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쪽] 4. 그래서 나는 einai에 용법 체계에 대한 논리적 기초로서 합당한 것은 정확히 einai의 서술적 기능이라고, 철학적 연구 주제로서 Being이라는 주제를 정당화하는 것은 바로 이 체계의 이러한 개념적 통일성이라고 주장한다. 좀 더 일반적으로, 나는 서술, 현존, 진리라는 세 가지 개념이 다 함께 어떻게 언어가 실재에 대한 묘사로서 기능하는지에 대한 어떤 이론에든 들어간다고 주장한다. 어째서 존재론(Ontology), to on에 대한 이론이 그리스 철학의 분과로서 출현하였는지 설명하는 것은 바로 상호의존적 개념들의 이러한 연결망이다. 그리고 Being에 대한 그리스의 담론들이 지니는 개념적 정합성은 그 동사의 서술적 기능이 근본적인 것으로서 재인된다면 가장 선명하게 나타날 것이다.
  이 주제에 대한 구문론적 논증을 전개하기에 앞서, 나는 그것을 엄격하게 철학적인 고찰로 뒷받침하길 원한다. 서술적 구조의 우선성을 위한 사례를 이전에 빠뜨린 적이 있다. 플로티누스의 유명한 원리에서 the One과 the Good에 Being은 포함되지 않는다. 만일 그가 Being을 현존으로 이해했다면 the One의 Being을 그렇게 단정적으로 부정한다는 것은 이상할 것이다. 만일 One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다른 아무것도 존재하지 못하였을 테니까 - 세계가 전무하였을 테고, 가지적 우주도 감각적 우주도 없었을 것인데, 다른 모든 것이 다 제 실재성을 the One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The One의 einai를 부정함으로써 플로티누스는 실재성이 아니라 서술적 구조를 부정한다. 서술에 속하는 being이 다수성을, 이를 테면 주어(hypokeimenon)와 그것에 대해 서술되는 것 사이의 개념적 구분을 함의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것이 바로 "One"과 "Good"이 최고 원리의 속성들을 대표하지 않고, 단지 the One을 어떻게든 가리키면서 기술하지 않는 이름들일 뿐인 이유이다. 나는 플로티누스가 여기에서 그리스어 동사 einai의 근본적 기능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철학적 감각에 의존하고 있음을 토로한다.
  내가 지금 einai의 계사 용법들이 그 주어에 대해 일상적으로 현존을 시사하리라고 주장하고 있기에, 그 서술적 기능을 지지하는 내가 제안했던 전환은 L. M. De Rijk 같이 존재사적 용법을 그 동사의 철학적 의미에 근본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학자들에게 덜 적대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서술적 용법이 중심에 오는지 존재사적 용법이 중심에 오는지 einai의 이런 명백히 경쟁적인 두 개념들은 궁극적으로 서로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데, 그것들의 관심사가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내 주장은 서술의 구문론적 기능이 [14쪽] einai의 용법들을 통일된 체계로서 파악하는 데에, 또한 철학 안에서 그 동사의 역할을 이해하는 데에 더욱 기본적이라는 것이다. 다른 한편 만일 우리가 번역과 구문에서 주어진 것으로서 그 동사의 어휘상의 내용이나 의미를 탐색 중이라면, 계사 구문은 후보조차 안될 것이다. 우리는 이 문제로 이후 12절에서 다시 돌아온다.


-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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