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헌상, 「『소피스트』에서 있지 않음과 거짓 진술」 정리

1. 내용정리

1-1. 소피스트의 규정과 있지 않은 것(to me on)의 문제

  소피스트는 말로 된 모상을 만들어 내는 자로, 또한 거짓 믿음을 심어주는 속임술을 가진 자로 간주된다. 그러나 모상은 진짜가 아니라 진짜와 닮은 다른 것이다. 진짜인 것은 정말로 ~인 것이므로 진짜가 아닌 모상은 정말로 ~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모상은 정말로 모상이다. 여기에는 있지 않음과 있음이 섞여있다. 또한 속임을 통해 거짓 믿음이 생기는데 이러한 믿음은 있는 것들과 반대되는 것들을 믿음으로써 생겨난다. 진술 또한 그러하다. 거짓은 있지 않은 것들을 믿는/진술하는 것이며 전적으로 있지 않은 것들을 어떤 식으로 있다고, 전적으로 있는 것들을 어떤 점에서도 없다고 믿는/진술하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진술은 대상을 필요로 한다. 거짓 믿음/진술이 있지 않은 것을 대상으로 한다면, 있지 않은 것은 사유, 언표, 진술이 불가능한 것으로 동의되었기에, 그 대상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며, 거짓 믿음/진술 자체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소피스트를 이러한 거짓의 생산자로 규정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며, 이러한 규정 자체가 자기모순에 빠진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거짓이 있다고 말하거나 믿으면서, 그것을 언표하여 모순에 빠지지 않는 일을 시도한다. 이를 위해 있지 않은 것이 어떤 점에서 있다는 것, 그리고 있는 것은 어떤 식으로 있지 않다는 것을 결론으로 강제해야 한다.(1장)
 
1-2. 최고류들의 결합과 있지 않은 것

  편의상 운동, 정지, 있는 것, 같은 것, 다른 것을 M(Motion), R(Rest), E(Existence), S(Sameness), D(Difference)로 약칭한다. M과 R은 서로 섞일 수 없기에 둘이다. M과 R 둘 모두에 섞이는 E는 그 둘이 서로 섞일 수 없기에 세 번째 것이다. 이제 이 세 유들 각각이 자기 자신과는 '같고(S)' 나머지 둘과는 '다르다(D)'. S와 D는 모두 M과 R에 공히 속하기에, 그 둘 중 하나일 경우 다른 하나를 본성의 반대쪽으로 강제할 것이므로 S와 D가 M과 R로부터 구분된다. 다음으로 S가 E와 동일시된다면 M과 R이 모두 있다고 옳게 말하면서 그 둘이 같다고 불합리하게 말하게 되므로, S는 E와 다르다. 따라서 S는 네 번째 유이다. D와 E의 관계에 대해 논하는 과정에서 "있는 것들 중에서, 어떤 것들은 그 자체로, 어떤 것들은 항상 다른 것들과 관련해서 말해진다.(255c14-15. 인용 1.)" 라는 진술이 등장한다. D는 항상 다른 것들과 관련해서만 말해지는 반면 E는 두 형상 모두에 몫을 나누어 가지므로 D는 다섯 번째 유이다.(2장 9쪽)
인용된 구절에서 제시되는 구분은 있음과 있지 않음의 의미에 관련되므로 그 해석이 중요한 문제가 된다. 이 해석을 위해 구문론적 구분과 의미론적 구분이 전제된다. 이에 따르면 E의 경우 주어만을 취하는 X esti의 경우에는 구문론적으로 complete use, 보어까지 취하는 X esti Y의 경우에는 incomplete use라는 구분이 이루어지며 이는 각기 의미론적으로 전자가 존재를 나타내고, 후자는 다시 동일성의 의미와 서술의 의미로 구분된다. 이를 전제로 크게 세 가지 입장이 제시된다.

1) '그 자체로'는 complete use를, '다른 것들과 관련하여'는 in-를 의미하며, E는 두 용법 모두를 지니고 의미론 상에서 각기 존재와 동일성으로 구분된다. D는 (구문론적으로) 후자의 용법만을 지닌다.
2) 두 구분 모두 구문론적으로 in-을 의미하며, 의미론적으로 E의 경우 전자가 동일성, 후자가 서술로 나뉘고 그 각각이 순서대로 E의 '그 자체로' 쓰인 경우와 '다른 것들과 관련하여' 쓰인 경우에 해당한다. D는 (구문론적으로나 의미로적으로나) 후자의 용법만을 지닌다.
3) '2)'의 구분과 같으나, E의 경우 서술관계에 따라 주어와 보어가 경우에도 '그 자체로' 쓰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는 희다"의 경우 소크라테스는 '그 자체로' 흰 것으로서 있는 것(E)이 아니라 그 성질을 가짐으로써 '다른 것과 관련하여' 희다. 반면 소크라테스의 흰 색에 대해 "그것은 희다," "그것은 색이다"의 경우 주어 자체의 성격에 의해 그것이 희고 색이다(E). 즉 '그 자체로' 희고 또한 색이다. D의 경우는 다음과 같다. 흰색이 핑크색과 다르다면(D), 흰색임 자체의 부분이 '핑크색과 다름'은 아니기에, 흰색은 '다른 것과 관련하여', 즉 D와 관련하여 다른 것이다.(9-12쪽)
  다섯 유는 상이하며 서로 구분됨에도 불구하고 결합한다. 이는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1) M은 R과 다르다(D). 그러므로 M은 R이 아니다(~E). M은 E의 몫을 나누어 가진다(metechein). 그러므로 M은 있다(E).
(2) M은 S와 다르다(D). 그러므로 M은 S가 아니다(~E). M은 S의 몫을 나누어 가진다. 그러므로 M은 같다(S).
(3) M은 D와 다르다(D). 그러므로 M은 D가 아니다(~E). M은 D의 몫을 나누어 가진다. 그러므로 M은 다르다(D).
(4) M은 E와 다르다(D). 그러므로 M은 E가 아니다. M은 E의 몫을 나누어 가진다. 그러므로 M은 있다(E).

각 항목에서 밑줄 친 쌍은 외견상 모순된다. 엘레아의 손님은 (2)와 관련하여 "그것이 같은 것이고 같은 것이 아니라고 말할 때 ... 같은 식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전자는 M이 자신과 관련하여 S의 몫을 나누어 가지기 때문에, 후자는 D와 결합하기 때문에 S와 '분리됨으로써' 그와 같이 말한다는 것이다.(인용 2.)
  M은 자신 이외의 유들에 대해 그 몫을 나누어 가짐으로써 그것들이 되지만, D의 몫을 나누어 가짐으로써 그것들이 아니게 된다. 이 과정에서 metechein을 통해 긍정되는 것은 M을 주어로 하여 그것과 그 외의 유들 사이의 서술관계이다. 반면 부정되는 것은 M을 주어로 하여 그 외의 것들과의 동일성 관계이다. 즉 앞서 외견상의 모순은 E의 의미론적 구분이 지니는 애매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이상의 논의가 einai의 애매성을 강조하기 위해 진행되었다면 그 동사의 애매성을 강조하지도 않고 언급조차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 때문에 이러한 해석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플라톤이 강조하고자 한 지점이 einai의 보어가 지니는 애매성이라는 견해가 제시된다. 다시 말해 부정되는 경우는 추상명사가, 긍정되는 경우에는 형용사가 술어 자리에 온다는 것이다. S의 경우 그 자체로 추상명사로도 형용사로도 사용되지만, E와 D의 경우 그렇지 않은데 플라톤이 관사를 제거함으로써 이러한 모순을 후자의 두 경우에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이 입장의 근거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필요한 일은 동일한 한 쌍의 유들에 외견상 모순적 문장들이 성립가능하다는 것뿐이기에 그 이외의 의미를 부여하여 애매성의 문제를 여기에서 확정지을 필요는 없다.(12-16쪽)

  "모든 유들에 관해서, 있지 않은 것이 있다는 점은 필연적이다. ... 다른 것의 본성은 각각의 것을 있는 것과 다른 것으로 만듦으로써 그것을 있지 않은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 모든 것들이 같은 식으로 이렇게 있지 않다고, 또 다시 그것들은 있는 것의 몫을 나누어 가짐으로써 있고 또한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옳게 말하는 것이다."(인용 3.)

이는 앞서 M과 E의 관계를 근거로 다음과 같이 일반화된다. 

(E를 제외한) 유 X에 관해서:
(1) X는 E와 다르다 → X는 있지 않은 것이다.
(2) X는 E의 몫을 나누어 가진다 → X는 있는 것이다.
(3) 따라서: X의 경우, 있지 않은 것이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그러면(ara) 형상들 각각에 관해서, 있는 것은 수가 많지만, 있지 않은 것은 셀 수 없이 많다(인용 4.)"는 진술이 문제가 된다. 여기에서 일반적으로 우선 1) 있는 것(to on)과 있지 않은 것(to me on)은 불완전용법으로 간주되고, 2) '~에 관해서 있는 것'의 의미는 einai의 converse use로 간주된다. 이 두 전제 하에서 각각에 관해 있는 것이 수가 많다는 것은 서술관계를 참으로 만드는 것들이 많다는 것이고, 있지 않은 것이 셀 수 없이 많다는 것은 동일성의 부정을 참으로 만드는 F가 무수히 많다는 것이라 해석된다. 이 해석에 따라, 그리고 논리적 연결을 함의하는 'ara'에 주목할 때, 인용 3.의 on을 complete use로 이해하기 어렵다. 이를 근거로 나아가 『소피스트』 전체에서 complete use는 역할이 없다는 주장도 제시된다. 그러나 인용 3.에서 그리고 그 이전의 맥락에서 M이 E의 몫을 나누어 가짐은 M을 독립적인 하나의 유로 확립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표현이고, 그 과정에서 'M은 ( )이다'의 incomplete use를 적용할 경우 부자연스럽기에 인용 3.에서는 complete use가 더 자연스럽다. 그럼에도 인용 4.는 incomplete use가 사용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둘 사이의 차이에 더하여 두 번째 차이는 다음과 같다. 인용 3.에서 on과 me on은 E와의 관계를 규정되었고 그 관계를 통해 M 자체를 가리켰다. 반면 인용 4.에서 M에 관한 on은 M에 관하여 그것의 몫을 가지는 유들을 일반화해서 가리킨다. me on 역시 M이 아닌 그것과 다른 모든 유들을 가리킨다. <M의 몫을 가진다? M의 몫을 가질 경우 어떤 주어에 대해 그것이 '움직인다'라고 서술된다. 'M이 ~이다'의 형식에서 보어 자리에 오는 유들이 M의 몫을 가진다고 말할 수 있나?> 이 두 차이로 인해 인용 3.은 complete use, 인용 4.는 in-가 사용되었다고 보는 입장이든 둘 모두 in-가 사용되었다고 보는 입장이든 두 대목 사이에서 모종의 확장, on과 me on을 규정하는 방식의 차이를 해명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16-20쪽)
  3.에서 어떤 것은 E를 나누어 가짐으로써 있는 것이 된다. 이러한 방식을 4.에 적용하여 S가 M에 관련해 있는 것이 되는 것은, M이 나누어 가지는 E를 나누어 가진다는 점에서 M에 관해서 있는 것이 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M에 관해서 있지 않은 것의 경우 3.에서 다름을 통해 규정되었듯 4.에서도 S가 M이 나누어 가지는 E와 다름을 통해 M에 관해서 있지 않은 것이 될 수 있다. 여기에서 'E 자체와 다른 것'은 'M이 나누어 가지는 E와 다른 것'과 차이가 있다. 4.에서 E 자체는 M에 관해서 있지 않은 것의 예이나, E 자체는 자기 자신과 다를 수 없으므로 E 자체와 M이 나누어 가지는 E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방식으로 볼 때 3.에서 M은 E를 나누어 가짐으로써 있는 것이 되고, 4.에서 S는 M이 나누어 가진 E를 나누어 가짐으로써 M에 관하여 있는 것이 된다. 이는 '몫을 나누어 가짐'을 일관되게 적용하는 해석이며, 3.과 4.의 차이는 단지 새로운 항 S가 추가되었다는 점뿐이다. (20-23쪽)
  있지 않은 것이 있는 것일 수 있음을 보인 뒤, 엘레아의 손님은 있는 것이 있지 않은 것임을 보이고자 한다. "있는 것은 나머지 것들이 있는 그 만큼 있지 않다. 나머지 것들이 아닌 한 그 자체는 하나이지만, 셀 수 없이 많은 다른 것들이지 않기 때문이다.(인용 5.)" 그러나 5.는 E가 그 외의 것들과 다르다는 점에서 그것들이지 않다는 점을 설명하고, 3.은 E 이외의 것들이 E와 다르다는 점에서 E이지 않다는 점을 설명하므로 둘 사이의 차이는 없다. (23-24쪽)
 
1-3. 있지 않은 것과 다른 것, 그리고 거짓 진술

  있지 않은 것들이 있다는 점이 밝혀졌으므로, 있지 않은 것을 말하는/믿는 거짓 진술/믿음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그 자체로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손님은 거짓 진술/믿음을 검토하기에 앞서 "있지 않은 것을 있는 것의 반대가 아닌 있는 것과 다른 것으로 말한다"는 것에 대해 추가적인 검토를 시작한다. 예를 들어 크지 않다는 것은 같은 것보다 작은 것을 더 지시하는 것이 아니다. 이를 일반화하여 그는 부정어(me, ou)는 반대가 아니라 그 다음에 오는 이름과 다른 어떤 이름을 드러내며, 그 이름들이 관련하는 사물과 다른 어떤 사물을 드러낸다고 주장한다. 아름답지 않은 것과 아름다운 것 등의 부정/긍정 쌍은 전자가 후자보다 덜 있는 것이 아니다. 전자는 후자에 대비되는, 다른 것의 부분이며 다른 것은 있는 것이므로 (그 부분인) 전자 또한 있는 것이다. "다른 것의 본성은 있는 것들에 속하고, 다른 것의 본성이 있기에, 그것의 부분들도 못지않게 있다." "다른 것의 부분의 본성이 있는 것의 본성에 대비되었을 때, 이 대비는 있는 것 자체에 못지않게 존재인 듯하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그 대비가 '있는 것과 다른 것'으로서의 '있지 않은 것'이다.
  이 대비가 거짓 진술의 분석에 적용되는 방식이 검토되어야 한다. 거짓 진술은 다음과 같이 규정된다. 

(1) (X에 관한) 거짓 진술은 X에 관해서 있는 것들과 다른 것들을 말한다.(인용 6.)
(2) (X에 관한) 거짓 진술은 X에 관해서 있지 않은 것들을 있는 것들로서 말한다.(인용 7.)

그리고 '테아이테토스는 난다'라는 진술을 거짓 진술로서, '테아이테토스는 앉는다' 라는 진술을 참인 진술로서 예시한다. 테아이테토스가 몫을 나누어 가지는, 혹은 테아이테토스에 대해 F라고 하는 진술을 참으로 만드는 속성 F들이 그에 관해서 '있는 것들'이라 보는 게 자연스럽다. 위의 거짓 진술은 테아이테토스에 관해서 있는 것들 중 하나인 앉음과 다른 날고 있음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거짓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은 '앉음'과 다르지만 '테아이테토스는 F이다'를 참으로 만드는 많은 속성들을 통한 참인 진술들을 설명할 수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시도한 세 가지 해석들이 제시된다. 

1) Oxford interpretation이라 불리는 입장은 6.에서 '있는 것들'에 보편양화사를 추가하여 해석한다. 테아이테토스에게 '실제로 귀속되는 모든 속성들'과 다른 것은 그에 관해서 거짓이다. 그러나 이 입장은 문헌에 없는 양화사의 도입을 설명할 부담이 있다.
2) 6.에서의 '다름'을 양립불가능성으로 해석한다. 이는 거짓 진술의 일반적 규정을 제공하긴 하지만, 반대가 아닌 다름을 강조하는 이전까지의 논의와 어울리지 않는다.
3) '다름'의 범위를 한정한다. 예를 들어 '크지 않은 것이 작은 것 못지 않게 같은 것을 지시할 수 있다'는 말에서 큼, 작음, 같음은 한정된 범위에 속하며 양립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 역시 명시적 언급이 아닌 추정에 근거한다.

세 해석들 중 1)이 다름의 일관된 의미로서 비동일성을 견지하고, '있는 것들'이 보편양화사를 내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자연스럽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러한 추가적인 해석이 요청되는 이유는 3., 4.에서 비동일성으로서의 다름인 있지 않음이 거짓 진술에서의 있지 않음과 다르기 때문이다. 진술 분석에서 있는 것과 있지 않은 것은 서술관계를 의미한다. 그러나 서술관계의 부정은 최고류들의 결합, 3., 4.에서는 다루어지지 않은 주제이다. 6.에서는 X에 관해서 '있는 것과 다른 것'이 X와 다른 것이 아니라 그것과 관련하는 유들과 다른 유를 지칭하기 때문이다. 비동일성으로서의 있지 않음과 몫을 나누어 가짐으로서의 있음은 파르메니데스를 극복하고 복수의 존재자를 확보하는 동시에 그것들의 결합을 성립시켜 다양한 진술 또한 가능케 한다. 그러나 파르메니데스와 '늦게 배운 노인들'을 논파하는 이 이론적 도구들만으로는 거짓 진술의 역설을 논파할 수 없다. 이 두 문제를 한번에 해결하고자 했던 시도가 문제이다.

2. 평가(작성중)

구문론적 구분과 의미론적 구분을 중심으로 연구사에 대한 일목요연한 정리가 이루어지고, 이러한 입장들이 주목하는 핵심 문제를 적시해준다.
(1장)
<이 작업이 유들의 결합과 무슨 관계에 있는가? "있음"의 불가능성이 고려되지 않는다면 유들의 결합으로 나아가는 논의의 전개가 설명되기 어렵다.>
인용된 구절에서 제시되는 구분은 있음과 있지 않음의 의미에 관련되므로<왜?>
이 시점에서 필요한 일은 동일한 한 쌍의 유들에 외견상 모순적 문장들이 성립가능하다는 것뿐이기에<왜?> 그 이외의 의미를 부여하여 애매성의 문제를 여기에서 확정지을 필요는 없다.(12-16쪽)
인용 3.에서 그리고 그 이전의 맥락에서 M이 E의 몫을 나누어 가짐은 M을 독립적인 하나의 유로 확립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표현이고, 그 과정에서 'M은 ( )이다'의 incomplete use를 적용할 경우 부자연스럽기에<보어가 없어서?>
<아닌 것 같은데.>(20-23쪽)
21쪽. M과 완전히 분리된 R? 256b. 나누어 가질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22쪽. complete use에서는 주어의 존재가 표명되는데 in-에서는 metechein이 이야기된다면, einai는 metechein과 같은 것인가?
<X>(23-24쪽) E가
<'대비로서의 다름이 있지 않은 것이다.' 필자의 주장 아닌가?>
25쪽. 다른 것이 있기에 그 부분도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의 부분이 따로 정의된 어떤 무엇이기에 있는 것이다. 257e.
25쪽. 다른 것의 부분의 본성이 아니라 다른 것의 본성의 부분. 번역 문제.
28-29쪽. '못지 않게'가 아니라 '보다는 오히려'이다.
'테아이테토스는 난다'라는 진술을 거짓 진술로서, '테아이테토스는 앉는다'<<'날고 있다,' '앉아 있다' 아닌가? 테아이테토스가 단순한 유가 아니기 때문에 유들의 결합 구도를 그대로 가져와 '앉음 일반'과 같은 술어를 가정할 수는 없다. 『티마이오스』와 『테아이테토스』로 확장될 여지가 막혀 버린다.>>
<E 자체와 X가 나누어 가진 E를 구분할 때엔 일관성만 강조하고 추가된 부분을 설명하지 않더니, ~E와 D의 관계를 유들의 결합에서 거짓진술의 분석으로 적용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 추가된 부분이 설명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진술에서 이름(주어)과 말(동사)의 구분이 추가되었음에도 이에 대한 고려가 없다. 유들의 결합과 달리 말은 앞서 '모상'으로 간주되었으며 따라서 유들의 결합과 진술에서 이름과 말 사이의 결합을 단순히 같은 것으로 볼 수 없다. 또한 다름으로서의 to me on 규정을 통해 모든 각각의 것이 자신 이외의 것들과 다르다는 점에서 to me on과 필연적으로 결합할 수밖에 없음에도 손님은 소피스트가 진술의 경우 to me on과 결합하지 않을 것이라 재반박하리라고 말한다. 이 재반박이 유의미하기 위해서도 역시 유들의 결합과 진술에서의 결합을 구분할 필요가 있으며, 나아가 모상의 규정과 거짓의 규정 역시 구분해야 한다. 엘레아의 손님 혹은 플라톤 자신이 유들의 결합에서 규정된 다름과 to me on을 거짓 진술 분석에도 일관되게 사용하고 있다는 점은 받아들일 수 있으나, 거기에 추가되는 요소가 문헌 상에 등장하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이를 인정하면 소위 그 '근본적인 문제'가 발생하고 그것이 문헌 자체의 문제라는 입장은 유지될 수 없다. 

=================================1차 요약 실패==================================

1. 해석과 정리를 구분하라.

2. 가능한 한 긍정적인 해석을 통해 비판하라.

3. 이기려 들지 말고 배울 것을 찾아라.

4. 인용과 주석을 거쳐 확인하며 연구의 범위를 넓혀라.

5. 글쓰기의 방식을 고민하라.

그래서 결론은 위 요약 정리는 실패입니다.

그 외에 논문에서 제안된 대안적 해석에 따를 경우, 예를 들어 '나무는 땅이 아니다'와 같은 사태는 어떻게 설명되는가? '관사를 생략함으로써 모순을 드러냄'이라는 것은 Brown의 주장인가 전헌상의 주장인가? 본문에서 'to heteron,' 'tou heterou,' 'heteron esti'의 등장을 논문은 어떤 식으로 이해하고 정리하는 것인가? 요약 정리하면서 해결해야 할 과제들. 아, 『소피스테스』 요약도 해야지. 나야말로 정말이지 게을러 터진 쓰레기 버러지로구나. 나가 뒈지자, 쌀과 물과 공기가 아까운 화상아.

=================================2차 요약 시도==================================

-작성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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