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Ἔστιν ἐπιστήμη τις ἣ θεωρεῖ τὸ ὂν ᾖ ὂν καὶ τὰ τούτῳ               1003a21

ὑπάρχοντα καθ᾿ αὑτό. αὕτη δ᾿ ἐστὶν οὐδεμιᾷ τῶν ἐν μέρει

λεγομένων ἡ αὐτή· οὐδεμία γὰρ τῶν ἄλλων ἐπισκοπεῖ

καθόλου περὶ τοῦ ὄντος ᾗ ὂν, ἀλλὰ μέρος αὐτοῦ τι ἀποτε-

μόμεναι περὶ τούτου θεωροῦσι τὸ συμβεβηκός, οἷον αἱ μαθη-             25

ματικαὶ τῶν ἐπιστημῶν. ἐπεὶ δὲ τὰς ἀρχὰς καὶ τὰς ἀκρο-

τάτας αἰτίας ζητοῦμεν, δῆλον ὡς φύσεώς τινος αὐτὰς

ἀναγκαῖον εἶναι καθ᾿ αὑτήν. εἰ οὖν καὶ οἱ τὰ στοιχεῖα τῶν

ὄντων ζητοῦντες ταύτας τὰς ἀρχὰς ἐζήτουν, ἀνάγκη καὶ τὰ

στοιχεῖα τοῦ ὄντος εἶναι μὴ κατὰ συμβεβηκὸς ἀλλ᾿ ᾗ                         30

ὄν· διὸ καὶ ἡμῖν τοῦ ὄντος ᾗ ὂν τὰς πρώτας αἰτίας

ληπτέον.

있는 것인 한에서의 있는 것과 이러한 것에 자체적으로

성립하는 것들을 관조하는 특정한 학문이 있다. 그런데

부분적으로 진술되는 학문들 중 단 하나와도 같지 않은

학문이 이러한 학문으로서 있다. 왜냐하면 여타의 지식들

중 단 하나도 있는 것인 한에서의 있는 것에 관하여 

보편적으로 고찰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의 특정 부분을

분리시킴으로써 이것에 관련하여 부수적인 것을 관조하니,

예를 들어 학문들 중에서 수학적 학문들이 그렇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원리들과 최고 원인들을 탐구하기에,

그것들이 그 자체로서 특정 자연 본성에 속하여 있음이

필연적임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만일 있는 것들의 원소들을

탐구하는 자들 또한 이러한 원리들을 탐구했다면,

있는 것의 원소들 또한 부수적인 방식이 아니라 있는 것인

한에서 있음이 필연적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있는 것인

한에서의 있는 것의 제일 원인들을 파악해야만 한다.


- καθ᾿ αὑτήν: phusis 수식? 아니면 원리와 원인 수식?

1) 특정 자연 본성의 원리와 원인이 자체적으로 있음이

필연적임은 분명하다.

2a) 그 원리와 원인이 자체적인 특정 자연 본성에 속하여

있음이 필연적임은 분명하다.

2b) 그 원리와 원인이 자체적으로 특정 자연 본성에

속하여 있음이 필연적임은 분명하다.

= 어쨌든 어떤 특정한 본성을 지닌 대상(주제)에

   지금의 탐구대상인 최고원리/원인이 귀속된다는 얘기일 듯.


있는 것의 원소들을 탐구하던 애들이 원리들을 탐구했다면,

그 원소들 역시 있는 한에서의 있는 것에 속해 있다는 게 필연적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도 있는 한에서의 있는 것의 제일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아르케는 자체적 자연에 속해야 한다.

원소 탐구자가 아르케를 탐구했다면, 원소도 자체적 있는 것(자연)에 속해야 한다.

우리는 아르케 탐구하니까, 자체적 있는 것의 원인을 탐구해야 한다.


2.


Τὸ δὲ ὂν λέγεται μὲν πολλαχῶς, ἀλλὰ πρὸς ἕν καὶ

μίαν τινὰ φύσιν καὶ οὐχ ὁμωνύμως, ἀλλ᾿ ὥσπερ καὶ τὸ

ὑγιεινὸν ἅπαν πρὸς ὑγίειαν, τὸ μὲν τῷ φυλάττειν τὸ δὲ                       35

τῷ ποιεῖν τὸ δὲ τῷ σημεῖον εἶναι τῆς ὑγιείας τὸ δ᾿ ὅτι

δεκτικὸν αὐτῆς, καὶ τὸ ἰατρικὸν πρὸς ἰατρικήν (τὸ μὲν               1003b1

γὰρ τῷ ἔχειν ἰατρικὴν λέγεται ἰατρικὸν τὸ δὲ τῷ εὐφυὲς

εἶναι πρὸς αὐτὴν τὸ δὲ τῷ ἔργον εἶναι τῆς ἰατρικῆς),

ὁμοιοτρόπως δὲ καὶ ἄλλα ληψόεμθα λεγόμενα τού-

τοις, οὕτω δὲ καὶ τὸ ὂν λέγεται πολλαχῶς μὲν ἀλλ᾿                           5

ἅπᾶν πρὸς μίαν ἀρχήν· τὰ μὲν γὰρ ὅτι οὐσίαι, ὄντα λέ-

γεται, τὰ δ᾿ ὅτι πάθη οὐσίας, τὰ δ᾿ ὅτι ὁδὸς εἰς οὐσίαν ἢ

φθοραὶ ἢ στερήσεις ἢ ποιότητες ἢ ποιητικὰ ἢ γεννητικὰ

οὐσίας ἢ τῶν πρὸς τὴν οὐσίαν λεγομένων, ἢ τούτων τινὸς

ἀποφάσεις ἢ οὐσίας· διὸ καὶ τὸ μὴ ὂν εἶναι μὴ ὄν φαμεν.                    10

그런데 있는 것은 한편으로 여러 가지로 진술되지만, 그러나

하나에 대해 그리고 특정한 단일한 본성에 대해 또한

동음이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진술되며, 오히려 마치 모든

건강한 것이 건강에 대해 진술되는데, 건강을 지킴으로써

건강한 것과 건강을 만듦으로써 건강한 것 그리고 건강의 

증상으로 있음으로써 건강한 것과 건강의 수용자라는 점에서 

건강한 것이 건강에 속해 있다고 진술되는 것처럼, 그리고 

의학적인 것도 의술에 대해서 그리 진술되며(즉 의술을 

지님으로써 의학적인 것그 기술에 대한 숙련으로써 의학적인 것과 

또 의술의 결과로 있다는 점에서 의학적인 것이 진술된다.), 

유사한 방식으로 여타의 것들도 우리는 이런 측면들에서 

진술되는 것들로 파악할 것이고, 그런 식으로 있는 것 또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진술되지만 그 모든 것들이 단일한 원리에 대해 진술된다. 

즉 어떤 것들은 실체들이라는 점에서, 있는 것들로 진술되고, 어떤 것들은 

실체의 양태들이라는 점에서, 또 어떤 것들은 실체를 향한 경로나 

소멸 또는 결여나 성질 혹은 실체의 제작자나 산출자 혹은 

실체에 대해 진술되는 것들의 제작자나 산출자, 또는 이것들에 대한 

특정 부정이나 실체의 부정이라는 점에서 있는 것들로 진술된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있지 않은 것도 있지 않은 것으로서 있다고 주장한다.

καθάπερ οὖν καὶ τῶν ὑγιεινῶν ἁπάντων μία ἐπιστήμη ἔστιν,

ὁμοίως τοῦτο καὶ ἐπὶ τῶν ἄλλων. οὐ γὰρ μόνον τῶν καθ᾿

ἓν λεγομένων ἐπιστήμης ἐστὶ θεωρῆσαι μιᾶς ἀλλὰ καὶ τῶν

πρὸς μίαν λεγομένων φύσιν· καὶ γὰρ ταῦτα τρόπον τινὰ

λέγεται καθ᾿ ἕν. δῆλον οὖν ὅτι καὶ τὰ ὄντα μιᾶς θεωρῆσαι                  15

ᾗ ὄντα. πανταχοῦ δὲ κυρίως τοῦ πρώτου ἡ ἐπιστήμη, καὶ ἐξ

οὗ τὰ ἄλλα ἤρτηται, καὶ δι᾿ ὃ λέγονται. εἰ οὖν τοῦτ᾿ ἐστὶν ἡ

οὐσία, τῶν οὐσιῶν ἂν δέοι τὰς ἀρχὰς καὶ τὰς αἰτίας ἔχειν

τὸν φιλόσοφον. [ἅπαντος δὲ γένους καὶ αἴσθησις μία ἑνὸς          1003b19 

καὶ ἐπιστήμη, οἷον γραμματικὴ μία οὖσα πάσας θεωρεῖ             1003b20

τὰς φωνάς· διὸ καὶ τοῦ ὄντος ὅσα εἴδη θεωρῆσαι μιᾶς               1003b21

ἐστὶν ἐπιστήμης τῷ γένει, τά τε εἴδη τῶν εἰδῶν.]                       1003b22 

그러므로 모든 건강한 것들에 대해서도 단일한 학문이 있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여타의 것들을 두고서도 이러하다.

왜냐하면 하나에 따라 진술되는 것들에 대해서만

관조하는 일이 단일한 학문에 속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단일한 본성에 대해서 진술되는 것들에 대해서도 그렇기

때문이다. 이것들도 특정 방식에서 하나에 따라 진술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있는 것들 또한 그것들을 있는 것들인 한에서 

관조하는 일이 단일한 학문에 속한다는 점이 분명하다.

그런데 모든 방면에서 학문은 주로 첫 번째 것에, 즉 여타의

것들이 그것에 달려 있는 바의 것이자, 그것을 통해 진술되는

바의 것에 속해 있다. 그러므로 만일 실체가 이러한 것이라면,

철학자는 실체들의 원리들과 원인들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통틀어 모든 유에 대한 지각도 학문도 단일한 유에

단일한 지각/학문이 속하는 바, 예를 들어 문법학은 단일한

것으로 있고서 모든 음성들을 관조한다. 이런 이유로 있는 것에

대해서도 그 종들로서 있는 것들을 관조하는 일은 유적으로

단일한 학문에 속하여 있으며, 그 [있는 것들의] 종들에 대해

[학문의] 종들이 있기도 하다.]                                                               //200811

                                                                εἰ δὴ τὸ           1003b22

ὂν καὶ τὸ ἓν ταὐτὸν καὶ μία φύσις τῷ ἀκολουθεῖν ἀλλή-

λοις ὥσπερ ἀρχὴ καὶ αἴτιον, ἀλλ᾿ οὐχ ὡς ἑνὶ λόγῳ δηλού-

μενα (διαφέρει δὲ οὐθὲν οὐδ᾿ ἂν ὁμοίως ὑπολάβωμεν, ἀλλὰ                25

καὶ πρὸ ἔργου μᾶλλον)· ― ταὐτὸ γὰρ εἷς ἄνθρωπος καὶ ὢν

ἄνθρωπος καὶ ἄνθρωπος, καὶ οὐχ ἕτερόν τι δηλοῖ κατὰ τὴν λέξιν

ἐπαναδιπλούμενον τὸ ἐστὶν ὁ ἄνθρωπος καὶ ἄνθρωπος καὶ εἷς

ἄνθρωπος· δῆλον δ᾿ ὅτι οὐ χωρίζεται οὔτ᾿ ἐπὶ γενέσεως οὔτ᾿

ἐπὶ φθορᾶς, ὁμοίως δὲ καὶ ἐπὶ τοῦ ἑνός, ὥστε φανερὸν ὅτι                  30

ἡ πρόσθεσις ἐν τούτοις ταὐτὸ δηλοῖ, καὶ οὐδὲν ἕτερον τὸ ἓν

παρὰ τὸ ὄν· ἔτι δ᾿ ἡ ἑκάστου οὐσία ἕν ἐστιν οὐ κατὰ συμβε-

βηκός, ὁμοίως δὲ καὶ ὅπερ ὄν τι· ὥσθ᾿ ὅσαπερ τοῦ ἑνὸς

εἴδη, τοσαῦτα καὶ τοῦ ὄντος ἐστί· περὶ ὧν τὸ τί ἐστι τῆς

αὐτῆς ἐπιστήμης τῷ γένει θεωρῆσαι, λέγω δ᾿ οἷον περὶ                      35

ταὐτοῦ καὶ ὁμοίωου καὶ τῶν ἄλλων τῶν τοιούτων. σχεδὸν δὲ

πάντα ἀνάγεται τἀναντία εἰς τὴν ἀρχὴν ταύτην· τεθεώ-             1004a1

ρηται δ᾿ ἡμῖν ταῦτα ἐν τῇ ἐκλογῇ τῶν ἐναντίων.

                                                                   그래서 만일 

있는 것과 하나가 마치 원리와 원인처럼 서로 함축함으로써 같은 

것이자 단일한 본성이라면, 단일한 논리로 설명되는 것들이기에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찬가지로 간주한다 하더라도 

아무런 차이도 없을 것이며, 오히려 실제로도 더욱 그럴 것이다.) 

― 왜냐하면 한 사람과 있는 사람 그리고 사람은 같은 것이고, 

"그 사람이 사람으로도 또 한 사람으로도 있다"라고 표현상으로 

다시 중복됨으로써 무언가 다른 것을 알려주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성을 두고도 소멸을 두고도 분리되지 않고, 

마찬가지로 하나를 두고도 그렇다는 것이 분명하고, 그래서 이런 

경우들에서 그 추가가 같은 것을 알려준다는 점이 명백하고,

하나가 있는 것 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기도 하다. 더욱이 각각의

것의 실체는 하나이되 부수적으로 그러한 것이 아니며, 마찬가지로

그것이 무엇으로 있는 바 바로 그것 또한 그러하다. 그래서

하나의 것의 종들인 바, 그만큼의 것들은 있는 것에 대해서도

[종들로서] 있다. 그것들에 관하여 무엇으로 있는지 관조하는 일은

유적으로 같은 학문에 속하는데, 나는 이를 테면 같은 것 그리고

유사한 것 또한 이러한 여타의 것들에 관련하여 그렇게 말한다.

그런데 거의 모든 반대쌍들이 같은 원리로 소급된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에 의해 반대쌍들에 대한 선별에서 관조되었다.

<ἅπαντος δὲ γένους καὶ αἴσθησις μία ἑνὸς                              1003b19

καὶ ἐπιστήμη, οἷον γραμματικὴ μία οὖσα πάσας θεωρεῖ             1003b20

τὰς φωνάς· διὸ καὶ τοῦ ὄντος ὅσα εἴδη θεωρῆσαι μιᾶς               1003b21

ἐστὶν ἐπιστήμης τῷ γένει, τά τε εἴδη τῶν εἰδῶν.>                      1003b22

<그런데 통틀어 모든 유에 대한 지각도 학문도 단일한 유에

단일한 지각/학문이 속하는 바, 예를 들어 문법학은 단일한

것으로 있고서 모든 음성들을 관조한다. 이런 이유로 있는 것에

대해서도 그 종들로서 있는 것들을 관조하는 일은 유적으로

단일한 학문에 속하여 있으며, 그 [있는 것들의] 종들에 대해

[학문의] 종들이 있기도 하다.>

καὶ τοσαῦτα μέρη φιλοσοφίας ἔστιν ὅσαιπερ αἱ οὐσίαι· ὥστε      1004a3

ἀναγκαῖον εἶναι τινα πρώτην καὶ ἐχομένην αὐτῶν. ὑπάρ-

χει γὰρ εὐθὺς γένη ἔχοντα τὸ ὂν καὶ τὸ ἕν· διὸ καὶ                            5

ἐπιστήμαι ἀκολουθήσουσι τούτοις. ἔστι γὰρ ὁ φιλόσοφος

ὥσπερ ὁ μαθηματικὸς λεγόμενος· καὶ γὰρ αὕτη ἔχει

μέρη, καὶ πρώτη τις καὶ δευτέρα ἔστιν ἐπιστήμη καὶ ἄλλαι

ἐφεξῆς ἐν τοῖς μαθήμασιν. ἐπεὶ δὲ μιᾶς τὰ ἀντικείμενα

θεωρῆσαι, τῷ δὲ ἑνὶ ἀντίκειται πλῆθος (ἀπόφασιν δὲ καὶ                    10

στέρησιν μιᾶς ἐστὶ θεωρῆσαι διὰ τὸ ἀμφοτέρως θεωρεῖσθαι

τὸ ἓν οὗ ἡ ἀπόφασις ἢ ἡ στέρησις ― ἡ ἁπλῶς λεγομένη

ὅτι οὐχ ὑπάρχει ἐκείνῳ, ἢ τινι γένει· ἔνθα μὲν οὖν τῷ ἑνὶ

ἡ διαφορὰ πρόσεστι παρὰ τὸ ἐν τῇ ἀποφάσει, ἀπουσία γὰρ

ἡ ἀπόφασις ἐκείνου ἐστίν, ἐν δὲ τῇ στερήσει καὶ ὑποκει-                     15

μένη τις φύσις γίνεται καθ᾿ ἧς λέγεται ἡ στέρησις) τῷ

δ᾿ ἑνὶ πλῆθος ἀντίκειται, ὥστε καὶ τὰ ἀντικείμενα τοῖς εἰρη-

μένοις, τό τε ἕτερον καὶ ἀνόμοιον καὶ ἄνισον καὶ ὅσα

ἄλλα λέγεται ἢ κατὰ ταῦτα ἢ κατὰ πλῆθος καὶ τὸ ἕν,

τῆς εἰρημένης γνωρίζειν ἐπιστήμης·                                                20

그리고 실체들이 있는 바로 그 만큼의 철학의 부분들이 있다. 

그래서 그것들 중 특정한 제일 실체와 이어지는 실체가 있음이

필연적이다. 왜냐하면 있는 것과 하나가 즉각적인 상태의

유들로서 성립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학문들도 이러한

것들에 함축된다. 왜냐하면 철학자는 마치 수학자라 말해지는

자와 같이 있기 때문이다. 즉 이 학문이 부분들을 지니고,

수학적 학문들 내에 특정한 제일 학문과 제이 학문 그리고 여타의

것들이 차례대로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립되는 것들을 관조하는

일이 단일한 학문에 속하여 있고, 복수가 하나에 대립되며

(그런데 부정과 결여를 관조하는 일은 부정이나 결여가 그에

대한 것인 바 하나가 그 양쪽 방식으로 관조된다는 점으로 인해

단일한 학문에 속한다. ― 저 하나에게 성립하지 않는다고 

단적으로 말해지거나, 아니면 [하나의] 특정한 유에게 성립하지 

않는다고 말해진다. 그러므로 저기에서 하나에게는 부정에서의

하나에 비해 차이가 추가되는데, 왜냐하면 저 하나에 대한 부정이

부재(비실체)로서 있고, 그 결여 내에서 결여가 그에 대해 진술되는

특정한 본성이 성립하여 있기도 한 것으로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에 복수가 대립되기에, 그래서 이야기된 것들에 대한 

대립자들 또한, 즉 다른 것도 비-유사한 것도 비-동등한 것도 그리고 

이런 것들에 따라서든 복수와 하나에 따라서든 진술되는 여타의 

것들도, 이를 아는 것이 [앞서] 언급된 학문에 속한다. 

                                               ὧν ἕν τι καὶ ἡ ἐναντιό-                 20

της ἐστίν· διαφορὰ γάρ τις ἡ ἐναντιότης, ἡ δὲ διαφορὰ ἑτερό-

της. ὥστ᾿ ἐπειδὴ πολλαχῶς τὸ ἓν λέγεται, καὶ ταῦτα πολ-

λαχῶς μὲν λεχθήσεται, ὅμως δὲ μιᾶς ἅπαντα γνωρίζειν ἐστίν·

οὐ γὰρ εἰ πολλαχῶς, ἑτέρας, ἀλλ᾿ εἰ μήτε καθ᾿ ἓν μήτε πρὸς ἓν

οἱ λόγοι ἀναφέρονται, τότε ἑτέρας. ἐπεὶ δὲ πάντα πρὸς τὸ πρῶ-           25

τον ἀναφέρεται, οἷον ὅσα ἓν λέγεται πρὸς τὸ πρῶτον ἕν,

ὡσαύτως φατέον καὶ περὶ ταὐτοῦ καὶ ἑτέρου καὶ τῶν ἐναντίων

ἔχειν· ὥστε διελόμενον ποσαχῶς λέγεται ἕκαστον, οὕτως ἀπο-

δοτέον πρὸς τὸ πρῶτον ἐν ἑκάστῃ κατηγορίᾳ πῶς πρὸς ἐκεῖνο

λέγεται· τὰ μὲν γὰρ τῷ ἔχειν ἐκεῖνο τὰ δὲ τῷ ποιεῖν τὰ                       30 //200818

δὲ κατ᾿ ἄλλους λεχθήσεται τοιούτους τρόπους. φανερὸν

οὖν ὅπερ ἐν ταῖς ἀπορίαις ἐλέχθη ὅτι μιᾶς περὶ τού-

των καὶ τῆς οὐσίας ἐστὶ λόγον ἔχειν [τοῦτο δ᾿ ἦν ἓν

τῶν ἐν τοῖς ἀπορήμασιν], καὶ ἔστι τοῦ φιλοσόφου περὶ πάν-

των δύνασθαι θεωρεῖν. εἰ γὰρ μὴ τοῦ φιλοσόφου, τίς ἔσται        1004b1

ὁ ἐπισκεψόμενος εἰ ταὐτὸ Σωκράτης καὶ Σωκράτης καθή-

μενος, ἢ εἰ ἓν ἑνὶ ἐναντίον, ἢ τί ἐστι τὸ ἐναντίον ἢ ποσα-

χώς λέγεται; ὁμοίως δὲ καὶ περὶ τῶν ἄλλων τῶν τοιούτων.

                                                반대라는 것도 그것들 중

하나로 있다. 왜냐하면 반대는 일종의 차이이고, 차이는 다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진술되기에, 이러한

것들도 한편으로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진술될 것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들을 아는 일이 단일한 학문에 속하여 있다.

왜냐하면 여러 가지로 진술된다면, 다른 학문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에 따라서도 하나에 대해서도 그 진술들이 환원되지 

않는다면, 그 때 다른 학문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든 

것들은 최초의 것을 향해 환원되기에, 예를 들어 하나라고 진술되는 

일련의 것들은 최초의 하나로 환원되기에, 같은 것과 다른 것 그리고 

반대항들에 관련하여서도 사정이 그러하다고 주장해야만 한다.

그래서 각각의 것이 얼만큼의 방식들로 진술되는지 분할하면서,

그렇게 각 범주에서 최초의 것에 대해서 그것에 대해 어떻게

진술되는지 설명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어떤 것들은 저것을 

지님으로써 또 다른 것들은 만듦으로써 그리고 어떤 것들은 이와 같은 

여타의 방식들에 따라 진술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위의 

난점들에서 진술된 바로 그것, 즉 이것들과 또 실체에 관련하여 설명을 

마련하는 일이 단일한 학문에 속한다는 것, 그리고 모든 관조 가능한 

것들에 관련하여 관조하는 일이 철학자의 일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그야 만일 그것이 철학자의 일이 아니라면, 소크라테스와 

앉아 있는 소크라테스가 같은 것인지, 또는 하나가 하나와 반대인지, 

혹은 반대라는 것은 무엇인지 또는 얼만큼의 방식들로 진술되는지 

탐구하는 자가 누구이겠는가? 이러한 그 외의 것들에 관련하여서도

마찬가지이다.

ἐπεὶ οὖν τοῦ ἑνὸς ᾗ ἓν καὶ τοῦ ὄντος ᾗ ὂν ταῦτα καθ᾿ αὑτά                 5

ἐστι πάθη, ἀλλ᾿ οὐχ ᾗ ἀριθμοὶ ἢ γραμμαὶ ἢ πῦρ, δῆλον

ὡς ἐκείνης τῆς ἐπιστήμης καὶ τί ἐστι γνωρίσαι καὶ τὰ συμ-

βεβηκότ᾿ αὐτοῖς. καὶ οὐ ταύτῃ ἁμαρτάνουσιν οἱ περὶ αὐτῶν

σκοπούμενοι ὡς οὐ φιλοσοφοῦντες, ἀλλ᾿ ὅτι πρότερον ἡ οὐσία,

περὶ ἧς οὐθὲν ἐπαΐουσιν. ἐπεὶ ὥσπερ ἔστι καὶ ἀριθμοῦ ᾗ ἀριθ-             10

μὸς ἴδια πάθη, οἷον περιττότης ἀρτιότης, συμμετρία ἰσό-

της, ὑπεροχὴ ἔλλειψις, καὶ ταῦτα καὶ καθ᾿ ἑαυτοὺς καὶ

πρὸς ἀλλήλους ὑπάρχει τοῖς ἀριθμοῖς (ὁμοίως δὲ καὶ

στερεῷ καὶ ἀκινήτῳ καὶ κινουμένῳ ἀβαρεῖ τε καὶ βάρος

ἔχοντι ἔστιν ἕτερα ἴδια), οὕτω καὶ τῷ ὄντι ᾗ ὂν ἐστί τινα                    15

ἴδια, καὶ ταῦτ᾿ ἐστὶ περὶ ὧν τοῦ φιλοσόφου ἐπισκέψασθαι

τὸ ἀληθές. σημεῖον δέ· οἱ γὰρ διαλεκτικοὶ καὶ σοφισταὶ

τὸ αὐτὸ μὲν ὑποδύονται σχῆμα τῷ φιλοσόφῳ· ἡ γὰρ σο-

φιστικὴ φαινομένη μόνον σοφία ἐστί, καὶ οἱ διαλεκτικοὶ

διαλέγονται περὶ ἁπάντων, κοινὸν δὲ πᾶσι τὸ ὄν ἐστιν,                       20

διαλέγονται δὲ περὶ τούτων δῆλον ὅτι διὰ τὸ τῆς φιλοσο-

φίας εἶναι αὐτὰ οἰκεῖα. περὶ μὲν γὰρ τὸ αὐτὸ γένος στρέ-

φεται ἡ σοφιστικὴ καὶ διαλεκτικὴ τῇ φιλοσοφίᾳ, ἀλλὰ

διαφέρει τῆς μὲν τῷ τρόπῳ τῆς δυνάμεως, τῆς δὲ τοῦ βίου

τῇ προαιρέσει· ἔστι δὲ ἡ διαλεκτικὴ πειραστικὴ περὶ ὧν ἡ                    25

φιλοσοφία γνωριστική, ἡ δὲ σοφιστικὴ φαινομένη, οὖσα δ᾿ οὔ.

그러므로 하나인 한에서의 하나와 있는 것인 한에서의 있는 것에

이런 것들이 그 자체로서 겪음들로 속해 있고, 그러나 수들이나

철자나 불로서 속해 있는 것은 아니기에, 무엇인지를 아는 것도

그것들에 부수하는 것들을 아는 것도 저 학문에 속하여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것들에 관하여 고찰하는 자들은 

철학하지 않기에 이런 식으로 잘못을 범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그에 관해 전혀 귀기울이지 않는 바의 것, 즉 실체가 

더 먼저 있기 때문에 잘못을 범한다. 마치 수인 한에서의 수에도 

고유한 겪음들이 있는 것처럼, 예를 들어 홀-짝, 비례-동등, 

과-부족이 있듯, 그리고 이런 것들이 자체적으로도 상호 관계적으로도 

수들에 성립하듯 (마찬가지로 입체와 부동자와 운동자에도 

또 무게가 없는 것에든 무게를 지닌 것에든 또 다른 고유한 것들이 

있다), 그렇게 있는 것인 한에서의 있는 것에도 모종의 고유한 것들이 

있으며, 그래서 그것들에 관련하여 철학자가 진리를 탐구하는 것들이 

이러한 것들이다. 그런데 그것이 [철학자라는] 표지이다. 왜냐하면 

변증가들과 소피스트들은 철학자와 같은 모습으로 위장하기 때문이다. 

즉 그저 소피스트술은 그저 지혜로 나타나 보이기만 하는 것이고, 

변증가들 또한 모든 것들에 관련하여 변증하는데, 있는 것이

모든 것에 공통된 것으로 있으며, 그것들이 철학자에 고유한

것들로서 속해 있다는 점으로 인해서 그들이 그것들에 관하여

변증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소피스트술과 변증술이

철학과 같은 유에 관련하여 종사하지만, 한편(변증술)과는 능력의

활용방식에서 차이가 나고, 다른 한편(소피스트술)과는 삶의

선택에서 차이가 난다. 그런데 변증술은 철학이 앎의 기술인

그러한 것들에 관련하여 시험적인 기술이고, 소피스트술은

철학처럼 나타나 보이이지만, 실제로는 철학이 아닌 것이다.

Ἔτι τῶν ἐναντίων ἡ ἑτέρα συστοιχία στέρησις, καὶ πάντα

ἀνάγεται εἰς τὸ ὄν καὶ τὸ μὴ ὂν, καὶ εἰς ἓν καὶ πλῆθος, οἷον

στάσις τοῦ ἑνὸς κίνησις δὲ τοῦ πλήθους· τὰ δ᾿ ὄντα καὶ τὴν

οὐσίαν ὁμολογοῦσιν ἐξ ἐναντίων σχεδὸν ἅπαντες συγκεῖσθαι·              30

πάντες γοῦν τὰς ἀρχὰς ἐναντίας λέγουσιν· οἱ μὲν γὰρ πε-

ριττὸν καὶ ἄρτιον, οἱ δὲ θερμὸν καὶ ψυχρόν, οἱ δὲ πέρας

καὶ ἄπειρον, οἱ δὲ φιλίαν καὶ νεῖκος. πάντα δὲ καὶ τἆλλα

ἀναγόμενα φαίνεται εἰς τὸ ἓν καὶ πλῆθος (εἰλήφθω γὰρ

ἡ ἀναγωγὴ ἡμῖν), αἱ δ᾿ ἀρχαὶ καὶ παντελῶς αἱ παρὰ τῶν             1005a1

ἄλλων ὡς εἰς γένη ταῦτα πίπτουσιν. φανερὸν οὖν καὶ ἐκ

τούτων ὅτι μιᾶς ἐπιστήμης τὸ ὂν ᾗ ὂν θεωρῆσαι. πάντα γὰρ

ἢ ἐναντία ἢ ἐξ ἐναντίων, ἀρχαὶ δὲ τῶν ἐναντίων τὸ ἓν

καὶ πλῆθος. ταῦτα δὲ μιᾶς ἐπιστήμης, εἴτε καθ᾿ ἓν λέγε-                      5

ται εἴτε μή, ὥσπερ ἴσως ἔχει τἀληθές. ἀλλ᾿ ὅμως εἰ

καὶ πολλαχῶς λέγεται τὸ ἕν, πρὸς τὸ πρῶτον τἆλλα

λεχθήσεται καὶ τὰ ἐναντία ὁμοίως, καὶ διὰ τοῦτο ― καὶ εἰ

μὴ ἔστι τὸ ὂν ἢ τὸ ἓν καθόλου καὶ ταὐτὸ ἐπὶ πάντων ἢ

χωριστόν, ὥσπερ ἴσως οὐκ ἔστιν ἀλλὰ τὰ μὲν πρὸς ἓν τὰ                     10

δὲ τῷ ἐφεξῆς ― καὶ διὰ τοῦτο οὐ τοῦ γεωμέτρου θεωρῆσαι τί

τὸ ἐναντίον ἢ τέλειον ἢ ἓν ἢ ὂν ἢ ταὐτὸν ἢ ἕτερον, ἀλλ᾿

ἢ ἐξ ὑποθέσεως. ὅτι μὲν οὖν μιᾶς ἐπιστήμης τὸ ὂν ᾗ ὂν

θεωρῆσαι καὶ τὰ ὑπάρχοντα αὐτῷ ᾗ ὄν, δῆλον, καὶ ὅτι

οὐ μόνον τῶν οὐσιῶν ἀλλὰ καὶ τῶν ὑπαρχόντων ἡ αὐτὴ                      15

θεωρητική, τῶν τε εἰρημένων καὶ περὶ προτέρου καὶ ὑστέρου,

καὶ γένους καὶ εἴδους, καὶ ὅλου καὶ μέρους καὶ τῶν ἄλλων

τῶν τοιούτων.

더 나아가 반대자들의 한 축은 결여이고, 모든 것들은 있는 것과

있지 않은 것으로, 또 하나와 여럿으로 환원되는데, 예를 들어

정지는 하나에 그리고 운동은 여럿에 속한다. 그런데 있는 것들과

실체가 반대자들로부터 구성된다는 데에 거의 모든 이들이 동의한다.

어쨌든 모든 이들이 원리들을 반대자들로 진술한다. 왜냐하면

어떤 이들은 원리들이 홀과 짝이라고, 또 어떤 이들은 온과 냉이라고, 

또 다른 이들은 한정과 무한정이라고, 또 다른 이들은 사랑과 증오라고

진술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과 그 외의 것들까지도

하나와 여럿으로 환원되는 것처럼 나타나 보이며 (그 환원이 우리에게

가정된 것으로 치자는 이야기이다), 최종적으로도 그 외의

사람들쪽의 원리들이 이러한 유들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나

보인다. 그러므로 이런 점들로부터도 있는 것인 한에서의

있는 것을 관조하는 일이 단일한 학문에 속한다는 점은

명백하다. 왜냐하면 모든 것들은 반대들이거나 혹은 반대들로부터

나온 것들인데, 반대들의 원리들은 하나와 여럿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은 단일한 학문에 속하는데, 하나에 따라 진술되든

그렇지 않든 마찬가지이며, 말하자면 아마도 [하나에 따라 진술되지 

않는 경우가] 참일 것이다. 그러나 설령 하나가 여러 가지

방식으로까지 진술된다 하더라도, 최초의 것에 대해 여타의 것들도 

반대자들도 마찬가지로 진술되며, 이로 인해서도 ― 또 만일

있는 것이나 하나가 보편적으로 모든 것들을 두고 같은 것으로 

있지 않거나 또는 독립된 것으로 있지 않을지라도 그러한데, 

말하자면 아마도 [독립된 것으로 있는 게] 아닐 것이고 오히려 어떤

것들은 하나에 대한 것들로 또 어떤 것들은 순차적으로 있을 것이다.

― 이로 인해서도 반대나 목적 혹은 하나 또는 있는 것이나 같은 것

또는 다른 것이 무엇인지를 관조하는 일은 기하학자에 속하지 않고,

이는 오히려 전제로부터 나오는 방식 이외의 것이다. 그러므로 한편으로

있는 것인 한에서의 있는 것과 있는 것인 한에서의 그것에 성립하는

것들을 관조하는 일은 단일한 학문에 속한다는 점이 분명하고, 또한

실체들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그것들에] 성립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같은 관조(이론)기술이 속한다는 것, 언급된 것들에 대해서도 또 더 

앞선 것과 더 뒤인 것에 관련해서도, 유에도 종에도, 그리고 전체와 

부분과 이러한 그 외의 것들에도 같은 관조기술이 속한다는 것 역시 

분명하다.



-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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