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a-389a : 신들과 영웅들을 모범적으로 그려야 한다는 논의에 이어서, 용기를 함양시키는 교육을 위해 어떠한 설화가 필요한지 검토된다. 하데스의 일들이 사실이자 무서운 것들로 그려질 경우 이를 들은 자들은 죽음을 두려워 하고 죽음 대신 패배와 노예신세를 택할 것이다. 이 점에서 하데스를 찬양하도록 시인들을 감독해야 한다. 여기에서 소크라테스는 하데스를 공포스럽게 묘사하는 구절들을 삭제하는 것은 그 작품성을 평가한 결과가 아니라 교육상의 해로움 때문임을 밝힌다. 자유인답기 위해서는 죽음보다도 노예신세를 더욱 두려워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수호자 교육을 위해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 훌륭한 자들은 서로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음을 알기에 동료의 죽음에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자족적이기에 타인에 의존함이 적으므로 동료의 죽음에도 일반인보다 덜 두려워할 것이다. 따라서 유명한 위인들과 진중한 여인들이 아니라 못난 자들에게 비가를 돌려야 한다. 이리 하지 않는다면 이를 통해 배운 자들은 이런 짓을 하려 드는 마음을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고 작은 고난조차 견디지 못할 것이다. 또한 신이나 영웅을 희화함도 안 된다. 이를 보고 웃음에 자신을 내맡기는 자는 큰 변화를 겪을 것이기 때문이다. 

389b-389d : 진실이 중시되어야 하며, 거짓은 신들에게는 쓸모도 없으나, 인간들에게는 약으로써, 의사에게 한하여 허용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인들에게는 허용되지 않아야 한다. 또한 통치자들은 폴리스의 이익을 위해 적이나 시민에게 거짓을 행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역의 경우 환자가 의사에게 또는 선원이 선장에게 거짓을 하는 것과 같거나 그보다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구상되는 폴리스에서 거짓을 행하는 자는 폴리스를 전복시키고 파괴할 관행을 들이는 자로서 처벌받는다. 

389e-392c : 젊은이에게는 절제 또한 교육되어야 한다. 대다수에게는 지배자를 따르고 자신의 욕정은 지배하는 것이 절제이다. 지배자의 경우 신이든 인간이든 주색에 빠지거나 욕정에 휘둘리는 모습은 어울리지 않는다. 반면 이들이 인내를 보여주는 모습이 교육되어야 한다. 영웅들이 재물을 탐하고 신에게 대항하며 오만하게 구는 옛 시인들의 묘사는 검열받아야 한다. 이런 시들이 교육될 경우 젊은이들이 영혼의 악에 무신경하게 될 위험이 있다. 여기까지의 신들과 영웅들이 아닌, 인간사에 대한 시인들의 묘사를 논하기 위해서는 결국 처음의 논의에서 탐구하던 그 정의를 먼저 알아내야 한다. 왜냐하면 시인들은 정의로운 자가 불행하고 부정의한 자가 행복하다고 말하며, 소크라테스 무리는 이에 반대하며 이와 반대의 설화를 그들에게 요구하기 때문이다. 정의가 무엇이고 그것을 지닌 자가 어찌 보이든 그 본성상 얻는 이익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한다. 따라서 설화의 내용에 관하여서는 이것으로 일단락된다.

392d-398b : 이제 문체(lexis)의 문제로 나아간다. 설화는 단적인 서술과 모방을 통한 서술 두 가지가 함께 한다. 시인은 등장인물을 흉내내기도 하고 그 자신이 화자로 나서기도 한다. 시와 설화 중 비극과 희극은 전적인 모방으로 서사가 진행되고 디튀람보스 시가는 단적인 서사만 진행되며 서사시는 양쪽 모두를 행한다. 이제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지에 대한 검토가 진행된다. 모방만으로 서사를 진행해야 하는지, 일부의 모방만 수용해야 하는지, 후자의 경우 모방해도 좋은 것도 그렇지 않은 것은 각기 무엇인지, 혹은 모방을 전면적으로 금지해야 하는지 선택해야 한다. 이는 비극과 희곡의 수용여부를 결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논의는 수호자 교육을 위한 것이므로, 수호자가 모방을 필요로 하는지 고찰해야 한다. 지금 구성되는 폴리스의 개개인은 각기 고유한 능력과 기술로써 서로 다른 직무에 종사한다. 이들은 동시에 여러 가지 일들을 한꺼번에 수행할 수 없다. 모방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것들을 모방하는 것은 한 가지 것만을 모방하는 것에 비해 훌륭하게 수행될 수 없다. 이제 수호자는 자신의 고유한 직무를 수행하고 있기에, 그와 동시에 모든 것을 모방하기까지 하여 모방에 능해질 수는 없다. 심지어 유사한 모방들인 희극과 비극조차 동시에 잘 해낼 수는 없다. 나아가 가객이나 배우가 되는 것도 희극 배우인 동시에 비극 배우가 되는 것도 역시나 잘 해낼 수 없는 일이다. 수호자는 여타 전문직을 모두 버리고 자유의 장인이 되어야만 한다. 이 처음의 주장에 따르면 용기와 절제, 경건은 모방하되 비겁과 수치는 모방하지 말아야 한다. 모방은 습관으로 굳어지기 때문이다. 수호자는 남성으로서 여성을 모방하거나 노예를 모방하는 일도 없으며 무절제하거나 광기 들린 자들 역시 모방하지 않는다. 다른 전문직 종사자들을 모방하지도 않고 자연물을 모방하는 일도 없다. 이제 서사의 한 종류는 두 가지이다. 우선 훌륭한 이가 훌륭한 사람의 말투나 행동에 대한 서사에 이르러서는 모방을 하나, 그 훌륭한 사람의 비참이나 좌절은 모방하지 않는 반면, 자신보다 못한 사람의 말투나 행동 서사에서는 유익한 장면이 아니라면, 자신보다 못한 자에 대한 모방을 바라지도 않고 능하지도 못하기에 모방하지 않는 것이다. 두 번째로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람이 온갖 것들을 모방해대고 정작 서사는 적은 방식이 있다. 전자에 선법과 리듬이 부여되면 변화가 적기에 일관된 문체로 서사를 진행할 수 있다. 이 두 문체들 둘 중 어느 하나나 그 둘의 혼합이 서사의 방식들이다. 지금 구성되는 폴리스에서는 구성원 각자가 고유한 직무를 수행하며 일관되기에 양면적인 자도 다면적인 자도 없으므로, 혼합형도 마구잡이 모방도 거부된다. 외부에서 모든 일들에 능하고 모든 것을 모방할 수 있는 자가 오더라도, 놀랍고 재미있는 자라 칭찬할지언정 이 폴리스에 수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보다 재미없는 시인과 이야기꾼이 상기 법제에 따라 설화로써 교육할 것이다. 이로써 시가 및 설화에 대한 논의가 마무리된다.

398c-402b : 노래와 서정시가의 양식이 검토된다. 노래는 말과 선법, 리듬으로 구성된다. 리듬은 말, 가사에 따라 분위기에 맞추어 조정된다. 비탄조 혼성 리디아 선법, 고음 리디아 선법 및 그런 유의 것들은 제외된다. 비탄과 한탄이 이 폴리스에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주연을 위한 이오니아 선법, 리디아 선법 중 느슨한 몇 가지도 만취와 유약, 나태와 함께 거부된다. 용기있는 자의 어조와 억양,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굳건한 의지와 인내를 가진 자의 어조와 억양, 신에게는 기도하고 인간에게는 가르치고 충고하며, 절제 있고 절도 있는 자의 어조와 억양을 모방할 수 있는 선법만이 필요하다. 글라우콘은 이런 선법이 도리아 선법과 프리기아 선법이라 말한다. 이런 선법만이 남아 현이 많은 악기, 여러 선법을 이용하는 악기도 불필요해진다. 이런 것들이 모방한 아울로스까지 포함하여 그 제작자들도 폴리스에서 불필요하다. 리라, 키타라, 피리와 그 제작자들로 충분하다. 이렇게 사치스러운 나라가 완전히 정화되었다. 남은 것은 리듬에 대한 조정이다. 훌륭한 삶을 나타내는 리듬은 그러한 말에 따라야 하며 역으로 선법과 리듬에 말이 따라서는 안 된다. 여러 리듬들이 있으나 자세한 논의는 어렵고, 단지 우아함과 추함이 문제이다. 전자는 좋은 리듬, 후자는 나쁜 리듬을 따른다. 이들은 또 각기 아름다운 문체와 이에 반대되는 문체에 따르며, 이는 조화와 부조화도 마찬가지이다. 리듬과 선법이 말을 따르기 때문이다. 다시, 문체와 말은 영혼의 성격을 따른다. 이는 다른 예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좋은 표현들은 좋은 성격을 따른다. 반면 나쁜 표현들이 나쁜 성격을 따른다. 따라서 좋은 성격의 모상을 작품 속에 새겨넣을 예술가들, 이런 것의 성질을 천부적으로 추적할 줄 아는 자들을 남겨놓고 그렇게 감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젊은이들은 나쁜 풀을 먹고 자란 것처럼 큰 악을 품게 될 것이다. 반면 좋은 것들에 둘러싸여 양육된다면 큰 선을 품을 것이다. 이것이 시가 교육의 중요성이다. 이것이 성격을 형성하고, 그러한 성격이 선악에 대해 제대로 호오를 갖출 수 있게 한다. 또 이를 통해 스스로 훌륭한 자로 성장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문자를 숙달한 상태에서 글씨가 크든 작든 어디에 쓰였든 무관하게 그 내용을 알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시가에 능해짐으로써 훌륭한 성격(덕)과 악덕, 그 상들이 어디에서 어디로 옮겨가든 알아보고 그것이 똑같은 지식과 훈련에 속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영혼 안에 훌륭한 성격이 들고 그에 합치되는 것들이 외모에 부여되어 이 둘이 같은 원형에 관여하여 있다면, 사랑함직 하다. 그러나 이런 자에 대한 사랑은 절제와 함께 하여야 한다. 선의의 교제를 넘어서는 관계는 무식하고 아름다움에 쑥맥인 자라 비난받는다.

402c-408c : 시가 이후에는 체육을 교육받아야 한다. 영혼의 덕이 육체의 덕을 이룬다. 우선 육체가 영혼을 따르도록 하고, 술을 삼가고 단순한 식사를 유지한다. 화려한 음식이나 여색을 멀리해야 한다. 영혼에서 다양성은 무절제를 낳고, 육체에서는 질병을 낳는다. 반면 단순성은 혼에 절제를, 몸에 건강을 낳는다. 질병에 걸려 타인에 의존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연명에 연연하며 자신의 고유한 직무에 투자할 시간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 약이나 절제술 등의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치료가 장기간의 치료보다 낫다. 혹은 긴 치료를 요한다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고 사는 것은 그에게 이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자들의 몸에 대한 지나친 과심도 가정과 사회에 문제가 된다. 이런 지나친 관심은 철학을 하기 어렵게 하고, 다시 철학으로 인한 노고를 질병으로 간주하게 하여 덕의 수련에도 방해가 된다. 이런 이유로 아스클레피오스가 단기간 치료만을 행하고 장기간 치료가 필요한 자는 죽도록 내버려 두었다고 말해야 한다. 

408d-412b : 훌륭한 의사와 훌륭한 판관이 필요한가? 의사는 병과 상처를 겪음으로써 유능해지고, 따라서 몸이 아닌 영혼으로 몸을 치료하는 자이다. 반면 판관은 영혼으로 영혼을 다스린다. 따라서 영혼에 대한 악들을 경험하지 않아야 한다. 본성상 악하지 않기에 악이 무엇인지 아는데에 오랜 시간이 걸려 판관은 노년이 어울린다. 영혼의 악에 익숙한 자도 역으로 훌륭한 판관을 의심하게 마련이다. 둘 각자는 상대편에 대한 본을 천성적으로는 지니고 있지 못하다. 저열함은 훌륭함도 자기 자신도 알지 못하지만 덕은 교육을 통해 자신도 저열함도 알게 될 것이다. 골골대는 자들과 영혼이 불치의 상태인 자들은 죽게 내버려 두어야 한다. 또한 시가를 통해 교육받은 젊은이들은 판관이 필요하지 않도록 조심할 것이다. 시가에 따라 체육까지 교육받은 자는 의술 역시 필요치 않을 것이다. 체육은 힘이 아닌 기개를 위해 연마할 것이다. 따라서 시가도 체육도 모두 영혼을 위한 교육이다. 전자만 행하면 필요 이상 유약해지고 후자만 행하면 필요 이상 사나워진다. 수호자들은 이 양면을 겸비해야 한다. 체육과 시가는 격정과 철학을 위한 것이다. 이 모두는 영혼을 위한 것이다. 이 둘의 혼화를 가장 잘 조율하는 감독자가 교육과 양육의 규범들이다. 

412c-414b : 수호자들 중 다스릴 자와 다스림을 받을 자가 정해져야 한다. 연장자가 통치하고 연소자가 통치받는다. 통치자들은 그들 중 가장 훌륭한 자들이기도 해야 한다. 그들의 직무를 고려하면 폴리스를 가장 잘 수호하는 자들이어야 한다. 그는 폴리스의 문제에 현명하고 또 폴리스에 마음쓰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마음쓰고 사랑하는 일은 대상과 자신의 이해가 상통할 때 가장 커진다. 따라서 나라의 이익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그 외에는 전혀 행하지 않고자 하는 자들이어야 한다. 이러한 마음가짐, 믿음(doxa)이 지켜지는지 생애에 걸쳐 관찰되어야 한다. 거짓 믿음의 경우는 자발적으로 버리게 될 것이나, 이를 도둑맞거나 홀려서 혹은 강탈당하는 식으로 잃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의 논의, 시간에 의한 망각, 고통과 슬픔에 의한 강제, 쾌락과 공포로 인한 믿음의 변경 등이 있다. 따라서 잘 잊지 않고 속지 않는 자들에게 그 믿음을 잊기 쉽고 속기 쉬운 일들을 맡겨 시험해야 한다. 또한 고통과 수고를 부여하여, 그리고 쾌락과 공포를 주어 시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오염되지 않는 자를 수호자이자 통치자로 임명해야 한다. 이들은 내부로든 외부로든 모든 적들이 나라를 해칠 수 없게 하는 완벽한 수호자들이다. 이전까지 수호자들로 부른 연소자들은 이 통치자들의 믿음을 위한 보조자이자 협력자여야 한다.

414c-417b : 여기에 거짓말이 필요하다. 그들의 지역, 그 대지는 어머니이고 시민들은 모두 형제이다. 신은 이 대지의 자식들 중 통치자가 될 자들에게 황금을 섞고 보조자에게 은을, 여타의 시민들에게 쇠와 청동을 섞었다. 이후의 자손들은 대개 이 선조를 닮는다. 그러나 이것이 엇갈리기도 한다. 신은 이를 분별하여 혼합된 상태마다 걸맞는 직무를 맡기도록 하는 일을 수호자들에게 명했다. 쇠나 청동이 혼합된 자가 통치한다면 폴리스는 멸망할 것이다. 이런 거짓말은 세대에 걸쳐 설득될 수 있을 것이다. 이로써 더욱 폴리스와 서로에게 마음 쓰도록 만들 수 있다. 통치자들은 시민들을 이끌고 폴리스 내에서 내란과 외침을 통제하기 적합하고 계절을 나기 좋은 주둔지로 향한다. 그러나 이런 장소는 통치자들이 시민들을 수호하지 않고 오히려 해치려 들 때에 가장 위험한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다시 한 번 시가 교육과 체육 교육을 통한 훌륭한 영혼의 형성이 강조된다. 또한 수호일에 방해가 될 만한 사유재산은 금지되어야 한다. 자유로운 출입이 가능한 거처가 금지되어야 하고, 최소한의 보수와 공동식사가 제공되어야 한다. 또한 야영하는 군인처럼 공동생활을 하여야 한다. 영혼의 금은 이외의 금은보화는 필요치 않다. 개인의 토지와 주택과 재산을 가질 경우 수호자들은 시민의 협력자가 아닌 적대자가 될 것이다. 이 또한 법제화되어야 한다.

-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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