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
Anmerkung
주해

Ein Mannigfaltiges, das in einer Anschauung, die ich die meinige nenne, enthalten ist, wird durch die Synthesis des Verstandes als zur notwendigen Einheit des Selbstbewußtseins gehörig vorgestellt, und dieses geschieht durch die Kategorie¹. Diese zeigt also an: daß das empirische Bewußtsein eines gegebenen Mannigfaltigen Einer Anschauung eben sowohl unter einem reinen Selbstbewußtsein a priori, wie empirische Anschauung unter einer reinen sinllichen, die gleichfalls a priori Statt hat, stehe. - Im obigen Satze ist also der Anfang einer Deduktion der reinen Verstandesbegriffe gemacht, in welcher ich, da die Kategorien unabhängig von Sinnlichkeit bloß im Verstande entspringen, noch von der Art, wie das Mannigfaltige zu einer empirischen Anschauung gegeben werde, abstrahieren muß, um nur auf die Einheit, die in die Anschauung vermittelst der Kategorie durch den Verstand hinzukommt, zu sehen. In der Folge (§ 26.) wird aus der Art, wie in der Sinnlichkeit die empirische Anschauung gegeben wird, gezeigt werden, daß die Einheit derselben keine andere sei, als welche die Kategorie nach dem vorigen § 20. dem Mannigfaltigen einer gegebenen Anschauung überhaupt vorschreibt, und dadurch also, daß ihre Gültigkeit a priori in Ansehung aller Gegenstände unserer Sinne erklärt wird, die Absicht der Deduktion allererst völlig erreicht werden.
→ 내가 나의 직관이라 이름하는 하나의 직관 안에 포함되는 잡다는 지성의 종합을 통하여 자기의식의 필연적 통일에 속하는 것으로 표상되고, 이러한 것은 범주들을 통하여 일어난다.→ 이것은 그러므로 단일한 직관의 주어진 잡다에 대한 경험적 의식이, 경험적 직관이 마찬가지로 선험적 자리를 가지는 순수한 감성 형식들 아래에서 그러하듯, 순수한 자기의식 아래에서 선험적으로 존립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 그러므로 앞선 명제에서 순수한 지성개념들에 대한 연역의 시작이 이루어진다. 그 연역에서 나는, 범주들이 감성에 독립적으로 순전히 지성 안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오로지 지성을 통해 범주를로써 직관 안에 부가되는 통일에 대해서만 주목하기 위해서, 또한 잡다가 경험적 직관에 주어지는 방식을 도외시해야만 한다.→ 결론적으로 감성에서 경험적 직관이 주어지는 것과 같은 방식(§ 26.)으로, 그와 같은 통일이 범주들이 바로 전 § 20.에 따라서 주어진 직관 일반의 잡다에 따라 제공하는 것 이외에 다른 무엇도 아니리라는 것이 지시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므로, 그 통일의 선험적 정당성이 우리 감관의 모든 대상들에 대한 고려 속에서 해명됨으로써, 연역의 의도가 처음으로 충분하게 성취된다는 것이 지시될 것이다.

¹Der Beweisgrund beruht auf der vorgestellten Einheit der Anschauung, dadurch ein Gegenstand gegeben wird, welche jederzeit eine Synthesis des mannigfaltigen zu einer Anschauung Gegebenen in sich schließt, und schon die Beziehung dieses letzteren auf Einheit der Apperzeption enthält.
→ ¹그 논증은, 그를 통하여 대상이 주어지는, 항상 직관에 주어진 잡다의 종합을 수반하는, 그러한 직관의 표상된 통일성에 근거하고, 그리고 이러한 통각의 통일에 대한 주어진 잡다의 관계를 이미 포함할 것이다.


Ein Mannigfaltiges, das in einer Anschauung, die ich die meinige nenne, enthalten ist, wird durch die Synthesis des Verstandes als zur notwendigen Einheit des Selbstbewußtseins gehörig vorgestellt, und dieses geschieht durch die Kategorie¹.
잡다는, 그 잡다가 하나의 직관 안에, 내가 나의 직관이라 이름하는 직관 안에, 포함되는 잡다는, 지성의 종합을 통하여 자기의식의 필연적 통일에 속하는 것으로 표상되고, 이러한 것은 범주들을 통하여 일어난다.
→ 내가 나의 직관이라 이름하는 하나의 직관 안에 포함되는 잡다는 지성의 종합을 통하여 자기의식의 필연적 통일에 속하는 것으로 표상되고, 이러한 것은 범주들을 통하여 일어난다.
Diese zeigt also an: daß das empirische Bewußtsein eines gegebenen Mannigfaltigen Einer Anschauung eben sowohl unter einem reinen Selbstbewußtsein a priori, wie empirische Anschauung unter einer reinen sinllichen, die gleichfalls a priori Statt hat, stehe.
이것은 그러므로 가리킨다: 단일한 직관의 주어진 잡다에 대한 경험적 의식이 순수한 자기의식 아래에서 선험적으로, 경험적 직관이 순수한 감성 형식들 아래에서, 그것이 마찬가지로 선험적 자리를 가지는, 존립한다는 것.
→ 이것은 그러므로 단일한 직관의 주어진 잡다에 대한 경험적 의식이, 경험적 직관이 마찬가지로 선험적 자리를 가지는 순수한 감성 형식들 아래에서 그러하듯, 순수한 자기의식 아래에서 선험적으로 존립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 Im obigen Satze ist also der Anfang einer Deduktion der reinen Verstandesbegriffe gemacht, in welcher ich, da die Kategorien unabhängig von Sinnlichkeit bloß im Verstande entspringen, noch von der Art, wie das Mannigfaltige zu einer empirischen Anschauung gegeben werde, abstrahieren muß, um nur auf die Einheit, die in die Anschauung vermittelst der Kategorie durch den Verstand hinzukommt, zu sehen.
- 앞선 명제에서 그러므로 순수한 지성개념들에 대한 연역의 시작이 이루어진다, 그 연역에서 나는, 범주들이 감성에 독립적으로 순전히 지성 안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또한 잡다가 경험적 직관에 주어지는 방식에 대해서는 되이시해야만 한다, 오로지 통일에 대해서, 그 통일이 지성을 통해 범주를로써 직관 안에 부가되는, 보기 위해서.
→ - 그러므로 앞선 명제에서 순수한 지성개념들에 대한 연역의 시작이 이루어진다. 그 연역에서 나는, 범주들이 감성에 독립적으로 순전히 지성 안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오로지 지성을 통해 범주를로써 직관 안에 부가되는 통일에 대해서만 주목하기 위해서, 또한 잡다가 경험적 직관에 주어지는 방식을 도외시해야만 한다.
In der Folge (§ 26.) wird aus der Art, wie in der Sinnlichkeit die empirische Anschauung gegeben wird, gezeigt werden, daß die Einheit derselben keine andere sei, als welche die Kategorie nach dem vorigen § 20. dem Mannigfaltigen einer gegebenen Anschauung überhaupt vorschreibt, und dadurch also, daß ihre Gültigkeit a priori in Ansehung aller Gegenstände unserer Sinne erklärt wird, die Absicht der Deduktion allererst völlig erreicht werden.
결론적으로 감성에서 경험적 직관이 주어지는 것과 같은 방식(§ 26.)으로, 지시된다, 그와 같은 통일이 다른 무엇도 아니리라는 것, 범주들이 그에 따라 바로 전 § 20.에서 주어진 직관 일반의 잡다에 따라 제공하는 것, 그리고 그를 통하여 그러므로, 그 통일의 선험적 정당성이 우리 감관의 모든 대상들에 대한 고려 속에서 해명되는 것, 연역의 의도가 처음으로 충분하게 성취된다.
→ 결론적으로 감성에서 경험적 직관이 주어지는 것과 같은 방식(§ 26.)으로, 그와 같은 통일이 범주들이 바로 전 § 20.에 따라서 주어진 직관 일반의 잡다에 따라 제공하는 것 이외에 다른 무엇도 아니리라는 것이 지시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므로, 그 통일의 선험적 정당성이 우리 감관의 모든 대상들에 대한 고려 속에서 해명됨으로써, 연역의 의도가 처음으로 충분하게 성취된다는 것이 지시될 것이다.
 
¹Der Beweisgrund beruht auf der vorgestellten Einheit der Anschauung, dadurch ein Gegenstand gegeben wird, welche jederzeit eine Synthesis des mannigfaltigen zu einer Anschauung Gegebenen in sich schließt, und schon die Beziehung dieses letzteren auf Einheit der Apperzeption enthält.
¹그 논증은 직관의 표상된 통일성에 근거하고, 그를 통하여 대상이 주어지는, 항상 직관에 주어진 잡다의 종합을 수반하는, 그리고 이러한 후자의 관계가 이미 통각의 통일에 대해 포함할 것이다.
→ ¹그 논증은, 그를 통하여 대상이 주어지는, 항상 직관에 주어진 잡다의 종합을 수반하는, 그러한 직관의 표상된 통일성에 근거하고, 그리고 이러한 통각의 통일에 대한 주어진 잡다의 관계를 이미 포함할 것이다.

-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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