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은 다양한 측면을 지닌다. 그것은 변화하여 본래의 성질을 잃기도 하고 이전에 없던 특징을 드러내기도 한다. 또한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여러 상이한 여러 모습들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모습들이 똑같은 하나의 사물에 속하는가 하면, 무지나 착각으로 인해 사물과 모습 사이의 관계에 여러가지 혼동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는 혼란을 일으키는 그 사물 혹은 사물들이 각기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사물에 속하는 모습들과 그렇지 않은 모습들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사물에 속하지 않는 모습들이 속하는 다른 사물은 무엇인지, 또 이 두 사물이 공유하는 모습들은 무엇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까지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앎을 가진다는 것은 각 사물에 대한 여러 현상들의 관계를 생각하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지로 인한 혼동 때문에 인간은 잘못 생각하거나 잘못 말 할 수 있다. 참인 믿음을 가지고 참인 말을 할 수도 있지만 잘못된, 즉 거짓 믿음을 가질 수도 있고, 이를 표현해 거짓인 말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다시, 어떤 믿음과 어떤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구분한다는 것은, 그 믿음과 말이 표현하는 사물과 현상의 관계가 실제로 그러한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 구분한다는 것이다. 

216a-218e 소피스트, 정치가, 철학자 사이의 혼동.

- 대화를 시작하면서 이미 이러한 문제가 암시된다. 1) 한 가지의 것이 여러 모습을 보여준다. 2) 그것에 대해 여러 이름이 붙고, 3) 저마다 여러가지로 생각하고 또 말한다. 4) 그 말과 생각은 맞거나 틀릴 수 있다. 

219a-232a 소피스트의 여러 모습들.

- 소피스트라는 유는 소피스트-기술(sophistike)라는 하나의 기술로부터 나온 하나의 이름으로 불린다. 그러나 소피스트는 사냥꾼, 상인, 쟁론가, 영혼의 정화자로 나타난다. 소피스트는 사냥술, 상술, 쟁론술, 정화술 각각을 모두 아는 것으로 여겨지고, 이 때문에 하나의 기술에서 나온 하나의 이름이 아니라 여러 이름들로 불리게 된다. 

232b-236c 소피스트의 반박-모방술.

- 소피스트는 반박을 통해 잘못된 믿음을 지닌 영혼을 정화하여 쟁론에서 승리함으로써 젊은이들에게 소피스트 자신이 지혜롭다는 믿음을 심어주고 그렇게 젊은이들을 매혹시켜 그들을 사냥하고 그들에게 바로 그 반박술을 가르쳐 돈을 받는다. 소피스트의 여러 모습들의 중심에 반박술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소피스트는 천지만물 세상만사 그 각각을 전부, 저마다의 전문가(기술자)를 상대로 반박할 수 있으며 이런 반박술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소피스트가 그러하다는 믿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심어준다. 모든 사안에는 해당 문제의 기술자, 그 일을 아는 전문가가 있고, 그러한 각 기술자 모두를 상대로 그 일을 알지 못하는 자가 제대로 반박을 할 수는 없을 것이므로, 소피스트는 모든 일 각각을 전부 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기술로 여러가지 각 기술 모두를 알 수는 없다. 그러한 일이 불가능하지만, 사람들이 소피스트가 모든 것을 안다고 믿는다. 이러한 믿음을 가능케 하는 것은 모방이다. 사실이 아니지만 그 사실을 닮은 모방물을 사실로 믿도록 만드는 일은 가능하다.

236d-242b 모상과 거짓, 그리고 non-being.

- 모방의 대상을 그대로 본뜬 모상도 있고 원본의 비율을 왜곡시켜서 원본을 닮은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모상도 있다. 소피스트는 이 둘 중 어느 한 종류의 모상을 만드는 자일 것이다. 소피스트는 실제로는 모든 일에 지혜롭지 않고 그럴 수 없으면서도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에 지혜로운 자라고 거짓 믿음을 심어준다. 모상은 원본이 아닌 것이다. 원본은 참으로 그 자신인 바의 것이다. 원본이 아닌 모상은 그래서 참인 것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참이 아닌 것, 참과 반대되는 것으로서 거짓이란 어떤 것인 바의 것을 어떤 것이지 않은 것으로, 혹은 그 역으로 결합시키는 믿음이나 말이다.

어떤 것인 바의 것과 어떤 것이지 않은 것 사이의 결합. 
- 모상은 어떤 무엇을 닮은, 그러나 바로 그것이지는 않은 무언가이다.
- 거짓은 어떤 무엇인 바의 것을 어떤 무엇이지 않다고, 혹은 그 역으로 생각하거나 말하는 것이다.
- 파르메니데스에 따르면, 오직 어떤 무엇인 바의 것뿐이며, 어떤 무엇이지 않은 것은 생각할 수도 말할 수도 없다.
- 소피스트는 말로 된 모상을 통해 거짓 믿음을 심어주는 자이다. 그러나 모상도, 거짓도 그 안에서 어떤 무엇'이지 않음'이 섞인다. 이것 자체를 생각하거나 말할 수도 없거니와 그것을 어떤 무엇'임'에 엮거나 그 역으로 결합시키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그러나 소피스트가 말로 모상을 만들어 거짓 믿음을 심는다고 규정하기 위해서, 그리고 소피스트가 주장하는 앎을 논박하기 위해서 어떤 무엇'이지 않음'을 말할 수밖에 없고 그것을 어떤 무엇'임'과 엮지 않을 수 없다.

어떤 것이 하나의 것으로서 여러 모습과 연결될 방법, 어떤 것 자체와 그것을 가리키는 이름이 결합될 방법, 또한 그 어떤 것과 그것의 모습들 그리고 그 이름들에 사람의 말과 생각이 관계하는 방법이 문제이다. 대상과 그것에 대한 생각 혹은 말이 맺는 관계에서 참된 관계와 그릇된 관계는 각기 무엇이며 이를 나누는 기준이 무엇이지 또한 문제가 된다. 이 모든 것은 어떤 것이 다른 무엇과 어떻게 결합되고 또한 분리되는지에 대한 문제이며, 이 모든 문제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부류가 바로 소피스트이다.

242c-245e being의 수, 246a-249d being의 종류. 

우선 분명해 보이는 것, 분명하다고 여겨지는 것부터 출발한다. 그것은 Being이다. 어떤 것 그 자체와 그것에 결합하는 여러가지 것들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가능하고 또 어떠한 것인지 고찰된다.

다원론, 일원론, 운동, 정지.

대립되는 한쌍의 형상들이 있는가 하면 이 대립쌍을 포괄하면서도 이것들과는 구분되어야 하는 형상도 있다. 이것들 사이의 관계에서 같음과 다름이 등장한다. 이 둘 역시 being의 형상에 포함되어야 한다. 

이 형상들, 유들이 무엇인가? 판단의 형식들인가? 플라톤의 초-중기 형상들과 같은 것인가? 혹은 이전의 형상들과는 다르지만 여전히 실재하는 무엇인가? 이에 대한 입장들이 나뉜다. 이에 따라 결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린다. 또한 이후 말이 무엇인지, 또한 거짓이 무엇인지에 대한 분석을 해석하는 방식 역시 나뉜다.

249e-254d 결합과 분리의 방식.

형상들의 결합 없이는 말도 철학도 불가능하다--- 

254b-257a. Being에 대한 참여와 여타 형상들에 대한 참여. 256e에서 여타 형상들의 being에 대한 관계와 257a에서 Being의 여타 형상들에 대한 관계.

255c-d. 그 자체로. 다른 것에 대해.
258c. '~이지 않음'. 부정적 형상?
263b-d. 다름과 거짓.

해당 구절들이 어떻게 해석되느냐에 따라 해당 대화편의 문제의식이 무엇인지, 또 그 해법은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 또한 판이해진다. 그러나 어느 입장에 서든 불가피하게 직면하게 되는 문제는 논의의 일관성과 정당성이다. 

  - 작성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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