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 wenn ich von der Vorstellung eines Körpers das, was der Verstand davon denkt, als Substanz, Kraft, Teilbarkeit etc. imgleichen, was davon zur Empfindung gehört, als Undurchdringlichkeit, Härte, Farbe etc. absondere, so bleibt mir aus dieser empirischen Anschauung noch etwas übrig, nämlich Ausdehnung und Gestalt. Diese gehören zur reinen Anschauung, die a priori, auch ohne einen wirklichen Gegenstand der Sinne oder Empfindung, als eine bloße Form der Sinnlichkeit im Gemüte stattfindet.

→ 그래서, 내가 물체의 표상으로부터 오성이 생각하는 실체, 힘, 가분성 등으로서 분류하는 것을, 그로부터 직관에 속하는 것을, 불가투입성, 견고성, 색채 등으로서 분류할 때, 그래서 나에게 이러한 감각적 직관으로부터 또한 어떤 것이, 즉 연장과 형태가 남아 있다. 이러한 것들은, 선험적인, 또한 감관이나 지각의 실질적 대상이 없이, 감성의 순전한 형식으로서 심정에 발생하는 순수한 직관에 속한다.

Eine Wissenschaft von allen Prinzipien der Sinnlichkeit a priori nenne ich die transzendentale Ästhetik 1).

→선험적 감성의 모든 원칙들에 대한 학문을 나는 초월적 감성학이라 이름한다.

1) Die Deutschen sind die einzigen, welche sich jetzt des Worts Ästhetik bedienen, um dadurch das zu bezeichnen, was andre Kritik des Geschmacks heißen. Es liegt hier eine verfehlte Hoffnung zum Grunde, die der vortreffliche Analyst Baumgarten faßte, die kritische Beurteilung des Schönen unter Vernunftprinzipien zu bringen, und die Regeln derselben zur Wissenschaft zu erheben. Allein diese Bemühung ist vergeblich. Denn gedachte Regeln, oder Kriterien, sind ihren vornehmsten Quellen nach bloß empirisch, und können also niemals zu bestimmten Gesetzen a priori dienen, wornach sich unser Geschmacksurteil richten müßte, vielmehr macht das letztere den eigentlichen Probierstein der Richtigkeit der ersteren aus.

→1) 오늘날 Ästhetik 이란 단어를, 또 다른 취미비판이라 불리는 것을 그를 통해 그려내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은 독일이 유일하다.→ 여기에, 우수한 분석가 바움가르텐이 품었던, 이성원칙 하에서 아름다움의 비판적 평가를 이끌어내고, 그 비판 자체의 규칙들을 학문으로 내세우려는, 빗나간 희망이 근저에 놓인다.→ 단지 이러한 노력만으로는 헛수고이다.→ 왜냐하면 고려된 규칙들, 혹은 판단의 표지들은, 그것들의 주요한 원천에 있어서 순전히 감각적인 것에 따르고, 그러므로, 우리의 취미판단이 그것을 표준으로 삼는 법칙들로, 더욱이 후자(감각적인 것)가 전자(고려된 원칙들, 판단의 표지들)의 정당성에 대한 유일무이한 시금석을 형성하는, 규정된 선험적 법칙들로는 전혀 사용할 수 없다.

 

 

So, wenn ich von der Vorstellung eines Körpers das, was der Verstand davon denkt, als Substanz, Kraft, Teilbarkeit etc. imgleichen, was davon zur Empfindung gehört, als Undurchdringlichkeit, Härte, Farbe etc. absondere, so bleibt mir aus dieser empirischen Anschauung noch etwas übrig, nämlich Ausdehnung und Gestalt.

그래서, 내가 물체의 표상으로부터 그것을, 오성이 그것을 생각하는 것을, 실체, 힘, 가분성 등으로서 분류하는, 그로부터 직관에 속하는 것을, 불가투입성, 견고성, 색채 등으로서 분류할 때, 그래서 나에게 이러한 감각적 직관으로부터 또한 어떤 것이 남아 있다, 즉 연장과 형태.

→ 그래서, 내가 물체의 표상으로부터 오성이 생각하는 실체, 힘, 가분성 등으로서 분류하는 것을, 그로부터 직관에 속하는 것을, 불가투입성, 견고성, 색채 등으로서 분류할 때, 그래서 나에게 이러한 감각적 직관으로부터 또한 어떤 것이, 즉 연장과 형태가 남아 있다.

Diese gehören zur reinen Anschauung, die a priori, auch ohne einen wirklichen Gegenstand der Sinne oder Empfindung, als eine bloße Form der Sinnlichkeit im Gemüte stattfindet.

이러한 것들은 순수한 직관에 속한다, 선험적인, 또한 감관이나 지각의 실질적 대상이 없이, 감성의 순전한 형식으로서 심정에 발생하는 직관.

→ 이러한 것들은, 선험적인, 또한 감관이나 지각의 실질적 대상이 없이, 감성의 순전한 형식으로서 심정에 발생하는 순수한 직관에 속한다.

 

Eine Wissenschaft von allen Prinzipien der Sinnlichkeit a priori nenne ich die transzendentale Ästhetik 1).

선험적 감성의 모든 원칙들에 대한 학문을 나는 초월적 감성학이라 이름한다.

→선험적 감성의 모든 원칙들에 대한 학문을 나는 초월적 감성학이라 이름한다.

 

1) Die Deutschen sind die einzigen, welche sich jetzt des Worts Ästhetik bedienen, um dadurch das zu bezeichnen, was andre Kritik des Geschmacks heißen.

1) 독일이 유일하다, 오늘날 Ästhetik 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그를 통해 그려내기 위해서, 또 다른 취향의 비판이라 불리는 것을.

→1) 오늘날 Ästhetik 이란 단어를, 또 다른 취미비판이라 불리는 것을 그를 통해 그려내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은 독일이 유일하다.

Es liegt hier eine verfehlte Hoffnung zum Grunde, die der vortreffliche Analyst Baumgarten faßte, die kritische Beurteilung des Schönen unter Vernunftprinzipien zu bringen, und die Regeln derselben zur Wissenschaft zu erheben.

여기에 빗나간 희망이 근저에 놓인다, 우수한 분석가 바움가르텐이 품었던, 이성원칙 하에서 아름다움의 비판적 평가를 이끌어내려는, 그 비판 자체의 규칙들을 학문으로 내세우려는.

→ 여기에, 우수한 분석가 바움가르텐이 품었던, 이성원칙 하에서 아름다움의 비판적 평가를 이끌어내고, 그 비판 자체의 규칙들을 학문으로 내세우려는, 빗나간 희망이 근저에 놓인다.

Allein diese Bemühung ist vergeblich.

단지 이러한 노력만으로는 헛수고이다.

→ 단지 이러한 노력만으로는 헛수고이다.

Denn gedachte Regeln, oder Kriterien, sind ihren vornehmsten Quellen nach bloß empirisch, und können also niemals zu bestimmten Gesetzen a priori dienen, wornach sich unser Geschmacksurteil richten müßte, vielmehr macht das letztere den eigentlichen Probierstein der Richtigkeit der ersteren aus.

왜냐하면 고려된 규칙들, 혹은 판단의 표지들은, 그것들의 주요한 원천에 있어서 순전히 감각적인 것에 따르고, 그러므로 규정된 선험적 법칙들로는 전혀 사용할 수 없다, 우리의 취미판단이 그것을 표준으로 삼는 법칙들로, 더욱이 후자는 전자의 정당성에 대한 유일무이한 시금석을 형성하는.

→ 왜냐하면 고려된 규칙들, 혹은 판단의 표지들은, 그것들의 주요한 원천에 있어서 순전히 감각적인 것에 따르고, 그러므로, 우리의 취미판단이 그것을 표준으로 삼는 법칙들로, 더욱이 후자(감각적인 것)가 전자(고려된 원칙들, 판단의 표지들)의 정당성에 대한 유일무이한 시금석을 형성하는, 규정된 선험적 법칙들로는 전혀 사용할 수 없다.

 

-蟲-

Die Wirkung eines Gegenstandes auf die Vorstellungsfähigkeit, so fern wir von demselben affiziert werden, ist Empfindung. Diejenige Anschauung, welche sich auf den Gegenstand durch Empfindung bezieht, heißt empirisch. Der unbestimmte Gegenstand einer empirischen Anschauung, heißt Erscheinung.

→ 표상능력에 대한 대상의 작용은, 우리가 그 대상 자체로부터 자극받는 한에서, 지각이다. 지각을 통해 대상에 관련하는 그 직관을 감각적이라 부른다. 감각적 직관의 무규정적 대상을 현상이라 부른다.

In der Erscheinung nennen ich das, was der Empfindung korrespondiert, die Materie derselben, dasjenige aber, welches macht, daß das Mannigfaltige der Erscheinung in gewissen Verhältnissen geordnet werden kann, nennen ich die Form der Erscheinung. Da das, worinnen sich die Empfindungen allein ordnen, und in gewisse Form gestellet werden können, nicht selbst wiederum Empfindung sein kann, so ist uns zwar die Materie aller Erscheinung nur a posteriori gegeben, die Form derselben aber muß zu ihnen insgesamt im Gemüte a priori bereit liegen, und dahero abgesondert von aller Empfindung können betrachtet werden.

→ 현상 안에서 나는, 직관에 일치하는 그것을, 그 현상의 질료라고 이름한다, 그러나, 현상의 다양성이 확실한 관계 속에서 질서지어질 수 있도록 그렇게 구성하는 것을, 나는 현상의 형식이라 명명한다. 여기에서, 그 안에서 지각만을 질서지우는 그것은, 그리고 확실한 형식 안에서 세워질 수 있는 그것은, 반면에 그 자체로 직관일 수 없고, 그래서 우리에게 더욱이 모든 현상의 질료는 단지 후험적으로만 주어질 뿐이며, 그러나 그 현상의 형식은 그에 대해 빠짐없이 심성 내에서 선험적으로 준비되어 있어야만 하며, 모든 직관으로부터 독립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Ich nennen alle Vorstellungen rein (im transzendentalen Verstande), in denen nichts, was zur Empfindung gehört, angetroffen wird. Demnach wird die reine Form sinnlicher Anschauungen überhaupt im Gemüte a priori angetroffen werden, worinnen alles Mannigfaltige der Erscheinungen in gewissen Verhältnissen angeschauet wird. Diese reine Form der Sinnlichkeit wird auch selber reine Anschauung heißen.

→ 나는, 그 표상들 안에, 직관에 속하는 아무것도, 마주쳐지지 않는 모든 표상들을 순수하다고 명명한다 (초월적 오성에 있어서). 그에 따라 감각적 직관의 순수한 형식은 전적으로, 그 안에서 현상의 모든 다양이 확실한 관계 속에서 직관되는, 심성 안에서 선험적으로 마주치게 된다. 감성의 이러한 순수형식이 또한 그 자체로 순수한 직관이라 불리울 것이다.

 

 

Die Wirkung eines Gegenstandes auf die Vorstellungsfähigkeit, so fern wir von demselben affiziert werden, ist Empfindung.

표상능력에 대한 대상의 작용은, 우리가 그 대상 자체로부터 자극받는 한에서, 지각이다.

→ 표상능력에 대한 대상의 작용은, 우리가 그 대상 자체로부터 자극받는 한에서, 지각이다.

Diejenige Anschauung, welche sich auf den Gegenstand durch Empfindung bezieht, heißt empirisch.

그 직관을, 지각을 통해 대상에 관련하는, 감각적이라 부른다.

→ 지각을 통해 대상에 관련하는 그 직관을 감각적이라 부른다.

Der unbestimmte Gegenstand einer empirischen Anschauung, heißt Erscheinung.

감각적 직관의 무규정적 대상을 현상이라 부른다.

→ 감각적 직관의 무규정적 대상을 현상이라 부른다.

 

In der Erscheinung nennen ich das, was der Empfindung korrespondiert, die Materie derselben, dasjenige aber, welches macht, daß das Mannigfaltige der Erscheinung in gewissen Verhältnissen geordnet werden kann, nennen ich die Form der Erscheinung.

현상 안에서 나는 그것을 이름한다, 직관에 일치하는 것, 그 현상의 질료라고, 그러나 그것을, 그러한 구성하는 것, 현상의 다양성이 확실한 관계 속에서 질서지어질 수 있도록, 나는 현상의 형식이라 명명한다.

→ 현상 안에서 나는, 직관에 일치하는 그것을, 그 현상의 질료라고 이름한다, 그러나, 현상의 다양성이 확실한 관계 속에서 질서지어질 수 있도록 그렇게 구성하는 것을, 나는 현상의 형식이라 명명한다.

Da das, worinnen sich die Empfindungen allein ordnen, und in gewisse Form gestellet werden können, nicht selbst wiederum Empfindung sein kann, so ist uns zwar die Materie aller Erscheinung nur a posteriori gegeben, die Form derselben aber muß zu ihnen insgesamt im Gemüte a priori bereit liegen, und dahero abgesondert von aller Empfindung können betrachtet werden.

여기에서 그것은, 그 안에서 지각만을 질서지우는, 그리고 확실한 형식 안에서 세워질 수 있는, 반면에 그 자체로 직관일 수 없고, 그래서 우리에게 더욱이 모든 현상의 질료는 단지 후험적으로만 주어질 뿐이며, 그러나 그 현상의 형식은 그에 대해 빠짐없이 심성 내에서 선험적으로 준비되어 있어야만 하며, 모든 직관으로부터 독립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 여기에서, 그 안에서 지각만을 질서지우는 그것은, 그리고 확실한 형식 안에서 세워질 수 있는 그것은, 반면에 그 자체로 직관일 수 없고, 그래서 우리에게 더욱이 모든 현상의 질료는 단지 후험적으로만 주어질 뿐이며, 그러나 그 현상의 형식은 그에 대해 빠짐없이 심성 내에서 선험적으로 준비되어 있어야만 하며, 모든 직관으로부터 독립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Ich nennen alle Vorstellungen rein (im transzendentalen Verstande), in denen nichts, was zur Empfindung gehört, angetroffen wird.

나는 모든 표상들을 순수하다고 명명한다 (초월적 오성에 있어서), 그 표상들 안에 아무것도, 직관에 속하는 것이, 마주쳐지지 않는.

→ 나는, 그 표상들 안에, 직관에 속하는 아무것도, 마주쳐지지 않는 모든 표상들을 순수하다고 명명한다 (초월적 오성에 있어서).

Demnach wird die reine Form sinnlicher Anschauungen überhaupt im Gemüte a priori angetroffen werden, worinnen alles Mannigfaltige der Erscheinungen in gewissen Verhältnissen angeschauet wird.

그에 따라 감각적 직관의 순수한 형식은 전적으로 심성 안에서 선험적으로 마주치게 된다, 그 안에서 현상의 모든 다양이 확실한 관계 속에서 직관되는.

→ 그에 따라 감각적 직관의 순수한 형식은 전적으로, 그 안에서 현상의 모든 다양이 확실한 관계 속에서 직관되는, 심성 안에서 선험적으로 마주치게 된다.

Diese reine Form der Sinnlichkeit wird auch selber reine Anschauung heißen.

감성의 이러한 순수형식이 또한 그 자체로 순수한 직관이라 불리울 것이다.

→ 감성의 이러한 순수형식이 또한 그 자체로 순수한 직관이라 불리울 것이다.

 

-蟲-

Kritik der reinen Vernunft Ⅰ. Transzendentale Elementarlehre

순수이성비판 Ⅰ. 초월적 요소론

Der Transzendentale Elementarlehre

Erster Teil

Die Transzendentale Ästhetik

초월적 요소론 제1 부문 초월적 감성학

§ 1.

 

Auf welche Art und durch welche Mittel sich auch immer eine Erkenntnis auf Gegenstände beziehen mag, so ist doch dijenige, wodurch sie sich auf dieselbe unmittelbar bezieht, und worauf alles Denken als Mittel abzweckt, die Anschauung. Diese findet aber nur statt, so fern uns der Gegenstand gegeben wird; dieses aber ist wiederum, uns Menschen wenigstens, nur dadurch möglich, daß er das Gemüt auf gewisse Wiese affiziere. Die Fähigkeit, (Rezeptivität) Vorstellungen durch die Art, wie wir von Gegenständen affiziert werden, zu bekommen, heißt Sinnlichkeit. Vermittelst der Sinnlichkeit also werden uns Gegenstände gegeben, und sie allein liefert uns Anschauungen; durch den Verstand aber werden sie gedacht, und von ihm entspringen Begriffe. Alles Denken aber muß sich, es sei geradezu (directe), oder im Umschweife (indirecte), vermittelst gewisser Merkmale, zuletzt auf Anschauungen, mithin, bei uns, auf Sinnlichkeit beziehen, weil uns auf andere Weise kein Gegenstand gegeben werden kann.

→ 어떠한 방식으로 그리고 어떠한 수단을 통하여 항상 인식이 대상들에 속하든지, 또한 그를 통하여 인식이 대상들 자체에 곧바로 관계하는 그것은, 그리고 그것을 모든 사유가 수단으로서 목표로 하는 것은, 직관이다.→ 이러한 것은 그러나 우리에게 대상이 주어지는 한에서 발생할 따름이다; 이러한 대상은 그러나 반면에, 최소한 우리 인간에게는, 단지 그 대상이 심성에 확실한 방식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통하여서만 가능하다.→ (감수성) 표상들을 그 방식을 통하여, 우리가 대상들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과 같이, 획득하는 그 소질은, 감성이라 이름한다.→ 그러므로 감성에 따라서 우리에게 대상들이 주어지고, 오직 그 감성만이 우리에게 직관을 제공한다; 그러나 오성을 통하여 대상들이 사유되고, 그 오성으로부터 개념이 발생한다.→ 그러나 모든 사유는, 우리에게 다른 식으로는 어떠한 대상도 주어질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이 곧장이든 (직접), 혹은 우회로든 (간접), 확실한 표지에 따라서, 최후에는 직관에,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어서, 감성에 관계해야만 한다.

 

 

Kritik der reinen Vernunft Ⅰ. Transzendentale Elementarlehre

순수이성비판 Ⅰ. 초월론적 요소론

Der Transzendentale Elementarlehre

초월론적 요소론

Erster Teil

제1부문

Die Transzendentale Ästhetik § 1.

초월론적 감성학 § 1.

 

Auf welche Art und durch welche Mittel sich auch immer eine Erkenntnis auf Gegenstände beziehen mag, so ist doch dijenige, wodurch sie sich auf dieselbe unmittelbar bezieht, und worauf alles Denken als Mittel abzweckt, die Anschauung.

어떠한 본성 위에서 그리고 어떠한 수단을 통하여 항상 인식이 대상들에 속하든지, 그래서 또한 그것은, 그를 통하여 인식이 대상들 자체에 곧바로 관계하는, 그리고 그것을 모든 사유가 수단으로서 목표로 하는, 직관이다.

→ 어떠한 방식으로 그리고 어떠한 수단을 통하여 항상 인식이 대상들에 속하든지, 또한 그를 통하여 인식이 대상들 자체에 곧바로 관계하는 그것은, 그리고 그것을 모든 사유가 수단으로서 목표로 하는 것은, 직관이다.

Diese findet aber nur statt, so fern uns der Gegenstand gegeben wird;

이러한 것은 그러나 발생할 따름이다, 우리에게 대상이 주어지는 한에서;

dieses aber ist wiederum, uns Menschen wenigstens, nur dadurch möglich, daß er das Gemüt auf gewisse Wiese affiziere.

이러한 대상은 그러나 반면에, 최소한 우리 인간에게는, 단지 그것을 통하여서만 가능하다, 그 대상이 심성에 확실한 방식으로 작용한다는 것.

→ 이러한 것은 그러나 우리에게 대상이 주어지는 한에서 발생할 따름이다; 이러한 대상은 그러나 반면에, 최소한 우리 인간에게는, 단지 그 대상이 심성에 확실한 방식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통하여서만 가능하다.

Die Fähigkeit, (Rezeptivität) Vorstellungen durch die Art, wie wir von Gegenständen affiziert werden, zu bekommen, heißt Sinnlichkeit.

그 소질은, (감수성) 표상들을 그 방식을 통하여, 우리가 대상들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과 같이, 획득하는, 감성이라 이름한다.

→ (감수성) 표상들을 그 방식을 통하여, 우리가 대상들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과 같이, 획득하는 그 소질은, 감성이라 이름한다.

Vermittelst der Sinnlichkeit also werden uns Gegenstände gegeben, und sie allein liefert uns Anschauungen;

그러므로 감성에 따라서 우리에게 대상들이 주어지고, 오직 그 감성만이 우리에게 직관을 제공한다;

durch den Verstand aber werden sie gedacht, und von ihm entspringen Begriffe.

그러나 오성을 통하여 대상들이 사유되고, 그 오성으로부터 개념이 발생한다.

→ 그러므로 감성에 따라서 우리에게 대상들이 주어지고, 오직 그 감성만이 우리에게 직관을 제공한다; 그러나 오성을 통하여 대상들이 사유되고, 그 오성으로부터 개념이 발생한다.

Alles Denken aber muß sich, es sei geradezu (directe), oder im Umschweife (indirecte), vermittelst gewisser Merkmale, zuletzt auf Anschauungen, mithin, bei uns, auf Sinnlichkeit beziehen, weil uns auf andere Weise kein Gegenstand gegeben werden kann.

그러나 모든 사유는, 그것이 곧장이든 (직접), 혹은 우회로든 (간접), 확실한 표지에 따라서, 최후에는 직관에,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어서, 감성에 관계해야만 한다, 우리에게 다른 식으로는 어떠한 대상도 주어질 수 없기 때문에.

→ 그러나 모든 사유는, 우리에게 다른 식으로는 어떠한 대상도 주어질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이 곧장이든 (직접), 혹은 우회로든 (간접), 확실한 표지에 따라서, 최후에는 직관에,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어서, 감성에 관계해야만 한다.

 

-蟲-

 

P.S 이전 작업 http://cafe.naver.com/wahrheit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