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 muß ursprünglich Anschauung sein; denn aus einem bloßen Begriffe lassen sich keine Sätze, die über den Begriff hinausgehen, ziehen, welches doch in der Geometrie geschieht (Einleitung Ⅴ.). Aber diese Anschauung muß a priori, d.i. vor aller Wahrnehumg eines Gegenstandes, in uns angetroffen werden, mithin reine, nicht empirische Anschauung sein. Denn die geometrischen Sätze sind insgesamt apodiktisch, d.i. mit dem Bewußtsein ihrer Notwendigkeit verbunden, z.B. der Raum hat nur drei Abmessungen; dergleichen Sätze aber können nicht empirische oder Erfahrungsurteile sein, noch aus ihnen geschlossen werden (Einleit. Ⅱ.).

→ 그것은 근원적인 직관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한 순수한 개념으로부터, 그 개념을 넘어서는 명제들이, 기하학의 역사 속에서와 같은 그러한 것을, 이끌어 내도록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직관은 선험적으로, 즉 우리의 안에서 대상들의 모든 지각에 앞서 마주치게 되어야만 하고, 따라서 순수하고, 감각적이지 않은 직관이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예를 들어 공간은 단지 세 차원만을 가진다 같은 기하학적 명제들은 모두 다 자명한, 곧 그 명제들의 필연성의 의식과 결합되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명제들은 그러나 감각적 혹은 경험적 판단일 수 없고, 또 그로부터 추론될 수 없다.

Wie kann nun eine äußere Anschauung dem Gemüte beiwohnen, die vor den Objekten selbst vorhergeht, und in welcher der Begriff der letzteren a priori bestimmt werden kann? Offenbar nicht anders, als so fern sie bloß im Subjekte, als die formale Beschaffenheit desselben von Objekten affiziert zu werden, und dadurch unmittelbare Vorstellung derselben d.i. Anschauung zu bekommen, ihren Sitz hat, also nur als Form des äußeren Sinnes überhaupt.

→ 이제 어떻게 외적 직관이 객체 자체에 앞서 선행하는 심정에 내재할 수 있고, 그러한 심정 안에서 후자(심성)의 개념이 선험적으로 규정될 수 있는가? 그것은 명백하게 다름 아니라, 그것이 순수하게 주체 안에서, 그것 자체의 형식적 성질로서 촉발되는 것으로서, 그리고 그를 통하여 그것의 직접적인 표상 즉 직관을 획득하는 것으로서, 그것의 자리를 갖는 한에서, 그러므로 단지 전적으로 외감의 형식으로서이다.

Also macht allein unsere Erklärung die Möglichkeit der Geometrie als einer synthetischen Erkenntnis a priori begreiflich. Eine jede Erklärungsart, die dieses nicht liefert, wenn sie gleich dem Anscheine nach mit ihr einige Ähnlichkeit hätte, kann an diesen Kennzeichen am sichersten von ihr unterschieden werden.

→ 그러므로 오로지 우리의 해명만이 선험적 종합인식으로서 기하학의 가능성을 납득할 수 있게 만든다. 각각의 설명 방식은, 그것이 이러한 것을 산출하지 않는, 그것이 마찬가지로 우리의 설명방식과 유사하다 할지라도, 이러한 가장 확실한 특징에 있어서 우리의 것으로부터 구분될 수 있을 것이다.

 

Er muß ursprünglich Anschauung sein;

그것은 근원적인 직관이어야 한다.

denn aus einem bloßen Begriffe lassen sich keine Sätze, die über den Begriff hinausgehen, ziehen, welches doch in der Geometrie geschieht (Einleitung Ⅴ.).

왜냐하면 한 순수한 개념으로부터 명제들이, 그 명제들이 그 개념을 넘어서는, 기하학의 역사 속에서와 같은 그러한 것을, 이끌어 내도록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 그것은 근원적인 직관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한 순수한 개념으로부터, 그 개념을 넘어서는 명제들이, 기하학의 역사 속에서와 같은 그러한 것을, 이끌어 내도록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Aber diese Anschauung muß a priori, d.i. vor aller Wahrnehumg eines Gegenstandes, in uns angetroffen werden, mithin reine, nicht empirische Anschauung sein.

그러나 이러한 직관은 선험적으로, 즉 우리의 안에서 대상들의 모든 지각에 앞서 마주치게 되어야만 하고, 따라서 순수하고, 감각적이지 않은 직관이어야만 한다.

→ 그러나 이러한 직관은 선험적으로, 즉 우리의 안에서 대상들의 모든 지각에 앞서 마주치게 되어야만 하고, 따라서 순수하고, 감각적이지 않은 직관이어야만 한다.

Denn die geometrischen Sätze sind insgesamt apodiktisch, d.i. mit dem Bewußtsein ihrer Notwendigkeit verbunden, z.B. der Raum hat nur drei Abmessungen;

왜냐하면 기하학적 명제들은 모두 다 자명한, 곧 그 명제들의 필연성의 의식과 결합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공간은 단지 세 차원만을 가진다;

dergleichen Sätze aber können nicht empirische oder Erfahrungsurteile sein, noch aus ihnen geschlossen werden (Einleit. Ⅱ.).

그와 같은 명제들은 그러나 감각적 혹은 경험적 판단일 수 없고, 또 그로부터 추론될 수 없다.

→ 왜냐하면, 예를 들어 공간은 단지 세 차원만을 가진다 같은 기하학적 명제들은 모두 다 자명한, 곧 그 명제들의 필연성의 의식과 결합되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명제들은 그러나 감각적 혹은 경험적 판단일 수 없고, 또 그로부터 추론될 수 없다.

 

Wie kann nun eine äußere Anschauung dem Gemüte beiwohnen, die vor den Objekten selbst vorhergeht, und in welcher der Begriff der letzteren a priori bestimmt werden kann?

이제 어떻게 외적 직관이 심정에 내재할 수 있고, 그 심정이 객체에 앞서 스스로 선행하는, 그러한 심정 안에서 후자의 개념이 선험적으로 규정될 수 있는가?

→ 이제 어떻게 외적 직관이 객체 자체에 앞서 선행하는 심정에 내재할 수 있고, 그러한 심정 안에서 후자(심성)의 개념이 선험적으로 규정될 수 있는가?

Offenbar nicht anders, als so fern sie bloß im Subjekte, als die formale Beschaffenheit desselben von Objekten affiziert zu werden, und dadurch unmittelbare Vorstellung derselben d.i. Anschauung zu bekommen, ihren Sitz hat, also nur als Form des äußeren Sinnes überhaupt.

그것은 명백하게 다름 아니라, 그것이 순수하게 주체 안에서, 그것 자체의 형식적 성질로서 촉발되는 것으로서, 그리고 그를 통하여 그것의 직접적인 표상 즉 직관을 획득하는 것으로서, 그것의 자리를 갖는 한에서, 그러므로 단지 전적으로 외감의 형식으로서이다.

→ 그것은 명백하게 다름 아니라, 그것이 순수하게 주체 안에서, 그것 자체의 형식적 성질로서 촉발되는 것으로서, 그리고 그를 통하여 그것의 직접적인 표상 즉 직관을 획득하는 것으로서, 그것의 자리를 갖는 한에서, 그러므로 단지 전적으로 외감의 형식으로서이다.

 

Also macht allein unsere Erklärung die Möglichkeit der Geometrie als einer synthetischen Erkenntnis a priori begreiflich.

그러므로 오로지 우리의 해명만이 선험적 종합인식으로서 기하학의 가능성을 납득할 수 있게 만든다.

→ 그러므로 오로지 우리의 해명만이 선험적 종합인식으로서 기하학의 가능성을 납득할 수 있게 만든다.

Eine jede Erklärungsart, die dieses nicht liefert, wenn sie gleich dem Anscheine nach mit ihr einige Ähnlichkeit hätte, kann an diesen Kennzeichen am sichersten von ihr unterschieden werden.

각각의 설명 방식은, 그것이 이러한 것을 산출하지 않는, 그것이 마찬가지로 우리의 설명방식과 유사하다 할지라도, 이러한 가장 확실한 특징에 있어서 우리의 것으로부터 구분될 수 있을 것이다.

→ 각각의 설명 방식은, 그것이 이러한 것을 산출하지 않는, 그것이 마찬가지로 우리의 설명방식과 유사하다 할지라도, 이러한 가장 확실한 특징에 있어서 우리의 것으로부터 구분될 수 있을 것이다.

 

-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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