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피스테스』에 대한 미카엘 프레데의 논문 말미, 그는 이 대화편이 지극히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방식으로 그것도 당대까지 본격적으로 다루어진 일이 없는 새로운 문제를 적극적으로 전면에서 다루다는 점에서 지극히 중요하다는 논조로 거의 찬사를 보낸다. 아크릴은 현대 논리학 저술까지 인용해 가면서 이 글의 그러한 체계적, 전문적 측면, 달리 말하자면 그 형식적 엄밀성에 주목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진술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앞서 유들의 결합을 적극적으로 적용시키지 않는다. "로고스는 유들의 결합에 의해 우리에게 이루어진다(생겨난다)." to on을 규정성 자체로, 같음과 다름을 내포와 외연의 조건들로, 운동과 정지를 형상들의 형이상학적 결합가능성 혹은 개념들의 상관가능성의 근거들로 간주한다면, 어차피 로고스가 아니라 그 무엇이 되었든 모든 것은 그 각각의 성립을 위해서 유들의 결합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콘포드도 아크릴도 그렇게 보질 않았다. 아마도 "어떤 것들을 서로 결합하고 어떤 것들은 그리 하지 않는다" 라는 문제가 이러한 선택과 관련이 될는지도 모르겠다. 일종의 논리적 규칙들, 논리적 조건들로서 '가장 중요한 유들'을 해석할 경우 서로 결합하지 않는 것은 없다. 추가적인 조건이 붙을지언정 모든 것은 모든 것과 섞인다. 물론 내 입장에서 보자면야 중심은 끝들과 섞이지 않는다고 주장하겠지만, 그 중심이 뭐고 끝들은 또 무엇인지 문헌 내에서 얼마나 그 해석을 정당화시킬 수 있느냐 묻는다면 답하기는 쉽지 않다.

2. 『소피스테스』를 일관된 논지가 전개되고 통일된 체계를 보여주며 그 자체로도 충분한 완결성을 갖춘 대화편으로 간주하는 내 입장에서는 한 문제를 다른 문제와 연결시키지 않고 심화시켜 문제제기를 하는 일만도 가닥이 잘 잡히지 않는다. 반대로, 내가 제기하는 문제가 이 문헌에 관련하여 유효하고 적절한 것이라면 더욱이 그것이 일종의 구심점과 같이 다른 문제들과 맞닿아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지도교수님 말씀대로 내가 해야 할 일은 한정된 시간 안에 확실한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유의미한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해결할 계획을 마련해 이 작업의 수행 가능성을 먼저 검토받아야 하는 것이다. '중심과 끝들'에 대한 언급은 유들의 결합을 다루기 전에 등장하며, 심지어 파르메니데스의 단편을 인용한 것이다. 그 인용 끝에 등장인물인 엘레아 출신의 손님이 덧붙이는 말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모든 것은 부분들로서 그런 것들을 가지고, 중요한 건 그러니까 막무가내로 '하나'라고만 할 수는 없다는 한정적인 주장이 될 수도 있고 오히려 그게 증명부담이 덜 하다. 직접적인 논의맥락은 일원론 안된다는 얘기기도 하고, 파르메니데스가 일원론자로 간주된다는 점에서(그게 질적인 것이든 수적인 것이든) 파르메니데스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으로서 수사적으로도 꽤나 흥미로운 비판의 방식이라 해석할 여지도 생기긴 한다. 하지만 부분들을 지닌다는 점을 유들의 결합에 적용시키지 않고서는 사람이란 것이 여러 이름들을 또한 가지며 그렇게 불리고 모든 것들이 ta onta이면서 그 각각이 to on이고 그런데도 to on 그 자체와는 다르다는 것을 충분히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또 부분들을 끌고 들어와 하나가 동시에 여럿이기도 하다는 점을 설명함으로써 전체와 부분을 나눈들, 능동적 부분과 수동적 부분, 정지된 부분과 움직여진 부분, to on의 부분과 to gignomenon(becoming, 물론 이런 표현이 직접 등장하진 않지만)의 부분이 다 같이 부분이라면 이 사이의 구분을 설명하기 어려워질 것이고, 어떤 것의 정의(定義)를 구성하는 진술들과 우연적이지만 참인 진술들, 그리고 필연적으로 거짓인 진술들과 개연적으로만 거짓인 진술들 사이의 수준이나 단계에 대해서도 구분이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결국 중심과 끝들에 대한 이야기를 유들의 결합에까지 끌고 들어와 버리면, 이 적용의 근거로 써먹은 내용들이 정의와 진술과 작용 등등의 것들이기 때문에라도 to on의 해석 문제, kinesis(움직임)와 stasis(멈춤, 섬)에 대한 해석 문제에 대해 우선 입장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해석의 결과가 무엇인지 설명하기 위해서라도 유들의 결합과 진술에서 이름과 동사의 결합, 그리고 전반부에 걸쳐 제시되는 분할들에 대해서도 내 입장을 정당화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걸 다 다룬다는 것이 지금의 내 수준으로 가능할까? 가능할 수야 있다. 시간만 한 10년 20년 받는다면 어쩌면 뭐 연구사도 다 섭렵하고 아예 『소피스테스』로 주석서 한 편 내고 뭐 그러면서 말이다. 그렇게 석사를 써서 뭘 하려는 건가? 그렇게 하고 싶은가? 그렇지는 않다. 난 늘상 내가 석사과정을 거치면서 확인하고 싶었던 바가 이후에 계속 더 앞으로 나아가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런 식으로 공부를 할 기본적인 자격을 갖추었는가 하는 점이었다고 생각해 왔다. 욕심을 버려야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스스로 감당하지도 못할 제멋대로의 욕심만 늘어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계속 욕이나 먹었던 주제에 무슨 근자감인가. 학당 선배 말대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논증할 만한 꺼리를 만들어 내는 것, 그것도 학자의 능력이라면 능력인 것이다. 하기사 그 정도로 거창한 일조차도 지금의 내가 당면한 문제와는 사실 좀 거리가 먼 얘기이겠지만.

3. 『소피스테스』 전반부에 제시되는 분할들을 정리하려니 솔직히 좀 흥이 안 난다.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다룬 대화편으로 『정치가』가 떡하니 있을 뿐더러 『파이드로스』나 『필레보스』 같은 곳에서도 여기보다는 좀 더 진지하게 분할이라는 방법 자체를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 『소피스테스』에서 분할의 과정은 엄밀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싶기도 하다. 유들의 결합을 고찰하기 전까지, 손님과 테아이테토스에게는 '~A'와 'B(B≠A)'를 구분할 개념적 도구랄까 뭐 그런 것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사냥꾼이 장사를 하는지 소크라테스가 젊은이들을 사냥하는지 낚시꾼이 교육을 하는지, 그런 것들이 가능한 건지 필연적인 것인지 사실인지 참인지 거짓인지 논할 확실한 근거와 기준이 없는 마당에 이 분할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차라리 바로 이러한 문제상황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 아니겠나? 물론 이를 읽어 나아가면서 느껴지는 위화감도 플라톤이 의도했다는 정도의 추정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뭐야, 씨발, 소피스테스가 소크라테스나 하던 정화로서의 시험(elenchos)을 한다고?' 뭐 이런 느낌이 들도록 만드는 게, 적어도 이 대화편보다 앞서 쓰였다고 간주되는 다른 대화편들을 거치면서 소크라테스 뽕을 맞은 족속들에 한해서는 그들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뛰어들게 만들 아주 효과적인 미끼를 던진 거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소피스테스가 온갖 짓들을 하는 것은 사실인데, 그렇다고 그런 식으로 소피스테스가 정의되는 건 아니고, 뭐 그러다 보니 분할해 나아가면 빠져나갈 구멍이 없이 딱 떨어지게 한정이 되어서 뭔가 '이게 이거다'하는 느낌으로 정의를 내리는 기분이 들기는 해서 버리기는 아까운 분할이라는 방법을 고민하게 만드는 효과도 있을 것 같고 말이다. 그래서 따지고 보면 분할들을 제시하는 부분의 논지와 줄거리를 요약하고 정리하자면야 이 과정이 어떤 식으로 문제에 착안하고 그것을 재구성해 제기하는지 밝히는 방식으로 해야 하겠지만, 아예 이 주제로 딴 논문을 하나 쓸 수도 있을 것을 지금 시급한 문제가 코앞에 발등에 난리가 난 마당에 이걸 붙들고 있어야 한다는 게 좀 뭐랄까 거시기하다는 것이지. 그러거나 말거나 까라면 까야지, 그러려고 들어온 대학원인데.

4. 『소피스테스』 연구서 중에 노토미가 쓴 것이 있는데, 또 학부 조교 들어갔을 때였나 동양철학 전공하는 대학원생 친구가 이 대화편 일역 가져다가 쓴 글도 흥미롭고, 해서 좀 일역들이나 일본발 연구서들이 궁금하던 차에 학부 동기녀석 하나가 생각난다. 지금 기자 하느라 바쁜 놈인데 일본어가 아주 기똥찬 친구. 학부 다닐 때였으면 '야, 너 일어로 읽고 나 희랍어로 읽고 그러면서 강독이나 하자' 했겠지만 지금이야 얼굴 보는 일도 드문 마당에 무슨. 사실 그런 문제가 아니고 내가 직접 일어도 배우고 최근에 중국에서도 아주 그냥 본격적으로다가 플라톤 번역 착수했다던가 뭐라던가 그런 얘기도 주워 들었던 것도 같고 해서 중국어도 배우면 좋겠고 이러니 저러니 해도 당장에 독일어도 어중간하게 하다 만 거 더 붙들고 불어부터도 일단 시작을 해야 하긴 하겠고 이탈리아어도 모르면 연구 쪽으로 손해보는 게 꽤 되는 듯한데 이건 또 어쩌지, 능력도 안 되는 주제에 욕심만 는다. 이게 욕심인지 양심인지 둘 다인지 그건 또 모를 일이겠으나. 당장에 고전어나 좀 똑바로 해야지 않겠나 싶기도 하고. 그 전에 영어는? 아니, 우리말은 좀 제대로 하시나? 흐, 한도 끝도 없지.

5. 진즉에 우려스러웠던, 뭐 꼴같지도 않고 하찮고 보잘 것 없는 것이긴 하나 그나마도 과장된 학부 때의 허명이 이래저래 벗겨지고 있는 듯하여 한편으로는 다행스럽다는 생각도 든다. 나를 세상 둘도 없는 개쓰레기 가식으로 똘똘 뭉친 위선자 취급하는 사람도 나오고, 무슨 철학사라도 새로 쓸 것처럼 굴던(사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런 야심은 품은 적이 없긴 한데 말이지) 나란 놈이 석사 가자마자 시작해서 수료하고 나서까지 내내 욕이나 먹고 찌끄래기 병신 취급을 받으며 이래저래 걷어차이고 다니기나 하고, 인간적으로도 학문적으로도 뭐 물론 아무리 애써 봤댔자 잘 풀렸어도 평가조차 받을 수준이 못되는 시퍼런 갓난쟁이 처지였겠지만 지금은 그나마의 취급도 아까운 적나라하고 처참한 몰골이 드러나고야 말았다. 의리 빼면 시체인 척은 지 혼자 다 하고 다니던 나란 놈은 이제 동기녀석들 만난 게 언제였나 그조차 오래 되어서 가물거릴 지경이고, 그러니 선배니 후배니 스승님들이니 따지고 들면 말할 것도 없고, 개인적으로는 쌓은 것도 없는 주제에 그나마 무너져 바닥을 파고 들어가고 있는지라 이젠 뭘 추스려 주워 섬길래도 그러기조차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니까 이 꼬라지가 늘상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인데, 나같은 저급 버러지 한 마리 짓이겨 밟지도 않고서, 우물 안에서 개구락지 한 마리 배때기 갈라 내장 뒤집어 놓지도 않고서 꾸벅꾸벅 선후배놀이나 하면서 웃는 낯 뒤로는 '씨발, 세상이 나를 몰라주네, 난 좆나 천잰데 무지랭이 시정잡배 허접쓰레기 거지새끼들이 눈깔이 썩어서 이 나님을 홀대하네, 니들 나중에 내 자서전에 이름 안 올려 준다, 흥칫뿡' 이런 생각이나 쳐 하고 있으면, 그 따위로 살면 좆된다는 얘기가 해주고 싶었을 뿐이다. 학부에서 내가 목격한 현실이란 건 죄다 나보다 (애초에 비교하는 게 웃길 정도로) 잘난 사람들의 미칠 듯한 노력과 그들에게 돌아오는 얼토당토 않은 가난과 이해할 수 없는 천대, 그런 것뿐이었으니. 그 공포로부터 자유로운 것들에 대해 내가 의심하는 한 가지는 혹시라도 저것들이 '난 교수 될 수 있을 거야'라는 헛발질을 남몰래 차대고 다니는 것 아닐까 하는 것이었고. 썅알 것들아, 우린 진즉에 좆됐다니께. 그렇다고 무슨 중뿔난 학문업적을 남기리란 기대도 안 들고, 그저 하나 남은 희망이라고는 학문이란 게, 앎이란 게 어쨌든 저 혼자서 알아서 잘 살아 짱짱한 그런 놈일지도 모른다는 거, 언젠가 어디에선가 누군가는 거기 닿을지도 모르고 거기까지 이어지는 길에 티끌의 때의 세균의 코딱지만큼은 나나 너 같은 집먼지진드기 같은 새끼들도 기여라는 걸 혹시나 하고 뒈질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뭐 그런 거라고 나는 굳게 믿어서, 그건 전하고 나누고 함께하길 바란 것이다. 설령 세상이 망하더라도 그게 진리를 없게 할 수는 없지 않겠나, 그런 진리에 대한 일종의 사이비신앙이랄지 뭐 그런 거다. 내 한몸 간수하며 신경써야 할 거라곤 그냥 정직하고 성실하게 학문하고 있는지, 그거면 족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생각하니 학문이란 게 마냥 즐겁고 욕을 먹고 걷어 차여도 실실 웃음이 새어 나오고, 그러다 보니 꼰대질 하는 잡것들한테 대들어도 보고 나 군대 갈 때 교복 처음 입어 본 애들이 기어 들어와 이게 맞네 저게 맞네 뭔소린지 못 알아들을 소리를 해대며 개기고 대들어도 혹시 뭔가 맞는 얘기 하는데 내가 병신이라 못 알아 쳐먹는 건 아닌가 귀도 기울이게 되고 닥치고 끄덕거리는 새끼들보다 치받아 죽여 버릴까 보다 하고 덤비는 새끼들이 좆나 반갑고 고맙고, 아, 뭐, 그랬단 거다. 그래 봤댔자 실상 나는 남일에다 개를 놓아라 소를 놓아라 지랄병 난 꼰대질을 해댄 마초꼰대쭉정이새끼였지 않나. 남의 정직과 남의 성실에 내 잣대나 들이밀며 시비질이나 걸어대던 유아론 작살나는 독단적 싸이코패스였을 따름이지 않나. 차라리 진작에 지금처럼 살아야 했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가끔은 한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저 따위로 살다 보니 이 따위 꼴이 된 거란 생각에 별로 과거 붙들고 후회하고 지랄하는 거 좋아하진 않지만서도, 애초부터 니가 어쩌니 걔가 저쩌니 할 거 없이 닥치고 집, 도서관, 학교만 왔다갔다 하면서 잠자코 책이나 봤으면 적어도 석사 수료까지 하고나서 이 새끼 대학원 와서 뭐 한 건가 의구심 들게 만드는 떨거지는 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은 거다. 말했듯이, 그럼 뭐하나, 어쩌면 이런 반성조차 못하고 주화입마 거하게 빠져 있을지도 모르지. 그냥, 며칠 전에 오랜만에 학교 후배들 만나 술 몇 잔 하고 나니 난 참 변함없이 꼰대새끼구나 싶기도 하고, 또 어찌어찌 건너건너 알게 된 고등학생 한 분께서 건대 철학과 수시 몇 차를 붙었다던가 뭐라던가 하는 얘기가 들리길래, 속으로 '말려야 하나, 뭐 어디라고 별 다를 것도 없는데 그럴 필요가 있나, 근데 내가 뭐라고 가타부타 씨부렁대나' 이런저런 생각도 들어서 그냥 씨부려 봤다. 나는 그냥 레인보우랑 걸스데이랑 에이핑크랑 레이디스 코드나 추앙하면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랑 UMC/UW나 들으면서, 유통기한 지난 내 쓸쓸한 콘돔에 조의나 표하면서, 플라톤이 이랬느니 플라톤을 가지고 누가 저랬으니 뭐랬느니 어쨌느니 저쨌느니 그러고 살던대로 살면 그만이겠다만.

-蟲-

P.S. 몇몇 지인들께서 드나들곤 하신다는 이야기를 접하여 조금 자기검열을 해볼까 싶었으나, 말짱 황에 도루묵인지라 그냥 여전히 이 새끼 병신이구나 하고 넘어가들 주십사 삼가 하해와 같은 아량을 청하여 비옵나이다. 막 꼴보기 싫어서 한 대 쥐어 때리고 싶으면 술을 쏴요들, 맞아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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