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요구 받은 사항들을 되짚어 보자. 우선 한정된 시간 안에, 그러니까 내년 3월 초까지 대략 네 달 안에 완성할 수 있는, 석사수준에서 요구되는 연구성과를 낼 수 있는 범위를 넘지 않는 주제를 구체화시켜야 한다. 다음으로, 그 주제가 어떤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를 논증해야 한다. 이는 다시 고대철학 내에서, 여타의 철학에서, 학술일반에서 나누어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내가 집중적으로 다루어야 하는 문제에 관련하여 학술적으로 중요한 연구들을 추려야 한다. 연구의 주된 흐름들을 정리하고 내 위치가 어디이며 내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공격해야 할 지점들과 방어해야 할 지점들이 무엇인지 설명해야 한다. 이러한 조건들을 만족시키는 계획을 목차의 형태로, 혹은 간략한 논증을 포함한 요약의 형태로 작성하여 발표해야 한다. 『소피스테스』를 읽지 않은, 따라서 당연하게도 관련된 주제에 대한 여러 연구들에도 생소한 사람들로 하여금 내 논문이 문제로 삼는 바를 왜 물어야 하는지, 그것이 어떠한 의미인지, 그리고 왜 내가 주장하는 방식으로 해석되어야 하고 그런 식으로 바로 그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납득할 수 있는 논거를 제시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고대철학연구의 의의는 이미 고착되고 정형화된 사유틀의 성립 이전으로 되돌아가 지금에 와서는 간과하고 있는 문제들, 혹은 지금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여러 문제들이 처음 제기되고 고찰되기 시작하던 당시의 상황을 재점검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어떤 문제가 왜 제기되었고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이 충족시켜야 할 조건들은 어떠한 것이었는지, 그것이 오늘날 지속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새로운 시각과 통찰을 가능하게 하는 측면은 없는지, 혹은 선입견과 편견으로 인해 오해를 불러 일으킨 부분들은 없는지, 처음 시작점에서 지향하였던 바로 그 목적지를 향해 뻗어나온 선의 기울기가 기대했던 방향으로부터 얼만큼 가까이 있고 또 얼마나 멀어졌는지 검토한다는 것, 혹은 역으로 당시의 문제제기에서 부족했거나 잘못되었던 점은 없었는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었고 어떻게 수정되고 보완되어 왔는지, 이런 것들을 반성해 본다는 것만으로도 고대철학은 그 자체 충분한 의의를 가진다고 믿는다. 『소피스테스』는 어떤 것이 그것으로서 자기 자신과 같고 그 외의 것들과 다르다는 것, 그것 자체로는 '다름'이라는 속성도 '같음'이라는 성질도 지니지 않음에도 '다름'과 '같음'을 겪고 그러한 부분을 드러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그것은 어떤 무엇이면서 또한 그 외의 어떤 것들이 아니며, 그럼에도 그 외의 것들인 한에서만 그것 자체 고유한 자기 자신일 수 있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따져 묻는다. 가까이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논리로부터 헬레니즘 시기 여러 학파들의 서로 다른 각기 고유한 논리학들, 중세를 거쳐 정교화된 논리에 이르기까지 소위 '고전논리학'이 출발 이면에 자리하는 논리적 문제의식이 여기에서 구체화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르네상스 시기의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스피노자, 흄, 이런 사람들을 거쳐 다시 칸트, 헤겔까지 또 각자 상이한 논리에 대한 이해들을 제시하고 프레게, 러셀 등이 등장하고 수학과 전산학과 논리학 자체의 발전에 더해 자연과학도 분과별로 눈부신 성장을 거친 현대에는 문외한이 보기엔 외계어로밖에는 여겨지지 않을 기호들이 범람하는 현대논리학이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양화니 양상이니 진리치가 2가니 3가니 뭐 이러저러하 논의들에 대해서도, 두 가지 접근이 가능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고대철학의 문헌학적 특징에 주목하여 현대의 논리적 도구들을 사용해 고대철학의 문헌들을 해석하는 일에 대해 반박할 수 있을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현대논리학이 전제하는 형이상학적 조건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여전히 이도저도 아닌데 있기만 한 x라는 것이 '어떻게 진술, 사유, 지시 가능한지' 직관적으로 이해하진 못하고 있다. 젠장, 얘기가 산으로 가는군. 쨌든 『소피스테스』는 동일률, 모순율, 배중률의 문제를 다루고 이를 전제하고서 다시 진리치에 대해 탐구한다. 이런 용어들이 전혀 성립하기 이전의 상태에서 그러한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물론 누구는 그렇다 하고 또 누구는 아니라 하지만 내 입장이 그렇다는 것이다. 플라톤 해석사에서는 발전론과 통합론 사이를 가르는 길목 중 하나가 되고(초기 이데아론이랑 여기 논의가 맞아 떨어지냐 아니냐 뭐 그런 거), 고대철학사에서는 엘레아학파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되어 당시 논의의 큰 전쟁터 중 하나였던 'to on(the Being)'의 문제가 플라톤에 의해 어떻게 해석되고 어떤 문제가 구성되며 어떤 해결책이 제시되고 있는지, 그것이 이후 아리스토텔레스 등으로 이어지는 흐름에 부합하는지 혹은 대척되는지 뭐 그런 이야기들도 나올 수 있겠고. 그런데 실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쨌든 마음 속에 품고 있던 계획을 줄이기만 하면 되는데, 그래서 나로서는 유들 혹은 형상들 사이의 결합만 남겨놓으면 되는 것인데, 내가 제시하려는 해석의 실마리는 그 얘기 나오기 전 하나와 여럿, 운동과 정지 논의하는 부분에서 등장하고, 유들의 결합의 사례로 등장하는 놈들은 to on, 운동, 정지, 같음, 다름인데 to on은 to me on(the Not-Being)과 관련해서 대화편 중반부터 끝까지 핵심개념이고 운동과 정지도 말했듯이 유들의 결합 논의하기 전에 한참 다루는 쌍이고, 이것들에 대해 검토하고 분석하고 해석하고 논증하는 그런 과정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내가 이 빠진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물론 다 다루려고 든다면 석사논문 작성과정이 한도 끝도 없이 늘어나 버릴 테니, 그럴 수는 없겠고. 그러데 이 가지치기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도무지 계획이니 의의니 뭐니 이러저러한 것들을 씨부릴 자신이 없다. 음, 대화편 논의 흐름에서 내가 다룰 문제의 위치를 정리하는 것도 넣어줘야 하겠고. 머리는 안 돌아가고, 아, 모르겠다.

2. 수사적인 의도로 현학적인 문체를 사용하는 것은 대화할 생각이 없고 그냥 내가 옳으니 너는 닥쳐라, 뭐 그런 뜻 아닐까. 스스로 알지 못하는 소리들을 내뱉고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한 자들이 알아듣지 못했다는 것을 참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아는 척하고 그러면서 서로 다른 말을 하면서 아무도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채로 한참을 떠들다가 '나 너 좋아, 나랑 놀자, 나 너 싫어, 너랑 안 놀아' 뭐 이런 결론에 이르는 것. 책 읽을 때 저딴 짓 하는 새끼들은 위고 아래고 상관없이 그냥 다 쓰레기로 보이는데, 말 섞을 때는 별로 그런 역겨움이 동하지 않는다. 몇 마디 나오는 순간 그냥 넋을 놓아 버리거나, 아니면 대놓고 따져 물으면 되니까. 전자의 경우 다시는 안 볼 작정을 하게 되고 그래서 실제로 안 보게 되는데, 후자의 경우에는 아무리 그렇게 묻고 따지고 결국 본래 하려던 얘기를 훨씬 쉽고 간단한 말로 바꾸어 놓아도 나중에 다시 만나면 상대는 또 엇비슷한 잘난 척을 해대고 그렇게 나는 지치다가 다시 앞쪽의 태도를 취하게 된다. 정리되지 않은 혼자만의 넋두리야 말 그대로 생각이 정리가 안 되었으니 어렵고 복잡하고 혼란스럽게 떠들든 끄적이든 상관 없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그렇게라도 지껄이고 뱉고 싸대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남과 대화하거나 남의 생각에 다가서거나 자신의 생각을 드러낼 때 저 따위로 굴면 그냥 답이 없는 듯. 뭐 이해는 한다. 조곤조곤하게 한 마디 한 마디 새겨 넣고 쌓아 올리듯 말하는 사람들을 얕잡아 보고 만만하게 보고 깔보고 업신여기는 그 더럽고 추잡한 열등감이야 이미 지겹게 겪어 봤으니. 뭐 그들의 기를 죽이고 싶은 사람들이 가방끈과 잘난 명함을 곁들여 되도 않는 뻘소리를 휘황찬란하게 씨부려대는 거야, 그럴 수도 있겠고 굳이 찌질한 잡것들을,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며 날로 먹으려 들고 그걸 당연히 여기고 제 권리라 생각해 주장하고 강요해대는 씨발새끼들에게 친절하고 다정다감하게 굴기 어렵다는 것, 모르는 바 아니다. 그래, 모르겠다. 실은 상대가 그 누구든 마치 저 소크라테스마냥 재치와 익살과 그 밑에 깊은 애정을 지니고 지치는 일 없이 대화하고 또 대화하거나, 아니면 그냥 이기고 지고 그런 거 다 때려치우고 틀어박혀 책이나 읽다가 한줌 정도 되는 '알아듣는 사람들'끼리 모여 자기네들만의 이야기만 떠들다 가거나. 뭐 내가 뭔 상관인가, 다들 알아서들 살 텐데.

3. 생각해 보면 나는 읽는 법만 죽어라 배우고 쓰는 법은 제대로 배우지를 못했지 싶다. 그런데 남들이라고 뭐 그걸 따로 딱 각 잡고서 배운 일이 있을까, 이 놈의 나라에서? 결국 제대로 읽는 것은 제대로 쓰는 것과 완전히 별개의 일은 아닐 텐데, 나는 잘 쓰질 못하니 잘 읽지도 못하는 것이고 남들은 잘 쓰는 걸 보니 잘 읽기도 하는 듯하다. 언제부터 어디서부터 또 어그러진 건지, 그걸 다시 되짚어 돌아가 돌이켜 세우기까지 나는 또 얼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야 할지, 그러는 동안에 그나마 얼마 남지도 않은 몇몇 기회들마저 죄다 날려 버리면, 내게 기약할 '다음'마저 없어져 버리지는 않을지, 이런저런 걱정들이 가득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한 번만이라도 똑바로 걷고 싶다. 단 한 걸음만이라도 제대로 내딛고 싶다. 그 한 번을 준비하다 그마저도 못 나아가 보고 뒈져도 좋으니까, 올바르려고 애쓰는 그 발버둥 지랄까지도 올바르게 하고 싶다. 남들은 잘만 해내는 일을 내가 못 해내는 까닭은 게으르고 비겁해서, 그것도 능력도 없는 새끼가 주제도 모르고 막 돼먹어서, 뭐 그렇겠지만서도, 모르겠다. 아아, 씨발, 좆같구나. 난 왜 남들 붙들고 이래야 하느니 저래야 하느니 개소리 해대며 시간만 낭비해 댔던가, 우라질 오지랖 지랄병이 도져서 개새끼가 헛지랄만 하다가 허송세월 잘도 보냈구나. 썅알, 지 새끼들 공부한 거 아까워서 헛소리 뽑다 관두지 말고 조금이라도 돼먹은 소리 좀 지껄이게 해주겠노라고 주제 줄여라, 문제 다시 잡아라, 다시 읽어 봐라 하는 어르신 두고 섭섭하다느니 왜 도전을 막느냐느니 해대는 새끼들이 있질 않나, 뭔 소린지 알고 지껄이냐 모르고 지껄이냐 엉킨 뇌부터 차근차근 풀고서 쳐 써 갈겨라 소새끼야 말새끼야 해줬던 것들은 여전히 내 대가리 똥 좀 보소 자랑질 하느라 여념이 없고, 인문정신문화뭐시깽이가 어쩌고 하는 와중에도 노령화가 진행되고 수험생들이 줄어가고 결국 대학들이 줄어들 것이고 교수자리, 강사자리 다 줄어들 것이고 그 자리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백 배 천 배로 늘어나도 나새끼나 니새끼들이나 그 자리랑 연 없는 좆된 인생인데 씨발 왠 학부새끼 하나는 교수가 꿈이라고 개드립을 쳐대고 또 어떤 새끼는 다 쳐 읽지도 않은 책 가져다 사회분석을 하겠다는데 이게 사회학을 하겠다는 건지 정치철학을 하겠다는 건지 그냥 평론가가 되시겠다는 건지 나도 너도 옆집 발정난 개새끼도 다 모르겠고, 내가 대가리 빠가인 새끼들한테 이러니저러니 시비붙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남들 이만큼 한다, 니도 이만큼 못 하면 넌 저새끼들의 좆밥이고 저새끼들 먹다 버린 찌꺼기도 못 주워먹고 팽당하고 그냥 쓰레기고' 뭐 이런 얘기 하는데도, '형은 하면서 나보곤 왜 하지 말래요'라고 하면 씨발, 내가 병신인데 나만큼도 못하는 씹호로개병신 데리고 내가 '야, 신난다, 같이 망하자' 이래야 내가 좀 바람직하고 따스하고 인간미 넘치고 착하고 애정 가득한 씹선비선배새끼가 되는 거냐 뭐냐. 하지 말란 게 아니라 개빡세게 하란 소리일 뿐이고, 뭐 개중에 난 놈년들한텐 그나마도 해보고 싶음 하고 말면 말고까지 보들보들하게 말하기도 했고, 그 지랄병을 하고 산 게 7~8년인데 맨날 나는 같은 소리 쳐지껄이며 오지랖꼰대꼬장씹쓰레기취급이나 당하는 거고 세상 바뀌는 거 좆털의 때만큼도 없고, 그러는 사이 원래 찐따인 나는 더 호구잡놈거적때기버러지새끼가 되어서는 '그 나이 쳐먹도록 뭘 했길래 아직까지 그렇게 좆도 없이 병신이냐' 뭐 그런 평가나 받으며 천지사방에서 내가 다른 놈들한테 말하는 걸 고대로 되받아 먹고 사는 거다, '그만 해라, 관둬라, 때려 치워라, 나가 뒈져라, 네게 할당된 시공간마저 아깝다,' 대놓고 들어도 좋지만 뭐 예의와 배려와 아량을 갖추신 어르신들 입에서 나올 얘기들은 아니라 그저 그 깊은 속내를 하찮기가 동네 시궁창 장구벌레 똥구녕같은 내가 감히 헤아려 짐작컨데 그러하단 얘기지. 모르겄다. 빡셌는데, 지금도 빡센데, 앞으로도 그럴 작정인데, 난 뭘 얼마나 어떻게 더해야 사람구실을 하고 살게 될까,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 아, 외롭다. 언제나 그렇듯 또 술이 고프다.

-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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