갚아야 할 걸 안 갚고 사는 기분이다. 쫓겨날까봐 불안하고, 어딘지 당당하질 못하다. 간간이 궁색한 사정을 집주인이 위로해주는 모양새로 이런저런 애매한 격려식의 추임새를 만나기도 하긴 하지만, 정작 내 손에 쥔 건 없다. 빚쟁이 구멍난 통장마냥, 뭐 쌓인 게 없다. 한 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지난 자리가 다 무너지고, 다음 발을 빨리 떼고 딛지 않으면 그대로 푹 꺼져 기어오를 수 없는 데까지 떨어질 것 같다. 나이는 쳐먹었는데, 그 쳐먹은 나이만큼 그 시간에 안 게으르고 열심히 살았더라면, 지금 이 따위 꼬락서니여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이게 내 부채감이다. 더 오래 했으니 더 낫다는 게 아니라, 더 오래 했으면 더 나아야 한다는 거. 그래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하다는 건, 면목 없고 변명의 여지도 없는 죄고 부채다. 시기나 질투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누군가의 자리를 내 자리라 생각해본 일도, 아예 없지는 않을지 몰라도 하여간 그다지 없었던 것 같고. 거꾸로 이 자리가 자꾸만 남의 자리 같은 거다. 이 자리에 맞는 몫을 하거나 아니면 비켜줘야 하는데, 아, 비키자니 엄두가 안 나는데. 내가 욕하던 썩어빠진 노친네들은 이런 기분이었던 걸까. 그나마 그 치들은 지 잘난 맛에 살기라도 하던데. 내가 잘했으면 될 일들을 내가 다 망치고 있을 따름이다. 늘상 그렇듯, 열심히 한다고 다 결과가 좋은 것도 아니다. 그래, 노력했다 치자. 애썼다고 치자. 그래도 손에 쥔 건 없고, 눈치는 보이고, 그래서 뭘 어쩔까 하면, 결국 또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어쩌겠나, 떨구어내면 떨궈져 나갈 수밖에 없고, 다만 할 만큼 했다는 자위라도 하려면, 그냥 닥치고 들이박는 거다. 또 모르지, 세상이 내게 퇴장과 더불어 금딸까지 명하는 건지. -蟲- P.S. 괜찮은 인간이 되긴 어렵고, 징징거리긴 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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