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e Vorstellung, die nur durch einen einzigen Gegenstand gegeben werden kann, ist aber Anschauung. Auch würde sich der Satz, daß verschiedene Zeiten nicht zugleich sein können, aus einem allgemeinen Begriff nicht herleiten lassen. Der Satz ist synthetisch, und kann aus Begriffen allein nicht entspringen. Er ist also in der Anschauung und Vorstellung der Zeit unmittelbar enthalten.

→ 단지 한 고유한 대상을 통해서만 주어질 수 있는 그 표상은, 그러나 직관이다. 또한, 상이한 시간들은 동시일 수 없다는 그 명제는, 보편적 개념으로부터 도출되지 않을 것이다. 그 명제는 종합적이고, 오로지 개념들로부터만 생겨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러므로 시간의 직관과 표상 안에 곧바로 포함된다.

5) Die Unendlichkeit der Zeit bedeutet nichts weiter, als daß alle bestimmte Größe der Zeit nur durch Einschränkungen einer einigen zum Grunde liegenden Zeit möglich sei. Daher muß die ursprüngliche Vorstellung Zeit als uneingeschränkt gegeben sein. Wovon aber die Teile selbst, und jede Größe eines Gegenstandes, nur durch Einschränkung bestimmt vorgestellt werden können, da muß die ganze Vorstellung nicht durch Begriffe gegeben sein, (denn die enthalten nur Teilvorstellungen,) sondern es muß ihnen unmittelbare Anschauung zum Grunde liegen.

→ 5) 시간의 무한성은, 시간의 모든 규정된 크기가 단지 하나의 고유한 그저에 놓여 있는 시간의 제한들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라는 것으로서,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근원적인 시간 표상은 무제한한 것으로서 주어져야만 한다. 그러나 그 부분들 자체가 그로부터, 그리고 대상 각각의 크기가, 단지 규정된 제한을 통해서만 표상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전체 표상은 개념을 통해서 주어지지 않음에 틀림 없고, (왜냐하면 그 표상은 단지 부분 표상들만을 포함하기 때문에,) 오히려 부분표상들에게 즉각적 직관이 기초로 놓여 있음에 틀림 없기 때문이다.

 

§ 5. Transzendentale Erörterung des Begriffs der Zeit

§ 5. 시간 개념의 초월론적 해명

 

Ich kann mich deshalb auf Nr. 3. berufen, wo ich, um kurz zu sein, das, was eigentlich transzendental ist, unter die Artikel der metaphysischen Erörterung gesetzt habe. Hier füge ich noch hinzu, daß der Begriff der Veränderung und, mit ihm, der Begriff der Bewegung (als Veränderung des Orts) nur durch und in der Zeitvorstellung möglich ist: daß, wenn diese Vorstellung nicht Anschauung (innere) a priori wäre, kein Begriff, welcher es auch sei, die Möglichkeit einer Veränderung, d.i. einer Verbindung kontradiktorisch entgegengesetzter Prädikate (z.B. das Sein an einem Orte und das Nichtsein eben desselben Dinges an demselben Orte) in einem und demselben Objekte begreiflich machen könnte. Nur in der Zeit können beide kontradiktorisch-entgegengesetzte Bestimmungen in einem Dinge, nämlich nach einander, anzutreffen sein. Also erklärt unser Zeitbegriff die Möglichkeit so vieler synthetischer Erkenntnis a priori, als die allgemeine Bewegungslehre, die nicht wenig fruchtbar ist, darlegt.

→ 여기에서 나는 또한, 변화의 개념과, 그와 함께, 운동의 개념이 (장소의 변화로서) 단지 시간표상을 통해서만 그리고 그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덧붙인다: 만일 이러한 표상이 선험적(내적) 직관이 아니라면, 어떤 관계도 모순되고 반대되는 빈사들에게 (예를 들어 그 자체의 장소에 그 장소의 사물이 한 장소에 있음과 있지 않음이 모두) 하나의 그리고 그 관계의 대상 안에서 이해할 수 있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직 시간 안에서만 모순적-반대 규정 양자가 사물 안에서, 즉 순차적으로, 만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시간개념은, 조금도 헛되지 않은 보편적 운동학이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선험적 종합 인식의 가능성을 밝혀낸다.

 

§ 6. Schlüsse aus diesen Begriffen

§ 6. 이러한 개념들로부터의 결론

 

a) Die Zeit ist nicht etwas, was für sich selbst bestünde, oder den Dingen als objektive Bestimmung anhinge, mithin übrig bliebe, wenn man von allen subjektiven Bedingungen der Anschauung derselben abstrahiert: denn im ersten Fall würde sie etwas sein, was ohne wirklichen Gegenstand dennoch wirklich wäre.

→ a) 시간은, 그 자체에 대한 것일, 혹은 사물들에게 객관적 규정으로서 붙어있는, 그러한 어떤 것이 아니고, 따라서 사람들이 사물들 자체의 직관의 모든 주관적 조건들을 추상하였을 때 남는다: 왜냐하면 전자의 경우 시간은, 실질적 대상 없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일 어떤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Die Vorstellung, die nur durch einen einzigen Gegenstand gegeben werden kann, ist aber Anschauung.

그 표상은, 단지 한 고유한 대상을 통해서만 주어질 수 있는, 그러나 직관이다.

→ 단지 한 고유한 대상을 통해서만 주어질 수 있는 그 표상은, 그러나 직관이다.

Auch würde sich der Satz, daß verschiedene Zeiten nicht zugleich sein können, aus einem allgemeinen Begriff nicht herleiten lassen.

또한 그 명제는, 상이한 시간들은 동시일 수 없다는, 보편적 개념으로부터 도출되지 않을 것이다.

→ 또한, 상이한 시간들은 동시일 수 없다는 그 명제는, 보편적 개념으로부터 도출되지 않을 것이다.

Der Satz ist synthetisch, und kann aus Begriffen allein nicht entspringen.

그 명제는 종합적이고, 오로지 개념들로부터만 생겨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그 명제는 종합적이고, 오로지 개념들로부터만 생겨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Er ist also in der Anschauung und Vorstellung der Zeit unmittelbar enthalten.

그것은 그러므로 시간의 직관과 표상 안에 곧바로 포함된다.

→ 그것은 그러므로 시간의 직관과 표상 안에 곧바로 포함된다.

 

5) Die Unendlichkeit der Zeit bedeutet nichts weiter, als daß alle bestimmte Größe der Zeit nur durch Einschränkungen einer einigen zum Grunde liegenden Zeit möglich sei.

5) 시간의 무한성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시간의 모든 규정된 크기가 단지 하나의 고유한 그저에 놓여 있는 시간의 제한들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라는 것으로서.

→ 5) 시간의 무한성은, 시간의 모든 규정된 크기가 단지 하나의 고유한 그저에 놓여 있는 시간의 제한들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라는 것으로서,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Daher muß die ursprüngliche Vorstellung Zeit als uneingeschränkt gegeben sein.

그렇기 때문에 근원적인 시간 표상은 무제한한 것으로서 주어져야만 한다.

→ 그렇기 때문에 근원적인 시간 표상은 무제한한 것으로서 주어져야만 한다.

Wovon aber die Teile selbst, und jede Größe eines Gegenstandes, nur durch Einschränkung bestimmt vorgestellt werden können, da muß die ganze Vorstellung nicht durch Begriffe gegeben sein, (denn die enthalten nur Teilvorstellungen,) sondern es muß ihnen unmittelbare Anschauung zum Grunde liegen.

그러나 그 부분들 자체가 그로부터, 그리고 대상 각각의 크기가, 단지 규정된 제한을 통해서만 표상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전체 표상은 개념을 통해서 주어지지 않음에 틀림 없고, (왜냐하면 그 표상은 단지 부분 표상들만을 포함하기 때문에,) 오히려 부분표상들에게 즉각적 직관이 기초로 놓여 있음에 틀림 없다.

→ 그러나 그 부분들 자체가 그로부터, 그리고 대상 각각의 크기가, 단지 규정된 제한을 통해서만 표상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전체 표상은 개념을 통해서 주어지지 않음에 틀림 없고, (왜냐하면 그 표상은 단지 부분 표상들만을 포함하기 때문에,) 오히려 부분표상들에게 즉각적 직관이 기초로 놓여 있음에 틀림 없기 때문이다.

 

§ 5. Transzendentale Erörterung des Begriffs der Zeit

§ 5. 시간 개념의 초월론적 해명

 

Ich kann mich deshalb auf Nr. 3. berufen, wo ich, um kurz zu sein, das, was eigentlich transzendental ist, unter die Artikel der metaphysischen Erörterung gesetzt habe.

나는 그 때문에 3번을 증거로 댈 수 있다, 거기에서 내가, 짧게 하기 위해서, 그것을, 고유하게 초월론적인, 형이상학적 해명의 항 아래에 놓은.

→ 나는 그 때문에, 거기에서 내가, 짧게 하기 위해서, 그것을, 고유하게 초월론적인, 형이상학적 해명의 항 아래에 놓은 3번을 증거로 댈 수 있다.

Hier füge ich noch hinzu, daß der Begriff der Veränderung und, mit ihm, der Begriff der Bewegung (als Veränderung des Orts) nur durch und in der Zeitvorstellung möglich ist: daß, wenn diese Vorstellung nicht Anschauung (innere) a priori wäre, kein Begriff, welcher es auch sei, die Möglichkeit einer Veränderung, d.i. einer Verbindung kontradiktorisch entgegengesetzter Prädikate (z.B. das Sein an einem Orte und das Nichtsein eben desselben Dinges an demselben Orte) in einem und demselben Objekte begreiflich machen könnte.

여기에서 나는 또한 덧붙인다, 변화의 개념과, 그와 함께, 운동의 개념이 (장소의 변화로서) 단지 시간표상을 통해서만 그리고 그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만일 이러한 표상이 선험적(내적) 직관이 아니라면, 어떤 관계도 모순되고 반대되는 빈사들에게 (예를 들어 그 자체의 장소에 그 장소의 사물이 한 장소에 있음과 있지 않음이 모두) 하나의 그리고 그 관계의 대상 안에서 이해할 수 있게 할 수 없다.

→ 여기에서 나는 또한, 변화의 개념과, 그와 함께, 운동의 개념이 (장소의 변화로서) 단지 시간표상을 통해서만 그리고 그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덧붙인다: 만일 이러한 표상이 선험적(내적) 직관이 아니라면, 어떤 관계도 모순되고 반대되는 빈사들에게 (예를 들어 그 자체의 장소에 그 장소의 사물이 한 장소에 있음과 있지 않음이 모두) 하나의 그리고 그 관계의 대상 안에서 이해할 수 있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Nur in der Zeit können beide kontradiktorisch-entgegengesetzte Bestimmungen in einem Dinge, nämlich nach einander, anzutreffen sein.

오직 시간 안에서만 모순적-반대 규정 양자가 사물 안에서, 즉 순차적으로, 만나는 것일 수 있다.

→ 오직 시간 안에서만 모순적-반대 규정 양자가 사물 안에서, 즉 순차적으로, 만나는 것일 수 있다.

Also erklärt unser Zeitbegriff die Möglichkeit so vieler synthetischer Erkenntnis a priori, als die allgemeine Bewegungslehre, die nicht wenig fruchtbar ist, darlegt.

그러므로 우리의 시간개념은 훨씬 더 많은 선험적 종합 인식의 가능성을 밝혀낸다, 보편적 운동학이, 조금도 헛되지 않은, 설명하는 것보다.

→ 그러므로 우리의 시간개념은, 조금도 헛되지 않은 보편적 운동학이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선험적 종합 인식의 가능성을 밝혀낸다.

 

§ 6. Schlüsse aus diesen Begriffen

§ 6. 이러한 개념들로부터의 결론

 

a) Die Zeit ist nicht etwas, was für sich selbst bestünde, oder den Dingen als objektive Bestimmung anhinge, mithin übrig bliebe, wenn man von allen subjektiven Bedingungen der Anschauung derselben abstrahiert:

a) 시간은 어떤 것이 아니다, 그 자체에 대한 것일, 혹은 사물들에게 객관적 규정으로서 붙어있는, 따라서 남는다, 사람들이 사물들 자체의 직관의 모든 주관적 조건들을 추상하였을 때:

denn im ersten Fall würde sie etwas sein, was ohne wirklichen Gegenstand dennoch wirklich wäre.

왜냐하면 전자의 경우 그것들은 어떤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실질적 대상 없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일.

→ a) 시간은, 그 자체에 대한 것일, 혹은 사물들에게 객관적 규정으로서 붙어있는, 그러한 어떤 것이 아니고, 따라서 사람들이 사물들 자체의 직관의 모든 주관적 조건들을 추상하였을 때 남는다: 왜냐하면 전자의 경우 시간은, 실질적 대상 없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일 어떤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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