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제를 뭉텅뭉텅 쳐내서 1/9까지 왔건만 연구의 목적과 의의를 밝힌다거나 주요 방법론을 정리한다거나 그 계획을 구체적으로 기간까지 확정한다거나 하는데에 어려움을 느낀다. 그냥 게을러서든 능력이 부족해서든 어찌 되었든지간에 답답한 김에 영화나 몇 편 때릴까, 그러다가 본 것이 둘 다 애니메이션이다. 하나는 '늑대아이,' 다른 하나는 '언령의 정원'이다. 보다보니 문득 내가 어떤 사람을 이상형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되더라. 말하자면 '씩씩함' 같은 것에 푹 빠지는 경향이 나한테 있는 듯하다. 밝음, 맑음, 건강함, 뒤틀리거나 배배 꼬이지 않은 선명함이랄까 분명함이랄까 뭐 그런 것 말이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니 그런 것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시간이란 게 필요한 듯도 싶다. 상대가 실제로 그런 힘이나 의지 같은 것, 심지랄까 뭐 그런 걸 정말로 가지고 있는지 확실해지는 건 그 사람이 이러저러한 일들을 거치고 난 뒤 아니겠나. 이십대를 지나 보내고, 삼십대를 거치면서, 사람들과 부대끼고 사람을 잃기도 하고 뒷통수를 맞기도 하고 얼토당토 않은 불운에 허덕거려 보기도 하고, 좀 구체적으로는 방세와 수도세, 전기세를 제 손으로 처리해 보고 밥그릇부터 화장실 뜨개밸브까지 직접 찾아 사다가 제 살림을 꾸려 보는 것, 시비가 일어 소장을 작성해 본다든가 입원을 하고 퇴원수속을 밟고 약을 타고, 누군가의 장례를 치르면서 울고 불고 하기 전에 조문객을 받고 비용 계산을 하고, 일자리를 잡기 위해 스스로 누군가를 찾아 어떤 부탁을 한다든지 계좌를 연다든지 이러저러한 일들, 그 과정이 죄다 여차하면 사람 비뚤어지기 딱 좋은 일들이고 요즘 같아서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기 전까지 서른이 가까워져서도 경험해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그런 '세파'란 것에 부딪치기 전까지는 내가 바라고 선망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동경하기까지 하는 그러한 건강함이나 씩씩함이란 게 검증될 수가 없을 것도 같다. 겪지 않고, 그러니까 어떤 줄을 타고 가는 과정에서 미끄러지지 않고, 차근차근 부모의 보호에서부터 시작해서 꽤 이름 있는 대학, 안정된 직장, 그러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나면 그런 이후의 사람들이 갖추게 되는 씩씩함이야 내가 불륜을 꿈꾸지 않는 이상 나한테는 상관이 없고, 결국은 원하는 사람을 찾기란 내겐 그닥 쉬운 일이 될 수가 없어 보인다. 또 역으로, 나 역시 좀 더 겪고 부대끼기 전에는 그 무언가를 알아볼 '눈'이랄 것을 갖추기 어려우리란 생각도 든다. 내 나름 겪었다, 할 만한 일들은 거의 대부분 자발적으로 경험한 일들인데다 중학교 시절, 혹은 고등학교 관두고 나서, 사실은 벼랑 끝이라 할 만한 상황은 아닌 한에서 말하자면 '즐겼다'고 할 수도 있을 그런 모험에 불과했다. 그렇게 겉핥기로 이런저런 일들을 겪은 뒤부터는 어림짐작으로나마 그런 것들이 장난으로 감당할 만한 일들은 아니리라는 겁을 집어먹게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게 정말로 간절한 일이 생겨 버려서, 그러니까 철학을 꼭 해야만 하겠어서 최대한 위험요소들은 배제하고 살았다. 얹혀 살면서 밥 하고 빨래 하고 몇 푼이나마 돈을 보태고, 사실 다시 나가서 살라면 못 할 것도 없지만 독립을 하면 얼마가 어디에 들어가고 어떤 불편이 있을지 아는 지금에 와서는 별로 그걸 억지부려 앞당길 생각도 들지 않는다. 앞으로의 삶이 복잡해지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냥 공부를 하고, 공부를 하는 것만으로 혹은 거기에 덧붙여 공부하는 무리들 주변에서 뒤치닥거리나 하는 것으로 주워먹을 수 있는 그런 돈으로, 그렇게 계속 공부를 하거나 아니면 그냥 뒈져 버리는, 산수보다 간단한 계산이면 충분한 그런 삶을 바랄 따름인지라 내 스스로 사서 변수를 키우고 싶지는 않다. 석사를 졸업하고 유학을 준비하고 지원을 받으면 나가고 못 나가면 박사를 알아보고 어쨌든 그런 식으로 금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남의 제한을 받고 그 제한범위 내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 그런 식의 한계나 제한만 있다면 앞서 말한 과정들이 그렇게 벅차고 암담한 것만도 아니다. 막무가내로 열려 있는 불확실한 가능성들만큼 공포스러운 것도 없는 법이다. 그 두려움에 직면할 때 내가 말하는 저 '씩씩함'이란 걸 적어도 내 방식으로 나는 느낄 수 있다고 믿는다. 자질구레하고 잡다한 생존에 맞서 짜증과 자기연민으로 빠져들거나 타성에 젖어 기계처럼 살아가거나, 어느 쪽이든 그런 성격에 대해서는 도무지 매력이란 걸 느낄 수 없다. 내가 이전까지 좋아했던 사람들이 그러했는지 어쨌는지 이제는 솔직히 잘 모르겠긴 하다. 어쩌면 내가 덮어씌운 환상이었을는지도 모르겠다. 나 자신은 어떤가 하면, 그나마 조금 건강해졌다고는 생각한다. 이제 전처럼 뒈져 버리겠다고 지랄을 해댈 일은 없으리라 믿고 있기도 하고, 어찌 되었든 잡일들에 휘둘려 꽥꽥거리며 짐승같이 비명을 지르는 일도 없을 것 같아서 말이다. 하지만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 학문으로만 놓고 보더라도 박사 끝내고 박사 후 과정까지 거치게 된다면 그 이후에야 내 스스로 알아서 공부해 나아가는 삶이 시작될 것이고, 그냥 계획과 경로에 따라 놓여 있는 돈을 따먹는 게 아니라 스스로 돈 나올 구멍을 고민해야 하는 그 순간이 오고 나서야, 어쨌든 정말로 내 한 몸 건사하는 생활을 하게 될 테니. 지금은 그냥 거렁뱅이 아닌가. 요즘 사람 보는 눈이 높아진다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닌 듯도 하다. 30대 정도의 상대들이야 뭐 이렇게저렇게 나랑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게 되어 버렸고, 40대 상대들도 자꾸 눈에 들어오는데, 그렇다고 가정파괴범이 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어서(내 연애관에 따르자면야 그게 왜 가정파괴인지도 잘 모르겠긴 하다만. 인간이 인간을 좋아하는 게 꼭 일대 일의 관계여야만 한다는 법은 없잖은가. 아닌가, 법이 있나? 뭐 도덕적으로 정당화가 된다고는 생각이 안 되지만=_=), 그런데 저 정도 건강함을 갖춘 사람들에겐 '상식'이랄지 뭐 그런 것도 있어서 나이 서른 쳐먹고 전망도 어두운 공부 한답시고 찔찔거리는 나같은 새끼한테 호감을 갖는 상대를 30대에서 찾기도 쉽지 않은 일이고, 20대에서 찾아 보자니 뭐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고. 그냥 2d 캐릭터와 가상결혼식이라도 올려야 하려나. 하하하, 좆됐다. '언령의 정원' 쪽은, 음, 중학생 남자애와 여교사 사이의 연애가 뭐가 그렇게 문제인지 이쪽도 역시 잘 모르겠다. 인간의 성숙 여부를 가타부타하기에는 이 사회가 지나치게 미성숙하다는 생각도 들고. 웃긴 건 이렇게 말하면 청소년 성범죄나 아동성폭력을 두둔하는 거냐는 식으로 반박을 당할 수도 있겠다는 것인데, 연애와 범죄도 구분이 안 되고 천부인권과 사회적 인격의 성립도 구분이 안 되고 아무런 기준도 잣대도 없는 세상이 좀 거북스러울 뿐 뭐 딱히 뭘 어떻게 해 볼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학생들의 두발과 복장을 제한하고 폭력을 교육의 정당한 방식으로 용인하고 그런 와중에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의 감정까지 인간으로서 미성숙한 어떤 짐승의 것으로 규정해 버리는 것, 혹은 원조교제를 하고 흡연과 음주에 노출되고 그 모든 책임을 스스로 감당하는 정도로까지 그들의 인격을 인정하는 것, 둘 중 어느 쪽이건 쉬운 문제가 아니긴 하겠지만 난 차라리 인간에 대한 믿음과 사회의 책임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는 후자쪽을 택하겠다. 그들을 키울 생각을 하지 말고, 그들을 인간으로서 인정하고 그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사회가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하는 편이 더 당연한 것 같아서 말이다. 울타리 쳐 가둬놓고 짐승처럼 때리고 밟아 가며 '너희를 위해서야' 하는 비겁함이 싫기도 하고. 실은 같잖은 꼰대새끼들이 애들 데리고서 지네만 인간입네 하며 완성된 인격이라도 갖춘 듯이 구는 꼬라지가 아니꼽고 띠껍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만. 교사고 부모고 나발이고 지상에 완전한 인간이 어디있나? 그 전에 인간의 완성을 가늠하는 척도따윈 또 어디 있나? 멈춘 주사위들이 던져진 주사위들보다 우위에 설 수는 없다. 이건 참 이상한 믿음이긴 하다. 그런데 얘기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나.

2. 이따금 말 뒤에 숨은 우려와 불신을 느끼곤 한다. 내가 짐작하기로 이제 주변 사람들은 내가 유학을 갈 수 있으리라고도 믿지 않는 듯하고 그렇기는 커녕 당장에 석사 졸업이나 제대로 할는지도 의문스러워 하는 듯하다. 고등학교 때려 치우고 망나니처럼 놀아제끼다가 대학 가겠다고 할 즈음에 사람들의 속내가 저 비슷하였다. 대학에 들어가 학부생들끼리 학회를 한답시고 날뛰었을 때에 주변 사람들의 반응도 대강 저러하였다. 고대철학을 하겠노라고 고전어를 배워야 하겠다고 말하고 다닐 적에도 주변 사람들의 눈빛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대학원에 들어가겠다고 영어시험을 준비할 때, 학부 졸업논문을 어떻게든 원전 읽고 써내겠다고 할 때, 실은 내가 뭔가를 하려고 들 때마다 언제나 나는 같은 평가를 받곤 하였다. 시작은 언제였을까. 국민학교 다닐 때, 중학교 1, 2학년 때, 시를 쓴다느니 소설을 쓴다느니 하고 다닐 적부터였나? PC통신 드나들며 판타지소설을 쓰겠다고 껍죽대고 다닐 때가 시작이었나? 철거촌 시위하는 데 따라다니던 때 용역새끼들 눈까리가 처음이었던 건가? 시위현장 폭력반대니 뭐니 그러고 다닐 적에 소위 '같은 편'이라 할 사람들, 누군가의 등 뒤에서 비겁하게 내 면상을 후려 갈기고 달아나며 낄낄거리던 어떤 새끼가, 그 새끼가 나한테 처음으로 저주를 건 새끼였나? 나름 잡다하게 이것저것 일을 벌리고 도전하고 희망을 품고 하였고, 몇 가지는 엎어졌고 또 몇 가지는 아슬아슬 간당간당하게 어찌 턱걸이로 해내기도 하였고, 결국 그 과정에서 저러한 평가들도 그 중 몇몇은 내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너무나도 중요한 것들이었고 또 몇몇은 쓰레기들 개소리에 흔들리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알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었고 그런데 이제는 슬슬 사람들의 우려와 불신을 무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직 본게임 시작도 못한 준비과정에 불과하지만, 여기서부터는 어쨌든 억지 쓴다고 누가 불쌍히 여겨주어 동정과 연민으로 버틸 수 있는 그런 바닥은 아닌 듯하다. 돈도 없고 빽도 없고 학벌도 없는데 글도 못 쓰고 게다가 대충 읽고 꼴에 욕심은 많고, 나를 두고 이루어지는 여러 평가들은 너무나 많은 근거들을 갖추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말은 오히려 훨씬 관대하다. 그것은 질문이거나 혹은 주어를 바꾼 비유이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들어가면 나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이다. 그리고 거기서 더 파고 들어가면 결론은 하지 말아라, 관둬라, 뭐 그런 금지와 제한들이다. 늘상 그래 왔다는 것, 그게 어느 정도의 위안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내 눈을 가리고 귀를 먹게 만든 것인지 그건 잘 모르겠다. 다만 적어도 이건 내가 납득할 만한 결말은 아니다. 구체적이고 적나라하게 내 눈앞에 드러나고 내 사지를 잡아 비트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 그러한 결론이 필요하다. 돈이 끊기고, 적(籍)을 둘 곳이 없어지고, 자료로부터 차단 당하고, 더 이상 아무도 내 논증에 비판조차 해주지 않는 순간이 온다면, 그거면 된다. 그렇거나 목숨줄이 끊기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니면 지금 이렇게 사는 걸음을 멈추거나 거둘 수는 없다. 늦춰지거나 꼬이거나 에두르게 되는 것은 개의치 않는다. 여태까지 버텨 왔던 것에 대해 인정받고 싶은 생각은 없으나 나는 이번에도 내가 납득할 수 있는 데까지 가 봐야 하겠다. 여전히 사람들이 무언가 나에게 시키고 또 뭔가를 요구하고 있고, 남들 보기엔 같잖을 수도 있으나 내 스스로 보기엔 티끌만치라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이 보인다. 더디고 버겁게나마 나는 나아왔고 또 나아갈 것이다. 뭐 세상에 그런 의무 따위야 당연히 없겠지만 그래도 내가 절실한 그 만큼 충실한 답변을 세상에 바랄 따름이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낼 테니, 이 삶을 절단내야 한다는 답이든 조금 더 유예기간을 주는 답이든 그 역시 정직하고 성실한 답이길 바라는 것이다. 누군가의 호의와 또 누군가의 배려, 동정과 연민, 그런 것들로 빙빙 둘러 긴가민가하게 흐지부지 주어지는 그런 답으로는 관둘 수가 없다. 욕심인 건 안다. 나 하나 따위를 납득시키기 위해 누가 내 목에 칼이라도 꽂아야 한다는 이런 억지가 어디 있겠나. 하지만 노력할 여지가 남아 있는 한, 그리고 내가 스스로 노력하고 있는 한, 일단은 이 노력을 지속시키고 싶다. 『소피스테스』를 읽으며 내가 느끼고 배우는 태도란 그런 것이다. 아무것도 없고 희망도 기대도 갖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문제로부터 눈을 돌리면 안 된다는 것, 포기하고 돌아서 버리면 안 된다는 것, 그 턱없이 막막하고 가망없는 상황 자체가, 그 안에서 버둥거리는 몸부림만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매번 의심 받고 조롱을 당할 때마다 했던 말이 있다. 당신들 생각대로 되지는 않을 거다. 다행히 아직까진 전적이 그리 나쁘지 않다. 지긋지긋하겠지만, 그래도 난 또 이 악물고 버텨야 하겠다. 뭐 그렇다고.

3. 욕이 턱밑까지 차서 입술을 깨물어서야 겨우 속으로 삼켜지는 와중에도 문득 돌아보면 내 일은 댈 것도 아닐 만큼 짜증스럽고 어이없는 일들을 당하는 사람들이 나와 같은 자리에 있더라. 무슨 콩고물 바라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인격자에 부처님 반토막이라서도 아니라, 그냥 어느 정도의 의리와 상식, 적절한 인내를 가지고 사태를 관조하고 이겨내는 사람들이 있더라. 나 따위를 가져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노력을 하고, 훨씬 더 대단한 재능으로 더 높은 자리에 가서도 여전히 겸손하고 점잖게, 그저 주어진 일은 묵묵히 최선을 다해 해내고 마무리짓는 사람들이 있어서, 혼자 속으로 울분을 삭이느니 뭐니 하는 나 자신이 우습게 여겨지도록 만드는 사람들이 있더라. 이 역시, 뭐 그냥, 그렇더라고, 그렇다고. 갈수록 '아, 궁시렁거리지 말아야 하겠구나'하는 다짐만 거듭하여 하게 되는구나.

-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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