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 wird also als die Bedingung der Möglichkeit der Erscheinungen, und nicht als eine von ihnen abhängende Bestimmung angesehen, und ist eine Vorstellung a priori, die notwendiger Weise äußeren Erscheinungen zum Grunde liegt.

→ 그러므로 그것(공간)은 현상들의 가능성에 대한 조건으로서, 그리고 현상들에 달려 있는 규정이 아닌 것으로서 고려되고, 그 필연적인 방식의 표상이 외부 현상들에 기초로서 놓여진 선험적인 표상이다.

 

In A folgt : 3) Auf die Notwendigkeit a priori gründet sich die apodiktische Gewißheit aller geometrischen Grundsätze, und die Möglichkeit ihrer Konstruktion a priori. Wäre nämlich diese Vorstellung des Raums ein a posteriori erworbener Begriff, der aus der allgemeinen äußeren Erfahrung geschöpft wäre, so würden die ersten Grundsätze der mathematischen Bestimmung nichts als Wahrnehmungen sein. Sie hätten also alle Zufälligkeit der Wahrnehmung, und es wäre eben nicht notwendig, daß zwischen zween Punkten nur eine gerade Linie sei, sondern die Erfahrung würde es so jederzeit lehren. Was von der Erfahrung entlehnt ist, hat auch nur komparative Allgemeinheit, nämlich durch Induktion. Man würde also nur sagen können, so viel zur Zeit noch bemerkt worden, ist kein Raum gefunden worden, der mehr als drei Abmessungen hätte.

→ A판에 따르면 : 3) 모든 기하학적 근본명제의 자명한 확실성이 그 선험적 필연성을 근거로 하며, 그것의 선험적 구조의 가능성이 그 선험적 필연성을 근거로 한다. 즉 공간의 이러한 표상이 후험적으로 습득된 개념이라면, 그 개념이 일반적 외적 경험으로부터 길어져 나오는 것이라면, 그래서 수학적 규정의 최초의 근본명제는 지각들 이외에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그 표상은 지각의 모든 우연성을 가질 것이고, 두 점 사이에는 오직 하나의 곧은 선만이 있다는 것, 그것은 전혀 필연적이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경험은 그것을 그렇게 언제나(매번) 배울 것이다. 경험으로부터 차용된 것은, 또한 오직 상대적 보편성만, 즉 귀납을 통한 (보편성)을 가진다. 사람들은 그러므로 단지 현재 관찰된 것에 따르면 3차원 이상을 가지는 공간은 발견되지 않았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r wird also als die Bedingung der Möglichkeit der Erscheinungen, und nicht als eine von ihnen abhängende Bestimmung angesehen, und ist eine Vorstellung a priori, die notwendiger Weise äußeren Erscheinungen zum Grunde liegt.

그러므로 그것(공간)은 현상들의 가능성에 대한 조건으로서, 그리고 현상들에 달려 있는 규정으로서 고려되고, 선험적인 표상이다, 그 필연적인 방식의 표상이 외부 현상들에 기초로서 놓여진.

→ 그러므로 그것(공간)은 현상들의 가능성에 대한 조건으로서, 그리고 현상들에 달려 있는 규정이 아닌 것으로서 고려되고, 그 필연적인 방식의 표상이 외부 현상들에 기초로서 놓여진 선험적인 표상이다.

 

In A folgt : 3) Auf die Notwendigkeit a priori gründet sich die apodiktische Gewißheit aller geometrischen Grundsätze, und die Möglichkeit ihrer Konstruktion a priori.

A판에 따르면 : 3) 모든 기하학적 근본명제의 자명한 확실성이 그 선험적 필연성을 근거로 하며, 그것의 선험적 구조의 가능성이 그 선험적 필연성을 근거로 한다.

→ A판에 따르면 : 3) 모든 기하학적 근본명제의 자명한 확실성이 그 선험적 필연성을 근거로 하며, 그것의 선험적 구조의 가능성이 그 선험적 필연성을 근거로 한다.

Wäre nämlich diese Vorstellung des Raums ein a posteriori erworbener Begriff, der aus der allgemeinen äußeren Erfahrung geschöpft wäre, so würden die ersten Grundsätze der mathematischen Bestimmung nichts als Wahrnehmungen sein.

즉 공간의 이러한 표상이 후험적으로 습득된 개념이라면, 그 개념이 일반적 외적 경험으로부터 길어져 나오는 것이라면, 그래서 수학적 규정의 최초의 근본명제는 지각들 이외에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 즉 공간의 이러한 표상이 후험적으로 습득된 개념이라면, 그 개념이 일반적 외적 경험으로부터 길어져 나오는 것이라면, 그래서 수학적 규정의 최초의 근본명제는 지각들 이외에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Sie hätten also alle Zufälligkeit der Wahrnehmung, und es wäre eben nicht notwendig, daß zwischen zween Punkten nur eine gerade Linie sei, sondern die Erfahrung würde es so jederzeit lehren.

그러므로 그 표상은 지각의 모든 우연성을 가질 것이고, 그것은 전혀 필연적이지 않을 것이다, 두 점 사이에는 오직 하나의 곧은 선만이 있다는 것, 오히려 경험은 그것을 그렇게 언제나 배울 것이다.

→ 그러므로 그 표상은 지각의 모든 우연성을 가질 것이고, 두 점 사이에는 오직 하나의 곧은 선만이 있다는 것, 그것은 전혀 필연적이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경험은 그것을 그렇게 언제나(매번) 배울 것이다.

Was von der Erfahrung entlehnt ist, hat auch nur komparative Allgemeinheit, nämlich durch Induktion.

경험으로부터 차용된 것은, 또한 오직 상대적 보편성만을 가진다, 즉 귀납을 통한.

→ 경험으로부터 차용된 것은, 또한 오직 상대적 보편성만, 즉 귀납을 통한 (보편성)을 가진다.

Man würde also nur sagen können, so viel zur Zeit noch bemerkt worden, ist kein Raum gefunden worden, der mehr als drei Abmessungen hätte.

사람들은 그러므로 단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관찰된 것에 따르면, 공간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 공간이 세 측정들(차원들) 이상을 가진.

→ 사람들은 그러므로 단지 현재 관찰된 것에 따르면 3차원 이상을 가진 공간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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