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꼴들에 대한 이론의 존재론적 지위와 발전


1) 만일 꼴들이 존재하는 것이라면, 그것들이 어떻게 존재하는지, 또는 그것들의 존재론적 지위는 무엇인지 묻는 것은 합당하다. 중기 대화편들에서, 특히 『파이돈』과 『정체』에서, 꼴들과 그것들의 사례들 사이의 관계는 근본적 의존과 근본적 분리에 속하는 하나로 해석된다: 그 내용물들이 시간에 휩쓸리지 않는 새로운 세계가 발견되었고, 그 세계는, 감각적 현상계에 대해 덜한 실재에 대해 더한 실재가 서듯, 실체들이 그림자들과 반영물들에 마주서듯 그렇게 마주서서, 존재하는 모든 것의 토대가 된다. 체르니스 교수는 중기 대화편들의 존재론을 경탄스럽게 간추려 낸다:

현상적 세계, 전체로서도 그 부분들 모두에 있어서도 지속적으로 과정 속에 있는 그 세계는 앎의 대상인 실재일 수 없다. 인간 행위, 정신적 활동, 물리적 작용의 판이하게 다른 현상들은 각기 그리고 모두 오로지 현상적 과정 외부에 행위의 표준들, 과정의 경계들, 앎의 객관적 상관물들인 실재적 실체들이 존재한다는 전제에서만 설명될 수 있다. 이러한 실체들은 idea들이다….

이 설명은 체르니스 교수가 다른 어떤 곳에서 이데아들에 대한 이론의 철학적 경제성이라 불렀던 것을 기술한다; 그 이론이 많은 문들에 대한 하나의 열쇠이고, 동시에 윤리에 속하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이며, 형이상학이고, 인식론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2) 중기 대화편들에 있어서 이 이론의 존재는 그 뒤로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것은 초기 대화편들에서 꼴들에 대한 이론을 찾은 학생들을 이 이론을 그 곳에서 찾도록 이끌었다. 그것은 초기 대화편들에서 이 이론을 찾는 데 실패한 학생들을 그 곳에 어떠한 이론이라도 있다는 걸 부정하도록 이끌었다.

3) 세 가지 주된 관점들이 주장되어 왔다. 하나는 초기와 중기 대화편들이 여기에서 동일하다는 것이다: 양쪽 모두에서, 꼴들은 존재하고 그것들을 지닌 사물들과 분리되어 있다; 『에우튀프론』에는 꼴들에 대한 이론이 있고, 그것은 본질적으로 『파이돈』과 『정체』에서 제기되고 후기에 『파르메니데스』에서 비판받은 동일한 이론이다. 두번째 관점은 초기 대화편들에서 꼴들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들은 분리되어 있지 않은데, 사물들 '안에' 있고 그것들로부터 '떨어져' 있지는 않기 때문이라는 관점이다. 세번째 관점은 꼴들에 대한 언어가 초기 대화편들에서 발견된다 할지라도, 꼴들 그 자체는 없다는 것이다: 『파이돈』과 『정체』에서 제기되고 후기에 『파르메니데스』에서 비판받은 그 이론은 전혀 새로운 것이고, 플라톤은 『에우튀프론』을 썼을 당시 그것의 - 그 어휘를 제외하고는 -  어떤 부분도 고안하지 않았었다.

4) 또한 네번째 관점이 있다. 그 관점은 작금의 목적들을 위해 세번째 관점의 변형으로 다루어질 것이다. 그 관점은, 초기와 중기 대화편들 양쪽 모두에서, 꼴들이라고 불려왔던 것들이 단순히 언어적 술어들이고, 독립적 보편개념들이나 본질들이 아니며, 그래서 『에우튀프론』은 그것이 제기하지 않은 것에 대한 측면에서 『파이돈』과 『정체』에 동의한다는 것이다. 『파르메니데스』가 비판하지 않은 무엇이 현존하는지는 진술되지 않고 남는다.

5) 초기 대화편들에서 꼴들의 현존에 아무런 언급도 없다는 주장은 잘못이고, 더 진전된 논의 없이는 일축될 것이다. 초기 대화편들에서의 꼴들이 사물들 '안에' 있는지 그것들로부터 '떨어져' 있는지, '내재적'인지 '초월적인지'에 대한 물음은 여전히 남는다. 이 물음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증언이 종종 결정적인 것으로 생각되어 왔다. 비록 검토를 통해 그것이 결정적이지 않다는 것이 보여질 테지만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분리에 대하여

1)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에서 플라톤의 사유를 소크라테스의 사유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구분한다:

소크라테스는… 윤리적 문제들에 전념하고 있었으며 전체로서의 본성의 세계를 도외시하고 있었지만, 이러한 윤리적 문제들에서 보편개념을 탐색하고 있었고, 정의에 대해서 처음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플라톤은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였지만, 감각적인 사물들이 아니라 또 다른 종류의 실체들에 적용된 문제들을 주장했다 - 이러한 이유로, 공통 정의는 어떠한 감각적인 사물에 대해서도 그에 대한 정의일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것들은 언제나 변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다른 종류의 사물들을 그래서 그는 이데아들이라 불렀고 감각적인 것들을 그는 이 이데아들 이후에, 이 이데아들에 대한 관계 때문에 명명되는 모든 것들이라 말했다; 다(多)는 그것들과 같은 이름을 가진 이데아들에 참여함으로써 존재했기 때문이다.

요점은 뒤에 다른 방식으로 놓인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인격의 탁월함들에 몰두하고 있었을 때, 그리고 그것들과 관련하여 처음으로 보편적 정의의 문제를 불러일으키기 시작했을 때 … [그는] 보편개념들이나 정의들을 따로 떨어져 존재하도록 만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들[플라톤주의자들]은 그것들에 분리된 현존을 부여하였고, 이것이 그들이 이데아들이라 부른 종류의 것들이다.

그리고 다시:

그들[플라톤주의자들]은 감각세계에서 특수들이 유동상태에 있으며 그것들 중 그 어느 것도 유지되지 않는다고, 그러나 보편개념들은 이러한 것들로부터 떨어져 있고 그것들과 상이한 어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우리가 우리의 앞선 논의에서 이야기했듯이, 그의 정의들에 대한 논거로써 이 이론에 추진력을 보태 주었다. 그러나 그는 개별자들로부터 보편개념들을 분리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이 점에서, 그것들을 분리시키지 않음에 있어서 그는 옳게 생각했다. 이것은 그 결론들로부터 명백하다; 보편개념 없이 앎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 분리는 이데아들에 대해 고려함과 함께 일어나는 반대들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만일 감각적이고 일시적인 실체들 이외에 어떤 실체들일 것들이 있다면, 그것들이 분리될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필연적인 것으로 다루는 그의 후계자들은, 다른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으나, 이러한 보편적으로 서술되는 실체들에 분리된 현존을 부여했고, 그래서 보편개념들과 개별자들은 거의 같은 종류의 것이라는 것이 뒤따랐다.

이데아들이 χωριστά, '분리되어 있는 것들이었다'라고 말함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는 무엇보다도 그것들이 그것들의 예시들과 수적으로 구분되는 것으로서 분리되어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 즉, 그 자체로 개별적이고 수에 있어서 하나인 것으로서 말이다: 플라톤주의자들은, '동시에 이데아들을 보편개념으로 만들면서 다시 그것들을 분리될 수 있는 것으로서 그리고 개별자들로서 다룬다'. 이것은 꼴들의 이론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비판에서 중요한 전제인데, 왜냐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보편개념은 개별자일 수 없다고, 다자에 대해 서술되는 것은 그 자체로는 많은 것들 중의 하나인 것일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개별적이며 수적으로 하나인 사물들은 예외 없이 어떤 주어에 대해서도 이야기될 수 없다.'

2) 그렇지만 수적 구별은 분리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범주론』1a 24-25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주어에 있어서'라는 말로 내가 의미하는 것은 어떤 것 안에 있는, 그러나 일부분으로서 있지는 않은, 그리고 그것이 안에 있는 어떤 것으로부터 따로 떨어져 (χωρίς)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언급한다. 이 문서는, '아무것도 [개별적이며 수에 있어서 하나인 것을] 주어에 속해 현존하는 것으로부터 제한하지 않는다'(1b 7-8)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후 언급과 마찬가지로, 분리는 수적 구별만큼이나 현존적 독립성 또한 시사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독립성은 배분적인 것으로 해석되어야만 하고, 집합적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주어 안에서'라는 말로 아리스토텔레스는 단지 '어떤 주어와 떨어져 존재할 수 없는'이 아니라 '그것이 속한 특정 주어로부터 떨어져 존재할 수 없는'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데아들이 분리되어 있다고 주장함에 있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들이 개별자들이라고, 그리고 그것들이 어떤 주어진 사례들에 대해서도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데아의 현존은 그것의 사례들의 현존조건이고, 그렇게 정의된 분리는 비대칭적 관계성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존재론적 우선성이다:

어떤 것들은 우선적이라고 불리고 후부적이라고 불리는데 본성과 실체의 측면에서 그러하다. 즉 다른 것들 없이 있을 수 있는 것들과, 반면에 그것들 없이는 있을 수 없는 그 외의 다른 것들 - 플라톤이 처음 사용했던 구별이다.

플라톤이 이데아들을 분리시켰다고 주장함으로써,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들이 수적으로 그것들의 예시들과 구분되고, 그것들의 예시들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그것들의 예시들에 존재론적으로 우선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τὸ εἶδος τὸ ἔνον에 대한 그 자신의 이론을 반대했다. 그 이론은 물질적 실체의 꼴은 그것이 꼴인 것의 꼴과 수적으로 구분되지도 독립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와 분리

1) 플라톤이 이데아들을 분리시켰다고 주장함에 있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물론 옳았다. 그러나 그는 소크라테스가 그것들을 분리시키지 않았다고 주장함으로써 무엇을 생각하였는가? 이것은 틀림없이 소크라테스가 그것들을 그것들의 예시들과 구별하지 않았다거나, 그가 그것들을 그것들의 예시들에 독립적이거나 우선하는 것으로 간주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역사적 소크라테스에 대해 이것이 참인지 아닌지는 여기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의 뜻대로 그 증거를 가지고, 그 문제는 결정할 수 있기가 어렵다. 그러나 역사적 소크라테스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식은 아마도 주로 초기 대화편들에서의 플라톤의 묘사로부터 도출되었고, 그러한 이유로 소크라테스가 이데아들을 분리시키지 않았다는 그의 주장은 종종 초기 대화편들에 대한 해석으로 다루어져 왔다. 만일, 그래서, 우리가 역사적 소크라테스를 초기 플라톤적 소크라테스와 동일시하는 것이 용인된다면, 그 물음은 초기 대화편들에 대한 이 해석이 정확한지 아닌지 하는 것이다.

3) 아리스토텔레스가 소크라테스가 이데아들을 분리시켰다는 것을 부정함에 있어서 소크라테스가 꼴들을 그것들의 예시들과 전혀 구별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할 훌륭한 이유가 있다. 『형이상학』에서 소크라테스의 정의들에 대한 탐색을 언급하고 나서, 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계속해서 '플라톤은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였지만, 그 문제는 감각적 사물들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실체들에 적용되었고 - 이런 이유로, 보편적 정의는 항상 변화하고 있을 그 어떤 감각적 사물에 대한 정의일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고 첨언한다. 이것은 소크라테스가 정의의 대상들을 감각적인 것들과 동일시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것은 그가 꼴들을 그것들의 예시들과 구별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4)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분명히 초기 대화편들에서 감각적인 것들을 정의하고 있지 않다: 도덕적 꼴들은 어떠한 감각적 예시들도 가지지 않는다는 사실로부터 완전히 별개로, 꼴들과 그것들의 예시들의 비동일성은 정의를 목표로 하는 모든 초기 대화편들 각각의 변증에 의해 전제되는데, 왜냐하면 정의는 우리가 보았듯 대상에 대한 설명이기 때문이고, 그 대상은 보편개념이기 때문이다. 비동일성은 또한 꼴들이 본질들이며 원인들, 그것들에 의해 사물들이 그것들인 바의 것들인 그 본질들과 원인들이라는 사실에 의해, 그리고 꼴들은 그 꼴들을 지니는 사물들과 지니지 않는 사물들이 무엇인지 결정하기 위한 기준들이라는 사실에 의해 시사된다. 비동일성이 암묵적 전제일 따름인 것만은 아니다: 『에우튀데모스』300e-301a에서, 그것은 하나의 사실로 진술된다. 디오뉘소도루스가 그 곳에서 소크라테스에게 아름다운 것들은 아름다움과 같은지 혹은 다른지 물을 때, 소크라테스는 비록 그것들에 어떤 아름다움이 현전한다 하더라도, 그것드은 아름다움 그 자체와 다르다고 답한다.

5) 아마도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크라테스가 꼴들을 그것들의 예시들로부터 구별했다는 것을 부정하고 있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이것을 허용하고 그것들의 구별이 수적이었다는 것을, 꼴들이 그것들의 고유한 지위에 있으리란 것을 부정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이었다는 아무런 문헌 증거도 없고, 그가 그것을 주장했으리라 추정하기도 어렵다. 그것은 소크라테스가 아리스토텔레스가 그 자신의 것이라 알았던 비동일화된 꼴의 관념: 꼴은 있는 것이지만 개별자도 아니고 수적으로 하나도 아닌 것이라는 관념에 소크라테스가 도달했었음을 시사한다. 물론 한 사물이 수에 있어서 하나일 수 있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역설이고,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은 그가 오로지 아카데메이아의 일원이었던 동안 일어난 술어와 관여의 문제, 특히, 생각하기로, 『파르메니데스』(131a-c)와 『필레보스』(15a-c)에서 플라톤에 의해 진술된 관여의 딜레마의 문제에 대해 오랜 숙고의 결론으로 그 역설을 받아들이도록 이끌렸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꼴들이 개별적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의심할 나위 없이 이것을 증명하는 문헌들이 나타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 사람이 일반적으로 그에게 한 번도 떠오른 적 없는 관념들의 결여에 대해 증명하지는 않으니까. 그러나 꼴들의 현존을 전제하는 초기 대화편들의 구절들은 또한 습관적으로 그것들의 수적 하나임을 전제한다; 다른 대화편들을 볼 것도 없이 『프로타고라스』를 보면, 올바름은 거기에서 어떤 것이고(πρᾶγμα τι, 330c; 330d, 352d를 참조하라), 탁월함은 하나인 것이며(ἓν τι, 329c), 만일 탁월함들이 서로 구별된다면, 각각은 그것 자체의 특유한 본성과 실재성을 가질 것이다(τις ἴδιος οὐσία, 349b). 초기 대화편들에서 꼴들의 현존에 대한 언급은 그것들의 개별성에 대한 언급을 필요로 한다.

6) 아리스토텔레스가 소크라테스가 이데아들을 분리시켰다는 것을 부정함에 있어서 소크라테스가 꼴들을 그것들의 예시들로부터 구별했다는 의미하진 않았지만, 그가 그것들을 그것들의 예시들에 독립적인 것으로나 우선하는 것으로 간주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을 것인지 아닌지 고려하는 것이 남는다. 다시 한 번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라는 아무런 문헌적 증거도 없다; 그의 현대 주석가들과 달리, 그는 소크라테스적 꼴이 그 예시들 안에 '내재적'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러한 말을 하는 게 아니라면, 그는, 적어도 초기 대화편들에 관한 한에서, 실수를 저지르게 되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꼴들과 그것들의 예시들의 비동일성은 거기에서 꼴들의 그것들의 예시들에 대한 우선성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인식론적으로, 꼴들에 대한 앎은 그 꼴들을 가진 어떤 것들에 대한 앎에 우선하고, 또한 우연히 그것들과 관계된 어떤 특성들에 대한 앎에 우선한다. 존재론적으로, 꼴들의 우선성은 그것들이 어떤 것들이 그것들인 바의 것들이도록 하는 본질들이고 원인들이라는 사실에 의해 시사된다; 그것들의 현존은 그것들의 예시들의 현존조건이다. 그 우선성은 현존적 독립성을 시사한다. 만일 아버지를 고발하는 에우튀프론의 행위가 경건하다면, 경건으로서 그 행위의 현존은 경건함의 꼴, 그에 의해 그 행위가 경건한 바로 그 꼴의 현존에 의존한다; 경건함의 그 꼴이 그것의 예시를 위해 아버지를 고소하는 에우튀프론의 행위가 경건하다는 것에 의존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저 기괴한 생각일 따름일 것이다.

7) 요약하자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크라테스가 이데아들을 분리시켰다는 것을 부정함에 있어서 아마도 소크라테스가 꼴들을 그것들의 감각적 예시들로부터 구별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일 터이다. 그가 소크라테스가 꼴들을 구별했지만 그것들을 개별자들로 구별하지는 않았다거나, 소크라테스가 꼴들을 구별했지만 그것들의 예시들에 독립적이고 우선하는 것으로 간주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 중 어느 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이든, 초기 대화편들에 적용된 그의 선언은 착오이다. 그가 제안하는 분리의 모든 기준들에 의해 - 비동일성, 개별성, 독립성과 우선성 - 꼴들은 후기 대화편들에서처럼 초기 대화편들에서 '분리된 것'으로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

1) 이 결론은 플라톤에 대한 주석가로서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에 대단한 신뢰를 두는데 익숙하게 되어 있는 그런 사람들 - 그들은 많기도 하고 - 에 의해 의문을 제기받을 것이다. 그래서, 예를 들어 Mr J. E. 레이븐은 『에우튀프론』6d-e가 두드러지게 꼴들의 이론에 대한 진술처럼 생각된다고 주장한 뒤, '이 물음에 대한 우리의 고대 증거의 모든 단편들 중 가장 중요하고 권위있는 것'에 기초하여 이러한 관념을 기각한다:

『형이상학』Μ, 1078b, 30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주 많은 말을 적는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그의 보편개념들을 분리될 수 있는 것으로도 간주하지 않고 그의 정의들도 그렇게 간주하지 않는 데에 반하여, 그들(즉 플라톤과 그의 추종자들)은 분리된 현존을 그것들에 귀착시켰고 이런 층위의 실재들에 이데아들이라는 이름을 부여하였다'. 내가 앞서 철학의 역사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두 가지 기여는 귀납적 추리와 보편적 정의였다는 취지로 인용했던 구절에 거의 즉각적으로 뒤따르는 이 구절은 더 앞선 문장과 마찬가지로 사실에 대한 단순한 진술이다. 그러므로 이 예시에서 우리가 타당하게 여러 다른 문맥들에서 주장할 수 있듯이 그의 후계자들의 관점들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비판이 그 자신의 원칙들에 대해 앞선 사상가들에게서 그가 발견할 수 있는 어떤 예견들을 봄에 대한 그의 공언된 반대에 의해 무효화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내가 말하는 것과 같이, 편견에 사로잡힌 비판이 아니라 사실에 대한 노골적인 진술을 가진다. 더욱이 그것은 다름 아닌 아리스토텔레스가 알 수 있는 모든 기회를 가졌다는 사실이다. 20여년이라는 최고조의 시기 동안 그는 아카데메이아에서 플라톤의 문하에 있었다. 그 시간 동안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의 관계가 논의되지 않았다거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런 간략하지만 중대한 문장들을 썼을 때 실수를 저질렀으리라고는 생각할 수조차 없다.

이것을 『에우튀프론』6d-e의 해석에 적용함에 있어서 Mr. 레이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역사적 소크라테스에 대한 설명이 또한 초기 대화편들의 소크라테스에 대해서도 지속된다고 전제한ㄷ; 그리고 만일 그러한 대화편들이 소크라테스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보에 있어서 주요 원천이었다면, 이것은 불합리하다. 아직 그로써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들이 참이라는 것은 뒤따르기 어렵고, 만일 그것들이 실수라면, 그것들이 실수라는 건 아마도 생각해 볼 만할 것이다.

2) 플라톤의 문하에 있었던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를 오해했을 수 없다는 논증은 무엇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 그것은 체르니스 교수에 의해 그 영향력이 유력하게 평가받아온 하나의 오래된 논증이다.

확실히 20여년 동안 플라톤의 학생이었으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를 오해했을 수 없다는 그 논증에는 아무런 타당성도 없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다른 물음들에 대해서 플라톤의 직계 제자들이 그의 의견들의 본성과 취지에 대해 의견이 갈렸고 그래서 우리는 한 직계 제자의 해석이 오로지 그 이유만으로 옳다고 주장하는 것을 멈추게 된다는 암시들을 가지기 때문이다.

크세노크라테스와, 그럴 듯이 보이듯, 헤르모도로스는 모두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들을 가지고 변화에 대한 관점들에 설명들을 제시했다. 놀랄 일도 아니다. 철학자들의 문하생들이 그들의 선생들에게 이해를 의지했으리라 주장하기 위해, 누군가는, 경험에 더 잘 기초된 주먹구구식과 같이, 그 문하생이 철학자로서 혼자 힘으로 더욱 독창적일 수록, 그에 대한 선생의 초기 영향력은 더욱 지배적이고, 결국 오해될 것이기 더욱 쉽다는 주장을 반대할 것이다: 새로운 상황들, 특히 어렵게 획득된 시점은 새롭고 가끔은 왜곡된 관점을 산출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할 필요도 없이 가장 독창적인 제자였다; 플라톤은 말할 것도 없이 그의 사유에 대한 지배적 영향력이었다.

3) 그래서 아마도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에 대해 그가 편향된 비판으로부터 구분되는 것으로서 '단순히 사실에 대한 진술'을 형성하고 있을 때 실수했다는 것만이 생각됨직한 것이다. 이 구분은 새로운 것도 아니고 그것의 반박도 그렇다:

반드시 [아리스토텔레스의] 보고들은 그의 해석들과 구별되는 것으로서 의심할 여지 없는 증언으로 간주되어야만 하는가? 그런 것은 A. E. 테일러와 그에 앞서,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우리에게 플라톤이 특정한 어떤 것을 말했다고 할 때에는 그를 믿어야만 하지만 플라톤이 의미했던 어떤 것이나 한 원칙의 역사적 기원이었던 어떤 것을 우리에게 말할 때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 존 버넷에 의해 채용된 타당한 구별이다. 이러한 말끔한 구별의 타당성은, 그렇지만 가장 좋은 의도들에도 불구하고 증인의 증언이 사실에 대한 것으로서 사실에 대한 그의 고유한 무의식적 해석에 깊이 영향받는다는 것을 가르쳐주는일반적인 경험에 의해 상당히 손상된다. 구별의 적용가능성은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에서 손상된다. 그는, 플라톤에 대한 설명을 의존했던 폰 슈타인공조차 그의 보고들과 그의 비판은 서로에 의해 편견을 가지게 된다고 주장했던 보고, 해석, 그리고 비판을 그렇게 뒤얽히게 만들었다. …더욱이, 다른 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가 해석한 그 철학자의 원칙의 필연적 함축이라고 간주한 것을 드물지 않게 철학자의 입에 집어 넣는다고, 그리고 그는 우리의 의도에 종사하는 플라톤적 대화편들의 단지 해석들만이 아니라 잘못된 보고들을 제시한다고 주장해 왔다.

무엇보다도, 소크라테스가 이데아들을 분리시키지 않았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이 '사실에 대한 단순한 진술'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슨 뜻인가?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의 다른 동료들로부터의 인용문이란 것인가? 이에 대한 아무런 증거도 없다. 그것이 초기 대화편들이나 아카데메이아적 전통에 대한 해석이 아니라는 것인가? 이러한 것들 중 어느 것에도 아무런 증거도 없다. 그리고 그런 증거를 찾는다는 것은 사실을 아직 뒷받침되어야 하는 해석으로부터 구별해내기 위한 근거를 요구할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사실에 대한 순전한 진술'이란 표현에 대해 할당될 의미가, 순전함에 대한 고려와 별개로, 단지 그 진술이 참이라는 것인 듯이 보일 것이다. 그것이 Mr. 레이븐이 확립시키고자 시도하고 있는 점이기 때문에, 그의 논증은 하나의 요청(라틴어 petitio)이다.

4) 아리스토텔레스는 의심할 것도 없이 플라톤의 문하생이었다. 그러나 그 다음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제공하는 플라톤에 대한 증언의 질을 고려해 보자. 이것은 아마도 『형이상학』(Ⅰ, ⅵ장)에서 플라톤의 원칙들에 대한 그의 첫번째 조사에 의해 견본의 목적들에 대해 묘사될 것이다.

5)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장에서 네 가지 구별되는 종류의 증거들을 제공한다: (1) 그는 플라톤이 변화하는 감각적 대상들을 그것들이 그 안에 참여하는 불변하는 꼴들로부터 '분리시켰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리고 플라톤의 다른 직계제자들의 증언만큼이나 대화편들이 그의 주장에 대한 충분한 증거를 제공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2) 그는 플라톤이 꼴들과 감각적인 것들 사이에 수학의 대상들인 '중간자들'의 계층을 상정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리고 만일 이것이 대화편들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최소한 그것을 주장하는 것으로 그렇게 해석되었던 산재된 구절들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3) 그는 '하나'와 '큼과 작음' 또는 '둘'로부터 파생된 이데아적 수들의 현존에 대해 증명하고 이것이 대화편들에 의해 직접적으로 긍정되거나 부정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4) 마지막으로, 그는 플라톤이 설명에 있어서 형상인과 질료인만을 사용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함축적으로 그의 사유에서 운동인과 목적인이 어떤 역할을 가진다는 것을 부정한다. 즉, 아리스토텔레스는 『파이드로스』와 『법률』에서 영혼을 자기운동으로 정의했고, 그것이 우주의 모든 다른 움직임의 원천일 것이라 주장했던 그 사람은 그의 철학 안에서 운동인을 위한 어떠한 자리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는 『파이돈』에서 감각적 대상들이 꼴들과 닮고자 애쓴다고 말했던, 그리고 『정체』에서 좋음을 현존과 가지성의 제 1 원리로 정의했던, 그리고 『티마이오스』에서 세계는 이성적 설계자의 작품이라고 단언했던 그 사람은 그의 철학에서 목적인을 위한 그 어떤 자리도 가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증언은 기본적인 결함을 겪는다: 그것은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6) 믿을 수 없을 만치 먹음직스러운 것을 만드는 방법들이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플라톤의 그 글을 버릴 것이다. 아마도 '대중적인' 플라톤은 많든 적든 그의 참된 견해들인 듯이 호도하는 대화편들을 다중(틀림없이 『파르메니데스』를 즐겼던)을 위해 펴냈을 것이고, 반면에 '비전적인' 플라톤은 그의 더 내밀하고 진전된 이론들, '기록되지 않은 원리들'을 아카데메이아의 그의 제자들을 위해 따로 마련해 두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에 기대서 비전적 플라톤은 『티마이오스』에서 성스런 장인을 선언하는데, 왜냐하면 비전적 소크라테스는 그것이 그 무리들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7) 이러한 접근은 최소한 한 가지 훌륭한 장점을 가진다: 일관되게 적용된다면, 플라톤 문헌에 대한 어떠한 호소도 그것을 반박할 수 없다. 이 사실의 잇점을 알아차린 그런 사람들은, 플라톤의 대화편들이 세계를 움직인 사유의 요체를 담고 있지만, 아리스토테레스의 증언으로부터 그의 믿음들의 재현은, 철학적으로 능란한 손들에 의해 떠맡아질 때조차, 일반적으로 어떤 횡설수설한 모습을 가진다는 더 나아간 사실에 의해 단념시켜질 것 같지 않다. 그렇지만 물론 아리스토텔레스의 증언이 극단적으로 부정확하다고, 프라톤 사유의 가장 근본적인 측면들에 대해서 부정확하다고 전제하는 것은 선호할만 하다. 그의 증언이 독립적 통제에 대항해 측정될 수 없을 때, 그것은 플라톤의 관점들에 대해 불충분한 근거이다.

8) 이로부터 만일 플라톤이 '기록되지 않은 원칙들'을 아카데메이아에서 선언했다면, 우리는 지금 아리스토텔레스의 증언에 기초해 그러한 원칙들이 무엇이었는지 결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 뒤따를 것이다. 이것은 물론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에 대해 대화편들로부터 입증될 수 없다고 말한 모든 것이 순수한 오해이거나 와전'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에 대해 대화편들로부터 입증될 수 없다고 말한 모든 것이 순수한 오해나 와전이 아닐 것이라 알려질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문제는 근거가 있다.

9)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고의적으로 또는 의식적으로 플라톤을 와전시켰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관점은 터무니없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자로서, 헤겔과 같이, 앞선 철학자들의 작업을 변증적으로, 그의 고유한 관점들의 바런을 위한 디딤돌들로 사용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헤겔처럼, 그는 그의 선구자들의 작업을 단지 그가 이제 단언함을 통해서 획득해 냈던 진리에 대한 예측으로만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모든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정당하고 적절하다. 철학자들은 언제나 그들의 주제에 속한 역사를 그 주제의 발전을 위한 매개물로 사용해 왔고, 그들의 선구자들을 그들의 논증에 대한 당파로 만들어 왔다. 이러한 전략이 가치있는 철학을 산출해 낼 때 - 그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 확실히 그러하였듯이 - 그 전락은 추구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은 거의 불가피하게 역사적으로 건전하지 못한, 가끔 말도 안 되는 해석들로 이끄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사유의 더 앞선 기획들이 생경한 물음들과 전제들의 배경에 맞서 보여지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째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증언이 그렇게 자주 그것이 지니는 그러한 특성을 지니는지의 이유이다; 그것이 다른 식이었더라면 그가 독창적인 철학자는 아니었을 것이라 추정할지도 모른다.

10) 어째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증언이 플라톤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그렇게나 자주 과도한 무게를 부여받아 왔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다. 하나는 다방면에서 고전적 전통의 내구력이다. 플라톤에 대한 신플라톤주의 해석을 허용하는 사람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증언으로 그들의 관점들에 대한 증거로 가치있게 여길 것인데, 왜냐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눈을 통해 읽힌 플라톤은 그 안에 플로티누스에 속한 많은 것을 지니기 때문이다. 신플라톤주의 해석은 일반적으로 영어권 학자들 사이에서 널리 지지받지 않았다. 그들은 그 해석의 암시된 신비주의를 불신했다. 그것은 아직까지도 학문적 전통의 가장 오래된 부분인 주장이다. 중세와 르네상스 동안, 그것이 '플라톤주의'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이었고, 부분적으로는, 의심할 것도 없이 헤겔과 독일 낭만주의의 유입으로 인하여, 그것은 유럽 학문의 상당부분에 있어서 주된 주제로 남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증언에 대한 그것의 취급은 그 자체를 수 세대에 걸쳐 확립시켰고, 외관상으로는, 그것 자체의 독립적 생명력을 전개시켰다.

11) 두번째 이유는 특권화된 접근방식의 원칙이다: 플라톤이 아카데메이아에서 강의하였다는 것,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에게서 들었다는 것,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증언은 그가 들었던 것에 대해, 그것의 모든 결점들과 더불어, 우리가 가진 전부라는 것이 전제된다. 이것이 의존하는 증거는 아리스토크세노스의 단 하나의 구절이다. 그 구절은 플라톤의 좋음에 대한 강의를 들으러 왔던 청중을 묘사한다:

그들 모두는 세상이 좋음이라 부르는 것들 부와 건강 또는 힘의 일부 또는 다른 것을 그 강의로부터 얻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왔다; - 결국, 일부 비범한 운명의 선물. 그러나 그들이 플라톤의 추론이 수학이었음을 알아차렸을 때 - 수들, 기하학, 천문학 - 그리고 결국에는 하나의 좋음이 있다는 결과에 대해 그들의 환멸이 완전했다고 생각된다. 그 결과는 다른 이들이 그것을 비방하는 동안 그것을 조소하였던 것이다.

그 강의는 공적으로 언급되었다: 아카데메이아의 구성원들은 그들이 얻을 것에 대해 준비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인기이는 반응이 주어졌다면, 그것은 만일 플라톤이 그것들 중 다수를 제공했을지라도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반어적인 것이 있다. 그들의 건강을 증진시키고 그들의 근육들을 강하게 하며 빨리 부를 이루기 위해 온 청중에게 수학과 형이상학에 대해 강연하는 플라톤의 모습에서, 그 고유한 재미를 지니는 그런 반어법 말이다.

12) 종종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데아 수들의 이론에 대한 플라톤의 지식을 획득했다고 주장되어 오곤 하였다. 그러나 플라톤은 물론 만일 그가 그러한 사유들을 후기 대화편들에 밝히지 않았다면 형이상학에 대한 그의 가장 심오한 사유들을 수학과 변증에 훈련되어 있지 않았던 대중적 청중들에게 밝히지 않았을 것이다 - 대화편들은 일반 일반적인 출판물로서는 지나치게 전문적이고 어렵게, 그 자신의 아카데메이아 구성원들을 고려하여 쓰였다. 이 강연으로 소급하는 '기록되지 않은 원칙들'은 어떤 상식적인 인간이 무지한 대중에게 알릴 종류의 것이 아니다 - 만일 그들이 한 상식적인 사람이 좌우간 그들에게 퍼뜨릴 수 있을 그러한 종류의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것은 플라톤이 궁극적인 형이상학적 관점들을 강연들을 통해 설명했다는 그 어떠한 증거도 전혀 없다고 말하는 것인데, 왜냐하면 아리스토크세노스는 오로지 우리가 지니는 강연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만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13) 그러나 플라톤의 사유에 대한 제일의 목격자로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사용함에 있어서 또 다른 더욱 파급력 있는 작업요소가 있다. 이것은 외관상 근절할 수 없는 심리주의이다. 그것은 철학의 역사에 대한 연구를 전염시킨다. 플라톤의 그 제자는 플라톤의 사유들에 대한 발견을 그의 반대로서 지닌다 - 즉, 그의 품어진 신념들이다. 그러나 플라톤이 썼던 것과 독립적인 증거의 또 다른 원천이 있다 - 즉 아리스토텔레스의 증언이다. 플라톤이 기록하였던 것이 이따금 그가 믿었다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것과 부딪치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 분란을 판단하는 것은 역사가의 작업이다. 이러한 부분적으로 모순되는 증거의 두 분류들에 무게를 두는 것은 균형을 깨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실, 즉 플라톤이 실제로 믿었던 어떤 것을 표현하는 그 균형. 우리는 그래서, 그것의 재건이 많은 즐거움과 재미를 제공할 그런 비전적 원리들을 믿는 우리의 길에 이어서 진척되어 있다.

14) 그러나 무엇보다도 처리의 또 다른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가능하다. 플라톤의 문헌을 어떤 다른 것에 대한 증거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역사적 이해의 제 1 대상으로서 다루는 것이 가능하다. 탐구의 목적은 그래서 일련의 문헌자료들을 해석하는 것이고, 그것들의 권위에 대해 간직된 신념들을 헤아리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 문헌들이 그러한 신념들에 대한 의존할 만한 색인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관련이 우연적이고, 해석이 관련된 한에서 중요치 않다. 만일 플라톤이 속으로는 유명론자, 무신론자, 불멸에 대한 회의주의자, 그리고 쾌락주의자였다면, 또 이제는 알려지지 않은 어떤 알 수 없는 동기로 썼던 대화편들을 아직 쓰고 있던 중이었다면, 이것은 그가 썼고 개인적으로 아주 조금도 믿지 않았던 어떤 것에 대한 적절한 해석으로 바뀔 것이다: 한 사람이 그가 믿지 않는 것을 말할 때, 우리는 여전히 완전하게 그가 말한 그러한 것을 잘 이해할 것이다. 그래서 플라톤이 그가 표현하지 않았던 신념들, 또는 그가 표현한 것에 반대되는 신념들을 가지고 있었는지 아닌지에 대한 물음은 예언의 예술에 속하는 기술을 가진 이들에게 남겨질 것이다; 그 역사가는 더욱 합리적으로 자기 자신을 문헌과 그것의 의미에 대한 해석연구로 제한할 것이다. 만일 탐구가 이런 식으로 해석된다면, 그것은플라톤에 대한 해석의 문제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증언을 플라톤 문헌의 증거보다 선호하는 자기-언급적 모순이다.

-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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