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죽으면 혼은 어디로 갈까, 문득 너는 생각한다. 얼마나 오래 
자기 몸 곁에 머물러 있을까.

 

마침 『파이돈』을 한동안 붙들고 있게 될 참인지라 이 구절에 오래 눈이 머물렀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따르던 젊은이들을 위로하고 싶었을 테고, 플라톤은 그런 소크라테스를 추모하면서도 또 제 자신을 위로하고 싶지 않았을까. 불사하는 것이 몸을 갖고 이름이 붙여져 그걸 '나'로 삼아 살다 죽은 그 개인의 영혼은 아마 아닐 것이나, 부디 내도록 행복하고 평안하길 기도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 

 

https://www.nobelprize.org/prizes/literature/2024/han/225027-nobel-lecture-korean/ 

 

Han Kang – Nobel Prize lecture in Korean - NobelPrize.org

Six prizes were awarded for achievements that have conferred the greatest benefit to humankind. The 12 laureates' work and discoveries range from proteins' structures and machine learning to fighting for a world free of nuclear weapons. See them all presen

www.nobelprize.org

 

이미 여러 매체에서 보도되었고 잘 알려진 강연이지만 다시금, 『채식주의자』를 대기와 중력 안쪽으로 끌고 들어오는 건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이 강연 만큼이나 기자 회견도 인상 깊었다. 여기저기 영상이 남아 있어서 다행이랄까. 전문은 따로 올라와 있는 건 없는 듯.

 

여하간에, 매일 하려고 하는 만큼의 일들을 마쳐놓고 책을 펴려다 보니, 뭐 그래서 그런 건지 아니면 여전히 이 책이 마주보고 있는 일이 버겁고 죄스러워서인지, 진도를 빼기도 어렵고 서둘러 읽고 지나갈 결심이 서지도 않고 그렇다. 올해 안에는 다 읽으려나.

 

오직 몸만이 죽는다. 몸만이 죽을 수 있다. 영혼이 지배할 때에 비로소 살아있게 되는 몸은 그 영혼이 떠나면서 살아있지 않게 되고 그것이 몸이 죽는 일이다. 죽은 몸은 더 이상 사람의 몸이 아니라 그저 물체이다. 신체와 물체의 차이. 단일성을 부여하고 통합시키고 유기적인 전체를 성립시켜 또한 유지시켜주는 것, 그것이 조화든 긴장이든 이상적 현실태이든 형상이든 아니면 영혼이든 뭐든 간에. 죽은 인간을 주어로 삼은 모든 긍정문은 거짓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좀 너무 심하게 매정하단 생각이 문득. 말넘심.

 

-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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