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krates und, wie ich gleich sagen will, auch die Sophisten - die in diesem Sinne auch nicht zu den Vorsokratikern gehören, aber solche Inkonsequenzen stören nicht, wenn man terminologisch vorgeht - fragen nicht nach diesen vorhandenen Dingen, sondern, kurz gesagt, nach der menschlichen Tauglichkeit, der arete. Wir befinden uns hier im Bereich der Polis, in der die Menschen zusammen leben und in der sie etwas werden wollen, vor allem politisch etwas werden wollen. Da geht es primär darum, wie man tauglich wird im Leben, wie man vorankommt und möglichst in eine herrschende Stellung. Man sieht, dies Fragen nach der menschlichen Bestheit ist ursprünglich durchaus nicht im ethischen Sinne zu verstehen, sondern umfassend nach der vollen Entfaltung dessen, was der Mensch als Mensch an Kräften mitbekommen hat, wodurch er das möglichst >gute Leben<, eu zen, erlangt, was auch ganz materiell verstanden werden kann, dann aber vom Wohlergehen zum Wohlbefinden wird und schließlich zur eudaimonia, >Glückseligkeit< in dem Sinne, daß der Mensch einen guten Daimon hat. Von all diesen Begriffen werden wir noch eingehend zu sprechen haben.
→ 소크라테스와, 내가 동시에 이야기하고자 하듯이, 또한 소피스테스들은 - 그들이 이러한 의미에서 또한 전 소크라테스에 속하지 않지만, 사람들이 용어적으로 우선할 때 그러한 불일치들이 방해하지 않는 - 이러한 수중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짧게 말하면, 인간적인 쓸모, 아레테에 대해서 묻는다.→ 우리는 여기에서, 그 안에서 인간들이 다 함께 살아가고 그 안에서 그들이 무엇인가 되고자 하는, 무엇보다도 정치적인 무언가가 되고자 하는 폴리스의 범위 안에 있다.→ 여기에서 처음으로, 어떻게 사람이 삶에 있어서 쓸모있게 되는지, 어떻게 사람이 가능한 한 지배적 지위로 나아갈 수 있는지 그것이 문제가 된다.→ 사람들은, 인간적 최선에 대한 이러한 물음이 근본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윤리적 의미에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폭넓게 인간이 인간으로서 능력들을 동시에 얻는 것, 그를 통하여 인간이 가능한 한, 에우 젠, >좋은 삶<을 얻는 그러한 것의 풍부한 전개에 대한 물음임을 본다. 에우 젠은 또한 전적으로 물질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그 경우 무사로부터 평안에까지 결국 에우다이모니아가 되는, 인간이 좋은 다이몬을 가진다는 의미에서 >행복<이다.→ 이러한 모든 개념들에 대하여 우리는 아직 상론을 가지지 못할 것이다.
Die Frage nach diesem Gut-Leben und dieser Eudaimonie ist die in der Gemeinschaft sich stellende Frage, die jeden als Lebensfrage angeht und in die die Sophisten hineinzielen vor allem mit dem Mittel des gekonnten Worts, das zum Machtmittel werden kann. Sie versprechen, daß sie den Menschen möglichst tauglich und fähig machen können, so daß er zum >guten Leben<, zu Stellung und Machteinfluß gelangt und also auch glücklich wird. Sie sehen, es ist ein ganz anderer Bereich als der, vor dem die Vorsokratiker stehen, die sich vor dem Ganzen des Seienden fühlen. Es sind durchaus die Menschenwelt und die Menschendinge und -bestrebungen, die von den Sophisten behandelt werden, die nun bestimmte Praktiken entwickeln, wie man etwa den schwächeren Logos zum stärkeren machen kann; die aber über diese Kunstgriffe hinaus auch Wissen vermitteln, das den Menschen ertüchtigen und zur Arete erziehen soll - worauf mit Sokrates die Frage entsteht, ob und wie man die Arete überhaupt lehren und vermitteln kann. Es wäre ja schön für den Menschen, wenn er sich diese Höchstfrom irgendwo beschaffen könnte, wenn es Menschen gäbe, die sie vermitteln könnten. Die Sophisten behaupten, sie seien solche Lehrer der Arete.
→ 이러한 좋은-삶과 에우다이모니아에 대한 물음은 공동체 안에서 제기된, 그 물음 각각이 삶의 물음으로서 시작되고 그 물음 안으로 소피스테스들은 무엇보다도 그 방법이 권력수단으로 될 수 있는 능란한 말의 방법을 가지고 내부를 겨냥하는 물음이다.→ 그들은, 그들이 인간들을 가능한 한 쓸모 있고 유능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고, 그래서 그가 >좋은 삶<을, 지위와 권력을 얻고 그러므로 행복하게 된다고 약속한다.→ 그들은 그것이 그 영역에 대해 전 소크라테스들이 마주 서 있는, 그것들이 있는 것들의 전체를 채우는 것과 전혀 다른 영역임을 본다.→ 그것은 소피스테스들에 의해 다루어진, 그들이, 사람들이 어느 정도 더욱 약한 말을 더욱 강한 말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것과 같은 규정된 취급방식들을 전개한, 전적으로 인간계와 인간적인 것들 그리고 인간적 활동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기교들을 넘어서 또한 인간들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게 하고 - 소크라테스와 함께 어떤 것에 대한 것인지, 혹은 어떻게 사람들이 그 아레테 일반을 배우고 전할 수 있는지 그 물음이 생겨난 - 아레테로 가르칠 그러한 앎을 전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그가 이러한 최상의 조건을 얻을 수 있다면, 만일 그들이 전할 수 있을 그것이 인간들에게 주어진다면 그것은 사람들에게 멋진 것일 터이다.→ 소피스트들은 그들이 덕에 대한 그러한 교사라고 주장했다.



Sokrates und, wie ich gleich sagen will, auch die Sophisten - die in diesem Sinne auch nicht zu den Vorsokratikern gehören, aber solche Inkonsequenzen stören nicht, wenn man terminologisch vorgeht - fragen nicht nach diesen vorhandenen Dingen, sondern, kurz gesagt, nach der menschlichen Tauglichkeit, der arete.
소크라테스와, 내가 동시에 이야기하고자 하듯이, 또한 소피스테스들은 - 그들이 이러한 의미에서 또한 전 소크라테스에 속하지 않지만, 그러한 불일치들이 방해하지 않는, 사람들이 용어적으로 우선할 때 - 묻는다 이러한 수중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짧게 말하면, 인간적인 쓸모, 아레테에 대해서.
→ 소크라테스와, 내가 동시에 이야기하고자 하듯이, 또한 소피스테스들은 - 그들이 이러한 의미에서 또한 전 소크라테스에 속하지 않지만, 사람들이 용어적으로 우선할 때 그러한 불일치들이 방해하지 않는 - 이러한 수중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짧게 말하면, 인간적인 쓸모, 아레테에 대해서 묻는다.
Wir befinden uns hier im Bereich der Polis, in der die Menschen zusammen leben und in der sie etwas werden wollen, vor allem politisch etwas werden wollen.
우리는 여기에서 폴리스의 범위 안에 있다, 그 안에서 인간들이 다 함께 살아가고 그 안에서 그들이 무엇인가 되고자 하는, 무엇보다도 정치적인 무언가가 되고자 하는.
→ 우리는 여기에서, 그 안에서 인간들이 다 함께 살아가고 그 안에서 그들이 무엇인가 되고자 하는, 무엇보다도 정치적인 무언가가 되고자 하는 폴리스의 범위 안에 있다.
Da geht es primär darum, wie man tauglich wird im Leben, wie man vorankommt und möglichst in eine herrschende Stellung.
여기에서 처음으로 그것이 문제가 된다, 어떻게 사람이 삶에 있어서 쓸모있게 되는지, 어떻게 사람이 가능한 한 지배적 지위로 나아갈 수 있는지.
→ 여기에서 처음으로, 어떻게 사람이 삶에 있어서 쓸모있게 되는지, 어떻게 사람이 가능한 한 지배적 지위로 나아갈 수 있는지 그것이 문제가 된다.
Man sieht, dies Fragen nach der menschlichen Bestheit ist ursprünglich durchaus nicht im ethischen Sinne zu verstehen, sondern umfassend nach der vollen Entfaltung dessen, was der Mensch als Mensch an Kräften mitbekommen hat, wodurch er das möglichst >gute Leben<, eu zen, erlangt, was auch ganz materiell verstanden werden kann, dann aber vom Wohlergehen zum Wohlbefinden wird und schließlich zur eudaimonia, >Glückseligkeit< in dem Sinne, daß der Mensch einen guten Daimon hat.
사람들은 본다, 인간적 최선에 대한 이러한 물음이 근본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윤리적 의미에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폭넓게 그것의 풍부한 전개에 대한 물음, 인간이 인간으로서 능력들을 동시에 얻는 것, 그를 통하여 인간이 가능한 한 >좋은 삶<, 에우 젠, 그것을 얻는, 그것이 또한 전적으로 물질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그러나 그 경우 무사로부터 평안에까지 결국 에우다이모니아가 되는, >행복< 다음과 같은 의미에서, 인간이 좋은 다이몬을 가진다는.
→ 사람들은, 인간적 최선에 대한 이러한 물음이 근본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윤리적 의미에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폭넓게 인간이 인간으로서 능력들을 동시에 얻는 것, 그를 통하여 인간이 가능한 한, 에우 젠, >좋은 삶<을 얻는 그러한 것의 풍부한 전개에 대한 물음임을 본다. 에우 젠은 또한 전적으로 물질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그 경우 무사로부터 평안에까지 결국 에우다이모니아가 되는, 인간이 좋은 다이몬을 가진다는 의미에서 >행복<이다.
Von all diesen Begriffen werden wir noch eingehend zu sprechen haben.
이러한 모든 개념들에 대하여 우리는 아직 상론을 가지지 못할 것이다.
→ 이러한 모든 개념들에 대하여 우리는 아직 상론을 가지지 못할 것이다.

Die Frage nach diesem Gut-Leben und dieser Eudaimonie ist die in der Gemeinschaft sich stellende Frage, die jeden als Lebensfrage angeht und in die die Sophisten hineinzielen vor allem mit dem Mittel des gekonnten Worts, das zum Machtmittel werden kann.
이러한 좋은-삶과 에우다이모니아에 대한 물음은 공동체 안에서 제기된 물음이다, 그 물음 각각이 삶의 물음으로서 시작되고 그 물음 안으로 소피스테스들은 무엇보다도 능란한 말의 방법을 가지고 내부를 겨냥하는, 그 방법이 권력수단으로 될 수 있는.
→ 이러한 좋은-삶과 에우다이모니아에 대한 물음은 공동체 안에서 제기된, 그 물음 각각이 삶의 물음으로서 시작되고 그 물음 안으로 소피스테스들은 무엇보다도 그 방법이 권력수단으로 될 수 있는 능란한 말의 방법을 가지고 내부를 겨냥하는 물음이다.
Sie versprechen, daß sie den Menschen möglichst tauglich und fähig machen können, so daß er zum >guten Leben<, zu Stellung und Machteinfluß gelangt und also auch glücklich wird.
그들은 약속한다, 그들이 인간들을 가능한 한 쓸모 있고 유능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고, 그래서 그가 >좋은 삶<을, 지위와 권력을 얻고 그러므로 행복하게 된다고.
→ 그들은, 그들이 인간들을 가능한 한 쓸모 있고 유능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고, 그래서 그가 >좋은 삶<을, 지위와 권력을 얻고 그러므로 행복하게 된다고 약속한다.
Sie sehen, es ist ein ganz anderer Bereich als der, vor dem die Vorsokratiker stehen, die sich vor dem Ganzen des Seienden fühlen.
그들은 본다, 그것이 전혀 다른 영역임을 다음과 같은 것과, 그 영역에 대해 전 소크라테스들이 마주 서 있는, 그들이 있는 것들의 전체를 채우는.
→ 그들은 그것이 그 영역에 대해 전 소크라테스들이 마주 서 있는, 그것들이 있는 것들의 전체를 채우는 것과 전혀 다른 영역임을 본다.
Es sind durchaus die Menschenwelt und die Menschendinge und -bestrebungen, die von den Sophisten behandelt werden, die nun bestimmte Praktiken entwickeln, wie man etwa den schwächeren Logos zum stärkeren machen kann; die aber über diese Kunstgriffe hinaus auch Wissen vermitteln, das den Menschen ertüchtigen und zur Arete erziehen soll - worauf mit Sokrates die Frage entsteht, ob und wie man die Arete überhaupt lehren und vermitteln kann.
그것은 전적으로 인간계와 인간적인 것들 그리고 인간적 활동들이다, 그것들이 소피스테스들에 의해 다루어진, 이제 그들이 규정된 취급방식들을 전개한, 사람들이 어느 정도 더욱 약한 말을 더욱 강한 말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것과 같은;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기교들을 넘어서 또한 앎을 전달한다, 그 앎이 인간들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게 하고 아레테로 가르칠 - 어떤 것에 대한 것인지 소크라테스와 함께 그 물음이 생겨난, 혹은 어떻게 사람들이 그 아레테 일반을 배우고 전할 수 있는지.
→ 그것은 소피스테스들에 의해 다루어진, 그들이, 사람들이 어느 정도 더욱 약한 말을 더욱 강한 말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것과 같은 규정된 취급방식들을 전개한, 전적으로 인간계와 인간적인 것들 그리고 인간적 활동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기교들을 넘어서 또한 인간들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게 하고 - 소크라테스와 함께 어떤 것에 대한 것인지, 혹은 어떻게 사람들이 그 아레테 일반을 배우고 전할 수 있는지 그 물음이 생겨난 - 아레테로 가르칠 그러한 앎을 전달한다.
Es wäre ja schön für den Menschen, wenn er sich diese Höchstfrom irgendwo beschaffen könnte, wenn es Menschen gäbe, die sie vermitteln könnten.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사람들에게 멋진 것일 터이다, 만일 그가 이러한 최상의 조건을 얻을 수 있다면, 만일 그것이 인간들에게 주어진다면, 그들이 전할 수 있을.
→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그가 이러한 최상의 조건을 얻을 수 있다면, 만일 그들이 전할 수 있을 그것이 인간들에게 주어진다면 그것은 사람들에게 멋진 것일 터이다.
Die Sophisten behaupten, sie seien solche Lehrer der Arete.
소피스트들은 주장했다, 그들이 덕에 대한 그러한 교사라고.
→ 소피스트들은 그들이 덕에 대한 그러한 교사라고 주장했다.

-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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