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eser letzte Satz ist, wie gesagt, selbst analytisch, ob er zwar die synthetische Einheit zur Bedingung alles Denkens macht; denn er sagt nichts weiter, als, daß alle meine Vorstellungen in irgend einer gegebenen Anschauung unter der Bedingung stehen müssen, unter der ich sie allein als meine Vorstellungen zu dem identischen Selbst rechnen, und also, als in einer Apperzeption synthetisch verbunden, durch den allgemeinen Ausdruck Ich denke zusammenfassen kann.
→ 이러한 후자의 명제는 이야기되었듯 그 자체로는 분석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종합적 통일을 모든 사유의 조건으로 만든다. 왜냐하면 그 명제는 나의 모든 표상들이 어쨌든 하나의 주어진 직관 안에서 그 조건 아래에 존립해야만 한다는 것 이외에 다른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조건 아래에서 나는 그 표상들을 오로지 나의 표상들로서만 동일한 자아에 고려해 넣고, 그러므로 하나의 통각 안에서 종합적으로 결합시킨다. 그 보편적 언명을 통하여 나는 총괄하여 생각할 수 있다.
Aber dieser Grundsatz ist doch nicht ein Prinzip für jeden überhaupt möglichen Verstand, sondern nur für den, durch dessen reine Apperzeption in der Vorstellung: Ich bin, noch gar nichts Mannigfaltiges gegeben ist. Derjenige Verstand, durch dessen Selbstbewußtsein zugleich das Mannigfaltige der Anschauung gegeben würde, ein Verstand, durch dessen Vorstellung zugleich die Objekte dieser Vorstellung existierten, würde einen besondern Actus der Synthesis des Mannigfaltigen zu der Einheit des Bewußtseins nicht bedürfen, deren der menschliche Verstand, der bloß denkt, nicht anschaut, bedarf. Aber für den menschlichen Verstand ist er doch unvermeidlich der erste Grundsatz, so, daß er sich sogar von einem anderen möglichen Verstande, entweder einem solchen, der selbst anschauete, oder, wenn gleich eine sinnliche Anschauung, aber doch von anderer Art, als die im Raume und der Zeit, zum Grunde liegend besäße, sich nicht den mindesten Begriff machen kann.
→ 그러나 이러한 근본명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지성 전반 각각에 대한 하나의 원칙은 아니며, 오히려 단지 "내가 있다"라는 표상 안에서 지성의 순수한 통각을 통해 그 지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잡다도 전혀 주어지지 않는 그러한 지성에 대한 원칙이다.→ 저 지성, 그 지성의 자기의식을 통해 동시에 직관의 잡다가 주어질 그러한 지성, 그 지성의 표상을 통해 동시에 이러한 표상의 대상이 현존하는 하나의 지성은 의식의 통일성에 대한 잡다의 종합에 대한 하나의 특수한 활동을 요청하지 않을 것이며, 순전히 사유할 뿐 직관하지는 않는 인간적 지성은 이를 요청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지성에 대해 불가피하게 첫 번째 근본명제이다, 그러니까, 그 지성은, 그 자체로 직관하는 그러한 지성이든 아니면 감각적 직관이라 하더라도 공간과 시간 안에서의 방식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그러한 직관간을 기초에 놓는 그러한 지성이든 또 다른 가능한 지성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개념조차 형성할 수 없을 것이다.



Dieser letzte Satz ist, wie gesagt, selbst analytisch, ob er zwar die synthetische Einheit zur Bedingung alles Denkens macht; denn er sagt nichts weiter, als, daß alle meine Vorstellungen in irgend einer gegebenen Anschauung unter der Bedingung stehen müssen, unter der ich sie allein als meine Vorstellungen zu dem identischen Selbst rechnen, und also, als in einer Apperzeption synthetisch verbunden, durch den allgemeinen Ausdruck Ich denke zusammenfassen kann.
이러한 후자의 명제는 이야기되었듯 그 자체로는 분석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종합적 통일을 모든 사유의 조건으로 만든다. 왜냐하면 그 명제는 나의 모든 표상들이 어쨌든 하나의 주어진 직관 안에서 그 조건 아래에 존립해야만 한다는 것 이외에 다른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조건 아래에서 나는 그 표상들을 오로지 나의 표상들로서만 동일한 자아에 고려해 넣고, 그러므로 하나의 통각 안에서 종합적으로 결합시킨다. 그 보편적 언명을 통하여 나는 총괄하여 생각할 수 있다.
→ 이러한 후자의 명제는 이야기되었듯 그 자체로는 분석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종합적 통일을 모든 사유의 조건으로 만든다. 왜냐하면 그 명제는 나의 모든 표상들이 어쨌든 하나의 주어진 직관 안에서 그 조건 아래에 존립해야만 한다는 것 이외에 다른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조건 아래에서 나는 그 표상들을 오로지 나의 표상들로서만 동일한 자아에 고려해 넣고, 그러므로 하나의 통각 안에서 종합적으로 결합시킨다. 그 보편적 언명을 통하여 나는 총괄하여 생각할 수 있다.

Aber dieser Grundsatz ist doch nicht ein Prinzip für jeden überhaupt möglichen Verstand, sondern nur für den, durch dessen reine Apperzeption in der Vorstellung: Ich bin, noch gar nichts Mannigfaltiges gegeben ist.
그러나 이러한 근본명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지성 전반 각각에 대한 하나의 원칙은 아니며, 오히려 단지 "내가 있다"라는 표상 안에서 지성의 순수한 통각을 통해 그 지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잡다도 전혀 주어지지 않는.
→ 그러나 이러한 근본명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지성 전반 각각에 대한 하나의 원칙은 아니며, 오히려 단지 "내가 있다"라는 표상 안에서 지성의 순수한 통각을 통해 그 지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잡다도 전혀 주어지지 않는 그러한 지성에 대한 원칙이다.
Derjenige Verstand, durch dessen Selbstbewußtsein zugleich das Mannigfaltige der Anschauung gegeben würde, ein Verstand, durch dessen Vorstellung zugleich die Objekte dieser Vorstellung existierten, würde einen besondern Actus der Synthesis des Mannigfaltigen zu der Einheit des Bewußtseins nicht bedürfen, deren der menschliche Verstand, der bloß denkt, nicht anschaut, bedarf.
저 지성, 그 지성의 자기의식을 통해 동시에 직관의 잡다가 주어질 그러한 지성은, 하나의 지성, 그 지성의 표상을 통해 동시에 이러한 표상의 대상이 현존하는, 의식의 통일성에 대한 잡다의 종합에 대한 하나의 특수한 활동을 요청하지 않을 것이며, 인간적 지성은 그것이 순전히 사유하고 직관하지는 않는 요청한다.
→ 저 지성, 그 지성의 자기의식을 통해 동시에 직관의 잡다가 주어질 그러한 지성, 그 지성의 표상을 통해 동시에 이러한 표상의 대상이 현존하는 하나의 지성은 의식의 통일성에 대한 잡다의 종합에 대한 하나의 특수한 활동을 요청하지 않을 것이며, 순전히 사유할 뿐 직관하지는 않는 인간적 지성은 이를 요청한다.
Aber für den menschlichen Verstand ist er doch unvermeidlich der erste Grundsatz, so, daß er sich sogar von einem anderen möglichen Verstande, entweder einem solchen, der selbst anschauete, oder, wenn gleich eine sinnliche Anschauung, aber doch von anderer Art, als die im Raume und der Zeit, zum Grunde liegend besäße, sich nicht den mindesten Begriff machen kann.
그러나 인간 지성에 대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하게 첫 번째 근본명제이다, 그러니까, 그것이 또 다른 가능한 지성에 대해서, 그 자체로 직관하는 그러한 것이든 아니면 감각적 직관임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공간과 시간 안에서의 방식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부터, 기초에 놓는 고유할 것인, 최소한의 개념조차 형성할 수 없을.
→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지성에 대해 불가피하게 첫 번째 근본명제이다, 그러니까, 그 지성은, 그 자체로 직관하는 그러한 지성이든 아니면 감각적 직관이라 하더라도 공간과 시간 안에서의 방식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그러한 직관간을 기초에 놓는 그러한 지성이든 또 다른 가능한 지성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개념조차 형성할 수 없을 것이다.

-蟲-
Verstand ist, allgemein zu reden, das Vermögen der Erkenntnisse. Diese bestehen in der bestimmten Beziehung gegebener Vorstellungen auf ein Objekt. Objekt aber ist das, in dessen Begriff das Mannigfaltige einer gegebenen Anschauung vereinigt ist. Nun erfodert aber alle Vereinigung der Vorstellungen Einheit des Bewußtseins in der Synthesis derselben. Folglich ist die Einheit des Bewußtseins dasjenige, was allein die Beziehung der Vorstellungen auf einen Gegenstand, mithin ihre objektive Gültigkeit, folglich, daß sie Erkenntnisse werden, ausmacht, und worauf folglich selbst die Möglichkeit des Verstandes beruht.
→ 일반적으로 말해서 지성은 인식들의 능력이다.→ 이러한 인식들은 하나의 대상에 대해 주어진 표상들의 규정된 관계 안에 존립한다.→ 그러나 대상는 개념에서 주어진 직관의 잡다가 결합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표상들의 모든 결합은 종합에 있어서 의식의 통일성을 요청한다.→ 그래서 의식의 통일성은 바로 오로지 하나의 대상에 대한 표상들의 관련, 그것이다. 따라서 그 연관의 객관적 실재성은 그래서 그 표상들이 인식들로 되는 것을 결정하고, 그래서 지성의 가능성 자체가 거기에 근거한다.

 Das erste reine Verstandeserkenntnis also, worauf sein ganzer übriger Gebrauch sich gründet, welches auch zugleich von allen Bedingungen der sinnlichen Anschauung ganz unabhängig ist, ist nun der Grundsatz der ursprünglichen synthetischen Einheit der Apperzeption. So ist die bloße Form der äußeren sinnlichen Anschauung, der Raum, noch gar keine Erkenntnis; er gibt nur das Mannigfaltige der Anschauung a priori zu einem möglichen Erkenntnis. Um aber irgend etwas im Raume zu erkennen, z.B. eine Linie, muß ich sie ziehen, und also eine bestimmte Verbindung des gegebenen Einheit dieser Handlung zugleich die Einheit des Bewußtseins (im Begriffe einer Linie) ist, und dadurch allererst ein Objekt (ein bestimmter Raum) erkannt wird. Die synthetische Einheit des Bewußtseins ist also eine objektive Bedingung aller Erkenntnis, nicht deren ich bloß selbst bedarf, um ein Objekt zu erkennen, sondern unter der jede Anschauung stehen muß, um für mich Objekt zu werden, weil auf andere Art, und ohne diese Synthesis, das Mannigfaltige sich nicht in einem Bewußtsein vereinigen würde.
→ 그러므로 여타 모든 사용이 거기에 근거하며 또한 동시에 감각적 직관의 모든 조건들로부터 전적으로 독립적인 최초의 순수한 지성인식은 이제 통각의 근원적 종합적 통일성의 원칙이다.→ 그래서 외적 감각적 직관의 순수 형식은 공간이고 여전히 전혀 인식은 아니다. 왜냐하면 공간은 선험적으로 가능한 하나의 인식에 직관의 잡다만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좌우간 공간 내에서 무언가를 인식하기 위해서, 예를 들어 하나의 선을 인식하기 위해서, 나는 그 선을 그어야만 하고, 그러므로 이러한 활동의 주어진 통일성의 규정된 결합은 동시에 의식의 통일성(하나의 선에 대한 개념 안에서)이며, 그를 통하여 최초로 하나의 대상(하나의 규정된 공간)이 인식된다.→ 그러므로 의식의 종합적 통일은 모든 인식에 대한 하나의 객관적 조건이고, 하나의 대상을 인식하기 위해서 순전히 나 혼자서 그 조건을 요청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대상이 나에 대한 대상이 되려면 그 조건 아래에 각각의 직관을 세워야만 하는데, 왜냐하면 다른 방식으로는, 그리고 이러한 종합 없이는, 잡다가 하나의 의식 안에서 결합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Verstand ist, allgemein zu reden, das Vermögen der Erkenntnisse.
지성은, 일반적으로 말해서, 인식들의 능력이다.
→ 일반적으로 말해서 지성은 인식들의 능력이다.
Diese bestehen in der bestimmten Beziehung gegebener Vorstellungen auf ein Objekt.
이러한 인식들은 주어진 표상들의 객체에 대한 규정된 관계 안에 존립한다.
→ 이러한 인식들은 하나의 대상에 대해 주어진 표상들의 규정된 관계 안에 존립한다.
Objekt aber ist das, in dessen Begriff das Mannigfaltige einer gegebenen Anschauung vereinigt ist.
그러나 대상은 그것이다, 그 대상의 개념에서 주어진 직관의 잡다가 결합되는.
→ 그러나 대상는 개념에서 주어진 직관의 잡다가 결합되는 것이다.
Nun erfodert aber alle Vereinigung der Vorstellungen Einheit des Bewußtseins in der Synthesis derselben.
그러나 이제 표상들의 모든 결합은 그 표상들의 종합에 있어서 의식의 통일성을 요청한다.
→ 그러나 이제 표상들의 모든 결합은 종합에 있어서 의식의 통일성을 요청한다.
Folglich ist die Einheit des Bewußtseins dasjenige, was allein die Beziehung der Vorstellungen auf einen Gegenstand, mithin ihre objektive Gültigkeit, folglich, daß sie Erkenntnisse werden, ausmacht, und worauf folglich selbst die Möglichkeit des Verstandes beruht.
그래서 의식의 통일성은 바로 그것이다, 오로지 하나의 대상에 대한 표상들의 관련, 따라서 그 표상들의 객관적 실재성은, 그래서, 그 표상들이 인식들로 되는 것을 결정하고, 그래서 지성의 가능성 자체가 거기에 근거한다.
→ 그래서 의식의 통일성은 바로 오로지 하나의 대상에 대한 표상들의 관련, 그것이다. 따라서 그 연관의 객관적 실재성은 그래서 그 표상들이 인식들로 되는 것을 결정하고, 그래서 지성의 가능성 자체가 거기에 근거한다.

Das erste reine Verstandeserkenntnis also, worauf sein ganzer übriger Gebrauch sich gründet, welches auch zugleich von allen Bedingungen der sinnlichen Anschauung ganz unabhängig ist, ist nun der Grundsatz der ursprünglichen synthetischen Einheit der Apperzeption.
그러므로 최초의 순수한 지성인식은, 거기에 여타 모든 사용이 근거하는, 또한 동시에 감각적 직관의 모든 조건들로부터 전적으로 독립적인, 이제 통각의 근원적 종합적 통일성의 원칙이다.
→ 그러므로 여타 모든 사용이 거기에 근거하며 또한 동시에 감각적 직관의 모든 조건들로부터 전적으로 독립적인 최초의 순수한 지성인식은 이제 통각의 근원적 종합적 통일성의 원칙이다.
So ist die bloße Form der äußeren sinnlichen Anschauung, der Raum, noch gar keine Erkenntnis; er gibt nur das Mannigfaltige der Anschauung a priori zu einem möglichen Erkenntnis.
그래서 외적 감각적 직관의 순수 형식은, 공간이고, 여전히 전혀 인식은 아니다; 공간은 가능한 하나의 인식에 선험적으로 직관의 잡다만을 제공한다.
→ 그래서 외적 감각적 직관의 순수 형식은 공간이고 여전히 전혀 인식은 아니다. 왜냐하면 공간은 선험적으로 가능한 하나의 인식에 직관의 잡다만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Um aber irgend etwas im Raume zu erkennen, z.B. eine Linie, muß ich sie ziehen, und also eine bestimmte Verbindung des gegebenen Einheit dieser Handlung zugleich die Einheit des Bewußtseins (im Begriffe einer Linie) ist, und dadurch allererst ein Objekt (ein bestimmter Raum) erkannt wird.
그러나 좌우간 공간 내에서 무언가를 인식하기 위해서, 예를 들어 하나의 선을 인식하기 위해서, 나는 그 선을 그어야만 하고, 그러므로 이러한 활동의 주어진 통일성의 규정된 결합은 동시에 의식의 통일성(하나의 선에 대한 개념 안에서)이며, 그를 통하여 최초로 하나의 대상(하나의 규정된 공간)이 인식된다.
→ 그러나 좌우간 공간 내에서 무언가를 인식하기 위해서, 예를 들어 하나의 선을 인식하기 위해서, 나는 그 선을 그어야만 하고, 그러므로 이러한 활동의 주어진 통일성의 규정된 결합은 동시에 의식의 통일성(하나의 선에 대한 개념 안에서)이며, 그를 통하여 최초로 하나의 대상(하나의 규정된 공간)이 인식된다.
Die synthetische Einheit des Bewußtseins ist also eine objektive Bedingung aller Erkenntnis, nicht deren ich bloß selbst bedarf, um ein Objekt zu erkennen, sondern unter der jede Anschauung stehen muß, um für mich Objekt zu werden, weil auf andere Art, und ohne diese Synthesis, das Mannigfaltige sich nicht in einem Bewußtsein vereinigen würde.
그러므로 의식의 종합적 통일은 모든 인식에 대한 하나의 객관적 조건이고, 내가 순전히 스스로 그 조건을 요청하지 않는다, 하나의 대상을 인식하기 위해서, 오히려 그 조건 아래에 각각의 직관을 세워야만 하는데, 나에 대한 대상이 되기 위해서, 왜냐하면 다른 방식으로는, 그리고 이러한 종합 없이는, 잡다가 하나의 의식 안에서 결합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의식의 종합적 통일은 모든 인식에 대한 하나의 객관적 조건이고, 하나의 대상을 인식하기 위해서 순전히 나 혼자서 그 조건을 요청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대상이 나에 대한 대상이 되려면 그 조건 아래에 각각의 직관을 세워야만 하는데, 왜냐하면 다른 방식으로는, 그리고 이러한 종합 없이는, 잡다가 하나의 의식 안에서 결합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蟲-
§ 17. Der Grundsatz der synthetischen Einheit der Apperzeption ist das oberste Prinzip alles Verstandesgebrauchs
§ 17. 통각의 종합적 통일에 대한 원칙은 모든 지성사용에 대해 최상의 원칙이다.

Der oberste Gundsatz der Möglichkeit aller Anschauung in Beziehung auf die Sinnlichkeit war laut der transz. Ästhetik: daß alles Mannigfaltige derselben unter den formalen Bedingungen des Raums und der Zeit stehe. Der oberste Gundsatz eben derselben in Beziehung auf den Verstand ist: daß alles Mannifgaltige der Anschauung unter Bedingungen der ursprünglich-synthetischen Einheit der Apperzeption stehe¹. Unter dem ersteren stehen alle mannifgaltige Vorstellungen der Anschauung, so fern sie uns gegeben werden, unter dem zweiten so fern sie in einem Bewußtsein müssen verbunden werden können; denn ohne das kann nichts dadurch gedacht oder erkannt werden, weil die gegebene Vorstellungen den Actus der Apperzeption, Ich denke, nicht gemein haben, und dadurch nicht in einem Selbstbewußtsein zusammengefaßt sein würden.
→ 감성에 관련하여 모든 직관의 가능성에 대한 최상의 원칙은 초월적 감성학에 의하면 그 직관의 모든 잡다는 공간과 시간의 형식적 조건들 아래에 존립한다는 것이었다.¹→ 마찬가지로 지성과 관련하여 동일한 최상의 원칙은 직관의 모든 잡다가 통각의 근원적-종합적 통일의 조건들 아래에 존립한다는 것이다.→ 직관의 모든 잡다한 표상들은 그 표상들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한에서 전자 아래에 서고, 후자 아래에서는 그것들이 하나의 의식 내에서 결합될 수 있어야만 하는 한에서 그러하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그를 통해 사유되거나 인식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한다'라는 통각의 활동을 주어진 표상들이 공통으로 지니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그를 통하여 하나의 자기의식 안에서 취합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¹ Der Raum und die Zeit und alle Teile derselben sind Anschauungen, mithin einzelne Vorstellungen mit dem Mannigfaltigen, das sie in sich enthalten (siehe die transz. Ästhetik), mithin nicht bloße Begriffe, durch die eben dasselbe Bewußtsein, als in vielen Vorstellungen, sondern viel Vorstellungen als in einer, und deren Bewußtsein, enthalten, mithin als zusammengesetzt, folglich die Einheit des Bewußtseins, als synthetisch, aber doch ursprünglich angetroffen wird. Diese Einzelnheit derselben ist wichtig in der Anwendung (siehe § 25.).
→ ¹공간과 시간과 그것들의 모든 부분들은 직관들이며, 따라서 자체 내에 포함하는 잡다를 가지는 개별적인 표상들이고(초월론적 감성학을 보라), 따라서 그 개념들을 통해 마찬가지로 여러 표상들 내에 있는 것으로서 동일한 의식을 포함하는 그러한 순전한 개념들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이자 그것들에 대한 것인 의식에 속하는 것으로서 많은 표상들을 포함하고, 따라서 공존하는 것으로서 포함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의식의 통일은 종합적인 것으로서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마주치게 된다.→ 그와 같은 표상들의 이러한 개별성은 적용에 있어서 중요하다 (§ 25.를 보라).


Der oberste Gundsatz der Möglichkeit aller Anschauung in Beziehung auf die Sinnlichkeit war laut der transz. Ästhetik: daß alles Mannigfaltige derselben unter den formalen Bedingungen des Raums und der Zeit stehe.¹
감성에 관련하여 모든 직관의 가능성에 대한 최상의 원칙은 초월적 감성학에 의하면 그 직관의 모든 잡다는 공간과 시간의 형식적 조건들 아래에 존립한다는 것이었다.¹
→ 감성에 관련하여 모든 직관의 가능성에 대한 최상의 원칙은 초월적 감성학에 의하면 그 직관의 모든 잡다는 공간과 시간의 형식적 조건들 아래에 존립한다는 것이었다.¹
Der oberste Gundsatz eben derselben in Beziehung auf den Verstand ist: daß alles Mannifgaltige der Anschauung unter Bedingungen der ursprünglich-synthetischen Einheit der Apperzeption stehe¹.
마찬가지로 지성과 관련하여 동일한 최상의 원칙은 직관의 모든 잡다가 통각의 근원적-종합적 통일의 조건들 아래에 존립한다는 것이다.
→ 마찬가지로 지성과 관련하여 동일한 최상의 원칙은 직관의 모든 잡다가 통각의 근원적-종합적 통일의 조건들 아래에 존립한다는 것이다.
Unter dem ersteren stehen alle mannifgaltige Vorstellungen der Anschauung, so fern sie uns gegeben werden, unter dem zweiten so fern sie in einem Bewußtsein müssen verbunden werden können; denn ohne das kann nichts dadurch gedacht oder erkannt werden, weil die gegebene Vorstellungen den Actus der Apperzeption, Ich denke, nicht gemein haben, und dadurch nicht in einem Selbstbewußtsein zusammengefaßt sein würden.
전자 아래에서 직관의 모든 잡다한 표상들은 서는데, 그 표상들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한에서 그러하고, 후자 아래에서는 그것들이 하나의 의식 내에서 결합될 수 있어야만 하는 한에서 그러하다; 왜냐하면 그것 없이는 아무것도 그를 통해 사유되거나 인식될 수 없기 때문이며, '나는 생각한다'라는 통각의 활동을 주어진 표상들이 공통으로 지니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그를 통하여 하나의 자기의식 안에서 취합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 직관의 모든 잡다한 표상들은 그 표상들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한에서 전자 아래에 서고, 후자 아래에서는 그것들이 하나의 의식 내에서 결합될 수 있어야만 하는 한에서 그러하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그를 통해 사유되거나 인식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한다'라는 통각의 활동을 주어진 표상들이 공통으로 지니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그를 통하여 하나의 자기의식 안에서 취합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¹Der Raum und die Zeit und alle Teile derselben sind Anschauungen, mithin einzelne Vorstellungen mit dem Mannigfaltigen, das sie in sich enthalten (siehe die transz. Ästhetik), mithin nicht bloße Begriffe, durch die eben dasselbe Bewußtsein, als in vielen Vorstellungen, sondern viel Vorstellungen als in einer, und deren Bewußtsein, enthalten, mithin als zusammengesetzt, folglich die Einheit des Bewußtseins, als synthetisch, aber doch ursprünglich angetroffen wird.
¹공간과 시간과 그것들의 모든 부분들은 직관들이며, 따라서 자체 내에 포함하는 잡다를 가지는 개별적인 표상들이고(초월론적 감성학을 보라), 따라서 순전한 개념들이 아니다, 그 개념들을 통해 마찬가지로 여러 표상들 내에 있는 것으로서 동일한 의식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이자 그것들에 대한 의식에 속하는 것으로서 많은 표상들을 포함하고, 따라서 공존하는 것으로서 포함하고, 그래서 의식의 의식의 통일은 종합적인 것으로서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마주치게 된다.
→ ¹공간과 시간과 그것들의 모든 부분들은 직관들이며, 따라서 자체 내에 포함하는 잡다를 가지는 개별적인 표상들이고(초월론적 감성학을 보라), 따라서 그 개념들을 통해 마찬가지로 여러 표상들 내에 있는 것으로서 동일한 의식을 포함하는 그러한 순전한 개념들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이자 그것들에 대한 것인 의식에 속하는 것으로서 많은 표상들을 포함하고, 따라서 공존하는 것으로서 포함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의식의 통일은 종합적인 것으로서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마주치게 된다.
Diese Einzelnheit derselben ist wichtig in der Anwendung (siehe § 25.).
그와 같은 표상들의 이러한 개별성은 적용에 있어서 중요하다 (§ 25.를 보라).
→ 그와 같은 표상들의 이러한 개별성은 적용에 있어서 중요하다 (§ 25.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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