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Ἐπεὶ δέ ἐστι τὶ κατὰ τινὸς ἡ κατάφασις σημαίνουσα, | τοῦτο δέ               5

ἐστιν ἢ ὄνομα ἢ τὸ ἀνώνυμον ― ἓν δὲ δεῖ εἶναι καὶ καθ᾿ | ἑνὸς τὸ

ἐν τῇ καταφάσει, τὸ δὲ ὄνομα εἴρηται καὶ τὸ ἀνώνυμον | πρότερον·

τὸ γὰρ οὐκ ἄνθρωπος ὄνομα μὲν οὐ λέγω, ἀλλ᾿ ἀόριστον | ὄνομα·

ἓν γάρ πως σημαίνει ἀόριστον· ὥσπερ καὶ τὸ οὐχ || ὑγιαίνει οὐ                    10

ῥῆμα, ἀλλ᾿ ἀόριστον ῥῆμα ―, ἔσται πᾶσα κατάφασις | ἢ ἐξ

ὀνόματος καὶ ῥήματος ἢ ἐξ ἀορίστου ὀνόμα|τος καὶ ῥήματος. ἄνευ

δὲ ῥήματος οὐδεμία κατάφασις οὐδὲ ἀπό|φασις· τὸ γὰρ ἔστιν ἢ

ἔσται ἢ ἦν ἢ γίγνεται ἢ ὅσα ἄλλα τοιαῦτα | ῥήματα ἐκ τῶν

κειμένων ἐστίν· προσσημαίνει γὰρ χρόνον. ὥστε || πρώτη κατά-                  15

φασις καὶ ἀπόφασις τὸ ἔστιν ἄνθρωπος ― οὐκ | ἔστιν ἄνθρωπος,

εἶτα ἔστιν οὐκ ἄνθρωπος ― οὐκ ἔστιν οὐκ ἄνθρωπος, | πάλιν ἔστι

πᾶς ἄνθρωπος ― οὐκ ἔστι πᾶς ἄνθρωπος, ἔστι πᾶς οὐκ | 

ἄνθρωπος ― οὐκ ἔστι πᾶς οὐκ ἄνθρωπος. καὶ ἐπὶ τῶν ἐκτὸς δὲ |

χρόνων ὁ αὐτὸς λόγος.

  긍정주장은 무엇을 무엇에 대해 지시한 것으로 있고, 이것은 이름으로 

있거나 또는 이름 없는 것으로 있고 ―그 긍정주장 안에 속한 것은 

하나로 그리고 하나에 대해 있어야 하는데, 이름과 이름 없는 것이 

더욱 우선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비-인간을 이름이 아니라, 

비규정 이름이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든 비규정적 하나를 

지시하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안-건강하다"라는 것이 술어가 아니라, 

비규정 술어인 것과 같다―, 모든 긍정은 이름과 술어를 통해 또는 

비규정 이름과 술어를 통해 성립한다. 그런데 술어 없이는 단 하나의 

긍정도 부정도 성립하지 않는다. "있다," "있을 것이다," "있었다," "된다" 

또는 여타 이러한 종류의 것들이 전제들로부터 보자면 술어들이다.

그것들이 시간을 부가적으로 지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이

있다―인간이 있지 않다"라는 것이 일차적 긍정과 부정이고, 그 다음은

"비-인간이 있다―비-인간이 있지 않다"라는 것이며, 다시 "모든 인간이

있다―모든 인간이 있지 않다"라는 것이 [일차적으로] 있고, [그 다음은]

"모든 비-인간이 있다―모든 비-인간이 있지 않다"라는 것이다. 이외의

시제들에 관련하여서도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Ὅταν δὲ τὸ ἔστι τρίτον προσκατηγο||ρῆται, ἤδη διχῶς                              20

λέγονται αἱ ἀντιθέσεις. λέγω δέ, οἷον ἔστι | δίκαιος ἄνθρωπος, τὸ

ἔστι τρίτον φημὶ συγκεῖσθαι ὀνόμα<τι> ἢ | ῥήμα<τι> ἐν τῇ κατα-

φάσει. ὥστε διὰ τοῦτο τέτταρα ἔσται ταῦτα, | ὧν τὰ μὲν δύο πρὸς

τὴν κατάφασιν καὶ ἀπόφασιν ἕξει κατὰ | τὸ στοιχοῦν ὡς αἱ

στερήσεις, τὰ δὲ δύο οὔ. λέγω δὲ ὅτι τὸ ἔστιν || ἢ τῷ δικαίῳ                        25

προσκείσεται ἢ τῷ οὐ δικαίῳ, ὥστε καὶ ἡ ἀπόφα|σις. τέτταρα οὖν

ἔσται. νοῶμεν δὲ τὸ λεγόμενον ἐκ τῶν ὑπογε|γραμμένων·


ἔστι δίκαιος ἄνθρωπος 

ἀπόφασις τούτου,

οὐκ ἔστι | δίκαιος ἄνθρωπος 

ἔστιν οὐ δίκαιος ἄνθρωπος 

τούτου ἀπόφασις, |

οὐκ ἔστιν οὐ δίκαιος ἄνθρωπος. 


τὸ γὰρ ἔστιν ἐνταῦθα καὶ τὸ οὐκ || ἔστιν τῷ διακίῳ καὶ τῷ οὐ                     30

δικαίῳ πρόσκειται. [ταῦτα μὲν | οὖν, ὥσπερ ἐν τοῖς Ἀναλυτικοῖς 

λέγεται, οὕτω τέτακται.]

  "있다"라는 것이 세 번째 요소로서 추가서술될 경우, 이제 그 대립항들은

두 가지 방식으로 말해진다. 내 말은, "인간이 정의로운 것으로 있다"를

예로 들면, 나는 "있다"라는 것이 해당 긍정주장 안에서 이름<과> 또는 

술어<와> 함께 세 번째 요소로서 함께 놓인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름 또는 술어'를' 함께 배열해주는 세 번째 요소라고)

  그래서 이런 이유로 이러한 것들은 넷이 있을 것인데, 그 중 둘은 긍정과

부정에 대해 순서대로 결여들(소유-결여)과 같은 방식으로 성립할 것이고,

다른 둘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내 말은 "있다"라는 것이 "정의로운 것"에

또는 "안-정의로운 것"에 추가될 것이고, 그래서 부정 역시 그리 되리란

것이다. 그러므로 네 가지 것들이 있다. 아래 표를 통해 이 말을 생각해 보자.

"인간이 정의로운 것으로 있다." 

이에 대한 부정,

"인간이 정의로운 것으로 있지 않다."

"인간이 안-정의로운 것으로 있다."

이에 대한 부정,

"인간이 안-정의로운 것으로 있지 않다."


즉 여기에서 "있다"라는 것과 "있지 않다"라는 것은 "정의로운 것"에 그리고

"안-정의로운 것"에 추가되어 놓여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들은, 마치

『분석론』에서 말해지듯, 그런 식으로 배열되었다.]



Ὁμοίως | δὲ ἔχει κἂν καθόλου τοῦ ὀνόματος ᾖ ἡ κατάφασις,

οἷον

πᾶς | ἐστιν ἄνθρωπος δίκαιος

ἀπόφασις τούτου,

οὐ πᾶς ἐστιν ἄνθρωπος | δίκαιος

πᾶς ἐστιν ἄνθρωπος οὐ δίκαιος

οὐ πᾶς ἐστιν ἄνθρωπος || οὐ δίκαιος.

πλὴν οὐχ ὁμοίως τὰς κατὰ διάμετρον ἐνδέχεται | συναληθεύειν,                   35

ἐνδέχεται δὲ ποτέ.

  긍정주장이 해당 이름에 보편적 방식으로 개입할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인데, 예를 들어 

"모든 인간이 정의로운 것으로 있다."

이에 대한 부정,

"모든 인간이 정의로운 것으로 있지는 않다."

"모든 인간이 안-정의로운 것으로 있다."

"모든 인간이 안-정의로운 것으로 있지는 않다."

이는 사선으로 놓인 주장들이, 때로는 가능할지라도, 위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동시에 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제외하면

위와 마찬가지이다.


* 여기에서 동일성 부정과 일상적 부정 서술(또는 양립 불가능한 속성들의 영역 내에서의 동일성 부정)이 구분되고 있나?


Αὗται μὲν οὖν δύο ἀντίκειν|ται, ἄλλαι δὲ πρὸς τὸ οὐκ

ἄνθρωπος ὡς ὑποκείμενόν τι<νος> | προστεθέντος·

ἔστι δίκαιος οὐκ ἄνθρωπος

οὐκ ἔστι δίκαιος οὐκ ἄνθρωπος

ἔστιν οὐ δίκαιος οὐκ ἄνθρωπος

οὐκ ἔστιν οὐ δίκαιος οὐκ || ἄνθρωπος.

πλείους δὲ τούτων οὐκ ἔσονται ἀντιθέσεις· αὗται δὲ | χωρὶς                   20a

ἐκείνων αὐταὶ καθ᾿ ἑαυτάς εἰσιν, ὡς ὀνόματι τῷ | οὐκ ἄνθρωπος

χρώμεναι.

그러므로 이러한 주장들은 두 반대쌍들이며, 여타의 반대쌍들은

주어[기체]로서 "비-인간"에 대해 무언가<가> 추가되는 경우에 있다.

"비-인간이 정의로운 것으로 있다."

"비-인간이 정의로운 것으로 있지 않다."

"비-인간이 안-정의로운 것으로 있다."

"비-인간이 안-정의로운 것으로 있지 않다."

이것들 이상의 대립쌍들은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대립쌍들은
저 위의 대립쌍들과 독립적으로 그 자체로 성립하는 바, "비-인간"이란

것을 이름으로 사용하기에 그러하다.


Ἐφ᾿ ὅσων δὲ τὸ ἔστι μὴ ἁρμόττει, | οἷον ἐπὶ τοῦ ὑγιαίνει καὶ

βαδίζει, ἐπὶ τούτων τὸ αὐτὸ ποιεῖ || οὕτω τιθέμενον ὡς ἂν εἰ τὸ                   5

ἔστι προσήπτετο, οἷον ὑγιαίνει πᾶς | ἄνθρωπος ― οὐχ ὑγιαίνει

πᾶς ἄνθρωπος, ὑγιαίνει πᾶς οὐκ ἄν|θρωπος ― οὐχ ὑγιαίνει πᾶς

οὐκ ἄνθρωπος. οὐ γάρ ἐστι τὸ οὐ πᾶς | ἄνθρωπος λεκτέον, ἀλλὰ τὸ

οὔ, τὴν ἀπόφασιν, τῷ ἄνθρωπος | προσθετέον· τὸ γὰρ πᾶς οὐ τὸ

καθόλου σημαίνει, ἀλλ᾿ ὅτι καθ||όλου. δῆλον δὲ ἐκ τοῦδε· ὑγιαίνει                10

ἄνθρωπος ― οὐχ ὑγιαίνει ἄν|θρωπος, ὑγιαίνει οὐκ ἄνθρωπος ―

οὐχ ὑγιαίνει οὐκ ἄνθρωπος. | ταῦτα γὰρ ἐκείνων διαφέρει τῷ μὴ

καθόλου. ὥστε τὸ πᾶς | ἢ μηδείς οὐδὲν ἄλλο προσσημαίνει ἢ ὅτι

καθόλου τοῦ ὀνόματος | κατάφησιν ἢ ἀπόφησιν. τὰ οὖν ἄλλα τὰ

αὐτὰ δεῖ προσ||τιθέναι. |                                                                      15

그런데 "있다"라는 것이 조화되지 않는 것들의 경우, 예를 들어 

"건강하다"와 "걷는다"의 경우, 이러한 것들의 경우에는 "있다"라는 

것이 덧붙었더라면 그러했을 바로 그러한 방식으로 적용됨으로써

같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모든 인간이 건강하다―모든 

인간이 건강하지 않다," "모든 비-인간이 건강하다―모든 비-인간이 

건강하지 않다." 즉 "모두가-아닌 인간"이라고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어로서 "비(非)"가 "인간"에 추가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모든"이란 보편자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이라는 점을

지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다음으로부터 분명해진다. "인간이

건강하다―인간이 건강하지 않다," "비-인간이 건강하다―비-인간이

건강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은 보편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저것들(보편문장)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이나 "전무"는

해당 이름에 대해 보편적으로 긍정주장하거나 부정주장하는 것 외에

다른 아무것도 추가로 지시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여타의

것들이 추가되어야 한다.


Ἐπεὶ δὲ ἐναντία ἀπόφασίς ἐστι τῇ ἅπαν ἐστὶ ζῷον δί|καιον ἡ

σημαίνουσα ὅτι οὐδὲν ἐστι ζῷον δίκαιον, αὗται μὲν φα|νερὸν ὅτι

οὐδέποτε ἔσονται οὔτε ἀληθεῖς ἅμα οὔτε ἐπὶ τοῦ αὐτοῦ, | αἱ δὲ

ἀντικείμεναι ταύταις ἔσονταί ποτε, οἷον οὐ πᾶν ζῷον || δίκαιον καὶ              20

ἔστι τι ζῷον δίκαιον. ἀκολουθοῦσι δὲ αὗται, ἡ μὲν | οὐδεὶς ἄνθρω-

πος δίκαιος τῇ πᾶς ἐστιν ἄνθρωπος οὐ δίκαιος, | [τ]ἡ δὲ ἔστι τις

δίκαιος ἄνθρωπος <τ>ῇ ἀντικειμένῃ ὅτι οὐ πᾶς ἐστιν ἄν|θρωπος οὐ

δίκαιος· ἀνάγκη γὰρ εἶναί τινα.

그런데 "모든 동물이 정의로운 것으로 있다"라는 문장에는 어떤

동물도 정의로운 것으로 있지 않다는 점을 지시하는 문장이 반대되는 

부정문으로 있기에, 이러한 것들은 결코 그 둘이 동시에 참일 리도 없고

같은 것을 두고 성립할 리도 없다는 것이 분명한 반면, 이러한 것들에

대립되는 문장들은 어떤 경우에는 그러한 것들로(동시에 참이거나 같은

것을 두고 성립하는 것으로서) 있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모든 동물이

정의로운 것으로 있지는 않다"와 "어떤 동물이 정의로운 것으로 있다."

그런데 "모든 인간이 안-정의로운 것으로 있다"라는 주장에는 "어떤 인간도 

정의로운 것으로 있지 않다"라는 주장이, 반면 이와 대립되는 바 

모든 인간이 안-정의로운 것으로 있지는 않다고 하는 주장에는 

"어떤 인간이 정의로운 것으로 있다"는 주장이 따라온다. 즉 [이것들 중]

무엇인가는 성립함이 필연적이다.


Φανερὸν δὲ | καὶ ὅτι ἐπὶ μὲν τῶν καθ᾿ ἕκαστον, εἰ ἀληθὲς

ἐρωτηθέντα ἀπο||φῆσαι, ὅτι καὶ καταφῆσαι ἀληθές, οἷον· ἆρά γε                  25

Σωκράτης | σοφός; οὔ. Σωκράτης ἄρα οὐ σοφός. ἐπὶ δὲ τῶν

καθόλου οὐκ | ἀληθὴς ἡ ὁμοίως λεγομένη, ἀληθὴς δὲ ἡ ἀπόφασις,

οἷον· ἆρά | γε πᾶς ἄνθρωπος σοφός; οὔ. πᾶς ἄρα ἄνθρωπος οὐ

σοφός. | τοῦτο γὰρ ψεῦδος, ἀλλὰ τὸ οὐ πᾶς ἄρα ἄνθρωπος σοφός ||

ἀληθές. αὕτη δέ γέ ἐστιν ἡ ἀντικειμένη, ἐκείνη δὲ ἡ ἐναντία.

그런데 개별자의 경우에는, 만일 질문 받은 자가 부정하여 참이라면,

긍정 또한 참이라는 점 또한 명백하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는

현명한 것으로 있나?" "아니오." "그럼 소크라테스는 안-현명한 것으로 

있다." 반면 보편자의 경우 마찬가지 방식으로 말해지는 주장이 참이

아니라, 부정이 참이다. 예를 들어 "모든 인간이 현명한 것으로 있는가?"

"아니오." "그럼 모든 인간이 안-현명한 것으로 있다." 이는 거짓이고,

"모든 인간이 현명한 것으로 있지는 않다"라는 것은 참이다. 이것이

모순인 반면, 전자는 반대이다.


Αἱ δὲ κατὰ τὰ ἀόριστα ἀντικείμεναι ὀνόματα καὶ ῥή|ματα,

οἷον ἐπὶ τοῦ μὴ ἄνθρωπος καὶ μὴ δίκαιος, ὥσπερ ἀπο|φάσεις ἄνευ

ὀνόματος καὶ ῥήματος δόξαιεν ἂν εἶναι. οὐκ εἰσὶ | δὲ· ἀεὶ γὰρ

ἀληθεύειν ἀνάγκη ἢ ψεύδεσθαι τὴν ἀπόφασιν, || ὁ δὲ εἰπὼν οὐκ                   35

ἄνθρωπος οὐδὲν μᾶλλον τοῦ ἄνθρωπος | ἀλλὰ καὶ ἧττον ἠλήθευκέ

τι ἢ ἔψευσται, ἐὰν μή τι προστεθῇ. |

비규정 이름과 술어에 따라 대립되는 문장들, 예를 들어 "비-인간"과

"안-정의로움"의 경우, 마치 그 부정들이 이름과 술어 없이 성립한다고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그 부정은 언제나 필연적으로

참이 되거나 아니면 거짓이 되고, "비-인간"을 발언하는 자는, 무언가를

추가하지 않는 한, "인간"을 발언하는 자보다 전혀 조금도 더도 덜도

참된 것도 거짓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Σημαίνει δὲ τὸ ἔστι πᾶς οὐκ ἄνθρωπος δίκαιος οὐδεμιᾷ

ἐκείνων | ταὐτόν, οὐδὲ ἡ ἀντικειμένη ταύτῃ ἡ οὐκ ἔστι πᾶς οὐκ

ἄνθρωπος | δίκαιος· τὸ δὲ πᾶς οὐ δίκαιος οὐκ ἄνθρωπος τῷ οὐδεὶς

δίκαιος || οὐκ ἄνθρωπος ταὐτὸν σημαίνει. ||                                            40

그런데 "모든 비-인간이 정의로운 것으로 있다"라는 것은 저것들

중 아무것과도 같은 것을 지시하지 않고, "모든 비-인간이 정의로운

것으로 있지 않다"라는 이 문장에 대립되는 문장으로 있지도 않다.

반면 "모든 비-인간은 안-정의로운 것으로 있다"라는 것은 "어떤

비-인간도 정의로운 것으로 있지 않다"라는 것과 같은 것을 지시한다.


Μετατιθέμενα δὲ τὰ ὀνόματα καὶ τὰ ῥήματα ταὐτὸν | σημαί-                20b

νει, οἷον ἔστι λευκὸς ἄνθρωπος ― ἔστιν ἄνθρωπος λευκός. | εἰ γὰρ

μὴ τοῦτό ἐστιν, τοῦ αὐτοῦ πλείους ἔσονται ἀποφάσεις, | ἀλλ᾿

ἐδέδεικτο ὅτι μία μιᾶς. τοῦ μὲν γὰρ ἔστι λευκὸς ἄνθρω||πος                        5

ἀπόφασις τὸ οὐκ ἔστι λευκὸς ἄνθρωπος· τοῦ δὲ ἔστιν ἄν|θρωπος

λευκός, εἰ μὴ ἡ αὐτή ἐστι τῇ ἔστι λευκὸς ἄνθρωπος, | ἔσται

ἀπόφασις ἤτοι τὸ οὐκ ἔστιν οὐκ ἄνθρωπος λευκός ἢ τὸ | οὐκ ἔστιν

ἄνθρωπος λευκός. ἀλλ᾿ ἡ ἑτέρα μέν ἐστιν ἀπόφασις | τοῦ ἔστιν οὐκ

ἄνθρωπος λευκός, ἡ ἑτέρα δὲ τοῦ ἔστι λευκὸς ἄν||θρωπος, ὥστε                  10

ἔσονται δύο μιᾶς. ὅτι μὲν οὖν μετατιθεμένου τοῦ | ὀνόματος καὶ

τοῦ ῥήματος ἡ αὐτὴ γίγνεται κατάφασις καὶ | ἀπόφασις, δῆλον. |

그런데 이름과 술어가 바뀌어 놓이더라도 같은 것을 지시한다. 예를 들어

"인간이 흰 것으로 있다."―"흰 것으로서 인간이 있다." 왜냐하면

만일 이렇지 않다면, 같은 것에 대한 더 많은 부정들이 있게 될 것이나,

단일한 것에 대해 단일한 것이 있다는 점이 증명된 바 있기 때문이다.

즉 "인간이 흰 것으로 있다"에 대한 부정은 "인간이 흰 것으로 있지 않다."라는

것이다. 반면 "흰 것으로서 인간이 있다"라는 것에 대해서는, 

만일 "인간이 흰 것으로 있지 않다"와 같은 문장으로 있지 않다면, 

"흰 것으로서 비-인간이 있지 않다"라는 것 또는 "흰 것으로서 인간이 있지

않다"라는 것이 부정으로서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둘 중 한 쪽은 "흰 것으로서

비-인간이 있다"에 대한 부정이고, 다른 한 쪽은 "인간이 흰 것으로 있다"에 대한

부정이기에, 그래서 단일한 주장에 대해 두 주장들이 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름과 술어가 바뀌어 놓이더라도 똑같은 긍정과 부정이 성립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 미규정 명사(e.g., 비-인간)나 

미규정 술어(e.g., "안-걷는다," "안-정의로운 것으로서 있다.")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예를 들어 안-붉음의 경우 이것 이외의 색들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형태나 상태, 여타의

실체까지 포함하는가? 이와 관련하여 미규정 술어와 술어 부정, 계사 부정은 서로 구분되는가?


- 휘태커, 여기에서 "있다"는 주어 의존적 귀결을 가리키며, 따라서 주어가 다양할 수 있는 그 만큼 

다양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e.g., 불이 있다 → 불이 뜨겁다. 이 경우 "염솨슴이 있다"가 거짓이며,

그럼에도 의미가 있다는 것은 어떻게 이해될 것인가? 비존재자에 포함된 모든 술어는 거짓?

또는 "A or ~A"가 가리키는 실재 사태는 없지만 그 의미와 진리치는 있다는 것에 주목. 

존재론과 의미론의 구분이 이루어질 실마리가 나타나고 있는 듯?

  이런 식으로 이해할 때 휘태커는 "to on"의 존재사적 용법을 부정하는가? 


- Cf. External Negation/Internal Negation. 선언문의 진리치와 선언지 각각의 독립적 진리치의 관계는?


-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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