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유들이 혼동된다. e.g. 소피스테스, 정치가, 철학자.

2. 소피스테스라는 유가 여러 기술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e.g. 상인, 교육자, 쟁론가.

3. 소피스테스는 말로써 논박하여 돈을 벌고 이를 가르치는 자이다.
    3-1. 그는 모든 각각의 기술에 대해 해당 장인을 상대로 논박할 수 있다고, 그리고 이를 남에게 가르칠 수 있다고 공언한다.
    3-2. 어떤 기술을 건전하게 논박하려면 해당 기술을 알아야 한다. 소피스테스는 모든 기술을 논박한다고 주장하므로, 이에 따르면 그는 모든 기술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는 불가능하다.
    3-3. 소피스테스가 모든 기술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는 그렇게 보이고 사람들에게 그렇게 믿도록 만든다.

4. 소피스테스는 말로된 모상을 만드는 자이다.
    4-1. 소꿉장난은 모든 것을 알거나 행하지 못하더라도 그 모든 것을 모방하여 제작할 수 있다. 소피스테스도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더라도 그것들을 말로 모방할 수 있다.
    4-2. 어리석은 자들을 상대로 하면 모방물을 원본으로 믿도록 속일 수 있다.
    4-3. 모방물은 원본의 비율과 배색을 따르는 모방과, 이런 비율을 왜곡시켜 원본을 닮은 것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모방으로 나뉜다. 전자는 모상, 후자는 현상(phantasma)이다.

5. 모상과 현상, 거짓.
    5-1. 모방의 문제. 모방된 것은 원본이 아니다. 원본은 참으로 그것인 바의 것이다. 그렇다면 모상은 '참인 원본'은 아닌 것이며, 따라서 참이 아닌 거짓이다. 예를 들어 사과를 모방한 사과는 사과가 아니며 거짓 사과이다. 그러나 참으로 사과인 것은 아니더라도 사과를 닮은 무엇이다. 그런데 소피스테스는 오직 말을 기준으로 삼아 반박할 것이다. 참인 사과는 사과인 바의 것, 사과로서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참인 사과가 아닌 것은 사과이지 않은, 사과로 있지 않은 것이다. 사과를 닮은 것이 사과가 아니고 '사과'라고 부를 수 없다면, 그것을 아무것도 아니고 없는 것이다.
    5-2. 거짓은 어떤 무엇인 것을 그것이지 않다고, 혹은 어떤 무엇이지 않은 것을 바로 그것이라고 말하거나 믿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무엇이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며 전혀 없다.
    5-3. 원본이 아니면서 원본이지는 않은 것, 즉 모방물이란 것이 불가능하다. 나아가 그 모방물 중에서 원본의 비율을 왜곡시킨, 즉 원본을 실제로 닮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원본을 닮은 것처럼 보이는 모방, 거짓 모방으로서 혀상 또한 불가능하다.

6. 아무것도 아님(to medamos on, 어떤 식으로도 있지 않음)

    6-1. 모방과 거짓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있지 않음/~이지 않음'을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기에, 하나도 여럿도 아니며 '그것'이라고조차 할 수 없다. 각기 어떤 무엇이게 마련인 모든 있는 것들로부터 발가벗겨진 '아무것도 아님'은 그런 이름을 붙일 수도 없고(이름 역시 '무엇'이기 때문에) 따라서 누군가 그것을 통해 거짓을 만들어 낸다 하더라도 그를 논박할 수조차 없다. 논박을 위해서도 그 'to me on'이란 것을 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6-2. 모든 있는 것(to on)과 전혀 무관한 to me on은 전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to on을 to me on과, to me on을 to on과 결부시켜야 하며, 있는 것들 중에서 그 '아무것도 아님'을 찾아내야 한다. 이는 파르메니데스의 가르침을 거스르는 것이면서 또한 소피스테스의 반론을 재반박하는 일이다.

7. 어떤 무엇임(to on, 있음)
    to me on을 완전히 추방시키도록 요구한 파르메니데스는 to on이 오직 하나(hen)이며 전부(pan)라고 말했다. 또한 일찍이 to on을 논했던 여러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것이 몇 개이고 무엇인지에 대해 또 다른 여러 주장들을 펼쳤다.
    7-1. to on의 수에 대해 크게 두 입장이 있다. 
           (1) to on은 둘 이상의 것들이다. - to on(있는 것) 자체와 ta onta(있는 것들)을 구분하지 않으면 오직 to on뿐이고, 구분하면 to on 자체 이외에는 모두 to me on이 되어 버린다.
           (2) to on은 하나이다. - 오직 to on 하나뿐이라면 'to on'과 'hen'이라는 둘은 있을 수 없다. 또한 'to on'과 '전체(holon)'는 서로 다른 바, to on뿐일 경우 그것은 전체가 아니기에 자기 자신에게 부족한, 결핍된 것이 된다. 결핍되어 있다면 to on은 to on이기에 부족하므로 to me on이다.
    to on의 수를 논하는 입장은 아포리아에 빠진다. to on은 그것 하나만으로는 '하나'라는 것도, to on을 가리키는 'to on'이라는 명칭조차도 따로 가질 수 없어 to me on이 되어 버린다. 반면에 to on 이외의 것들까지 ta onta라면, 그것들 모두가 to on일 뿐으로 다시 to on만이 남게 되거나, to on 이외의 것들이 ta me onta로서 제거되어 또 다시 to on만 남게 된다. 혹은 서로 반대되는 둘 중 하나가 to on이라면, 그 외의 것도 반대되는 것으로서 있다는 점에서 역시 to on이므로, 반대의 것이 같은 것이 되어 버린다.
    7-2. to on이 무엇인지에 대해 크게 두 입장이 있다. 
           (1) to on은 변화 중의 생성이다. 이 입장을 완화시켜 영혼이나 그 안에 자리하는 여러 덕들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생각해 보자. 신체(soma, 물체)와 영혼 모두에 공통된 '변화 중의 생성'은 능력(dynamis)이라 할 수 있다. 능력이란 작용하거나 작용받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이전에는 없는 것이 이후에 있게(이전에는 그것이지 않은 것이 이후에 그것이) 되거나 그 역이 된다. 
           (2) 생성에는 신체를 사용해 감각을 통해 관계맺는다. 반면 존재(to on)에는 영혼을 사용해 사유를 통해 관계 맺는다. 후자가 to on이다. 그러나 영혼이 존재와 맺는 관계의 예로 앎의 경우, 영혼이 알게 됨으로써 그 앎의 대상은 알려진다. 그 이전에 영혼은 아는 것이 아니고 그 대상 역시 알려진 것이 아니다. 이는 작용을 하고 또 겪는 '능력'의 사례가 된다.  
   5-3. to on이 무엇인지 논하는 입장은 아포리아에 빠진다. 앎의 대상은 이전에 그것인 바의 것으로 머물러 있어야 한다. 알려진 것과 앎의 대상이 서로 달라진다면 그것은 앎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듯 변화(운동)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인식 작용이 이루어질 수 없다. 이 경우 어떠한 앎도 불가능하다. 

8. 결합과 분리.
    8-1. to me on은 그것을 규정할 어떤 것도 사용할 수 없기 떄문에, to on은 모든 것들(심지어 대립하는 것들까지)이 그것을 규정하는 데에 사용되면서도 그 모든 것들과 구분하여 바로 그 to on을 따로 말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양자 모두 규정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to me on이 단적으로 모든 가능성이 차단된 반면 to on은 모든 것들이 각기 또 전부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는 차이가 있다. to me on 역시 그것이 어떤 무엇이라 정의되기 위해서는 to on에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to on이 자신 이외의 것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다면 어떠한 방식으로 가능한지 검토되어야 한다. to on이 다른 것들과, 다른 것들이 to on과 맺는 관계 속에서 to me on을 찾을 수 없다면 모방도 거짓도 설명할 수 없으며 따라서 소피스테스에 대한 정의도 불가능할 것이다.
    8-2. to on만이 아니라 모든 것들은 서로 결합하고 또한 분리된다. '인간'이라는 유와 '좋음'이라는 유가 결합하는 등 하나의 것이 여러 이름들로 불린다. 그러나 인간이 좋음과 다르듯 각각의 것들은 서로 다른 것들로서 분리되어 있기도 하다. 이러한 결합과 분리의 관계에는 크게 세 가지 가능한 방식이 있다. 1) 전적으로 모든 것이 함께 결합한다. 2) 모든 것이 각기 따로 분리된다. 3) 어떤 것들은 결합하고 또 어떤 것들은 분리된다. 1)의 경우 서로 대립되는 쌍마저 섞여 버리므로 이는 불가능하다. 2)의 경우 to on과의 결합 없이는 그 이외의 것들이 모두 to me on이 되므로, 즉 없는 것이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므로 이 또한 불가능하다. 따라서 3)만이 가능한 결합과 분리의 방식이다.

9. to on, kinesis, stasis.
    결합과 분리의 방식을 존재, 운동, 정지(편의를 위해 순서대로 O, K, S)라는 앞서 직면한 문제와 관련지어 검토한다. 모든 것은 운동하거나 혹은 정지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그런데 to on은 5의 결론에서 알 수 있듯 운동하는 것이어야 하는 동시에 정지해 있는 것이기도 해야 한다. 어느 한쪽만 배제되더라도 인식이 성립될 수 없으며, 운동과 정지의 의미를 확장시킬 경우(작용과 동일성) to on이 결합과 분리조차 불가능한 것이 되어버릴 수 있다. 또한 운동이나 정지뿐만 아니라 to on 이외의 모든 것은 to on과 결합하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는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존재, 운동, 정지가 서로 어떤 식으로는 결합하고 동시에 또 다른 방식으로는 분리되어야 한다.

10. 유들의 결합, 참여, 그리고 estin의 의미. 
    존재는 그 자체의 본성상으로는 움직이거나 정지하거나 하지 않는다. 그러나 앞서 보았듯 존재는 운동하여야 하고 또한 정지하기도 하여야 한다. 반면 운동도 정지도 존재와 결합하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다. 그렇다면 존재 또한 운동하기 위해서는 운동과, 정지하기 위해서는 정지와 결합해야 한다. 그런데 운동과 정지는 서로 반대된다. 만일 운동이 존재라면, 정지는 존재하기 위해 운동과 결합해야 할 것이므로 운동은 존재가 아니다. 정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존재가 아니다. 이 때문에 운동도 정지도 존재와 분리되어야 한다. 이로부터 다음의 결과들이 따라 나온다. O is K, O is S, O is not(ouk esti) K, O is not S. S is(then, S is to on), K is(then, K is to on), S is not O(then, S not is), K is not O(then, K not is). O가 S와 K 각각에 대해, S와 K도 각각 O에 대해 is와 is not이 모두 성립하며 이 모든 명제들은 참이어야 한다. 이 예들에서, O는 술어자리에서 완전용법의 존재사로도 불완전용법의 계사로도 쓰이는 것으로, 또한 계사인 경우에도 부정문에서는 동일성을, 긍정문에서는 서술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11. 유들의 결합과 tauton, thateron.
    K와 S는 서로 반대되며, 이 둘 모두 O에 결합함으로써 존재하므로, 이제 O, K, S는 서로 다른 세 가지 것들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이것들은 각기 자기 자신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 셋 모두에 대해 동일하게 '같다' 그리고 '다르다'라는 술어가 적용된다. 이러한 같음과 다름이(편의를 위해 순서대로 T, H) O, K, S 중 어느 하나라면 그 하나 이외의 것들도 같은 술어가 적용되어 같은 것이 되어 버린다. 따라서 같음과 다름도 각기 앞의 셋과 다른 제 4, 제 5의 것들이다. 이제 O, K, S, T는 제 5의 것인 H에 참여함으로써 자신 이외의 것들과 '다른 것' 된다.또한 O, K, S, H는 T에 참여함으로써 각기 자기 자신과 '같은 것'이 된다. O 이외의 것들은 O에 참여함으로써 'is'를 술어로 가지며, O와 관계하여 H에 참여함으로써 존재이지 않은 것(is not O, then, not is)이 된다. 이는 O와의 다름을 의미할 뿐 O에 반대되는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마치 크지 않은 것은 작은 것뿐만 아니라 같은 크기인 것도 포함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앞서 전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된 to me on과 달리, 여기에서 me on(ouk esti)은 다름을 의미하는 것이다.

12. ta onta/ta me onta peri X.
     이제 to on 자신 이외의 모든 것들은 각기 to on에 참여함으로서 있는 것(to on)이 된다. 동시에 to on에 대해 그것과 다른 것으로서 이 모든 각각의 것은 있음이지 않은 것(to me on)이 된다. 또한, to on은 각각 그 자체에만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서도 성립하므로, to on에 참여하여 그 자체로 있는 것이 된 많은 것들이 서로에 대해서도(peri) 있는 것들이 된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 만큼의 ta onta가 있고, to on을 제외한 그 모든 것들만큼 to on은 ta me onta이다. 또한 그 모든 것들이 각기 자신 이외의 모든 것들과 다르므로, ta me onta는 무수히 많다. 이로써 to me on이 to on과 thateron을 통해 발견되었다.

13. to me on, 그리고 말과 믿음.
     다름으로서의 to me on이 가능한 것으로 밝혀졌다. 다음으로 이것이 말이나 믿음 등에 결합하여 거짓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검토되어야 한다. 말이나 생각은 
이름과 동사를 결합하여, 항상 어떤 무언가에 관하여(peri), 그 대상과 상태를 지시하는 유(genos)이다. 여기에서 대상의 상태에 속하는 ta onta를 ta me onta로, ta me onta를 ta onta로 말하거나 생각함으로써 거짓이 발생한다. 즉 어떤 것에 관하여 있는 것과 다른 것들, 즉 사실과 다른 것들을 말하거나 생각하는 것이 바로 거짓이다.

14. 거짓된 모상을 제작하는 자.
      거짓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고, 따라서 이러한 거짓이나 혹은 참을 진리치로 지니는 모상 또한 있는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앞서 소피스테스는 자신이 모상을 제작하는 그 원본들에 대해 알지 못하는 자로 드러났으므로, 그는 참된 비율을 따르는 모상을 제작하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그는 거짓 모상을 제작하는 자이다. 그는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자신이 만든 모상들이 거짓된 모상들임을 또한 알고 있다.


   문제: 분할의 방법과 변증법의 관계가 불분명하다. 유들의 결합에서 계사 ainai는 동일성의 의미로 사용되는 반면 peri와 함께 쓰이는 einai는 서술적 용법이다. 유들의 결합에서 ouk einai는 동일성 부정이나 진술분석에서는 부정 서술의 용법이다. 유들의 결합에서 다름은 비동일성 일반이나 거짓 내에서의 다름은 '다르면서 참인 명제'를 설명하지 못한다.  

  

 A: to on은 구문론적으로 완전용법과 불완전용법으로, 의미론적으로는 존재사와 계사로 나뉜다. 그러나 의미에 차이가 있더라도 동사의 형태로는 구분되지 않기 떄문에, 이를 혼동함으로써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구문론적, 의미론적 구분을 통해 to on 자체, ta onta, A esti(to on) B 각각이 서로 구분되는 방식을 밝혀주는 것이 대화편의 목적이다.

   A의 해법: to on은 존재사와 계사로 나뉘고, 계사는 다시 동일성의 의미와 서술의 의미로 나뉜다. 이러한 의미 구분에 따라 to on 자체, 완전용법 동사 to on, 불완전용법 동사 to on을 구분할 수 있다. 존재사로서의 to on에 대한 부정은 배제된다. 동일성의 to on은 재귀적으로만 사용되고, 그 부정은 어떤 x와 x 이외의 모든 것 사이의 비동일성을 의미한다. x is y의 경우 y is peri x로 대체될 수 있으며, 여기에서 to on의 불완전용법의 서술적 사용이 드러난다. 'to on은 그 자체로도 다른 것들에 관련해서도 모두 사용되는 반면, thateron은 다른 것들에 관련해서만 사용된다.'라는 설명에서 to on의 여러 의미들을 구분할 근거를 찾을 수 있다.

   A의 문제점: 본문에서 명시적으로 to on의 여러 의미들이나 용법들을 구분하는 구절을 찾기 어렵다. 따라서 본문에서 별다른 언급 없이 일관되게 사용되고 있는 to on을 임의로 구분하여 내용의 연결성, 일관성을 해친다. 특히 존재사로서 완전용법으로 사용된 is와 서술적 계사로서 불완전용버으로 사용된 is 사이의 의미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또한 to on과 to me on 이외에 하나와 여럿, 운동과 정지, 같음과 다름에 할애된 상당한 분량의 내용이 to on의 의미 구분에 어떤 식으로 연결되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Kahn의 제안에 따라 서술적 용법을 중심으로 여러 다른 용법들이 파생되어 나온다는 식의 접근이 있다.


    B: 유는 여러 종들을 지닌다. 또한 각각의 모든 것은 여러 모습으로 보이고 또한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그러나 유와 종이 다르고 각각의 것은 그 자체 하나이며 자기 자신과 같고 그 이외의 것들과는 다르다. 유가 종들과, 하나의 것이 그 자신을 가리키는 여러 이름들과 전적으로 분리되지도 않고 또 완전히 동일하지도 않다. 이러한 결합과 분리의 방식을 해명하는 것이 이 대화편의 목적이다.

   B의 해법: 각각은 그 자체로서 의미를 지닌다. 그 자체의 의미 이외에 다른 의미들, 다른 이름들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것들에 결합함으로써 확보된다. 이 결합(haptomai)은 공유(koinonia), 참여(또는 '몫을 나누어 가짐,' metekein) 등으로도 이야기된다. 예를 들어, to on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반면 to on 이외의 것들은 to on에 참여함으로써 비로소 존재한다. 이는 운동, 정지, 같음, 다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참여를 통해 결합하는 것들은 관점에 따라 다시 분리될 수 있다. 이 분리는 '다름'이라는 유를 통해 이루어진다. 

   B의 문제점: to on과의 직접적인 결합관계를 통해 각각의 것들은 '존재'하게 된다(there is). 그런데 다른 것들과 결합함으로써는 ~으로서 존재하게 되거나 달리 말하자면 ~인 것이 된다(X is Y). 후자의 경우를 설명하는 과정에서는 to on과의 결합이 언급되지 않으며, 두 경우 모두에 등장하는 동일한 to on이 전자의 경우에는 존재사로, 후자의 경우에는 계사로 서로 다르게 사용된다. 단순한 결합만으로는, 혹은 이 결합관계를 반복적용하는 것만으로는 to on의 의미 전환이 설명되기 어렵다. 특히 계사 to on이 사용되는 명제를 peri 명제로 전환하는 경우, to on의 역할이 불분명하다. 예를 들어, '존재가 운동한다'라는 명제는 존재가 운동에 참여함으로써 참이 된다. 같은 명제를 같은 의미에서 본다면 '존재가 운동이다'라고 표현하여도 참이며, 이는 다시 '운동이 존재에 관하여 존재한다'라고 바꾸어 표현할 수 있다. 이 세 명제가 모두 같은 의미이나, 동사로서 to on은 첫 번째 경우 등장하지 않고, 두 번째 경우에서는 계사이나, 반면 세 번째 경우에서는 존재사이다. 여타의 것들과 to on 사이의 결합관계는 존재사를 내놓는 경우 이외에는 그 방식이 설명된 바 없으므로, 두 번째 계사의 의미와 세 번째 '~에 관하여'라는 부사구는 이전의 결합관계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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