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 지도교수님과 현 지도교수님을 번갈아 찾아 뵈면서 한편에서는 전체 개괄을, 다른 쪽에서는 중요 장의 초안을 보여 드려야 하는 상황. 지도교수님도 논문 준비 과정도 실수도 오류도 작성 기간도 두 배가 돼, really!? 이리저리 검색 돌려 확인해 보니 국내 학술지 등재 논문들, 석박사학위논문들, 단행본 등등 해서 40편 정도가 『소피스테스』에 직접 관련되는 듯. 영미권 저널들이랑 단행본들은 얼추 잡아 100편 남짓. 독어 단행본은 몇 개 있는듸 꾸역꾸역 보면 어떻게든 되지 싶으나 불어나 이태리어로 된 놈들이 문제. 이건 뭐 아예 엄두를 못 내니. 물론 그건 일어로 된 놈들도 마찬가지. 읽을 수 있는 것들만 추려서 대강 얼개 정도는 잡겠는데 딱 떨어지게 계통도 그려내고 연구사 정리할 정도로 보려면 아직 멀고도 멀었다. 쓰다 보니 생각이 바뀌는 지점들도 있고. '가장 중요한 유들'을 여섯 개로 밀어 붙여 보려고 했는데 쉽지 않을 듯하다든지 뭐 그런 것들. 그래도 덕분에 좀 생각이 정리되기도 했으니. 며칠 동안 밤샜다 퍼질러 잤다가 또 밤샜다가 이래 놓으니 몸상태가 영 아니다. 어찌 되었든 결국은 재밌어서 하는 짓이다. 오늘 전 지도교수님께서 그러시더라, 이거 참 재미있는 대화편이라고. 말씀대로, 재밌긴 재밌다. 이러니저러니 징징거리며 죽는 소리를 해대고, 결국 나란 놈은 재밌으면 장땡인 거고 당장은 재밌으니 된 거다. Complete/incomplete be랑 tautological proposition, self-predication, 단순정언, 단순부정, 무한판단, 거짓의 역설, 실재와 가상, 논박과 모방과 변증, 분할과 종합이 마구 뒤얽히면서 못해도 19세기 이래로 지금까지 논란이 끊이질 않고 이어지는 2천년 묵은 대화편이라니, 그게 또 움직이니 멈추니 같네 다르네 해가며 오늘날의 논리적 도구들, 학문적 방법론들이 자리잡히기 이전의 언어와 사유를 가지고 이어져 나간다니 두근반세근반콩닥콩닥하지 않냔 말이지. 아, 뭐, 아님 말고.

2. 대학원 들어와서 알게 된 선배 한 분께서 내일 장가를 가신다. 날 잡일꾼으로 쓰며 돈 쥐어주는 훌륭한 학술단체에서는 유라시아를 배경으로 하는 새로운 아시아 문화사 연구가 한창 탄력을 받았는지 어쨌는지, 중화와 대동아가 포착하지 못하는 새로운 사상사담론을 위한 실질적인 유적발굴이나 서사해석, 교류사 재구성 등의 작업들이 신나게 벌어지고 있다고 어느 선생님께서 그러시더라. 조교와 학생들로 만났던 사람들 중 몇몇이 이번에 학사논문 발표를 하는데 『법률』도 있고 『국가』도 있고 『소피스테스』도 있고 엘레아의 제논 운동역설 가지고 쓰는 친구도 있더라. 그 발표 전날에 10년을 고생하신 박사과정 선생님 논문 초록 발표가 있는데 이게 아리스토텔레스 연속개념 관련된 거라 운동역설 쓰는 그 친구는 가서 구경해 보는 것도 괜찮을 듯. 뭐 어차피 심사 다 끝났으니 발표 날짜 잡힌 걸 텐데 굳이 심사 복잡하게 딴 소리 들을 필요도 없다면야 없겠지만서도. 『소피스테스』 붙잡고 거짓진술 주제로 쓴 친구는 운동역설 저 친구랑 사귄다던가 뭐라던가. 재밌는 발표가 많아 보여서 구경을 갈까 싶기도 한데, 또 그 날 교수-대학원생 모임이라나 뭐라나 하여간 그런 게 있다는 것도 같더라. 그러거나 말거나 플라톤 대화편들이 학사논문 주제목록에 저렇게들 차고 넘치는데 수료를 하고도 1년이 더 지나가도록 나는 왜 신입생 머리카락 끄트머리조차 보지를 못 하는지. 하기사 오든 말든. 다음 달에는 건대 학부아해들 학술제도 있겄지. 그때나 지금이나 난 그냥 별 다를 것도 없고 계속 뭔가 읽고 또 뭔가 쓴답시고 낑낑거리고 뭐 그러고 있을 따름. 몇 주 정도 술을 쉬었더니 술이 참 고프다. 지도교수님 뵈러 가던 길에, 조교와 학생으로 만나 이제는 대학원 선후배인 친구도 하나 만났는데 그 친구 바람 잘 쐬었나 모르겠네. 때 되면 술이나 한 잔, 뭐 다 그런 거 아니겠나. 블로그로 약혼소식을 전한 선배는 또 언제 보게 되려나. 연락이 끊긴, 다시 만난, 등을 진, 데면데면한, 괜찮은, 사사로운, 이러저러한 인연들. 나 자신이 바뀌는 건 못 느끼겠는데 시간도 사람도 나만 두고 훌훌 잘도 흘러들 간다. 그나마 그 덕에 가끔 정신을 차리기도 한다.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나도 또 어디로가 허부적거리며 휩쓸려 가고 있지 않겠나, 하고. 밑바닥 진창에 내다꽂혀도 내 발로 뛰어드는 게 낫지. 여차하면 아차하는 순간 눈 한 번 깜빡하는 사이에 나가리 나는 거여.

3. 『국가』, 『정치가』 윤독 청강도 들어가고 싶고 『파이드로스』 강독도 더 하고 싶고 라틴어도 뭐 하나 읽었으면 좋겠고 그래도 나름 깨작거리며 꾸준하게 내 딴에는 논문준비랍시고, 한답시고 했는데 막상 일정이 잡히고 나니 시간에 쫓기기만 하고 뭐가 뭔지 모르겠다. 쩝. 『티마이오스』 읽고 싶엉. 막막 사전 찾고 문법 확인하고 머리 싸매 가면서. 『파르메니데스』도 읽고 싶엉. DK도 뒤지고 쌓아 놓은 논문들도 뒤적거리고 하면서 멜리소스 욕도 하고 제논 후빨도 하고 그러고 싶엉. 큰 논문 말고 자잘하게 이 문제 저 문제 들쑤시는 것도 하고 싶고. 현실에 거리를 두는 게 아니라 아예 현실과 동떨어져 괴리되어 버릴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간혹 하게는 되는데, 아직은 방향을 선회하게 되리란 기대조차 가지기가 힘들다. 예전에는 뭔가 딱 '답(!)' 막 이러고 뭐 하나 붙잡아내면 금의환향하듯 현장으로 나아가 확신을 가지고 사명감을 갖고서 이 한 몸 불사르는 날도 오겠지, 그런 허무맹랑한 생각도 하고 뭐 그랬었는데. 지금은 심지어 그냥 공부는 공부대로 하더라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몸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순간이 와도 책으로 생각으로 후다닥 달아나 버리지나 않을까 싶을 지경이니. 그저 정직과 성실, 그것뿐이다. 그게 인이 배기면 비겁하려 해도 몸이 말을 안 듣지 않겠나. 뭐 그런 거다. 아.. 기분전환 삼아서 깔삼한 영상이나.

하나 더.


-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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