Πάντες δὴ τἀναντία ἀρχὰς ποιοῦσιν οἵ τε λέγοντες ὅτι ἓν τὸ πᾶν καὶ μὴ κινούμενον (καὶ γὰρ Παρμενίδης θερμὸν καὶ ψυχρὸν ἀρχὰς ποιεῖ, ταῦτα δὲ προσαγορεύει πῦρ καὶ γῆν) καὶ οἱ μανὸν καὶ πυκνόν, καὶ Δημόκριτος τὸ πλῆρες καὶ κενόν, ὧν τὸ μὲν ὡς ὂν τὸ δὲ ὡς οὐκ ὂν εἶναί φησιν· ἔτι θέσει, σχήματι, τάξει.
그래서 모든 이들이 반대를 원리들로 만드는데 모든 것이 하나이며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자들도 (파르메니데스도 뜨거움과 차가움을 원리들로 만들고, 이것들을 불과 흙이라 부르기 때문이다) 희박함과 조밀함을 말하는 자들도 그러하며, 데모크리토스도 충족과 허공을, 그것들 중 하나는 ~인 것으로서 다른 쪽은 ~이지 않은 것으로서 ~이라고 말한다. 더욱이 그는 위치, 형태, 배열을 사용한다.
ταῦτα δὲ γένη ἐναντίων· θέσεως ἄνω κάτω, πρόσθεν ὄπισθεν, σχήματος γεγωνιωμένον ἀγώνιον, εὐθὺ περιφερές. ὅτι μὲν οὖν τἀναντία πως πάντες ποιοῦσι τὰς ἀρχάς, δῆλον. καὶ τοῦτο εὐλόγως· δεῖ γὰρ τὰς ἀρχὰς μήτε ἐξ ἀλλήλων εἶναι μήτε ἐξ ἄλλων, καὶ ἐκ τούτων πάντα· τοῖς δὲ ἐναντίοις τοῖς πρώτοις ὑπάρχει ταῦτα, διὰ μὲν τὸ πρῶτα εἶναι μὴ ἐξ ἄλλων, διὰ δὲ τὸ ἐναντία μὴ ἐξ ἀλλήλων.
그런데 이런 것들은 반대들의 유들이다. 위치에는 위와 아래, 앞과 뒤, 형태에는 각짐과 각지지 않음, 곧음과 휨이 속한다. 그러므로 모든 이들이 어떤 식으로든 원리들을 반대들로 만든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 역시 훌륭한 진술이다. 즉 원리들은 서로를 통한 것이어서도 아니되고 여타의 것들을 통한 것이어서도 아니 되며, 그 원리들로부터 모든 것들이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것들이 최초의 반대되는 것들에게 가능하다, 한편으로 최초의 것은 여타의 것들을 통하지 아니하는 것이라는 점으로 인해, 다른 한편 반대되는 것들은 서로를 통하지 아니하는 것이라는 점으로 인해서.
γεγωνιωμένον : γωνιόομαι pf. pass. part. become angular.

ἀλλὰ δεῖ τοῦτο καὶ ἐπὶ τοῦ λόγου σκέψασθαι πῶς συμβαίνει. ληπτέον δὴ πρῶτον ὅτι πάντων τῶν ὄντων οὐθὲν οὔτε ποιεῖν πέφυκεν οὔτε πάσχειν τὸ τυχὸν ὑπὸ τοῦ τυχόντος, οὐδὲ γίγνεται ὁτιοῦν ἐξ ὁτουοῦν, ἂν μή τις λαμβάνῃ κατὰ συμβεβηκός· [Bekker page 188a, line 35] πῶς γὰρ ἂν γένοιτο λευκὸν ἐκ μουσικοῦ, πλὴν εἰ μὴ συμβεβηκὸς εἴη τῷ μὴ λευκῷ ἢ τῷ μέλανι τὸ μουσικόν; ἀλλὰ λευκὸν μὲν γίγνεται ἐξ οὐ λευκοῦ, καὶ τούτου οὐκ ἐκ παντὸς ἀλλ' ἐκ μέλανος ἢ τῶν μεταξύ, καὶ μουσικὸν οὐκ ἐκ μουσικοῦ, πλὴν οὐκ ἐκ παντὸς ἀλλ' ἐξ ἀμούσου ἢ εἴ τι αὐτῶν ἐστι μεταξύ.
허나 이것이 논증상으로도 어찌 귀결되는지 검토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선 모든 ~인 것들 중 아무것도 우연적인 것에 의해 우연적인 것을 본디 작용하지도 작용받지도 아니하며, 어떤 것으로부터든 어떤 것이든지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을 다루어야 한다, 누군가 부수적 속서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면. 그야 어떻게 음악적인 것으로부터 흰 것이 생길 수 있겠는가, 희지 않은 것이나 검은 것에 음악적인 것이 우연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허나 흰 것은 희지 않은 것으로부터 생겨나고, 이런 모든 것으로부터가 아니라 검은 것이나 그것들의 중간 것들로부터 생겨나며, 음악적인 것도 음악적인 것으로부터 생겨나지 않는다, 그런 모든 것으로부터가 아니라 음악적이지 않거나 그것들의 이를 테면 중간 것이 뭔가 있다면 그것으로부터 생겨나는 경우가 아니라면.
πλὴν εἰ μὴ : πλὴν joined with other Particles.
οὐδὲ δὴ φθείρεται εἰς τὸ τυχὸν πρῶτον, οἷον τὸ λευκὸν οὐκ εἰς τὸ μουσικόν, πλὴν εἰ μή ποτε κατὰ συμβεβηκός, ἀλλ' εἰς τὸ μὴ λευκόν, καὶ οὐκ εἰς τὸ τυχὸν ἀλλ' εἰς τὸ μέλαν ἢ τὸ μεταξύ· ὡς δ' αὔτως καὶ τὸ μουσικὸν εἰς τὸ μὴ μουσικόν, καὶ τοῦτο οὐκ εἰς τὸ τυχὸν ἀλλ' εἰς τὸ ἄμουσον ἢ εἴ τι αὐτῶν ἐστι μεταξύ.
그래서 최초의 것은 우연적인 것으로 소멸하지도 않는다, 예를 들어 흰 것은 음악적인 것으로 소멸되지 않는다, 어쨌든 부수적으로 그러하지 않다면, 오히려 희지 않은 것으로 소멸하며, 우연적인 것으로가 아니라 검은 것이나 중간 것으로 소멸한다: 바로 그런 방식으로 음악적인 것도 음악적이지 않은 것으로 소멸하고, 또한 이것이 우연적인 것으로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비음악적인 것이나 그것들의 뭔가 중간이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으로 소멸한다.
ὁμοίως δὲ τοῦτο καὶ ἐπὶ τῶν ἄλλων, ἐπεὶ καὶ τὰ μὴ ἁπλᾶ τῶν ὄντων ἀλλὰ σύνθετα κατὰ τὸν αὐτὸν ἔχει λόγον· ἀλλὰ διὰ τὸ μὴ τὰς ἀντικειμένας διαθέσεις ὠνομάσθαι λανθάνει τοῦτο συμβαῖνον. ἀνάγκη γὰρ πᾶν τὸ ἡρμοσμένον ἐξ ἀναρμόστου γίγνεσθαι καὶ τὸ ἀνάρμοστον ἐξ ἡρμοσμένου, καὶ φθείρεσθαι τὸ ἡρμοσμένον εἰς ἀναρμοστίαν, καὶ ταύτην οὐ τὴν τυχοῦσαν ἀλλὰ τὴν ἀντικειμένην.
이것은 여타의 것들에 관하여서도 마찬가지인데, ~인 것들 중 단순하지 않고 복합적인 것들도 같은 방식의 설명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주 놓인(대응되는) 상태들이 명명되지 않았다는 점으로 인해 이러한 귀결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조화롭지 않은 것으로부터 조화를 이룬 모든 것이 생겨나고 또한 조화를 이룬 것으로부터 조화롭지 않은 것이 생겨나며, 조화를 이룬 것이 조화롭지 않은 것으로 소멸한다는 것이 필연적이며, 이러한 부조화도 우연한 것이 아니라 마주 놓인 부조화이기 때문이다.
διαφέρει δ' οὐθὲν ἐπὶ ἁρμονίας εἰπεῖν ἢ τάξεως ἢ συνθέσεως· φανερὸν γὰρ ὅτι ὁ αὐτὸς λόγος. ἀλλὰ μὴν καὶ οἰκία καὶ ἀνδριὰς καὶ ὁτιοῦν ἄλλο γίγνεται ὁμοίως· ἥ τε γὰρ οἰκία γίγνεται ἐκ τοῦ μὴ συγκεῖσθαι ἀλλὰ [Bekker page 188b, line 19] διῃρῆσθαι ταδὶ ὡδί, καὶ ὁ ἀνδριὰς καὶ τῶν ἐσχηματισμένων τι ἐξ ἀσχημοσύνης· καὶ ἕκαστον τούτων τὰ μὲν τάξις, τὰ δὲ σύνθεσίς τίς ἐστιν.
그런데 부조화에 관련하여서든 배열에 관련해서든 결합에 관하여서든 말하는 데에 아무런 차이도 없다. 왜냐하면 동일한 논변이 (성립함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허나 물론 집도 남성상도 다른 무엇이든 마찬가지로 생겨난다. 집 역시도 함께 놓인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분해된 것으로부터 생겨나고, 남성상도 형태를 갖춘 것들 중 무엇이든 형태 없는 것으로부터 생겨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것들 각각이 어떤 것들은 배열이고, 또 다른 것들은 결합이다.
εἰ τοίνυν τοῦτ' ἔστιν ἀληθές, ἅπαν ἂν γίγνοιτο τὸ γιγνόμενον καὶ φθείροιτο τὸ φθειρόμενον ἢ ἐξ ἐναντίων ἢ εἰς ἐναντία καὶ τὰ τούτων μεταξύ. τὰ δὲ μεταξὺ ἐκ τῶν ἐναντίων ἐστίν, οἷον χρώματα ἐκ λευκοῦ καὶ μέλανος· ὥστε πάντ' ἂν εἴη τὰ φύσει γιγνόμενα ἢ ἐναντία ἢ ἐξ ἐναντίων.
따라서 만일 이것이 참이라면, 생겨나는 것과 소멸하는 것은 그 모든 것이 반대되는 것들을 통해 생겨나거나 반대되는 그리고 그것들의 중간인 것으로 소멸되거나 할 것이다. 그런데 중간인 것은 반대되는 것들로부터의 것이다, 이를 테면 흼과 검음으로부터 색이 있듯. 그래서 본성상(자연적으로) 생성되는 것들은 모두 반대되는 것들이거나 반대되는 것들로부터의 것들일 것이다.

μέχρι μὲν οὖν ἐπὶ τοσοῦτον σχεδὸν συνηκολουθήκασι καὶ τῶν ἄλλων οἱ πλεῖστοι, καθάπερ εἴπομεν πρότερον· πάντες γὰρ τὰ στοιχεῖα καὶ τὰς ὑπ' αὐτῶν καλουμένας ἀρχάς, καίπερ ἄνευ λόγου τιθέντες, ὅμως τἀναντία λέγουσιν, ὥσπερ ὑπ' αὐτῆς τῆς ἀληθείας ἀναγκασθέντες.
그러므로 여타의 사람들 대다수도 거의 이 만큼까지는 따라왔다, 우리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원소들과 그들에 의해 원리들이라 불리는 것들을, 비록 설명(논증) 없이 내세우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되는 것들로 논하기 때문이다, 바로 진리에 의해 강제받은 것마냥.
διαφέρουσι δ' ἀλλήλων τῷ τοὺς μὲν πρότερα τοὺς δ' ὕστερα λαμβάνειν, καὶ τοὺς μὲν γνωριμώτερα κατὰ τὸν λόγον τοὺς δὲ κατὰ τὴν αἴσθησιν (οἱ μὲν γὰρ θερμὸν καὶ ψυχρόν, οἱ δ' ὑγρὸν καὶ ξηρόν, ἕτεροι δὲ περιττὸν καὶ ἄρτιον ἢ νεῖκος καὶ φιλίαν αἰτίας τίθενται τῆς γενέσεως· ταῦτα δ' ἀλλήλων διαφέρει κατὰ τὸν εἰρημένον τρόπον), ὥστε ταὐτὰ λέγειν πως καὶ ἕτερα ἀλλήλων, ἕτερα μὲν ὥσπερ καὶ δοκεῖ τοῖς πλείστοις, ταὐτὰ [Bekker page 189a, line 1] δὲ ᾗ ἀνάλογον· λαμβάνουσι γὰρ ἐκ τῆς αὐτῆς συστοιχίας· τὰ μὲν γὰρ περιέχει, τὰ δὲ περιέχεται τῶν ἐναντίων.
그런데 그들은 서로 다르다. 어떤 이들은 (반대들을) 더 앞선 것들로 간주하고 다른 이들은 더 나중 것들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어떤 이들은 진술에 따라 더욱 잘 알려지는 것들로 그리 하고 다른 이들은 감각에 따라 그리 한다는 점에서(왜냐하면 어떤 이들은 온과 냉을, 또 다른 이들은 습과 건을, 다른 이들은 홀과 짝이나 불화와 친애를 생성의 원인들로 세우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앞서-언급된 방식으로 서로 다르다), 그래서 같은 것들이자 서로 다른 것들로 논해지도록 한다는 점에서, 대다수에게 믿어지기도 하듯 그런 식으로 다른 것들인 반면, 유비인 한에서는 같은 것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동일한 목록표로부터 취하기 때문이다. 반대되는 것들 중 어떤 것들은 포함하고, 어떤 것들은 포함되기 때문이다.
ταύτῃ τε δὴ ὡσαύτως λέγουσι καὶ ἑτέρως, καὶ χεῖρον καὶ βέλτιον, καὶ οἱ μὲν γνωριμώτερα κατὰ τὸν λόγον, ὥσπερ εἴρηται πρότερον, οἱ δὲ κατὰ τὴν αἴσθησιν (τὸ μὲν γὰρ καθόλου κατὰ τὸν λόγον γνώριμον, τὸ δὲ καθ' ἕκαστον κατὰ τὴν αἴσθησιν· ὁ μὲν γὰρ λόγος τοῦ καθόλου, ἡ δ' αἴσθησις τοῦ κατὰ μέρος), οἷον τὸ μὲν μέγα καὶ τὸ μικρὸν κατὰ τὸν λόγον, τὸ δὲ μανὸν καὶ τὸ πυκνὸν κατὰ τὴν αἴσθησιν. ὅτι μὲν οὖν ἐναντίας δεῖ τὰς ἀρχὰς εἶναι, φανερόν.
그래서 이러한 점에서 그들이 같은 식으로도 다른 식으로도 논하며, 더 못하게도 더 낫게도 논하고, 어떤 이들은 진술에 따라 더 잘 알려지는 것들로, 앞서 언급된 그대로 하는가 하면, 다른 이들은 감각에 따라서 그렇다고 말하는데(왜냐하면 일반적인 것은 진술에 따라 알려지는 것인 반면, 개별적인 것은 감각에 따라 그러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진술은 일반적인 것에 속하고, 감각은 부분적인 것에 속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큼과 작음은 진술에 따라, 그런데 희박과 조밀은 감각에 따라 그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원리들이 반대들이어야 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Ἐχόμενον δ' ἂν εἴη λέγειν πότερον δύο ἢ τρεῖς ἢ πλείους εἰσίν. μίαν μὲν γὰρ οὐχ οἷόν τε, ὅτι οὐχ ἓν τὰ ἐναντία, ἀπείρους δ', ὅτι οὐκ ἐπιστητὸν τὸ ὂν ἔσται, μία τε ἐναντίωσις ἐν παντὶ γένει ἑνί, ἡ δ' οὐσία ἕν τι γένος, καὶ ὅτι ἐνδέχεται ἐκ πεπερασμένων, βέλτιον δ' ἐκ πεπερασμένων, ὥσπερ Ἐμπεδοκλῆς, ἢ ἐξ ἀπείρων· πάντα γὰρ ἀποδιδόναι οἴεται ὅσαπερ Ἀναξαγόρας ἐκ τῶν ἀπείρων. ἔτι δὲ ἔστιν ἄλλα ἄλλων πρότερα ἐναντία, καὶ γίγνεται ἕτερα ἐξ ἀλλήλων, οἷον γλυκὺ καὶ πικρὸν καὶ λευκὸν καὶ μέλαν, τὰς δὲ ἀρχὰς ἀεὶ δεῖ μένειν.
다음으로 논의될 것은 둘인가 셋인가 혹은 여럿인가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편으로 하나일 수 없기 때문인데, 반대되는 것들은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 무한한 것들일 수도 없는데, ~인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며, 또한 모든 유 하나마다에 하나의 반대가 속하고, 본질(실체, 존재)은 무언가 하나의 유이기 때문이고, 한정된 것들로 이루어진 것이 받아들여지기 때문이기도 한 바, 엠페도클레스가 말하듯 한정된 것들로부터 나온 것이 무한정한 것들로부터 나온 것보다 낫다. 왜냐하면 아낙사고라스가 무한정한 것들로부터 내놓는 그 만큼의 모든 것들을 (엠페도클레스가) 내놓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어떤 반대들은 여타의 반대들보다 더 앞선 것들이고, 서로로부터 다른 것들이 생겨나는데, 예를 들어 달콤함과 씀 그리고 흼과 검음이 생겨나고, 그런데 그 원리들은 언제나 남아야 한다.

ὅτι μὲν οὖν οὔτε μία οὔτε ἄπειροι, δῆλον ἐκ τούτων· [Bekker page 189a, line 21] ἐπεὶ δὲ πεπερασμέναι, τὸ μὴ ποιεῖν δύο μόνον ἔχει τινὰ λόγον· ἀπορήσειε γὰρ ἄν τις πῶς ἢ ἡ πυκνότης τὴν μανότητα ποιεῖν τι πέφυκεν ἢ αὕτη τὴν πυκνότητα. ὁμοίως δὲ καὶ ἄλλη ὁποιαοῦν ἐναντιότης· οὐ γὰρ ἡ φιλία τὸ νεῖκος συνάγει καὶ ποιεῖ τι ἐξ αὐτοῦ, οὐδὲ τὸ νεῖκος ἐξ ἐκείνης, ἀλλ' ἄμφω ἕτερόν τι τρίτον.
그러므로 (반대들 or 원리들) 하나도 무한정한 것들도 아니라는 것은, 이상의 것들로부터 분명하다. 그런데 한정된 것들일 경우, 단지 둘만 만들지는 않는다는 어떤 논변이 있다. 왜냐하면 누군가 어떻게 조밀함이 희박함을 본성상 만드는지 혹은 그 희박함이 조밀함을 만드는지 질문 받는다면 당황할 터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되었든 여타의 반대 역시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사랑이 갈등을 함께 이끌고 그로부터 무언가 만드는 것도 아니고, 갈등이 저 사랑으로부터 그러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자와 다른 세 번째의 뭔가를 그리 한다.
ἔνιοι δὲ καὶ πλείω λαμβάνουσιν ἐξ ὧν κατασκευάζουσι τὴν τῶν ὄντων φύσιν. πρὸς δὲ τούτοις ἔτι κἂν τόδε τις ἀπορήσειεν, εἰ μή τις ἑτέραν ὑποθήσει τοῖς ἐναντίοις φύσιν· οὐθενὸς γὰρ ὁρῶμεν τῶν ὄντων οὐσίαν τἀναντία, τὴν δ' ἀρχὴν οὐ καθ' ὑποκειμένου δεῖ λέγεσθαί τινος. ἔσται γὰρ ἀρχὴ τῆς ἀρχῆς· τὸ γὰρ ὑποκείμενον ἀρχή, καὶ πρότερον δοκεῖ τοῦ κατηγορουμένου εἶναι.
그런데 어떤 이들은 그로부터 ~인 것들의 본성(자연)을 만들어내는 더 많은 것들도 취한다. 이런 것들에 더하여 더욱이 누군가 이 점에 당황할 것이다, 만일 누군가 또 다른 본성을 반대들에 가정하지 않는다면. 왜냐하면 우리는 ~인 것들 중 아무것에 대해서도 본질을 반대로 보지 않고, 그런데 원리는 무언가 아래에 놓인 것에 대해 진술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원리의 원리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아래에 놓인 것이 원리이고, 진술되는 것보다 더 앞선 것이라고까지 여겨지기 때문이다.
ἔτι οὐκ εἶναί φαμεν οὐσίαν ἐναντίαν οὐσίᾳ· πῶς οὖν ἐκ μὴ οὐσιῶν οὐσία ἂν εἴη; ἢ πῶς ἂν πρότερον μὴ οὐσία οὐσίας εἴη; διόπερ εἴ τις τόν τε πρότερον ἀληθῆ νομίσειεν εἶναι λόγον καὶ τοῦτον, ἀναγκαῖον, εἰ μέλλει διασώσειν ἀμφοτέρους αὐτούς, ὑποτιθέναι τι τρίτον, ὥσπερ φασὶν οἱ μίαν τινὰ φύσιν εἶναι λέγοντες τὸ πᾶν, οἷον ὕδωρ ἢ πῦρ ἢ τὸ μεταξὺ τούτων.
더욱이 우리는 본질이 본질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어떻게 본질 아닌 것들로부터 본질이 있겠는가? 혹은 어떻게 본질 아닌 것이 본질보다 더 앞서겠는가? 이런 이유로 만일 누군가 더 앞선 논변과 이 논변을 참이라고 생각한다면, 필연적이다, 만일 장차 그 양 논변을 구제하고자 한다면, 어떤 세 번째 것을 가정한다는 것이, 모든 것을 어떤 하나의 본성이라 논하는 자들이 말하듯, 예를 들어 물이나 불이나 이것들의 중간을 말하는 자들이 말하듯.
δοκεῖ δὲ τὸ μεταξὺ μᾶλλον· πῦρ γὰρ ἤδη καὶ γῆ καὶ ἀὴρ καὶ ὕδωρ μετ' ἐναντιοτήτων συμπεπλεγμένα ἐστίν. διὸ καὶ οὐκ ἀλόγως ποιοῦσιν οἱ τὸ ὑποκείμενον ἕτερον τούτων ποιοῦντες, τῶν δ' ἄλλων οἱ ἀέρα· [Bekker page 189b, line 7] καὶ γὰρ ὁ ἀὴρ ἥκιστα ἔχει τῶν ἄλλων διαφορὰς αἰσθητάς· ἐχόμενον δὲ τὸ ὕδωρ.
그런데 중간이라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왜냐하면 이미 불과 흙과 공기와 물은 반대들과 함께 엮인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아래에 놓이는 것을 이것들과 다른 것으로 만드는 자들은 비논리적으로 만드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다른 자들 중에서는 공기로 만드는 자들이 그러하다. 왜냐하면 공기가 다른 것들에 비해 가장 적은 감각적 차이들을 지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물이 취해지는 것이다.
ἀλλὰ πάντες γε τὸ ἓν τοῦτο τοῖς ἐναντίοις σχηματίζουσιν, πυκνότητι καὶ μανότητι καὶ τῷ μᾶλλον καὶ ἧττον. ταῦτα δ' ἐστὶν ὅλως ὑπεροχὴ δηλονότι καὶ ἔλλειψις, ὥσπερ εἴρηται πρότερον. καὶ ἔοικε παλαιὰ εἶναι καὶ αὕτη ἡ δόξα, ὅτι τὸ ἓν καὶ ὑπεροχὴ καὶ ἔλλειψις ἀρχαὶ τῶν ὄντων εἰσί, πλὴν οὐ τὸν αὐτὸν τρόπον, ἀλλ' οἱ μὲν ἀρχαῖοι τὰ δύο μὲν ποιεῖν τὸ δὲ ἓν πάσχειν, τῶν δ' ὑστέρων τινὲς τοὐναντίον τὸ μὲν ἓν ποιεῖν τὰ δὲ δύο πάσχειν φασὶ μᾶλλον.
허나 적어도 그들 모두 이런 한 가지 것을 반대되는 것들로써 형성한다, 조밀함과 희박함 그리고 더함과 덜함으로. 그런데 이런 것들은 전반적으로 초과와 결핍임이 분명하다, 앞서 이야기되었듯이. 그리고 동일한 믿음이 고대의 것들인 것도 같다. 하나 그리고 초과와 결핍이 ~인 것들의 원리들이라는 믿음이, 같은 방식이 아니라는 점을 제외하고. 그러나 어떤 원리들은 둘은 능동적이고 하나는 수동적인데, 후대인들 중 어떤 이들은 오히려 반대로 하나는 능동적인 반면 둘은 수동적이라고 말한다.

τὸ μὲν οὖν τρία φάσκειν τὰ στοιχεῖα εἶναι ἔκ τε τούτων καὶ ἐκ τοιούτων ἄλλων ἐπισκοποῦσι δόξειεν ἂν ἔχειν τινὰ λόγον, ὥσπερ εἴπομεν, τὸ δὲ πλείω τριῶν οὐκέτι· πρὸς μὲν γὰρ τὸ πάσχειν ἱκανὸν τὸ ἕν, εἰ δὲ τεττάρων ὄντων δύο ἔσονται ἐναντιώσεις, δεήσει χωρὶς ἑκατέρᾳ ὑπάρχειν ἑτέραν τινὰ μεταξὺ φύσιν· εἰ δ' ἐξ ἀλλήλων δύνανται γεννᾶν δύο οὖσαι, περίεργος ἂν ἡ ἑτέρα τῶν ἐναντιώσεων εἴη.
그러므로 원소들이 셋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런 논변들과 이와 같은 여타의 논변들을 통해 살펴본 사람들에게 무언가 논리를 갖춘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우리가 말했듯, 그런데 더 이상 셋 보다 더 많은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수동적인 것을 위해 하나면 충분한데, 만일 넷임으로써 반대들이 둘이라면, 둘 각각과 따로 또 다른 무언가 중간 본성이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두 반대들이 서로를 통해 산출할 수 있다면, 그 반대들과 다른 본성은 부산물일 것이다.
ἅμα δὲ καὶ ἀδύνατον πλείους εἶναι ἐναντιώσεις τὰς πρώτας. ἡ γὰρ οὐσία ἕν τι γένος ἐστὶ τοῦ ὄντος, ὥστε τῷ πρότερον καὶ ὕστερον διοίσουσιν ἀλλήλων αἱ ἀρχαὶ μόνον, ἀλλ' οὐ τῷ γένει· ἀεὶ γὰρ ἐν ἑνὶ γένει μία ἐναντίωσις ἔστιν, πᾶσαί τε αἱ ἐναντιώσεις [Bekker page 189b, line 27] ἀνάγεσθαι δοκοῦσιν εἰς μίαν. ὅτι μὲν οὖν οὔτε ἓν τὸ στοιχεῖον οὔτε πλείω δυοῖν ἢ τριῶν, φανερόν· τούτων δὲ πότερον, καθάπερ εἴπομεν, ἀπορίαν ἔχει πολλήν.
동시에 최초의 반대들이 다수이기도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인 것의 본질은 어떤 하나의 유이고, 그래서 원리들은 서로 선후로 다를 뿐일 것이고, 유에서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언제나 하나의 유에 하나의 반대만이 있고, 모든 반대되는 것들 또한 하나의 반대로 수렴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소가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셋보다 많은 것도 아니라는 것은, 명백하다. 그런데 이것들 중 전자가, 우리가 말했듯, 더 많은 난점을 지닌다.

-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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