ΦΥΣΙΚΗΣ ΑΚΡΟΑΣΕΩΣ Α


Ἐπειδὴ τὸ εἰδέναι καὶ τὸ ἐπίστασθαι συμβαίνει περὶ πάσας τὰς μεθόδους, ὧν εἰσὶν ἀρχαὶ ἢ αἴτια ἢ στοιχεῖα, ἐκ τοῦ ταῦτα γνωρίζειν (τότε γὰρ οἰόμεθα γιγνώσκειν ἕκαστον, ὅταν τὰ αἴτια γνωρίσωμεν τὰ πρῶτα καὶ τὰς ἀρχὰς τὰς πρώτας καὶ μέχρι τῶν στοιχείων), δῆλον ὅτι καὶ τῆς περὶ φύσεως ἐπιστήμης πειρατέον διορίσασθαι πρῶτον τὰ περὶ τὰς ἀρχάς.
원리들이나 원인들 혹은 원소들이 속하는, 모든 방법(체계)들에 대한 앎과 인식은, 그러한 것들에 대해 앎을 획득함으로부터 따라나오기에 (왜냐하면 우리가 최초의 원인들과 최초의 원리들을 그 원소들에 이르기까지 알게 될 때, 그 때 우리가 각각의 것을 알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연에 관한 인식에 대해서도 우선 그 원리들에 관련한 것들을 규정하는 일이 시도되어야만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πέφυκε δὲ ἐκ τῶν γνωριμωτέρων ἡμῖν ἡ ὁδὸς καὶ σαφεστέρων ἐπὶ τὰ σαφέστερα τῇ φύσει καὶ γνωριμώτερα· οὐ γὰρ ταὐτὰ ἡμῖν τε γνώριμα καὶ ἁπλῶς. διόπερ ἀνάγκη τὸν τρόπον τοῦτον προάγειν ἐκ τῶν ἀσαφεστέρων μὲν τῇ φύσει ἡμῖν δὲ σαφεστέρων ἐπὶ τὰ σαφέστερα τῇ φύσει καὶ γνωριμώτερα.
그런데 본래 우리에게 더욱 잘 알려지고 더욱 확실한 것들을 통한 방법(체계)은 자연(본성)상 더 확실하고 더 잘 알려지는 것들을 향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자연상 확실한) 것들은 우리에게 단순하게 알려지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이러한 방식은 자연상으로는 더 확실하지 않은 것들이지만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것들로부터 자연상으로 더 확실하고 잘 알려지는 것들을 향해 진행함이 필연적이다.
ἔστι δ' ἡμῖν τὸ πρῶτον δῆλα καὶ σαφῆ τὰ συγκεχυμένα μᾶλλον· ὕστερον δ' ἐκ τούτων γίγνεται γνώριμα τὰ στοιχεῖα καὶ αἱ ἀρχαὶ διαιροῦσι ταῦτα.
그런데 우리에게 우선은 뒤섞인 것들이 오히려 분명하고 확실하다. 다음으로 이러한 것들을 통하여 이것들을 분할(분석)함으로써 (우리에게) 그 원소들과 원리들이 알려주는 것이 된다.
διὸ ἐκ τῶν καθόλου ἐπὶ τὰ καθ' ἕκαστα δεῖ προϊέναι· τὸ γὰρ ὅλον κατὰ τὴν αἴσθησιν γνωριμώτερον, τὸ δὲ καθόλου ὅλον τί ἐστι· [Bekker page 184a, line 26] πολλὰ γὰρ περιλαμβάνει ὡς μέρη τὸ καθόλου. πέπονθε δὲ ταὐτὸ τοῦτο τρόπον τινὰ καὶ τὰ ὀνόματα πρὸς τὸν λόγον· ὅλον γάρ τι καὶ ἀδιορίστως σημαίνει, οἷον ὁ κύκλος, ὁ δὲ ὁρισμὸς αὐτοῦ διαιρεῖ εἰς τὰ καθ' ἕκαστα. καὶ τὰ παιδία τὸ μὲν πρῶτον προσαγορεύει πάντας τοὺς ἄνδρας πατέρας καὶ μητέρας τὰς γυναῖκας, ὕστερον δὲ διορίζει τούτων ἑκάτερον.
이런 이유로 보편적인(전반적인) 것들로부터 개별적인(각각에 따른) 것들로 나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전체가 감각에 따라 더 잘 알려지는데, 보편적인 것이 무언가(일종의) 전체이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것은 많은 것들을 부분들로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것을 어떤 방식에서 진술에 대해 명사들도 겪는다. 왜냐하면 정의되지 않은 식으로 무언가 전체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예를 들어 원 같은 것이, 그러나 그것의 정의는 개별적인 것들로 분할하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처음에는 모든 남성들을 아버지로 모든 여성들을 어머니로 부르지만, 나중에는 이들의 양편을 구분한다.


Ἀνάγκη δ' ἤτοι μίαν εἶναι τὴν ἀρχὴν ἢ πλείους, καὶ εἰ μίαν, ἤτοι ἀκίνητον, ὥς φησι Παρμενίδης καὶ Μέλισσος, ἢ κινουμένην, ὥσπερ οἱ φυσικοί, οἱ μὲν ἀέρα φάσκοντες εἶναι οἱ δ' ὕδωρ τὴν πρώτην ἀρχήν· εἰ δὲ πλείους, ἢ πεπερασμένας ἢ ἀπείρους, καὶ εἰ πεπερασμένας πλείους δὲ μιᾶς, ἢ δύο ἢ τρεῖς ἢ τέτταρας ἢ ἄλλον τινὰ ἀριθμόν, καὶ εἰ ἀπείρους, ἢ οὕτως ὥσπερ Δημόκριτος, τὸ γένος ἕν, σχήματι δὲ <διαφερούσας>, ἢ εἴδει διαφερούσας ἢ καὶ ἐναντίας.
그런데 원리는 하나이거나 더 많음이 필연적이고, 만일 하나라면, 파르메니데스와 멜리소스가 말하듯 움직여지지 않거나, 자연학자들이 그러듯, 움직이는 것이 필연적이다. 최초의 원리를 자연학자들 중 어떤 이들은 공기라고 다른 이들은 물이라고 한다. 반면에 만일 더 많다면, 유한하거나 무한하고, 만일 하나보다 많은 것으로 한정된 것들이라면, 둘이나 셋이나 넷이나 혹은 다른 어떤 수이고, 또 만일 무한하다면, 데모크리토스처럼 그런 식으로 그 유는 하나인데, 형태에서 차이가 나는 것들이거나, 아니면 종에서 차이가 나거나 혹은 반대되기까지 함이 필연적이다.
ὁμοίως δὲ ζητοῦσι καὶ οἱ τὰ ὄντα ζητοῦντες πόσα· ἐξ ὧν γὰρ τὰ ὄντα ἐστὶ πρώτων, ζητοῦσι ταῦτα πότερον ἓν ἢ πολλά, καὶ εἰ πολλά, πεπερασμένα ἢ ἄπειρα, ὥστε τὴν ἀρχὴν καὶ τὸ στοιχεῖον ζητοῦσι πότερον ἓν ἢ πολλά.
존재(있는/~인)들이 얼만큼인지 탐구하는 자들도 같은 방식으로 탐구한다. 왜냐하면 있는 것들이 그것들로 이루어진 최초의 것들, 이것들이 하나인지 혹은 여럿인지, 그리고 만일 많다면, 유한한지 무한한지 탐구하고, 그래서 그 원리와 원소가 하나인지 여럿인지 탐구하기 때문이다.
τὸ μὲν οὖν εἰ ἓν καὶ ἀκίνητον τὸ ὂν σκοπεῖν οὐ περὶ φύσεώς ἐστι σκοπεῖν· ὥσπερ γὰρ καὶ τῷ γεωμέτρῃ οὐκέτι λόγος ἔστι πρὸς τὸν ἀνελόντα τὰς ἀρχάς, ἀλλ' ἤτοι ἑτέρας ἐπιστήμης ἢ πασῶν [Bekker page 185a, line 3] κοινῆς, οὕτως οὐδὲ τῷ περὶ ἀρχῶν· οὐ γὰρ ἔτι ἀρχὴ ἔστιν, εἰ ἓν μόνον καὶ οὕτως ἓν ἔστιν. ἡ γὰρ ἀρχὴ τινὸς ἢ τινῶν.
그러므로 존재가 하나이고 부동인지 고찰함은 자연에 관한 고찰함이 아니다. 왜냐하면 기하학자의 경우 그 원리를 부정하는 자를 향해서는 더 이상 논변(logos)이 없고, (그 논변이) 다른 인식이나 모든 인식들에 공통된 인식에 속하는 것처럼, 그런 식으로 원리들에 관하여 (고찰하는) 자의 경우에도 그러하다(원리를 부정하는 자를 향한 논변이 없다). 더욱이 만일 오직 하나뿐이며 그렇게 하나라면, 원리는 더 이상 없다. 원리는 무언가의 혹은 무엇들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ὅμοιον δὴ τὸ σκοπεῖν εἰ οὕτως ἓν καὶ πρὸς ἄλλην θέσιν ὁποιανοῦν διαλέγεσθαι τῶν λόγου ἕνεκα λεγομένων (οἷον τὴν Ἡρακλείτειον, ἢ εἴ τις φαίη ἄνθρωπον ἕνα τὸ ὂν εἶναι), ἢ λύειν λόγον ἐριστικόν, ὅπερ ἀμφότεροι μὲν ἔχουσιν οἱ λόγοι, καὶ ὁ Μελίσσου καὶ ὁ Παρμενίδου· καὶ γὰρ ψευδῆ λαμβάνουσι καὶ ἀσυλλόγιστοί εἰσιν· μᾶλλον δ' ὁ Μελίσσου φορτικὸς καὶ οὐκ ἔχων ἀπορίαν, ἀλλ' ἑνὸς ἀτόπου δοθέντος τὰ ἄλλα συμβαίνει· τοῦτο δὲ οὐδὲν χαλεπόν.
그래서 그런 식으로 하나인지를 고찰하는 것은 그 밖의 어떠한 입장에든 맞서서 논변을 위해 논변하는 자들의 변증하는 일과 유사하거나 (예를 들어 헤라클레이토스적인 입장, 혹은 만일 누군가 존재가 한 명의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그런 입장>), 혹은 쟁론적 논변을 논박하는 일과 유사하다, 바로 그것을 양쪽 논변들이 모두 지닌다, 멜리소스의 논변도 파르메니데스의 논변도 말이다. 왜냐하면 그 논변들이 거짓들을 취하고 또한 일관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멜리소스의 논변이 오히려 흔하며 난점(aporia)은 없으나, 하나의 이상한 것이 주어져서 그 밖의 것들이 도출된다. 이런 일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ἡμῖν δ' ὑποκείσθω τὰ φύσει ἢ πάντα ἢ ἔνια κινούμενα εἶναι· δῆλον δ' ἐκ τῆς ἐπαγωγῆς. ἅμα δ' οὐδὲ λύειν ἅπαντα προσήκει, ἀλλ' ἢ ὅσα ἐκ τῶν ἀρχῶν τις ἐπιδεικνὺς ψεύδεται, ὅσα δὲ μή, οὔ, οἷον τὸν τετραγωνισμὸν τὸν μὲν διὰ τῶν τμημάτων γεωμετρικοῦ διαλῦσαι, τὸν δὲ Ἀντιφῶντος οὐ γεωμετρικοῦ· οὐ μὴν ἀλλ' ἐπειδὴ περὶ φύσεως μὲν οὔ, φυσικὰς δὲ ἀπορίας συμβαίνει λέγειν αὐτοῖς, ἴσως ἔχει καλῶς ἐπὶ μικρὸν διαλεχθῆναι περὶ αὐτῶν· ἔχει γὰρ φιλοσοφίαν ἡ σκέψις.
우리에게는 자연상의 모든 것들이든 일부 것들이든 움직이는 것들이라고 전제되도록 하자. 그런데 귀납으로부터 분명하다. 더불어 모든 것을 논박함은 적절치도 않고, 오히려 그 원리들로부터 누군가 거짓되게 증명하는 것들을 (논박하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논박) 하지 않는 것이 (적절하다), 예를 들어 분할(segment, not lunes)들을 통한 (원의)사각화를 논박하는 일은 기하학자의 것이지만, 안티폰의 사각화를 논박하는 일은 기하학자의 일이 아니다. 자연에 관한 것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들로서는 자연학적 문제들을 논하게끔 귀결되므로, 그들에 관하여 작은 점에 대해 훌륭하게 변증될 수 있을 것 같다. 그 탐구가 철학(적인 지점)을 지니기 때문이다.
ἀρχὴ δὲ οἰκειοτάτη πασῶν, ἐπειδὴ πολλαχῶς λέγεται τὸ ὄν, πῶς λέγουσιν οἱ λέγοντες εἶναι ἓν τὰ πάντα, πότερον [Bekker page 185a, line 23] οὐσίαν τὰ πάντα ἢ ποσὰ ἢ ποιά, καὶ πάλιν πότερον οὐσίαν μίαν τὰ πάντα, οἷον ἄνθρωπον ἕνα ἢ ἵππον ἕνα ἢ ψυχὴν μίαν, ἢ ποιὸν ἓν δὲ τοῦτο, οἷον λευκὸν ἢ θερμὸν ἢ τῶν ἄλλων τι τῶν τοιούτων. ταῦτα γὰρ πάντα διαφέρει τε πολὺ καὶ ἀδύνατα λέγειν.
모든 인식들의 가장 적절한 시작(원리)은, 존재가 여러 방식으로 논해지기에, 모든 것들이 하나이다라고 논하는 자들이 어떻게 논하는지, 모든 것들을 ousia라 하는지 양(얼만큼)이라 하는지 질(어떠함)이라 하는지, 그리고 다시 모든 것들이 하나의 ousia라고 하는지, 예를 들어 한 사람의 인간이라거나 한 마리의 말이라거나 하나의 영혼이라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이 하나의 성질이라는 것인지, 예를 들어 희다거나 따뜻하다거나 그 외에 그러한 것들 중 무언가라 하는 것인지이다. 왜냐하면 이런 모든 것들이 상당히 상이하며 논할(설명 or 주장)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εἰ μὲν γὰρ ἔσται καὶ οὐσία καὶ ποιὸν καὶ ποσόν, καὶ ταῦτα εἴτ' ἀπολελυμένα ἀπ' ἀλλήλων εἴτε μή, πολλὰ τὰ ὄντα· εἰ δὲ πάντα ποιὸν ἢ ποσόν, εἴτ' οὔσης οὐσίας εἴτε μὴ οὔσης, ἄτοπον, εἰ δεῖ ἄτοπον λέγειν τὸ ἀδύνατον. οὐθὲν γὰρ τῶν ἄλλων χωριστόν ἐστι παρὰ τὴν οὐσίαν· πάντα γὰρ καθ' ὑποκειμένου λέγεται τῆς οὐσίας.
왜냐하면 만일 ousia도 성질도 양도 있다면, 또한 이것들이 서로로부터 분리된 것들이든 아니든, 존재들은 여럿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모든 것들이 성질이거나 양이라면, ousia가 있든 있지 않든, 이상한 일이다, 만일 불가능한 것을 이상하다 말해야 한다면. 왜냐하면 ousia를 제외하고 그 외의 것들 중 아무것도 따로 있지 않기 때문이다. 즉 모든 것들은 그 아래에 놓인 ousia에 따라(대해) 논해진다.
Μέλισσος δὲ τὸ ὂν ἄπειρον εἶναί φησιν. ποσὸν ἄρα τι τὸ ὄν· τὸ γὰρ ἄπειρον ἐν τῷ ποσῷ, οὐσίαν δὲ ἄπειρον εἶναι ἢ ποιότητα ἢ πάθος οὐκ ἐνδέχεται εἰ μὴ κατὰ συμβεβηκός, εἰ ἅμα καὶ ποσὰ ἄττα εἶεν· ὁ γὰρ τοῦ ἀπείρου λόγος τῷ ποσῷ προσχρῆται, ἀλλ' οὐκ οὐσίᾳ οὐδὲ τῷ ποιῷ.
그런데 멜리소스는 존재를 무한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존재는 어떤 양이다. 왜냐하면 무한은 양 안에 속하고, ousia든 성질이든 상태든 부수적인 방식이 아니라면, 그리고 동시에 얼만큼의 양이라면, 무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무한에 대한 논변은 양을 추가로 사용하지만, ousia도 성질도 사용하지 않는다.
εἰ μὲν τοίνυν καὶ οὐσία ἔστι καὶ ποσόν, δύο καὶ οὐχ ἓν τὸ ὄν· εἰ δ' οὐσία μόνον, οὐκ ἄπειρον, οὐδὲ μέγεθος ἕξει οὐδέν· ποσὸν γάρ τι ἔσται.
따라서 만일 ousia도 있고 양도 있다면, 존재는 둘이고 하나가 아니다. 그런데 만일 ousia뿐이라면, 무한하지 않고, 전혀 아무런 크기도 지니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크기는) 어떤 양일 테니까.


ἔτι ἐπεὶ καὶ αὐτὸ τὸ ἓν πολλαχῶς λέγεται ὥσπερ καὶ τὸ ὄν, σκεπτέον τίνα τρόπον λέγουσιν εἶναι ἓν τὸ πᾶν.
더욱이 하나 자체도 존재처럼 여러 방식으로 논해지기에, 어떤 방식으로 그들이 모든 것은 하나라고 논하는지 검토해야 한다.
λέγεται δ' ἓν ἢ τὸ συνεχὲς ἢ τὸ ἀδιαίρετον ἢ ὧν ὁ λόγος ὁ αὐτὸς καὶ [Bekker page 185b, line 9] εἷς ὁ τοῦ τί ἦν εἶναι, ὥσπερ μέθυ καὶ οἶνος.
그런데 연속인 것이나 분할불가능한 것이나 어떤 것의 무엇인 바인 그런 것들의 진술이 같고 하나인 것이 하나로서 이야기된다. 마치 포도주 같은 것들.
εἰ μὲν τοίνυν συνεχές, πολλὰ τὸ ἕν· εἰς ἄπειρον γὰρ διαιρετὸν τὸ συνεχές.
따라서 만일 연속적인 것이라면, 그 하나는 여럿이다. 왜냐하면 연속적인 것은 무한히 분할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ἔχει δ' ἀπορίαν περὶ τοῦ μέρους καὶ τοῦ ὅλου, ἴσως δὲ οὐ πρὸς τὸν λόγον ἀλλ' αὐτὴν καθ' αὑτήν, πότερον ἓν ἢ πλείω τὸ μέρος καὶ τὸ ὅλον, καὶ πῶς ἓν ἢ πλείω, καὶ εἰ πλείω, πῶς πλείω, καὶ περὶ τῶν μερῶν τῶν μὴ συνεχῶν· καὶ εἰ τῷ ὅλῳ ἓν ἑκάτερον ὡς ἀδιαίρετον, ὅτι καὶ αὐτὰ αὑτοῖς.)
(그런데 부분과 전체에 관련하여 난점이 있다, 아마도 이 논의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 난점 자체에 대한 것일, 부분과 전체가 하나인지 더 많은지, 그리고 어떻게 하나이거나 더 많은지, 또 만일 더 많다면, 어떻게 더 많은지, 또 연속되지 않은 부분들에 관하여서도. 그리고 만일 전체로서 그 둘 각각이 분할불가능한 것으로서 하나라면, 또한 그것들이 그것들 자신과 같은 것들이라는 점에서.)
ἀλλὰ μὴν εἰ ὡς ἀδιαίρετον, οὐθὲν ἔσται ποσὸν οὐδὲ ποιόν, οὐδὲ δὴ ἄπειρον τὸ ὄν, ὥσπερ Μέλισσός φησιν, οὐδὲ πεπερασμένον, ὥσπερ Παρμενίδης· τὸ γὰρ πέρας ἀδιαίρετον, οὐ τὸ πεπερασμένον.
하지만 만일 분할불가능한 것으로서 하나라면, 양도 질도 전혀 있을 수 없고, 멜리소스가 말한 것처럼, 존재가 무한할 수도 없고, 파르메니데스가 말한 것처럼, 한정된 것일 수도 없다. 왜냐하면 한계는 분할불가능한 것이고, 한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ἀλλὰ μὴν εἰ τῷ λόγῳ ἓν τὰ ὄντα πάντα ὡς λώπιον καὶ ἱμάτιον, τὸν Ἡρακλείτου λόγον συμβαίνει λέγειν αὐτοῖς· ταὐτὸν γὰρ ἔσται ἀγαθῷ καὶ κακῷ εἶναι, καὶ ἀγαθῷ καὶ μὴ ἀγαθῷ εἶναι - ὥστε ταὐτὸν ἔσται ἀγαθὸν καὶ οὐκ ἀγαθόν, καὶ ἄνθρωπος καὶ ἵππος, καὶ οὐ περὶ τοῦ ἓν εἶναι τὰ ὄντα ὁ λόγος ἔσται ἀλλὰ περὶ τοῦ μηδέν - καὶ τὸ τοιῳδὶ εἶναι καὶ τοσῳδὶ ταὐτόν.
허나 만일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robe와 히마티온처럼 정의(logos)상으로 하나라면, 그들이 헤라클레이토스의 논변을 진술하도록 귀결된다. 왜냐하면 좋은 자로 있음과 나쁜 자로 있음이 같을 것이고, 좋은 자로 그리고 좋지 않은 자로 있음도 그럴 것이고 - 그래서 좋은 사람과 좋지 않은 사람이 같을 것이며, 인간과 말이 그럴 것이며, 있는 것들이 하나라는 것에 관한 논변이 아니라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에 관한 논변일 것이다 - 이런 성질로 있음과 이런 양으로 있음이 같을 것이다.


ἐθορυβοῦντο δὲ καὶ οἱ ὕστεροι τῶν ἀρχαίων ὅπως μὴ ἅμα γένηται αὐτοῖς τὸ αὐτὸ ἓν καὶ πολλά.
고대인들 중 더 후대 사람들도 같은 것이 자신들에게 동시에 하나이자 여럿이 되지 않도록 논란을 벌였다.
διὸ οἱ μὲν τὸ ἐστὶν ἀφεῖλον, ὥσπερ Λυκόφρων, οἱ δὲ τὴν λέξιν μετερρύθμιζον, ὅτι [Bekker page 185b, line 29] ὁ ἄνθρωπος οὐ λευκός ἐστιν ἀλλὰ λελεύκωται, οὐδὲ βαδίζων ἐστὶν ἀλλὰ βαδίζει, ἵνα μή ποτε τὸ ἐστὶ προσάπτοντες πολλὰ εἶναι ποιῶσι τὸ ἕν, ὡς μοναχῶς λεγομένου τοῦ ἑνὸς ἢ τοῦ ὄντος.
이 때문에 어떤 이들은 뤼코프론처럼 '~이다'라는 것을 제거했고, 다른 이들은 그 용어를 형태변화시켰다, 인간이 흼이 아니라 희었고, 걸음이 아니라 걷고 있다고, '~이다'라는 것을 붙임으로써 하나를 여럿이게 만들지 않으려고, 단일한 방식으로 하나나 존재가 논해지는 것처럼 (변형시켰다).
πολλὰ δὲ τὰ ὄντα ἢ λόγῳ (οἷον ἄλλο τὸ λευκῷ εἶναι καὶ μουσικῷ, τὸ δ' αὐτὸ ἄμφω· πολλὰ ἄρα τὸ ἕν) ἢ διαιρέσει, ὥσπερ τὸ ὅλον καὶ τὰ μέρη.
그런데 있는 것들은 정의상으로나 (예를 들어 흰 것으로 있음과 음악적으로 있음이 다른 것이지만, 양자가 같은 것이듯. 그래서 하나는 여럿이다) 분할상으로나 여럿이다, 마치 전체와 부분들처럼.
ἐνταῦθα δὲ ἤδη ἠπόρουν, καὶ ὡμολόγουν τὸ ἓν πολλὰ εἶναι - ὥσπερ οὐκ ἐνδεχόμενον ταὐτὸν ἕν τε καὶ πολλὰ εἶναι, μὴ τἀντικείμενα δέ· ἔστι γὰρ τὸ ἓν καὶ δυνάμει καὶ ἐντελεχείᾳ.
이런 점들에서 이제 그들은 난관에 빠졌고, 하나가 여럿이라는 것을 동의하였다 - 마치 같은 것이 하나이면서 여럿일 수 없듯이, 그것들이 반대되는 것들이 아닐 경우. 왜냐하면 하나는 가능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있기 때문이다.

-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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