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몇 시간 뒤에는 정암에 가서 이종환 선생님 필레보스 강의를 듣는다. 무한정(apeiron)과 상대적인 양(많고 적음) 그리고 유종관계를 구성하는 중간 형상들과 개별자들 등등에 대해 딱히 손에 잡히는 이해는 아직 갖질 못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인데, 내가 아직 그 놈의 유종관계를 구성하는 『소피스테스』에서의 변증(dialetike)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간은 잘만 간다. 국가장학금은 5학기까지가 제한이던데 나는 벌써 7학기째다. 씨발, 닝기미, 내가 이렇게까지 좆병신이었는지 예전엔 미처 몰랐나 보다. 이번 주부터 매주 금요일 두시 즈음에는 『소피스테스』 관련 논문들을 읽는 모임이 있다. 이번에는 저 유명한 아크릴의 쓈풀로께 에이도오온을 읽을 계획인데, 뭐, 그냥 그렇다고. 정암에서 이런저런 출판 준비 윤문독회에 귀동냥을 다니는 일은 여전히 신나고 재미난다. 그럼 뭘 하나. 석사만 4년째라니, 이건 뭐 학부부터 다시 다니는 것도 아니고. 음, 정암 강의 듣고 나서는 그야말로 오랜만에 기종석 선생님, 김길수 선생님 뵈러 간다. 아, 면목이 없다. 당신들께서 가르쳐 주신 바를 내가 스스로 지키지도 못하고 있거니와 그 놈의 학교를 7년 가까이 들러 붙어 있었으면서도 뭐 하나 남겨 놓고 나오지도 못했다. 그 사이 학생들은 책의 무서움을 알기 보다는 말장난에 혈안이 되어 가기 시작하고, 어떤 늙은 개새끼는 개지랄을 하다가 쫓겨났다고 하고, 사람이 몇 씩이나 죽어 나가는 동안에 내가 아파하며 고민했던 것들이 다 구라빨 세운 것은 아니었나 회의감만 든다. 그 시간 내내 마음에 품었던 사람을 결국 놓쳐 버리고, 나같은 개쓰레기랑 같이 어울려 놀아 주던 정다운 친구들도 또 놓쳐 버리고, 나는 무언가가 되고 싶기 보다는 다만 공유하고 공감하고 싶었을 뿐이건만 신뢰를 쌓을 시간에 이바구만 쳐대다가 미친 개꼰대새끼 취급을 받으며, 이제는 아마 잊혀졌겠지. 지난 10년이 내게 티끌만치라도 남아 있다면 그마저도 내게는 견디기 어려울 만큼의 죄책감을 불러 오는 부채이지 싶다. 이제 남은 거라곤 그저 책 읽고 논문 쓰고 그러는 것뿐인데, 그것마저 놓쳐 버리면 과연 내가 버틸 수 있을지, 사실 잘 모르겠다. 이번 달로 나랏돈 얻어 먹는 것도 쫑이고, 과외는 있다가 없다가 그러고, 아부지는 꼬장이나 부리며 계속 되도 않는 사업으로 재산이나 까먹고 계시고, 어무이도 이제 돈 벌어 오시기엔 이곳저곳 몸 고장나는 통에 무리가 이만저만하지 않은데, 이 와중에 그나마 수료라도 해 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봄이다. 봄처럼 싫은 것도 드물다. 옘병할 우라져 쳐 자빠질 씹창같은 꽃들이 만발을 하니 다 불살라 버리고 싶달까, 뭐가 그렇게 신나고 즐겁고 파릇파릇한지 모르겠다. 빙하기나 와 버려라. 아, 씨발, 그럼 나 돈 없어서 얼어 뒈지겠네. 뭐 그냥저냥하고 어쩌면 비교적 널널하고 느긋한 고난과 역경이다. 취직을 했든 장사를 했든 이보다 나았으리라고는 생각이 들지를 않으니. 어디든 이 악물고 빡세게 엉겨 붙어 버티고 앉았는 사람들뿐이지 않겠나, 금수저 물고 비단으로 똥귀저기 해입는 윗동네님네들이 아니고서야, 한국 망해라 씨바.

2.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미친 놈 술주정 부리듯 끊임없이 씨부리는데도 뭔가 속에 쌓인 똥 같은 게 싸질러지질 않는다. 게워내고 싸지르는 게 필요한데, 잘못된 믿음들이든 잘못 쳐먹은 쓰레기든 뭐든. 그렇게 다 갈아 엎어야 새 바닥에 뭐라도 주워다 쳐 넣을 것 아닌가. 어쨌든. 소크라테스 흉내를 내는 강신주는 예의 그 정신나간 젊은 껄렁패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듯하다. 그 주둥이로 '철학'이라고만 지껄이지 않는다면 의미있는 일을 한다고는 생각한다. 현실과 그 속의 적나라한 자기 자신의 깜냥을 직시하도록 강요하고 몰아 세우는 것, 구체적인 밑바닥에서 제 두 발로 서서 발을 내딛게끔 닥달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뒈질 놈은 안 그래도 뒈지고 살 놈은 뭔 지랄을 해도 사니까, 딱히 사정 봐줄 건 없지. 그런데 서양철학만 해도 그 역사가 넉넉잡아 3천년이 되어 가는 마당에, 그 모든 노력을 개무시하고 뜬금없이 '너 자신을 알라' 이 지랄을 하면서 주체를 일깨우니 뭐니 하는 게 정말로 '철학'이라는 학문이 맡아야 할 역할인지 모르겠다. 아니, 그게 어쩌면 철학한다는 것일지도 모르지. 그렇다 하더라도, 저 오랜 역사를 제대로 소화해내지도 못한 이 시궁창에서 금꽃병에 천년화를 심겠노라고 주접을 떠는 게 가당키나 한지 그걸 모르겠다. 철학은 무슨 개뿔이 철학인가, 글줄도 못 알아 쳐먹는 새끼들 싸그리 긁어 모아 대학구석에 쳐박아 놓고서는 다이어트 가르치고 스키 가르치고 술이나 쳐먹이고 내쫓듯 졸업시키면서 뒷돈이나 챙기는 나라에서. 유불도 경전들의 편집이 제대로 되었나 고중세 근대 현대 서양 저술들이나 제대로 다 번역을 했나 그런 거 도맡을 연구자들이나 족히 뽑아냈나 아니 그럴 푼돈 줄 구멍이나 만들어 뒀나, 좆을 빨고 아주 그냥 히마티온 걸치고 고대 그리스 코스프레 하면서 철학 처음부터 다시 싹 다 새로 시작할까? 딱히 뭔 짓거리인지 모르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떤 새끼는 칸트가 낫네 플라톤이 낫네 칸트도 모르는 좆뉴비들이랑 뭔 얘기를 하냐느니 개소리나 하고 앉았고(씨부랄, 『순수이성비판』이나 붙들고 있어 봤냐? 그게 좆나 지 새끼 일기장마냥 침발라가며 한 두 시간 읽으면 아주 머리에 쏙쏙 박히고 그러지? 대단한 천재들 나셨네. 누가 낫니 못하니를 떠나서 이제 막 배우는 새끼가 한다는 소리가 저 따위란 게 일단 빡치지 않나.), 또 어떤 새끼는 100년도 지난 영역본을 가져다가 플라톤을 읽네 영어 공부를 하네 마네 씨발 알려줘도 다 씹고 지랄을 해대고 있지를 않나 무슨 쳐 읽지도 않은 외국 저술 가져다가 씨부리며 잘난 척을 해대질 않나, 어떤 새끼는 뭐 프로타고라스인지 피타고라스인지 파르메니데스인지 지가 걔 애인이래나 뭐래나 이 지랄을 하며 고대 그리스어 문법 좀 하라고 선생들 달라 붙고 제자까지 붙여다가 주마다 보쟀더니 노느라 바쁘셔서 쳐 나오지도 않은 주제에 지가 딴 새끼들을 가르치네 마네 이 지랄을 하고 있다고 하시고, 그 새끼들이 죄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씨부리면 '아, 꼰대새끼 또 지랄이야' 이러고 말겄지. 뭐 그래야 마땅한 일이다. 당연한 반응이다. 내가 시간과 노력을 들여 함께 읽고 묻고 따지고 그러지도 못한 주제에 뭐라고 좆같지도 않게 선배질을 쳐 하겠냐. 밥을 사줬냐 술을 사줬냐 학자금 대출 이자라도 내줬냐. 근데 쫌 내가 챙겼던 새끼들한테는 꽤나 서운하기도 하다. 니들에게 내가 뭐라도 해줬다면 니들도 쟤들한테 뭣 좀 해 주면 안 되는 거냐. 날 쓰레기 취급하며 떠났던 누군가는 여기저기에서 다시 철학자연하며 겁없이 씨부리는 일을 이리저리 싸지르고 다닌다고 들었고, 뭐 그 친구도 내가 직접 함께했던 시간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으니 내가 가타부타할 자격은 없지. 같이 머리 싸매고 끙끙거렸던 놈들도 이젠 뒷방늙은이 취급을 받을 테니 내가 걔들한테 뭐라 하기도 참 꼴이 우습고. 모르겠다. 말 그대로의 '생계'를 지 스스로 책임지고, 제 3세계 변방에서 황국의 철학을 빌어다 쓰는 주제를 알고서 외국어 좆나게 배우고, 낱자 하나 토씨 하나 곱씹어 가며 읽은 적 없는 지난 날을 머리 쳐박고 후회하고 반성하면서 글 읽는 법부터 앗싸리 다시 배우고, 같은 분야에 투신한 다른 나라 새끼들이 앞서간 거리만큼의 노력을 추가하고 이미 없는 것이 검증된 그 비루한 재능을 마른 나무에서 즙 짜내듯 안간힘을 써서 뽑아내 또 노력을 쏟아 부어서, 안으로는 제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바로 그 학문의 역사와 체계를 가늠하고 밖으로는 이 학문이 기대고 붙드는 다른 학문들을 조망하고 이 모든 것들이 속하고 또 뒤섞이는 현실로부터 눈 돌리지 말고, 이게 다 되면 니들이 철학자라고 씨부리든 플라톤의 재림이라 자처를 하든 뭘 하든 상관 않겠는데, 니들 정말 양심에 손을 얹고 그러고들 있냐? 옌장, 모르겠다. 자꾸만 자꾸만 나는 무섭고 죄스럽다. 죽은 스승 죽은 선배 죽은 친구를 떠올리며 이렇게 떠올리고 언급하는 것조차 이래도 되나 싶으면서도 결국 또 그냥 떠들고 마는 거다. 악착같이 버티고 살아남아 후일을 기약하고 도모하며 막막하다 못해 까마득한 일더미에 파묻혀 조용히 번역하고 논문 내고 강의하는 선생님들을 생각하면서, 부끄럽고 그냥 죽겠는 거다. 살고 죽어 가면서 이 바닥을 여기까지 명줄 이어 놓은 사람들에게, 내가 앞서 개쌍욕을 쳐던진 저 씹새들이 똥물을 들이붓고 있다는 생각은, 정말로 잘못된 것이려나. 니들에게 그럴 자격이 있나, 혹은 애써 사는 사람들이 니들에게 이 따위로 모욕을 당할 이유라도 있는 건가. 그냥 잠자코 연구하는 사람들을 내버려 두면 안 되는 건가, 니깟 것들의 취미생활에 기여하기 위해 시간 쓰고 마음 쓰고 하기에는, 이 미친 세상에서 저러한 노력들이 너무 아까울 만치 값지다고는 도무지 생각할 수가 없는 건가. 뭐, 철학을 코에 가져다 걸든 머리 위에 뒤집어 쓰든 사실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만, 나는 지금 동정과 연민에 호소하고 있는 거다. 이 미친 꼬라지를 쳐다 보고 앉았는 나를 긍휼히 여기사 제발들 좀 그만들 좀 해주면 안 되겠나. 흐, 안 되겠지.

3. 술이 고프고 사람이 고프다. 학부를 졸업하자 마자 나는 연달아 세 번이고 네 번이고 술에 취해서는 경찰차에 실려 가고 응급실로 실려 가고 그랬더랬다. 된통 다치고 나서는 요즘 들어서는 그렇게까지 쳐 마시고 나뒹굴지는 않는듸, 뭐 어쨌든 그랬더랬다. 예전엔 억지로 혼자이려고 지랄을 했더랬다만 이제는 그냥 딱히 아무 생각도 없다. 둘러 보면 혹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고 딱히 독신이 꿈인 것도 아니고 사람이 싫은 것도 아니건만, 요즘 들어 나는 한결 괴팍해진 듯하다. 예전에는 학회를 하든 토론을 하든 화를 내는 게 아니라 그냥 흥분해서 언성이 높아졌을 뿐인데 요즈음은 되도 않는 소리하고 억지 부리는 새끼들 꼬락서니가 역겹고 아니꼬와서 버럭질을 하게 된다. 그렇다고 내가 다 맞고 니들 다 틀리고 좆나 나님 킹왕짱ㅋㅋ 뭐 이 지랄을 하는 건 아니고, 그냥 앗싸리 아주 잘 아는 선생 얘기나 들었으면 하는 거다. 씨잘데기 없는 잡소리들 쳐 듣고 앉아 있기에는 내가 너무너무 부족하고 뒤쳐져 있고 병신이란 생각에 견딜 수가 없어서, 조급해서 말이다. 뭐 씨발 딱히 대단히 신선하고 기발한 것도 아닌 얼렁뚱땅 때려잡는 감으로다가 되는 소리 안 되는 소리 똥오줌 구분도 못하고 지껄여대는데 내가 왜 참아야 하나 싶기도 하고. 안 참고 토악질을 해댄 내 뻘소리들도 만만찮은 뻘소리이긴 매한가지겠으나, 그래서 이중 삼중으로 화가 나는 것이지. 나도 싫고 니들도 싫고. 픽사 'Up' 앞부분이 생각나 뜬금없이 엉엉 울었다. 나도 긴 시간을 함께하고 서로 믿으며 어울린 그런 사람을 곁에 둘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부러움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국민학교 때 첫사랑과 생이별을 하지만 않았으면 그리 될 수 있었으려나, 아님 사춘기도 오기 전부터 시작된 빌어먹을 중2병을 잘만 피해 갔더라면 사정이 조금 나았으려나, 내내 지랄만 하고 살다가 사람 하나 남기질 못하고 나는 벌써 주변에 다들 시집장가가고 애 낳고 살림살이 걱정하는 인간들에 둘러싸이기 시작했다. 그게 나쁘단 건 아니고, 이제 정말로 돌이킬 수 없게 되어 버렸다는 얘기랄까 뭐랄까. 'Up'에서 주인공 노친네는 헤어지고 나서까지 전적인 신뢰를 등에 업고 행복했을 것 같은데, 나는 남에게서는커녕 내 자신에게서도 신뢰를 얻질 못 하겠으니 이 일을 어쩌나. 아, 나 좆나 감성돋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랄 것이, 주변에 하나 둘 짝을 찾아 가정을 꾸리고 무난한 행복을 염원하며 외롭지 않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나는 필레보스마냥 그리 생각한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좋고 즐겁고 행복하면 된 거다. 어쨌든 당장의 문제는 슬프고 아프고 불행한 자들이 남았다는 것이고, 진정으로 좋은 것이니 있는 그대로의 정의니 뭐니 하는 배부른 소리는, 여태껏 그래 왔듯 차근차근 고민할 놈들이나 고민하면 될 일이다. 세상에 기여하는 정도로만 보아도 학자나부랭이들이 씹지랄에 비하면야 당신들의 행복은 더할 나위 없이 생산적이고 긍정적이다. 기필코 결단코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행복하길 바란다, 다들. 난 이 현실에서 도망나온 시궁창에서 좀 더 굴러야 쓰겄다.

-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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