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
Alle sinnliche Anschauungen stehen unter den Kategorien, als Bedingungen, unter denen allein das Mannigfaltige derselben in ein Bewußtsein zusammenkommen kann
모든 감각적 직관들은 범주들 아래에, 그것들 아래에서만 그 직관의 잡다가 하나의 의식 속으로 함께 들어올 수 있는 그러한 조건들로서의 범주들 아래에서 자리한다

Das mannigfaltige in einer sinnlichen Anscahuung Gegebene gehört notwendig unter die ursprüngliche synthetische Einheit der Apperzeption, weil durch diese die Einheit der Anschauung allein möglich ist. (§ 17.) Diejenige Handlung des Verstandes aber, durch die das Mannigfaltige gegebener Vorstellungen (sie mögen Anschauungen oder Begriffe sein) unter eine Apperzeption überhaupt gebracht wird, ist die logische Funktion der Urteils. (§ 19.) Also ist alles Mannigfaltige, so fern es in Einer empirischen Anschauung gegeben ist, in Ansehung einer der logischen Funktionen zu urteilen bestimmt, durch die es nämlich zu einem Bewußtsein überhaupt gebracht wird. Nun sind aber die Kategorien nichts andres, als eben diese Funktionen zu urteilen, so fern das Mannigfaltige einer gegebenen Anschauung in Ansehung ihrer bestimmt ist. (§ 13.) Also steht auch das Mannigfaltige in einer gegebenen Anschauung notwendig unter Kategorien.
→ 감각적 직관 안에서 잡다로서 주어진 것은 필연적으로 통각의 근원적 종합적 통일 아래에 속하는데, 왜냐하면 이 통일을 통해서만 직관의 통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 17.)→ 그러나 지성의 저 활동, 그를 통하여 주어진 표상들의 잡다가 (그 표상들은 직관들이거나 개념들일 수 있다) 어쨌든 하나의 통각 아래에로 이끌릴 수 있는 그러한 활동은 판단의 논리적 기능이다. (§ 19.) → 그러므로 모든 잡다는, 하나 안에 감각적 직관이 주어지는 한에서, 판단을 위한 논리적 기능, 그를 통하여 잡다가 말하자면 의식 일반으로 이끌리는 그러한 기능과 관련하여 규정된다.→ 그러나 이제 범주들은, 주어진 직관의 잡다가 그 기능과 관련하여 규정되는 한에서, 바로 이러한 판단하는 기능들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주어진 직관 안에서 잡다 역시 필연적으로 범주들 아래에 선다.


Das mannigfaltige in einer sinnlichen Anscahuung Gegebene gehört notwendig unter die ursprüngliche synthetische Einheit der Apperzeption, weil durch diese die Einheit der Anschauung allein möglich ist. (§ 17.)
감각적 직관 안에서 잡다로서 주어진 것은 필연적으로 통각의 근원적 종합적 통일 아래에 속하는데, 왜냐하면 이 통일을 통해서만 직관의 통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 17.)
→ 감각적 직관 안에서 잡다로서 주어진 것은 필연적으로 통각의 근원적 종합적 통일 아래에 속하는데, 왜냐하면 이 통일을 통해서만 직관의 통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 17.)
Diejenige Handlung des Verstandes aber, durch die das Mannigfaltige gegebener Vorstellungen (sie mögen Anschauungen oder Begriffe sein) unter eine Apperzeption überhaupt gebracht wird, ist die logische Funktion der Urteils. (§ 19.)
그러나 지성의 저 활동은, 그 활동을 통하여 주어진 표상들의 잡다가 (그 표상들은 직관들이거나 개념들일 수 있다) 어쨌든 하나의 통각 아래에로 이끌릴 수 있는, 판단의 논리적 기능이다. (§ 19.)
→ 그러나 지성의 저 활동, 그를 통하여 주어진 표상들의 잡다가 (그 표상들은 직관들이거나 개념들일 수 있다) 어쨌든 하나의 통각 아래에로 이끌릴 수 있는 그러한 활동은 판단의 논리적 기능이다. (§ 19.)
Also ist alles Mannigfaltige, so fern es in Einer empirischen Anschauung gegeben ist, in Ansehung einer der logischen Funktionen zu urteilen bestimmt, durch die es nämlich zu einem Bewußtsein überhaupt gebracht wird.
그러므로 모든 잡다는, 하나 안에 감각적 직관이 주어지는 한에서, 판단을 위한 논리적 기능과 관련하여 규정된다, 그 기능을 통하여 잡다가 말하자면 의식 일반으로 이끌리는.
→ 그러므로 모든 잡다는, 하나 안에 감각적 직관이 주어지는 한에서, 판단을 위한 논리적 기능, 그를 통하여 잡다가 말하자면 의식 일반으로 이끌리는 그러한 기능과 관련하여 규정된다.
Nun sind aber die Kategorien nichts andres, als eben diese Funktionen zu urteilen, so fern das Mannigfaltige einer gegebenen Anschauung in Ansehung ihrer bestimmt ist. (§ 13.)
그러나 이제 범주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바로 이러한 판단하는 기능들 이외에, 주어진 직관의 잡다가 그 기능과 관련하여 규정되는 한에서.
→ 그러나 이제 범주들은, 주어진 직관의 잡다가 그 기능과 관련하여 규정되는 한에서, 바로 이러한 판단하는 기능들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Also steht auch das Mannigfaltige in einer gegebenen Anschauung notwendig unter Kategorien.
그러므로 주어진 직관 안에서 잡다 역시 필연적으로 범주들 아래에 선다.
→ 그러므로 주어진 직관 안에서 잡다 역시 필연적으로 범주들 아래에 선다.

-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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