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nn ich aber die Beziehung gegebener Erkenntnisse in jedem Urteile genauer untersuche, und sie, als dem Verstande angehörige, von dem Verhältnisse nach Gesetzen der reproduktiven Einbildungskraft (welches nur subjektive Gültigkeit hat) unterscheide, so finde ich, daß ein Urteil nichts andres sei, als die Art, gegebene Erkenntnisse zur objektiven Einheit der Apperzeption zu bringen. Darauf zielt das Verhältniswörtchen ist in denselben, um die objektive Einheit gegebener Vorstellungen von der subjektiven zu unterscheiden. Denn dieses bezeichnet die Beziehung derselben auf die ursprüngliche Apperzeption und die notwendige Einheit derselben, wenn gleich das Urteil selbst empirisch, mithin zufällig ist, z.B. die Körper sind schwer. Damit ich zwar nicht sagen will, diese Vorstellungen gehören in der empirischen Anschauung notwendig zu einander, sondern sie gehören vermöge der notwendigen Einheit der Apperzeption in der Synthesis der Anschauungen zu einander, d.i. nach Prinzipien der objektiven Bestimmung aller Vorstellungen, so fern daraus Erkenntnis werden kann, welche Prinzipien alle aus dem Grundsatze der transzendentalen Einheit der Apperzeption abgeleitet sind. Dadurch allein wird aus diesem Verhältnisse ein Urteil, d.i. ein Verhältnis, das objektiv gültig ist, und sich von dem Vrhältnisse eben derselben Vorstellungen, worin bloß subjektive Gültigkeit wäre, z.B. nach Gesetzen der Assoziation, hinreichend unterscheidet. Nach der letzteren würde ich nur sagen können: Wenn ich einen Körper trage, so fühle ich einen Druck der Schwere; aber nicht: er, der Körper, ist schwer; welches so viel sagen will, als, diese beide Vorstellungen sind im Objekt, d.i. ohne Untershied des Zustandes des Subjekts, verbunden, und nicht bloß in der Wahrnehmung (so oft sie auch wiederholt sein mag) beisammen.
→ 그러나 내가 각각의 판단에 있어서 주어진 인식들의 관계를 더욱 정확하게 검토할 때, 그리고 그 관계를 지성에 속하는 것으로서 (단지 주관적 정당성만을 지니는)재생적 상상력의 법칙에 따른 관계로부터 구분할 때, 그래서 나는 하나의 판단은, 주어진 인식들을 통각의 객관적 통일로 가져오는 그 방식 이외에 다른 무엇도 아니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주어진 표상들의 객관적 통일을 주관적 통일과 구분하기 위해서 인식들에 있어서 관계사 ist는 그에 대해 지시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이, 비록 그 판단 자체가, 예를 들어 물체는 무겁다와 같이 경험적이고, 따라서 우연적이라고 하더라도 근원적 통각과 그 통각의 필연적 통일에 대해 그 표상들 자체의 관계를 지시하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나는, 이러한 표상들이 경험적 직관 안에서 필연적으로 또 다른 표상에 속한다고 말하고자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그 표상들은 직관들의 종합에서 통각의 필연적 통일에 따라, 즉 모든 표상들의 객관적 규정의 원칙에 따라, 그로부터 인식이 이루어지는 한에서, 통각의 초월론적 통일의 근본명제로부터 도출되는 그런 모든 원칙들에 따라 또 다른 표상에 속한다고 말하고자 한다.→ 그를 통해서만 이러한 관계들로부터 하나의 판단이, 즉 객관적으로 정당한 하나의 관계가, 그 안에서 예를 들어 연합의 법칙에 따르는 순전히 주관적 정당성만이 있을 바로 동일한 표상들의 관계와 충분하게 구분된다.→ 후자에 따라 나는 단지 내가 하나의 물체를 옮길 때, 나는 무게의 압력을 느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물체, 바로 그것이 무겁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이 양자의 표상들은 대상 안에서, 즉 주체의 상태에 대한 구분 없이, 결합되고, 순전히 지각(그 지각은 또한 자주 반복될 수 있다) 안에서만 결합되지는 않는다고 그렇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Wenn ich aber die Beziehung gegebener Erkenntnisse in jedem Urteile genauer untersuche, und sie, als dem Verstande angehörige, von dem Verhältnisse nach Gesetzen der reproduktiven Einbildungskraft (welches nur subjektive Gültigkeit hat) unterscheide, so finde ich, daß ein Urteil nichts andres sei, als die Art, gegebene Erkenntnisse zur objektiven Einheit der Apperzeption zu bringen.
그러나 내가 각각의 판단에 있어서 주어진 인식들의 관계를 더욱 정확하게 검토할 때, 그리고 그 관계를, 지성에 속하는 것으로서, (단지 주관적 정당성만을 지니는)재생적 상상력의 법칙에 따른 관계로부터 구분할 때, 나는 그래서 알게 된다, 하나의 판단은 다른 무엇도 아니리라는 것을, 주어진 인식들을 통각의 객관적 통일로 가져오는 그 방식 이외에.
→ 그러나 내가 각각의 판단에 있어서 주어진 인식들의 관계를 더욱 정확하게 검토할 때, 그리고 그 관계를 지성에 속하는 것으로서 (단지 주관적 정당성만을 지니는)재생적 상상력의 법칙에 따른 관계로부터 구분할 때, 그래서 나는 하나의 판단은, 주어진 인식들을 통각의 객관적 통일로 가져오는 그 방식 이외에 다른 무엇도 아니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Darauf zielt das Verhältniswörtchen ist in denselben, um die objektive Einheit gegebener Vorstellungen von der subjektiven zu unterscheiden.
인식들에 있어서 관계사 ist는 그에 대해 지시한다, 주어진 표상들의 객관적 통일을 주관적 통일과 구분하기 위해서.
→ 주어진 표상들의 객관적 통일을 주관적 통일과 구분하기 위해서 인식들에 있어서 관계사 ist는 그에 대해 지시한다.
Denn dieses bezeichnet die Beziehung derselben auf die ursprüngliche Apperzeption und die notwendige Einheit derselben, wenn gleich das Urteil selbst empirisch, mithin zufällig ist, z.B. die Körper sind schwer.
왜냐하면 이러한 것이 근원적 통각과 그 통각의 필연적 통일에 대해 그 표상들 자체의 관계를 지시하기 때문이다, 비록 그 판단 자체가 경험적이고, 따라서 우연적이라고 하더라도, 예를 들어 물체는 무겁다.
→ 왜냐하면 이러한 것이, 비록 그 판단 자체가, 예를 들어 물체는 무겁다와 같이 경험적이고, 따라서 우연적이라고 하더라도 근원적 통각과 그 통각의 필연적 통일에 대해 그 표상들 자체의 관계를 지시하기 때문이다.
Damit ich zwar nicht sagen will, diese Vorstellungen gehören in der empirischen Anschauung notwendig zu einander, sondern sie gehören vermöge der notwendigen Einheit der Apperzeption in der Synthesis der Anschauungen zu einander, d.i. nach Prinzipien der objektiven Bestimmung aller Vorstellungen, so fern daraus Erkenntnis werden kann, welche Prinzipien alle aus dem Grundsatze der transzendentalen Einheit der Apperzeption abgeleitet sind.
그와 함께 나는 말하고자 하지 않는다, 이러한 표상들이 경험적 직관 안에서 필연적으로 또 다른 표상에 속한다고, 오히려 그 표상들은 직관들의 종합에서 통각의 필연적 통일에 따라 또 다른 표상에 속한다고, 즉 모든 표상들의 객관적 규정의 원칙에 따라, 그로부터 인식이 되는 한에서, 통각의 초월론적 통일의 근본명제로부터 도출되는 그런 모든 원칙들.
→ 그와 함께 나는, 이러한 표상들이 경험적 직관 안에서 필연적으로 또 다른 표상에 속한다고 말하고자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그 표상들은 직관들의 종합에서 통각의 필연적 통일에 따라, 즉 모든 표상들의 객관적 규정의 원칙에 따라, 그로부터 인식이 이루어지는 한에서, 통각의 초월론적 통일의 근본명제로부터 도출되는 그런 모든 원칙들에 따라 또 다른 표상에 속한다고 말하고자 한다.
Dadurch allein wird aus diesem Verhältnisse ein Urteil, d.i. ein Verhältnis, das objektiv gültig ist, und sich von dem Vrhältnisse eben derselben Vorstellungen, worin bloß subjektive Gültigkeit wäre, z.B. nach Gesetzen der Assoziation, hinreichend unterscheidet.
그를 통해서만 이러한 관계들로부터 하나의 판단이, 즉 하나의 관계와, 객관적으로 정당한, 그 자체가 바로 동일한 표상들의 관계와, 그 안에서 순전히 주관적 정당성이 있을, 예를 들어 연합의 법칙에 따르는, 충분하게 구분된다.
→ 그를 통해서만 이러한 관계들로부터 하나의 판단이, 즉 객관적으로 정당한 하나의 관계가, 그 안에서 예를 들어 연합의 법칙에 따르는 순전히 주관적 정당성만이 있을 바로 동일한 표상들의 관계와 충분하게 구분된다.
Nach der letzteren würde ich nur sagen können: Wenn ich einen Körper trage, so fühle ich einen Druck der Schwere; aber nicht: er, der Körper, ist schwer; welches so viel sagen will, als, diese beide Vorstellungen sind im Objekt, d.i. ohne Untershied des Zustandes des Subjekts, verbunden, und nicht bloß in der Wahrnehmung (so oft sie auch wiederholt sein mag) beisammen.
후자에 따라 나는 단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하나의 물체를 옮길 때, 나는 무게의 압력을 느낀다; 그러나 물체, 바로 그것이 무겁다 라고는 아니다; 그것은 그렇게 말하고자 한다, 이 양자의 표상들은 대상 안에서, 즉 주체의 상태에 대한 구분 없이, 결합되고, 순전히 지각(그 지각은 또한 자주 반복될 수 있다) 안에서만 결합되지는 않는다.
→ 후자에 따라 나는 단지 내가 하나의 물체를 옮길 때, 나는 무게의 압력을 느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물체, 바로 그것이 무겁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이 양자의 표상들은 대상 안에서, 즉 주체의 상태에 대한 구분 없이, 결합되고, 순전히 지각(그 지각은 또한 자주 반복될 수 있다) 안에서만 결합되지는 않는다고 그렇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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