적 통일의 힘으로만 나는 나에게 분석적 통일성을 표상할 수 있다.
Eine Vorstellung, die als verschiedenen gemein gedacht werden soll, wird als zu solchen gehörig angesehen, die außer ihr noch etwas Verschiedenes an sich haben, folglich muß sie in synthetischer Einheit mit anderen (wenn gleich nur möglichen Vorstellungen) vorher gedacht werden, ehe ich die analytische Einheit des Bewußtseins, welche sie zum conceptus communis macht, an ihr denken kann.
하나의 표상은, 상이한 공통 표상으로 생각되어야 하는, 그러한 것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 외부에서 여전히 어떤 상이한 것을 가지는, 따라서 그 표상은 종합적 통일성 안에서 다른 표상과 (비록 단지 가능한 표상들이라 할지라도) 앞서 생각되어야만 한다, 내가 의식의 분석적 통일성을, 그 통일성이 공통 개념을 형성하는, 그에 있어서 생각할 수 있기 이전에.
→ 상이한 공통 표상으로 생각되어야 하는 하나의 표상은, 그 외부에서 여전히 어떤 상이한 것을 가지는 그러한 표상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내가 공통 개념을 형성하는 의식의 분석적 통일성을 그 표상에 있어서 생각할 수 있기 이전에, 그 표상은 다른 표상과 (비록 단지 가능한 표상들이라 할지라도) 종합적 통일성 안에서앞서 생각되어야만 한다.
Und so ist die synthetische Einheit der Apperzeption der höchste Punkt, an dem man allen Verstandesgebrauch, selbst die ganze Logik, und, nach ihr, die Transzendental-Philosophie heften muß, ja dieses Vermögen ist der Verstand selbst.
그리고 그래서 통각의 종합적 통일성은 더 높은 지점이다, 그 지점에 사람들이 모든 지성사용을, 그 자체로 논리학 전체를, 그리고, 그에 따라서, 초월론적 철학을 붙여야만 하는, 이러한 능력이 지성 자체이다.
→ 그리고 그래서 통각의 종합적 통일성은 거기에 사람들이 모든 지성사용을, 논리학 그 전체를, 그리고, 그에 따라서, 초월론적 철학을 붙여야만 하는 더 높은 지점이다. 이러한 능력이 지성 그 자체이다.

-蟲-
§ 16. Von der ursprünglich-synthetischen Einheit der Apperzeption
§ 16. 통각의 근원전-종합적 통일성에 대하여

Das: Ich denke, muß alle meine Vorstellungen begleiten können; denn sonst würde etwas in mir vorgestellt werden, was gar nicht gedacht werden könnte, welches eben so viel heißt, als die Vorstellung würde entweder unmöglich, oder wenigstens für mich nichts sein. Diejenige Vorstellung, die vor allem Denken gegeben sein kann, heißt Anschauung. Also hat alles Mannigfaltige der Anschauung eine notwendige Beziehung auf das: Ich denke, in demselben Subjekt, darin dieses Mannigfaltige angetroffen wird. Diese Vorstellung aber ist ein Actus der Spontaneität, d.i. sie kann nicht als zur Sinnlichkeit gehörig angesehen werden. Ich nenne sie die reine Apperzeption, um sie von der empirischen zu unterscheiden, oder auch die ursprüngliche Apperzeption, weil sie dasjenige Selbstbewußtsein ist, was, indem es die Vorstellung Ich denke hervorbringt, die alle andere muß begleiten können, und in allem Bewußtsein ein und dasselbe ist, von keiner weiter begleitet werden kann. Ich nenne auch die Einheit derselben die transzendentale Einheit des Selbstbewußtseins, um die Möglichkeit der Erkenntnis a priori aus ihr zu bezeichnen. Denn die mannigfaltigen Vorstellungen, die in einer gewissen Anschauung gegeben werden, würden nicht insgesamt meine Vorstellungen sein, wenn sie nicht insgesamt zu einem Selbstbewußtsein gehöreten, d.i. als meine Vorstellungen (ob ich mich ihrer gleich nicht als solcher bewußt bin) müssen sie doch der Bedingung notwendig gemäß sein, unter der sie allein in einem allgemeinen Selbstbewußtsein zusammenstehen können, weil sie sonst nicht durchgängig mir angehören würden. Aus dieser ursprünglichen Verbindung läßt sich vieles folgern.
→ 내가 생각한다는 것, 그것이 나의 모든 표상들을 수반할 수 있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으면 내 안에 전혀 사유될 수 없을 어떤 것이 표상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것은 표상으로 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적어도 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사유에 앞서 주어질 수 있는 이 표상을 직관이라 한다.→ 그러므로 직관의 모든 잡다는 그 안에서 이러한 잡다가 마주쳐지는 그 문장의 주어 안에서 '나는 생각한다'와 필연적 관계를 가진다.→ 그러나 이러한 표상은 자발성의 활동이고, 다시 말해 그 표상은 감성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 나는 그 표상을 감각적 표상들로부터 구분하기 위하여 순수한 통각이라 명명한다. 혹은 또 근원적 통각이라고 명명한다. 왜냐하면 그 표상이 '나는 생각한다'라는 표상을 산출함으로써, 그 표상이 다른 모든 표상들을 수반할 수 있어야만 하는, 그리고 모든 의식에 있어서 하나이고 그 자체인, 그 이상의 다른 어떤 것으로부터도 수반될 수 없는 그러한 자기의식이기 때문이다.→ 나는 또한 그 표상의 통일성을 그로부터 선험적 인식의 가능성을 특징지우기 위하여 자기의식의 초월론적 통일성으로 명명한다.→ 왜냐하면 어떤 직관 안에서 주어지는 잡다한 표상들은 그 표상들이 모두 다 하나의 자기의식에 속하지 않는다면 모두 다 나의 표상들이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나의 표상들로서 (비록 내가 그 표상들에 속한 나를 그러한 것으로서 의식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표상들은 오로지 그 아래에서만 그 표상들이 하나의 보편적 자기의식 안으로 함께 설 수 있는 조건에 필연적으로 부합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 표상들은 그렇지 않으면 일반적으로 나에게 속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근원적 묶음으로부터 많은 것이 추론된다.


Das: Ich denke, muß alle meine Vorstellungen begleiten können; denn sonst würde etwas in mir vorgestellt werden, was gar nicht gedacht werden könnte, welches eben so viel heißt, als die Vorstellung würde entweder unmöglich, oder wenigstens für mich nichts sein.
내가 생각한다는 것, 그것이 나의 모든 표상들을 수반할 수 있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으면 내 안에 표상될 것이기 때문이다, 전혀 사유될 수 없을 어떤 것이, 그러한 것은 의미한다, 표상으로 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적어도 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 내가 생각한다는 것, 그것이 나의 모든 표상들을 수반할 수 있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으면 내 안에 전혀 사유될 수 없을 어떤 것이 표상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것은 표상으로 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적어도 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Diejenige Vorstellung, die vor allem Denken gegeben sein kann, heißt Anschauung.
이 표상, 모든 사유에 앞서 주어질 수 있는, 그것을 직관이라 한다.
→ 모든 사유에 앞서 주어질 수 있는 이 표상을 직관이라 한다.
Also hat alles Mannigfaltige der Anschauung eine notwendige Beziehung auf das: Ich denke, in demselben Subjekt, darin dieses Mannigfaltige angetroffen wird.
그러므로 직관의 모든 잡다는 '나는 생각한다'와 필연적 관계를 가진다, 그 문장의 주어 안에서, 그 안에서 이러한 잡다가 마주쳐지는.
→ 그러므로 직관의 모든 잡다는 그 안에서 이러한 잡다가 마주쳐지는 그 문장의 주어 안에서 '나는 생각한다'와 필연적 관계를 가진다.
Diese Vorstellung aber ist ein Actus der Spontaneität, d.i. sie kann nicht als zur Sinnlichkeit gehörig angesehen werden.
그러나 이러한 표상은 자발성의 활동이고, 다시 말해 그 표상은 감성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
→ 그러나 이러한 표상은 자발성의 활동이고, 다시 말해 그 표상은 감성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
Ich nenne sie die reine Apperzeption, um sie von der empirischen zu unterscheiden, oder auch die ursprüngliche Apperzeption, weil sie dasjenige Selbstbewußtsein ist, was, indem es die Vorstellung Ich denke hervorbringt, die alle andere muß begleiten können, und in allem Bewußtsein ein und dasselbe ist, von keiner weiter begleitet werden kann.
나는 그 표상을 순수한 통각이라 명명한다, 그 표상을 감각적 표상들로부터 구분하기 위하여, 혹은 또 근원적 통각이라고 명명한다, 왜냐하면 그 표상이 다음과 같은 자기의식이기 때문이다, 그것, '나는 생각한다'라는 표상을 산출함으로써, 그 표상이 다른 모든 표상들을 수반할 수 있어야만 하는, 그리고 모든 의식에 있어서 하나이고 그 자체인, 그 이상의 다른 어떤 것으로부터도 수반될 수 없는.
→ 나는 그 표상을 감각적 표상들로부터 구분하기 위하여 순수한 통각이라 명명한다. 혹은 또 근원적 통각이라고 명명한다. 왜냐하면 그 표상이 '나는 생각한다'라는 표상을 산출함으로써, 그 표상이 다른 모든 표상들을 수반할 수 있어야만 하는, 그리고 모든 의식에 있어서 하나이고 그 자체인, 그 이상의 다른 어떤 것으로부터도 수반될 수 없는 그러한 자기의식이기 때문이다.
Ich nenne auch die Einheit derselben die transzendentale Einheit des Selbstbewußtseins, um die Möglichkeit der Erkenntnis a priori aus ihr zu bezeichnen.
나는 또한 그 표상의 통일성을 자기의식의 초월론적 통일성으로 명명한다, 그로부터 선험적 인식의 가능성을 특징지우기 위하여.
→ 나는 또한 그 표상의 통일성을 그로부터 선험적 인식의 가능성을 특징지우기 위하여 자기의식의 초월론적 통일성으로 명명한다.
Denn die mannigfaltigen Vorstellungen, die in einer gewissen Anschauung gegeben werden, würden nicht insgesamt meine Vorstellungen sein, wenn sie nicht insgesamt zu einem Selbstbewußtsein gehöreten, d.i. als meine Vorstellungen (ob ich mich ihrer gleich nicht als solcher bewußt bin) müssen sie doch der Bedingung notwendig gemäß sein, unter der sie allein in einem allgemeinen Selbstbewußtsein zusammenstehen können, weil sie sonst nicht durchgängig mir angehören würden.
왜냐하면 잡다한 표상들은, 그 표상들이 어떤 직관 안에서 주어지는, 모두 다 나의 표상들이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고, 그 표상들이 모두 다 하나의 자기의식에 속하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 나의 표상들로서 (비록 내가 그 표상들에 속한 나를 그러한 것으로서 의식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표상들은 조건에 필연적으로 부합해야만 한다, 오로지 그 조건 아래에서만 그 표상들이 하나의 보편적 자기의식 안으로 함께 설 수 있는, 왜냐하면 그 표상들은 그렇지 않으면 일반적으로 나에게 속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왜냐하면 어떤 직관 안에서 주어지는 잡다한 표상들은 그 표상들이 모두 다 하나의 자기의식에 속하지 않는다면 모두 다 나의 표상들이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나의 표상들로서 (비록 내가 그 표상들에 속한 나를 그러한 것으로서 의식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표상들은 오로지 그 아래에서만 그 표상들이 하나의 보편적 자기의식 안으로 함께 설 수 있는 조건에 필연적으로 부합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 표상들은 그렇지 않으면 일반적으로 나에게 속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Aus dieser ursprünglichen Verbindung läßt sich vieles folgern.
이러한 근원적 묶음으로부터 많은 것이 추론된다.
→ 이러한 근원적 묶음으로부터 많은 것이 추론된다.

-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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