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자는 익명인지라 그저 비판과 조언에 막연한 감사를 드릴 뿐. 지적사항별로 이번 학기 또는 이번 해 안에 준비하거나 발전시킬 것들을 좀 정리해 보자.

 

"[평가자1 의견] - 서양고대철학 연구는 그 연구의 깊이와 양이 많이 축적되지 않아 연구 자체가 필요한 분야이며, 특히 플라톤의 파르메니데스에 대한 연구는 어렵고도 중요한 연구이다.
- 전반적인 연구수행 속도가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것보다는 빠르지 않아 보인다. 또한 지난 3년간 발표한 2편의 발표문은 연구자가 노력해왔음을 보여주긴 하지만 만족스러운 정도는 아니며, 그보다 더 많은 연구물을 산출하려는 노력을 하는 과정에서 연구능력이 더욱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 참고문헌이 소략하며, 더 구체적이고 포괄적인 자료 확보에 힘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나만 예를 들자면, (Apolloni, D. The Self-Predication Assumption in Plato. Lanham, MD: Lexington Books, 2011)과 같은 자료도 연구와 밀접하게 연결된 자료임에도 생략되어 있다. 그밖에도 많은 중요한 자료들을 더 찾아 포함시켜야 하며, 또한 참고문헌 작성법에 대해서도 먼저 자신에게 편리한 방법을 찾아야 하고, 특히 표기 방식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티마이오스??와 ??자연학??의 공간-시간 개념의 연계성이 명확하지 않으며, 그것이 어떤 점에서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아리스토텔레스와 관련된 언급은 상당히 막연하고 추상적이고 또한 지나치게 간략히 언급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구체적이고 명확한 내용의 언급이 필요하다.
- 연구자는 연구주제를 잘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며, 영어 설명은 대체로 명료하다. 그러나 국문 요약문에 나타난 내용으로 판단하자면, 그것이 ‘요약문’임을 고려하더라도 연구주제와 내용에 대한 설명이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만큼 명료하게 제시되지 않고 있다. 글로벌 역량이 내가 가진 것을 도외시하고 남의 것만을 강화하거나 발전시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최소한 요약문의 내용이라도 대학 저학년생 수준에서 이해할만한 글로 재구성해보면, 연구자 자신이 목표하는 바를 재정리하는 연습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외국인으로서 영어 발음과 작문이 완벽해질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교정과 보완이 될 수 있음에도 제대로 되지 않은 부분들이 눈에 띄는 것은 다소 아쉽다. 특히, 영어 발음은 많은 보완이 필요하다.
- 학과목 학점은 A-의 성적 4과목과 B+의 성적 2과목은 연구자의 노력과 관리가 좀 더 필요했던 부분이자 실망스러운 부분이다.
- 리더십이나 국가관 및 책임감 등에 대한 연계성은 판단하기 어렵다. (미래 성장 가능성 ( 배점 : 20 ))의 항목들을 자세히 살펴보고, 이 연구가 그러한 항목들과 어떻게 연결되어 설명될 수 있는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이 연구의 결과물이 국내 연구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글로벌 수준의 연구자로 성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속한 국가가 없이는 세계인으로서의 나도 존속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나의 배경을 먼저 튼튼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 일단 내가 연구자로서 생산성이 많이 낮다는 지적이 뼈아프다. 이전까지야 '내 주제에 무슨' 같은 심정으로 학술지에 투고하거나 학술발표에 지원하는 일을 의식적으로 멀리 했다지만, 언제까지 어리다느니 미숙하다느니 하는 핑계로 미룰 수도 없는 일이다. 그리고 이렇든 저렇든 처음 계획했던 『파르메니데스』 관련 소논문과 『테아이테토스』 관련 소논문 작성도 해내지 못하였다. 지도교수님 조언도 있고, 되든 안 되든 이제 뭘 써 버릇해야 한다.
> 참고문헌의 경우, 계획이나 보고에 직접 활용되지 않은 자료들은 최대한 배제하는 것을 개인적으로 원칙으로 삼았다. 평가자께서 소개해주신 아폴로니의 책은, 면밀하게 살펴보진 않았지만 형상의 자기술어화를 기본적으로 동일성 서술, "is equal"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Lloyd Gerson의 2012년도 서평에서는 이를 R. E. Allen의 입장과 연결시킨다. 그런데 애초에 『소피스트』에서 εἶναι에 대한 해석 문제와 관련하여 이 동사에서 동일성 서술의 역할을 배제시키는 것이 내가 Michael Frede의 입장에 근거하여 제안하는 노선인지라, 본격적으로 참고한 자료로 아폴로니의 저술을 언급하긴 좀 그렇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렇지만 내가 연구범위를 지나치게 넓게 설정해둔 탓에 『파르메니데스』로부터 초중기 플라톤 형이상학까지의 맥락을 논하는 사람들이랑 소위 후기 플라톤 철학을 따로 다루는 사람들을 다 살펴봐야 하게 되었다는 문제는 남는 듯하다. 참고문헌 작성 방식의 경우 급하게 작성하느라 국내, 국외, 1차, 2차, 번역, 기타 등등으로 분류도 못했고 여러모로 문제가 많았을 것이긴 하다. 이것도 역시나 논문 투고나 발표 지원 경험 자체가 적은 게 문제이기도 하겠고, 그렇더라도 애초에 좀 신경썼으면 될 일을 게으르게 놓친 내 탓이 크다.
    관련하여, 연구 방식의 문제일 수도 있겠는데, 나는 통상 원문 번역, 내용 정리, 주제 설정, 그리고 예비적인 논증 구성을 해 보고 이 다음에 자료 조사에 나선다. 이러다 보니 독해 과정이 미진하다고 느껴지거나 어쨌든 뭐라도 내 글이 하나 나오지 않으면 자료조사가 잘 진척되질 않는다. 병행을 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속도를 올려야 하는 것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뭐 쓰다보니 변명만 늘어놓게 되는 것도 같지만 어쨌든 고민이 생기는 부분이긴 하다.
> 플라톤 『티마이오스』와 아리스토텔레스 『자연학』을 통해 양편의 시-공간 개념을 연결시켜 해석해 보자는 제안은 구체적으로 말해 보자면 전자에서 시간이 운동 측정 단위처럼 묘사되고 있는 부분이 그 외에 더 구체적인 논의가 문헌 상에서 진행되지 않는데, 같은 관점에서 더 구체적으로 측정량(단위)과 피측정량(크기), 달리 말하면 재는 수와 재어지는 수라든지 단일 운동 단일 시간이라든지 시간 개념의 여러 다양한 측면들이 좀 더 자세하게 『자연학』에서 다루어지니, '운동량을 측정함으로써 발생되는 시간'이라는 것을 공통점으로 놓고 이 개념을 더 구체적으로 해석할 길이 열릴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정도의 생각이었다. 공간의 경우에는 『티마이오스』에서는 수용자를 일종의 잠재적 방향성 정도로 보고 이것이 형상의 고유한 성질과 결합하여 물리적 특질들을 발현시킬 때 비로소 장소라는 것이 이 과정과 함께 발생하는 것이라 해석할 생각이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의 결과로서 양이나 크기로 측정되는 그러한 공간이 앞서 이야기한 측정단위이자 측정대상이기도 한 시간과 함께 일종의 양으로 처리되는 『자연학』에서의 공간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논의를 포함시키는 것이 형상의 자기술어화와 필연적 본질 서술, 필연적 비-본질 서술, 우연적 비-본질 서술의 구분이라든지 자기참여 문제 등을 주제로 삼는 연구계획 안에서 본격적으로 제시되는 건 부적절하다는 생각에서, 그리고 다른 연구 계획에 비해 시-공간개념 관련해서는 조사나 준비가 진행되었다기 보다는 그저 해당 부분의 추가 연구가 필요할 수 있다는 정도의 언급만 할 생각이었어서, 결국 겉핥기식의 이야기밖에 적지 못하였다. 
> 국문요약 관련하여서는 그야말로 평가자 말씀대로 명료하고 이해될 만한 방식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이고, 본래 명료한 글쓰기가 부족하다는 고질적인 약점도 걸려 있는 문제이다. 아마도 이번 국문요약보다는 차라리 1차 때 요약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는데, 그 경우에도 내 것보다 남의 것 쪽에 강조가 한참이나 더 많이 들어가 있는 건 마찬가지이긴 하다. 
> 영어 발음과 학점 쪽은 할 말이 없다. 미래성장 항목은 잘 모르겠지만, 플라톤 철학에 대한 우리사회의 접근 용이성을 높여 놓으면 누가 뭐라도 잘 활용을 하든 말든 하지 않을까? 그리고 여기에 내가 기여를 티끌만치라도 한다면, 아주 많이 쳐도 그게 내 연구관련 성장가능성의 한계이지 않을까?

 

>> 내 계획에서는 어찌 됐든 『소피스트』가 중심축인데 평가자께서는 『파르메니데스』에 주목하신 듯하여 흥미로웠다. 혹시 고대철학 전공 연구자이신 걸지.

 

 

"[평가자2 의견] 플라톤의 3 대화편인 (파르메니데스)와 (테아이테토스) 그리고 (소피스트)를 그리스어 동사 에이나이에 대한 대안적 해석에 근거하여 형상의 자기술어화 개념을 중심으로 일관성있게 재해석하는 연구자의 연구는 계획한 목표에 부응하여 성실하게 진행되어 왔다고 보인다. 아울러,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을 연구하고자 하는 연구자의 차기계획도 우수하다고 판단된다. 그런데 플라톤의 후기존재론을 언어와의 연관성 속에서 다루는 연구자의 연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의 도움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플라톤 대화편 전체에 대한 그림과 전기 대화편에 나타난 존재론뿐만 아니라, 플라톤의 철학의 전략 및 플라톤 철학의 정신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 나아가 왜 지금 이 시기에 플라톤의 철학을 연구하고 공부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더자고 연구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꾸준한 연구를 기대한다."

> 아아, 달콤한 칭찬... 정작 이 주제로 연구를 계속 진행하게 된다면, 그리고 박사논문까지 이걸로 가게 된다면 마지막에 평가자께서 요구하신 사항이 결국은 도입부 같은 것이 될 것이다. 석사 쓸 때도 개고생했던 문제인데, 내가 다루고 있는 문제에 남들까지 관심을 가질 이유를 설명해내지 못하면, 학술연구가 아닌 취미생활이 되어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설득력을, 타당성을 보여줘야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정확한 지형도가 필요하며 자신이 어디 있는지 또한 구체적으로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어렵지만 가능한 일이라고 보고, 뭐 한 번 하고서 끝날 문제도 아니긴 하다. 

 

 

"[평가자3 의견] - 연구자는 플라톤의 (파르메니데스), (테아이테토스), (소피스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형상들 사이의 결합과 분리라는 일종의 변증법적 구조를 간취해내려 한다. 형상의 자기술어화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존재와 언어의 구조를 해명하고, 형상과 참여자 사이의 단절을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는 서구 현재 철학에서도 여전히문제가 되고 있는 매우 중요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형상의 자체적이고 절대적인 측면과, 참여자의 관계적이고 우연적인 측면의 단절과 구분이 어떻게 체계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가는 아주 고전적인 철학적 문제였고, 지금도 그렇다. 연구자의 주제가 학문적으록 가치가 있다는 것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는 듯하다.
- 연구자가 제출한 단계평가서로 판단할 때, (파르메니데스), (테아이테토스), (소피스트) 등의 원전을 성실하게 강독하고 있고, 국내외 심포지움에서 발표한 내용들은 그의 주제가 생산적으로 구현될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그의 연구가 계획대로 추진되어 성공적인 결말에 이른다면 플라톤 철학의 난해한 대화편을 정합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플라톤 전체 철학 체계를 비교적 수미일관하게 정립할 수 있고, 나아가 현재 진행형인 이 주제의 연구와 관련해서도 의미 있는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티마이오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에 대한 연구 기획도 해당 주제와 관련해서 제 갈 길을 가는 것처럼 보인다.
- 성적 증명서와 지도교수 의견서는 연구자가 연구수행에 필요한 지식을 착실히 습득해 나가고 있으며, 연구 수행의 성실성과 글로벌 수준의 연구자로서의 성장가능성을 상당 부분 증명하고 있다.
- 다만 학문적 의욕으로 인해 너무나 많은 내용들을 다루고자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도교수와 협력하여 준비가 되는 대로 짧은 글이나마 전문 철학지에 발표했으면 한다."

> 앞서 다른 평가자께서 지적하신 문제에 대해 이 평가자분의 말씀이 한 가지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형상과 참여자라는 문제가 속성과 개체 혹은 술어와 주어 뭐 기타 여러가지 아직까지 다양한 접근이나 해석이 시도되고 있는 형이상학, 인식론, 언어철학에 얽혀있는 문제이긴 하고, 내가 플라톤 연구 및 해석에서 충분히 보편성을 확보해낸다면 이 흐름 안에서 내 연구의 위치나 기대되는 역할 등을 좀 더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쨌든 지금 단계에서는 내가 그걸 제대로 못 했다는 것이 문제겠다.
> 아아, 달콤한 칭찬...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하고 있다고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지도교수님 언젠가 하셨던 말씀대로, 열심히 한다고 다 잘 되진 않지요. 허허. 속으로 몇 번씩 다짐한다. 열심히는 하되, 그건 어쨌든 아무리 잘 해 봐야 자기만족이고, 문제는 잘 해내는 것이다. 위에 생산성 문제랑 직결되는 것 아닐까 싶다. 여러모로 많이 쓰면, 뭔가 더 키워볼 만한 것도 그 중에 남기도 하고 그러지 않겠나.
> 같은 성적표에 상반된 평가... 한국에서 대학원의 성적이란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돌아가는지야 우리끼리는 모르는 사람이 없긴 하고, 말이 좋아 A-, B+이지 사실상 C, D 때려 맞은 게 몇 과목씩 있단 얘긴데, 이 평가자께서는 사람 하나 살리는 셈 치고 좋게 넘어가 주신 듯. 뭐 그렇다고 저 앞쪽 평가자분의 내 성적에 대한 지적이 날 죽이자는 의도였다는 얘긴 아니다. '열심히 잘 했다'나 '좀 잘하지 그랬냐'나 결국 방향은 대강 같을 것. 
> 생산성 지적 다시 한 번. 그리고 연구 범위를 지나치게 넓게 잡은 것 같다는 문제는 고민을 하긴 해야 할 듯. 대화편 단위로 말해서 일이 커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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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또 한 고비 넘겼다. 한숨 고르고 가자.



-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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