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은 원본 아닌 것이면서 원본을 모방한 것이다. 이 상 중에서 모상은 실제로 닮아 있는 것이고 가상은 닮지 않았는데 닮아 보이는 것이다. 닮지도 않았는데 닮아 보인다는 일은 어떻게 가능한가?


2. 모상은 원본의 비율을 그대로 따른 것, 가상은 원본의 비율을 따르지 않으면서 그럴싸해 보이는 비율을 따른 것.


3. 그렇다면 가상은 원본과 어느 정도까지 단절될 수 있는가? 사과를 원본으로 하고, 코끼리나 삼각형을 가져다가 이름만 "사과"라고 붙이면 이것이 사과의 가상이라 할 수 있는가? 그러나 사과와 닮은 것을 제시하면, 이것은 앞선 규정에 따르면 모상이지 가상은 아니게 된다. 회화나 조각에서 가상의 제한조건이 비율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거대한 규모의 조각상은 감상자와 가까운 아래쪽을 실제 비율보다 작게, 감사자에게서 먼 위쪽을 실제 비율보다 크게 만든다. 여기에서 상대적 비율을 크게 벗어나 가분수나 역삼각형에 가까운 것을 만들어내면 이는 더 이상 가상이라 볼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말을 통해 만들어진 가상의 경우는 어떠한가? 이 경우 모순을 피하고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 일종의 논리적 규칙을 따르는 것이 최소한의 조건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논리적 일관성과 정합성을 내적으로 갖춘 한에서, 전제가 거짓인지 아닌지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거슬리는 사람을 다 죽여 버리는 것이 정의라고 말할 때, 거슬리니까 죽인다는 정도의 일관성이 있으면 정의가 실제로 무엇인지 전혀 모르더라도 이걸 정의의 가상으로 만들어 내세울 수 있을까? 

* "닮아 보인다"라는 것은 원본과 가상 사이에서 만족되는 조건인가, 아니면 가상과 수용자 사이에서만 성립하는 것인가, 혹은 그 둘 모두가 어떤 식으로 결합되어 있는가?


4. 원본에 대해 완전하게 단적으로 무지하다면, 예를 들어 "정의"라는 말을 듣고 아무것도 연상하지 못할 정도로, 극단적으로 말해서 마치 외국인처럼 이 소리가 단어라는 것조차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무지하다면, 이에 대한 가상 제작도 이 가상을 모상으로나 더 나아가 원본으로 착각하는 기만도 양쪽 다 불가능할 것이다. 

* 여기에서 가상과 원본의 연결을 매개해주는 것으로 모상의 역할을 개입시켜야 하는지?

그러나 대중도 소피스트도 대상 자체나 앎과 관련된 적이 없거나 최소한 없을 수 있다. 문제는 소피스트가 기만하려는 상대가 관련된 문제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거나 아니면 모르더라도 모종의 확신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소피스트가 제작한 가상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을 것이다. 우선 가상은 실제로 원본을 닮아 있진 않으며, 상대가 이 가상과는 다른 실제 대상에 대한 앎을 가지고 있거나 이 가상과 다른 방식으로 구성된 믿음(의견)을 가지고 있다면, 그에게는 이 가상이 닮아 보이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상이 가상이기 위해 닮아 보여야만 한다면, 이 닮아 보이게 된다는 상황을 가능하도록 만드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5. 가상에 의한 기만은 상대의 무지를 전제해야만 한다. 마지막 분할에 따르면 소피스트는 모순을 강제한다. 반면 전반적인 논의에서 소피스트는 이 모순을 강제받은 상대가 아니라, 전체 과정을 외부에서 지켜보는 감상자들에 의해 지혜로운 자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논박 당하는 상대와 기만 당하는 상대가 단절되어 버린다. 단, 논박 당하는 상대가 기만 대상에 포함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오히려 일차적으로 직접적인 소피스트의 행위 대상은 논박 상대이고, 소피스트의 단일한 기술이 정의될 수 있는 것이라면 그의 기술이 적용되는 대상은 바로 이 직접적인 상대여야 할 것이다. 그는 소피스트에 의해 모순에 빠지고, 이 모순을 직접 경험함으로써 자신의 의견이 틀렸음을, 그리고 자신이 모르는 자임을 확인하게 된다. 반면 소피스트 자신은 스스로 무지하다는 점을 의식하고 있으며, 이를 알면서 조심스럽게 "아는 척"을 수행한다.

* 사기꾼 선동가와 확신범의 차이랄지. 


말에서 주어가 이어지는 서술의 범위를 제한하는 것과 같이, 가상과 원본 사이의 관계에서도 모방의 범위가 제한된다고 볼 수 있을까? 참말은 모상, 거짓말은 가상, 말은 상. 이 경우 가상과 원본 사이의 관계에서 주어 역할을 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참말은 사실과 닮은 것일 테고, 거짓말은 사실과 다른 것일 텐데, 거짓말이 사실과 닮아 "보이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만족되어야 하는가? 이것은 거짓말과 사실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거짓말과 화자 그리고 청자 사이의 관계에서 나와야 하지 않나? 대강 뭐 이런 구도.


-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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