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쪽] 일차문장에서 주어 N은 고유명사일 수도 있으나, 또한 인물들이나 개별물들(동물들, 식물들, 장소들 따위)을 지시하는 보통 명사일 수도 있다. 나는 A man speaks, The cat sees the mouse, The tree is tall, 그리고 The tree stands in the yard 같은 문장들을 구문론적으로 일차술어로 헤아린다. 이러한 주어자리 명사들은 또한 술어 위치에서도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일부 이론가들은 어쩌면 이 문장들을 기초적인 것들로 셈해 넣길 선호하지 않을지도 모르고 대신에 그것들을 그 상응하는 술어(is a man, is a cat 따위)로부터 형성적으로 도출해낼 수도 있다. 무엇을 기초적인 것으로 간주할 것인지에 관한 이러한 이론적 논쟁을 피하기 위해, 나는 일차 명사들에 대한 좀 더 너그러운 개념에 의존하려고 한다. 그 명사들은 인물들, 장소들, 특정물들을 지시한다. 일차명사들의 군이 순수하게 문법적인 용어들로 정의될 수 있는지 여부는 불분명하다. 여기에서 나는 개별적인 것들을 지시하는 "구체적인" 명사들을 한편에, 명사화된 술어들로부터 구성되는 "추상적인" 명사들을, 예를 들어 (he) is wise로부터 형성적으로 파생된 wisdom이나 (they) cried out으로부터 형성적으로 파생된 outcry 같은 것들을 다른 한편에 놓는 이러한 구별을 단순히 받아들일 따름이다. 그 문장의 구문론적 단계는 그 주어 명사의 단계에 의존할 것이다. 그래서 Socrates is wise는 계사 동사의 일차 용법이다. 다른 한편, Wisdom is a virtue와 The outcry was far away에서 그 계사 구문은 이차적인데, 이러한 문장들이 이차 (추상적) 명사들을 그 주어로 가지기 때문이다.
  일부 설명은 주부와 술부의 용어들을 위한 것이다. 서술은 (be 동사에 대한 언급 없이) 기초적인 명사-동사 문장, John runs 혹은 (플라톤이 이러한 분석을 처음 도입하는 데 사용하는 예시를 들자면) Theaetetus sits 같은 것으로 정의될 수 있다. 나는 문법적 주어라는 말로 이런 형식의 문장들에서 명사(혹은 명사구)를 의미하고, 문법적 술어로써 나는 그런 문장들에서의 동사 혹은 동사구를 의미한다. 서술로써 내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보다도, 명사와 동사(혹은 주어와 술어) 사이의 관계, 문장성(-性)을 구성하는 그 관계이다. 여기에서 서술은 순수하게 구문론적 개념으로, 명사-동사 문장에 대해 문장성과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처음에 주부와 술부라는 용어들은 구문론적으로 정의되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onoma와 rhema로서 언급했던 두 가지 문장-성분들과 동일시된다. 그렇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어"(hypokeimenon)를 그의 고유한 서술 이론에 도입하였을 때, 그는 그것을 그 onoma, 명사적 문장-성분에 귀착시키지 않았고, 오히려 해당 문장이 그에 대한 것인 바 대상이나 개별자에 귀착시켰다. 주부라는 용어의 본래 의미는 그래서 암묵적 주어나 논리적 주어로 부르는 것이다. 그 주어는 [16쪽] Socrates died in 399 B.C.라는 문장의 주어가 Socrates라는 이름이 아니라 소크라테스 그 자신이라는 의미에서의 주어이다. 문장의 언어적 부분이 아닌 실체에 대한 "주부"라는 말의 이 본래 (하지만 근대적 관점에서 이차적인) 용법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서술 개념에 본질적이고, 여기에서 그에 대한 분석이 주어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미 일차 명사들을 개인들이나 특정한 사물들을 지시하는 것들로 정의하면서 
(언어 외적인) 언급의 대상(subject of reference)이라는 개념에 의존해 왔다. 나는 여기서 "주어"라는 말의 이러한 이중적 의미에 주의를 당부하는데, 왜냐하면 내가 그 두 의미 모두에서 그 말을 체계적으로 사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Socrates died in 399 B.C.라는 문장을 고려할 때, 나는 Socrates를 그 문장의 구문상 혹은 문법적 주어로 부를 것이고, 반면 존재론적 혹은 의미론적 주어인 사람은 소크라테스 그 자신이기 때문이다.

-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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