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mmt man also ein Objekt einer nicht-sinnlichen Anschauung als gegeben an, so kann man es freilich durch alle die Prädikate vorstellen, die schon in der Voraussetzung liegen, daß ihm nichts zur sinnlichen Anschauung Gehöriges zukomme: also, daß es nicht ausgedehnt, oder im Raume sei, daß die Dauer desselben keine Zeit sei, daß in ihm keine Veränderung (Folge der Bestimmungen in der Zeit) angetroffen werde, usw. Allein das ist doch kein eigentliches Erkenntnis, wenn ich bloß anzeige, wie die Anschauung des Objekts nicht sei, ohne sagen zu können, was in ihr denn enthalten sei; denn alsdenn habe ich gar nicht die Möglichkeit eines Objekts zu meinem reinen Verstandesbegriff vorgestellt, weil ich keine Anschauung habe geben können, die ihm korrespondierte, sondern nur sagen konnte, daß die unsrige nicht für ihn gelte. Aber das Vornehmste ist hier, daß auf ein solches Etwas auch nicht einmal eine einzige Kategorie angewandt werden könnte: z.B. der Begriff einer Substanz, d.i. von Etwas, das als Subjekt, niemals aber als bloßes Prädikat existieren könne, wovon ich gar nicht weiß, ob es irgend ein Ding geben könne, das dieser Gedankenbestimmung korrespondierete, wenn nicht empirische Anschauung mir den Fall der Anwendung gäbe. Doch mehr hievon in der Folge.
→ 그러므로 사람들은 비-감성적 직관의 한 대상을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래서 사람들은 그 대상을 술어들을 통해서 자유로이 표상할 수 있다. 그 술어들은 이미, 그 대상에 감각적 직관에 속하는 것은 아무것도 귀속하지 않는다는: 그러므로, 객체는 연장되거나 또는 공간 내에 있지 않을 것이라는, 객체의 존속은 시간이 아닐 것이라는, 객체 안에서는 어떠한 변화도 (따라서 시간 내에서의 규정들의 변화도) 마주쳐지지 않는다는, 등등의 그러한 전제 안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해서 직관 안에 포함될 어떤 것을 말할 수 없이 내가 순전히 객체의 직관이 아닐 것만을 지시한다면 그것만으로는 어떠한 참된 인식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에 따라 내가 객체의 가능성을 전혀 나의 순수한 지성개념에 표상하지 못 했는데, 왜냐하면 내가 지성개념에 상응하는 어떠한 직관도 제시할 수 없었을 것이고, 오히려 단지 우리의 직관은 개념에 유효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그러한 하나의 어떤 것에 대해 또 역시 단 하나의 범주도 적용될 수 없으리란 점이다. 예를 들어 실체의 범주, 즉 그 어떤 것에 대해서 주어일, 그러나 결코 순전한 술어로 현존할 수는 없는 것으로서의 그러한 어떤 것에 대해서, 나는 경험적 직관이 나에게 적용의 상황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도대체 이러한 사유규정에 상응하는 하나의 사물을 제시할 수 있을지 전혀 알지 못한다.→ 이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이 뒤에 따른다.


Nimmt man also ein Objekt einer nicht-sinnlichen Anschauung als gegeben an, so kann man es freilich durch alle die Prädikate vorstellen, die schon in der Voraussetzung liegen, daß ihm nichts zur sinnlichen Anschauung Gehöriges zukomme: also, daß es nicht ausgedehnt, oder im Raume sei, daß die Dauer desselben keine Zeit sei, daß in ihm keine Veränderung (Folge der Bestimmungen in der Zeit) angetroffen werde, usw.
그러므로 사람들은 비-감성적 직관의 한 대상을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래서 사람들은 그 대상을 술어들을 통해서 자유로이 표상할 수 있다, 그 술어들은 이미 그 전제 안에 놓여 있다, 그 대상에 감각적 직관에 속하는 것은 아무것도 귀속하지 않는다는: 그러므로, 객체는 연장되거나 또는 공간 내에 있지 않을 것이라는, 객체의 존속은 시간이 아닐 것이라는, 객체 안에서는 어떠한 변화도 (따라서 시간 내에서의 규정들의 변화도) 마주쳐지지 않는다는, 등등.
→ 그러므로 사람들은 비-감성적 직관의 한 대상을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래서 사람들은 그 대상을 술어들을 통해서 자유로이 표상할 수 있다. 그 술어들은 이미, 그 대상에 감각적 직관에 속하는 것은 아무것도 귀속하지 않는다는: 그러므로, 객체는 연장되거나 또는 공간 내에 있지 않을 것이라는, 객체의 존속은 시간이 아닐 것이라는, 객체 안에서는 어떠한 변화도 (따라서 시간 내에서의 규정들의 변화도) 마주쳐지지 않는다는, 등등의 그러한 전제 안에 놓여 있다.
Allein das ist doch kein eigentliches Erkenntnis, wenn ich bloß anzeige, wie die Anschauung des Objekts nicht sei, ohne sagen zu können, was in ihr denn enthalten sei; denn alsdenn habe ich gar nicht die Möglichkeit eines Objekts zu meinem reinen Verstandesbegriff vorgestellt, weil ich keine Anschauung habe geben können, die ihm korrespondierte, sondern nur sagen konnte, daß die unsrige nicht für ihn gelte.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만으로는 어떠한 참된 인식도 아니다, 내가 순전히 지시한다면, 객체의 직관이 아닐 것을, 말할 수 없이, 그래서 직관 안에 포함될 어떤 것을; 왜냐하면 그에 따라 내가 객체의 가능성을 전혀 나의 순수한 지성개념에 표상하지 못 했다, 왜냐하면 내가 어떠한 직관도 제시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그 직관이 지성개념에 상응하는, 오히려 단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직관은 개념에 유효하지 않다고.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해서 직관 안에 포함될 어떤 것을 말할 수 없이 내가 순전히 객체의 직관이 아닐 것만을 지시한다면 그것만으로는 어떠한 참된 인식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에 따라 내가 객체의 가능성을 전혀 나의 순수한 지성개념에 표상하지 못 했는데, 왜냐하면 내가 지성개념에 상응하는 어떠한 직관도 제시할 수 없었을 것이고, 오히려 단지 우리의 직관은 개념에 유효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Aber das Vornehmste ist hier, daß auf ein solches Etwas auch nicht einmal eine einzige Kategorie angewandt werden könnte: z.B. der Begriff einer Substanz, d.i. von Etwas, das als Subjekt, niemals aber als bloßes Prädikat existieren könne, wovon ich gar nicht weiß, ob es irgend ein Ding geben könne, das dieser Gedankenbestimmung korrespondierete, wenn nicht empirische Anschauung mir den Fall der Anwendung gäbe.
그러나 여기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그러한 하나의 어떤 것에 대해 또 역시 단 하나의 범주도 적용될 수 없으리란 점이다: 예를 들어 실체의 개념, 즉 어떤 것에 대해서, 주어인 것으로서, 그러나 결코 순전한 술어로 현존할 수는 없는 것으로서, 그에 대해 나는 전혀 알지 못하는, 그것이 도대체 하나의 사물을 제시할 수 있을지, 그 사물이 이러한 사유규정에 상응하는, 경험적 직관이 나에게 적용의 상황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 그러나 여기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그러한 하나의 어떤 것에 대해 또 역시 단 하나의 범주도 적용될 수 없으리란 점이다. 예를 들어 실체의 범주, 즉 그 어떤 것에 대해서 주어일, 그러나 결코 순전한 술어로 현존할 수는 없는 것으로서의 그러한 어떤 것에 대해서, 나는 경험적 직관이 나에게 적용의 상황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도대체 이러한 사유규정에 상응하는 하나의 사물을 제시할 수 있을지 전혀 알지 못한다.
Doch mehr hievon in der Folge.
이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이 뒤에 따른다.
→ 이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이 뒤에 따른다.

-蟲-
§ 23.

Der obige Satz ist von der größten Wichtigkeit; denn er bestimmt eben sowohl die Grenzen des Gebrauchs der reinen Verstandesbegriffe in Ansehung der Gegenstände, als die transzendentale Ästhetik die Grenzen des Gebrauchs der reinen Form unserer sinnlichen Anschauung bestimmte. Raum und Zeit gelten, als Bedingungen der Möglichkeit, wie uns Gegenstände gegeben werden können, nicht weiter, als für Gegenstände der Sinne, mithin nur der Erfahrung. Über diese Grenzen hinaus stellen sie gar nichts vor; denn sie sind nur in den Sinnen und haben außer ihnen keine Wirklichkeit. Die reinen Verstandesbegriffe sind von dieser Einschränkung frei, und erstrecken sich auf Gegenstände der Anschauung überhaupt, sie mag der unsrigen ähnlich sein oder nicht, wenn sie nur sinnlich und nicht intellektuell ist. Diese weitere Ausdehnung der Begriffe über unsere sinnliche Anschauung hinaus, hilft uns aber zu nichts. Denn es sind alsdenn leere Begriffe von Objekten, von denen, ob sie nur einmal möglich sind oder nicht, wir durch jene gar nicht urteilen können, bloße Gedankenformen ohne objektive Realität, weil wir keine Anschauung zur Hand haben, auf welche die synthetische Einheit der Apperzeption, die jene allein enthalten, angewandt werden, und sie so einen Gegenstand bestimmen könnten. Unsere sinnliche und empirische Anschauung kann ihnen allein Sinn und Bedeutung verschaffen.
→ 위의 명제는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 명제는 대상들과 관련하여서 순수한 지성개념들을 사용함에 있어서의 한계들을 규정할 뿐만 아니라, 초월론적 감성학에서 우리들의 감성적 직관의 순수한 형식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한계들도 규정하기 때문이다.→ 공간과 시간은 어떻게 우리에게 대상들이 주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의 조건들로서 감관의 대상들, 따라서 오로지 경험을 넘어서서는 유효하지 않다.→ 이러한 한계들을 뛰어 넘어서서는 공간과 시간이 전혀 아무것도 표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공간과 시간은 단지 감관 안에만 있으며 감관 외부에서는 아무런 실재성도 지니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상들이 감각적일 뿐 지성적이지는 않을 때, 순수 지성개념들은 이러한 제한으로부터 자유롭고, 우리들의 대상들과 유사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직관 일반의 대상들에까지 확장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우리들의 감각적 직관을 뛰어 넘어서는 개념들의 더 넓은 확장은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곧 객체에 대한 공허한 개념들, 그 개념들에 대해서, 그 개념들이 단지 한 번만 가능한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 우리가 저 개념들을 통해서는 전혀 판단할 수 없는 개념들이 있다는 것, 즉 객관적 현실성이 없는 순수한 사유형식들이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저 개념들을 홀로 포함하는 통각의 종합적 통일이 적용되고 그렇게 개념들이 하나의 대상을 규정할 수 있을 아무런 직관도 확보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감각적이고 경험적인 직관만이 개념들에 의미와 지시체를 제공할 수 있다.

Der obige Satz ist von der größten Wichtigkeit; denn er bestimmt eben sowohl die Grenzen des Gebrauchs der reinen Verstandesbegriffe in Ansehung der Gegenstände, als die transzendentale Ästhetik die Grenzen des Gebrauchs der reinen Form unserer sinnlichen Anschauung bestimmte.
위의 명제는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 명제는 대상들과 관련하여서 순수한 지성개념들을 사용함에 있어서의 한계들을 규정할 뿐만 아니라, 초월론적 감성학에서 우리들의 감성적 직관의 순수한 형식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한계들도 규정하기 때문이다.
→ 위의 명제는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 명제는 대상들과 관련하여서 순수한 지성개념들을 사용함에 있어서의 한계들을 규정할 뿐만 아니라, 초월론적 감성학에서 우리들의 감성적 직관의 순수한 형식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한계들도 규정하기 때문이다.
Raum und Zeit gelten, als Bedingungen der Möglichkeit, wie uns Gegenstände gegeben werden können, nicht weiter, als für Gegenstände der Sinne, mithin nur der Erfahrung.
공간과 시간은 어떻게 우리에게 대상들이 주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의 조건들로서 감관의 대상들, 따라서 오로지 경험을 넘어서서는 유효하지 않다.
→ 공간과 시간은 어떻게 우리에게 대상들이 주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의 조건들로서 감관의 대상들, 따라서 오로지 경험을 넘어서서는 유효하지 않다.
Über diese Grenzen hinaus stellen sie gar nichts vor; denn sie sind nur in den Sinnen und haben außer ihnen keine Wirklichkeit.
이러한 한계들을 뛰어 넘어서서는 공간과 시간이 전혀 아무것도 표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공간과 시간은 단지 감관 안에만 있으며 감관 외부에서는 아무런 실재성도 지니지 않기 때문이다.
→ 이러한 한계들을 뛰어 넘어서서는 공간과 시간이 전혀 아무것도 표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공간과 시간은 단지 감관 안에만 있으며 감관 외부에서는 아무런 실재성도 지니지 않기 때문이다.
Die reinen Verstandesbegriffe sind von dieser Einschränkung frei, und erstrecken sich auf Gegenstände der Anschauung überhaupt, sie mag der unsrigen ähnlich sein oder nicht, wenn sie nur sinnlich und nicht intellektuell ist.
순수 지성개념들은 이러한 제한으로부터 자유롭고, 직관 일반의 대상들에까지 확장한다, 그 대상들이 우리들의 대상들과 유사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그 대상들이 감각적일 뿐 지성적이지는 않을 때.
→ 그 대상들이 감각적일 뿐 지성적이지는 않을 때, 순수 지성개념들은 이러한 제한으로부터 자유롭고, 우리들의 대상들과 유사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직관 일반의 대상들에까지 확장한다.
Diese weitere Ausdehnung der Begriffe über unsere sinnliche Anschauung hinaus, hilft uns aber zu nichts.
우리들의 감각적 직관을 뛰어 넘어서는 이와 같은 개념들의 더 넓은 확장은 하지만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 그러나 이와 같은 우리들의 감각적 직관을 뛰어 넘어서는 개념들의 더 넓은 확장은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Denn es sind alsdenn leere Begriffe von Objekten, von denen, ob sie nur einmal möglich sind oder nicht, wir durch jene gar nicht urteilen können, bloße Gedankenformen ohne objektive Realität, weil wir keine Anschauung zur Hand haben, auf welche die synthetische Einheit der Apperzeption, die jene allein enthalten, angewandt werden, und sie so einen Gegenstand bestimmen könnten.
왜냐하면 그것은 곧 객체에 대한 공허한 개념들이기 때문이다, 그 개념들에 대해서, 그 개념들이 단지 한 번만 가능한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 우리가 저 개념들을 통해서는 전혀 판단할 수 없는, 객관적 현실성이 없는 순수한 사유형식들, 왜냐하면 우리가 아무런 직관도 확보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직관에 통각의 종합적 통일이, 그 통일만이 저 개념들을 포함하는, 적용되는, 그리고 그 개념들이 그렇게 하나의 대상을 규정할 수 있을.
→ 왜냐하면 그것은 곧 객체에 대한 공허한 개념들, 그 개념들에 대해서, 그 개념들이 단지 한 번만 가능한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 우리가 저 개념들을 통해서는 전혀 판단할 수 없는 개념들이 있다는 것, 즉 객관적 현실성이 없는 순수한 사유형식들이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저 개념들을 홀로 포함하는 통각의 종합적 통일이 적용되고 그렇게 개념들이 하나의 대상을 규정할 수 있을 아무런 직관도 확보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Unsere sinnliche und empirische Anschauung kann ihnen allein Sinn und Bedeutung verschaffen.
우리들의 감각적이고 경험적인 직관만이 개념들에 의미와 지시체를 제공할 수 있다.
→ 우리들의 감각적이고 경험적인 직관만이 개념들에 의미와 지시체를 제공할 수 있다.

-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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