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툴바

대강의 매듭.

생각 2012/05/18 03:33 |

1. 지도교수님께 은근슬쩍 논문 주제와 더불어 석사과정 중에 플라톤을 읽는 강의가 없었다는 불만을 토로하였다. 워낙에 이 바닥이 그러하지만 당신께서도 원전의 중요성을 굉장히 강조하시는지라 어떤 식으로든 한 번은 읽고 쓰게 되지 않을까 한다. 아마도 『테아이테토스』가 될 듯하고, 작품 자체가 좀 많이 어렵기도 하고 비중도 큰지라 본격적으로 당대 수학얘기니 뭐니 하면서 들이대기는 어렵지 싶다. 뭐 전체 구성에서 산술이나 기하와 관련된 증명 문제들이 하는 역할 같은 것을 다루면 어느 정도 타협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나도 알지도 못하는 얘기 성급하게 당장에 뭔가 질러 놓고 볼 생각은 없고. 여름방학에 시간이 되면 일단 『테아이테토스』 초벌 번역이라도 해 두어야 하겠다. 마침 그 즈음이든 조금 늦게든 국역본도 나올 테고, 또 모교에서도 이거 전공하신 분께서 아직 정년 전이시고. 이렇든 저렇든 원하는 대답을 들었다. 석사 때 발상 내놓고 파고들 필요 없다고. 지금 다니는 곳 이쪽 전공 두 분 교수님께 공히 밑천은 이미 드러내 보여 드렸고 딱히 역전 만루 홈런을 때릴 기회가 있을 것 같지도 않으니 이제 힘 빼고 할 일이나 하면 그만 아닐까 싶다. 사정이 허락한다면 한 1년 정도는 다른 생각 없이 논문만 붙들고 늘어지고 싶은데, 그게 어찌 될지는 모르겠고.

2. 여전히 남들에게 잘 읽히는 글을 쓴다는 게 익숙하질 않다. 한 번 내 생각에 갇히고 나면 내가 구성한 추론의 과정이 머릿속에 박혀 버려서 그 연결고리들을 미약하다고 지적하는 사람에게 공감하기도 어렵고 미처 표현하지 못한 전제들도 마치 자명한 듯 여겨 버리고, 여러모로 부족함을 많이 느낀다. 결국은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비판할 줄을 모른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입장을 반대로 하여 내가 누군가에게 지적을 하더라도 그걸 나와 공유하고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짚어내 설명하는 그런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워진다. 물론 이것도 내가 질문 자체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 있겠지만, 어쩌면 공부하는 사람들이란 게 갈수록 그 모양인지도 모를 일이고. 말이야 언제나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진리를 추구한다고 하지만, 결국 자료를 수집하고 그것들의 참, 거짓을 검토하고 그로부터 논증을 구성하고 주장을 뒷받침하는 과정에서 내가 그 주장을 참이라 믿을 만한 근거들 전부를 타인과 공유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말이다. 그걸 전부 다 공유해야 한다면 그건 정말 비효율적인 설득의 방식이 될 것이고, 또 분명 어느 부분엔가 자기 자신의 믿음들 사이에서도 양립이 불가능하거나 상충하는 그런 믿음들이 있을 것이고 그런 식으로 일관성이 어그러지는 부분이 있을 테니 결국 그 지점을 극복해야 한다는 문제는 변함이 없겠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닌 듯하다. 뭐 내가 지금 이 정도 문제를 겪고 있다기 보다는 거기 닿기도 전에 기본적인 논증 구성 자체가 찌질하다는 게 정직한 얘기이겠지만서도,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

3. 그러고 보니 여러모로 생각할 문제가 많긴 많다. 당장에 닥친 일은 아니더라도 진작에 시골 내려 가거나 하셨어야 할 부모님께서 아직까지 서울에 남아 돈을 벌고 계시는데 어쨌든 머지않아 재개발 때문이든 다른 문제로든 정리를 하고 내려 가실 듯하고, 지금 다니는 학교에서 듣는 얘기라곤 영국 영국 영국 얘기뿐인데 솔직히 갈 능력도 준비도 안 되었다는 것도 문제지만 그 쪽에서 내가 생각하는 분야를 좀 알고 미리 준비하고 계신 분이 누군지도 모르겠고, 그런 분까진 아니더라도 이 주제에 관심 갖고 어느 정도 내 걸음걸이 맞춰서 평가하고 이끌어줄 사람이나 있을지도 사실은 잘 모르겠고,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지금 그냥 얼토당토 않은 억지를 부리고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보아하니 그나마 공부하는 동안만은 먹고 사는 게 크게 문제가 되진 않는 듯하고, 불효 막심한 쓰레기나 할 소리긴 하지만 어쨌든 부모님 사시는 동안에 내가 뭘 크게 보태드려야 할 것 같지는 않고(현실이 그렇다는 얘기다, 물론 나도 잘 나가고 잘 벌면야 신세 좀 갚고 효도 좀 하고 응, 당연히 바라지 않는 건 아니고), 준비하고 있으면 분명 기회는 오니까. 생각보다 내가 그 준비라는 걸 더 심하게 않고 있었다는 게 최근의 충격이긴 했는데 그것도 뭐 지금부터라도 준비를 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이겠고. 이렇든 저렇든 기대되고 두근거리고 설레는 건, 그야말로 다행이고 정말로 눈물 나게 기쁘다. 뭐 당연히 더 가봐야 하겠지만 당장은. 석사 들어가기 전에 모교 선생님께 그런 말씀을 드린 적이 있다. 공부가 하고 싶어 미치겠다고, 울고 싶을 정도로 너무 간절하다고. 지금 징징거리는 것도 호강에 겨운 것이고, 사실은 학부 들어가기 전에는 더 심했고, 따지고 보면 나는 여태까지 점점 더 좋아졌다. 기뻐할 건 깔끔하게 기뻐하자.

4. 어쨌든 멜리소스는 파르메니데스를 잘못 이해한 듯하다. 그리고 난 곧 죽어도 파르메니데스가 물질적인, 구체적으로 말해서 양적인 무한을 말했다고는 인정할 수 없다. 파르메니데스를 제대로 이해한 건 아무리 봐도 제논 같단 말이지. 발제 때 교수님 지적은 '논리만 갖추면 다 파르메니데스 영향이냐'는 것이었는데,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 핵심이 양 개념을 포함시키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인 것 같다. '있음/~임'이 긍정, 참, 존재를 그리고 '있지 않음/~이지 않음'이 부정, 거짓, 비존재를 의미한다면, 그리고 그것들의 혼용 없이는 '분할'이, 연속량에 대해서든 불연속량에 대해서든 어쨌든 필연적으로 따르는 성질로서 그 '구분'이 성립할 수 없다고 한다면, 이건 결국 결론으로 질적인 동일성만 얘기될 수밖에 없고 그 외에 어떤 식으로든 분할이라는 개념이 포함될 때에는 제논이 구성한 역설의 형식을 피할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자기동일성과 더불어 타자에 대한 배타성을 동시에 갖추는 어떤 것을 상정하지 않으면 구분 자체가 불가능하고, 그렇게 구분하는 순간 다수성을 부정할 수 없고, 그럼 동일성을 통해서는 구분 불가능함이, 타자성을 통해서는 무한분할이, 그리고 양자의 결론 사이의 모순이라는 귀결이 모두 필연적이라고 제논은 이해한 듯하고, 파르메니데스는 그런 귀류법을 통한 오류의 지적보다는 진리의 조건이 무엇인가 하는 점에 더욱 무게중심을 뒀던 듯하고, 다시 제논이 이 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했다면 이전까지 없었던 그런 논박의 기술을 창조했다는 걸, 그리고 거기에 필요한 형식적 조건들을 구체화시키는 일보다도 누구의 주장인지도 알기 어려운 이러저러한 명제들을 비판하는 데에만 집중했다는 이상한 결론을, 그걸 다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게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구체를 닮았다느니 연속해 있다느니 이런 파르메니데스의 표현들은 비유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고, 비유로 보지 않을 경우에 생기는 그의 논증 내에서의 자기모순을 그냥 그의 무지로 때려 박느니 최대한 호의적으로 그의 논증을 재구성하는 쪽이 더 나을 것이고(역사적 사실을 재구성하는 것보다 파르메니데스에 대한 해석을 통해 이후 사상사에서 그의 영향을 재고하는 게 목적이라면 더욱이), 그가 내놓은 역설 중에 공간 역설은 오히려 후대 자연철학자들에게는 혼란을 안겨준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문제는 공간이니 시간이니 수니 크기니 전체니 부분이니 하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피타고라스 학파로부터 받은 영향 같은 걸 따져 보면 물질적 관념을 끝끝내 포기 못했던 이오니아쪽 사상이랑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텐데, 사실 피타고라스가 순형식적인 어떤 세계관을 그린 것 같지는 않고, 한계, 하나, 복수, 뭐 그런 것들이 산술의 대상이라고 하면 그것들을 다루는 방식은 어떤 식으로 정형화가 되는지, 그게 또 궁금한데... 뭐 됐다. 일단 피타고라스 얘긴 빼고 이런 식으로 기말 때 내놓아 보고 또 욕 먹고, 뭐 그러는 것이지. 거의 연역적 추론의 형식을 정식화하는 초기 단계, 원시적 단계라 할 만한 이 인간 가지고도 이렇게 고생인데 그 이후 계속 세련되고 정밀화되어 온 그 숱한 사상들을 어떻게 그리도 잘 이해들을 할 수 있는지, 그게 또 신기하기도 하다. 아니, 오히려 불분명한 것들을 확실하고 분명하게 구체화시켜온 게 사상의 역사이려나? 좀 있어 보이는 헛소리를 하자면, 문제를 구체화시키고 문제 자체를 묻는 게 철학의 역사였을지도 모르겠지만, 근데 이딴 소리는 뭐 나 죽기 전까지도 딱히 자신있게 떠들 일은 없을 것 같으니 집어 치우자.

5. 사실 7년 짝사랑이라고야 했지만 처음 차이고 나서 그런가 보다 했을 뿐 워낙에 성격이 누구한테 매달릴 줄도 모르고, 또 눈 오는 날 강아지 마냥 꼴에 학부라도 철학전공이랍시고 너무너무 신나서 날뛰다 보니 어느 사이엔가 그렇게 시간만 흘려 보냈을 따름이었다. 게다가 이제 마냥 철학 좋다고 실실 거리기만 할 수는 없는 사정이란 게 생겨서 이런저런 준비도 하고 해야 했고, 또 개인적으로 사람이 힘들 때에 사람에게 기대는 건 좋지 않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고, 실은 좀 무서웠달까. 당연히 서로 나이도 있고 상황이 서로 좋아 죽느라 들러붙어 물고 뜯고 지지고 볶으며 서로 할퀴고 머리 쥐어 뜯는 불 타는 연애질을 하게 되진 않으리란 건 알았지만, 그래도 사람 사이란 게 섞이고 오가고 하다 보면 좀 꼬이고 어긋나고 하는 것도 있게 마련인지라, 괜한 심적 부담만 안겨주는 건 아닐까 그런 두려움도 있었고. 그래도 힘든 와중에, 또 오래 고민해서 같이 있어도 좋겠냐는 사람을,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인데 밀쳐낼 수는 정말로 없었고. 그래선지 내 지금 모토는 '뭐든지 OK', 뭐 이런 태도로 임하고 있습니다만.. 그런데 또 막 잘해주고 챙겨주고 뭐 그런 맛이 있어야 하는데 내가 그런 거 정말 못하기도 하고. 그러거나 말거나 이런 놈 잘 받아주고 해준 것도 없는데 고마워해주니 내가 되려 고맙고 미안하고 그런 와중이다. 아주 솔직한 심정으로는 조만간 이 친구 좀 이런저런 문제들이 해결되고 준비하던 일도 잘 풀리고 그렇게 되면, 마음에 여유가 좀 생기면, 다시 나란 인간의 단점들도 보이고 뭐 주변에 새로 사람들도 보이고 그러다 보면 뭐 그렇게 여차저차 되지 않을까, 그런 비관적 전망도 아예 생각하지 않는 건 아니고. 그런 나중 일들이야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것 정도니 더 이러니 저러니 할 건 없고, 그냥 지내는 동안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현재에 충실하면 그만 아니겠나. 그나마 쥐꼬리만큼이라도 여윳돈 있을 때 맛난 것도 사주고 뭐 그러면서 깨작깨작. 어찌 되었든 사, 사... 애정합니다=_=; 뭐 언젠 아니었겠습니까만은=ㅁ=;;

-蟲-

저작자 표시
Posted by 버러지

Trackback Address :: http://oistros.tistory.com/trackback/814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한 차례 푸닥거리 거하게 지나온 나의 애정하는 선배는 이제 삶을 살아볼 작정을 아예 제대로 한 듯하다. 그건 뭐 주변에서 가타부타 할 수 있는 종류의 얘긴 아니고. 쨌든 내가 믿는 사람이 내가 믿을 만한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는 건 그냥 간단히 얘기하자면 나의 운빨이기도 하지 않겠나. 그의 말 그대로 '건투'를 빈다. 기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기쁠 기회 또한 있으리라 믿는다. 가끔 세상이 지랄이라 삑사리가 날 수도 있겠지만, 그걸로 자책과 자괴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면, 세상과도 다이다이 맞짱을 뜨는 게지, 뭐 어쩌겠나.

2. 어느 경우라고 안 그렇겠냐만 딱히 제대로 도와줄 수도 없고 뭐라 어설프게 위로를 하기도 같잖은 그런 어려움들을 겪는 게 그저 가슴 아플 따름인 나의 애정해 마지않는 애인님, 생일이 어제였다. 내 목구멍인 그 포도청에서 사은회를 하느라고 붙들려 있다 이제사 집구석 기어 들어온 나로서는 잠들어 계실까봐 연락조차 드리지를 못 하겠는데, 뭐랄까, 결국은 인정하고 가야 하는 것 아닐까 싶다. 한 사람이 책임질 수 있는 세계란 게 있고, 그 밖에서 어찌할 수 없이 일어나는 일들 자체는, 말 그대로 이미 벌어진 일이니까. 물론 당사자도 아닌 주제에 이러니 저러니 말하는 것 자체가 주제넘은 일이란 거 나도 나름은 알지만, 하아, 말은 해서 뭐 하겠나. 주말에 맛난 거나 사 먹여야 하겠다. 누군가가 죄인이고 누군가의 잘못이고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없는 일들이 수두룩 빽빽인 걸 받아들일 만큼의 여력을, 그걸 내가 보태줄 수 있길 바랄 따름이다. 책임의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 일어설 수 있고 버틸 수 있으면, 자신을 챙길 정신이 있으면, 그 다음에는 곁에 있는 사람들을 내 힘으로 안고 끌고 보듬고 갈 수도 있는 거 아니겠나. 해야 해서가 아니라 하고 싶어서 말이다. 그래도 가끔 세상 씨발 좆 같다, 라는 욕을 하는 게 정신건강에는 좋은 듯. 힘내쎄요.

3. 그렇지. 여전히 내가 마지막에 켕기는 건 그런 거지. 내가 몰아 붙이고 닥달을 하고 따져 묻는 건 진짜냐 가짜냐 그 얘긴데, 결국 그 얘기이긴 한데 그게 그렇게나 대단히 확실한 얘긴지도, 설령 정말로 맞는 얘기라고 할지라도 그게 나 아닌 타인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도 사실은 잘 모르겠다는 것이지. 마음 한 구석에 여전히 남아 있는 생각이 있다. 끝까지 도망가면, 모른 척하면, 숨으면, 고개를 돌리면, 그럼 정말 안 되나? 그러니까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냥 미쳐서 꽃 꽂고 헤헤 거리며 살 수 있으면, 그게 제 정신으로 머리털 쥐 뜯어가며 악을 악을 쓰며 버티는 것보다 정말로 더 나쁘고 안 좋고 그런 삶인 거냔 말이지. 근데 사실 그 정도도 아니고, 그냥 지 혼자 재밌고 즐겁게 잘 사는 걸 무슨 근거로 뜯어 말리고서 보기 싫다는 거 억지로 대면시켜서 무슨 대단히 좋은 꼴을 보겠다는 거냐는 얘기지. 그냥 경험에 근거한 꼰대질, 그것밖에 안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치기가 어렵지. 그래도 말이다, 가끔 보다 보면 미친 듯이 좆나 캐부럽게 개 개운하게 씩 웃어 제끼는 새끼들이 있기는 있다는 거야. 그거, 그거 한 번 해 봐야지. 카타르시스인지 오르가즘인지 그게 뭔지 몰라도, 100%라고 장담을 못 해도, 그래도 최소한 필요조건이 되는 건 정면승부 다이다이 안 도망가고 눈깔 희부라리면서 들이 받는 거다, 그런 확신은 정말로 있걸랑. 재밌는 거 좇고 좇고 아무리 허덕허덕 내달려 따라가 봤자, 아니, 그러다 따라잡는다는 게 문제지. 끝나고 '이젠 뭐 하지', 이게 끝장 나는 거거덩. 아, 이건 뭐 역시 당사자가 들어야 아는 얘기겠다만, 어쨌든 결론은 스스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얘기라 별로 시덥지가 않네. 절대로 곧 죽어도 못 받아들이겠고 막상 생각해 보니 딱히 스스로 도망다니는 것 같지도 않고 그냥 나 좋은 거 내가 하겠다는데 뭔 말이 많나 시끄럽네 싶을 수도 있고, 그렇다면 씨알도 안 먹힐 얘기라는 것까지 억지 부리며 부정할 이유도 없고, 근데 왠지 내가 봤다고 믿고 있는 그 뭔가가, 건덕지랄지 실마리랄지 하여간 싹수랄지 뭐가 됐든 그게, 이 새끼가 알아 먹을 것만 같단 말이지. 뭐 두고 보자고. 내가 제안한 일은 그냥 한 자 한 자 따박따박 읽고 알아먹고 또 씨부리고 그런 걸 혼자 빡세게 해 보라는 것뿐이고, 그건 내가 있든 없든 유효한 제안이 되는 거니까. 지금 알아 먹는다면 내가 뭔가 해 볼 여지가 더 남아 있겠지만, 뭐 그게 안 된다면 그것도 나름 나는 한계 안에서 또 할 만큼의 지랄을 해 본 것 아니겠나. 문제는 '누구냐' 하는 게 아니걸랑. 인생, 그리고 진짜, 이거지. 학문은 배신을 몰라, 씨바.

4. 배신을 모르긴 하는데 정말로 잘 모르겠네. 지도교수님께서는 다음 학기 빠이빠이시고, 가면 갈수록 내가 운빨로 여기까지 살아남았다는 걸 절감하게 되는데 그게 영 개운치를 못하고, 뭐 이런저런. 누차 말하지만 내가 아쉬운 건 내가 어찌 해 볼 수가 있었던 것들을 어쩌지 않고 넘기고 여기까지 살아 남았다는 게 찝찝하다는 거다. 젠장. 유학을 가라느니 학회를 세계화를 시켜야 한다느니 기회는 많다느니 뭐 많은 얘기들, 그냥 기분 좋으시라고 모신 자리에서 기분 좋으신 것 같아 그건 흡족했지만 딱히 다른 감흥은 없고. 남들이 이러니 저러니 백날 얘기해봤자 나는 내가 스스로 납득을 좀 해야 하겠거덩. 근데 그냥 나한테 야부리 까고 사기 구라질 쳐가지고 넘어가고 자시고 하기에는 내가 나를 좀 이젠 알아서, 그리고 학문 자체는 잘 못해도 최소한 뭐는 해야 하는지 정도는 알겠어서. 때려 치울 거 아니면 굴러가 보기로 한다. 이제 이 학문의 양심이니 지적 정직성이니 성실이니 뭐니 하는 게 다 무슨 겉치레인지도 모르겠고, 그냥 나한테 간절한 걸 내가 하기로 한다. 그게 세상에 어쩌든 미래에 뭐가 되든 그건 나중 문제고, 결국 그건 결과일 뿐이다. 나는 과정을 살다 갈 놈이고. 과정은 나만 알고 나만 갖고 그러고 가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든다.

5. 내가 인터넷에서 좋아라 따라다니던 사람 하나가 자기 전공분야에서 괜찮은(내가 그 바닥을 잘 몰라서 그런데 이런 표현보다 좀 더 큰 표현을 해야 하는 것 같은 정도의) 성과를 낸 듯하다. 뭐 국내 언론에서는 감감무소식. 이공계 키운다 지랄이 뭔 지랄인지 모르겠다. 대학원생 골수 빼먹고 내다 버리는 새끼 언론플레이에나 놀아나는 나라 주제에 무슨. 어쨌든. 아, 나 다니는 동네쪽으로도 한 사람 또 큰 일 낼 듯하다. 국내 최초일 텐데 아무튼 이 바닥에서 조낸 알아주는 학술지에 등재가 되네 마네 그러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물론 국내에서는 별 말 없이 지나갈 거다. 더 더러운 건 이 나라는 그 사람들 밥 먹여줄 자리 정도도 제대로 마련해 주지 않을 듯하다는 거다. 안다. 상이고 등재고 지위고 나발이고 사실 중요한 건 학문 그 자체다. 그거 노리고 들어가는 놈치고 잘 되는 놈 못 봤기도 하고. 권위라는 거 결국 헛찌끄래기 겉껍데기에 불과하고. 근데, 근데 말이지, 그럼 씨발 제대로 된 걸 제대로 평가나 해주든지 말이야. 뭘 어쩌겠다는 건가? 권위는 권위대로 못 챙기고 실속은 실속대로 또 놓치고 씨바. 이 나라가 기대하고 꿈꾸는 그 뭔가가 아예 없는 건가 싶기도 하다. 대충 되는대로 굴러먹으면 장땡이라 이건가? 굴러먹지 못하는 새끼 병신새끼 하면서 내쫓고 죽으라 등떠밀고 마치 물고기떼마냥 안 먹힌 새끼들끼리 옹기종기 모여서 끼죽거리고? 글쎄, 이렇게 보면 능력 없고 게으른 내가 다행인가 싶기도 하고. 적어도 난 뭘 내놓지를 못 할 테니 억울할 일도 없겠지. 근데 씨발 그건 내 문제고, 학문은 어찌 되는 건가? 내 순진무구한 착각인지 몰라도 유일한 해결의 실마리는 그냥 진실 그 자체뿐인 것 같다. 그걸 추구하고 찾고 쌓고 그걸 또 가르치고 하지 않고서는 그냥 계속 이 지랄일 것만 같다. 계몽이니 뭐니 거지깽깽이 소리를 하겠다는 게 아니라, 아, 몰라, 그걸 알면 내가 이러고 안 살지. 아주 치졸하고 좆나 역겨운 소리 하나 하자면 그래도 나는 좀 위안이 된다. 그냥 정직하게 학문만 하면서 산다고 크게 잘못되는 거 아니구나 싶네. 나보다 잘난 인간들도 저러고 사는데 뭐. 이러다 굶어 뒈지든 찌질이 개찐따 돼서 우울증 도져서 궁실궁실하며 방구석에 쳐박히든, 어쨌든 맞는 길을 가는 것 자체는 이렇든 저렇든 가능하단 얘기 아닌가. 잘 하면 그래도 알아먹고 쳐들어 주는 새끼들도 좀 있는 거고. 내가 무서운 건, 그거 말고 다른 걸 기대하는 게 욕심이라고 생각해 버릴까봐, 그렇게 세상이란 걸 놔 버릴까봐, 뭐 그런 거다. 난 충분히 즐거울 자신이 있긴 한데, 근데 그걸로 그만이면, 나 좀 나쁜 놈 되는 거 아닌가? 흐, 뭐 돼 놓고 나서 할 얘기다만. 정직하고 치열하고 성실하고 병신 머저리들에게 좆나 땅바닥에 대가리 쳐박으며 사죄하며 이만 빠이빠이. 그들 중 누군가는 빅엿을 먹일 기회를 잡게 되길 바란다. 이 좆 같은 세상에다가설라무네.

-蟲-

P.S. 이 싸움이 다 그 싸움이 그 싸움이라고. 그러니까, 지치지들 맙시다. 쨌든 우리 죄는 아니잖소.

저작자 표시
Posted by 버러지

Trackback Address :: http://oistros.tistory.com/trackback/813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여러모로.

생각 2012/05/12 22:38 |

1. 통합진보당 제 1차 중앙위원회 중계 방송을 봤다. 누군가는 대한민국 진보의 종말을 예언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게 새로 태어나는 과정의 진통이라 말한다. 나로서는 선지자 놀이를 할 생각도 능력도 없고 단지 우리가 밖으로부터 수단을 빌려 오면서 빚졌던 사상의 무게가 어떠한 것인지, 그리고 감정과 이해관계가 뒤얽힌 각론의 장에서 합리와 설득이란 말이 얼마나 공허한지, 뭐 그런 뜬구름 잡는 생각만 하게 된다. 저보다 더 참담한 꼴도 자주 있어 왔고 물론 앞으로도 더욱 더러운 꼴을 물론 마주하게 될 거다. 사람에게 지옥이란 결국 사람 아니겠나. 자신의 의지로 뛰어든 이들에게는 애도를, 멋 모르고 뛰어들어 비운의 주인공 코스프레를 하는 어설프고 치기어린 것들에게는 안타까움을 표한다. 그러나 결국 보수이든 진보이든 개혁이든 혁명이든 NL이든 PD든 무정부주의이든 뭐든, 나는 의지를 관철시킬 유일하고 유의미한 단 하나의 방식이 합리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인간을 믿고 인간의 집단을 믿고 그들이 믿어주는 자신을 믿어 가며 버티거나 혹은 어줍잖은 이해타산으로 왜곡되고 변질된 논리로 억지를 부리려 든다면 결국 부러져 나가거나 짓이겨지고 말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반대로 사람을 상대로 사람이 사람을 편으로 삼아 힘을 모으는 데에는 엄격한 지성의 법칙이 더 없이 무력하리라 예상하기도 한다. 저쪽은 수사의 세계이다. 호소와 겁박 뭐가 되었든, 효과적인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때마다 입장을 바꾸고 집단의 틈바구니에 파고들어 다수를 차지하는 길만이 유효하다. 존재의 길과 사견의 길이라고 해야 하려나. 어느 쪽으로 가든 무언가를 잃을 텐데, 아마도 후자로 갈 때에는 그 잃는 것이 자기 자신이 되지 않을까 싶다. 덧없는 얘기 길게 해서 무엇하겠나. 그나마 야권연대 쪽에서 겉껍데기라도 비교적 남아있는 건 민주통합당이고, 문재인은 안철수에게 손을 내밀었고, 여당은 박근혜로 대동단결해 나아가는 데에 큰 걸림돌이 없는 듯하고, 이제 곧 대선이네. 그냥, 모르겠다. 계몽 따위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각기 자기 자신과 또 서로를 이해하고 설득시킬 수 있다는 희망의 경험 자체가 필요한 건 아닐까 싶다. 교육 외에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기 어려운데, 그 느긋하고 고상한 꿈을 논하는 사이에 사람들은 내쫓기고 죽어 나간다. 자랑스러운 먹물로 돌 맞아 죽기를 바라야 하나.

2. 결국 한국서양고전철학회 학술대회는 못 갔음. 뭐 사실 가 봤댔자 이제 막 공부시작한 개풋내기 쓰레기 같은 내가 가서 어르신들 신선 장기 두는 거에 뭐 그렇게 배울 게 있겠나. 이유식도 떼기 전에 고기부터 뜯겠다는 꼴이지. 예전 세계철학자대회 안 갔던 것도 비슷한 생각에서였고. 변명을 하자면 여전히 몸상태 지랄이기도 하고. 사실은 좀 제대로 밟히고 싶은데, 이건 뭐랄까 끄트머리 꽁지만 밟혀 터져 끙끙 앓다 말라 뒈지는 지렁이의 심정이랄까. 제대로 까일 수준도 못 되는 저급한 쓰레기 취급을 받았다는 느낌. 제대로 쳐발리는 것조차 내 뜻대로 안될 만큼 비루한 주제에 그냥 닥치고 공부만 해도 모자란 판에 정치가 어쩌니 학계가 저쩌니 하며 똥을 싸제끼고 있는 내 자신이 우습다. 그래도 다행히 이 과정이 재밌기도 하다. 어설프게 걷어 차이고 나뒹굴고 다시 기어 오르고 일어서고 또 자빠지고 다시 이 악물고 땅 짚고 일어서고. 이 즈음 되니 생겨먹은 게 이 꼬라지인데 뭘 어쩌겠나 싶기도 하고. 합리 그 자체에 배반 당한 적 없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듯하니 그냥 가던 대로 갈란다. 내가 버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서인지도 모르겠다. 남들은 모르겠고 어쨌든 나는 그 정도 깜냥밖에 안 되는 인간이니.

3. 힘이 없네.

-蟲-

P.S. 뭐 여전히 트윗판은 개판. '니들은 뭘 그렇게 잘해서 욕을 하냐' 소리나 나오고. 물론 작금의 힐난과 조소가 제대로 된 비판이라고까지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대상과 사태와 명제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개인의 인격과 덕성을 자격으로 가로막을 수는 없다. 반대로 연쇄강간살인마든 군수산업재벌이든 그 새끼가 개새끼인 것이 그의 발언이나 행위를 비판할 근거가 될 수도 없다. 이걸 받아들일 수 없다면 물고 뜯고 개싸움을 하는 수밖에. 어디서 피장파장의 오류를 싸지르고 지랄들인가. 짜증이 치밀어 좆이 발딱 설 지경이네, 씨부럴. 링 위로 끌고 올라오지 못하면 그냥 주먹다짐일 뿐이다. 물론 말했듯이 그게 더 즉각적인 효력을 발휘하겠지. 그리고 고스란히 당해도 할 말이 없지. 그럼 이렇게 가자. 씨발 거 목구녕에 풀칠할 돈만 남기고 전부 다 난민들과 공유하고 의료봉사 다니면서 남는 시간 반전시위 따라 다니고 노동자연대해서 각목 맞고 팔 다리 한 두 개쯤 날려먹은 인간 말고는 다 아가리 닥치자고. 쓰레기들, 같지도 않은 우월의식 부랄 대신 달고 잘들도 살아 먹는구나. 좆이나. 뭣같은 논리가 차고 넘친다. 읽어 보고 오라든지 더 배우고 오라든지 살아보고 오라든지 군대나 갔다 오라든지 애 낳고 키워 보라든지 니나 잘하라든지 뭐가 그리 잘났느냐든지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 있느냐든지 꼬우면 갑을 하라든지 노동자의 눈물을 아느냐든지 눈물 젖은 빵은 먹어 보았냐든지 80년대를 아느냐든지 한강의 기적을 봤느냐든지 뭐 따지자면야 수두룩 빽빽이지. 내가 숭고한 희생이나 치열한 투쟁 정직한 노력과 성실한 체험 그리고 반성이나 체계적인 교육과 연구 그런 것들을 다 개무시하자고 이러는 게 아니다. 거기서 근거를 뽑아내 논증을 구성하는 그 짧은 과정을 왜 비약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뿐이다. 결국은 누가 잘났고 누가 못났는지 줄 세우기가 하고 싶겠지. 하지만 말을 섞고 생각을 나눈다는 시도 자체가 그런 것과는 다른 목적을 갖고 있다. 사실로서의 문제를 확인하고 검토하고 거기에 기초한 객관적 해결의 실마리를 함께 찾아 보자는 거다. 거기 누구의 어떤 권위가 끼어들 여지가 있나? 권위에 기댈 때 빌려오는 것은 단지 근거를 조사할 무한정한 범위를 어느 정도 확률에 근거해 줄이는 정도의 그런 효율성에 불과하다. 권위자에게서 그의 주장을 빌려오는 것은 아무런 설득력이 없다. 그의 주장과 근거를 가져오고 그 근거와 논증을 스스로 분석, 비판, 평가해서 자신의 것으로 삼지 않는 한, 니 주둥아리에서 뭘 씨부리든 넌 그냥 아가리로 똥오줌 싸대는 것밖에 안 되는 거다. 이래 놓으니 그 생각이 나네. 주체적으로 자신의 말을 하는 것은 어렵고 외래의 사상 수입해 오는 건 게으르고 적당적당한 짓으로 보이나 본데, 그렇게 간단해 보이면 수입 한 번 해 보라고, 그런 얘기를 들었다. 남 말 받아다 옮기는 걸 무시하는 순간 그냥 혼자 상상의 나래나 펼치면서 자폐증 과대망상 속에서 딸딸이나 치는 거지 뭐. 빌어먹을.

저작자 표시
Posted by 버러지

Trackback Address :: http://oistros.tistory.com/trackback/812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쏘느님 간지 좔좔.

생각 2012/05/11 22:40 |

1, ἀλλὰ γὰρ ἤδη ὥρα ἀπιέναι, ἐμοὶ μὲν ἀποθανουμένῳ, ὑμῖν δὲ βιωσομένοις· ὁπότεροι δὲ ἡμῶν ἔρχονται ἐπὶ ἄμεινον πρᾶγμα, ἄδηλον παντὶ πλὴν ἢ τῷ θεῷ. 『소크라테스의 변론』의 마지막 문장이다. '허나 이제 떠날 시간이니까요, 저로서는 죽기 위해, 여러분들로서는 살아가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들 중 어느 쪽이 더 나은 처지에 이르는지, 신 말고는 모두에게 불분명한 일이지요.' 재미있는 것은 소크라테스가 자신을 변호하는 내내 강조했던 것이 자신은 인간들의 무지에 대한 무지를 따르느니 보다는 신께 봉사하며 자신의 무지를 아는 쪽으로 가고자 하였다는 것이란 점이다. 신이 가리키는 것이 어떤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진리, 초월적인 앎, 사람들의 사견과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그러한 기준과 가치지향 같은 그런 어떤 것이라면, 내내 그것을 추구하였고 사형을 선고받을지라도 그 뜻을 꺾지 않고 곧장 나아간 소크라테스가 마지막에 던지는 이 말은 확신에 찬 예언일 수도 있겠다. 신만은 알고 있다. 그리 여겨질 뿐 사실이 아닌 온갖 것들이 아무리 횡행하고 위세를 떨칠지라도 진리는 그로부터 자유롭고 고고한 것이다. 살아가기 위해 또 죽기 위해 떠나야 할 인간들의 시간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고 영원한 척도로서의 진리만이 더 나은 삶과 그렇지 못한 삶을 평가해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비극이 아니다. 어쩌면 이렇게나 견고한 확신을 그를 따르던 그 많은 사람들조차 이해하지 못하였다는 것이 더 슬픈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삶을 돌아보고 검토하고 숙고하여 내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진리에 맡긴 채로 스스로 살아갈 자유를 얻어 해하는 그러한 삶만이 인간에게 살 가치가 있다. 아무리 그리 말해도 크리톤은 눈물을 훔치며 제발 달아나자고 애원을 한다. 사형을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동안 앎과 앎의 대상과 앎의 방식을 논하는 그 와중에도 곁에서 정신줄을 놓고 우는 친구가 있다. 안타깝고 슬프고 어쩌면 그게 사실은 철학의, 혹은 지식의 무력함일는지도 모를 일이다. 파르메니데스의 여신이 그렇게나 단호하게 단언하였던 진리의 설득력이란 것은 실은 누구에게 전하거나 공유할 수는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괜찮다. 어차피 신이 아니고서는 우리 모두에게 그것은 불분명한 일일지도 모른다.

2. 때 아닌 물난리에 난리를 피우다 허리가 말썽을 부려 움직이지도 못하고 방구석에 틀어 박혀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자연학 소론』 강독도 플라톤 『국가』 강독도 못 들어갔다. 나는 여전히 논문 주제도 주 문헌도 결정을 못했다. 영국 Durham 대학에 이쪽 대학원 고대 철학 전공자들이 많이 유학을 가 있는데 거기 계시던 분들 중 한 분께서 학위를 마치고 돌아와 정암 선생님들께 인사를 드리러 들르셨다. 3년만에 학위를 갖고 오셨는데 그 중 한 1년 정도는 아버님 건강 문제로 국내에 오가느라 시간이 없었을 테니  실제로는 거의 2년만에 해결이 난 것이다. 축하를 드리긴 했지만 서로 그렇게 축하할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대충은 알고 있으니 뭐라 더 드릴 말씀도 없고. 그래도 다른 선생님 통해서 프로젝트 참여하기로 하셨다니 당분간은 다행이라면 다행일 테고. 식사 중에 잠시 그런 얘기가 나왔다. 플라톤 읽고 감동 먹는 사람들 얘기. 그 지경이니 이 바닥에 들어오는 거 아니겠냐면서도, 또 한편 막상 소크라테스 자신은 딱히 그리 슬퍼하지도 않았는데 오히려 읽고 슬퍼한다는 게 제대로 공감을 못 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하더라. 그게 뭐 중요하겠나, 결국 살아가고 또 살아갈 살아있는 시간들이 문제겠지. 이렇든 저렇든 조금씩 사람들이 늘어나고 세대가 교체되어 가고 있다. 큰 지향이나 전반적인 현실이 크게 뒤바뀌진 않겠지만 어쨌든 어딘가로 조금씩 나아가리라 생각한다. 거기에서 의미를 찾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그 삶 자체에 기여하는 일도 언젠가는 좀 더 구체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겠나 하는 기대를 해 본다.

3. 내일은 한국서양고전철학회 춘계 학술대회가 있는 날이다. 다음 주에는 스승의 날 모임이 있는 듯하고. 이런저런 것들이 무의미하게 여겨지기는 하지만 딱히 유난을 떨고 싶은 생각도 없고, 노장식으로 말하자면 역시 숨는 것은 사람들 사이에 숨는 게 제일 아니겠나 싶기도 하고. 검은 소 타고 피리 불며 산 속으로 들어가는 건 사실 너무 거창하고 티 나는 일 아니겠나. 일신을 흐름에 의탁하는 것이 나태하고 비겁한 작태일 수는 있겠지만 해야 할 일이 정신노동이니 그러려니 하고 조금은 타협을 하려고 한다.

4. 지식의 공유, 카피레프트, 이런 것들이 이런 구조 속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학문만이라도 좀 사회와 고립시켜서라도 그런 방식으로 유지시키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어제 우스갯 소리로 그런 얘기도 했었다. 좋은 책 내면 빨리 죽어 주는 게 학계에 이바지하는 일이라고. 저작권이 저자 사후 몇십 년이라더라, 가치를 창출하고 실용성을 입증하지 못하는 그런 학문에 대해서는 투자도 지원도 서서히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고 또 그러한 학문을 연구하려는 사람들 역시 줄어들 것이다. 그냥 개인의 열정에 떠맡기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5. 어제 오늘 방문자 수가 또 세 자리인데 이번에는 어디에서 유입되어 들어들 오시는지 추적이 안 되네=_= 와봤자 개소리밖에 없습니다. 아, 내가 개인적으로 개를 좋아하니 개소리라기 보다는 버러지 꿈틀거리는 소리 정도로 말을 해야 하려나. 뭐 조만간 '사람들이 알아먹을 수 있는 글'을 쓰는 연습을 좀 시작해 보려고 하는데 그 때에는 덧글로 '이게 무슨 뻘소리냐'라는 질문들 많이 남겨 주시길. 늦었든 말렸든 어떻든 해야 할 일이라면 할 수밖에 없지 않나. 결국 읽고 써서 먹고 살아야 할 놈이 별 다른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蟲-


저작자 표시
Posted by 버러지

Trackback Address :: http://oistros.tistory.com/trackback/811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뭐냐.

생각 2012/05/10 08:18 |

1. 발제가 예상대로 깨지고 수도가 예상밖에 터지고 하수구가 왜 그런지 막히고 자다 깨서 둘러 보니 방 안에 책들과 인쇄물들이 둥둥 떠다니고 비가 오나 창밖을 봤더니 비도 안 내리는데 이게 뭔 일인가 수도가 터졌다고 아 제기랄 빌어먹을 수도가 터졌다니까 근데 왜 하수구로 빠질 것이 화장실을 지나서 내 방까지 수족관을 만들어 놓는 게냐 아 이런 제기 난장을 맞을 옘병 육실을 할 하수구 수챗구멍이 비누곽이랑 뭐랑 해서 막혔다니까 이런 미치고 환장을 해 팔짝 뛸 일이 있나 이 빌어먹을 집구석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네 이게 다 내 잘못이오 culpa mea culpa mea pax nobiscum 응? 응? 제기랄!

2. 이제 뭐가 뭔지 모르겠네. 불쌍해서 한 번 봐줬다는 식으로 논자시 붙여줄 거였으면 씨발 거 애초에 입학을 시키지 말았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아니, 사실 나도 내가 병신인 거 아니까 그냥 알아서 지원부터 하지를 말았어야 하는 건가, 이게 무슨 소모적인 헛짓거리인가, 나도 당신들도 아무런 기대도 없이 그냥 눈먼 돈 가져다가 엄한 데 쳐박으며 세월아 네월아 하면은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인가, 아니, 그래도 대학원 규모 유지하는 데에는 티끌만큼이나마 보탬이 되는 건가 내가 썅 장기말놀음이나 하자고 이러고 있는 건가, 근데 나는 왜 이렇게 대갈빡이 개찌질이 찐다 쪼다라서 이 고생이냐, 머리가 나쁘면 모르는 게 많아서 그런다 씨바.

3. 진전이 없다. 돌아 버리겠네. 사실은 내가 잘 안다. 뭔 소린지 알아들을 수도 없는 개소리를 뭔 생각인지 알지도 못한 채로 개 짖듯이 짖어대고 있다는 거, 근데 그게 좀 좆나 싫어서 어떻게 벗어나 보려고 안간힘을 쓰고는 있는데, 애초에 이런 기본적인 일에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어야 한다는 거 자체가 좀 에러 아닌가. 그러거나 말거나 발제 지랄은 이제 끝났고 다시 평정심, 평점심.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하던 대로 끝까지 해 볼 수밖에 없다. 이제 와서 역전 만루 홈런 같은 거 없다. 글쎄, 일단 만루가 아니라 일루주자라도 만들어 보자. 볼 넷으로 나가도 좋으니까, 제발 좀 이 버러지야. 야구만 연습이냐, 학문도 일단은 연습뿐이다. 연습만 하다 인생 종치겠네 씨바.

-蟲-

P.S. 기대만큼의 실망. 신뢰만큼의 배신감. 자기애, 그 만큼의 자괴감. 철학을 믿는 인간을 믿는 나를 믿는 게 날 이렇게 몰아 세우는 이유가 된다면야 뭐 그건 나름 자부심을 좀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

저작자 표시
Posted by 버러지

Trackback Address :: http://oistros.tistory.com/trackback/810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월요일에 지도교수님께 들고 갔던 발제문은 된통 깨졌다. 영향사를 써오랬는데 이건 영향사가 아니지 않느냐시며, 영향사라는 말뜻을 숙고해 보지 않은 게 아니냐시며, 전혀 이해를 못 한 것이 아니냐시며, 이틀 남았는데 다시 해 보겠나 하시더라. 된통 깨지고 이것저것 듣고 그래서 다시 쓰고 있는데 써 놓고 보니 별반 달라진 것도 없어 보인다. 적어도 말귀는 잘 알아먹는다 소리 듣고 자랐는데 이제 보니 그것도 아닌가 보다. 지난 학기 다른 교수님 강의에서도 그랬고 지지난 학기 또 다른 교수님 강의에서도 그랬고. 학부 졸업 논문 쓸 때도 그랬고, 학부 학회 발표 논문 쓸 때도 그랬고.

2. 들이 받고 된통 깨지고 나동그라지고 자빠지고 다시 일어서고 별로 나아진 바도 없고 그닥 배운 것도 없이 미련스럽게 했던 짓을 비스무레하게 또 하고, 또 반복하고, 약간의 변주는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그렇다고 뭐 썩 그렇게 대단히 천지개벽할 전복은 없었지 싶네. 앞으로의 인생을 가늠해 보려고 해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고집 부리고 들이대고 쳐맞고 나가 떨어지고 또 들이대고. 딱히 성공이나 성취를 바라지는 않는다만 그럼에도 작은 진전 정도는 욕심이 난다. 최소한의 한 걸음, 적어도 내가 나아가고 있다는, 그리고 어떤 방향을 향해 가고 있다는 그 만큼의 확신을 줄 단 한 걸음, 그 정도만 되어도 별 다른 아쉬움은 없을 것도 같은데. 남들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어깨싸움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내 걸음 말이다. 내 길 말이다.

3. 요즘 '오늘의 낭만부'라는 웹툰을 챙겨 본다. 거기 나오는 동양철학 교수가 서른 훌쩍 넘은 복학생에게 묻는다. 누구 아느냐고. 사고사로 죽었다는데 안타깝다고. 그 누구는 소위 운동권 아가씨고, 시위하다 죽었는지 어쨌는지. 펜이 칼보다 강했던 적이 있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무력한 지식인. 행동하는 지식인이라는 얘기가 좀 나돌더니만 요샌 들리지 않고 폴리페서니 뭐니 요상한 외래어가 그 자리를 차지한 듯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학문이 가장 학문다울 때 학문보다 더욱 부끄러운 것이 있을까 싶다. 그러나 학문답지 못한 학문도 그 못지 않게 수치스럽고 치욕스런 짓이기는 매한가지일 듯. 어떻든 사람 하나 살리지 못하는 비겁함이고 게으름이지 않은가. 이 따위 자조나 해대는 주제에 꼴에 뭐라고 뭘 한답시고 책 붙잡고 늘어지고 있는지.

4. 곧 등록금 분납 3차 납부기간이다. 아니, 오늘부터구나. 오늘 오후에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발제를 해야 한다. 아마 또 깨질 것이 분명하니 혼자 술 마실 자리 하나 알아 봐야 하겠는데, 가려고 생각했던 술집 젊은 사장이 향방작계를 나간단다. 독주로 몇 잔 마시고 말아야지. 그러고 보니 나도 예비군 가야 하는데 과사에서 연락이 없다. 이미 지난 듯. 또 가을 즈음에 가야 하려나. 잠 안 자면 한 12시간 정도 남았구나. 제논 역설의 형식적 특징이랑 파르메니데스의 진리조건이랑 파르메니데스 믿음 편의 역설적 성격 쓰고 결론으로 제논과 파르메니데스는 한 몸 한 뜻 이러고 써갈기고 서론 채우고 뭐 아슬아슬할지, 좀 여유가 남으면 쪽잠 좀 자다 나가고.

5. 비루하고 무능하고 어이없이 게으른데 여전히 나는 내가 왜 대학원에 합격했는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나랏돈 빌어다가 학비 대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무슨 깡으로 계속 공부하겠다고 억지를 쓰는지도 잘 모르겠다. 거 옘병할 거 게다가 주제도 지 꼴리는대로 잡아 놔서는 감당도 못할 거 일만 벌리고 있고. 죽겠다고 지랄하던 놈이 운 좋게 철학 붙잡아 버티고 있는 건 알겠는데, 글쎄 이게 나 하나라도 구원을 하긴 하려나, 남 구하진 못해도 추잡하고 더러운 이 몸뚱아리 하나는 어떻게 건사하게 되려나, 그런데 그딴 게 무슨 학문인가 싶기도 하고. 진창 가운데 연꽃 따위 그냥 가증스러울 따름이다. 하수구 시궁진창 한 마리 버러지나마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으나 이제 와서는 버러지만도 못하달지 뭐랄지. 누가 굶고 떨고 그래서 화를 내다 쳐맞고 쫓겨나고 그렇게 사회가 굴러가고 그렇게 세계가 합작을 하여도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느냐 하면 그게 다 끝나고 모든 것이 다 갖춰지고 그러고 나서도 추구할 게 남을 만한 그런 쓰잘데기 없고 거추장스러운 뭔가를 하고 있는 것이지. 이 난장판도 거기에 대고 질러대는 욕지기도 모두 진짜가 아니라고 배짱을 부리면서 말이지. 진짜로 한 번 짠하게 '진리가 아니라면 내겐 전혀 기쁘지 않다'라고 아가리를 놀리려면 천지사방 주둥이로 다이다이 떠가면서 죽을 각오를 하고 진짜로 뒈져야 하는데, 우리 쏘오크라테에쓰 형아처럼 말이지. 그러지를 못하지. 몰라도 아는 척을 해야, 쓸 말이 없어도 끄적거려야,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주둥이 하나로 열심히 입을 놀리고 야부리를 까야, 수료를 하고 졸업을 하고 학위를 받고 그래야 책 붙들고 살 시간 몇 년 더 유예받을 수 있는 찌끄래기 주제에 뭘 어쩌겠나. 제 무지 앞에 정직하지 못한 그딴 거적때기 난 척이나마 그래도 꼴에 학문이랍시고, 이러고 산다. 힘내서 버틸 이유가 있긴 있어서, 그리고 또 하나 생기기도 하여서, 버텨는 보겠다만. 어쩌겠나, 어느 정도의 변주가 섞인 반복에 반복에 반복이지.

-蟲-

저작자 표시
Posted by 버러지

Trackback Address :: http://oistros.tistory.com/trackback/809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일단 내 개인적인 충분히 정당화되지는 못한 신념이 하나 있는데 남의 심적 고통 가타부타 할 거 없다는 거다. 아프다고 하면 아픈 줄이야 알겠지만 얼마나 아픈지 어떻게 아픈지 그게 무슨 측정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고. 껍질만 발라 먹고 쏘시지만 남은 핫도그를 바닥에 떨어뜨린 아이의 심정을 비웃는 건 별로 어른스러워 보이지도 않고. 걔가 힘들면 힘든 거다. 그래서 난 아무래도 아프니까 청춘이라느니 하는 개소리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2. 됐고, 일단 석사과정, 박사과정, 박사후 연구원 과정, 강사, 조교수, 부교수, 정교수 뭐 그런 인생길에서 가장 엄살이 심한 시기가 제일 앞의 둘일 거다. 학부는 술 먹느라 바쁘지 않았나? 어쨌든. 저 길에 들어서면 보통 두 종류의 충격을 받게 되는 듯하다. 하나는 자기가 생각한 '학문'이란 것과 학계 생태계의 미생물들로서 직접 수행하는 '연구' 사이의 괴리이겠고, 다른 하나는 깔삼하게 말해서 돈 문제겠다. 전자와 관련해서 다시 학자적 양심이랄지 자기 자신에 대한 객관적 평가라든지 그에 따라 가늠되는 목표의 실현 가능성(보통 당연히 낮지)이라든지 하는 문제들이 따라 들어올 테고, 뒤쪽에서는 석사 때는 이것만 따고 관두면 어디 취직할 수 있을지, 아니면 박사까지 갈지, 곁다리 걸고 유학 준비를 할지, 갔다 오면 강사질을 해먹을 수 있을지, 그거 해서 먹고 살 수 있을지, 혹시 로또 맞듯 빈 자리 나서 뿅하고 교수가 될 수는 없을지 그런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될 거다.

3. 전공자와 비전공자를 불문하고 그렇게들 좋아라 하는 '효용성'으로 보자면, 그리고 내가 다른 전공을 해 본 적은 없으니 철학만 놓고 얘기를 하자면, 이게 좋은 건 분수를 알고 자괴도 과대망상도 좀 걷어낼 수 있게 된다는 거다. 읽고 생각해서 이해를 하고 그걸 아는 만큼 설명하고 모르는 거 묻다 보면, 내가 이 만큼은 가고 또 여기까지인 거구나, 뭐 그런 게 느껴진달지. 거기서 이제 막 철학사에 이름을 남기겠다느니 미해결의 문제들을 풀겠다느니 자신만의 사상을 내놓겠다느니 그런 개꿈이 깨어지질 않는다면 헛공부한 것이거나 아님 그냥 그러고 살다 말겠지. 그렇지 않으면 통상 보이는 반응이 자괴감에 빠지고 우울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인데, 인생은 짧고 학문은 음, 좀, 그러니까. 그리고 정직하게 공부한다는 게 결국 내 얘기 먼저 한 놈 있나 알아 보고 그 놈은 왜 그 소리 했나 확인하고 그걸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그거 설명한 다른 놈 얘기도 들어 보고 하다 보면 세상에 잘난 놈 수두룩 빽빽이고 내 생각 같은 거 어지간해서는 누구 하나는 분명 해서 책까지 냈던 발상이고 뭐 그러다 보면 있으나 마나한 대체 가능한 소모품만도 못한, 그러니까 들어갈 나사 다 들어가고 대용품도 넘치는데 그 사이에 낑겨 있는 잉여에 불량품 같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 아닌가 싶다는 거다. 이 정도 되면 이제 스스로 선택해도 괜찮을 듯싶다. 계속 한다면 자기 위안이고, 그래도 뭔가 비비고 들어가 보탬이 될 구멍이 보인다면 다행이고, 그도 아니면 때려 치워도 충분히 그럴 만한 일이기도 하고.

4. 석사 학위까지야 아직 인생의 선택지랄지 할 것이 남아 있다고 본다. 따고 다른 거 준비를 하든 아니면 중간에 때려 치우든. 문제는 박사과정인데, 이건 논문 준비 하다 보면 주제를 좁혀 들어가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보통은 국내 논문들은 대강 다 훑어 보게 되고, 그러다 보면 그 사람들이 안 건드린 것을 잡다 보니 결론은 아무도 이걸 모른다는 거다. 그런데 또 그렇게 좁은 길이다 보니 외국으로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고 그래서 그 쪽 연구서들, 논문들 읽다 보면 국내에서 논의에 들어가기 전에 공유해야 할 전제가 너무 많아지는 것이지. 근데 그걸 어느 세월에 다 설명하고 있나? 그래서 논문 심사 과정에서 서로 딴소리만 하다 마는 것이지. 공부하는 사람은 자기 얘기에 파묻혀서 얘들이 뭘 모르는지도 감을 못 잡고, 질문하는 사람들도 지금 얘가 왜 이런 소리를 하나 싶고. 근데 그러다가 1년, 2년, 자꾸 시간은 흘러 가고, 그러는 사이에 취직 제한연령 슬슬 넘기고, 어쩌다 보면 가족도 생기고, 생계에 허덕이고, 그런데 이거 딴다고 무슨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묶인 신세이면서도 거기 빌붙어 숨어 있는 꼴이기도 하니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 위로는 선배들이 지층을 이뤄 자기는 화석으로 짜부라질 지경이고. 프로젝트 껴들어 가서 돈 좀 벌려고 해도 그것도 다 때가 있어서 배 고프다고 밥 나오는 거 아니고. 근데 사실 이 지랄이 나는 걸 석사 들어갈 때 모르고 들어간다는 거 자체가 좀 에러인지라, 뒤늦게 한탄하며 '어구, 우리 석사님 힘드셨쎄여, 우쭈쭈, 엄마한테 모유수유 더 하고 오세염' 이러고 비운의 주인공 코스프레 하면서 불행경쟁의 선두주자로 목에 힘을 주는 꼴은 좀 안쓰럽기도 한 것이다.

5. 이러니 저러니 해도 지 하고 싶은 거 붙잡고 하면서 푼돈이나마 나온다는 게 남들에 비해서 사정이 나쁘지는 않고, 힘든 건 알겠다는데 그냥 힘들고 말면 되는 거고, 문제는 양심에 찔려서 힘들어하는 모습이 상대적으로 덜 보일 때 화가 치민다는 것 정도이려나. 진짜 힘들어야 할 건 제쳐두고 뭘 엄살 부리고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고. 방황하고 헤매는 게 자랑일 나이도 아니고. 어차피 글이 사람 읽으라고 쓰는 거라면 아무리 상대가 초딩 찌질이라도 다 알아먹게 설명을 해야 그게 제대로 아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네. 뭐 결론은 결국 내 자신에게 하는 소리가 되는데. 어쨌든 후배놈 하나 공부 좀 해 보라고 했다가 지나치게 시덥잖은 찡찡거림들이 천지사방에서 쏟아져 나와서 홧김에 한 번 써갈겨 봄. 한 녀석은 일단 석사 진입은 결정을 했는데, 정말로 공부가 좋아서 들어서는 듯하여 다른 쪽 문제들 때문에 힘을 좀 뺐으면 좋겠다 싶은 거고, 또 다른 녀석은 인생 아무데나 박치기 했다가는 유리멘탈 아작날까 저어되어(사실은 심적 고통이야 어찌 되었든 실생활에 오는 충격이라는 게 있지 않나) 좀 그나마 폭신폭신한 학계 놀이터에서 연습시합 좀 하다가 적당히 빠지라는 의미로 추천 중인 거고, 어쭙잖게 현실파악도 주제파악도 게다가 문헌 파악도 못하는 녀석들도 몇 있어서 그것들은 일단 공부부터 제대로 하고 나서 더 할지 말지 생각해 보라는 거고, 그러거나 말거나 당장 내가 문젠데 이 무슨 오지랖인가. 

-蟲-

P.S. 그러거나 말거나 후배녀석 트윗에 예전에 트윗으로 스쳐 지났던 온갖 사람들이 다 얽혀 있다. 그 녀석 일하는 곳에 손님으로도 출몰들 하시는 듯하고. 처음 트윗을 하고 싶어 못 견디게 만들었던 사람들은 많이들 사라져서 별로 계정을 되살릴 생각은 없지만. 근데 저 사람들 다 학계라든지 대학원 학위과정이라면 치를 떠는 사람들 위주로 되어 있어. 좋지 않아-_- 난 지도교수한테 까임 당하러 가야겠는데, 끝나고 시간 봐서 저기 가서 술이나 한 잔 해야 하려나.

저작자 표시
Posted by 버러지

Trackback Address :: http://oistros.tistory.com/trackback/808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철학적 질병.

생각 2012/05/06 15:58 |

  요 며칠 사이에 김영건 선생님께서 올리신 글들 두 가지. '존재(링크)'와 '철학적 그림(링크)'이다. 앞의 글은 존재사와 계사의 구분, 그 근거가 되는 현대논리에서의 존재양화, 이를 바탕으로 한 고전적인(혹은 전통) 형이상학에 대한 간단한 반론이다. '있다'는 것의 의미가 물리적 사건에만 한정되는 것인지, 그리고 여기에서 다루어지는 '있다/~이다'와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이야기하는 '있다-~이다'가 한 묶음으로 다루어질 수 있는 것인지 등은 의문이 남는다. 전(全), 지(知), 능(能), 선(善)과 같은 개념들을 예화하는 개체가 있는지, 그리고 그 예화가 이러한 개념들의 정의를 완벽하게 재현하지 못하리란 점에서(아마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플라톤의 반박과도 맥락을 같이 할 것이다) 그러한 개념들이 성립하고 더 나아가 결합되어 '신'이라는 개념을 구성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이에 대한 분석철학의 설명이 한 가지이기만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어떻든 신이라는 개념을 예화하는 개체 x의 존재여부가 그 개념 자체에서 논리적으로 분석될 수 없다는 것과 '둥근/사각/형'이라는 개념 자체가 자기모순이라는 것을 고려해 보면 이 둘을 유사한 사례로 들기는 어려운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정의된 개념의 분석만으로는 그 개념을 예화하는 개체의 존재 유무를 따질 수 없다고 하더라도, 반대로 그런 예화하는 개체가 그 해당 개념을 예화하는지 아닌지 여부는 무엇으로 판별할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실제로 모르겠다). 그것은 사건들의 인과를 통해 경험적으로 확인되는 것인가? 말하자면 빨간색이라는 개념을 예화하는 개체가 있다는 것은 어떤 개체가 빛을 매개로 관찰자의 시신경을 자극하여 빨간색의 심상을 머릿속에서 기능하도록 촉발할 경우 확인된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근데 여기에서 그러한 인과관계가 문제라면 자연법칙이 자연사물들을 인과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법칙을 사물이 예화하는 것이라고 이해될 여지도 생기는 것 아닌가? 그럼 논리법칙이 자연법칙을 제한하므로 사물들이 간접적으로 논리법칙을 예화하는가? 그런데 이 개념들의 규범성이나 지향성이 물리적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면(이 자체가 논의의 대상이겠지만) 그러한 개념들에 대해서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이데아가 있다고 말할 때 플라톤은 그 모상으로서 사물들이 있다고도 말하며 그러나 이 경우 앞의 '있다'와 뒤의 '있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거나 혹은 아예 다른 의미인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이것은 단지 존재사와 계사의 혼동으로 말미암은 오류에 불과한가?  '철학적 그림'은 그냥 한 문단을 옮겨 보기로 한다.

 "쉽게 도사가 되는 것도 경계해야 할 일이지만, 마찬가지로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단어, 개념이 엄밀하게 정의되지 않는다고 그것들이 갖고 있는 규범성을 무시하거나 혹은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논증이 선결 문제 요구의 오류를 범한다고 간주하는 것은 비트겐슈타인의 표현법에 따르면 우리가 걸을 수 있는 대지를 부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거친 대지, 혹은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그 곳에서 우리는 사유하고 행동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의 힘은 논리적 차원에서 절대적이다. 그 규칙을 따르지 않는 사유가 진리를 보장받을 가능성은 없다. 그런데 우리 사유의 대상은 결국 '거친 대지'이다. 정화되고 순수한 절대적인 개념들의 형식적 관계는 얽힌 실타래를 난도질해 버릴 위험이 있다. 그러나 그런 단절 없이 얽힌 실이 당겨지고 매듭지어져 풀리지 않는 쓰레기로 전락해 버릴 위험 또한 분명히 있다. 파르메니데스가 규칙을 고민하고 제논이 그 규칙과 현실 사이의 단절을 드러내 보인다면, 이와 같은 문제제기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참인 믿음과 정당화된 믿음 사이의 괴리는 게티어를 종이 세 장 가지고 교수가 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우리가 다른 문제를 고민한 적이 있었나 싶을 지경이다. 객관적 진리의 세계, 형이상학적 가능성의 세계, 논리적 차원이 허용하는 그 전 범위를 아우르는 논증은 형식적인 것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규칙의 준수를 포기하고 경계를 허물고 어느 정도 오차를 허용하는 추정의 방식으로는 필연적인 참을 보장해주는 토대에 발을 딛고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현실의 그 어디에서도 뒤섞이지 않은 사유에 합치하는 사태 따위는 발견되지 않는다. 엄격한 불가지론과 인식적 회의주의 아니면 폭력적인 유아론, 어느 쪽이든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다는 고민이 이어져 왔다. 나는 물론 어떤 진전과 개선이 있어 왔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게 어느 한쪽으로 나아가고 있는 길인지, 타협점을 찾아 가는 길인지, 제 3의 길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蟲-

P.S. 존재양화와 관련하여 인식론에서 문제 삼는 것은 경험적 명제에 대한 인식에 국한될 것으로 생각되긴 하지만. 이 범위를 넘어서면 '존재하지 않는 대상에 대한 참인 서술'의 예로 논리적 참인 명제, 수학적 참인 명제, 그 외에 여러 동일성 명제도 포함될 듯. 하지만 그게 핵심은 아니니까.

저작자 표시
Posted by 버러지

Trackback Address :: http://oistros.tistory.com/trackback/807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발제 준비 중. 파르메니데스가 긍정, 부정, 동일률을 의식하고 이로부터 모순율과 배중률을 이끌어 냈다고 보고 믿음 편에서 엄격적 객관적 진리의 기준이 경험적 믿음(생멸, 다수, 변화, 양)이 전제될 때에는 이 규칙을 준수할 수 없음을 보여주려 했다고 봤다. 그리고 제논은 이 과정에서 파르메니데스가 존재사와 계사의 의미가 미분된 상태에서, 그리고 기존 자연철학자들의 개념들을 수정 없이 그대로 인용함으로써 귀류법의 적용례로서 믿음 편을 구성하는 데에 실패했다고 보고 이를 더욱 엄밀한 방식으로 재구성했다고 해석하고자 했다. 그러다 보니 Diels, H., revised by Kranz, W., Die Fragmente der Vorsokratiker, vol.Ⅰ, Weidmannsche Buchhandlung, 1903. 여기에서 제논에 학설에 대한 해설 중 21번째 것(DK29A21로 축약 표기한다)에서 문제가 생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제논은 있으려면 크기를 가져야만 한다고 봤다'라는 헛소리를 하고, 그에 대해 심플리키오스와 에우데모스가 반론을 하는 식인데 그 반론에서 '여럿은 하나들로 이루어진 다수(2 이상의 것들)'라는 게 모순이라 말하고 있다. 그런데 '1+1=2'에서 앞의 1과 뒤의 1의 구분은 질적인 구분이 아니지 않나? 동질인 것들의 수적 상이성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산술이 불가능해지는 거 아닌가? 문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일단 단일성을 수로 보지 않는 듯하다는 건데. 얘들도 그런 건가? 페아노는 뭐라고 그러더라? 프레게는 뭐라 그러지? 음, 그런데 파르메니데스를 플라톤이 받아들였다고 하면, 프레게에게 붙여진 '수학적 플라톤주의'라는 별명은 잘못된 거 아닌가? 어쨌든 엘레아 학파쪽 애들이랑 다르게 보는 것 같은데. 일단 더 문제는 그렇든 어떻든 바로 그 당대에 산술을 한 사람들은 뭐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건가 하는 점이다. 아니, 의식은 못 하더라도 전제하고 들어가는 그런 정의가 있긴 할 텐데. 역시 졸업 논문 유클리드 정의 분석으로 가는 건가=_=? 유클리드 하니까 또 기하 쪽도 의문이 드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제논에 대한 오독 뒤에 '크기'에 대해 비판하면서 점 얘기를 한다. 근데 기하학적 점 같은 거 실재로 있는 거라고 생각 안 한 거잖아,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고 어차피 기하학적 공간에서 질적으로 동일한 것들은 위치로 구분되거나 그냥 하나이거나 둘 중 한 경우니까(조금 겹치든 어쩌든 모르겠고) 결국 문제는 산술 같은데. 굳이 변명을 하자면 그냥 가사자들의 믿음 차원에서 정당화되지 않은 전제들을 깔고 공리계 내에서 자기모순만 일어나지 않으면 된다는 식으로 규칙 따르기 놀이를 한 거라고 산술을 이해하는 게 되려나? 그러고 보면 플라톤이 『폴리테이아』에서 산술이나 기하의 방식은 원칙을 정당화하는 게 아니라 원칙에 따라 모순 없이 결론에 가는 것이라고 봤긴 했지. 님들 지금 산술 무시하셈=ㅁ=? 근데 지금 이게 문제가 아니고 발제문에 논의 대상이 되는 문헌들 집어 넣고 아직 마무리 못한 파르메니데스와의 비교도 써 넣고 논문 뒤져서 다른 놈들은 뭔 소리 하나 또 채워 넣고 해야 하는데=_= 하다 보니 좀 이게 내가 하려는 학문하는 방식은 아닌데, 하는 생각도 약간. 나는 근거들을 통해 이끌려 나아가길 바라지 내가 기획한 틀 안에 자의적으로 선택한 근거들을 짜맞춰 넣기를 바라는 건 아니걸랑. 근데 시간 없을 때는 이게 쫭이라서-_- 미치겠다. 앞서 냈던 중간보고서도 수정보완해서 다시 올려야 하고, 이건 또 다음 수요일 발제인데 주말까지 메일 보내고 월요일에 따로 보자고 하시던데, 게다가 지도교수님 수업. 한 주에 일곱 가지 강독 기회들이 있는데 그거 다 제쳐두고 이러고 있음. 이러고 있는데 결과가 이 모양. 헉, 벌써 새벽 3시임. 4시 되면 10cm 노래 틀어 놓고 좀 쉬어야지. 그런데 이러면서 지금도 쉬고 있는 거임. 엉엉, Heath 읽고 싶어. 누가 나랑 고전어-수학 맞과외라도 해줬으면 좋겠는데 사실 난 고전어 싹 다 새로 배워야 한다는 게 함정. 악센트가 antepenult, penult, ultima 이렇게 세 군데에 붙는데 그 악센트 중 circumflex는 뒤의 두 자리만 붙고 grave는 맨 뒤에만 경우에 따라 붙기도 하고 안 붙기도 하고 근데 명사고 형용사고 동사고 다 막 음절 장단 다 변하고 그게 또 예외도 많고 그런 와중에 앞 단어로 강세 옮겨가는 경우도 있고 오오 멘붕멘붕가붕가. 그래도 발음하고 사전 찾고 띄엄띄엄 읽는 정도까지는 해줄 수 있는데-_- 작문 생각 없으면 나 정도면 괜찮지 않나-_-? 작문 요구 안 하는 고전어 자격시험 준비하는 분 계시면 과외 받습니당. 가격이 비싸니 돈이 없거들랑 학부 1학년 전공과목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수학 공부해서 저 가르쳐 주시길. 머엉. 학문의 위엄은 개뿔, 돈 없어서 똥구녕이 찢어질라카는듸. 사교육이 고전학을 먹여 살리는 날이 이 미친 나라에는 오고야 말 테니 두고 보라고. 그래도 학부 고전문헌학과 개설은 안 되겠지. 아, 동양쪽은 있나? 다 필요 없고 Show me the money! 20대 고스란히 공부하는 데 쳐박았으면 이제 데이트 비용 정도는 좀 넉넉해도 괜찮은 거 아니냐!=_=(뭐 쥐어짜면 나오겠지, '절대' 안되는 거야 없으니까.-_- 그냥 심술 한 번.) 됐고 쨌든 파르메니데스랑 제논 좀 흥미진진하네. 여럿이 있으면 왜 안돼? 분할이 동일성을 위협하거덩. 그럼 질적 동일성 유지하면서 수만 여럿이면? 안돼, 하나를 먼저 놓고 그걸 여럿으로 만들려고 하면 결국 하나의 동일성이 다 잡아 먹지, 수만 여럿인 게 어딨어? 그럼 여럿을 먼저 놓으면? 안돼, 여럿이려면 나뉘어야 하고 그러려면 사이에 경계가 있어야 하는데 그 경계가 나머지 둘이랑 나뉘어 있는 거면 또 그 사이에 사이에 사이에... 그럼 하나에서 여럿으로 나뉘면? 그것도 안돼, 나뉘려면 그 경계가 생기고 그게 나머지 둘이랑 또 또 또... 어쨌든 카뮈 말이 맞나 보네, 진리는 견디기 어려운 것이제. -蟲-

저작자 표시
Posted by 버러지

Trackback Address :: http://oistros.tistory.com/trackback/806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12/05/05 18:21 Address Modify/Delete Reply

    저랑 칼큘러스 같이 푸실래요? ㅎㅎㅎ 저도 복습 해야하는데

  2. 2012/05/05 18:32 Address Modify/Delete Reply

    독일어 - 미적분 ㅎㅎㅎ

    • 버러지 2012/05/05 18:55 Address Modify/Delete

      좋기야 합니다만 제가 당장은 시간이 빡쉐서=_=; 금요일마다 뵐 테니 한 번 얘기나 해 보죠~_~ -蟲-

허덕허덕.

생각 2012/05/02 06:21 |

1. 겨우겨우 기한 맞춰서 또 분량 맞춰서 대충 찌끄려 놓은 내 발제문을 보고 있으려니 이게 다 뭔가 싶다. 내게 필요한 게 시간이 아니라 노력이라면, 그러니까 내가 노력이 부족한 거라면, 와, 더 뭘 어떻게 해야 하나 난감하기도 하고. 발제문이 마음에 안 차는 것만큼 내 노력도 마음에 안 차고 그러니까 실은 어느 쪽으로든 여지는 남아 있는 거고, 여지를 남겨 놓았다는 게 내 자신한테 굉장히 부끄럽고 속이 쓰리는 일이긴 하나 다른 한편 솔직히 말하자면 안도감도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일말의 여지도 없이 이게 꼴랑 나라면 아마 다시 기어오르는 시간이 꽤나 걸렸겠지 싶다.

2. 이번 주말에는 애인님과 절 구경 가기로. 만나면 또 좀 이야기해 볼 것이, 결국은 또 내 잘못이긴 한데 지금 내가 들이대자니 괜한 부담만 주는 것 같고, 그래서 잠자코 있자니, 아니 애초에 이게 7년 짝사랑 결실을 맺은 거라 내쪽에서 세월아 네월아 연락도 오면 답이나 하는 정도로 있는 것도 뭔가 주제넘은 짓인 것도 같고, 더구나 이 친구가 또 공부하고 준비하는 일이 그리 시간이 넉넉하지만은 않아서 괜히 방해나 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뭐 그렇다. 뭐 인간관계에 대한 내 지론은 직접 만나서 일대일로, 이니까. 혼자 지레짐작하고 멋대로 단정짓고 그러기는 좀. 그래도 새벽 다섯 시에 잠들기 전에 문자 보내주는 애인님께 상당히 미안스럽구만.

3. Daum에 전상영 작가 만화가 올라와서 반가운 마음에 봤더니 청춘 어쩌고 뭐 그런 얘기다. 청춘, 패기, 도전, 뭐 그런 애기. 나는 어떨까? 초등학교 시절에는 세상이 좀 무서웠던 것 같다. 다 똑같고 다 무채색이고 뭐 하나 사라져도 티도 안 날 것 같고, 나도 저렇게 됐다가 픽 하고 죽어 버리면 끝인가 싶어서. 달리 말하면 튀고 싶어 안달이 났던 걸 수도 있고. 온갖 지랄이란 지랄은 다 해 보려고 안간힘을 썼었더랬다. 밴드 보컬도 했다가 힙합동아리 들어가 안 되는 춤도 췄다가 싸움도 못 하면서 패싸움 따라 다니다 얻어 터져 돌아오고 술 마시고 담배 피고 그러다 또 시를 쓰겠다고 책가방에 시집 한 권 달랑 들고 한참 돌아다니고, 문학클럽을 만들기도 하고 통신 판타지 동호회도 들어 갔다가 코스프레 행사장 안내요원도 했다가 불쑥 집 나가서 아는 형 사무실에서 잡일하고 밥 얻어먹고 살다가, 뭐 이러니 저러니 정신없이 살다 보니 중학교 졸업. 고등학교에 갔는데 내가 뭐 더 해 볼 게 없어 보이더라. 슬슬 나도 남들도 다 비슷비슷해져 가고. 겁이 나서 못 견디겠어서 결국 일 저지르고, 피 줄줄 흘리며 응급실 갔다가 돌아오고, 몇 주 정도 학교 근처 공원 벤치에서 잠 자는 게 일이었지 싶다. 그러다 교장이 불러 두 손 꼭 잡고 '감당 안 되니 나가주게'. 근데 그러고 나서 돌아보니 이리저리 도망만 쳤지 그게 제대로 들이박은 게 아니다 싶더란 거지. 남들 틀렸다고나 할 줄 알았지 내가 쥐뿔 가진 것도 없는 걸 몰랐달까. 남들이야 어떻든 나는 어찌 살 건가. 그런 고민하다가 철학을 만났고, 뭔가 고민 한 번 지대로 뽕을 뽑는 것 같아 이거 해야게다 싶더라. 해서 대학가겠답시고 스파르타 기숙학원 들어가 쳐맞고 밤새고 그러다 보니 검정고시 붙고 대학도 가고. 근데 철학도 시작을 잘해야 하는데 내가 좀 엇나가서 이 사람 저 사람 이름 난 사람들 얘기만 주워 섬기고서는 뭔 소린지도 모르고 씨부려대면서 세월 날려 먹었지. 그러던 차에 소크라테스 형아를 딱! 플라톤 형을 팍! '음미되지 않은 삶은 인간에게 살 가치가 없다' 그러더라고. 이거다 싶지. 아, 내가 병신이고 모질인데, 그래서 나를 좀 갈궈야 쓰겠는데, 이 인간들은 지가 지 갈구는 법을 좀 아는 것 같더라 이거지. 해서 제대로 해 보겠다고 고전 그리스어, 고전 라틴어 배우고, 번역이랑 주석도 봐야 하니 독어도 배우고 영어도 배우고 근데 불어는 아직. 아는 게 개뿔 없어서 대학원까지 왔는데, 그게 어쨌든 내가 나한테 궁금한 걸 물어가던 중인지라 남들이고 저절로 길이 갈리더라고. 이제 내 관심사는 플라톤의 수리철학인데, 국내에는 전공자도 없네. 남들 다 어렵다, 가망 없다, 하지 말라 뜯어 말리기 바쁘고. 뭐 솔직히 돈도 없고 집안도 초라하고 게다가 능력도 없어서 거기에 아무도 관심 없고 혼자 궁금한 거 하겠다고 달려들면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 막막하긴 한데. 그래도 어쨌든 내 두 발로 내 걸음으로 내 길 걷는 기분을 이제 겨우 알았는데 이걸 어찌 관두나. 정직하고 성실하게 차곡차곡 쌓아가는 맛을 이제 알았는데 말이지. 결론은 결국 나란 놈은 평생 중2병이란 거지. 왜 살아야 하나, 그거 고민하다 인생 날려먹는 거지. 혹시 왜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게 살아야 할 이유라면야 인생 한 번 거하게 잘 살고 가는 걸 수도 있고. 그러거나 말거나 당장 다음 주 학비 낼 일이 걱정이다, 흐.

-蟲-

저작자 표시
Posted by 버러지

Trackback Address :: http://oistros.tistory.com/trackback/805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yg 2012/05/02 11:33 Address Modify/Delete Reply

    플라톤 수리철학이면 주로 티마이오스 분석하는건가요?

    • 버러지 2012/05/02 18:28 Address Modify/Delete

      선택지가 그리 많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책이나 테아이테토스 뒷부분, 국가에서 선분비유나 메논, 뭐 그 정도가 주로 언급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제가 생각하는 주제에 맞아 떨어지는 문헌을 잡는 것도 당장은 어렵네요;; -蟲-

    • yg 2012/05/02 21:06 Address Modify/Delete

      아, 그렇군요. 완성된다면 흥미로운 논문이 될수도 있겠네요. 저는 지방에서 수학전공하는 사람인데 혹시 플라톤 읽다가 뭔가 생각나는게 있으면 리플로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 버러지 2012/05/02 21:12 Address Modify/Delete

      아, 말씀 고맙습니다^^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蟲-

우왕좌왕.

생각 2012/04/30 03:40 |

1. 뭔가 열정에 가득 차서 미친듯이 달려들고 매달리고 그런 일들을 사람을 두고 해 본 적이 없다. 나란 놈이 사람에 대해 소유욕 같은 걸 느끼는 놈도 아니고. 지금 어떻게 다행히 받아들여진(거라고 믿고 싶긴 합니다만=_=) 마음도 어찌 표현을 할지, 또 표현을 해야 하는지 그냥 잠자코 있어야 하는지 여하간 여러모로 서툴고 어색하고. 이전까지야 그냥 바라보고 얘기 들어주고 적당히 공전하듯 일정거리에서 서 있는 게 맞는 일이기도 했고 또 나로서도 익숙한 일이었지만 이제는 이게 여전히 이렇게 있어도 괜찮은 건지 어떤지 뭔지 모르겠네. 새벽 3시인데 집 앞 골목에서 어떤 여자가 비명을 지르고 악을 쓰며 울고불고 욕을 해댄다. 아마도 내 평생에 앞으로도 저런 격정을 드러낼 일은 없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소위 그 정형화된 '연애'라는 것이 도대체 뭔가 싶기도 하다. 사람이 다 다르고 그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조합도 어느 하나 다른 만남들과 같을 수가 없을 것인데 말이다. 불같은 열정으로 서로 할퀴고 물고 뜯고 소리를 지르고 울고 끌어안고 미친듯이 격렬하게 키스를 하고,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그런 연애 말고라도 그 집착이랄지 욕심이랄지 하는 게 천성적으로 내게는 부족하다 싶기도 하다. 서로 이렇든 저렇든 당장 해야할 또 하고 싶은 일이 있는 사람들이고 또 애가 타고 속이 끓는 불 같은 연애를 하자고 만나게 된 것도 아니니 우린 이대로도 괜찮지 않을까? 7년 가까이 기다려 겨우 마주 보게 되었다. 조금 느리고 더디더라도 이전과는 달리 어긋난 채로 자꾸 멀어져 가는 그런 길은 아닐 테니, 늘 그래왔듯 계속 믿어주고 지지해 주고, 좀 달라진 게 있다면 종종 얼굴도 보고 밥도 먹고 길치 둘이서 산책도 하고 뭐 그러면 된 거 아니겠나. 부족한 걸 채워갈 시간은 충분할 테니까,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 문자라도 보내 볼까 하다가 가뜩이나 요새 잠도 못 자는 듯하던데 괜히 깨우는 건 아닌가 싶어 참는다. 이런 낯선 두근거림 같은 게 참 고마운 일이다. 마음 한 구석 또 거부 당하거나 혹은 잡아야 할 때 붙잡지 못해 놓치게 될 수도 있겠지 하는 두려움도 있지만, 나같은 놈이라도 필요로 해주고 내게서 위안을 찾아주는 지금만으로도 더 욕심부릴 생각도 없어서, 실은 그게 뭐 굉장히 두렵지도 않고.

2. 후배들에 대한 막연한 기대나 희망 혹은 애착 같은 것이 왜 이렇게 떨치기 어려운지 모르겠다. 내가 무슨 교육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꼰대노릇 하면서 희열을 느끼는 변태도 아니고 그 녀석들에게 무슨 죄를 진 것도 없는데. 그냥 내가 생각하는 길이 옳다는 걸 다른 이들을 통해 증명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아니다. 나는 녀석들이 받아왔던 상처들에 분노하고 죄책감을 느낀다. 내가 그렇게 욕을 하고 증오하고 경멸했던 세상이 아직까지 그대로이고, 내가 치를 떨었던 아픔들을 다른 이들이 여전히 반복해서 겪고 있는 것을 보면서 자괴감에 빠진다. 마치 맞고 들어온 자식에게 화를 내는 부모의 마음 같은 것이려나? 혹은 다른 반 교사에게 혼나고 있는 자기 반 학생을 불러다가 더 심하게 야단을 치는 담임교사의 기분이 이런 것일까? 그들이 바보 멍청이처럼 당하고만 앉았는 게, 그렇게 밖에서 쏟아지는 공격들만이 아니라 자기들 스스로 또 자기 자신을 몰아 세우는 그 꼴이 보기가 싫고 답답하고 괜히 내가 억울해서 못 견디겠는 거다. 내게 정직과 성실의 힘, 그런 것들에 근거한 용기를 알게 해준 학문이란 것이 그들에게도 같은 것을 보여주고 손에 쥘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갖는 것일지도 모른다. 스스로 자신을 정당화할 수 있을 때 부당하고 거짓된 공격들에 아무리 상처를 받더라도 의연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될 때 그런 식으로 스스로 일어선 사람들을 보면서 이 근거없는 자책으로부터 나도 해방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신경이 쓰이는데, 사실은 신경 쓰고 사는 건 내 방식이 아니라서. 지성과 합리로 자신의 축을 삼고 기둥을 삼는 이들이 늘어날 수록 저 철학이란 학문의 그 허무맹랑한 거창한 꿈이 그나마 실현의 기초를 다질 실마리나마 잡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냥 내 미적 취향일지도 모른다. 가능하면 가장 고유하고 또 선명하게 그 각자가 자기 자신으로 있기를 바란다.

3. 파르메니데스의 단편 중 의견(doxa)에 관한 부분을 나는 순전한 거짓을 드러내려는 의도로 쓰여진 것이라 짐작했다. 그런데 Long이란 사람이 쓴 논문을 보니 이 부분에서 나랑 생각이 거의 같다. 다만 가사자들의 의견으로 이루어지는 세계관이나 우주발생론이 거짓임을 보여주는 기준이 되는 원칙들에 대해 설명이 부족한 듯하고, 또 의견 부분이 이후 제논이 행했던 작업의 기초나 모체가 된다는 내 생각에 따르자면 이 부분도 일종의 귀류법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 식으로 Long이 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수요일까지 발제문 만들어서 발표까지 해야 하는데 아직도 이렇게 더듬거리고나 있다니 나도 참 나다. Heath를 좀 더 뒤져 보면 파르메니데스가 피타고라스 학파나 아니면 당대 엘레아 또는 주변 지역의 산술이나 기하에 영향을 받은 측면을 설명해 놓은 걸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걸 붙들고 쓰고 싶은데 여전히 나는 좀 둔하고 미련해서 시간 안에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진 못할 것 같다. 시를 쓰던 나도, 학교 땡땡이 치고 뒷산에서 담배를 피거나 학교 앞 공원 벤치에서 누워 자던 나도,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던 나도, 손금을 본다느니 타로점을 본다느니 하며 싸돌아다니던 나도 다 난데, 유도 대회에 나가 대자로 뻗어 탈락하고 스키를 타러 다니고 혼자 밤바다를 보겠다고 갑자기 집을 나서고 그런 모습들이 전부 나인데, 어느 순간 보니 나는 책을 읽고 고민을 하고 글을 쓰는 일에 파묻혀 살고 또 다른 사람들도 그런 모습 말고 다른 모습의 나를 상상하기 어려워 하게 되었다. 지난 과정과 그 안에서 있었던 모든 방황들이 무엇이었는지 가끔 고민해 보게 된다. 내 삶에 일관성이 있기를 바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수학에 대한 막연한 동경, 파르메니데스를 해석하는 내 입장이나 태도, 그런 것들, 지금 내가 평생을 두고 하려는 일로서 철학이라는 거, 그런 것들이 아예 아무런 배경이나 준비도 없이 이제 막 시작된 것이라면 조금은 불안하거나 무서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기대를 건다면, 지난 날 그렇게 미쳐 날뛸 수 있었던 그 힘을 고스란히 거두어 추스려 지금 필요한 일에 필요한 방향으로 집중시킬 수 있고 또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기를 바랄 따름이다. 그런 힘이 필요하고 그것만으로도 부족할 지경이니까. 가끔 그런 생각은 한다. 무대에서, 혹은 일탈을 했던 순간들에서, 말도 안 되는 일에 도전할 때, 그렇게 느껴왔던 두근거림과 떨림과 전율, 희열을 공부하면서도 간혹 느낀다. 나는 여전한 것 같고, 그래서 조금은 기쁘다.

-蟲-

저작자 표시
Posted by 버러지

Trackback Address :: http://oistros.tistory.com/trackback/804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TT 2012/05/01 01:19 Address Modify/Delete Reply

    부르투스 너 마저.

이런저런.

생각 2012/04/25 11:40 |

1. 생각하기를 싫어하지만 알고 싶어 하는 상태. 이게 가능하려면 모종의 정답을 전제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앎에 대한 전통적인 정의에서 정당성 조건을 무시해야 한다. 그래서 설령 존재가 부른다든지 상징계에서 자기를 부정하는 욕망이라느니 뭐라든지 구조가 내재시킨 강박이 주체를 대체한다느니 하는, 간단히 말해서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바라는 것은 정당성이 아니고 단지 참이냐 거짓이냐 그 중에 참이기를 바랄 따름이다. 그러나 근거가 필요치 않으므로 그냥 그럴 듯하면 된다. 권위에 호소하든 공감을 불러 일으키든 어쨌든. 그렇게 얻은 것을 당연히 알지 못하므로 실천할 수 없으나 그에 따라 실천한다는 선언이 가능하다면 딱히 문제될 것은 없다. 시대와 지역과 문화를 건너 뛰어 모든 것을 싸잡아 비판을 가장한 비난을 해대고 그 모든 것을 과감하게도 극복했노라고 자부하는 자들의 깃발 아래에 우르르 몰려들어 좀 교양도 있고 책도 좀 읽고 혈액형별 성격분류나 관심법에 기초한 심리학 따위로 세상을 좌지우지할 수 있으리라 떠들어대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위로를 받는다. 그러나 현실은 개인별로 맞춤형으로 제공되는 것이 아니고 결국 피할 수 없는 직면한 현실이 강요할 때에는 어찌할 수 없이 무력하게 패배하고 좌절하고 자괴한다. 세상이 뜻대로 돌아가질 않아 서럽고 분하여 그 때문에 어린애 투정 같은 헛소리들에 열광하며 분풀이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 여기까지. 이 문장들의 의미상의 주어는 없다.

2. 제논 발제를 준비하다가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 석사학위논문을 보게 되었다. 석사학위논문인데 분량이 200쪽을 넘는다. 분량이야 뭐 중요하겠느냐만 제논의 논증들을 분석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자료들을 조사해 보충해 넣은 것이나 기존 학계 동향을 상당히 폭넓게 아우른 것이나, 또 학위 논문 발표 과정에서 제기된 질문을 그야말로 마음껏 비꼬면서 대답한 과정까지 논문에 수록한 점 등등이 인상 깊다. 전공이 전공인지라 인용된 원전들을 직접 번역해 넣었다는 점도 눈에 띄고. 내가 알기로는 전공을 바꾸었다. 그리고 아마 미국으로 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고리타분하고 지지부진한 이쪽 분야가 마음에 안 들어 떠나 버리는 경우는 많다. 특히 논리적 직관이 타고난, 그리고 말 그대로 '똑똑한' 사람들은 이 작업 전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현실의 문제들, 학문으로서 이 분야의 전망 같은 것들을 재빨리 알아차리고는 미련 없이 훌훌 털어 버리고는 한다. 그래서 떠났을까? 아니면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이쪽 분야에서 인재 하나를 놓쳐 버린 것일까? 아쉽긴 하지만 재미있고 기쁘기도 하다. 이 논문을 보기 전에 내가 제논의 역설들을 두고 쓰고 있던 글과 방향이 겹치는 것도 있어 신기하기도 하고. 그런데 발제 때 그냥 이 석사논문 요약하거나 각자 이거 읽어 보라고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다른 얘긴데, 제논은 분할 불가능한 최소단위로 구성된 다원론을 전제할 경우의 역설들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수적인 구분 가능성을 질적인 구분 가능성에 근거하여 성립하는 것으로 전제하고 있는 듯하다. 문제는 동질의 다수, 예를 들어 '1+1=2'에서 앞의 '1'과 뒤의 '1' 같은 것(물론 앞의 '1'과 뒤의 '+1'이라는 식으로 구분할 경우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을 고려한다면 그의 전제가 유효한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유물론, 원자론, 뭐 그렇게 이야기는 하지만 어쩌면 피타고라스 학파의 영향 아래에서 일종의 '동질의 다수' 같은 것을 고려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고. 더 문제는 제논이 정말 당대 다원론자들을 구체적인 논박의 상대로 상정하고 있었는가 이 점 자체가 불확실하다는 것이겠지만.

3. 유전과 환경요인 그리고 초파리 생식기에 관련한 어떤 논문을 어떤 분께서 소개해 놓았다. 아마 비전공자 대다수가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고 심지어는 키득거리며 '저게 뭐야' 하며 비웃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은 이런 게 치밀하고 엄격한 말 그대로 '자연과학적인 사고'의 한 사례이지 않을까 싶다. 구체적인 사례는 개별적이다. 그리고 그 사태는 관련된 여러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 요소 중에는 원인과 결과의 문제도 들어가고 본질과 속성의 문제도 관련되고 복합성과 복잡성의 문제도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여태까지 가정되고 있는 어떤 자연과학의 전제들이 전제될 것이고 보편과 객관과 개별의 관계 문제가 항상 고려되고 있을 것이다. 땅에 발을 딛고 하늘을 보기, 그건 사실은 그다지 익숙하게 널리 퍼져 있는 사유의 방식이 아니다. 어떻게 일반화시킬 것인가, 그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어디에서부터 일반화의 출발점으로 삼을 것인지, 무엇을 실재성의 근거로 붙잡고 있을 것인지, 그것 또한 여전히 문제이다. 같은 단어의 어미변화와 용례들을 기계적으로 검토함으로써 한 철학자의 형이상학, 존재론에 대한 전체 구조를 달리 잡을 수도 있다. 어떤 하나의 계산식에서 상수 하나를 변수로 수정하는 것만으로 물리적 세계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이해가 뒤집힐 수도 있다. 막연하게 그냥 무턱대고 감각과 물질만이 유일한 진리의 원천이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고민하는 것은 사유의 방식, 정확히 말하면 사유가 정당성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4. 잊고 있다가 다시 생각나 버렸다. 어쨌든 난 이 놈의 나라를 떠나야 한다. 아마 교육에 참여할 기회도 가지기 어려울 것이고 국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연구들 중에 내가 끼어들어 뭔가 몫을 하고 보탬이 될 빈 자리도 생기지 않을 듯하다. 자기만족, 자기만족 하지만 결국에는 구체적인 실천이 어떤 결과를 산출하지 않는다면 그걸 평생을 두고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내 관심과 흥미가 부합하는 자리가 필요하다. 고전 번역을 할 사람도 없지 않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인식론, 형이상학, 윤리학(혹은 가치철학이든 뭐든) 등등 큰 분류들은 그 실질이 어떻든 형식상으로는 모두 구심점이 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 주위로 어찌 되었든 일종의 세가 형성되어 있다. 인정할 것을 인정하자면, 당연히 당장에도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있지만 아마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보다 뛰어난 다수의 사람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 와중에 이 땅에서 플라톤의 수리철학, 이란 것은 관심분야가 되기 어려울 것이다. 아마 외국으로 나간다고 무슨 천국이 펼쳐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거기에는 빈 자리, 허드렛일이라도 내가 바라는 방향에 한 발만이라도 걸칠 수 있는 그런 남은 길이 있을 것이다. 뭐 일단 선택권을 획득한 다음에야 의미있는 고민이 되겠지만. 하는 데까지 해 보고 나면 가는 데까지 가 있을 것이다. 세상은 뜻대로만 돌아가는 게 아니니까, 혼자 사는 것도 아니고.

5. 니체를 고민하는 것은 유의미한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의 글들이나 그의 사상이 어느 정도로 정당하고 설득력이 있는지는 차치하더라도 일단 그 한 사람의 사유 속에 유럽 고전문헌학의 영향, 19세기 독일의 철학과 그에 대한 반발, 전통의 계승과 극복 같은 여러 문제들의 단초들이 섞여 들어가 있다. 그건 알겠다. 뭐 그래도 나는 이제 별로 니체에 관심이 가질 않는다. 어쨌든 그런 니체 자신마저도 경멸했던 그의 추종자들, 그들의 거의 디오니소스적인 광증까지 고려를 해야 하는지는 도무지 모르겠다. 일종의 정신수양 같은 것일까? 물론 이해와 설득이 철학이란 학문의 중요한 지향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서구 근대는 그 대화의 전제가 되는 합리성을 공유하기 위한 방식으로 계몽을 택해 애를 썼으나 그 결과가 니체나 라캉 따위이고, 이제와서 '이해와 설득'이란 게 현실 속의 실천을 위한 목표로 가당키나 한지 의심스럽다. 정말로 세상과 소통해야 하는가? 내 스스로 나 자신을 설득의 대상으로 삼는 것도 괜찮지 않은가? 자기 자신에게 충분히 엄격하다면 그 사유의 결과를 남겨 놓는 것으로 충분한 것 아닐까? 충분하진 않더라도 어쨌든 현재 가능한 최대치는 그 정도가 아닐까? 오늘날의 소크라테스는 겨울날 지하철역에서 얼어죽을 것이고 오늘날의 공구는 국가보안법에 저촉되어 잡혀 들어갈 것이라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나는 패배주의에 쩔어 있는 것일까? 모를 일이다. 고전적으로 말하자면 존재가 비존재보다 우위에 있고 그런 점에서 실천이 침묵보다 가치있는 일일 테고 결국 내가 개새끼일 테니.

-蟲-

저작자 표시
Posted by 버러지

Trackback Address :: http://oistros.tistory.com/trackback/803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내가 지금 제대로 맞게 생각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결론은 좀 더 열심히 살아야할 이유가 하나 늘었다는 것이려나. 김칫국 들이킬 건 없고 오히려 그 동안 허우적거리고 두리번거리면서 시간 낭비했던 자신을 반성하기로 하자. 내가 흔들리거나 넘어지거나 해서는 죽도 밥도 아니게 될 테니까. 오기와 객기로만 버텼고 또 그럴 수밖에 없거나 그래야만 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것 말고도 힘을 내고 버틸 만한 이유가 있기는 하구나. Pax nobiscum.

2. 이번에 제논하고 파르메니데스 정리하면서 이래저래 Heath의 책들을 많이 구하게 되었다. 직접 관려된 것도 있고 돌아 돌아서 고대 그리스 산술과 기하에 관련된 것들도 상당수 있고. 모아 놓은 PDF 파일들을 보면서, 그리고 발제 준비나 중간 소논문 준비 중에 느끼는 것은 내가 주제에 넘치는 강박적인 완벽주의에 시달리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점이다. 그러니까 내 현실적인 능력이나 그에 따른 한계, 그리고 주어진 요구사항, 이러저러한 것들을 고려해서 절충점이나 타협점을 찾아서 알맞게 일처리를 해내야 하는데, 요구치에 휩쓸리느라 산더미처럼 자료만 쌓아놓고 걱정만 해대다가 때를 놓쳐 시덥잖은 말장난이나 몇 장 찌끄리는 결말을 맞이하고 마는 것이다. 평생을 두고 내딛을 걸음의 박자를 당장에 가 닿아야 할 목적지를 향하는 발걸음의 속도랑 혼동해서는 안 되겠다. 호흡을 가다듬고, 이젠 미숙하고 유치한 실수로 시간을 허비해도 좋을 때는 지났다는 걸 명심하자. 또 한 고비 다가오고 있기도 하고.

3.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절실하게 성숙을 바란다. 정말로 간절하다. 이 마음이 여태껏 천방지축 날뛰며 섣불리 이리저리 내딛기에 바빴던 내 두 다리를 붙들고 바로잡아 주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해 본다. 정직이 보답을 받는 길인 바로 그 학문의 길을 걷고자 하는 만큼, 또 한 번 조바심을 추스려 본다.

4. 어머니께서 소싯적(?) 나름의 문학노트 제일 첫 장에 적어 두셨었다는 시가 있어서 기억도 할 겸 남겨 본다.

  너에게

                -신동엽-

 나 돌아가는 날
 너는 와서 살아라

 두고 가지 못할
 차마 소중한 사람

 나 돌아가는 날
 너는 와서 살아라

 묵은 순 터
 새 순 돋듯

 허구많은 자연 중
 너는 이 근처 와 살아라

 

 어무이께서는 아마 그 때엔 이 시가 서정시이기만 한 줄로 알았을 거라고 하시더라. 문득문득 그 꿈 많던 문학소녀를 어찌 달래며 매일같이 직장에 나가고 저녁 늦게 돌아와 집안일을 하고 아픈 몸을 챙겨 약을 먹고 불면증에 시달리며 또 다음 날 출근길을 걱정하시는지, 죄스럽고 괜스레 내가 되려 억울하고 분하기도 하고 그런 상념에 젖는다. 반면에 저렇게 적어 놓고 다시 보니, 묵묵히 책 읽고 고민하고 글 쓰는 학자들, 연구자들, 선생님들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루지 못할 원대한 포부도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의 한계도 막연한 미련도, 시를 두고 이러니 저러니 해 봤댔자 철학한답시고 논증에 목 매달려 드는 놈이 무슨 얘기를 더 하겠냐만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 그 안타까움이나 아쉬움이 귀를 틀어막고 겁에 질려 다가서는 이들을 죄다 할퀴고 생채기를 내려드는 이들에게서 등을 돌려 버리지 못하도록 붙잡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어찌 보면 소크라테스는 참 순진무구했던 사람은 아닐까? '두고 가지 못할 차마 소중한 사람', 그래서 아무리 욕을 듣고 곤경에 처해도 끝까지 붙들고 이야기를 나누고 설득을 하고 '함께' 고민하려고 애썼던 건 아닐까?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너'는 철학이 될 수도 사람이 될 수도 진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렇게 부딪치고 어긋나고 나동그라지면서도 걸어온 길이, 바라보던 방향이, 여긴 아니더라도 '이 근처' 어디 즈음이, 맞는 길이기를 또 제대로 걸어 왔기를 바라는, 자신에 대한 안쓰러움도 있게 마련 아닐까? 혹은 누군가 또 다시 못 다한 길을 마저 이어 걸어주진 않을까 하는 기약 없는 희망이 섞였는지도 모르겠고. 왕년에는 시 써서 상금도 받아오고 그랬었는데 말이지, 어쩌다 이리 되었나? 하하.

5. 내가 좋아하는 신동엽 시도 하나.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쇠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항아리.

   아침저녁
   네 마음속 구름을 닦고
   티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畏敬)을
   알리라

   아침저녁
   네 머리 위 쇠항아릴 찢고
   티없이 맑은 구원(久遠)의 하늘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연민을
   알리라
   차마 삼가서
   발걸음도 조심
   마음 모아리며.

   서럽게
   아 엄숙한 세상을
   서럽게
   눈물 흘려

   살아가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캬, 쥐기네.

-蟲-

저작자 표시
Posted by 버러지

Trackback Address :: http://oistros.tistory.com/trackback/802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외눈박이 학문.

생각 2012/04/21 21:34 |

1. 혹은 절름발이 학문. 아니, 애초에 학문의 필요조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하여 그 정의에 부합하지 못하는 학문 아닌 어떤 것. 전공이 전공인지라, 게다가 지리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사회, 문화 어느모로 보나 동떨어진 변방에 태어나 자라고 배운 사람인지라, 나는 그냥 계속해서 까마득한 간극을 좁히기 위해 계속해서 더딘 걸음을 옮기고 심연의 아가리에다가 보잘 것 없는 조약돌이나 연신 던져 대면서 가망 없는 꿈을 꾸기만 하고 있다. 내가 서양 고전어를 하면 얼마나 유창하게 할 것이고 또 그에 바탕을 두고 그것을 분석해 온 영어니 독어니 불어니 하는 것들은 또 해 봤자 얼마나 잘 흉내낼 수 있겠나. 인큐베이터에나 쳐박혀 마땅할 칠삭동이에 천출이기까지 한 내가 어쩌다 보니 낯선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져 있다. 스스로 선택했다, 라는 것은 시간계기가 겹치고 무지가 끼어드는 순간 그리 정확하지 못한 말이 되어 버린다. 혹은 정말로 자유라는 것은 그 불완전한 선택과 양립 가능한 것인지 나는 의심을 거두기가 어렵다. 한 때 호기롭게 그런 말들을 하곤 하였다. 학부 철학수업에서 나오는 얘기들 같은 거, 거기서 거기인 것들이 서로 잘났다 떠드는, 토론을 가장한 말싸움 따위, 그런 거 그냥 이 악물고 도서관 쳐박혀 국역서만 미친듯이 한 6개월 물고 뜯고 늘어지면 더 볼 필요도 없다고 말이다.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짓, 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건 학문이 아니다. 아니,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반면에 역사를 통하여 시험받아오고 또한 역사를 검토해 온 지식의 전통을 계승하는 데에 일조하는 그러한 학문연구이든 혹은 거듭된 오류와 실패 속에 침잠하여 제자리를 맴도는 그 어리석음을 폭로하고 거대한 전환을 획책하는 도발을 감행하는 이론의 정립이든 자기만족이나 기만이 아닌 사실 그 자체와 직면하고 또한 승부하는 진짜 학문이란 한갓된 개인의 알량한 말장난으로는 어찌 해 볼 수가 없는 거인들의 전쟁 같은 것이리라 생각한다. 누군가는 선봉장이 되고 또 누군가는 책략가로 이름을 남길지도 모르겠으나 학문이 추구하는 진리에 비하자면 그 이름은 알려지지 않고 어느 전투에서 아무도 모르게 죽어간 일개 병졸의 그 이름과 크게 다를 것도 없을 것이다. 고작 가사자 주제에 분에 넘치는 꿈을 꿀 때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의 괴리. 같은 세계를 두고 같은 법칙을 고민하며 수 억의 인간들이 수 천 년에 걸쳐 내놓은 그 모든 추론들, 혹은 그에 앞선 그들 각각의 그 모든 문제의식들, 다행히 그 모든 파편들, 편린들은 수집되고 선별되고 정리되어 체계를 갖추고 오늘 우리에게까지 이어져 왔다. 그 모든 것이 학문이다. 그것은 수학이고 논리학이고 자연과학이고 역사학이고 철학이다. 수학자가 수학을 고민할 때, 자연과학자가 자연과학의 대상과 목적과 방법을 고민할 때, 역사학자가 역사란 무엇인지 자기 자신에게 물음을 던질 때 그들은 그러한 한에서 철학자라는 이야기를 김영건 선생님 글을 통해 접한 일이 있다. 그렇다면 철학자는 바로 그 때문에 수학을 고민하고 자연과학을 고민하고 역사학을 고민하고, 수와 자연과 역사를 고민하고, 그리고 또한 철학 자체를 고민하고, 그러니까 존재와 인식과 가치를 고민하고, 다시 말해 고민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고민을 타인에게 전하는 능력과 타인의 고민을 자신이 이해하는 능력 모두가 요구된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한계 내에서 정당성을 잃지 않는 한에서 그 고유한 역할을 자각하고 또 수행해야만 한다. 철학자는 철학연구자가 아니라거나 지식전문가가 아니라거나 그런 소리들을 나는 믿지 않는다.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한정된 바로 그 학문이 추구해 오고 쌓아 온 그 모든 성과들을 이해하고 비판하고 또한 극복하면서 계승하고 발전시킬 필요가 없다면, 그걸 굳이 '철학'이라 부를 이유 또한 없다. 철학은 흔히 이야기되는 바로 그 반성, 한 발 물러선 혹은 소위 그 '메타'의 견지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을 도맡아 왔고 그를 위한 방법론과 개념틀들을 발전시켜 왔으며 그를 위한 여러 체계들을 시도해 왔다. 다만 그 과정에서 자신들이 다루어야 하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 자체를 도외시하고 자신들을 마치 신들의 대리인이라도 된 듯 지상으로부터 천상으로 격상시켜 버렸기에 그 모든 설득력을 상실해 버린 것이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이 비약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고립되고 단절된 기형적 철학으로부터 빠져나와 다른 학문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그 학문들 각각의 성과들을 구걸하며 그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자비를 구할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일종의 결자해지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기 자신의 기능과 가치를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자, 이 시대의 철학은 무엇을 할 수 있고 왜 그 역할이 이 시대에 요청되는가? 이러한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잘난 비둘기들(칸트가 사용했던 그 비유의 맥락에서, 그러나 그가 플라톤을 염두에 두어 말했을 때 나는 그의 말에 동의하기 어렵다)의 빈정거림을 과감히 무시하고 지식전문가의 길로 선뜻 나서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1차 문헌들, 2차 문헌들, 이것들을 다룬 3차, 4차의 논문들과 발표들, 철학 내에서도 시대와 지역 그리고 방법론과 주제에 따라 의사소통이 단절되어 버린, 그리하여 당연하게도 다른 학문분야들과도 대화가 불가능한, 그리고 결국은 사회 전체로부터도 고립되어 버린 그러한 언어들을 더 한층 엄격하고 정밀하게 분석하고 비판하고 이해하고 정리하며 그 단절을 악화시키기를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분과학문으로서의 철학이 해야 하는 일을 종합학이자 보편학으로서의 철학이 해야 하는 일과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실험실에 들어가지 않고 혹은 수학적 모형을 계산해 내거나 검토하지 않고 단지 머릿속에서 자연이 뭔지 혹은 생명은 뭐고 인지란 무엇인지 고민하는 그러한 자를 자연과학자라고 부를 수 없듯이, 사료를 검토하지 않고 역사를 고민하는 자를 역사학자로 부를 수 없듯이 논증의 분석과 비판을 지속하고 그 방법론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관련된 사료들과 연구들을 검토하지 않고 뜬구름을 잡는 자들은 결코 철학자일 수 없다. 보편학으로서의 철학은 더욱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철학 그 자체일 수는 있을지라도 그 가능과 실현의 문제까지 시간적 혹은 논리적으로 선행할 수는 없다. 과거에 분과학문들이 성립하지 않았던 미분된 종합적 학문으로서의 철학마저도 당대의 전통과 신앙의 논리에 대한 검토로부터 출발점을 삼지 않을 수 없었으니 '철학의 시초' 따위는 반례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또 설령 그것이 어떤 식으로 지금의 주장에 대한 반박이 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지금 여기에서 철학이 무엇을 해야하고 또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겠노라 호언장담하는 그 대단하신 천재님들에게 나는 아무런 기대도 걸 수가 없다. 마음에 들지 않게 수세에 몰린 장기판을 뒤집어 엎어 버리는 유치한 짓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서툴고 섣부른 비판의 독단들이 그러하다. 누군가는 니체를 떠올리고 또 누군가는 헤겔을 떠올리고 다른 누군가는 현대의 여러 철학자들 중 누군가를 떠올리는가 하면 논리실증주의자들을 떠올릴 수도 있겠고 초기 자칭 '과학철학자'들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어느 한편으로는 종교사회와 종교인들을 비판하면서 종교를 비판한답시고(중세 천 년 어느 누구의 그 무슨 학설을 비판하는지도 한정하지 않으면서, 그런 제한을 두고도 평생에 걸쳐서도 작업을 완수하지 못하는 수 많은 신학자들을 떠올리지도 못하면서) 설치는 도킨스 따위의 찌끄래기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그 한 측면에서 싸잡아 비판당한다 하더라도 그들 각각의 역할이 있었을 테고 또 나름의 기여가 있었음을 더불어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건 '이상적인 학문'이라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상적인 학문을 지향하고 또 추구하는 한갓된 개인이란 사실은 그 누구보다 쓰잘데기 없고 굼뜨고 초라한 자들로 보일 것이다. 그들 '각자'는 그럴 것이다. 그리고 그들 각자가 자기 자신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열등감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을 것이고 하루하루가 자괴의 연속일 것이며 아마도 서러울 것이다. 그리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하루 하루는 더 없이 치열해 마땅하다. 정제되지 않은 이 지껄임들의 결론은 도대체 언제까지 뭘 얼마나 더 붙들고 늘어지며 추태를 부려야 하는가 하는 자문이다. 기껏해야 절름발이 학문, 외눈박이 학문의 말단, 그 발톱의 때나 핥다 뒈질 내가 그나마도 사회에 목숨을 구걸하여 그렇게 연명하며 그러한 연구를 지속해도 되는지, 누구에게도 그에 대한 허락을 받아낼 자신도 없고 또 그걸 누가 허락해 주는 것인지도 알 수가 없다. 생각해 보면 어릴 적 문득 철학을 해야 하겠다고 작정을 했던 까닭은 더 이상 주변 사람들이 내 물음에 대답을 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부터였던 듯하다. 철학은 답을 주지 않았지만 적어도 함께 고민해 주었다. 그리고 지금 철학은 함께 고민하기 보다는 내 고민을 부정하고 있다. 지금 내 수준으로는 당위의 명령만 겨우 가늠하는 것이 고작이다. 이러해야 하고 저러해야 한다. 할 수 있는지 혹은 전혀 불가능한 일인지, 그런 것은 그저 개인으로서 초라하고 비루한 나란 놈의 몫일 따름이다. 고고한 철학의 비웃음소리만 들리는 듯하다. 나는 어느 사이엔가 겁쟁이가 되어 버렸다. 이 두려움을 극복해야 하는 것인지 혹은 평생 안고 가야만 하는 것인지, 그조차도 내게는 확신이 서질 않는다. 습관적으로 기계적으로 아무런 생각없이 타성에 젖어 하루하루 같은 일을 반복하는 동안에 과연 내게 무언가 견뎌내고 버틸 어떤 바탕이나 토대가 조금이나마 준비되어 가고 있는 것일지, 그마저도 의구심이 든다. 다행인 것은, 그 모든 고민들에 철학은 어떤 값싼 동정도 던져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2. 종종 주변인들에게서 '너는 종교인이 되면 광신도가 될 것이다'라는 평가를 듣곤 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나는 어떤 답변을 듣고 싶기 때문에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공부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것은 '답변'이지 '정답'이 아니다. 나는 내 한계에 대한 의식에 사로잡혀 있고, 당연하게도 내 물음에 대해 스스로 대답하고자 애를 쓰긴 하지만, 내가 묻고 내가 고민하여 내가 답하고 그걸 다시 내가 검토하는 것만으로 내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물음들을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진 못한다. 나는 다른 이들의 생각을 또한 확인하고 싶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검토함으로써 내 한계를 그렇게 간접적으로나마 벗어나거나 그 경계를 확장시키고 싶다. 그래서 나는 종교나 그 각 종교가 전제하는 믿음, 거칠게 말해 정당화되기 이전에 전제되는 절대적인 믿음까지도 그리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나름의 정당화를 거친 후에 논증의 형태로 제시되는 믿음이든 혹은 반대로 전제된 믿음을 외부의 의혹들에 맞서 정당화시킴으로써 제시되는 논증이든 내게는 결국 사후의 검토를 위한 대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사람들로부터 조언을 구하든 혹은 책을 읽든 뭘 어찌하든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간혹 내게 충고하거나 조언하는 사람들은 내 태도를 두고 '어차피 내 말은 듣지 않을 것이다'라고 비난하거나 화를 낸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것은 정답이 아니다. 설령 정답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그걸 내가 납득할 수 없다면, 내 능력이 부족해서이든 혹은 상대가 제대로 된 논거들과 논리적 형식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든, 내가 받아들일 수 없다면 무의미한 것이다. 그래서 내게 가장 도움이 되는 사람은 답을 말해주려고 애쓰는 사람들 보다는 고민의 다양한 방식들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사람들 중에 있다. 하지만 어느 지점에서부터인지 그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간다. 스스로 고민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그런 과정도 있는 것일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마저도 일종의 통과의례 혹은 어떤 자격시험과 같은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여기에서부터 스스로 걸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결국 그 다음 걸음을 허락받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주관적 평가가 아니라 객관적 가능성으로, 허용되지 않는 그런 미흡함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평가조차 내 몫이라면 과연 나는 제대로 온당한 평가를 나 자신에게 내릴 수 있을까? 평가받는 나의 무능함과 평가하는 나의 무능함, 이중삼중의 난관이다.

-蟲-

저작자 표시
Posted by 버러지

Trackback Address :: http://oistros.tistory.com/trackback/801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Zenon 발제 준비.

생각 2012/04/21 00:07 |

1차 문헌 및 번역
H. Diels & W. Kranz, Die Fragmente der Vorsokratiker Vol.1, Weidmannsche Buchhandlung, 1903.
정암학당 옮김,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아카넷, 2005.

2차 문헌
Patricia Curd, The Legacy of Parmenides, Parmenides Publishing, 2004, pp.171-180.
John Palmer, Parmenides and Presocratic Philosophy, Oxford Uni. Press, 2009, pp.189-205.
       -         , Zeno of Elea, http://plato.stanford.edu/entries/zeno-elea/
G. E. L. Owen, Zeno and the Mathematicians, Proceedings of the Aristotelian Society, New series, Vol. 58, Blackwell Publishing, pp.199-222.
T. L. Heath, A History of Greek Mathematics Vol.1, Oxford Uni. Press, 1921, pp. 271-283.

무리하지 말고 이 정도만 꼼꼼하게 읽고 정리해 보자. 제논의 단편들에 대한 분석 및 정리, 관련된 파르메니데스의 단편들, 평가. 겁먹지 말자. 어깨에 힘을 빼자. 착실하고 정직하게, 내가 평생을 두고 하고자 하는 일과 살아내고자 하는 삶의 태도가 뭔지 자각하면서 가자. 재밌을 거다. 응.

-蟲-

P.S 근데 뭐가 '이 정도만'인지. 아, 좆나 쫄려.

저작자 표시
Posted by 버러지

Trackback Address :: http://oistros.tistory.com/trackback/800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빌어먹을.

생각 2012/04/18 19:35 |

비루한 몸뚱아리. 때 되면 배고프고 목마르고 졸리고 아프고 쓰라리고 꼴렸다가 열이 펄펄 끓다가 축 쳐졌다가 이리저리 비틀거리는 더러운 고깃덩어리. 염병할, 스스로 비하하고 혐오하고 경멸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무력하고 게을러서 아무런 진전도 없이 도무지 내게 어울리지 않는 뭔가를 움켜쥐고 놓지를 못하고 있는 미련함, 정말로 이게 공부한다는 새끼의 꼬락서니인가. 구역질이 난다. 왜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뭔가 쌓이지는 않고 계속 빈 자리만 넓어지고 깊어지는지, 자꾸 멀어져만 가는지, 혹시 이게 나에게만 해당되는 일이고 계속해서 공부하고 연구하고 학문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 것은 아닌지, 그러니까 이런 의구심을 가질 틈도 없이 그냥 닥치고 대가리 쳐박고서 읽고 고민하고 읽고 또 고민하고 읽고 계속 읽고 또 읽고 고민하고 고민하고 고민해야 하는데, 씨발, 언제쯤이면 스스로 버러지가 아니라고 말할 수가 있을는지 모르겠다. 물론 공부는 재밌다. 사실은 어서 빨리 앎의 통시성과 상기설 그리고 산술과 기하에서의 증명 사이의 관계 같은 것을 가지고 자료도 조사하고 고민도 하고 뭔가 지껄여 놓고 까이고 얻어 터지고 박살난 거 다 그러 모아서 다시 짜맞추고 그런 짓거리를 하고 싶다. 물론 지금 듣고 있는 전공수업도 재미있다. 파르메니데스는 '있음/~임'의 길과 '있지 않음/~이지 않음'의 길, 그리고 그 둘이 뒤섞인 가사자들의 믿음을 전제하고서 논의를 진행시키고 있다. 정의를 해 두고서 상충되지 않는 정합적인 원칙들을 기초로 해서 모순이 없는 결론으로 나아간다.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추론의 방식 아닌가? 이번 주에 이 찢어버려도 시원치 않을 식도니 위니 하는 것들이 또 지랄을 떨어 들어가지 못한 고전학 협동과정 수업에서는 『국가』 6권 강독 중인데, 관사와 εἰμί 동사의 분사형이 결합된 τὸ μὴ ὄν 과 οὐκ ὄν 의 차이라든지 부정형 εἶναι와 앞의 그 분사형의 차이라든지 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그걸 이상인 선생님 밑에서 공부하시는 어떤 분께서 논문 주제로 잡고, 그러니까 플라톤 대화편 『소피스테스』에서 τὸ μὴ ὄν에 대한 연구를 하고 계신다. 이번 주에 잠시 요약발표 비슷한 것을 정암학당에서 하실 예정인 듯. 그 얘기가 정암학당에서 『국가』 1권 강독하는 과정에서 나왔고. 흥미진진하다. 즐겁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이런 것들을 제멋대로 낄낄거리며 엿볼 자격이나 되는지 하는 것이다. 가만 생각해 보면 나는 더할 나위 없이 쓰레기에 병신이라서 내 스스로 사지를 묶어 놓고 벼랑 아래로 굴러 떨어져도 시원치 않은 것 같다. 도대체가 지난 시간 동안, 뭐 짧다면 짧지만 그거야 120살 채워서 살든 빛도 못 보고 사지가 잘려 지 애미 뱃속에서 뒤져서 나오든 뭐에 견주냐에 따라 다 찰나인 거고, 그런데 또 길게 보자면 죽은 목숨 몇을 살리고 세상을 뒤집어 엎고도 남을 시간이기도 하고, 여하간에 나는 그 동안에 대체 뭘 한 건가 싶다. 내가 한 거라곤 그냥 미친 척 이 악물고 발악을 해댄 것뿐이다. 목표도 지향도 없이 천둥벌거숭이마냥 천지사방 들쑤시고 다녔던 거다. 뭐가 남았나. 사실은 내 자신이 병신에 머저리고 찌질이 찐따 개쓰레기라는 걸 안 것만이라도 어떤 수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긴 했다. 내 전공이 플라톤 철학이기도 하고, 소크라테스가 그러잖나, 실제로 모른다는 걸 생각으로도 자신이 모른다고 아는 것이 안다고 착각하는 것보다 낫다고. 그런데 어째 갈수록 이게 아닌가 싶은 거다. 제대로 읽으려면 내겐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 이유는 잘 알고 있다. 똑같은 시간 동안에 더 낫고 더 정확하고 더 명료한 결과를 뽑아낼 수 있는 자들이 있고, 그들에게 더 많은 기회와 지원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겠지. 아마 그럴 거다. 분명 내가 기준으로 삼고 내 자신을 제한하는 그 조건들을 다 충족시키면서도 훨씬 빨리 깔끔하게 읽어내고 생각도 정리하고 글까지 써내는 새끼들이 있겠지. 그런데 적어도 또래 중에 그런 새끼 본 적 없다. 다 대충 읽고 집어 던지거나 아예 멋대로 읽고 소설을 쓰거나 신들려 방언을 해대는 씹새끼들은 수두룩한데. 아니, 그래도 분명 있다고 생각은 한다. 그런 새끼들이 있었으니 지금 내가 그야말로 우러러보다시피 하는 선생님들이 계신 것 아니겠나. 그 분들께도 젊으셨던 시절, 어리셨던 때가 다 있겠지. 그것도 암담한 게, 씨발 나는 대체 그 중 누구의 젊은 시절도 닮지를, 아니 그 수준에 따라가지를 못 하는 것 같다는 거다. 니미럴, 제기 난장을 맞을. 인터넷 떠돌다 보니 누구는 또 그러더라. 왜 비하하고 자괴감에 빠지고 그러냐고. 까놓고 말하자면 왜 꼴사납게 징징거리고 지랄이냐는 말이겠다만, 나는 그러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고 이래야 한다고까지 생각한다. 학문이란 씨발 내 혀를 뽑고 사지를 잘라 찢어 죽여도 어쨌든 학문으로서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것이고 그래야만 한다. 그래서 그건 어떤 새끼가 어떤 때에 어떤 배경에서 접근하든 그 새끼 장단에 맞춰줄 수가 없는 거다. 그래서 학문을 한다는 건 지 자신의 한계에 맞부딪치는 거다. 학문이 병신이 아니라 내가 병신인 거다. 그걸 자학하지 않는다는 건, 뭐랄까, 그 한계를 실감하지 못 하는 것이거나 혹은 그걸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낑낑거릴 것 없이 부족하면 채우면 그만 아니겠냐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러니까 닥치고 할 일이나 하라는 얘기가 되겠는데, 아, 그렇다면 또 별로 할 말은 없긴 하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좆나 이렇게 시끌벅적하고 요란스럽게 난리굿을 치면서 자학하지 않으면 내가 좆도 상병신 개호로잡놈의 씹쓰레기라는 걸 까먹어 버릴 것 같다는 얘기다. 겁먹은 짐승처럼 꽥꽥 소리지르고 악을 쓰고 고함을 치며 스스로 머리 끄댕이라도 쥐어 뜯어가며 상기시키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이 정도면 됐지, 뭐' 해 버릴까봐, 사실은 겁이 나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 또 지금 이 상황이나 막막한 기분 같은 것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최소한 한 손으로는 눈 가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하늘 가리고서 아웅하는 지랄염병을 떨고 있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다만 이것도 지치지 않는 건 아니라서, 사실은 누가 좀 내 대신 나를 갈궈 줬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는데, 그게 또 지금 다니는 학교는 자유방임인지 그냥 방치인지 여하간 선생님이고 선배고 동기고 할 거 없이 다 나를 내버려두는지라 그게 뜻대로 되지를 않네. 뭐 공부하기야 정말 좋은 환경이긴 한데, 그리고 사실 내 성격이 솔직히 말하면 그다지 사람들하고 부대끼는 거 좋아하지도 않고 오히려 그거 굉장히 소모적인 일이라 느끼는지라 좋긴 한데, 그런 거 말고 처세니 인간관계니 하는 게 아니라 세밀하고 엄격하고 냉정하고 치열한 훈육, 뭐 그런 게 아쉽다고 해야 하나. 아마 지금 생각하는 논문 주제에다가 이런 태도까지 더해지면 학부 졸업때 미친 놈 원전 보고 쓰겠다고 지랄하다 반 년 날려먹은 것처럼 이번엔 또 몇 년을 더 날려 먹을지도 모르겠다. 씨발, 집이 거진데 어디서 꽁돈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나이는 애매하게 서른줄에 가까워 오는데 그 미친짓을 해도 될지, 할 수나 있을지 그것도 모르겠고. 그러고도 계속 공부하며 살 생각이라는 게, 사실은 이런 거 저런 거 다 문제가 아니고 당장 경제적 현실이 뒷받침이 안 된다는 게 가장 큰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평생 공부하면서 살고 싶은데, 그러려면 적당한 때에 좀 알아서 이 목숨줄이 툭하고 끊어져 줄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네. 뒈지면 그 때까지가 평생이지 뭐. 문제는 언제 뒈지든 그 때까지 치열하고 성실하고 또 정직하게 학문을 하고 있었느냐, 그거겠지만서도. 아, 씨발 또 신세한탄이야. 아무튼 전공수업 과제 제출 두 주 남았고 이번 주 목요일에는 등록금 분납 2차 내야하고 다음 주에는 콜로퀴엄 있으니 『파이돈』 강독은 못 들어 가겠고, 고르기아스 단편도 좀 더 번역해 놓아야 하고, 아리스토텔레스 자연학 소론도 봐 둬야 하고, 씨발놈아 수학 좀. 문제는 이러고 있다가 막상 글 써야 할 때까지 아무런 논증연습도 안 하고 있다가 글 자체가 폐품이 되는 거 아닌가 싶다는 것이지. 하지만 제대로 읽고 제대로 생각하면 제대로 쓰여진다고, 그렇게 믿는다. 몰라, 일단 좀 자자.

-蟲-

저작자 표시
Posted by 버러지

Trackback Address :: http://oistros.tistory.com/trackback/799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Καὶ μάλα, ἔφη.
무척이나 그렇습니다, 그가 말했네.
Ἆρ' οὖν δὴ οὐ μετρίως ἀπολογησόμεθα ὅτι πρὸς τὸ ὂν πεφυκὼς εἴη ἁμιλλᾶσθαι ὅ γε ὄντως φιλομαθής, καὶ οὐκ ἐπιμένοι ἐπὶ τοῖς δοξαζομένοις εἶναι πολλοῖς ἑκάστοις, ἀλλ' ἴοι καὶ οὐκ ἀμβλύνοιτο οὐδ' ἀπολήγοι τοῦ ἔρωτος, πρὶν αὐτοῦ ὃ ἔστιν ἑκάστου τῆς φύσεως ἅψασθαι ᾧ προσήκει ψυχῆς ἐφάπτεσθαι τοῦ τοιούτου - προσήκει δὲ συγγενεῖ - ᾧ πλησιάσας καὶ μιγεὶς τῷ ὄντι ὄντως, γεννήσας νοῦν καὶ ἀλήθειαν, γνοίη τε καὶ ἀληθῶς ζῴη καὶ τρέφοιτο καὶ οὕτω [Stephanus page 490, section b, line 7] λήγοι ὠδῖνος, πρὶν δ' οὔ;
그렇다면 우리가 적절하게 변론하는 것이 아니겠나, 진실로 배움을 사랑하는 자라는 것은 천성상 있는 것을 열망할 수 있을 것이고, 있다고 여겨지는 여러 각각의 것들에 머무르지 않으며, 오히려 그 사랑하는 일에 싫증을 내지도 거절을 하지도 않고 나아갈 것인데, 있는 것 그 자체 각각의 그 본성에, 혼에 있어서 그 각각의 것에 닿기에 적합한 - 동류의 것에 적합한 - 그런 것으로써 닿기 전까지 그러할 것이고, 그로써 실로 있는 것에 가까워지고 교합하여서, 지성과 진리를 산출하여, 참되게 알고 또 살며 돌보고 그런 식으로 산통을 겪을 것인데, 그러하지 않는 한 그러리라고?
ἁμιλλᾶσθαι : ἁμιλλάομαι inf. strive, hasten, eagerly.
ἀμβλύνοιτο : ἀμβλύνω opt. blunt, dull, take the edge off.
Ὡς οἷόν τ', ἔφη, μετριώτατα.
가능한 한, 그가 말했네, 가장 적절합니다.
Τί οὖν; τούτῳ τι μετέσται ψεῦδος ἀγαπᾶν ἢ πᾶν τοὐναντίον μισεῖν;
그렇다면 어떤가? 그 자에게 무언가 거짓을 기꺼워하는 뭐라도 함께 있는가 아니면 정반대로 미워함이 함께 하는가?
Μισεῖν, ἔφη.
미워함이요, 그가 말했네.
Ἡγουμένης δὴ ἀληθείας οὐκ ἄν ποτε οἶμαι φαμὲν αὐτῇ χορὸν κακῶν ἀκολουθῆσαι.
진리가 이끌 때에는 내 생각에 결코 그것에 나쁜 것들의 가무단이 따른다고 우리가 말하지는 않을 걸세.
Πῶς γάρ;
어찌 그리 말하겠습니까?
Ἀλλ' ὑγιές τε καὶ δίκαιον ἦθος, ᾧ καὶ σωφροσύνην ἕπεσθαι.
오히려 건전하고 정의로운 습성이, 그리고 그에게 사려 또한 따른다고 말하겠지.
[Stephanus page 490, section c, line 7] Ὀρθῶς, ἔφη.
옳습니다, 그가 말했네.
Καὶ δὴ τὸν ἄλλον τῆς φιλοσόφου φύσεως χορὸν τί δεῖ πάλιν ἐξ ἀρχῆς ἀναγκάζοντα τάττειν; μέμνησαι γάρ που ὅτι συνέβη προσῆκον τούτοις ἀνδρεία, μεγαλοπρέπεια, εὐμάθεια, μνήμη· καὶ σοῦ ἐπιλαβομένου ὅτι πᾶς μὲν ἀναγκασθήσεται ὁμολογεῖν οἷς λέγομεν, ἐάσας δὲ τοὺς λόγους, εἰς αὐτοὺς ἀποβλέψας περὶ ὧν ὁ λόγος, φαίη ὁρᾶν αὐτῶν τοὺς μὲν ἀχρήστους, τοὺς δὲ πολλοὺς κακοὺς πᾶσαν κακίαν, τῆς διαβολῆς τὴν αἰτίαν ἐπισκοποῦντες ἐπὶ τούτῳ νῦν γεγόναμεν, τί ποθ' οἱ πολλοὶ κακοί, καὶ τούτου δὴ ἕνεκα [Stephanus page 490, section d, line 6] πάλιν ἀνειλήφαμεν τὴν τῶν ἀληθῶς φιλοσόφων φύσιν καὶ ἐξ ἀνάγκης ὡρισάμεθα.
더 나아가 지혜를 사랑하는 자의 본성에 속하는 또 다른 가무단을 처음부터 다시 나열해야만 할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왜냐하면 아마도 그런 것들에 적합한 것으로 용기, 호방함, 잘 배움, 기억력이 뒤따른단 것을 자네가 기억하니까: 그리고 자네가, 모든 이가 우리가 말한 것들에 대해 동의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 논의들은 방치되었고, 그들에 관하여 논의되고 있는 바로 그 사람들에게 주목하여, 그들 중 일부는 쓸모 없는 자들이나, 다른 많은 자들은 모든 나쁜 일에 있어서 나쁜 자들임을 본다고 말하리라고, 그렇게 공격하였기에(ἐπιλαβομένου), 그  비방의 원인을 검토하면서 이제 우리는 이런 일에 있게 되었고, 도대체 왜 그 많은 자들이 나쁜 자들인지,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다시 참으로 지혜를 사랑하는 자들의 본성을 우리가 되취하고 필연적으로 규정도 하였지.
Ἔστιν, ἔφη, ταῦτα.
그렇습니다, 그가 말했네.
Ταύτης δή, ἦν δ' ἐγώ, τῆς φύσεως δεῖ θεάσασθαι τὰς φθοράς, ὡς διόλλυται ἐν πολλοῖς, σμικρὸν δέ τι ἐκφεύγει, οὓς δὴ καὶ οὐ πονηρούς, ἀχρήστους δὲ καλοῦσι· καὶ μετὰ τοῦτο αὖ τὰς μιμουμένας ταύτην καὶ εἰς τὸ ἐπιτήδευμα καθισταμένας αὐτῆς, οἷαι οὖσαι φύσεις ψυχῶν εἰς ἀνάξιον καὶ μεῖζον ἑαυτῶν ἀφικνούμεναι ἐπιτήδευμα, πολλαχῇ πλημμελοῦσαι, πανταχῇ καὶ ἐπὶ πάντας δόξαν οἵαν λέγεις [Stephanus page 491, section a, line 5] φιλοσοφίᾳ προσῆψαν.
그리고 내가 말했지, 그래서 바로 이 본성의 파괴들을 살펴 보아야 하지, 많은 이들에게서 어떻게 파괴되는지, 그런데 어떻게 조금쯤은 피해가는지, 열등한 자들까진 아니지만, 쓸모 없는 자들이라 불리는 그들이 말일세: 이 다음으로 이번에는 그 본성을 모방하며 그 본성의 일에 내려앉을 때, 그런 영혼들의 본성들이 어떠한 것이어서 그럴 만하지 않고 자신들에게 더 넘치는 일에 이르고, 여러 방식으로 잘못을 저지르며, 온갖 곳에서 온갖 사람들 사이에서 자네가 말하고 있는 그런 평판을 지혜를 사랑하는 일에 붙였는지를.
Τίνας δέ, ἔφη, τὰς διαφθορὰς λέγεις;
그가 말했네, 당신께서는 그 파괴들이 무엇들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Ἐγώ σοι, εἶπον, ἂν οἷός τε γένωμαι, πειράσομαι διελθεῖν. τόδε μὲν οὖν οἶμαι πᾶς ἡμῖν ὁμολογήσει, τοιαύτην φύσιν καὶ πάντα ἔχουσαν ὅσα προσετάξαμεν νυνδή, εἰ τελέως μέλλοι φιλόσοφος γενέσθαι, ὀλιγάκις ἐν ἀνθρώποις φύεσθαι καὶ ὀλίγας. ἢ οὐκ οἴει;
내가 말했네, 내가 자네에게 그럴 수 있다면 상술하고자 시도해 보겠네. 그러니까 나는 이 점은 모두가 우리에게 동의하리라 생각하는데, 이와 같은 본성이 또 우리가 방금 요구한 그 모든 것들을 갖추어서는, 만일 그 본성이 장차 완전하게 지혜를 사랑하는 자가 될 것이라면 말이지, 드물게 사람들에게서 또 소수가 자라난다는 것을. 자네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가?
Σφόδρα γε.
지극히 그리 생각합니다.
Τούτων δὴ τῶν ὀλίγων σκόπει ὡς πολλοὶ ὄλεθροι καὶ μεγάλοι.
그래서 이런 소수의 사람들에 대해 파괴들이 얼마나 많고도 대단한 것들인지 살펴 보게.
[Stephanus page 491, section b, line 6] Τίνες δή;
무엇들입니까?
Ὃ μὲν πάντων θαυμαστότατον ἀκοῦσαι, ὅτι ἓν ἕκαστον ὧν ἐπῃνέσαμεν τῆς φύσεως ἀπόλλυσι τὴν ἔχουσαν ψυχὴν καὶ ἀποσπᾷ φιλοσοφίας. λέγω δὲ ἀνδρείαν, σωφροσύνην καὶ πάντα ἃ διήλθομεν.
무엇보다도 듣기에 경악스러운 것은, 우리가 칭찬하던 그 본성에 속하는 것들의 하나하나가 그것을 지닌 영호을 파괴하고 지혜를 사랑하는 일로부터 분리시켜 놓는다는 사실이지. 그런데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은 용기, 사려 그리고 우리가 상술한 모든 것들일세.
Ἄτοπον, ἔφη, ἀκοῦσαι.
그가 말했네, 이상하게 들립니다.
Ἔτι τοίνυν, ἦν δ' ἐγώ, πρὸς τούτοις τὰ λεγόμενα ἀγαθὰ πάντα φθείρει καὶ ἀποσπᾷ, κάλλος καὶ πλοῦτος καὶ ἰσχὺς σώματος καὶ συγγένεια ἐρρωμένη ἐν πόλει καὶ πάντα τὰ τούτων οἰκεῖα· ἔχεις γὰρ τὸν τύπον ὧν λέγω.
더군다나, 내가 말했네, 이런 것들에 더하여 좋은 것들이라 이야기되는 모든 것들이 파괴하고 떼어 놓는데, 아름다움과 부유함 그리고 육체의 강건함과 폴리스에서의 강력한 가문 또한 이런 것들의 친족들 모두가 그러하지: 내가 말하고 있는 것들의 모습을 자네가 알고 있네.
[Stephanus page 491, section c, line 5] Ἔχω, ἔφη· καὶ ἡδέως γ' ἂν ἀκριβέστερον ἃ λέγεις πυθοίμην.
그가 말했네,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고 당신께서 말씀하시는 것들을 기쁘게 더 정확하게 들어 배울 것입니다.
Λαβοῦ τοίνυν, ἦν δ' ἐγώ, ὅλου αὐτοῦ ὀρθῶς, καί σοι εὔδηλόν τε φανεῖται καὶ οὐκ ἄτοπα δόξει τὰ προειρημένα περὶ αὐτῶν.
내가 말했네, 그럼 그것을 전체로서 옳게 파악하게, 그러면 자네에게 그것들에 관하여 먼저 이야기된 것들이 명확하게 잘 드러나고 또 이상한 것들로 여겨지지 않을 것이네.
Πῶς οὖν, ἔφη, κελεύεις;
그가 말했네, 그렇다면 어찌 하라 명하시는지요?
Παντός, ἦν δ' ἐγώ, σπέρματος πέρι ἢ φυτοῦ, εἴτε ἐγγείων εἴτε τῶν ζῴων, ἴσμεν ὅτι τὸ μὴ τυχὸν τροφῆς ἧς προσήκει ἑκάστῳ μηδ' ὥρας μηδὲ τόπου, ὅσῳ ἂν ἐρρωμενέστερον ᾖ, τοσούτῳ πλειόνων ἐνδεῖ τῶν πρεπόντων· ἀγαθῷ γάρ που [Stephanus page 491, section d, line 5] κακὸν ἐναντιώτερον ἢ τῷ μὴ ἀγαθῷ.
모든, 내가 말했네, 씨나 싹에 관하여, 땅 속의 것들에 속하든 살아있는 것들에 속하든, 우리는 그 각각에 적절한 돌봄도 적기도 적소도 얻지 못한 것은, 강건한 것일 만큼, 그 만큼 더욱 많은 적절한 것들에 대해 결핍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왜냐하면 아마도 나쁜 것은 좋지 못한 것보다도 좋은 것에 더욱 반대되는 것이니 말이네.
Πῶς δ' οὔ;
어찌 아니겠습니까?
Ἔχει δὴ οἶμαι λόγον τὴν ἀρίστην φύσιν ἐν ἀλλοτριωτέρᾳ οὖσαν τροφῇ κάκιον ἀπαλλάττειν τῆς φαύλης.
그래서 내 생각에 최상의 본성이 더 부적절한 돌봄 안에 있음으로써 평범한 본성보다 더 나쁘게 끝나 버린다는 건 말이 되는 듯하네.
Ἔχει.
말이 됩니다.
Οὐκοῦν, ἦν δ' ἐγώ, ὦ Ἀδείμαντε, καὶ τὰς ψυχὰς οὕτω φῶμεν τὰς εὐφυεστάτας κακῆς παιδαγωγίας τυχούσας διαφερόντως κακὰς γίγνεσθαι; ἢ οἴει τὰ μεγάλα ἀδικήματα καὶ τὴν ἄκρατον πονηρίαν ἐκ φαύλης ἀλλ' οὐκ ἐκ νεανικῆς φύσεως τροφῇ διολομένης γίγνεσθαι, ἀσθενῆ δὲ φύσιν [Stephanus page 491, section e, line 6] μεγάλων οὔτε ἀγαθῶν οὔτε κακῶν αἰτίαν ποτὲ ἔσεσθαι;
그렇다면, 내가 말했네, 아데이만토스, 영혼들도 그런 식으로 가장 좋은 본성들이 나쁜 훈육을 얻어서 유독 나쁜 것들이 된다고 우리가 말하지 않겠나? 혹은 자네는 대단한 부정의들과 순전한 열등함이 평범한 본성으로부터 생겨나고 생기발랄하지만 돌봄에 의해 파괴된 본성으로부터는 생겨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나 약한 본성은 도대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대단한 일들의 원인이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하는가?
Οὔκ, ἀλλά, ἦ δ' ὅς, οὕτως.
그가 말했네, 아니요, 전자의 그런 식으로 생각합니다.
Ἣν τοίνυν ἔθεμεν τοῦ φιλοσόφου φύσιν, ἂν μὲν οἶμαι μαθήσεως προσηκούσης τύχῃ, εἰς πᾶσαν ἀρετὴν ἀνάγκη αὐξανομένην ἀφικνεῖσθαι, ἐὰν δὲ μὴ ἐν προσηκούσῃ σπαρεῖσά τε καὶ φυτευθεῖσα τρέφηται, εἰς πάντα τἀναντία αὖ, ἐὰν μή τις αὐτῇ βοηθήσας θεῶν τύχῃ. ἢ καὶ σὺ ἡγῇ, ὥσπερ οἱ πολλοί, διαφθειρομένους τινὰς εἶναι ὑπὸ σοφιστῶν νέους, διαφθείροντας δέ τινας σοφιστὰς ἰδιωτικούς, ὅτι καὶ ἄξιον λόγου, ἀλλ' οὐκ αὐτοὺς τοὺς ταῦτα λέγοντας μεγίστους [Stephanus page 492, section b, line 1] μὲν εἶναι σοφιστάς, παιδεύειν δὲ τελεώτατα καὶ ἀπεργάζεσθαι οἵους βούλονται εἶναι καὶ νέους καὶ πρεσβυτέρους καὶ ἄνδρας καὶ γυναῖκας;

Πότε δή; ἦ δ' ὅς.

Ὅταν, εἶπον, συγκαθεζόμενοι ἁθρόοι πολλοὶ εἰς ἐκκλησίας ἢ εἰς δικαστήρια ἢ θέατρα ἢ στρατόπεκα ἤ τινα ἄλλον κοινὸν πλήθους σύλλογον σὺν πολλῷ θορύβῳ τὰ μὲν ψέγωσι τῶν λεγομένων ἢ πραττομένων, τὰ δὲ ἐπαινῶσιν, ὑπερβαλλόντως ἑκάτερα, καὶ ἐκβοῶντες καὶ κροτοῦντες, πρὸς δ' αὐτοῖς αἵ τε πέτραι καὶ ὁ τόπος ἐν ᾧ ἂν ὦσιν ἐπηχοῦντες [Stephanus page 492, section c, line 2] διπλάσιον θόρυβον παρέχωσι τοῦ ψόγου καὶ ἐπαίνου. ἐν δὴ τῷ τοιούτῳ τὸν νέον, τὸ λεγόμενον, τίνα οἴει καρδίαν ἴσχειν; ἢ ποίαν [ἂν] αὐτῷ παιδείαν ἰδιωτικὴν ἀνθέξειν, ἣν οὐ κατακλυσθεῖσαν ὑπὸ τοῦ τοιούτου ψόγου ἢ ἐπαίνου οἰχήσεσθαι φερομένην κατὰ ῥοῦν ᾗ ἂν οὗτος φέρῃ, καὶ φήσειν τε τὰ αὐτὰ τούτοις καλὰ καὶ αἰσχρὰ εἶναι, καὶ ἐπιτηδεύσειν ἅπερ ἂν οὗτοι, καὶ ἔσεσθαι τοιοῦτον;

Πολλή, ἦ δ' ὅς, ὦ Σώκρατες, ἀνάγκη.

Καὶ μήν, ἦν δ' ἐγώ, οὔπω τὴν μεγίστην ἀνάγκην εἰρήκαμεν.

[Stephanus page 492, section d, line 4] Ποίαν; ἔφη.

Ἣν ἔργῳ προστιθέασι λόγῳ μὴ πείθοντες οὗτοι οἱ παιδευταί τε καὶ σοφισταί. ἢ οὐκ οἶσθα ὅτι τὸν μὴ πειθόμενον ἀτιμίαις τε καὶ χρήμασι καὶ θανάτοις κολάζουσι;

Καὶ μάλα, ἔφη, σφόδρα.

Τίνα οὖν ἄλλον σοφιστὴν οἴει ἢ ποίους ἰδιωτικοὺς λόγους ἐναντία τούτοις τείνοντας κρατήσειν;

Οἶμαι μὲν οὐδένα, ἦ δ' ὅς.

Οὐ γάρ, ἦν δ' ἐγώ, ἀλλὰ καὶ τὸ ἐπιχειρεῖν πολλὴ ἄνοια. οὔτε γὰρ γίγνεται οὔτε γέγονεν οὐδὲ οὖν μὴ γένηται ἀλλοῖον [Stephanus page 492, section e, line 4] ἦθος πρὸς ἀρετὴν παρὰ τὴν τούτων παιδείαν πεπαιδευμένον, ἀνθρώπειον, ὦ ἑταῖρε - θεῖον μέντοι κατὰ τὴν παροιμίαν ἐξαιρῶμεν λόγου· εὖ γὰρ χρὴ εἰδέναι, ὅτιπερ ἂν σωθῇ τε καὶ γένηται οἷον δεῖ ἐν τοιαύτῃ καταστάσει πολιτειῶν, θεοῦ μοῖραν αὐτὸ σῶσαι λέγων οὐ κακῶς ἐρεῖς.

Οὐδ' ἐμοὶ ἄλλως, ἔφη, δοκεῖ.

Ἔτι τοίνυν σοι, ἦν δ' ἐγώ, πρὸς τούτοις καὶ τόδε δοξάτω.

Τὸ ποῖον;


-작성중-

저작자 표시
Posted by 버러지

Trackback Address :: http://oistros.tistory.com/trackback/798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Ταὐτὸν γὰρ ἔστιν, ὦ Σώκρατες, πρός γε ὃ βούλεται [Stephanus page 75, section a, line 10] δηλῶσαι ὁ λόγος.
동일하니까요, 소크라테스, 적어도 논의가 밝히고자 했던 바에 대해서는 말입니다.
Ἀλλὰ μὲν δὴ ἔκ γε τῶν αἰσθήσεων δεῖ ἐννοῆσαι ὅτι πάντα τὰ ἐν ταῖς αἰσθήσεσιν ἐκείνου τε ὀρέγεται τοῦ ὃ ἔστιν ἴσον, καὶ αὐτοῦ ἐνδεέστερά ἐστιν· ἢ πῶς λέγομεν;
그런데 적어도 감각들을 통해서 감각들 안의 모든 것들이 같음인 바 저것에 닿는다는 것, 그리고 그것보다 더 부족한 것들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하지: 아니면 우리가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Οὕτως.
그런 식입니다.
Πρὸ τοῦ ἄρα ἄρξασθαι ἡμᾶς ὁρᾶν καὶ ἀκούειν καὶ τἆλλα αἰσθάνεσθαι τυχεῖν ἔδει που εἰληφότας ἐπιστήμην αὐτοῦ τοῦ ἴσου ὅτι ἔστιν, εἰ ἐμέλλομεν τὰ ἐκ τῶν αἰσθήσεων ἴσα ἐκεῖσε ἀνοίσειν, ὅτι προθυμεῖται μὲν πάντα τοιαῦτ' εἶναι οἷον ἐκεῖνο, ἔστιν δὲ αὐτοῦ φαυλότερα.
그래서 우리가 보거나 듣거나 또는 다른 어떤 감각을 시작하기에 앞서 바로 그 같음에 대해 그것이 무엇인지 그 앎을 어디에서든 취해 두었어야 하지, 만일 우리가 감각들로부터 나온 같은 것들을 저쪽으로 귀착시키려던 것이었다면, 그러한 모든 것들이 저것과 같은 그런 것이기를 열망하지만, 그것보다 더 못한 것들이니까.
ἀνοίσειν : ἀναφέρω fut. inf. bring back. refer.
[Stephanus page 75, section b, line 9] Ἀνάγκη ἐκ τῶν προειρημένων, ὦ Σώκρατες.
앞서 이야기한 것들로부터 필연적입니다, 소크라테스.
Οὐκοῦν γενόμενοι εὐθὺς ἑωρῶμέν τε καὶ ἠκούομεν καὶ τὰς ἄλλας αἰσθήσεις εἴχομεν;
그렇다면 우리는 생겨나자 곧 보기 시작했고 또한 듣기 시작했으며 다른 감각들도 지니기 시작했던 게 아닌가?
Πάνυ γε.
물론입니다.
Ἔδει δέ γε, φαμέν, πρὸ τούτων τὴν τοῦ ἴσου ἐπιστήμην εἰληφέναι;
그런데 우리가 말하기로 그런 일들에 앞서 같음에 대한 앎을 취했어야 하기는 하지?
Ναί.
네.
Πρὶν γενέσθαι ἄρα, ὡς ἔοικεν, ἀνάγκη ἡμῖν αὐτὴν εἰληφέναι.
그럼 보이기로는 태어나기 전에 우리가 그 앎을 취한 것이 필연적이군.
Ἔοικεν.
그럴 것 같습니다.
[Stephanus page 75, section c, line 7] Οὐκοῦν εἰ μὲν λαβόντες αὐτὴν πρὸ τοῦ γενέσθαι ἔχοντες ἐγενόμεθα, ἠπιστάμεθα καὶ πρὶν γενέσθαι καὶ εὐθὺς γενόμενοι οὐ μόνον τὸ ἴσον καὶ τὸ μεῖζον καὶ τὸ ἔλαττον ἀλλὰ καὶ σύμπαντα τὰ τοιαῦτα; οὐ γὰρ περὶ τοῦ ἴσου νῦν ὁ λόγος ἡμῖν μᾶλλόν τι ἢ καὶ περὶ αὐτοῦ τοῦ καλοῦ καὶ αὐτοῦ τοῦ ἀγαθοῦ καὶ δικαίου καὶ ὁσίου καί, ὅπερ λέγω, περὶ ἁπάντων οἷς ἐπισφραγιζόμεθα τὸ “αὐτὸ ὃ ἔστι” καὶ ἐν ταῖς ἐρωτήσεσιν ἐρωτῶντες καὶ ἐν ταῖς ἀποκρίσεσιν ἀποκρινόμενοι. ὥστε ἀναγκαῖον ἡμῖν τούτων πάντων τὰς ἐπιστήμας πρὸ τοῦ γενέσθαι εἰληφέναι.
그렇다면 만일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그 앎을 취하고서 가진 상태로 태어났다면, 또한 우리는 때어나기 전에도 태어난 직후에도 같음뿐만 아니라 큼과 작음 또한 이와 같은 모든 것들을 통틀어 알고 있었던 게 아니겠나? 왜냐하면 지금의 논의는 단지 같음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어떤 것으로 우리에게 아름다움 자체와 좋음 자체 그리고 정의와 경건 자체에 관한, 그리고 내가 말하고 있는 바로 그대로, "그것인 바 그 자체"라고 물음들을 물으면서도 답변들을 내놓으면서도 그것들에 우리가 직인을 찍는 그 모든 것들에 관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일세. 그래서 우리로서는 이런 모든 것들에 대한 앎들을 우리가 태어나기에 앞서 취했음이 필연적이네.
[Stephanus page 75, section d, line 6] Ἔστι ταῦτα.
실로 그렇습니다.
Καὶ εἰ μέν γε λαβόντες ἑκάστοτε μὴ ἐπιλελήσμεθα, εἰδότας ἀεὶ γίγνεσθαι καὶ ἀεὶ διὰ βίου εἰδέναι· τὸ γὰρ εἰδέναι τοῦτ' ἔστιν, λαβόντα του ἐπιστήμην ἔχειν καὶ μὴ ἀπολωλεκέναι· ἢ οὐ τοῦτο λήθην λέγομεν, ὦ Σιμμία, ἐπιστήμης ἀποβολήν;
그리고 만일 우리가 지닌 채로 매번 잃어 버리는 게 아니라면, 영원히 아는 채로 태어나고 생애에 걸쳐 영원히 안다는 것도 필연적이지: 왜냐하면 안다는 것은 그런 것이니까, 그것에 대한 앎을 지닌 채로 가지고 있으면서 잃지 않은 것 말일세: 혹은 심미아스, 우리가 그걸 망각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앎의 상실을 말이네만?
ἐπιλελήσμεθα : ἐπιλύω pf. mp. loose.
ἀπολωλεκέναι : ἀπόλλῡμι pf. inf.
Πάντως δήπου, ἔφη, ὦ Σώκρατες.
전적으로 분명합니다, 그가 말했네, 소크라테스.
Εἰ δέ γε οἶμαι λαβόντες πρὶν γενέσθαι γιγνόμενοι ἀπωλέσαμεν, ὕστερον δὲ ταῖς αἰσθήσεσι χρώμενοι περὶ αὐτὰ ἐκείνας ἀναλαμβάνομεν τὰς ἐπιστήμας ἅς ποτε καὶ πρὶν [Stephanus page 75, section e, line 5] εἴχομεν, ἆρ' οὐχ ὃ καλοῦμεν μανθάνειν οἰκείαν ἂν ἐπιστήμην ἀναλαμβάνειν εἴη; τοῦτο δέ που ἀναμιμνῄσκεσθαι λέγοντες ὀρθῶς ἂν λέγοιμεν;
그런데 내 생각에 만일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지니고 있다가 태어나면서 잃는다면, 그리고 나중에 그것들에 관한 감각들을 사용하여 언젠가 이전에 우리가 지니고 있던 저 앎들을 되찾는다면, 그럼 혹시 우리가 배움이라 부르는 것은 우리의 고유한 앎을 되찾는 것이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것을 아마도 상기라고 말하면 우리가 옳게 말하게 되겠는가?
Πάνυ γε.
물론입니다.
Δυνατὸν γὰρ δὴ τοῦτό γε ἐφάνη, αἰσθόμενόν τι ἢ ἰδόντα ἢ ἀκούσαντα ἤ τινα ἄλλην αἴσθησιν λαβόντα ἕτερόν τι ἀπὸ τούτου ἐννοῆσαι ὃ ἐπελέληστο, ᾧ τοῦτο ἐπλησίαζεν ἀνόμοιον ὂν ἢ ᾧ ὅμοιον· ὥστε, ὅπερ λέγω, δυοῖν θάτερα, ἤτοι ἐπιστάμενοί γε αὐτὰ γεγόναμεν καὶ ἐπιστάμεθα διὰ βίου πάντες, ἢ ὕστερον, οὕς φαμεν μανθάνειν, οὐδὲν ἀλλ' ἢ [Stephanus page 76, section a, line 7] ἀναμιμνῄσκονται οὗτοι, καὶ ἡ μάθησις ἀνάμνησις ἂν εἴη.
왜냐하면 적어도 이것은 정말로 가능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네, 보아서든 들어서든 다른 어떤 감각을 취해서든 뭔가를 감각하면서 그와 다른 어떤 잊고 있었던 것을 그로부터 아는 일 말이지, 그것에 접근하였던 이 감각된 것이 닮지 않았든 닮았든: 그래서, 내가 말하고 있는 바로 그대로, 둘 중 하나이지, 그것들을 아는 채로 우리가 태어났고 생애에 걸쳐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든, 혹은 이후에, 우리가 그들을 두고 배운다고 말한 자들이, 다름이 아니라 상기를 이 자들이 하고 있으며, 배움이란 상기일 것이든.
ἐπελέληστο : ἐπιλανθάνω, ἐπιλήθω. mp. aor. forget.
ἐπλησίαζεν : πλησιάζω impf. come near. c.dat. next to.
Καὶ μάλα δὴ οὕτως ἔχει, ὦ Σώκρατες.
네, 무척이나 그렇습니다, 소크라테스.
Πότερον οὖν αἱρῇ, ὦ Σιμμία; ἐπισταμένους ἡμᾶς γεγονέναι, ἢ ἀναμιμνῄσκεσθαι ὕστερον ὧν πρότερον ἐπιστήμην εἰληφότες ἦμεν;
그렇다면 어느 쪽을 택하겠나, 심미아스? 우리가 아는 채로 태어난다고 하겠는가, 아니면 앞서 우리가 그것들에 대한 앎을 지니고 있던 것들에 대해 나중에 상기하게 된다고 하겠는가?
Οὐκ ἔχω, ὦ Σώκρατες, ἐν τῷ παρόντι ἑλέσθαι.
소크라테스, 지금으로서는 고를 수가 없습니다.
Τί δέ; τόδε ἔχεις ἑλέσθαι, καὶ πῇ σοι δοκεῖ περὶ αὐτοῦ; ἀνὴρ ἐπιστάμενος περὶ ὧν ἐπίσταται ἔχοι ἂν δοῦναι λόγον ἢ οὔ;
그럼 어떤가? 이건 자네가 택할 수 있겠나, 그리고 자네에게 그와 관련하여 어떤 식으로 보이는가? 알고 있는 자는 그가 알고 있는 것들에 관련하여 설명을 제시할 수 있겠는가 아니면 그러지 못하겠는가?
Πολλὴ ἀνάγκη, ἔφη, ὦ Σώκρατες.
제시할 수 있음이 매우 필연적입니다, 그가 말했네, 소크라테스.
[Stephanus page 76, section b, line 8] Ἦ καὶ δοκοῦσί σοι πάντες ἔχειν διδόναι λόγον περὶ τούτων ὧν νυνδὴ ἐλέγομεν;
자네에게는 방금 우리가 말한 그러한 것들에 관하여 모든 사람들이 설명을 제시할 수 있다고 여겨지기도 하는가?
Βουλοίμην μεντἄν, ἔφη ὁ Σιμμίας· ἀλλὰ πολὺ μᾶλλον φοβοῦμαι μὴ αὔριον τηνικάδε οὐκέτι ᾖ ἀνθρώπων οὐδεὶς ἀξίως οἷός τε τοῦτο ποιῆσαι.
물론 그렇길 바랍니다, 심미아스가 말했네: 허나 내일 이 때에 더 이상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이런 일을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이 있지 않게 되지는 않을까 훨씬 더 두렵습니다.
αὔριον : tomorrow.
τηνικάδε : at this time, then.
Οὐκ ἄρα δοκοῦσί σοι ἐπίστασθαί γε, ἔφη, ὦ Σιμμία, πάντες αὐτά;
그럼 자네에게는 안다고 여겨지지를 않는 게로군, 그 분께서 말씀하셨지, 심미아스, 모든 이들이 그것들을 안다고 말일세?
Οὐδαμῶς.
결코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Ἀναμιμνῄσκονται ἄρα ἅ ποτε ἔμαθον;
그럼 언젠가 그들이 배웠던 것들을 상기하는군?
Ἀνάγκη.
필연적입니다.
[Stephanus page 76, section c, line 6] Πότε λαβοῦσαι αἱ ψυχαὶ ἡμῶν τὴν ἐπιστήμην αὐτῶν; οὐ γὰρ δὴ ἀφ' οὗ γε ἄνθρωποι γεγόναμεν.
언제 우리의 영혼들이 그런 것들에 대한 앎을 지닌 건가? 우리가 인간들로 태어난 그 이후는 정말로 아닐 테니까.
Οὐ δῆτα.
분명 아닙니다.
Πρότερον ἄρα.
그럼 더 먼저이군.
Ναί.
네.
Ἦσαν ἄρα, ὦ Σιμμία, αἱ ψυχαὶ καὶ πρότερον, πρὶν εἶναι ἐν ἀνθρώπου εἴδει, χωρὶς σωμάτων, καὶ φρόνησιν εἶχον.
그럼, 심미아스, 영혼들이 먼저도 있었군, 인간의 모습으로 있기 전에, 육체들로부터 분리되어, 사려도 가지고 있었고 말이지.
Εἰ μὴ ἄρα ἅμα γιγνόμενοι λαμβάνομεν, ὦ Σώκρατες, ταύτας τὰς ἐπιστήμας· οὗτος γὰρ λείπεται ἔτι ὁ χρόνος.
소크라테스, 만일 태어남과 동시에 우리가 이와 같은 앎들을 지니는 게 아니라면요: 왜냐하면 아직 이 순간이 남아있으니까요.
[Stephanus page 76, section d, line 1] Εἶεν, ὦ ἑταῖρε· ἀπόλλυμεν δὲ αὐτὰς ἐν ποίῳ ἄλλῳ χρόνῳ; - οὐ γὰρ δὴ ἔχοντές γε αὐτὰς γιγνόμεθα, ὡς ἄρτι ὡμολογήσαμεν - ἢ ἐν τούτῳ ἀπόλλυμεν ἐν ᾧπερ καὶ λαμβάνομεν; ἢ ἔχεις ἄλλον τινὰ εἰπεῖν χρόνον;
좋네, 친구: 그런데 우리는 다른 어떤 시간에 그 앎들을 잃는가? - 왜냐하면 우리가 그 앎들을 지니고 태어나는 건 아니니까, 방금 우리가 동의했던 것처럼 말이네 - 아니면 우리가 그것들을 취한 바로 그 때에 우리가 잃는가? 혹은 자네는 다른 어떤 시간을 말할 수 있는가?
Οὐδαμῶς, ὦ Σώκρατες, ἀλλὰ ἔλαθον ἐμαυτὸν οὐδὲν εἰπών.
결코 못합니다만, 소크라테스, 저도 모르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었네요.
Ἆρ' οὖν οὕτως ἔχει, ἔφη, ἡμῖν, ὦ Σιμμία; εἰ μὲν ἔστιν ἃ θρυλοῦμεν ἀεί, καλόν τέ τι καὶ ἀγαθὸν καὶ πᾶσα ἡ τοιαύτη οὐσία, καὶ ἐπὶ ταύτην τὰ ἐκ τῶν αἰσθήσεων πάντα ἀναφέρομεν, ὑπάρχουσαν πρότερον ἀνευρίσκοντες ἡμετέραν [Stephanus page 76, section e, line 2] οὖσαν, καὶ ταῦτα ἐκείνῃ ἀπεικάζομεν, ἀναγκαῖον, οὕτως ὥσπερ καὶ ταῦτα ἔστιν, οὕτως καὶ τὴν ἡμετέραν ψυχὴν εἶναι καὶ πρὶν γεγονέναι ἡμᾶς· εἰ δὲ μὴ ἔστι ταῦτα, ἄλλως ἂν ὁ λόγος οὗτος εἰρημένος εἴη; ἆρ' οὕτως ἔχει, καὶ ἴση ἀνάγκη ταῦτά τε εἶναι καὶ τὰς ἡμετέρας ψυχὰς πρὶν καὶ ἡμᾶς γεγονέναι, καὶ εἰ μὴ ταῦτα, οὐδὲ τάδε;
그렇다면 혹시 그런 상황인가, 그 분께서 말씀하셨네, 우리에게 말일세, 심미아스? 만일 우리가 언제나 되뇌는 것들이 있다면, 어떤 아름다운 것이라든지 좋은 것이라든지 이러한 모든 존재 말일세, 그리고 그 존재에 우리가 감각들로부터 나온 모든 것들을 귀착시킨다면, 우리가 우리 자신의 것이었던 것이 앞서서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그리고 그것들을 저 존재에 우리가 비교한다면, 이것들도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런 식으로 우리 자신의 영혼 또한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도 있다는 게 필연적이지: 그런데 만일 실상이 이렇지 않다면, 이 이야기된 논의가 달리 될 테지? 그럼 사정이 이러한가, 이런 것들도 우리 자신의 영혼들도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있다는 게 같은 정도로 필연적이며, 만일 그것들이 그렇지 않다면, 이쪽도 그렇지 않은 것인가?
θρυλοῦμεν : θρῡλέω repeat over and over.
ἀπεικάζομεν : ἀπεικάζω. form from a model.
Ὑπερφυῶς, ὦ Σώκρατες, ἔφη ὁ Σιμμίας, δοκεῖ μοι ἡ αὐτὴ ἀνάγκη εἶναι, καὶ εἰς καλόν γε καταφεύγει ὁ λόγος εἰς τὸ ὁμοίως εἶναι τήν τε ψυχὴν ἡμῶν πρὶν γενέσθαι ἡμᾶς καὶ τὴν οὐσίαν ἣν σὺ νῦν λέγεις. οὐ γὰρ ἔχω ἔγωγε οὐδὲν [Stephanus page 77, section a, line 3] οὕτω μοι ἐναργὲς ὂν ὡς τοῦτο, τὸ πάντα τὰ τοιαῦτ' εἶναι ὡς οἷόν τε μάλιστα, καλόν τε καὶ ἀγαθὸν καὶ τἆλλα πάντα ἃ σὺ νυνδὴ ἔλεγες· καὶ ἔμοιγε δοκεῖ ἱκανῶς ἀποδέδεικται.
지극히 그렇습니다, 소크라테스, 심미아스가 말했네, 제게는 동일한 필연성이 있다고 여겨지고, 그 논의는 그야말로 훌륭하게 빠져 나왔습니다 우리의 영혼도 당신이 지금 말씀하시는 그 존재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있다는 쪽으로 말입니다. 왜냐하면 저로서는 그것처럼 제게 그렇게 명백한 것을 아무것도 지니고 있지 않으니까요, 가능한 한 최대로 이와 같은 모든 것들이 있다는 것처럼요, 아름다움과 좋음 그리고 당신께서 방금 말씀하시던 다른 모든 것들이 말이지요: 그리고 제게는 충분하게 증명되었다고 여겨집니다.
Ὑπερφυῶς : ὑπέρφευ. adv. excessively.
ἐναργὲς : ἐναργής. visible, palpable, manifest to the mind's eye.
Τί δὲ δὴ Κέβητι; ἔφη ὁ Σωκράτης· δεῖ γὰρ καὶ Κέβητα πείθειν.
헌데 그럼 케베스에게는 어떤가? 소크라테스께서 말씀하셨지: 케베스도 납득할 필요가 있으니 말이네.
Ἱκανῶς, ἔφη ὁ Σιμμίας, ὡς ἔγωγε οἶμαι· καίτοι καρτερώτατος ἀνθρώπων ἐστὶν πρὸς τὸ ἀπιστεῖν τοῖς λόγοις. ἀλλ' οἶμαι οὐκ ἐνδεῶς τοῦτο πεπεῖσθαι αὐτόν, ὅτι πρὶν γενέσθαι ἡμᾶς ἦν ἡμῶν ἡ ψυχή· εἰ μέντοι καὶ ἐπειδὰν ἀποθάνωμεν ἔτι ἔσται, οὐδὲ αὐτῷ μοι δοκεῖ, ἔφη, ὦ Σώκρατες, [Stephanus page 77, section b, line 3] ἀποδεδεῖχθαι, ἀλλ' ἔτι ἐνέστηκεν ὃ νυνδὴ Κέβης ἔλεγε, τὸ τῶν πολλῶν, ὅπως μὴ ἅμα ἀποθνῄσκοντος τοῦ ἀνθρώπου διασκεδάννυται ἡ ψυχὴ καὶ αὐτῇ τοῦ εἶναι τοῦτο τέλος ᾖ. τί γὰρ κωλύει γίγνεσθαι μὲν αὐτὴν καὶ συνίστασθαι ἄλλοθέν ποθεν καὶ εἶναι πρὶν καὶ εἰς ἀνθρώπειον σῶμα ἀφικέσθαι, ἐπειδὰν δὲ ἀφίκηται καὶ ἀπαλλάττηται τούτου, τότε καὶ αὐτὴν τελευτᾶν καὶ διαφθείρεσθαι;
제가 보기에는 충분합니다, 심미아스가 말했네: 논의들을 불신하는 데에는 사람들 중 가장 강력한 사람이긴 하지만 말이죠. 허나 이걸로 그를 설득하는 데에 부족함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우리의 영혼들이 있었다는 것 말이죠:
ἀποθάνωμεν :
Εὖ λέγεις, ἔφη, ὦ Σιμμία, ὁ Κέβης. φαίνεται γὰρ ὥσπερ ἥμισυ ἀποδεδεῖχθαι οὗ δεῖ, ὅτι πρὶν γενέσθαι ἡμᾶς ἦν ἡμῶν ἡ ψυχή, δεῖ δὲ προσαποδεῖξαι ὅτι καὶ ἐπειδὰν [Stephanus page 77, section c, line 4] ἀποθάνωμεν οὐδὲν ἧττον ἔσται ἢ πρὶν γενέσθαι, εἰ μέλλει τέλος ἡ ἀπόδειξις ἕξειν.

Ἀποδέδεικται μέν, ἔφη, ὦ Σιμμία τε καὶ Κέβης, ὁ Σωκράτης, καὶ νῦν, εἰ 'θέλετε συνθεῖναι τοῦτόν τε τὸν λόγον εἰς ταὐτὸν καὶ ὃν πρὸ τούτου ὡμολογήσαμεν, τὸ γίγνεσθαι πᾶν τὸ ζῶν ἐκ τοῦ τεθνεῶτος. εἰ γὰρ ἔστιν μὲν ἡ ψυχὴ καὶ πρότερον, ἀνάγκη δὲ αὐτῇ εἰς τὸ ζῆν ἰούσῃ τε καὶ γιγνομένῃ μηδαμόθεν ἄλλοθεν ἢ ἐκ θανάτου καὶ τοῦ τεθνάναι γίγνεσθαι, πῶς οὐκ ἀνάγκη αὐτὴν καὶ ἐπειδὰν [Stephanus page 77, section d, line 4] ἀποθάνῃ εἶναι, ἐπειδή γε δεῖ αὖθις αὐτὴν γίγνεσθαι; ἀποδέδεικται μὲν οὖν ὅπερ λέγετε καὶ νῦν. ὅμως δέ μοι δοκεῖς σύ τε καὶ Σιμμίας ἡδέως ἂν καὶ τοῦτον διαπραγματεύσασθαι τὸν λόγον ἔτι μᾶλλον, καὶ δεδιέναι τὸ τῶν παίδων, μὴ ὡς ἀληθῶς ὁ ἄνεμος αὐτὴν ἐκβαίνουσαν ἐκ τοῦ σώματος διαφυσᾷ καὶ διασκεδάννυσιν, ἄλλως τε καὶ ὅταν τύχῃ τις μὴ ἐν νηνεμίᾳ ἀλλ' ἐν μεγάλῳ τινὶ πνεύματι ἀποθνῄσκων.

Καὶ ὁ Κέβης ἐπιγελάσας, Ὡς δεδιότων, ἔφη, ὦ Σώκρατες, πειρῶ ἀναπείθειν· μᾶλλον δὲ μὴ ὡς ἡμῶν δεδιότων, ἀλλ' ἴσως ἔνι τις καὶ ἐν ἡμῖν παῖς ὅστις τὰ τοιαῦτα φοβεῖται. [Stephanus page 77, section e, line 6] τοῦτον οὖν πειρῶ μεταπείθειν μὴ δεδιέναι τὸν θάνατον ὥσπερ τὰ μορμολύκεια.

Ἀλλὰ χρή, ἔφη ὁ Σωκράτης, ἐπᾴδειν αὐτῷ ἑκάστης ἡμέρας ἕως ἂν ἐξεπᾴσητε.

Πόθεν οὖν, ἔφη, ὦ Σώκρατες, τῶν τοιούτων ἀγαθὸν ἐπῳδὸν ληψόμεθα, ἐπειδὴ σύ, ἔφη, ἡμᾶς ἀπολείπεις;

Πολλὴ μὲν ἡ Ἑλλάς, ἔφη, ὦ Κέβης, ἐν ᾗ ἔνεισί που ἀγαθοὶ ἄνδρες, πολλὰ δὲ καὶ τὰ τῶν βαρβάρων γένη, οὓς πάντας χρὴ διερευνᾶσθαι ζητοῦντας τοιοῦτον ἐπῳδόν, μήτε χρημάτων φειδομένους μήτε πόνων, ὡς οὐκ ἔστιν εἰς ὅτι [Stephanus page 78, section a, line 7] ἂν εὐκαιρότερον ἀναλίσκοιτε χρήματα. ζητεῖν δὲ χρὴ καὶ αὐτοὺς μετ' ἀλλήλων· ἴσως γὰρ ἂν οὐδὲ ῥᾳδίως εὕροιτε μᾶλλον ὑμῶν δυναμένους τοῦτο ποιεῖν.

-작성중-

저작자 표시
Posted by 버러지

Trackback Address :: http://oistros.tistory.com/trackback/797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Stephanus page 487, section a, line 6] Οὐδ' ἂν ὁ Μῶμος, ἔφη, τό γε τοιοῦτον μέμψαιτο.
모모스도, 그가 말했네, 그런 일이라면 비난하지 않을 것입니다.
Ἀλλ', ἦν δ' ἐγώ, τελειωθεῖσι τοῖς τοιούτοις παιδείᾳ τε καὶ ἡλικίᾳ ἆρα οὐ μόνοις ἂν τὴν πόλιν ἐπιτρέποις;
그럼, 내가 말했네, 교육과 나이로 완성된 그런 자들에게만 자네는 폴리스를 맡기지 않겠는가?
Καὶ ὁ Ἀδείμαντος, Ὦ Σώκρατες, ἔφη, πρὸς μὲν ταῦτά σοι οὐδεὶς ἂν οἷός τ' εἴη ἀντειπεῖν. ἀλλὰ γὰρ τοιόνδε τι πάσχουσιν οἱ ἀκούοντες ἑκάστοτε ἃ νῦν λέγεις· ἡγοῦνται δι' ἀπειρίαν τοῦ ἐρωτᾶν καὶ ἀποκρίνεσθαι ὑπὸ τοῦ λόγου παρ' ἕκαστον τὸ ἐρώτημα σμικρὸν παραγόμενοι, ἁθροισθέντων τῶν σμικρῶν ἐπὶ τελευτῆς τῶν λόγων μέγα τὸ σφάλμα καὶ ἐναντίον τοῖς πρώτοις ἀναφαίνεσθαι, καὶ ὥσπερ ὑπὸ τῶν πεττεύειν [Stephanus page 487, section b, line 8] δεινῶν οἱ μὴ τελευτῶντες ἀποκλείονται καὶ οὐκ ἔχουσιν ὅτι φέρωσιν, οὕτω καὶ σφεῖς τελευτῶντες ἀποκλείεσθαι καὶ οὐκ ἔχειν ὅτι λέγωσιν ὑπὸ πεττείας αὖ ταύτης τινὸς ἑτέρας, οὐκ ἐν ψήφοις ἀλλ' ἐν λόγοις· ἐπεὶ τό γε ἀληθὲς οὐδέν τι μᾶλλον ταύτῃ ἔχειν.
그리고 아데이만토스가, 소크라테스, 하고 말했네,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는 당신에게 그 누구도 대꾸할 수 있는 자가 없을 것입니다. 허나 이런 어떤 것을 당신이 지금 말씀하고 계신 것들을 듣는 자들이 들을 때마다 겪습니다: 그들은 질문하고 대답하는 일에 대한 미숙함 때문에 논변에 의해 그들이 질문 마다 조금씩 오도되어, 사소한 것들이 모여서는 논의들의 끝에 이르러 대단한 실책이자 제일 처음의 것들에 반대되는 것으로 드러나 보인다고 믿고, 마치 장기에 능란한 자들에 의해 완숙하지 못한 자들이 가로막혀 그들이 옮길 것을 지니지 못하는 것처럼, 그런 식으로 그들 자신들도 결국 가로막혀 버리고 그와 같은 어떤 다른 장기놀이에 의해 말할 것을 가지지 못한다고, 장기말들에서가 아니라 말들에서 그렇다고 믿습니다: 그런 식으로는 조금도 진리를 가지지 못하기에 말입니다.
ἁθροισθέντων : ἀθροίζω aor. pass. gather together.
ἀποκλείονται : ἀποκλείω mp. shut out.
λέγω δ' εἰς τὸ παρὸν ἀποβλέψας. νῦν γὰρ φαίη ἄν τίς σοι λόγῳ μὲν οὐκ ἔχειν καθ' ἕκαστον τὸ ἐρωτώμενον ἐναντιοῦσθαι, ἔργῳ δὲ ὁρᾶν, ὅσοι ἂν ἐπὶ φιλοσοφίαν ὁρμήσαντες μὴ τοῦ πεπαιδεῦσθαι ἕνεκα ἁψάμενοι νέοι ὄντες ἀπαλλάττωνται, ἀλλὰ μακρότερον ἐνδιατρίψωσιν, τοὺς μὲν πλείστους καὶ πάνυ ἀλλοκότους γιγνομένους, ἵνα μὴ [Stephanus page 487, section d, line 3] παμπονήρους εἴπωμεν, τοὺς δ' ἐπιεικεστάτους δοκοῦντας ὅμως τοῦτό γε ὑπὸ τοῦ ἐπιτηδεύματος οὗ σὺ ἐπαινεῖς πάσχοντας, ἀχρήστους ταῖς πόλεσι γιγνομένους.
그런데 저는 지금 상황을 주시하면서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누군가 당신께 말로써는 질문된 각각의 것에 따라 반대할 수는 없으나, 실천으로는 본다고, 지혜를 사랑하는 일을 시작하고서 배움을 위해 어려서 손대고서 벗어나지 못하고, 더 오랜 시간을 쏟아 버린 자들 모두가, 그들 중 대다수는 무척이나 괴상한 자들이 되고, 우리가 타락해 버린 자들이라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또 다른 자들은 매우 유능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당신께서 칭찬하시는 바로 그 일에 의해 이런 일을 겪어서, 폴리스들에 쓸모가 없는 자들이 되는 걸을 본다고 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ἐναντιοῦσθαι : ἐναντιόομαι. set oneself against, oppose.
ἀπαλλάττωνται : ἀπαλλάσσω mp. subj. set free.
παμπονήρους : thoroughly depraved
Καὶ ἐγὼ ἀκούσας, Οἴει οὖν, εἶπον, τοὺς ταῦτα λέγοντας ψεύδεσθαι;
나도 그 이야기를 듣고서, 그렇다면 자네는 이리 생각하는가, 하고 말했네, 이런 말들을 하는 자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Οὐκ οἶδα, ἦ δ' ὅς, ἀλλὰ τὸ σοὶ δοκοῦν ἡδέως ἂν ἀκούοιμι.
그리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그가 말했네, 당신께 여겨지는 바를 기꺼이 듣고자 합니다.
Ἀκούοις ἂν ὅτι ἔμοιγε φαίνονται τἀληθῆ λέγειν.
자네는 내게 있어서는 진리를 말한 것으로 보이는 바를 듣게 될 걸세.
Πῶς οὖν, ἔφη, εὖ ἔχει λέγειν ὅτι οὐ πρότερον κακῶν παύσονται αἱ πόλεις, πρὶν ἂν ἐν αὐταῖς οἱ φιλόσοφοι [Stephanus page 487, section e, line 3] ἄρξωσιν, οὓς ἀχρήστους ὁμολογοῦμεν αὐταῖς εἶναι;
그가 말했지, 그렇다면 어떻게, 폴리스들 내에서 지혜를 사랑하는 자들이, 그 도시들에 무용한 자들이라고 우리가 동의하는 그 자들이 지배하기 전에는, 그보다 먼저 폴리스들이 해악을 그치지는 못하리라는 것을 잘 말할 수 있습니까?
Ἐρωτᾷς, ἦν δ' ἐγώ, ἐρώτημα δεόμενον ἀποκρίσεως δι' εἰκόνος λεγομένης.
내가 말했네, 자네는 비유를 통해 이야기되는 답변이 필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군.
Σὺ δέ γε, ἔφη, οἶμαι οὐκ εἴωθας δι' εἰκόνων λέγειν.
그런데 바로 당신께서는, 그가 말했네, 비유들을 통해 이야기하시는 일에 익숙치 않으신 걸로 생각합니다.
Εἶεν, εἶπον· σκώπτεις ἐμβεβληκώς με εἰς λόγον οὕτω δυσαπόδεικτον; ἄκουε δ' οὖν τῆς εἰκόνος, ἵν' ἔτι μᾶλλον ἴδῃς ὡς γλίσχρως εἰκάζω. οὕτω γὰρ χαλεπὸν τὸ πάθος τῶν ἐπιεικεστάτων, ὃ πρὸς τὰς πόλεις πεπόνθασιν, ὥστε οὐδ' ἔστιν ἓν οὐδὲν ἄλλο τοιοῦτον πεπονθός, ἀλλὰ δεῖ ἐκ πολλῶν αὐτὸ συναγαγεῖν εἰκάζοντα καὶ ἀπολογούμενον [Stephanus page 488, section a, line 6] ὑπὲρ αὐτῶν, οἷον οἱ γραφῆς τραγελάφους καὶ τὰ τοιαῦτα μειγνύντες γράφουσιν.
자, 내가 말했지: 자네 나를 그렇게나 증명하기 어려운 논의로 빠뜨려 놓고서는 농담을 하고 있는가? 허나 그렇다면 그 비유를 들어 보게, 내가 얼마나 힘들게 비유를 하는지 자네가 훨씬 더 잘 알도록 말일세. 왜냐하면 그 가장 적합한 자들의 그 경험, 그들이 폴리스들에서 겪은 그 경험은 가혹한 것이어서, 그와 같은 다른 일을 겪은 경우는 하나도 있지 않을 정도이나, 그들을 위한 비유들과 변호 그것은 많은 것들로부터 취합될 필요가 있는데, 말하자면 화가들이 염소-사슴들과 그런 종류의 것들을 뒤섞어서 그리는 것과 같지.
σκώπτεις : σκώπτω. mock, jest, joke.
ἐμβεβληκώς : ἐμβάλλω pf. part.
γλίσχρως : sticky. hardly.
νόησον γὰρ τοιουτονὶ γενόμενον εἴτε πολλῶν νεῶν πέρι εἴτε μιᾶς· ναύκληρον μεγέθει μὲν καὶ ῥώμῃ ὑπὲρ τοὺς ἐν τῇ νηὶ πάντας, ὑπόκωφον δὲ καὶ ὁρῶντα ὡσαύτως βραχύ τι καὶ γιγνώσκοντα περὶ ναυτικῶν ἕτερα τοιαῦτα, τοὺς δὲ ναύτας στασιάζοντας πρὸς ἀλλήλους περὶ τῆς κυβερνήσεως, ἕκαστον οἰόμενον δεῖν κυβερνᾶν, μήτε μαθόντα πώποτε τὴν τέχνην μήτε ἔχοντα ἀποδεῖξαι διδάσκαλον ἑαυτοῦ μηδὲ χρόνον ἐν ᾧ ἐμάνθανεν, πρὸς δὲ τούτοις φάσκοντας μηδὲ διδακτὸν εἶναι, ἀλλὰ καὶ τὸν λέγοντα ὡς [Stephanus page 488, section b, line 8] διδακτὸν ἑτοίμους κατατέμνειν, αὐτοὺς δὲ αὐτῷ ἀεὶ τῷ ναυκλήρῳ περικεχύσθαι δεομένους καὶ πάντα ποιοῦντας ὅπως ἂν σφίσι τὸ πηδάλιον ἐπιτρέψῃ, ἐνίοτε δ' ἂν μὴ πείθωσιν ἀλλὰ ἄλλοι μᾶλλον, τοὺς μὲν ἄλλους ἢ ἀποκτεινύντας ἢ ἐκβάλλοντας ἐκ τῆς νεώς, τὸν δὲ γενναῖον ναύκληρον μανδραγόρᾳ ἢ μέθῃ ἤ τινι ἄλλῳ συμποδίσαντας τῆς νεὼς ἄρχειν χρωμένους τοῖς ἐνοῦσι, καὶ πίνοντάς τε καὶ εὐωχουμένους πλεῖν ὡς τὸ εἰκὸς τοὺς τοιούτους, πρὸς δὲ τούτοις ἐπαινοῦντας ναυτικὸν μὲν καλοῦντας καὶ κυβερνητικὸν καὶ ἐπιστάμενον τὰ κατὰ ναῦν, ὃς ἂν συλλαμβάνειν δεινὸς ᾖ ὅπως [Stephanus page 488, section d, line 3] ἄρξουσιν ἢ πείθοντες ἢ βιαζόμενοι τὸν ναύκληρον, τὸν δὲ μὴ τοιοῦτον ψέγοντας ὡς ἄχρηστον, τοῦ δὲ ἀληθινοῦ κυβερνήτου πέρι μηδ' ἐπαΐοντες, ὅτι ἀνάγκη αὐτῷ τὴν ἐπιμέλειαν ποιεῖσθαι ἐνιαυτοῦ καὶ ὡρῶν καὶ οὐρανοῦ καὶ ἄστρων καὶ πνευμάτων καὶ πάντων τῶν τῇ τέχνῃ προσηκόντων, εἰ μέλλει τῷ ὄντι νεὼς ἀρχικὸς ἔσεσθαι, ὅπως δὲ κυβερνήσει ἐάντε τινες βούλωνται ἐάντε μή, μήτε τέχνην τούτου μήτε μελέτην οἰόμενοι δυνατὸν εἶναι λαβεῖν ἅμα καὶ τὴν κυβερνητικήν.
왜냐하면 생각해 보게, 다음과 같은 어떤 일이 생기는 걸 많은 배들과 관련해서건 단 한 척의 배에 관해서건 말일세: 덩치로도 힘으로도 그 배 안의 모든 이들을 능가하는 선장이, 그러나 귀머거리에 마찬가지로 근시안적이고 항해술에 관련된 것 말고 그런 다른 것들을 아는데, 선원들이 항로에 관하여 서로 반목할 때, 각자 (자신이) 키를 잡아야 한다 생각할 때, 한 번도 그 기술을 배운 적도 없고 그 자신의 스승도 그 배웠던 기간도 내세워 보이지 못하면서, 그러나 이런 일들을 향해 배울 수 있는 일도 아니라고 그들이 단언하며, 배울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자까지 절단낼 준비가 되어 있는 자들, 그들 스스로 바로 그 선장을 언제나 둘러싸고 모여들었다고(생각해 보게) 그들 자신에게 키가 주어지도록 바라고 또 온갖 짓들을 저지르면서, 종종 그들이 설득하지 못하고 오히려 다른 이들이 설득할 때, 그 다른 자들은 베어 버리거나 배 밖으로 던져 버리고, 훌륭한 선장은 만드라고라를 가지고서든 독한 술을 가지고서든 다른 무엇으로든 손발을 묶고서 안에 있는 것들을 사용하여 배를 지배하는 일이(γενόμενον), 그런 자들이 으레 그러하듯 마셔대고 잔치를 벌이며 항해하는 일이(γενόμενον), 이런 일들에 더하여 그들은 항해술에 능하다고 부르면서 조타술이 있고 배에 관련한 일들을 아는 자라고 부르고, 누구든 그들이 선장을 설득하든 강제하든 지배하도록 돕는 데에 능란한 자를, 반면에 이러한 자가 아닌 자를 쓸모 없는 자라고 비난하며, 참된 조타술에 관하여서 칭찬하지도 않고, 그로서는 날씨와 하늘과 별들과 바람들 그리고 그 기술에 속하는 온갖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는 일이 필연적이기 때문에, 만일 실제로 배의 지배자가 될 자라면, 어떤 이들이 바라든 바라지 않든 키를 잡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기술도 주의도 동시에 조타술을 취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으면서 말일세.
ναύκληρον : captain
μεγέθει : greatness. in stature. might, power.
ῥώμῃ : bodily strength.
ὑπόκωφον : somewhat deaf. absurd.
στασιάζοντας : quarrel, against.
κυβερνήσεως : steering, pilotage.
ἑτοίμους : at hand, ready, prepared.
περικεχύσθαι : περιχέω pf. mp. inf. crowding round.
πηδάλιον : steering-paddle.
μέθῃ : strong drink.
συμποδίσαντας : συμποδίζω aor. part.
πίνοντάς : πίνω.
εὐωχουμένους : εὐωχέω mp. fare sumptuously, feast.
ψέγοντας : ψέγω. blame.
τοιούτων δὴ περὶ τὰς ναῦς γιγνομένων τὸν ὡς ἀληθῶς κυβερνητικὸν οὐχ ἡγῇ ἂν τῷ ὄντι μετεωροσκόπον [Stephanus page 489, section a, line 1] τε καὶ ἀδολέσχην καὶ ἄχρηστόν σφισι καλεῖσθαι ὑπὸ τῶν ἐν ταῖς οὕτω κατεσκευασμέναις ναυσὶ πλωτήρων;
배들을 둘러싸고 이런 일들이 벌어질 때 진정으로 조타술에 능한 자가 실제로는 별 보는 자이자 헛소리하는 자 그리고 그들 자신들에게 쓸모없는 자라고 그렇게 만들어진 배들의 선원들에 의해 불릴 것이라 자네가 생각하지 않겠나?
κατεσκευασμένα : κατασκευάζω pf. mp. equip. furnish fully with. make. set up.
Καὶ μάλα, ἔφη ὁ Ἀδείμαντος.
물론 그렇습니다, 아데이만토스가 말했네.
Οὐ δή, ἦν δ' ἐγώ, οἶμαι δεῖσθαί σε ἐξεταζομένην τὴν εἰκόνα ἰδεῖν, ὅτι ταῖς πόλεσι πρὸς τοὺς ἀληθινοὺς φιλοσόφους τὴν διάθεσιν ἔοικεν, ἀλλὰ μανθάνειν ὃ λέγω.
내가 말하길, 나는 자네가 그 고찰되는 비유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네만, 그 상태가 진정으로 지혜를 사랑하는 자들에 대한 폴리스들과 닮았다는 것 말일세, 허나 내가 말하는 바를 안다고 생각한다네.
ἐξεταζομένην : ἐξετάζω mp. part. examine well or closely.
Καὶ μάλ', ἔφη.
물론이죠, 그가 말했네.
Πρῶτον μὲν τοίνυν ἐκεῖνον τὸν θαυμάζοντα ὅτι οἱ φιλόσοφοι οὐ τιμῶνται ἐν ταῖς πόλεσι δίδασκέ τε τὴν εἰκόνα καὶ πειρῶ πείθειν ὅτι πολὺ ἂν θαυμαστότερον ἦν [Stephanus page 489, section b, line 1] εἰ ἐτιμῶντο.
그러니 우선은 지혜를 사랑하는 자들이 폴리스들 안에서 존경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놀라워하는 저 사람에게 그 비유를 가르쳐 주고 또한 만일 그들이 존경을 받았다면 그게 훨씬 더 놀라운 일이었으리란 점을 설득시키고자 시도해 보게.
Ἀλλὰ διδάξω, ἔφη.
그럼 시도해 보겠습니다, 그가 말했네.
Καὶ ὅτι τοίνυν τἀληθῆ λέγεις, ὡς ἄχρηστοι τοῖς πολλοῖς οἱ ἐπιεικέστατοι τῶν ἐν φιλοσοφίᾳ· τῆς μέντοι ἀχρηστίας τοὺς μὴ χρωμένους κέλευε αἰτιᾶσθαι, ἀλλὰ μὴ τοὺς ἐπιεικεῖς.
그러니까 자네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도, 지혜를 사랑하는 일에 몸담은 자들 중 가장 능력있는 자들이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무능한 자들이라고 말하면서 말이네: 그렇지만 그 무능에 대해 사용하지 않는 자들을 탓하도록, 그러나 그 유능한 자들을 탓하지는 않도록 명하시게.
οὐ γὰρ ἔχει φύσιν κυβερνήτην ναυτῶν δεῖσθαι ἄρχεσθαι ὑφ' αὑτοῦ οὐδὲ τοὺς σοφοὺς ἐπὶ τὰς τῶν πλουσίων θύρας ἰέναι, ἀλλ' ὁ τοῦτο κομψευσάμενος ἐψεύσατο, τὸ δὲ ἀληθὲς πέφυκεν, ἐάντε πλούσιος ἐάντε πένης κάμνῃ, ἀναγκαῖον εἶναι ἐπὶ ἰατρῶν θύρας ἰέναι καὶ πάντα τὸν ἄρχεσθαι [Stephanus page 489, section c, line 2] δεόμενον ἐπὶ τὰς τοῦ ἄρχειν δυναμένου, οὐ τὸν ἄρχοντα δεῖσθαι τῶν ἀρχομένων ἄρχεσθαι, οὗ ἂν τῇ ἀληθείᾳ τι ὄφελος ᾖ.
왜냐하면 선장이 그 자신에 의한 지배를 선원들에게 구걸한다는 것도 지혜로운 자들이 부유한 자들의 대문으로 나아간다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고, 이 우스갯소리를 한 자는 거짓말을 한 것이나, 본래 사실은, 부자든 날품팔이꾼이든 아프다면, 의사들의 대문으로 나아가고 또 모든 경우에 지배를 필요로 하는 자가 지배할 수 있는 자의 대문으로 나아가는 게 필연적이라는 것이기 때문일세, 지배하는 자가 지배받는 자들에게 지배를 구걸하는 게 아니고, 그 일에 진정으로 뭔가 유익한 자라면 말이네.
ἀλλὰ τοὺς νῦν πολιτικοὺς ἄρχοντας ἀπεικάζων οἷς ἄρτι ἐλέγομεν ναύταις οὐχ ἁμαρτήσῃ, καὶ τοὺς ὑπὸ τούτων ἀχρήστους λεγομένους καὶ μετεωρολέσχας τοῖς ὡς ἀληθῶς κυβερνήταις.
허나 오늘날 정치하는 자들이 지배할 때 그들을 자네가 방금 우리가 말하던 그 선원들에 비유하면 잘못하는 건 아닐 것이고, 이들에 의해 쓸모없는 자들이자 별 보는 자들이라 이야기되는 사람들을 진정한 선장들에 비유하는 것도 그러할 걸세.
Ὀρθότατα, ἔφη.
무척이나 옳습니다, 그가 말했네.
Ἔκ τε τοίνυν τούτων καὶ ἐν τούτοις οὐ ῥᾴδιον εὐδοκιμεῖν τὸ βέλτιστον ἐπιτήδευμα ὑπὸ τῶν τἀναντία ἐπιτηδευόντων· πολὺ δὲ μεγίστη καὶ ἰσχυροτάτη διαβολὴ γίγνεται φιλοσοφίᾳ [Stephanus page 489, section d, line 2] διὰ τοὺς τὰ τοιαῦτα φάσκοντας ἐπιτηδεύειν, οὓς δὴ σὺ φῂς τὸν ἐγκαλοῦντα τῇ φιλοσοφίᾳ λέγειν ὡς παμπόνηροι οἱ πλεῖστοι τῶν ἰόντων ἐπ' αὐτήν, οἱ δὲ ἐπιεικέστατοι ἄχρηστοι, καὶ ἐγὼ συνεχώρησα ἀληθῆ σε λέγειν. ἦ γάρ;
따라서 이런 일들로부터 그리고 이런 자들 속에서 그 가장 중요한 일을 정반대의 일들을 하는 자들 아래에서 좋게 평하기란 쉽지가 않다네: 너무나 대단하고도 수치스러운 비방이 지혜를 사랑하는 일에 대해 그런 정반대의 짓들을 일삼는다고 주장하는 자들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그들은 자네가 철학에 비난을 하는 자라고 말하는 자들이지, 그들은 그 일을 향해 나아가는 자들 중 대다수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들이고, 가장 유능한 자들도 쓸모없는 자들이라고 말하는데, 나는 자네가 진실을 말한다고 동의한 바 있네. 아니 그런가?
Ναί.
맞습니다.
Οὐκοῦν τῆς μὲν τῶν ἐπιεικῶν ἀχρηστίας τὴν αἰτίαν διεληλύθαμεν;
그렇다면 유능한 자들의 무능함에 대한 원인을 우리가 상술해 보도록 하지 않겠나?
Καὶ μάλα.
물론입니다.
Τῆς δὲ τῶν πολλῶν πονηρίας τὴν ἀνάγκην βούλει τὸ μετὰ τοῦτο διέλθωμεν, καὶ ὅτι οὐδὲ τούτου φιλοσοφία αἰτία, [Stephanus page 489, section e, line 1] ἂν δυνώμεθα, πειραθῶμεν δεῖξαι;
많은 이들의 타락에 대한 필연성을 자네가 좋다면 그 다음으로 우리가 살펴 보고, 그 일의 원인이 지혜 사랑은 아니라는 것도, 우리가 할 수 있다면, 증명해 보이기를 시도하도록 할까?
Πάνυ μὲν οὖν.
물론입니다.
Ἀκούωμεν δὴ καὶ λέγωμεν ἐκεῖθεν ἀναμνησθέντες, ὅθεν διῇμεν τὴν φύσιν οἷον ἀνάγκη φῦναι τὸν καλόν τε κἀγαθὸν ἐσόμενον. ἡγεῖτο δ' αὐτῷ, εἰ νῷ ἔχεις, πρῶτον μὲν ἀλήθεια, ἣν διώκειν αὐτὸν πάντως καὶ πάντῃ ἔδει ἢ ἀλαζόνι ὄντι μηδαμῇ μετεῖναι φιλοσοφίας ἀληθινῆς.
저기에서부터 기억을 떠올려 우리 듣고 말하기로 하세, 아름답고도 훌륭하게 될 자가 필연적으로 본성으로 지닐 그러한 본성을 논의한 곳에서부터 말이네. 그 자에게 길잡이가 되었던 것은, 자네가 기억한다면, 우선은 진리였는데, 그건 그 자가 전적으로 모든 면에서 추구해야만 했던 것이고 아니라면 허세를 부리는 자로서 어떤 식으로도 진정으로 지혜를 사랑하는 일에 참여하지 않아야 했지.
Ἦν γὰρ οὕτω λεγόμενον.
그렇게 이야기된 바 있었지요.
Οὐκοῦν ἓν μὲν τοῦτο σφόδρα οὕτω παρὰ δόξαν τοῖς νῦν [Stephanus page 490, section a, line 6] δοκουμένοις περὶ αὐτοῦ;
그렇다면 그것은 오늘날 그 일에 관하여 의견을 가지는 자들과 그렇게나 심각하게 어긋난 의견의 하나가 아닌가?

-蟲-

저작자 표시
Posted by 버러지

Trackback Address :: http://oistros.tistory.com/trackback/796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8) εἰ δὲ λόγος ὁ πείσας καὶ τὴν ψυχὴν ἀπατήσας, οὐδὲ πρὸς τοῦτο χαλεπὸν ἀπολογήσασθαι καὶ τὴν αἰτίαν ἀπολύσασθαι ὧδε. λόγος δυνάστης μέγας ἐστίν, ὃς σμικροτάτῳ σώματι καὶ ἀφανεστάτῳ θειότατα ἔργα ἀποτελεῖ· δύναται γὰρ καὶ φόβον παῦσαι καὶ λύπην ἀφελεῖν καὶ χαρὰν ἐνεργάσασθαι καὶ ἔλεον ἐπαυξῆσαι. ταῦτα δὲ ὡς οὕτως ἔχει δείξω·
그러나 만일 그녀의 영혼을 설득하고 속이 것이 말이라면, 이에 대해 이런 식으로 변론하고 그 책임으로부터 풀려나는 것이 어려운 일도 아니다. 말은 거대한 지배자, 신체의 가장 사소하고도 미미한 부분으로 가장 신적인 일들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두려움을 멎게 하고 고통을 제거하며 기쁨을 불러 일으키고 동정심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그러함을 나는 보여줄 것이다.
(9) δεῖ δὲ καὶ δόξῃ δεῖξαι τοῖς ἀκούουσι. τὴν ποίησιν ἅπασαν καὶ νομίζω καὶ ὀνομάζω λόγον ἔχοντα μέτρον· ἧς τοὺς ἀκούοντας εἰσῆλθε καὶ φρίκη περίφοβος καὶ ἔλεος πολύδακρυς καὶ πόθος φιλοπενθής, ἐπ᾿ ἀλλοτρίων τε πραγμάτων καὶ σωμάτων εὐτυχίαις καὶ δυσπραγίαις ἴδιόν τι πάθημα διὰ τῶν λόγων ἔπαθεν ἡ ψυχή.
그런데 의견으로도 듣는 이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나는 모든 시가 적도를 지닌 말이라고 믿고 또한 이름한다: 그 시를 듣는 자들에게 몸서리쳐지는 공포와 많은 눈물을 자아내는 연민과 애도 그리고 비탄에 빠진 감정이 들어 서고, 다른 사태들과 일신들의 행운들과 불행들에 관하여 그 말들을 통하여 고유한 감정을 영혼은 겪는다.
(10) φέρε δὴ πρὸς ἄλλον ἀπ᾿ ἄλλου μεταστῶ λόγον. αἱ γὰρ ἔνθεοι διὰ λόγων ἐπῳδαὶ ἐπαγωγοὶ ἡδονῆς, ἀπαγωγοὶ λύπης γίγνονται· συγγιγνομένη γὰρ τῇ δόξῃ τῆς ψυχῆς ἡ δύναμις τῆς ἐπῳδῆς ἔθελξε καὶ ἔπεισε καὶ μετέστησεν αὐτὴν γοητείᾳ. γοητείας δὲ καὶ μαγείας δισσαὶ τέχναι εὕρηνται, αἵ εἰσι ψυχῆς ἁμαρτήματα καὶ δόξης ἀπατήματα.
자, 나는 하나의 설에서 다른 설로 넘어갈 것이다. 왜냐하면 말들을 통하여 신내린 노래하는 자들은 기쁨을 가져오는 자들, 고통을 가져가는 자들이 되기 때문이다: 영혼의 의견과 함께함으로써 그 노래의 힘이 매혹하고 마성으로 그 영혼을 설득하며 바꿔 놓으니. 그런데 마성과 마법의 두 가지 기술들이 알려 져 있다, 그것들은 영혼의 기만들과 의견의 기만들이다.
(11) ὅσοι δὲ ὅσους περὶ ὅσων καὶ ἔπεισαν καὶ πείθουσι δὲ ψευδῆ λόγον πλάσαντες. εἰ μὲν γὰρ πάντες περὶ πάντων εἶχον τῶν παροιχομένων μνήμην τῶν τε παρόντων <ἔννοιαν> τῶν τε μελλόντων πρόνοιαν, οὐκ ἂν ὁμοίως ὅμοιος ἦν ὁ λόγος· ἀλλὰ νῦν γε οὔτε μνησθῆναι τὸ παροιχόμενον οὔτε σκέψασθαι τὸ παρὸν οὔτε μαντεύσασθαι τὸ μέλλον εὐπόρως ἔχει, ὥστε περὶ τῶν πλείστων οἱ πλεῖστοι τὴν δόξαν σύμβουλον τῇ ψυχῇ παρέχονται. ἡ δὲ δόξα σφαλερὰ καὶ ἀβέβαιος οὖσα σφαλεραῖς καὶ ἀβεβαίοις εὐτυχίαις περιβάλλει τοὺς αὐτῇ χρωμένους.
그런데 얼마나 많은 자들이 얼마나 많은 자들을 얼마나 많은 일들에 관하여 설득해 왔고 또 설득하고 있는지, 거짓된 말을 지어내며. 만일 그들 모두가 모든 일들에 관하여 지나간 일들과 작금의 일들 그리고 장차 있을 일들의 기억과 이해와 예지를 지녔다면, 그 말이 그런 식으로 그런 것이지 않았을 것이기에: 하지만 지금은 쉽사리 과거가 기억될 수도 현재가 검토될 수도 미래가 예언될 수도 없고, 그래서 대부분의 일들에 관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영혼에 그 의견을 조언자로 곁에 가진다. 그런데 그 의견은 미끄럽고 믿을 수 없는 것이기에 그 의견을 사용하는 자들에게 미끄럽고 믿을 수 없는 행운들을 던져준다.
(12) † τίς οὖν αἰτία κωλύει καὶ τὴν Ἑλένην ὕμνος ἦλθεν ὁμοίως ἂν οὐ νέαν οὖσαν ὥσπερ εἰ βιατήριον βίᾳ ἡρπάσθη; τὸ γὰρ τῆς πειθοῦς ἐξῆν ὁ δὲ νοῦς καίτοι εἰ ἀνάγκη ὁ εἰδὼς ἕξει μὲν οὖν, τὴν δὲ δύναμιν τὴν αὐτὴν ἔχει. λόγος γὰρ ψυχὴν ὁ πείσας, ἣν ἔπεισεν, ἠνάγκασε καὶ πιθέσθαι τοῖς λεγομένοις καὶ συναινέσαι τοῖς ποιουμένοις. ὁ μὲν οὖν πείσας ὡς ἀναγκάσας ἀδικεῖ, ἡ δὲ πεισθεῖσα ὡς ἀναγκασθεῖσα τῷ λόγῳ μάτην ἀκούει κακῶς.
그러므로 안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또한 헬레네는 어리지 않았기에 마치 야만인이 힘으로 붙잡았다면 그러했을 것처럼 노래가 그녀에게 마찬가지로 이르렀으니? ... 그 영혼을 설득하였던 말이 설득하여 이야기된 일들에 순종토록 강제하였고 그 행해지는 일들에 대해 인정토록 강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강제하였기에 설득한 자는 부정의한 짓을 하는 것이고, 말로써 강제되었기에 순종한 여인은 헛되이 매도되는 것이다.
(13) ὅτι δ᾿ ἡ πειθὼ προσιοῦσα τῷ λόγῳ καὶ τὴν ψυχὴν ἐτυπώσατο ὅπως ἐβούλετο, χρὴ μαθεῖν πρῶτον μὲν τοὺς τῶν μετεωρολόγον λόγους, οἵτινες δόξαν ἀντὶ δόξης τὴν μὲν ἀφελόμενοι τὴν δ᾿ ἐνεργασάμενοι τὰ ἄπιστα καὶ ἄδηλα φαίνεσθαι  τοῖς τῆς δόξης ὄμμασιν ἐποίησαν· δεύτερον δὲ τοὺς ἀναγκαίους διὰ λόγων ἀγῶνας, ἐν οἷς εἷς λόγος πολὺν ὄχλον ἔτερψε καὶ ἔπεισε τέχνῃ γραφείς, οὐκ ἀληθείαι λεχθείς· τρίτον <δὲ> φιλοσόφων λόγων ἁμίλλας, ἐν αἷς δείκνυται καὶ γνώμης τάχος ὡς εὐμετάβολον ποιοῦν τὴν τῆς δόξης πίστιν.

(14) τὸν αὐτὸν δὲ λόγον ἔχει ἥ τε τοῦ λόγου δύναμις πρὸς τὴν τῆς ψυχῆς τάξιν ἥ τε τῶν φαρμάκων τάξιν πρὸς τὴν τῶν σωμάτων φύσιν. ὥσπερ γὰρ τῶν φαρμάκων ἄλλους ἄλλα χυμοὺς ἐκ τοῦ σώματος ἐξάγει, καὶ τὰ μὲν νόσου τὰ δὲ βίου παύει, οὕτω καὶ τῶν λόγων οἱ μὲν ἐλύπησαν, οἱ δὲ ἕτερψαν, οἱ δὲ ἐφόβησαν, οἱ δὲ εἰς θάρσος κατέστησαν τοὺς ἀκούντας, οἱ δὲ πειθοῖ τινι κακῇ τὴν ψυχὴν ἐφαρμάκευσαν καὶ ἐξεγοήτευσαν.

-작성중-

저작자 표시
Posted by 버러지

Trackback Address :: http://oistros.tistory.com/trackback/795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Πάνυ γε.
물론입니다.
Ὁμολογεῖται ἄρα ἡμῖν καὶ ταύτῃ τοὺς ζῶντας ἐκ τῶν τεθνεώτων γεγονέναι οὐδὲν ἧττον ἢ τοὺς τεθνεῶτας ἐκ τῶν ζώντων, τούτου δὲ ὄντος ἱκανόν που ἐδόκει τεκμήριον εἶναι ὅτι ἀναγκαῖον τὰς τῶν τεθνεώτων ψυχὰς εἶναί που, ὅθεν δὴ πάλιν γίγνεσθαι.
그럼 그런 식으로도 산 자들로부터 죽은 자들이 생긴다는 것에 조금도 못지 않게 죽은 자들로부터 산자들이 생겨난다는 것도 우리에게 동의되는군, 그런데 이 일이 사실이라면 죽은 자들의 영혼들이 어딘가에 있다는 것과, 그 곳으로부터 다시 생겨난다는 것이 필연적이라는 것이 충분한 입증되는 것으로 아마도 여겨지겠고.
Δοκεῖ μοι, ἔφη, ὦ Σώκρατες, ἐκ τῶν ὡμολογημένων [Stephanus page 72, section a, line 10] ἀναγκαῖον οὕτως ἔχειν.
그가 말했네, 제게는 그리 여겨집니다, 소크라테스, 동의된 것들로부터 사정이 그러하다는 게 필연적이라고 말이죠.
Ἰδὲ τοίνυν οὕτως, ἔφη, ὦ Κέβης, ὅτι οὐδ' ἀδίκως ὡμολογήκαμεν, ὡς ἐμοὶ δοκεῖ. εἰ γὰρ μὴ ἀεὶ ἀνταποδιδοίη τὰ ἕτερα τοῖς ἑτέροις γιγνόμενα, ὡσπερεὶ κύκλῳ περιιόντα, ἀλλ' εὐθεῖά τις εἴη ἡ γένεσις ἐκ τοῦ ἑτέρου μόνον εἰς τὸ καταντικρὺ καὶ μὴ ἀνακάμπτοι πάλιν ἐπὶ τὸ ἕτερον μηδὲ καμπὴν ποιοῖτο, οἶσθ' ὅτι πάντα τελευτῶντα τὸ αὐτὸ σχῆμα ἂν σχοίη καὶ τὸ αὐτὸ πάθος ἂν πάθοι καὶ παύσαιτο γιγνόμενα;
그 분께서 말씀하셨지, 그러니 보게, 케베스, 내게 여겨지기로는 우리가 잘못 동의한 것도 아니라는 걸 말이네. 왜냐하면 만일 어떤 것들이 생겨나면서 그와 다른 것들과 언제나 균형을 맞추는 것은 아니라면, 그것들이 원형으로 순환하는 그런 방식인 한에서 말일세, 허나 다른 것으로부터의 생성이 오직 맞은 편의 것을 향해서만 일방향인 어떤 것이고 다시 다른 것 쪽으로 돌이키지 못하며 전회를 이루지도 못한다면, 자네는 모든 것들이 종국에 동일한 형태를 지니고 동일한 경험을 겪으며 생성하는 일을 멈추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Πῶς λέγεις; ἔφη.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가 말했네.
Οὐδὲν χαλεπόν, ἦ δ' ὅς, ἐννοῆσαι ὃ λέγω· ἀλλ' οἷον εἰ [Stephanus page 72, section b, line 8] τὸ καταδαρθάνειν μὲν εἴη, τὸ δ' ἀνεγείρεσθαι μὴ ἀνταποδιδοίη γιγνόμενον ἐκ τοῦ καθεύδοντος, οἶσθ' ὅτι τελευτῶντα πάντ' <ἂν> λῆρον τὸν Ἐνδυμίωνα ἀποδείξειεν καὶ οὐδαμοῦ ἂν φαίνοιτο διὰ τὸ καὶ τἆλλα πάντα ταὐτὸν ἐκείνῳ πεπονθέναι, καθεύδειν. κἂν εἰ συγκρίνοιτο μὲν πάντα, διακρίνοιτο δὲ μή, ταχὺ ἂν τὸ τοῦ Ἀναξαγόρου γεγονὸς εἴη, “Ὁμοῦ πάντα χρήματα.” ὡσαύτως δέ, ὦ φίλε Κέβης, καὶ εἰ ἀποθνῄσκοι μὲν πάντα ὅσα τοῦ ζῆν μεταλάβοι, ἐπειδὴ δὲ ἀποθάνοι, μένοι ἐν τούτῳ τῷ σχήματι τὰ τεθνεῶτα καὶ μὴ πάλιν ἀναβιώσκοιτο, ἆρ' οὐ πολλὴ ἀνάγκη τελευτῶντα πάντα [Stephanus page 72, section d, line 1] τεθνάναι καὶ μηδὲν ζῆν; εἰ γὰρ ἐκ μὲν τῶν ἄλλων τὰ ζῶντα γίγνοιτο, τὰ δὲ ζῶντα θνῄσκοι, τίς μηχανὴ μὴ οὐχὶ πάντα καταναλωθῆναι εἰς τὸ τεθνάναι;
전혀 어려울 것도 없네, 그 분께서 말씀하셨지,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는 건: 그러니까 말하자면 만일 잠듦은 있는데, 깨어남은 잠든 자로부터 생겨나 균형을 맞추지 못한다면, 결국에 모든 이가 엔뒤미온이 하찮음을 밝혀낼 테고 그 어디에서도 그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니 다른 모든 것들도 그와 마찬가지 일을 겪었다는 것, 즉 잠듦을 겪었다는 사실 때문에 그렇다는 걸 자네는 알고 있지. 또 만일 모든 것들이 결합은 하지만, 분할은 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곧 아낙사고라스의 말이 이루어지는 일이 있을 것이네, "모든 것들이 함께"라는 말 말일세. 그런데 마찬가지로, 친애하는 케베스, 또 만일 삶에 참여하는 그 모든 것들이 죽기는 하나, 그들이 죽고 나서는, 죽은 것들이 동일한 형태 안에 머물고 또 다시 살아나지를 못한다면, 혹시 모든 것들이 결국 죽고 살지도 못한다는 것이 매우 필연적이지 않은가? 왜냐하면 만일 다른 것들로부터 살아있는 것들이 생겨나지만, 그 살아있는 것들이 죽는다면, 모든 것들이 죽음으로 소진되지 않도록 할 무슨 수가 있겠는가 말일세?
Οὐδὲ μία μοι δοκεῖ, ἔφη ὁ Κέβης, ὦ Σώκρατες, ἀλλά μοι δοκεῖς παντάπασιν ἀληθῆ λέγειν.
제게는 단 한 가지도 방법도 없다고 여겨집니다, 케베스가 말했네, 소크라테스, 오히려 제게는 당신께서 전적으로 참된 말씀을 하시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Ἔστιν γάρ, ἔφη, ὦ Κέβης, ὡς ἐμοὶ δοκεῖ, παντὸς μᾶλλον οὕτω, καὶ ἡμεῖς αὐτὰ ταῦτα οὐκ ἐξαπατώμενοι ὁμολογοῦμεν, ἀλλ' ἔστι τῷ ὄντι καὶ τὸ ἀναβιώσκεσθαι καὶ ἐκ τῶν τεθνεώτων τοὺς ζῶντας γίγνεσθαι καὶ τὰς τῶν τεθνεώτων ψυχὰς εἶναι [καὶ ταῖς μέν γε ἀγαθαῖς ἄμεινον εἶναι, ταῖς δὲ κακαῖς [Stephanus page 72, section e, line 2] κάκιον].
그 분께서 말씀하셨네, 왜냐하면, 케베스, 내게 여겨지는대로, 그 무엇보다도 그렇고, 우리 스스로도 바로 그것들을 거짓으로 동의하는 게 아니며, 실제로 살아난다는 것도 죽은 자들로부터 산 자들이 생겨난다는 것도 그리고 죽은 자들의 영혼들이 있다는 것도 [선한 자들에게는 더 좋은 일이고, 그러나 악한 자들에게는 더욱 나쁜 일이라는 것도] 사실이지.
Καὶ μήν, ἔφη ὁ Κέβης ὑπολαβών, καὶ κατ' ἐκεῖνόν γε τὸν λόγον, ὦ Σώκρατες, εἰ ἀληθής ἐστιν, ὃν σὺ εἴωθας θαμὰ λέγειν, ὅτι ἡμῖν ἡ μάθησις οὐκ ἄλλο τι ἢ ἀνάμνησις τυγχάνει οὖσα, καὶ κατὰ τοῦτον ἀνάγκη που ἡμᾶς ἐν προτέρῳ τινὶ χρόνῳ μεμαθηκέναι ἃ νῦν ἀναμιμνῃσκόμεθα. τοῦτο δὲ ἀδύνατον, εἰ μὴ ἦν που ἡμῖν ἡ ψυχὴ πρὶν ἐν τῷδε τῷ ἀνθρωπίνῳ εἴδει γενέσθαι· ὥστε καὶ ταύτῃ ἀθάνατον ἡ ψυχή τι ἔοικεν εἶναι.
네, 케베스가 받아 말했네, 바로 저 논의에 따라서도, 소크라테스, 만일 그게 진실이라면, 당신께서 자주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는 바, 우리에게 있어서 배움이란 다름 아닌 상기인 것이라는 것이 말이지요, 또 그에 따라 우리들은 앞선 어떤 시간에 지금 우리가 기억을 떠올리는 그것들을 어딘가에서 배웠다는 게 필연적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이 불가능할 겁니다, 만일 우리에게 있어서 우리의 영혼이 여기 이 인간적인 형상 안에 생겨나기 전에 어딘가에 있었던 게 아니라면 말입니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도 영혼은 불멸하는 무언가인 것 같습니다.
Ἀλλά, ὦ Κέβης, ἔφη ὁ Σιμμίας ὑπολαβών, ποῖαι τούτων [Stephanus page 73, section a, line 5] αἱ ἀποδείξεις; ὑπόμνησόν με· οὐ γὰρ σφόδρα ἐν τῷ παρόντι μέμνημαι.
하지만, 케베스, 심미아스가 받아서 말했네, 그런 것들에 대한 증명들이 어떤 것들이었는가? 내게 환기시켜 주게: 당장은 내가 그다지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일세.
Ἑνὶ μὲν λόγῳ, ἔφη ὁ Κέβης, καλλίστῳ, ὅτι ἐρωτώμενοι οἱ ἄνθρωποι, ἐάν τις καλῶς ἐρωτᾷ, αὐτοὶ λέγουσιν πάντα ᾗ ἔχει - καίτοι εἰ μὴ ἐτύγχανεν αὐτοῖς ἐπιστήμη ἐνοῦσα καὶ ὀρθὸς λόγος, οὐκ ἂν οἷοί τ' ἦσαν τοῦτο ποιῆσαι - ἔπειτα ἐάν τις ἐπὶ τὰ διαγράμματα ἄγῃ ἢ ἄλλο τι τῶν τοιούτων, ἐνταῦθα σαφέστατα κατηγορεῖ ὅτι τοῦτο οὕτως ἔχει.
케베스가 말했네, 가장 훌륭한 하나의 말로 증명되었지, 사람들이 질문을 받을 때, 만일 누군가 훌륭하게 질문한다면, 그들 스스로 모든 것들이 어떤 식으로 있는지 말하고 - 만일 그들에게 앎과 옳은 설명도 내재하지 않는다면, 그 일을 행하지도 못했겠지만 - 그래서 만일 누군가 기하학적인 문제들이나 혹은 그런 종류의 다른 것들 중 무엇인가로 이끈다면, 그곳에서 그것이 그런 식으로 있다는 걸 매우 확실하게 서술한다는 말일세.
Εἰ δὲ μὴ ταύτῃ γε, ἔφη, πείθῃ, ὦ Σιμμία, ὁ Σωκράτης, σκέψαι ἂν τῇδέ πῄ σοι σκοπουμένῳ συνδόξῃ. ἀπιστεῖς γὰρ [Stephanus page 73, section b, line 5] δὴ πῶς ἡ καλουμένη μάθησις ἀνάμνησίς ἐστιν;
소크라테스께서 말씀하셨네, 그런데 만일 자네가 이런 식으로는 납득되지 않는다면, 심미아스, 이와 같은 어떤 식으로 살펴보면 자네에게 흡족해 보일지 살펴 보게. 그러니까 자네는 어떻게 배움이라 불리는 것이 상기인지 의심하고 있는가?
Ἀπιστῶ μέν [σοι] ἔγωγε, ἦ δ' ὃς ὁ Σιμμίας, οὔ, αὐτὸ δὲ τοῦτο, ἔφη, δέομαι παθεῖν περὶ οὗ ὁ λόγος, ἀναμνησθῆναι. καὶ σχεδόν γε ἐξ ὧν Κέβης ἐπεχείρησε λέγειν ἤδη μέμνημαι καὶ πείθομαι· οὐδὲν μεντἂν ἧττον ἀκούοιμι νῦν πῇ σὺ ἐπεχείρησας λέγειν.
저로서는 의심하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심미아스가 말했네, 그런데 바로 이 일, 그가 말했네, 지금 그에 관하여 논의되고 있는 그 일을 겪어보길 바라고 있습니다, 상기되는 일 말이죠. 그리고 케베스가 말하려고 하던 것들을 통해서 적어도 얼추 이제는 기억도 나고 설득되 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조금도 못지 않게 지금 당신께서는 어떤 식으로 말씀하고자 하실지 듣고자 합니다.
Τῇδ' ἔγωγε, ἦ δ' ὅς. ὁμολογοῦμεν γὰρ δήπου, εἴ τίς τι ἀναμνησθήσεται, δεῖν αὐτὸν τοῦτο πρότερόν ποτε ἐπίστασθαι.
나로서는 이런 식으로 말할 걸세, 그 분께서 말씀하셨지. 왜냐하면 아마도 우리가 동의하고 있을 테니, 만일 누군가 뭔가를 상기하게 된다면, 언제가 되었든 먼저 바로 그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이지.
Πάνυ γ', ἔφη.
물론입니다, 그가 말했네.
Ἆρ' οὖν καὶ τόδε ὁμολογοῦμεν, ὅταν ἐπιστήμη παραγίγνηται [Stephanus page 73, section c, line 5] τρόπῳ τοιούτῳ, ἀνάμνησιν εἶναι; λέγω δὲ τίνα τρόπον; τόνδε. ἐάν τίς τι ἕτερον ἢ ἰδὼν ἢ ἀκούσας ἤ τινα ἄλλην αἴσθησιν λαβὼν μὴ μόνον ἐκεῖνο γνῷ, ἀλλὰ καὶ ἕτερον ἐννοήσῃ οὗ μὴ ἡ αὐτὴ ἐπιστήμη ἀλλ' ἄλλη, ἆρα οὐχὶ τοῦτο δικαίως λέγομεν ὅτι ἀνεμνήσθη, οὗ τὴν ἔννοιαν ἔλαβεν;
그렇다면 혹시 이 점도 우리가 동의하는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앎이 곁에 생길 때, 그것이 상기라고? 그런데 나는 어떤 방식을 말하고 있는가? 이런 걸세. 만일 누군가 어떤 다른 것을 보아서든 들어서든 아니면 다른 어떤 감각을 취해서든 저것만을 아는게 아니라, 또 다른 것도, 그 앎 자체가 아니라 다른 앎이 그에 속하는 그런 또 다른 것도 고려한다면, 그럼 이런 일이 그가 상기하게 된 것이라고, 그에 대해 고찰을 하고 있던 그것을 상기하게 되었다고 우리가 올바르게 말하는 게 아닌가?
Πῶς λέγεις;
어찌 하시는 말씀이십니까?
Οἷον τὰ τοιάδε· ἄλλη που ἐπιστήμη ἀνθρώπου καὶ λύρας.
말하자면 다음과 같은 것들일세: 아마 인간에 대한 앎과 뤼라에 대한 앎은 다른 앎이겠지.
Πῶς γὰρ οὔ;
어찌 아니겠습니까?
Οὐκοῦν οἶσθα ὅτι οἱ ἐρασταί, ὅταν ἴδωσιν λύραν ἢ ἱμάτιον [Stephanus page 73, section d, line 6] ἢ ἄλλο τι οἷς τὰ παιδικὰ αὐτῶν εἴωθε χρῆσθαι, πάσχουσι τοῦτο· ἔγνωσάν τε τὴν λύραν καὶ ἐν τῇ διανοίᾳ ἔλαβον τὸ εἶδος τοῦ παιδὸς οὗ ἦν ἡ λύρα; τοῦτο δέ ἐστιν ἀνάμνησις· ὥσπερ γε καὶ Σιμμίαν τις ἰδὼν πολλάκις Κέβητος ἀνεμνήσθη, καὶ ἄλλα που μυρία τοιαῦτ' ἂν εἴη.
그렇다면 자네 알고 있지, 사랑하는 자들은, 그 자들의 소년애인들이 익숙하게 사용하던 뤼라든 히마티온이든 다른 무엇이든 볼 때면, 이런 일을 겪는다는 걸: 그는 뤼라를 인지하고서 또 생각 속에 그 뤼라가 그 자에게 속하는 바로 그 소년의 형상을 생각 속에 취하지? 그런데 이게 상기일세: 바로 마치 누군가 심미아스를 보면서도 자주 케베스에 대해 기억을 떠올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마 이러한 다른 수 많은 일들 또한 있겠지.
Μυρία μέντοι νὴ Δία, ἔφη ὁ Σιμμίας.
제우스께 맹세코 수 없이 많긴 합니다, 심미아스가 말했네.
Οὐκοῦν, ἦ δ' ὅς, τὸ τοιοῦτον ἀνάμνησίς τίς ἐστι; μάλιστα μέντοι ὅταν τις τοῦτο πάθῃ περὶ ἐκεῖνα ἃ ὑπὸ χρόνου καὶ τοῦ μὴ ἐπισκοπεῖν ἤδη ἐπελέληστο;
그렇다면, 그 분께서 말씀하셨네, 이러한 것은 일종의 상기가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특히 누군가 시간에 의해 그리고 숙고하지 못함에 의해 이미 잊어버린 저런 것들에 관하여 이런 일을 겪을 대에는 특히 그러하지?
ἐπελέληστο : ἐπιλανθάνω mp. plpf. forget.
Πάνυ μὲν οὖν, ἔφη.
물론 그렇습니다, 그가 말했네.
[Stephanus page 73, section e, line 5] Τί δέ; ἦ δ' ὅς· ἔστιν ἵππον γεγραμμένον ἰδόντα καὶ λύραν γεγραμμένην ἀνθρώπου ἀναμνησθῆναι, καὶ Σιμμίαν ἰδόντα γεγραμμένον Κέβητος ἀναμνησθῆναι;
그럼 어떠한가? 그 분께서 말씀하셨네: 그려진 말과 그려진 뤼라를 보고서 사람에 대해 떠올릴 수 있는가, 또한 그려진 심미아스를 보고서 케베스에 대해 떠올릴 수 있는가?
Πάνυ γε.
물론입니다.
Οὐκοῦν καὶ Σιμμίαν ἰδόντα γεγραμμένον αὐτοῦ Σιμμίου ἀναμνησθῆναι;
그렇다면 그려진 심마아스를 보고서 바로 그 심미아스에 대해 상기할 수도 있지 않은가?
Ἔστι μέντοι, ἔφη.
물론 가능합니다, 그가 말했지.
Ἆρ' οὖν οὐ κατὰ πάντα ταῦτα συμβαίνει τὴν ἀνάμνησιν εἶναι μὲν ἀφ' ὁμοίων, εἶναι δὲ καὶ ἀπὸ ἀνομοίων;
그렇다면 혹시 그 모든 것들에 따라 상기는 닮은 것들을 통해서도 있지만, 닮지 않은 것들을 통해서도 있다고 귀결되지 않는가?
Συμβαίνει.
그리 귀결됩니다.
[Stephanus page 74, section a, line 5] Ἀλλ' ὅταν γε ἀπὸ τῶν ὁμοίων ἀναμιμνῄσκηταί τίς τι, ἆρ' οὐκ ἀναγκαῖον τόδε προσπάσχειν, ἐννοεῖν εἴτε τι ἐλλείπει τοῦτο κατὰ τὴν ὁμοιότητα εἴτε μὴ ἐκείνου οὗ ἀνεμνήσθη;
그럼 누군가가 닮은 것들을 통해서 무언가를 기억해 낼 때, 그래서 다음과 같은 일을 겪는 게 필연적이지 않은가, 그 닮음에 따라 그것이 뭔가 저 떠올리게 된 것에 부족한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 숙고하는 일이 말일세?
ἐλλείπει : leave out, fall short. to be in want of.
Ἀνάγκη, ἔφη.
필연적입니다, 그가 말했네.
Σκόπει δή, ἦ δ' ὅς, εἰ ταῦτα οὕτως ἔχει. φαμέν πού τι εἶναι ἴσον, οὐ ξύλον λέγω ξύλῳ οὐδὲ λίθον λίθῳ οὐδ' ἄλλο τῶν τοιούτων οὐδέν, ἀλλὰ παρὰ ταῦτα πάντα ἕτερόν τι, αὐτὸ τὸ ἴσον· φῶμέν τι εἶναι ἢ μηδέν;
그럼 살펴 보게, 그 분께서 말씀하셨지, 그것들이 그러한지 아닌지를. 아마 우리는 어떤 같음이 있다(같다)고 말하겠지, 나는 나무가 나무와 같다고도 돌이 돌과 같다고도 그런 것들 중 아무것도 말하고 있는 게 아니고, 이 모든 것들과 다른 어떤 것, 같음 자체를 말하고 있네: 우리는 그게 무엇인가라고(어떤 것이 있다고) 말을 하는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 하는가?
Φῶμεν μέντοι νὴ Δί', ἔφη ὁ Σιμμίας, θαυμαστῶς γε.
심미아스가 말했네, 제우스께 맹세코 (무엇이라고/있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Ἦ καὶ ἐπιστάμεθα αὐτὸ ὃ ἔστιν;
바로 그 있는 것을 우리가 알기도 하는가?
[Stephanus page 74, section b, line 3] Πάνυ γε, ἦ δ' ὅς.
물론이지요, 그가 말했네.
Πόθεν λαβόντες αὐτοῦ τὴν ἐπιστήμην; ἆρ' οὐκ ἐξ ὧν νυνδὴ ἐλέγομεν, ἢ ξύλα ἢ λίθους ἢ ἄλλα ἄττα ἰδόντες ἴσα, ἐκ τούτων ἐκεῖνο ἐνενοήσαμεν, ἕτερον ὂν τούτων; ἢ οὐχ ἕτερόν σοι φαίνεται; σκόπει δὲ καὶ τῇδε. ἆρ' οὐ λίθοι μὲν ἴσοι καὶ ξύλα ἐνίοτε ταὐτὰ ὄντα τῷ μὲν ἴσα φαίνεται, τῷ δ' οὔ;
어디로부터 그것에 대한 앎을 취해서 말인가? 혹시 방금 우리가 말하고 있던 것들로부터, 나무들이든 돌들이든 혹은 다른 어떤 것들이든 같은 것들이라 우리가 보면서, 그것들로부터 저것을 우리가 숙고하였던 것 아닌가, 그것들에 속한 다른 어떤 것을? 혹은 자네에게는 다른 것으로 보이지 않는가? 그런데 다음과 같은 식으로도 살펴 보게. 혹시 같은 돌들과 같은 나무들이 때로 같은 것들로서 한 사람에게는 같은 것들로 보이지만, 다른 자에게는 그렇지 않게 보이지 않는가?
Πάνυ μὲν οὖν.
물론 그렇습니다.
Τί δέ; αὐτὰ τὰ ἴσα ἔστιν ὅτε ἄνισά σοι ἐφάνη, ἢ ἡ ἰσότης ἀνισότης;
그럼 어떠한가? 그 같은 것들이 자네에게 같지 않은 것들로 보일 때에 동일한 것들인가, 아니면 같음은 같지 않음인가?
[Stephanus page 74, section c, line 3] Οὐδεπώποτέ γε, ὦ Σώκρατες.
결코 어떤 경우에도 같음은 같지 않음이 아닙니다, 소크라테스.
Οὐ ταὐτὸν ἄρα ἐστίν, ἦ δ' ὅς, ταῦτά τε τὰ ἴσα καὶ αὐτὸ τὸ ἴσον.
그럼 이러한 같은 것들과 같음 자체는 동일한 것이 아니군.
Οὐδαμῶς μοι φαίνεται, ὦ Σώκρατες.
제게는 결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소크라테스.
Ἀλλὰ μὴν ἐκ τούτων γ', ἔφη, τῶν ἴσων, ἑτέρων ὄντων ἐκείνου τοῦ ἴσου, ὅμως αὐτοῦ τὴν ἐπιστήμην ἐννενόηκάς τε καὶ εἴληφας;
그럼 물론 바로 저것들, 그 분께서 말씀하셨네, 즉 같은 것들을 통해서, 그 같은 것들이 저 같음과 다른 것들임에도, 같은 방식으로 자네는 그 같음에 대한 앎을 숙고했고 또한 얻었군?
Ἀληθέστατα, ἔφη, λέγεις.
더 없이 참된 말씀이십니다, 그가 말했네.
Οὐκοῦν ἢ ὁμοίου ὄντος τούτοις ἢ ἀνομοίου;
그렇다면 같음이 저 같은 것들과 같을 때이든 같지 않을 때이든 그렇지 않은가?
Πάνυ γε.
물론입니다.
[Stephanus page 74, section c, line 13] Διαφέρει δέ γε, ἦ δ' ὅς, οὐδέν· ἕως ἂν ἄλλο ἰδὼν ἀπὸ ταύτης τῆς ὄψεως ἄλλο ἐννοήσῃς, εἴτε ὅμοιον εἴτε ἀνόμοιον, ἀναγκαῖον, ἔφη, αὐτὸ ἀνάμνησιν γεγονέναι.
그런데 아무 차이도 없다네, 그 분께서 말씀하셨네: 어떤 것을 보면서 그 시각으로부터 다른 어떤 것을 자네가 생각하는 동안, 닮은 것이든 닮지 않은 것이든 말이네, 그 분께서 말씀하시길, 그것은 상기가 된다는 게 필연적이지.
Πάνυ μὲν οὖν.
물론 그렇습니다.
Τί δέ; ἦ δ' ὅς· ἦ πάσχομέν τι τοιοῦτον περὶ τὰ ἐν τοῖς ξύλοις τε καὶ οἷς νυνδὴ ἐλέγομεν τοῖς ἴσοις; ἆρα φαίνεται ἡμῖν οὕτως ἴσα εἶναι ὥσπερ αὐτὸ τὸ ὃ ἔστιν, ἢ ἐνδεῖ τι ἐκείνου τῷ τοιοῦτον εἶναι οἷον τὸ ἴσον, ἢ οὐδέν;
그런데 어떤가? 그 분께서 말씀하셨지: 우리는 목재들 안의 것들에 관해서도 또 방금 우리가 말하던 같은 것들에 속하는 것들에 관해서도 이런 어떤 일을 겪는가? 그래서 우리에게 마치 그것인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그런 식으로 같은 것들이라고 보이는가, 말하자면 같음인 이러한 것이라는 점에서 저것에 뭔가 부족한가, 아니면 전혀 부족하지 않은가?
Καὶ πολύ γε, ἔφη, ἐνδεῖ.
네, 꽤나 부족합니다, 그가 말했네.
[Stephanus page 74, section d, line 9] Οὐκοῦν ὁμολογοῦμεν, ὅταν τίς τι ἰδὼν ἐννοήσῃ ὅτι βούλεται μὲν τοῦτο ὃ νῦν ἐγὼ ὁρῶ εἶναι οἷον ἄλλο τι τῶν ὄντων, ἐνδεῖ δὲ καὶ οὐ δύναται τοιοῦτον εἶναι [ἴσον] οἷον ἐκεῖνο, ἀλλ' ἔστιν φαυλότερον, ἀναγκαῖόν που τὸν τοῦτο ἐννοοῦντα τυχεῖν προειδότα ἐκεῖνο ᾧ φησιν αὐτὸ προσεοικέναι μέν, ἐνδεεστέρως δὲ ἔχειν;
그렇다면 우리는 동의하는 게 아닌가, 누군가 뭔가를 보면서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바로 그것이 말하자면 있는 것들 중에 어떤 다른 것이고자 하지만, 그러나 말하자면 저것과 같은 그러한 것이기에는 부족하고 또 그럴 능력도 없으나, 더 못한 것이다'라는 사실을 이해할 때, 아마도 이 점을 이해하는 자는 그가 저것과 그것이 닮았지만 그것이 더 열등한 상태라고 말하는 바로 저것을 먼저 알고 있기도 하다는 게 필연적이지 않은가?
Ἀνάγκη.
필연적입니다.
Τί οὖν; τὸ τοιοῦτον πεπόνθαμεν καὶ ἡμεῖς ἢ οὒ περί τε τὰ ἴσα καὶ αὐτὸ τὸ ἴσον;
그렇다면 어떤가? 우리 자신도 그와 같은 일을 겪었는가 아니면 같은 것들과 같은 것 자체에 관련해서는 그렇지를 않은가?
Παντάπασί γε.
전적으로 겪었습니다.
[Stephanus page 74, section e, line 9] Ἀναγκαῖον ἄρα ἡμᾶς προειδέναι τὸ ἴσον πρὸ ἐκείνου τοῦ χρόνου ὅτε τὸ πρῶτον ἰδόντες τὰ ἴσα ἐνενοήσαμεν ὅτι ὀρέγεται μὲν πάντα ταῦτα εἶναι οἷον τὸ ἴσον, ἔχει δὲ ἐνδεεστέρως.
그래서 처음 우리가 같은 것들을 보면서 그 모든 것들이 말하자면 같음이기를 동경하지만, 더 못한 상태라는 점을 이해할 때 저 시간에 앞서 같음을 우리가 먼저 알고 있다는 것은 필연적이지.
Ἔστι ταῦτα.
그렇습니다.
Ἀλλὰ μὴν καὶ τόδε ὁμολογοῦμεν, μὴ ἄλλοθεν αὐτὸ ἐννενοηκέναι μηδὲ δυνατὸν εἶναι ἐννοῆσαι ἀλλ' ἢ ἐκ τοῦ ἰδεῖν ἢ ἅψασθαι ἢ ἔκ τινος ἄλλης τῶν αἰσθήσεων· ταὐτὸν δὲ πάντα ταῦτα λέγω.
실은 이 점도 우리가 동의하고 있네, 그것을 이해하는 것도 이해하는 일이 가능한 것도 다른 어디로부터가 아니라 보는 것을 통해서 아니면 만져서 또는 감각들 중 다른 어떤 것을 통해서라는 것 말이지: 그 모든 것들을 나는 동일한 것으로 말하고 있네.



-蟲-

저작자 표시
Posted by 버러지

Trackback Address :: http://oistros.tistory.com/trackback/793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γρᾰφή.3.

Ἕλλην/문법 2012/04/02 01:33 |

1. εὒ μὲν ἔχω, σὺ δὲ οὔ.

2. εὒ ἔχοι.

3. μὴ μάνθανε ταῦτα.

4. κελεύω σε μανθάνειν ταῦτα.

5. τὸν αὐτὸν βιβλίον δίδου, ἕως ἂν γράφῃς ταῦτα.

6. μὴ λέξωμεν ταῦτα.

7. μὴ μάθωμεν ταῦτα.

8. ἐαν γιγνώσκεις τὸν βιβλίον, σοφὸς γενήσει.

9. ἐαν ἔχεις χρήματα, φίλους ἕξεις.

-蟲-

저작자 표시
Posted by 버러지

Trackback Address :: http://oistros.tistory.com/trackback/789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Ἔοικε γάρ.
그런 것 같으니까요.
Ὦ μακάριε Σιμμία, μὴ γὰρ οὐχ αὕτη ᾖ ἡ ὀρθὴ πρὸς ἀρετὴν ἀλλαγή, ἡδονὰς πρὸς ἡδονὰς καὶ λύπας πρὸς λύπας καὶ φόβον πρὸς φόβον καταλλάττεσθαι, [καὶ] μείζω πρὸς ἐλάττω ὥσπερ νομίσματα, ἀλλ' ᾖ ἐκεῖνο μόνον τὸ νόμισμα ὀρθόν, ἀντὶ οὗ δεῖ πάντα ταῦτα καταλλάττεσθαι, φρόνησις, [καὶ τούτου μὲν πάντα] καὶ μετὰ τούτου [ὠνούμενά τε καὶ πιπρασκόμενα] τῷ ὄντι ᾖ καὶ ἀνδρεία καὶ σωφροσύνη καὶ [Stephanus page 69, section b, line 3] δικαιοσύνη καὶ συλλήβδην ἀληθὴς ἀρετή, μετὰ φρονήσεως, καὶ προσγιγνομένων καὶ ἀπογιγνομένων καὶ ἡδονῶν καὶ φόβων καὶ τῶν ἄλλων πάντων τῶν τοιούτων· χωριζόμενα δὲ φρονήσεως [καὶ] ἀλλαττόμενα ἀντὶ ἀλλήλων μὴ σκιαγραφία τις ᾖ ἡ τοιαύτη ἀρετὴ καὶ τῷ ὄντι ἀνδραποδώδης τε καὶ οὐδὲν ὑγιὲς οὐδ' ἀληθὲς ἔχῃ, τὸ δ' ἀληθὲς τῷ ὄντι ᾖ κάθαρσίς τις τῶν τοιούτων πάντων καὶ ἡ σωφροσύνη καὶ ἡ δικαιοσύνη καὶ ἀνδρεία, καὶ αὐτὴ ἡ φρόνησις μὴ καθαρμός τις ᾖ.
축복받은 심미아스, 그건 덕을 위한 올바른 교환이 아니고, 쾌락들을 위해 쾌락들을 고통들을 위해서 고통들을 그리고 두려움을 위해 두려움을 교환하는 것, 또한 마치 화폐들처럼 더 작은 것들을 위해 더 큰 것들을 교환하는 것도 그러할 터이나(올바른 변화가 아닐 것이나), 오직 저 화폐만이 올바른 것일 터인데, 그 화폐와 이 모든 것들이 맞바뀌어야 하는 것, 사려가 그것일 테고, 이에 속하는 모든 것들과 이와 함께 사들여지는 것들과 팔리는 것들이 정말로 용기이고 사려이자 정의이고 요컨데 참된 덕일 것이기 때문이네, 그러니까 사려와 함께 말이지, 쾌락들도 공포들도 이런 종류의 다른 모든 것들도 덧붙여 생기거나 떨어져 나오거나 하면서 말일세: 그런데 그런 것들이 사려와 분리될 때 그리고 서로 맞바뀔 때 이와 같은 덕은 어떤 그림자그림이지 않을까 그리고 실상 노예스러운 것이자 아무런 건전한 것도 참된 것도 지니지 못하지는 않을까, 그런데 실제로 참된 것은 이런 모든 것들로부터의 어떤 정화이고 사려도 정의도 용기도 그럴 것이며, 사려 그 자체도 어떤 정화일 것이네.
καὶ κινδυνεύουσι καὶ οἱ τὰς τελετὰς ἡμῖν οὗτοι καταστήσαντες οὐ φαῦλοί τινες εἶναι, ἀλλὰ τῷ ὄντι [Stephanus page 69, section c, line 5] πάλαι αἰνίττεσθαι ὅτι ὃς ἂν ἀμύητος καὶ ἀτέλεστος εἰς Ἅιδου ἀφίκηται ἐν βορβόρῳ κείσεται, ὁ δὲ κεκαθαρμένος τε καὶ τετελεσμένος ἐκεῖσε ἀφικόμενος μετὰ θεῶν οἰκήσει. εἰσὶν γὰρ δή, [ὥς] φασιν οἱ περὶ τὰς τελετάς, “ναρθηκοφόροι μὲν πολλοί, βάκχοι δέ τε παῦροι·” οὗτοι δ' εἰσὶν κατὰ τὴν ἐμὴν δόξαν οὐκ ἄλλοι ἢ οἱ πεφιλοσοφηκότες ὀρθῶς.
또한 입교의식을 우리에게 세워준 바로 그들도 어떤 만만한 자들은 아닐 듯하지만, 실상 오래 전에 그들이 수수께끼를 낸 듯하네, 비입교자와 (의식을)완수하지 못한 누구든 하데스에 당도하여 수렁에 빠질 것이나, 정화된 그리고 (의식을)완수한 다음에는 저곳에 이르러 신들과 함께 살 것이라고 말일세. 왜냐하면 입교의식에 관련하여 말하듯, "회향풀 지팡이를 지닌 자들은 많으나, 디오니소스 신도들은 또 적기" 때문일세: 그런데 그들은 내 견해로는 올바르게 지혜를 사랑한 자들 외에 다른 자들이 아닐세.
ὧν δὴ καὶ ἐγὼ κατά γε τὸ δυνατὸν οὐδὲν ἀπέλιπον ἐν τῷ βίῳ ἀλλὰ παντὶ τρόπῳ προυθυμήθην γενέσθαι· εἰ δ' ὀρθῶς προυθυμήθην καί τι ἠνύσαμεν, ἐκεῖσε ἐλθόντες τὸ σαφὲς εἰσόμεθα, ἂν θεὸς ἐθέλῃ, ὀλίγον ὕστερον, ὡς ἐμοὶ δοκεῖ.
그래서 나 자신도 능력이 닿는 한 생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모든 방면에서 최선을 다했다네 그들 사이에 속하게 되도록 말이지: 그런데 만일 내가 최선을 다했고 우리가 뭔가를 이루어 냈는지, 저 곳에 닿으면 확실한 것을 우리가 알게 될 걸세, 신께서 바라신다면, 내게 보이기로는, 머지 않아서.
προυθυμήθην : προθῡμέομαι aor. exert oneself.
[Stephanus page 69, section d, line 7] ταῦτ' οὖν ἐγώ, ἔφη, ὦ Σιμμία τε καὶ Κέβης, ἀπολογοῦμαι, ὡς εἰκότως ὑμᾶς τε ἀπολείπων καὶ τοὺς ἐνθάδε δεσπότας οὐ χαλεπῶς φέρω οὐδ' ἀγανακτῶ, ἡγούμενος κἀκεῖ οὐδὲν ἧττον ἢ ἐνθάδε δεσπόταις τε ἀγαθοῖς ἐντεύξεσθαι καὶ ἑταίροις· [τοῖς δὲ πολλοῖς ἀπιστίαν παρέχει]· εἴ τι οὖν ὑμῖν πιθανώτερός εἰμι ἐν τῇ ἀπολογίᾳ ἢ τοῖς Ἀθηναίων δικασταῖς, εὖ ἂν ἔχοι.
그러므로 나는, 그 분께서 말씀하셨소, 심미아스 그리고 케베스, 이런 것들을 변론하고 있다네, 적합한 방식으로 자네들과 이 세계의 주인들을 남겨 두고서 험하게 굴지도 않고 흥분하지도 않는다고, 저곳에서도 여기 못지 않은 주인들과 또한 선한 동료들과 만나게 되리라 믿으면서 말일세: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불신이 있다네: 그러니 만일 자네들에게 내가 그 아테네의 판정자들에게보다 변론에서 어느 정도 더 설득력이 있다면, 잘된 일이지.
Εἰπόντος δὴ τοῦ Σωκράτους ταῦτα, ὑπολαβὼν ὁ Κέβης ἔφη· Ὦ Σώκρατες, τὰ μὲν ἄλλα ἔμοιγε δοκεῖ καλῶς λέγεσθαι, τὰ δὲ περὶ τῆς ψυχῆς πολλὴν ἀπιστίαν παρέχει τοῖς ἀνθρώποις [Stephanus page 70, section a, line 2] μή, ἐπειδὰν ἀπαλλαγῇ τοῦ σώματος, οὐδαμοῦ ἔτι ᾖ, ἀλλ' ἐκείνῃ τῇ ἡμέρᾳ διαφθείρηταί τε καὶ ἀπολλύηται ᾗ ἂν ὁ ἄνθρωπος ἀποθνῄσκῃ, εὐθὺς ἀπαλλαττομένη τοῦ σώματος, καὶ ἐκβαίνουσα ὥσπερ πνεῦμα ἢ καπνὸς διασκεδασθεῖσα οἴχηται διαπτομένη καὶ οὐδὲν ἔτι οὐδαμοῦ ᾖ.
소크라테스께서 이런 말씀들을 하시고 나서, 케베스가 받아서 말했네: 소크라테스, 다른 것들은 제게도 훌륭히 이야기된 것으로 여겨집니다만, 영혼에 관한 것들은 사람들에게 많은 불신을 줍니다, 육체로부터 해방된 다음에는, 더 이상 아무 곳에도 있지 않고, 오히려 저 날에 죽어 없어지지는 않을까, 사람이 죽는 그 날에 말이지요, 육체로부터 풀려나자 마자, 마치 숨이나 연기처럼 빠져 나가 흩어져 날아가 버리고 더 이상 아무것도 그 어디에도 있지 않는 것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ἀπαλλαγῇ : ἀπαλλάσσω aor. pass. subj.
διασκεδασθεῖσα : διασκεδάννῡμι aor. pass. scatter abroad.
οἴχηται διαπτομένη : fly away.
ἐπεί, εἴπερ εἴη που αὐτὴ καθ' αὑτὴν συνηθροισμένη καὶ ἀπηλλαγμένη τούτων τῶν κακῶν ὧν σὺ νυνδὴ διῆλθες, πολλὴ ἂν εἴη ἐλπὶς καὶ καλή, ὦ Σώκρατες, ὡς ἀληθῆ ἐστιν ἃ σὺ λέγεις· ἀλλὰ τοῦτο δὴ ἴσως οὐκ ὀλίγης παραμυθίας δεῖται καὶ πίστεως, ὡς ἔστι τε ψυχὴ ἀποθανόντος τοῦ ἀνθρώπου καί τινα δύναμιν ἔχει καὶ [Stephanus page 70, section b, line 4] φρόνησιν.
만일 정말로 어딘가에 그 영혼이 그 자체로 뭉쳐서 또한 당신께서 방금 상술하셨던 바로 그 좋지 못한 것들로부터 풀려나서 있다면, 소크라테스, 많은 아름다운 희망이 있을 테니 드리는 말씀입니다, 당신께서 말씀하시는 일들이 진실들이라는 희망 말이지요: 허나 이 일은 적잖이 안심시켜주고 믿음을 줄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이 죽어도 영혼이 있을 수 있고 어떤 능력과 사려를 지닌다고 말입니다.
συνηθροισμένη : συναθροίζω pf. mp. part. gather into one mass.
Ἀληθῆ, ἔφη, λέγεις, ὁ Σωκράτης, ὦ Κέβης· ἀλλὰ τί δὴ ποιῶμεν; ἢ περὶ αὐτῶν τούτων βούλει διαμυθολογῶμεν, εἴτε εἰκὸς οὕτως ἔχειν εἴτε μή;
그 분께서 말씀하셨소, 소크라테스께서 말이오, 자네 말이 맞네, 케베스: 허나 그럼 우리가 무얼 해야 하겠는가? 아니면 자네는 바로 이런 일들에 관하여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길 바라는가, 사정이 그러할 듯한지 아닌지 말일세?
Ἐγὼ γοῦν, ἔφη ὁ Κέβης, ἡδέως ἂν ἀκούσαιμι ἥντινα δόξαν ἔχεις περὶ αὐτῶν.
그야 물론 저로서는, 케베스가 말했네, 당신께서 그 일들에 관하여 어떤 의견을 지니셨든 기쁘게 듣고자 합니다.
Οὔκουν γ' ἂν οἶμαι, ἦ δ' ὃς ὁ Σωκράτης, εἰπεῖν τινα νῦν ἀκούσαντα, οὐδ' εἰ κωμῳδοποιὸς εἴη, ὡς ἀδολεσχῶ καὶ οὐ περὶ προσηκόντων τοὺς λόγους ποιοῦμαι. εἰ οὖν δοκεῖ, χρὴ διασκοπεῖσθαι.
그리고 소크라테스께서 말씀하셨소, 그러니까 나는 지금 누가 듣더라도, 그 듣는 이가 희극 작가일지라도, 내가 수다를 떨고 있고 지금의 문제들에 관하여 말도 안 되는 소리들을 하고 있다고 말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네. 그러니 좋게 여겨진다면, 검토해 나아갈 필요가 있지.
[Stephanus page 70, section c, line 4] Σκεψώμεθα δὲ αὐτὸ τῇδέ πῃ, εἴτ' ἄρα ἐν Ἅιδου εἰσὶν αἱ ψυχαὶ τελευτησάντων τῶν ἀνθρώπων εἴτε καὶ οὔ. παλαιὸς μὲν οὖν ἔστι τις λόγος οὗ μεμνήμεθα, ὡς εἰσὶν ἐνθένδε ἀφικόμεναι ἐκεῖ, καὶ πάλιν γε δεῦρο ἀφικνοῦνται καὶ γίγνονται ἐκ τῶν τεθνεώτων· καὶ εἰ τοῦθ' οὕτως ἔχει, πάλιν γίγνεσθαι ἐκ τῶν ἀποθανόντων τοὺς ζῶντας, ἄλλο τι ἢ εἶεν ἂν αἱ ψυχαὶ ἡμῶν ἐκεῖ;
그럼 이런 어떤 방식으로 그걸 우리 검토해 보도록 하지, 혹시 하이데스에 죽은 사람들의 영혼들이 있는지 혹은 또 그렇지 않은지를 말일세. 그럼 우리가 기억하는 어떤 옛 말이 있는데, 여기에서 저곳에 당도한 영혼들이 있고, 다시 이곳으로 당도하고 또 죽은 자들로부터 태어난다고 하는 말이지: 또 만일 사정이 그러하다면, 산 자들이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태어난다는 것, 그건 우리의 영혼들이 저 곳에 있으리란 것 외에 달리 무엇이겠는가?
οὐ γὰρ ἄν που πάλιν ἐγίγνοντο μὴ οὖσαι, καὶ τοῦτο ἱκανὸν τεκμήριον τοῦ ταῦτ' εἶναι, εἰ τῷ ὄντι φανερὸν γίγνοιτο ὅτι οὐδαμόθεν ἄλλοθεν γίγνονται οἱ ζῶντες ἢ ἐκ τῶν τεθνεώτων· εἰ δὲ μὴ ἔστι τοῦτο, ἄλλου ἄν [Stephanus page 70, section d, line 5] του δέοι λόγου.
왜냐하면 아마도 영혼들이 없었다면 다시 태어나지도 못했을 테니, 또한 이것이 그 영혼들이 있다는 것에 대한 충분한 증거인데, 만일 실제로 죽은 자들로부터가 아닌 다른 그 어떤 단 한 곳으로부터도 사자들이 태어날 수 없다는 게 분명해진다면 말일세: 그런데 만일 이것이 가능하지 않다면, 다른 설명이 필요할 테지.
Πάνυ μὲν οὖν, ἔφη ὁ Κέβης.
물론 그렇습니다, 케베스가 말했네.
Μὴ τοίνυν κατ' ἀνθρώπων, ἦ δ' ὅς, σκόπει μόνον τοῦτο, εἰ βούλει ῥᾷον μαθεῖν, ἀλλὰ καὶ κατὰ ζῴων πάντων καὶ φυτῶν, καὶ συλλήβδην ὅσαπερ ἔχει γένεσιν περὶ πάντων ἴδωμεν ἆρ' οὑτωσὶ γίγνεται πάντα, οὐκ ἄλλοθεν ἢ ἐκ τῶν ἐναντίων τὰ ἐναντία, ὅσοις τυγχάνει ὂν τοιοῦτόν τι, οἷον τὸ καλὸν τῷ αἰσχρῷ ἐναντίον που καὶ δίκαιον ἀδίκῳ, καὶ ἄλλα δὴ μυρία οὕτως ἔχει.
그러니까 인간들에 대해서, 그 분께서 말씀하셨지, 오직 이것만 검토하지는 말게, 만일 더 쉽게 알기를 바란다면, 오히려 모든 동물들과 식물들에 대해서도, 또한 요컨데 생성을 지니는 것들이라면 그 모든 것들과 관련하여서도 혹시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모든 것들이 생겨나는지 보도록 하세, 다른 것으로부터가 아니라 반대되는 것들로부터 반대되는 것들이, 그것들에 그와 같은 어떤 것이 있는 그러한 모든 것들이, 예를 들어 아름다운 것은 아마도 추한 것과 반대이고 정의로운 것은 부정의한 것과, 또한 더 나아가 다른 수 많은 것들도 그러하지.
τοῦτο οὖν σκεψώμεθα, ἆρα ἀναγκαῖον ὅσοις ἔστι τι ἐναντίον, μηδαμόθεν ἄλλοθεν αὐτὸ γίγνεσθαι [Stephanus page 70, section e, line 6] ἢ ἐκ τοῦ αὐτῷ ἐναντίου. οἷον ὅταν μεῖζόν τι γίγνηται, ἀνάγκη που ἐξ ἐλάττονος ὄντος πρότερον ἔπειτα μεῖζον γίγνεσθαι;
그러니 이 점을 검토해 보기로 하세나, 혹시 그것들에 어떤 반대인 것이 있는 모든 것들은 필연적으로, 다른 어떤 단 한 곳으로부터도 그것이 생겨나지 않고 바로 그 자체에 반대되는 것으로부터 생겨나는지. 예를 들어 어떤 것이 더 크게 될 때, 아마도 앞서 더 작았던 때 그로부터 이후 더 큰 것이 되는 것이 필연적인가?
Ναί.
네.
Οὐκοῦν κἂν ἔλαττον γίγνηται, ἐκ μείζονος ὄντος πρότερον ὕστερον ἔλαττον γενήσεται;
그렇다면 더 작은 것이 된다면, 앞서 더 컸을 때 그로부터 나중의 작은 것이 생겨나지 않겠는가?
Ἔστιν οὕτω, ἔφη.
그런 식입니다, 그가 말했네.
Καὶ μὴν ἐξ ἰσχυροτέρου γε τὸ ἀσθενέστερον καὶ ἐκ βραδυτέρου τὸ θᾶττον;
그럼 바로 더 강한 것으로부터 더욱 약한 것이 그리고 더 느린 것으로부터 더 빠른 것이 생겨나지?
Πάνυ γε.
물론입니다.
[Stephanus page 71, section a, line 6] Τί δέ; ἄν τι χεῖρον γίγνηται, οὐκ ἐξ ἀμείνονος, καὶ ἂν δικαιότερον, ἐξ ἀδικωτέρου;
그럼 어떤가? 어떤 것이 더 나빠진다면, 더 좋을 때 그로부터가 아닌가, 그리고 더욱 정의롭게 된다면, 더욱 부정의할 때 그로부터가 아닌가?
Πῶς γὰρ οὔ;
어찌 아니겠습니까?
Ἱκανῶς οὖν, ἔφη, ἔχομεν τοῦτο, ὅτι πάντα οὕτω γίγνεται, ἐξ ἐναντίων τὰ ἐναντία πράγματα;
그 분께서 말씀하셨지, 그럼 우린 충분히 이해하고 있군, 모든 것들이 그런 식으로 된다는(생긴다는) 것을, 반대되는 것들로부터 반대되는 사물들이 생긴다는 것을 말일세?
Πάνυ γε.
확실히 그렇습니다.
Τί δ' αὖ; ἔστι τι καὶ τοιόνδε ἐν αὐτοῖς, οἷον μεταξὺ ἀμφοτέρων πάντων τῶν ἐναντίων δυοῖν ὄντοιν δύο γενέσεις, ἀπὸ μὲν τοῦ ἑτέρου ἐπὶ τὸ ἕτερον, ἀπὸ δ' αὖ τοῦ ἑτέρου πάλιν ἐπὶ τὸ ἕτερον· μείζονος μὲν πράγματος καὶ ἐλάττονος [Stephanus page 71, section b, line 3] μεταξὺ αὔξησις καὶ φθίσις, καὶ καλοῦμεν οὕτω τὸ μὲν αὐξάνεσθαι, τὸ δὲ φθίνειν;
그런데 이건 어떤가? 그것들 안에서 다음과 같은 어떤 것이 있지, 말하자면 모든 반대되는 양자의 사이에서 그것들이 둘로 있을 때 두 생성들, 그 다른 한 쪽으로부터 또 다른 쪽으로, 이번에는 그 또 다른 한 쪽으로부터 다시 다른 한 쪽으로 말일세: 더 큰 사물과 더 작은 사물 사이에 증가와 감소가 있고, 우리가 그런 식으로 그 한 쪽은 증가한다는 것이라고, 다른 쪽은 감소한다는 것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Ναί, ἔφη.
네, 그가 말했네.
Οὐκοῦν καὶ διακρίνεσθαι καὶ συγκρίνεσθαι, καὶ ψύχεσθαι καὶ θερμαίνεσθαι, καὶ πάντα οὕτω, κἂν εἰ μὴ χρώμεθα τοῖς ὀνόμασιν ἐνιαχοῦ, ἀλλ' ἔργῳ γοῦν πανταχοῦ οὕτως ἔχειν ἀναγκαῖον, γίγνεσθαί τε αὐτὰ ἐξ ἀλλήλων γένεσίν τε εἶναι ἑκατέρου εἰς ἄλληλα;
그렇다면 나누어진다는 것과 합쳐진다는 것도, 차가워진다는 것과 뜨거워진다는 것도, 모든 것들도 그런 식으로, 설령 우리가 몇 가지 경우에 이름들을 사용하지 못할지라도, 실질적으로는 그러므로 모든 곳에서 그렇다는 것이 필연적이지 않은가, 서로로부터 그것들이 생겨난다는 것과 생성은 그 둘 각각에 서로를 향해 속한다는 것도 필연적이지 않나?
Πάνυ μὲν οὖν, ἦ δ' ὅς.
물론 그러합니다, 그가 말했네.
Τί οὖν; ἔφη, τῷ ζῆν ἐστί τι ἐναντίον, ὥσπερ τῷ [Stephanus page 71, section c, line 2] ἐγρηγορέναι τὸ καθεύδειν;
그렇다면 어떤가? 그 분께서 말씀하셨지, 삶에는 반대인 무엇인가가 있지, 마치 깸에 잠이 반대되는 것처럼 말이네만?
Πάνυ μὲν οὖν, ἔφη.
물론 그렇습니다, 그가 말했네.
Τί;
그게 무엇인가?
Τὸ τεθνάναι, ἔφη.
죽는다는 겁니다, 그가 말했네.
Οὐκοῦν ἐξ ἀλλήλων τε γίγνεται ταῦτα, εἴπερ ἐναντία ἐστιν, καὶ αἱ γενέσεις εἰσὶν αὐτοῖν μεταξὺ δύο δυοῖν ὄντοιν;
그렇다면 그것들도 서로를 통해 생겨나지 않는가, 만일 정말로 반대되는 것들이라면, 그리고 그것들 사이에 그것들의 생성들도 그것들이 둘일 때 둘이지?
Πῶς γὰρ οὔ;
그야 어찌 아니겠습니까?
Τὴν μὲν τοίνυν ἑτέραν συζυγίαν ὧν νυνδὴ ἔλεγον ἐγώ σοι, ἔφη, ἐρῶ, ὁ Σωκράτης, καὶ αὐτὴν καὶ τὰς γενέσεις· σὺ δέ μοι τὴν ἑτέραν. λέγω δὲ τὸ μὲν καθεύδειν, [Stephanus page 71, section c, line 12] τὸ δὲ ἐγρηγορέναι, καὶ ἐκ τοῦ καθεύδειν τὸ ἐγρηγορέναι γίγνεσθαι καὶ ἐκ τοῦ ἐγρηγορέναι τὸ καθεύδειν, καὶ τὰς γενέσεις αὐτοῖν τὴν μὲν καταδαρθάνειν εἶναι, τὴν δ' ἀνεγείρεσθαι. ἱκανῶς σοι, ἔφη, ἢ οὔ;
그러니까 내가 자네에게 방금 말하고 있던 것들 중 한 쪽의 다른 조합은, 소크라테스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조합 자체와 그 생성들을 내가 말할 것이네: 그런데 자네는 나에게 나머지 다른 조합을 말해주게. 그런데 나는 그 한 쪽은 잠자는 것이라고, 다른 쪽은 깨어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잠으로부터 깨어 있음이 생긴다고 그리고 깨어 있음으로부터 잠이 생긴다고, 또한 그 양자의 생성들이 한 쪽 생성은 잠듦이라고, 다른 쪽 생성은 깨어남이라고 말하네. 그 분께서 말씀하셨지, 자네에게 이게 충분한가 아님 그렇지 못한가?
καταδαρθάνειν : fall asleep.
Πάνυ μὲν οὖν.
물론 충분합니다.
Λέγε δή μοι καὶ σύ, ἔφη, οὕτω περὶ ζωῆς καὶ θανάτου. οὐκ ἐναντίον μὲν φῂς τῷ ζῆν τὸ τεθνάναι εἶναι;
그럼 자네가 내게 말해보게, 그 분께서 말씀하셨지, 그런 식으로 삶과 죽음에 관해서 말이네. 자네는 죽는다는 것이 산다는 것에 반대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Ἔγωγε.
저로서는요.
Γίγνεσθαι δὲ ἐξ ἀλλήλων;
그런데 그것들이 서로로부터 생겨난다고 말하지?
Ναί.
네.
[Stephanus page 71, section d, line 10] Ἐξ οὖν τοῦ ζῶντος τί τὸ γιγνόμενον;
그렇다면 살아 있는 것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은 무엇인가?
Τὸ τεθνηκός, ἔφη.
죽은 것입니다, 그가 말했네.
Τί δέ, ἦ δ' ὅς, ἐκ τοῦ τεθνεῶτος;
그럼, 그 분께서 말씀하셨지, 죽은 것으로부터는 무엇이 생겨나는 것인가?
Ἀναγκαῖον, ἔφη, ὁμολογεῖν ὅτι τὸ ζῶν.
살아있는 것이라는 걸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말했네.
Ἐκ τῶν τεθνεώτων ἄρα, ὦ Κέβης, τὰ ζῶντά τε καὶ οἱ ζῶντες γίγνονται;
그럼 죽어 버린 것들로부터, 케베스, 살아있는 것들이 또한 살아있는 자들이 생겨나는가?
Φαίνεται, ἔφη.
그리 보입니다, 그가 말했네.
Εἰσὶν ἄρα, ἔφη, αἱ ψυχαὶ ἡμῶν ἐν Ἅιδου.
그럼, 그 분께서 말씀하셨지, 우리의 영혼들은 하이데스에 있구만.
Ἔοικεν.
그럴 것 같습니다.
Οὐκοῦν καὶ τοῖν γενεσέοιν τοῖν περὶ ταῦτα ἥ γ' ἑτέρα [Stephanus page 71, section e, line 5] σαφὴς οὖσα τυγχάνει; τὸ γὰρ ἀποθνῄσκειν σαφὲς δήπου, ἢ οὔ;
그렇다면 그것들과 관련한 그것들의 두 생성들 중 적어도 다른 한 쪽은 확실하게 된 게 아닌가? 그야 아마도 죽어감인게 확실하니까, 아니 그런가?
Πάνυ μὲν οὖν, ἔφη.
물론입니다, 그가 말했네.
Πῶς οὖν, ἦ δ' ὅς, ποιήσομεν; οὐκ ἀνταποδώσομεν τὴν ἐναντίαν γένεσιν, ἀλλὰ ταύτῃ χωλὴ ἔσται ἡ φύσις; ἢ ἀνάγκη ἀποδοῦναι τῷ ἀποθνῄσκειν ἐναντίαν τινὰ γένεσιν;
그렇다면, 그 분께서 말씀하셨지, 우리가 어찌 할까? 그 반대 생성에 짝을 맞춰 주지 않을 것인가, 그것에 절름발이 본성이 있게 될까? 아니면 죽어감에 반대되는 어떤 생성을 내어주는 일이 필연적일까?
Πάντως που, ἔφη.
전적으로 그렇습니다, 그가 말했네.
Τίνα ταύτην;
어떤 것을 말인가?
Τὸ ἀναβιώσκεσθαι.
되살아남입니다.
[Stephanus page 71, section e, line 14] Οὐκοῦν, ἦ δ' ὅς, εἴπερ ἔστι τὸ ἀναβιώσκεσθαι, ἐκ τῶν τεθνεώτων ἂν εἴη γένεσις εἰς τοὺς ζῶντας αὕτη, τὸ ἀναβιώσκεσθαι;
그렇다면, 그 분게서 말씀하셨지, 만일 정말로 되살아남이 있을 수 있다면, 죽은 자들로부터 산자들로의 생성이 바로 그것, 되살아남이 아니겠는가?

-蟲-

저작자 표시
Posted by 버러지

Trackback Address :: http://oistros.tistory.com/trackback/788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Οἱ μὲν δὴ φιλόσοφοι, ἦν δ' ἐγώ, ὦ Γλαύκων, καὶ οἱ μὴ διὰ μακροῦ τινος διεξελθόντες λόγου μόγις πως ἀνεφάνησαν οἵ εἰσιν ἑκάτεροι.
내가 말했네, 그럼 지혜를 사랑하는 자들과, 글라우콘, 또 그렇지 않은 자들은 어떤 긴 논의를 통해 거쳐 나와서 겨우 그 둘 각각의 사람들이 어떠한 자들인지 드러났구만.
[Stephanus page 484, section a, line 4] Ἴσως γάρ, ἔφη, διὰ βραχέος οὐ ῥᾴδιον.
그가 말했네, 짧은 논의를 통해서는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으니 말입니다.
Οὐ φαίνεται, εἶπον· ἐμοὶ γοῦν ἔτι δοκεῖ ἂν βελτιόνως φανῆναι εἰ περὶ τούτου μόνου ἔδει ῥηθῆναι, καὶ μὴ πολλὰ τὰ λοιπὰ διελθεῖν μέλλοντι κατόψεσθαι τί διαφέρει βίος δίκαιος ἀδίκου.
드러나지 않지, 내가 말했네: 그야 내게는 여전히 더욱 잘 밝혀졌을 것으로 여겨지니 말이네, 단지 이에 관해서만 이야기할 필요가 있었다면, 또 정의로운 삶이 부정의한 삶과 무엇이 다른지 고찰할 자에게 거쳐갈 것들이 많지 않았다면.
Τί οὖν, ἔφη, τὸ μετὰ τοῦτο ἡμῖν;
그가 말했네, 그렇다면 그 다음으로 우리에게 남은 건 무엇입니까?
Τί δ' ἄλλο, ἦν δ' ἐγώ, ἢ τὸ ἑξῆς; ἐπειδὴ φιλόσοφοι μὲν οἱ τοῦ ἀεὶ κατὰ ταὐτὰ ὡσαύτως ἔχοντος δυνάμενοι ἐφάπτεσθαι, οἱ δὲ μὴ ἀλλ' ἐν πολλοῖς καὶ παντοίως ἴσχουσιν πλανώμενοι οὐ φιλόσοφοι, ποτέρους δὴ δεῖ πόλεως ἡγεμόνας [Stephanus page 484, section b, line 7] εἶναι;
달리 무엇이겠나, 내가 말했지, 그 바로 다음 것 말고는 말일세? 언제나 동일한 것들에 따라 동일한 상태에 있는 것에 닿을 수 있는 자들은 철학자들인 반면, 그렇지를 못하고 많으면서 온갖 상태로 있는 것들 속에서 헤매이는 자들은 지혜를 사랑하는 자들이 아니니, 그 두쪽 중 어느 쪽이 폴리스의 지도자들이어야 하겠는가?
ἐφάπτεσθαι : ἐφάπτω mp. inf. bind on or to.
ἴσχουσιν : redupl. form of ἔχω.
πλανώμενοι : πλανάω mp. part. wander, stray.
Πῶς οὖν λέγοντες ἂν αὐτό, ἔφη, μετρίως λέγοιμεν;
그가 말했네, 그렇다면 우리가 그걸 어떻게 말하면서 적절하게 말하겠습니까?
Ὁπότεροι ἄν, ἦν δ' ἐγώ, δυνατοὶ φαίνωνται φυλάξαι νόμους τε καὶ ἐπιτηδεύματα πόλεων, τούτους καθιστάναι φύλακας.
내가 말했네, 어느 쪽이든 폴리스들의 법들과 관습들을 수호할 수 있는 자들로 드러나는 자들, 그들을 수호자들로 세운다고 말하겠지.
ἐπιτηδεύματα : pursuit, business, custom.
Ὀρθῶς, ἔφη.
옳은 말씀이십니다, 그가 말했네.
Τόδε δέ, ἦν δ' ἐγώ, ἆρα δῆλον, εἴτε τυφλὸν εἴτε ὀξὺ ὁρῶντα χρὴ φύλακα τηρεῖν ὁτιοῦν;
그런데 이 점은 혹시 분명한가, 내가 말했네, 무엇이 되었든 감시를 해야하는 수호자는 눈이 먼 자인지 예리하게 보는 자인지 말일세?
τυφλὸν : blind. dark, dim, ubscure, unseen.
ὀξὺ : sharp, dazzling, bright.
φύλακα : watcher, guard, sentinel, keeper, protector.
τηρεῖν : τηρέω inf. watch over, take care.
Καὶ πῶς, ἔφη, οὐ δῆλον;
그가 말했네, 또 어찌 분명치 않겠습니까?
Ἦ οὖν δοκοῦσί τι τυφλῶν διαφέρειν οἱ τῷ ὄντι τοῦ ὄντος [Stephanus page 484, section c, line 7] ἑκάστου ἐστερημένοι τῆς γνώσεως, καὶ μηδὲν ἐναργὲς ἐν τῇ ψυχῇ ἔχοντες παράδειγμα, μηδὲ δυνάμενοι ὥσπερ γραφῆς εἰς τὸ ἀληθέστατον ἀποβλέποντες κἀκεῖσε ἀεὶ ἀναφέροντές τε καὶ θεώμενοι ὡς οἷόν τε ἀκριβέστατα, οὕτω δὴ καὶ τὰ ἐνθάδε νόμιμα καλῶν τε πέρι καὶ δικαίων καὶ ἀγαθῶν τίθεσθαί τε, ἐὰν δέῃ τίθεσθαι, καὶ τὰ κείμενα φυλάττοντες σῴζειν;
그렇다면 눈이 먼 자들과 어떤 점에서 그들이 차이가 나는가? 실제로 있는 것 각각에 대해 앎을 결여한 자들, 그 영혼 안에 아무런 뚜렷한 것도 본으로 지니지 않은 자들, 마치 화가들처럼 가장 참된 것 쪽을 보면서 언제나 저 쪽으로 조회하고 또한 가능한 한 가장 정확하게 볼 능력도 없는 자들, 그런 식으로 더 나아가 이곳에서 아름다운 것들과 정의로운 것들 그리고 선한 것들에 관하여 만일 세울 필요가 있다면 법령들을 제정하고, 또한 그 규정된 것들을 감시하면서 지킬 능력도 없는 자들이 말일세?
ἐστερημένοι  : στερέω pf. mp. part. deprive, bereave. to be deprived.
ἐναργές : ἐναργής. visible, palpable, manifest to the mind's eye.
ὡς οἷόν τε : so far as possible.
Οὐ μὰ τὸν Δία, ἦ δ' ὅς, οὐ πολύ τι διαφέρει.
제우스께 맹세코, 그가 말했네, 그닥 다를 바 없습니다.
Τούτους οὖν μᾶλλον φύλακας στησόμεθα ἢ τοὺς ἐγνωκότας μὲν ἕκαστον τὸ ὄν, ἐμπειρίᾳ δὲ μηδὲν ἐκείνων ἐλλείποντας μηδ' ἐν ἄλλῳ μηδενὶ μέρει ἀρετῆς ὑστεροῦντας;
그렇다면 우리가 있는 것 각각을 알고 있는 자들, 그런데 경험으로도 전혀 저들보다 부족하지 않고 덕의 다른 그 어느 부분에서도 뒤떨어지지 않는 자들보다도 오히려 그런 자들을 우리가 수호자들로 세우겠는가?
ἐγνωκότας : γιγνώσκω pf. part.
[Stephanus page 484, section d, line 8] Ἄτοπον μεντἄν, ἔφη, εἴη ἄλλους αἱρεῖσθαι, εἴ γε τἆλλα μὴ ἐλλείποιντο· τούτῳ γὰρ αὐτῷ σχεδόν τι τῷ μεγίστῳ ἂν προέχοιεν.
아니, 다른 자들이 선출되는 건 이상한 일일 겁니다, 그가 말했네, 만일 그들이 다른 점들까지도 부족하지 않다면 말입니다: 거의 가장 대단할 바로 그 점에서 그들이 능가할 테니까요.
Οὐκοῦν τοῦτο δὴ λέγωμεν, τίνα τρόπον οἷοί τ' ἔσονται οἱ αὐτοὶ κἀκεῖνα καὶ ταῦτα ἔχειν;
그렇다면 실로 우리 이 점을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떤 식으로 그들 자신들이 저런 것들과 이런 것들을 가질 수 있는 그런 자들이 될 것인지를?
Πάνυ μὲν οὖν.
물론입니다.
Ὃ τοίνυν ἀρχόμενοι τούτου τοῦ λόγου ἐλέγομεν, τὴν φύσιν αὐτῶν πρῶτον δεῖ καταμαθεῖν· καὶ οἶμαι, ἐὰν ἐκείνην ἱκανῶς ὁμολογήσωμεν, ὁμολογήσειν καὶ ὅτι οἷοί τε ταῦτα ἔχειν οἱ αὐτοί, ὅτι τε οὐκ ἄλλους πόλεων ἡγεμόνας δεῖ [Stephanus page 485, section a, line 8] εἶναι ἢ τούτους.
그러니까 우리가 이 논의를 시작하면서 말했던 것은, 그들의 본성을 우선 면밀히 살펴 보아야 한다는 것이지: 그리고, 만일 우리가 저 본성에 충분히 동의하게 된다면, 또한 바로 그들이 그런 것들을 가질 만한 그런 자들이라는 점도 동의할 것이라고, 이들 말고 다른 자들이 폴리스들의 지도자들이어서는 안 된다고도 동의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네.
Πῶς;
어째서입니까?
Τοῦτο μὲν δὴ τῶν φιλοσόφων φύσεων πέρι ὡμολογήσθω ἡμῖν ὅτι μαθήματός γε ἀεὶ ἐρῶσιν ὃ ἂν αὐτοῖς δηλοῖ ἐκείνης τῆς οὐσίας τῆς ἀεὶ οὔσης καὶ μὴ πλανωμένης ὑπὸ γενέσεως καὶ φθορᾶς.
이 점은 지혜를 사랑하는 자들의 본성들에 관련해서 우리에게 동의되었다고 하세, 그 본성들이 자신들에게 저 언제나 존재하는 그 존재에 대해 밝혀주고 또한 생성과 소멸에 의해 방황하지도 않는 그 배움을 언제나 사랑한다는 것 말이지.
Ὡμολογήσθω.
동의된 것이도록 하죠.
Καὶ μήν, ἦν δ' ἐγώ, καὶ ὅτι πάσης αὐτῆς, καὶ οὔτε σμικροῦ οὔτε μείζονος οὔτε τιμιωτέρου οὔτε ἀτιμοτέρου μέρους ἑκόντες ἀφίενται, ὥσπερ ἐν τοῖς πρόσθεν περί τε τῶν [Stephanus page 485, section b, line 8] φιλοτίμων καὶ ἐρωτικῶν διήλθομεν.
좋군, 내가 말했네, 그리고 그것 전체에 대해서이기 때문에, 그들은 작든 크든 명예롭든 불명예스럽든 그 어떤 부분에 대해서도 그들이 자발적으로 폐기하지 않는다네, 바로 그 앞선 논의들에서 명예를 사랑하는 자들과 구애자들에 관해서 우리가 상술했던 것처럼 말일세.
Ὀρθῶς, ἔφη, λέγεις.
옳은 말씀이십니다, 그가 말했네.
Τόδε τοίνυν μετὰ τοῦτο σκόπει εἰ ἀνάγκη ἔχειν πρὸς τούτῳ ἐν τῇ φύσει οἳ ἂν μέλλωσιν ἔσεσθαι οἵους ἐλέγομεν.
그러니 그 다음으로 이걸 살펴 보게, 그에 더하여 본성에 있어서 장차 우리가 말하던 그런 자들이 될 자들이 이런 것을 지녀야만 하는지 살펴 보게.
Τὸ ποῖον;
어떤 것 말씀이십니까?
Τὴν ἀψεύδειαν καὶ τὸ ἑκόντας εἶναι μηδαμῇ προσδέχεσθαι τὸ ψεῦδος ἀλλὰ μισεῖν, τὴν δ' ἀλήθειαν στέργειν.
거짓 없음 그리고 결코 자발적으로 거짓을 받아들이지 않고 미워하되, 참된 것을 좋아함이지.
Εἰκός γ', ἔφη.
그런 것 같긴 합니다, 그가 말했네.
Οὐ μόνον γε, ὦ φίλε, εἰκός, ἀλλὰ καὶ πᾶσα ἀνάγκη τὸν ἐρωτικῶς του φύσει ἔχοντα πᾶν τὸ συγγενές τε καὶ οἰκεῖον [Stephanus page 485, section c, line 8] τῶν παιδικῶν ἀγαπᾶν.
그럴 것 같은 것만이 아니라, 친애하는 친구, 전적으로 필연적이기도 하다네 본성에 의해 사랑하는 상태인 자는 사랑받는 이들의 친족과 친근한 자 모두를 사랑한다는 건 말일세.
Ὀρθῶς, ἔφη.
맞습니다, 그가 말했네.
Ἦ οὖν οἰκειότερον σοφίᾳ τι ἀληθείας ἂν εὕροις;
그렇다면 자네는 참된 것보다 지혜와 더욱 친근한 무언가를 찾겠는가?
Καὶ πῶς; ἦ δ' ὅς.
어찌 찾겠습니까? 그가 말했네.
Ἦ οὖν δυνατὸν εἶναι τὴν αὐτὴν φύσιν φιλόσοφόν τε καὶ φιλοψευδῆ;
그렇다면 지혜를 사랑하는 본성과 거짓을 사랑하는 본성이 동일한 것임이 가능하겠는가?
Οὐδαμῶς γε.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Τὸν ἄρα τῷ ὄντι φιλομαθῆ πάσης ἀληθείας δεῖ εὐθὺς ἐκ νέου ὅτι μάλιστα ὀρέγεσθαι.
그래서 진정으로 배움을 사랑하는 자는 모든 진리에 어려서부터 곧장 가능한 한 최대한 도달해야 하지.
Παντελῶς γε.
전적으로 그렇습니다.
[Stephanus page 485, section d, line 6] Ἀλλὰ μὴν ὅτῳ γε εἰς ἕν τι αἱ ἐπιθυμίαι σφόδρα ῥέπουσιν, ἴσμεν που ὅτι εἰς τἆλλα τούτῳ ἀσθενέστεραι, ὥσπερ ῥεῦμα ἐκεῖσε ἀπωχετευμένον.
허나 정말로 어떤 한 가지 것을 향해 열망들이 격하게 기우는 누구에게든지 바로 그에게, 다른 것들을 향해서는 그 사람에게 그 열망들이 더욱 약한 것들이 된다는 걸 아마 우리는 알고 있겠지, 마치 저쪽으로 대어진 물줄기처럼 말일세.
ἀπωχετευμένον : ἀποχετεύω pf. mp. draw off water, by a canal.
Τί μήν;
네, 그래서요?
Ὧι δὴ πρὸς τὰ μαθήματα καὶ πᾶν τὸ τοιοῦτον ἐρρυήκασιν, περὶ τὴν τῆς ψυχῆς οἶμαι ἡδονὴν αὐτῆς καθ' αὑτὴν εἶεν ἄν, τὰς δὲ διὰ τοῦ σώματος ἐκλείποιεν, εἰ μὴ πεπλασμένως ἀλλ' ἀληθῶς φιλόσοφός τις εἴη.
그래서 그 자에게 배움들과 그와 같은 종류의 모든 것을 향하여 열망들이 흘러 들었고, 내 생각에 열망들은 영혼의 쾌락과 관련하여 영혼 자체로 바로 그 영혼에 속할 테지, 만일 가장한 게 아니라 참으로 지혜를 사랑하는 어떤 자라면 말일세.
Μεγάλη ἀνάγκη.
매우 필연적입니다.
Σώφρων μὴν ὅ γε τοιοῦτος καὶ οὐδαμῇ φιλοχρήματος· [Stephanus page 485, section e, line 4] ὧν γὰρ ἕνεκα χρήματα μετὰ πολλῆς δαπάνης σπουδάζεται, ἄλλῳ τινὶ μᾶλλον ἢ τούτῳ προσήκει σπουδάζειν.
정말로 적어도 이와 같은 자는 사려 있는 자이자 결코 재물을 사랑하는 자가 아닌 자이지: 왜냐하면 다른 지출들과 더불어 그를 위해 재물이 갈구되는 그런 것들은, 그런 것들을 갈구하는 일이 이 자에게보다는 오히려 다른 어떤 자에게 어울리니까.
Οὕτω.
그렇습니다.
Καὶ μήν που καὶ τόδε δεῖ σκοπεῖν, ὅταν κρίνειν μέλλῃς φύσιν φιλόσοφόν τε καὶ μή.
그럼 또 아마 이런 것도 살펴보아야 하겠지, 자네가 지혜를 사랑하는 본성과 그렇지 않은 본성을 분간하길 바랄 경우에는.
Τὸ ποῖον;
어떤 것을 말씀이십니까?
Μή σε λάθῃ μετέχουσα ἀνελευθερίας· ἐναντιώτατον γάρ που σμικρολογία ψυχῇ μελλούσῃ τοῦ ὅλου καὶ παντὸς ἀεὶ ἐπορέξεσθαι θείου τε καὶ ἀνθρωπίνου.
자네도 모르게 그 본성이 노예상태에 참여하지는 않도록 하는 것이네: 왜냐하면 아마도 하잘 것 없음은 신적인 것이든 인간적인 것이든 총체적인 모든 것에 대해 언제나 뻗어 나아가고자 하는 영혼에 가장 반대되는 것이니까.
ἐπορέξεσθαι : ἐπορέγω fut. med. inf. stretch oneself towards. yearn for. c.gen.
Ἀληθέστατα, ἔφη.
지극히 참된 말씀이십니다, 그가 말했네.
[Stephanus page 486, section a, line 8] Ἧι οὖν ὑπάρχει διανοίᾳ μεγαλοπρέπεια καὶ θεωρία παντὸς μὲν χρόνου, πάσης δὲ οὐσίας, οἷόν τε οἴει τούτῳ μέγα τι δοκεῖν εἶναι τὸν ἀνθρώπινον βίον;
그렇다면 그 본성에 사유에 있어서의 기품과 모든 시간 모든 존재에 대한 관조가 속하는, 그런 자에게 인간의 삶이 무슨 대단한 거라도 된다고 여겨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οἷόν τε : it is possible.
Ἀδύνατον, ἦ δ' ὅς.
불가능합니다, 그가 말했네.
Οὐκοῦν καὶ θάνατον οὐ δεινόν τι ἡγήσεται ὁ τοιοῦτος;
그렇다면 죽음조차도 어떤 두려운 것으로 그런 사람이 믿지는 않겠지?
Ἥκιστά γε.
무엇보다도 그렇습니다.
Δειλῇ δὴ καὶ ἀνελευθέρῳ φύσει φιλοσοφίας ἀληθινῆς, ὡς ἔοικεν, οὐκ ἂν μετείη.
그래서 비열하고도 노예스러운 본성으로서는 참된 지혜사랑에, 아마도, 관여하지 못할 걸세.
Δειλῇ : δειλός. cowardly. miserable, wretched.
Οὔ μοι δοκεῖ.
못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Τί οὖν; ὁ κόσμιος καὶ μὴ φιλοχρήματος μηδ' ἀνελεύθερος [Stephanus page 486, section b, line 7] μηδ' ἀλαζὼν μηδὲ δειλὸς ἔσθ' ὅπῃ ἂν δυσσύμβολος ἢ ἄδικος γένοιτο;
그렇다면 어떤가? 조화로우며 재물을 사랑하지 않고 노예스럽지도 않으며 허풍을 떨지도 않고 비열하지도 않은 자가 어떤 식으로든 대하기 어려운 자이거나 혹은 부정의한 자가 되겠는가?
δυσσύμβολος : δυσξύμβολος. hard to deal with.
Οὐκ ἔστιν.
그렇지 않습니다.
Καὶ τοῦτο δὴ ψυχὴν σκοπῶν φιλόσοφον καὶ μὴ εὐθὺς νέου ὄντος ἐπισκέψῃ, εἰ ἄρα δικαία τε καὶ ἥμερος ἢ δυσκοινώνητος καὶ ἀγρία.
그래서 자네는 영혼에 있어서 이 지혜를 사랑하는 자를 살펴 보면서 그가 젊은 때에는 그런 자가 아닌지도 검토하겠지, 그래서 정의롭고 얌전한 자인지 아니면 함께 하기 어렵고 거친 자인지.
Πάνυ μὲν οὖν.
물론 그렇습니다.
Οὐ μὴν οὐδὲ τόδε παραλείψεις, ὡς ἐγᾦμαι.
내 생각에, 자네는 이런 것도 물론 남겨두지 않을 것이네.
Τὸ ποῖον;
어떤 것을요?
Εὐμαθὴς ἢ δυσμαθής. ἢ προσδοκᾷς ποτέ τινά τι ἱκανῶς [Stephanus page 486, section c, line 4] ἂν στέρξαι, ὃ πράττων ἂν ἀλγῶν τε πράττοι καὶ μόγις σμικρὸν ἀνύτων;
잘 배우는 자인지 아님 못 배우는 자인지. 혹은 자네는 도대체 누군가가 뭔가 충분히 애정을 가진 것이라 기대하는가, 행하자는 자가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간신히 미미한 것만을 성취하며 행한다면?
Οὐκ ἂν γένοιτο.
그리 되지 않을 것입니다.
Τί δ' εἰ μηδὲν ὧν μάθοι σῴζειν δύναιτο, λήθης ὢν πλέως; ἆρ' ἂν οἷός τ' εἴη ἐπιστήμης μὴ κενὸς εἶναι;
그런데 만일 그가 배웠을 것들 중에 무엇 하나 보존할 수 없다면, 망각으로 가득 차 있을 때에는 어떤가? 그가 앎에 대해 텅 비지 않을 수 있겠는가?
Καὶ πῶς;
또 어찌 그렇겠습니까?
Ἀνόνητα δὴ πονῶν οὐκ οἴει ἀναγκασθήσεται τελευτῶν αὑτόν τε μισεῖν καὶ τὴν τοιαύτην πρᾶξιν;
그럼 허투루 애를 쓰며 끝내 그 자신도 그러한 행위도 싫어할 수밖에 없게 되리라 생각하지 않는가?
Πῶς δ' οὔ;
어찌 아니겠습니까?
Ἐπιλήσμονα ἄρα ψυχὴν ἐν ταῖς ἱκανῶς φιλοσόφοις μή [Stephanus page 486, section d, line 2] ποτε ἐγκρίνωμεν, ἀλλὰ μνημονικὴν αὐτὴν ζητῶμεν δεῖν εἶναι.
그럼 잘 잊는 영혼을 우리는 충분히 지혜를 사랑하는 자들 안에 결코 셈해 넣지 말고, 기억력 있는 영혼이어야 하도록 추구하기로 하지.
Παντάπασι μὲν οὖν.
전적으로 그렇습니다.
Ἀλλ' οὐ μὴν τό γε τῆς ἀμούσου τε καὶ ἀσχήμονος φύσεως ἄλλοσέ ποι ἂν φαῖμεν ἕλκειν ἢ εἰς ἀμετρίαν.
그럼 물론 적어도 교양 없고 못난 본성에 속하는 속하는 것은 다른 어떤 곳도 아닌 지나침 쪽으로 이끈다고 우리가 말할 걸세.
Τί μήν;
그래서요?
Ἀλήθειαν δ' ἀμετρίᾳ ἡγῇ συγγενῆ εἶναι ἢ ἐμμετρίᾳ;
그런데 진리는 지나침과 동류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적도와 동류라 생각하는가?
Ἐμμετρίᾳ.
적도와 동류이지요.
Ἔμμετρον ἄρα καὶ εὔχαριν ζητῶμεν πρὸς τοῖς ἄλλοις διάνοιαν φύσει, ἣν ἐπὶ τὴν τοῦ ὄντος ἰδέαν ἑκάστου τὸ [Stephanus page 486, section d, line 11] αὐτοφυὲς εὐάγωγον παρέξει.
그럼 적도와 품위를 다른 것들에 더하여 본성적인 사유로 추구하세, 그 사유를 그 본성이 있는 것 각각의 이데아를 향해 잘 이끌 것일 그러한 사유로 말이네.
Πῶς δ' οὔ;
어찌 아니겠습니까?
Τί οὖν; μή πῃ δοκοῦμέν σοι οὐκ ἀναγκαῖα ἕκαστα διεληλυθέναι καὶ ἑπόμενα ἀλλήλοις τῇ μελλούσῃ τοῦ ὄντος ἱκανῶς τε καὶ τελέως ψυχῇ μεταλήψεσθαι;
그렇다면 어떠한가? 자네에게는 우리가 어떤 점에서 장차 존재에 충분히 그리고 완전하게 관여할 영혼에 그 각각이 필연적이지도 않고 또 서로 뒤따르지도 않는 것들을 상술한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는가?
Ἀναγκαιότατα μὲν οὖν, ἔφη.
무엇보다도 필연적인 것들을 상술하였습니다, 그가 말했네.
Ἔστιν οὖν ὅπῃ μέμψῃ τοιοῦτον ἐπιτήδευμα, ὃ μή ποτ' ἄν τις οἷός τε γένοιτο ἱκανῶς ἐπιτηδεῦσαι, εἰ μὴ φύσει εἴη μνήμων, εὐμαθής, μεγαλοπρεπής, εὔχαρις, φίλος τε καὶ συγγενὴς ἀληθείας, δικαιοσύνης, ἀνδρείας, σωφροσύνης;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다음과 같은 일을 자네가 비난하겠는가, 그 일을 누가 되었든 충분히 추구하게 될 수 없을, 만일 본성상 기억력이 좋은 자, 잘 배우는 자, 훌륭한 자, 친절한 자, 진리의, 정의의, 용기의, 절제의 친구이자 동류인 자가 아니라면?
μέμψῃ : μέμφομαι aor. subj. or fut. blame, censure.

-蟲-

저작자 표시
Posted by 버러지

Trackback Address :: http://oistros.tistory.com/trackback/784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Οὔκ, ἀλλ' ἀνάγκη, ἔφη, καὶ καλά πως αὐτὰ καὶ αἰσχρὰ φανῆναι, καὶ ὅσα ἄλλα ἐρωτᾷς.
그가 말했네, 없습니다, 오히려 아름다운 것들도 어떤 식으로는 그것들이 추한 것들로도 보이는 것이 필연적이고, 당신께서 물으신 다른 것들도 모두 그러합니다.
Τί δὲ τὰ πολλὰ διπλάσια; ἧττόν τι ἡμίσεα ἢ διπλάσια φαίνεται;
그런데 두 배인 많은 것들은 어떠한가? 두 배인 것들로 나타나는 것보다 얼마간 덜 절반인 것들로 나타나는가?
Οὐδέν.
전혀 아닙니다.
Καὶ μεγάλα δὴ καὶ σμικρὰ καὶ κοῦφα καὶ βαρέα μή τι [Stephanus page 479, section b, line 7] μᾶλλον ἃ ἂν φήσωμεν, ταῦτα προσρηθήσεται ἢ τἀναντία;
더 나아가 큰 것들과 작은 것들 그리고 가벼운 것들과 무거운 것들도 우리가 말할 그것들이 조금도 더 유력하진 않겠지, 이런 이름들로 불리게 되리란 것이 그 반대의 이름들로 불리게 되리란 것보다 말일세?
προσρηθήσεται : προσερέω fut. pass.
μᾶλλον : a portiori.
Οὔκ, ἀλλ' ἀεί, ἔφη, ἕκαστον ἀμφοτέρων ἕξεται.
더 유력하지 않고, 오히려 언제나, 그가 말했네, 그 각각이 양자에 연결될 것입니다.
Πότερον οὖν ἔστι μᾶλλον ἢ οὐκ ἔστιν ἕκαστον τῶν πολλῶν τοῦτο ὃ ἄν τις φῇ αὐτὸ εἶναι;
그렇다면 여러 가지 것들의 각각은 우리가 그 자체라고 말할 바로 그것이 아닌가 아니면 오히려 그것인가?
Τοῖς ἐν ταῖς ἑστιάσεσιν, ἔφη, ἐπαμφοτερίζουσιν ἔοικεν, καὶ τῷ τῶν παίδων αἰνίγματι τῷ περὶ τοῦ εὐνούχου, τῆς βολῆς πέρι τῆς νυκτερίδος, ᾧ καὶ ἐφ' οὗ αὐτὸν αὐτὴν αἰνίττονται βαλεῖν· καὶ γὰρ ταῦτα ἐπαμφοτερίζειν, καὶ οὔτ' εἶναι οὔτε μὴ εἶναι οὐδὲν αὐτῶν δυνατὸν παγίως νοῆσαι, οὔτε ἀμφότερα οὔτε οὐδέτερον.
그가 말했네, 연회에서 양의어 놀이를 하는 자들과 같고, 그리고 고자에 관한 아이들의 수수께끼와 같습니다, 박쥐에게 던지는 일에 관한 것인데, 그 사람이 그 박쥐를 무엇으로 그리고 무엇 위에 던졌는가 수수께끼를 냅니다: 왜냐하면 그것들도 양의어 놀이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들 중 아무것도 있다고도 있지 않다고도 확실하게 생각할 수도 없고, 양쪽 다라고도 어느 쪽도 아니라고도 생각할 수 없으니 말입니다.
ἑστιάσεσιν : ἑστίᾱσις. feasting, banqueting, entertainment.
ἐπαμφοτερίζουσιν : ἐπαμφοτερίζω. to be double. play a double game.
[Stephanus page 479, section c, line 6] Ἔχεις οὖν αὐτοῖς, ἦν δ' ἐγώ, ὅτι χρήσῃ, ἢ ὅποι θήσεις καλλίω θέσιν τῆς μεταξὺ οὐσίας τε καὶ τοῦ μὴ εἶναι; οὔτε γάρ που σκοτωδέστερα μὴ ὄντος πρὸς τὸ μᾶλλον μὴ εἶναι φανήσεται, οὔτε φανότερα ὄντος πρὸς τὸ μᾶλλον εἶναι.
그러면 자네 알고 있는가, 내가 말했네, 그것들로 자네가 사용할 바를, 혹은 존재와 비존재 사이보다 더 아름다운 장소가 어떤 장소인지 말이네? 왜냐하면 아마도 그것들이 더욱 비존재라는 쪽으로 비존재보다 더 어두운 것들로 나타나지도 않을 것이고, 더욱 존재라는 쪽으로 존재보다 더욱 밝은 것들로도 나타나지 않을 거싱기 때문일세.
Ἀληθέστατα, ἔφη.
무엇보다도 옳은 말씀이십니다, 그가 말했네.
Ηὑρήκαμεν ἄρα, ὡς ἔοικεν, ὅτι τὰ τῶν πολλῶν πολλὰ νόμιμα καλοῦ τε πέρι καὶ τῶν ἄλλων μεταξύ που κυλινδεῖται τοῦ τε μὴ ὄντος καὶ τοῦ ὄντος εἰλικρινῶς.
그럼 보이기로는 우리가 아름다움에 관하여 그리고 다른 것들에 관하여 많은 사람들의 많은 용례들이 아마도 비존재와 순수한 존재 사이에서 뒤척인다는 것을 알아낸 듯하군.
Ηὑρήκαμεν.
알아냈습니다.
[Stephanus page 479, section d, line 7] Προωμολογήσαμεν δέ γε, εἴ τι τοιοῦτον φανείη, δοξαστὸν αὐτὸ ἀλλ' οὐ γνωστὸν δεῖν λέγεσθαι, τῇ μεταξὺ δυνάμει τὸ μεταξὺ πλανητὸν ἁλισκόμενον.
그런데 우리가 동의도 한 것인가, 만일 어떤 것이 그런 것으로 드러난다면, 그것이 앎의 대상이 아닌 의견의 대상으로 이야기되어야 한다는 걸, 중간의 헤매는 것은 중간의 능력으로 포착됨으로써 그렇다는 것을 말일세.
Ὡμολογήκαμεν.
동의했습니다.
Τοὺς ἄρα πολλὰ καλὰ θεωμένους, αὐτὸ δὲ τὸ καλὸν μὴ ὁρῶντας μηδ' ἄλλῳ ἐπ' αὐτὸ ἄγοντι δυναμένους ἕπεσθαι, καὶ πολλὰ δίκαια, αὐτὸ δὲ τὸ δίκαιον μή, καὶ πάντα οὕτω, δοξάζειν φήσομεν ἅπαντα, γιγνώσκειν δὲ ὧν δοξάζουσιν οὐδέν.
그래서 많은 아름다움 것들을 보면서, 아름다움 자체는 보지 못하고 그 자체를 향해 이끄는 자에게 따를 능력도 없는 자들은, 또 많은 정의로운 것들을 보면서, 정의 그 자체는 보지 못하고, 또 모든 것들에 있어서도 그런 식인 자들을, 우리는 그들 모두가 의견을 지닌다고 말할 테고, 그러나 그들이 그에 대해 의견을 가지는 그것들 중 아무것도 그들이 알지는 못한다고 말할 것이네.
Ἀνάγκη, ἔφη.
필연적입니다, 그가 말했네.
[Stephanus page 479, section e, line 7] Τί δὲ αὖ τοὺς αὐτὰ ἕκαστα θεωμένους καὶ ἀεὶ κατὰ ταὐτὰ ὡσαύτως ὄντα; ἆρ' οὐ γιγνώσκειν ἀλλ' οὐ δοξάζειν;
그런데 이번엔 그 자체들 각각의 것들과 언제나 그 자체로 동일한 방식으로 있는 것들을 보는 자들은 어떤가? 혹시 의견을 가진다고 하지 않고 안다고 말하지 않겠는가?
Ἀνάγκη καὶ ταῦτα.
이러한 일들 또한 필연적입니다.
Οὐκοῦν καὶ ἀσπάζεσθαί τε καὶ φιλεῖν τούτους μὲν ταῦτα φήσομεν ἐφ' οἷς γνῶσίς ἐστιν, ἐκείνους δὲ ἐφ' οἷς δόξα; ἢ οὐ μνημονεύομεν ὅτι φωνάς τε καὶ χρόας καλὰς καὶ τὰ τοιαῦτ' ἔφαμεν τούτους φιλεῖν τε καὶ θεᾶσθαι, αὐτὸ δὲ τὸ καλὸν οὐδ' ἀνέχεσθαι ὥς τι ὄν;
그렇다면 인식이 그에 관계되는 이러한 것들을 그들이 반기고 사랑하지만, 저들은 의견이 관계된 것들을 그리한다고 말하지 않겠나? 아니면 아름다운 소리들과 빛깔들 그리고 이런 종류의 것들을 그들이 사랑하고 반기는 반면, 아름다움 그 자체는 뭐나 되는 거라고 받아들이지도 않으리라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가?
Μεμνήμεθα.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Μὴ οὖν τι πλημμελήσομεν φιλοδόξους καλοῦντες αὐτοὺς [Stephanus page 480, section a, line 7] μᾶλλον ἢ φιλοσόφους; καὶ ἆρα ἡμῖν σφόδρα χαλεπανοῦσιν ἂν οὕτω λέγωμεν;
그러므로 우리가 그들을 지혜를 사랑하는 자들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의견을 사랑하는 자들이라 부르면서 뭔가 실수하게 되진 않겠지? 그리고 혹시 우리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들이 우리에게 극도로 험하게 굴겠는가?
πλημμελήσομεν : πλημμελέω fut. offend, err.
Οὔκ, ἄν γέ μοι πείθωνται, ἔφη· τῷ γὰρ ἀληθεῖ χαλεπαίνειν οὐ θέμις.
아닙니다, 적어도 그들이 제게 설득된다면 말이죠, 그가 말했네: 왜냐하면 진실에 화를 내는 법은 없으니까요.
Τοὺς αὐτὸ ἄρα ἕκαστον τὸ ὂν ἀσπαζομένους φιλοσόφους ἀλλ' οὐ φιλοδόξους κλητέον;
그럼 각각의 있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는 자들은 의견을 사랑하는 자들이 아니라 지혜를 사랑하는 자들로 불려야 하는 것이겠지?
Παντάπασι μὲν οὖν.
전적으로 그러합니다.

-蟲-


저작자 표시
Posted by 버러지

Trackback Address :: http://oistros.tistory.com/trackback/780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Stephanus page 66, section b, line 1] Οὐκοῦν ἀνάγκη, ἔφη, ἐκ πάντων τούτων παρίστασθαι δόξαν τοιάνδε τινὰ τοῖς γνησίως φιλοσόφοις, ὥστε καὶ πρὸς ἀλλήλους τοιαῦτα ἄττα λέγειν, ὅτι “Κινδυνεύει τοι ὥσπερ ἀτραπός τις ἐκφέρειν ἡμᾶς [μετὰ τοῦ λόγου ἐν τῇ σκέψει], ὅτι, ἕως ἂν τὸ σῶμα ἔχωμεν καὶ συμπεφυρμένη ᾖ ἡμῶν ἡ ψυχὴ μετὰ τοιούτου κακοῦ, οὐ μή ποτε κτησώμεθα ἱκανῶς οὗ ἐπιθυμοῦμεν· φαμὲν δὲ τοῦτο εἶναι τὸ ἀληθές.
그렇다면 필연적이지 않은가, 그 분께서 말씀하셨소, 이 모든 것들로부터 이와 같은 어떤 믿음이 진정으로 지혜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떠오른다는 것이, 그래서 서로에게도 이와 같은 얼마간의 것들을 말할 수 있도록 말이네, 즉 "그러니까 마치 지름길과 같은 어떤 것이 우리를 검토 중의 논의에 따라 이끄는 수도 있겠군, 왜냐하면, 우리가 육체를 지니고 있는 동안 그리고 우리의 영혼이 이러한 좋지 못한 것과 함께  뒤범벅이 된 채로 있는 한, 결코 우리가 마음을 향하고 있는 것을 충분히 얻어내지 못할 것이기에 말이지: 헌데 그걸 우리는 참된 것이라고 말하네.
Κινδυνεύει : κινδυνεύω. impers. with inf. what may possibly or probably happen.
ἀτραπός : short cut, path.
ἐκφέρειν : ἐκφέρω inf. carry out, bring forth.
συμπεφυρμένη : συμπύρω pf. mp. part. knead together. mess up.
κτησώμεθα : κτάομαι fut. get, acquire.
μυρίας μὲν γὰρ ἡμῖν ἀσχολίας παρέχει τὸ σῶμα διὰ τὴν ἀναγκαίαν τροφήν· ἔτι δέ, ἄν τινες νόσοι προσπέσωσιν, ἐμποδίζουσιν ἡμῶν τὴν τοῦ ὄντος θήραν.
왜냐하면 한 없는 분주함들을 우리에게 그 육체가 필연적인 방식을 통해 가져오기 때문이지: 그런데 더 나아가, 어떤 질병들이 들이닥치면, 그것들이 있는 것에 대한 우리의 추적을 좌절시킨다네.
προσπέσωσιν : προσπίπτω aor. subj. fall upon. encounter.
ἐμποδίζουσιν : hinder, thwart.
ἐρώτων δὲ καὶ ἐπιθυμιῶν καὶ [Stephanus page 66, section c, line 3] φόβων καὶ εἰδώλων παντοδαπῶν καὶ φλυαρίας ἐμπίμπλησιν ἡμᾶς πολλῆς, ὥστε τὸ λεγόμενον ὡς ἀληθῶς τῷ ὄντι ὑπ' αὐτοῦ οὐδὲ φρονῆσαι ἡμῖν ἐγγίγνεται οὐδέποτε οὐδέν.
그리고 육체는 사랑들과 열망들 그리고 두려움들과 온갖 종류의 모상들 또한 많은 어리석음들로 우리를 가득 채워서, 말마따나 정말이지 실제로 그것에 의해 우리로서는 결코 아무것도 이해할 수가 없게 되지.
φλυαρίας : φλῠᾱρία. nonsense, foolery.
ἐμπίμπλησιν : ἐμπίμπλημι. c.gen. fill full of a thing.
τὸ λεγόμενον : as the saying goes.
φρονῆσαι : φρονέω aor. inf.
καὶ γὰρ πολέμους καὶ στάσεις καὶ μάχας οὐδὲν ἄλλο παρέχει ἢ τὸ σῶμα καὶ αἱ τούτου ἐπιθυμίαι.
왜냐하면 전쟁들도 대립들도 또한 싸움들도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육체와 그 열망들이 일으키기 때문일세.
διὰ γὰρ τὴν τῶν χρημάτων κτῆσιν πάντες οἱ πόλεμοι γίγνονται, τὰ δὲ χρήματα ἀναγκαζόμεθα κτᾶσθαι διὰ τὸ σῶμα, δουλεύοντες τῇ τούτου θεραπείᾳ· καὶ ἐκ τούτου ἀσχολίαν ἄγομεν φιλοσοφίας πέρι διὰ πάντα ταῦτα.
그야 재물들의 소유 때문에 모든 전쟁들이 일어나고, 우리는 육체로 인해 재물들을 가지도록 강제받으니까, 그 육신에 대한 보살핌에 노예가 되어서 말일세: 육신으로부터 이런 모든 일들로 인해서 우리는 지혜를 사랑하는 일에 관한 여가가 없게 되지.
τὸ δ' ἔσχατον πάντων ὅτι, ἐάν τις ἡμῖν καὶ σχολὴ γένηται ἀπ' αὐτοῦ καὶ τραπώμεθα πρὸς τὸ [Stephanus page 66, section d, line 5] σκοπεῖν τι, ἐν ταῖς ζητήσεσιν αὖ πανταχοῦ παραπῖπτον θόρυβον παρέχει καὶ ταραχὴν καὶ ἐκπλήττει, ὥστε μὴ δύνασθαι ὑπ' αὐτοῦ καθορᾶν τἀληθές.
헌데 그 무엇보다도 특히, 만일 우리에게 그 육신으로부터 어떤 여가가 생기고 우리가 뭔가를 검토하는 데에로 향한다 할지라도, 또 그 탐구들 내에서 육신이 온갖 곳에 들이닥쳐 소란과 소동을 가져오고 또한 경악시켜서, 그것에 의해 참된 것들을 살펴 볼 수 없도록 하기 때문일세.
ταραχὴν : disorder, disturbance or upheaval.
ἀλλὰ τῷ ὄντι ἡμῖν δέδεικται ὅτι, εἰ μέλλομέν ποτε καθαρῶς τι εἴσεσθαι, ἀπαλλακτέον αὐτοῦ καὶ αὐτῇ τῇ ψυχῇ θεατέον αὐτὰ τὰ πράγματα· καὶ τότε, ὡς ἔοικεν, ἡμῖν ἔσται οὗ ἐπιθυμοῦμέν τε καί φαμεν ἐρασταὶ εἶναι, φρονήσεως, ἐπειδὰν τελευτήσωμεν, ὡς ὁ λόγος σημαίνει, ζῶσιν δὲ οὔ.
허나 실로 우리에게 이 점이 밝혀졌군, 만일 우리가 어쨌든 뭔가 분명하게 보게 되길 바란다면, 우리의 바로 그 영혼이 그 육신으로부터 벗어나야 하고 또 사태 그 자체를 보아야만 한다는 사실이 말이지: 또한 보이기로는 우리가 그에 대해 열망하고 또한 우리가 그에 대한 구애자라고 말하는 바로 그것, 즉 현명함은, 논의가 의미하는 바대로, 우리가 마지막에 이르게 될 순간 그 때에 우리에게 있게 될 듯하고, 그러나 우리가 살아있을 때 우리에게 있게 되지는 않을 것 같군.
εἴσεσθαι : εἴσομαι. fut. of οἶδα(εἴδω)
ἀπαλλακτέον : ἀπαλλάσσω. one must release from.
εἰ γὰρ μὴ οἷόν τε μετὰ τοῦ σώματος μηδὲν καθαρῶς γνῶναι, δυοῖν θάτερον, ἢ οὐδαμοῦ ἔστιν κτήσασθαι τὸ εἰδέναι ἢ τελευτήσασιν· τότε [Stephanus page 67, section a, line 1] γὰρ αὐτὴ καθ' αὑτὴν ἡ ψυχὴ ἔσται χωρὶς τοῦ σώματος, πρότερον δ' οὔ.
왜냐하면 만일 육체와 더불어 아무것도 분명하게 알 수 없는 것이라면, 둘 중 하나이니까, 그 누구에게도 앎을 얻는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든지 아니면 죽은 자들에게나 가능하든지: 그 때에 영혼이 육체와 따로 그 자신에 따라 그 자체인 것으로 있게 되고, 그 이전에는 그렇지 않으니까 말일세.
καὶ ἐν ᾧ ἂν ζῶμεν, οὕτως, ὡς ἔοικεν, ἐγγυτάτω ἐσόμεθα τοῦ εἰδέναι, ἐὰν ὅτι μάλιστα μηδὲν ὁμιλῶμεν τῷ σώματι μηδὲ κοινωνῶμεν, ὅτι μὴ πᾶσα ἀνάγκη, μηδὲ ἀναπιμπλώμεθα τῆς τούτου φύσεως, ἀλλὰ καθαρεύωμεν ἀπ' αὐτοῦ, ἕως ἂν ὁ θεὸς αὐτὸς ἀπολύσῃ ἡμᾶς· καὶ οὕτω μὲν καθαροὶ ἀπαλλαττόμενοι τῆς τοῦ σώματος ἀφροσύνης, ὡς τὸ εἰκὸς μετὰ τοιούτων τε ἐσόμεθα καὶ γνωσόμεθα δι' ἡμῶν αὐτῶν πᾶν τὸ εἰλικρινές, τοῦτο δ' ἐστὶν ἴσως τὸ ἀληθές· μὴ καθαρῷ γὰρ καθαροῦ ἐφάπτεσθαι μὴ οὐ θεμιτὸν ᾖ.”
또한 우리가 그 안에서 살아가는 그 몸 안에서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보이기로는, 우리가 앎에 가장 가까이 있게 될 걸세, 만일 우리가 가능한 한 아무것도 육체와 함께하지 않고 또 공유하지 않는다면, 또한 그 육체의 본성으로 가득 차지 않고, 오히려 그것으로부터 정화된다면, 신께서 스스로 우리를 해방하실 때까지: 또한 그런 식으로 순수한 우리가 육체의 우매함으로부터 해방되어, 아마도 이러한 사람들과 더불어 있게 될 것이고 또 바로 우리 자신을 통해 모든 순수한 것들을 알게 될 것 같네만, 그건 진리일 것 같군: 왜냐하면 순수한 것에 도달한다는 것은 순수하지 못한 자에게는 도무지 될 법한 일이 아닐 테니까."
[Stephanus page 67, section b, line 3] τοιαῦτα οἶμαι, ὦ Σιμμία, ἀναγκαῖον εἶναι πρὸς ἀλλήλους λέγειν τε καὶ δοξάζειν πάντας τοὺς ὀρθῶς φιλομαθεῖς. ἢ οὐ δοκεῖ σοι οὕτως;
심미아스, 나는 올바르게 배움을 사랑하는 자들 모두가 이런 것들을 서로에게 말하고 또한 믿는다는 게 필연적인 일이라 생각한다네. 아니면 자네에게는 그렇게 보이질 않는가?
Παντός γε μᾶλλον, ὦ Σώκρατες.
더할 나위 없이 그리 보입니다, 소크라테스.
Οὐκοῦν, ἔφη ὁ Σωκράτης, εἰ ταῦτα ἀληθῆ, ὦ ἑταῖρε, πολλὴ ἐλπὶς ἀφικομένῳ οἷ ἐγὼ πορεύομαι, ἐκεῖ ἱκανῶς, εἴπερ που ἄλλοθι, κτήσασθαι τοῦτο οὗ ἕνεκα ἡ πολλὴ πραγματεία ἡμῖν ἐν τῷ παρελθόντι βίῳ γέγονεν, ὥστε ἥ γε ἀποδημία ἡ νῦν μοι προστεταγμένη μετὰ ἀγαθῆς ἐλπίδος γίγνεται καὶ ἄλλῳ ἀνδρὶ ὃς ἡγεῖταί οἱ παρεσκευάσθαι τὴν [Stephanus page 67, section c, line 3] διάνοιαν ὥσπερ κεκαθαρμένην.
그렇다면, 소크라테스께서 말씀하셨지, 만일 이런 것들이 참이라면, 친구, 내가 그리로 가고 있는 그 곳에 이른 자에게 많은 희망이, 저곳에 충분하지, 만일 정말로 어떤 다른 곳이 있다면 말이네만, 그를 위해 우리에게 지난 삶에 많은 과업이 생겼던 바로 그것을 얻을 희망이 말일세, 그래서 지금 나에게 명해진 바로 그 이주가 긍정적인 희망과 함께 하게 되고 자신에게 마치 정화된 것과 같은 그 사유가 준비되어 있다고 믿는 다른 자에게도 그러하네.
ἀφικομένῳ : ἀφικνέομαι aor. part. arrive at.
προστεταγμένη : προστάσσω pf. mp. command, order.
παρεσκευάσθαι : παρασκευάζω pf. mp. inf. get ready, prepare.
Πάνυ μὲν οὖν, ἔφη ὁ Σιμμίας.
물론입니다, 심미아스가 말했네.
Κάθαρσις δὲ εἶναι ἆρα οὐ τοῦτο συμβαίνει, ὅπερ πάλαι ἐν τῷ λόγῳ λέγεται, τὸ χωρίζειν ὅτι μάλιστα ἀπὸ τοῦ σώματος τὴν ψυχὴν καὶ ἐθίσαι αὐτὴν καθ' αὑτὴν πανταχόθεν ἐκ τοῦ σώματος συναγείρεσθαί τε καὶ ἁθροίζεσθαι, καὶ οἰκεῖν κατὰ τὸ δυνατὸν καὶ ἐν τῷ νῦν παρόντι καὶ ἐν τῷ ἔπειτα μόνην καθ' αὑτήν, ἐκλυομένην ὥσπερ [ἐκ] δεσμῶν ἐκ τοῦ σώματος;
그런데 혹시 정화는 이런 것이라고 귀결하지 않는가, 이전에 논의 속에서 이야기된 바로 그것, 가능한 한 육체로부터 영혼을 분리시키고 영혼이 그 자체에 따라 육체의 모든 곳으로부터 함께 모이고 합쳐지는 데에 익숙해지는 것, 또한 가능한대로 지금 당장에도 또한 이후에도 오직 그 자체에 따라서만 사는 것 말일세, 마치 그 영혼이 사슬로부터 풀려나듯 육체로부터 풀려남으로써 말이지.
ἐθίσαι : ἐθίζω aor. inf. accustom.
Πάνυ μὲν οὖν, ἔφη.
물론입니다, 그가 말했네.
[Stephanus page 67, section d, line 4] Οὐκοῦν τοῦτό γε θάνατος ὀνομάζεται, λύσις καὶ χωρισμὸς ψυχῆς ἀπὸ σώματος;
그렇다면 육체로부터 영혼의 해방과 독립, 바로 그것이 죽음이라 일컬어지는 게 아닌가?
Παντάπασί γε, ἦ δ' ὅς.
그야말로 전적으로 그러합니다, 그가 말했네.
Λύειν δέ γε αὐτήν, ὥς φαμεν, προθυμοῦνται ἀεὶ μάλιστα καὶ μόνοι οἱ φιλοσοφοῦντες ὀρθῶς, καὶ τὸ μελέτημα αὐτὸ τοῦτό ἐστιν τῶν φιλοσόφων, λύσις καὶ χωρισμὸς ψυχῆς ἀπὸ σώματος· ἢ οὔ;
그런데 바로 그 영혼의 해방을, 우리가 말하는 것처럼, 또 오직 올바르게 지혜를 사랑하는 자들만이 언제나 가장 열망하고, 바로 이런 것이 지혜를 사랑하는 자들의 수행이네, 육체로부터 영혼의 해방과 독립 말일세: 아니 그런가?
μελέτημα : practice, exercise.
Φαίνεται.
그리 보입니다.
Οὐκοῦν, ὅπερ ἐν ἀρχῇ ἔλεγον, γελοῖον ἂν εἴη ἄνδρα παρασκευάζονθ' ἑαυτὸν ἐν τῷ βίῳ ὅτι ἐγγυτάτω ὄντα τοῦ [Stephanus page 67, section e, line 2] τεθνάναι οὕτω ζῆν, κἄπειθ' ἥκοντος αὐτῷ τούτου ἀγανακτεῖν;
그렇다면, 처음에 내가 말했던 바대로, 생에서 가능한 한 그 자신이 죽음에 가장 가깝도록 그런 식으로 그 자신의 삶을 준비한 사람이, 이후 그 자신에게 그 일이 일어나자 벌벌 떤다는 건 우스운 일이 아니겠는가?
ἀγανακτεῖν : ἀγανακτέω inf. shudder.
Γελοῖον· πῶς δ' οὔ;
우스운 일이지요: 어찌 아니겠습니까?
Τῷ ὄντι ἄρα, ἔφη, ὦ Σιμμία, οἱ ὀρθῶς φιλοσοφοῦντες ἀποθνῄσκειν μελετῶσι, καὶ τὸ τεθνάναι ἥκιστα αὐτοῖς ἀνθρώπων φοβερόν. ἐκ τῶνδε δὲ σκόπει. εἰ γὰρ διαβέβληνται μὲν πανταχῇ τῷ σώματι, αὐτὴν δὲ καθ' αὑτὴν ἐπιθυμοῦσι τὴν ψυχὴν ἔχειν, τούτου δὲ γιγνομένου εἰ φοβοῖντο καὶ ἀγανακτοῖεν, οὐ πολλὴ ἂν ἀλογία εἴη, εἰ μὴ ἅσμενοι ἐκεῖσε ἴοιεν, οἷ ἀφικομένοις ἐλπίς ἐστιν οὗ διὰ βίου ἤρων τυχεῖν - ἤρων δὲ φρονήσεως - ᾧ τε διεβέβληντο, τούτου [Stephanus page 68, section a, line 3] ἀπηλλάχθαι συνόντος αὐτοῖς;
그래서 실로, 그 분께서 말씀하셨네, 심미아스, 올바르게 지혜를 사랑하는 자들은 죽어 버리는 일을 훈련하고, 죽음도 사람들 중 그들에게 가장 덜 무서운 일일세. 이런 자들을 통해 검토해 보게. 왜냐하면 만일 그들이 모든 면에서 육체에는 반목되어 있는 반면, 영혼을 영혼 그 자체로 지니는 일은 열망한다면, 그런데 이 일이 이루어질 때 만일 두려워하고 또한 벌벌 떤다면, 너무나 말도 안 되는 일 아니겠나, 만일 저곳으로 기꺼이 나아가려 하지 않는다면 말일세, 그곳에 당도한 자들에게 생애를 통해 사랑해 오던 것과 마주칠 희망이 있는 곳으로 - 헌데 그들은 현명함을 바라고 있었지 - 또한 그들이 반목했던 것, 그들과 함께 있던 그것으로부터 해방될 희망이 있는 곳으로 말이네?
διαβέβληνται : διαβάλλω pf. mp. to be at variance with. to be filled with suspicion and resentment against another.
ἢ ἀνθρωπίνων μὲν παιδικῶν καὶ γυναικῶν καὶ ὑέων ἀποθανόντων πολλοὶ δὴ ἑκόντες ἠθέλησαν εἰς Ἅιδου μετελθεῖν, ὑπὸ ταύτης ἀγόμενοι τῆς ἐλπίδος, τῆς τοῦ ὄψεσθαί τε ἐκεῖ ὧν ἐπεθύμουν καὶ συνέσεσθαι· φρονήσεως δὲ ἄρα τις τῷ ὄντι ἐρῶν, καὶ λαβὼν σφόδρα τὴν αὐτὴν ταύτην ἐλπίδα, μηδαμοῦ ἄλλοθι ἐντεύξεσθαι αὐτῇ ἀξίως λόγου ἢ ἐν Ἅιδου, ἀγανακτήσει τε ἀποθνῄσκων καὶ οὐχ ἅσμενος εἶσιν αὐτόσε;
또는 인간에 속하는 사랑하는 소년들과 여인들 그리고 자식들이 죽어 버릴 때 많은 이들이 실로 자발적으로 하이데스로 따라 가기를 바랐지, 이와 같은 희망에 이끌려서, 저 곳에서 그들의 열망하던 사람들을 보게 되고 또 함께 하게 되리라는 희망 말일세: 그런데 혹시 누가 정말로 현명함을 사랑하면서, 또한 바로 그와 같은 희망을 열렬히 품고서, 하이데스 말고는 결코 다른 어떤 곳에서도 그 현명함과 이렇다 하게 만나지 못하리란 희망을 품고서, 그가 죽을 때 벌벌 떨고 바로 그곳으로 기꺼이 나아가려고는 하지 않는가?
οἴεσθαί γε χρή, ἐὰν τῷ ὄντι γε ᾖ, ὦ ἑταῖρε, φιλόσοφος· σφόδρα γὰρ αὐτῷ ταῦτα δόξει, μηδαμοῦ ἄλλοθι καθαρῶς ἐντεύξεσθαι φρονήσει ἀλλ' ἢ ἐκεῖ. [Stephanus page 68, section b, line 5] εἰ δὲ τοῦτο οὕτως ἔχει, ὅπερ ἄρτι ἔλεγον, οὐ πολλὴ ἂν ἀλογία εἴη εἰ φοβοῖτο τὸν θάνατον ὁ τοιοῦτος;
적어도, 만일 정말로 지혜를 사랑하는 자라면, 친구, 나아간다고 생각되어야 하네: 왜냐하면 그 자는 이런 것들을 열렬히 믿을 테니 말이네, 저 곳에서가 아니라면 결코 그 어떤 곳에서도 분명하게 현명함과 마주칠 수 없으리라는 것이지. 그런데 만일 사정이 이러하다면, 방금 내가 말하고 있던 바대로, 이러한 자가 죽음을 두려워 한다면 너무나 말도 안 되는 일 아니겠나?
Πολλὴ μέντοι νὴ Δία, ἦ δ' ὅς.
제우스께 맹세코 지극히 이상한 일이지요, 그가 말했네.
Οὐκοῦν ἱκανόν σοι τεκμήριον, ἔφη, τοῦτο ἀνδρός, ὃν ἂν ἴδῃς ἀγανακτοῦντα μέλλοντα ἀποθανεῖσθαι, ὅτι οὐκ ἄρ' ἦν φιλόσοφος ἀλλά τις φιλοσώματος; ὁ αὐτὸς δέ που οὗτος τυγχάνει ὢν καὶ φιλοχρήματος καὶ φιλότιμος, ἤτοι τὰ ἕτερα τούτων ἢ ἀμφότερα.
그 분께서 말씀하셨네, 그렇다면 자네에겐 충분한 증거가 되지 않겠는가, 사람에 대해 이런 점이 말일세, 만일 장차 죽게 되리란 것에 몸서리를 치는 자를 자네가 본다면, 그는 지혜를 사랑하는 자가 아니라 육체를 사랑하는 어떤 자였다는 사실 말이지?
Πάνυ, ἔφη, ἔχει οὕτως ὡς λέγεις.
물론입니다, 그가 말했네,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Ἆρ' οὖν, ἔφη, ὦ Σιμμία, οὐ καὶ ἡ ὀνομαζομένη ἀνδρεία [Stephanus page 68, section c, line 6] τοῖς οὕτω διακειμένοις μάλιστα προσήκει;
그 분께서 말씀하셨네, 그렇다면 혹시, 심미아스, 용기라 일컬어지는 것도 그런 상황인 자들에게 그 무엇보다 적절하지 않겠는가?
διακειμένοις : διάκειμαι part.
Πάντως δήπου, ἔφη.
전적으로 분명합니다, 그가 말했네.
Οὐκοῦν καὶ ἡ σωφροσύνη, ἣν καὶ οἱ πολλοὶ ὀνομάζουσι σωφροσύνην, τὸ περὶ τὰς ἐπιθυμίας μὴ ἐπτοῆσθαι ἀλλ' ὀλιγώρως ἔχειν καὶ κοσμίως, ἆρ' οὐ τούτοις μόνοις προσήκει, τοῖς μάλιστα τοῦ σώματος ὀλιγωροῦσίν τε καὶ ἐν φιλοσοφίᾳ ζῶσιν;
그렇다면 현명함도, 많은 사람들이 또한 현명함이라 이르는 그것이, 열망들에 관하여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가벼이 여기고 조화로운 상태에 있는 것으로서, 혹시 오직 이러한 자들에게만 적절한 것 아니겠나, 무엇보다도 육체를 가벼이 여기고 또한 지혜 속에서 살아가는 자들에게 말일세?
ἐπτοῆσθαι : πτοέω aor. mp. inf. terrify, scare.
Ἀνάγκη, ἔφη.
필연적입니다, 그가 말했네.
Εἰ γὰρ ἐθέλεις, ἦ δ' ὅς, ἐννοῆσαι τήν γε τῶν ἄλλων ἀνδρείαν τε καὶ σωφροσύνην, δόξει σοι εἶναι ἄτοπος.
그야 만일 자네가, 그 분께서 말씀하셨네, 다른 사람들의 용기와 현명함을 고려해 보고자 한다면, 자네에게는 그게 이상하다 여겨질 테니까.
[Stephanus page 68, section d, line 4] Πῶς δή, ὦ Σώκρατες;
어떻게 말씀이십니까, 소크라테스?
Οἶσθα, ἦ δ' ὅς, ὅτι τὸν θάνατον ἡγοῦνται πάντες οἱ ἄλλοι τῶν μεγάλων κακῶν;
그 분께서 말씀하셨네, 자네 다른 모든 이들이 대단히 좋지 못한 것들에 죽음이 속한다 믿는다는 걸 알고 있는가?
Καὶ μάλ', ἔφη.
물론이죠, 그가 말했네.
Οὐκοῦν φόβῳ μειζόνων κακῶν ὑπομένουσιν αὐτῶν οἱ ἀνδρεῖοι τὸν θάνατον, ὅταν ὑπομένωσιν;
그렇다면 더욱 좋지 못한 것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들 중 용감한 자들이 죽음을 견디는 게 아니겠나, 그들이 견뎌낼 때 말일세?
Ἔστι ταῦτα.
그렇습니다.
Τῷ δεδιέναι ἄρα καὶ δέει ἀνδρεῖοί εἰσι πάντες πλὴν οἱ φιλόσοφοι· καίτοι ἄλογόν γε δέει τινὰ καὶ δειλίᾳ ἀνδρεῖον εἶναι.
그래서 지혜를 사랑하는 자들 외에는 두려워 함으로써 또한 두려움을 가지고 그 모두가 용감한 자들인 것이지: 더구나 누군가 두려움과 겁을 가지고 용감한 자라는 것은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것이고.
[Stephanus page 68, section e, line 1] Πάνυ μὲν οὖν.
물론입니다.
Τί δὲ οἱ κόσμιοι αὐτῶν; οὐ ταὐτὸν τοῦτο πεπόνθασιν· ἀκολασίᾳ τινὶ σώφρονές εἰσιν; καίτοι φαμέν γε ἀδύνατον εἶναι, ἀλλ' ὅμως αὐτοῖς συμβαίνει τούτῳ ὅμοιον τὸ πάθος τὸ περὶ ταύτην τὴν εὐήθη σωφροσύνην· φοβούμενοι γὰρ ἑτέρων ἡδονῶν στερηθῆναι καὶ ἐπιθυμοῦντες ἐκείνων, ἄλλων ἀπέχονται ὑπ' ἄλλων κρατούμενοι. καίτοι καλοῦσί γε ἀκολασίαν τὸ ὑπὸ τῶν ἡδονῶν ἄρχεσθαι, ἀλλ' ὅμως συμβαίνει αὐτοῖς κρατουμένοις ὑφ' ἡδονῶν κρατεῖν ἄλλων ἡδονῶν. [Stephanus page 69, section a, line 3] τοῦτο δ' ὅμοιόν ἐστιν ᾧ νυνδὴ ἐλέγετο, τῷ τρόπον τινὰ δι' ἀκολασίαν αὐτοὺς σεσωφρονίσθαι.
그런데 그들 중에 조화로운 자들은 어떠한가? 그들은 이와 똑같은 일을 겪지 않는가: 어떤 방종으로써 현명한 자들이지 않은가? 우리야 불가능하다고 말하지만, 마찬가지로 그들에게도 그런 단순한 현명함과 관련한 이와 유사한 경험이 따르지: 왜냐하면 다른 쾌락들을 빼앗기는 일을 두려워 하면서도 저것들을 열망하면서, 다른 것들에 의해 지배받아 또 다른 것들로부터 멀리 있으니까. 쾌락들에 의한 피지배를 방종이라 부르긴 하지만, 마찬가지로 쾌락들에 의해 지배받는 그 자들에게도 다른 쾌락들에 대한 지배가 따르지. 그런데 이 일은 방금 이야기되던 것과 유사한 일일세, 그러니까 어떤 방식에서 방종으로 인해 그들 자신들이 현명해진다는 일 말이네.
πεπόνθασιν : πάσχω pf.
ἀκολασίᾳ : licentiousness, intemperance.
στερηθῆναι : στερέω aor. pass. inf. deprive, bereave.

-蟲-

저작자 표시
Posted by 버러지

Trackback Address :: http://oistros.tistory.com/trackback/779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Stephanus page 476, section a, line 3] Καὶ τοῦτο.
그 또한 그렇습니다.
Καὶ περὶ δὴ δικαίου καὶ ἀδίκου καὶ ἀγαθοῦ καὶ κακοῦ καὶ πάντων τῶν εἰδῶν πέρι ὁ αὐτὸς λόγος, αὐτὸ μὲν ἓν ἕκαστον εἶναι, τῇ δὲ τῶν πράξεων καὶ σωμάτων καὶ ἀλλήλων κοινωνίᾳ πανταχοῦ φανταζόμενα πολλὰ φαίνεσθαι ἕκαστον.
그럼 정의와 부정의 그리고 선과 악에 관하여서도 또한 다른 모든 종류의 것들에 관해서도 동일한 설명이 있는데, 그 자체로는 각각 하나이지만, 그 실천들과 실물들 그리고 상호의 공유로써 모든 곳에서 많은 상들이 각각의 것으로 보인다는 것일세.
Ὀρθῶς, ἔφη, λέγεις.
맞는 말씀이십니다, 그가 말했네.
Ταύτῃ τοίνυν, ἦν δ' ἐγώ, διαιρῶ, χωρὶς μὲν οὓς νυνδὴ ἔλεγες φιλοθεάμονάς τε καὶ φιλοτέχνους καὶ πρακτικούς, καὶ χωρὶς αὖ περὶ ὧν ὁ λόγος, οὓς μόνους ἄν τις ὀρθῶς προσείποι φιλοσόφους.
그러니까 같은 방식으로, 내가 말했네, 나는 구분하네, 한편으로는 따로 지금 자네가 구경을 좋아하는 자들이자 기술을 좋아하는 자들 그리고 실천적인 자들을, 또 다른 한편으로는 따로 이번에는 그들에 관하여 논의가 있는, 누군가가 오직 그들만을 옳게 지혜를 사랑하는 자들이라 부를 그런 자들을 말이지.
[Stephanus page 476, section b, line 3]Πῶς, ἔφη, λέγεις;
어찌 하시는 말씀이십니까? 그가 말했네.
Οἱ μέν που, ἦν δ' ἐγώ, φιλήκοοι καὶ φιλοθεάμονες τάς τε καλὰς φωνὰς ἀσπάζονται καὶ χρόας καὶ σχήματα καὶ πάντα τὰ ἐκ τῶν τοιούτων δημιουργούμενα, αὐτοῦ δὲ τοῦ καλοῦ ἀδύνατος αὐτῶν ἡ διάνοια τὴν φύσιν ἰδεῖν τε καὶ ἀσπάσασθαι.
내가 말했지, 듣기를 좋아하는 자들과 구경을 좋아하는 자들은 아름다운 소리들을 반기고 또 그런 색들과 모양들 또한 이런 것들을 통해 빚어진 온갖 것들을 반기지만, 아름다움 그 자체에 대해서는 그들의 판단이 본성상 볼 수도 반길 수도 없지.
Ἔχει γὰρ οὖν δή, ἔφη, οὕτως.
그야 사정이 그러하니까요, 그가 말했네.
Οἱ δὲ δὴ ἐπ' αὐτὸ τὸ καλὸν δυνατοὶ ἰέναι τε καὶ ὁρᾶν καθ' αὑτὸ ἆρα οὐ σπάνιοι ἂν εἶεν;
그런데 정말로 아름다움 그 자체를 향해 나아가고 또 그 자체에 관하여 볼 수 있는 자들은 그래서 드문 자들이지 않겠나?
[Stephanus page 476, section c, line 1]Καὶ μάλα.
무척이나 그렇습니다.
Ὁ οὖν καλὰ μὲν πράγματα νομίζων, αὐτὸ δὲ κάλλος μήτε νομίζων μήτε, ἄν τις ἡγῆται ἐπὶ τὴν γνῶσιν αὐτοῦ, δυνάμενος ἕπεσθαι, ὄναρ ἢ ὕπαρ δοκεῖ σοι ζῆν; σκόπει δέ. τὸ ὀνειρώττειν ἆρα οὐ τόδε ἐστίν, ἐάντε ἐν ὕπνῳ τις ἐάντ' ἐγρηγορὼς τὸ ὅμοιόν τῳ μὴ ὅμοιον ἀλλ' αὐτὸ ἡγῆται εἶναι ᾧ ἔοικεν;
그러므로 아름다운 사물들을 생각하는 자, 바로 그 자가 아름다움 자체는 생각하지 않고, 누군가 그에 대한 앎을 향해 인도할지라도, 따를 수 없는 자일 때, 자네에게는 그가 잠들어 산다고 여겨지는가 아니면 깬 채로 산다고 여겨지는가? 그러나 살펴 보게. 혹시 꿈을 꾼다는 것은 이런 것 아닌가, 누군가 잠들어서든 깨어서든 어떤 것과 닮은 것을 닮은 것이 아니라 그것이 닮은 바로 그것 자체라고 믿는다면 그럴 때 말이네만?
Ἐγὼ γοῦν ἄν, ἦ δ' ὅς, φαίην ὀνειρώττειν τὸν τοιοῦτον.
그러니까 저로서는, 그가 말했네, 그러한 것이 꿈을 꾼다는 것이라 말할 것입니다.
Τί δέ; ὁ τἀναντία τούτων ἡγούμενός τέ τι αὐτὸ καλὸν καὶ δυνάμενος καθορᾶν καὶ αὐτὸ καὶ τὰ ἐκείνου μετέχοντα[Stephanus page 476, section d, line 2], καὶ οὔτε τὰ μετέχοντα αὐτὸ οὔτε αὐτὸ τὰ μετέχοντα ἡγούμενος, ὕπαρ ἢ ὄναρ αὖ καὶ οὗτος δοκεῖ σοι ζῆν;
그런데 어떤가? 이러한 자들과 반대로 어떤 아름다움 자체를 믿고 그 자체와 저것에 참여하는 것들까지 파악할 수 있는 자, 참여하는 것들을 그 자체인 것으로도 그 자체인 것을 참여하는 것들로도 믿지 않는 자, 그런 자가 자네에게는 깬 채로 사는 것으로 여겨지는가 잠든 채로 사는 걸로 여겨지는가?
Καὶ μάλα, ἔφη, ὕπαρ.
더할 나위 없이 깨어 있는 채로입니다, 그가 말했네.
Οὐκοῦν τούτου μὲν τὴν διάνοιαν ὡς γιγνώσκοντος γνώμην ἂν ὀρθῶς φαῖμεν εἶναι, τοῦ δὲ δόξαν ὡς δοξάζοντος;
그렇다면 이런 자의 판단은 아는 자에 속하는 것으로서 우리가 앎이라고 옳게 말할 테고, 다른 자의 판단은 사견을 갖는 자에 속하는 것으로서 사견이라 옳게 말하지 않겠는가?
Πάνυ μὲν οὖν.
물론입니다.
Τί οὖν ἐὰν ἡμῖν χαλεπαίνῃ οὗτος, ὅν φαμεν δοξάζειν ἀλλ' οὐ γιγνώσκειν, καὶ ἀμφισβητῇ ὡς οὐκ ἀληθῆ λέγομεν; ἕξομέν τι παραμυθεῖσθαι αὐτὸν καὶ πείθειν ἠρέμα, ἐπικρυπτόμενοι ὅτι οὐχ ὑγιαίνει;
그럼 그런 자가 우리에게 역정을 낸다면, 우리가 사견을 가지지만 알지 못한다고 말한 그가 말일세, 그리고 우리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반대한다면 어쩌겠는가? 우리가 그를 얼마간 달래고 점잖게 설득할 수 있겠는가, 그가 건전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숨기면서 말일세?
[Stephanus page 476, section e, line 3] Δεῖ γέ τοι δή, ἔφη.
적어도 정말 그래야 하긴 합니다, 그가 말했네.
Ἴθι δή, σκόπει τί ἐροῦμεν πρὸς αὐτόν. ἢ βούλει ὧδε πυνθανώμεθα παρ' αὐτοῦ, λέγοντες ὡς εἴ τι οἶδεν οὐδεὶς αὐτῷ φθόνος, ἀλλ' ἅσμενοι ἂν ἴδοιμεν εἰδότα τι. ἀλλ' ἡμῖν εἰπὲ τόδε· ὁ γιγνώσκων γιγνώσκει τὶ ἢ οὐδέν; σὺ οὖν μοι ὑπὲρ ἐκείνου ἀποκρίνου.
자, 우리가 그에게 뭐라 말할지 살펴 보게. 혹은 우리가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은 식으로 물어 듣기를 바라는가, 만일 그가 뭔가 안다면 우리는 그 누구도 그에게 시기를 하는 게 아니라, 기꺼이 뭔가 아는 사람을 볼 사람들이라고 말하면서 말일세. "그러나 우리에게 당신이 이점을 말해 주시오: 아는 자는 뭔가를 압니까 아니면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까?" 그러면 자네가 내게 저 사람 대신 대답해 주게.
Ἀποκρινοῦμαι, ἔφη, ὅτι γιγνώσκει τί.
그가 말했네, 저는 그가 뭔가를 안다고 대답합니다.
Πότερον ὂν ἢ οὐκ ὄν;
그는 있는 것을 아는가 아니면 있지 않은 것을 아는가?
Ὄν· πῶς γὰρ ἂν μὴ ὄν γέ τι γνωσθείη;
있는 것을요: 그야 어찌 적어도 있지 않은 뭔가가 알려지겠습니까?
Ἱκανῶς οὖν τοῦτο ἔχομεν, κἂν εἰ πλεοναχῇ σκοποῖμεν, [Stephanus page 477, section a, line 3] ὅτι τὸ μὲν παντελῶς ὂν παντελῶς γνωστόν, μὴ ὂν δὲ μηδαμῇ πάντῃ ἄγνωστον;
그러니 우리 이 점을 충분히 이해하겠지, 우리가 여러 측면에서 검토해도, 완전히 있는 것은 완전히 알려지는 것이지만, 전혀 있지 않음은 어떤 방식으로도 알려지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Ἱκανώτατα.
무엇보다도 충분히 이해할 겁니다.
Εἶεν· εἰ δὲ δή τι οὕτως ἔχει ὡς εἶναί τε καὶ μὴ εἶναι, οὐ μεταξὺ ἂν κέοιτο τοῦ εἰλικρινῶς ὄντος καὶ τοῦ αὖ μηδαμῇ ὄντος;
좋네: 그런데 만일 뭔가가 있기도 하고 있지 않기도 한 그런 상태라면, 순수하게 있는 것과 또 어떤 식으로도 있지 않은 것의 중간에 놓이지 않겠는가?
Μεταξύ.
중간에 놓입니다.
Οὐκοῦν ἐπὶ μὲν τῷ ὄντι γνῶσις ἦν, ἀγνωσία δ' ἐξ ἀνάγκης ἐπὶ μὴ ὄντι, ἐπὶ δὲ τῷ μεταξὺ τούτῳ μεταξύ τι καὶ ζητητέον ἀγνοίας τε καὶ ἐπιστήμης, εἴ τι τυγχάνει ὂν τοιοῦτον;
그렇다면 있는 것에는 앎이 있지만, 무지는 필연적으로 있지 않음에 있고, 그 중간인 이것에는 무지와 앎의 중간인 뭔가가 또한 추구되어야 하는 것이지 않은가, 만일 이런 뭔가가 있다면 말일세?
Πάνυ μὲν οὖν.
물론입니다.
[Stephanus page 477, section b, line 3] Ἆρ' οὖν λέγομέν τι δόξαν εἶναι;
그럼 혹시 우리는 어떤 사견이 있다고 말하는가?
Πῶς γὰρ οὔ;
어찌 아니겠습니까?
Πότερον ἄλλην δύναμιν ἐπιστήμης ἢ τὴν αὐτήν;
그건 앎과 다른 힘인가 아니면 같은 힘인가?
Ἄλλην.
다른 것이죠.
Ἐπ' ἄλλῳ ἄρα τέτακται δόξα καὶ ἐπ' ἄλλῳ ἐπιστήμη, κατὰ τὴν δύναμιν ἑκατέρα τὴν αὑτῆς.
그래서 어떤 것에는 사견이 그리고 또 다른 것에는 앎이 배치되었네, 그 자체에 속하는 각각의 능력에 따라서 말일세.
Οὕτω.
그렇습니다.
Οὐκοῦν ἐπιστήμη μὲν ἐπὶ τῷ ὄντι πέφυκε, γνῶναι ὡς ἔστι τὸ ὄν; - μᾶλλον δὲ ὧδέ μοι δοκεῖ πρότερον ἀναγκαῖον εἶναι διελέσθαι.
그러니 앎은 본성상 있는 것에 대한 것이지 않은가, 있는 것이 있다고 알도록 말일세? - 더 나아가 내게는 그보다 앞서 이런 식으로 나누는 일이 필연적이라고 여겨지네.
[Stephanus page 477, section b, line 13] Πῶς;
어떻게요?
Φήσομεν δυνάμεις εἶναι γένος τι τῶν ὄντων, αἷς δὴ καὶ ἡμεῖς δυνάμεθα ἃ δυνάμεθα καὶ ἄλλο πᾶν ὅτι περ ἂν δύνηται, οἷον λέγω ὄψιν καὶ ἀκοὴν τῶν δυνάμεων εἶναι, εἰ ἄρα μανθάνεις ὃ βούλομαι λέγειν τὸ εἶδος.
우리는 능력들이 있는 것들 중의 어떤 부류라고 말할 것이네, 더욱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과 또한 그것이 뭐가 되었든 가능한 그 모든 다른 일까지 바로 우리가 그 능력들로써 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나는 시각과 청각이 그 능력들에 속한다고 말한다네, 혹시 자네가 내가 말하려 하는 그 형상(종류)을 이해한다면 말일세.
Ἀλλὰ μανθάνω, ἔφη.
이해합니다, 그가 말했네.
Ἄκουσον δὴ ὅ μοι φαίνεται περὶ αὐτῶν. δυνάμεως γὰρ ἐγὼ οὔτε τινὰ χρόαν ὁρῶ οὔτε σχῆμα οὔτε τι τῶν τοιούτων οἷον καὶ ἄλλων πολλῶν, πρὸς ἃ ἀποβλέπων ἔνια διορίζομαι παρ' ἐμαυτῷ τὰ μὲν ἄλλα εἶναι, τὰ δὲ ἄλλα· δυνάμεως [Stephanus page 477, section d, line 1] δ' εἰς ἐκεῖνο μόνον βλέπω ἐφ' ᾧ τε ἔστι καὶ ὃ ἀπεργάζεται, καὶ ταύτῃ ἑκάστην αὐτῶν δύναμιν ἐκάλεσα, καὶ τὴν μὲν ἐπὶ τῷ αὐτῷ τεταγμένην καὶ τὸ αὐτὸ ἀπεργαζομένην τὴν αὐτὴν καλῶ, τὴν δὲ ἐπὶ ἑτέρῳ καὶ ἕτερον ἀπεργαζομένην ἄλλην. τί δὲ σύ; πῶς ποιεῖς;
그럼 그것들과 관련해 내게 보이는 바를 들어 보게. 왜냐하면 나는 능력의 어떤 색도 형태도 이런 것들에 속하는 어떤 것도 보는 것이 아니고 말하자면 다른 많은 것들의 그런 것도 보는 것이 아닐세, 내가 그것들에 주목하여 몇몇 것들을 내 스스로 그 일부는 어떤 것들이고 다른 것들은 또 다른 것들이라고 정의하는데, 능력에 대해서는 저것 그러니까 그것이 그에 대한 것인 바의 것이자 그것이 해내는 것인 그것만을 보고, 또 같은 방식으로 그것들 각각을 능력이라 불렀으며, 같은 것에 대해 행하고 같은 것을 해내는 능력을 같은 능력으로 부르며, 다른 것에 대해 그리고 다른 것을 해내는 능력은 다른 것으로 부르니까. 그런데 자네는 어떤가? 자네는 어찌 하는가?
Οὕτως, ἔφη.
그런 식으로요, 그가 말했네.
Δεῦρο δὴ πάλιν, ἦν δ' ἐγώ, ὦ ἄριστε. ἐπιστήμην πότερον δύναμίν τινα φῂς εἶναι αὐτήν, ἢ εἰς τί γένος τιθεῖς;
내가 말했네, 그럼 다시 돌아오게, 훌륭한 친구. 자네는 앎을 두고 그것이 어떤 능력이라고 말하겠나, 아니면 어떤 부류에 두겠는가?
Εἰς τοῦτο, ἔφη, πασῶν γε δυνάμεων ἐρρωμενεστάτην.
이런 것으로 둡니다, 그가 말했네, 모든 능력들 중에서도 가장 강한 능력으로요.
Τί δέ, δόξαν εἰς δύναμιν ἢ εἰς ἄλλο εἶδος οἴσομεν;
그럼 어떤가, 사견을 능력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할까 아니면 다른 종류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할까?
[Stephanus page 477, section e, line 2] Οὐδαμῶς, ἔφη· ᾧ γὰρ δοξάζειν δυνάμεθα, οὐκ ἄλλο τι ἢ δόξα ἐστίν.
결코 다른 종류에 속하지 않습니다, 그가 말했네: 왜냐하면 그로써 우리가 사견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사견이니까요.
Ἀλλὰ μὲν δὴ ὀλίγον γε πρότερον ὡμολόγεις μὴ τὸ αὐτὸ εἶναι ἐπιστήμην τε καὶ δόξαν.
허나 정말 조금 전에 자네 앎과 사견이 같은 것은 아니라고 동의하였지.
Πῶς γὰρ ἄν, ἔφη, τό γε ἀναμάρτητον τῷ μὴ ἀναμαρτήτῳ ταὐτόν τις νοῦν ἔχων τιθείη;
그가 말했네, 그야 어떻게 오류 없는 것을 오류 없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누가 제정신으로 그리 두겠습니까?
Καλῶς, ἦν δ' ἐγώ, καὶ δῆλον ὅτι ἕτερον ἐπιστήμης δόξα ὁμολογεῖται ἡμῖν.
내가 말했네, 훌륭하네, 그리고 앎과 사견이 다르다고 우리에게 동의된 건 분명하지.
Ἕτερον.
다른 것이죠.
Ἐφ' ἑτέρῳ ἄρα ἕτερόν τι δυναμένη ἑκατέρα αὐτῶν [Stephanus page 478, section a, line 4] πέφυκεν;
그럼 그 둘 각각이 다른 뭔가를 할 수 있기에 본성상 다른 것에 관계하는가?
Ἀνάγκη.
필연적으로요.
Ἐπιστήμη μέν γέ που ἐπὶ τῷ ὄντι, τὸ ὂν γνῶναι ὡς ἔχει;
적어도 앎은 아마 있는 것에 관련하고, 있는 것을 그러하다고 아는 것이지?
Ναί.
네.
Δόξα δέ, φαμέν, δοξάζειν;
그런데 의견은, 우리가 의견을 가지는 것이라고 말했지?
Ναί.
네.
Ἦ ταὐτὸν ὅπερ ἐπιστήμη γιγνώσκει; καὶ ἔσται γνωστόν τε καὶ δοξαστὸν τὸ αὐτό; ἢ ἀδύνατον;
앎이 아는 바로 그것과 동일한 것인가 아닌가? 동일한 것이 알려질 수 있는 것이자 의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게 되겠는가? 아니면 이는 불가능한 일인가?
Ἀδύνατον, ἔφη, ἐκ τῶν ὡμολογημένων· εἴπερ ἐπ' ἄλλῳ ἄλλη δύναμις πέφυκεν, δυνάμεις δὲ ἀμφότεραί ἐστον, δόξα τε [Stephanus page 478, section b, line 1] καὶ ἐπιστήμη, ἄλλη δὲ ἑκατέρα, ὥς φαμεν, ἐκ τούτων δὴ οὐκ ἐγχωρεῖ γνωστὸν καὶ δοξαστὸν ταὐτὸν εἶναι.
그가 말했네, 불가능한 일입니다, 동의된 것들을 통해서 말입니다: 만일 정말로 다른 것에는 천상 다른 능력이 관련한다면, 그 양자의 능력들, 즉 의견과 앎은, 각기 다른 능력이고, 우리가 말했듯, 그래서 이런 일들을 통하여 동일한 것이 알려지는 것이자 의견의 대상이라는 건 허용되지 않습니다.
Οὐκοῦν εἰ τὸ ὂν γνωστόν, ἄλλο τι ἂν δοξαστὸν ἢ τὸ ὂν εἴη;
그럼 만일 있는 것이 앎의 대상이라면, 있는 것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이 의견의 대상이겠는가?
Ἄλλο.
다른 어떤 것이겠지요.
Ἆρ' οὖν τὸ μὴ ὂν δοξάζει; ἢ ἀδύνατον καὶ δοξάσαι τό γε μὴ ὄν; ἐννόει δέ. οὐχ ὁ δοξάζων ἐπὶ τὶ φέρει τὴν δόξαν; ἢ οἷόν τε αὖ δοξάζειν μέν, δοξάζειν δὲ μηδέν;
그렇다면 혹시 있지 않다면 그것에 대해 자네가 의견을 가지는가? 아니면 바로 그 있지 않은 것이라면 그것은 의견의 대상이 되는 것조차 불가능한 것인가? 그러나 생각해 보게. 의견을 가지는 자는 무언가를 향해 의견을 제시하지 않는가? 혹은 이번엔 의견을 가지면서도, 반면에 아무것도 아닌 의견을 가질 수 있는가?
Ἀδύνατον.
불가능합니다.
Ἀλλ' ἕν γέ τι δοξάζει ὁ δοξάζων;
허나 의견을 가지는 자는 바로 어떤 한 가지의 것을 의견의 대상으로 삼는가?
[Stephanus page 478, section b, line 11]Ναί.
네.
Ἀλλὰ μὴν μὴ ὄν γε οὐχ ἕν τι ἀλλὰ μηδὲν ὀρθότατ' ἂν προσαγορεύοιτο;
그러면 실로 다름 아닌 있지 않음은 어떤 한 가지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 무엇보다 옳게 불리는 일이겠지?
Πάνυ γε.
물론입니다.
Μὴ ὄντι μὴν ἄγνοιαν ἐξ ἀνάγκης ἀπέδομεν, ὄντι δὲ γνῶσιν;
실로 있지 않음에는 우리가 필연적으로 무지를 내어주고, 있음에는 앎을 내어준 것인가?
Ὀρθῶς, ἔφη.
맞습니다, 그가 말했네.
Οὐκ ἄρα ὂν οὐδὲ μὴ ὂν δοξάζει;
그런데 혹시 자네 있음도 있지 않음도 그에 대해 의견을 가지지 않는가?
Οὐ γάρ.
갖지 않으니까요.
Οὔτε ἄρα ἄγνοια οὔτε γνῶσις δόξα ἂν εἴη;
그럼 의견은 무지도 앎도 아니겠군?
[Stephanus page 478, section c, line 9] Οὐκ ἔοικεν.
아닌 것 같습니다.
Ἄρ' οὖν ἐκτὸς τούτων ἐστίν, ὑπερβαίνουσα ἢ γνῶσιν σαφηνείᾳ ἢ ἄγνοιαν ἀσαφείᾳ;
그렇다면 혹시 이런 것들 외에, 확실함으로는 앎을 불확실함으로는 무지를 능가하는 것인가?
Οὐδέτερα.
어느 쪽도 아닙니다.
Ἀλλ' ἆρα, ἦν δ' ἐγώ, γνώσεως μέν σοι φαίνεται δόξα σκοτωδέστερον, ἀγνοίας δὲ φανότερον;
그리고 내가 말했네, 그렇다면 혹시 자네에게 의견은 앎보다는 더 불분명한 것으로, 그러나 무지보다는 선명한 것으로 보이는가?
Καὶ πολύ γε, ἔφη.
네, 무척이나요, 그가 말했네.
Ἐντὸς δ' ἀμφοῖν κεῖται;
그러나 그 둘 안에 놓이고?
Ναί.
네.
Μεταξὺ ἄρα ἂν εἴη τούτοιν δόξα.
그럼 의견은 이 둘의 중간에 있겠군.
[Stephanus page 478, section d, line 4] Κομιδῇ μὲν οὖν.
정확히 그렇습니다.
Οὐκοῦν ἔφαμεν ἐν τοῖς πρόσθεν, εἴ τι φανείη οἷον ἅμα ὄν τε καὶ μὴ ὄν, τὸ τοιοῦτον μεταξὺ κεῖσθαι τοῦ εἰλικρινῶς ὄντος τε καὶ τοῦ πάντως μὴ ὄντος, καὶ οὔτε ἐπιστήμην οὔτε ἄγνοιαν ἐπ' αὐτῷ ἔσεσθαι, ἀλλὰ τὸ μεταξὺ αὖ φανὲν  ἀγνοίας καὶ ἐπιστήμης;
그렇다면 우리는 앞서 논의들 속에서, 만일 무언가가 말하자면 동시에 있으면서 없는 것으로 나타날 때, 이러한 것이 순수하게 있는 것과 전적으로 있지 않은 것 사이에 놓인다고, 그리고 앎도 무지도 그것에 관련하지 않을 것이나, 이 경우에는 무지와 앎의 중간인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 관련할 것이라 말하지 않았는가?
Ὀρθῶς.
맞습니다.
Νῦν δέ γε πέφανται μεταξὺ τούτοιν ὃ δὴ καλοῦμεν δόξαν;
그런데 이제는 우리가 실로 의견이라 부를 것이 이러한 것들의 중간에 나타났지?
Πέφανται.
그리 나타났습니다.
Ἐκεῖνο δὴ λείποιτ' ἂν ἡμῖν εὑρεῖν, ὡς ἔοικε, τὸ ἀμφοτέρων [Stephanus page 478, section e, line 2] μετέχον, τοῦ εἶναί τε καὶ μὴ εἶναι, καὶ οὐδέτερον εἰλικρινὲς ὀρθῶς ἂν προσαγορευόμενον, ἵνα, ἐὰν φανῇ, δοξαστὸν αὐτὸ εἶναι ἐν δίκῃ προσαγορεύωμεν, τοῖς μὲν ἄκροις τὰ ἄκρα, τοῖς δὲ μεταξὺ τὰ μεταξὺ ἀποδιδόντες. ἢ οὐχ οὕτως;
그럼 우리가 찾을 것으로 저러한 것이 남은 듯하네, 그 양자에 참여하는 것, 즉 있음과 있지 않음에 참여하는 것이자, 둘 중 어느 쪽으로도 순수하게 그러한 것으로 불려서는 옳게 불리지 못할 것 말이네, 만일 그런 것이 나타난다면, 그것을 의견의 대상이라고 적법하게 우리가 부를 수 있도록 말이지, 극단의 것들에는 극단의 것들을, 중간 것들에는 중간 것들을 분배하면서 말일세.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Οὕτω.
그렇습니다.
Τούτων δὴ ὑποκειμένων λεγέτω μοι, φήσω, καὶ ἀποκρινέσθω ὁ χρηστὸς ὃς αὐτὸ μὲν καλὸν καὶ ἰδέαν τινὰ αὐτοῦ κάλλους μηδεμίαν ἡγεῖται ἀεὶ μὲν κατὰ ταὐτὰ ὡσαύτως ἔχουσαν, πολλὰ δὲ τὰ καλὰ νομίζει, ἐκεῖνος ὁ φιλοθεάμων καὶ οὐδαμῇ ἀνεχόμενος ἄν τις ἓν τὸ καλὸν φῇ εἶναι καὶ [Stephanus page 479, section a, line 5] δίκαιον καὶ τἆλλα οὕτω. “Τούτων γὰρ δή, ὦ ἄριστε, φήσομεν, τῶν πολλῶν καλῶν μῶν τι ἔστιν ὃ οὐκ αἰσχρὸν φανήσεται; καὶ τῶν δικαίων, ὃ οὐκ ἄδικον; καὶ τῶν ὁσίων, ὃ οὐκ ἀνόσιον;”
내가 말하겠네, 이런 것들이 전제되었으니 그 정직한 자로 하여금 내게 말하고 또 대답하도록 하게, 아름다움 자체와 그것의 어떤 이데아, 언제나 그것들 자체로 동일한 상태인 그것들 어느 하나도 믿지 않지만, 아름다운 것들을 여럿이라 생각하는 단순한 자, 구경하기를 좋아하고 누구든 아름다움과 정의와 그런 다른 것들이 하나라고 말하면 견디지를 못하는 저 사람으로 하여금 말이지. 우리는 말할 것이네. "실로 이러한 것들, 대단한 분, 그 많은 아름다운 것들 중 추해 보이지 않을 무언가는 물론 없겠지요? 정의로운 것들 중에서도, 부정의해 보이지 않을 뭔가는 없겠죠? 경건한 것들 중에서도, 불경해 보이지 않을 뭔가는 없겠죠?"

-蟲-
저작자 표시
Posted by 버러지

Trackback Address :: http://oistros.tistory.com/trackback/775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ἀπορήσειε δ' ἄν τις πῶς ποτε τοῦ μὲν πάθους παρόντος τοῦ δὲ πράγματος ἀπόντος μνημονεύεται τὸ μὴ παρόν. δῆλον γὰρ ὅτι δεῖ νοῆσαι τοιοῦτον τὸ γιγνόμενον διὰ τῆς αἰσθήσεως ἐν τῇ ψυχῇ καὶ τῷ μορίῳ τοῦ σώματος τῷ ἔχοντι αὐτήν - οἷον ζωγράφημά [Bekker page 450a, line 30] τι [τὸ πάθος] οὗ φαμεν τὴν ἕξιν μνήμην εἶναι· ἡ γὰρ γιγνομένη κίνησις ἐνσημαίνεται οἷον τύπον τινὰ τοῦ αἰσθήματος, καθάπερ οἱ σφραγιζόμενοι τοῖς δακτυλίοις. διὸ καὶ τοῖς μὲν ἐν κινήσει πολλῇ διὰ πάθος ἢ δι' ἡλικίαν οὖσιν οὐ γίγνεται μνήμη, καθάπερ ἂν εἰς ὕδωρ ῥέον ἐμπιπτούσης τῆς κινήσεως καὶ τῆς σφραγῖδος· τοῖς δὲ διὰ τὸ ψήχεσθαι, καθάπερ τὰ παλαιὰ τῶν οἰκοδομημάτων, καὶ διὰ σκληρότητα τοῦ δεχομένου τὸ πάθος οὐκ ἐγγίγνεται ὁ τύπος. διόπερ οἵ τε σφόδρα νέοι καὶ οἱ γέροντες ἀμνήμονές εἰσιν· ῥέουσι γὰρ οἱ μὲν διὰ τὴν αὔξησιν, οἱ δὲ διὰ τὴν φθίσιν. ὁμοίως δὲ καὶ οἱ λίαν ταχεῖς καὶ οἱ λίαν βραδεῖς οὐδέτεροι φαίνονται μνήμονες· οἱ μὲν γάρ εἰσιν ὑγρότεροι τοῦ δέοντος, οἱ δὲ σκληρότεροι· τοῖς μὲν οὖν οὐ μένει τὸ φάντασμα ἐν τῇ ψυχῇ, τῶν δ' οὐχ ἅπτεται.
당신은 당황할 것이다 누군가 도대체 어떻게 경험은 현전하지만 사태는 현전하지 않을 때 그 현전하지 않는 것을 기억하는지. 왜냐하면 이와 같은 것은 감각을 통하여 영혼 속에서 또 그 영혼을 지닌 신체의 일부분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사유해야 한다는 사실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 예를 들어 일종의 동물그림으로 사유해야 한다. [그 겪이를] 우리가 그에 대해 그 상태를 기억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그 발생되는 움직임이 말하자면 일종의 감각에 대한 인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반지들로 봉인하는 사람들처럼. 이 때문에 많은 움직임 속에 있는 자들에게는 겪이 때문이든 나이 때문이든 기억이 이루어지지 않는데, 마치 흐르는 물 속으로 움직임이나 인장이 빠질 때와 마찬가지이다: 다른 자들에게는 마모됨 때문에 그러한데, 마치 건물들이 노후들처럼, 감각을 수용하는 것의 단단함 때문에 인장이 그 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지나치게 어린 자들이나 나이든 자들은 기억을 잘 못하는 자들이다: 왜냐하면 어린 자들은 성장으로 인하여, 나이든 자들은 노쇠로 인하여 흐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재빠르거나 지나치게 느린 자들은 어느 쪽 사람들이든 기억력이 좋은 자들로 드러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재빠른 자들은 필요 이상으로 습하고, 느린 자들은 필요 이상으로 견고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빠른 자들에게는 영혼 안에서 영상이 머무르지 못하고, 느린 자들에게는 달라붙지 못한다.
ἀλλ' εἰ δὴ τοιοῦτόν ἐστι τὸ συμβαῖνον περὶ τὴν μνήμην, πότερον τοῦτο μνημονεύει τὸ πάθος, ἢ ἐκεῖνο ἀφ' οὗ ἐγένετο; εἰ μὲν γὰρ τοῦτο, τῶν ἀπόντων οὐδὲν ἂν μνημονεύοιμεν· εἰ δ' ἐκεῖνο, πῶς αἰσθανόμενοι τοῦτο μνημονεύομεν οὗ μὴ αἰσθανόμεθα, τὸ ἀπόν;
하지만 만일 정말로 기억과 관련하여 귀결되는 일이 이러하다면, 그런 겪이를 기억하는가, 아니면 겪이가 그로부터 생겨났던 저것을 기억하는가? 만일 겪이를 기억한다면, 부재하는 것들 중 아무것도 우리는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저것을 기억한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것을 감각하면서 우리가 감각하지 않는 것을 기억하는가, 부재하는 것을?
εἴ τ' ἐστὶν ὅμοιον ὥσπερ τύπος ἢ γραφὴ ἐν ἡμῖν, ἡ τούτου αἴσθησις διὰ τί ἂν εἴη μνήμη ἑτέρου, ἀλλ' οὐκ αὐτοῦ τούτου; ὁ γὰρ ἐνεργῶν τῇ [Bekker page 450b, line 18] μνήμῃ θεωρεῖ τὸ πάθος τοῦτο καὶ αἰσθάνεται τούτου. πῶς οὖν τὸ μὴ παρὸν μνημονεύσει; εἴη γὰρ ἂν καὶ ὁρᾶν τὸ μὴ παρὸν καὶ ἀκούειν.
만일 그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인장이나 그림과 같은 유사한 것이라면, 그것에 대한 감각이 무엇 때문에 다른 것에 대한 기억인가, 그것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기억을 실현하는 자는 그 겪이를 관조하고 이에 대해 감각하니 말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현존하지 않는 것을 기억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현존하지 않는 것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ἢ ἔστιν ὡς ἐνδέχεται καὶ συμβαίνειν τοῦτο; οἷον γὰρ τὸ ἐν πίνακι γεγραμμένον ζῷον καὶ ζῷόν ἐστι καὶ εἰκών, καὶ τὸ αὐτὸ καὶ ἓν τοῦτ' ἐστὶν ἄμφω, τὸ μέντοι εἶναι οὐ ταὐτὸν ἀμφοῖν, καὶ ἔστι θεωρεῖν καὶ ὡς ζῷον καὶ ὡς εἰκόνα, οὕτω καὶ τὸ ἐν ἡμῖν φάντασμα δεῖ ὑπολαβεῖν καὶ αὐτό τι καθ' αὑτὸ εἶναι καὶ ἄλλου [φάντασμα].
혹은 그것이 허용될 수 있고 또 귀결될 수 있는 것인가? 예를 들어 화판에 그려진 동물은 동물이면서 모상이고, 동일한 하나이면서 양자이기는 하나, 그렇지만 양자에게 동일하게 있지는 않고, 동물로도 모상으로도 볼 수 있으며, 그런 식으로 그 자체에 따라서는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의 상이자 동일한 것으로 취해야 하고 다른 어떤 것에 대해서는 상이라고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ᾗ μὲν οὖν καθ' αὑτό, θεώρημα ἢ φάντασμά ἐστιν, ᾗ δ' ἄλλου, οἷον εἰκὼν καὶ μνημόνευμα. ὥστε καὶ ὅταν ἐνεργῇ ἡ κίνησις αὐτοῦ, ἂν μὲν ᾗ καθ' αὑτό ἐστι, ταύτῃ αἰσθάνηται ἡ ψυχὴ αὐτοῦ, οἷον νόημά τι ἢ φάντασμα φαίνεται ἐπελθεῖν· ἂν δ' ᾗ ἄλλου καὶ ὥσπερ ἐν τῇ γραφῇ ὡς εἰκόνα θεωρεῖ καί, μὴ ἑωρακὼς τὸν Κορίσκον, ὡς Κορίσκου, ἐνταῦθά τε ἄλλο τὸ πάθος τῆς θεωρίας ταύτης καὶ ὅταν ὡς ζῷον γεγραμμένον θεωρῇ, ἔν τε τῇ ψυχῇ τὸ μὲν γίγνεται ὥσπερ νόημα μόνον, τὸ δ' ὡς ἐκεῖ ὅτι εἰκών, μνημόνευμα.
그러므로 그 자체에 따라서라면, 관조물이나 영상이고, 다른 것에 속한다면, 예를 들어 모상이나 기억거리이다. 그래서 그것의 움직임이 작용할 때에도, 그 자체에 따라 있다면, 영혼이 그에 대해 그런 식으로 감각하는데, 예를 들어 어떤 사유나 영상이 들어서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만일 다른 것에 속하는 것으로서 마치 그림 속에서 처럼 모상으로서 본다면, 코리스코스를 보지 않으면서, 코리스코스의 모상을 보는 것처럼, 여기서 이런 관조의 겪이는 그려진 동물로서 볼 때와 다르다, 영혼 안에서는 오직 바로 사유물로서만 생겨나고, 저 경우에는 모상이기 때문에, 기억물이 된다.
καὶ διὰ τοῦτο ἐνίοτ' οὐκ ἴσμεν, ἐγγινομένων ἡμῖν ἐν τῇ ψυχῇ τοιούτων κινήσεων ἀπὸ τοῦ αἰσθέσθαι πρότερον, εἰ κατὰ τὸ ᾐσθῆσθαι συμβαίνει, καὶ εἰ ἔστι μνήμη ἢ οὔ, διστάζομεν· ὁτὲ δὲ συμβαίνει ἐννοῆσαι καὶ ἀναμνησθῆναι ὅτι ἠκούσαμέν τι πρότερον ἢ [Bekker page 451a, line 7] εἴδομεν. τοῦτο δὲ συμβαίνει, ὅταν θεωρῶν ὡς αὐτὸ μεταβάλλῃ καὶ θεωρῇ ὡς ἄλλου.
또한 이런 이유로 종종 우리는 알지 못한다, 우리에게 영혼 안에서 이러한 움직임들이 이전의 감각으로부터 생겨날 때, 감각에 따라 귀결하는지 아닌지, 기억인지 아닌지, 우리는 의심한다: 그런데 어떤 때에는 우리가 앞서 들었던 무엇이나 보았던 무엇을 생각하거나 기억해내는 일이 귀결한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 귀결한다, 우리가 그 자체로서 보고 바뀌어 다른 것에 속하는 것으로 볼 때.
γίγνεται δὲ καὶ τοὐναντίον, οἷον συνέβη Ἀντιφέροντι τῷ Ὠρείτῃ καὶ ἄλλοις ἐξισταμένοις· τὰ γὰρ φαντάσματα ἔλεγον ὡς γενόμενα καὶ ὡς μνημονεύοντες. τοῦτο δὲ γίγνεται ὅταν τις τὴν μὴ εἰκόνα ὡς εἰκόνα θεωρῇ. αἱ δὲ μελέται τὴν μνήμην σῴζουσι τῷ ἐπαναμιμνήσκειν· τοῦτο δ' ἐστὶν οὐδὲν ἕτερον ἢ τὸ θεωρεῖν πολλάκις ὡς εἰκόνα καὶ μὴ ὡς καθ' αὑτό. τί μὲν οὖν ἐστι μνήμη καὶ τὸ μνημονεύειν, εἴρηται, ὅτι φαντάσματος, ὡς εἰκόνος οὗ φάντασμα, ἕξις, καὶ τίνος μορίου τῶν ἐν ἡμῖν, ὅτι τοῦ πρώτου αἰσθητικοῦ καὶ ᾧ χρόνου αἰσθανόμεθα.
그런데 반대의 일도 생긴다, 예를 들어 오레오스 사람 안티페론이나 기력이 다한 다른 이들에게: 왜냐하면 그들은 영상들을 일어난 일들로서 그리고 그들이 기억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일어난다 누군가 모상 아닌 것을 모상으로 볼 때, 그런데 주의들이 기억을 보존한다 기억을 더 떠올려 내는 일로써: 그런데 이것은 다름 아니라 영상으로서 자주 보고 그 자체인 것으로는 보지 않는 일이다. 그러므로 기억과 기억함이 무엇인지, 이야기되었다, 모상에 대한 것으로서의 영상을 가진 상태, 그리고 우리 안에서 부분들 중 어떤 부분들인지, 첫 번째 감각기관에 속하고 그로써 우리가 시간을 감각한다고.

-蟲-
저작자 표시
Posted by 버러지

Trackback Address :: http://oistros.tistory.com/trackback/771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εἰ δ᾿ ἄγ᾿ ἐγὼν ἐρέω, κόμισαι δὲ σὺ μῦθον ἀκούσας,
    αἵπερ ὁδοὶ μοῦναι διζήσιός εἰσι νοῆσαι·
5   ἡ μὲν ὅπως ἔστιν τε καὶ ὡς οὐκ ἔστι μὴ εἶναι,
    τὴν δή τοι φράζω παναπευθέα ἔμμεν ἀταρπόν·
    οὔτε γὰρ ἂν γνοίης τό γε μὴ ἐὸν (οὐ γὰρ ἀνυστόν)
    οὔτε φράσαις.
     
      . . . τὸ γὰρ αὐτὸ νοεῖν ἐστίν τε καὶ εἶναι.

      λεῦσσε δ᾿ ὅμως ἀπεόντα νόῳ παρεόντα βεβαίως·
    οὐ γὰρ ἀποτμήξει τὸ ἐὸν τοῦ ἐόντος ἔχεσθαι
    οὔτε σκιδνάμενον πάντῃ πάντως κατὰ κόσμον
    οὔτε συνιστάμενον.

                                                ξυνὸν δέ μοί ἐστιν,
    ὁππόθεν ἄρξωμαι· τόθι γὰρ πάλιν ἵξομαι αὖθις.

      χρὴ τὸ λέγειν τε νοεῖν τ᾿ ἐὸν ἔμμεναι· ἔστι γὰρ εἶναι,
    μηδὲν δ᾿ οὐκ ἔστιν· τά σ᾿ ἐγὼ φράξεσθαι ἄνωγα.
    πρώτης γάρ σ᾿ ἀφ᾿ ὁδοῦ ταύτης διξήσιος <εἴργω>,
    αὐτὰρ ἔπειτ᾿ ἀπὸ τῆς, ἣν δὴ βροτοὶ εἰδότες οὐδὲν
5   πλάττονται, δίκρανοι· ἀμηχανίη γὰρ ἐν αὐτῶν
    στήθεσιν ἰθύνει πλακτὸν νόον· οἱ δὲ φοροῦνται
    κωφοὶ ὁμῶς τυφλοί τε, τεθηπότες, ἄκριτα φῦλα,
    οἷς τὸ πέλειν τε καὶ οὐκ εἶναι ταὐτὸν νενόμισται
    κοὐ ταὐτόν, πάντων δὲ παλίντροπός ἐστι κέλευθος.

      οὐ γὰρ μήποτε τοῦτο δαμῇ εἶναι μὴ ἐόντα·
    ἀλλὰ σὺ τῆσδ᾿ ἀφ᾿ ὁδοῦ διήσιος εἶργε νόημα
    μηδέ σ᾿ ἔθος πολύπειρον ὁδὸν κατὰ τήνδε βιάσθω,
    νωμᾶν ἄσκοπον ὄμμα καὶ ἠχήεσσαν ἀκουήν
    καὶ γλῶσσαν, κρῖναι δὲ λόγῳ πολύδηριν ἔλεγχον


-작성중-
저작자 표시
Posted by 버러지

Trackback Address :: http://oistros.tistory.com/trackback/770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ἵπποι ταί φέρουσιν, ὅσον τ᾿ ἐπὶ θυμὸς ἱκάνοι,
    πέμπον, ἐπεί μ᾿ ἐς ὁδὸν βῆσαν πολύφημον ἄγουσαι
    δαίμονες, ἣ κατὰ πάντ᾿ ἄστη φέρει εἰδότα φῶτα·
    τῇ φερόμην· τῇ γάρ με πολύφραστοι φέρον ἵπποι
5  ἅρμα τιταίνουσαι, κοῦραι δ᾿ ὁδὸν ἡγεμόνευον.
    ἄξων δ᾿ ἐν χνοίηισιν ἵει σύριγγος αὐτήν
    αἰθόμενος (δοιοῖς γὰρ ἐπείγετο δινωτοῖσιν
    κύκλοις ἀμφοτέρωθεν), ὅτε σπερχοίατο πέμπειν
    Ἡλιάδες κοῦραι, προλιποῦσαι δώματα Νυκτός,
10 εἰς φάος, ὠσάμεναι κράτων ἄπο χερσὶ καλύπτρας.
      ἔνθα πύλαι Νυκτός τε καὶ Ἤματός εἰσι κελεύθων,
    καί σφας ὑπέρθυρον ἀμφὶς ἔχει καὶ λάινος οὐδός·
    αὐταὶ δ᾿ αἰθέριαι πλῆνται μεγάλοισι θυρέτροις·
    τῶν δὲ Δίκη πολύποινος ἔχει κληῖδας ἀμοιβούς.
15 τὴν δὴ παρφάμεναι κοῦραι μαλακοῖσι λόγοισιν.
    πεῖσαν ἐπιφραδέως, ὥς σφιν βαλανωτὸν ὀχῆα
    ἀπτερέως ὤσειε πυλέων ἄπο· ταὶ δὲ θυρέτρων
    χάσμ᾿ ἀχανὲς ποίησαν ἀναπτάμεναι πολυχάλκους
    ἄξονας ἐν σύριγξιν ἀμοιβαδὸν εἰλίξασαι
20 γόμφοις καὶ περόνηισιν ἀρηρότε· τῇ ῥα δι᾿ αὐτέων
    ἰθὺς ἔχον κοῦραι κατ᾿ ἀμαξιτὸν ἅρμα καὶ ἵππους.
      καί με θεὰ πρόφρων ὑπεδέξατο, χεῖρα δὲ χειρί
    δεξιτερὴν ἕλεν, ὧδε δ᾿ ἔπος φάτο καί με προσηύδα·
    ὦ κοῦρ᾿ ἀθανάτοισι συνάορος ἡνιόχοισιν,
25 ἵπποις ταί σε φέρουσιν ἱκάνων ἡμέτερον δῶ,
    χαῖρ᾿, ἐπεὶ οὔτι σε μοῖρα κακὴ προὔπεμπε νέεσθαι
    τήνδ᾿ ὁδόν (ἦ γὰρ ἀπ᾿ ἀνθρώπων ἐκτὸς πάτου ἐστίν),
    ἀλλὰ θέμις τε δίκη τε. χρεὼ δέ σε πάντα πυθέσθαι
    ἠμὲν Ἀληθείης εὐκυκλέος ἀτρεμὲς ἦτορ
30 ἠδὲ βροτῶν δόξας, ταῖς οὐκ ἔνι πίστις ἀληθής.
    ἀλλ᾿ ἔμπης καὶ ταῦτα μαθήσεαι, ὡς τὰ δοκοῦντα
    χρῆν δοκίμως εἶναι διὰ παντὸς πάντα περῶντα.
   
-작성중-
저작자 표시
Posted by 버러지

Trackback Address :: http://oistros.tistory.com/trackback/769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