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글쎄,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건지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건지 모르겠다. 수 많은 사건 사고를 거치는 동안에 내가 한 일이란 게 뭘까, 그런 게 있기나 한 걸까 의구심이 든다. 모니터 뒤에 퍼질러 앉아서 언제나 그렇듯 강 건너 남의 일이라는 듯이 보면서 혀를 차거나 한숨을 쉬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딴짓을 하거나 한다. 국가는 그 자체이자 그 구성원이기도 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라 믿는다. 그 기능을 하지 못하고 그리 하려는 노력조차 보이지 않는 나라에 욕을 하고 분개하며 무언가 바꾸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던 듯하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있었다. 권리를 유보시킨 대신 그 만큼 국가가 책임져야 할 미성년자들조차 지키지 못하는, 반복되는 잘못을 바로잡지 못하는 나라에서 바로 그 나라이기도 한 나는 여전히 비겁하고 게으르다. 나는 그저 사람들이 살아있기만을 바라지만 그런 나의 바람조차 주제넘고 가식적이고 위선적일 따름이다. 숨이 가쁘고 머리가 아파 한동안 TV도 인터넷도 멀리 하며 들어가야 할 강의들도 뒷전으로 하고 쳐 자빠져 있었다. 이불 뒤집어 쓰고 꼴에 끙끙 앓았다, 병신같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남은 사람들까지 병들어 가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 마음이 몸뚱아리만큼이나 위태롭고 부실하다는 것 또한 모르는 바는 아니라서 외면하거나 침묵하는 사람들에게도 가능하면 응원을 보내고 싶다. 하지만 내심, 그저 잠자코 구경이나 하고 앉아 있는 내 자신이 죄인이라는 생각도 떨칠 수가 없고. 재난으로 가난으로 병으로 사고로 계속해서 사람들이 죽어가던 와중에도 어느 사이엔가 나란 놈은, '할 수 있는 게 없다'라느니 그런 어줍잖은 변명이나 주워 섬기며 그저 내가 하는 일이나마 정직하게, 성실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면피를 할 수는 없을까 잔대가리나 굴리고 있게 되었다. 행정의 문제라느니 시장의 문제라느니 의식의 문제라느니 인재니 천재니 말들이 많고 개중에는 종교적인 갈등도 정치적인 갈등도 엿보이는데, 차마 끼어들 엄두조차 나질 않는다. 맞는 말도 있고 틀린 말도 있지만, 아직 다 끝났다는 생각이 들지를 않아서 뭐라 말을 얹기 어렵다. 백만 분의 일의 확률로 기적이 일어난다면 수학적으로 우리는 매달 한 번은 기적을 경험한다고 하더라.(링크) 한 달에 한 번 기적을 만날 확률을 피해가는 이 일상이 더 큰 기적이라는 말이 덧붙지만, 사람은 희망과 기원에 정당성을 내맡겨 버리게 마련 아닌가. 그 한 달에 한 번 있을 기적이 이번에 일어나길 바랄 따름이다. 그저, 큰 아픔에 놀랄 때마다 우리 모두가 말했듯, 잊지 말고 기억해서 바꾸어야 한다는 것, 그것 말고 달리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2. 플라톤 『소피스테스』 관련 논문들을 읽는 모임도 일정이 바뀌고, 아리스토텔레스 『자연학』 강독 모임도 일정도 바뀌고, '프로타고라스 연구' 강의 시간도 바뀌고, 그러는 와중에 오늘은 플라톤 『파르메니데스』 윤독 청강을 가고 내일은 『소피스테스』 강독 강의에 들어가고 끝나자마자 라틴어2 시험감독을 들어가고 오후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HUMANITAS와 PAIDEIA' 수사학회 자료집 편집을 해 제본을 맡기고 다시 오후에 논문 읽기 모임에 갔다가 플라톤 『티마이오스』 윤독 청강을 들어 가고, 토요일에는 오전부터 저녁까지 수사학회에서 심부름을 좀 하고, 아, 플라톤 『필레보스』 강의는 진도가 어디까지 나갔으려나…. 프로타고라스 강의 과제도 해결해야 하고 그 강의 발제 준비도 해야 하겠다. 겸사겸사 τὸ μὴ ὄν λέγειν에 대해서도 생각 좀 정리하고, 반박-모순 불가능 논증이랑 거짓 불가능 논증도 좀 더 정리하고, 다른 건 몰라도 적어도 9월 말까지는 반드시 논문 초안을 완성해야 한다. 5월과 6월까지 털어서 자료수집, 정리를 마무리 지어야 가능한 일정이다. 방학 내내 붙들고 쓰면 세 달 안에 쓸 수 있을 것도 같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도망쳐 온 것인지, 혹은 지금이라도 박차고 나가 뭐라도 하거나 안 되면 소리라도 질러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같잖은 가식질 때려 치우고 정말 개쌍놈으로 살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죽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하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지금 하고 있는 일들 말고는 더는 신경쓰고 싶지 않다, 솔직히 말해서 말이다. 죽겠다고 지랄병을 싸댔던 어린 날이 부끄럽고 그 어린 나에게 미안하고 그렇게 살아와 여전히 멀쩡하게 살아있는 내 자신이 죄스러워서, 이 비루하고 더러운 목숨으로 나 좋은 일만 하고 사는 게 면목 없기도 한데, 뭐 나는 앞으로도 이 따위로 계속 살다 뒈질 듯하다.

3. 딱히 이 말 저 말 할 입장은 아니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고, 그저 남들의 말들로 갈음한다. (링크)

-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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