Αllein die figürliche Synthesis, wenn sie bloß auf die ursprünglich-synthetische Einheit der Apperzeption, d.i. diese transzendentale Einheit geht, welche in den Kategorien gedacht wird, muß, zum Unterschiede von der bloß intellektuellen Verbindung, die transzendentale Synthesis der Einbildungskraft heißen. Einbildungskraft ist das Vermögen, einen Gegenstand auch ohne dessen Gegenwart in der Anschauung vorzustellen. Da nun alle unsere Anschauung sinnlich ist, so gehört die Einbildungskraft, der subjektiven Bedingung wegen, unter der sie allein den Verstandesbegriffen eine korrespondierende Anschauung geben kann, zur Sinnlichkeit; so fern aber doch ihre Synthesis eine Ausübung der Spontaneität ist, welche bestimmend, und nicht, wie der Sinn, bloß bestimmbar ist, mithin a priori den Sinn seiner Form nach der Einheit der Apperzeption gemäß bestimmen kann, so ist die Einbildungskraft so fern ein Vermögen, die Sinnlichkeit a priori zu bestimmen, und ihre Synthesis der Anschauungen, den Kategorien gemäß, muß die transzendentale Synthesis der Einbildungskraft sein, welches eine Wirkung des Verstandes auf die Sinnlichkeit und die erste Anwendung desselben (zugleich der Grund aller übrigen) auf Gegenstände der uns möglichen Anschauung ist. Sie ist, als figürlich, von der intellektuellen Synthesis ohne alle Einbildungskraft bloß durch den Verstand unterschieden. So fern die Einbildungskraft nun Spontaneität ist, nenne ich sie auch bisweilen die produktive Einbildungskraft, und unterscheide sie dadurch von der reproduktiven, deren Synthesis lediglich empirischen Gesetzen, nämlich denen der Assoziation, unterworfen ist, und welche daher zur Erklärung der Möglichkeit der Erkenntnis a priori nichts beiträgt, und um deswillen nicht in die Transzendentalphilosophie, sondern in die Psychologie gehört.
→ 오로지 구상적 종합이 순전히 통각의 근원적-종합적 통일, 즉 범주들 안에서 사유되는 그러한 초월적 통일을 얻을 때에만, 반드시 순전한 지성적 결합과 구분하여 상상력의 초월적 종합이라 이름하여야만 한다.→상상력은 또한 대상을 그 대상의 현전함이 없이 직관 안에서 표상하는 능력이다.→ 이제 우리의 직관은 감각적이기 때문에, 그래서 상상력은, 그 아래에서만이 상상력이 지성개념들에게 상응하는 직관을 제시할 수 있는 주관적 조건과 관련하여, 감성에 속한다; 그러나 상상력의 종합이 규정하는, 그리고 감관이 그러하듯 순전히 규정가능한 것이 아닌, 따라서 선험적 감관을 그 감관의 형식에 있어서 통각의 통일에 따라 확실하게 규정할 수 있는 자발성의 행사인 한에서, 그래서 상상력은 감성을 선험적으로 규정하는 하나의 능력인 한에서, 그리고 직관들에 대한 범주들에 적합한 그 감성의 종합은 상상력의 초월적 종합, 감성에 대한 지성의 작용과 지성의 우리의 가능한 직관의 대상들에 대한 최초의 적용 (동시에 여타 모든 적용들의 근거) 임에 틀림없다.→ 구상적인 것으로서의 종합은 모든 상상력과 무관하게 순전히 지성을 통하는 지성적 종합과 구분된다.→ 이제 상상력이 자발성인 한에서, 나는 그 상상력을 또한 때때로 생산적 상상력이라 명명하고, 그를 통하여 그 생산적 상상력을 단적으로 경험적 원칙들, 말하자면 연합의 원칙을 따르는, 따라서 선험적 인식의 가능성에 대한 해명에 대해 아무것도 기여하지 않는, 그 때문에 초월론적 철학이 아니라, 심리학에 속하는 재생적인 종합과 구분한다.


Αllein die figürliche Synthesis, wenn sie bloß auf die ursprünglich-synthetische Einheit der Apperzeption, d.i. diese transzendentale Einheit geht, welche in den Kategorien gedacht wird, muß, zum Unterschiede von der bloß intellektuellen Verbindung, die transzendentale Synthesis der Einbildungskraft heißen.
오로지 구상적 종합만이, 그 종합이 순전히 통각의 근원적-종합적 통일, 즉 초월적 통일을 얻을 때, 범주들 안에서 사유되는 그러한 통일을, 반드시, 순전한 지성적 결합과 구분하여, 상상력의 초월적 종합이라 이름하여야만 한다.
→ 오로지 구상적 종합이 순전히 통각의 근원적-종합적 통일, 즉 범주들 안에서 사유되는 그러한 초월적 통일을 얻을 때에만, 반드시 순전한 지성적 결합과 구분하여 상상력의 초월적 종합이라 이름하여야만 한다.
Einbildungskraft ist das Vermögen, einen Gegenstand auch ohne dessen Gegenwart in der Anschauung vorzustellen.
상상력은 능력이다, 또한 대상을 그 대상의 현전함이 없이 직관 안에서 표상하는.
→상상력은 또한 대상을 그 대상의 현전함이 없이 직관 안에서 표상하는 능력이다.
Da nun alle unsere Anschauung sinnlich ist, so gehört die Einbildungskraft, der subjektiven Bedingung wegen, unter der sie allein den Verstandesbegriffen eine korrespondierende Anschauung geben kann, zur Sinnlichkeit; so fern aber doch ihre Synthesis eine Ausübung der Spontaneität ist, welche bestimmend, und nicht, wie der Sinn, bloß bestimmbar ist, mithin a priori den Sinn seiner Form nach der Einheit der Apperzeption gemäß bestimmen kann, so ist die Einbildungskraft so fern ein Vermögen, die Sinnlichkeit a priori zu bestimmen, und ihre Synthesis der Anschauungen, den Kategorien gemäß, muß die transzendentale Synthesis der Einbildungskraft sein, welches eine Wirkung des Verstandes auf die Sinnlichkeit und die erste Anwendung desselben (zugleich der Grund aller übrigen) auf Gegenstände der uns möglichen Anschauung ist.
이제 우리의 직관은 감각적이기 때문에, 그래서 상상력은 속한다, 주관적 조건과 관련하여, 그 조건 아래에서만이 상상력이 지성개념들에게 상응하는 직관을 제시할 수 있는, 감성에; 그러나 직관의 종합이 자발성의 행사인 한에서, 그 자발성이 규정하는, 그리고 감관이 그러하듯, 순전히 규정가능한 것이 아닌, 따라서 선험적 감관을 그것의 형식이 통각의 통일에 따라 확실하게 규정할 수 있는, 그래서 상상력은 하나의 능력인 한에서, 감성을 선험적으로 규정하는, 그리고 직관들에 대한 그 감성의 종합, 범주들에 적합하게, 상상력의 초월적 종합이어야만 한다, 감성에 대한 지성의 작용과 지성의 우리의 가능한 직관의 대상들에 대한 최초의 적용 (동시에 여타 모든 적용들의 근거) 이다.
→ 이제 우리의 직관은 감각적이기 때문에, 그래서 상상력은, 그 아래에서만이 상상력이 지성개념들에게 상응하는 직관을 제시할 수 있는 주관적 조건과 관련하여, 감성에 속한다; 그러나 상상력의 종합이 규정하는, 그리고 감관이 그러하듯 순전히 규정가능한 것이 아닌, 따라서 선험적 감관을 그 감관의 형식에 있어서 통각의 통일에 따라 확실하게 규정할 수 있는 자발성의 행사인 한에서, 그래서 상상력은 감성을 선험적으로 규정하는 하나의 능력인 한에서, 그리고 직관들에 대한 범주들에 적합한 그 감성의 종합은 상상력의 초월적 종합, 감성에 대한 지성의 작용과 지성의 우리의 가능한 직관의 대상들에 대한 최초의 적용 (동시에 여타 모든 적용들의 근거) 임에 틀림없다.
Sie ist, als figürlich, von der intellektuellen Synthesis ohne alle Einbildungskraft bloß durch den Verstand unterschieden.
종합은, 구상적인 것으로서, 지성적 종합과 모든 상상력 없이 순전히 지성을 통하여 구분된다.
→ 구상적인 것으로서의 종합은 모든 상상력과 무관하게 순전히 지성을 통하는 지성적 종합과 구분된다.
So fern die Einbildungskraft nun Spontaneität ist, nenne ich sie auch bisweilen die produktive Einbildungskraft, und unterscheide sie dadurch von der reproduktiven, deren Synthesis lediglich empirischen Gesetzen, nämlich denen der Assoziation, unterworfen ist, und welche daher zur Erklärung der Möglichkeit der Erkenntnis a priori nichts beiträgt, und um deswillen nicht in die Transzendentalphilosophie, sondern in die Psychologie gehört.
이제 상상력이 자발성인 한에서, 나는 그 상상력을 또한 때때로 생산적 상상력이라 명명하고, 그 생산적 상상력을 그를 통하여 재생적인 것과 구분한다, 그 재생적 상상력의 종합이 전혀 경험적 원칙들, 말하자면 그것들의 연합을, 따르는, 따라서 선험적 인식의 가능성에 대한 해명에 대해 아무것도 기여하지 않는, 그 때문에 초월론적 철학이 아니라, 심리학에 속하는.
→ 이제 상상력이 자발성인 한에서, 나는 그 상상력을 또한 때때로 생산적 상상력이라 명명하고, 그를 통하여 그 생산적 상상력을 단적으로 경험적 원칙들, 말하자면 연합의 원칙을 따르는, 따라서 선험적 인식의 가능성에 대한 해명에 대해 아무것도 기여하지 않는, 그 때문에 초월론적 철학이 아니라, 심리학에 속하는 재생적인 종합과 구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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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Von der Anwendung der Kategorien auf Gegenstände der SInne überhaupt
감관 일반의 대상들에 대한 범주들의 적용에 대하여

Die reinen Verstandesbegriffe beziehen sich durch den bloßen Verstand auf Gegenstände der Anschauung überhaupt, unbestimmt ob sie die unsrige oder irgend eine andere, doch sinnliche sei, sind aber eben darum bloße Gedankenformen, wodurch noch kein bestimmter Gegenstand erkannt wird. Die Synthesis oder Verbindung des Mannigfaltigen in denselben, bezog sich bloß auf die Einheit der Apperzeption, und war dadurch der Grund der Möglichkeit der Erkenntnis a priori, so fern sie auf dem Verstande beruht, und mithin nicht allein transzendental, sondern auch bloß rein intellektual. Weil in uns aber eine gewisse Form der sinnlichen Anschauung a priori zum Grunde liegt, welche auf der Rezeptivität der Vorstellungsfähigkeit (Sinnlichkeit) beruht, so kann der Verstand, als Spontaneität, den inneren Sinn durch das Mannigfaltige gegebener Vorstellungen der synthetischen Einheit der Apperzeption gemäß bestimmen, und so synthetische Einheit der Apperzeption des Mannigfaltigen der sinnlichen Anschauung a priori denken, als die Bedingung, unter welcher alle Gegenstände unserer (der menschlichen) Anschauung notwendiger Weise stehen müssen, dadurch denn die Kategorien, als bloße Gedankenformen, objektive Realität, d.i. Anwendung auf Gegenstände, die uns in der Anschauung gegeben werden können, aber nur als Erscheinungen bekommen; denn nur von diesen sind wir der Anschauung a priori fähig.
→ 순수한 지성개념들은 순전히 지성만을 통해서 우리의 대상들인지 어떻든 또 다른 어떤 것들인지는 규정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각적일 직관 일반의 대상들에 관계하고, 그러나 마찬가지로 그러므로 그를 통하여 어떠한 규정된 대상도 인식되지 않는 순전한 사유형식들이다.→ 그 사유형식들 안에서 잡다의 종합이나 결합은 순전히 통각의 통일에 해당하고, 선험적 인식이 지성에 근거하는 한 그를 통하여 선험적 인식의 가능성에 대한 토대이며 따라서 초월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또한 순전히 순수하게 지성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안에서 표상능력(감성)의 수용성에 근거하는 감각적 직관의 확실한 형식은 선험적으로 기초되기 때문에, 그래서 지성은 자발성으로서 주어진 표상들의 잡다를 통하여 통각의 종합적 통일에 적합하게 내감을 규정할 수 있고, 그래서 감각적 직관의 잡다들에 대한 통각의 종합적 통일을, 그 아래에서 우리의(인간적인) 직관에 속하는 모든 대상들이 필연적인 방식으로 존립해야만 하는 조건으로서 선험적으로 사유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를 통하여 순전한 사유형식들로서 범주들이 객관적 실재성을, 즉 우리에게 직관에서 주어질 수 있는 대상들에 대한 적용을, 그러나 단지 현상들로서만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현상들에 대해서만 우리는 선험적 직관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Diese Synthesis des Mannigfaltigen der sinnlichen Anschauung, die a priori möglich und notwendig ist, kann figürlich (synthesis speciosa) genannt werden, zum Unterschiede von derjenigen, welche in Ansehung des Mannigfaltigen einer Anschauung überhaupt in der bloßen Kategorie gedacht würde, und Verstandesverbindung (synthesis intellectualis) heißt; beide sind transzendental, nicht bloß weil sie selbst a priori vorgehen, sondern auch die Möglichkeit anderer Erkenntnis a priori gründen.
→ 이와 같은 감각적 직관의 잡다에 대한 선험적으로 가능하고 필연적인 종합은 구상적(형상들의 종합)이라 불릴 수 있다. 이와 구별하여, 순전한 범주들 안에서 직관 일반의 잡다와 관련하는 것으로 생각될 것은 지성결합 (지성적인 것들의 종합)이라 불린다. 양자 모두 초월적인데, 왜냐하면 그것들 자체가 순전히 선험적으로 선행할 뿐만 아니라, 다른 선험적 인식의 가능성에 근거도 되기 때문이다.


Die reinen Verstandesbegriffe beziehen sich durch den bloßen Verstand auf Gegenstände der Anschauung überhaupt, unbestimmt ob sie die unsrige oder irgend eine andere, doch sinnliche sei, sind aber eben darum bloße Gedankenformen, wodurch noch kein bestimmter Gegenstand erkannt wird.
순수한 지성개념들은 순전히 지성만을 통해서 직관 일반의 대상들에 관계하고, 그 대상들이 우리의 대상들인지 어떻든 또 다른 어떤 것들인지는 규정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각적일, 그러나 마찬가지로 그러므로 순전한 사유형식들이다, 그를 통하여 어떠한 규정된 대상도 인식되지 않는.
→ 순수한 지성개념들은 순전히 지성만을 통해서 우리의 대상들인지 어떻든 또 다른 어떤 것들인지는 규정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각적일 직관 일반의 대상들에 관계하고, 그러나 마찬가지로 그러므로 그를 통하여 어떠한 규정된 대상도 인식되지 않는 순전한 사유형식들이다.
Die Synthesis oder Verbindung des Mannigfaltigen in denselben, bezog sich bloß auf die Einheit der Apperzeption, und war dadurch der Grund der Möglichkeit der Erkenntnis a priori, so fern sie auf dem Verstande beruht, und mithin nicht allein transzendental, sondern auch bloß rein intellektual.
그 사유형식들 안에서 잡다의 종합이나 결합은, 순전히 통각의 통일에 해당하고, 그를 통하여 선험적 인식의 가능성에 대한 토대이다, 그 종합이나 결합이 지성에 근거하는 한, 그리고 따라서 초월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또한 순전히 순수하게 지성적이기도 하다.
→ 그 사유형식들 안에서 잡다의 종합이나 결합은 순전히 통각의 통일에 해당하고, 선험적 인식이 지성에 근거하는 한 그를 통하여 선험적 인식의 가능성에 대한 토대이며 따라서 초월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또한 순전히 순수하게 지성적이기도 하다.
Weil in uns aber eine gewisse Form der sinnlichen Anschauung a priori zum Grunde liegt, welche auf der Rezeptivität der Vorstellungsfähigkeit (Sinnlichkeit) beruht, so kann der Verstand, als Spontaneität, den inneren Sinn durch das Mannigfaltige gegebener Vorstellungen der synthetischen Einheit der Apperzeption gemäß bestimmen, und so synthetische Einheit der Apperzeption des Mannigfaltigen der sinnlichen Anschauung a priori denken, als die Bedingung, unter welcher alle Gegenstände unserer (der menschlichen) Anschauung notwendiger Weise stehen müssen, dadurch denn die Kategorien, als bloße Gedankenformen, objektive Realität, d.i. Anwendung auf Gegenstände, die uns in der Anschauung gegeben werden können, aber nur als Erscheinungen bekommen; denn nur von diesen sind wir der Anschauung a priori fähig.
그러나 우리 안에서 감각적 직관의 확실한 형식은 선험적으로 기초되기 때문에, 그 형식이 표상능력(감성)의 수용성에 근거하는, 그래서 지성은 자발성으로서 내감을 주어진 표상들의 잡다를 통하여 통각의 종합적 통일에 적합하게 규정할 수 있고, 그래서 감각적 직관의 잡다들에 대한 통각의 종합적 통일을 선험적으로 사유할 수 있다, 조건으로서, 그 아래에서 우리의(인간적인) 직관에 속하는 모든 대상들이 필연적인 방식으로 존립해야만 하는, 왜냐하면 그를 통하여 범주들이, 순전한 사유형식들로서, 객관적 실재성을, 즉 대상들에 대한 적용을, 그 대상들이 우리에게 직관에서 주어질 수 있는, 그러나 단지 현상들로서만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현상들에 대해서만 우리는 선험적 직관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 그러나 우리 안에서 표상능력(감성)의 수용성에 근거하는 감각적 직관의 확실한 형식은 선험적으로 기초되기 때문에, 그래서 지성은 자발성으로서 주어진 표상들의 잡다를 통하여 통각의 종합적 통일에 적합하게 내감을 규정할 수 있고, 그래서 감각적 직관의 잡다들에 대한 통각의 종합적 통일을, 그 아래에서 우리의(인간적인) 직관에 속하는 모든 대상들이 필연적인 방식으로 존립해야만 하는 조건으로서 선험적으로 사유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를 통하여 순전한 사유형식들로서 범주들이 객관적 실재성을, 즉 우리에게 직관에서 주어질 수 있는 대상들에 대한 적용을, 그러나 단지 현상들로서만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현상들에 대해서만 우리는 선험적 직관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Diese Synthesis des Mannigfaltigen der sinnlichen Anschauung, die a priori möglich und notwendig ist, kann figürlich (synthesis speciosa) genannt werden, zum Unterschiede von derjenigen, welche in Ansehung des Mannigfaltigen einer Anschauung überhaupt in der bloßen Kategorie gedacht würde, und Verstandesverbindung (synthesis intellectualis) heißt; beide sind transzendental, nicht bloß weil sie selbst a priori vorgehen, sondern auch die Möglichkeit anderer Erkenntnis a priori gründen.
이와 같은 감각적 직관의 잡다에 대한 종합, 선험적으로 가능하고 필연적인 종합은, 구상적(형상들의 종합)이라 불릴 수 있다, 이와 구별하여, 순전한 범주들 안에서 직관 일반의 잡다와 관련한 것으로 생각될 것, 지성결합 (지성적인 것들의 종합)이라 불린다. 양자 모두 초월적이다, 왜냐하면 그것들 스스로 선험적으로 선행만 하지 않고, 또한 다른 선험적 인식의 가능성에 근거가 된다.
→ 이와 같은 감각적 직관의 잡다에 대한 선험적으로 가능하고 필연적인 종합은 구상적(형상들의 종합)이라 불릴 수 있다. 이와 구별하여, 순전한 범주들 안에서 직관 일반의 잡다와 관련하는 것으로 생각될 것은 지성결합 (지성적인 것들의 종합)이라 불린다. 양자 모두 초월적인데, 왜냐하면 그것들 자체가 순전히 선험적으로 선행할 뿐만 아니라, 다른 선험적 인식의 가능성에 근거도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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