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0


 

『파이드로스』
강독 / 기종석
선생님 / 건대

 

『파이드로스』
강독 / 기종석
선생님 / 건대

 10-11

스토아 자연학
강독 / 이창우
선생님 / 서울대

 

 『파이드로스』
강독 / 기종석
선생님 / 건대

 

『파이드로스』
강독 / 기종석
선생님 / 건대

 11-12

스토아 자연학
강독 / 이창우
선생님 / 서울대

 

 『파이드로스』
강독 / 기종석
선생님 / 건대

 

『파이드로스』
강독 / 기종석
선생님 / 건대

 12-13

스토아 자연학
강독 / 이창우
선생님 / 서울대

 

 

 

 

 13-14

 

 


 

 

 14-15

 

『국가』
교열독회 청강
정암학당

『소피스테스』
강독/연구
이윤철선생님 /
정암학당

『정치가』
교열독회 청강
정암학당

 

 15-16

 

 『국가』
교열독회 청강
정암학당

『소피스테스』
강독/연구
이윤철선생님 /
정암학당

『정치가』
교열독회 청강
정암학당

 

 16-17

 

 『국가』
교열독회 청강
정암학당

『소피스테스』
강독/연구
이윤철선생님 /
정암학당

『정치가』
교열독회 청강
정암학당

 

 17-18

 

 『국가』
교열독회 청강
정암학당

『소피스테스』
강독/연구
이윤철선생님 /
정암학당

『정치가』
교열독회 청강
정암학당

 

 18-19

 

 

 

 

 

 19-20

 

 『국가』
교열독회 청강
정암학당

소피스테스단편
강독 / 이윤철
선생님 / 정암

『정치가』
교열독회 청강
정암학당

 

 20-21

 

 『국가』
교열독회 청강
정암학당

소피스테스단편
강독 / 이윤철
선생님 / 정암

『정치가』
교열독회 청강
정암학당


 21-22

 

 『국가』
교열독회 청강
정암학당

소피스테스단편
강독 / 이윤철
선생님 / 정암

『정치가』
교열독회 청강
정암학당

 

1. 라틴어 강독을 하고 싶다거나 하는 욕심이 들기는 하지만 그럴 여유는 없고, 빈 시간은 강독 준비하고 논문 준비하다 보면 부족하면 부족했지 남는 것은 아닌지라 그저 퍼져서 나가 떨어지지만 않으면 다행이다. 이미 수료하고 논문 준비 중인 대학원 석박사 선배들이야 그러려니 하는데, 어느 사이엔가 나도 모르게(내가 뭐라고 '나도 모르게'라고 하는지는 나도 모르지만) 여기저기 고대철학 전공하겠다고 석사 진입한 사람들은 어디서 무얼 하느라 보이지를 않는지 모르겠다. 여름에 고전그리스어 강독할 수 있는 곳이라곤 적어도 여름방학 중 서울에선 정암학당뿐일 듯한데. 철학아카데미는 문법수업일 테고, 서양고전학 협동과정에서는 학기 중 정식 강의 말고는 겨울 집중독회뿐이고, 정암에서 여름에 하는 문법강좌에 한 사람 들어온다고는 들었는데 얼굴은 못 봤고. 남 걱정해서 무엇하겠나. 다만 이러다가 서양고대철학 전공자 씨가 말라 버리는 건 아닌지, 아니면 아예 그리스어 라틴어 전혀 모르는 전공자만 남게 되는 건 아닌지(그렇다고 내가 잘 하는 것도 아니면서), 역시나 이것도 쓰잘데기 없는 걱정.

2. 원래 정암에서 목요일 『정치가』 윤독에 청강 들어가려 했는데 일정이 연기되었다. 금요일 『소크라테스의 변론』도 격주로 진행되는데 오전에 건대에서 강독 마치면 시간이 맞으니 상황 봐서 들어가 봐도 괜찮을 듯. 다만 이게 『국가』처럼 길게 가는 거라 그냥 듣기만 해도 진이 빠질 듯해서. 뭐 누구 말대로 노느니 뭐라도 하는 게 낫겠지만서도. 『국가』는 해당 권별로 번역 담당하신 선생님들께서 교대로 진행하시고 윤독 참여하시는 다른 선생님들께서 그 때마다 맡으신 분량에 대해 검토하신 내용들을 내놓으시면 토론이 이어지는 방식이다. 그 지난하고 고된 고민의 시간을 지켜 보노라면, 가끔은 울화가 치밀기도 한다. 아무리 애써 고민하고 조율해서 그야말로 '말'이 되면서도 이를 테면 '원문의 정신'을 최대한으로 보존하면서 해석의 가능성은 열려 있게끔, 그렇지만 번역의 일관성이나 개념에 대한 엄밀한 이해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여 역서를 낸들, 사람들은 그냥 고민없이 되는대로 잘 읽히게 슬슬 써갈긴 번역인지 소설인지 알 수 없는 것이나 떠받들며 잘 읽히니 어쩌니 멋모르는 소리나 지껄여대고 무슨 검증도 안된 허접한 영역서 들이밀며 '원문'이 어쩌니 저쩌니 되도 않는 개소리나 짖어대는데(씨바, 플라톤 태어날 때 영어가 있기나 했냐?), 이 공부가 이 사회에 어떤 의미가 있고 살아남을 가능성은 있는지 그런 생각을 하면 억울한 거다. 뭐 나야 아직 걸음마도 못 뗀 찌끄래기지만서도. 그러거나 말거나 그냥 묵묵히 연구에 매진하시는 분들이 계시니, 나같은 조무래기로서는 궁시렁거리기도 민망스럽다.

3. 『소피스테스』에서 능력이 수동과 능동으로 나뉘고 또한 인식이 능력의 일종으로 제시되는 것은 또한 능력이 기술과 그 이외의 능력으로 분할되고 기술에서 제작술과 획득술로 나뉘는 것, 나아가 획득술에서 배움이나 인식에 관련된 것이 예시들 중에 등장하는 것과 여러모로 상충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종들의 결합과 분리에 대한 설명이 요청된다. 이러한 보완을 시도하지 않을 경우 개념이나 용어의 미분 혹은 내용의 비일관성을 인정해야 한다. 또한 이 과정에서 '종들'과 '부분들'이 호환가능한 개념들로 묘사되고, 다시 전체에 걸친 겪음과 부분적인 겪음, 중심과 본성 따위가 논의되며, 원본과 모상의 구분이 모상에서 참과 거짓의 구분과 서로 다른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정의를 위한 분할의 과정에서 이러한 이후의 논의들이 배제되는 해석은 수용되기 어려울 것이다. 소피스테스는 젊은이들을 붙잡아 타락시키는가 하면 자신이 만든 것들이나 얻어온 것들을 한 자리에서 혹은 이리저리 떠돌며 팔기도 또 사기도 하고, 강한 논변을 약하게 또 약한 논변을 강하게 하면서 반박을 일삼는가 하면 이를 통해 소크라테스가 그러했듯 사람들의 무지를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소피스테스의 일(ergon)들이 모두 거짓인가? 혹은, 이 일이 소피스테스 그 자체의 유를 정확하게 정의해 주는가? 둘 다 아니라면, 제 3의 가능성이 필요하다. 그 모든 일들을 가능케 하는 어떤 단일한 능력 혹은 기술이 모상제작술이라 볼 수 있을 듯하다. 믿음에 관련하는 앎(doxastikē epistēmē)도 일종의 앎이고 기술인가? 허상제작술도 허상을 제작하는 앎을 지닌 능력이라면, 거짓 믿음이라도 그러한 믿음을 갖게 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앎이 있다면 그러한 앎 나름의 능력이 성공적으로 발휘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풀어야 할 문제는 많은 문제만 벌려 놓고 수습이 안 되면 어쩌나. 어쩌긴 뭘 어째, 닥치고 수습해야지.

-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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