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eses nehmen wir auch jederzeit in uns wahr. Wir können uns keine Linie denken, ohne sie in Gedanken zu ziehen, keinen Zirkel denken, ohne ihn zu beschreiben, die drei Abmessungen des Raums gar nicht vorstellen, ohne aus demselben Punkte drei Linien senkrecht auf einander zu setzen, und selbst die Zeit nicht, ohne, indem wir im Ziehen einer geraden Linie (die die äußerlich figürliche Vorstellung der Zeit sein soll) bloß auf die Handlung der Synthesis des Mannigfaltigen, dadurch wir den inneren Sinn sukzessiv bestimmen, und dadurch auf die Sukzession dieser Bestimmung in demselben, Acht haben. Bewegung, als Handlung des Subjekts, (nicht als Bestimmung eines Objekts¹,) folglich die Synthesis des Mannigfaltigen im Raume, wenn wir von diesem abstrahieren und bloß auf die Handlung Acht haben, dadurch wir den inneren Sinn seiner Form gemäß bestimmen, bringt so gar den Begriff der Sukzession zuerst hervor. Der Verstand des Mannigfaltigen, sondern bringt sie hervor, indem er ihn affiziert. Wie aber das Ich, der ich denke, von dem Ich, das sich selbst anschauet, unterschieden (indem ich mir noch andere Anschauungsart wenigstens als möglich vorstellen kann) und doch mit diesem letzteren als dasselbe Subjekt einerlei sei, wie ich also sagen könne: Ich, als Intelligenz und denkend Subjekt, erkenne mich selbst als gedachtes Objekt, so fern ich mir noch über das in der Anschauung gegeben bin, nur, gleich andern Phänomenen, nicht wie ich vor dem Verstande bin, sondern wie ich mir erscheine, hat nicht mehr auch nicht weniger Schwierigkeit bei sich, als wie ich mir selbst überhaupt ein Objekt und zwar der Anschauung und innerer Wahrnehmungen sein könne.
→ 이러한 것을 우리는 또한 언제나 우리 안에 참으로 받아들인다. 우리는, 직선을 사유 속에 그어봄 없이 어떠한 직선도 생각할 수 없고, 원을 그려봄 없이 아무런 원도 생각할 수 없으며, 동일한 점 위에 세 선들을 수직으로 서로에게 놓지 않고 공간의 세 차원들을 전혀 표상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자체로 시간도 생각할 수 없다. 우리가 하나의 직선을 그어봄에 있어서 (그 선이 시간의 외적 구상적 표상일) 순전히, 그를 통하여 우리가 내감을 계기적으로 규정하는 잡다의 종합작용에, 그리고 그를 통하여 잡다 안에서 이러한 규정의 계기성에 대해 주의함으로써가 아니라면 말이다.→ 주체의 활동으로서(객체에 대한 규정으로서가 아니라) 변화는, 따라서 공간 안에서 잡다의 종합은, 우리가 이러한 공간을 도외시하고 순전히 그를 통하여 우리가 내감을 그 내감의 형식에 적합하게 규정하는 활동에만 주의할 때, 오히려 계기성의 개념을 처음으로 산출한다.→ 그러므로 지성은 내감 안에서 어떤 잡다의 결합과 유사한 것을 이미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성이 내감을 촉발함으로써 그 결합을 산출한다.→ 그러나 어떻게 내가 생각한다는 것의 나라는 것이 스스로 직관하는 나와 구분되고 (내가 다른 직관방식을 최소한 가능한 것으로는 표상할 수 있음으로써)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후자를 가지고 그것의 주체와 동일할 것인지, 그러니까 내가 어떻게, 나는 지적이며 사유하는 주체로서 나 자신을, 내가 나에게 직관 안에서 주어진 것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단지, 다른 현상들과 마찬가지로, 내가 지성에 대해 있는 것과 달리, 오히려 내가 나에게 현상하듯이, 생각되는 개체로 인식한다고 말할 수 있는지, 그것은 또한, 어떻게 내가 나 자신 일반에 하나의 대상으로 더욱이 직관과 내적 감각의 대상으로 있을 수 있는지 보다 더 이상 조금도 덜한 어려움을 가지지 않는다.

¹ Bewegung eines Objekts im Raume gehört nicht in eine reine Wissenschaft, folglich auch nicht in die Geometrie; weil, daß Etwas beweglich sei, nicht  a priori, sondern nur durch Erfahrung erkannt werden kann. Aber Bewegung, als Beschreibung eines Raumes, ist ein reiner Actus der sukzessiven Synthesis des Mannigfaltigen in der äußeren Anschauung überhaupt durch produktive Einbildungskraft, und gehört nicht allein zur Geometrie, sondern sogar zur Transzendentalphilosophie.
→ ¹ 공간 안에서 객체의 운동은 순수 학문에 속하지 않고, 따라서 또한 기하학에 속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떤 것이 가변적이라는 것은, 선험적으로가 아니라, 오히려 단지 경험을 통해서만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간을 도해하는 것으로서 운동은 직관 일반 안에서 생산적 상상력을 통한 잡다의 계기적 종합의 순수한 활동이고, 기하학에 속할 뿐만 아니라, 더욱이 초월론적철학에도 속한다.


Dieses nehmen wir auch jederzeit in uns wahr. Wir können uns keine Linie denken, ohne sie in Gedanken zu ziehen, keinen Zirkel denken, ohne ihn zu beschreiben, die drei Abmessungen des Raums gar nicht vorstellen, ohne aus demselben Punkte drei Linien senkrecht auf einander zu setzen, und selbst die Zeit nicht, ohne, indem wir im Ziehen einer geraden Linie (die die äußerlich figürliche Vorstellung der Zeit sein soll) bloß auf die Handlung der Synthesis des Mannigfaltigen, dadurch wir den inneren Sinn sukzessiv bestimmen, und dadurch auf die Sukzession dieser Bestimmung in demselben, Acht haben.
이러한 것을 우리는 또한 언제나 우리 안에 참으로 받아들인다. 우리는 어떠한 직선도 생각할 수 없다, 그 직선을 사유 속에 그어봄 없이, 아무런 원도 생각할 수 없다, 그 원을 그려봄 없이, 공간의 세 차원들을 전혀 표상할 수 없다, 동일한 점 위에 세 선들을 수직으로 서로에게 놓지 않고, 그리고 그 자체로 시간도 아니다, 없이, 우리가 하나의 직선을 그어봄에 있어서 (그 선이 시간의 외적 구상적 표상일) 순전히 잡다의 종합작용에, 그를 통하여 우리가 내감을 계기적으로 규정하는, 그리고 그를 통하여 잡다 안에서 이러한 규정의 계기성에 대해, 주의함으로써.
→ 이러한 것을 우리는 또한 언제나 우리 안에 참으로 받아들인다. 우리는, 직선을 사유 속에 그어봄 없이 어떠한 직선도 생각할 수 없고, 원을 그려봄 없이 아무런 원도 생각할 수 없으며, 동일한 점 위에 세 선들을 수직으로 서로에게 놓지 않고 공간의 세 차원들을 전혀 표상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자체로 시간도 생각할 수 없다. 우리가 하나의 직선을 그어봄에 있어서 (그 선이 시간의 외적 구상적 표상일) 순전히, 그를 통하여 우리가 내감을 계기적으로 규정하는 잡다의 종합작용에, 그리고 그를 통하여 잡다 안에서 이러한 규정의 계기성에 대해 주의함으로써가 아니라면 말이다.
Bewegung, als Handlung des Subjekts, (nicht als Bestimmung eines Objekts¹,) folglich die Synthesis des Mannigfaltigen im Raume, wenn wir von diesem abstrahieren und bloß auf die Handlung Acht haben, dadurch wir den inneren Sinn seiner Form gemäß bestimmen, bringt so gar den Begriff der Sukzession zuerst hervor.
주체의 활동으로서 변화는, (객체에 대한 규정으로서가 아니라,) 따라서 공간 안에서 잡다의 종합은, 우리가 이러한 공간을 도외시하고 순전히 활동에만 주의할 때, 그를 통하여 우리가 내감을 그 내감의 형식에 적합하게 규정하는, 오히려 계기성의 개념을 처음으로 산출한다.
→ 주체의 활동으로서(객체에 대한 규정으로서가 아니라) 변화는, 따라서 공간 안에서 잡다의 종합은, 우리가 이러한 공간을 도외시하고 순전히 그를 통하여 우리가 내감을 그 내감의 형식에 적합하게 규정하는 활동에만 주의할 때, 오히려 계기성의 개념을 처음으로 산출한다.
Der Verstand findet also in diesem nicht etwa schon eine dergleichen Verbindung des Mannigfaltigen, sondern bringt sie hervor, indem er ihn affiziert.
그러므로 지성은 내감 안에서 어떤 잡다의 결합과 유사한 것을 이미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결합을 산출한다, 지성이 내감을 촉발함으로써.
→ 그러므로 지성은 내감 안에서 어떤 잡다의 결합과 유사한 것을 이미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성이 내감을 촉발함으로써 그 결합을 산출한다.
Wie aber das Ich, der ich denke, von dem Ich, das sich selbst anschauet, unterschieden (indem ich mir noch andere Anschauungsart wenigstens als möglich vorstellen kann) und doch mit diesem letzteren als dasselbe Subjekt einerlei sei, wie ich also sagen könne: Ich, als Intelligenz und denkend Subjekt, erkenne mich selbst als gedachtes Objekt, so fern ich mir noch über das in der Anschauung gegeben bin, nur, gleich andern Phänomenen, nicht wie ich vor dem Verstande bin, sondern wie ich mir erscheine, hat nicht mehr auch nicht weniger Schwierigkeit bei sich, als wie ich mir selbst überhaupt ein Objekt und zwar der Anschauung und innerer Wahrnehmungen sein könne.
그러나 어떻게 내가 생각한다는 것의 나라는 것이 스스로 직관하는 나와 구분되고 (내가 다른 직관방식을 최소한 가능한 것으로는 표상할 수 있음으로써)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후자를 가지고 그것의 주체와 동일할 것으로, 그러므로 내가 어떻게 말할 수 있는지: 나는, 지적이며 사유하는 주체로서, 나 자신을 생각되는 개체로 인식한다고, 내가 나에게 직관 안에서 주어진 것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단지, 다른 현상들과 마찬가지로, 내가 지성에 대해 있는 것과 달리, 오히려 내가 나에게 현상하듯이, 또한 더 이상 조금도 덜한 어려움을 가지지 않는다, 어떻게 내가 나 자신 일반에 하나의 대상으로 더욱이 직관과 내적 감각의 대상으로 있을 수 있는지 보다.
→ 그러나 어떻게 내가 생각한다는 것의 나라는 것이 스스로 직관하는 나와 구분되고 (내가 다른 직관방식을 최소한 가능한 것으로는 표상할 수 있음으로써)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후자를 가지고 그것의 주체와 동일할 것인지, 그러니까 내가 어떻게, 나는 지적이며 사유하는 주체로서 나 자신을, 내가 나에게 직관 안에서 주어진 것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단지, 다른 현상들과 마찬가지로, 내가 지성에 대해 있는 것과 달리, 오히려 내가 나에게 현상하듯이, 생각되는 개체로 인식한다고 말할 수 있는지, 그것은 또한, 어떻게 내가 나 자신 일반에 하나의 대상으로 더욱이 직관과 내적 감각의 대상으로 있을 수 있는지 보다 더 이상 조금도 덜한 어려움을 가지지 않는다.

¹ Bewegung eines Objekts im Raume gehört nicht in eine reine Wissenschaft, folglich auch nicht in die Geometrie; weil, daß Etwas beweglich sei, nicht  a priori, sondern nur durch Erfahrung erkannt werden kann.
¹ 공간 안에서 객체의 운동은 순수 학문에 속하지 않고, 따라서 또한 기하학에 속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떤 것이 가변적이라는 것은, 선험적으로가 아니라, 오히려 단지 경험을 통해서만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 ¹ 공간 안에서 객체의 운동은 순수 학문에 속하지 않고, 따라서 또한 기하학에 속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떤 것이 가변적이라는 것은, 선험적으로가 아니라, 오히려 단지 경험을 통해서만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Aber Bewegung, als Beschreibung eines Raumes, ist ein reiner Actus der sukzessiven Synthesis des Mannigfaltigen in der äußeren Anschauung überhaupt durch produktive Einbildungskraft, und gehört nicht allein zur Geometrie, sondern sogar zur Transzendentalphilosophie.
그러나 운동은, 공간을 도해하는 것으로서, 직관 일반 안에서 생산적 상상력을 통한 잡다의 계기적 종합의 순수한 활동이고, 기하학에 속할 뿐만 아니라, 더욱이 초월론적철학에도 속한다.
→ 그러나 공간을 도해하는 것으로서 운동은 직관 일반 안에서 생산적 상상력을 통한 잡다의 계기적 종합의 순수한 활동이고, 기하학에 속할 뿐만 아니라, 더욱이 초월론적철학에도 속한다.

-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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