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헨스키에 따르면 러셀을 위시한 실증주의는 철학을 명확히 규명되기 이전의 대상들 일반을 총체적으로 다루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철학의 대상들이 규명되고 그로부터 많은 분과학문들이 독립되었음에도 여전히 철학의 문제들은 감소하지 않고 오히려 증가하였다. 오히려 독립된 학문들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이 학문들에 대응하는 철학의 종류도 함께 늘어났다. <또 만일 독립되어 나온 학문들로 철학의 문제들을 모두 포괄하여 다루기에 충분하고, 그러므로 철학은 없다고 한다면 / 철학의 대상이 규명되기 이전의 대상이고 규정되지 않은 대상은 아무런 대상도 아니기에 따라서 철학 자체가 없다고 한다면> 그럼에도 '철학이 없다'라는 주장과 그에 따르는 논증은 다른 어떤 분과학문도 아닌 철학 내에서만 다루어질 수 있다. 그리고 철학은 미규정된 대상들의 총체를 다루는 것만이 아닌 다른 일도 수행한다.

  또 다른 입장은 실존철학으로 대표되는 입장이다. 보헨스키에 따르면 이들의 견해로 철학은 이성과 합리를 넘어선 그 한계에 자리하는 문제를 다룬다. 그들은 문학이나 음악 등 예술의 형식을 차용하기도 한다. 곧 예술적 상상력, 창의력을 통해서만 이성과 합리, 지성의 인식을 넘어서 자리하는 문제들을 다룰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지성에 속하는 문제들은 이미 독립되어 나온 분과학문들에 의해 모두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존주의에 대한 이러한 해석에 따르자면 앞서 실증주의에 대한 보헨스키의 해석에 기초한 철학에 대한 이해와 달리 철학은 축소되거나 해소되지 않고 언제까지나 남는다. 그러나 실존주의에 대한 반대자로서 비트겐슈타인은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은 언급될 수 없다고 말한다. 또한 역사적으로 보아 철학이 설령 문학 및 예술의 방법론을 차용한 일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수단이었고 본질적으로 실제 철학자들이 수행해온 일은 모두 이성적, 학문적 활동이었다고 보헨스키는 주장한다. 플라톤도, 아우구스티누스도, 사르트르 또한 문학적인 작품을 내놓았지만 그것은 모두 사상전달의 매개체였다.

  그렇다면 철학 고유의 본래적 영역은 무엇인가? 그는 인식, 가치, 인간, 언어의 네 가지 문제들을 열거한다. 이 외에도 철학의 중심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다양한 견해들이 있음을 밝히면서, 보헨스키는 각 입장들 상호의 배타적이고 독단적인 태도를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다른 모든 것을 배제하고 오직 특정한 하나의 대상만이 철학 본래의 대상이라는 점이 입증된 일은 없다. 세계에는 모든 분야에 공통되면서도 아직까지 미결로 남은 숱한 문제들이 산재해 있다. 문제 자체가 특정 영역에 제한되지 않으므로 철학은 일종의 보편학문이다. 더불어 그 문제가 여러 영역들에 공통되므로 이러한 문제를 다루는 방법을 채택함에 있어서 철학에 제한은 없다. 이런 의미에서도 철학은 보편학이다. 또한 다른 모든 분과학문들은 전제를 가지지만 철학은 전제를 문제삼는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은 근원학, 기초학이다. 이에 더하여 보편학으로서의 철학은 여러 학문들과 중첩되는 부분이 있지만, 존재론과 가치론(윤리학, 도덕철학)에 있어서는 다른 학문들과 구분된다.

 → 그러나 문학 및 예술의 방법론이 철학에 있어서 본질적이지 않고, 철학의 본질적인 문제영역이 미결된 근거문제들, 한계문제들에 있다면 그것은 실증주의의 철학 이해와 어떤 점에서 구분되는가? 실증주의에서도 미결된 근거문제들이 철학의 문제들이라 여긴다. 그리고 근거가 정립되고 대상이 규정되면 이를 분석하는 독립된 학문이 발생한다. 근거문제로 소급해 나아갈 수는 있을지라도 이미 정립되고 규정된 대상을 다루는 일은 더 이상 철학이 떠맡지 않는다. 더구나 실증주의의 철학에 대한 이해에 따랐을 경우 정말로 철학은 축소되어 가는가? 반면에, 존재론과 가치론은 엄밀히 말하자면 그 구체적 대상이라 할 것이 없다고 할 수도 있다. '존재 일반', '가치 그 자체', 이러한 것이 과연 '규정된' 특정한 대상이라 할 수 있는가?

      그의 결론을 요약하자면 철학이란 '이성적으로 전제/근거를 소급해 나아가는 학문' 정도가 될 듯하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여전히 실존주의의 입장이 유효한 부분이 있다. 인식의 한계, 혹은 그 너머 어떤 영역 혹은 대상에 대해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인식'하려는 시도는 과연 정당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 '역사적으로' 그렇게 해 왔다는 것은 답이 되지 않는다. 무엇을 어떻게 해왔는가? 그것은 여기에서 해명되지 않고 있다. 그래도 이렇든 저렇든 보편학, 근본학, 근원학으로서 철학을 바라보는 그러한 문화적 배경에 대한 부러움을 지울 수는 없구만. 씁.

-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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