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쪽] 간결함을 위하여, 나는 우리가 여기에서 일상적인 평서문을, 즉 칠판에 적힌 주인 없는 문장이 아니라 일반적 억양으로 발화된 직설법 문장을 다루고 있다고 가정한다. 따라서 나는 문장과 진술 사이의 구별을 추상화시키는 중이다. 나는 앞서 einai의 일차 계사 용법들(적어도 긍정 용법들)이 일반적으로 그 의미론적 주어의 현존을 시사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이제 아마도 단언된 것들로서의 문장들이 그것들의 문장 내용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주장, 진리 주장을 담지하기도 한다는 것 - 적어도 호메로스의 세계에 속한 실재성에서 그렇다는 것을 추가할 것이다. 그래서 einai의 계사 용법들은 모든 평서 문장들처럼, 두 측면에서 암시적으로 의미론적이다: 그것들은 주어의 현존만이 아니라 그 진리 주장의 타당성 또한 시사한다. 나는 진리 주장이란 말로 문장이 단언하는 바는 무엇이든 그것을 의미한다 - 긍정적 참값의 후보로 이해된 문장내용-. 내 진리주장 개념은 비트겐슈타인이 Tractatus(4.022)에서의 언급으로 의미하였던 바로 그것이라 생각한다. "명제는 사물들이 그것이 참이라면 어떻게 서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그것들이 그렇게 서 있다고 말한다." 그런 주장은 각각의 모든 평서문에 함축된다. 진리사적 구조에서 독특한 점은 이런 주장을 드러나 보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왜 명백한 진리 주장을 위한 운반책으로서 기여하는 것이 정확히 그 동사 to be인가? 내 생각에 그 대답은 서술의 표지로서 계사 einai의 역할 안에 놓여 있어야만 한다. Theaetetus sits 같은 더 단순한 문장들에서, 이러한 기능은 일상적인 동사에 의해 수행된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적하였듯, 어떤 동사든 is 더하기 분사로 대체될 수 있다. Theaetetus sits는 (그리스어에서 그에 상응하는) Theaetetus is sitting으로 대체될 수 있다. 이러한 이유와 그 밖에 이유들로, 그 계싸 동사는 가장 보편적인 동사로 보일 수 있고, 따라서 서술의 표지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각각의 서술은 일상적 평서문 형태에서 진리 주장을 담지한다. 따라서 서술의 표지로서 계사 동사는 진리 주장의 표지가 될 수 있다. (인도와 스칸다나비아에서 "truth"에 해당하는 단어들이 입증하듯, 선사시대에 이미 그런 표지가 되었다.) 그것이 진리사적 구조에서 진리 주장을 명백히 하는 것에 기여하는 것이 똑같은 그 동사인 이유에 대한 나의 설명이다. It is F는 일상적으로 It is truly F를 시사하기 때문에, is는 혼자서 is true를 의미할 수 있다.

8. 유사한 설명이 존재사 문장들에서 의미론적 연산자로서 einai 용법에 대해 제공될 수 있다. 계사 동사는 (직설법에서 어느 동사든 그렇듯) 그 주어의 현존에 대한 암시적 주장을 담지하기 때문에, 적절히 강조되었을 경우 똑같은 동사가 이러한 주장을 명백하게 만드는 데에 기여할 수 있다. 그것은 정확히 존재사 문장에서 einai의 그 기능이다. 우리는 이 일이 존재사 문장 유형의 다양성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는 호메로스에서 그리고 호메로스 이후의 한 유형에서 다섯 가지 존재사 유형을 구별한다.

-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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