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생각하는, 혹은 기대하는 학문이란 그저 진리 추구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내가 믿는 진리란 사실이다. 문제도 해결책도 그 한계 내에서 그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고 다루어지는 모두에게 강제된 무언가이다. 그래서 나는 합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같은 문제를 두고 서기 위해, 싸우든 손을 맞잡든 온전히 있는 그대로의 과정을 거칠 수 있기 위해 '세계'가 자의적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걷기 위해서는 두 발로 굳은 땅을 딛고 서야한다. 땅을 다지고 디딜 자리를 만드는 것, 그것이 아마도 내가 생각하는 학문의 모습일 것이다. 아마도 지금보다 사람들의 앎이란 것이 좁고 얕았던 시절에는 확인해야 할 것도 적었을 것이고 그래서 수월하게 신념을 갖고 행동에 나설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싶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더 넓고 더욱 견고한 앎의 영토를 얻었기에, 그들 중 한 사람에 불과한 각 개인은 확인해야 할 것이 더 많아진 것 아닌가 한다. 학문의 성과가 축적되어 왔고 교육의 질이 높아졌으니 물론 저마다 이전보다 자유롭게 그리고 더 큰 영향력을 가진 실천을 감행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것을 알 때까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모두가 알 때까지, 학문은 그저 앎을 추구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학문과 달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니, 각자 얼만큼의 확실성을 견지하고 언제부터 걸음을 내딛을 것인지는 그야말로 각자의 선택일는지도 모르겠고. 결국 거창하게 허황된 나와 현실적으로 비루한 나 사이의 싸움이다. 한편에서는 학문의 이상과 현실의 저열함을 꽥꽥거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 시궁창 같은 현실을 핑계로 이상의 비현실성을 조소하고 또 자조하면서, 어쨌든 실상은 후자에 가깝겠지만.

2. 몇 시간 뒤면 지도교수님께 과제 검사 받으러 가야 한다. 전 지도교수님께서 부과하신 과제는 기한도 넘기고 어물쩍 잊고 지내다 그저께 뵙고 또 혼이 났다. 게으르고 못난 주제에 욕심은 많아서, 그저 대화편 요약 정리만 하면 될 일을 혼자 이 얘기 저 얘기 껴 붙이다 제풀에 지쳐 죽도 밥도 안 되게 일을 망치고, 나름 괜찮다 싶었던 논문 주제는 걷어 차이고 깎이고 조각이 났는데도 그 쪼가리마저 감당을 못해 주위 사람들에게 의구심만 심어주고 있다. 제대로 읽을 줄은 아는 건지, 아마도 사람들은 나에 대해 그것이 의심스러운 모양이다. 그렇게 의심을 받다보니 스스로 생각해도 고개가 갸웃거려지기도 하고. 이러니 저러니 궁시렁거리고 징징거려도 결국 또 기고 구르며 버티겠다는 결론밖에 없지만, 어쩌면 끝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뭐 가 봐야 알겠지. Oxford 홈페이지 교수 소개란에 내게 필요한 최신 논문들 몇 편이 내려받을 수 있게 열려 있어서 기분이 좋다. 그냥 그러고 산다.

3. 나는 내가 나 자신을 현실적이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자괴감에 빠져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지나치게 이상적이라서 도무지 가당치 않은 기대를 스스로 품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늘상 갖고는 있다. 잘 모르겠다. 내게 장점이 있다면 아마도 현실에서 결과로 나올 것이니 그걸 결론이 나기 전에 미리 자부할 필요가 있을까? 반대로 뭔가 결과를 보기 전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단점과 한계를 직면하고 그걸 어떻게든 붙들고 씨름하는 것 아닌가 싶다. 선생님들 말씀대로 자괴는 부정적일 따름일지도 모르겠으나, 원동력은 되지 못할지라도, 그게 일종의 부담이나 강제일 수는 있지 않나 싶기도 하고. 게으르고 비겁해서 혼자서라도 내 등을 떠밀고 윽박을 질러야 한다는 그런 절박함이랄까? 그럼 또 말씀대로 내 할 일이나 알아서 나 혼자 잘 하면 그만인데 왜 그리 주변을 치받으며 짜증을 부리고 화를 내고 욕지기를 내뱉는 건지. 사실은 분하고 억울해서 그렇다. 그야 잘못은 나에게 있다. 내가 제멋대로 어울리지도 않게 기준만 높게 잡아 놓고, 그 기준에 내가 못 미쳐 옴짝달싹 못하는 와중에 열등감이 폭발해서, 잘난 자들이 잘난 값을 하는 꼴이 아니꼽고 띠꺼워서, 누가 그러라고 한 것도 아닌데 혼자 부러워하고 혼자 삐치고 혼자 지랄쌩쇼를 하는 것이다. 뜻을 펴지 못하고 정당한 대우를 받지도 대가를 받지도 못하고 그런데도 나 못지 않은 높은 기준으로 스스로 채찍질하며 묵묵히 더딘 걸음을 걷는 사람들, 그러다 죽어 버린 사람들이나 그들을 가슴에 묻고 더 무거워진 발걸음을 억지로 옮기는 사람들, 그런 스승들, 그런 선배들, 그런 친구들이 떠올라 이 기준을 벗어난 사람들, 벗어났다는 그것 때문에 무시하는 거라고 내가 누명을 씌운 그 사람들, 그들에게 부당하게 화를 내고 삿대질을 해대는 것이다. 맞다. 다 내가 병신이라 그렇다. 어쩌겠나, 제 목숨줄 간수도 제대로 못하던 진작부터 배냇병신인 나 따위가, 배배 꼬이고 뒤틀린 심사로 어거지 난장을 부리는 걸, 그렇게 생겨먹은 걸. 그래도 현실에서 사회 속에서 미쳐 날뛰지는 않으니 그나마 다행 아닌가.

4. 나이가 그래서 그런가, 갈수록 주변에 연애니 결혼이니 출산이니 이런 일들이 자주 벌어진다. 막막하고 각박한 바닥에서 그런 즐거움이라도 있어야 다들 안 다치고 버티지 않겠나 싶다. 『파이드로스』 식으로 하자면야 둘만의 알콩달콩이 아니라 서로의 사랑스러운 모습에 투영된 저 천상의 아름다움, 그곳에서의 기억을 되짚는 철학으로 날아 올라야 한다고 말해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그런 거 내다 버리고 그냥 좋아 죽겠는 시기와 나른하니 편안한 시기를 거치며 남들은 알아서 살라 그러고 둘씩 둘씩 혹은 둘이 셋 되고 넷 되어 그네들끼리만이라도 즐거우면 그게 쾌락의 총량에 이바지하지 않겠나 싶기도 하고. 이게 뭔 개소리래냐. 솔직하게 말하자면, 갈수록 주변의 고통에 내성이 약해지는 듯하여 불쌍한 꼬라지들은 그만 봤으면 하는 마음이다. 세상이 행복하면 나는 참 마음 놓고 자학하고 자괴감에 빠질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남들은 나몰라라 하면서, 예지계에서 가져온 내 영혼 속 기억은 언제쯤이나 되살아나려나, 나는 레테의 강물을 뭘 얼마나 들이 쳐마셔서 이 꼬라진가, 뭐 그런 망상이나 하면서.

5. Google Search: Reunion(링크). 그냥, 마무리는 훈훈한게 좋을 듯하여.

-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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