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a10-84b7. 유사성 논증. 죽음 뒤에 영혼이 흩어져 소멸한다는 반박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일을 겪기에 적합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고, 영혼이 둘 중 어느 쪽의 것으로 있는지 고찰하고자 한다. 그리고 구성된 것은 그 구성된 방식으로 분해되지만, 구성되지 않은 것은 그런 일을 겪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한 매번 다르게 절대로 같은 것들에 따라 있지는 않은 것들은 구성된 것들인 반면, 항상 똑같이 한결같게 있는 것들은 구성되지 않은 것들이라고 분류한다. 앞선 논의에서 그에 대해 설명(definition?)을 제시한 것들, 무엇으로 있는 그 각각은 항상 그 자체로 단일형상으로 있으면서 같은 것들에 따라 한결같게 있고 어떤 변경도 허용하지 않는다. 반면 여럿인 것들, 저것들과 동명인 것들의 경우에는 자체로도 서로와도 어떤 식으로도 같은 것들에 따른 상태에 있지 못하다. 그리고 변화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감각들로 지각할 수 있는 반면, 같은 것들에 따르는 상태에 있는 것들은 사유의 추론으로서만 파악할 수 있고, 후자는 불가시한 것들이다. 구성되고 변화하는 가시적인 것들과 구성되지 않고 같은 상태에 있으며 불가시적인 것들의 두 부류가 구분되었다. 이제 인간의 경우, 인간의 일부는 신체이고 다른 일부는 영혼이다. 그리하여 신체와 영혼이 각기 가시적인 것과 불가시적인 것 중 어느 쪽 종류(형상)와 더욱 유사하고 더욱 동종적인지를 고찰하는 데에로 넘어간다. 신체는 가시적인 것과 더욱 유사하고 더욱 동종적이다. 반면 영혼은 인간들에게 보이지 않고, 인간 본성상 비가시적인 것이며, 신체에 비해 영혼이 비가시적인 것에 더욱 유사한 것이다.[각주:1] 그런데 '영혼이' 감각을 통해 신체를 추가로 사용하여 검토할 경우 같은 상태에 있지 않은 것들에 이끌려 혼란에 빠진다. 반면 영혼 스스로 그 자체로 검토할 때에는 자신과 동류인 불사불변하는 것을 향해 나아가고 그것과 동반하여 그것에 접해 있는 한에서 방황을 멈춘다. 이 상태가 지혜라 불린다. 또한 영혼과 신체가 같은 것 안에 있을 때 영혼이 주인이 되고 신체는 노예가 되도록 타고났으며 전자가 신적인 것에 유사하며 후자는 사멸하는 것과 유사하다. 영혼은 신적이고 불별하며 지성적이고 단일한 형상인 해체되지 않는 것, 항상 한결같이 자기 자신과 같은 것들에 따른 상태에 있는 것과 유사하고, 신체는 그렇지 못한 것과 유사하다. 그러므로 영혼은 해체되지 않거나 그에 근사한 무언가로 있는 것이, 반면 신체는 빨리 해체되는 쪽이 어울린다. 그런데 신체도 꽤나 오래 해체되지 않고 남는다. 해체되는 일이 어울리는 신체조차 오래 남는데, 이로부터 벗어난 순정한 영혼이 그렇게 벗어나자마자 해체된다는 것은 영혼에게 어울리는 일이 아니다. 특히 신체와 공유하지 않고 신체를 피해 생애동안 죽음을 연마한 영혼은 신체를 벗어나 순정한 것이 되어 신체에 속한 것들을 끌고 다니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신체를 벗어난 영혼은 자신과 유사한 것들이 있는 자신과 유사한 곳으로 떠나게 된다. 해체되기 마련인 신체조차 오래 남기도 하는 것처럼, 해체되지 않는 것과 유사한 영혼도 만일 신체와 교류하고 이를 보살피며 이에 오염된다면, 영혼 그 자체로서 순정한 상태로 신체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러한 영혼은 영혼이라 하더라도 가시적인 곳으로 이끌리게 된다. 신체에 얽매인 잘못된 삶의 대가로 이러한 영혼은 죽어서 가시적 영역을 방황하다가, 물질적인 것에 대한 열망에 의해 다시 신체에 속박되고, 이전 생에 연마한 그 습성들에 속박된다. 육체에 묶여 죽음을 연마하지 않는 삶을 산 영혼은 그 삶의 대가로 죽어서는 방황하고, 욕망에 의해 다시 이전 삶에 어울리는 신체에 속박된다. 시민적 덕에 따른 삶을 살았던 영혼조차 철학하지 않고 죽음을 연마하지 않았다면 신들의 부류에 가 닿지는 못하고 개미나 벌, 혹은 다시 인간의 부류로 돌아가게 된다. 반면 철학자는 영혼이 신체라는 감옥에 갇힌 것처럼 바라보며, 이 구속이 열망에 의한 것이고 열망이 클수록 구속이 강력하다는 점을 이해하고, 필연적이지 않은 한에서 지각들을 멀리하고 불신한다. 그리고 영혼 자체가 자기 자신에게로 모이도록 하고, 영혼 자체가 지성적이고 불가시한 그 자체인 것을 검토할 때에는 영혼만을 신뢰하며 다른 것들을 신뢰하지 않고, 지각되는 가시적인 것을 검토할 때에는 어떤 것도 참된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철학자는 이러한 해방에 맞서 반대하지 않는다. 과도하게 즐겁거나 괴롭게 되는 것, 그리고 이 강력한 경험으로 인해 그것이 참이라 생각하도록 강제되는 것이 특히 신체에 의해 영혼이 구속되도록 만든다. 이 구속의 악순환으로 인해 영혼은 점점 더 하데스로부터 멀어진다. 이러한 것들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절제를 갖추고 용기를 내는 자들이 진정으로 정당하게 배움을 사랑하는 자들이다. 철학은 영혼을 해방하고 나면 다시 신체에 속박되고 다시 해방해주는 일이 반복된다 생각하지 않고, 쾌락과 고통을 잦아들게 하여 인간적인 악으로부터 해방시켜 영혼과 동류인 곳에 이르게 해준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양육을 통해 영혼은 신체로부터 벗어나면 해체되어 버릴 것이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영혼은 애초에 해체되지 않는 것과 유사하며, 이 유사함을 높여 가는 과정이 철학이며, 제대로 철학한 영혼의 해방은 해체됨과 더욱 거리가 멀다.

 

-작성중- 

  1. 79b4-5. 정확히 둘 중 어느 종류에 속하거나 일치하는지를 검토하는 게 아니라 유사성(homoios)과 동종성(syggenēs)의 정도를 묻는다. 또한 가시와 비가시의 여부가 '인간 본성'을 기준으로 한다는 점도 강조되고 있다. 이는 이어지는 논의에서, 영혼이 '단적으로' 구성되지 않은 것이자 불변하는 것이며 비가시적인 것이기만 하다면 설명하기 곤란한 측면들, 영혼이 육체에 영향을 받고 물들거나 물체적인 특징들을 지니게 되는 서술들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근거가 될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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