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쓰고 버릴 쓰레기를 쓰자. 버리고 태우고 하다 다행히 뭐라도 남으면 좋고, 아니더라도 뒈질 때까지 그러고 살 수밖에 없기도 하고.


1. 255c14-15: 있는 것들(Being) 중 어떤 것들은 그 자체로, 또 어떤 것들은 그 외의 것들에 관련해서 항상 말해진다.

   255d1      : 다른 것은 항상 다른 것에 관련해서 말해진다.


M. Frede의 제안에 따르면, 어떤 것이 being something으로 말해지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은 인간이라고, 그리고 나아가 동물이고, 두 발 달린 것이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그 자체로' 말해진다. 반면 인간은 좋다거나 희다거나 앉아 있다고 '그 외의 것들에 관련해서' 말해진다. X is Y에서 'Y'는 X에 본질적이거나 정의상 포함되는 것으로서 X에 관하여(peri)

"being(더 엄밀히 말하자면 'being Y')"이라고 말해진다. 다시 말해 X는 그 자체로 Y이다. 그러나 또한 'Y'는 X에 부수적으로 귀속되는 속성이나 성질 같은 것일 수 있다. 이 경우의 being Y'는 X에 관하여 X 이외의 것에 관련해서 말해진다. 그리고 X는 자신 이외의 것에 관련하여서 비로소 "being Y'"라고 말해지는 것이다.


다른 한편 어떤 것이 different라고 말해질 때, 이는 항상 다른 것(아마도 '그 외의 것'과 같은 의미에서)에 관련해서 말해진다. "X is diffrent from Y"라는 문장은 "Y is something that is different from X"라고 바꾸어 말해질 수 있다. 이는 다시금 "X is something(Y) that is different from X"라고도 표현될 수 있다. 여기에서 X에 올 수 있는 모든 것은 그 자체로는 오직 자기 자신이기만 하다. 그 무엇도 자신의 정의나 본질 안에 "무엇과 다르다"라는 술어나 속성을 필연적으로 포함하고 있지는 않다. 예를 들어 인간은 개와 다르고 그래서 "개와 다른 것"이라고 말해질 수 있지만, 인간의 정의에 "개와 다르다"라는 것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다른 것에 관련하여'가 "Z와 다르다"의 "Z"에 관련한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서는 안 되리라는 점이다. "다른 것에 관련하여"라는 표현이 "그 외의 것에 관련하여"와 같은 의미라면, "인간은 동물과 다르다"라는 말이 참인 이유를 설명하기 곤란해질 것이다. 오히려 "다른 것에 관련하여"에서 "다른 것"은 비교대상이 아닌 그 차이가 나는 상태, 곧 '다름' 바로 그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형식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것도 타자와의 구분을 그 자체의 고유한 본질로 삼지는 않는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이런 식의 이해에 따를 때 문제는 다름 자체, "The Different Itself"라 할 만한 것, 다섯 개의 최고류 중 하나로서 지시되는 그 '다른 것'이라는 유(또는 형상)를 이해할 방법이다. 여타의 것들과 달리 다른 것 그 자체는 그 외의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그 자체로 본질적으로, 또 필연적으로 '다르다'라는 술어를 가질 것처럼 보인다. 좋은 것 그 자체가 가장 있는 그대로의 의미에서 좋다거나 아름다운 것이라는 형상 자체가 여타의 아름다운 것들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원천으로서 역시나 가장 아름답다는 등의, 말하자면 형상의 자기술어화 원리라 할 만한 것을 '다른 것'이라는 유에 적용할 경우, 앞서 주목한 구절에서의 규정과 달리 적어도 '다른 것'이라는 유 그 자체만은 '다른 것에 관련하여'서만 "다르다"라고 말해지지 않고 '그 자체로'도 "다르다"라고 말해져야 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The Different is different from ...."이라는 문장은 그 안의 "is"라는 동사를 통해 다시 두 가지 방식으로 문장전환이 될 수 있다. 이 둘 각각은 우선 (1) '다른 것'이라는 유가 'being different'라고 그 자체로 이야기되는 경우와 (2) 그 유가 그렇게 '그 외의 것에 관련하여' 말해지는 경우로 구분될 수 있다. 왜냐하면 지금 문제가 되는 문장에서 '다른 것'이라는 유는 "...is different ...."라고 말해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is는 앞서 언급된 것처럼 두 가지 방식으로 이야기되는 바로 그 "있는 것(being)"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라는 이름을 가진 유가 있다면 그것은 본질 상으로도 정의 상으로도 자기 자신을 술어로 삼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구체적인 비교 대상을 상정하고 개별화된 사례로서 이것이 "다르다"라고 말하는 것과는 구분된다. 개별화된 사례에서 여타의 것들이, 굳이 말하자면, '다른 것'이라는 유에 참여함으로써 자신 이외의 것들과 "다른 것"으로 말해지듯, '다른 것'이라는 유도 여타의 것을 비교 대상으로 삼아 "다른 것"으로 말해질 때에는 이 참여의 방식을 공유해야 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이 '다른 것이란 유에의 참여'를 통한 경우 "being different"라는 이름의 강조점은 "different" 쪽에 주어진다. 반면 이 참여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 말해지는 경우 "being different"라는 이름에서는 "being"이 강조되는 것이며, 이러한 "being different"는 그 자체로 말해진 한에서의 것으로서, 그 주어는 오직 '다른 것'이라는 유 그 자신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일 "동물이다"라고 말해지는 경우를 생각해 본다면, 이는 인간도 개도 원숭이도 주어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와 유사하게 하위종에 대한 상위류, 혹은 복합체로서의 피정의항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정의항은 둘 이상의 주어에 참되게 서술되는 일이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지금 '다른 것'이라는 유의 자체적 자기술어화 사례는 특수한 사례로 따로 취급되어야 한다.


흥미롭게도 그 자체적인 본질이나 정의를 '자체적으로 말해지는 경우의 being'을 경유하지 않고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 '다른 것'이라는 유이다. 그리고 이와 유사한 처지에 놓인 또 다른 유가 바로 '운동'이라는 유이다. 이 유는 '정지'라는 유와 반대되는 것으로서, 그 자체로 언제나 움직이고 있는 그 움직임 자체이며, 그 움직임을 수행하는 어떤 것을 따로 상정하지 않는 기묘한 것이다. 운동이 운동인 한에서 그것은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생성과 소멸에 따라서도 장소에 따라서도 전적으로 움직이고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그것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화하며 이러한 한에서는 도무지 자기동일성을 유지하는 어떤 것으로 상정될 수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앞서 '다른 것'이라는 유에 대한 자체적 서술의 방식이 허용된다면, 같은 방식이 '운동'이라는 유에 적용되지 못할 이유도 없다. 그리고 아마도 이러한 문제는 being 그 자체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들에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일 수 있다. 계사적으로든 존재사적으로든 혹은 그러한 구분 없는 어떤 통합된 의미에서든 "is"라고 말해지기 위해서는 being에 참여해야 한다. 그래서 각각의 모든 것은 그 각각의 것'으로서 있기' 위해 being에 참여해야만 하며, 단지 자기 자신만으로는 어떻게도 이야기될 수 없다.


그러나 여전히, 자체적으로 성립하거나 서술되는 일이 극단적으로 어려워 보이는 또 다른 후보가 있다. 그것은 상, 모상, 가상이다. 이것들은 원본을 닮아 있는 것 또는 닮아 보이는 것으로서 규정되며, 따라서 원본을 가정하지 않고서는 이야기될 수 없다. 이는 다시 말해 그 자체만을 독립적으로 놓고서 바로 그것을 직접적으로 '상'이라고 규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상은 그 자체로서는 상이라고 말해질 수 없다. 


같은 문제에 직면할 또 다른 대상은 '생각'과 '말'이다. 이것은 항상 무언가에 대한 것이며, 바로 그 무언가에 대해 그 무언가가 어떠어떠하다고 생각하거나 말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생각하거나 말하는 일은 곧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상과 말은 이상의 문제를 유의 차원에서도 개별적으로 실현된 차원에서도 겪는 것으로 보인다. "X is Y"라는 말은 말이기 위해 X를 대상으로 그것에 대하여 Y가 있다고, 그렇게 대상을 상정함으로써만 비로소 무언가를 말하는 말이 된다. 그런데 유의 차원에서 '말'이라는 유는 역시나 그 자체로 다름 아닌 말이어야 한다. 그리고 말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보자면, 그것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으로서 그냥 어딘가 동떨어져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있을 수는 없다. 


* 주의할 점은 지금 고려되고 있는 유 또는 형상이 속성을 가리키는 추상명사나 어떤 보편자가 아니라 인과적 능력을 지니는 실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것은 청동 조각상으로서 있다"라고 말할 때, 원본과의 관련을 전적으로 배제하고 보자면 실상 이 문장은 어떤 청동 덩어리인 것이 있다는 의미에 불과할 것이다. 그것이 '상'으로서 있기 위해서는 원본과의 관련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바로 이 관련 한에서만 어떤 것이 '상'이라는 규정성을 확보하게 된다. 그림은 원본을 고려하지 않을 경우 아무것도 그린다고 볼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그림으로서 있다고 말할 수도 없으며 단지 선이나 면 또는 색으로 이루어진 조합물이 있다고만 이야기될 수 있을 것이다. 말이나 생각도, 운동도, 그리고 다르다는 것도 모두 같은 문제에 처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 듯하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역시 어느 정도는 공통점을 지닐 것으로 기대된다.


뭔가 전달이 잘 안 되네.


-蟲-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