ὁ δ᾿ αὐτὸς

λόγος καὶ ἐπὶ τοῦ μὴ εἶναι ἄνθρωπον· τὸ γὰρ ἀνθρώπῳ                      1007a1

εἶναι καὶ τὸ μὴ ἀνθρώπῳ εἶναι ἕτερον σημαίνει, εἴπερ καὶ

τὸ λευκὸν εἶναι καὶ τὸ ἄνθρωπον εἶναι ἕτερον· πολὺ γὰρ

ἀντίκειται ἐκεῖνο μᾶλλον, ὥστε σημαίνειν ἕτερον. 

                                                             그런데 같은

논리가 "인간으로 있지 않다"라는 것을 두고서도 성립한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있다"라는 것과 "비-인간에게 있다"라는

것이 다른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만일 정말로 "흰 것으로

있다"와 "인간으로 있다" 또한 다른 것을 의미한다면. 왜냐하면

저 경우가 다른 것을 의미하도록 그렇게 훨씬 더 많이 대립되기

때문이다.

                                                                 εἰ δὲ καὶ

τὸ λευκὸν φήσει τὸ αὐτὸ καὶ ἓν σημαίνειν, πάλιν τὸ αὐτὸ                            5

ἐροῦμεν ὅπερ καὶ πρότερον ἐλέχθη, ὅτι ἓν πάντα ἐστὶ καὶ οὐ

μόνον τὰ ἀντικείμενα. εἰ δὲ μὴ ἐνδέχεται τοῦτο, συμβαί-

νει τὸ λεχθέν, ἂν ἀποκρίνηται τὸ ἐρωτώμενον. 

            그런데 [그가] 만일 흰 것 역시 같은 하나를 의미한다고

주장할 것이라면, 우리는 다시 앞서도 말해진 바로 그것, 즉 

대립하는 것들만이 아니라 모든 것들이 하나로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만일 이러한 일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앞서 말해진대로 귀결되고, 질문된 바가 답해질

것이다.

                                                              ἐὰν δὲ

προστιθῇ ἐρωτῶντος ἁπλῶς καὶ τὰς ἀποφάσεις, οὐκ ἀποκρί-

νεται τὸ ἐρωτώμενον. οὐθὲν γὰρ κωλύει εἶναι τὸ αὐτὸ καὶ                           10

ἄνθρωπον καὶ λευκὸν καὶ ἄλλα μυρία τὸ πλῆθος· ἀλλ᾿

ὅμως ἐρομένου εἰ ἀληθὲς εἰπεῖν ἄνθρωπον τοῦτο εἶναι ἢ οὔ,

ἀποκριτέον τὸ ἓν σημαῖνον καὶ οὐ προσθετέον ὅτι καὶ λευ-

κὸν καὶ μέγα. καὶ γὰρ ἀδύνατον ἄπειρά γ᾿ ὄντα τὰ

συμβεβηκότα διελθεῖν· ἢ οὖν ἅπαντα διελθέτω ἢ μηθέν.                             15

          그런데 단적으로 주어진 질문에 부정들까지 추가된다

하더라도, 질문된 바가 답해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같은 것이

인간이자 흰 것이며 그 외에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것들로 있기를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것이 인간으로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참인지 아닌지

질문될 경우 하나를 의미하는 것으로 답해져야만 하며 희기도 하고

크기도 하다는 것이 추가되지는 않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어쨌든

무한히 있는 부수적인 것들을 완전히 상술하기란 불가능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통틀어 모든 것들이 상술되도록 하거나

아무것도 상술되지 않도록 하거나 하자.

ὁμοίως τοίνυν εἰ καὶ μυριάκις ἐστὶ τὸ αὐτὸ ἄνθρωπος καὶ

οὐκ ἄνθρωπος, οὐ προσαποκριτέον τῷ ἐρομένῳ εἰ ἔστιν ἄνθρω-

πος, ὅτι ἐστὶν ἅμα καὶ οὐκ ἄνθρωπος, εἰ μὴ καὶ τἆλλα

ὅσα συμβέβηκε προσαποκριτέον, ὅσα ἐστὶν ἢ μὴ ἔστιν· ἐὰν

δὲ τοῦτο ποιῇ, οὐ διαλέγεται.                                                            //201008

                                                    그러니까 마찬가지로

헤아릴 수 없이 여러 가지로도 같은 것이 인간으로 있고 또

비-인간으로 있다면, 그것이 인간으로 있는지 여부에 대한

질문에 동시에 비-인간으로도 있다는 점이 추가로 대답되지는

않아야만 한다, 만일 그 외의 부수한 것들까지도, 있거나 있지

않거나 한 그것들까지도 추가로 답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데 이런 일을 한다 하더라도,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ὅλως δ᾿ ἀναιροῦσιν οἱ τοῦτο λέ-                     20

γοντες οὐσίαν καὶ τὸ τί ἦν εἶναι. πάντα γὰρ ἀνάγκη συμ-

βεβηκέναι φάσκειν αὐτοῖς, καὶ τὸ ὅπερ ἀνθρώπῳ εἶναι ἢ

ζῴῳ εἶναι μὴ εἶναι. εἰ γὰρ ἔσται τι ὅπερ ἀνθρώπῳ εἶναι,

τοῦτο οὐκ ἔσται μὴ ἀνθρώπῳ εἶναι ἢ μὴ εἶναι ἀνθρώπῳ

(καίτοι αὗται ἀποφάσεις τούτου)· ἓν γὰρ ἦν ὅ ἐσήμαινε,                               25

καὶ ἦν τοῦτό τινος οὐσία. 

           일반적으로 이것을 말하는 자들은 실체와 본질을

폐기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모든 것들이 부수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필연적이며, 인간으로서 있는 바 바로 그것 혹은 

동물로서 있는 바 바로 그것조차 있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이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만일 인간에게 있는 바 바로 

그것이라 할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면, 이러한 것은 비-인간에게 

있거나 인간에게 있지 않거나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러한 것들은 그것-인간본질-에 대한 부정들이다).

왜냐하면 그것-본질-이 의미한 것이 하나였을 것이고, 또

이러한 것이 어떤 것의 실체였기도 하기 때문이다.

> 『명제론』에서는 동사에 대한 부정이 긍정에 대한 제대로 된 부정,

명사나 형용사에 부정이 추가된 것은 부정-명사, 부정-형용사로 구분.

아리스토텔레스는 광의의 ἀποφάσις와 협의의 ἀποφάσις를 두루 쓰고 있는가?

                                  τὸ δ᾿ οὐσίαν σημαίνειν ἐστὶν

ὅτι οὐκ ἄλλο τι τὸ εἶναι αὐτῷ. εἰ δ᾿ ἔσται αὐτῷ τὸ

ὅπερ ἀνθρώπῳ εἶναι ὅπερ μὴ ἀνθρώπῳ εἶναι ἢ ὅπερ

μὴ εἶναι ἀνθρώπῳ, ἄλλο ἔσται, ὥστ᾿ ἀναγκαῖον αὐτοῖς

λέγειν ὅτι οὐθενὸς ἔσται τοιοῦτος λόγος, ἀλλὰ πάντα                                   30

κατὰ συμβεβηκός· τούτῳ γὰρ διώρισται οὐσία καὶ τὸ συμ-

βεβηκός· τὸ γὰρ λευκὸν τῷ ἀνθρώπῳ συμβέβηκεν ὅτι

ἔστι μὲν λευκὸς ἀλλ᾿ οὐχ ὅπερ λευκόν. 

                                                                그런데

실체를 의미한다는 것은 다름아니라 그것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그것에게, 인간에게 있는 바 바로 그것이 

비-인간에게 있는 바의 것 혹은 인간에게 있지 않은 바의 

것으로 있을 것이라면, [인간에게 있는 것] 이외의 것으로 있을 

것이고, 그래서 그들로서는 그 무엇에 대해서도 이러한 종류의

말이 속해 있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모든 것들이 부수적으로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말에 의해 실체와

부수적인 것이 정의되기 때문이다. 즉 흰 것은 인간에게

부수하는데 흰 것으로 있기는 하지만 흰 것인 바로 그것으로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εἰ δὲ πάντα κατὰ

συμβεβηκὸς λέγεται, οὐθὲν ἔσται πρῶτον τὸ καθόλου, εἰ δ᾿ ἀεὶ

τὸ συμβεβηκὸς καθ᾿ ὑποκειμένου τινὸς σημαίνει τὴν κατη-                           35

γορίαν. ἀνάγκη ἅμα[ἄρα] εἰς ἄπειρον ἰέναι. ἀλλ᾿ ἀδύνατον· οὐδὲ                   1007b1

γὰρ πλείω συμπλέκεται δυοῖν· τὸ γὰρ συμβεβηκὸς οὐ

συμβεβηκότι συμβεβηκός, εἰ μὴ ὅτι ἄμφω συμβέβηκε

ταὐτῷ, λέγω δ᾿ οἷον τὸ λευκὸν μουσικὸν καὶ τοῦτο λευκὸν

ὅτι ἄμφω τῷ ἀνθρώπῳ συμβέβηκεν· ἀλλ᾿ οὐχ ὁ Σωκρά-                                 5

της μουσικὸς οὕτως, ὅτι ἄμφω συμβέβηκεν ἑτέρῳ τινί. 

                             그런데 만일 모든 것들이 부수적으로

말해진다면, 우선 보편자란 아무것도 있지 않을 것이다, 만일 

항상 부수적인 것이 모종의 기체(주어)에 따라 그 범주(술어)를 

의미한다면. [Ross. 1007a34 "το καθ᾿ οὗ" 편집에 따를 경우,

"부수적이 것들이 그에 따른(대한) 것일 일차적인 것이 아무것도

있지 않을 것이다."] 이와 동시에 (부수적인 것은) 무한을 향해

진행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둘보다

더 많은 것들이 결합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부수적인

것은 비-부수적인 것에게 부수하기 때문이다, 만일 양자 모두가

같은 것에게 부수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런데 나는 이를 테면

흰 것이 음악적인 것이라고 또는 이것(희고 음악적인 것)이 

흰 것이라고 그 양자(흰 것과 음악적인 것)가 그 인간에게 부수하기

때문에 그런 경우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와 음악적인 것 

둘 모두가 그들과 다른 어떤 것에 부수한다는 점에서, (앞의 경우처럼) 

그렇게 소크라테스가 음악적인 것은 아니다.

                                                                       ἐπεὶ

τοίνυν τὰ μὲν οὕτως τὰ δ᾿ ἐκείνως λέγεται συμβεβηκότα,

ὅσα οὕτως λέγεται ὡς τὸ λευκὸν τῷ Σωκράτει, οὐκ ἐνδέχε-

ται ἄπειρα εἶναι ἐπὶ τὸ ἄνω, οἷον τῷ Σωκράτει τῷ λευκῷ

ἕτερόν τι συμβεβηκός· οὐ γὰρ γίγνεταί τι ἓν ἐξ ἁπάντων.                               10

그러니까 어떤 것들은 이런 식으로 또 어떤 것들은 저런 식으로

부수적인 것들로 말해지는데, 흰 것이 소크라테스에게 말해지는

그런 식으로 말해지는 것들의 경우, 그 위에 중첩하여 무한하게 

있기란 허용되지 않으니, 이를 테면 흰 소크라테스에게 다른 

어떤 것이 부수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들을 통틀어 그로부터 모종의 하나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οὐδὲ δὴ τῷ λευκῷ ἕτερόν τι ἔσται συμβεβηκός, οἷον τὸ μου-

σικόν· οὐθέν τε γὰρ μᾶλλον τοῦτο ἐκείνῳ ἢ ἐκεῖνο τούτῳ

συμβέβηκεν, καὶ ἅμα διώρισται ὅτι τὰ μὲν οὕτω συμβέ-

βηκε τὰ δ᾿ ὡς τὸ μουσικὸν Σωκράτει· ὅσα δ᾿ οὕτως, οὐ

συμβεβηκότι συμβέβηκε συμβεβηκός, ἀλλ᾿ ὅσα ἐκείνως,                                 15

ὥστ᾿ οὐ πάντα κατὰ συμβεβηκὸς λεχθήσεται. ἔσται

ἄρα τι καὶ ὡς οὐσίαν σημαῖνον. εἰ δὲ τοῦτο, δέδεικται ὅτι

ἀδύνατον ἅμα κατηγορεῖσθαι τὰς ἀντιφάσεις. 

그래서 흰 것에게 다른 어떤 것이 부수적으로 있게 되지도

않을 것인 바, 이를 테면 음악적인 것이 부수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저것이 이것에 부수하는 것에 비해 이것이 저것에

부수하는 게 전혀 더 부수하는 바 없고, 또한 그와 동시에

어떤 것들은 그런 식으로 부수하고 또 어떤 것들은 음악적인

것이 소크라테스에게 부수하는 식으로 부수한다는 것이

정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부수하는

것들은, 부수적인 것에게 부수적인 것으로서 부수하지 않고,

저런 식으로 부수하기에, 그래서 모든 것들이 부수적으로

말해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실체를 의미하는 것으로서도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일 그런 것이 있다면,

모순들이 동시에 범주적으로 서술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점이 입증된 것이다.

> 모순되는 것들, 즉 같은 것으로 긍정과 부정이 전부 부수적인 경우까지도

부정되어서, 다시금 모순이 동시 성립할 수 없다는 결론으로.

                                                            ἔτι εἰ ἀλη-

θεῖς αἱ ἀντιφάσεις ἅμα κατὰ τοῦ αὐτοῦ πᾶσαι, δῆλον ὡς

ἅπαντα ἔσται ἕν. ἔσται γὰρ τὸ αὐτὸ καὶ τριήρης καὶ τοῖ-                               20

χος καὶ ἄνθρωπος, εἰ κατὰ παντὸς τι ἢ καταφῆσαι ἢ

ἀποφῆσαι ἐνδέχεται, καθάπερ ἀνάγκη τοῖς τὸν Πρωτα-

γόρου λέγουσι λόγον. εἰ γάρ τῳ δοκεῖ μὴ εἶναι τριήρης ὁ

ἄνθρωπος, δῆλον ὅτι οὐκ ἔστι τριήρης· ὥστε καὶ ἔστιν, εἴπερ

ἡ ἀντίφασις ἀληθής. 

                          더욱이 만일 모든 모순들이 동시에 같은

것에 대해 참이라고 한다면, 통틀어 모든 것들이 하나로 있게

될 것이라는 게 분명하다. 왜냐하면 같은 것이 삼단노선이고

벽이며 인간일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모든 것에 따라 무언가를

긍정하든 부정하든 다 허용된다면, 마치 프로타고라스의 이론을

논하는 자들에게 필연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말이다.

왜냐하면 만일 누군가에게 인간이 삼단노선으로 있지 않다고

여겨진다면, 삼단노선으로 있지 않다는 사실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일 그에 대한 모순이 참이라고 한다면, 그렇게도

(삼단노선으로도) 있다.

                           καὶ γίνεται δὴ τὸ τοῦ Ἀναξαγόρου                                 25

ὁμοῦ πάντα χρήματα· ὥστε μηθὲν ἀληθῶς ἓν ὑπάρχειν. τὸ

ἀόριστον οὖν ἐοίκασι λέγειν, καὶ οἰόμενοι τὸ ὂν λέγειν περὶ

τοῦ μὴ ὄντος λέγουσιν· τὸ γὰρ δυνάμει ὂν καὶ μὴ ἐντελε-

χείᾳ τὸ ἀόριστόν ἐστιν.

                              더욱이 아낙사고라스의 그 "모든 사태들이

다 함께"라는 것이 생성되기까지 한다. 그래서 아무것도 참되게

하나로 성립하지 않게끔 말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무규정자를

말하는 것처럼 보이며, 있는 것을 말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있지

않은 것에 관련하여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가능적으로 있는

것이자 비-완성태로서 있는 것이 무규정자로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ἀλλὰ μὴν λεκτέον γ᾿ αὐτοῖς κατὰ

παντὸς <παντὸς> τὴν κατάφασιν ἢ τὴν ἀπόφασιν· ἄτοπον γὰρ                       30

εἰ ἑκάστῳ ἡ μὲν αὐτοῦ ἀπόφασις ὑπάρξει, ἡ δ᾿ ἑτέρου ὃ μὴ

ὑπάρχει αὐτῷ οὐχ ὑπάρξει· λέγω δ᾿ οἷον εἰ ἀληθὲς εἰπεῖν τὸν

ἄνθρωπον ὅτι οὐκ ἄνθρωπος, δῆλον ὅτι καὶ ἢ τριήρης ὴ οὐ

τριήρης. 

그러나 물론 적어도 그들로서는 모든 것에 대해 모든 것의 긍정 

아니면 부정을 말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만일 각각에게 한편으로는

그것에 대한 부정이 성립하고, 다른 한편으로 그것에게 성립하지 

않는 다른 것에 대한 부정은 성립하지 않을 것이라면 이상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를 테면 만일 인간을 비-인간이라고 말하는 게 

참이라면, 삼단노선이라고 말하든 비-삼단노선이라고 말하든 

그것이 참임이 분명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εἰ μὲν οὖν ἡ κατάφασις, ἀνάγκη καὶ τὴν ἀπόφασιν·

εἰ δὲ μὴ ὑπάρχει ἡ κατάφασις, ἥ γε ἀπόφασις ὑπάρξει

μᾶλλον ἢ ἡ αὐτοῦ. εἰ οὖν κἀκείνη ὑπάρχει, ὑπάρξει καὶ ἡ                        1008a1

τῆς τριήρους· εἰ δ᾿ αὕτη, καὶ ἡ κατάφασις. ταῦτά τε οὖν

συμβαίνει τοῖς λέγουσι τὸν λόγον τοῦτον, καὶ ὅτι οὐκ ἀνάγκη

ἢ φάναι ἢ ἀποφάναι. 

                                                                그러므로

만일 한편으로 긍정이 참이라면, 그 부정 또한 필연적으로 참이다.

다른 한편 만일 긍정이 성립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그 부정은

그것 자체에 대한 부정보다는 더 많이 성립할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저 부정(비-인간)도 성립한다면, 삼단노선에 대한 부정 역시

성립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논리를 말하는 자들에게는

이러한 귀결들이 따르고, 주장하거나 부정주장하거나 하는 일이

필연적이지 않다는 귀결까지 따른다.

                            εἰ γὰρ ἀληθὲς ὅτι ἄνθρωπος καὶ

οὐκ ἄνθρωπος, δῆλον ὅτι καὶ οὔτ᾿ ἄνθρωπος οὔτ᾿ οὐκ ἄν-                             5

θρωπος ἔσται· τοῖν γὰρ δυοῖν δύο ἀποφάσεις, εἰ δὲ μία

ἐξ ἀμφοῖν ἐκείνη, καὶ αὕτη μία ἂν εἴη ἀντικειμένη.

                                                왜냐하면 만일 인간이고

비-인간이라는 것이 참이라면, 인간으로도 비-인간으로도 있지

않으리라는 것 역시 분명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 둘에 대해

두 부정들이 있기 때문인데, 만일 그 양자로부터 저 긍정이

단일한 것으로 구성된다면, 이 부정 또한 대립됨으로써 단일한

것으로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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