Λεκτέον δὲ πότερον μιᾶς ἢ ἑτέρας ἐπιστήμης περί τε

τῶν ἐν τοῖς μαθήμασι καλουμένων ἀξιωμάτων καὶ περὶ                            20

τῆς οὐσίας. φανερὸν δὴ ὅτι μιᾶς τε καὶ τῆς τοῦ φιλοσόφου

καὶ ἡ περὶ τούτων ἐστὶ σκέψις· ἅπασι γὰρ ὑπάρχει τοῖς

οὖσιν ἀλλ᾿ οὐ γένει τινὶ χωρὶς ἰδίᾳ τῶν ἄλλων. καὶ χρῶν-

ται μὲν πάντες, ὅτι τοῦ ὄντος ἐστὶν ᾗ ὄν, ἕκαστον δὲ τὸ γένος

ὄν· ἐπὶ τοσοῦτον δὲ χρῶνται ἐφ᾿ ὅσον αὐτοῖς ἱκανόν, τοῦτο                       25

δ᾿ ἔστιν ὅσον ἐπέχει τὸ γένος περὶ οὗ φέρουσι τὰς ἀποδεὶ-

ξεις· ὥστ᾿ ἐπεὶ δῆλον ὅτι ᾗ ὄντα ὑπάρχει πᾶσι (τοῦτο γὰρ

αὐτοῖς τὸ κοινόν), τοῦ περὶ τὸ ὂν ᾗ ὂν γνωρίζοντος καὶ περὶ

τούτων ἐστὶν ἡ θεωρία. 

그런데 수학에서 공리라 불리는 것들에 관련하여서도 또 실체에

관련하여서도 단일한 학문에 속하는지 다른 학문에 속하는지

진술되어야만 한다. 그럼 이것들에 대한 탐구도 단일한 학문에 

속하며 또한 철학자의 탐구라는 점이 명백하다. 왜냐하면 

통틀어 모든 실체들에 [공리들이] 성립하지만 그 외의 것들과 

독립적으로 특정한 개별적 유에 성립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이들이 공리들을 사용하는데, 이는 공리들은 있는 것인 

한에서의 있는 것에 속하고, 유는 각각의 것으로서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은 공리들을 그들이 사용하여 닿기에 충분한

그 만큼의 범위에서 사용하고, 이는 그들이 그와 관련하여 

증명들을 제시하는 그 유가 적용되는 만큼의 범위이다. 그래서

있는 것들인 한에서 공리들이 모든 것들에 성립한다는 것이 

분명하기에 (즉 이런 것이 그것들에 공통된 것이니까), 있는 것인 

한에서의 있는 것에 관련하여 그리고 그 공리들에 관련하여 

아는 자에게 그 관조가 속해 있는 것이다. 

                                διόπερ οὐθεὶς τῶν κατὰ μέρος ἐπισκο-

πούντων ἐγχειρεῖ λέγειν τι περὶ αὐτῶν, εἰ ἀληθῆ ἢ μή,                               30

οὔτε γεωμέτρης οὔτ᾿ ἀριθμητικός, ἀλλὰ τῶν φυσικῶν ἔνιοι,

εἰκότως τοῦτο δρῶντες· μόνοι γὰρ ᾤοντο περὶ τε τῆς ὅλης

φύσεως σκοπεῖν καὶ περὶ τοῦ ὄντος. ἐπεὶ δ᾿ ἔστιν ἔτι τοῦ

φυσικοῦ τις ἀνωτέρω (ἓν γάρ τι γένος τοῦ ὄντος ἡ φύσις),

τοῦ καθόλου καὶ τοῦ περὶ τὴν πρώτην οὐσίαν θεωρητικοῦ καὶ ἡ                 35

περὶ τούτων ἂν εἴη σκέψις· ἔστι δὲ σοφία τις καὶ ἡ φυ-                     1005b1

σική, ἀλλ᾿ οὐ πρώτη. ὅσα δὲ ἐγχειροῦσι τῶν λεγόντων τινὲς

περὶ τῆς ἀληθείας ὃν τρόπον δεῖ ἀποδέχεσθαι, δι᾿ ἀπαι-

δευσίαν τῶν ἀναλυτικῶν τοῦτο δρῶσιν· δεῖ γὰρ περὶ τούτων

ἥκειν προεπισταμένους ἀλλὰ μὴ ἀκούοντας ζητεῖν. 

                                 바로 이런 이유로 부분에 따라 고찰하는 

자들 중 그 누구 하나 공리들에 관련하여 뭐라도, 참인지 거짓인지 

여부를, 논하는 일에 손을 대지 않는데, 기하학자도 산술가도 

손대지 않고, 오히려 자연학자들 중 일부 사람들이 손을 대며, 

이를 그럴 듯하게 수행한다. 왜냐하면 이들만이 자연 전체 관해서도 

또 있는 것에 관해서도 고찰하는 일을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연학자보다 더 상위의 특정한 탐구자가 있기에 (자연은 

있는 것의 특정한 한 유이니까), 보편 이론가이자 제일 실체에 관한 

이론가에게 공리들에 관련한 탐구 역시 속할 것이다. 그런데 

자연학적 지혜도 특정한 지혜이지, 제일의 지혜는 아니다. 

[자연학을] 말하는 자들 중 어떤 자들이 그 진리에 관련하여 

받아들여져야 하는 그 방식에 손대는 그런 모든 일들의 경우, 

그들은 분석들에 대해 교육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런 일을 

수행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분석들에 관련하여 미리 아는 

자들이 나아가야 하지 들어 배우지 못한 자들이 탐구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ὅτι μὲν                          5

οὖν τοῦ φιλοσόφου, καὶ τοῦ περὶ πάσης τῆς οὐσίας θεωροῦντος

ᾗ πέφυκεν, καὶ περὶ τῶν συλλογιστικῶν ἀρχῶν ἐστὶν ἐπι-

σκέψασθαι, δῆλον· προσήκει δὲ τὸν μάλιστα γνωρίζοντα

περὶ ἕκαστον γένος ἔχειν λέγειν τὰς βεβαιοτάτας ἀρχὰς

τοῦ πράγματος, ὥστε καὶ τὸν περὶ τῶν ὄντων ᾗ ὄντα τὰς                           10

πάντων βεβαιοτάτας. ἔστι δ᾿ οὗτος ὁ φιλόσοφος. βεβαιο-

τάτη δ᾿ ἀρχὴ πασῶν περὶ ἣν διαψευσθῆναι ἀδύνατον·

γνωριμωτάτην τε γὰρ ἀναγκαῖον εἶναι τὴν τοιαύτην (περὶ

γὰρ ἃ μὴ γνωρίζουσιν ἀπατῶνται πάντες) καὶ ἀνυπόθετον.

                                                                    그러므로

철학자에, 그리고 본래적인 한에서의 모든 실체에 관련하여 

관조하는 자에게, 추론 원리들에 관련하려 관조하는 일 역시 

속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데 각각의 유에 관련하여 가장 잘

아는 자가 해당 사안의 가장 엄밀한 원리들을 진술할 수 있다는

것이 적절하고, 그래서 있는 것들인 한에서의 있는 것들에 관련하여

가장 잘 아는 자가 또한 모든 것들의(중?) 가장 엄밀한 원리들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적절하다. 그런데 철학자가 이러한 자이다.

모든 원리들 중 가장 엄밀한 원리는 그것에 관련하여 거짓되는

일이 불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원리가 가장 분명하게

알려지는 원리로 (왜냐하면 알지 못하는 것들에 관련하여서는

모든 이들이 기만당하기에) 또한 무전제적인 것으로 있음이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ἣν γὰρ ἀναγκαῖον ἔχειν τὸν ὁτιοῦν ξυνιέντα τῶν ὄντων, τοῦτο                    15

οὐχ ὑπόθεσις· ὃ δὲ γνωρίζειν ἀναγκαῖον τῷ ὁτιοῦν γνωρί-

ζοντι, καὶ ἥκειν ἔχοντα ἀναγκαῖον. ὅτι μὲν οὖν ἡ τοιαύτη

πασῶν βεβαιοτάτη ἀρχή, δῆλον· τίς δ᾿ ἔστιν αὕτη, μετὰ

ταῦτα λέγωμεν. τὸ γὰρ αὐτὸ ἅμα ὑπάρχειν καὶ μὴ

ὑπάρχειν ἀδύνατον τῷ αὐτῷ καὶ κατὰ τὸ αὐτό―καὶ ὅσα                             20

ἄλλα προσδιορισαίμεθ᾿ ἄν, ἔστω τὰ προδιωρισμένα πρὸς τὰς

λογικὰς δυσχερείας· αὕτη δ᾿ ἁπασῶν ἐστὶ βεβαιοτάτη τῶν

ἀρχῶν· ἔχει γὰρ τὸν εἰρημένον διορισμόν. ἀδύνατον γὰρ

ὁντινοῦν ταὐτὸ ὑπολαμβάνειν εἶναι καὶ μὴ εἶναι, καθάπερ

τινὲς οἴονται λέγειν Ἡράκλειτον. 

누구든 있는 것들 중 그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그것을 아는

자가 필연적으로 지녀야만 하는 원리, 이러한 것은 가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그것을 아는

자가 필연적으로 알아야만 하는 것, 그것을 가진 자가 또한

나아가는 것이 필연적이다. 그러므로 모든 원리들 중 이러한

원리가 가장 엄밀한 원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러한

원리가 무엇인지, 그것을 이 다음으로 진술해 보도록 하자.

이는 즉 같은 것이 같은 것에게 같은 것에 따라서 성립하는

동시에 성립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는 원리이다.―우리가 

추가로 정의할 수 있을 다른 것들의 경우에도, 미리 정의된

것들로서 논리적 난제들에 대항하여(관계되어) 있다고 하자. 

그런데 이 원리가 통틀어 모든 원리들 중 가장 확고한 것이다. 

왜냐하면 앞서 언급된 정의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즉 

그 누가 되었든지 간에 같은 것을 있으며 있지 않다고, 마치 

어떤 이들이 헤라클레이토스가 그리 진술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주하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οὐκ ἔστι γὰρ ἀναγκαῖον,                           25

ἅ τις λέγει, ταῦτα καὶ ὑπολαμβάνειν· εἰ δὲ μὴ ἐνδέχε-

ται ἅμα ὑπάρχειν τῷ αὐτῷ τὰ ἐναντία (προσδιωρίσθω δ᾿

ἡμῖν καὶ ταύτῃ τῇ προτάσει τὰ εἰωθότα), ἐναντία δ᾿ ἐστὶ

δόξα δόξῃ ἡ τῆς ἀντιφάσεως, φανερὸν ὅτι ἀδύνατον ἅμα

ὑπολαμβάνειν τὸν αὐτὸν εἶναι καὶ μὴ εἶναι τὸ αὐτό· ἅμα                             30

γὰρ ἂν ἔχοι τὰς ἐναντίας δόξας ὁ διεψευσμένος περὶ τού-

του. διὸ πάντες ἀποδεικνύντες εἰς ταύτην ἀνάγουσιν

ἐσχάτην δόξαν· φύσει γὰρ ἀρχὴ καὶ τῶν ἄλλων ἀξιω-

μάτων αὕτη πάντων.

                                          누군가가 진술하는 것들을 

또한 [그렇다고] 간주하기까지 하는 게 필연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반대자들이 같은 것에 동시에 성립하는 

일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우리에 의해 이러한 전건/명제에도 

익숙한 규정들이 추가로 정의되어 있다고 치자.), 그런데 한

믿음에 모순된 주장에 대한 믿음이 그 믿음에 반대되는 

믿음이라면, 같은 사람이 같은 것을 동시에 있으면서 또한 

있지 않다고 간주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점이 명백하다. 왜냐하면 

이 점에 관련하여 거짓에 빠진 자는 반대되는 믿음들을 

동시에 지닐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증명을 수행하는

모든 이들이 이러한 극단의 믿음으로 [증명을] 환원시키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타의 모든 공리들에 대해서도 원리는

자연적으로 이런 것이기 때문이다.



-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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