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웹툰작가 '모래인간'님 블로그(링크)에서 본 m/v(?). I Am Me Once More by Zee Avi.

* 이거 왜 동영상 재생이 안 되는가. 노래 좋은데. 유튜브 링크 타고 가서 보시든지(링크). 근데 네이버에서 유입해 들어오는 사람들이 갑자기 늘어나는구만. 딱히 작가님 블로그에다 뭐 한 것도 없는데, 작가님 닉네임을 써 놓은 탓인가...


2. 늘상 그렇듯 이번에도 또 턱밑까지 잠겼달지 진창에 쳐박혔달지 끄트머리에 내몰렸달지. 미친듯이 버둥거리면 떠오를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발버둥을 치다가 엉겨붙어 빠져들어가 끝장이 날 수도 있는 거다. 쳐박힌 자리가 시궁창인지 망망대해인지 가늠을 못한다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마련이다. 자진해서 발벗고 뛰어든 이 길이 워낙에 그 따위로 생겨먹은 길이라면야 사구나 늪구덩이라도 어쨌든 계속 허우적거리며 발광을 해대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그냥 내 망상이고 현실도피이기만 하다면 잠자코 사태의 추이를 살필 필요도 있을 것인데, 모르겠다.

3. 논리적 필연으로 함축되고 연쇄적으로 추론될 수 있는 세계라는 전제 하에서만 영원한 회귀에 대한 스토아의 논증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 아닐까 하다가도 기계적 인과 연쇄보다는 유기체 유비를 선호하고 윤리학을 전체 학문의 알맹이이자 심장 같이 대하는 저들이 과연 그러한 딱딱한(?) 세계관을 수용하고 있던 걸지 의심이 들기도 하고, 논리적 관계와 인과적 관계, 그 두 관계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문제는 어쨌든 철학사에서는 내내 문제였기도 하고, 이러니 저러니 해도 단편 몇 개 모아둔 것 겉핥기로 읽은 게 고작인 내가 그걸 판단할 깜냥이 안 된다는 게 가장 큰 문제이겠다. 내일 모레 강독 들어가기 전까지 또 해석 좀 쌓아 둬야지. 『소피스테스』는 아무리 생각해도 정의의 대상이 되는 유와 결과하는 본성 혹은 본성의 중심으로부터 유의 본성의 부분들이나 유에 대한 종들을 구분하고 다시 이에 대한 모상의 진리치들을 구분하면서 존재론적으로 세계를 세 층위로 나누고자 시도하는 것 같고, 소크라테스가 어떤 유에 속하는 자일 경우 그 유의 정의에는 시험 혹은 논박(엘렝코스)이 필수적이지만 소피스테스의 경우에는 그것이 정의를 서술하는 데에 포함되지 않으면서도 그 유에 대한 우연적 사실의 지위까지 박탈할 근거는 없으며 나아가 『소피스테스』 내에서는 바로 그러한 난점을 지적하기 위해 소피스테스 나름의 엘렝코스를 드러내 보여주는 시도를 감행하기까지 하는 것으로 보이고, 이 두 생각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이지 않음"의 여러 불가능성들을 통한 손님과 테아이테토스의 아포리아, 이를 바탕으로 하여 "~임"에 대한 여러 이론들을 상대로 전개되는 소피스테스, 손님, 테아이테토스 공동의 엘렝코스, 그리고 결국 소피스테스의 것이자 그들 자신들의 것이기도 한 "~이지 않음"의 단적이고 절대적인 불가능성들에 대한 엘렝코스와 나아가 소피스테스의 2차 반론에 대한 손님과 테아이테토스의 엘렝코스가 해명되어야 할 것인데, 그러려면 종들의 엮임(symplokē eidōn)과 거기에서 to on과 to mē on에 대한 번역, 멈춤과 움직임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논증, 이것들과 같음 그리고 다름까지 유들이 여섯인지 다섯인지 그것들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지 다루지 않을 수 없고, 그걸 하려면 일단은 본문 번역부터 검토를 마쳐야 하는데 월, 화 연달아 강독수업이랑 강독 준비해 가야 하는 청강이 있고 방학 안에 이 대화편으로 논문 초안 만들려던 나는 이제 뭘 더 이상 어찌해야 할지 잠깐 당혹스러워 하는 중이다. 이중논변이 단순히 상반되는 두 주장들을 각기 정당화할 수 있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제논의 역설들처럼 한쪽 입장이 다른 한쪽 입장으로 귀결되지 않고는 자기모순에 빠지지만 그 둘 모두 양립 불가능하기도 한 형식을 취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억지를 부려 봤는데, 왜 그랬느냐 하면은 내가 관심 있는 게 그런 쪽이라서지 뭐. 이러니 나는 한참이나 글러 먹은 것인데, 문헌주의자를 꿈꾸면서도 과대망상 쓰레기 꼴을 면하지를 못하는 거다. 주말 내내 붙들고 있으면 대충 강독 준비 마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일단 들이받아 봐야지. 『정치가』 윤독 청강 들어가서는 마침 소피스테스를 정치가로부터 분리해내는 듯한 부분을 만나게 되었는데 미친 몸뚱아리가 제멋대로 졸아 버려서 질문을 충분히 못 했다. 『국가』 윤독 청강도 들어가서 듣고 있노라면 재밌고 배우는 것도 많고 좋은데 막상, 이전 지도교수님 지론처럼 뭔가 써서 남기질 않으면 아무것도 안 남을 것 같아서 걱정이긴 하다. 이딴 잡소리 말고 글 같은 글을 좀 만들려고 애라도 써봐야 하는듸. 『파이드로스』는 여전히 흥미진진. 배에 오르지도 않고 트로이의 성채에 가 닿은 일도 없는 자는 헬레네를 비난한 자인가 헬레네 자신인가 이건 뭐 원문 확인하면 될 듯한데 원문도 단편만 전해지는 건가 싶기도 하고 자기 자신을 화자가 대상화해서 2인칭으로 서술하는 것이 더 재밌지 않나? 스테시코로스가 호메로스와 다른 점, 그 다름으로 인해 신에 대한 자신의 불경을 정화할 수 있었던 실마리는 서사시와 서정시라는 시적 형식의 차이인가? 그건 너무 맹탕이지 않나? 무사이 여신들은 말 그대로 '신'이고 진정한 '무시코스(mousikos)', 즉 무사이 여'신'들의 진정한 추종자라면 인간으로서 신을 풍자하거나 전선한 자들을 일견 악하고 저열한 자들로 그리는 불경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무시코스'를 서정시인으로 번역한다면 그냥 스테시코로스는 운 좋게 서사시를 안 써서 돌이키는(취소하는?) 노래를 쓸 수 있었던 게 된다. 디튀람보스 형식에 대한 비판이라면 모를까 뜬금없이 서사시와 서정시를 비교하는 건 문맥에도 부적절하다. 반면에 신에 대한 태도로 이야기하자면 『국가』에서나 혹은 간접적으로 『에우튀프론』 등에서 볼 수 있듯 호메로스와 그에 따르는 전통적인 신에 대한 묘사는 소크라테스의 입장에서 보기에 불경하기 그지 없다. 신들이 불륜을 저지르고 기만과 거짓을 일삼으며 서로 불란을 일으키고 불화한다는 게, 그게 '신'들에게 어울리는, 아니, 참인 묘사라고 말할 수는 없다. 신이 신인 한에서 전적으로 선함을 받아들이려면 진정으로 신에 대한 추종자여야 하며 이러한 바탕에서만 자신이 신을 묘사하며 신에게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자각할 가능성이 확보된다. 스테시코로스는 소크라테스가 파이드로스에게 던지는 질문, '신이 정말로 신이라면 신인 한에서 신은 선하고 전혀 악하지 아니한가?' 라는 물음에 '그렇다.' 라고 대답하는 자일 수 있다. 취소의 시를 지으니까. 그러나 호메로스가 신들에 대한 자신의 묘사를 철회한 경우는 없다. 영원히 앞을 못 보고 두 눈을 빼앗긴 채로 살다 죽은 자와 빼앗긴 두 눈을 되찾은 자 사이의 대비 역시 앎과 모름의 대비에 어울리기도 하고. 서사시는 모르고 서정시는 아는가? 서사시는 불경하고 서정시는 경건한가? 이렇게 읽는 게 문헌 이해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도 모르겠고. 역시나 강독 비축분이 떨어져 가니 해석이나 열심히 해 두는 게 당장 급한 일이긴 하지만.

4. 내 스스로 끊임없이 징징거리고 한탄을 해대며 못나게 구는 주제에 왜 남들 그러는 건 웃어 넘기지를 못하는지. 글쎄, 요즘은 내가 칭얼대고 있는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다. 몸도 마음도 지쳐가는 와중에 어느 한 구석에선가 다시 재미와 흥분이 되살아나는 걸 느끼기도 한다. 논문 심사도 받고 싶고 GRE이든 IELTS든 영어 시험도 일단 한 번 봐 보고 싶고 낯선 곳에 덩그러니 혼자 남아 이래저래 조급하게 허둥거려 보고도 싶고 관심만 두고 열심히 파고 들지 못했던 분야의 책들도 한껏 물고 뜯고 싶기도 하고. 뭐 거창하게 말할 것도 없이 그냥 실연의 상처(크크)가 아무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위에 올린 노래 제목처럼, I am me once more.

5. Θαρρεῖν, ὦ Θεαίτητε, χρὴ τὸν καὶ σμικρόν τι δυνάμενον εἰς τὸ πρόσθεν ἀεὶ προϊέναι. Platonis Sophista. 261b4-5. 계속 되뇌이게 된다. 뭔가 조금만이라도 항상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자는, 용기를 내야만 한다. 사실 생각해 보면 딱히 가로막힌 것도 없다. 중요한 건 어디에 가 닿는 게 아니라 나아가야 하고 또 나아갈 수 있는 그 순간 그 자리에서 한 걸음 또 내딛어 걷는 것이다. 성경무오류주의마냥 플라톤무오류주의를 외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어느 정도는 확실히 내게 플라톤이 일종의 종교 비스무레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정당화할 생각만 가지지 않는다면 삶의 위안 정도로는 뭐 괜찮을지도. 적어도 내가 플라톤의 글들에서 찾고자 하는 게 구원나부랭이는 아니니까. 인간의 자리에서 인간의 지혜로 정직하고 성실하게, 그거면 충분하다. 그리고 여전히 ἀλλ᾿ οὐδὲν ἥδιον ἔμοιγε, εἰ μὴ τυγχάνει ἀληθὲς ὄν. 진리가 아닐 바에야, 나로서는 아무것도 즐겁지 않다.

-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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